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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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천 허 씨의 마을 조양천
2013년 02월 18일 14시 17분  조회:2819  추천:4  작성자: 김호림
                            
 
  조양천朝陽川 하면 이름자에 들어있는 내 천川자 때문에 강이나 시냇물을 눈앞에 떠올리기 십상이다. 마침 부르하통하가 조양천의 바로 뒤쪽을 유유히 흘러 지나고 있다. 부르하통하는 만주족 말로 버드나무의 강이라는  의미인데 옛날에는 또 별이 뜨는 물이라는 의미의 성현수星顯水라고 불렸다.
 
  뭐라고 하든지 조양천은 꽃대에 앉은 매미처럼 강에 꼭 붙어있는 형국이다. 그렇다고 조양천이라는 이름의 시원이 이 부르하통하로 되고 있는 건 아니라고 한다. 지명지地名志는 조양천은 다름 아닌 조양하朝陽河 때문에 생긴 이름이라고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름자가 붕어빵처럼 똑 같아서 조양천의 이름을 의례히 조양하에서 생긴 줄로 짐작하는 경우가 많다.
 
  조양하는 북부의 하르바령哈爾巴嶺에서 발원하는 강이다. 하르바령은 안도현과 돈화시의 경계가 되는 산인데 만주족 말로 견갑골뱮이라는 의미이다. 조양하는 강물이 양지바른 남쪽을 향해 흐른다고 해서 지은 이름이다. 또 아홉 골짜기의 물이 모여서 흐른다고 해서 일명 구수하九水河라고 불리기도 한다.  강은 장장 160리를 달린 후 조양천의 동쪽에서 부르하통하에 흘러든다.
 
  어쨌거나 조양하가 일부러 부르하통하를 첨벙첨벙 건너와서 마을에 자기의 이름을 선사하는 이상한 모양새가 되고 있다. 정말이지 누군가 미리 결론을 만든 후 억지로 꿰맞추기를 한 게 아닐지 한다. 오히려 이마를 딱 맞대고 있는 부르하통하가 조양천의 이름을 만들었다고 하면 모를까…
 
  지명지地名志의 기록에 따르면 부르하통하를 이웃한 조양천에는 20세기 초까지 버드나무와 갈대가 숲처럼 무성했고 또 조개가 모래알처럼 널려 있어서 진주영珍珠營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조양천의 이 최초의 이름은 1910년 무렵 또 시냇물의 바다라는 의미의 천수해川水海라고 개명되었다. 산지사방에 널린 강과 작은 호수, 물웅덩이가 흡사 작은 바다를 방불케 했던 모양이다. 이때 이 고장은 일마평천日馬平川 즉 말이 마음껏 달릴 수 있는 넓은 평야였고 또 부르하통하 남쪽의 양지쪽에 있었다.
 
  이에 따라 항간에는 조양천을 이름자 그대로 뜻풀이하는 설이 떠돌고 있다.
 
  "강의 남쪽 양지쪽의 평야라는 의미이지요. 조양천이라는 이름자에 들어간 글자들을 하나씩 뜯어보면 금방 알 수 있지요.”
 
  정말로 소경이 막대기를 헛짚는 이야기들을 듣고 있는 것 같다.  아닐세라, 연길 모 여행사 사장으로 있는 허응복은 그게 아니라는 말을 연거푸 곱씹는 것이었다.
 
  “조선에서 나온 양천陽川 허許 씨의 마을이라고 해서 조양천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역시 조양천이라는 이름자를 그대로 뜻풀이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목구비가 오목조목 갖춰진 그의 이 이야기에는 선뜻이 반론을 내놓기 어려웠다.
 
  양천 허 씨의 시조는 가락국駕洛國 김수로왕비金首露王妃의 30세손 허선문許宣文이라고 전한다.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뱮에 의하면 허선문은 공암촌孔巖村에서 살았다. 공암은 통일신라 때 지은 지명으로 훗날 양천현陽川縣, 양천군陽川郡 등으로 내려오다가 1914년 경기도 김포군金浦郡에 흡수된 고장이다.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후백제를 정벌할 때 군량을 보급해 주었던 개국공신 허선문에게 공암을 식읍으로 하사하였으며 그때부터 허선문은 본관을 양천陽川이라고 했다고 전한다.
 
