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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시 모음
2022년 10월 10일 18시 36분  조회:2057  추천:0  작성자: 강려
기형도 모음
 
빈집
소리의 뼈
밤눈
노인들
물 속의 사막
숲으로 된 성벽
봄날은 간다


나무공
가는 비 온다
레코오드판에서 바늘이 튀어오르듯이
388 종점
이 겨울의 어두운 창문
쓸쓸하고 장엄한 노래여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
아이야 어디서 너는
기억할 만한 지나침
오후 4시의 희망
질투는 나의 힘
잎 속의 검은 잎
엄마걱정
우리는 그 긴 겨울의 通路(통로)를 비집고 들어갔다
바람의 집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대학시절
새벽이 오는 方法
겨울, 우리들의 都市
정거장에서의 충고
가을에
허수아비-누가 빈들을 지키는가
껍질
쥐불놀이
여행자
나리 나리 개나리
기억할 만한 지나침
비가2
-붉은 달
종이달
폭풍의 언덕
雨中의 나이
12개의 책장안에 머물러있는 시인의 영혼
그날
진눈깨비
바람은 그대 쪽으로
추억에 대한 경멸
포도밭 묘지
겨울 눈(雪) 나무 숲
안개
바다에 버리고 오다
오래된 書籍
어느 푸른 저녁
거리에서
약속
1-3 : 희망에 지칠때까지
봄날은 간다
그집앞
정거장에서의 충고
작가의 말
詩作메모 (1988.11), <입 속의 검은 잎>
희망
참회록 中에서
기형도 추모시 <김영승>
기형도님 연혁
영원히 닫힌 빈방의 체험 中에서-김현
기억할 만한 질주, 혹은 용기- 장정일
기형도, 삶의 공간과 추억에 대한 경멸- 성석제
기형도 전집/'머물고 떠남' 못내 아쉬워…
- 한겨레신문 (1999/03/02)
佛전문지 '포에지' 여름호 한국시만으로 특집 제작
- 중앙일보 (1999/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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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
소리의 뼈/기형도
 

김교수님이 새로운 학설을 발표했다
소리에도 뼈가 있다는 것이다
모두 그 말을 웃어넘겼다, 몇몇 학자들은
잠시 즐거운 시간을 제공한 김교수의 유머에 감사했다
학장의 강력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교수님은 일학기 강의를 개설했다
호기심 많은 학생들이 장난삼아 신청했다
한 학기 내내 그는
모든 수업 시간마다 침묵하는
무서운 고집을 보여주었다
참지 못한 학생들이, 소리의 뼈란 무엇일까
각자 일가견을 피력했다
이군은 그것이 침묵일 거라고 말했다.
박군은 그것을 숨은 의미라고 보았다
또 누군가는 그것의 개념은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모든 고정관념에 대한 비판에 접근하기 위하여 채택된
방법론적 비유라는 것이었다
그의 견해는 너무 난해하여 곧 묵살되었다
그러나 어쨌든
그 다음 학기부터 우리들의 귀는
모든 소리들을 훨씬 더 잘 듣게 되었다
ㅡ시집<<입 속의 검은 잎>>(문학과지성사)

~~~~~~~~~~~~~~~~~~~~~~~~~~~~~~~~~~~~~~~~~~~~~~~~~~~~~~~~~~~~~~~~~~~
밤눈
 

네 속을 열면 몇 번이나 얼었다 녹으면서 바람이 불 때마다 또 다른
몸짓으로 자리를 바꾸던 은실들이 엉켜 울고 있어. 땅에는 얼음 속에
서 썩은 가지들이 실눈을 뜨고 엎드려 있었어. 아무에게도 줄 수 없는
빛을 한 점씩 하늘 낮게 박으면서 너는 무슨 색깔로 또 다른 사랑을 꿈
꾸었을까. 아무도 너의 영혼에 옷을 입히지 않던 사납고 고요한 밤, 얼
어붙은 대지에는 무엇이 남아 너의 춤을 자꾸만 허공으로 띄우고 있었
을까. 하늘에는 온통 네가 지난 자리마다 바람이 불고 있다. 아아, 사
시나무 그림자 가득 찬 세상, 그 끝에 첫발을 디디고 죽음도 다가서지
못하는 온도로 또 다른 하늘을 너는 돌고 있어. 네 속을 열면.
~~~~~~~~~~~~~~~~~~~~~~~~~~~~~~~~~~~~~~~~~~~~~~~~~~~~~~~~~~~~~~~~~~
노인들

감당하기 벅찬 나날들은 이미 다 지나갔다
그 긴 겨울을 견뎌낸 나뭇가지들은
봄빛이 닿는 곳마다 기다렸다는 듯 목을 분지르며 떨어진다

그럴 때마다 내 나이와는 거리가 먼 슬픔들을 나는 느낀다
그리고 그 슬픔들은 내 몫이 아니어서 고통스럽다

그러나 부러지지 않고 죽어 있는 날렵한 가지들은 추악하다
~~~~~~~~~~~~~~~~~~~~~~~~~~~~~~~~~~~~~~~~~~~~~~~~~~~~~~~~~~~~~~~~~~~
물 속의 사막
 
밤 세시, 길 밖으로 모두 흘러간다 나는 금지된다
장마비 빈 빌딩에 퍼붓는다
물위를 읽을 수 없는 문장들이 지나가고
나는 더 이상 인기척을 내지 않는다

유리창, 푸른 옥수숫잎 흘러내린다
무정한 옥수수나무..... 나는 천천히 발음해본다
석탄가루를 뒤집어쓴 흰 개는
그해 장마통에 집을 버렸다

비닐집, 비에 잠겼던 흙탕마다
잎들은 각오한 듯 무성했지만
의심이 많은 자의 침묵은 아무것도 통과하지 못한다
밤 도시의 환한 빌딩은 차디차다

장마비, 아버지 얼굴 떠내려오신다
유리창에 잠시 붙어 입을 벌린다
나는 헛것을 살았다, 살아서 헛것이었다
우수수 아버지 지워진다, 빗줄기와 몸을 바꾼다
아버지, 비에 묻는다 내 단단한 각오들은 어디로 갔을까?
번들거리는 검은 유리창, 와이셔츠 흰빛은 터진다
미친듯이 소리친다, 빌딩 속은 악몽조차 젖지 못한다
물들은 집을 버렸다! 내 눈속에는 물들이 살지 않는다
~~~~~~~~~~~~~~~~~~~~~~~~~~~~~~~~~~~~~~~~~~~~~~~~~~~~~~~~~~~~~~~~~~~
숲으로 된 성벽

저녁노을이 지면
神들의 商店엔 하나둘 불이 켜지고
농부들은 작은 당나귀들과 함께
城안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성벽은 울창한 숲으로 된 것이어서
누구나 寺院을 통과하는 구름 혹은
조용한 공기들이 되지 않으면
한걸음도 들어갈 수 없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그 城

어느 골동품 商人이 그 숲을 찾아와
몇 개 큰 나무들을 잘라내고 들어갔다
그곳에는......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본 것은
쓰러진 나무들뿐, 잠시 후
그는 그 공터를 떠났다

농부들은 아직도 그 평화로운 城에 살고 있다
물론 그 작은 당나귀들 역시

숲으로 된 성벽
~~~~~~~~~~~~~~~~~~~~~~~~~~~~~~~~~~~~~~~~~~~~~~~~
봄날은 간다 / 기형도

햇빛은 분가루처럼 흩날리고
쉽사리 키가 변하는 그림자들은
한 장 熱風에 말려 둥글게 휘어지는구나
아무 때나 손을 흔드는
미루나무 얕은 그늘 속을 첨벙이며
2시반 시외버스도 떠난 지 오래인데
아까부터 서울집 툇마루에 앉은 여자
외상값처럼 밀려드는 대낮
신작로 위에는 흙먼지, 더러운 비닐들
빈 들판에 꽂혀 있는 저 희미한 연기들은
어느 쓸쓸한 풀잎의 자손들일까
밤마다 숱한 나무젓가락들은 두 쪽으로 갈라지고
사내들은 화투패마냥 모여들어 또 그렇게
어디론가 뿔뿔이 흩어져간다
여자가 속옷을 헹구는 시냇가엔
하룻밤새 없어져버린 풀꽃들
다시 흘러들어온 것들의 人事
흐린 알전구 아래 엉망으로 취한 군인은
몇 해 전 누이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고, 여자는
자신의 생을 계산하지 못한다.
몇 번인가 아이를 지울 때 그랬듯이
습관적으로 주르르 눈물을 흘릴 뿐
끌어안은 무릎 사이에서
추억은 내용물 없이 떠오르고
小邑은 무서우리만치 고요하다, 누구일까
세숫대야 속에 삶은 달걀처럼 잠긴 얼굴은
봄날이 가면 그뿐
宿醉는 몇 장 紙錢 속에서 구겨지는데
몇 개의 언덕을 넘어야 저 흙먼지들은
굳은 땅 속으로 하나둘 섞여들는지
~~~~~~~~~~~~~~~~~~~~~~~~~~~~~~~~~~~~~



靈魂이 타오르는 날이면
가슴앓는 그대 庭園에서
그대의
온 밤내 뜨겁게 토해내는 피가 되어
꽃으로 설 것이다.
그대라면
내 허리를 잘리어도 좋으리.
짙은 입김으로
그대 가슴을 깁고
바람 부는 곳으로 머리를 두면
선 채로 잠이 들어도 좋을 것이다.
~~~~~~~~~~~~~~~~~~~~~~~~~~~~~~~~~~~~~~~~~~~~~~~~~~~~~~~~~~~~~~~~~~~~

 
내 얼굴이 한 폭 낯선 풍경화로 보이기
시작한 이후, 나는 主語를 잃고 헤매이는
가지 잘린 늙은 나무가 되었다.

가끔씩 숨이 턱턱 막히는 어둠에 체해
반토막 영혼을 뒤틀어 눈을 뜨면
잔인하게 죽어간 붉은 세월이 곱게 접혀 있는
단단한 몸통 위에,
사람아, 사람아 단풍든다.
아아, 노랗게 단풍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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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공
 
가까이 가보니
소년은 작은 나무공을 들고
서 있다. 두 명의 취한 노동자들, 큰 소리로 노래부르며 비틀비틀
이봐, 죽지 않는 것은 오직
죽어 있는 것뿐, 이젠 자네 소원대로 되었네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주위의 공기가 약간 흔들린다.
훨씬 독한 술이 있었더라면
좀더 슬펐을 텐데, 오오, 그에 관한 한 한치의 변화도
용서 못 해

소년이 내게 묻는다.
公園은 어두운 대기 속으로 조금씩 몸을 숨긴다.
그 사내는 무엇을
슬퍼하는 것일까요, 오래 앓던 가족 때문일까요
나의 이 작은 나무공
밖은 너무 어두워, 둥근 것은 참 단순하죠

나는 입을 열 수 없다.
말이 되는 순간, 어떠한 대답도 또 다른 질문이 된다.
네가 내 눈빛을 이해할 수 있었으면
차라리 저녁에 너를 만난 것을 감사하자.
어느 교회의 검고 은은한 종소리
행인들 호주머니 속의 명랑한 동전 소리
모든 젖은 정신을 꾸짖는
건조한 저녁에 대해 감사하자, 소년이여
저 초라한 街燈들을 바라보라.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대낮까지도 고정시키려 덤빈다, 그러나
변화하지 않는 것은 변화뿐이지.
나의 꿈은 위대한 律士, 모든 판례에 따라
이 세상을 재고 싶어요, 나는 매일같이 일기를 쓰죠
내가 아저씨만한 나이라면 이미 나는 법칙의 可祭
움직이면 안 돼, 나는 딱딱한 과자를 좋아해
이건 나무

소년은 공을 튕겨본다. 나무공은 가볍게
튀어오른다, 엄청나게 커지는 눈, 이건 뜻밖이야
그러나 소년이 놀라는 순간
나무공은 얘야, 벌써 얌전한 고양이처럼
한번 놀란 것에 더 이상 놀라면 안 돼
그건 이미 나무공이 아니니까
그 취한 사내들이 어디로 갔을까, 고개를 갸우뚱하던
소년도 재빨리 사라진다. 아저씨는
쓸모 없는 구름 같아요, 공원은 이미 완전한 어둠
한 개 둥근 잎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서로 다른, 수백 개 율동의 가능성으로 들려오는
이곳. 견고하게 솟아오르는, 소년이 버린 저
나무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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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비 온다

간판들이 조금씩 젖는다
나는 어디론가 가기 위해 걷고 있는 것이 아니다
둥글고 넓은 가로수 잎들은 떨어지고
이런 날 동네에서는 한 소년이 죽기도 한다.
저 식물들에게 내가 그러나 해줄 수 있는 일은 없다
언젠가 이곳에 인질극이 있었다
범인은 '휴일'이라는 노래를 틀고 큰 소리로 따라부르며
자신의 목을 긴 유리조각으로 그었다
지금은 한 여자가 그 집에 산다
그 여자는 대단히 고집 센 거위를 기른다
가는비......는 사람들의 바지를 조금 적실 뿐이다
그렇다면 죽은 사람의 음성은 이제 누구의 것일까
이 상점은 어쩌다 간판을 바꾸었을까
도무지 쓸데없는 것들에 관심이 많다고
우산을 쓴 친구들은 나에게 지적한다
이 거리 끝에는 커다란 전당포가 있다, 주인의 얼굴은
아무도 모른다, 사람들은 시간을 빌리러 뒤뚱뒤뚱 그곳에 간다
이를테면 빗방울과 장난을 치는 저 거위는
식탁에 오를 나날 따위엔 관심이 없다
나는 안다, 가는 비......는 사람을 선택하지 않으며
누구도 죽음에게 쉽사리 자수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쩌랴, 하나뿐인 입들을 막아버리는
가는 비......오는 날, 사람들은 모두 젖은 길을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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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코오드판에서 바늘이 튀어오르듯이
 

그것은 어느 늦은 겨울날 저녁
조그만 카페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누구를 기다리기로 작정한 것도 아니었다
부르기 싫은 노래를 억지로 부르듯
黑人 가수의 노래가 천천히
탁자에는 시든 꽃 푸른 꽃 위에는 램프
어두웠다 벽면에 긴 팽이모자를 쓴
붉고 푸른 가면들이 춤추며
액자 때문은 아니었다
예감이라도 했던들 누군가
나를 귀찮게 했던들 그 일이 일어날 수 있었겠는가
나는 大學生이었다
뚜렷한 이유도 없이 그래서 더욱 무서웠다
가끔씩 어떤 홀연한 계기를 통하여
우리는 우리의 全靑春이
한꺼번에 허물어져버린 것 같은
슬픔을 맛볼 때가 있듯이
레코오드판에서 바늘이 튀어오르듯이
그것은 어느 늦은 겨울날 저녁
조그만 카페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마른 나뭇가지처럼 힘없이
천천히 탁자 아래로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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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8종점
 
구겨진 불빛을 펴며
막차는 떠났다.
寂寞으로 무성해진 가슴 한켠 空地에서
캄캄하게 울고 있는 몇 점 불씨
가만히
그 스위치를 끄고 있는 한 사내의 쓸쓸한 손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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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겨울의 어두운 창문
 
어느 영혼이기에 아직도 가지 않고 문밖에서 서성이고 있느냐. 네 얼마나 세상을 축복하였길래 밤새 그 외로운 천형을 견디며 매달려 있느냐. 푸른 간유리 같은 대기 속에서 지친 별들 서둘러 제 빛을 끌어모으고 고단한 달도 야윈 낫의 형상으로 공중 빈 밭에 힘없이 걸려있다.
아느냐, 내 일찍이 나를 떠나보냈던 꿈의 짐들로 하여 모든 응시들을 힘겨워하고 높고 험한 언덕들을 피해 삶을 지나다녔더니, 놀라워라. 가장 무서운 방향을 택하여 제 스스로 힘을 겨누는 그대, 기쁨을 숨긴 공포여, 단단한 확신의 즙액이여.
보아라, 쉬운 믿음은 얼마나 평안한 산책과도 같은 것이다. 어차피 우리 모두 허물어지면 그뿐, 건너가야 할 세상 모두 가라앉으면 비로소 온갖 근심들 사라질 것을. 그러나 내 어찌 모를것인가. 내 생 뒤에도 남아있을 망가진 꿈들, 환멸의 구름들, 그 불안한 발자국 소리에 괴로워할 나의 죽음들.
오오, 모순이여, 오르기 위하여 떨어지는 그대. 어느 영혼이기에 이 밤 새이도록 끝없는 기다림의 직립으로 매달린 꿈의 뼈가 되어있는가. 곧 이어 몹쓸 어둠이 걷히면 떠날 것이냐. 한때 너를 이루었던 검고 투명한 물의 날개로 떠오르려는가. 나 또한 얼마만큼 오래 냉각된 꿈속을 뒤척여야 진실로 즐거운 액체가 되어 내 생을 적실 것인가. 공중에는 빛나는 달의 귀 하나 걸려 고요히 세상을 엿듣고 있다. 오오, 네 어찌 죽음을 비웃을 것이냐 삶을 버려둘 것이냐, 너 사나운 영혼이여! 고드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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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하고 장엄한 노래여
 

가라,어느덧 황혼이다
살아있음도 살아있지 않음도 이제는 용서할때
구름이여, 지우다 만 어느 창백한 생애여
서럽지 않구나 어차피 우린
잠시 늦게 타다 푸시시 꺼질
몇 점 노을이었다
이제는 남은 햇빛 두어 폭마저
 
밤의 굵은 타래에 참혹히 감겨들고
곧 어둠 뒤편에선 스산한 바람이 불어 올 것이다
우리는 그리고 차가운 풀섶 위에
맑은 눈물 몇 잎을 뿌리면서 落下하리라
그래도 바람은 불고 어둠 속에서
밤이슬 몇 알을 낚고 있는 흰 꽃들의 흔들림!
가라, 구름이여,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해
이제는 어둠 속 에서 빈 몸으로 일어서야 할 때
그 후에 별이 지고 세상에 새벽이 뜨면
아아, 쓸쓸하고 장엄한 노래여, 우리는
서로 등을 떠밀며 피어오르는 맑은 안개더미 속에 있다
~~~~~~~~~~~~~~~~~~~~~~~~~~~~~~~~~~~~~~~~~~~~~~~~~~~~~~~~~~~~~~~~~~~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

나에게는 낡은 악기가 하나 있다. 여섯 개의 줄이
모두 끊어져 나는 오래 전부터 그 기타를 사용하지
않는다. '한때 나의 슬픔과 격정들을 오선지 위로
데리고 가 부드러운 음자리로 배열해주던' 알 수 없
는 일이 있다. 가끔씩 어둡고 텅 빈 방에 홀로 있을
때 그 기타에서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 나는 경악한
다. 그러나 나의 감각들은 힘센 기억들을 품고 있
다. 기타소리가 멎으면 더듬더듬 나는 양초를 찾는
다. 그렇다. 나에게는 낡은 악기가 하나 있는 것이
다. 그렇다. 나는 가끔씩 어둡고 텅 빈 희망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 이상한 연주를 들으면서 어떨 때
는 내 몸의 전부가 어둠 속에서 가볍게 튕겨지는 때
도 있다.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는 푸른색이다.
어떤 먼지도 그것의 색깔을 바꾸지 못한다.
~~~~~~~~~~~~~~~~~~~~~~~~~~~~~~~~~~~~~~~~~~~~~~~~~~~~~~~~~~~~~~~~~~~~
아이야 어디서 너는
 
아이야, 어디서 너는 온몸 가득 비[雨]를 적시고
왔느냐. 네 알몸 위로 수천의 江물이 흐른다. 찬
가슴팍 위로 저 世上을 向한 江이 흐른다.
 
갈밭을 헤치고 왔니. 네 머리카락에 걸린 하얀 갈꽃이
누운 채로 젖어 있다. 그 갈꽃 무너지는 西山을 아비는
네 몸만큼의 짠 빗물을 뿌리며 넘어갔더란다. 아이야
아비의 그 구름을 먹고 왔느냐.
 
호롱을 켜려무나. 뿌옇게 몰려오는 소나기를 가득 담고
어둠 속을 흐르는, 네 눈을 켜려무나. 하늘에 실노을이
西行하고 어른거리는 불빛은 꽃을 쫓는다.
 
닦아도닦아도 흐르는 꽃술[花酒] 같은 네 江물.
갈꽃은 붉게붉게 익어가는데, 아이야 네 눈 가득
아비가 젖어 있구나.
~~~~~~~~~~~~~~~~~~~~~~~~~~~~~~~~~~~~~~~~~~~~~~~~~~~~~~~~~~~~~~~~~~~~
기억할 만한 지나침

