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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청소년 위한 SF세계명작소설

아서왕을 만난 사람-마크 트웨인 Mark Twain 작-박 홍근 역
2021년 09월 20일 20시 59분  조회:730  추천:0  작성자: 강려
 아서왕을 만난 사람
A Connecticut Yankee in King Arthur's Court
 
마크 트웨인 Mark Twain 작
박 홍근 역
 
마크 트웨인
1835년 미국 태생. 1565년 '뜀뛰는 개구리'를 발표하여 문단에 데뷔. 독특한 유머와 날카로운 사회 풍자를 특징으로 한 작품이 많다. 미국의 속어와 방언 등을 자유로이 구사해서 참된 미국적 작가로 세계적 명성을 떨쳤음. '톰 소여의 모험' '왕자와 거지' 등.
 
편집 위원
아동문학가 이 원수 ․박 홍근/문학박사 최 인학
공학박사 양 옥룡/이학박사 김 희규
전교육감 김 성묵
 
 
<차례>
 
책머리에····················· 4
이상한 사나이의 이야기·············· 6
카멜롯에서···················· 9
아서 왕의 궁정················· 13
원탁 기사의 허풍················ 19
훌륭한 착상··················· 25
일 식······················ 32
멀린의 탑의 마술················ 40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관습············ 47
기마전····················· 50
모험 여행 출발················· 53
괴로운 갑옷과 투구··············· 61
담배의 마술··················· 68
거인의 성···················· 74
성스러운 골짜기로················ 82
샘터에서의 대마술················ 89
예언자가 되다················· 105
부관 시험··················· 115
미복 잠행 여행················· 123
명예 없는 무거운 짐·············· 134
거룩한 왕의 상················· 138
영주 저택의 화재················ 147
마르코와 도우리················ 155
밀 고····················· 157
왕과 양키, 노예가 되다············· 161
캄캄한 밤의 박치기··············· 170
양키, 붙잡히다················ 174
왔다! 자전거 부대··············· 179
기사와의 대시합················ 181
클라렌스다.·················· 184
프랑스 해안으로의 여행············· 190
대 전쟁···················· 196
멀린의 동굴에서의 싸움············· 200
클라렌스의 후기················ 205
작자의 후기·················· 208
 
 
책머리에
 
독자 여러분, 내가 지금부터 이야기할 이상한 사나이를 만난 것은 영국의 워리크 성 안이었습니다. 관광객의 한 사람으로서 워리크 성을 구경하고 있는 동안에 그 사나이를 만난 것입니다.
사나이는 솔직하고 꾸밈이 없고, 아서왕 시대의 기사들의 갑옷에 대하여 놀라울 정도로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서왕 시대의 이야기라고 하면 지금부터 1300년이나 옛날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 사나이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는 그가 틀림없이 그 시대의 기사들을 잘 알고 있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그의 이야기하는 태도는 진지했습니다
안내인이 사구라마 경의 갑옷에 나 있는 총구멍에 대하여 의문을 표시하자, 사나이는 자기가 총을 쏘아 낸 총구멍이라고 말하고 의미 있는 웃음을 지었습니다.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2,3분 주저하다가 사나이 쪽을 돌아보니, 사나이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마치 기묘한 꿈을 꾼 느낌이었습니다.
사나이는 밤에 나를 방문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등장 인물
 
나 : 이 책의 주인공. 나는 양키로서 공장에서 일하는 공장장이지만, 어느 날 영국의 아서왕을 만나 그 시대 영국의 보스경, 즉 국무대신이 된다.
아서왕 : 6세기의 영국의 브리타니아 왕으로서 무술을 좋아하는 호걸.
멀린 : 허풍쟁이 마법사.
클라렌스 : 아서왕의 궁정에서 나의 몸종으로 등장하여, 가장 우수한 나의 조수가 된다.
알리산도 공주 : 어느 날 아서왕의 궁정 카멜롯 성에 나타나 터무니없는 호소를 하여, 나와 함께 여행을 하게 된다. 마침내 공주는 나의 아내가 되어 델로우 센트랄 이라는 귀여운 딸까지 낳게 된다.
케이 경 : 아서왕의 친형제로서 가신들의 우두머리.
랜슬롯 경 : 무술의 명수. 모략으로 아서 왕과 전쟁 끝에 가이엔 공국으로 건너가 버린다.
모드레드 : 아서 왕의 왕좌를 빼앗으려고 랜슬롯 경을 함정에 빠뜨려 아서 왕과 싸움을 붙인다.
사구라마 : 귀족 출신 기사. 결투를 위해 4 년간의 무술 수업을 하고 돌아왔지만, 끝내 나와의 결투에서 저승길로 떠난다.
 
 
이상한 사나이의 이야기
 
나는 미국 사람이다. 태어난 곳은 코네티컷 주의 하우트포드. 고상한 것과는 인연이 멀지만 섞인 것이 없는 순수한 양키(미국 사람)이다.
아버지는 대장장이이며 아저씨는 수의사였다. 나는 어릴 때부터 그 양쪽 일을 배웠는데, 그 후 큰 공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거기서 머티와 솜씨를 본격적으로 익히고 닦았다. 총, 대포, 보일러, 엔진, 뭐든지 다 만드는 기술을 배웠다. 이렇게 하여 나는 공장장이 된 것이다.
공장에서 2천 명이나 되는, 말보다 주먹이 빠른 작자들을 시켜먹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 역시 조심하고 있기는 했으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력(괴상한 힘)의 인물인 헤라클레스라는 벌명을 가진, 주먹이 빠른 거친 놈과 어느 날 끝내 말다툼을 하고 말았다. 그것이 원인이 되어,
"이 건방진 풋내기야!"
하고, 쇠망치에 머리를 쾅! 얻어맞았다.
아니, 이미 두개골(골통뼈)이 콩가루가 되어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눈앞이 캄캄해지고 나는 뭐가 뭔지 통 알 수 없게 되었다.
문득 정신이 들어 일어서 보니, 이건 놀랐다. 나는 어느 사이에 한 그루의 큰 떡갈나무 그늘에 웅크리고 있는 게 아닌가.
둘러보니, 주위는 아름다운 초록색의 전원이다. 아니 그보다도 바로 눈앞에 이상한 작자가 버티고 서 있지 않는가.
그 이상하고 야릇한 꼬락서니야말로! 마치 그림책에서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작자였다. 머리 꼭대기에서부터 발끝까지 투구와 갑옷으로 칭칭 감고, 방패와 칼과 터무니없이 긴 창을 가지고, 옛날도 아주 태고(아주 오랜 옛날)적 기사의 차림으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태연하게 말 등에 뒤로 젖히고 앉아 있었다.
그 말이 또 공을 들인 것이었다. 말인 주제에 갑옷을 입고, 머리에는 강철로 만든 뿔을 달고, 몸뚱이에는 빨강과 녹색의 비단 천을 걸치고, 그것을 땅바닥에 끌릴 정도로 내려뜨리고 있었다.
틀림없이 어느 서커스의 단원일 것이다.
그러자 그 작자가 말했다.
"그대는 멀쩡한가 ?"
(그대라고? 자네라고 하면 될 걸 가지고. 그리고 멀쩡한가가 뭐야! 내가 뭐 미친 사람으로 보이는가. 사람을 바보로 취급하고 있다. 제 정신이 아닌 것은 저쪽이다.)
"내가 어쨌다고!"
"그대는 영지 때문인가, 그렇지 않으면 귀부인을 위해서인가? 어느 쪽이라도 좋다. 소생과 승부를 할지어다."
"뭐라고 하는 거냐. 농담 말고 어서 서커스로 돌아가기나 해."
그 괴상한 사나이는 긴 창을 들이대며 나를 향해 돌진해 왔다.
내가 이렇게 말하자, 그 사나이는 무엇을 생각했는지 갑자기 2백 미터 정도 뒤로 물러서서 긴 창을 내밀고 기세를 높여 나를 향해 돌진해 왔다.
이건 견딜 수가 없다. 나는 겨우 나무에 기어올라갔다. 정말 이런 미치광이에게 붙잡히다니, 생각지도 못했던 재난이다. 화를 낼 게 아니라 비위를 맞춰주는 게 옳을지 모른다.
"졌어, 졌어! 항복하겠다."
겨우 그 작자를 속여 달래어서 내가 나무에서 내려오자,
"그렇다면 나를 따라올지어다."
라고, 기사 모습의 미치광이는 말했다. 나는 할 수 없이 미치광이와 나란히 서서 시골길을 걷기로 했다.
그런데 가도 가도 눈에 익은 장소는 나타나지 않는다. 서커스단 같은 것도 볼 수 없다. 결국은 정신병원까지 모시고 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병원도 멀리 있는 모양인지 보이지도 않는다. 나는 손을 들고 말았다.
하우트포드는 여기서 어느 정도냐고 물어 보니, 미치광이는 그런 장소는 모른다고 한다. 시치미를 떼는 것에 틀림없다.
한 시간 정도 걷자, 앞쪽에 구불구불한 개천이 있는 계곡이 있고, 거기에 잠들고 있는 듯한 작은 거리가 보였다. 그리고 멀리 저쪽 언덕에 잿빛의 성벽이 나타났다. 이와 같은, 그림에서 밖에 볼 수 없는 것 같은 풍경은 나는 처음이었다
"브리지포트입니까?"
내가 가리키며 코네티컷 주에 있는 거리 이름을 대자,
"카멜롯이라고 여쭙는 곳이야."
하고, 미치광이는 대답했다.
 
카멜롯에서
 
"카멜롯...... 카멜롯........
나는 중얼거렸다. 그런 이름은 들은 일도 없다. 아마 정신병인의 이름일 것이다.
주위는 낮잠의 꿈속에처럼 한가로웠다. 때는 여름. 꽃향기가 풍기고 꿀벌은 부웅부웅 소리를 내고 새들이 지저귀고 있다. 구불구불한 오솔길은 조용하여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다. 다만 길에 말 발자국이 있을 뿐이다.
이윽고 10살 정도의 귀여운 소녀를 만났다. 금발을 치렁치렁 어깨에 드리우고 불길처럼 붉은 개양귀비 꽃관을 쓰고 있었다.
나는 이 귀여운 소녀가 정신이 돈 나의 길동무를 보고 놀라지 않았으면 하고 걱정했다. 그러나 소녀는 태연했으며, 이 서커스 단원에게 놀라지도 않았다. 그리고 서커스의 사나이도 태연하게 지나쳤는데, 소녀는 문득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한껏 상냥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소녀는
"악!"
하고 놀라더니,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무서운 듯이 멈춰 서 버렸다.
이건 또 어찌된 일인가. 기사 모습의 사나이에게는 놀라지 않고 나를 보고 놀라다니, 어쩌면 가엾게도 이 소녀도 머리가 좀 이상할지도 모른다. 나는 서글픈 듯이 머리를 흔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꿈이라도 꾸고 있는 것이 아닐까?
거리가 가까워 옴에 따라 사람들의 생활의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다. 초라한 초가 지붕의 집과 작은 밭이 있었다. 밭에는 긴 머리칼이 푸시시한, 새까맣게 더러워진 사나이들이 일하고 있었다. 마치 짐승 같았다.
사나이들은 무릎 밑까지 내려간 조잡(거칠고 잡스러워 품위가 없음)한 베옷을 입고, 발에는 철고리를 끼고 끌고 있었다. 어린아이들은 발가벗고 있었다.
그리고 남자도 여자도 서커스의 사나이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한다. 그런데 나를 보고는 멍하니 입을 딱 벌렸다. 그리고 흘끔흘끔 쳐다보면서 와글와글 떠들기 시작했다. 집안으로 뛰어들어가서 식구들을 데리고 나오기까지 하여 하나같이 깜짝 놀란 얼굴들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멋대로 놀아라. 이 미치광이들아!)
한편 서커스의 사나이는 인사를 받고도 당연하다는 듯이 뒤로 떡 몸을 젖히고 아는 체도 하지 않고 유유히 지나가는 것이었다. 거리에 들어서니, 창문이 없는 돌로 만든 집이 초가집 사이에 군데군데 있었다. 구불구불한 길에는 알몸의 어린아이들이 개와 놀고 있었다. 돼지까지 걸어다니며 땅을 여기저기 파헤치고, 그 중에는 길 한가운데의 썩은 물 속에 드러누워 새끼 돼지에게 젖을 먹이고 있었다.
그 때 멀리서 군악 소리가 울리고, 이건 또 친절하게도 기사 모습의 한 대열이 뒤에서 다가왔다. 투구와 갑옷을 햇빛에 반짝거리면서, 토끼의 가죽 털을 바람에 나부끼면서, 야하게 단장한 말을 타고 나타난 것이다. 그 미치광이 행렬의 선두에는 군기가 펄럭펄럭, 금칠을 한 창 끝이 반짝반짝 빛났다.
수고해요! 너무나 정성을 들인 모습이기 때문에 오히려 이쪽이 정신이 이상해지는 것 같다. 우리들은 그 대열의 뒤를 따라갔다. 구불구불한 오솔길을 더듬어 고개에 올라 겨우 미풍이 불어오는 높은 곳에 이르니, 그곳에는 굉장히 큰 성이 솟아있었다.
성벽에는 옛날의 모습으로 분장한 병사들이 창을 들고 오락가락 하고 있었다. 서투른 솜씨로 그린 용의 그림이 그려 져 있는 깃발까지 나부끼고 있다.
"돌아오십니다!"
"돌아오십니다!"
소리치는 소리와 함께 성문의 적교(양쪽 언덕에 줄이나 쇠사슬을 건너지르고, 거기에 의지하여 매달아 놓은 다리)가 내려지고 성문이 활짝 열렸다. 기사의 대열은 성벽 안으로 들어갔다.
"놀라게 하지마! 대체 이건 어떻게 된 일이냐?"
나는 몹시 놀라기는 했어도 화가 난 듯이 중얼거리며 뒤를 따라갔다. 안으로 들어가니 푸른 하늘 아래 굉장히 아름다운 궁전이 엄숙하게 솟아 있었다. 사방에는 크고 작은 탑이 솟아 있고, 미치광이들은 말에서 내려 딱딱한 인사를 주고받고 있었다.
 
아서 왕의 궁정
 
주위를 둘러보니, 가까운 곳에 한 젊은이가 있었다. 이 젊은이는 정신이 바른 것 같다. 복장은 역시 옛날 풍이었으나, 여기서는 이런 복장 쪽이 정신병 환자의 위생에는 좋을지도 모른다. 나는 틈을 보다가 다가가서 상냥하게 말을 걸었다.
"여어, 초면이군. 자네는 이 병원 사람인가? 그렇지 않으면 견학이나 뭔가로 해서?"
그러자 젊은이는 멍청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여어, 그대는! 보아하니........."
"과연, 좋아요, 좋아요. 당신도 환자군요."
나는 실망했다. 따로 정신이 바른 사람은 없나하고 주의하여 보니 그럴 듯한 사람이 있어 불러 세웠다. 그리고 귀에 입을 대고 말했다.
"여보세요, 잠깐만. 당신은 정신이 바른 것 같아서 좀 부탁합니다. 여기 원장님을 만나게 해 주십시오. 잠깐이라도 좋으니까."
"부탁입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좀 바쁘기 때문에."
그 사나이는 요리사였다. 그리고 '지금은 이야기할 사이가 없으나 틈을 봐서 쓸데없는 이야기라도........' 하고, 말하면서 나를 흘끔흘끔 쳐다보았다.
"그 옷은 매우 기묘하고 진기한 물건이군요. 어디서 얻었는지 말해주세요. 아, 그렇지. 저기 오는 분은 한가한 사람입니다. 말상대로 좋을 겁니다."
사나이는 이렇게 말하고 가 버렸다.
한가한 사람은 갈라진 당근처럼 꼭 끼는 붉은 옷을 입고 있는 소년이었다. 덜렁거릴 것 같았으나, 사람은 좋을 것 같다. 소년은 내 얼에 오자 싱글거리면서 진기한 듯이 나를 보고 말했다.
"나는 몸종입니다. 마중을 나왔습니다 나를 따라 오시기를."
"가고 말고. 너는 참 신문 기사 거리가 될 만한 소년이야, '몸종입니다. 따라오시기를' 그건 황송한데."
나는 마구 화가 나서 비꼬았다. 그러나 소년은 태연스럽게 '그 옷은 어디서 샀느냐', '당신은 힘이 강한가' 라는 등, 혼자서 지껄여 대었다. 그 전부터 아는 사이인 것처럼 소탈하게 행동하며, 나의 대답 따위는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다만 지껄이는 것이 즐거운 듯했다.
또 그것을 내가 듣거나 말거나 아무래도 좋은 듯했는데, 문득 나의 귓속에 걸린 말이 있었다. 그것은 소년이 '나는 513년생입니다' 그런 말을 했던 것이다.
나는 오싹 소름이 끼쳐 멈춰 서서, 좀 조심스러운 말투로 되물었다.
"잘 들리지 않았는데, 다시 한번 천천히 들려주게. 몇 년 생이라고?"
"513년입니다."
"513년! 농담이겠지. 이 봐! 이 봐! 나는 딴 곳 사람이고 외톨이야. 놀려대지 말고 진정으로 상대해 줘. 너는 정신이 바른가?"
"별로 놀려대지 않습니다. 그런데 정신이 바르냐고 하는 건?"
"좀 묻겠는데, 여긴 병원이 아닌가? 즉 정신이 돈 사람을 수용하는 것 같은........."
"그런 곳은 아닙니다."
"하아, 그렇다면 내 쪽이 정신이 돌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무엇인가 무서운 일이 일어난 거로구나. 이봐, 부탁일세. 정직하게 사실을 말해주게. 여기는 어디지?"
"아서 왕의 궁정입니다."
무슨 소리냐!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또다시 물었다.
"그런데 네 생각으로서는 금년은 몇 년이지?"
"기원 528년 6월 19일입니다."
나는 아주 풀이 죽고 말았다. 어떻게 되었다고 해도 지금 눈을 뜨고 있으며, 지금 살아있다는 것은 사실인 모양이다. 세월이 되돌아가고 있다. 왜 1300년이나 틀리는 것일까?
이제 친구와도 만나지 못한다. 절대로 만나지 못한다. 앞으로 1300년이 지나지 않으면 친구는 태어나지 못하는 것이니까.
그때 나는 어떤 일을 생각해 냈다. 지금이 6세기라고 하면 그 전반에 한 번 개기일식(일식 때 달이 해를 완전히 가려서 보이지 않는 현상)이 있었다는 것을 역사상으로 알고 있다.
그 일식은 528년의 6월 21일 12시 3분이 지나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이틀 동안 참아서 개기일식이 있으면 소년이 말한 것은 정말이며, 개기일식이 없으면 소년의 말은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코네티컷 태생의 현실적인 양키이다. 사소한 일을 걱정해도 소용이 없다. 만약에 내가 미치광이 부락 속에 포로로 잡혀 있다 해도 좋다! 나는 여기서 두목이 되어 보자. 한번에 하나의 일을, 예를 들어 그것이 시시한 것일지라도 힘껏 활용해라. 그것이 나의 신조이다.
만약에 지금이 6세기라면 문제될 것이 없다. 나는 19세기의 문명 문화 시대의 인간이다. 3개월 이내에 이 나라의 두목이 되어 보여 주어야 한다. 내 머리는 6세기의 인간보다 13세기나 진보되어 있는 것이므로 되지 못할 것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결심하자, 나는 오히려 유쾌해졌다. 이제는 우물쭈물하지 않겠다.
"이 봐. 클라렌스, 네 이름은 그렇지? 지장이 없다면 나에게 좀 가르쳐 주지 않겠어. 나를 여기 끌고 온 사람은 뭐라고 하지?"
"나와 귀하의 군주에 대해서? 그분이야말로 아서 왕의 친형제로서 가신(경이나 대부의 집에서 그들을 섬기고 받들던 사람)들의 우두머리인 기사 케이 경입니다."
"그래, 케이 경이라고? 그럼 무엇이든지 더 이야기 해 줘."
그러자, 소년은 그렇다면 내게 맡기라는 듯이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소년의 이야기에 의하면 나는 케이 경의 포로이며 지하의 감옥에 넣어질 모양이다. 그렇게 되면 몸이 아주 지쳐 버리면 몰라도, 친구나 누가 대금을 내놓지 않는 이상 거의 마시지 못하고 먹지 못한 채로 버려지게 되는 모양이다.
그리고 지금쯤은 궁정의 큰 홀(서양식의 큰 방)에서 식사가 끝난 때이며, 이제 얼마 후에는 술자리가 시작된다. 그 때 나는 거기 끌려나가 케이 경이 나를 포로로 한 자랑을 한바탕 연설하는 모양을 보게 된다.
꽤 허풍도 칠 것이나, 그렇지 않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고 오히려 좋지 못하게 될 것이다. 정말 분한 일이다. 그리고 구경을 시킨 다음 다시 지하 감옥으로, 이런 순서가 되는 모양이다.
"그러나 내가 지하 감옥에 가서 위로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만약 귀하가 친구에게 전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내가 잘 해드리겠습니다"
친구에게 전할 일...... 그것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어쨌든 나는 고맙다고 했다. 그때 하인이 클라렌스와 나를 부르러 왔다. 나는 클라렌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훌륭하고 큰 홀이었다. 높은 천장에 깃발이 많이 드리워져 있다. 저녁때의 아름다운 하늘같았다. 홀의 좌우에는 일단 높은 돌로 만든 주랑(여러 개의 기둥을 나란히 세운 복도)이 있고, 한쪽에는 음악대, 또 한쪽에는 눈이 부시도록 화려하게 차린 귀부인들이 나란히 앉아있었다. 그리고 홀의 벽 앞에는 갑옷과 투구 차림의 병사들이 창과 도끼만의 무기를 귀중하게 들고 엄숙하고 긴장된 표정으로 서 있었다.
큰 홀의 한가운데에는 세상에 원탁이라고 전해지고 있는 떡갈나무로 된 둥근 테이블이 있었다. 그것을 둘러싸고 많은 기사들이 굉장히 화려한 차림으로 나란히 앉아 있었다. 모두들 새털 장식이 붙은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리고 왕과 말을 주고받을 때에는 모자를 조금 위로 올렸다. 그것이 존중을 나타내는 표적이었다.
이것이 옛이야기에 나오는 유명한 원탁기사의 얼굴들일 것이다.
'무용(무예와 용맹)에 뛰어나고 예의가 바르고' 라고 칭찬하고 추켜 올려온 이 기사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동안에, 허어! 이건 참 어이없어서, 참으로 얘기들 같은 이야기들을 지껄이고 있지 않는가. 큰 거짓말쟁이에 허풍쟁이이다. 게다가 저능이다. 바보들의 모임이다.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또 탄복하여 얼굴을 굳히고 큰 허풍을 신중히 듣고 있다. 그것은 또 천진난만했으나, 이야기 내용은 어느 것이나 잔인하고 피비린내 나는 것이었다.
끌려나온 포로는 나뿐 아니라 20명 이상이나 되었다. 가엾은 사람들! 그 거의가 상처를 입었거나 불구가 되어 머리칼도 얼굴도 더러워지고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매우 잔혹한 벌을 받은 것임에 틀림없다. 포로들은 아픔의 고통으로 일그러지고 굶주리고 지쳐있었다.
물을 주거나 간호를 해주는 사람도 없이 포로들은 방치되고 있었다. 그래도 신음 소리도 내지 않고 돌처럼 참고 있었다.
제기랄! 기사라고 우쭐대고 있기는 해도 놈들은 하얀 얼굴을 한 토인의 값어치밖에 못 되는 놈들이다.
 
원탁 기사의 허풍
 
원탁 기사(원탁에 둘러 앞아 담론한 데서 온 말)들은 서로 무용전의 자랑거리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자, 승부를, 승부를!' 하고 시합을 걸고, 별다른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닌데 기를 쓰고 한바탕 싸우는 것이었다.
개구쟁이들이 치고 받는 편이 훨씬 이유가 분명하다. 나는 언젠가 전혀 알지 못하는 소년 둘이 마침 걸어 가다가 마주쳐 어느 쪽이라 할 것 없이 '내가 너보다 강하단 말야.' 하고 갑자기 싸움을 시작하는 것을 본 일이 있다. 그것은 아이들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지만, 여기서는 이렇게 큰 바보들이 먹을 만큼 나이를 먹어 가지고, 이유도 없이 싸움을 걸어서 이겼다고 뻐기기도 하고 자랑을 하기도 하고........ 그것이 기사라는 것을 나는 비로소 알았다.
그런데 이 바보들을 보고 있을라치면 지능이 부족한 자들이라 애로가 있었다. 이러한 작자들은 낚시질을 가도 낚시에 미끼를 낄 만한 생각도 없을 것 같다. 그리나 기사 따위 같은 놈들에게는 지능이 오히려 장해가 될 것이다.
그런데 어느 얼굴도 모자란 머리와는 달리 모두 사내답다. 그 중에는 고상하고 훌륭한 모습의 얼굴도 있었다. 특별히 갈라하드 경이라고 불리는 사람과 아서 왕은 거룩하고 자비로운 얼굴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호수의 기사 랜슬롯 경의 큰 몸집과 여유 있는 동작에는 당당한 관록이 보였다.
나를 여기에 끌어온 케이 경이 일어서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소생이 9명의 이국인(외국인)들에 둘러싸여 괴로운 싸움을 하고 있을 때, 거기를 지나가게 된 것은 랜슬롯 경이었습니다. 랜슬롯 경은 단 혼자서 이국인들을 툭탁하고 즉시로 쓰러뜨리고, 그리고 소생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나이다. '케이 경, 이 이국인들을 포로로 하여 그대의 공훈으로 할지어다. 뭘. 소생의 싸움의 시작 같은 것은 아무 것도 아니오. 말씀하시지 말기를.' 이거야 진정 기사중의 기사. 랜슬롯 경이야말로 이번 공적의 주인공이로소이다."
그리고 정중하게 귀부인들에게 절을 한다.
별것이 아니다. 여자들에게 칭송을 받으려고 과장된 자랑거리를 이야기하고 있다. 랜슬롯 경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칭찬하여 사실은 자기가 한 것을 내세우는 것이 유행이니까. 외관상 보기 좋은 점수 따기 방법이다. 한심스러운 것이다.
나는 우스워서 싱글거리며 몸종인 클라렌스를 뒤돌아보니, 클라렌스는 우울한 얼굴을 하고,
"케이 경은 허풍꾼 중에서도 큰 허풍꾼이며, 지금부터 2천 년이 지나도 저런 사람은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흘끔흘끔 홀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에는 검은 가운을 걸친 흰 머리의 은근해 보이는 노인이 서 있었다. 눈꼽을 붙인 멍청한 눈으로 홀을 둘러보고 있었다. 기분이 나쁜 작자다.
"저기 있는 죽음의 신 같은 영감쟁이는 누구지?"
나는 클라렌스를 쿡 찔러서 물어 보았다.
"마법사인 멀린입니다. 허풍쟁이인 저놈은 지옥의 악마도, 폭풍우도, 천둥까지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어 모두가 무서워하고 있지요. 저렇게 싫은 놈은 또 없어요. 벼락이라도 맞고 뻗어 버리면 좋겠어."
하아,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놈의 일에 대해서는 '아서 왕 이야기'라고 하는 책에서 읽은 일이 있었다. 그것에 의하면 멀린의 부친부터가 인간이 아니다. 완전한 악마도 아니지만, 좋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는 놈으로서, 공기 중에 살고 있는 '꿈의 마귀'의 아들인 모양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신앙이 깊은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멀린은 어릴 때부터 보통 인간과는 달라서 자기의 모습을 마음대로 변하게 할 수 있었다. 벤드라몬이라는 왕의 시대부터 왕의 최고 상담역이 되어 마법의 힘으로 때때로 왕을 도왔던 모양이다.
그 후 유더 왕의 시대가 되어도 멀린은 왕의 특별한 취급을 받았다. 멀린은 유더 왕의 아들 아서 왕도 섬기게 되어, 첫째 가는 상담역이 된 것이다, 라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야기 속의 실물을 직접 만나는 것은 참으로 기묘한 일이었으나, 멀린 놈은 보면 볼수록 싫은 놈이었다. 그래서 나는 기사들의 시시한 자랑거리에 귀를 기울이기로 했다. 어쩐지 케이 경이 나를 사로잡은 이야기를 하는 듯했기 때문이다. 나를 미끼로 하여 멋대로 허풍을 떨고 있었던 것이다.
"소생은 먼 야만국으로 갔었는데, 그 길도 기억할 수 없으리만큼 멀었소이다. 그 나라에서는 어떤 사람도 저 사람 같은 기묘한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케이 경은 나를 가리켰다.
"그리고 또 야만국의 사람들은 마법을 알고 있었사옵니다. 저 옷은 마법의 옷으로서, 저것을 입고 있으면 칼날도 창도 못 들어갑니다. 그리하여 소생은 기도의 힘으로 그 마력을 쫓고 3시간에 걸치는 격심한 싸움에서 13명의 야만인들을 죽였소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믿고 천진한 얼굴로 듣고 있었다. 과연 '아서 왕 이야기'의 기사는 강했을 것이다. 이러한 거짓을 진정으로 전했으니까.
 

<대체로 기사들은 허풍쟁이이다. 그런데 기사들의 이야기를 듣는 쪽도 그것을 믿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가 맞아들어 간다.>
 
케이 경은 나에 대해 서서 '굉장한 거인'이라거나, '하늘에 닿는 큰 사나이' 라거나, '송곳니를 가지고 손톱이 긴 도깨비' 등으로 불렀는데, 어떤 누구도 실물인 나와 케이 경의 이야기를 비교해 보지도 않고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참으로 얼빠진 얼간이들의 모임이었다.
"소생은 이 괴물을 한 마리만 붙잡아 거룩하신 왕과 존경하는 분들께 보여드려야 한다고 창도 칼도 쓰지 않고 쫓아다녔소이다. 그러자, 이놈은 2백 큐빗(약 100미터)나 되는 높은 나무에 한번 뛰어서 날아 올라갔나이다. 소생은 황소 만한 큰 돌을 던져서 떨어뜨려 가지고 이놈을 끌고 왔나이다. 구경하시기를. 그 후에는 이놈을 살려두어도 쓸모가 없나이다. 그렇다면 21일의 정오에 사형에 처하는 것을 또 구경거리로 즐기시기를."
그러자 사람들은 마법의 옷을 입고 있기 때문에 이놈은 죽지 않을 것이라고 진지하게 말했다. 나는 사형 언도를 받고 실망한 마음과, 너무나도 어리석은 그들의 놀음에 어이없어진 것이 마구 뒤섞여 기분이 나빠졌다.
첫째로 나의 옷은 마법의 옷 같은 것이 아니다. 놈이 뭐라고 말하든 15달러에 산 싸구려 옷인 것이다.
"그건 아무 것도 아니올시다. 옷을 벗겨 이놈을 알몸으로 하면 되는 거죠."
마법사 멀린이 기분 나쁜 소리로 말했다. 두뇌가 없는 바보들은 멀린의 엉터리 지혜에 감동하여 서로 달려들어 나의 옷을 벗기려고 했다.
반항할 사이가 있기는커녕 30초도 안 되는 동안에 나는 알몸이 되어 버렸다, 놈들은 양배추를 보는 것처럼 나를 감상했다. 왕비는 나를 자세히 바라보고 분부를 내렸다.
"나는 이처럼 모양이 좋은 발을 본 것은 처음이어요.“
이것이 내가 받은 단 한 가지 겉치레의 인사였다.
마지막으로 나는 위험하기 짝이 없다고 단정된 나의 옷과 동떨어진 장소로 쫓기어갔다. 어둡고 축축한 지하 감옥에서 나에게 주어진 것은 얼마 안 되는 밥 찌꺼기와, 곰팡이 냄새가 나는 볏짚 침대와, 쉴 사이 없이 방문해 오는 쥐들뿐이었다.
 
