김룡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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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련수 후기 시 고찰
2009년 08월 17일 20시 15분  조회:1354  추천:58  작성자: 김룡운

심련수 후기 시 고찰


김룡운

본고에서는 주로 심련수의 후기 시문학에서 보이는 종결어, 한자어, 시의 구조 등에 대해서만 론의의 대상에 넣었다.

1. 종결어로부터 본 시어고찰
심련수의 시는 종결어의 선택과 사용에서 여느 시인들과는 구별되는 남다른 특색을 보인다. 초기 시에는 설명과 권유와 간청 쪽에 힘을 실은 녀성적인 톤 “왔대요, 한다옵데, 주려무나” 등과 같은 종결토들이 우세라면 후기 시에 와서는 “들으라, 맞노라, 보라, 부르라, 하라” 등과 같은 명령형, 호령형, 확고성, 예언성 등과 같은 시어들이 우세를 차지한다. 짐작컨대 이런것들은 그의 시관의 변화에 따른것이 아닐가고  생각한다. 물론 초기 시에도 이와 같은 시어들이 없는것은 아니로되 후기 시에 와서 더욱 빈번해지고 의도적이라는데서 론의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언어의 씀씀이는 주의식적 의지의 시풍을 형성하는데 있어 사용하는 시적언어임을 알수가 있다. 선구자적 언어의 배렬을 몸에 익힌듯한 이 종결어미의 사용은 심련수 시에서 도처에서 발견될 뿐만아니라 왜 이러한 주의식적 시관을 통해 격변과 충격을 시적 위안으로 삼았는지 그 심층을 살펴보는것은 매우 흥미있는 관조일것이다.” (리세훈)이런 지적은 아주 정확하다. 헌데 이에 대한 구체적인 례는 제시하지 않고있다. 하여 이 부분에서는 될수록 정확한 판단과 맞물리는 례문을 제시하고자 했다.
  심련수 시에 선택 사용되는 특이한 종결어는 굵은 남성톤으로 울리여 암담한 세상에 대한 강렬한 스트레스, 진리에 대한 절절한 갈구,사악에 대한 절규, 인류에 대한 무한한 사랑, 군국주의에 대한 완강한 저항정신, 낡은것의 멸망과 새것의 탄생 등을 강조하는데서  유력한 구실을 한다.

陸地의 태ㅅ가을 깨물어 뜯는
마즈막 發惡을 그대여 보는가
….중략…
北으로 北으로 進軍하는 에쓰키모를
누구의 힘으로 抑留할소냐
…중략
微溫의 殘存을 삼키려 함을
도대체 참으로 알고 있는가
(“人類의 노래”일부)

이 시는 높은곳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웨치는 선각자의 훈계처럼 들린다. “보는가”, “할소냐”, “있는가”는 몰라서 묻는 단순한 물음이 아나라 긍정으로서의 역설적인 강한 울림이다. 시인은 이 시에서 “地球星이 宇宙間에 있을 때까지는 /우리의 心熱을 輸血할수 있다/ 人類의 歷史를 살릴수 있다”(人類의 노래)는 확고한 신념이 있기에 그리고 자기의 판단이 절대적으로 정확하다고 자신하기에 감히 호령조로 훈계할수 있는것이다.
가령 우의 시에서 “보는가”를 “보이십니까”로, “할소냐”를 “할수 있는가요”로 “알고있는가”를 “알고있습니까”로 바꾼다면 엄숙하고 팽팽하던 시 분위기가 많은 정도로 느슨해지고 시 기운이 약해지는 감을 느낄수 있다. 그러므로 우에 례든 시들에서 사용된 종결토들은 무조건 그 자리에 있어야 하고 그래야만 가장 큰 구실을 하는 필요불가결의 시어들이다.
심련수 시인은 후기 시에 이르러 종결어의 선택과 사용에서 오직 그만의 특기를 발휘함으로써 남성적인 톤을 만들고 호방성과 거창성도 획득한다.