그리고 나는 우연히 그곳을 지나게 되었다
눈은 퍼부었고 거리는 캄캄했다
움직이지 못하는 건물들은 눈을 뒤집어쓰고
희고 거대한 서류뭉치로 변해갔다
무슨 관공서였는데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왔다
유리창 너머 한 사내가 보였다
그 춥고 큰 방에서 書記는 혼자 울고 있었다!
눈은 퍼부었고 내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침묵을 달아나지 못하게 하느라 나는 거의 고통스러웠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중지시킬 수 없었다
나는 그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창밖에서 떠나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우연히 지금 그를 떠올리게 되었다
밤은 깊고 텅빈 사무실 창밖으로 눈이 퍼붓는다
나는 그 사내를 어리석은 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
오후 4시의 희망

金은 블라인드를 내린다, 무엇인가
생각해야 한다, 나는 침묵이 두렵다
침묵은 그러나 얼마간 믿음직한 수표인가
내 나이를 지나간 사람들이 내게 그걸 가르쳤다.
김은 주저앉는다, 어쩔 수 없이 이곳에
한 번 꽂히면 어떤 건물도 도시를 빠져나가지 못했다.
김은 중얼거린다, 이곳에는 죽음도 살지 못한다.
나는 오래 전부터 그것과 섞였다, 습관은 아교처럼 안전하다.
김은 비스듬히 몸을 기울여본다, 쏟아질 그 무엇이 남아있다는 듯이
그러나 물을 끝없이 갈아주어도 저 꽃은 죽고 말 것이다,
빵 껍데기처럼
김은 상체를 구부린다, 빵 부스러기처럼
내겐 얼마나 사건이 많았던가, 콘크리트처럼 나는 잘 참아왔다.
그러나 경험 따위는 자랑하지 말게 그가 텅텅 울린다, 여보게
놀라지 말게, 아까부터 줄곧 자네 뒤쪽에 앉아있었네
김은 약간 몸을 부스럭거린다, 이봐, 우린 언제나
서류뭉치처럼 속에 나란히 붙어 있네, 김은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아주 얌전히 명함이나 타이프 용지처럼
햇빛 한 장이 들어온다, 김은 블라인드 쪽으로 다가간다.
그러나 가볍게 건드려도 모두 무너진다, 더 이상 무너지지 않으려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네
김은 그를 바라본다, 그는 김 쪽을 향해 가볍게 손가락을
튕긴다, 무너질 것이 남아 있다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가
김은 중얼거린다, 누군가 나를 망가뜨렸으면 좋겠네, 그는 중얼거린다.
나는 어디론가 나가게 될 것이다, 이 도시 어디서든
나는 당황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당황할 것이다.
그가 김을 바라본다, 김이 그를 바라본다.
한 번 꽃히면 김도, 어떤 생각도, 그도 이 도시를 빠져나가지 못한다.
김은, 그는 천천히 눈을 감는다, 나는 블라인드를 튼튼히 내렸었다.
또다시 어리석은 시간이 온다, 김은 갑자기 눈을 뜬다, 갑자기 그가 울음을 터뜨린다, 갑자기
모든 것이 엉망이다, 예정된 모든 무너짐은 얼마나 질서 정연한가
김은 얼굴이 이그러진다.
~~~~~~~~~~~~~~~~~~~~~~~~~~~~~~~~~~~~~~~~~~~~~~~~~~~~~~~~~~~~~~~~~~~~
질투는 나의 힘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
입속의 검은 잎
 
택시운전사는 어두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이따끔 고함을 친다, 그때마다 새들이 날아간다
이 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나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그를 생각한다.
 
그 일이 터졌을 때 나는 먼 지방에 있었다.
먼지의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문을 열면 벌판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그 해 여름 땅바닥은 책과 검은 잎들을 질질 끌고 다녔다.
접힌 옷가지를 펼칠 때마다 흰 연기가 튀어나왔다.
침묵은 하인에게 어울린다고 그는 썼다.
나는 그의 얼굴을 한 번 본 적이 있다.
신문에서였는데 고개를 조금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이 터졌다, 얼마 후 그가 죽었다.
 
그의 장례식은 거센 비바람으로 온통 번들거렸다.
죽은 그를 실은 차는 참을 수 없이 느릿느릿 나아갔다.
사람들은 장례식 행렬에 악착같이 매달렸고
백색의 차량 가득 검은 잎들은 나부꼈다.
나의 혀는 천천히 굳어갔다. 그의 어린 아들은
잎들의 포위를 견디다 못해 울음을 터뜨렸다.
그 해 여름 많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없어졌고
놀란 자의 침묵 앞에 불쑥 불쑥 나타났다.
망자의 혀가 거리에 흘러넘쳤다.
택시운전사는 이따금 뒤를 돌아다본다.
나는 저 운전사를 믿지 못한다. 공포에 질려
나는 더듬거린다, 그는 죽은 사람이다.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장례식들이 숨죽여야 했던가
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내가 가는 곳은 어디인가
나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으면 안된다. 어디서
그 일이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어디든지
가까운 지방으로 나는 가야 하는 것이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

詩集, 잎 속의 검은 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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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걱정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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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 긴 겨울의 通路(통로)를 비집고 들어갔다

우리는 그 긴 겨울의 通路(통로)를 비집고 들어갔다
그리하여
겨울이다. 자네가 바라던 대로
하늘에는 온통 먹물처럼 꿈꾼 흔적뿐이다.
눈(雪)의 실밥이 흩어지는 空中(공중) 한가운데서
타다 만 휴지처럼 한 무더기 죽은 새(鳥)들이 떨어져 내리고
마을 한가운데에선
간혹씩 몇 발 처연한 총성이 울리었다
아무도 豫言(예언)하려 하지 않는 時間(시간)은
밤새 世上(세상)의 낮은 울타리를 타넘어 추운 벌판을 홀로 뒹굴다가
몽환의 빗질로 우리의 차가운 이마를 쓰다듬고
저 혼자 우리의 記憶(기억) 속에서 달아났다.
알 수 있을까, 자네
꿈꾸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굳게 빗장을 건 얼음판 위에서 조용한 깃발이 되어
둥둥 떠올라 타오르다 사라지는 몇 장 불의 냉각을
오, 또 하나의 긴 거리, 가스등 희미한 내 기억의 迷路(미로)를
날아다니는 외투 하나만큼의 허전함.
겨울 오후 3시, 그 휘청휘청한 권태의 비탈
텅 빈 서랍 속에 빛나는 압핀 한 개
춥죠? 음. ……춥군. 그런데 무엇을 보고 계십니까
그리하여 水平(수평)으로 쓰러지는 한 컵의 물. 한 컵 빛의 悲鳴(비명).
잠자는 물. 그 빛나는 죽음. 얼음의 꿈. 토막토막 끊어지는 秒針(초침).
우리는 世上과 타협하지 않는 최후의 무리였다.
모든 꿈이 소멸된 지상에 홀로 남아
두꺼운 외투와 커피 한 잔으로
겨울을 정복하는 꿈을 꾼다.
춥죠? 음. ……춥군. 그런데 무엇을 보고 계십니까
거리를 한 개 끈으로 뛰어다닐 때의 해질 무렵
건물마다 새파랗게 빛나는 면도 자국.
이것이 희망인가 절망일 건가 불빛 속에서
낮게 낮게 솟아오르는 중얼거림
깨지 못하는 꿈은 꿈이 아니다. 미리 깨어 있는 꿈은 悲劇(비극)이다.
鋪道(포도) 위에 고딕으로 반사되는 발자국마다
살아 있다. 살아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희미한 음향을
듣는가 자네 아직도 꿈꾸며
우리는 그 긴 겨울의 通路(통로)를 비집고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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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집

내 유년 시절 바람이 문풍지를 더듬던 동지의 밤이면
어머니는 내 머리를 당신 무릎에 뉘고 무딘 칼 끝으로
시퍼런 무를 깎아주시곤 하였다. 어머니 무서워요.
저 울음소리, 어머니조차 무서워요, 얘야,
그것은 네 속에서 울리는 소리란다. 네가 크면 너는
이 겨울을 그리워하기 위해 더 큰 소리로 울어야 한다.
자정 지나 앞마당에 은빛 금속처럼 서리가 깔릴 때까지
어머니는 마른 손으로 종잇장 같은 내 배를 자꾸만
쓸어내렸다. 처마 밑 시래기 한줌 부스러짐으로 천천히
등을 돌리던 바람의 한숨, 사위어가는 호롱불 주위로
방안 가득 풀풀 수십 장 입김이 날리던 밤,
그 작은 소년과 어머니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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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그는 어디로 갔을까
너희 흘러가버린 기쁨이여
한때 내 육체를 사용했던 이별들이여
찾지 말라, 나는 곧 무너질 것들만 그리워했다
이제 해가 지고 길 위의 기억은 흐려졌으니
공중엔 희고 둥그런 자국만 뚜렷하다
물들은 소리없이 흐르다 굳고
어디선가 굶주린 구름들은 몰려왔다
나무들은 그리고 황폐한 내부를 숨기기 위해
크고 넓은 이파리들을 가득 피워냈다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돌아갈수조차 없이
이제는 너무 멀리 떠내려온 이길
구름들은 길을 터주지 않으면 곧 사라진다
눈을 감아도 보인다
어둠 속에서 중얼거린다
나를 찾지 말라......무책임한 탄식들이여
길위에서 일생을 그르치고 있는 희망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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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나무의자 밑에는 버려진 책들이 가득하였다.
은백양의 숲은 깊고 아름다웠지만
그 곳에서는 나뭇잎조차 무기로 사용되었다
그 아름다운 숲에 이르면 청년들은 각오한듯
눈을 감고 지나갔다, 돌층계 위에서
나는 플라톤을 읽었다, 그때마다 총성이 울였다
목련철이 오면 친구들은 감옥과 군대로 흩어졌고
시를 쓰던 후배는 자신의 기관원이라고 털어놓았다
존경하는 교수가 있었으나 그분은 원체 말이 없
었다
몇 번의 겨울이 지나자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
그리고 졸업이었다,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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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이 오는 方法

밤에 깨어 있음.
방 안에 물이 얼어 있음.
손[手]은 零下 1度.

문[門]을 열어도 어둠 속에서 바람이 불고 있다. 갈대들이 쓰러지는 江邊
에 서서 뼛속까지 흔들리며 강기슭을 바라본다. 물이 쩍쩍 울고 있다. 가
로등에 매달려 다리[橋]가 울고 있다. 쓰러진 나무들이 어지러이 땅 위에
서 흔들린다. 썩은 나무 등걸처럼 나는 쓰러진다. 바람이 살갗에 줄을 파
고 지났다. 쿡쿡 가슴이 허물어지며 온몸에 푸른 노을이 떴다. 살이 갈라
지더니 形體도 없이 부서진다. 얼음가루 四方에 떴다. 호이 호이 갈대들
이 소리친다. 다들 그래 모두모두--- 大地와 아득한 距離에서 눈[雪]이
떨어진다. 내 눈물도 한 點 눈이 되었음을 나는 믿는다. 江 속으로 곤두
박질하며 하얗게 엎드린다. 어이 어이 갈대들이 소리쳤다. 우린 알고 있
었어, 우린 알았어---
끝없이 눈이 내렸다. 어둠이 눈발 사이에 숨기 시작한다. 到處에서 얼음
가루 날리기 시작한다. 서로 비비며 서걱이며 잠자는 새벽을 천천히 깨우
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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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우리들의 都市
 
겨울, 우리들의 都市
지난 겨울은 빈털털이였다.
풀리지 않으리란 것을, 설사
풀어도 이제는 쓸모 없다는 것을
무섭게 깨닫고 있었다. 나는
외투 깊숙이 의문 부호 몇 개를 구겨넣고
바람의 철망을 찢으며 걸었다.
 
가진 것 하나 없는 이 世上에서 애초부터
우리가 빼앗을 것은 無形의 바람뿐이었다.
불빛 가득 찬 황량한 都市에서 우리의 삶이
한결같이 주린 얼굴로 서로 만나는 世上
오, 서러운 모습으로 감히 누가 확연히 일어설
수 있는가.
나는 밤 깊어 얼어붙는 都市앞에 서서
버릴 것 없이 부끄러웠다.
잠을 뿌리치며 일어선 빌딩의 환한 角에 꺾이며
몇 타래 눈발이 쏟아져 길을 막던 밤,
누구도 삶 가운데 理解의 불을 놓을 수는 없었다.
지난 겨울은 빈털털이였다.
숨어 있는 것 하나 없는 어둠 발뿌리에
몸부림치며 빛을 뿌려넣은 수천의 헤드라이트!
그 날[刃]에 찍히며 나 또한 한 점 어둠이 되어
익숙한 자세로 쓰러질 뿐이다.
그래, 그렇게 쓰러지는 法을 배우며 살아남을
수 있었다.
온몸에 시퍼런 절망의 채찍을 퍼붓던 겨울 속에
서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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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거장에서의 충고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마른 나무에서 연거푸 물방울이 떨어지고
나는 천천히 노트를 덮는다
저녁의 정거장에 검은 구름은 멎는다
그러나 추억은 황량하다, 군데군데 쓰러져 있던
개들은 황혼이면 처량한 눈을 껌벅일 것이다
물방울은 손등 위를 굴러다닌다, 나는 기우뚱
망각을 본다, 어쩌다가 집을 떠나왔던가
그곳으로 흘러가는 길은 이미 지상에 없으니
추억이 덜 깬 개들은 내 딱딱한 손을 깨물 것이다
구름은 나부낀다, 얼마나 느린 속도로 사람들이 죽어갔는지
얼마나 많은 나뭇잎들이 그 좁고 어두운 입구로 들이닥쳤는지
내 노트는 알지 못한다, 그동안 의심 많은 길들은
끝없이 갈라졌으니 혀는 흉기처럼 단단하다
물방울이여, 나그네의 말은 귀담아들어선 안 된다
주저앉으면 그뿐, 어떤 구름이 비가 되는지 알게 되리
그렇다면 나는 저녁의 정거장을 마음속에 옮겨놓는다
내 희망을 감시해 온 불안의 짐짝들에게 나는 쓴다
이 누추한 육체 속에 얼마든지 머물다 가시라고
모든 길들이 흘러온다, 나는 이미 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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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1

잎 진 빈 가지에
이제는 무엇이 매달려 있나.
밤이면 유령처럼
벌레 소리여.
네가 내 슬픔을 대신 울어줄까.
내 음성을 만들어줄까.
잠들지 못해 여윈 이 가슴엔
밤새 네 울음 소리에 할퀴운 자국.
홀로 된 아픔을 아는가.
우수수 떨어지는 노을에도 소스라쳐
멍든 가슴에서 주르르르
네 소리.
잎 진 빈 가지에
내가 매달려 울어볼까.
찬바람에 떨어지고
땅에 부딪혀 부서질지라도
내가 죽으면
내 이름을 위하여 빈 가지가 흔들리면
네 울음에 섞이어 긴 밤을 잠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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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누가 빈 들을 지키는가
 
밤새 바람이 어지럽힌 벌판,
발톱까지 흰, 지난 여름의 새가 죽어있다.
새벽을 거슬러 한 사내가 걸어온다.
얼음 같은 살결을 거두는 손.
사내의 어깨에 은빛 서리가 쌓인다.
빈 들에 차가운 촛불이 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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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불놀이
 
어른이 돌려도 됩니까?
돌려도 됩니까 어른이?
사랑을 목발질하며
나는 살아왔구나
대보름의 달이여
올해는 정말 멋진 연애를 해야겠습니다
모두가 불 속에 숨어 있는걸요?
돌리세요,나뭇가지
사이에 숨은 꿩을 위해
돌리세요,술래
는 잠을 자고 있어요
헛간 마른 짚 속에서
대보름의 달이여
온 동네를 뒤지고도 또
어디까지?
아저씨는 불이 무섭지 않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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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질
 
空中을 솟구친 길은
그늘을 끼고 돌아왔고
아무것 알지 못하는 그는
한줌 가슴을 버리고
떠났다.

車窓 안쪽에 비쳐오는
낯선 거리엔
大理石보다 차가운
내 幻影이 떠오른다.
아무것 알려 하지 않는 그는
미련 없이 머리를 깎았다.

그는 나보다 앞선 歲月을 살았고
나와 同甲이었다.

감싸안은 두 발이
천장을 디디고 휘청거리는데
단단히 굳어버린 鋪道엔 바람이 일고
이 밤은 여느 때마냥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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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
 
그는 말을 듣지 않는 자신의 육체를 침대 위에 집어던진다
그의 마음속에 가득 찬, 오래된 잡동사니들이 일제히 절그럭거린다
이 목소리는 누구의 것인가, 무슨 이야기부터 해야 할 것인가
나는 이곳까지 열심히 걸어왔었다, 시무룩한 낯짝을 보인 적도 없다
오오, 나는 알 수 없다, 이곳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보고 내 정체를 눈치챘을까
그는 탄식한다, 그는 완전히 다르게 살고 싶었다, 나에게도 그만한 권리는 있지 않은가
모퉁이에서 마주친 노파, 술집에서 만난 고양이까지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중얼거린다, 무엇이 그를 이곳까지 질질 끌고 왔는지, 그는 더 이상 기억도 못 한다
그럴 수도 있다, 그는 낡아빠진 구두에 쑤셔박힌, 길쭉하고 가늘은
자신의 다리를 바라보고 동물처럼 울부짖는다, 그렇다면 도대체 또 어디로 간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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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나리 개나리
 
누이여
또다시 은비늘 더미를 일으켜세우며
시간이 빠르게 이동하였다.
어느 날의 잔잔한 어둠이
이파리 하나 피우지 못한 너의 생애를...
소리 없이 꺾어갔던 그 투명한
기억을 향하여 봄이 왔다.
살아 있는 나는 세월을 모른다
네가 가져간 시간과 버리고 간
시간들의 얽힌 영토 속에서
한 뼘의 폭풍도 없이 나는 고요했다.
다만 햇덩이 이글거리는 벌판을
맨발로 산보할 때
어김없이 시간은 솟구치며 떨어져
이슬 턴 풀잎새로 엉컹퀴 바늘을
살라주었다.
봄은 살아있지 않은 것은 묻지 않는다.
떠다니는 내 기억의 얼음장마다
부르지 않아도 뜨거운 안개가 쌓일 뿐이다.
잠글 수 없는 것이 어디 시간뿐이랴.
아아, 하나의 작은 죽음이 얼마나 큰 죽음들을 거느리는가
나리 나리 개나리
네가 두드릴 곳 하나 없는 거리
봄은 또다시 접혔던 꽃술을 펴고
찬물로 눈을 헹구며 유령처럼 나는 꽃을 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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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만한 지나침
 
그리고 나는 우연히 그곳을 지나게 되었다
눈은 퍼부었고 거리는 캄캄했다
움직이지 못하는 건물들은 눈을 뒤집어쓰고
희고 거대한 서류뭉치로 변해갔다
무슨 관공서였는데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왔다
유리창 너머 한 사내가 보였다
그 춥고 큰 방에서 書記는 혼자 울고 있었다!
눈은 퍼부었고 내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침묵을 달아나지 못하게 하느라 나는 거의 고통스러웠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중지시킬 수 없었다
나는 그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창밖에서 떠나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우연히 지금 그를 떠올리게 되었다
밤은 깊고 텅빈 사무실 창밖으로 눈이 퍼붓는다
나는 그 사내를 어리석은 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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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2
-붉은 달

1

그대, 아직 내게
무슨 헤어질 여력이 남아 있어 붙들겠는가.
그대요, X자고 단단히 구두끈을 조이는 양복
소매끈에서 무수한 달의 지느러미가 떨어진다.
떨날 사람은 떠난 사람. 그대는 천국으로 떠난다고
장기 두는 식으로 용감히 떠난다고
짧게 말하였다. 하늘나라의 달.
 
2

너는 이대 돌아서고 나는 미리 준비해둔 깔깔한 슬픔을 껴입고
돌아왔다. 우리 사이 협곡에 꽂힌 수천의 기억의 돛대, 어느 하나에도
걸리지 못하고 사살은 남루한 옷으로 자천을 떠돌고 있다. 아아 난간마다 안개
휘파람의 섬세한 혀만 가볍게 말리는 거리
너무도 쉽게 어두워진다. 나의 추상이나 힘겨운 삼상의 망토 속에서
폭풍주의보는 삐라처럼 날리고 어디선가 툭툭 매듭이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차피 내가 떠나기 전에 이미 나는 혼자였다. 그런데
너는 왜 천국이라고 말하였는지. 네가 떠나는 내부의 유배지는
언제나 푸르고 깊었다. 불더미 속에서 무겁게 터지는 공명의 방
그리하여 도시, 불빛의 사이렌에 썰물처럼 골목을 우회하면
고무줄처럼 먼저 튕겨나와 도망치는 그림자를 보면서도 나는 두려움으로 몸을 떨었다.
떠리는 것은 잠과 타종 사이에서 비틀거리는 내 유약한 의식이다.
책갈피 속에서 비명을 지르는 우리들 창백한 유년, 식물채집의 꿈이다.
여름은 누구에게나 무더웠다
 
3

잘 가거라, 언제나 마른 손으로 악수를 청하던 그대여
밤세워 호루라기 부는 세상이 어느 위치에선가 용감한 꿈 꾸며 살아 있을
그대. 잘 가거라 약 기운으로 붉게 얇은 등을 축축이 적시던 헝겊 같은
달빛이여. 초침 구부러진 어느 젊은 날이 여름밤이여.
가끔은 시간을 앞질러 골목을 비어져 나오면 아,
온통 체온계를 입에 물고 가는 숱한 사람들 어디로 가죠? (꿈을 생포하러)
예? 누가요 (꿈 따위는 없어) 모두 어디로, 천국으로
세상을 온통 크레졸 냄새로 자리잡는다. 누가 떠나든 죽든
우리는 모두가 위대한 혼자였다. 살아 있으라, 누구든 살아 있으라.
턱턱, 짧은 숨 쉬면서 내부의 아득한 시간의 숨 신뢰하면서
천국을 믿으면서 혹의 의심하며서 도시, 그 변증의 여름을 벗어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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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1
과거는 끝났다.
송곳으로 서류를 뚫으며 그는
블라인드를 내리고 있는 김(金)을 본다.
자네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모르겠어.
수백 개 명함들을 읽으며
일일이 얼굴들을 기억할 순 없지.
또한 우리는 미혼이니까, 오늘도
분명한 일은 없었으니까
아직은 쓸모 있겠지. 몇 장 얄팍한 믿음으로
남아 있는 하루치의 욕망을 철(綴)하면서.

2
그들이 무어라고 말하겠는가.
한 두시간 차이났을 뿐. 내가 아는 것을
그들이 믿지 않을 뿐.
나에게도 중대한 사건은 아니었어.
큐대에 흰 가루를 바르면서
김은 정확하게 시간의 각을 재어본다.
각자의 소유만큼씩 가늠해보는 가치의 면적.
물론 새로운 것은 아니지.
잠시 잇고 있었을 뿐. 좀 복잡한 타산이니까.
똑바로 말한 적이 자네는 한 번도 없어.
감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
와이셔츠 단추 한 개를 풀면서
날 선 칼라가 힘없이 늘어질 때까지
어쨌든 우리는 살아온 것이니.
오늘의 뉴스는 이미 상식으로 챙겨듣고.
 
3
믿어주게.
나도 몇 개의 동작을 배웠지.
변화 중에서도 튕겨져나가지 않으려고
고무풀처럼 욕망을 단순화하고
그렇게 하나의 과정이 되어갔었네. 그는
층계 밑에 서서 가스라이터 불빛 끝에 손목을 매달고
무엇인가 찾는 김을 본다. 무엇을 잃어버렸나.
잃어버린 것은 찾지 않네. 그럴만큼 시간은 여유가 없어.
잃어버려야 할 것들을 점검중이지.
그럴만큼의 시간만 있으니까.
아무리 조그만 나프탈렌처럼 조직의 서랍 속에 숨어 있어도
언제나 나는 자네를 믿어왔네. 믿어주게.
로터리를 회전하면서 그것도 길의 중간에서
날씨야 어떻든 상관없으니까.
 
4
사람들은 조금씩 빨라진다.
속도가 두려움을 만날 때까지. 그러나
의사의 기술처럼 간단히 필라멘트는
가열되고 기계적으로 느슨히
되살아나는 습관에 취할 때까지 적어도
복잡한 반성 따위는 알콜 탓이거니 아마
시간이 승부의 문제였던 때는 지났겠지.
신중한 수술이 아니어도 흰색 가운을 입듯이
누구나 평범한 초침(秒針)으로 손을 닦는 나이임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하여주게. 휴식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아주 사무적인 착상이군. 여기와 지금이 별개이듯이