훌륭한 착상
 
나는 몹시 지쳐 있었기 때문에 무섭기도 했지만, 이윽고 잠들고 말았다.
눈을 뜨자 다음날 아침이 되어 있었다.
"어허! 참 싫은 꿈이었구나! 좀 있으면, 목을 매 달거나, 물 속에 던져지거라, 화형을 받게 되기 직전에 눈이 떠졌으니까 말이야. 공장의 사이렌이 울리기까지 한잠 더 잘까. 그리고 나서 공장에 가서 꿈 이야기라도 해보자. 그리고 헤라클레스와 이야기를 매듭짓지 않고서 는......."
그런데 어럽쇼. 들려온 것은 쇠사슬과 빗장의 거친 음악이라는 거다. 눈부신 빛이 스며들어와 나는 눈을 끔벅이며 그때 알아차렸는데, 눈앞에 서 있는 것은 제기랄! 그 클라렌스다. 나는 놀라서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왓! 네가 아직도 있었느냐? 꿈이여 사라져 버려라! 썩 사라져 버려라!"
그러나 클라렌스 놈은 기쁜 듯이 싱글벙글 거리면서 내가 곤란을 당하고 있다는 걸 놀려대기 시작한다. 제기랄!
"좋아! 꿈 같은 건 깨지 않아도 나는 허둥지둥 안 할 거다."
"뭐, 어떤 꿈?"
"어떤 꿈이냐고! 정해 놓은 거지 ? 내가 아서 왕의 궁정에 있다는 것. 분명한 꿈이다."
"핫핫핫! 그래. 그리고 당신이 내일 화형(불에 태워 죽임)이 된다는 꿈이지. 호호흐흐......."
나는 뜨거운 물에 데친 야채처럼 비참해졌다. 내버려 둘 수는 없다. 꿈이든 그렇지 않든 화형을 받게 되는데, 웃고 있을 수만은 없다. 있는 지혜를 다 짜내어 화형을 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아, 클라렌스. 자네는 좋은 소년이야. 나의 단 하나의 친구다. 너는 나의 편이다. 그렇잖아? 도와줘. 여기서 도망칠 방법을 생각해 주게!"
"침착하셔요. 도망친다! 아니아니 복도에는 무장한 파수병이 있어요."
"그렇겠지. 그렇겠지. 그러나 몇 사람 정도냐? 많지 않으면 좋겠는데........."
"20명은 있죠. 도망칠 희망은 요만큼도 없어요. 그리고 더 어려운 일이 있어서 말야. 그것이 더 귀찮아요."
"뭐냐, 그 어렵다는 것은?"
"으응, 그건 그렇지, 말못해요. 도저히 말할 수 없지!"
"이 봐, 자내 왜 그러지? 거드름 피우지 말게. 아니, 왜 떨고 있지?"
"오, 그것에는 이유가 있지만......나는 이야기해 드리고는 싶지만........."
"자 용기를 내어라. 사내가 아니냐. 말해 줘. 너는 참 좋은 사내야!"
클라렌스는 문에 살짝 다가가서 복도 쪽으로 귀를 기울이더니 다시 살짝 돌아와 나의 귀에 속삭였다.
"멀린이 무서운 마법의 저주를 이 지하 감옥에 걸었습니다. 이제 그 주문을 깨뜨리고 당신을 구원한다는 것 같은 크게 벗어난 생각을 가지는 자는 아무도 있지 않아요. 아! 하느님 살려주셔요. 나는 지껄이고 말았어요. 오오! 나를 동정해 주십시오! 그리고 만약에 내가 당신에게 지껄인 것을 알면 나는 당장에 이 세상에서 끝장이다."
그리하여 나는 오래간만에 배를 움켜쥐고 웃었다.
"멀린이 마법을 썼다고? 사기꾼 멀린이! 허풍쟁이이고 비틀거리며 입이 엉킨 둔한 놈! 더 없는 어리석은 일이다. 바보 같은! 시시한 백치 같은 저능한 멍청이의 정신 나간 미신 같은 건 똥이나 먹어 봐라! 그렇고말고, 멀린 얼간이 같은 놈!"
그런데 클라렌스는 내가 지껄여 대는 말의 절반도 끝나기 전에 겁을 집어먹고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정신은 어디로 날아가 버린 모양이었다.
"큰일이다! 당치도 않은 말을! 이제라도 이 벽이 무너져 우리들 위에 떨어져옵니다. 아아! 빨리 그 말을 취소해 줘요!"
"무슨 소리냐. 어리석게스리!"
나는 실망했는데, 문득 좋은 일이 생각났다. 이 나라 사람들은 이렇게도 마음 깊이 미신이 강하다. 그렇다면 멀린 같은 설익은 마술사보다 훨씬 우수한 인종인 이 내가 어리석은 놈들을 상대하는 것은 그야말로 간단하다. 명안(좋은 생각)이 있다.
"일어서라, 클라렌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나의 눈을 봐라. 너는 내가 왜 멀린을 비웃었는지 아느냐?"
"아니요. 그러나 성모 마리아께 그런 말은 하지 않는다고 맹세해 주셔요."
"이 봐. 자, 왜 비웃었는지를 말해 줄께. 왜냐 하면, 이 나야말로 마법사인 것이다."
"그대가!"
소년은 뒤로 물러서며 침을 삼켰다. 확실히 예상하지 못했던 일에 틀림없다. 나 역시.......
그러나 소련이 점점 나를 존경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얼굴에 확실히 나타났단. 바로 이 미치광이 병원에서는 허풍을 치면 칠수록 인기가 좋아진다. 그 정도가 아니라 존경을 받는다. 그래서 나는 더 허풍을 치기로 했다.
"나는 멀린을 7백 년 전부터 알고 있어 그놈은......."
"7백 년......?"
"자, 들어라. 그놈은 13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어. 그리고 그 때마다 이름을 바꾸어 이리저리 돌아다녔어. 스미스, 존스, 로빈슨, 잭슨, 피터즈, 허스킨즈, 멀린, 이와 같이 말야. 나는 3백 년 전에 이집트에서 멀린을 만났고, 5백 년 전에 인도에서 만났어. 그놈은 어디서나 실없는 소리를 지껄인다. 그놈에게는 진절머리가 난다. 그놈은 마법사로서는 풋내기야. 시시해. 캐캐묵은 요술을 조금 알고 있을 뿐이야. 놈에게는 시골 흥행이 제격이야. 하룻밤만의 흥행정도밖에 안 돼. 그러나 자기 신분은 알아야지. 대가(뛰어나고 훌륭하여 권위를 이룸)가 되려고 하다니. 천만에, 진짜 마법사 앞에서는 까불지 말고 얌전하게 있으란 말야."
나는 클라렌스의 모습을 보았다. 눈은 휘둥그렇게 뜨고, 콧구멍은 커졌다 작아졌다 벌름거리고, 심장의 펌프에 박자를 맞추고 있다. 이건 잘 되갈 것 같다.
"알았지? 클라렌스. 나는 너와 친한 사이가 되어 주겠어. 그러니까 너도 내 친구가 되어라. 그리고 아서 에게 내가 마법사, 그것도 대마왕의 '하이 유 맥카아맥크'라는 것을 전해 줘. 만약에 케이 경이 하라는 대로 하여 나를 사형에 처하려고 하면 이 나라를 뒤집어엎는 그러한 재난을 일으킬 작정이라고 말야. 조금은 그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걸 왕에게 잘 말해 주게."
소년은 가엾게도 아주 겁이 나서 말도 못한다. 이윽고 갈피를 잡지 못하는 양으로 나의 편이 되어 무엇이든지 할 테니까, 그 대신 친한 사이가 되어 절대로 저주는 하지 말아 달라고 되풀이하여 부탁하였다. 그리고 비틀거리면서 병자처럼 벽을 잡고 겨우 밖으로 나갔다.
나는 얼마 안 되어 곧 알아차렸다.
(이것 뜻하지 않는 바보 같은 짓을 했구나! 내가 대마왕이라면 이러한 지하 감옥을 빠져나가는 일쯤은 식은 죽 먹기. 나 자신이 왕에게로 이야기하러 가면 좋지 않은가. 하필 클라렌스에게 부탁하지 말고 말야. 곧 탄로가 날 허풍을 쳤구나.)
나는 1시 간 동안이나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잠깐만. 여기 살고 있는 동물들은 전혀 머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거짓말이라도 간단히 믿어 버리지 않는가. 그 케이 경의 어리석은 이야기도 천진하게 믿을 정도로 얼빠져 있는 걸. 그리하여 나는 겨우 안심하였다.
그런데 또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이 생각났다. 한 가지 어려움이 사라지면 또 한 가지 어려움이 생긴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듯이 고생은 실지로 잇달아 오는 것이다. 놈들이 만약 마법을 해보라고 하면 어떻게 할까? 마법은 누구나가 보고 싶어한다. 이러할 때 한 번 요술거리를 만들어 주지 않고서는........ 그러나 나는 하나도 할 수 없다.
됐다! 나는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쳤다. 실은 일식에 대한 일을 생각했었는데, 하마터면 큰일날 뻔한 찰나에 운 좋게 생각난 것이다. 일식을 이용하는 것이다. 콜럼버스며 코르티스며 그 외 누군가가 어쨌든 그러한 작자들은 일식을 이용하여 토인들에게 죽음을 당할 것을 면했다고 한다.
나도 그 수법을 이용하자. 콜럼버스가 태어나기까지는 아직 1천년 가까이 사이가 있으니까. 결코 남의 흉내를 내는 것도 아니다.
이윽고 클라렌스가 힘없이 돌아왔다.
"나는 왕에게 급히 가서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전했습니다. 왕은 몹시 놀라며 '곧 좋은 옷으로 갈아 입히고 좋은 방에 옮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멀린이 왔습니다 멀린은 당신은 '미치광이이며 말로 위협할 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 증거로 재난은 일어나지 않지 않느냐' 하고 왕께 대들어 끝내........."
일이 틀리고 말았던 것이다. 여기서 어물어물해서는 안 된다. 나는 대마왕답게 천천히 일어서서 조용히 말했다.
"내가 여기 갇힌 지 어느 정도 지났지?"
"당신은 어제 저녁에 여기 들어가셨습니다 지금은 아침 9시입니다."
"잘 잤구나. 아침 9시라! 그럼 오늘은 20일이구나?"
"그렇습니다. 20일입니다."
"그래, 나는 내일 화형을 받게 되는 거지."
소년은 부들부들 떨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그건 몇 시에 하지?"
"정오입니다."
"그렇다면 왕에게 이렇게 전해라. 한 가지 좋은 일을 가르쳐 주겠다고."
나는 여기서 말을 끊었다. 순간 기분 나쁜 고요가 주위에 감돌았다. 나는 선 채로 오그라들고 있는 소년을 1분 가량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와 같이 거드름을 피우며 겁내고 있는 소년 앞에 우뚝 서서 매우 엄숙하고 느리게, 그리고 아주 연극조의 굵은 목소리로 당당하게 말했던 것이다.
"가서 왕에게 전해라. 내일 나를 화형에 처하려고 할 때 나는 이 세상을 캄캄하게 만들 것이다. 태양은 사라지고 영원히 비치지 않고 지상의 모든 것은 열과 빛을 빼앗기어 죽어 버릴 것이다."
나는 점점 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나의 연극이 훌륭했기 때문에 클라렌스는 놀라버렸다. 나는 클라렌스를 안아 일으키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고 나서 또 감옥으로 되돌아왔다.
 
일 식
 
아주 조용한 어둠 속에 있게되자, 이건 참으로 야단났다, 하는 실감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심장을 찔러 꿰뚫는 이야기를 듣는 것과, 실지로 자기의 눈으로 보는 것과의 차이다.
그런데 인간의 구조는 편리하게 되어 있어서 무서움에 맥이 빠져 기력을 어느 만큼 잃게 되면, 제기랄! 하고 기운이 또 나오는 법이다. 치는 상대가 있으면 해보려고 분발하게 된다. 나도 그러했다. 일식이 잘 되어 가면 목숨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 나는 이 나라의 제일 높은 인물로 올라설 것이다.
그러나 잠깐만, 하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놈들은 미신이 깊은 작자들이다. 어찌하면 화해를 청해 올지도 모른다. 조건에 따라서는 받아들여도 좋다. 그러나 조건이 나쁘면 들어줄 것이 뭐냐. 튕기어 한번 골탕을 먹이자.
나는 대마법사답게 엄숙한 모양을 하고, 내일은 바보 같은 놈들의 간을 뒤집어엎는 재주를 실현해 보겠다, 하고 마음이 들떠서 침착할 수가 없었다. 소풍날을 기다리는 것 같은 마음이었다. 내일 같은 좋은 낱, 모두 오케이 (OK)이다. 플레이 (유희, 경기) 솜씨를 보라 하는 식이었다. 갑자기 지하 감옥의 문이 열리고 무장한 병사 몇 명이 나타났다.
"화형이다. 나오너라!"
"화형!"
나는 맥이 쑥 빠져서 위험하게도 정신을 잃기 시작했다. 단단한 덩어리가 목에 걸려 숨도 쉴 수 없다.
나는 겨우 소리를 짜냈다.
"그건 잘못이다. 아아, 내일일텐데!"
"명령이 바뀌어 하루 앞당기게 됐다. 어서 나와라."
나는 겁을 먹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병사는 나를 부축하여 복도에 끌어냈다.
지하의 통로를 끌려가자, 갑자기 눈부신 햇빛이 스며들고, 거기서 곧 궁정의 가운데 마당으로 나왔다.
마당에 한 걸음 들어섰을 때, 맨 처음 눈에 비친 것은 중앙에 서 있는 화형용의 기둥이었다. 그 앞에는 장작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옆에 한 사제(주교와 신부를 통틀어 일컬음)가 기다리고 있었다. 마당의 사방에는 층층대가 마련되고, 구경꾼이 축제일처럼 화려한 차림을 하고 모여 있었다. 유명한 기사와 귀족들은 물론 아서 왕과 왕비의 모습도 보였다.
그 때 클라렌스가 살짝 다가와서 자못 만족스러운 듯이 속삭였다.
"마법의 힘을 나타내는 것은 빠른 편이 좋다고 생각하여 내가 형을 오늘 하도록 만들었어요. 굉장히 어려웠어요. 그러나 당신을 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거절하는 사람들을 설득했습니다. 그러므로, 마법으로 철저하게 위협해 주셔요. 그러면 당신은 자유의 몸이 되며, 뿐만 아니라 굉장한 존경을 받습니다. 그러나 나는 날짜를 앞당기는데 고생했습니다 나는 이처럼 말했습니다 '대마왕은 마력을 내일 나타낼 준비를 하고 있으니까, 화형을 오늘 중에 해치우시오.' 하고, 어떻습니까! 왕이나 멀린을 잘 속였지요? 나는 당신을 위한다고 생각하여 열심입니다. 이 봐요. 이 일을 잊지 마세요. 절대로 잊지 마세요. 그리고 태양은 조금만 어둡게 하는 것으로써 충분합니다. 그것만으로도 효과는 만점입니다. 놈들은 틀림없이 간이 콩알만해질 겁니다. 당신에게 절하며 살펴달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해님을 깨뜨리지 않도록 부탁합니다. 나는 당신과 가장 친한 사이입니다."
나는 희망을 잃고 허망한 마음으로 클라렌스의 속삭임을 들었다. 아아, 사람 좋은 클라렌스, 이게 무슨 짓이냐! 너의 친절이 오히려 나를 죽게 하는구나!
병사는 나를 마당의 한가운데에 끌고 나가 화형용의 기둥에 매놓았다. 장작이 내 무릎의 높이까지 쌓였다. 구경꾼들은 몸도 움직이지 않고 지켜보고 있다. 그야말로 죽음과 같은 고요다. 나는 눈이라도 가리운다면 천 명의 구경꾼에게 둘러싸인 것이 아니라, 홀로 거기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을 것이다. 한 사형수가 활활 타는 횃불을 가지고 와 나의 앞에서 몸을 구부렸다. 사람들은 숨을 멈추고 침을 삼키며, 눈을 접시처럼 하여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사제는 두 손을 들고 푸른 하늘을 우러러 라틴말로 경문을 외기 시작하였다. 나는 눈을 감고 각오를 했다. 2분이 지나고 3분이 지나고...... 눈을 떠보니 사제는 위엄을 부린 채 서 있었다. 구경꾼 4천 명도 멍하니 하늘을 우러러 서 있지 않는가.
무슨 일일까? 하고 나도 하늘을 보았다. 그러자, 이건 또! 일식이다! 일식이 시작되고 있다! 나는 너무나 기뻐서 정신을 잃을 뻔했다.
태양의 표면에 검은 테가 점차로 넓어간다. 나의 심장은 굉장히 큰 소리로 울리었다. 모두가 움직이지 않고 하늘을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 눈은 나에게로 집중되었다.
자? 정신을 차리지 않고서는! 나는 엄숙한 몸짓으로 두 팔을 태양을 향해 쳐들었다. 일생 일대의 당당한 나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사람들은 당황해 했다.
그 때 외침 소리가 들리었다.
"빨리 불을 붙여라!"
하고, 멀린이 외친 것이다. 그러나,
"붙여서는 안 된다!"
하고, 곧 아서 왕이 힘찬 소리로 중지시켰다.
멀린은 자리에서 튀어나왔다. 자기 자신이 불을 붙일 작정인 것이다. 나는 힘껏 위엄 있게 외쳤다.
"움직이지 말아라! 반항하는 자는 비록 국왕일지라도 즉시로 번개로 태워 죽이겠다!"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어깨를 움츠렸다. 멀린조차도 굴속에 들어가는 쥐처럼 살금살금 돌아갔다. 나는 마음을 놓았다. 잘 됐구나!

<이 일식은 진짜인 것이다. 바보 같은 클라렌스 놈! 나에게 하루 틀리게 날짜를 가르쳐 준 것이다.>
 
아서 왕의 소리가 울리었다.
"제발 자비로서 재난을 중지해 주소서. 귀하신 분이여! 무엇이든지 바라시는 대로 할 터이니까, 나라의 절반을 드려도 좋습니다. 우리들로부터 태양을 빼앗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왕을 따라 사람들은 울기도 하고 아우성을 치기도 하며, 나에게 절을 하기 시작한다.
나 역시 이같이 기막힌 효과가 있었기 때문에 이제 중지해도 좋지만, 유감스럽게도 일식을 중지시킬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그럴싸하게 시간을 끌기로 한다.
"음, 그렇다면 좀 생각해 보겠다."
아서 왕이 물었다.
"얼마 동안 생각하시는 겁니까? 오오! 이 세상은 지극히 어두워 갑니다. 제발 자비를 베풀어주옵소서. 오오 오오! 얼마 동안이나 생각을......?"
나 역시 일식이 어느 정도 오래 계속될는지 모르므로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오늘 일식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하다. 6세기의 일식이라면 내일 21일에 있을 예정이다. 나는 옆에 있는 사제의 소매를 슬그머니 당겼다.
"신부님, 오늘은 며칠이죠?"
"21일이옵니다."
"뭐! 틀림이 없겠지? 확실히 말해 줘."
"틀림이 없습니다"
사제는 정중하게 대답했으나, 나는 전신에 물을 끼얹은 것처럼 오싹했다. 클라렌스, 바보 같은 놈!
나에게 잘못하여 하루를 틀리게 가르쳐주었던 것이다. 소홀하기 짝이 없다. 나는 클라렌스가 오늘이 20일이라고 가르쳐주었기 때문에, 마법은 내일이라고 했던 것이다. 오늘이 21일이라면 별일이 없다. 이 일식은 진짜인 것이다. 지금은 6세기로서 여기가 아서 왕 궁정이라는 것도 진짜다. 좋아, 그렇다면 이쪽도 배짱을 가지자. 이 일식을 최대한으로 이용하지 않으면 손해를 본다.
주위는 점점 어두워지고 사람들의 무서움도 그와 같이 깊어갔다. 나는 큰 소리로 말했다.
"생각할 것은 생각했는데, 국왕 폐하여! 지금 나는 벌주기 위하여 세상을 캄캄하게 하고 있소. 그러나 태양을 없애거나 없애지 않거나 는 국왕의 생각에 달렸소. 나는 토지 같은 건 필요 없소. 국왕은 이때까지 대로 나라를 다스리시오. 그러나 나를 지금부터 나라의 최고 대신으로 하고, 나의 지혜를 빌리도록 하시오. 그리고 나의 지혜의 덕분으로 나라의 수입이 많아지면 그 1퍼센트만 나에게 지불하시오. 나는 그것만으로는 생활이 되지 않아도 더 달라고는 말하지 않겠소. 그것이 좋다면 태양을 이 세상에 되찾아 주겠소."
사람들은 와! 하고 기쁜 소리를 질렀다. 그 중에서 아서 왕의 분명한 말이 울려 퍼졌다.
"밧줄을 끊어 드려라! 국민이여! 신분이 높거나 낮은 자나, 돈을 가진 자나 가난한 자나 모두 이분을 존경해야 한다. 이분은 이제부터 왕의 오른팔이 되어 힘을 나타내는 최고의 대신이다!"
그리고 나를 향하여 정중히 말했다.
"제발 이 다가오는 어둠을 없이 하고 빛과 기쁨을 이 지상에 되돌려 주옵소서. 모든 사람은 당신을 찬송할 것입니다."
그러나 일식은 아직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좀 더 시간을 벌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나는 곧 이렇게 대답했다.
"또 불평이 있습니다. 적어도 나라의 중신(중요한자리에 있는 신하)인 나를 벗겨 놓은 채로 있게 하다니 무례하기 짝이 없소. 왕의 수치도 될 것입니다. 나의 옷을 돌려주시오."
"그 옷은 그대에게 적당하지 못합니다. 여봐라! 왕족이 입는 상등품을 곧 가져와라."
왕은 즉시 신하에게 지시를 했다.
내가 6세기 풍의 이상한 모양의 옷을 고생하며 입고있는 동안에 주위는 점점 어두워 졌다. 사람들은 무서움에 떨면서 새까만 하늘에 빛나는 별을 보고,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떨었다. 일식은 지금이 절정이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나는 바른손을 높이 쳐들고 엄숙하게 말했다.
"마법이여 풀리어라. 조용히 사라져라!"
암흑의 세계는 묘지처럼 조용했다.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사람도 없다. 그러나 이윽고 잿빛의 가느다란 테가 태양의 가장자리에 나타났다. 그리고 세상은 점차로 본래의 밝음으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기쁨의 환성을 울리면서 큰 파도처럼 내 옆으로 밀려왔다. 나는 감사를 받고, 높임을 받고, 아무튼 굉장했다. 물론 클라렌스가 맨 먼저 뛰어 왔다. 이 소년은 덜렁거리기는 해도 귀여운 놈이다.
 
멀린의 탑의 마술
 
나는 이제는 이 나라에서 두 번 째로 높은 인물이 되었다. 국왕 다음 가는 힘을 가진 대신이다. 그러므로 서비스도 만점이었다. 보스(왕초)로 되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보스경이라고 부르도록 했다.
국무대신 보스경은 금으로 자수를 놓은 비단과 비로드의 옷을 입고, 궁정에서 왕의 방과 똑같은 방에서 살게 되었다. 옷은 보기에는 매우 좋으나, 입는 기분은 전혀 좋지 않다. 그러나 익숙해지면 몸이 옷에 맞게 될 것이다.
집도 다만 넓을 뿐이며, 일일이 조각한 큰 의자 역시 보기에는 좋으나 앉는 기분이 나쁘기로는 말도 할 수 없다. 게다가 얼마나 불편한지 비누도 성냥도 없다. 거울도 없다. 사람을 부르는데도 초인종이 없다.
하인은 많았으나 모두 옆방에 황송해 하며 있기 때문에 용무가 있을 때마다 부르러 가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가스등도 촛불도 없다. 하숙집에서 볼 수 있는 접시에 싸구려 버터 같은 기름을 담은 것을 방안의 벽에 많이 걸어 놓고, 그것에 누더기를 넣어 불을
붙이면 그것이 조명이 되는 것이다. 밤의 외출에는 횃불을 든 5,6명의 하인이 뒤를 따른다.
 
<자, 나는 이제 이 나라에서 둘째 번으로 높은 인물이 되었지만 얼마나 불편한 세상이냐. 비누도 없고, 성냥도 없고, 거울도 없으니......>
 
책도, 종이도, 펜도, 잉크도 없다. 놈들이 창문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에는 유리 한 장 끼어 있지 않다. 유리란 놈은 시시한 것이지만, 정작 없으면 참으로 귀중품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가장 곤란한 것은 설탕도, 차도, 커피도, 담배도 없는 것이었다. 마치 무인도의 로빈슨 크루소와 별로 다름이 없었다. 그러므로 머리와 손을 사용하여 여러 가지로 편리한 것을 만들기로 했다.
이것은 나의 장기였다. 그리고 몹시 혼난 것은 전국의 사람들이 나를 보고 싶다고 큰 소동을 벌인 것이었다. 어쨌든 대마왕의 괴인이므로 멀리서 여행을 해서라도 한번 구경해 둘 만한 가치는 있을 것이었다.
나는 하루에 열 번도 더 나를 경배(존경하여 공손히 절함)하려고 온 작자들에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처음 한동안은 그래도 전연 나쁜 기분은 아니었으나, 그러는 동안 몹시 귀찮게 되었다. 그러기는 해도 내가 알지 못할 일이 한 가지 있었다. 그것은 나에게 싸인을 해달라고 아무도 청하지 않는 일이었다. 클라렌스에게 물어 보았더니, 글자라는 것은 거의 모두가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굉장한 인기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멀린은 심사가 비뚤어져서 전혀 밝은 얼굴을 하지 않았다. 나에게 장기를 빼앗기어 원통하기도 하고 질투심이 나기도 하여 얼굴빛까지 나빠졌던 것이다.
그것은 멀린의 마음 대로이지만, 나에게는 좀 귀찮은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 나를 존경하는 국민들이 완전히 나의 마법의 팬이 되어 더 무엇인가 마법을 보여 달라고 조르기 시작한 것이다. 멀리서 일부러 나를 경배하러 온 사람들은 자꾸만 절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제발 부탁입니다. 내가 고향으로 가기 전에 조금만 마법을 보여주시면 고향에 대한 좋은 선물이 되겠습니다."
이러한 선량한 사람들의 소원을 어찌 저버릴 수 있으랴. 월식이라면 앞으로 2년이면 온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너무 늦다. 월식을 앞당겨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돈을 내도 좋다고 생각했다. 쓸모도 없을 때 시간을 허비한 나머지 어정어정 온다는 것은 참으로 유감천만이다.
그리고 클라렌스의 말에 의하면 멀린이 나를 '굉장한 허풍쟁이의 가짜 마법사이며 그 증거로서는 그놈은 그 후 한번도 기적을 보여주지 못하지 않는가.' 하고 돌아다니는 모양이었다.
어떻게 손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병사에게 명령하여 멀린을 체포하고, 내가 그전에 들어가 있던 지하 감옥에 처넣었다. 그리고 나팔과 전령(명령을 전달하는 사람)을 시켜 명령을 내렸다.
(앞으로 한두 주일이 되면 일의 여가를 보아 멀린의 석탑을 하늘의 불에 의해 산산조각을 내어 보여 주겠다. 그때에는 멀린의 나에 대한 욕을 기뻐한 사람은 조심하지 않으면 위험하다. 기적은 이것으로 당분간 보여주지 않겠다. 진짜 마법사는 그같이 자꾸만 기적을 보여주지는 않는 것이다. 여기 대해 불평을 하는 자는 마법으로 말을 만들어 혹사하겠다.)
나는 충실한 부하 클라렌스에게 잘 설명하여 마법을 준비시켰다. 이번 기적은 좀 준비가 필요한데, 네가 무심코 사람들에게 말하기만 하면 즉시 죽고 만다, 하고 공갈을 쳤기 때문에 클라렌스가 지껄일 걱정은 없었다.
그러나 재료상이나 공장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나는 머리만을 믿고 겨우 마법에 필요한 물건들을 만들었다. 폭약, 피뢰침, 전선 등을........
멀린의 탑이라는 것은 4백년 전에 돌로 만든 탑이었다. 보기에는 단단해 보이나, 의외로 무너지기 쉽다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19세기에 살아 있었을 때 이 탑에 대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멀린이 마법을 써서 큰돌을 모아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탑은 궁전에서 1킬로 정도 떨어진 황폐한 언덕에 솟아 있었다. 우리들은 밤중에 탑에 몰래 들어가서 폭약을 탑의 아래 12개소에 5미터 정도의 깊이로 파묻었다. 그리고 여기에 전선과 피뢰침을 붙여 놓았다.
그 후 나는 날씨만을 주의하고 있었다. 이 2주일 동안은 좋은 날씨가 계속되었는데, 마침 14일째 되는 날 아침 나는 전령을 돌아다니게 하여 탑 가까이에 절대로 가서는 안 된다고 명령했다. 이제 날씨가 나빠질 때다. 나빠지면 우레와 비가 쏟아진다. 이 하루 이틀 동안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나는, 전령에게 '지금으로부터 24시간 이내에 기적을 연출하여 보이겠다. 기적을 행할 때에는 그 예고로써 성에다 낮이면 붉은 깃발, 밤이면 횃불로써 신호를 한다.' 하고 말하게 했다.
꽤 빈번하게 소나기가 쏟아졌다. 우선은 예정 대로다. 그러나 예정이 어긋나서 하루 이틀 연기되어도 문제는 없다. 또 나라의 일이 바쁘니까 기다리게 하면 그걸로 끝난다.
나라 안을 들끓었다. 사람들은 이 기적을 구경하기 위하여 먼데서 까지 밀려왔기 때문에 성 주위는 사람들로 뒤덮이게 되었다.
이윽고 해가 질 무렵 습기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구름이 두껍게 끼기 시작했다.
"좋아, 횃불을 올려라!"
성의 탑에 기적을 행하는 신호로써 횃불을 올리자 나는 성의 탑에 자신만만하게 올라갔다.
거기에는 이미 아서 왕을 비롯하며 궁정의 중요한 사람들이 모여들어, 저물어 가는 어스름 속의 서쪽 하늘에 솟아 있는 멀린의 탑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부하에게 명령하여 멀린을 지하 감옥에서 데려 내오게 했다. 멀린은 겸손하고 정중할 얼굴을 하고 있었다.
"멀린, 자네는 내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데도 나를 살아 있는 채로 화형에 처하려고 했다. 또 요즘에는 돌아다니며 나의 욕을 했다. 그러므로 하늘에서 불길을 불러 너의 탑을 부셔 보이겠다. 네가 마법사라면 마술의 힘으로 나의 마법을 막아 보는 게 어때. 할 수 있어?"
"할 수 없다니 될 말인가. 곧 그대의 마법을 깨뜨려 보여 주겠노라."
멀린은 지붕의 돌에 손가락으로 몇 개나 둥근 원을 그리고 그 속에서 한줌의 가루를 불태웠다.
이상한 연기가 하늘하늘 하늘에 올라갔다.
기분 나쁜 놈이다. 사람들은 무서워서 슬금슬금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멀린은 입속말로 중얼중얼 주문을 외면서 두 손으로 공기를 잡는 모양을 하고, 그리고 뱀처럼 몸을 꿈틀거리며 기도를 시작했다. 허공에 손발을 내저으며 처음에는 천천히 했으나 점차로 미친 것처럼 심하게 흔들고, 나중에는 돌아가는 풍차처럼 두 손을 마구 흔들어 댔다.
그 동안에도 바람은 점점 세게 불어 대었다. 횃불은 이리저리 흔들리고 어두움을 벽에서 춤추게 했다. 주위가 어두워졌다. 갑자기 큰 빗방울이 쏴아하고 퍼부어 졌다. 어둠을 째고 번개가 번쩍이었다.
자아, 드디어 나의 차례다. 때는 다가왔다. 피뢰침은 전기를 띄기 시작한 것이 틀림없다.
"멀린, 이제는 충분히 주문을 걸었겠지. 나는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주고 방해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자네의 마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거지. 이제부터는 나의 차례다." 하고, 말하고 나서 나는 세 번 허공에 손을 올리었다. 그 순간 천지가 흔들리는 심한 소리와 함께 거대한 분화(화산이 터져서 땅 표면으로 내뿜는 현상)와도 같은 불길이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밤의 어둠은 대낮과 같이 밝아지고, 멀린의 낡은 탑이 공중에서 갈라져 무너지는 모습을 똑똑히 드러나게 했다. 마치 이 세상의 지옥 같았다.
불은 또 갑자기 겁낸 사람들의 얼굴도 비치었다.
효과는 적중, 다음날 아침 궁정 앞의 광장에는 마법의 효과에 겁을 먹고 거미 새끼가 흩어진 것처럼 도망친 수천의 구경꾼들의 수레바퀴 자리가 나있을 뿐, 강아지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아마 내가 다시 한번 기적을 해 보인다고 해도 이제는 겁을 먹고 아무도 오지 않을 것이다.
멀린의 인기는 뚝 떨어졌다. 아서 왕은 이 일이 있은 후부터는 멀린에게 급료도 주지 않을 뿐더러, 멀리 쫓아 버리자고 까지 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말리고, 멀린의 낡은 탑을 부셔 버린 대신 나라에서 새로운 탑을 만들어 줍시다, 하고 말했다. 그리고 멀린에게는 하숙집을 하면 어떨까 하고 살아가는 지혜까지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나 때문에 코가 납작해지고, 싸구려 마법사가 되어 버린 멀린은 외면을 하며, 볼이 부어 가지고 감사해 하지도 않았다. 그만큼 창피를 당했으니까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관습
 
멀린의 탑의 마법 이후 나의 평판은 대단한 것이었다. 실력을 가지고 있는 인간으로서 아서 왕의 궁정에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한동안 아침에 눈을 뜨면 재미있는 꿈을 꿨구나하고, 싱글벙글 웃으면서 공장의 사이렌 소리를 기다리지만 좀처럼 그 같은 소리는 울려오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나는 6세기의 아서 왕의 궁정에 살고 있다는 것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게 되었다. 정신병원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으며, 그리고 나는 점차로 이쪽이 썩 살기 좋다고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어느 쪽인가 하면 19세기와 교환할 생각은 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 나라는 기묘한 곳이어서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은 얼마 안 되는 수의 사제뿐이며, 그 외는 온순한 가축 같은 바보들뿐이다. 거기에 나 같은 지식도 머리도 좋은 우수한 인간이 나타나게 된 것이었다.
단 나와 같은 위인도 19세기에는 보통 공장장이다. 코네티컷의 번화한 거리에 그물을 치고 있으면, 매일 나보다 우수한 인간을 백 명은 걷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는 6세기의 세상이므로 나도 국왕 이상의 힘을 가질 수 있으며, 어찌하면 국왕 이상의 힘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와 왕의 힘을 합쳐도 이길 수 없을 만큼 우쭐대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교회였다. 그러나 교회 같은 것은 현재로서는 방해가 되지 않는다.
실지로 여기는 이상한 나라였다. 국민은 토끼처럼 온순했다. 교회나 왕이나 귀족에게 자기를 낮추어 정성을 바치고 있는 모양은 보기만 해도 가엾을 정도였다. 이러한 나라는 대체 무엇 때문에 있는 것일까? 국민은 교회와 왕과 귀족에게 엎드려 굽실거리기 위해 살아 있는 것 같은 것이었다.
국민은 노예와 자유인이라는 두 가지 구별이 있었다. 자유인이라는 것은 이름만은 좋으나 해방된 노예이며, 노예와 비슷했다. 그러나 누구 하나 불평하는 사람은 없었다. 참으로 이상하다. 이것은 조상 대대로 내려오며, 오랜 옛날부터 그렇게 훈련되어 왔기 때문에 문어처럼 물렁물렁 뼈가 없이 젖어들어 이제는 이상하다고 생각지도 않는 것이다.
교회가 전세계에 그처럼 우쭐하게 되기까지는 인간은 아직 인간다웠다. 그런데 교회가 제멋대로 날뛰어 인간의 정신과 사고 방식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렸다. 교회는 사람들에게 겸손은 좋은 행동이라고 가르쳐 굽실거리는 것을 강요했다. 왼쪽 뺨을 때리는 자에게는 오른쪽 뺨을 돌려 치게 하라고 교회는 가르쳤다. 괴로움을 참고 따르는 것은 좋은 행동이라고 가르쳤다. 탄압하는 자에게는 반항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는 신으로부터 받는 것이라고 하여 여러 가지 계급을 만들고 신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라고 가르쳤다.
교회가 흘려 내보낸 독은 현재에도 아직 그리스도 교도의 혈관 속에서 재난의 근원이 되고 있다.
아직도 영국 국민 중 우수한 사람들까지도, 바보 같은 놈이 왕족이라든지, 왕이라는 지위를 숭배하는 썩은 부모로부터 자식이 이어받는 것을 만족하게 생각하고 있다.
나라의 괴물 같은 헌법은 이러한 지위를 국민에게 넘겨주는 것을 금하고 있는데, 영국인은 이 이상한 결정을 만족할 뿐 아니라 자랑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인간은 그러한 처지에 태어나 그와 같이 키워지면 어떤 어리석은 습관에도 참을 수 있게 되는 모양이다.
이야기를 아서 왕의 궁정으로 돌이키겠다. 나는 부모로부터 아들에게 인계된 좋지도 않은 지위 같은 것은 가지고 싶지 않다. 내가 탐내는 것은 국민이 진심으로 존경해 주는 일이다. 자기의 실력과 노력으로 얻는 자랑스러운 이름이다.
 