2.) 한자로부터 본 시어고찰
엄창섭도 심련수 시에 한자어가 많은것도 특징중의 하나라고 지적한바 있거니와 사실 심련수 시에 한자어가 많이 등장한다. 하긴 당시에 한자어를 즐겨 쓴 시인들이 한 두 사람이 아니였으며 심련수도 그런 시인들중의  한 사람이였다. 일례로 당시 장춘에서 발간되던 《滿鮮日報》의 경우를 살펴보면 한자어를 특별히 즐겨 쓴 시인들로 송철리, 함형수, 김북원, 천청송, 송석영, 리수성. 장인석, 최재철 등을 꼽을수 있다. 그중 일부를 살펴보기로 하자.

沈默

송철리

나는 沈默의 여울에서
暝想의 송사리를 낙는
고독의 漁翁이외다
     ….하략…
《滿鮮日報》1940년 1월 20일


氣焰

S.S.Y(송석영의 영어 이름 략자)

株式의 利益配當을 꾀하는
씨나리즘에 秋波를 던지는
賣春婦 되느니보다
….하략
《滿鮮日報》1940년 4월 19일

白卵의 水仙花

리수영(본명 리욱)

大理石의 球根은 黃昏의
祈禱보다도 神秘로운 思索이였다
……중략
裸體의 眼室에는 눈물도 업고 
距離도 업섯다
《滿鮮日報》1940년 3월 13일

우의 시인들은 모두 심련수보다 년장이다. 이런 시인들이 무슨 연고로 한자어를 즐겨 썼는지 딱히 알길이 없다. 만주라는 특수한 지역환경 때문이였는지, 예로부터 내려오던 “한자우위론”의 영향때문였는지, 한자도 역시 우리 글이라고 생각한건지, 아니면 어릴적에 서당교육을 받은 연고인지, 혹은 개인의 특별한 기호였는지 알수가 없다.
그러나 심련수에 한해서만은 한자 집착의 까닭을 근사하게 추리해낼 수 있을것 같다. 우선 한자가 많이 들어간 심련수의 시 한수를 보기로 하자.

거울 없는 화장실
….상략…
化粧에 젊으려는 耽美의 女人들이
經莫의 視線을 모세운다.
때 땀에 절은 낯 罪惡에 잡힌 심지
意識하고 저지른 탓의 罪狀
-하략
소화 17년 6월 15일

심련수의 한자 애용의 까닭을 몇가지로 추론해 본다.
첫째: 심련수는 6세에 로씨야 울라지보스또크에 간후 얼마 안되여 한인촌에 있는 한인학교에 입학하였다. 한인학교의 교사들도 모두가 항일지사였으며 한문에도 박식한 분들이였다고 한다. 그러므로 심련수가 한인학교에서 항일교육을 받고 애국심을 키웠고 겸하여 한자도 배웠으리라는 추측은 크게 엇나가지는 않을것이다.
둘째: 1931년 쏘련으로부터 중국 녕안현 신안진에 이주하여서부터 1935년 룡정에 오기전까지 심련수는 신안진 진성국민학교에서 공부한것이 아니라 김수산을 개인 선생으로 모시고 공부하였다. 심련수 시인의 동생 심호수씨의 증언에 의하면 김수산은 북만지구 조선인협회 서기장이였고 항일지사였으며 한문에도 박식했다고 한다. 광복후에는 조선에 나가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정치학 교수로 있었다고 한다, 이런 분을 선생으로 모신 심련수였으니 애국심과 함께 한자를 배웠을 가능성도 아주 풍부하다.
셋째: 심련수는 1935년에 룡정에 온후 곧바로 동흥소학에 입학한것이 아니고 대략 반년동안 룡정시내 엿방거리 부근에 있는 사인서숙에서 공부하였다. 사인서숙이라면 한자를 배웠을 소지가 충분하다 하겠다.
넷째: 심련수가 한어를 배우기 위해 만인(당시 만주국에서 살고있는 중국인들을 습관상 통털어 만인이라고 불렀다)과 사귀였다는 일기 두편이 남아있어 심련수가 한자를 많이 장악할수 있었다는데 대해  유력한 증거를 제공하고있다.