내가 집착한 것은 단순한 것이었어. 그래서
더욱 붙어 있어야 함을 알아두게. 일이 끝나면
굳게 뚜껑을 닫는 만년필처럼.
 
5
소리나는 것만이 아름다울테지.
소리만이 새로운 것이니까 쉽게 죽으니까.
소리만이 변화를 신고 다니니까.
그러나 무엇을 예약할 것인가.
방이 모두 차 있거나 모두 비어 있는데.
무관심만이 우리를 쉬게 한다면 더 이상 기억할 필요는 없어진다.
과거는 끝났다.
즐거움도 버릇같은 것.
넥타이를 고쳐매면서 거울 속의 키를
확인하고 안심하듯이 우리는 미혼이니까.
속성으로 떠오르는 달을 보면서 휘파람불며
각자의 가치는 포켓 속에서 짤랑거리며
똑바로 말한 적이 자네는
한 번도 없어. 제발 그만두게. 자네를 위해서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다 토해냈네. 또한
무엇이든 분명한 일이 없었고
아직도 오늘은 조금 남아있으니까. 그럼.
굿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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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이튿날이 되어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간유리같은
밤을 지났다.
그날 우리들의 언덕에는 몇 백개 칼자국을 그으며 미친 바람이
불었다. 구부러진 핀처럼 웃으며 누이는 긴 팽이모자를 쓰고 언덕을
넘어갔다. 어디에서 바람은 불어오는 걸까?
어머니 왜 나는 왼손잡이여요. 부엌은 거대한 한 개 스푼이다.
하루종일 나는 문지방 위에 앉아서 지붕 위에서 가파른 예각으로
울고있는 유지 소리를 구깃구깃 삼켜넣었다.
어머니가 말했다. 너는 아버지가 끊어뜨린 한 가닥 실정맥이야.
조용히 골동품 속으로 낙하하는 폭풍의 하오. 나는 빨랫줄에서
힘없이 떨어지는 아버지의 런닝셔츠가 흙투성이가 되어
어디만큼 날아가는가를 두 눈 부릅뜨고 헤아려보았다.
공중에서 휙휙 솟구치는 수천 개 주사바늘. 그리고 나서 저녁 무렵
땅거미 한 겹의 무게를 데리고 누이는 뽀쁠린 치마 가득 삘기의
푸른 즙액을 물들인 채 절룩거리며 돌아오는 것이다.
아으, 칼국수처럼 풀어지는 어둠! 암흑 속에서 하얗게 드러나는 집.
이 불끈거리는 예감은 무엇일까. 나는 헝겊같은 배를 접으며
이 악물고 언덕에 섰다. 그리하여 풀더미의 칼집 속에 하체를
담그고 자정 가까이 걸어갔을 때 나는 성냥개비같은 내 오른팔
끝에서 은빛으로 빛나는 무서운 섬광을 보았다.
바람이여, 언덕 가득 이 수천 장 손수건을 찢어날리는 광포한
바람이여. 이제야 나는 어디에서 네가 불어오는지 알 것 같으다.
오, 그리하여 수염투성이의 바람에 피투성이가 되어 내려오는
언덕에서 보았던 나의 어머니가 왜 그토록 가늘은 유리막대처럼
위태로운 모습이었는지를.
다음날이 되어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나는 폭풍의 밤마다 언덕에 오르는 일을 그만두었다.
무수한 변증의 비명을 지르는 풀잎을 사납게 베어 넘어뜨리며
이제는 내가 떠날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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雨中의 나이 - 모든 슬픔은 논리적으로 규명되어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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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한, 여태껏 여기에 혼자 앉아 있었어? 대단한 폭우라구.
알고 있어요. 여기서도 선명한 빗소리가 들려요. 다행이군. 비 오는 밤은 눅눅해요. 늘 샤워를 하곤 하죠. 샤워. 물이 떨어져 요. 우산을 접으세요. 나프타린처럼 조그맣게 접히는 정열? 커 피 드세요. 고맙군. 그런데 지금까지 내 생을 스푼질해 온 것은 무엇이었을까. 시시한 소리예요. 기형도 씨 무얼했죠? 집을 지 으려 했어. 누구의 집? 글쎄 그걸 모르겠어. 그래서 허물었어 요? 아예 짓지를 않았지. 예? 아니, 뭐. 그저…… 치사한 감정 이나 무상 정도로, 껌 씹을 때처럼.
2
등사 잉크 가득 찬 밤이다. 나는 근래 들어 예전에 안 꾸던 악 몽에 시달리곤 한다. 시간의 간유리. 안개. 이렇게 빗소리 속에 앉아 눈을 감으면 내 흘러온 짧은 거리 여기저기서 출렁거리는 습습한 생의 경사들이 피난민들처럼 아우성치며 떠내려가는 것 이 보인다. 간혹씩 모래사장 위에서 발견되기도 하는 건조한 물 고기 알들.
봄이 가고 여름이 가면 그런 식으로 또 나의 일년은 마취약처럼 은밀히 지나가리라. 술래를 피해 숨죽여 지나가듯. 보인다. 내 남은 일생 곳곳에 미리 숨어 기다리고 있을 숱한 폭우들과 나무 들의 짧은 부르짖음이여.
3
고양일 한 마리 들여놨어요. 발톱이 앙증맞죠? 봐요. 이렇게 신 기하게 휘어져요. 파스텔같이. 힘없이 털이 빠지는 꼴이란……
앗, 아파요. 할퀴었어요. 조심해야지. 정지해 있는 것은 언제나 독을 품고 있는 법이야.
4
시험지가 다 젖었을 것이다. 위험 수위. 항상 준비해야 한다.
충분한 숙면. 물보다 더욱 가볍게 떠오르기. 하얗게 씻겨 더욱 찬란히 빛나는 삽날의 꿈. 당신의 꿈은?
5
지난 봄엔 애인이 하나 있었지. 떠났어요? 없어졌을 뿐이야. 빛 의 명멸. 멀미 일으키며 침입해오던 여름 노을의 기억뿐이야. 사랑해보라구? 사랑해봐. 비가 안 오는 여름을 상상할 수 있겠 어? 비 때문은 아녜요. 그렇군. 그런데 뭐 먹을 것이 없을까?
6
그리하여 내가 이렇게 묻는다면. 미스 한. 혼자 앉아서 이젠 무 엇을 할래? 집을 짓죠. 누구의 집? 그건 비밀. 그래. 우리에게 어떤 운명적인 과제가 있다면. 그것은 애초에 품었던 우리들 꿈 의 방정식을 각자의 공식대로 풀어가는 것일 터이니. 빗소리. 속의 빗소리. 밖은 여전히 폭우겠죠? 언제나 폭우. 아. 그러면 모든 슬픔은 논리적으로 논리적으로, 논리…… 300원의 논리. 여름엔 여름 옷을 입고 겨울엔 겨울 옷을 입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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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개의 책장안에 머물러있는 시인의 영혼

나의책 나의서가 - 故 기형도 시인
 
천국을 도서관으로 상상했다는 어느 시인처럼 그는 지금 하늘에서 행복할까. 아니면 지상에 자신이 세워놓은 ‘도서관’을 저 위에서 내려다보며 미소 짓고 있을 지도. 처녀시집이자 유고시집이 되어버린 ‘입 속의 검은 잎’(문학과지성사)을 남기고 만 스물 아홉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고 기형도(1960~1989)시인. 그가 떠난지 벌써 12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의 서가는 오롯이 남아 있었다. 네 살 위 누이인 기애도(45)씨의 안산 성포동 27평 아파트, 거실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조카들의 방마다 ‘침입’해 있는 12개의 책장으로.
누이 기씨는 “책장 하나, 빛 바랜 책 한 권까지도 모두 동생의 품과 애정이 깃들어 있는 것들”이라면서 “동생을 더 오래 살게 하는 길이라는 생각으로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
정음사판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삼성판 세계사상전집과 한국문학전집, 홍성사의 홍성신서, 현암사의 현암신서, 창비와 문학사상의 영인본들이 책장에 꽂힌 채 시인의 지적 궤적을 ‘입증’하고 있었다. 연세대 문학회 시절, 둘도 없는 동기였던 소설가 성석제에게 “꼭 읽어보라”며 적어줬다던 책들이다. 사실 두 사람의 관계는 꼬장꼬장한 책주인과 유쾌한 책도둑 사이로 문단에서 이름났다. 작가가 시인의 집에서 놀다가 대문을 나설 때마다 주머니까지 샅샅이 열어보이며 ‘검문검색’을 받았을 정도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석제가 “갈 때마다 솜씨껏 도둑질 하였다”고 자신의 산문집에서 ‘자랑’했던 시인의 시집들이 주방 쪽 책장에 하나 가득이다. 혜원출판사에서 김현, 오생근, 김화영, 김주연 등이 번역했던 괴테, 예이츠, 발레리, 엘뤼아르, 휘트먼의 시들, 번호 순서대로 모아놓은 ‘청하시선’, ‘문지시인선’, ‘민음의 시’들이 시선을 고정시킨다. 그 위를 눈으로 더듬다 장석주의 ‘햇빛사냥’(고려원)을 끄집어 냈다. 1981년 4월에 발행된 1200원짜리 시집. 질 나쁜 갱지에 박혀 있는 시어들. 그리고 그 밑에 가는 연필로 그어놓은 줄과 깨알같이 적혀 있는 메모. 어느 단어에는 동그라미를 쳤다가, 어느 단어에는 가위표를 치고, 어느 명사 아랫줄에는 ‘밝고 힘찬’이란 형용사를 수줍게 적어 놓은. 생전의 그를 떠올리는 순간 엽서 한 장이 책갈피에서 굴러 떨어졌다. 출판사 회수용으로 만들었던, 부치지 못한 독자엽서다. 또박또박 쓴 글씨로 직업: 학생, 좋아하는 시인: 장석주, 이름: 기형도 등이 적혀 있다. 옆에 서 있던 누이는 “느닷없이 만나는 이런 기쁨 때문에 내가 이 책들을 끼고 사는 것”이라며 반가워 한다.
H.스튜어트 휴즈의 ‘의식과 사회’(홍익신서) 등 몇 권 무작위로 골라낸 책들에는 연두색, 푸른색 등 색연필로 그어놓은 줄과 메모가 듬성듬성 보이고, 심지어는 습자지를 별도로 붙여 요약정리까지 했다. 자신의 보물을 뒤늦게 찾아보는 사람들의 기를 죽이려는 의도였을까?
사실 산자들이 죽은 자의 최후를 비극적으로 포장하는 건,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작고한 평론가 김현은 시인에게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이란 이름을 붙여줬다. 하지만 시인은, 최소한 자신의 서가 안에서만은, 무척이나 유쾌했던 것 같다. 소설가 강석경씨는 어느 글에서 시인을 추모하면서 “천사는 지상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고 적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그 서가 안에 머무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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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어둑어둑한 여름날 아침 낡은 창문 틈새로 빗방울이 들이 친다. 어두운 방 한복판에서 김(金)은 짐을 싸고 있다. 그의 트렁크가 가장 먼저 접수한 것은 김의 넋이다. 창문 밖에는 엿보는 자 없다. 마침내 전날 김은 직장과 헤어졌다. 잠시 동안 김은 무표정하게 침대를 바라본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침대는 말이 없다. 비로서 나는 풀려나간다, 김은 자신에게 속삭인다. 마침내 세상의 중심이 되었다.
나를 끌고 다녔던 몇 개의 길을 나는 영원히 추방한다. 내 생의 주도권은 이제 마음에서 육체로 넘어갔으니 지금부터 나는 길고도 오랜 여행을 떠날 것이다. 내가 지나치는 거리마다 낯선 기쁨과 전율은 가득 차리니 어떠한 권태도 더 이상 내 혀를 지배하면 안된다.
모든 의심을 짐을 꾸리면서 김은 거둔다. 어둑어둑한 여름날 아침 창문 밖으로 보이는 젖은 길은 침대처럼 고요하다. 마침내 낭하가 텅텅 울리면서 문이 열린다. 잠시 동안 김은 무표정하게 거리를 바라본다. 김은 천천히 손잡이를 놓는다. 마침내 희망과 걸음이 동시에 떨어진다. 그 순간, 쇠뭉치같은 트렁크가 김을 쓰러뜨린다. 그곳에서 계집아이같은 가늘은 울음소리가 터진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빗방울은 은퇴한 노인의 백발위로 들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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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눈깨비
 
때마침 진눈깨비 흩날린다
코트 주머니 속에는 딱딱한 손이 들어 있다
저 눈발은 내가 모르는 거리를 저벅거리며
여태껏 내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사내들과 건물들 사이를 헤맬 것이다
눈길 위로 사각의 서류 봉투가 떨어진다, 허리를 나는 굽히다 말고
생각한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참 많은 각오를 했었다
내린다 진눈깨비, 놀라 넋도 없다, 변덕이 심한 다리여
이런 귀가길은 어떤 소설에선가 읽은 적이 있다
구두 밑창으로 여러 번 불러낸 추억들이 밟히고
어두운 골목길엔 불켜진 빈 트럭이 정거해 있다
취한 사나들이 쓰러진다, 생각난다 진눈깨비 뿌리던 날
하루종일 버스를 탔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낡고 흰 담벼락 근처에 모여 사람들이 눈을 턴다
진눈깨비 쏟아진다, 갑자기 눈물이 흐른다, 나는 볼행하다
이런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일생 몫의 경험을 다했다, 진눈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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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그대 쪽으로
 
어둠에 가려 나는 더 이상나뭇가지를 흔들지 못한다. 단 하나의 영혼(靈魂)을 준비하고 발소리를 죽이며 나는 그대 창문(窓門)으로 다가간다. 가축들의 순한 눈빛이 만들어내는 희미한 길 위에는 가지를 막 떠나는 긴장한 이파리들이 공중 빈 곳을 찾고 있다.
외롭다. 그대, 내 낮은 기침소리가 그대 단편(短篇)의 잠속에서 끼어들 때면 창틀에 조그만 램프를 켜다오. 내 그리움의 거리는 너무 멀고 침묵(沈默)은 언제나 이리저리 나를 끌고 다닌다. 그대는 아주 늦게 창문을 열어야 한다. 불빛은 너무 약해 벌판을 잡을 수 없고, 갸우뚱 고개 젓는 그대 한숨 속으로 언제든 나는 들어가고 싶었다. 아아, 그대는 곧 입김을 불어 한 잎의 불을 끄리라. 나는 소리없이 가장 작은 나뭇가지를 꺾는다. 그 나뭇가지 뒤에 몸을 숨기고 나는 내가 끝끝내 갈 수 없는 생(生)의 벽지(僻地)를 조용히 바라본다. 그대, 저 고단한 등피(燈皮)를 다 닦아내는 박명(簿明)의 시간, 흐려지는 어둠 속에서 몇 개의 움직임이 그치고 지친 바람이 짧은 휴식을 끝마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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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에 대한 경멸
 
손님이 돌아가자 그는 마침내 혼자가 되었다
어슴푸레한 겨울 저녁, 집 밖을 찬바람이 떠다닌다
유리창의 얼음을 뜯어내다 말고, 사내는 주저앉는다
아아, 오늘은 유쾌한 하루였다, 자신의 나지막한 탄식에
사내는 걷잡을 수 없이 불쾌해진다, 저 성가신 고양이
그는 불을 켜기 위해 방안을 가로질러야 한다
나무토막 같은 팔을 쳐들면서 사내는, 방이 너무 크다
왜냐하면, 하고 중얼거린다, 나에게도 추억거리는 많다
아무도 내가 살아온 내용에 간섭하면 안 된다
몇 장의 사진을 들여다보던 사내가 한숨을 쉰다
이건 여인숙과 다를 바가 없구나, 모자라도 뒤집어쓸까
어쩌다가 이봐, 책임질 밤과 대낮들이 아직 얼마인가
사내는 머리를 끄덕인다, 가스 레인지는 차갑게 식어 있다
그렇다, 이런 밤은 저 게으른 사내에게 너무 가혹하다
내가 차라리 늙은이였다면! 그는 사진첩을 내동댕이친다
추억은 이상하게 중단된다, 그의 커다란 슬리퍼가 벗겨진다
손아귀에서 몸부림치는 작은 고양이, 날카로운 이빨 사이로 독한 술을 쏟아붓는, 저 헐떡이는, 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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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밭 묘지 1
 
주인은 떠나 없고 여름이 가기도 전에 황폐해버린
그해 가을, 포도밭 등성이로 저녁마다 한 사내의 그
림자가 거대한 조명 속에서 잠깐씩 떠오르다 사라지
는 풍경 속에서 내 弱視의 산책은 비롯되었네. 친구
여, 그해 가을 내내 나는 적막과 함께 살았다. 그때
내가 데리고 있던 헛된 믿음들과 그뒤에서 부르던
작은 충격들을 지금도 나는 기억하고 있네. 나는 그
때 왜 그것을 몰랐을까. 희망도 아니었고 죽음도 아
니었어야 할 그 어둡고 가벼웠던 종교들을 나는 왜
그토록 무서워했을까. 목마른 내 발자국마다 검은
포도알들은 목적도 없이 떨어지고 그때마다 고개를
들면 어느 틈엔가 낯선 풀잎의 자손들이 날아와 벌
판 가득 흰 연기를 피워올리는 것을 나는 한참이나
바라보곤 했네. 어둠은 언제든지 살아 있는 것들의
그림자만 골라 디디며 포도밭 목책으로 걸어왔고 나
는 내 정신의 모두를 폐허로 만들면서 주인을 기다
렸다. 그러나 기다림이란 마치 용서와도 같아 언제
나 육체를 지치게 하는 법. 하는 수 없이 내 지친
발을 타일러 몇 개의 움직임을 만들다보면 버릇처럼
이상한 무질서도 만나곤 했지만 친구여, 그때 이미
나에게는 흘릴 눈물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리하여
내 정든 포도밭에서 어느 하루 한 알 새파란 소스라
침으로 떨어져 촛농처럼 누운 밤이면 어둠도, 숨죽
인 희망도 내게는 너무나 거추장스러웠네. 기억한
다. 그해 가을 주인은 떠나 없고 그리움이 몇 개 그
릇처럼 아무렇게나 사용될 때 나는 떨리는 손으로
짧은 촛불들을 태우곤 했다. 그렇게 가을도 가고 몇
잎 남은 추억들마저 천천히 힘을 잃어갈 때 친구여,
나는 그때 수천의 마른 포도 이파리가 떠내려가는
놀라운 空中을 만났다. 때가 되면 태양도 스스로의
빛을 아껴두듯이 나 또한 내 지친 정신을 가을 속에
서 동그랗게 보호하기 시작했으니 나와 죽음은 서로
를 지배하는 각자의 꿈이 되었네. 그러나 나는 끝끝
내 포도밭을 떠나지 못했다. 움직이는 것은 아무것
도 없었지만 나는 모든 것을 바꾸었다. 그리하여 어
느 날 기척 없이 새끼줄을 들치고 들어선 한 사내의
두려운 눈빛을 바라보면서 그가 나를 주인이라 부를
때마다 아, 나는 황망히 고개 돌려 캄캄한 눈을 감
았네. 여름이 가기도 전에 모든 이파리 땅으로 돌아
간 포도밭, 참담했던 그해 가을, 그 빈 기쁨들을 지
금 쓴다 친구여.
 
포도밭 묘지 2
 
아아, 그때의 빛이여. 빛 주위로 뭉치는 어둠이
여. 서편 하늘 가득 실신한 청동의 구름떼여. 목책
안으로 툭툭 떨어져내리던 무엄한 새들이여. 쓴 물
밖으로 소스라치며 튀어나오던 미친 꽃들이여. 나는
끝을 알 수 없는 질투심에 휩싸여 너희들을 기다리
리. 내 속의 모든 움직임이 그치고 탐욕을 향한 덩
굴손에서 방황의 물기가 빠질 때까지.
밤은 그렇게 왔다. 포도 압착실 앞 커다란 등받이
의자에 붙어 한 잎 식물의 눈으로 바라보면 어둠은
화염처럼 고요해지고 언제나 내 눈물을 불러내는 저
깊은 空中들. 기억하느냐, 그해 가을 그 낯선 저녁
옻나무 그림자 속을 홀연히 스쳐가던 천사의 검은
옷자락과 아아, 더욱 높이 흔들리던 그 머나먼 주인
의 임종. 從者여, 네가 격정을 사로잡지 못하여 죽
음을 환난과 비교한다면 침묵의 구실을 만들기 위해
네가 울리는 낮은 종소리는 어찌 저 놀라운 노을을
설명할 수 있겠느냐. 저 공중의 욕망은 어둠을 지치
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종교는 아직도 지상에서 헤맨
다. 묻지 말라, 이곳에서 너희가 완전히 불행해질
수 없는 이유는 神이 우리에게 괴로워할 권리를 스
스로 사들이는 법을 아름다움이라 가르쳤기 때문이
다. 밤은 그렇게 왔다. 비로소 너희가 전생애의 쾌
락을 슬픔에 걸 듯이 믿음은 不在 속에서 싹트고 다
시 그 믿음은 부재의 씨방 속으로 돌아가 영원히 쉴
것이니, 골짜기는 정적에 싸이고 우리가 그 정적을
사모하듯이 어찌 비밀을 숭배하는 무리가 많지 않으
랴. 밤은 그렇게 노여움을 가장한 모습으로 찾아와
어두운 실내의 램프불을 돋우고 우리의 후회들로 빚
어진 주인의 말씀은 정신의 헛된 식욕처럼 아름답
다. 듣느냐, 이 세상 끝간 곳엔 한 자락 바람도 일
지 않았더라. 어떠한 슬픔도 그 끝에 이르면 짓궂은
변증의 쾌락으로 치우침을 네가 아느냐. 밤들어 새
앙쥐를 물어뜯는 더러운 달빛 따라가며 휘파람 부는
작은 풀벌레들의 그 고요한 입술을 보았느냐. 햇빛
은 또 다른 고통을 위하여 빛나는 나무의 알을 잉태
하느니 從者여, 그 놀라운 보편을 진실로 네가 믿느
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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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눈(雪) 나무 숲
 
눈(雪)은
숲을 다 빠져나가지 못하고
여기 저기 쌓여 있다.
 
[자네인가, 서둘지 말아.]
쿵, 그가 쓰러진다.
날카로운 날(刃)을 받으며.
나는 나무를 끌고
집으로 돌아온다.
홀로 잔가지를 치며
나무의 沈默을 듣는다.
[나는 여기 있다.
죽음이란
가면(假面)을 벗은 삶인 것.
우리도, 우리의 겨울도 그와 같은 것]
우리는
서로 닮은 아픔을 향(向)하여
불을 지피었다.
창(窓)너머 숲 속의 밤은
더욱 깊은 고요를 위하여 몸을 뒤채인다.
 
내 청결(淸潔)한 죽음을 확인(確認)할 때까지
나는 부재(不在)할 것이다.
타오르는 그와 아름다운 거리(距離)를 두고
그래, 심장(心臟)을 조금씩 덥혀가면서.
 
늦겨울 태어나는 아침은
가장 완벽(完璧)한 자연(自然)을 만들기 위하여 오는 것.
그 후(後)에
눈 녹아 흐르는 방향을 거슬러
우리의 봄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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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1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2
이 읍에 처음 와본 사람은 누구나
거대한 안개의 강을 거쳐야 한다.
앞서간 일행들이 천천히 지워질 때까지
쓸쓸한 가죽들처럼 그들은
그 긴 방죽 위에 서 있어야 한다
문득 저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
갇혀 있음을 느끼고 경악할 때까지.

어떤 날은 두꺼운 공중의 종잇장 위에
노랗고 딱딱한 태양이 걸릴 때까지
안개의 軍團은 샛강에서 한 발자국도 이동하지 않는다.
출근길에 늦은 여공들은 깔깔거리며 지나가고
긴 어둠에서 풀려나는 검고 무뚝뚝한 나무들 사이로
아이들은 느릿느릿 새어나오는 것이다.
안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처음 얼마 동안
보행의 경계심을 늦추는 법이 없지만, 곧 남들처럼
안개 속을 이리저리 뚫고 다닌다. 습관이란
참으로 편리한 것이다. 쉽게 안개와 식구가 되고
멀리 송전탑이 희미한 동체를 드러낼 때까지
그들은 미친 듯이 흘러다니다.

가끔씩 안개가 끼지 않는 날이면
방죽 위로 걸어가는 얼굴들은 모두 낯설다. 서로를 경계하며
바쁘게 지나가고, 맑고 쓸쓸한 아침들은 그러나
아주 드물다. 이곳은 안개의 聖域이기 때문이다.

날이 어두워지면 안개는 샛강 위에
한 겹씩 그의 빠른 옷을 벗어놓는다. 순식간에 공기는
희고 딱딱한 액체로 가득찬다. 그 속으로
식물들, 공장들이 빨려 들어가고
서너 걸음 앞선 한 사내의 반쪽이 안개에 잘린다.

몇 가지 사소한 사건도 있었다.
한밤중에 여직공 하나가 겁탈당했다.
기숙사와 가까운 곳이었으나 그녀의 입이 막히자
그것으로 끝이었다. 지난 겨울엔
방죽 위에서 醉客 하나가 얼어 죽었다.
바로 곁을 지난 삼륜차는 그것이
쓰레기 더미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불행일 뿐, 안개의 탓은 아니다.

안개가 걷히고 정오 가까이
공장의 검은 굴뚝들은 일제히 하늘을 향해
젖은 銃身을 겨눈다. 상처입은 몇몇 사내들은
험악한 욕설을 해대며 이 폐수의 고장을 떠나갔지만
재빨리 사람들의 기억에서 밀려났다. 그 누구도
다시 읍으로 돌아온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3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안개는 그 읍의 명물이다.
누구나 조금씩은 안개의 주식을 갖고 있다.
여공들의 얼굴은 희고 아름다우며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모두들 공장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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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버리고 오다.
 
1.
도망치듯 바다로 달렸다
그 바다, 구석진 바위에 앉아
울고 싶어서 술을 마셨다
그냥은 울기가 민망해서 술기운을 빌려 운다
울 수 있을 만큼만 술을 마신다.
그러면 바다는 내 엄살이 징그럽다고 덤벼들었다
노을이 질 무렵, 파도가 한 웅큼의 피를 쏟아내었다
바다는 새벽을 잉태하기 위하여 날마다 하혈한다
일상의 저음부를 두드리던 가벼운 고통도
내 존재를 넘어뜨릴 듯 버거운 것이었고
한 옥타브만 올라가도 금새 삐그덕거리는 우리의 화음은
합의되지 못한 쓸쓸함,
그래 가끔은 타협할 필요도 없이 해결 되기도 했지만
나와 함께 아파 할 아무도 없다면 어떠랴
징징대는 감정을 달래느라 늘 신경은 하이소프라노로 울고
끝내는 당도하지 못할 너라는 낯선 항구,
파도가 쓸고 가버린 것은 빈 소주병만이 아니었을까
시작도 없는 끝, 시작만 있는 끝
늘 함부로 끝나버리기 일쑤인 기약없는 시작이었음을
 
2.
바다가 잠든 나를 두드렸다
이미 어두워진, 수초내음만이 살아있는 바다에는
아무것도 없다 아무리 눈을 문질러도
보이지 않아서 볼 수가 없다
보여도 보이지 않는 척 하기로 한다
바이올린의 비명이 나를 대신하는
oblivion, 바다가 슬픔을 풀어놓는 동안
잃어버린 기억 한자락 끼어든다
망각은 내가 너를 견디는 방식
살아가는 것이 무릎 관절염 같은 시린 악몽일지라도
오늘, 단 한편의 아픈 꿈을 허락하기로 한다
오늘만 취하기로 한다
수평선 너머로 밀려가는 아득한 기억상실을 위하여
 
3
바다는 출산을 위하여 끙 한번 신음한다
망망대해에 부유하는 사연들과 같이 아파했던 까닭으로
바다는 새벽을 낳을 무렵, 푸르고도 투명하게 멍들어 있다
~~~~~~~~~~~~~~~~~~~~~~~~~~~~~~~~~~~~~~~~~~~~~~~~~~~~~~~~~~~~~~~~~~~
오래된 書籍
 