기마전
 
카멜롯 성에서는 기마 시합이라는 것이 성행했다.
이 시합은 그야말로 잔인하고도 어리석은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대부분 출석하여 구경을 한다. 그것은, 인간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호의를 얻으려면 다른 사람이 재미있어 하는 일에 모르는 체 해서는 좋지 않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정치가로서 어떻게 출세할 수 없을까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기사들 중 랜슬롯 경 등은 매번 나도 참가하라고 권했으나, 나는 별로 급할 것도 없으니 차차 보자고 대답해 두었다. 경기는 대체로 매주 한 번 있었다. 5백 명 정도의 기사가 출전했는데, 기사들은 전국에서 많은 부하를 거느리고 모여들었다. 그리고 거의가 귀부인인 체하는 여자를 데리고 왔다.
그리고 노래와 도박과 춤과 술로써 힘껏 제멋대로 행동하고, 시합이 시작되면 기사는 창을 들고 말 위에서 서로 '야아, 야아!'하고 소리친다. 그리고 상대방의 빈틈을 타서 말에서 떨어뜨린다. 거꾸로 떨어지는 것을 등을 향하여 꼬챙이로 푹 찌른다!
관람석에 앉아 있는 귀부인들은 기절하기는커녕 열심히 박수를 치고, 더 잘 보려고 앞으로 몸을 내민다. 그 중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는 귀부인이 있으면 지고만 기사를 좋아한 사람인 것이다. 그러한 여자에게는 있는 것 없는 것 할 것 없이 희롱하는 이야기가 꼭 퍼진다. 그것이 또 그 여자의 목적인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나에게 있어서 별로 유쾌하지 않은 사건이 일어났다.
나는 가리스 경이라는 기사를 좋아하고 있었다.
가리스 경은 아서 왕의 조카로써 원탁 기사의 한 사람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이 있는 곳에서는,
"가리스 경, 그대는........
하고, 말해도 아무도 없는 곳에서는,
"여어, 가리. 어때."
하고, 친하게 부르는 사이였다.
시합 날 나는 대신 석에서 구경하고 있었다. 오늘은 가리스 경이 시합에 출전하게 되어 있었다. 상대는 디네단 경이라는 바보였다.
디네단 경은, 자기보다 머리가 빨리 돌아가는 사나이는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을 붙잡고서는 우습지도 않은 농담을 기분이 나빠질 때까지 지껄이는 버릇이 있었다.
이 디네단 경은 아까 까지 나를 붙잡고 너무 들어서 싫증이 나는 농담을 천만 번도 더 되풀이하여 나를 지치게 한 후, 갑옷을 쨍쨍, 쾅쾅하고 철물점의 도구상자와 같은 소리를 내면서 내 곁에서 떠났다.
이윽고 시합이 시작되었다. 디네단 경은 내가 좋아하는 가리, 가리스 경의 창에 몹시 당했다. 나는 기분이 좋아서 나도 모르게,
"놈을 해치워라!"
하고, 외치고 말았다.
그런데 시합장에서는 또 한 조가 따로 시합을 하고 있었는데, 그쪽의 사구라마 경이라는 기사가 가리스 경과 부딪치고 말았다. 쿵! 사구라마 경은 말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자아, 사구라마 경은 잔뜩 화가 났고, 내가 외친 것을 들었기 때문에, 나의 마법에 의해 말에서 떨어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 사람들의 돌대가리로서는 다시 다른 생각은 하지 못한다. 사구라마 경은 말에서 떨어진 상처가 나은 후에 나에게 심부름꾼을 보내었다. 결투신청이었다. 결투시기는 4년 후로 되어 있었다. 나는 쓸데없는 변명이나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깨끗이 이 제의를 받아들였다.
사구라마 경은 그 4년 동안 무술 수업(무기와 무력으로 상대와 겨루는 재주를 닦아 익힘)을 하러 떠나기로 했다. 무술 수업은 그 때 하나의 유행이었으며, 보통 '성배(신성한 술잔) 찾기'라고 불리었다. 예수가 '최후의 만찬' 때에 사용한 잔에 아라마테아의 요셉이 십자가에 못 박혔던 예수의 피를 받았다고 한다.
그 잔이 영국의 어디에 있다는 전설에 의해 잔을 찾으러 나서는 기사는 추어올림을 받았다. 그러나 그 잔을 찾아 낸 사람은 없고, 단지 멍청하게 여행을 계속할 뿐이다. 성배가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찾는 사람도 발견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며, 발견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하면 좋은지를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나에게, '사구라마 경이 무술 수업에 나갔기 때문에 귀하도 여행을 떠나는 것이 좋을 거요.' 하고 모두 권했다. 진심으로 친절하고 진지하게 말하는 데에는 나도 웃으면서 응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험 여행 출발
 
그러나 나에게는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나는 몰래 어떤 일에 열을 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사람이 모르는 곳에 공장이나 다른 설비를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여기에 전국에서 뽑은 우수한 소년을 모아 교육하고 있었다. 이제 앞으로 4년이 지나면 이들 소년들은 나의 학교에서 공부하여 모두 쓸모 있는 인간이 되어 줄 것이다.
그 얼빠진 클라렌스 소년도 본시 온순하고 영리하므로 나의 교육을 받고는 자꾸만 진보하여 나의 훌륭한 한 팔이 되었다.
나는 공장에서 전화를 만들어 몰래 그것을 여러 곳에 가설해 놓았다. 여러 곳에 나의 비밀 사무소를 세우고 앞날이 기대되는 소년을 그 사무소장으로 앉혔다.
전화선은 밤중에 작업하여 가설했다. 전주를 세우면 뭐냐 뭐냐? 하고 큰 소동이 일어나기 때문에 지하선으로 했다.
나는 이렇게 하여 국내의 사정을 알고, 그것에 의해 아서 왕에게 어떤 정치를 하면 좋다는 것을 귀띔해 주었다. 국민이 좋아하는 정치를....... 그리하여 국민이 내어야 하는 세금은 평등하게 되고 몹시 낮아졌다. 내가 하는 일은 국민들로부터 매우 감사를 받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세월이 자꾸만 흘러갔다. 아서 왕은 문제의 사구라마 경과 나와의 결투에 대해 매우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4년의 세월도 거의 끝나고 있었다. 아서 왕은 내가 모험 여행을 떠나 큰 공훈을 세우고 돌아오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구라마 경을 물리치기를 희망한 것이다.
그런데 이 나라만큼 큰 허풍쟁이들이 모여 있는 곳도 또 없었다. 남자뿐 아니라 여자도 있었다. 그리고 끊임없이 '큰 허풍쟁이 여행자들이 성으로 들어왔습니다 .어디의 공주님이 먼 곳에 있는 성에 갇혀 무서운 거인에게 괴로움을 당하여 구원을 청하고 있습니다.' 등등의 허풍을 떨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그러할 때에 그 이야기는 사실인지, 그 성은 무슨 성이며 어떻게 가면 되느냐고 확실히 물을 것이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그런 일은 전혀 하지 않는다. 무조건 믿을 뿐이다. 그러므로 질문 같은 것은 있지도 않다.
어느 날, 성에 여행을 하는 한 소녀가 기묘한 호소를 하러 왔다. 그 이야기에 의하면.....
그 소녀의 주인은 지금 44명의 젊고 아름다운 공주님과 함께 크고 어둑어둑한 성에 26년 동안이나 갇혀있는 모양이다. 성의 주인은 눈이 하나이며 손이 4개나 있다. 삼 형제의 거인이라고 한다.
아서 왕과 원탁의 기사들은 그 호소를 완전히 곧이듣고 말았다. 그리고 기사들은 '소생에게 그 괴물을 퇴치하러 가게 하옵소서.' 아니, '저에게 그 임무를 꼭....'하고, 서로 경쟁하여 아서 왕에게 부탁했다.
그런데 말이다. 아서 왕은 옆에서 싱글거리며, 청도 하지 않은 나에게 그 임무를 주었다. 원탁 기사들은 내가 부러워 죽을 지경이 되었다. 실지로 아서 왕은 나를 그 이상 더 할 수 없을 만큼 좋게 봐 주고 있어 일부러 그 큰 임무를 내게 주었던 것이다.
클라렌스는 이 뉴스를 듣고 뛰어오르면서 기뻐하며, 나의 행운을 축하하고, 아서 왕의 처사를 칭송하면서 방안을 뛰어다녀 굉장한 먼지를 일으켰다.
나만해도 다른 기사들의 앞이고 해서 기쁜 듯이 웃고는 있었으나, 속으로는 '이렇게 어리석은 일은 없다. 아서 왕도 참 곤란한 사람이다. 나에게 이러한 임무를 명하다니......'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와 같이 이미 결정한 바에는 그런 생각만을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예의 여행하는 소녀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그런데 그 소녀는 아름답고 친절한 것은 좋았으나, 괴물 퇴치 여행에 쓸모가 있을 것 같은 이야기는 하나도 들을 수 없었다. 여자는 사치스런 손목시계와 같은 것이다. 보기에는 좋으나 실용성은 없다.
"이 봐요, 아가씨. 대체 당신은 어디서 왔지요?"
"모다의 나라입니다."
"네에, 그런 나라는 들은 일도 없는데. 당신의 이름은?"
"알리산도라 카티로이즈 공주라고 합니다."
"그럼 그 40 몇 명의 공주와 세 사람의 거인이 있는 성은 어디에 있습니까?"
 
<멀고 먼 나라에 있는 거인의 성이라고요? 지도도 없고 방향도 모른다. 이런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궁정에서는 모두 믿고 있으니, 할 수 없는 바보들이지!>
 
"그건 크고, 튼튼한 성이며 멀고 먼 나라입니다."
"어느 정도 멉니까?"
"아아, 멀고멀어서, 도저히 잴 수가 없습니다 그 것은 신의 생각입니다."
"그럼 어느 쪽 방향입니까?"
"아아, 여기서는 방향 같은 것은 도저히 말못합니다. 길은 곧바르지 않고 구불구불합니다. 어떤 때는 동쪽, 어떤 때는 서쪽, 어떤 때는 남쪽, 어떤 때는 북쪽에...... 이것도 신의 생각입니다."
"오오, 이제 좋아요, 아무래도 좋아요, 제기랄! 아니, 실례. 나는 오늘 몸 사정이 좋지 않아서 신경질이 나버렸습니다. 이게 나의 지병이라서 어쨌든 내가 태어나기 전에 있었던, 썩 옛날에 태어난 닭을 먹었기 때문에...... 1천 3백 년 전에 낳아진 닭...... 에, 그런 일은 어찌해도 좋아요. 그런데, 그러면 알리산도 공주, 거기 가는 지도를 가지고 있어요?"
"치즈? 그것은 요즘 이교도(기독교 이외의 종교를 믿고 받드는 교도)가 바다를 넘어서 가지고 온 것이 아니어요? 프라이로 하여 양파와 소금을 곁들였습니다....."
"하아, 지도도 모르셔요. 아니, 좋습니다. 됐습니다 그럼 잘 있어요. 이 봐 클라렌스, 이 분을 보내 드려라."
이렇게 어리석은 호소를 궁정의 작자들은 왜 기뻐하고 흥분하여 듣는 것일까? 마치 20세기의 경찰의 검시관이 시체를 가지고 장사를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클라렌스가 되돌아왔으므로 나는 불평을 했다.
"농담이 아니다. 길도 몰라 가지고 어떻게 가."
"영주님. 그건 아무 것도 아닌 일입니다. 알리산도 공주님이 함께 가기 때문에."
"함께? 말도 안 되는 소리. 방해가 될 뿐이다."
나는 시무룩한 얼굴을 했다. 그러나 클라렌스는 태연했다.
"그러나 기사는 약한 사람을 감싸주는 걸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나쁜 것을 퇴치하면 공주와 결혼하기로 됩니다, 대체로 그렇게 결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클라렌스는 소리를 낮추었다.
"그렇잖으면 영주님에게는 부인이 될 정해진 사람이 있는 것입니까?"
"응, 프스 후리나간과 장래 결혼한다고 정해져 있기는 하나......"
"하아, 그럼 그 프스 공주님은 어느 지방의 귀족의 공주님입니까?"
"응, 등 하우트포드의......"
하고, 말하고 나서 나는 깨달았다. 지금은 6세기다. 콜럼버스도 낳아 있지 않고 그러므로 신대륙도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동 하우트포드 같은 것은 이 세상에는 없다.
"또, 나중에 가르쳐주겠다."
나는 얼버무리고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프스는 또 1천 3백 년 후가 되지 않으면 낳아지지 않는다. 클라렌스가 집요하게 언젠가 소개해 달라고 부탁하므로 좋다고 말하기는 했는데......
그러는 동안 기사들이 몰려와서 모험 여행을 시작할 나에게 축하해 주고 격려해 주었다. 모두 천진난만한 호인들이다. 기사들은 나에게 거인의 마법을 풀 주문이라든지, 상처를 입었을 때의 약에 대해서 가르쳐 주었다.
내가 틀림없는 마법사라면 지옥에서 갓나온 싱싱한 악마라도 문제가 되지 않으며, 갑옷과 투구도 필요 없을 것인데, 그건 느끼지 못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떻게 잘못 되어 있는 모양이다.
관습으로는 출발은 아침 일찍이로 되어 있는 모양이다. 다음날 아침 나는 일찍 일어나서 출발 준비를 했다. 그런데, 갑옷을 입는 데에 땀 깨나 흘렸다. 우선 몸 전체에 담요를 감고 그 위에 쇠사슬로 만들어진 셔츠를 입는다. 이것이 무겁기란! 천하에 다시없는 불유쾌한 셔츠이다.
다음은 구두다. 구두는 납작하고 위에 철로 된 밴드가 몇 줄이나 들어 있다. 뒤꿈치에는 이상한 박차(말을 탈 때 구두 뒤축에 대는 쇠로 만든 물건)가 달려 있다. 구두를 신은 다음에는 정강이받이라는 것을 붙인다. 넓적다리에는 넓적다리받이를 붙이고, 그것이 끝나면 등과 가슴 차례가 된다. 가슴에는 가슴받이를 달고 넓은 강철의 밴드를 겹친 스커트를 두른다. 이것은 앞쪽은 길게 드리워 있으나, 뒤는 부채형으로 열리기 때문에 의자에 앉을 수 있다. 석탄 버킷을 거꾸로 한 모양이다.
이것이 끝나면 칼을 차고, 팔에는 난로 연통 같은 철 파이프를 끼고, 머리에는 철로 된 쥐틀 같은 것을 쓴다. 마치 촛대통 안에 양초를 세운 것 같은 모양이 되어 몸도 움직일 수 없다. 몸집만 크다. 잘못된 호도 같다. 큰 껍질을 깨면 안에는 조그마한 열매가 있는 것 같은.
하인들을 시켜 겨우 준비를 끝냈을 때 태양이 솟아올랐다.
자, 용감한 출발! 이라는 것이다. 국왕을 비롯하여 궁정의 중요한 사람들은 총출동하여 나를 배웅하기 위해 모이고 있다.
말이 끌리어 왔다. 그런데 이런 철물점의 괴물 같은 차림으로서는 어떻게 혼자서 맡을 탈 수 있을까. 그리하여 일사병에 걸린 환자를 사람들이 병원으로 안고 들어가는 것처럼 안아 가지고 나를 말 위에 밀어 올렸다. 발도 제대로 등자(말을 탔을 때 두 발로 디디게 되어 있는 기구)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창은 돛대 같은 놈을 왼쪽 발 옆에 꽃아 손에 쥐고, 마지막에 방패를 목에 드리웠다. 이걸로 드디어 출발이다!
예의 알리산도 공주는 내 뒤에 앉아 나를 붙잡았다.
말은 걷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손을 흔들어 주었다.
언덕을 넘고 숲을 뚫고 지나는 길가에서 주민들은 매우 정숙하게 절을 했다.
그리나 거리 끝에서 쥐의 꼬리를 쥐고 빙빙 돌리며 놀고 있던 아이들만은 저마다,
"야, 싫은 놈이 왔다!"
하고, 외치며 돌멩이를 집어던졌다.
나는 잘 알고 있다. 어린이들만이 진실을 말한다는 것을. 이것은 어느 시대에도 다름이 없다. 거룩한 신의 가르침을 퍼지게 하는 예언자는 어린아이인 것은.
"여어, 뺀들 머리!"
하고, 놀려댈 수 있는 것도 이들 조그마한 사내애들이다. 부캐넌(미국의 15대 대통령)이 대통령이었던 시절에도 그러했다. 이것은 나 자신이 그 현장에 있어 한 몫을 했으니까 틀림없다. 부캐넌 대통령은 화를 내고 소년들을 잠잠하게 만들었다.
보스경이 되어 있는 나도 말에서 내려 해치우고 싶었으나, 내리면 최후에 혼자서는 말을 탈 수 없다. 그래서 그만두었다. 그야말로 기중기 (무거운 물건을 들어올려 아래위나 수평으로 이동시키는 기계)가 없는 나라는 이래서 곤란하다.
 
괴로운 갑옷과 투구
 
우리들은 시골길을 곧바로 걸어갔다. 아침은 아직 이르고 서늘했다. 언덕 위에서 바라보자, 녹색의 골짜기 사이에 구불구불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아름다운 숲도 여기저기 펼쳐져 있고, 큰 떡갈나무가 검은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멀리에는 산줄기가 파도처럼 넘실거리고 있고, 그 파도의 꼭대기에 언뜻언뜻 성이 보이고 있었다.
우리들은 아침 이슬이 빛나고 있는 길을 황홀한 기분으로 걸어갔다. 숲을 지나면 또 숲이 나오고, 숲 속을 빠져 나오면 또 숲이 기다리고 있는 길을 지나기를 여러 번 되풀이하는 동안에 태양은 높이 솟아올랐다.
(손수건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나는 다만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단 처음에는 말이다.
그런데 태양이 내리쬐게 되자, 단지 속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되게 되었다. 투구 속은 땀이 흠뻑 배이고 있었다. 이제는 참을 수 없다.
그런데 제기랄! 손수건은 투구 속에 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재빨리 벗을 수도 없는 물건이다.
짭짤한 땀이 뚝뚝 떨어져 눈으로 스며든다. 이것은 책에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로 읽으면 아무 것도 아니겠지만, 실제로 이러한 봉변을 당하는 본인에게는 굉장한 괴로움이다. 좋아, 이 다음은 누가 어떻게 웃건 자루를 입기로 하자.
궁전의 기사들은 체면만을 지키는 사람들이나 나는 스타일 같은 건 아무래도 좋다. 때때로 모래먼지가 훌훌 날아올랐다. 나는 재채기를 하기도 하고 눈물이 흘러나오기도 해서 쩔쩔맸다.
태양은 점점 높아지고 갑옷과 투구는 점점 뜨거워졌다. 말이 걸음을 떼어놓을 때마다 나의 몸은 찻잔을 넣은 상자처럼 쩔렁쩔렁 소리가 났다. 그야말로 초조해지지 않겠느냐 말이다. 마치 한증막에 들어간 것 같다. 갑옷과 투구는 1분마다 무게가 더해지는 듯 몸에 느껴졌다. 창을 든 손은 나른해졌다. 쉴 새 없이 번갈아 쥐지 않으면 안 된다.
온 몸은 땀의 시냇물. 그러는 동안 아아! 그러는 동안 나는 점점 가려워 졌다. 몸은 갑옷과 투구 속에 있고 손은 밖에 있다. 긁지 않고 참고 있으려니, 여기저기 온통 가려워서 미칠 것 같았다.
그러는 동안 한 마리의 파리가 투구의 틈으로 날아 들어와서 콧등에 앉았다. 나는 정신없이 머리를 흔들어 쫓으려 했으나, 놈은 태연하다. 이번에는 입에 앉고 다음에는 귀에 앉아 이쪽 저쪽을 핥는다.
"알리산도 공주, 투구를 벗겨 주셔요."
나는 끝내 항복했다.
알리산도 공주는 투구를 벗기고 그것에 물을 길어 왔다. 그리고 마시고 남은 물을 갑옷 속에 부어 주었다. 몇 번이나 길어와서는 부어주었기 때문에 그 기분 좋은 것이라니! 덕분에 나는 흠뻑 젖었으나, 아주 생기 있게 되살아났다.
그러는 동안 나는 다른 일이 걱정이 되어왔다. 갑옷과 투구에 익숙하지 못한 풋내기는 말에서 혼자 내릴 수 없다. 도저히 알리산도 공주의 도움 정도로써는 말도 안 된다.
어찌하여 정신이 바른 인간이 이러한 불편한 것을 입었던 것일까? 그리고 또 이 유행은 웬만해서는 없어지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이 일을 연구하여 국민이 한결같이 이 어리석은 유행을 뿌리째 없애는 운동을 일으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깊이 생각했다.
그리고 이것으로서는 담배도 피울 수 없다. 말 위에서 샌드위치를 쩍쩍 씹을 수도 없다. 장바구니를 옆에 매달아두기보다는 죽는 편이 오히려 낫다고 생각하고 있는 놈들뿐이니까. 실은 샌드위치를 투구 속에 숨기어 가지고 오려했으나 들켜 개밥이 되고 만 것이다.
알리산도 공주는 꽤 얌전하고 성질도 좋을 것 같았는데, 입이 마치 물레방아처럼 쉴 사이 없이 움직여서 거리의 짐마차의 소리처럼 들렸기 때문에 머리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이 지껄이는 기계는 펑크 나는 일도 없고, 스피드가 떨어지는 일도 없이 계속 지껄여 댔다.
이윽고 밤이 되었다. 노숙(들판에서 잠)하기에 알맞을 만한 바위 그늘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거기서 자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각오를 하고 말에서 미끄러져 떨어져 버렸다.
알리산도 공주에게 좋은 자리를 내주어 잠자게 하고 나는 다른 장소를 찾았다. 그리고 갑옷 그대로 누웠다. 혼자서는 입거나 벗지 못하기 때문이다.
밤이 깊어 감에 마라 추위가 더해지고, 게다가 비바람이 심하게 불어닥쳤다. 그러는 동안 몸이 근질근질해 왔다. 여러 가지 벌레들, 개미, 땅지네 등이 추워서 내 투구 속에 숨어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이리 저리 돌아다닌다.
특히 개미란 놈은 열을 짓고 행진을 시작했다. 그 간지러운 일이라곤! 그러나 몸을 움직일라치면 겨우 살 곳을 정하여 정착한 다른 벌레들이 무슨 일이라고 움직이기 시작하여 정세는 더욱 나빠진다.
이제 두 번 다시 갑옷 같은 것은 입지 말아야 한다.
겨우 아침이 되었다. 졸리고 배가 고프고 몸은 지치고, 목욕이나 한탕 하여 몸의 벌레들과 인연을 끊어 버리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것에 비해 알리산도 공주는 매우 기분이 좋은지 다람쥐처럼 원기가 좋으시다. 편하게 잠을 푹 자고 났다는 얼굴이다. 목욕도 생각하지 않고 배도 고프지 않은 모양이다. 알리산도 공주는 이런 것을 미리 짐작하고 출발 전에 마구 뱃속에 채워 넣은 것이다. 이무기(여러 해 묵은 큰 구렁이) 정도까지는 되지 못해도 사흘 분은 먹어뒀던 것이다.
우리들은 해가 뜨기 전에 출발했다. 말은 혼자서는 탈 수 없고, 좋아! 단념했다. 나는 알리산도 공주만을 태우고 뒤에서 절룩거리면서 따라갔다.
반시간 정도 가자, 도로 공사를 하고 있는 초라한 사람들을 만났다.
"여어, 아침밥을 좀 먹여줄 수 없을까?"
하고, 내가 말을 걸자 사람들은 어리둥절하여 겁내면서 물었다.
"우리들의 식사를 드시겠다는 겁니까? 그야 얼마든지 남아 있지요."
"정말입니다."
이렇게 말하자 사람들의 얼굴은 기쁨으로 빛났다.
"고마운 일입니다. 정말 명예로운 일입니다."
알리산도 공주는 내가 이런 작자들과 얘기하는 것을 경멸하듯이 딴 곳을 보며 정색을 하고 있었다.
"나도 이 가축들과 함께 식사를 하겠어요."
"영광입니다."
사람들은 부끄러운 듯이 머리를 숙였다. 결코 기분이 나쁜 것 같지는 않았다.
이 사람들은 노예가 아니라, 자유민이었다. 국민의 70퍼센트는 자유민으로서 농민과 직공이었다. 이 사람들이야말로 나라를 떠받들고, 나라를 형성하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그러나 애써 일해도 교회가 수입의 10퍼센트를 떼어가고, 이어 국왕의 세리(세금을 받는 관리)가 5퍼센트를 가져가고, 이런 식으로 세금, 세금이다. 세금을 빼앗기고 나면 조금밖에 남지 않는다.
우리들은 이 이름만인 자유인들에게서 아침을 대접받았다. 주인은 젊은 사나이로서 마음속으로부터 존경하는 마음으로 국왕과 교회와 귀족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도 가엾어서, 또 너무도 어리석어서 어쩔 줄을 몰랐다. 나는 그러한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고 여러 가지로 설명하여 들려주었으나, 전혀 알아들을 것 같지 않았다.
식사가 끝나자 나는 한 장의 나무 껍질에 ‘이 사람을 공장에서 고용하시오' 라고 써서 주인에게 주었다.
"이것을 카멜롯 성의 클라렌스라는 사람에게 보여 줘요. 그러면 자네는 더 좋은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요."
"그분은 사제님입니까?"
그 사나이는 별로 기쁜 것 같지도 않았다.
"사제가 아니야. 나의 공장에는 교회의 보좌 신부건 본당 신부건 주교이건 간섭을 못한다. 자유로운 정신을 가진 인간 이외에는 나의 공장에는 소용이 없어."
"네에, 그렇기는 하지만 그 클라렌스란 분은 글을 읽을 수 있는 모양이군요. 그렇다면 글을 읽을 수 있는 건 사제뿐이니........"
"글은 내가 가르쳤어. 거기 가면 자네도 우선 글을 배운다."
"그리고 나는 당신의 노예가 되는 겁니까?"
"노예로 만들지는 않아. 가족을 데리고 곧 출발해라. 모든 걸 클라렌스가 잘 해줄 거다. 걱정마."
내가 부드럽게 어깨를 두드리자 사나이와 그 가족들의 얼굴은 겨우 희망에 빛나기 시작했다.
 
담배의 마술
 
나는 아침 식사 값으로 3페니를 지불했다. 12명 분의 식사값 정도는 되는데, 이 가족들을 기쁘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자아, 이제 출발이다. 체면상 좋지 않았으나 주인 가족의 부축을 받아 말 위에 올라가서 겨우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싶었다.
담배는 손수 만든 것이 있었으나 성냥을 가지고 있지 알았으므로, 부싯돌을 빌어 불을 붙이고 파이프(서양식 담뱃대)를 빨자, 쥐잡는 그물처럼 된 투구의 전면 사이로 하얀 연기가 풀썩풀썩 떠올랐다.
그러자 사람들은 겁을 먹고 숲을 향하여 마구 도망쳤다.
"와! 불을 뿜는 용이다!"
알리산도 공주도 말에서 굴러 떨어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차! 아직 이 때에는 담배라는 것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이 때까지 사람들을 놀라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사람들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으려고 했으나, 끝내 무심코 피웠던 것이다.
아니, 뭘 대단치 않은 마법이기는 하나 해는 없다고 사람들을 달래기도 하고, 거짓을 꾸며 설명을 하고 난 뒤, 겨우 알리산도 공주를 말에 태우고 출발했다.
그날 밤은 들판의 작은 외딴 집에서 자고, 다음날은 하루 종일 넓은 들을 가로질러 갔다. 그 다음날 오후의 일이었다. 내가 말 위에서 요령도 잡을 수 없는 생각들을 하고 있는데 알리산도 공주가 외쳤다.
"조심 하셔요. 위험합니다."
 