1월 1일(1939년)
…상략 앞동네 傳錫德이라는 滿人에게 滿語 배우러 갓다. 그는 吉林 어느 中學을 卒業하였다. 날마다 하려 한다. 저녁에 無情을 보았다. … 영어를 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오래 할만 할는지
이상의 사실은 심련수가 리광수의 “無情”을 즐겨 읽었다는 정보와 함께 심련수가 한자를 많이 장악할수 있었다는데 대한 충분한 증거로도 된다. 그러나 우에 렬거한 사실들이 심련수가 왜서 하필이면 시에 한자를 많이 도입했는가 하는데 대해서는 충분한 리유로 되지는 않는다. 어린 나이라 “한자우위론”관념의 부추김을 받았을는지도 모르고 시체멋으로 그리 했을지도 모르고 무의식적으로 사용했는지도 모른다. 한가지 부언할것은 한자사용이 시의 우렬을 가늠하는데 큰 관계가 없다는것이다. 그것은 다만 외관상의 기호적 특징으로만 될뿐이다.

3. 심련수 후기 시의 구조
심련수의 초기 시들은 전형적인 시조풍과 민족적 리얼리즘을 위주로 하면서 뜨거운 애국심과 실향인의 연연한 방황의식, 조국산천에 대한 열렬한 사랑으로 넘친다. 후기에 와서는 초기의 그러한 시 의식을 어지간히 깔고있으면서도 시가 더 무겁고 날카로와지고 남성적인 톤으로 호방성과 거창성을 획득하며 시를 짜는 방식도 단순한 서정과 리얼리즘에서 벗어나 모더니즘쪽으로 경도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물론 이러한 시적 비약은 우연의 산물이 아닌바 일본류학에서 습득한 서구문학사조와 전적인 관계가 있다. 그러나 리승훈의 지적처럼 심련수는 모더니즘을 고집한것도 아니고 모더니즘에 대한 자의식이 있었던것도 아니고 대체로 그의 경우엔 전통적인 서정시, 민족적인 리얼리즘, 모더니즘이 혼재한다. 필자는 이러한 “혼재설”에 동감이다.
심련수 후기 시의 형식 위주의 구조를 고찰함에 있어서 모더니즘 풍격, 리얼리즘 풍격, 민족적 서정풍격 등 세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1) 심련수 후기 시의 모더니즘풍격
후기 시에 이르러 심련수의 시는 모더니즘과 전통적인 민족풍격, 리얼리즘풍격이 동보하지만 전반적으로 보아 실험적인 모더니즘이 우세인것처럼 보인다. 하긴 초기 시에 모더니즘적인 행동이 전혀 없은것은 아니다. 심련수 초기 시의 대표작이라고 할만한, 그리하여 강릉 경포대 심련수 시비에 새겨진 “눈보라”에서 이미 시인은 알게 모르게 모더니즘과 만난다. 시인은 사나운 눈보라가 요동치는 막막한 지평선에 서서 얼었으되 죽지 않고 전진하는 광명의 화신 조그마한 “해ㅅ덩이"의 이미지를 주조한다. 
“추락한 명상”은 심련수가 리얼리즘으로부터 모더니즘에로 나아가는 비약의 첫걸음으로 된다,

추락한 명상           

절벽 외로운 정
끗없이 푸른 바다가
홀로 앉은 마음이
飛泡에 젖는다
….중략
억만년 묵고 절어
潮楓에 검은 살이
성상보다 거룩하다
추락의 찰나
그러나 명상은 지속한다.
앞이 부서진 靜溢속에서
고이 지키는 습성
끝없이 언제나 가지련다
-소화 17년 9월 6일