내가 살아온 것은 거의
기적적이었다
오랫동안 나는 곰팡이 피어
나는 어둡고 축축한 세계에서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질서
 
속에서, 텅 빈 희망 속에서
어찌 스스로의 일생을 예언할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들은 분주히
몇몇 안 되는 내용을 가지고 서로의 기능을
넘겨 보며 書標를 꽂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너무 쉽게 살았다고
말한다, 좀더 두꺼운 추억이 필요하다는
 
사실, 완전을 위해서라면 두께가
문제겠는가? 나는 여러 번 장소를 옮기며 살았지만
죽음은 생각도 못했다, 나의 경력은
출생뿐이었으므로, 왜냐하면
두려움이 나의 속성이며
미래가 나의 과거이므로
나는 존재하는 것, 그러므로
용기란 얼마나 무책임한 것인가, 보라
 
나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모두
나를 떠나갔다,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누가 나를
펼쳐 볼 것인가, 하지만 그 경우
그들은 거짓을 논할 자격이 없다
거짓과 참됨은 모두 하나의 목적을
꿈꾸어야 한다, 단
한 줄일 수도 있다
 
나는 기적을 믿지 않는다

《입속의 검은 잎》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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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푸른 저녁

1
그런 날이면 언제나
이상하기도 하지, 나는
어느새 처음 보는 푸른 저녁을 걷고
있는 것이다, 검고 마른 나무들
아래로 제각기 다른 얼굴들을 한
사람들은 무엇엔가 열중하며
걸어오고 있는 것이다, 혹은 좁은 낭하를 지나
이상하기도 하지, 가벼운 구름들같이
서로를 통과해가는
나는 그것을 예감이라 부른다, 모든 움직임은 홀연히
정지하고, 거리는 일순간 정적에 휩싸이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숨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그런 때를 조심해야 한다, 진공 속에서 진자는
곧,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검은 외투를 입은 그 사람들은 다시 저 아래로
태연히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조금씩 흔들리는
것은 무방하지 않는가.
나는 그것을 본다.
모랫더미 위에 몇몇 사내가 앉아 있다, 한 사내가
조심스럽게 얼굴을 쓰다듬어 본다
공기는 푸른 유리병, 그러나
어둠이 내리면 곧 투명해질 것이다, 대기는
그 속에 둥글고 빈 통로를 얼마나 무수히 감추고 있는가!
누군가 천천히 속삭인다, 여보게
우리의 생활이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가
세상은 얼마나 많은 법칙들을 숨기고 있는가
나는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그러나 느낌은 구체적으로
언제나 뒤늦게 온다, 아무리 빠른 예감이라도
이미 늦은 것이다 이미
그곳에는 아무도 없다.

2
가장 짧은 침묵 속에서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결정들을 한꺼번에 내리는 것일까
나는 까닭없이 고개를 갸우뚱해본다.
둥글게 무릎을 기운 차가운 나무들, 혹은
곧 유리창을 쏟아버릴 것 같은 검은 건물들 사이를 지나
낮은 소리들을 주고받으며
사람들은 걸어오는 것이다.
몇몇은 딱딱해 보이는 모자를 썼다.
이상하기도 하지, 가벼운 구름들같이
서로를 통과해가는
나는 그것을 습관이라 부른다, 또다시 모든 움직임은 홀연히
정지하고, 거리는 일순간 정적에 휩싸이는 것이다, 그러나
안심하라, 감각이여!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검은 외투를 입은 그 사람들은 다시 저 아래로
태연히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어느 투명한 저녁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모든 신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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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우리가 오늘 거둔 수확은 무엇일까 그대여 하고 물으면
갑자기 地上엔 어둠, 거리를 疾走하는 바람기둥.
그대여, 우리는 지금 出口를 알 수 없는
巨大한 圖畵紙 위에 서 있다.
제각기 하루의 스위치를 내리고
웅성이며 사람들이 돌아가는 시간이면
都市의 끝에서 끝까지 아픈 다리를 데리고 걸으면서
우리는 누구도 時間을 묻지 않았다. 문득
우리의 軌跡으로 그어진 꺾은선 그래프에 허리를 찔리우고
어디에도 갈 곳이 없었기에 어둠이 달려왔다
어둠이여 그러나 숨길 그 무엇이 있어 너를 부르겠는가
빌딩 너머 몇 점 노을로도 갑자기 수척해지는 거리를 보며
우리는 말없이 서 있을 뿐이다.
全身으로 서 있을 뿐이다 어둠이여
 
왜 우리는 세상에 이 크나큰 빈 箱子 속에 툭
툭 採集되어야 했을까
팽팽하게 얼어붙는 한 장 바람의 形狀이 되어
우우 어디로 가서 기댈까
우리가 활활 消滅할 수 있는 未知의 불은 어디?
우리는 都市의 끝, 그 바람만 줄달음치는 驛舍를 배회하였다.
그러나 旅客運賃表로 할당되는 가난한 우리의 생.
갈 곳은 황량한 都市뿐이었다.
그래도 어딘가 낯선 도시 한켠에 주저앉아 휘파람 부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살아 있을까.
그 믿음을 무엇이라 부를까.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했던 것일까.
늘 時間이 停止해 있는 도시.
푯말 없이 오늘도 캄캄하게 버티고 선
아아, 잎 뚝뚝 떨어지는 우리들의 도시.
急流처럼 참혹하게 살고 싶었다, 우리
現在는 언제나 삶의 끝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絶壁에서 뒤 돌아보는
우리의 조용한 행적은?
 
어둠이 靜寂의 보자기를 펄럭여 세상을 덮고
온통 바람만 이삭처럼 툭툭 굴러다니는 都市에
페이지를 넘기면 막 가을이구나.
그대여, 秋收하기에 너무도 우리의 生은 이르다.
그러나 우리가 寂寞으로 廢墟가 된 뜨락에 부끄럽게 설 때
오, 그래도 당당하게 드러나는
몇 움큼 퇴비로 변한 우리들의 사랑
가자, 얼굴은 감춘 그대여
個人으로 살기에는 너무도 힘겨운 世上
함께 가자, 어디에든 노을은 피고 바람 속에서 새벽은 오는 것
이제는 일생을 걸어야 할 때, 지친 하루를 파묻고 일어서면
캄캄한 어느 골목에선가 휘파람처럼 暴風처럼
아아, 화강암 같은 時間의 호각 소리가 우릴 부르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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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아이는 살았을 때 한 가지 꿈이 있었다.
아무도 그 꿈을 몰랐다.
 
죽을 때 그는 뜬 눈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별이 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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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 희망에 지칠때까지

사실 이번 휴가의 목적은 있다. 그것을 나는 편의상 '희망' 이라고
부를 것이다. 희망이란 말 그대로 욕망에 대한 그리움이 아닌가.
나는 모든 것이 권태롭다.
차라리 나는 내가 철저히 파멸하고 망가져 버리는 상태까지 가고
싶었다. 나는 어떤 시에선가 불행하다고 적었다. 일생 몫의 경험을
다했다고. 도대체 무엇이 더 남아있단 말인가. 누군가 내 정신을
들여다보면 경악할 것이다. 사막이나 황무지, 그 가운데 띄엄띄엄
놓여있는 물구덩이, 그렇다. 그 물구덩이는 어디에서 왔을까. 내가
아직 죽음쪽으로 가지 않고 죽은 듯이 살아있는 이유를 그 물구덩
이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쨋든 희망을 위하여 나는 대구행
첫 차표를 끊은 것이다.....