  그 후 양천 허 씨는 고려와 조선 시대 정승 16인 등 명인을 허다하게 배출하며 현재로선 한국에만 20여만의 인구를 가진 유서 깊은 명문벌족으로 되고 있다.
 
  14세기 말, 고려 충정왕忠定王의 부마이며 양천 허 씨의 15대손인 허징許徵은 정치사건에 휘말려들어 함경도 길주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로 하여 북쪽지방에 자리를 잡은 허 씨는 양천 허 씨의 일파인 용진공파龍津公派를 형성한다. 양천 허 씨의 이 후손들이 훗날 지리적으로 가까운 중국 대륙으로 퍼져 나갔던 것이다. 이 때문에 중국 동북 3성에는 양천 허 씨가 적지 않게 거주하고 있다.
 
  한때 연변의 양천 허 씨들은 종친회를 만들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했다. 그럴지라도 허촌이 바로 양천 허 씨의 마을이라는 의미이며 조양천이 바로 이 허촌에 내원을 두고 있다는 건 잘 드러나지 않고 있었다. 허촌은 마치 담장 기슭에 피어난 나팔꽃처럼 조양천이라는 이름의 그림자에 가려있었기 때문이다.
 
  허응복 역시 얼마 전에야 비로소 조양천 모교의 스승 지동운에게 우연하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그때 그가 받은 감수는 충격 그 자체였다. 직업관계로 연변의 역사를 꽤나 알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보다 그가 바로 양천 허 씨였고 또 다른 곳도 아닌 조양천 태생이었던 것이다. 정말이지 “등잔_ 밑이 어둡다.”는_ 속담의 의미를 실감케 했던 것.
 
  솔직히 그동안 비밀처럼 꽁꽁 감춰 있었던 양천 허 씨의 100년 신비를 하루바삐 벗기고 싶었다. 그래서 허응복은 조양천으로 예정에 없던 깜짝 방문을 하게 되었다. 지동운은 기실 오래전에 동료 허영학에게 들은 이야기라고 그에게 알려줬다. 그맘때 지동운은 수학을 가르쳤지만 민족사에 남다른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가는_ 날이 장날이라더니_ 때 마침 허영학은 지동운과 함께 조양천 정부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여태껏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고 있었던 비사秘史는 그렇게 빗장을 열게 되었다.
 
  1989년, 조양천 중학교에서 지리교원으로 있었던 허영학은 학생들에게 향토애를 심어주고자 조양천의 지명유래를 조사했다고 한다.
 
  지명지地名志는 광서(光緖, 1875~1908) 초반 허 씨 성의 사람들이 정착하면서 허촌이라는 마을 이름이 생겼다고 기록하고 있었다. 지난 세기 80년대 중반 정부의 관련부서에서 지명조사를 할 때 허촌에는 56가구 220명의 인구가 살고 있었으며 전부 조선족이었다. 그 무렵 조양천에 살고 있던 사람들치고 허촌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이 별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허영학이 조사 작업을 할 시기 허촌에는 이미 허 씨 성을 가진 노인이 단 한명도 없었다. 이때 강북 마을의 웬 노인이 조양천의 이왕지사를 잘 알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찾아 길을 떠나게 되었다.
 
  정작 허촌의 이야기는 부르하통하에서 고대하던 수석水石처럼 줍게 되었다. 그때는 조양천 부근의 부르하통하에는 지금처럼 다리가 없어서 배로 강 양쪽을 드나들었다. 그런데 뱃사공이 마침 허 씨 성의 조선족이었으며 그에게서 자초지종을 듣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걸 두고 노력하는 사람에게 행운이 찾아온다.고  말하는 걸까…
 
  “뱃사공의_ 말에 의하면 양천 허 씨가 무산과 회령 쪽에서 건너와서 이곳에 처음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합니다.”
 
  양천 허 씨는 그 후에도 조양천에 부근에 와서 이삿짐을 풀었다. 20세기 초, 함경북도 길주의 양천 허 씨 허웅범 삼형제가 다른 성씨의 사람들과 함께 하룡촌河龍村에 정착하여 마을을 개척하였던 것. 하룡촌은 조양천 동쪽으로 약 15㎞ 상거, 부르하통하와 해란강이 만나는 합수목에 위치한다. 하룡이라는 지명은 마을 부근의 해란강에 수룡水龍이 있다고 소문나서 생긴 이름이다.
 