    심련수의 초기 시와는 사뭇 다른 모더니즘적인 풍격이다. 시인은 겨벼운 단순 감정토로가 아닌 다져진 무거은 리성으로 “명상”의 이미지를 창조한다. “명상”은 “외로운 정”의 이미지로 바뀌고 그것이 다시 비포에 억만년 절은 “바위”의 이미지로 변하고 나중엔 그것들이 합쳐져 “성상”의 이미지로 일어선다. 시인은 식민지시대의 오랜 고민과 고통끝에 마침내 암흑한 시대에 도전한다. 시인은 그러한 결단이 긴 시간의 사고를 겪었음을 암시하고자 “억만년 묵고 절은 ”바위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시대에 대한 자신의 반항과 도전이 막강한 대가를 지불해야 함을 알기에 “앞이 부서진 靜溢”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 어떤 타격이 있어도 자기의 지조를 굽히지 않을것이라는것을 다지기에 “고이 지키는 습성 끝없이 언제나 지키련다”고 피력한다. 그러나 이 마지막 구절은 단순한 서술적 처리로서 시의 모더니즘성격에 일정한 손상을 주는것 같다.
“次 그음밤 홀로 깨여”는 자동기술법으로 초현실주의를 실험한 시로 보인다,

次 그음밤 혼저 깨여
……상략…
싸늘한 방으로 되찾아드니
화로엔 불조차 꺼진지 오래고
재우에 누가 와서 부저가락으로
일지 못할 글씨를 쓰고 갔고나
책상에 펴놓았던 “악의 꽃”은
99페지부터 144페지를
어느 시인이 훔쳐 먹었는지
이발로 물어뜻은 흔적이 남고
쳐버렸네
……하략

이 시는 초현실주의의 실험이라는데서 주목할만 하다. 그러나 미끈한 시로 되기에는 거리가 있다. 어지간히 란삽하고 조잡한 느낌이 든다. 시인의 창작 의도도 가늠하기 어렵다. 다만 분명한것은 기존 언어질서를 파괴하고있다는 점이다. 추측이지만, 가능하게 시인은 언어파괴의 행위로 현실에 대한 스트레스를 대체하고 혼란한 세계질서를 조소했을수도 있다.
심련수의 후기 시에서 “宇宙의 노래”와 “世紀의 노래”는 대표작으로 볼수 있는 시다. 시의의 무게와 시공의 방대성에서 심련수의 소유의 시들이 비길바 못되며 따라서 심련수 시의 가장 큰 특징으로 되는 호방성과 거창성 획득에서도 가장 큰 구실을 한다.

위성의 軌道를 침범한 흑성
륜리를 자랑하던 철칙의 過失
顚覆과 脫線에 발이 상해
동그란 週期를 연착한다

몹시도 대담하던 假說의 학자가
신을 冒瀆했다는 혐의를 입고
죽음의 도살장에 버티고 서서
毒杯의 법정을 노려본다.

기막힌 사연에 천왕성이 울어
은하의 범람에 눈물이 질제
뭇별이 또다시 부셔져서
나머지 운행을 계속한다
“宇宙의 노래” 소화 17년 7월 5일

  간략하게 풀이하면 “흑성”은 인류에게 재난을 주는 모든 사악의 무리, “죽음의 도살장”은 전 지구적인 참혹한 재난의 현장, “가설의 학자”는 정의의 투사, “천왕성”은 재난에서 허덕이는 인류들이라고 볼수 있겠다. 시인은 우주의 고통과 투쟁의 참혹성을 고발할 뿐만아니라 찬란한 미래도 예시하여 시를 밝게 만든다.