-기형도 산문집(짧은 여행의 기록)/도서출판 살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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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
 
햇빛은 분가루처럼 흩날리고
쉽사리 키가 변하는 그림자들은
한 장 熱風에 말려 둥글게 휘어지는구나
아무 때나 손을 흔드는
미루나무 얕은 그늘 속을 첨벙이며
2時着 시외버스도 떠난 지 오래인데
아까부터 서울집 툇마루에 앉은 여자
외상값처럼 밀려드는 대낮
신작로 위에는 흙먼지, 더러운 비닐들
빈 들판에 꽂혀 있는 저 희미한 연기들은
어느 쓸쓸한 풀잎의 자손들일까
밤마다 숱한 나무젓가락들은 두 쪽으로 갈라지고
사내들은 화투패마냥 모여들어 또 그렇게
어디론가 뿔뿔이 흩어져간다
여자가 속옷을 헹구는 시냇가엔
하룻밤새 없어져버린 풀꽃들
다시 흘러들어온 것들의 人事
흐린 알전구 아래 엉망으로 취한 군인은
몇 해 전 누이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고, 여자는
자신의 생을 계산하지 못한다.
몇 번인가 아이를 지울 때 그랬듯이
습관적으로 주르르 눈물을 흘릴 뿐
끌어안은 무릎 사이에서
추억은 내용물 없이 떠오르고
小邑은 무서우리만치 고요하다, 누구일까
세숫대야 속에 삶은 달걀처럼 잠긴 얼굴은
봄날이 가면 그뿐
宿醉는 몇 장 紙錢속에서 구겨지는데
몇 개의 언덕을 넘어야 저 흙먼지들은
굳은 땅 속으로 하나둘 섞여들는지

시집: 입속의 검은 잎/문학과 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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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집앞

그날 마구 비틀거리는 겨울이었네
우리는 섞여 있었네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었지만
너무도 가까운 거리가 나를 안심시켰네
나 그 술집 잊으려네
기억이 오면 도망치려네
사내들은 있는 힘을 다해 취했네
나의 눈빛 지푸라기처럼 쏟아졌네
어떤 고함소리도 내 마음 치지 못했네
이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네
모든 추억은 쉴 곳을 잃었네
나 그 술집에서 흐느꼈네
그날 마구 취한 겨울이었네
그때 우리는 섞여있었네
사내들은 남은 힘을 붙들고 비틀거렸네
나 못생긴 입술을 가졌네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었지만
벗어둔 외투곁에서 나 흐느꼈네
어떤 조롱도 무거운 마음 일으키지 못했네
나 그 술집 잊으려네
이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네
그토록 좁은 곳에서 나 내 사랑 잃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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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속의 검은 잎>에서 가장 좋아하는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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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거장에서의 충고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마른 나무에서 연거푸 물방울이 떨어지고
나는 천천히 노트를 덮는다.
저녁의 정거장에 검은 구름은 멎는다.
그러나 추억은 황량하다, 군데군데 쓰러져 있던
개들은 황혼이면 처량한 눈을 껌벅일 것이다.
물방울은 손등 위를 굴러다닌다, 나는 기우뚱
망각을 본다, 어쩌다가 집을 떠나왔던가
그것으로 흘러가는 길은 이미 지상에 없으니
추억이 덜 깬 개들은 내 딱딱한 손을 깨물것이다.
구름은 나부낀다. 얼마나 느린 속도로 사람들이 죽어갔는지
얼마나 많은 나뭇잎들이 그 좁고 어두운 입구로 들이닥쳤는지
내 노트는 알지 못한다. 그 동안 의심 많은 길들은
끝없이 갈라졌으니 혀는 흉기처럼 단단한다.
물방울이여, 나그네의 말을 귀담아들어선 안 된다.
주저앉으면 그뿐, 어떤 구름이 비가 되는지 알게 되리
그렇다면 나는 저녁의 정거장을 마음속에 옮겨놓는다.
내 희망을 감시해온 불안의 짐짝들에게 나는 쓴다.
이 누추한 육체 속에 얼마든지 머물다 가시라고
모든 길들이 흘러온다, 나는 이미 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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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作메모 (1988.11), <입 속의 검은 잎>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이 땅의 날씨가 나빴고 나는 그 날씨를 견디지 못했다. 그때도 거리는 있었고 자동차는 지나갔다. 가을에는 퇴근길에서 친구를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시를 쓰지 못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은 형식을 찾지 못한 채 대부분 공중에 흩어졌다. 적어도 내게 있어 글을 쓰지 못하는 무력감이 육체에 가장 큰 적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 때 알았다.
그 때 눈이 몹시 내렸다. 눈은 하늘 높은 곳에서 지상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러나 지상은 눈을 받아주지 않았다. 대지 위에 닿을 듯하던 눈발은 바람의 세찬 거부에 떠밀려 다시 공중으로 날아갔다. 하늘과 지상 어느 곳에서도 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처럼 쓸쓸한 밤눈들이 언젠가는 지상에 내려앉을 것임을 안다. 바람이 그치고 쩡쩡 얼었던 사나운 밤이 물러가면 눈은 또다른 세상 위에 눈물이 되어 스밀 것임을 나는 믿는다.
그때까지 어떠한 죽음도 눈에게 접근하지 못할 것이다.

詩作메모 (1988.11), <입 속의 검은 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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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어떤 `순간들`을 만난다. 그 `순간들`은 아주 낯선 것들이고
그 `낯섦`은 아주 익숙한 것들이다. 그것들은 대개 어떤 흐름의 불연속
선들이 접하는 지점에서 이루어진다. 어느 방향으로 튕겨나갈지 모르
는, 불안과 가능성의 세계가 그때 뛰어들어온다. 그 `순간들`은 위험하
고 동시에 위대하다. 위험하기 때문에 감각들의 심판을 받으며 위대하
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내 책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졌다.
이 책에 씌어진 부분과 씌어지지 않은 부분이 그것이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부분은 바로 이 두번째 부분이다. [.....]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말할 수 없는 것`에 관
해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은 거의 필연적이며 이러한 불행한 쾌락들이
끊임없이 시를 괴롭힌다.
 
 

<어느 푸른 저녁> 의 시작 메모,[문학사상],1985년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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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 망
 

이젠 아무런 일도 일어날 수 없으리라
언제부턴가 너를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흐른다
이젠 아무런 일도 일어날 수 없으리라

그러나
언제부턴가 아무 때나 나는 눈물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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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록 中에서
1982. 8. 27
제대병. 나는 비로소 제대하여 민간인(民間人)으로 복귀하였다.
결론적으로 이렇게 비참한 기분은 내 일생 몇 번 되지 않는 독특한 감동으로 기억되리라.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추억들. 또 한 보병 제 51사단 포병연대 예민과원들(예민과장 최용달 휘하 부사수 김기홍, 고영호 이병 등)에 대한 나의 심려 역시. 그러나 참아내리라. 시련이다. 그것은 너희들 일생을 좌우하는 것들, 중의 하나, 즉 프론티어리즘(Frontierism)으로 작용할 것이다. 해제증을 받아들고 위병소를 내려오다 부대 진입로 앞에 앉아 허리를 꺾고 약간 눈물을 흘렸다.
이제 안녕히. 나의 성숙에 또 하나 자양분으로 쌓여 있을 군대생활이여. 떠남이란 것이 허무하면서 또한 아름다움으로 기억되리라는 것은 속박에서 탈출이 빚어내는 암울한 자유 때문일 것이다. '나는 마치 새장에 오랫동안 갇혀 있었던 새와 같다. 어느날 주인집 꼬마 소녀가 장난삼아(오! 운명이란 것이란) 새장 문을 열고 나는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
날아야지. 오, 아뿔사. 이미 나는 날으는 법을 잃어버린 새였다.' 혹은 '어쩌면 미국 남부 켄터키주쯤의 농장에서 노예로 있는 검둥이. 드디어 계약이 끝나고 사슬을 풀고 목책을 지나 광활한 평원을 바라볼 때 문득 뒤돌아 본 철문 닫히는 소리와 그 은은하고 쓸쓸한 석양 그 막막한 자유!'- 부대를 나와 '태양'다방에 들렀다. 계급장과 부대 마크는 위병소에서 떼어버리고, [제대병]이란 시 한 편 완성. 오후에 양석이 이병과 함께 제대기념 환송회를 '샘물' 술집에서 가졌다.
기쁜 일은 장장19명이 나와 주었다. (훗날의 기쁨을 확인하기 위해 기록: 나. 양석이, 윤여백, 고영호, 김기홍, 백종화, 엄윤명, 남건현 하사, 박재옥 병장, 최종진 일병, 인사과 이희정, 박병철, 방동수, 원호승, 정작과 서호석, 김민호, 562BN 백승오, 강동기, 김신철).
나는 좀 과음(소주 1병)했고 다소 감상적이었다. 그들에게 마지막 유언(?) 시간때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군(軍)에서의 인내심이란 개성이나 자존심의 붕괴과정을 내면적으로 다스리는 힘이 아니라 자기자신이 싸워 이겨야 할 그 긴 타율적 시간과의 지리한 싸움에서 극복의지'라고...... 허망하였다. 그리고 나 또한 그 허망한 비참성이 단순히 내 젊음의 한 토막을 호계동 부대에 끊어주고 나온 것에 기인하는 것이 아님을 명백히 알고 있다.
단지 나는 이러한 비참성이 '잠재적 기쁨의 자유'가 스스로 '슬픔이란 감동의 굴레'를 쓰고 미화하는 사치품이 아니기를 논리적으로 되묻는 자세만을 생각하였다. 떠남이 허망할진대 만남 또한 허망하다는 단세포적 논리는 지극히 염세주의적인 황폐한 것이라고 되묻는 자세만을 생각하였다. 건강하고 생산적인 마주침. 먼 훗날 다시 내부에서 희미한 윤곽으로만 정리될 제대 유감(有感)을 감상적이지만 솔직하게 기록해 본다.
*이 글은 1981년부터 1982년까지 쓴 일기에서 추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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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는 죽었다. 기형도는 시인이다.기형도가
묻혔다.기형도를 땅속 깊이 묻었다.
곧 많은 열매가 맺히리라. 기형도는 땅에 떨어졌고
묻혔고,썩었다. 그첫열매의 얼굴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기형도는 자지가 있었다.
기형도의 자지는 내 자지다. 자지가썩었다.
어머니말고 기형도 자지를 본 여자가 보고싶다.
그런 여자가 있다며 그 여자가 달고 있는 자지 반대도
썩을 것이다. 기형도가 벌떡 일어나 걸어다닌다.
문학이 어떻고 시가 뭐고 하고 싶다고
하다가 한 많은 이 세상을 부르고 있다.
기형도가 이닌 다른 모든 사람들이 묻힌다.
터질 듯한 유방과 엉덩이가 찢어질 듯 발기한
자지가 묻힌다. 더럽고 또 더럽고 세 번 더러운 서울이
내 고향 경기도 안성의 한 구릉에 묻힌다.
품페이처럼 베수비오스 화산처럼.
기형도가 멋있다.
기형도를 제외한 그 모든 놈들은 다
나쁜 놈이다.기형도가 제일 착하다.
조금은 착한 나는 또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고 나는 싼다.
이자지 반대 같은 세상에 기형도가 찍 싸진다. 기형도가
내 자지 속에서 나와 자지 반대의
그 어떤부드러운 곳으로
쏙 들어간다,기형도가 잘 죽었다

* 기형도가 이시대에 살아있다면 시인 기형도는 어떤 시를 쓸까 생각합니다
그의 시가 그로테스크하면서 무언가 사람을 쏙 빠지게하고 어두운 내면 그리고 암울한 시대를 살면서 꼿꼿하게 자신의 목소리로 항변한 젊은 나이에 요절한 시인...
제가 올린 위 시는 처음 읽을땐 참으로 당혹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기형도를 사랑하는 여러분은 김영승이 말하는 남근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잘 아시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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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
1960. 2월 16일 경기도 옹진군 연평도에서 3남 4녀중 막내로 출생.
1965. 부친이 서해안 간척사업에 실패, 유랑하다가 경기도 시흥군 소하리에 정착 '85년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인 "안개"는 이 마을이 배경이 된다.
1967. 시흥국민학교에 입학.
1969. 부친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병석에 눕다. 가계가 힘들어짐.
1975. 당시 고등하교 2학년이던 셋째 누이가 불의의 사고로 죽음. 이 사건이 깊은 상흔을 남기다.
1979. 신림중학교을 거쳐 중앙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 연세대학교 정법대 정법계열 입학, 교내 문학동아리 '연세문학회'에 입회, 본격적인 문학수업 시작.
1980. 대학문학상인 박영준 문학상(소설부문)에 당선없는 가작으로 입선('영하의 바람').
1981. 방위병으로 입대, 복무중 안양의 문학동인인 '수리'에 참여. 동인지에 '사강리'등 발표, 시작에 몰두.
1982. 6월 전역후 다수의 작품을 쓰며, 대학문학상인 윤동주문학상(시부문)에 당선('식목제').
1984. 10월 중앙일보사에 입사.
1985.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안개')되어 문예지에 시를 발표하기 시작. 2월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신문사 수습을 거쳐 정치부에 배속.
1986. 정치부에서 문화부로 옮김. 지속적으로 작품을 발표 주목을 받음.
1988. 문화부에서 편집부로 옮김. 여행등을 하며 많은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
1989. 가을에 시집출간을 위해 준비하다 3월 7일 새벽, 종로의 한 극장 안에서 숨진 채 발견. 사인은 뇌졸중 만 29세, 독신. 시작메모로 채워진 푸른 노트, 이국에서 온 몇통의 편지, 꼼꼼히 줄쳐 읽던 몇 권의 책과 소화제 알약이 든 가방을 가지고 있었음. 경기도 안성 소재 천주교 수원교구 묘지에 묻힘. 5월 유고시집 '입속의 검은 잎'이 발간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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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5월 유고시집 '입속의 검은 잎'(문학과지성사)
1990년 3월 산문집 '짧은 여행의 기록'(살림출판사)
1994년 2월 추모문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솔출판사)
1999년 3월 전집 '기형도 전집'(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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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한 시대의 절망
- 기형도의 시세계