<그놈들은 나를 불을 뿜는 용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무엇을 조심하라는가 하고 나는 앞쪽을 보니, 있다 있어! 저쪽 나무 그늘에 무장한 6명 정도의 기사가 부하를 데리고 이쪽을 엿보고 있었다.
과연, 위험하다. 이쪽에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데 저쪽에서 싸움을 걸어오는 것이 기사도라는 것이니까. 알리산도 공주는 재빨리 말에서 미끄러져 내렸다.
조심......? 하하아, 파이프의 연기 말이구나. 공주도 그것을 마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는 파이프를 입에 물고 부싯돌을 찰깍찰깍 했다. 그러자 상대방은 한 덩어리가 되어 돌풍처럼 돌진해왔다.
기사 이야기를 읽으면 그들은 꽤 예의 범절을 지켜 한 번에 한 사람씩의 승부로 되어 있는데, 그런 것은 거짓말이다. 한 무리가 되어 머리를 숙이고 투구의 새털을 나부끼며 창을 내밀고, 이건 좀 구경거리이다.
나는 담배를 천천히 가득 빨아들이고, 놈들이 막 나를 향하여 쳐들어오려고 할 때 힘껏 연기를 내뿜었다. 연기가 자욱하나, 그 연기를 통하여 놈들이 어쩌나 하고 바라보았더니 놈들은 크게 당황하는 모양이었다.
이것은 아까보다 더 희한한 꼴이었다. 놈들은 2, 3백 미터 뒤로 물러서서 내 쪽을 보고 있다. 잘 되었다고 기뻐한 것도 순간, 나는 겁이 났다.
알리산도 공주를 뒤돌아보았더니 공주는 기쁜 듯했다. 안심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오늘은 마법의 효력이 약하므로 이 때 도망치는 것이 좋겠어."
"무슨 말씀이십니까. 당신의 마법으로 적은 싸울 기력도 잃고 있습니다. 곧 항복해옵니다."
"정말인가. 놈들은 그같이 천진한가? 아무래도 오늘은 마법이 잘 되지 않으니까, 놈들은 이제 곧 또 습격하여........"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런 허세를 부리는 기사들이......"
"그러나 이쪽 동정을 살피고 있지 않습니까?"
"저 사람들은 더 이상 도망치면 당신에게 목숨을 빼앗긴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여요."
"뭐? 그래요. 그렇다면 내가 가서 항복을 시키죠."
"아니요. 당신이 가면 저 사람들은 겁을 냅니다. 내가 갔다오죠."
알리산도 공주는 척척 나아갔다. 그리고 기사들에게 이야기하자, 기사들은 공손히 절을 하고 온순하게 물러갔다. 알리산도 공주가 되돌아왔다.
"당신은 뭐라고 말했습니까?"
"사실대로 이야기를 들려주었어요. '저 분은 유명한 대마법사인 보스님입니다.' 라는 말만 했는데도 기사들은 겁내고 항복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곧 아서 왕의 궁전에 가서 딸과 갑옷과 투구를 바치고, 그런 후에 당신의 부하가 되겠다고 맹세를 했습니다"
"허어!"
나는 알리산도 공주의 훌륭한 교섭에 탄복하고 말았다. 나보다 훨씬 단수가 높다. 나는 공주를 어느 정도 바보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서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장래가 촉망되는 좋은 아가씨일지도 모른다.
나는 말을 몰아나가면서 이야기를 해보았다. 공주는 명랑하고 똑똑하게 이야기했다. 나는 매우 마음이 편해졌다. 기묘한 생각이 들 때도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공주가 카우보이(말 타고 일하는 건장한 남자)나 코만치족 인디언의 일을 모르는 것과 같이 시대에 뒤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리산도 공주의 두뇌 때문이라고 해서는 나쁠 것이다.
이렇게 여행을 계속하는 동안 어느 곳에 다다르니 앞쪽에 성이 보였다. 이것은 아서 왕의 여동생, 모건 라 훼이의 성이다.
그런데 무술 수업에 나선 기사는 성에 가면 환영을 받는다고 이야기책에는 쓰여 있으나, 사실은 그러하지 않다. 즉 3퍼센트만 사실이며, 97퍼센트는 거짓말이다. 그러므로 성이 앞쪽에 보여도 예비 지식을 가지고 있는 편이 좋다. 그래서 성의 주인에 대한 지식을 얻으려고 생각하고 있는데, 말을 탄 사람이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나는 기뻤다. 왜냐 하면 그 사나이는 널빤지를 앞에 세우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이러한 선전문이 씌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상류의 부인들이 애용하는 감 열매의 비누)
이거야말로 나의 고안품으로서, 그는 그 보급 선전과의 개가였다. 어쨌든 위생의 초보 지식을 사람들에게 심어주기 위하여, 길에서 무술 수업의 기사들을 만나면 비누로 씻어주기도 하고, 깨끗이 하는 것을 실제로 시험하게 하고, 상대에게 선전문이 씌어 있는 옷을 주고하여 비누 문화를 널리 퍼지게 할 것을 맹세하게 하는 것이다. 그 결과 선전원의 수는 점점 늘어가고, 나의 비누 공장은 노동력 부족으로 쩔쩔매고 있었다.
나는 이 선전원 기사에게 모건 라 훼이에 대해서 물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다지 좋은 상대는 못되었다. 그러므로 기대가 어긋나서 실망하지 않을 만큼만 마음의 준비를 하고, 우리들은 거기서 묵기로 했다. 이 모건 라 훼이는 마법사로서 백성들이 무서워하는 아주머니였다. 나이는 조금도 먹지 않고 언제까지나 젊고 아름답고 잔인해서 사람을 죽이는 것 같은 일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 아주머니는 아서 왕과 매우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렇게 씌어져 있는 '아서 왕 이야기'의 한 구절을 잊어버리고 있었으므로, 나는 아차! 하는 순간 아주머니 앞에서 아서 왕을 칭찬하고 말았다.
그 때 아주머니가 성낸 것이야말로! 당장에 나를 잡아 옥에 처넣으려고 했다. 그 때 알리산도 공주는 조금도 떠들지 않고 자신 만만하게 외쳤다.
"기다려! 정신이 돈 가엾은 자들. 자신이 자신을 멸망시키고 싶은가? 이 분은 보스경이로소이다!"
이 말은 효과 백 프로 적중했다. 아주머니를 비롯하여 부하들은 모두 엎드려 머리를 숙었다. 어쨌든 나는 모건 라 훼이 아주머니 같은 것은 발 아래에도 다가서지 못하게 하는 대마법사이므로......
그러나 나 혼자라면 이렇게 간단히 공갈을 칠 것을 생각지도 못한다. 천성이 겸손하므로...... 모두에게 겸손한 성질은 아니지만.
나는 좋은 기회에 옥에 갇혀 있는 죄 없는 백성 47명을 풀어주었다. 서둘러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알리산도 공주의 좋은 점을 이야기해 두고 싶기 때문이다.
모건 라 훼이 아주머니가 특히 미워하고 학대하고 있던 죄수는, 이 여자 영주님을 빨강머리라고 무심히 말했던 선량한 사나이였다. 사나이는 옥에서 매우 고통을 당했다. 과연 그 사나이가 말한 대로 모건 라 훼이는 빨강 머리였다.
그러나 빨강 머리의 사람이 고귀한 사람이라고 해서, 그 머리칼을 금갈 색이라고 바꾸어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 그거 참!
 
거인의 성
 
다음날 아침은 여행하기에 아주 좋은 날씨였다. 우리는 여행을 계속하는 도중 여러 가지 일에 부닥쳤으나 뛰어넘기로 하였다.
그러나 그 동안에도 알리산도 공주의 지껄이기를 잘 하는 입은 프로펠러와 같이 활동을 계속했다. 그러나 공주는 매우 쓸모가 있었으며, 영리한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방법으로 나를 응원해 주고 있었으므로, 공주가 프로펠러를 돌리고 싶다면 참고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해도 차차 기울어지고 있을 때, 알리산도 공주가 갑자기 안절부절하며 나에게 속삭였다.
"거인의 성이 가까웠습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아닌가. 나는 화가 났지만 여행의 목적이 분명히 그 거인의 성이고, 거기서 무엇인가 어떻게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그 동안은 무엇 때문에 여행을 하는지도 잊어버리고 나는 참으로 유쾌했었다.
그러나 거인의 성이라고 하자 마음이 기묘하였다. 알리산도 공주는 흥분하여 눈초리를 치켜올리고 손을 맞잡고 있었다. 그것에 응하여 나의 가슴도 쿵쿵 뛰기 시작했다.
이윽고 공주는 말에서 휙 뛰어내려 나에게 신호를 했다. 그리고 발소리를 죽이고 기는 것처럼 하여 고개 끝의 숲으로 갔다.
나도 공주의 흉내를 내어 가까이 가자, 공주는 긴장된 눈으로 숲 저쪽을 가리키면서 숨찬 소리로 속삭였다.
"저 성입니다! 저 성!"
나는 멍청해졌다. 이건 아무래도......
"성이라고? 저건 돼지우리입니다. 널빤지로 둘러친 돼지우리......"
그러자 알리산도 공주는 매우 난처한 것처럼 나를 지켜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는데, 이윽고 이렇게 말했다.
"거인이 마법을 걸어 돼지우리처럼 보이게 했어요. 보기에는 돼지우리로 밖에 보이지 않지만........ 그러나 나는 확실히 저것이 위엄이 있는 성이라는 것을 압니다. 큰 도랑이 있는 훌륭한 성, 솟아 있는 탑에는 깃발이 나부끼고 있습니다. 신이여! 도와주십시오, 그 붙잡혀 있는 존귀한 분은 어떻게 하고 계시는지 나의 가슴은 아픕니다!"
"네, 그렇습니까!"
공주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미치광이에게는 거역하지 말 것이다. 미신은 바른 정신을 자진 사람도 이와 같이 미치게 한다. 나는 이유를 알았기 때문에 거역하지 않기로 했다.
알리산도 공주는 떨면서 계속 지껄였다.
"여기 붙잡혀 계시는 귀부인들은 마법 때문에 돼지로 보이고 있습니다. 만약에 이 마법을 풀지 못하면 돼지가 개로, 개가 고양이로, 고양이가 쥐로 되어 나중에는 색깔도 냄새도 없는 가스로 되어 버릴 염려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돼지로 보여도 제대로 귀부인으로 대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니, 참으로 그대로입니다. 당신은 정말로 상냥합니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그런데 묻고 싶은데. 저쪽에 멍하니 서 있는 세 사나이들은 누구죠? 나에게는 돼지치기 영감으로 보이는데......."
"저 거인들? 저 구름을 뚫을 거인들이야말로......"
"네, 네, 좋습니다. 알았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여기서 기다려주십시오."
나는 구린내 나는 것을 참고 말을 돼지치기에게로 몰았다. 그리고 돼지치기에게 소리쳤다. 장사상의 사정도 있었으므로 나는 좀 엄숙하게 행동했다.
"거기 있는 자들, 좀 이유가 있어. 여기 있는 돼지 전부를 내가 사려고 한다. 값은 얼마지? 꽤 구리구나. 얼마인지 빨리 말해라!"
숨이 막힐 것 같다. 참 구린내 나는 귀부인도 다 있구나.
돼지치기는 크게 기뻐했다.
"네, 고맙기도 해라. 세금을 물 수 없어 내일은 이 돼지를 교회의 목사님과 관리들이 가져갈 판이었습니다. 모두 16페니만 내셔요."
"좋아, 사기로 하겠어."
시내보다 매우 비싸기는 했으나, 이것도 생각할 문제이다. 돼지를 교회나 영주나 관리들에게 빼앗기면 알리산도 공주가 귀부인을 구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어느 돼지치기 아주머니는 지난 해, 교회에서 나온 사제에게 10마리의 돼지 중 가장 살찐 놈 한 마리를 세금으로 빼앗겼는데, 그 때 그 아주머니는 아이를 사제에게 내밀며,
"이 무자비한 짐승아, 왜 밑천을 빼앗아가면서 아이만은 두고 가는 거냐?"
하고, 대들었던 모양이다.
나는 돈을 지불하고 돼지치기가 떠난 다음, 알리산도 공주를 불렀다.
공주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면서 돼지 속으로 헤치고 들어가서 돼지를 안기도 하고 쓰다듬기도 하였다. 돼지는 꿀꿀 울며 귀찮아하는 모양이다. 돼지는 바른 정신이다. 바른 정신이 아닌 것은 인간 쪽이다. 나는 돼지 앞에서 인간인 것이 부끄러워진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 돼지들을 데리고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엄숙하게 차린 기사가 돼지를 쫓아다니며 여행한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럽고 가엾은 일이다. 화나게 하는 돼지들!
겨우 저녁때에 알리산도 공주가 가리킨 저택에 돼지를 몰아 넣었다.
"여기가 공주의 저택이죠? 야, 굉장한데!"
그러나 공주에게 내 말이 들렸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공주는 자꾸만 돼지의 수를 헤아리고 있었는데, 점점 얼굴 색이 달라져 갔다. 이건 또 무슨 일이 일어났나 하고 내가 긴장하고 있는데, 아닌게 아니라 공주는 비명을 질렀다.
"네로반스 드 모르가노 왕녀가 두 사람의 시녀인 안젤라 바앙과 에리느 꼬또메앙과 함께 행방 불명이 됐어요!"
아아, 이 혀를 깨물 듯한 괴상한 이름이 세 마리의 돼지 이름인 모양이다. 나는 행방 불명이 되어도 좋다하고 속으로 생각했는데, 알리산도 공주가 몹시 슬퍼하므로 사람을 고용하여 돼지 찾기대를 숲과 언덕으로 보냈다.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돼지는 모두 찾아냈으나, 이런 어리석은 이야기는 들은 적도 없다. 이런 냄새도 맡은 일이 없다. 하도 고약해서 질식하여 죽을 것 같다.
어쨌든 이러한 어리석은 소동을 벌이고 겨우 침대에 들어갔을 때에는 몸은 솜처럼 지쳐 있었다.
오래간 만에 푹 자려고 생각했는데 웬걸, 돼지 귀부인들이 꿀꿀 쿵쿵! 홀이며 복도를 왔다갔다하면서 싸움까지 벌이는 소동. 도저히 잠잘 형편이 아니다.
잠들지 못하고 나는 이것저것 생각했다. 알리산도 공주는 역시 바른 정신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정말 미치광이이다. 어리석은 일도 어릴 때부터 믿게끔 훈련되면, 그리고 주위의 사람도 모두 그 것을 믿고 있으면 틀림없이 그렇게 되고 말 것이다. 무서운 일이다!
그리고 내가 열차의 이야기를 하거나, 인간이 하늘을 나는 것을 보았다고 말하거나, 수백 킬로나 떨어져 있는 사람과 전화로 말할 순 있다고 하자,
"이 사람 가엾은 미치광이!"
하고, 나를 쳐다볼 것이다.
알리산도 공주는 마법을 믿고, 귀부인이 돼지가 된 것을 믿는다. 그리고 나 19세기의 양키는 전신과 전화의 힘을 믿는다.
다음날 아침, 알리산도 공주는 돼지들을 모두 식당에 몰아넣고 돼지 귀부인에게 아침 대접을 시작했다. 좋은 일이다. 다만, 나는 가슴이 막혀 먹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알리산도 공주, 가족들이 보이지 않는데 어디 계시죠?"
"가족? 어느 가족 말입니까?"
"물론 저택의 가족 말이죠, 당신의........"
"나의? 아니 나에게는 가족은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당신의 집이죠?"
"아니요, 누구 집일까?"
"하하! 이건 또........그럼 누구로부터 초대되어 여기 왔습니까?"
"아무도 초대하지 않았어요. 단지 우리들이 들린 것뿐입니다."
"음, 그럼 우리들은 허락도 없이 남의 집에 들어와서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는 겁니까? 이건 큰일인데요. 이 집 사람들이 이 모양을 보면 뭐라고 할까요."
"다만, 감사하다고 할 뿐으로 생각해요."
"감사? 왜 감사를?"
그러자 알리산도 공주는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지켜보았다.
"왜 또 그와 같은 말씀을 하십니까? 이 집 사람들은 우리들처럼 신분이 높은 인간이 오기를 마음속으로 바라고,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는 걸요. 이같이 즐거운 날이 그들에게 있어서는 또 없을 것입니다."
하하, 모순된 말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 신분의 높음도 낮음도 없다! 인간은 그 태어난 집에 의해 존경받는 일은 없다. 인간은 그 사람이 자기의 임무를 충실하게 다할 때, 그리고 그 인격에 의해 비로소 존경받는 것이다. 사람의 값어치는 그것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이것을 머리가 13세기 이상이나 낡은 알리산도 공주에게 깨닫게 할 수는 없다. 슬픈 일이다. 나는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과연, 이러한 귀부인들이 많이 날뛰는 일은 일생에 두 번은 없겠지?"
"그러므로 이 집 사람이 예의를 지키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개보다도 못합니다."
"아아, 확실히 그렇죠. 반드시 오래 있으면 있는 만큼 이 집 사람들은 기뻐할 것이나, 어쨌든 냄새, 아니 시간이 헛되므로 돼지들, 아니 귀부인들을 모아 출발하기로 합시다."
"왜요?"
"당신도 귀부인들을 빨래 보내고 싶지요?"
"그러나 그것은 본인에게 묻지 않으면 알 수 없어요. 게다가 어느 성의 문이라도 세계 각지에 산재(여기저기 흩어져 있음)하고 있으므로 도저히 짧은 일생 동안에는 저마다를 각각 보낼 수는 없어요."
"아아!"
나는 몸이 떨리었다. 설마...... 일생 동안 돼지의 시중을 들며 터벅터벅 걷고 싶지는 않다.
"그럼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귀부인들의 친구들이 저마다 맞이하러 올 겁니다."
이것은 뜻밖의 보기 드문 좋은 뉴스였다. 나는 포로가 자유로이 되었을 때처럼 마음을 턱 놓았다.
"그럼 알리산도 공주, 이걸로 목적은 달성했으니까 나는 이제부터 성으로 되돌아가서 아서 왕에게 보고하기로 하겠습니다"
"나도 함께 가겠습니다"
이로써 또 나는 포로가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왜, 왜 나와 함께......?"
"나는 나를 지켜주는 기사를 배반하는 것 같은 일은 하지 않습니다. 어떤 기사가 당신과 시합을 하여 당신에게 이기고 나를 데리고 가지 않는 한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언제까지나 곁에 있으며, 어디까지나 함께 가겠습니다"
장기 계약인가? 이거야 참! 뜻밖의 일이 되어 버렸다.
 
성스러운 골짜기로
 
우리들은 출발했다. 알리산도 공주는 돼지들과의 이별을 아쉬워하여 몇 번이나 뒤돌아보았다. 나는 그 귀부인들의 구린내가 몸에 배어서 앞으로 열흘은 빠져나가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될 수 있다면 돼지 백정을 그 저택으로 보내고 싶었다.
어느 날, 우리들은 순례(종교적인 목적으로 차례로 방문하여 참배함)의 행렬을 만났다. 그리하여 일행에 끼어 들기로 했다. 어쨌든 나는 대신이다. 세상일을 잘 알아주지 않으면 안 된다. 알기 위해서는 이런 사람들과 한데 섞여 행동해 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순례자 일행은 어느 정도 부유한 가정의 사람들로 청년, 노인, 아가씨 등의 각종 연령과 여러 가지 직업의 사람들이 모인 모임이었다. 모두들 말이나 나귀를 타고 있었다. 그리나 부인용의 안장을 올려놓은 것은 볼 수 없었다.
그것은, 앞으로 9백 년이 지나지 않으면 영국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물건이다. 승마의 역사에서는 그같이 되어 있다. 순례자들은 모두 유쾌하고 솔직하여 기분이 좋은 사람들이었다. 알리산도 공주는 순례의 행선지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가르쳐주었다.
"이 사람들은 '성스러운 골짜기'로 갑니다. 거기에는 수도를 하고 있는 거룩한 사제들이 있습니다. 그 사제에게 기도를 부탁하여 솟아나는 기적의 물을 마시고 죄를 씻고 깨끗이 합니다."
"뭐요? 그 물이 나오는 곳은 어디에 있습니까?"
"쿡크 왕국의 국경에 있습니다. 여기서 이틀은 걸릴 것입니다."
"유명한 곳입니까?"
"예, 그렇고 말고요. 어느 곳보다 유명합니다. 옛날 거기에 대주교와 수사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분들은 세상의 누구보다도 깨끗하고 성서의 공부를 열심히 하고, 서로 말도 하지 않고 외로운 수도를 쌓으며, 신께 기도하며 살았습니다 먹는 것은 마른 풀 뿐이며 목욕을 하지 않고, 단 한 벌의 옷은 아주 헐어 빠졌습니다 그러한 거룩한 분들을 우러러 부자나 가난한 사람을 막론하고 전국에서 거기에 참배하러 가는 사람이 그칠 사이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건 위생에 나빠요."
"그리고 거기엔 물이 없었습니다. 거기서 어느 날 대주교는 신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그 황폐한 골짜기에 깨끗한 물이 솟아나는 샘이 생긴 것입니다. 샘이 솟아오르자 수사들은 마귀의 꾀임에 져서 목욕이 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리하여 대주교 님께 청을 드렸는데, 대주교도 끝내 목욕을 허락했습니다 수사들은 샘물로 목욕을 했는데, 그것을 신이 노여워하며 샘은 즉시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럼 사제들은 몹시 당황했겠는데. 그러한 일에 매우 잘 속으니까."
"그것이 그 사람들의 하나의 죄였습니다 그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다시 샘이 솟아나도록 기도를 했습니다 행렬을 짓기도 하고, 제물을 바치기도 하고, 마리아님께 촛불을 바치기도 했으나 모두 허사였습니다"
"하하하, 열심히 한 결과가 돈을 손해볼 뿐만 아니라 모든 고생이 허사가 되다니, 괘씸한 일이야. 그런 사회는 있어서는 안 돼. 그래서 작자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그 후 몇 해가 지나서 끝내 대주교 님은 단념하고 샘터를 깨뜨려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신의 노여움이 풀리어 샘물이 다시 솟아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많은 물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 때부터는 목욕하는 사람은 없어졌겠지요?"
"그랬다간 큰일나지요."
"수도원은 그 후 어떻게 됐지요? 경기는 좋아요?"
"기적에 대한 이야기는 당장에 멀리 퍼져 각처에서 수도자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마치 물고기가 모이듯 수도원은 자꾸자꾸 커지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성스러운 골짜기'는 수도자들의 암자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관광지로 되어 있습니까?"
"관광지? 어떤 의미죠?"
"아니, 좋은 곳이라는 뜻입니다."
그날 오후 우리들은 또 다른 여행자들의 행렬을 만났다. 그러나 이 무리는 우리들의 일행과는 달리 서글펐고 초라했다. 노인, 청년, 아이...... 모두 웃음을 잃고 오랜 동안의 괴로움과 절망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 50여 명의 사람들은 노예였다. 두 손에는 수갑, 두 발에는 쇠사슬, 모두 2미터 정도의 사이를 두고 쇠사슬로 한 줄로 죽 연결되어 걷고 있었다.
노예들은 먹을 것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18일간에 5백 킬로나 걸어야 했던 것이다. 밤이 되어도 쇠사슬에 묶인 채로 한데 얽히어 잔다. 입고 있는 것은 몹시 남루한 것이었다. 쇠사슬 때문에 발의 피부는 벗겨지고 곪아서 맨발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노예 장사는 말을 타고 손에는 긴 채찍을 가지고 있었다. 이 채찍으로 지치고 굶주리고 괴로움에 비틀거리는 노예들의 어깨를 내리친다.
노예들의 얼굴은 모두 정신이 빠져 있었다. 한 마디도 말이 없었다. 다만 노예들을 연결하고 있는 쇠사슬 소리만 크게 울리고, 풀석풀석 일어나는 먼지 속을 노예의 행렬이 움직여갔다. 아기를 안은 젊은 어머니의 얼굴에는 죽음의 날이, 영원한 휴식의 날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 선명하게 나타나 있었다. 잿빛의 얼굴은 눈물 자국 투성이었다. 이 어머니는 피로로 눈이 잘 보이지 않는지 비틀거렸다. 그 순간 노예상(노예 장수)의 채찍이 어머니의 어깨를 내리쳐 피부를 찢었다. 나는 내 자신이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노예상은 말에서 뛰어내려 외쳤다.
"이젠 용서 없다. 자꾸만 사람을 괴롭히면 빨리 팔아 치우겠어!"
어머니는 무릎을 꿇고 울면서 용서를 빌었다. 그러나 노예상은 아기를 빼앗고는 옆의 사나이 노예에게 아우성을 쳤다.
"이년을 버둥대지 못하게 누르고 있어라!"
그리고 어머니에게 채찍을 내리쳤다. 여자를 누르고 있던 사나이 노예는 얼굴을 돌렸다. 그러자 노예 상인의 채찍은 용서 없이 또 그 사나이를 갈겼다.
"대단한 솜씨다. 채찍질을 잘 한다."
순례의 사람들은 이런 말을 속삭이며 구경하고 지나갔다. 이 사람들로서는 언제나 흔히 보아오는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잔인한 행동이 아무 느낌이 없다. 인간의 감정 중에서의 우수한 부분, 즉 동정심이 마비되어 버린 깃이다. 그것은, 이 순례자들은 친절한 사람들뿐이며, 만약에 상인이 말을 이처럼 취급한다면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나는 지금 노예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가 없다. 그것이 괴로웠다. 세상의 관습에 갑자기 반항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길가의 대장간 앞에서 그 어머니 노예는 옆으로 세워졌다. 이윽고 그 노예를 살 지주가 왔다. 여자는 여기서 쇠사슬을 벗기어 넘겨지게 되어 있는 것이다. 쇠사슬은 벗겨졌으나, 대장장이의 수고비를 어느 쪽이 지불하느냐는 문제로 지주와 상인과의 사이에 말다툼이 시작되었다.
한편 쇠사슬이 벗겨진 노예 여자는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아까 누르고 있었던 사나이에게 매달렸다. 두 사람은 꽉 부둥켜안았다. 부부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 두 사람은, 그리고 아기는 서로 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사가는 사람에게 끌려가는 여자의 비명은 언제까지나 저녁 어스름 속에 메아리쳤다.
나는 얼굴을 돌리고 고개를 숙였다. 그 때의 그 모습을 나는 도저히 잊어버릴 수 없다.
우리들은 그날 밤은 마을의 하숙에 머물렀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저쪽에서 화려하게 차린 기사가 왔다. 자세히 보니 나의 부하 오자나 경이다.
오자나 경이 맡고 있는 일은 예식 모자의 판매이다. 그는 투구는 쓰지 않고 난로 연통 같은 예식 모자를 쓰고 있다. 이것은 나의 기사라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 하는 것을 세상에 알리기 위한 계획의 하나였다.
오자나 경의 말 안장에는 모자 상자가 몇 개씩이나 매달려 있고, 무술 수업의 기사와 시합을 하여 상대가 지게 되면 그 때마다 상대에게 나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게 하고 예식 모자를 쓰게 했다.
"여어, 장사는 어때?"
내가 소리치자, 오자나 경은 무슨 소리냐 하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소생은 지금 당신을 찾아 '성스러운 골짜기'에서 오는 길입니다. 큰일났습니다 순례자들도 여기 와서 듣는 것이 좋아. 영주님, 샘물이 멈추었습니다. 2백 년 동안 없었던 불행........"
"그 기적의 물이 멈춰 버렸습니까! 누가 규칙을 깨뜨리고 목욕을 한 것입니까? "
순례자의 한 사람이 놀라서 물었다
"아니, 그렇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어떤 죄를 범했는지는 아직 몰라요."
오자라 경은 나를 진지한 표정으로 지켜보았단.
"샘이 멈춘 후 이 9일 동안 계속 '성스러운 골짜기'의 사제들이 밤낮 할 것 없이 열심히 기도했으나 보람이 없었습니다. 이제는 소리도 나오지 않아서 기도문을 하늘에 써 놓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되고서는 보스 님의 마법의 힘으로 샘을 원래대로 하는 수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보스 님을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골짜기에는 멀린이 왔습니다. 멀린은 비록 지구를 째서라도 악마의 도움을 빌어 자기가 샘이 솟아나게 한다고 아침부터 밤까지 계속하여 땀을 흘리면서 마술을 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조금도 효력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는 머리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럼 오자나 경, 하숙에서 쉬어 가요."
그리하여 나는 아침 식사를 하면서 생각한 후에, 오자나 경의 모자 안쪽에 다음과 같이 썼다.
<화학 제약부 지(G), 피 엑스 엑스 피(PXXP) 1호 2개. 3호 2개. 4호 6개. 부속품 한 벌을 함께 보내라. 그리고 두 사람의 기사를 보내도록.>
"오자나 경 이걸 가지고 빨리 성으로 돌아가서 클라렌스에게 보여 주시오.
"네 , 알았습니다"
오자나 경은 즉시 흙먼지 속을 달려 사라졌다.
 
샘터에서의 대마술
 
순례자의 일행은 샘물을 목적으로 하여 왔는데, 결국은 샘물이 나오지 않으니 나오지 않는 모양을 구경하기 위하여 가게 되었다. 이것이 새나 고양이, 땅지네라면 방향을 바꾸어 더 득이 되는 일을 하려 할 것이나, 그들은 오히려 이 때까지의 40배나 샘을 보고 싶어했다. 아무래도 인간이라는 것은 그러한 것인 모양이다.
성스러운 골짜기는 사막이나 황야라고 할 수 있는 죽은 것 같은 풍경 속에 있었다. 우리들은 어두워지기 전에 수도원에 도착했다. 종소리가 가까운 곳에서 엄숙하게 울려 퍼졌는데, 그것은 최후의 심판의 계시처럼 들렸다.
'성스러운 골짜기'의 사제들은 그야말로 생명을 빼앗기는 것처럼 창백해져 있었다. 이것을 미신에 사로잡힌 절망이라고 하는 것일 게다. 겁을 먹은 듯한 검은 옷의 모습이 여기저기 어슬렁어슬렁 거리고 있었다.
어리석은 작자들이다.
나이 먹은 수도원장은 나를 보자, 정말 가엾을 정도로 기뻐하며 기쁜 눈물을 흘렸다.
"부탁입니다. 샘물을 부활시켜 주십시오, 위대한 힘을 부탁드립니다. 그것을 어찌 교회가 마법이라고 말하리오까."