보아라, 조그마한 이 별에도
이제 창조의 베품이 나리리니
두 팔을 걷고 일어서는 날
건투의 神旨가 내릴게다

우주의 울타리에 홰치는 닭
뭇별에 비끼는 려명을 찾아
건너편에 떠오는 火星의 벗에게
우주의 새 진리를 이야기한다
“宇宙의 노래” 소화 17년 7월 5일 

“창조의 베품”, “건투의 神旨’, “울타리에 홰치는 닭”, “화성의 벗” 등 시어들은 암흑을 헤치고 다가올 미래를 제시하고있다. 이런 시어들은 또 광명이라는 동일 이미지로 겹쳐지면서 전편 시를 밝게 건강하게 떠 받들고있다. 윤동주의 시가 “나”라는 작은 스케일에서 가슴에 닿는 가시적 언어로 비장미를 얻고있다면 심련수의 시는 “인류”, “우주”라는 방대한 스케일에서 추상적인 언어로 장엄미를 얻고있다. 여기서 심련수의 시는 호방성과 거창성은 얻고있으나 반대로 그 추상성때문에 오히려 시가 친절하게 페부에 와 닿는데에서는 일정한 영향을 주는것 같다.

(2). 심련수 후기 시의 리얼리즘풍격
심련수의 후기 시에 사실주의 시편들도 적지 않다. 시 ‘벙어리”는 심련수의 성격기질-괄괄하고 시원하고 강직하고 타협을 모르는 사나이의 기질을 투박한 시어로 직언한 작품이다.

벙어리
스스로 제손으로 칼을 들어
싸늘한 가슴팩이를 푹 찌르라
주먹같은 냉덩이가 쑥 빠지게
빛 잃은 죽은 피가 빠지게
私情없이 敢行하라
그러면 병 낫고 말도 하리다
-17년 1월 8일

시인은 자기의 생각을 추호의 감춤도 없이 세차게 쏟아내라고 웨친다. “벙어리”를 한을 속으로 삼키며 사는 식민지 시대의 광범한 민중들이라고 보면 이 시는 반역을 꾀하고 부추키고 선동하는 “반역시”로도 읽을수 있다. 심련수에게 칼로 자기 가슴도 서슴없이 찌를수 있는 사내다운 용기가 있었기에 “우주의 노래”나 “세기의 노래”같은 호방하고 거창한 풍격의 시를 창작할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3). 심련수 후기 시의 민족적 서정풍격
심련수의 후기 시에 민족적 서정풍격도 중요한 몫을 담당한다. 심련수 시의 민족적 서정풍격은 우리 민족에게 고유한 시조체와 민요체가 합쳐서 만들어진다.
시조체: 심련수의 초기 작품중 태반수가 시조며 후기 시에도 시조풍의 시들이 적지 않다. 심련수는 시창작의 초기부터 시조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미발표작이긴 하지만 심련수가 제일 처음으로 쓴 작품이 시조 “님의 뜻”이다. 심련수의 시조창작은 리은상의 시조를 인연으로 발심이 된다.
1940년 3월 27일 심련수는 룡정서점에서 《鷺山詩調集》을 구매했고 이틀사이에 열독을 마쳤다. 열독중 시조에 매료되여 여백에다 5수의 시조를 써 넣었다. 책 제일 마지막 페지에다 “님의 뜻”이라는 시조를 썼다. 

님의 뜻
-鷺山選生을 慕敬하여 끝首를 끝보며-

읽고서 알앗쇠다 님 마음 알앗쇠다
보고서 알앗쇠다 그님 마음 알앗쇠다
날마다 소리치며 句마다 외여둘라우
-1940년 3월 29일 滿苦舍에서
靑松 沈鍊洙(원고에 鍊으로 되여있음)

심련수는 시조가 몸에 배이다싶이 되였기에 일본류학을 하면서 서구모더니즘에 경도되면서도 끈질기게 따라오는 시조의 그림자를 떨어버릴수가 없었던것 같다. 그 떨어버릴수 없었던 인연을 아래의 시가 말해주고있다.