李 明 元

하나. 한 권의 시집을 바라본다. 시집의 장정은 때가 타고 닳아 있어, 그 위에 그려진 시인의 컷 그림이 조야해 보인다. 그 시선(그림)은 어딘가(내부?)를 향해 있고, 턱 밑을 가볍게 스쳐 한 무더기 선을 이룬다. 그 선의 흐름을 따라, 주의깊게 시선을 아래로 응시하다 보면, 기형도라는 이름이 드러난다. 그 밑에 알아볼 수 없는 글씨와 89라고 쓰여 있는, 아마도 컷 그림을 그린 사람의 싸인인듯한 글씨가 보인다. 나는 시집의 표지를 향상 그렇듯 들추고, 표지 왼쪽에 뭐라고 쓰여진 글들을 바라본다. "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안개」가 당선되어 문단에 등장한 그는 이후 독창적이면서 강한 개성의 시들을 발표했으나 89년 3월 아까운 나이에 타계했다." 나는 언제나 여기서 멈칫한다. 그는 서른을 채 못 채우고 삶을 마감했다(혹은 완성했다). 그가 시단에서 활동한, 시간적으로는 4년이 조금 넘고, 양적으로는 시집 한 권 분량에 불과한 삶 속에 "독창적이면서도 강한 개성"이란 말을 함부로 붙일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나는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그 한 이유는 그의 시세계가 한 병든 낭만주의자(죽음을 다루는 자는 모두 낭만주의자이다!)의 무책임한 빈정거림일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가 온통 젊음을 통과했을 시대의 다른 목소리들은, 그처럼 자기 파괴적이지 않았다. 절망은 희망의 큰 힘이었고, 슬픔도 힘이 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황지우와 최승자의 몸부림은 그 끝에 희망을 상정하고 있었다).
그의 말대로, 나뭇잎조차 무기로 사용되는 시절에, 플라톤을 읽는 젊은이의 두려움이란, 한갓 나르시시즘에 불과한 것이엇다. 시 쓰는 후배가 기관원이었음이 밝혀지고, 감옥과 군대로 친구들이 흩어지는 목련철에 한가로이 책 읽으며, 대학을 떠나기가 두럽다고 말하는 그를 당시에 누가 마음 열고 이해할 수 있었을까?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시간이 흘렀고, 그의 시집 해설자인 김현이 죽어, 겹으로 쌓인 죽음의 텍스트가 다시 나에게, 내가 그에게 삼투해 들어갔을 때, 나는 그를 보았고, 그를 통해 나를 보았다. 그러니까, 그가 뿌려 놓은 언어의 씨방에서 잎이 나고, 열매를 맺었을 때, 나는 그 열매의 속살을 파먹으며, 나의 의식을 곧추 세웠던 것이다. 그 때, 홀연 시들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고, 고통들이 찬연히 날선 살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이 글이 필요하다고 생각된 건 그 때였다. 그의 시와 맞부딪치며, 교호하며, 나는 무언가 해명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이는 젊은 나이에 죽은 한 시인에 대한 호사가의 값싼 감정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의 시에 대한 탐구란, 시인(시적 화자)을 이해하고, 나를 발견하며, 시대를 감싸안음을 의미한다. 그 성채에 들어가, 그와 한 몸을 이룰 때, 그의 시세계는 보편적 공감의 체험으로 승화될 것이다. 또한, 한 시인의 방황은, 혼돈스런 시대의 의미있는 발걸음이었음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둘-1. 기형도의 시세계는 도저한 허무주의의 세계이다. 그러나 그의 시는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허무로 읽혀져야 한다. 이는 그가 절망의 한 방식인 시를 통하여, 현실 속에 주저 앉은 것이 아니라, 그 현실을 헤매며, 끊임없는 모색을 해왔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그의 시세계가 어떠한 의미를 지니며, 현실과의 긴장관계를 통하여, 무엇을 드러내고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미리 말하자면, 나는 그의 시가 화해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고통받는 한 자아가, 환상으로의 진입을 통하여 불화를 극복하고자 하였으나, 그마저도 불가능함을 깨닫고는, 좌절하는 모습을 극명히 드러낸 데 그의 시세계의 본질이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그는 부조리한 세계에서 부조리한 방법으로 부조리를 극복하고자 한 것이다. 내가 한 치열한 영혼의 방황을 굳이 글로써 표현하고픈 욕망을 느낀 것은 여기에 연유한다.
곧, 환상과 현실의 극한에 위치하여 그것을 해체해버린 한 시인의 언어영상이란 삶을 무한대로 확장시키고, 그 삶의 장애인 억압을 해소시킴으로써 온전한 자기해방에 기여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자기해방의 한 해결방식이 죽음이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비록 시인이,
구름으로 가득찬 더러운 창문 밑에
한 사내가 쓰러져 있다, 마룻바닥 위에 -「죽은 구름」
라고 죽음을 이야기 하고 있으며,
나는 따라갈 준비가 되어있다. -「시작메모」
라는 비장한 자기확신에 젖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이 실재의 그의 죽음에 덧입혀져 한갓된 낭만적 시인의 신화로 남기를 나는 거절한다. 고통 속에서 살아남는 것은 죽기보다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도처에 깔려 있고, 자신의 몸을 누이기만 한다면, 그것으로 끝이기 때문이다. 시인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일은 삶에서 죽음을 경험하는 것이지, 죽음을 통하여 삶을 확장하는 것은 아니다. 시인은 존재의 한계에 직면해서 존재를 구현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언어의 한계에 직면해서 언어를 해방시킨다. 이러한 자리에 우리는 프랑소아 비용, 보들레르를 놓아보면, 그 의미를 쉽게 알 수 있다.
하여 시인의 죽음을 시의 이해를 위한 손쉬운 입구로 생각하는 것은, 낭만주의의 제사에 한 시인을 제물로 바치는 데에는 도움이 될지언정 올바른 시의 이해에는 걸림돌로 작용할 요인이 많다.
지금까지 기형도 시에 대한 분석은, 그의 유년기의 가난, 아버지의 죽음, 청년기의 이별 등의 방향에서 상실감에 대한 분석으로 이어져 왔다. 거기에 그의 시적 이미지의 건조성의 문제, 낙원상실 모티브의 분석 등의 작업이 이어졌다.
이러한 작업들은 기형도의 시세계를 정신분석으로 환원하거나, 기형도 시의 특수성을 내용-형식의 종합화로 총괄하지 않는 일면적인 해명에 그쳤다고 생각된다. 거기에 시인의 죽음이란 감정적 프리미엄이 붙어 객관적 거리를 흔들어버린 경우도 발견되곤 한다.
이 글을 통하여 그러한 문제점을 보충하고, 그의 시세계가 당대적 현실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현재적 의미에서도 중요성을 띤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면, 이 글의 목적은 이루어진 것이다.
둘-2. 저녁 노을이 지면
神들의 商店엔 하나 둘 불이 켜지고
농부들은 작은 당나귀들과 함께
城 안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성벽은 울창한 숲으로 된 것이어서
누구나 寺院을 통과하는 구름 혹은
조용한 공기들이 되지 않으면
한 걸음도 들어갈 수 없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그 城
어느 골동품 商人이 그 숲을 찾아와
몇 개 큰 나무들을 잘라내고 들어갔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본 것은
쓰러진 나무들뿐, 잠시 후
그는 그 공터를 떠났다
농부들은 아직도 그 평화로운 성에 살고 있다
물론 작은 그 당나귀들 역시
-「숲으로 된 성벽」전문
희망을 노래하는 기형도의 몇 안되는 시 중 하나인 이 시는 역설적이게도, 도저한 허무의 원형적 공간을 드러낸다. 그 공간을 되돌아봄 없이 들어가는 자는 환상을 보게 된다. 그 환상이란, 희망의 다른 표현이다.
숲으로 된 아름다운 성채로 들어가는 당나귀와 농부들은 되돌아 봄 없이 그저 유유히 들어가는 것이다. 그들은 마치 "조용한 공기"나 "구름"인듯한 모습으로 신들의 상점에서 나오는 불빛들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 불빛을 바라보며, 들어가는 그들이 "골동품 상인"에게 신비롭게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골동품 상인이란 이미 인생을 알 만큼 알아버린 사람으로, 그는 더 이상 조용한 공기도 사원을 통과하는 구름도 아닌 "죽은 구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자신의 몫이란 숲의 나무를 자르고, 쓰러진 나무를 볼 뿐, 도리없이 그 공터를 떠나야 함을 아는 사람이다. 그는 결코 성채에 들어가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는 끊임없이 삶을 뒤돌아보고 고통스러워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지향하는 세계는 성채의 안의 세계다. 더 정확히 말한다면, 그 성채에 들어가기 위한 현재의 행위 과정 자체에 있다. 그는 그 길을 찾으려 방황하고 길을 걷는다. 이때, 우리가 성채가 상징하는 세계를 하나의 유토피아로 보고 나무를 잘라내고 들어가려 애쓰는(그러나 결코 들어가지 못하는) 세계를 현실로 갈라놓고 현실에서 유토피아로의 열망이 이 시인의 시적 동인이라 생각하면,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정거장에서의 충고」)"라는 구절과 마찬가지로 그의 시가 희망을 위한 예비적 절망으로 보이게 된다.
그러나, 그는 결코 희망을 위해 절망을 희생시키지 않는다. 그가 바라보는 세계는 신비로운 그 성 안에 농부와 당나귀가 평화롭게 살고 있으므로 자신도 그곳에 언젠가는 편입될 것이라는 꿈을 꾸는 공간이 아니다. 오히려, 그 신비로운 성엔 결코 들어갈 수 없으리라는 절망. 그 신비로운 성마저도 허위에 불과한 것이라는 절망의 이중성이 그를 저 깊은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것이다.
신비한 성의 이미지가 유리담장으로 변주되어 나타나고 있는 「전문가」는 이러한 시인의 태도가 잘 드러나 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이사를 온다. 그는 그의 집 담장을 모두 빛나는 유리로 세운다. 놀기 좋아하는 아이들은 골목에서 놀다가 유리창을 박살내곤 하는데, 그는,
그러나 얘들아, 상관없다
유리는 또 갈아끼우면 되지
마음껏 이 골목에서 놀렴
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때, 아이들이 이상스러워함은 당연한 일이다. 몇몇 아이들은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견고한 송판으로 담을 쌓으면 어떨까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런 말을 한 아이는 "그 아름다운/ 골목에서 즉시 추방되었다"는 사실이다. 무엇이 이 아이가 ?겨나게 했을까. 그것은 "이미 늙은 (「정거장에서의 충고」)" 영혼을 아이가 가졌기 때문일까? 혹은 너무나 일찍 "존재의 비밀을 알아버(「나의 플래시 속으로 들어온 개」)"린 때문일까?
유리창은 매일같이 깨어졌다
필요한 시일이 지난 후, 동네의 모든 아이들이
충실한 그의 부하가 되었다
어느날 그가 유리담장을 떼어냈을 때, 그 골목은
가장 햇빛이 안 드는 곳임이
판명되었다, 일렬로 선 아이들은
묵묵히 벽돌을 날랐다
그 모든 질문들이 의미없음으로 나타난다. 왜냐하면, 견고한 송판으로 담장을 쌓기 원하던 아이는 현실-유리가 깨지는-이 두려워 그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두려움을 누르며, 혹은 쾌활하게 유리담장 속의 즐거움을 즐기던 아이들은 이제 더욱 어두운 현실에 직면한다. 그들이 꿈꾸는 세계-한없는 놀이의 즐거움, 욕망의 경쾌한 발산, 정신적 연대감-는 결국 충실한 부하로 영락하기 전의 일시적 만족에 불과했다. 오히려, 삶은 그들의 꿈조차도 억압하는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인류는 환상의 낯설음에 당황해 왔다. 그 낯설음이란, 환상이 절망적 현실의 출구로 작용했을 때, 처음 보는 빛의 눈부심이다. 그 강렬한 빛에 한 외로운 자아는 눈이 멀기도 하고(현실도피), 서서히 시력을 회복하여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기도 하며(삶의 반성), 그 빛을 상상력의 거울로 어둠 속으로 반사시키기도(현실 전복적 부정)한다.
대부분의 좋은 시인들은 두번째와 세 번째의 경우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환상이란 그것이 도피적 동굴로 화하지 않는 이상 현실의 억압에 대항할 수 있는 위대한 거부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라깡의 정신분석학은 이러한 개념을 상징계와 상상계의 이분화로 설명한다. 엄밀히 말해 이러한 이분화는 그 사이를 가로질러 흐르고 있는 예외적 존재(시인)를 완벽히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개념이 중요성을 띠는 것은 환상이 결코 도피의 공간만이 아닌 저항의 공간이란 사실을 밝혀주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환상이란 현실원리에 고통받던 시인으로 하여금 쾌락원리 속에서 뛰놀게 함으로써 역동적 상상력을 가능케 한다. 이 역동적 상상력이 아우슈비츠 이후에도 서정시를 가능하게 했고, 엉터리 화가에 대하여 브레히트가 경악하게 만든 것이다.
그런데, 기형도의 시세계는 현실원리와 쾌락원리의 경계가 소멸되어 있다. 그러나, 그 소멸된 경계는 정현종의 시에서와 같이 자아가 사물로 틈입하여 몸섞는 화해의 공간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빛과 어둠을 분간할 수 없는/ 꽝꽝 빛나는, 이 무서운 백야(「白夜」)"에서처럼,그 흩어짐과 소멸의 공간은 밟을수록 더욱 단단해지는 고통의 몸부림으로 드러난다. 그는 어디에고 속하지 못한다. 그것이 그를 고통스럽게 한다. 이 때, 그는 절망한다. 이러한 절망을 이해해야만 그의 병적 허무주의를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그 느낌으로, 그의 데뷔작 「안개」를 다시 읽어보면, 그를 절망케 한 환상의 공간이 "가장 햇빛이 안드"는 누추한 공간이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몇가지 사소한 사건도 있었다.
한밤중에 여직공 하나가 겁탈당했다.
기숙사와 가까운 곳이었으나 그녀의 입이 막히자
그것으로 끝이었다. 지난 겨울엔
방죽 위에서 醉客 하나가 얼어죽었다.
바로 곁을 지난 삼륜차는 그것이
쓰레기 더미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불행일 뿐 안개의 탓은 아니다.
( . . . . . . )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안개가 낀다.
안개는 그 읍의 명물이다.
누구나 조금씩은 안개의 주식을 갖고 있다.
여공들의 얼굴은 희고 아름다우며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모두들 공장으로 간다.
시인은 안개를 그 읍의 명물이라 말한다. 누구나 얼마간은 안개의 주식을 가지고 있으며, 그 안개는 아침 저녁으로(하루도 빠짐없이?) 끼는 것이기에 삶 자체의 리듬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기형도 특유의 아이러니의 세계는 겁탈당한 여직공과 방죽 위에서 얼어죽은 취객 하나를 등장시킴으로써, 안개의 세계가 결코 행복하고 화창한 기억의 꽃밭이 아님을 상기시킨다. 오히려 그 세계는 "저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 갇혀 있음을 느끼고 경악"하는 세계이다. 그 공간이 이른바 "안개의 聖域"이다. 안개는 현실의 추악한 면모를 은폐시킨다. 그러나 그 은폐된 공간 속에서 우리들은 너무나도 쉽게 자신을 긍정한다. 그 긍정은 안개가 서서히 걷히어 가고 현실이 눈 앞에 드러나게 될 때, 산산히 깨져버린다. 긍정이 사라질 때, 삶은 너무나 추악한 것이다. 환상은 깨졌고, 현실도 그를 억압한다.
기형도의 시에 나타나는 한 중요한 양상은 다른 시인들처럼 그 깨진 현실을 조립하려 하거나, 아예 조립을 포기하고 다른 세계를 만들어 거기에 안주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두 공간의 경계에서 떨림을 경험한다는 데 있다("떨리는 것은 잠과 타종 사이에서 비틀거리는 내 유약한 의식이다(「비가-2」)". 그러한 경계에서의 떨림은 모든 고정된 것을 부정한다. 모든 사물에 질서를 만들고 그 질서에 따라 모든 것을 규칙화시키는 것이 일상성의 세계요, 이 세계의 질서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그러한 질서의 세계를 통해야만, 무한히 증폭되는 개인의 욕망을 통제할 수 있고 타자(他者)의 삶이 인정될 수 있다. 그러나 질서는 개인의 욕망을 억압하기도 하고, 지배이데올로기에 봉사하기도 한다. 알뛰세르는 이를 가리켜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AIE)라 불렀고 마르쿠제는 현실원리라 불렀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시인은 이러한 지배이데올로기 더 나아가 현실원리에 저항한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저항은 모든 고정화 되고 규칙화 된 질서를 뒤집고 의심하는 시인의 태도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그 뒤집음, 의심의 순간에 시인은 하나의 시적 질서를 구축한다. 이러한 시적 질서를 과잉억압이 해소된 세계라 명명할 수 있다면, 그 세계는 현실원리의 세계에 비해 더욱 세련된 자유의 세계라고 우리가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자유의 세계도 변화를 겪지 않을 때, 하나의 억압이 된다. 기형도의 시는 이러한 끝없는 변화의 공간이다.
변화에 대한 그의 집착이 그 특유의 아이러니의 수법으로 서사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시 「나무공」은 기형도의 이러한 시적 인식을 독특하게 드러낸다. 그 내용을 무리하게 줄거리로 치환하면 이렇다. ⅰ)내가 소년에게 다가가니 소년은 나무공을 들고 서 있다. 술 취한 두 명의 노동자들은 죽지 않는 것은 죽음뿐이라고 큰 소리로 외치며 지나간다; ⅱ)소년이 나에게 그들이 왜 슬퍼하는 것이냐고 묻는다. 둥근 것은 참으로 단순한 것이라고 소년이 말한다; ⅲ)나는 대답할 수 없는 데, 왜냐하면, 어떠한 질문도 대답을 하면 또다른 질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고정시키려 덤빈다; ⅳ)아이는 자신의 꿈은 모든 판례에 따라 세상을 재는 것이라고 말한다("아저씨 만한 나이라면 이미 나는 법칙의 사제"); ⅴ)그런데 소년이 나무공을 튀기자 나무공이 가볍게 튀어오른다. 소년은 나를 쓸모없는 구름이라 말하며 재빨리 사라진다; ⅵ)나는 소년이 사라진 완전한 어둠 속에서 수 백의 율동의 가능성을 본다("견고하게 솟아오르는, 소년이 버린 저/ 나무공"); 이 시는 시적 화자가 소년의 행위를 바라보는 것으로 진행된다. 기형도 시의 특징이라 할 수 있은 이러한 객관화된 자아에 대해서는 한 평론가가 "살해욕망(잠재적 자아)과 삶의 욕망(현실적 자아)과의 대립적 현실을 엄정한 객관적 시선으로 전복시켜놓고 있는 것이"라는 옳은 지적을 한 바 있다. 그런데, 위의 지적에 더하여 강조되어야 할 것은 잠재적 자아와 현실적 자아 사이의 관계인 것이다. 대개의 시들은 현실적 자아가 잠재적 자아를 통해 이상적 자아를 향해 가는 것인 데 비해, 기형도의 시에서는 이상적 자아가 안타까운 눈으로 현실적 자아를 바라보고 있다. 그 바라봄의 행위 속에는 말로 할 수 없는 회한과 고통, 절망의 몸짓이 첨가된다.
위의 시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일단 위의 시에 등장하는 소년과 관찰자(시적 화자)인 '나'를 살펴보자. 화자에 의해 관찰되고 있는 소년을 현실적 자아에 '나'를 이상적 자아에 그리고 나무공을 잠재적 자아-시인은 대상물도 하나의 자아로 승격시키고 있다!-에 연결시켜 보자. 현실적 자아인 소년의 나무공이란 법칙의 사제가 되고 싶은 소년의 꿈을 빗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소년에게 나무공은 그저 나무공일 뿐이며 둥근 것은 단순하기만 한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가 바라는 것은 모든 판례에 따라 세상을 재는 것이다. 그러나, 술취한 노동자들이 죽지 않는 것은 죽음 뿐이라고 말하며 지나가고, 나무공은 가볍게 튀어오르고, '나'는 나무공을 바라보며 율동의 가능성을 점칠 때, 소년의 꿈은 여지없이 망가진다. 그리하여 소년은 '나'를 쓸모없는 구름 같다고 말하면서 나무공을 버리고 사라진다. 그러나, 쓸모없는 구름같다고 생각되는 구름만이 숲으로 된 성벽을 넘어 신비로운 성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앞에서 확인했다. 고정되지 않는 변화의 가능성 속에서만이 삶이 아름다울 수 있음을 우리는 앞에서 확인했다. 고정되지 않는 변화의 가능성 속에서만이 삶이 아름다울 수 있음을 우리는 이야기해왔다. 그러니까, 소년이 법칙의 사제가 되고 이 세계를 하나의 판례로서 바라보기 위해서는 나무공도 튀어오를 수 있다는 사실, 죽지 않는 것은 죽음뿐이라는 사실, 말이 되는 순간 어떠한 대답도 또다른 질문이 된다는 사실을 먼저 깨달아야 했다.
그러나, 소년은 꿈을 상실한다. 더군다나 그는 잠재적 자아를 버려둔 채로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 사라짐을 지켜보는 또 하나의 자아는 사라진 자아를 그리워한다. 안타까움으로 절망한다.
둘-3. 기형도 시에서는 이와 같이 현실과 환상의 공간 어디서도 희망은 드러나지 않는다. 회고적으로 유년시절을 바라보는 시에서도, 유년시절은 아득한 추억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삼촌의 죽음, 가난의 고통 등으로 드러난다. "아으, 칼국수처럼 풀어지는 어둠! 암흑 에서 하얗게 드러나는 집. 이 불끈거리는 예감은 무엇이었을까.(「폭풍의 언덕」)"에서의 예감이란 도저한 절망의 예감에 다름 아니다. 그 절망의 예감은 바슐라르가 존재의 우물이라 칭한 유년의 세계에서도 여지없이 고통스러운 모습으로 기억되므로, 그가 현실 속에서의 고통과 절망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분히 비관적이다. 이 비관적인 공간, 허무의 공간을 시인은 이중으로 포장하여 독자에게 내놓는다. 그 한 방법은 시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동화적이거나 몽환적인 상태로 유지시키고 그 사이에 절망을 숨기는 것이다. 여러 편의 유년 시편과 「안개」, 「전문가」, 「숲으로 된 성벽」, 「나무공」 등의 시는 이러한 방법에 의해 쓰여진 시이다. 이 시들의 공통적인 특색이라면, 시적 화자가 담담히 현상을 보여준다는 데에 있다. 그 보여줌은 상황의 고통스러움에 비해 지나치게 낙관적이기에 시를 읽는 독자는 아이러니를 체험하게 된다. 그 아이러니의 공간을 지나면, 시인은 자못 당당히 자신과 세계에 대한 부정의 몸짓을 취한다. 그것은 아마도 유년의 고통의 공간이 치유되지 못한 데서 나온 극단적 현실부정의 행위로 읽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극단적 부정의 행위 또한 화자를 통한 관찰에 의해 절망하는 한 대상을 상정하고 있다. 「장미빛 인생」, 「기억할 만한 지나침」,「鳥致院」, 「오후 4시의 희망」,「늙은 사람」등은 그러한 영역에 들어간다. 이 두 번째 영역 속에서 시인은 고통스런 현실을 목도하고 그 대상에 연민의 눈길을 보낸다. 예를 들어 「기억할 만한 지나침」을 보면, 대상과 주체 사이의 일체화된 슬픔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우연히 지금 그를 떠올리게 되었다
눈은 퍼부었고 거리는 캄캄했다
움직이지 못하는 건물들은 눈을 뒤집어쓰고
희고 거대한 서류뭉치로 변해갔다
무슨 관공서였는데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왔다
그 춥고 큰 방에서 書記는 혼자 울고 있었다!
눈은 퍼부었고 내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침묵을 달아나지 못하게 하느라 나는 거의 고통스러웠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중지시킬 수 없었다
나는 그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창밖에서 떠나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우연히 지금 그를 떠올리게 되었다
밤은 깊고 텅 빈 사무실 창밖으로 눈이 퍼붓는다
나는 그 사내를 어리석은 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억할 만한 지나침」전문 -
이 시에서 우리는 대상의 슬픔이 이제 화자 자신의 슬픔이 되었음을 발견한다. 그러하기에 그는 울고 있는 사내를 "어리석은 자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그는 울고 있는 사내의 얼굴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던 것이다. 돌연 울고 있는 사내가 자신의 모습으로 변하며, 그 울음을 그칠 수 없는 절망이 그의 가슴을 아프게 건드렸을 것이다. 그 사내가 안에서 울고 있을 때, 시에는 드러나 있지 않으나, 그 또한 밖에서 눈물 흘리고 있었을 것이다. 이는 시인의 절망이 그 내부로 향해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로도 향해 있었기 때문에, 현실을 향해 있을 뿐만 아니라 환상으로도 향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그의 세계인식은 그야말로 "입구 없는 삶이었지(「가수는 입을 다무네」)"만,
나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디서
그 일이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어디든지
가까운 지방으로 나는 가야 되는 것이다
- 「입 속의 검은 잎」
에서는 유예된 대답을 하기 위해 어디론가 떠나야 하며, "끝끝내 갈 수 없는 生의 僻地를 조용히 바라(「바람은 그대 쪽으로」)" 보아야만 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오면, 그의 세계는 부조리하다고 우리가 말할 수 있게 된다. 저 베케트나 이오네스꼬의 희곡에 나타나는 부조리성-세계에 내던져진 존재, 원인을 알 수 없는 고통, 어떤 초월자의 기다림, 그러나 이루어지지 않는 구원의 약속-이 고스란히 기형도의 시세계에 침투한다. 그의 시엔 그러므로 구원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시에 수직적 이미지가 등장하지 않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부조리한 세계에서 방황하는 한 자아의 모습. 출구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구를 찾고 구원을 기대한다. 번번히 좌절되는 희망과 솟아오르는 절망에도 삶은 아름다운 것일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어떠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삶은 역시 살만한 것이라고 믿기에. 하지만, 기형도의 시적 화자는 이를 부정한다. 그는 현실을 극한까지 몰고간다. 극한의 고통 속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눈물 흘리는 일이었을까?
ⅰ) 사방에서 인적 끊어진 꽃밭, 새끼줄 따라 뛰어가며
썩은 꽃잎들끼리 모여 울고 있을까. - 「 도시의 눈」
ⅱ)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 「 엄마 걱정」
ⅲ) 네 속을 열면 몇 번이나 얼었다 녹으면서 바람이 불 때마다
또 다른 몸짓으로 자리를 바꾸던 은실이 울고 있어 - 「 밤 눈」
ⅳ) 낡고 흰 담벼락 근처에 모여 사람들이 눈을 턴다
진눈깨비 쏟아진다, 갑자기 눈물이 흐른다. - 「 진눈깨비」
ⅴ) 그럴 수도 있다, 그는 낡아빠진 구두에 쑤셔박힌, 길쭉하고 가늘은
자신의 다리를 바라보고 동물처럼 울부짖는다. - 「 여행자」
( 윗점 - 인용자 )
건조한 이미지의 분출과 더불어 그의 시에 자주 나타나는 것이 눈물의 이미지이다. 그것은 ⅰ)과 ⅲ)에서처럼 꽃잎이나 눈까지도 눈물 흘리고 있으리라는 감정이입과, ⅱ)에서처럼 빈방에 갇힌 상태에서 자폐성을 띠기도 하고, 방을 나와 거리를 나서면, ⅳ)와 ⅴ)에서와 같이 갑작스런 눈물과 드디어는 동물처럼 울부짖음으로 발전한다. 그의 시 도처에서 나타나는 빗방울, 구름, 바람의 이미지는 수직적 상승이 불가능한 부조리의 세계 속에서 출구를 찾으려는 시인의 열망이 안타깝게 드러난 것이다. 시인의 눈물은 바람을 타고 하늘로 오른다. 거기서 쓸모없는 구름이나 검은 구름을 이루어 다시 빗방울 되어 내리는데, 이 빗방울을 바라보며, 시인은 그를 절망케 한 유년시절을 회고하거나 잃어버린 사랑을 추억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사물의 유전이 초월적이거나, 수직적일 수 없는 이유는 문제가 미해결인 채로 상황만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서 시인이 만물유전을 노래하고 있는 「포도밭 묘지」에서의 생명의 유통이 어디에서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묘지(죽음) 위에서이다 : "비로소 너희가 전생애의 쾌락을 슬픔에 걸 듯이 믿음은 不在속에서 싹트고 다시 그 믿음은 부재의 씨방 속으로 들어가 영원히 쉴 것이니, 골짜기는 정적에 싸이고 우리가 그 정적을 사모하듯이 어찌 비밀을 숭배하는 무리가 많지 않으랴)「포도밭 묘지. 2」)." 죽음의 틀 안에서 모든 것이 소통하고 회전하고 있는 세계의 한 가운데에 그는 "비밀"을 숨기어 놓았다. 그 비밀스런 공간은 같은 시에서 "그 놀라운 보편적 진실"로 표현되어 있다. 아포리즘적인 문체로 이루어진 그 놀라운 보편적 진실은 시를 읽어보면 다음의 두 가지이다 : ⅰ) 어떠한 슬픔도 그 끝에 이르면 짖?은 변증의 쾌락으로 치우친다 ; ⅱ) 햇빛은 또 다른 고통을 위하여 빛나는 나무의 알을 잉태한다 ; 여기서 우리는 시인의 비극적 삶의 방식을 체험한다. 그 비극성이란 슬픔이 짖?은 변증의 쾌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태양빛을 포함한 모든 자연사가 생명의 잉태에 관계하는 데에 연유한다 (엄숙성 속의 치열함!). 동서양을 막론하고 생명의 탄생이란 고귀하고 엄숙한 일이다. 그러한 엄숙성은 한 종(種)의 계속적인 생존을 위하여 에너지를 소모한 한 개체로부터 새로운 개체기 숨통을 트는 작업이다. 생명의 탄생은 마치 죽음이 인간에게 극도의 공포를 느끼게 하듯이, 우리에게 경이로움을 느끼게한다. 그 두려움의 공간, 떨림의 가쁜 숨을 시인은 경박한 변증의 쾌락 속에서 경험하길 원치 않는다. 진정으로 시인이 바라는 꿈의 세계는, 단순한 안락의 공간이 아니라, 자신에게 다가오는 고통의 모든 순간을 온 정신으로 견디는 팽팽한 긴장의 세계다. 그 견딤의 과정이 비극적인 것은 그 끝에 고통이 있고, 그 고통은 시인 자신이 원했던 것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그것은 시인으로 하여금 " 오오, 모순이여, 오르기 위하여 떨어지는 그대 (「이 겨울의 어두운 창문」)"라고 외치게 한다. 이 탄식의 목소리는 무엇 때문인가?
나는 앞에서 기형도 시의 화자가 현실과 이상의 경계에서 떨림을 경험했다고 주장했다. 그러한 떨림은 현실이 고통스러울 때 하나의 유토피아를 상정하고 거기에 집착하는 평범한 시인들의 의식과는 달리, 기형도의 이상세계 혹은 환상세계는 현실의 음험함과 고통스러움이 고스란히 동거하고 있는 형태를 띠고 있기에 시인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방황할 수 밖에 없음을 나타낸 것이다. 이 방황과 절망의 기록이 그의 시 전체를 관류하고 있는 지배적인 정신이다. 이 지배적 정신세계에서 그렇다면 시인은 그의 절망과 유년의 고통에서 유래한 공격성을 어떻게 해소시켰을까? 나는 그 공격성이 자신의 내부로 향했다고 생각한다. 만일 기형도가 동시대의 다른 시인들처럼 뚜렷한 공격의 대상이 존재하였다면 그토록 처절한 방황의 거리를 헤매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대상을 끝끝내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여, 그의 세계는 일종의 부조리의 세계로 변해갔던 것이다. 부조리한 세계에서는 부조리한 삶이 정상적인 것이다. 서구의 부조리극에서는 흔히 자아가 이분된다. 즉 갈등하는 두 자아가 한몸을 이룬다. 기형도의 시에서도 역시 우리가 앞에서 현실적 자아와 잠재적 자아라고 이름붙인 분열된 자아가 등장한다. 이 분열된 자아들은 서로 갈등을 겪고, 그 갈 등의 와중에서 잠재적 자아가 현실적 자아를 살해하거나 그 반대의 경우가 나타난다. 기형도 시에 자주 나타나는 공격성, 예를 들어 「늙은 사람」에서 공원 등나무 벤취에 웅크리고 있는 늙은이를 시적 화자가 경멸하는 것이나, 「여행자」에서 "그는 말을 듣지 않는 자신의 육체를 침대 위에 집어 던진다"고 말하는 것은 자기 내부를 향한 공격성의 서로 다른 모습일 뿐이다. 그의 시집에 유난히 자기의 삶을 비관하고, 어린 나이에 이미 늙었음을 한탄하고,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다고 죽음을 맞아들이는 태도가 팽배해 있는 것은 여기에 연유한다. 그는 쉴 새 없이 죽음과 고통을 이야기함으로써 자신의 죽음과 고통을 해소하고자 한 것이다. 다분히 메저키즘적인 그의 발언 속에서 죽음의 의식을 치뤄간 것이다. 그는 죽음에 대한 그의 발언 속에서 죽음의 자의식에서 벗어나고자 하였으나 그것이 잠재의식으로 그를 "끝까지 괴롭혔을 것이(「죽은 구름」)"다. 그는 자신이 고안한 웅덩이에 빠져, 자신의 꼬리를 물고 영원회귀하는 뱀(Uroboros)이 되고자 하다가, 추락해버렸다.
셋-1. 그렇다면, 그의 영락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허무의 끝간 데까지 떨어져, 심연의 고통을 맛보고 다시 떠올랐다면, 그의 시세계는 새로운 트임을 이루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시는 결국, "가장 낮은 음계로 가라앉아 다시는 악보 위로 떠오르지 않았(「삼촌의 죽음」)다. 왜 그랬을까? 나는 그가 말의 엄밀한 의미에서 현실주의자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낭만적 열정을 지닌 보기드문 허무주의자이기도 하지만 결코 기적을 믿지 않는 시인이다. 시인의 시는 그러하기에 유토피아를 궁리하지도 않고, 지나간 시간의 궤적을 애써 품안에 끌어안으며 회고적 시선으로 잠기지 않는 것이다. 과거의 삶이 고통으로 점철된 것이었고 현재의 삶 역시 이에서 더 나아간 것이 아니라고 했을 때, 일반적인 시인이라면, 안락하고 편안한 공간으로 스며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형도는 안락과 평화의 공간에 스며들기보다는 자신이 위치해 있는 현실을 탐사하고 헤매였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그 탐사와 헤맴의 과정이 철저하게 내부지향적이라는 사실이다.
나무의자 밑에는 버려진 책들이 가득하였다
은백양의 숲은 깊고 아름다왔지만
그곳에서는 나뭇잎조차 무기로 사용되었다
그 아름다운 숲에 이르면 청년들은 각오한 듯
눈을 감고 지나갔다, 돌층계 위에서
나는 플라톤을 읽었다, 그 때마다 총성이 울렸다
목련철이 오면 친구들은 감옥과 군대로 흩어졌고
시를 쓰던 후배는 자신이 기관원이라고 털어놓았다
존경하는 교수가 있었으나 그분은 원체 말이 없었다
몇 번의 겨울이 지나자 나는 외토리가 되었다
그리고 졸업이었다,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웠다
- 「대학 시절」전문
"나는 외토리"라는 의식이 기형도의 시세계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그 외토리 의식이 그로 하여금 내면을 지향하게 하고 부조리한 현실을 관망하고 저주하게 한다. 그러나, 그가 현실주의자일 수 있는 것은, 동시대의 동료시인들이 현실에 직접 맞서거나 뛰어들어가 이를테면 위의 시에서처럼 나뭇잎으로 무기를 만들 수 있었다면, 그는 거기서 물러나 현실을 조망하고 가늠했다는 데에 있다. 물론 우리는 식민지 시대에는 민족해방문학이 당위였다는 조동일의 논법을 빌려, 80년대는 민중문학이, 현실참여 문학이 당위였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한 논리의 연장에서 기형도의 시를 도피적 애상주의로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논의가 시에 대한 바람직한 이해의 수준에 도달했다고 보기 어려운 것은 시가 가지고 있는 넓고도 깊은 상징의 숲을 바라보지 못하고 개개의 나무에 너무 쉽게 동화되었기 때문이다. 시의 상징은 현실의 고통을 가로지른다. 상징은 시가 씌어지기 힘든 시대에 자주 등장한다. 개인의 절망이 극에 달하거나 집단의 고통이 현실적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순간에는 시가 나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시쓰는 행위란 문학의 모든 행위가 그러하듯 반성적 측면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기형도 시의 상징은 좁게는 실존적 개인의 내면풍경으로부터 넓게는 한 시대의 보편적 고통의 체험까지를 동시에 아우르고 있다.
김교수님이 새로운 학설을 발표했다
소리에도 뼈가 있다는 것이다
모두 그 말을 웃어넘겼다, 몇몇 학자들은
잠시 즐거운 시간을 제공한 김교수의 유머에 감사했다
학장의 강력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교수님은 일학기 강의를 개설했다
호기심 많은 학생들이 장난삼아 신청했다
한 학기 내내 그는
모든 수업시간마다 침묵하는
무서운 고집을 보여주었다
참지 못한 학생들이, 소리의 뼈란 무엇일까
각자 일가견을 피력했다
이군은 그것이 침묵일 거라고 말했다
박군은 그것을 숨은 의미라 보았다
또 누군가는 그것의 개념은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모든 고정관념에 대한 비판에 접근하기 위하여 채택된
방법론적 비유라는 것이었다
그의 견해는 너무 난해하여 곧 묵살되었다
그러나 어쨌든
그 다음 학기부터 우리들의 귀는
모든 소리를 훨씬 더 잘 듣게 되었다
- [소리의 뼈] 전문
이 시는 기형도 시가 현실과의 관계 속에서 어떤 내포와 외연을 지니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그 외연적 의미를 추적해보면 이 시는 김교수가 소리에도 뼈가 있다고 말한 학설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반응하고 그 결과 사람들은 모든 소리들을 더 잘 듣게 되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 시를 넓은 의미에서 파악하고자 할 경우 우리는 이 시 속에서 정치적/실존적 알레고리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끝까지 침묵하고 말하지 않는 김교수의 모습에서 비극적 자유의지를, 학장의 강력한 경고와 묵살된 의견에서 억압적 정치권력을, 그러나 끝끝내 더 잘 듣게 되는 소리를 통해서는 초월에의 의지까지도 함께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형도 시의 높은 상징성은 쉽게 간과되어 왔다. 더불어 그의 시가 가지고 있는 형태파괴적 요소가 현실에 대한 저항의 "방법론적 비유"가 될 수 있음을 우리는 너무도 쉽게 잊어버렸던 것이다. 그것은 형식주의가 우리에게 경고한 의도적 오류와 감정적 오류를 우리 비평이 고스란히 행하고 있었음에 다름 아니다.
셋-2. 지금까지 우리는 기형도의 시세계가 현실과 환상 사이의 경계에서 쓰여진 글이란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한 확인은 그가 동시대의 다른 시인들처럼 현실에 쉽게 자수하거나 유토피아에로의 열망을 불태우지 않고 방법적인 글쓰기를 계속해왔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의 그러한 방법적 글쓰기가 올바른 자리매김을 받기 위해서는 그의 죽음과 그의 시세계를 직접화시켜 낭만주의적으로 승인하는 오류가 범해지지 말아야 할 것이다. 더불어 그가 현실 속에서 지탱해 간 시세계가 단순한 허무주의의 세계가 아니라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허무란 점을 확인해 둘 필요가 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나는 그의 시 세계가 단순히 유년시절의 고통을 드러낸다는식의 정신분석을 지양하고 현실과 이상의 경계에서 그가 어떠한 태도를 취해 나갔는가를 밝히려 했다.
결론적으로 기형도의 시세계는 부조리한 공간 속에서 극한적 경계를 경험한 자아의 치열한 생의 과정을 나타낸 것으로 말할 수 있다. 그러한 생의 과정은 어떠한 환상이나 몽상도 접근하지 아니하는 치열한 현실주의의 세계이다. 그 현실주의의 세계는 시인으로 하여금 현실이 결코 아름답거나 동경으로 가득찬 세계가 아님을 확인하게 한다. 그러나, 그 현실주의의 세계가 그의 절망을 가중시켰다는 사실을 상기해 본다면, 이제 그는 어디고 정착하여 몸을 쉬어야 하지 않을까?
이제 그는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시는 언제고 남아 변하지 않는 그의 존재를 구현하고 있다. 나는 문득 그가 지금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저승에서 그는 과연 행복할 것인가?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는 푸른색이다
어떤 먼지도 그것의 색깔을 바꾸지 못한다
-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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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닫힌 빈방의 체험 中에서-김현