<멀린은 열심히 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과연 샘물은 솟아 나올까?>
 
교회와 마법과는 사이가 좋은 것은 아니니까, 그렇게 말한 것이다.
"신부여! 내가 하는 일에는 악마의 힘 같은 것은 빌지 않아요. 나는 모두 신의 섭리로 이 세상에 만들어질 것만을 사용하니까요. 그러나 지금 멀린이 당신들을 위하여 특별히 소중한 마술을 열심히 하고 있지요?"
"그렇습니다. 멀린 님도 하고 계시지요. 마법의 힘으로 샘물을 솟아나게 한다고 맹세하고 있지만......"
"그러면 잘 해보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그럼 보스 경, 구경만 하지 말고 제발 힘을 도와주기를 부탁드립니다."
"신부님, 그것은 좋지 않습니다. 서로 방법도 틀리며, 그것이 뒤죽박죽이 되면 안 됩니다. 게다가 첫 째로 저쪽에 대해 실례이니까. 그리고 함께 일을 하게 되면 나중에 엉망진창이 됩니다. 일이 잘 되거나 안 되거나 서로 다투게 될 테니까요. 지금은 멀린이 하고 있으므로 멀린이 손을 들고 굴복할 때까지는 나는 손을 대지 않기로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본인이 멀린 님을 거절하지요. 매우 절박해지고 있으니까, 거절할 권리도 있다고 생각해요. 멀린 님은 좋아하지 않을 것이나 그것이 만인을 위한 것이라면 어쩔 수 없습니다. 제발 보스 경 시작해 주시기를......"
"그건 안 됩니다. 멀린은 그래도 꽤 솜씨가 있습니다. 저 엉터리가 실내 마술사에는 틀림없지만 시골이나 돌아다니는 마술사로서는 좋은 솜씨요. 유명하기도 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 멀린이 포기하기 전까지는 가로채지 않겠습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자 수도원장은 입을 멍청하게 벌리고 있다가 문득 명안이 생각난 모양인지 달했다.
"그렇지. 멀린 님이 일을 포기하도록 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어요. 교회의 권력은 만능이니까요. 만능이고 말고요. 그리고 누가 헐뜯으려 해도 우리 교회가 상관할 바는 아니니깐요."
"아니 신부님. 내가 시작을 한 후 멀린이 방해를 하면 오히려 곤란합니다. 그래서 한 달이나 오래 끌면 큰일이죠."
"한 달이나! 아니, 그건 큰일이죠. 생각만 해도 나의 가슴은 터질 것 같아요. 보스 경, 나는 어찌했으면 좋을지 몰라요. 좋을 대로 해주셔요."
비록 수도원장이 죽을 정도로 초조해 하며 기다리다 지쳐도, 나는 나대로의 사정이 있다. 카멜롯 성의 클라렌스에게 주문한 물건이 도착하기까지 앞으로 이삼 일은 걸릴 것이다. 그때까지 멀린이 계속하게 하는 것이 좋다.
다음날 아침 나는 문제의 샘이라고 하는 우물에 가 보았다. 거기에는 멀린이 비비 (바다 삵쾡이)처럼 팔딱거리며 열심히 주문을 외고 있었다. 그러나 우물에서는 멀린의 머리에서 떠오르는 김만큼의 물기도 오르지 않는다. 멀린은 몹시 불쾌한 모양이었다.
"과연 이 일은 초급의 마법사에게는 좀 힘들 것이다."
그러한 말을 내가 옆에서 중얼거리자, 그 때마다 멀린은 몹시 화가 나서 내게 마구 욕을 퍼부어 댔다.
샘물이 나오지 않게 된 이유는 내가 생각한 대로였다. 샘은 '성스러운 물'이 아니었다. 보통 우물이며, 아주머니들이 자기 집에서 애용하고 있는 우물과 다름없이 주위를 돌로 벽을 쌓고 있었다.
기적의 우물이라니, 참 웃기는 일이다.
그 우물은 돌로 된 교회 안의 어두운 실내에 있으며, 그 물을 사재들이 감아 올리는 식의 쇠사슬로 퍼 올려 교회의 밖에 있는 돌 저수통(물을 담아 두는 통)에 붓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교회 안은 사제 이외에는 출입 금지이다. 어쨌든 신성한 곳이니까.
주위의 벽에는 물이 솟아났다고 하는 기적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는 종교화(종교에 관계되는 그림)가 걸려 있었다. 그림에는 천사가 그려져 있다. 즉 형편 좋게 천사밖에 보고 있지 않았다는 증거다. 천사란 놈은 기적이 일어날 때에는 반드시 그 장소에 있으나, 이것은 아마도 그림에 그려지고 싶어서일 거다. 천사란 놈, 화재 때의 구경꾼처럼 기적이 이미 지나쳤다고 보인다.
나는 안에 들어가서 세밀히 우물을 조사했는데, 멀린은 주문만을 고집하며 조사하려고 하지 않았다. 머리를 쓰는 것을 알지 못한다. 멀린은 역시 얼간이 같은 놈이었다.
나는 두 사람의 사제를 불러 문을 잠그게 하고 촛불을 켜 들고 상자에 앉아 우물 속에 내려갔다.
물 속을 비쳐보니, 두레박 쇠사슬이 끝이 닿는 곳에서 벽이 상당히 크게 갈라지고 있었다.
"뭐야. 실망했잖아. 나는 수리에 더 멋진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미국에서는 석유 우물에서 석유가 나오지 않게 되면 다이너마이트로 쾅! 하고 폭발시킨다. 그것을 6세기에 해 보이면 모두가 간이 콩알만해져서 한쪽 발을 관 속에 넣은 것 같은 기분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화려한 일은 할 수 없다.
나는 사제에게 물었다.
"우물 깊이는 어느 정도지요?"
"네에..., 아직 누구도 그러한 것을 물은 사람은 있지 않아서......"
"물은 어느 곳까지 차 있었습니까?"
"거의 위에까지 차 있었습니다."
확실히 그런 모양이다. 두레박 줄이 7미터에서 10미터 정도밖에 사용되지 않은 것 같다. 나머지는 아주 녹슬어 있었다. 우물 속에 물이 새어나가는 곳이 생긴 것을 나는 확인하였다.
사제들은 성가를 부르고 신의 도움을 구하여 종을 치기만 했지, 누구 하나 우물 속에 들어가서 조사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 세상에서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을 믿는 놈 같이 곤란한 자는 없다. 정당한 것을 말하면 놈들은 그 사람을 모반자라고 한다.
"음, 이 일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할 자신은 있습니다. 만약에 멀린이 실패하면 대신 하겠습니다. 그는 보통 마법사이지만 겨우 객실용의 마법 밖에 할 수 없으니까 99퍼센트 실패합니다. 그렇다고 멀린의 불명예는 되지 않을 겁니다. 이러한 기적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일류 호텔의 경영도 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면 안 되니까."
나는 거드름을 피웠다. 이 일이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 널리 퍼지면 퍼질수록 나에게 있어서는 유리하다. 선전의 힘은 무시할 수 없다. 미국의 상인은 선전에 크게 힘을 기울이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이 골짜기의 사제들은 이 일이 어려운 것을 사람들에게 우는 소리로 말할 것이다. 2,3 일 지나던 그것은 사방에 퍼진다.
그날 오후, 나는 알리산도 공주와 함께 고행을 행하는 수도자라는 것을 구경 갔다. 참으로 기묘한 구경 거리였다. 한 마디로 말해서 어느 것에 뒤떨어지지 않는 비위생적인 견본으로서, 벼룩과 모기의 배양(인공적으로 가꾸어 기름)의 경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모두 만족한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알몸으로 진흙탕 속에 누워 벌레들에게 찔리우면서도 자랑스러워하는 사제, 바위에 기대어 하루 종일 기도를 계속하는 사제, 서 있는 채로 잠들고 있는 사제. 47년 동안 한 방울의 물도 사용한 일이 없다는 수녀님.
이러한 미치광이들의 주위에는 눈을 휘둥그렇게 뜬 순례자들이 둘러서 있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엎으러 질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고행을 해야만 신이 상대해 주는 성인이 된다고 부러워하고 있었다.
특히 평판이 높은 것은 지상 20미터 높이에 무대를 만들어 그 위에서 20년 동안이나 초조하게 머리가 발끝에 닿을 만큼 허리를 구부리고 기도를 계속하는 수도자였다.
나는 시계로 재어 보았는데, 24분 42초 사이에 1천 2백 44회나 몸을 구부렸다. 이만한 에너지를 헛되게 소비하는 일은 정말 아까운 일이다.
나는 이 일을 수첩에 적고 나서 나의 공장에서 만든 재봉틀을 선물로 주었다.
말이 나온 김에 그것을 보고하면, 이 수도자는 내가 재봉틀을 주고 나서 5년 동안 1만 8천장의 좋은 품질의 린네르(아마의 가는 실로 짠 직물) 셔츠를 만들어 냈다. 하루에 10장 꼴이다. 수도자들이 순례자들에게 이 셔츠를 1 장에 1달러 반으로 팔자, 날아가듯이 팔리었다. 그 때의 1달러 반이라고 하면 소 한 마리나 아서 왕이 자랑하는 승마용 말 한 마리의 값이었다. 아직 돈 시세가 있던 시대였으니까.
이 셔츠는 '죄로부터 몸을 지키는 마귀를 물리치는 옷'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나는 이 셔츠로써 처치하기 곤란할 만큼 난처할 정도의 돈을 벌었다.
그 후 이 재봉틀로 인하여 수도자는 한쪽 발을 쓸 수 없게 되어 이 일도 그만두게 되었다. 그러나 그 때까지 그 수도자도 돈을 많이 벌어 놓을 수 있었다.
우물 이야기로 되돌아간다.
토요일 낮에도 나는 우물에 가서 실정을 보았다. 멀린은 여전히 자욱하도록 연기를 내는 가루를 불에 그슬렸다. 허공에 주문을 글자로 쓰면서 열심히 중얼거리며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쩐지 몹시 지쳐가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우물에는 조금도 물이 솟아나지 않고 있었다.
"어때요. 멀린 군, 가망성은?"
"나는 지금 동방의 불가사의한 마술을 쓰고 있죠. 불원간, 불원간에!"
멀린은 주위의 일대가 캄캄해지도록 연기를 올리었다. 바람이 불어 가는 쪽에 있는 사제들은 아마 심하게 닥쳐오는 연기 때문에 입을 뻐끔뻐끔하고 있을 것이다.
멀린은 그 연기에 질세라 굉장한 위세로 주문을 외며 몸을 꿈틀꿈틀 움직였다. 그리고 기묘한 모양으로 공중에서 무엇인가 당겨 내리는 것 같이 손을 움직였다. 그러나 20분 정도 지나자 멀린은 힘이 다 빠졌는지 푸우푸 하고 풀무 같이 숨을 쉬며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소용돌이치는 연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하고 수도원장을 비롯하여 수백 명의 수도자들과 순례자들까지 마구 몰려들었다. 수도원장은 빠른 말로 물었다.
"멀린 님, 어떻게 됐습니까?"
"으응...... 이 샘에 걸린 저주는 사람의 힘으로써는 풀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샘에는 마귀의 저주가 걸려 있는 거요. 말만 해도 화를 입어요. 무서운 악마의 저주요. 이 저주를 물리칠 자는 지상에는 없소. 물은 영원히 나오지 않소. 나는 돌아가기로 하겠소."
수도원장은 급해 가지고 나를 뒤돌아보았다.
"멀린 님은 저렇게 말씀하시는데 사실일가요?"
"어느 정도는 말야."
"그렇다면 어느 것이 사실일까요?"
"어려운 이름의 마귀가 저주를 내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 그러면 멀린 님이 지상의 아무도 이 저주는 풀지 못한다고 하신 것은 사실입니까?"
"그렇지. 방법에 의해서는 어찌하면 풀릴지도 몰라요."
"방법이라니?"
수도원장은 내게 매달리다시피 했다.
"그것은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어떻게 하든 내가 저주를 푼다면 내 말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네, 무엇이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그럼 우선 오늘 해가 진 후부터 내가 저주를 물리칠 때까지 우물에서 반 마일(0.8킬로) 이내의 장소에는 아무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허락하겠습니까?"
"그것은 반드시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멀린이 기분 나쁜 웃음을 띠고 기운을 차린 모양으로 나왔다.
"히히히. 이 샘에 걸린 저주를 보스 님이 물리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그대는 저주를 건 마귀의 이름을 알고 있겠지요?"
"알고 말고."
"그렇다면 보스 님은 그 이름을 부르면 생명을 빼앗길 것이오. 그 이름을 부르는 자, 반드시 죽을 것이니까. 바보 같은 나는 이 일을 아서 왕에게 말씀드리지 않고서는 안 되겠소."
"제발, 제발, 걱정 말고. 어허, 여행용 가방을 잊어버리고 오셨군요. 당신은 나라에 되돌아가서 기상예보나 하는 것이 알맞겠소."
멀린은 아무 말도 못했다. 그것은, 멀린은 국내에서도 가장 서투른 기상 예보자였기 때문이다. 멀린은 붉으락푸르락 하였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 해서든지 내가 실패하는 것을 자기의 눈으로 보지 않으면 분이 가라앉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나는 돌아가지 않고, 보스 님이 마귀의 벌을 받고 죽는 것을 즐겁게 구경하겠어. 흐흥!"
이날 저녁 때 나의 공장에서 두 사람의 기사가 도착했다. 밤낮을 계속하여 여행을 했기 때문에 지쳐있었다. 끌고 온 나귀 등에는 주문한 중요한 물건들이 실려 있었다.
목수 도구, 펌프, 연관(납이나 납합금으로 만든 관), 공사용 화약, 대형 활차(도르래), 양초, 전기 배선기구, 그 외 많은 물건들....... 이로써 기적용의 도구는 모두 갖추어진 것이다.
한밤중 나와 두 사람의 기사는 몰래 일어나서 우물 속에 숨어 들어갔다. 그리고 우물 내부의 벽이 갈라진 틈을 정성스럽게 땜질했다. 그것만으로도 물은 마구 솟아올라왔다.
다음에 우리들은 불꽃을 교회에 비치하고 되돌아왔다. 해가 뜨기 1시간 전이었다.
기적은 일요일에 공개하는 편이 10배나 효과가 있을 것이며, 또한 보람있는 일이다. 그리하여 나는 준비를 서둘렀다. 정오에 몰래 우물을 엿보았더니, 물은 벌써 위에서 7미터나 되는 곳까지 차 있었다. 우리들은 펌프를 비치하여 연관 공사를 하고, 때를 맞추어 물을 일제히 솟아오르게 하여, 이 골짜기의 어디에서나 그것을 볼 수 있는 장치를 했다.
그리고 나서 통에 화약을 넣고, 안에 여러 가지 화려한 종류의 화전(화약을 장치한 로켓)을 세워 교회의 지붕 위에 올려놓았다. 지붕의 사방 구석에는 빨강, 파랑, 초록, 보라색의 신호화약을 두고 전선을 연결해 놓았다. 또 골짜기의 수도자를 시켜 2백 미터 떨어진 곳에 관람석을 만들었다.
준비는 완전히 끝났다. 나는 밤 10시 반에 입장, 11시 25분 정각에 특별 대기적의 1막을 연출하기로 했다. 입장료를 받을까 하고도 생각했으나, 그것은 그만두기로 했다. 나의 조수인 기사들은 교회 안에 숨어서 펌프 장치며 다른 일을 하게 했다.
구경꾼들은 수도 없이 몰려들었다. 샘의 불행한 사건의 뉴스는 멀리까지 퍼져 있었기 때문에 몰려든 사람들로 골짜기에는 캠프촌이 생길 정도였다.
저녁때에 사람을 시켜 '보스 님의 대마법, 오늘밤 연출'을 선전하게 했다. 사람들은 열병을 앓는 것처럼 가슴을 울렁이며 시간이 되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10시 반 수도원장을 비롯하여 수도자 전원이 관람석에 앉았다. 그리고 종을 쳐서 신호를 하여 모두를 입장시켰다. 밀고 밀리고 하는 소동으로 사람들을 정리하는데 30분 정도가 걸렸다.
이윽고 와글대던 것이 딱 그쳤다. 사람들은 침을 삼키면서 이제나저제나 하고 기다리고 있다. 시각은 가까워졌다. 라틴어의 성가 합창이 시작되었다.
그것이 끝나자, 나는 단 위에 올라가서 2,3분 하늘을 우러러 두 손을 내밀었다. 사람들은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나는 엄숙하게 외쳤다.
 
"콘스탄티 밴리타니이스 시에르다데르까크 스프에포후엔 마쯔히에 르스게제르시야후토!"
 
그리고 외침이 끝남과 동시에 전선을 이었다. 순간 굉장한 빛이 어두움을 창백하게 비쳤다.
사람들은 겁이 나서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부둥켜안고 사방으로 도망쳤다. 수도원장이나 수도자들은 성호를 그으며 떨면서 기도를 했다.
멀린은 꾹 참고 앉아 있기는 했으나 창자가 뒤집힐 듯이 놀라고 있었다. 멀린은 이런 굉장한 모양으로 개막되는 마법은 아직 본 일이 없었다.
잇달아 나는 두 손을 높이 들어올리고 신음하듯이 외쳤다.
 
"니히리스텐디나마이 토데르카에스 엔슈파렌강게 사텐데쯔베르샤겐!"
 
그리고 이번에는 붉은 전등을 켜게 했다. 새빨간 빛이 밤하늘에 빛나고 사람들은 신음소리를 내고 외치기도 하며, 간담이 서늘한 듯 멍청해 있었다.
60초 가량 이어 나는 더욱 큰 소리로 주문을 외웠다.
 
"토란스 바르토류펜토롯펜 토란스 포르토토란페르데에르 토로이베르토라 운게슈데넨토라기에다이!"
 
그리고 이번에는 초록빛의 전등을 켰다. 또다시 40초의 간격을 두고 나는 힘껏 큰 소리를 질렀다.
 
"멧카 뮤제르만 넨마쯔센멘 센데르모렌므쯔 타마르모르모 뉴맨텐마체로!"
 
보랏빛을 빛내게 하고, 서비스로 빨강, 파랑, 초록, 보라색의 빛을 번쩍번쩍 빛나게 했다. 빛의 불길은 하늘을 물들이고 골짜기를 속속들이 비치었다. 이때만은 골짜기의 수도자들도 뒹굴거나 굽실거릴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높은 단 위에 올라가서 위엄 있는 체하고 서 있는 것이 바라보였다.
나의 부하는 펌프 옆에서 자기들의 순번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수도원장에게 위엄 있게 말했다.
"신부여, 때는 왔도다! 이제야말로 그 무서운 마귀를 불러 저주를 풀 것을 명령한다. 그러니 마음을 단단히 먹고 무엇인가 붙잡고 있을 지어다."
다음, 사람들을 향하여 외쳤다.
"보라! 다음 순간 저주는 풀리어 물은 교회의 문으로부터 솟아나올 것이다."
나는 한동안 사이를 두고 나의 소리가 닿지 못하는 곳까지 나의 말이 전해지는 것을 기다렸다. 그리고 나서 특별히 근사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힘을 다하여 큰 소리로 외쳤다.
"자 나는 명령하노라! 이 '성스러운 샘'에 붙어 있는 악령이여! 그대 지옥의 불을 즉시로 토해내고, 저주를 풀고 즉시로 근신을 명하노라. 그대의 부정한 이름을 불러 명한다. 부구지리구푸쿠쿠!"
그리오 나는 불꽃의 스위치를 눌렀다.
순간 눈부신 굉장한 불기둥이 하늘로 치솟고, 하늘은 불을 뿜는 보석의 폭풍이 되었다. 그리고 그 빛 속에 성스러운 샘의 물은 예정대로 솟아올랐던 것이다. 펌프 계원이여 수고가 많았어!
사람들의 기쁨의 외침은 땅을 흔들었다. 늙은 수도원장은 기쁜 나머지 너무 감격해서 말도 못한다. 그 대신 나를 힘있게 안았다. 너무 꼭 껴안긴 나는 정말 고통스러웠다. 돌팔이 의사 하나 없는 이 지방에서는 그 고통을 회복하는데 꽤나 고생이었다.
멀린은 기절하여 땅 속으로 들어갈 것처럼 쓰러져 있었다. 내가 그 마귀의 이름을 불렀을 때 숨이 꽉 막혔던 것이다. 그 이름은 나에게도 처음 듣는 이름이었지만, 멀린에게도 처음이었던 것이다. 후에 멀린은 어머니가 자기의 아들 이름을 부르는 것보다 훌륭하게 그 이름을 부르셨다고 말했다.
어쨌든 굉장한 성공이었다. 나 역시 흥분하여 그날 밤 내내 잠들지 못했다. 물론 창 밖에서는 내 이름을 부르며 칭송하는 소리가 축제 같이 떠들썩했다.
 
예언자가 되다
 
나는 이 '성스러운 골짜기'에서는 하느님 다음 정도로 높아졌다. 그래서 나는 모처럼 높아졌으니까 계속해서 또 하나 모두가 더욱 기뻐하는 일을 하려고 생각했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2세기 정도전에 샘의 물에 목욕을 하여 깨끗해지려고 했던 수도자는, 목욕을 하지 않은 수도자보다 바르고 인간답다고. 그리하여 나는 수도자의 한 사람에게 물었다.
"당신은 목욕을 하고 싶지 않습니까? "
그러자 수도자는 천벌이 겁나는지 벌벌 떨었다.
"천만에요. 제발 유혹하지 말아주셔요. 나는 어릴 때부터 목욕이 어떤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야 기분이야 좋긴 하지만........ 만약에 하느님이 허락하는 그 때에는 목욕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허락되지는 는 않고 있습니다."
수도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 그렇다면 나의 공장에서 만든 비누를 전부 써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수도자들에게 목욕을 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곧 수도원장을 찾았다.
"부탁입니다. 수사(독신으로 수도하는 남자)님들을 모두 목욕을 하게 하지 않겠습니까?"
수도원장은 창백해지면서 떨었다고는 해도, 사실은 알 수 없다. 때가 타서 검은 얼굴이다. 문지르지 않으면 사실을 알 수 없다. 그러나 나는 그 얼굴을 문질러 진짜 창백해졌는지 확인해 볼만큼 호기심이 강하지는 않으니까 창백해진 것으로 해 두자.
"다른 분도 아닌 보스경이 말씀하시는 일인데, 말씀대로 따르고 싶기는 하지만 그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입니다. 또 샘이 마르기라도 하면........"
"절대로 마르지는 않습니다. 내가 보증합니다. 나는 샘물이 어째서 나오지 않았는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안심하고 수사들의 목욕실을 지어주십시오."
"그건, 저! 저! 괜찮을지요?"
"그렇습니다. 목욕실을 만듭시다. 물은 영원히 솟아나고 말고."
"약속해 주십시오. 제발 약속한다고 말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나와 기사들은 목욕실을 만들어 주었다. 수사들은 껍질을 벗긴 감자처럼 깨끗하게 되었다. 이것은 '성스러운 골짜기'에서 내가 한 우물 수리보다 더 좋은 일이었을 것이다.
자, 나는 여기서의 일도 끝났으므로 슬슬 떠날 작정이었는데, 곤란하게도 감기가 들어 그 때문에 신경통을 앓기 시작했다. 이것은 뜻밖의 내가 받은 재난이었다. 내가 엉터리 대마술을 행했을 때 수도원장이 나를 힘껏 껴안는 통에 가슴에 신경통의 지병(낫지 않아 늘 고통을 받는 만성병)이 생기게 되었던 것이다.
알리산도 공주가 친절하게 간호를 해 주었기 때문에 나는 이윽고 좋아졌으나, 이번에는 알리산도 공주가 병을 앓게 되었다. 알리산도 공주는 미신에 속아넘어갈 결점이 있었으나, 그것은 그 시대의 누구든지 그러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점을 빼놓고는 더 말할 수 없이 좋은 아가씨였다.
나는 알리산도 공주를 수녀원에 맡기고 홀로 출발하려고 생각했다. 변장을 하고 도보 여행을 하여 국민의 생활 모습을 직접 보고 싶었던 것이다.
어느 날 아침, 다리를 훈련시키기 위하여 골짜기의 북쪽에 있는 높은 산에 올라갔다. 거기에는 수도자들이 머물렀던 동굴이 있었는데, 그 수도자들은 사하라 사막의 사자라고 불리는 수사의 초청을 받고 아프리카로 떠난 후였다. 나는 이 유명한 동굴을 구경하기로 했다.
그런데 굉장히 지저분한 곳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깨끗이 정돈되어 있었다. 더군다나 놀란 것은 어둠 속에서 벨 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리고 사람 소리가......
"여보셔요. 교환국을! 거기가 카멜롯? 여기는 듣고 놀랄 장소다. 지금 옆에 보스경이 오셨어. 직접 보스경의 소리를 듣게 될 거다."
이건 어떻게 된 일이냐. 기적의 명인인 나도 깜짝 놀라버렸다. 과연 여기는 수도자가 사는 기적의 동굴이었지만, 어느 틈에 전화국으로 바뀌어지리라고는!
안에서 어슬렁어슬렁 나의 부하인 전화 기사가 나왔다.
"아르화스, 언제부터 여기에 문을 열었지?"
"보스 경, 어젯밤 늦게입니다."
"좋았어. 장소도 좋다. 이 아래는 '성스러운 골짜기'로서 사람이 많이 오니까 말야."
"아니, '성스러운 골짜기'입니까? 전화로 클라렌스 님과 연락을 취했는데 잘 들리지 않아서 '부정한 골짜기'라는 듯이 들리었습니다."
"곤란한 전화인데. 그런데 그 이름 쪽이 맞는지도 몰라. 그럼 카멜롯 성을 불러주게."
전화를 잇자 나의 가장 우수한 조수 클라렌스의 소리가 들려왔다.
"오래간만인데, 클라렌스. 그쪽은 어떤가?"
"네, 그쪽에서 보스 님이 하신 기적의 평판이 전해져 와서 아서 왕과 왕비는 크게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궁정의 중요한 사람을 데리고 지금 그쪽으로 떠났습니다. 그런데 큰일을 하셨습니다."
"왕은 언제쯤 여기 도착할 것 같으냐?"
"예정으로는 사흘 후의 정오로 되어 있습니다."
이윽고 나는 산에서 내려와 수도원으로 돌아왔다. 수도원에서는 재미있는 일이 시작되고 있었다.
수사들은 모두 대강당에 모여 동양에서 왔다는 마술사의 마술을 구경하려는 참이었다. 수사들은 눈을 빛내며 마술이 시작되기 전부터 벌써 둔갑한 것 같은 얼굴이 되어 있었다.
마술사는 인도인의 약장사처럼 야한 스타일을 하고 있었으며, 어리석기 짝이 없어 보였다.
이 마술사의 가장 뛰어난 마술은 지구상의 누구도 좋으니까, 그 사람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맞추는 모양이다. 또 미래에 무엇이 일어날지도 맞추는 모양이다. 마술사는 마룻바닥에 꾸불꾸불 여러 가지 선을 긋고 주문을 외고 있었다.
나는 대마술사이므로 놈이 사람을 속이기 위한 준비로서 체하고 있는 것 정도는 곧 알 수 있었다. 나는 비웃으면서 구경하고 있었다.
마술사는 일동을 둘러보고 말했다.
"여러분, 지금 동양의 황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은 사람은 없는지?"
그러자 수사들은 모두 일제히 알고 싫다는 얼굴을 했다.
마술사는 그야말로 천리안처럼 열심히 한 곳을 지켜보는 체 하면서,
"지금 동양의 황제는 덕이 높은 스님의 손위에 돈을 주고 있다. 한 닢, 두 닢, 세 닢, 그것은 모두 은화입니다."
수사들은 자기가 은화를 받고 있는 것 같이 느껴졌는지 침을 삼키고, 조용히 마술사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가 이윽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굉장한 마술이로다! 어떤 수업을 하셨기에 이러한 놀랄 만한 마법을 지니게 되었을까!"
그러자 마술사는 우쭐대면서 또 인도의 왕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말하고, 또다시 이집트의 왕에 대한 것, 바다 저쪽의 국왕에 대한 것을 차례로 우쭐대며 말하여 순진한 수사들을 놀라게 했다.
이대로 거짓말을 하게 하면 놈은 백발백중의 마력의 소유자가 되어 나의 주가를 빼앗을 것 같다. 브레이크를 여기서 걸지 않으면 안 되겠다. 그래서 나는 물었다.
"뭐든지 맞출 수 있습니까?
"그렇소. 내가 맞추지 못하는 것은 없소."
"맞추면 은화 2백 닢을 드리겠는데, 맞춰 보겠습니까? "
그러자 수사들은 몸을 내밀면서 귀를 기울였다. 마술사는 가슴을 펴고 대답했다.
"그 은화 2백 닢은 벌써 나의 거지. 뭐든지 물어 보도록."
"그렇다면 묻기로 하겠습니다. 내가 지금 바른손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맞춰 보셔요."
자, 모두가 깜짝 놀랐다. 몇 천 킬로 저 먼 곳의 일은 물어도 바로 옆의 일을 묻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마술사는 눈알을 빙빙 돌리었다. 당황해 하고 있다. 나는 더 다가섰다.
"자, 말해 보시요! 먼 나라에서 생기고 있는 일은 그렇게 잘 알고 있으면서 눈앞 사람이 하고 있는 일은 알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내 뒤의 사람은 나의 바른손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다 알고 있어요. 자, 마술사군 말해 봐요!"
마술사는 우물쭈물할 뿐이다. 그리하여 나는 고함을 질렀다.
"알 수 없는 모양이군요. 모를 겁니다. 사기꾼인걸. 이 엉터리야!"
그러자 마술사보다 수사들이 새파래졌다. 마술사에게 이같이 난폭하게 말하면 어떤 저주를 받을지 하고 걱정한 것이다.
마술사는 죽어가고 있는 금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리고 있다가 겨우 변명할 것을 생각해 냈다.
"아, 아니. 아니 저 나, 나는 신분이 높은 분 즉, 국왕이나 왕자의 일밖에 상대하지 않소. 그러므로 이분이 물어본 것은 너무나 시시한 일이었기 때문에 어이없어 대, 대답을 못했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서 왕 같은 분에 대해서 묻는다면 즉시로 대답해 보입니다......."
"그런 거요. 아무렴, 그럴 거요."
수도원장도 당황하여 자꾸만 마술사의 기분을 맞추고 있었다.
마술사는 명예 회복을 위하여 다시 한 번 수도자들을 깜짝 놀라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아서 왕이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여러분은 묻고 싶지 않습니까?"
"아아, 그건 반드시 알고 싶지요."
하고, 수도원장이 말하니 수사들은 모두 존경의 눈길을 마술사에게 보내었다. 참으로 어찌할 수 없는 바보들만 모였다. 그리고 나를 보고 '자 이렇게 훌륭한 마법사 님이 아니냐' 하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다. 천치 바보 같은 놈들!
마술사는 뻔뻔스럽게 지껄이기 시작했다.
"아서 왕은 지금 사냥으로 지쳐 2시간 전부터 궁전에서 깊이 잠들고 계십니다."
그러자 수도원장이 성호를 긋고 말했다.
"제발, 수면이 왕의 피로를 풀도록!"
나는 따끔하게 말했다.
"어허, 임금님은 잠들고는 있지 않아요. 지금 말을 타고 여행 도중입니다."
모두 놀라 파도처럼 흔들렸다. 얼마든지 흔들려도 좋다. 정신없는 놈들!
마술사는 초조하게 나에게 말했다.
"이젠 됐어! 나는 수많이 훌륭한 예언자나 마술사를 만났지만, 그대 같이 주문도 외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만 있으면서 맞추려고 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어. 맞지 않을 것이 틀림없어."
"허어, 자네는 숲속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둔해져서 마력도 잃어버렸을 거야. 나도 때때로 주문을 외지만, 여기 모인 수사들은 모두 알고 계셔. 그런데 주문 같은 건 가끔 하는 것이 좋은 일이야. 쉬운 것 맞추는데 주문 같은 건 필요도 없어."
이렇게 말하자 마술사는 우우! 하는 소리만 냈다. 옆에서 수도원장이 중재하듯이 물었다.
"왕비 님이나 원탁 기사 분들은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마술사는 또 태연히 대답했다.
"어느 분도 임금님처럼 잠들고 있습니다."
재빠르게 내가 말을 받았다.
"그것도 입에서 나오는 대로다. 원탁 기사 절반은 지금 왕과 왕비를 모시고 말을 타고 있다. 이것은 사실이다. 이 정도로 가르쳐 주었으니까, 이번에는 이분들이 어디로 가려고 여행하는지를 자네 맞춰봐요."
마술사는 완강하게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 아까 내가 말한 대로 왕은 잠들어 계십니다. 내일부터 바다로 떠날 것이지만......"
"그럼 이제부터 사흘째의 저녁때에는?"
"카멜롯 성에서 멀리 북쪽에 계신다."
"야! 거짓말도 엔간히 해요. 이 나를 앞에 두고...... 들려주지요. 사흘째의 저녁때에는 왕의 일행은 이 골짜기에 도착할 것입니다."
이것은 확실히 효과가 있는 말이었다. 수도자들까지도 숨도 못 쉴 정도로 충격을 받고 입을 쩍쩍 벌렸다. 나는 계속하여 예언하였다.
"만약에 내가 한 말이 거짓말이라면 나는 사형에 처해져도 좋아요. 그러나 내가 한 말이 맞으면 마술사군, 당신이 몸 위로 수레를 지나게 할 테니까."
수사들은 멍청하게 나와 마술사를 번갈아 볼 뿐이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비밀 전화국으로 가서 정보를 물었다. 왕 일행은 무사히 여행을 계속하는 모양이다.
자, 드디어 내가 예언한 그날이 되었는지, 아무도 왕의 일행을 맞이하려고 하지 않는다. 말에 의하면 그 사기꾼 마술사는 나의 과학 기계를 사용하여 알은 정확한 뉴스를 허풍이라고 말하고 다닌 모양이다.
그러기는 해도 멀다나 슬픈 일인가! 내가 그만큼 대마법을 보이고 나서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제는 사기꾼의 마법을 믿고 나를 믿지 않으려고 하다니!
아아! 이러한 일은 세계의 어디에도, 그리고 어떤 세상에도 있을 것이 틀림없다.
왕이 오시는 것을 알고 있는데 그대로 있을 수는 없다. 나는 골짜기에 있는 순례자들을 모아 오후 2시, 왕의 마중을 보내었다.
그리고 수도원장의 귀를 잡아당기는 것처럼 하여 발코니로 데리고 나갔다. 그 때 국왕 아서는, 수도원에서는 한 사람도 마중을 나가지 않은 골짜기에 조용히 닿았던 것이다.
수도원장은 발코니에서 굴러 떨어질 듯했다. 나에게 백만 번을 사과하고 종과 북을 급히 울렸다. 그리고 정신없이 뛰어가 쓰러져 무릎을 벗기면서 왕과 왕비 앞에 엎드린다. 그 때 그 엉터리 마술사도 또한 넘어질 뻔하면서 허둥지둥 도망쳤다.
나의 명성은 절대로 떨어질 수 없는 곳까지 올라갔다.
 