銀座의 垂樣버들 춤추는 저녁
밀려치는 人波의 律動하는 步調
눈을 감고 헤매든 차거운 마음
滿員된 電車에서 弔革을 찾엇다
“동경삼제”-소화16년 2월

3장 6구를 嚴守한 시조는 아니지만 그 흐름은 시조의 감정 흐름이다. 4행으로 된 이 시에서 세번째 행을 삭제하면 기본상 시조구조에 가깝다.
이외에도 “갈매기”, “七夕”, “追憶의 海邊”, “放浪” 등 심련수의 후기 시에 시조풍의 시가 두루 있지만 예는 약한다.
민요체: 심련수 후기 시의 고찰에서 민요체의 시들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심련수는 민요체도 아주 사랑했고 애용했다. 김소월의 영향도 어지간히 받은것 같다. 심련수의 어릴적의 노트를 보면 민요체의 시들을 베껴놓은것이 적지 않는데 그중에 김소월의 시들도 있었다. 심련수의 시에 보이는 7.5조의 민요체 시들은 아마도 김소월의 영향을 받은듯 하다. 심련수의 민요체 시들은 기본상 3.3제와 7.5 제 형식을 취하고있다. 시 “夜業”은 일호차착도 없는 아주 깔끔한 3.3체의 민요시다.

하늘에 적은 별
조을어 새는 밤
구름의 틈새에
하늘도 보이고
-하략…

“夜業”소화 16년 10월 17일 辰羽丸에서

의도적으로 3.3제의 구조를 만들지 않았을가 하는 생각이 든다.  깔끔하고 정연한 3.3제를 만들기 위해 글자를 빼거나 가첨하고 있다. “자잖고”는 “자지 않고”의 준말이고 “무건 짐”은 “무거운 짐”의 준말이고 “어이나”는 “어이”에다 “나”를 보탠것이다. 7.5제의 민요풍에서 “외로운 새”가 그 보기로 된다.

외로운 새

내 가슴에 깃드린 한마리 새
오늘도 이른 새벽 먼동이 틀제
어디론가 외로히 날러 갓기에
무엇인가 잃은듯 섭섭하여라
-하략…
소화 17 년 7월 27일

“夜業”이 한글자도 차이가 없는 알쭌한 3.3제의 률시인것처럼 “외로운 새” 역시 첫 련중 “한마리 새”에서만 딱 한 글자가 적을뿐 알쭌한 7.5제 민요다. 모르긴 하겠지만 정형적인 민족풍의 률시를 써보려고 마음 먹은것 같다. 그리고 지나칠수 없는것이 한자를 무척 애용하는 시인임에도 무릇 민요풍의 전통시에서는 한자도 거의 한 글자도 쓰지 않고있다는 점이다. 아마 그렇게 함으로써 민족성을 돌출히 하려고 했을는지도 모른다. 또 한가지 짚고 넘어갈것은 자유체 형식의 모더니즘시에도 간헐적으로 민요풍의 냄새를 띤 구절들이 더러 끼여있다는 점이다.

파미르 高原에다 천막을 치고
黎牛의 등에서 짐을 풀어라
히말리야 氷河에 목을 축이고
靈峰의 天池에서 목욕하자
-“世紀의 노래”

우의 례문에서 보다싶이 한 글자가 많거나 적을뿐이지 그 틀은 기본상 7.5조의 음률로 되여있다.
이상으로 심련수 후기 시의 형식적 특징에 대하여 간단한 고찰을 진행하였다. 모두어보면 첫째, 심련수의 후기 시는 종결어에서 명령형, 호령형, 확고성, 예견성 등 주의식적 의지를 표명하는 “보라, 하라, 부르라, 들으라” 등의 시어를 선택 사용함으로써 굵직한 남성톤과 선구자적 자세를 형성하며 호방성과 거창성을 획득하는데서 유력한 구실을 한다. 둘째, 심련수는 한자를 즐겨 사용하는데 이는 심련수 시의 외표적 특징의 하나로 된다. 셋째, 심련수의 시는 모더니즘에 치우치면서도 리얼리즘, 전통적 민요형식과 동보하는 이른바 혼재로서의 스케일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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