- 살아 있으라, 누구든 살아 있으라(p.107)
어느 날 저녁, 지친 눈으로 들여다본 석간신문의 한 귀퉁이에서, 거짓말처럼, 아니 환각처럼, 읽은 짧은 기사는, [제망매가]의 슬픈 어조와는 다른 냉랭한 어조로, 한 시인의 죽음을 알게 해주었다.
이럴 수가 있나, 아니, 이건 거짓이거나 환각이라는 게 내 첫 반응이었다. 나는 그 시인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은 적이 없다.
우리의 관계는 언제나 공적이었지만, 나는 공적으로 만나는 사람좋은 그의 내부에 공격적인 허무감, 허무적 공격성이 숨겨져 있음을 그의 시를 통해 예감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죽었다. 죽음은 늙음이나 아픔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육체가 반드시 겪게 되는 한 현상이다.
한 현상이라기보다는, 실존의 범주이다. 죽음은 그가 앗아간 사람의 육체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의 눈에서 그의 육체를 제거하여 그것을 다시 못보게 하는 행위이다.
그의 육체는 그의 육체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환영처럼, 그림자처럼 존재한다. 실제로 없다는 점에서, 그의 육체는 부재이지만, 머릿속에 살아 있다는 의미에서, 그의 육체는 현존이다.
말장난 같지만, 죽은 사람의 육체는 부재하는 현존이며, 현존하는 부재이다. 그러나 그의 육체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다 사라져 없어져버릴 때, 죽은 사람은 다시 죽는다.
그의 사진을 보거나, 그의 초상을 보고서도, 그가 누구인지를 기억해내는 사람이 하나도 없게 될 때, 무서워라, 그때에 그는 정말로 없음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 없음의 세계에서 그는 결코 다시 살아날 수 없다.
그 완전한 사라짐이 사실은 세계를 지탱한 힘일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무서워서, 그것이 겁나서, 사람들은 그를 영구히 기억해줄 방도를 찾는다. 제일 쉬운 방도는, 기를 기념하여 제사를 지내줄 사람을 만들어놓은 것일 것이다…
그러나 기형도에게는 아이들이 없다. 그는 혼자 죽었다. 그의 육체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살아 있을때, 그가 완전히 사라짐 속에 잠기는 것을 막이야 한다. 어쩌면, 그를 완전히 사라지게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지도 모른다.
완전히 사라지면, 모든 역사적 소추에서 자유스러울 것이고, 그는 우연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그가 남긴 모든 글들을, 카프카가 바란 것처럼, 다 태워 없애야 한다.
그의 글뿐만 아니라, 그 글들이 실린 모든 지면을 없애야 한다. 그것을 바랄 수는 있으나, 이룰수는 없는 꿈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그를 살리는 것이 났다.
그의 시들을 접근하기 쉬운곳에 모아놓고, 그래서 그것을 읽고 그를 기억하게 한다면, 그의 육체는 사라졌어도, 그는 죽지 않을 수 있다. 그의 시가 충격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는 빨리 되살아나, 그의 육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그의 육체를 상상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나는 그의 시들을 모아, 그의 시들의 방향으로 불을 지핀다. 향이 타는 냄새가 난다. 죽은 자를 진혼하는 향내 속에서 그의 육체가 나타난다.
나는 샤만이다…… 아니다, 나는 그에 대해 좋은 추억을 갖고 있는, 갖고 있으려 하는 한 사람의 문학비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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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는 1960년 경기도 연평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1989년 3월 7일 새별 3시 30분경, 종로 2가 한 극장 안에서 죽었다. 그의 가장 좋은 선배중의 하나였던 김훈은 “나는 기형도가 죽은 새벽의 심야극장 - 그 비인간화된 캄캄한 도시공간을 생각하고 있다.
그가 선택한(과연 그가 선택한 것일까. 차라리 운명이 그를 선택하지 않았을까 - 인용자) 죽음의 장소는 나를 늘 진저리 치게 만든다. 앞으로도 오랬동안 그러할 것이다.”라고 말한 뒤에 드의 넋을 가라앉히기 위해, 원효가 사복의 어머니를 위해 부른 게송의 어조로, 침통하게 당부하고 있다. :
"가거라, 그리고 다시는 생사를 거듭하지 말아라. 인간으로도 축생으로도 다시는 삶을 받지 말아라. 석어서 공이 되거라. 네가 간 그곳은 어떠냐…… 누런 해가 뜨고 흰 달이 뜨더냐.”
김훈의 어조를 가슴에 담고, 기형도의 시를 다시 읽어보면, 그는 젊어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시인이다.
그러나 나는 김훈처럼 모질지가 못해, 두리뭉수리하게, 오마르카이얌의 [루바이아트]의 시 하나를 빌어, 그의 넋을 달래려 한다.
우리 모두 오고가는 이 세상은
시작도 끝도 본시 없는 법!
묻는들 어느 누가 대답할 수 있으리오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를! (김병옥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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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만한 질주, 혹은 용기- 장정일

1
생에 대한 소박하고 명징한 낙관을 지니고 있었던 지중해의 철학자 쟝 그르니에는 자신의 낙관이 "죽은 자에 대한 살아 있는자의 지배, 사회적인 것에 대한 개인적인 것, 과거와 미래에 대한 현재의 지배" ({인간에 관하여}, 청하, 1990, 175쪽) 라는 지중해 정신에 의해 제공된다고 고백하면서, 놀랍게도 그의 나이 53세 때 "내 생애의 많은 페이지가 거의 백지인 것이다"(181쪽)라고 썼다.
반면 오늘 우리가 기억해보고자 하는 기형도는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지성 사,1989,25쪽. 이하 쪽수만 표시)와 같은 삶에 대한 무수한 부정적 전언들로 우리를 놀라게 한다. 대개의 시인들은 절망과 비극 을 노래할 때라도, 자신의 절망과 비극을 희석시키거나 중단시킬 희망의 영상을 함께 제시하기 마련이다.
흔히 우리가 전망이라 고 말하는 것들을. 그런데 기형도는 낙관이나 희망과 같은 향일성 가치에 대해 너무나 엄격한 태도를 취했다.
그의 유고시집을 읽으며 우리는 몇 번씩이나 본문 읽기를 중단하고 시집의 표지 앞날개에 적힌 그의 약력을 되읽게 된다. 대체 얼마만한 연령을 살았기에 그는 이렇듯 상처입은 시집을 남길 수 있었을까. "도둑질말고는 다 해보았답니다"(18쪽)라 거나 "나는 기적을 믿지 않는다"(25쪽), "죽은 자들에게 나를 빌려주고 싶을 때가 있다"(38쪽) 등등 시구들 은 그가 언제 태어났고, 몇 살 때부터 (공식적인) 시쓰기를 시작했으며, 유고시집이 모두 씌여진 때는 또 언제인지 퍽 궁금하게 만든다.
그리고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 "나는 곧 무너질 것들만 그리워했다"(41쪽)거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 어"(49쪽), "나의 노래 죄다 비극이었"(50쪽)다는 구절을 대하곤 시집의 앞날개로 다시 돌아가 스물 다섯에 등단, 스물 아홉에 더 이상 씌어지기를 거부한 그토록 짧은 약력을 읽는다. 그런 이상한 독서를 한 독자는 그가 쓴 '검은 페이지 '에 진저리치면서 가슴속 한편으로 이런 의문을 키우게 된다.
스물아홉해의 생애는 어쩌면, 도둑질말고는 다 해보았다고 쓰기에 는 너무 과장된 연륜이 아닌가? 자연이 우리에게 명한 자기 보존이라는 대전제에 대하여 너무나 극렬하게 기형도의 시가 저항하기 때문에 독자의 그런 의심은 수긍될 만한 것이다. 하여, 자라나는 의혹을 지우기 위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한 편의 독일 가곡 으로부터 도움받기를 원한다.
 
바람 부는 밤 말을 타고 달리는 아버지와 아들
그는 그 아들 품속에 안고 춥지 않도록 감싸줬네.
아가 무엇 그리 무서우냐?
오 아버지 마왕을 봐요?금관 쓰고 망토 휘둘며?
아아 그건 안개란다.
괴테의 시에다 슈베르트가 곡을 붙인 [마왕]은 이렇게 시작되며, 어린 아들이 볼 수 있는 마왕을 아버지가 보지 못하는 아이러 니는 시종 이 노래의 긴장을 고조시키며 비극적인 결말로 치닫는다.