부관 시험
 
아서 왕이 여행을 하게 되면 정부의 일부도 따른다. 여행을 하면서 나라의 정치에 대한 일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좋아하지 않는 귀족이 멀리 있어서 그곳으로 여행을 하면, 귀족은 왕 일행의 대접 때문에 파산한다. 파산을 시키려면 그곳을 방문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아서 왕은 최고 재판소의 재판장도 겸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행 도중 재판도 했다. 왕은 대체로 공평한 재판을 했다. 그러나 이것은 왕으로서 자라난 아서 왕이 공평하다고 생각하는 재판을 했다는 것뿐이며, 판결은 별문제였다. 예를 들어 귀족과 일반 국민의 사이에 사건이 생겼을 때에는 어느 쪽이 옳고 그르건 승리는 반드시 귀족 쪽이었다.
나는 아서 왕의 일행과 함께 궁정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도중에서 이야기를 들으니 아서 왕은 아마 군대를 만들 준비에 착수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한 것은 내가 있을 때에 결정하면 좋은데, 하고 생각했으나, 행차 뒤의 나팔, 궁정에 돌아가면 곧 부관을 선발하는 시험을 본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만든 학교에서 공부한 우수한 학생만이 합격할 수 있는 시험 문제를 내고 싶었으나, 시험 날짜와 시험관도 결정되어 있었다. 아무리 나일지라도 그런 것을 전부 다시 바꿀 수는 없었다.
시험관의 명단을 보니 정말 울고 싶기도 하고 웃고 싶기도 했다.
당치도 않는 얼빠진 놈들의 집단이었다. 돌대가리이며 녹슨 자물쇠 같은 귀족들이었다. 그 귀족 제군은 목사를 겸하고 있는 작자들이어서 더욱 처치가 곤란하였다. 이 세상에서 목사처럼 죄가 많은 작자는 없다고 나는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고서는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나의 학교에서 우수한 학생을 시험을 치르게 했다.
드디어 시험이 시작되었다. 내가 추천한 청년은 맨 처음에 시험을 보게 되었다.
시험관은 엄숙하게 질문을 시작했다.
"이름은?"
"마르이즈입니다."
"누구의 아들이지?"
"웹스터입니다."
"웹스터.... 웹스터. 그래.... 나는 그러한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데. 신분은?"
"직조공(기계로 베를 짜는 공원)입니다.
"직조공이라고! 와!"
왕은 깜짝 놀라 의자에서 미끄러져 떨어졌다. 시종 한 사람은 정신을 잃고, 또 한 사람은 하마터면 정신을 잃을 뻔했다. 시험 위원장은 얼른 정신을 차리고 사납게 말했다.
"됐어, 너한테는 용무가 없어."
뭐냐 말이다. 나는 분개하여 왕에게 그 청년을 정당하게 시험해 달라고 부탁했다. 왕은 기분 좋게 들어주었다. 그러나 시험위원들이 말을 듣지 않았다.
"천한 직조공의 아들과 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명예에 관한 일은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이러한 축제의 장식과 같은 놈들에게는 나의 학교 학생의 좋은 점을 알 리가 없다. 나는 정이 딱 떨어지고 말았다.
그리하여 왕은 학교의 선생을 불러내어 시험 위원 대신 질문하게 했다.
마르이즈의 대답은 훌륭했다. 공격과 수송의 방법, 신호와 화약 병기의 사용법, 보병, 기병의 작전에서부터 대포의 지식까지 당당하게 말했다. 나는 마르이즈에게 달려들어 껴안고 싶을 정도로 기뻤다. 어때! 최고점으로 합격할 것은 틀림없다. 나는 코가 높아졌다.
시험위원들은 멍청하게 입을 벌리고 있었다. 입에 파리가 들어가도 알지 못할 정도로 놀라고 있었다.
다음은 귀족 청년이 시험을 볼 차례였다. 나는 조금만 질문해 보기로 했다.
"당신은 읽고 쓸 수 있습니까?"
그러자 청년은 화가 나서 얼굴을 붉혔다.
"나를 서기로 잘못 보는 것인가? 나는 그와 같은 천한 신분은........"
"물음에 대답하시오. 읽고 쓸 줄을 압니까?"
청년은 볼이 부운 얼굴로 말했다.
"아니요."
그리고 청년이 곧 이유를 말할 것 같아서 나는 선수를 쳤다.
"당신은 신분이나, 아버지가 어떤 높은 지위에 있다는 것을 여기 와서 뽐내려고 온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일은 삼가해 주시오. 당신은 덧셈의 구구를 알고 있는지."
"아니,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9에 6을 더하면 얼마가 됩니까?"
"그것은 어떤 것인지 해 본 일이 없어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에이(A)가 비(B)에게 한 묶음에 2펜스 하는 양파 한 통을 주고 4펜스의 양파 1펜스의 개와 바꾸었다. 그런데 바꾸기 전에 그 개가 디(D)로 잘못 알고서 (C)를 물어뜯어 시는 개를 죽여 버렸다. 그러면 에이는 비에게 얼마의 빚이 있는가? 개의 값은 시와 디의 어느 쪽이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그 돈은 누가 받게 되는가?"
"나는 그처럼 얽힌 문제는 하느님의 지혜로서도 알지 못할 것으로 압니다. 그러므로 개나 양파도 그들 사람들도 나의 도움을 빌지 말고 마음대로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내가 가운데 있으면 문제는 더한층 복잡하게 되어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자력(자석의 서로 끌고 미는 힘)과 인력(물체가 서로 끌어당기는 힘)의 법칙을 알고 있습니까?"
"뭐요? 그와 같은 법칙은 내가 새해에 앓고 있을 때 국왕이 정했기 때문에 듣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빛의 학문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나는 각지의 영주님이나, 성의 가신(경이나 대부의 집에서 그들을 섬기고 받들던 사람)의 우두머리며 각처의 무사의 우두머리는 알고 있으나, 빛의 학문님은 아마도 새로운 지위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귀족의 코흘리개 자식의 바보가 부관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나의 학교의 학생과 비교하면 달과 자라다. 누가 보아도 확실하다. 그리하여 나는 코흘리개를 시험 위원 쪽에 돌리고 나의 학교의 마르이즈가 부관이 된다는 것은 결정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험 위원은 귀족의 아들에게 질문을 시작했다.
"이름은? "
"파티플 바레 마슈 남작 파티플 경의 아들입니다."
"할아버지는?"
"같은 바레 마슈 남작 파티플 경."
"증조부는?"
"같은 이름 같은 작위입니다."
"고조부는? "
"그 이전은 모릅니다. 너무나도 먼 옛날 일이므로."
"좋아, 훌륭하게 4대에 걸친 귀족. 규정에 해당되는 것 같다."
"어떤 규정입니까?"
내가 물었다.
"규정에서는 4대에 걸친 귀족이 아니고서는 부관의 시험을 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허어, 이건 놀랐다. 공작이라든지 남작이라든지 밑바닥이 빠진 국자 같은 것이 무엇에 소용됩니까...."
"이건 보스경의 말로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이것을 반대하는 것은 신성한 교회의 지혜를 반대하는 것이 돼요."
"어떻게 말입니까?"
"이건, 즉 교회에서는 성인(거룩한 신도나 순교자를 일컬음)에게도 각기 같은 규정을 정하고 있습니다. 4대의 귀족이 아니면, 죽어도 성인에는 오르지 못해요."
"하아, 그래요. 그것과 같다는 겁니까? 이건 놀랐는데. 즉 이 세상에서는 산송장, 바보와 건달군이 미이라인 주제들이 우쭐대고 있다. 그 쓸모 없는 손에 국민의 행불행의 열쇠를 쥐고 있다. 그리고 죽으면 구더기에게 먹히우고, 친국에서는 성인이라는 건가? 왕은 이리한 걱정을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까?"
아서 왕은 난처한 듯이 말했다.
"나는 조금도 이상한 일로 생각되지 않는데. 높은 지위는 태어났을 때 얻은 권리야. 공작의 아들은 공작, 귀족의 아들은 귀족의 아들로 생각되는데. 그리고 그것은 벼락부자가 질서를 깨뜨리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되어 있는 거지. 만약에 그것이 기묘한 것이며, 또 사람들이 조소한다면 그건 나의 죄이지. 보스경은 나와 대리이므로 그러한 규정을 취소해도 괜찮지만 나는 못해. 여러 가지로 말썽이 생기니까 말야."
"좋습니다. 제가 양보하겠습니다 시험 위원, 질문을 계속하시오."
시험 위원장은 질문을 시작했다.
"당신의 조상은 어떤 공적 때문에 영국의 귀족이 되었지요? "
"조상은 술 공장을 세웠던 것입니다."
"그건 훌륭하군. 그러면 그분은 어떤 집에서 아내를 맞이했지요? "
"귀족은 아니지만 대지주의 딸이었습니다."
"좋아. 그러면 다음 사람을 시험해야 하니까 기다리고 있어요."
다음의 귀족 아들 역시 4대를 계속한 귀족이었다. 그리고 그 할머니는 국왕 폐하의 개와 벼룩이잡이 담당자이어서 더욱 높은 혈통으로 인정되었다.
부관은 결국 그 사나이로 결정되었다.
정말 얼마나 엉터리인가. 나는 내가 추천한 학생의 얼굴을 바라볼 수 없을 정도였다. 나는 나의 학생에게 위로의 말을 해 주었다.
"어떤 어리석은 일이라도 참고 있어야 한다. 어리석은 일이 언제까지나 계속될 이치가 없으며, 또 이걸로 모든 것이 끝장이 난 것은 아니니까."
그렇다. 단념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그리고 나한테 명안이 있다. 나는 아서 왕을 만나러 갔다.
"임금님, 좋은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 군대는 그와 같이 귀족의 군대로 두는 것이 역시 좋겠습니다. 그걸로 좋습니다. 임금님의 군대로서 말입니다. 그런데 따로 국민들의 군대를 만들면 어떨까요? 그 군대에는 엄한 규칙을 만들어 머리와 신체를 단련시켜, 일단 유사시 (특별한 일이 생겼을 때)에는 언제나 귀족의 군대를 대신하여 실제로 일을 할 수 있게 해 둡니다."
"과연, 그건 좋은 일이야."
"그렇게 하면 귀족의 군대는 언제든지 자기들이 피로하면 전쟁터에서도 떠날 수 있고, 놀고 싶을 때는 놀 수도 있습니다. 귀족의 혈통은 나라에 있어서는 중요하니까요. 소중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건 좋은 생각이야. 모두 기뻐할 것에 틀림없네. 보스 경, 국민의 군대를 만들어 주게."
"네, 그 군대에 모인 소년들에게는 제가 충분히 교육을 실시하겠습니다"
"보스경의 생각대로 해도 좋아."
겨우, 나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날이 왔다.
나는 귀족의 군대는 모두 장교만으로, 병사를 한사람도 만들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소장까지는 계급이 있으나, 단 급료는 주지 않기로 한다. 그것은 이 군대에는 왕족도 들어 있어서 명예라고 생각하여 기뻐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군대에는 왕족을 포함시켜, 왕족은 바보거나 천치거나 원수까지 계급을 만들었다. 원수만이 아니라, 계급만은 후에 천천히 생각하여 더 관록이 있는 깜짝 놀랄 만한 찬란한 것을 붙여주겠다.
그리고 군대에서 그들대로의 일을 시키고 급료를 지불한다. 그 대신 왕족 수당은 주지 않는다. 어쨌든 왕족과 자식들은 계급이 탐나서 전원이 입대할 거다. 그렇게 되면 왕족 수당 같은 기묘하고 시시한 것은 그러는 동안 없어질 것이다.
다음, 국민의 군대라는 것은 나의 학교와 공장이다. 장래에 희망이 있는 소년들에게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가르쳐주어 국민이야말로 나라의 중심이라는 것을 머리에 잘 넣어주자.
나는 곧 똑똑한 소년들을 전국에서 모으기 시작하였다.
 
미복 잠행 여행
 
나는 언제나 생각하고 있는 일이 있었다. 아서 왕에게 국민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 주고 싶은 것이다.
나는 어느 날, 아서 왕에게 말했다.
"임금님, 나는 재미있는 일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신분을 숨기고 평민의 복장을 하고 여러 곳을 여행하고 싶습니다. 평민들은 나를 자기들과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무엇이나 숨김없이 자기들의 불만을 말할 것입니다. 나는 국민의 진정한 모습을 아는 것이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기발한 시도인데."
"지방의 영주들이 어떤 정치를 하고 있는지, 실지로 이 눈으로 보고 오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민으로 둔갑하여 평민 속에 살아 보지 않고서는 알지 못합니다."
"으응, 나도 함께 가보면 어떨까? 그건 재미있고 유익할 것 같다."
"그러나 임금님이 궁정을 비워 놓으면 뒷일이 곤란합니다."
"아니, 그것은 랜슬롯 경에게 부탁하면 돼. 경은 훌륭한 인물이니까 말야."
"그러나 임금님이 평민으로 둔갑하는 것은 될 것 같지 않은데요."
"무슨 소리냐! 그건 잘못이야. 나는 무엇으로라도 둔갑할 수 있어."
"그렇습니까? 그러나 궁정의 사람들에게 발각되면 좋지 않습니다. 뒤에 호위하는 기사들이 줄줄 뒤따르고, 이렇게 되면 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갑니다."
"음, 그렇겠다. 그러나 호위가 없다면 여러 가지 무서운 일을 당할지도 모르지?"
"나의 마법의 힘은 천명의 힘입니다."
하고, 나는 싱글거렸다.
"오, 과연 그렇지. 잘 부탁하네. 나는 호걸로 칭송되는 아서 왕이야. 여행 같은 일에 무슨 일이 있을라고."
"그렇다면 임금님, 오늘밤........
그날밤 모두가 잠들었을 때 나는 왕을 나의 방으로 끌어 들였다.
"임금님은 머리가 너무 깁니다. 평민의 머리는 짧으니까 말입니다. 그리고 모자는 이것이 좋겠습니다"
나는 아서 왕의 머리에 큰 공기(보시기)를 씌우고 그 아래로 삐어져 나온 머리칼을 뭉텅 뭉텅 잘라 버렸다. 턱수염과 귀밑 수염도 짧게 깎고, 준비한 허술한 긴 베옷을 입히고 볼품없는 나막신을 신겼다.
그리고 나도 왕과 같은 모습으로 둔갑했다.
"허허, 보스 경. 그대의 모습이 뭔가."
"임금님도 같습니다."
이제 누구도 이것이 영국 제일의 멋쟁이 아서 왕이라고는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보아도 농부가 아니면 양치기나 거리의 직공이다. 아서 왕은 발꿈치까지 닿는 긴 옷을 끌고 만족스러워한다. 이것이 일반 국민의 제복이다. 이렇게 싼 천은 없다는 천이었다.
왕과 나는 날이 밝기 1시간 전에 성을 빠져 나왔다. 해가 떠올랐을 때에는 10킬로 정도나 성을 멀리 하고 있었다.
거기는 벌써 사람 그림자도 드문 시골이었다. 나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다.
짐 속에는 식량이 들어 있다. 어쨌든 왕에게 곧 평민과 같은 것을 먹게 하면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을 것이므로, 나는 아서 왕을 길가의 돌 위에 앉히고 조금 식사를 드렸다.
"저는 물 길러 갔다 오겠습니다"
그곳을 떠나 개천가에서 다리를 뻗고 한숨 돌리었다. 왕은 앉아 있어도 우리들은 서 있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궁정의 관습이다. 평민 모습으로 여행에 나섰다고 해도 다른 사람이 보지 않을 때에는 왕은 역시 왕이다. 함께 앉을 수는 없는 일이다.
20분 정도 거기서 쉬고 있는데 방울 소리가 들려왔다. 부하를 거느린 높은 지위인 듯한 사람이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말이나 나귀에 매단 방울이 울리고 있다. 자, 큰일이다! 나는 숲속의 지름길로 아서 왕 쪽으로 달려갔다.
"임금님, 귀족이 옵니다."
"답답하지 않다. 지나가면 될 거지."
"임금님! 임금님은 지금 평민입니다. 앉아서 바라보아서는 안 됩니다. 귀족이 지나갈 때까지 공손히 절을 하고 서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오, 그러했지. 나는 지금 바다 저쪽에 사는 골인들과의 대접전을 공상하고 있어서 멍해지고 있었다."
아서 왕은 천천히 일어섰다. 그러나 예를 들어, 아무리 땅값이 올라서 금값이라도 백성의 늙은이라면 더 날쌔게 일어서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나는 이 웅대한 꿈........."
"꿈에 대한 일은 뒤로 미룹시다. 더 허리를 굽혀서! 더 낮게 절을! 더더! 자, 빨리!"
"이렇게! 이 정도면 되겠는가?"
"아니요, 더!"
아서 왕은 열심히 절을 하고 있는 줄로 알고 있을 것이나, 아무래도 피사의 사탑(이탈리아 피사에 있는 종각. 건설 중에 지반이 내려앉아 경사도가 심해져 간다 함) 정도의 절이다.
드디어 행렬이 다가왔다. 수행원이 척 채찍을 들어 올렸다.
순간 재빨리 나는 채찍 앞으로 몸을 던졌다. 채찍은 사정없이 나를 때렸다. 일제히 쏟아진 비웃음 속에서 나는 왕에게 말했다.
"꼼짝 말고 계십시오."
행렬은 지나가 버렸다. 왕이 분개하여 말했다.
"무례하기 짝이 없는 놈. 비틀어 뭉개치울 것을. 보스 경, 정말 아팠겠지?"
"임금님, 비틀어 뭉개치우게 되면 우리의 모험 여행은 헛됩니다. 이 계획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평민의 옷차림만이 아니라, 행동도 평민이 아니면 안됩니다."
"확실히 그렇다. 그대의 말대로 하겠어. 될 수 있는 한 잘 하겠어."
아서 왕은 열심으로 평민의 흉내를 내려고 했으나, 그 서툴기라곤! 불행하게도 조금도 잘 되지 않았다. 나는 제멋대로 뛰어 노는 아기의 뒤에서 조마조마하여 따라다니는 어머니 같은 마음이었다. 눈을 뗄 수 없다.
이틀째의 저녁 때였다. 길가에서 쉬고 있는데, 아서 왕이 천천히 옷 속에서 단도를 꺼냈다.
"아니, 그것은 어떻게 된 겁니까?"
"어젯밤 여관에서 수상한 사내에게서 산 거야."
"뭘 하시려고요?"
"만일의 경우의 준비로서 무기를 가지고 있는 편이 종을 거야. 그대의 지혜가 미치지 못할 때도 있을 수 있으니까."
"그러나 임금님, 평민은 무기를 가져서는 안 되는 규칙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무기가 발각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나는 그 무기를 버리도록 하는 데 굉장히 애를 먹었다. 마치 번쩍번쩍 빛나는 장난감 칼을 갖고 기뻐하는 아기에게 그것을 버리게 하는 만큼이나 어려웠다.
한동안 걷고 있는 동안 왕은 깊이 생각하면서 나에게 말했다.
"보스경이여, 내가 실수를 저지르기 전에 그대는 나를 제지하면 되지 않아."
"그러한 것은 무리입니다. 임금님, 임금님이 생각하시는 것을 제가 먼저 알 수 있습니까?"
그러자 왕은 이상한 얼굴로 나를 지켜보았다.
"나는 그대를 멀린보다 훌륭하다고 생각하는데, 확실히 마법에선 그대가 위야. 그러나 멀린은 예언을 해. 멀린은 내가 생각하는 것을 알고 있어."
이건 잘못됐다. 신용을 회복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그래서 나는 깊이 생각했다.
"임금님, 그건 틀립니다. 예언이라고 헤도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겨우 하루 이틀 앞의 일을 예언하는 힘, 또 하나는 몇 해나 몇 백 년 앞의 일을 예언하는 일, 이 어느 쪽이 더욱 우수한 재능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야 물론 몇 백 년이나 앞을 내다보는 힘이 훌륭하지."
"멀린에게 그 힘이 있습니까?"
"글쎄, 멀린은 내가 20년 후에 국왕으로서 다시 태어난다고 예언했는데, 그것이 고작이야. 그보다 더 앞의 일은 무리일 거야."
"그렇습니다. 멀린은 기껏 해서 그 정도일 것입니다. 우리들 전문가는 그것을 돌팔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위대한 예언자는 2, 3백 년 앞일을 내다봅니다."
"그런 것은 극히 드물겠지."
"더욱 위대한 예언자가 두 사람 있습니다. 한 사람은 4백 년에서 6백 년 앞의 일을 예언합니다. 또 한 사람은 7백 2십 년의 미래를 예언합니다."
"그것 참!"
"그러나 임금님, 그러한 예언자도 저의 힘과는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저의 예언의 눈은 독수리보다도 날카로워서 정확히 1천 3백 5십 년의 저쪽까지 꿰뚫어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을 들은 왕의 눈은 당장에 튀어나오게 되었다
"임금님, 제가 '성스러운 골짜기'에서 임금님과 일행의 도착을 사흘 먼저 예언한 그 평판을 들으시지 못했습니까?"
"그렇지 들었어! 기억이 나. 나는 그것을 잊어버리고 있었어. 그것에 대해서는 클라렌스가 확실히 신문이라는 것의 글자를 쓴 것을 주었어."
아서 왕이 말한 이 말에 대해서 좀 쓰지 않으면 안 되겠다. 그것은 나의 공장에서 인쇄한 매우 보잘 것 없는 신문에 대해서이며, 글자는 오자 투성이, 활자는 옆으로 되어 있기도 하고, 뒤집어진 것들인데, 이것이 앞으로의 세상에서 발견되면 세상의 역사 선생은 모두 자빠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여기에 그 신문을 본받아 아서 왕과 나와의 예언 문답을 기사로 하여 보겠다. 글자의 틀림이나 활자가 뒤집혀지기도 하고 있는 것은, 이 책을 인쇄한 현대의 인쇄소의 나쁜 솜씨가 아니라는 것을 여기서 말해 둔다. 읽기에 어려울 것이나 글자도 몰랐던 소년들이 나의 학교에서 새롭게 교육을 받고 신문을 만들 수 있게까지 된 그 진보를 인정해 주기를.
 
아서 왕
 
미복(지위가 높은 사람이 무엇을 몰래 살피러 다닐 때 입는 남루한 옷차림) 잠행(남몰래 다님)의 여행 이틀째 보스 경. 예언의 힘에 대해서 말함.
(앞에서의 계속) 보스경은 다시 왕을 향하여 말했다. "그 「성스러운 골짜기」에서는 나는 8일 후의 예언을 하였는데 대예언자는 먼 미래의 일밖에 보통 때에는 예언하지 않습니다. 가까운 일을 하면 품이 떨어집니다. 멀린 같은 엉터리 예언자를 우리들은 「인색한 하치」라든지, 「짤라진 꼬리」라고 말하고 있어. 인색한 예언은 경멸하고 있습니다."
"오오, 잘 알았어. 아무 것도 모르는 자에게는 멀린 같은 「짤라진 꼬리」가 훌륭하게 보여. 정말로 훌륭한 것의 모습을 모른다. 세상은 모두 그러한 것일 거다."
왕은 영리하다. 농부의 차림을 해도 머리의 활동은 틀림없이 훌륭한 왕이다.
"보스 경. 나는 알고싶은 것이 가득하다. 가르쳐 줄 수 없을까?"
신문의 흉내는 이만하겠다. 어떻든 왕의 질문은 계속되어 나는 매우 바쁘다. 왕은 이제부터 13세기 후에는 어떻게 되는가를 꼬치꼬치 캐물었기 때문에, 나는 빈대 머리가 될 것 같이 머리를 써서 계속 예언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생각하면 내가 코네티컷에서 살 때는 매우 분별없이 무턱대고 아무 일이나 했으나, 이 예언 같이 허풍을 친 일은 없었다. 대체로 예언이라는 것은 머리를 텅 비워 가지고 입을 벌리고 있으면 영감이라는 놈이 제멋대로 예언을 시켜주는 것인 모양인데, 나는 그렇지는 않다. 내게 닥쳐온 어려움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저쪽에서 무술 수업의 기사 같은 것이 나타나면 왕은 즉시로 무용(무예와 용맹)을 좋아하는 기질을 유감없이 드러내어 가슴에 불이 붙을 만큼 열을 내어 존중하는 것이다.
그리고 농부의 차림을 하고 있으면서도,
"여어, 그대는 무술 수업을 하는 기사로 보이는데."
라든지,
"잠깐만 기다려요, 나야말로........."
이러한 말을 하게 된다. 아서 왕이 가슴을 내밀고 어깨를 높이면 나는 당황하여 왕을 길 한쪽으로 끌어냈는데, 왕은 반드시 기사를 노려보며 콧구멍을 벌름거리면서 풀무 같은 숨을 쉬고, 한번 승부를 겨루게 되는 것이었다.
사흘째의 점심 때였다. 나는 미끄러져 뒤로 자빠졌다. 그와 동시에 나는 온 몸에서 핏기가 사라지고 쓰러진 채로 가만히 있었다. 나는 짐 속에 나의 공장에서 만든 다이너마이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이너마이트는 기적을 하는 데는 편리한 도구이지만, 등에 짊어지고 걷는 것은 매우 애를 태우는 일이었다. 나는 이윽고 조심조심 일어나서 짐 속의 다이너마이트의 상자가 부서지지 않았는가 점검을 했다.
그 때였다. 말을 탄 두 사람의 기사가 길 저쪽에서 왔다. 그리고 이쪽에서는 농부 차림의 아서 왕이 눈을 빛내며 버티어 서서 자아, 오너라 하는 모습이다.
기사는, 농부 모습에 정신이 돈 것처럼 보이는 사나이에게는 눈길도 보내지 않고 말발굽에 채여도 관계없다는 듯이 말을 몰았다. 왕이 재빨리 몸을 피했다.
기사는 그대로 지나갔다. 그야말로 순간의 일이며 외칠 사이도 없었는데, 내가 외치기 전에 왕이 먼저 외치고 말았다.
"무례한 놈! 길을 피해 줬는데도 인사도 없이 지나가다니 무슨 짓이냐! 자아,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겨루자!"
두 사람의 기사는 놀라 말을 멈춰 세우고 더러운 것을 보듯이 왕을 뒤돌아보고는, 빠르게 말을 돌려 왕에게 대들려고 하는 모양!
나는 그쪽을 향하여 마구 달려갔다. 그러나 도저히 시간이 맞지 않는다. 절박하여 입에서 나오는 대로 욕을 퍼부었다. 아무튼 신세기의 아메리카에서 배운 욕이다. 그래도 놈들은 욕인 줄을 알았던 모양이다. 말을 뒷발로 세게 차서 방향을 바꾸더니 즉시로 나를 향해 돌진해 왔다.
전방 30미터, 기사들은 긴 창을 수평으로 들고, 투구를 쓴 머리를 낮추고, 장식을 나부끼면서 번개처럼 달려들었다. 이제 15미터, 나는 목표를 정하여 다이너마이트를 말의 코앞에 집어던졌다.
쾅!
참으로 굉장한 광경. 미시시피 강의 기선이 폭발한 것처럼 화려했다. 말도 기사도 저 멀리 상공에 날아올랐다.
"훌륭한 마법이다. 보스 경!"
아서 왕은 기뻐했으나, 나는 머리를 옆으로 흔들고 '이 마법은 이제 하지 않습니다.‘ 하고 다짐했다.
그렇지 않으면 왕은 자꾸만 해보라고 떼를 쓸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 내가 가지고 있는 다이너마이트는 이것으로 끝이었다.
 
명예 없는 무거운 짐
 
나흘째 되는 이른 아침, 차가운 새벽의 공기 속을 걸어 차차 동녘이 밝아졌을 때, 나는 아서 왕에게 어떤 연습을 하게끔 결정했다.
"임금님, 이대로 하다간 아무리 농부의 차림을 했어도 누군가가 둔갑을 하고 있다는 것은 고양이라도 눈치챕니다. 그래서는 민가에 머물 수도 없습니다"
"그래, 나는 그대가 말하는 대로하지. 어떻게 하면 좋은가."
"폐하의 당당한, 그야말로 왕다운 걸음걸이는 임금님으로서는 좋지만, 농부는 결코 그와 같은 걸음걸이는 하지 않습니다. 백성은 괴롭고 지쳐 있으며, 생활의 무게 때문에 머리가 아래로 쳐지고 눈이 흐려지고 있는 것입니다. 백성은 밤낮, 끊임없이 고민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가난함, 불행, 힘있는 사람에게 눌리우고, 멸시되고, 여러 가지로 가엾은 일을 맛보고 있기 때문에 당당한 모습은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임금님, 이와 같이 걸으십시오."
나는 왕 옆에서 시범을 해 보였다.
아서 왕은 내 흉내를 내었다.
"어느 정도 잘했습니다. 좀더 턱을 내리고..... 네 아주 잘 되었습니다. 더 낮은 곳을 보며...... 열 걸음 정도 앞쪽의 땅을 보는 것처럼 하여, 좋습니다. 아주 잘 됐습니다. 경쾌하게 걸어서는 안됩니다. 불안스럽게 걸어주십시오. 그래요, 그래요. 이젠 정말로 꼭 같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잘 어울리지 않는데요. 좀 더 걸어봐 주셔요. 속도나 태도도 좋으나, 하하하! 더 어깨를 내리고 힘없이 얼이 빠진 것 같은 느낌...... 네, 네 그같이."
"어려운데."
"그러나 우선 낙제점은 면했습니다. 차차 잘 되리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다음은 민가에 들어갔을 때에 지켜야 할 점인데요. 임금님은 맨 처음에 어떻게 말씀하시렵니까?"
그러나, 아서 왕은 가슴을 펴고 위엄을 부리며 엄숙하게 말했다.
"하인, 의자를 가져와라. 그대가 할 수 있는 데까지 대접을 해라."
"아니, 그건 안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은가?"
"첫째로 하인이라고 상대를 부르지 않습니다."
"그렇게 안 부른다고? 사실인가?"
"네, 그것은 임금님 같은 사람이 아주 아랫사람을 보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다시 하기로. '그대 나의 종'은 어떤가?"
 
"'종'도 좋지 않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귀하'는 어떤가?"
"그거면 좋을 겁니다. 그러나 '형제'라고 말씀하시면 더욱 좋습니다만, '나그네여' 이런 투로 말입니다."
<아서 왕은 말했다. '명예 없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겠어. 자, 그러지 말고 그 짐을 내 등에 메어주게'>
 
"형제! 그와 같은 천한 사람을 부르는 데 말인가?"
"네, 그러나 우리들은 지금 그 천한 것으로 둔갑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 그렇지. 그렇다면 그렇게 부르자. 연습하겠어. '형제여, 의자를 가져와라. 그대가 할 수 있는 한의 동작을 부탁해' 어떤가?"
"아직 충분하지 않습니다. 폐하는 한 사람 분의 의자와 한 사람 분의 서비스를 부탁하셨습니다. 두 사람 분을 부탁하십시오."
아서 왕은 갸우뚱했다. 왕의 머리는 모래 시계와 흡사하다. 조금씩밖에는 모른다.
"그대도 앉는 것인가?"
"나는 서 있어도 좋습니다. 그러나 제가 선 채로 있으면, 이것은 신분이 같지 않은 두 사람이 변장을 하고 있다는 것을 곧 눈치채고 맙니다."
"바로 그대로야! 진실은 놀랄 만한 곳에서 나타나는 거로구나. 좋아, 나는 두 사람 분의 의자와 식사를 부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게다가 주전자나 손수건도 나에게만 특별히 정중하게 들고 오게 해서는 안 되는 거지."
"잘 아시게 되었습니다. 그 외에 또 고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백성의 관습으로는 손님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 예의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는 주전자나 손수건도 없습니다. 그러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알았어, 좋도록 이끌어주게."
"과분한 말씀, 기쁩니다. 그러면, 한번 더 걸어보아 주십시오. 아아, 썩 잘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깨의 힘을 때십시오. 폐하는 투구의 무게는 아셔도 살아가는 괴로움의 무게가 어떤 것인지 아시지 못합니다. 아무리 해로 어깨가 앞으로 구부러지지 않습니다."
아서 왕은 가만히 생각하고 있었다.
"보스경이여, 조금은 알게 됐어. 그대가 짊어지고 있는 부대를 이리 보내게. 명예 없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겠어, 그것은 다만 무게만으로써 몸이 앞으로 구부러지는 것이 아닐 거야. 투구와 갑옷은 무거우나 명예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걸치는 자는 자연히 자세를 크고 바르게 하는 거야........ 아니, 그러지 말고, 내가 그 짐을 짊어지겠어. 자, 등에 메어 주게 ."
아서 왕은 그야말로 훌륭한 임금님이었다.
 
