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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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퇴와 전진의 변증법 (김관웅61)
2007년 08월 08일 21시 45분  조회:5176  추천:109  작성자: 김관웅

후퇴와 전진의 변증법

김 관 웅


  전쟁에서 전진과 후퇴는 흔히 변증법적인 통일을 이룬다. 전진 속에 후퇴가 있고 후퇴 속에서 전진이 있을 수 있다. 성공적인 후퇴는 전진을 내포하고 또 그래서 전진을 위한 후퇴이다. 그러나 졸렬한 후퇴는 후퇴만을 위한 후퇴로서 전진이 내포되지 않은 후퇴이다.    

 전진을 위한 후퇴, 전진을 내포한 후퇴의 전례는 많고도 많지만 그 가장 전형적 사례가 중국 공농 홍군의 2만 5천리 장정이라고 할 수 있다. 강서성에서 섬서성까지 11개  성을 지나면서 무수한 전투와 설산과 초지를 지나면서 2만 5천리를 후퇴하였기에 중국공산당은 천하를 얻지 않았던가. 그러나 일방적인 후퇴,  전진을 내포하지 않는 후퇴는 오히려 자신을 죽음에로 몰아간다. 리자성의 농민봉기군의 패퇴가 그 단적인 실례이다. 오삼계가 산해관을 열어 준 리자성의 농민봉기군은 만족기병에 의해 한번 싸움에서 진 뒤로는 그냥 후퇴만 하다가 나중에는 얻었던 천하도 잃고 말았지 않았던가.    

 전진과 후퇴의 변증법은 전쟁에서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사는데도 적용이 된다. 장춘에서 연길로 돌아오는 기차 칸에서  “한 걸음 물러서면 세상이 끝없이 넓어진다”는 수필을 한편 읽고 느끼는 바가 크다.   

 청나라 시기 안휘성 동성(桐城)출신의 명재상인 장영(張英)의 일화는 참으로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장영의 고향 동성 상부(相府)와 이웃집 사이에는 아주 비좁은 공지가 길게 나 있었다. 이웃집에서 집을 수선하다가 담장을 장영네 집쪽으로 몇 자 가량 더 내 쌓았다. 이 일로 두 이웃 사이에는 다툼이 벌어졌다. 장영이네 집 식구들은 조정에서 큰 벼슬을 하고 있는 장영의 권세에 등대여 이웃집을 혼내주려고 장영에게 편지를 보냈던 것이다. 그런데 장영에게서는 회답이 왔는데 그 편지에는 이란 시구가 있었다고 한다.    

   천리 밖에서 담장 때문에 편지를 보냈구료        千里修書只爲墻,

   이웃에 석자 양보해도 무방하잖겠나                讓他三尺亦無妨.

   만리장성은 지금도 있으나                              萬里長城今猶在,

   오늘은 진시황이 어디에 있느뇨                      如今何有秦始皇. 

  장영네 집 식구들은 이 시를 보고는 느끼는 바가 많아서 자기네 집 담장을 수선할 때는 장영의 말대로 이웃집에 양보하여 자기 집 쪽으로 석자 들이 쌓았다고 한다. 이를 본 이웃집에서도 자기의 과욕을 뉘우치고 쌓았던 담장을 허물어서 자기 집 쪽으로 석자 들이 쌓았다. 그리하여 장영네 집과 이웃집 사이에는 동네 사람들이 다니기 편리한 여섯 자  남짓한  행길이 새로 생겨나게 되었다고 한다. 이리하여 이 고장 사람들은 이 행길을 륙척항(六尺巷)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처럼 한 걸음 후퇴하여 자신의 인격적인 품위를 지킨 미담은 서양에도 있다. 한번은 괴테가 좁은 길을 걷고 있다가 자기와 늘 의견 상이로 인하여 논쟁을 벌이고 있는 한 문인을 만났다. 이 문인은 자기의 숙적인 괴테를 보더니만 대뜸 얼굴이 검으락 붉으락해서 “나는 바보한테는 길을 피할 줄 모른다!”고 모욕적인 언사를 던졌다고 한다. 이 괴테는 오히려 웃으면서 “나는 바보에게 길을 피해 줄줄 안다”고 응수를 하면서 길 한쪽에 비켜서서 그 문인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후퇴를 할 줄 아는 괴테의 이 일화도 서양에서는 줄곧 미담으로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길을 피하는 문제 같은 자질구레한 문제로 자기와 상대도 안 되는 인간하고 드잡이를 한다거나 심지어 결투까지 벌인다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만일 괴테가 그 당시의 기분을 컨트롤하지 못해 그 문인과 같이 놀았다면 이는 아마도 괴테의 품위에 많은 손상을 가져다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후퇴와 양보가 만능인 것은 아니다. 비록 우화이기는 하지만 동곽 선생처럼 늑대에게 그냥 양보만 한다면 그것은 결국에는 자기를 죽음에로 몰아넣는 것이다. 이를테면 푸시킨이 자기의 부인과 놀아나는 프랑스의 건달군 단테스에게 그냥 양보를 했다면 푸시킨의 인격적인 품위는 아마도 일락천장이 되었을 것이다. 푸시킨은 비록 목숨을 잃기는 했지만 사람답게 살려는 패기를 세인들에게 유감없이 보여주었던 것이다.   

 후퇴해야 하는 일과 후퇴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잘 구분하는 것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선택임을 또한 잘 알아야 한다. 이는 사회상의 인간관계로부터 시작하여 집안에서의 부부 관계를 포함한 모든 대인관계에 통하는 일반적인 삶의 법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담장을 둘러 싼 자질구레한 문제거나 또는 문학평론이나 창작이 아닌 길을 비켜주는 것 같은  지엽적인 문제에서 한 걸음 후퇴하거나 한번 양보하면 살아가는 공간이 끝없이 넓어지고 살아가는데 언제나 마음이 편해질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옛날 사람들은 “꽃나무를 많이 심고 가시나무를 적게 심으라”는 교훈적인 말을 남기지 않았던가.     

 그러나 큰 시비나 큰 원칙적인 문제에서 한 걸음 후퇴하다가는 필연적으로 인격적 품위를 잃게 됨을 우리는 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인간은 골기가 없는 무골충이 되고 말며 늘 남들에게 죽어 대령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또 “나귀가 순해빠지면 누구나 타려고 하고 사람이 순해빠지기만 하면 남들의 업신여긴다”는 교훈적인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기에 이 세상의 모든 경구와 속담들은 다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다. 그 어느 특정한 경우를 말한 상대적인 진리임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전진과 후퇴의 변증법을 잘 터득하는 것이 마음 편안하게도 살며 또한 사람답게도 살 수 있는 길임은 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07년 8월 7일 연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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