마왕은 아이의 귀에 속삭인다.
귀여운 아가 함께 가련!
좋은 장난감 널 기다리고 수많은 꽃들 널 반기리.
아름다운 옷들 쌓여 있네.
마왕의 속삭임을 듣고 어린 아들은 한번 더 아버지에게 구조를 요청한다. "오 나의 아버지 들어보세요. 저 마왕이 내게 속삭인 말" 그러나 아버지는 어린 아들의 필사적인 구조 요청을, 어리광으로 받아들인다.
"조용히 진정해라 아가. 저 소린 바람 소리란다." 마왕은 유혹을 계속한다. '좋은 장난감'과 '아름다운 옷'보다 더 노골적인 유혹물로.

자 나와 함께 떠나가자.
너와 함께 놀아주기 위하여 나의 귀여운 딸이 기다리네.
너를 위해 춤추며 노래하리 너를 위해 춤추며 노래하리.
이제 어린 아들은 잔뜩 겁에 질렸다. "오 나의 아버지 저것 보세요. 저 마왕의 땀이 보여요?" 나이 많은 아버지는 마왕의 존재를 식별할 수 없을 만큼 무감각한 사람이다. 그는 이성복이 어느시에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고 썼을 때, 그 '아무도'의 사람이다. 늙은 아버지는 어린 아들이 세계에 대하여 느끼는 예민한 공포를 느끼지 못한다. "아가 아가 저기 저것은 늙은 수양버들이 틀림없다." 끝내 아이는 저 혼자만의 공포 속에서 죽는다. 세계와의 불화를 간직한 채.

울부짖는 아기 가슴에 안고 성급히 집에 와보니
품속에 안긴 아가 죽었네.
무서운 세계와 때묻지 않은 순결을 가진 아이의 대립. 어린아이는 마왕의 존재를 볼 수 있고 그의 유혹을 들을 수 있다. 기형 도는 [바람의 집 - 겨울 版畵 1]에 이렇게 쓴다.
내 유년 시절 바람이 문풍지를 더듬던 동지의 밤이면 어머니는 내 머리를 당신 무릎에 뉘고 무딘 칼끝으로 시퍼런 무우를 깍아 주시곤 하였다. 어머니 무서워요 저 울음 소리, 어머니조차 무서워요. 얘야, 그것은 네 속에서 울리는 소리란다.
[마왕]의 어린 아들과 같이 [바람의 집 - 겨울 版畵 1]에서의 어린 아들 역시 외부 세계에 대한 불안과 다가올 성년에 대한 공포를 느끼고 있으며, 초자연적 힘의 실체를 깨닫고 있다. 괴테의 [마왕]에서 외부 세계나 성년 세계에 대한 불안과 공포는 '좋은 장난감','아름다운 옷','귀여운 딸'과 같은 세속적 추구물로 상징되고 초자연적 힘의 실체는 바로 '죽은'이었듯이 기형 도의 시속에서도 그런 두 갈래의 두려움이 병치된다.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모두들 공장으로 간다"던 그의 등단작 [안개] 속의 한 구절은 관리사회의 냉혹함과 도시생활의 공허함을 보여주는 [전문가],[조치원], [오후 4시의 희망] 같은 시를 만들면서 기형도가 어렸을 적에 느꼈던 외부, 성년 세계에 대한 공포를 구체화하고, 그의 시에 가득한 삶에 대한 부정적 영상 은 죽음이라는 무지막지한 힘의 실체를 일찍 깨닫고 있었던 예민한 어린아이의 불안을 수식하고 있다.
[바람의 집 - 겨울 版畵 1]과 [마왕]은 어린아이의 세계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바람'이라는 자연 현상을 매개로 개진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지만, 어린 아들의 대화 상대자가 한편은 '아버지'고 다른 한편은 '어머니'라는 데서 사소한 차이를 갖는다.
그러나 그 사소한 차이는 [바람의 집 - 겨울 版畵 1]에서 인용된 위의 시구에 이어 나오는 다음의 시구에서 알게 될 것처 럼 엄청난 차이를 숨겨 가지고 있다. 기형도의 어머니는 괴테의 아버지와 같이 어린 아들의 불안과 공포에 대하여 무감각하지만 않으며, 아들의 공포와 불안을 이해한다.
그리고 그 어머니는 아버지의 무감각(?)보다 오히려 더 비극적(!)인 충고를 아들에게 한다.
네가 크면 너는 이 겨울을 그리워하기 위해 더 큰 소리로 울어야 한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자기 자식의 실패를 예견한다. 반면 세상의 모든 아버지는 자기 자식의 성공을 강요한다. 우리는 그런 차이에 모성의 원리와 부성의 원리라는 이름을 달아줄 수 있다. [바람의 집 - 겨울 版畵 1]의 어머니는 어린 아들에게 세상에 실패하면 언제든 너의 유년(/'이 겨울')으로 돌아오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러나 [마왕]의 아버지는 말을 탄 채 아들을 품에 안 고 앞으로, 앞으로 전진한다.
그 아버지는 세속에의 질주에 멀미를 느낀 아이의 불안과 공포에 무감각한 것이 아니라, 알고도 모른 체한다. 저건 '안개','바람 소리','수양버들'일 뿐이라고 시침떼며!
우리는 기형도의 시에서 '미래'가 없는 '과거-현재'와의 단속적인 왕복운동만을 보는데, 기형도에게 '미래'가 없는 까닭은 또 '과거-현재'와의 단속적인 왕복운동만 있게 된 까닭은 그의 시에 부성의 원리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시는 앞으로 전 진할 동력을 잃었다. 사실 {입 속의 검은 잎}에는 "아버지 또 어디로 도망치셨는지. [...] 아버지, 불쌍한 내 장난감 "(94쪽)과 같은 식으로 밖에는 아버지가 등장하지 않는다. 되돌아가야 할 "유년의 윗목"(127쪽)을 깨끗하게 보존하기 위해서 아버지는 "풍병"(80쪽)이 들어야 했고 [폭풍의 언덕]에서 "칼자국"같은 바람을 맞고 영영 "돌아오지 않"아야 했다.
결국 아버지란 부성의 원리가 지배하는 세계의 희생자이면서 '칼'을 가지고 싸우는 사람이다.
유년기 동안 양친과 가족에게 의존했던 아이는 자라나면서 최초의 통합으로부터 독립, 분리되어 사회와 재통합을 시도하게 된다. 그런데 재통합 과정중에 원만한 통합을 이루지 못하면 다시 최초의 통합으로 퇴각하려 한다.
이때 재통합에 실패한 아이를 사회로 내보내는 것은 부성이고, 그것을 끌어당기는 자성은 모성에서 발원한다. 그러므로 외디푸스 콤플렉스란 프로이트가 말 하는 것과 같이 아들의 어머니에 대한 심리적, 성적 고착이 아니라 사회적 재통합에 실패한 성년이 최초의 통합을 잊지 못하고 양친, 가족으로 되돌아가려는 사회적, 감정적 고착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런 드라마를 기형도와 함께 활동한 80년대 젊은 시인들의 시에서 많이 보아왔고, 그 주제에 바쳐진 평론도 있음을 기억한다. 어쨌거나 위의 문단에서 본 것과 같은 부성원리의 부재와 "그래, 고향에 가고 싶어/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렸지만/ 사과나무는 나를 사로잡았어"(920쪽)에서 간파할 수 있는 유년으로의 회귀, 모성 원리에로의 귀속이라는 특징을 기형도를 비롯한 그 또래의 젊은 시인들은 공유했다.
하지만 뒤에 설명되겠지만, 그 공유점은 너무 미미하고 기형도는 오히려 기억할 만한 괴상한 질주를 통해 한 무리의 젊은 80 년대의 시인과 상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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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특기할 만한 개성을 가졌던 시인이 요절해버렸기에, 평자들은 그가 살아 있으면서 계속 시를 썼다면 어떤 방향으로 가게 되었 을까 점쳐보고 싶은 욕망을 억제하지 못하였다. [기억할 만한 지나침]이란 시를 읽고 나서 기형도의 모든 시에 이중성이라고 불 러도 좋고 자아분열이라고 불러도 좋은 강력한 양가감정이 있다는 것을 느낀 필자에게도 갑자기 점쟁이가 되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기억할 만한 지나침]에 나오는 두 자아만을 신대 삼아 판단해보자면, 창밖의 자아가 방속으로 들어가 방 가운데서 울고 있는 자아를 껴안고 함께 운다면 김소월과 같은 초혼시가 나왔으리란 생각이 들고, 울고 있던 방안의 자아가 밖으로 뛰쳐나와 창속을 들여다보던 바깥의 자아와 합세하여 텅 빈 방을 함께 쳐다보게 될 때 기형도는 [입 속 의 검은 잎]의 세계보다 더 냉혹한 모더니스트가 되었으리란 예감이 든다.
그러나 복채를 놓아줄 시인은 더 이상 시를 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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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삶의 공간과 추억에 대한 경멸- 성석제

기형도에 관한 추억을 나열하기 위해 쓴다.
태어날 때는 누구나 벌거숭이다. 자명한 이 말도 사람에 따라 달리 해석할 수 있다. 하물며 수십 년을 물과 바람이 떠미는 대로 동가숙 서가식한 사람이라면 지나친 자국마다 무엇이 고여도 고이지 않겠는가. 기형도는 인간이었다.
따라서 누군가의 친구였고 동지였고 원수 였으며 악당, 천사, 귀엽거나 끔찍한 그 무엇이었을 수 있다. 그 동안 나는 그에 관한 것이라면, 사람들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 추억의 곳간에서 되도록이면 예쁜것을 모으려 했다. 이것을 살아남은 자의 권리라고, 상정(常情)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그는 내가 이런식으로 말하는 것을 잡담이라고 부를 것인데 자신이 이런 잡담의 대상이 되는 것을 견뎌내지 못했다. 그런 자신의 경향을 '추억에 대한 경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건 그의 사정이지 내 생각은 다른 것이다. 그의 경멸은 살아 있으면서 어쩔 수 없이 채워넣을 수밖에 없는 위장과 같은 추억에 대한 자기 판단을 드러낸 것이다. 그가 추억이라고 말할 때는 좋거나 나쁜,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가슴이 시린, 발가락이 근지러운, 머리칼이 쭈뼛하는, 흐뭇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생생한, 아예 추억하기도 싫은 추억 따위처럼 분류할 수 있는 그런것은 아닌 것 같다. 그가 이름 붙인 추억이라는 동네, 그 동네에 존재하는 제행무상에 대한 경멸이다. 나도 어떤 추억을 경멸하긴 한다. 모든 추억에 대해서 사랑한다, 경멸한다고 단언하지 않을 따름이다. 내겐 아직 더 삭여야 할 오욕과 추억이 남았기 때문이다.
나는 기형도가 살아 있는 동안, 가장 빛나고 푸른, 아니 이 말은 틀렸다, 오만과 독선의 이빨로 서로를 물어뜯을 수 있는 대학시절을 함께 보냈다. 쉽게 말해 목욕탕에 함께 갈 수 있는 사이였다. 그래서 내가 제정신으로 여기 늘어놓을 수 있는 추억담은 아주 적다.
하얀 키보드와 바다색 모니터 화면을 앞에 두고 손을 꺾으며 내가 떠올리는 것은 기형도의 수동타자기다. 우리는 대학 시절, 학교 신문에서 공모하는 무슨 문학상을 받아 타자기와 세계문학전집을 들여놓은 공통된 경험이 있다. 기형도는 나보다 먼저 상금을 타서 수동타자기와 세계문학전집을 들여놓고 배부른 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너도 상금 받으면 먼저 책하고 타자기부터 사. 눈 딱 감고."
글쎄, 나는 상을 받기도 전, 상금은 내 것이나 다름없다면서 술값으로 미리 다 써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해에 내가 받은 상금은 그가 그 전해에 받은 것의 반이었다. 가작에 해당하는 상금을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충고를 잊지는 않았다. 청계천에서 그가 산 반값으로 같은 세계문학전집을 샀고 그가 산 수동타자기의 값으로 중고 전동타자기를 샀고, 어쨌든 그 타자기와 문학전집의 덕으로 나는 다음해 그보다 조금 상금이 많은 무슨 상을 받아 술값으로 마음놓고 다 써버렸다. 그때는 상금이 내 것이나 다름없다는 흰소리 따위는 하지 않고 조용히. 그와 나 둘 중에 누가 장사를 잘 했는지는 아직 잘 모르고 있다. 이런 것이 내가 썼으면 싶은 추억담이다. 당연히 부정확하고 주관적인 데다 시시콜콜하다.
이에 따라 나는 기형도와 가까웠고 아직도 가까운 사람들에게 그에 관한 추억을 나누어달라고 부탁했다. 누나, 기애도 씨는 유년 시절과 집안 환경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고 게으른 나를 위해 글로 옮기느라 몸살이 나고 말았다.
민망할 따름이다. 고등 학교 동창인 이상현 정대호 에게 감사한다. 직장생활에 대해서는 신문사 후배였던 박해연이 정리해 주었다. 그 역시 글을 쓰는 동안 몸살을 앓았다고 엄살을 떨며 겁을 주었다. 대학 시절 이후의 벗들, 동료들에게도 감사한다.
사실 기형도를 추억할 수 있는 사람, 그런 권리가 충분한 사람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그가 참여했던 동인(同人)들, 선후배, 그리고 최종적으로 그를 읽은 독자들에게도 권리가 있다. 그를 만났던 모든이에게 추억담을 들어야 하고 기록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는 세상에는 참 아름다운 이름이 많다고 했다. 물빛의 수색(水色),강의 서쪽, 또는 서쪽으로 흐르는 강인 서강(西江) 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준 것은 그였다. 사람의 이름이 지명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어떤 이름에는 살아 있어도 그럼 힘이 느껴진다고 했다.
이에, 세월은 가고 이름은 남았다. 추억은 경멸할 만한 것이다. 그것에 먹히는 한은. 가볍게 내리는 비처럼 머리를 두드려 깨우는 추억은 아름답다. 우리가 함께 살아있는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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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전집/'머물고 떠남' 못내 아쉬워…
- 한겨레신문 (1999/03/02)
요절한 예술가들 중 어떤 이들은 부분적으로는 `요절'이 부여하는 분위기로 말미암아 불멸의 명성을 얻는다. 기형도(1960~89)가 그런 경우이다.
89년 3월7일 새벽 서울 종로통의 한 심야극장에서 그의 심장이 멈추었을 때, 그는 시집 한 권 분량의 원고를 정리해 두고 있었다.
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안개' 이후 발표한 것들에 미발표 시 15편을 더한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이 나온 것이 그해 5월 말이었다. 그로부터 10년 동안 이 쉽지 않은 시집은 스테디셀러의 상위를 고수하며 모두 20만 권이 팔려나갔다. 지금도 한 달 평균 1천~2천부씩 주문이 들어온다는 것이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쪽의 설명이다.
`기형도 바람'은 단지 서점 판매대에 한정된 것은 아니어서, 특유의 암울한 세계관과 비의적인 언어의 직조는 90년대 젊은 시인들의 약호와도 같게 됐다. 기형도 사후 불과 1년여 만에 그 뒤를 따르게 되는 평론가 김현은 시집 해설에서 기형도 시의 “도저한 부정적 세계관”을 지적한 다음, “나는 누가 기형도를 따라 다시 그 길을 갈까봐 겁난다”고 말한 바 있다. 기형도도 김현도 결국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그 뒤의 전개는 김현의 우려가 적절한 것이었음을 보여주었다. 심지어 기형도와 마찬가지로 이른 죽음을 맞으면서 유고 시집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를 남긴 진이정 같은 시인도 있었다.
물론, 90년대 젊은 시인들이 소멸과 죽음의 정조에 깊이 빠져든 것이 순전히 기형도의 영향 때문만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열정과 모색의 80년대를 떠나 보낸 뒤 급격하게 찾아온 허무와 절망이 그들로 하여금 기형도에게서 좇고 싶은 모범을 발견하게 했을 터이다.
여기에다가 “나는 이미 늙은 것이다”라든가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와 같은 잠언성 구절들이 지니는 감정적 호소력이 후배 시인들과 독자들 모두에게 가깝게 다가갔을 것으로 짐작된다.
기형도의 파장은 그의 육체의 소멸 뒤에 오히려 두드러져, 1주기에는 유고 산문집 <짧은 여행의 기록>이, 5주기에는 추모문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가 각각 그의 빈 자리를 메워 주었다. 그의 10주기에 즈음해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기형도 전집>은 <입 속의 검은 잎>과 이 두 권의 문집을 모두 담고, 새로 찾아낸 기형도의 미발표 시 20편, 단편소설 '겨울의 끝'을 덧붙였다.
주로 대학시절의 습작에서 고른 미발표 시들은 기본적으로 <입 속의 검은 잎>의 연장, 아니 예시로 볼 수 있다. 부자간의 불화와 뒤틀린 가계사를 그린 `아버지의 사진', 어쩐지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라는 유명한 구절을 연상시키는 “이젠 아무런 일도 일어날 수 없으리라”(`희망'), “처음부터 우리는/손바닥에 손금을 새기듯/각기 노인의 초상 하나를 키우며/그렇게 성장하는 것이다.”(`교환수')의 젊음 속 늙음의 강조, 물에 버려진 붕어의 아가미와 빨간 장갑으로 변하는 손목과 같은 초현실주의적 이미지 등이 그러하다.
기형도가 남긴 원고 뭉치를 뒤지는 것으로 고인에 대한 그리움이 다 채워지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그가 뒤에 남겨진 자들을 위해 쓴 것만 같은 시를 다시 읽어 볼 일이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빈 집' 전문)
최재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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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전문지 '포에지' 여름호 한국시만으로 특집 제작
- 중앙일보 (1999/08/24)
한국문학 특집호로 꾸며진 프랑스 권위의 시전문지 '포에지 (Po&sie.책임편집위원 미셀 드기) 여름호 (통권 88호) 를 통해 소개된 한국문학이 프랑스 문학인에게서 주목할 만한 반응을 얻고 있다.
미셀 드기와 함께 프랑스 문학계의 저명한 시인으로 꼽히는 필립 자코테는 최근 '산정묘지' 의 시인 조정권씨에게 "당신 시를 읽고 내가 받은 감명을 전달하기 위해 펜을 들었다" 며 편지를 보내왔다.
현지 출판사를 통해 팩스로 전달된 이 편지는 "당신의 '산정묘지' 연작에 내가 얼마나 공감하고 있는 지, 지금처럼 나의 내부가 위기 가운데 있을 때 이런 우연한 만남으로 내가 얻은 힘은 얼마나 큰 지 알 수 없다" 면서 "우리는 한번도 만난 적이 없고, 내가 지난 포에지 80호에서 당신 시를 읽은 것 말고는 당신은 내게 아주 낯선 사람인데, '포에지' 가 내게 이런 느닷없는 기쁨을 준다" 고 썼다.
편지에서 보듯, 조정권 시인의 시가 '포에지' 에 실리기는 이번이 두번째. 지난 97년 창간20주년 기념 포에지 80호에 한국인 유학생 김희균씨의 번역으로 옥타비오 파스 등 세계적 시인들의 시와 함께 처음 실렸다.
조씨의 시에 대한 프랑스 시인들의 좋은 반응은 이후 미셀 드기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초청으로 내한해 한국문학을 직접 접한 것과 함께 이번 한국문학 특집호 기획의 주요 계기가 됐다.
이번 특집호 포에지에 소개된 한국시인은 이상.김춘수.고은. 황동규. 정현종. 이승훈. 조정권. 이성복. 최승호. 송찬호. 남진우. 기형도 등 12명. 포에지가 77년 창간 이후 외국시만으로 특집을 꾸미기는 이번이 처음.
또한 국내재단의 출판비 지원이 전혀 없이 이뤄진 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더 큰 것으로 보인다.
조정권씨는 "정신의 힘에서 우러나는 한국시의 광활한 힘을 제대로 옮긴 번역 덕분" 이라고 공을 돌리면서도 "간간히 번역된 필립 자코테의 시를 읽고 좋아했던 터라 더욱 기쁘다" 고 말했다.
포에지측은 출간 직후 오를레앙에서 현지인들만으로 시 낭송회를 가진 데 이어 편집위원들이 내한, 오는 10월 8일 프랑스대사관.대산문화재단주최로 수록시인들이 직접 참가하는 낭송회를 갖고 내년 가을에는 기형도전집도 번역출간할 예정이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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