거룩한 왕의 상
 
그날 오후도 꽤 지났을 때, 우리들을 사람이 살고 있는 듯한 오두막을 찾았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렇게 황폐할까. 오두막 앞의 밭은 아무 것도 없이, 맨땅으로 노출되어 있었다. 울타리도 오두막도 이제 막 쓰러질듯이 기울어지고 있었다. 매우 가난한 사람인 모양이다. 사람도 없고 가축도 보이지 않았다. 소리도 없다. 오두막의 초가 지붕은 낡고 검게 썩어 있다. 어딘가에 죽음이 붙어 있는 것 같은 느낌으로 기분이 나빴다.
문이 조금 열려 있었다. 왕과 나는 발소리를 죽이며 다가갔다.
아서 왕이 문을 노크했다. 대답이 없다. 다시 노크를 하고 귀를 기울였으나 역시 대답은 없다. 나는 문을 살짝 열고 안을 엿 보았다.
희미하게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한 여자가 놀라며 땅에서 몸을 일으키고 우리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여자는 낮고 가냘픈 소리로 말했다.
"제발 용서해 주셔요. 이제는 전부를 바쳤습니다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습니다"
가엾게도........ 이 여자는 우리들을 목사나 영주의 심부름꾼으로 알고 사과를 하고 있다.
"아닙니다. 우리들은 지나가던 나그네입니다."
내가 말하자, 여자는 힘없이 손을 흔들었다.
"저, 그래도 곧 떠나주셔요. 여기는 신의 저주가 내려져 있습니다. 교회의 저주가........"
"당신은 병을 앓고 있는 거죠? 신의 저주 같은 것은 무섭지 않습니다. 간호를 해드리죠."
"그만두셔요. 우리들은 교회의 사제로부터 신의 저주를 받았습니다 아무도 무서워서 가까이하지 않습니다. 자, 어서 도망치십시오. 누구에게 발견되어 교회에 알려지면 당신들은........"
"뭘요. 우리들은 교회 같은 건 무섭지 않아요."
그리자 여자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이 세상에 착한 마음의 신이 계시다면 제발 이분을 지켜주십시오. 그러면 제발 물 한 그릇만 마시게........ 아니 아니, 그런 일은 좋습니다. 우리들이 걸린 무서운 병으로부터 빨리 도망쳐주셔요. 우리들은 마음만으로도 좋습니다. 용감하고 상냥한 나그네, 자, 빨리 ........"
나는 여자가 신음하듯이 말하는 것을 채 듣지 않고 나무 공기를 들고 가까운 개천으로 물을 뜨러 달렸다.
돌아와 보니 아서 왕은 집안에 들어가서 모든 창문을 얼어 놓고 있었다.
공기와 햇빛이 방에 들어왔으나, 그래도 코를 찌를 듯이 퀴퀴한 냄새가 났다.
"자, 물입니다."
"감사합니다."
여자는 정신없이 물을 마셨다. 그 때 아서 왕이 열어 놓은 창문으로 햇빛이 스며들어 여자의 얼굴을 비쳤다.
앗!
나는 뱃속에서 외쳤다. 천연두다! 나는 왕에게 매달리며 속삭였다.
"곧 밖에 나가십시오. 이 여자는 2년 전에 카멜롯에서 유행한 그 무서운 병으로 죽어 가고 있습니다."
나는 문명의 시대에 태어난 덕분에 종두를 했기 때문에 문제없지만 아서 왕은 그렇지는 못하다.
"아니, 나는 여기서 도와주겠어."
"아닙니다. 안 됩니다. 제 말을 들어주셔요."
"그대는 잘못이야. 왕 되는 자가 병을 무서워해서는 창피야. 더군다나 이와 같은 불쌍한 사람을 보면서 기사가 그것을 내버리고 갈 수 있을쏘냐, 그대야말로 밖에 나가게. 나는 교회도 명령할 수 없어."
이렇게 되고서는 아서 왕에게 뭐라고 해도 소용이 없다. 어찌해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그러자 여자가 말했다.
"나리, 염치없는 부탁입니다. 그 사다리를 올라가서 위의 형편을 알려 주실 수 없을까요? 딸이 있습니다. 저의 가슴은 이미 짜부라졌기 때문에 이 이상 괴로움을 받아도 이제는 더 짜부라지지 않을 것이므로........"
"좋아, 그대는 여기서 여자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나는 위를 보러 갈 것이다."
"아, 아, 아, 제가 가........"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왕은 이미 사다리를 올라가고 있었다.
저쪽 어두운 구석에는 벽 쪽을 향하여 남자가 누워 있었다. 왕은 사다리를 오르면서 말했다.
"저 사람은 그대의 남편인가?"
"네 "
"잠들고 있는 것인가?"
"네, 남편은 단 하나의 그 위로를 하느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2,3시간 전에 죽었습니다."
"죽었다고? "
"네, 이제는 아무도 남편을 차거나 욕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평안히 천국...... 천국이 아니면 지옥에서라도 만족하고 있을 겁니다. 지옥에는 그 무서운 교회의 사제는 없으니까........ 남편과 나는 부부가 된 지 25년이 되지만 아직 한번도 떨어져 있은 일이 없습니다 또 우리들은 어릴 때부터의 친구입니다. 남편은 죽을 때 자기가 소년이 되어 즐겁게 들판을 뛰어다니는 환상을 보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소녀였던 나를 낮은 소리로 부르면서 나의 손을 쥐고 이 세상을 떠나갔습니다 이와 같은 뼈와 가죽의 손이 아니라 부드러운 소녀 때의 나의 손과 손을 잡은 것이었을 겁니다. 떠나는 것도 생각하지 않고, 정말로 평화롭게........ 그것은 이 참혹한 인생을 인내하고 인내한 남편의 최후의 기쁨일 것입니다."
나는 얼굴을 돌렸다. 이런 슬픔이 있어도 좋을까!
아서 왕이 되돌아왔다. 가슴에 15세 정도의 여윈 소녀를 안고 있었다. 소녀도 역시 천연두였다. 이제는 거의 죽어 가고 있었다.
왕은 지금 훌륭한 비단 옷도 입고 있지 않으며, 금과 은으로 자수한 화려한 옷을 입은 궁정 사람들의 칭송의 소리도 없었다. 그러나 아서 왕은 용감스럽고 숭고한 모습으로 한 소녀를 안고 서 있었다. 위대하고 엄숙했다. 긍정에 장식되어 있는 왕의 선조의 동상보다 훌륭했다. 가난한 농부의 옷을 입은 왕은 투구와 갑옷으로 치장한 왕이 아니라, 죽으려고 하는 소녀와 그 어머니를 기쁘게 해주려 하고 있는 사랑의 왕의 상이었다.
왕은 소녀를 어머니 옆에 눕혔다. 어머니는 소녀를 안고 사랑과 슬픔의 눈물을 쏟았다. 소녀는 희미하게 눈을 떴다.
"다시 한번 말해 줘! 다시 한번!"
어머니는 그대로 소녀를 안고 쓰다듬었다. 소녀는 희미하게 입을 움직였다.
나는 짐 속에서 정신을 차리는 약을 꺼냈다. 그러자 어머니가 말했다.
"아닙니다. 딸은 이제는 괴로워하지는 않습니다. 제발 그대로 두십시오. 되살아나지 않도록 해 주셔요. 우리들에게는 죽는 것만이 가장 좋은 구원입니다. 또 위에는 이 아이의 여동생이 있는데, 그것도 죽었는지 살았는지 ........"
"그 여동생은 평화롭게 잠들고 있어."
왕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
"그렇다면 좋습니다. 아아, 오늘은 행복한 날이었습니다. 귀여운 아니스, 너는 곧 여동생을 만나게 될 것이다."
어머니는 부드럽게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소녀의 눈동자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서 왕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뺨을 타고 내렸다. 어머니는 그것을 보고 말했다.
"아아, 당신도 댁에 불쌍한 부인을 두고 계시지요. 당신들은 두 분 모두 아이들에게 옷을 입혀주기 위해서 배고픈 것도 참고, 말못할 괴로움을 당하고 있지요. 당신들도 틀림없 <아서 왕 역시 고상하고 사랑스런 마음을 가진 인간이었다.>
이 높은 사람들로부터 학대를 받고, 교회나 임금님이 받아 내는 세금을 참고 견디어 온 분들이죠?"
왕은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여자는 내가 내민 먹을 것에는 입도 대려 하지 않았다. 빨리 죽음의 세계로 가서 자유로이 되는 것을 기다리는 것 같았단. 나는 위에서 죽어 있는 또 하나의 딸을 안아와서 어머니 옆에 눕혔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어머니는 그 소녀의 머리와 뺨을 쓰다듬으며 우리들에게 말했다.
"당신들도 참으로 괴로움을 당해 왔겠지요. 이 영국에서 괴로움을 당하지 않은 백성이 한 사람이라도 있을까요? 우리들 부부는 먹을 수 있었다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몇 해 전 갑자기 재난이 닥쳐왔습니다 영주님이 우리들의 밭 중에서 가장 좋은 곳에 과수원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영주인 귀족의 권리야."
하고, 왕이 말했다.
"그것은 알고 있습니다. 어느 날 영주님의 과수원의 나무가 누구에게 인지는 모르나 베어져 있었습니다. 나의 세 아들이 그것을 보고 겁이 나서 곧 보고하러 갔습니다 그러자 영주는 '너희들이 한 짓이지? 자백할 때까지 돌 감옥에 넣겠다'하고 아들들을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아들들은 죽지 않으면 돌 감옥에서 나오지를 못할 것입니다."
어머니는 괴로운 듯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남은 우리 부부와 어린 딸 둘이서 아들 셋이 하던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가을이 되어 영주의 추수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때, 우리들의 밭도 추수할 때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들 부부와 두 딸은 영주님의 밭에 끌려갔습니다 게다가 세 아들 대신으로서는 쓸모가 없다고 매일 봉사할 것을 명령받았습니다 우리들의 밭은 내버려지고 거칠어 졌지만, 그대로 두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수확이 나쁘면 벌을 받고, 교회와 영주님은 벌금으로서 밭의 곡식을 모조리 빼앗아갔습니다 그리고 먹을 것도 임금도 주지 않고, 그 다음 추수 때까지 학대를 했습니다"
"참혹한 짓을 하는데."
하고, 왕은 중얼거렸다.
"불행은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너무 괴로워서 나는 드디어 말해서는 안 될 것을 말했습니다 열병을 앓고 있는 까닭도 있었습니다. 나는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아아, 하느님은 이 세상에는 계시지 않습니다.' 그것을 들은 목사님은 곧 이 집은 하느님의 저주가 내린 집이라고 사람들에게 말했던 것입니다. 교회를 무서워하여 아무도 집에 와주는 사람도 없게 되었습니다. 가족은 굶주림과 병으로 잇달아 쓰러졌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내입니다. 어머니입니다. 앓으면서도 먹을 것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얼마 안 되는 먹을 것도 아이들은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힘도 다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얼마 후에는 행복한 세계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 이 때에 이와 같이 친절한 분들이 와주셔서, 이제는 아무런 미련도 없습니다."
우리들은 그날 그대로 그 여자를 지켜 주었다. 밤중이 되어 이 마지막으로 어머니도 숨을 거두었다.
왕과 나는 문을 단단히 닫고 밖으로 나왔다. 오두막은 그대로 이 일가의 무덤이 될 것이다. 아무도 돌보아 주지 않는 채로.
 
영주 저택의 화재
 
밖으로 나와서 아직 얼마 가지 않았을 때 이쪽으로 달려오는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임금님, 누가 옵니다."
나는 아서 왕을 끌고 뒤로 돌아가서 오두막 뒤에 숨었다.
"보스 경, 왜 숨는 거지?"
"교회와 영주가 가까이 가서는 안 된다고 말한 집에 들어갔으니까 붙잡히면 매우 시끄럽게 됩니다."
"그러한가."
우리들이 몸을 움츠리고 있는데 발자국 소리는 오두막 앞에서 멈추었다. 그리고 주위를 조심하는 것 같은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 아버지! 저희들입니다. 열어주셔요! 도망쳐 왔습니다"
영주의 돌 감옥에 갇혀 있던 세 아들이다. 나는 말없이 왕을 끌어당겨 오두막 뒤의 밭을 가로질러 돌아서 길로 나왔다.
아서 왕은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는데, 이윽고 나에게 말했다.
"그대는 어떻게 했으면 좋다고 생각하는가?"
"가엾지만, 걸려들면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런가."
왕은 또 생각하는 눈치더니 이렇게 말했다.
"역시 도망쳐 온 그 세 사람은 붙잡아서 영주에게 넘겨주지 않으면 안 되지 않을까? 천한 신분으로 영주를 당황하게 한 무례한 놈들이야."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임금님은 그러한 것을 생각하고 계셨습니까? 저는 반대로 그들이 도망쳐 온 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는 실망하고 말았다. 역시 왕은 왕이다. 왕족과 귀족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그들의 지위가 안전한 방향으로 일을 생각한다. 왕은 역시 자기들 계급의 안전과 이익만을 도모하는 습관 속에서 성장한 것이다. 사물을 잘 알 것 같아도, 백성을 사랑한다고 해도, 일단 유사시에는 아무래도 자기와 관계되는 사람만을 생각한다. 더군다나 왕에게는 몇 대를 계속하여 백성을 희생시켜온 잔인한 선조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
"임금님, 도망쳐 온 사람들은 일생 동안 사람의 눈을 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만해도 지나치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가서 나는 왕에게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하고 망설이고 있는데.
"오오, 보스 경, 저건 뭐지?"
하고, 왕이 저쪽을 가리켰다.
화재다. 저 멀리 언덕 위에서 불길이 솟아오르고 있다. 바람이 강하여 불길은 더 솟아오르는 것 같다. 나는 대신으로서 보험 사업도 크게 벌리고 있었으므로 화재라고 하면 어느 정도 흥미가 있었다.
"갑시다. 이제 사람들이 일어나 달려올 것입니다."
나는 왕을 재촉했다.
숲을 빠져나가는 동안에 나는 몹시 불유쾌한 일을 당했다. 나무에 목을 매죽은 시체에 툭 하고 부딪쳤기 때문이다.
이 목매어 죽은 사람은 괴로움을 당하면서 사는 것이 싫었던 모양이다. 나는 땅 위에라도 내려 눕혀 주고 싶었다. 그러나 아서 왕은 목매어 죽은 사람에게 대고 화를 냈다.
"고약한 놈, 교회와 영주의 규칙을 배반하다니, 사람이 아니야. 목매어 죽은 자의 집이나 그 가족의 논밭을 몰수해 버리지 않으면 안 돼. 그 규칙은 옳은 것이야."
"그럴까요? 저는 교회나 영주가 몹시 심한 짓을 하여 이 사나이를 죽음에까지 물아 넣었다고 생각하는데요........"
"어쨌든 나무에서 내릴 필요는 없어. 그 사나이는 제가 좋아서 나무에 목을 맨 거야. 또 죽은 사람에게 간호를 해도 아무 소용이 없지 않겠는가."
그것도 그렇다. 우리들은 다시 길을 재촉했다. 숲을 지나는 동안 1킬로 정도 사이에 목매어 죽은 시체가 6구나 있었다. 참으로 기분 나쁜 길이었다.
이윽고 희미하게 등불이 흔들리는 게 보였다. 우리는 숯 굽는 오두막 같은 것에 당도하였다.
"임금님, 여기서 쉬기로 합시다."
문을 두드리고 길을 잃은 나그네라고 하자, 밤일을 하고 있던 아주머니가 우리들을 안으로 맞아들여 주었다. 주인은 봉당에 짚을 깔고 자고 있었다.
아주머니가 말했다.
"당신들, 영주님의 저택이 불붙는 걸 봤어요? 어땠습니까?"
"아하, 그게 영주님의 저택인가? 어쩐지 불길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어. 그보다도 아주머니, 우리들은 잠이 와서 견딜 수 없어요."
그 때, 아서 왕이 천천히 말했다.
"이 봐, 형제여! 우리들은 천연두로 죽은 사람의 집에서 왔어. 너희들에게 전염을 하여 해를 끼쳐서는 안 되지. 이 집을 그대가 원하는 값으로 사겠어."
아주머니는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네!? 몸이 큰 이 사람은 어디 사람이죠? 말이 사투리가 다른데요. 그러나 여보세요. 그런 걱정은 필요 없어요. 우리들은 자아......"
하고, 자기 얼굴을 가리켰다 그 얼굴은 전에 천연두를 앓고 난 표적으로 곰보였다.
"그런데 여보세요. 당신은 참 정직해요. 말하지 않으면 모를텐데. 요즈음으로서는 정말 보기 드문 사람이어요."
여보세요는 아서 왕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아주머니는 우리를 극진히 대접해 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룻밤을 묶고 가는데 오두막을 비싼 값으로 사겠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난 것은 처음이니까.
우리들은 다음날 오후 늦게까지 잠을 잤다. 잠을 깨었을 때에는 아주 배가 고팠다. 그래서인지 숯쟁이 아주머니가 지어 준 밥이 굉장히 맛이 있었다. 양이 적은 탓도 있었다. 양만이 아니라 종류도 한 가지뿐이었다. 양파를 소금에 절인 것과 검은 빵. 검은 빵은 말먹이를 재료로 하여 만든 것이었다.
식사가 끝나자 아주머니는 어젯밤의 화재 이야기를 시작했다.
"불난 곳에서 영주님을 찾아내려고 해도 보이지 않았대요. 그래서 불 속에 뛰어들어가서 찾으려 했던 사람이 두 사람이나 죽었대요. 그리고 나중에 영주님은 저택에서 3백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죽음을 당한 것을 발견했답니다. 큰일이어요."
영주는 잔인한 사내였으므로 영주를 미워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한 사람들은 마구 잡혀가서 죽음을 당했던 모양이다. 그리하여 아주머니의 주인은 그 실정을 들으러 떠났다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주인이 돌아왔다.
"굉장해. 18명의 백성이 의심을 받고 죽음을 당했어. 또 두 사람은 불에 타죽고, 돌 감옥에 갇혀 있던 13명이 감옥에서 죽었으니까 모두 33명의 백성이 죽은 셈이 되죠."
"영주님의 가족이나 하인들은 구해 냈어요?"
하고, 나는 물었다.
"네 , 모두 무사합니다."
"그러면서 감옥에 있는 사람들은 구해 내지 못했는가? "
"네, 13명이 들어가 있었다고 하는데 자물쇠가 튼튼히 잠겨 있어 도망치려고 했어도 도망칠 수 없었대요."
"아니, 아니, 그 중 3멍이 도망쳤어."
갑자기 아서 왕이 말했다. 나는 깜짝 놀라서 왕의 소매를 당겨 신호를 하려 했으나 때는 늦었다. 아서 왕은 가슴을 내밀고 말한 것이다.
"영주를 죽이고 저택에 불을 붙인 것은 틀림없이 그 3명의 짓이야. 즉시로 체포하여 처벌하지 않으면 안된다!"
"뭐라고!"
숯 굽는 부부는 눈을 크게 뜨고 놀랐으나 곧 눈치를 채고 얼굴빛을 달리했다. 부인이 소리쳤다.
"이 영감이 뭐라고요!"
부부는 함께 집을 뛰쳐나가 문 앞에서 되돌아서서는 우리들을 노려보았다. 의심이 깊은 눈초리였다. 이건 틀림없이 큰일났다 I
"잠깐만 형제여. 저 말야. 세 사람이 저희끼리 싸운 정도라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신분이 높은 사람을 죽이고 집에 불을 붙이고선 어찌할 바가 없어."
나는 일부러 왕이 들으라고 이렇게 말하고서는,
"들어봐요. 나는 그 세 사람에 대해 조금 알고 있어요."
하고, 숯 굽는 부부를 데리고 집을 나왔다. 나는 주인에게 속삭였다.
"형제여, 당신들은 그 세 사람을 알고 있죠? 친척인가?"
숯 굽는 사나이의 검은 얼굴이 점점 창백해졌다.
"어떻게 그것을 당신이 알았죠? 그들은 좋은 젊은이었어요. 그런데 그놈들도 끝내 죽게 됐구나."
"그래 고발하러 가겠어."
내가 말하자, 숯 굽는 사나이는 당황했다.
"고, 고, 고발하지 않으면 안 되지."
나는 숯 굽는 사나이를 힘껏 노려보았다.
"흐흥, 그렇다면 당신들은 비열하기 짝이 없는 똑같은 개새끼다."
내가 이렇게 욕하자, 숯 굽는 사나이는 전사라고 칭찬을 받은 것 같이 얼굴이 밝아지면서 기뻐했다.
"형제여! 이제 한 말을 다시 한번 말해 줘. 고발을 하면 당신들은 비열하기 짝이 없는 똥 같은 개새끼라고? 당신 정말 그렇게 생각하겠어?"
"그렇고말고. 세 사람을 몰래 도망치게 하는 일은 우리들이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야."
그러자 숯 굽는 사나이는 나의 손을 잡았다. 마음속으로 정말 기쁜 듯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고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말했다.
"형제여, 당신은 어디서 왔어 ? 이런 무서운 이야기를 하고도 태평한 얼굴을 하고 있는데."
"아니, 같은 신분끼리는 뭐 그리 무서운 이야기가 아냐, 자네만 고자질하지 않으면 말야."
"그런 말을 하면 맨 먼저 내가 죽음을 당해. 그런데 당신과 함께 있는 영감은 왜 그런 말을 했지?"
"아아, 존스 영감 말야?"
나는 아서 왕을 사람들 앞에서는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
"그 영감은 저도 모르게 세 사람을 안다고 말했기 때문에 당신들이 밀고나 하지 않을까 하고 크게 걱정하고 있어. 입으로는 그럴싸하게 말했지만, 그렇게 말하면 벼슬아치에게 넘겨지지도 않을 거고. 그러나 사람을 잘 보고 말을 하라고 후에 타이르겠어. 마음은 좋은 영감이야. 당신들이 걱정하지 않게 다시 한번 확실히 말해두는데, 그 영주는 당연한 벌을 받은 거야. 만약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그런 종류의 인간들은 모조리 태워 죽이겠어."
그러자 숯 굽는 사나이는 아주 불안한 마음을 떨어버리고 즐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요. 만약에 당신이 스파이로서 나를 속이려고 그런 말을 한다고 해도 말야. 그런 말을 들으니 정말로 기분이 좋은걸. 정말 좋은 말을 했다. 형제여! 오늘은 영주가 죽어서 모두 크게 기뻐하지만 남 보는 데서는 슬픈 듯이 거짓 눈물을 홀리고 있어. 이제 언젠가는 이런 일도 내놓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올 거야."
그렇다! 그런 날도 이윽고 올 것이다. 왕을 없애고 귀족 제도도 없애고, 그들을 무엇인가 유익한 직업을 갖게 한다. 전국민이 선거권을 갖고 국민이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 날이 반드시 오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이 꿈과 희망을 결코 버리지 않을 것이다.
 
마르코와 도우리
 
나는 숯 굽는 사나이 마르코와 함께 마을까지 갔다. 마르코의 아들이 다니는, 은행이라고는 해도 금속 세공이 본직이며 돈을 빌려주기도 하는 곳에 갔다. 그 곳이 당시의 은행 대신을 했으며, 나는 거기서 20달러 금화를 바꾸었다. 은행 사람들은 20달러의 금화를 매우 진기하게 바라보았다.
"야, 나는 이런 대금은 아직 본 일이 없어. 이게 진짠가? "
금화를 씹어도 보고 짤랑 떨어 뜨려도 보고 초산으로 시험해 보고 난 뒤에야 겨우 잔돈으로 바꾸어 주었다.
그러나 은행의 금고가 텅 빌 정도로 무리를 한 모양이다. 은행의 우두머리는 나와 마르코를 내보내고 나서 뒷모습을 깜짝 놀란 눈으로 배웅하고 있었다.
마르코는 그 후 나를 대장간의 도우리라는 사나이에게 데리고 갔다. 도우리는 대장간에서 5명을 고용하고 있었다. 마을에서는 좀 알아주는 사람이었다. 숯 굽는 마르코는 도우리 우두머리와 친구인 것이 자랑이었으며, 친하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을 나에게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다.
대장간 도우리와 나는 곧 친해졌다. 나도 코네티컷 공장에서는 도우리처럼 훌륭하게 솜씨가 좋은 사나이를 고용했던 것이다.
"이 봐, 도우리. 나는 지금 마르코의 집에서 신세를 지고 있는데, 내일이 일요일이니까 점심 때 점심이라도 함께 하지 않겠어? 한턱 내겠어."
"그래, 미안한데. 그럼 가겠어."
하고, 도우리가 말하자 마르코는,
"왕초님이 우리 오두막에 온다고! 그건 고마운데."
하고, 기뻐하였지만, 이윽고 점점 풀이 죽어갔다.
그리고 내가 돌장이 우두머리 딩크슨과 수레 목수의 우두머리 스매그도 초대하려고 하자, 마르코는 새파랗게 질려 가지고 손에 들고 있던 칼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왜 그래, 마르코?"
그러자 마르코는 속삭였다.
"형님, 벌거숭이가 되어도 모두를 대접할 돈은 안나와요."
"걱정마. 내가 비용은 낼 테니까."
이렇게 속삭이자 마르코는 그 순간부터 힘이 솟아나는지 나의 어깨를 툭 쳤다.
"자넨, 정말 왕초야, 고마와."
확실히 나는 보스경에 틀림없다. 그리고 나의 아버지는 대장장이, 아저씨는 수의사, 나는 코네티컷 태생의 양키다. 이 일을 마르코는 모른다.
"뭘, 인사할 것까지는 없어. 자네는 존스와 나를 잘 대접해 주었으니까 말야. 존스도 그렇게 말했어. 그 놈은 물론 자네에게 그런 말은 하지 않아. 존스는 지껄이기를 좋아하지 않으며, 사람 사귀는 것도 좋아하지 않으니까 말야. 그러나 마음은 좋은 놈이야. 의리도 있고."
집에 돌아온 것은 밤이었다. 아서 왕은 조금치도 쓸쓸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왕은 또 다시 전 병력을 투입한 골인과의 싸움을 공상하고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밀 고
 
나는 다음날 아침, 아서 왕에게,
"임금님의 이름을 사람들 앞에서는 존스라고 부르게 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여 존스라는 이름을 익혀주는 데 무척 힘이 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농부라는 것도 잊어버리지 않도록 주의해 두었다. 내가 마을의 가게에 주문해 둔 음식과 테이블, 의자, 식기, 등이 마르코의 헌 오두막에 배달되자. 마르코는,
"무리를 했는데, 무리를 했는데."
이렇게 말하고는 아서 왕을 몰래 바라보았다. 그것들은 모두 존스 영감의 기부(원조할 목적으로 재물을 무상으로 내어 줌)라고 내가 말했기 때문이다. 나는 마르코에게 자세히 말해 두었다.
"저 몸이 큰 작자는 별난 사람이라서 인사를 받는 걸 아주 싫어해."
"그래, 가만히 있어도 좋은가?"
정오 가까이 손님이 왔다. 대장장이 도우리는 멍하니 있는 아서 왕에게 친밀감을 나타내며 말했다.
"당신이 존스 영감님이죠. 대장장이에 제격인 좋은 몸인데요. 나는 도우리야. 왕초라고 마을에서는 높여주고 있으나 뭐, 걱정할 건 없어, 난 젊었을 때 무척 고생한 사람이야. 의지할 데 없는 고아였어. 노예가 되어 하루에 16시간 내지 18시간이나 노동하고 겨우 검은 빵으로 연명한 때도 있었어. 그러나 나는 노력을 잊지 않았어. 친절한 대장간 주인이 인정해 주고 나를 데려다가 제법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어. 그리고 자기의 딸을 나에게 색시로 주었어. 그런데 나의 생활이 지금은 어떤가 하고 생각해 보면 말야........"
도우리는 자, 어떠냐 하는 몸짓으로 말했다.
"한 달에 2번은 고기 요리를 먹고 그리고 소금에 절인 고기를 한 달에 8번."
"그렇군."
하고, 수레 목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돌장이도 끄덕이고 같이 존경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도우리는 뽐내는 말투로 덧붙였다.
"우리는 일요일마다 흰 빵을 먹는다. 거짓말이라고 생각되면 누구라도 좋으니까 와봐라. 여어! 존스, 이 정도로 내가 어떤 인간이라는 것을 알았겠지. 그런데 나를 부러워하라고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니야. 자네가 얼마나 신분이 낮든 간에 마음만 바르면 좋아. 마음을 터놓고 사귀어보게, 사양할 건 없어."
이렇게 말하고 악수를 하려고 손을 내밀었다.
아서 왕은 어쩔 수 없이 도우리의 손을 잡았다가 얼른 놓았다. 도우리는 말했다.
"이보게, 뭘 그렇게 높은 사람 앞에 나선 것처럼 겁먹을 건 없어. 나도 자네와 같이 조금치도 훌륭한 사람 아냐. 다만 일을 열심히 하는 것만이 나의 좋은 점이야."
이윽고 요리가 새 테이블 위에 놓여졌다. 궁정에서라면 우리는 손도 대지 않을 것들이기는 했으나, 보통으로서는 훌륭하고 사치스러운 요리였다. 수레 목수의 주인 스매그 같은 사람은 너무 놀라 의자에서 굴러 떨어 졌을 정도이다.
식사하는 동안 아서 왕은 별로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낮잠을 자기 위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서 왕이 자리를 뜨자, 나는 나와 통하는 대장장이 도우리와 마구 지껄였다.
도우리는 여러 가지 자랑 끝에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우리 직공에게는 영주님이 정한 급료보다 더 많이 주고 있어. 비밀이지만."
"왜 비밀로 하지 않으면 안 되지?"
"밀고되기 때문이야. 밀고되면 나는 즉시로 영주의 명령을 거역하는 무례한 놈이라고 벌을 받지."
"그런 엉터리가 어디 있어."
"어디 있느냐 해도, 실제로는 조그마한 일로도 사형에 처하니까."
"그래도 같은 고생을 맛보는 인간이 왜 밀고를 해. 참 이상한 이야기가 아냐. 이봐 도우리?"
"그래도 알고 있으면서 영주님에게 보고를 하지 않으면 자기까지 사형이 되니까 말야."
"그렇다면 도우리, 자네도 누군가가 영주님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한 것을 알면 밀고를 하는가?"
"할 수 없지. 강한 자에게 이길 수 없지. 법률로 정해져 있으니까. 밀고를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도 모두 도우리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나는 화가 치밀었다. 강한 자에게는 이기지 못한다고 단념하고 있는 것은 얼마나 불유쾌한 일이냐. 게다가 친구에 대한 밀고까지 하다니. 자기 자신이 자신을 멸망시키는 것과 같은 일이 아닌가. 그러한 간단한 일을 왜 알지 못하는가. 나는 이 얼빠진 도우리를 꼼짝 못하게 꾸짖고 싶었다.
"그렇다면 도우리, 자네는 왜 직공들에게 영주님이 정한 급료보다 더 많이 주고 있다고 말했어? 법률을 어기고 있는 거야. 나는 자네가 하고 있는 일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그러나 그게 밀고가 돼 봐."
순간 도우리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다. 나는 더 잘 깨닫게 하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들은 자네가 법률을 범하고 있다는 것을 안 것이다. 알고도 모르는 체하고 있으면 우리들도 사형이 된다."
이 한 마디는 굉장한 위력을 가지고 도우리 영감에게 명중되었다.
그러나 너무 효력이 지나쳤다. 도우리는 거의 죽을 상이 되고 말았다.
나는 모두들에게 술잔을 권하며, 친구에 대한 밀고는 하지 말자고 굳게 악수를 하게 하고 그것으로 끝을 맺을 작정이었다. 그런데 모두 진지한 표정으로 떨며 나를 지켜보고 있다. 게다가 나는 어디에서 굴러 들어온 작자인지도 모르는 나그네다.
그리고 지금 무엇을 말하며 무슨 행동을 할지도 모른다. 수상한 나그네로서 모두의 눈에 비치고 있다. 태어나서부터 학대를 받아온 사람들은 한번 의심하면 끝까지 의심하지 않고서는 못 견딘다.
자아, 야단났다. 나는 당황하여 머릿속의 지혜의 작은 상자를 뒤적거렸으나, 공교롭게도 쓸만한 것이 발견되지 않는다.
그 때 더욱 곤란하게도 아서 왕이 낮잠을 끝내고, 유쾌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왕과 양키, 노예가 되다
 