  각설하고, 1923년 천보산天寶山 부근의 노두구老頭溝부터 두만강 기슭의 개산툰開山屯까지 이르는 천도天圖 철도가 개통되었다. 조양천이라는 지명은 이곳에 나타나는 기차와 함께 이때부터 관방문헌에 버젓하게 등장한다.
 
   “ 허_ 씨 마을이 코앞에 앉아있는데 하필이면 다른 이름을 가져올 리 있었겠어요?”
 
  그러고 보니 이 고장 기차역은 바로 허촌의 앞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뜻하지 않게 뱃사공과 가진 대화는 마침내 허영학의 머리에 둥지를 틀고 있던 의문을 푸른 강물에 말끔히 씻겨 보냈다.
 
  알고 보면 조양천은 허촌과 원체 처음부터 하나로 이어지고 있었다. 하룡 마을이 부근 강의 신물神物을 갖다가 작명했듯 조양천 역시 부근 허촌의 양천 허 씨의 성씨를 갖다가 작명했다는 것이다. 허촌은 이 고장의 제일 이른 촌락이요, 양천 허 씨는 또 이 고장의 첫 주민이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옛날 두만강을 건너왔던 양천 허 씨는 허영학이 뱃사공을 만날 때 벌써 아득히 먼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마을에 깃들었던 많은 사연들 역시 한 떨기의 낙엽처럼 배전을 스쳐지나 흐르는 물에 실려 가뭇없이 사라지고 있었다.
 
“혹여나”하고  허응복은 옛 스승들을 모시고 다시 옛 허촌 마을 자리를 찾아갔다고 한다. 그러나 기대는 금세 물먹은 담처럼 허물어졌다. 허촌은 도도한 물결처럼 거침없이 밀려오는 도시의 음영에 묻혀 더는 옛날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허응복은 허탈감을 금치 못했다. “그래도 아직 옛 초가가 한 채 있어서 기척을 했더니 웬 중국인 노인이 나오시는 거예요.”
 
    허촌은 어느덧 진짜배기 중국인 마을로 변신하고 있었다. 허촌은 오래전에 벌써 다른 곳으로 자리를 잡고 철거되었다고 한다. 현지에는 허촌이 바로 그제 날의 조양촌 1대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도 얼마 되지 않았다. 인제 양천 허 씨 마을의 옛 흔적은 다만 조양천이라는 지명에 밤하늘의 별처럼 어렴풋이 비껴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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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4 ]

4   작성자 : 허씨
날자:2013-02-20 13:34:31
조양천은 허씨마을이란걸 잘 알았습니다.좋은 글입니다

3   작성자 : 로웅선
날자:2013-02-19 17:15:29
이 글을 잘 읽었습니다
이 글은 연변 지명의 어원을 잘 아는데 대해 유조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한번 한국 사극을 보았는데요 거기서 버드나무라는것이 지명으로 언급되였습니다
주책없는 말이지만 <<지명지>>에 의해 글을 썼다고 하오니 고증과 과학성이 잘 결부되였으리라생각합니다
내 언사가 과하다면 량해하시길 바랍니다 많이 학습을 했습니다
2   작성자 : 김호림
날자:2013-02-18 20:11:08
계약사항으로 기사를 더 게재하지 못하오니 양지 바랍니다.
연변지명 답사기는
krcnr점cn/ztbd/ybdm/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1   작성자 : 우민
날자:2013-02-18 15:24:40
김호림 님.
허촌을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바로 조양천 허촌의 태생입니다. 당시의 허촌은 조양천 서쪽에 채농들의 밭을 사이두고 있었는데 이름은 <허촌마을>이었습니다.

원주민들 조선족은 그 남쪽에 집단으로 이주하였고 지금의 터전은 채농들 전부 한족들이 들어 갔습니다.새삼스레 내 고향을 여기 올려주시니 예 추억들이 살아납니다.
그 땅에서 내가 태어나 자랐고 내 부모님들이 피와 땀을 흘리시며 애환에 찬 삶을 보내셨거든요.
참고로 저는 1985년 여름에 허촌을 떠났습니다.

더 많이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 이멜:iskim512@hotmail.c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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