왕은 명랑하다. 그러나 나는 더욱 곤란하게 되었다. 야단났는데! 왜 하필 이런 때에 잠을 깼을까! 이제 아서 왕이 이상한 말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엉뚱하게 지껄이기만 하면 수습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왕은 낮잠을 푹 자고 났기 때문에 매우 기분이 좋다. 엉뚱한 말을 꺼낼 것 같다. 그렇다고 귀띔할 수는 없다. 그러한 짓을 하면 밀고의 상담을 한다고, 더욱 더 의심을 받게 된다.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데 왕은 아무 것도 모르고, 천진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존스 영감은 밭을 좀 가지고 있는 농부라고 해 두자 하고, 왕에게 말해 두었기 때문에, 왕은 농부로 잘 둔갑하고 있는 줄로 알고 만족해하고 있다.
"...에헴! 귀하들은 알고 있는가? 농업 기술이 우수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꽤 의견의 차이가 있는 모양. 어떤 사람은, 양파는 아직 잘 익기 전에 가지에서 따내면 나쁜 열매라고 하지."
왕은 벌써 한바탕 연설을 시작하고 있었다. 나의 귀에 왕의 말소리는 멀리에서 울리는 기분 나쁜 천둥소리처럼 들리었다.
듣고 있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곤란하다는 듯이 서로 얼굴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또 다른 사람들은 꽤 이론에 맞는 말을 하고 있어. 즉 자두나 쌀과 보리 같은 것은 항상 익기 전에 땅에서 파내지 않는 것이 좋으므로 양파도 그것과 같다고 하여 반대하고 있지."
듣고 있던 사람들은 이 모순된 이야기에 점점 당황하여 끝내 겁먹은 표정까지도 나타냈다.
"양파는 양배추의 액체에 재워서 먹으면 더욱 해가 없다고 말하고 있지."
듣고 있던 사람 하나가 중얼거렸다.
"이 농부는 머리가 왼쪽으로 감겨져 있어."
그러나 왕은 태연하다.
"그 예로서 동물은 잘 익지 않을 때의 것이 더욱 좋고, 염소가 익으면 모피가 뜨거워져 고기가 붉게 짓무르고........ "
이윽고 사람들은 일제히 일어서서 외쳤다.
"한 사람은 우리들을 밀고할 작정이며, 또 한 사람은 미치광이이다. 두 사람 모두 죽여버려. 미치광이는 하느님의 저주를 받고 있어. 그대로 두면 우리들에게도 저주가 옮겨진다!"
그들은 무서운 목소리로 외치며 달려들었다.
왕의 눈에 기쁨의 빛이 타올랐다. 농업에 대한 일은 횡설수설이라도 무용에는 특기가 있다. 한동안 양순하게 잠자코 있었기 때문에 왕은 팔이 근질근질했던 것이다.
당장에 아서 왕은 대장장이의 턱에 한 발을 명중시키고 마룻바닥에 쓰러뜨렸다.
"세인트 조지여, 우리 영국을 지켜 줄지어다!"
또 일격으로 수레 목수를 쓰러뜨렸다. 또 한 사람의 큰 사나이는 공처럼 내던져졌다.
내가 주위를 둘러보자 마르코와 부인이 없다. 두 사람은 구원을 청하러 간 것이 틀림없다.
"임금님, 어물어물하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빨리 도망칩시다."
"음. 전진, 후퇴, 그 때를 결정하는 일이야말로 병법의 요점......"
왕과 나는 마구 뛰어서 숲속에 숨어들었다.
뒤돌아보자 농민들의 무리가 손에 손에 낫과 삽을 들고 성난 벌떼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왕과 나는 강을 만나, 그 속에 뛰어들었다. 3백 미터 정도 흘러 내려가자, 떡갈나무가 물위에 가지를 내밀고 있었다. 우리들은 그것을 잡고 떡갈나무 가지에 기어올랐다.
쫓아오는 사람들의 함성은 점차로 가까워졌다. 우리들은 가지에서 가지를 건너 무성한 잎 사이에 숨었다. 함성은 더 가까워져 갑자기 강 양쪽에 크게 퍼지고 메아리쳤다. 그리고 점점 멀어져 가는 모양이었다.
"임금님, 잘된 모양입니다."
"음, 아니야 아직 찾고 있어. 이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이 좋아."
과연 왕이 말한 대로였다. 쫓아온 사람들은 다시 돌아와서 강 저쪽에서 떠들어댔다.
"놈들은 저 나뭇가지에 매달려, 저기서 나무에 오른 게 틀림없어."
"그래 그래! 내가 올라가 보겠어."
그 말이 우리들의 고생의 시초였다. 우리는 끝내 발견되고 말았다. 최초에는 올라오는 놈을 발길로 차서 떨어뜨렸는데, 사람들은 아래서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무성한 잎에 방해되어 효과가 없었다. 아서 왕은 전쟁 놀이를 하고 있는 듯이 몹시 좋아했다.
그러는 동안 타는 냄새가 풍겨왔다. 아차! 연기 전술이다. 놈들은 마른 가지며 생풀을 산처럼 쌓아올리고 자욱히 연기를 올려 우리들이 숨어 있는 나무를 둘러쌌다. 놈들은 손뼉을 치며 기뻐하고 있다. 제기랄!
"임금님 이렇게 되고선 내려가서 싸울 수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음, 바라던 터야. 서로 나무를 등에 대고 싸우자. 시체의 산을 쌓아올리겠어."'
숨가쁘게 말하고 왕과 나는 기침과 재채기를 연달아 하면서 나무에서 미끄러져 내렸다. 그리고 피의 비를 내리려고 하는 그 찰나,
"조용히! 조용히!"
큰 소리로 외치며 말을 세우는 사람이 있었다. 보아하니 상당히 신분이 높은 귀족인 모양으로 화려한 차림을 하고 부하를 많이 거느리고 있었다.
우리를 쫓아온 사람들은 즉시로 네네 하고 황공해 했다. 그 귀족은 우리들을 말없이 보고 나서 그 자들을 향하여 책망을 했다.
"그대들은 이 두 사람에게 무엇을 하고 있는가?"
"네, 이놈들은 어디서 굴러온 미치광이들입니다. 게다가 난폭하고 도망 잘 치기로는 이 이상 없는........"
"조용히! 헛소리를 하지 말라. 이 자들은 미치광이는 아니야."
그리고 우리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누구냐? 속임 없이 말해라."
그리하여 나는 대답했다.
"네, 저희들은 선량한 나그네올시다. 먼 곳에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저희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저놈들은 저희들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제 말씀해 주신 대로 저희들은 미치광이나 난폭한 자는 아닙니다."
그러자, 귀족은 부하들을 돌아보았다.
"저 짐승들을 쫓아 버려."
"네 , 알았습니다"
부하들이 채찍을 들여 놈들을 쫓으니, 놈들은 순식간에 도망쳐 버렸다.
우리들은 위험한 고비에서 도움을 받았다. 귀족은 행렬의 끝에 서서 따라오라고 친절하게 말 두 마리를 내 주었다.
그날밤 여인숙에서 자고, 다음날 아침 아서 왕과 나는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귀족의 부하가 왔다.
"우리들의 영주 그리프 백작 님이 칸베네트라는 큰 거리까지 가면 위험은 없으니, 거기까지 함께 가자고 말씀하고 계시다."
우리들은 고맙게 그 친절을 받아들였다.
30킬로 정도 여행을 하여, 칸베네트의 거리에 들어섰다. 광장에는 장이 서서 번창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은 노예 시장이었다. 인간의 경매장이다.
우리들은 빌린 말에서 내려 친절하게 대해 준 귀족에게 감사의 말과 작별의 인사를 하러 갔다.
귀족은 말 위에서 기분이 좋지 않게 웃었다. 순간 찰깍! 왕과 나의 손에 수갑이 채워졌다. 하인 우두머리의 짓이다. 그리프 경은 냉정하게 우리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왕은 마구 화를 냈다.
"왜 이와 같은 무례한 행동을 하느냐!"
그러나 그리프 경은 턱을 들어올리면서 부하에게 말했다.
"이 노예들을 데리고 가서 팔아오너라."
노예! 이 말은 이 때까지 없던 오싹 하는 울림으로 나의 귀를 때렸다. 아서 왕은 수갑을 친 채로 죽을 힘을 다해 그리프 경을 때리려고 했다. 그러나 부하들이 달려와 즉시로 우리들 손을 뒤로하여 묶었다.
우리들은 힘껏 소리쳤다.
"우리들은 노예가 아니다. 자유민이다!"
그러자 노예 상인이 단 위에서 내려와 왕과 나를 들여다 면서 말했다.
"자유민이라고? 그렇다면 걱정할 건 없어. 영국 정부가 보호해 줘요. 증명서를 보여줘."
"증명서?"
"그렇지 자유민의 증명서 말야."
우리들은 증명서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자유민은 증명서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왕이 만든 법률이다. 아서 왕은 자기가 만든 법률에 묶이는 것과 같다. 이렇게 되면 사정을 하는 수밖에 방법이 없게 된 것이다.
"증명서는 없으나, 증명은 됩니다. 제발 '성스러운 골짜기'까지 심부름꾼을 보내주셔요. 그러면........"
"바보 같은 놈아. 그런 돈과 시간이 소요되는 일을 할 수 있느냐 말이다. 너희들을 사는 주인이 그러한 쓸데없는 일을 기뻐할 리가 없어."
"주인이라고?"
아서 왕은 화를 내며 말했다.
"이 바보야! 나에게 주인은 없어. 이 나야말로......"
"부탁입니다. 제발 조용히!"
나는 당황하여 아서 왕의 입을 막았다. 이 이상 소동을 일으켜 또 미치광이 취급을 받게 되면 이번에는 몽둥이에 맞아 죽을 것이다.
왕과 나는 노예 상인에게 팔리어 쇠사슬의 맨 끝에 매어져 점심 때 이 거리를 출발했다. 참 이상한 이야기가 아닌가! 영국의 국왕과 국무대신에게 수갑이 채워지고, 노예의 쇠사슬에 얽매어 끌려간다........
더군다나 무례한 그리프 백작은 우리들이 생각날 때마다 부끄러워지는 값으로 우리들을 팔아 넘긴 것이다. 영국의 국왕이 단돈 7달러, 최고의 대신, 즉 수상인 내가 9달러였다.
아아, 국왕의 신성(매우 거룩하고 존엄함)함이란 결국은 그 쿵쿵 무겁게 우쭐대며 걷는 걸음걸이 뿐이며, 그 외에는 아무런 다른 점도 없는 모양이다.
참으로 국왕이라는 것은 사실대로 말하면 아무런 가치도 없는 쓸모 없는 장물로서, 쓸모 없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한데 일단 국왕이라고 알면 사람들은 한번 보기만 해도 황공하다든지 뭐라고 하며 숨도 멈출 것 같이 대하는 것이다.
 
캄캄한 밤의 박치기
 
우리들 노예에게 있어서 런던은 매우 심술궂고 재미있는 곳이었다. 우리들은 런던으로 끌려갔던 것이다. 여기에는 아서 왕의 궁전도 있다. 왕은 그것을 바라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들의 옆을 안면이 있는 기사와 귀족이 지나갔다.
그러나 아무도 우리들을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것도 무리는 아니다. 우리는 헌 옷을 입고, 때가 묻고 지렁이 모양으로 붓기도 하고, 상처투성이의 얼굴이다. 게다가 이쪽에서 잘못 부르기나 하면 반죽음을 당할 뿐이다. 또 알리산도 공주가 10미터 정도 떨어진 곳을 나귀로 지나간 일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비밀리에 계획을 짜고 있었다. 클라렌스가 원기 있게 척척 일을 잘해 나간다면 반드시 그 동안에 어떻게 될 것이다.
어느 날 나는 또 기분 좋은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지붕에서 지붕으로 이어져 있는 선이었다. 전화선이 틀림없다. 나는 그 선의 토막이라도 좋으니까 가지고 싶었다. 나의 탈출 계획을 실행하는 데도 아무래도 필요했던 것이다.
나의 계획으로서는, 틈을 봐서 밤중에 가쇄(죄인의 목에 칼을 씌우고 발을 쇠사슬로 묶음)를 벗고, 노예 상인에게 재갈을 물려 묶어 놓고, 상인의 옷을 벗겨 내가 입고, 반대로 놈을 노예 쇠사슬에 매어놓는다. 그리고 우리들은 노예 상인인 체하고 카멜롯으로 간다. 그것도 자물쇠를 열 가느다란 쇠줄 토막만 있으면........
그리고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나를 사려고 두 번이나 흥정을 하러 왔던 사람이 오늘도 왔다. 그러나 나에게는 비싼 값이 붙어 있었기 때문에 간단히 팔리지는 않았다.
"에헤, 이놈은 22달러요. 한 푼도 에누리 할 수 없어요."
하고, 노예상은 말했다.
한편, 아서 왕은 '큰 물건'이라고 이름하여 그 좋은 몸집에 눈독을 들여 사러오는 손님은 있었으나, 큰 물건이 거만하기 때문에 아무도 사지 않았다.
나를 가끔 보러오는 나리는 물론 22달러를 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나리가 탐이 나서 오는 것을 마음속으로 환영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이 나리는 저고리를 긴 3개의 핀으로 잠그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두 번이나 그 핀을 뽑으려다가 실패했다. 그리고 세 번째에 드디어 맨 아래 것을 보기 좋게 실례할 수 있었다. 이 핀은 나의 계획을 실행하기 위하여 없어서는 안 될 도구가 되었다. 핀을 손에 넣고 내가 기뻐하자 노예 상인은 그 나리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이 두 놈을 언제까지나 데리고 있는 것에 싫증이 나요. 좋아요 크게 에누리다! 나리가 이놈을 22달러로 사준다면 덤으로서 이쪽의 '큰 물건'은 거저 드리겠어요."
자아, 아서 왕의 노여움이란, 너무 분개하여 숨이 막혀 질식할 것 같이 되었다.
나리는 내일 이 시간에 대답하겠다고 하고 돌아갔다.
나는 왕에게 속삭였다.
"임금님, 덤으로 주게 됐다고 분개할 건 없습니다 쉬! 큰 소리를 내지 마십시오. 나 역시 그 노예 상인에게 있어서는 오늘밤으로 하여 헛일이 될 테니까요."
"그건 무슨 말이지 ?"
"오늘밤 둘이서 도망칩니다."
"오오, 어떻게 해서."
"제가 훔친 것을 사용하여 오늘밤 수갑을 풀겠습니다 노예상이 밤 9시 반에 순찰을 왔을 때 그놈을 때려 눕혀 재갈을 물리고, 아침이 되면 노예들을 데리고 행진합니다."
"음, 잘 해봐요. 찬성이야."
하고, 아서 왕은 말했다.
밤이 되었다. 노예들이 잠드는 것을 나는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리고 나서 수갑을 풀기 시작했는데, 초조해지면 질수록 잘 되지 않았다. 이윽고, 겨우 나의 쇠사슬을 풀고 한숨 돌리고, 곧 왕의 수갑을 풀려고 했는데, 때는 늦었다. 노예 상인이 한 손에 기름 접시의 등불을 가지고 순찰을 왔다. 한쪽 손에는 굵은 몽둥이를 지팡이 대신 짚고 있었다.
나는 코를 고는 체하며 쇠사슬이 풀린 손발을 감추고 웅 <아서 왕도 지금에 와서는 평범한 한 사나이에 지나지 않았다.>
크렸다. 만약에 놈이 옆에 온다면 달려들려고, 조심스럽게 도사리고 있었다.
그런데 노예 상인은 입구에서 잠깐 둘러보고서는 그대로 나가고 말았다.
"얼른, 붙잡아!"
아서 왕이 말함과 동시에 나는 번개같이 일어나서 뒤를 쫓았다.
밖은 캄캄한 밤이었다. 몇 발자국 앞에 사람 그림자가 보였다. 나는 그 사람에게 달려들었다.
쿵쿵하고 심하게 엎치락뒤치락 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모여왔다. 야단났다. 그러는 동안 야경이 와서,
탁!
나는 힘껏 머리를 맞았다. 상대방 놈도 딱! 그리고 놀란 일은 상대방 놈을 자세히 보자, 노예 상인은 아니다.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그것은 얼마나 행운이었던가. 그놈이 노예 상인이었다면 만사는 끝장날 판이었다. 그리고 얼마나 불행이었던가. 모처럼의 계획은 무참하게 깨지고, 나는 거리의 감옥에 처넣어졌다.
아서 왕은 어떻게 됐을까? 그 '큰 물건'은 무능한 사람이다. 나는 하룻밤을 내내 잠들지 못했다.
 
양키, 붙잡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재판에 끌려나갔다. 거기서 내가 느낀 것인데, 나를 고발한 상대는 노예 상인이 아니라 서로 싸운 상대인 모양이다. 이 사건은 노예 상인과는 관계가 없다.
나에게 있어서 이 재판이야말로 생명선이다. 나는 열심히 거짓말을 챘다.
"재판장님, 제발 저의 말을 들어주십시오. 저는 어젯밤 템즈 강의 저쪽 기슭에서 묵은 그리프 백작 님의 하인입니다. 백작 님이 갑자기 앓게 되어 런던 제1의 명의를 부르러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었는데 끝내 이 사람과 박치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 사람은 갑자기 나를 탁탁 쳤습니다 아무리 사과를 해도 용서해 주지 않았습니다"
상대는 뜻밖이라는 듯이,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것은 큰 거짓말입니다."
하고 말했는데, 뜻밖이라는 듯한 표정을 꾸며대는 것은 내 쪽이 훨씬 훌륭했다. 재판장은 상대에게 고함을 질렀다.
"시끄럽다. 백작 님의 심부름을 방해하다니 무슨 짓이냐. 너에게는 벌로서 곤장형을 주겠어! 백작 님의 하인은 곧 저택으로 돌아가도 좋다. 백작 님께 잘 전해주게."
저택이고 백작이고 나발이고 그런 것은 밖에 나오면 내가 알 바가 아니다. 걱정이 되는 것은 왕이다. 급히 서둘러 노예의 여인숙에 달려가서 보니........
아무도 없다. 텅 비어 있었다. 굉장한 난투가 있은 흔적이 있고 그 한가운데에 노예 상인이 엉망진창이 되어 쓰러져 있었다.
"어, 어떻게 된 겁니까. 대체?"
나는 구경꾼을 붙잡고 물었다.
"나도 들은 이야기인데, 어젯밤 여기 있는 노예들을 가장 높은 놈이 마법으로 쇠사슬을 풀고 도망쳤다는 거야. 노예 상인은 화가 나서 남아 있는 노예들을 때리기 시작했는데, 노예들이 반대로 달려들어 이 모양으로 노예 상인은 끝장이야...."
"큰일났는데, 그럼 노예들은?"
"응. 이젠 재판이 끝나 모두가 사형으로 정해졌어"
"사형! 그건 언제?"
"글쎄 아무튼 도망친 노예를 붙잡고 나서 한꺼번에 사형에 처할 모양이니까 2,3일 후일 거야. 이미 거리마다 도망친 노예의 얼굴을 알고 있는 노예들을 데리고 포졸들이 엄하게 지키고 있으니까, 대체로 오늘 중에는 체포될 거야."
"감사해."
나는 그곳을 떠났다. 자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나는 난처해졌다.
그리고 이리저리 눈길을 돌리고 있는데, 문득 나의 눈에 비치는 것이 있었다. 집 처마 끝에 담쟁이덩굴처럼 구불구불 늘어져 있는 것은 확실히 나의 공장의 전화선이 아닌가!
어떻게 하여 클라렌스, 런던까지 전화를 가설했는가. 꽤 솜씨가 좋구나. 나는 절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으로 그 전화선을 따라갔다. 그러자, 선은 작은 푸줏간의 2층으로 들어가 있었다.
푸줏간 옆의 층층대를 올라가자, 작은 방이 있고, 접수하는 소년이 책상에 엎드려 낮잠을 자고 있었다.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가서 안으로 문을 잠갔다.
눈을 뜬 소년은 놀라 비명을 지를 것 같았다.
"조용히! 곧 카멜롯을 불러주게!"
"넷! 어떻게 이 기계의 일을?"
"그보다도 빨리 카멜롯을 불러. 그렇지 않으면, 저리 비켜! 내가 걸 테니까."
"아, 당신이?"
"어서 궁정에 걸어 클라렌스를 불러라."
소년이 호출하고 있는 동안 나는 초조해 하며 기다렸다. 초조해서 제자리걸음을 하였다. 이윽고 그리운 클라렌스의 소리가 들려왔다.
"이 봐, 클라렌스. 나다, 나다!"
옆에서 소년이 엿듣고 있다. 나는 암호로 말했다.
"아서 왕이 런던에서 사형에 처해지게 되어 있다. 우리들은 노예가 되었어. 빨리 강한 기사 5백 명을 보내라. 지휘는 랜슬롯 경이 좋다. 런던의 서남문으로 들어오너라. 나는 바른쪽에서 흰 천을 올려 표시하겠어. 전속력이다. 그렇지 않으면 늦는다."
"좋습니다. 30분 이내에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클라렌스는 받아주었다. 그리하여 전화는 소년에게 맡기고 나는 그곳을 뛰어나왔다. 이번에는 변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제 30분이면 9시가 된다. 9시에 카멜롯 성을 출발하여 도중 두세 번 말을 갈아탄다고 치면 여기 도착하는 것은 오후 6시가 지나서다.
나는 그 사이에 옷을 어떻게 갈아입을까 궁리했다. 처음부터 좋은 것을 사면 의심을 받는다. 그리고 기사대가 도착했을 때에는 비로드와 비단옷으로 갈아입고, 내가 지휘를 하여 감옥을 습격하고, 아서 왕과 노예를 구출한다. 그 준비로서는 우선 고물상이다.
나는 의기양양했으나, 처음에 있던 거리의 모퉁이를 돌아서자 계획은 깨지고 말았다. 포졸들과 함께 있는 노예들과 부딪치고 만 것이다.
오싹 했으나 이제는 늦었다. 노예가 나를 가리키면서 무엇인가 말했다. 나는 모르는 채 옆 상점에 들어갔으나, 아 가엾다! 깨끗이 붙잡히고 말았다.
"왜 이러는 거냐. 나는 지금 항해에서 돌아와 막 상륙한 거야."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했으나, 노예가 옆에서 '아니, 이놈이다. 이놈이 22달러의 가격표가 붙어 있던 놈이라는 것은 속일 수 없다.' 하고 외쳤다. 화가 나서 나는 노예에게 대들었다.
"이 자식아 뭣 때문에 친구를 밀고하는 거야."
"뭐라고! 네 덕분에 우리 모두가 사형이 되는 거야. 그런데 소동을 일으킨 장본인을 놓치라는 거냐? 흐흥, 웃기지마!"
그러자 포졸이 매정하게 나에게 욕을 퍼부었다.
"잔소리 마. 나는 바쁜 몸이야. 붙잡히면 바로 목을 매달 준비가 돼 있으니까 말야. 싸움의 계속은 오늘 오후 지옥에 가서 천천히 해."
나는 나도 모르게 비틀거렸다.
"오늘 오후 교수형!"
그렇다면, 기사대는 시간이 맞지 않는다. 과연 도망친 노예들은 이처럼 모두 붙잡혔다. 사형을 연기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왔다! 자전거 부대
 
시각은 오후 4시, 장소는 런던 성 밖. 거기가 형장이다. 맑고 서늘하게 잘 개인, 살고 싶어지는 기분 좋은 날이었다.
구경꾼들이 많이 밀려왔는데, 가엾은 15명의 죄수들은 단 한 사람도 편을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들이 죽는 것을 휴일의 기분 전환을 위한 구경거리로 삼으려고 귀족들이 귀부인을 거느리고 나란히 층층대로 된 관람석에 앉아 있었다. 안면이 있는 사람도 꽤 많았다.
손의 가쇄, 발의 가쇄가 풀어지자 아서 왕은 헐어빠진 옷에 분별도 할 수 없게 된 상처투성이의 얼굴로 꿋꿋이 일어섰다.
"나야말로 영국의 국왕이다. 나의 신성한 몸에 손을 대는 자는 반항의 무거운 죄로 처벌한다."
구경꾼은 일제히 웃었다. 무슨 짓이냐! 황공하기는커녕 배를 잡고 크게 웃었기 때문에, 왕은 어리둥절해져 입을 다물고 말았다. 사람들은 재미있어서 더욱 떠들어댔다.
"여어, 임금님! 거룩한 목소리를 다시 한 번 들려주게!"
그러나 왕은 왕의 긍지를 지켜 엄숙하게 몸도 움직이지 않았다. 확실히 그는 그 나름대로 훌륭한 데가 있었다. 두 번 다시 입을 열지 않았다. 거룩한 태도였다. 나는 머리가 흐려지면서도, 클라렌스를 생각하고 표적으로 흰 천을 바른 팔에 둘렀다.
사람들은 이번에는 나를 놀리기 시작했다.
"여어, 이쪽의 뱃군은 국무대신이 되는 건가. 멋진 완장이구나."
나는 멋대로 지껄이게 내버려두고 나서 말했다.
"참으로 나는 국무대신인 보스경이다. 내일 카멜롯에서 오는 기사가 도착하면 확실해질 것이다. 그러나 그 때는 이미 늦다."
나는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기사들의 모습이 보일 리 없었다.
한 사람의 노예가 목이 매달렸다. 노예는 공에 매달려 심히 몸부림쳤다. 이어서 또 한 사람........
얼마나 무서운 일이냐! 나는 떨면서 아서 왕을 찾아보았다. 그러자 아서 왕은 눈을 가리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전신 마비된 것처럼 되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왕은 밧줄 쪽으로 끌려갔다.
순간 나는 형리를 향하여 달려들어 왕을 감싸며, 최후의 희망을 걸고 시선을 길 저쪽에 보냈다.
그러자, 어떠했는가! 기적이었을까?
"왔다! 만세! 기사들이다!"
구원의 기사 5백 명이 투구와 갑옷 차림으로 투구에 단 토끼털을 나부끼면 오고 있다! 그것도 자전거를 타고! 끝없이 계속되는 자전거 바퀴의 빛남!
맨 앞에 오는 것은 랜슬롯 경이다. 나는 정신없이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아서 왕의 눈가림과 밧줄을 끊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대들 천한 자들 무릎을 꿇어라! 국왕 페하에게 용서를 빌어라! 명령을 반항하는 자는 누구거나 사형에 처한다!"
랜슬롯 경과, 투구와 갑옷에 몸을 담은 나의 소년 대원들은 런던의 영주와 귀족들을 관람석에서 집어던졌다.
클라렌스가 다가와서 나에게 한쪽 눈을 감아 보이며 장난기가 있게 말했다.
"깜짝 놀랐지요? 자전거는 생각을 잘 했죠. 저는 그 전부터 소년 대원들에게 물래 자전거 연습을 시키고 있었습니다. 언젠가는 그 솜씨를 보여드리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기사와의 대시합
 
카멜롯 성에 돌아와 보니, 자, 이번에는 나와 사구라마 경과의 대시합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구라마 경은 물론 성배는 찾아내지 못했으나, 무술수업을 끝내고 돌아오자, 멀린과 의논을 하여 나의 마법과 싸울 작전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 시합은 인간 대 인간의 것이 아니라 신통력을 충분히 사용한 마법 대 마법의 대시합이라고 모든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구라마 경의 투구와 갑옷에는 멀린이 밤낮으로 마법의 주문을 불어넣고, 사구라마 경에게 대기(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기체의 총체)의 정(만물의 생성하는 원기)으로부터 너훌너훌 아지랑이 같은 것을 넣어 주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경은, 즉 그 아지랑이로 모습을 보이지 않게 하는 모양이다.
드디어 그 시합의 당일, 아침 10시가 되자, 시합장에는 몸도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사람들이 모여왔다. 색색의 깃발과 굉장히 아름다운 천막으로 시합장은 장식되어 있었다. 아서 왕을 비롯하여 각자의 영주와 귀족들이 화려하게 차리고 나타난 모습은 볼 만한 광경이다. 시합장의 한 구석에는 화려한 천막이 줄지어 서 있고, 천막 앞에는 저마다 경비병이 엄숙하게 서 있었다. 그것은 어느 것이나 기사들의 천막이었으며, 내가 사구라마 경을 이기게 되면 누구든지 나에게 도전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나는 평상시부터 기사를 특별히 소중하게 취급하지 않았으므로 이 때야말로 시합에서 이기려고 기세가 등등했다.
또 한편 구석에는 나와 나의 편에 속하는 사람들의 천막이 2개가 있을 뿐.
이윽고 사구라마 경이 큰 창을 한 손에 들고, 훌륭한 투구와 갑옷을 입고, 이것 또한 장식한 말을 타고 당당하게 나타난다. 바로 영화 속에 나오는 장면 그 것이다. 사람들은 일시에 사구라마 경을 추어 올렸다.
다음 내가 나가자, 사람들은 조금도 칭찬해 주지 않는다. 어안이 벙벙한 듯이 조용해 졌다가 일제히 웃어버렸다.
그것도 무리는 아닌 일이었다. 나의 차림새는 아무 것도 아니다. 몸에 꼭 끼이는 운동복을 입고 있을 뿐, 머리에는 모자도 쓰지 않고 있었다. 말은 훌륭한 것이었으나 아무런 장식도 없었다.
저쪽에서 쇠스랑과 화려한 침구 한 벌의 괴물 사구라마 경이 무거운 듯이 나왔다. 맞받아 내가 나갔다. 쇠스랑님이 경례를 하고 나도 경례를 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아서 왕을 향해 경례를 했다.
왕비는 놀라 자리에서 굴러 떨어질 뻔했다.
"어머, 보스 경. 그대는 갑옷도 안 입고 창도 칼도 없이 싸울 작정인가? "
왕은 왕비의 귀에 속삭였다.
"걱정 없어. 나 같은 사람은 보스 경에게 항상 놀라기만 했어."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우리들은 재빨리 좌우로 헤어져 제 위치에 섰다.
사구라마 경의 옆에 늙은이 멀린이 왔다. 그리고 몸을 구불거리면서 사구라마 경에게 승리의 주문을 외고 있었다. 시합 개시의 나팔이 울렸다. 다음 순간 사구라마 경은 창을 들고 번개같이 돌진해왔다.
"사구라마 경, 잘 해요!"
응원의 소리가 일제히 솟아올랐다. 적이라고는 해도 확실히 훌륭한 공격이었다.
나에게는 꼭 하나 성원이 날아왔다.
"자, 나가요. 멋쟁이 우두머리 영감님!"
 
클라렌스다.
 
순간 사구라마 경의 날카로운 창끝이 들어왔다. 나는 날쌔게 몸을 피했다. 큰 덩치가 저 앞으로 빠져나갔다. 이번에는 나에게 박수 갈채가 보내져 왔다.
사구라마 경은 말의 목을 바로잡아 놓고 다시 공격해 왔다. 나도 상대방의 비위만 맞출 수는 없다. 나는 몸을 날쌔게 이리저리 피하였다. 사구라마 경은 헛찌르면서 대여섯 번이나 분주하게 왕복했다. 나는 굉장한 박수 갈채를 받았다. 사구라마 경은 끝내 화가 나서 마구 나를 쫓기 시작했다.
마치 굴래잡기이다. 나의 말도 몸이 가볍기 때문에 몸을 피하는 데는 내 쪽이 단연 우세했다. 상대는 저울추와 같은 몸차림이므로 자유가 없다. 나는 뒤로 돌아가서,
"자, 여기야."
하고, 등을 치기도 했다.
사구라마 경은 내가 생각한 대로 뒤로 돌기도 하고, 옆으로 향하기도 하고, 몸을 비틀기도 하며, 나를 붙잡으려고 진땀을 뺐다. 드디어 사구라마 경은 지쳐 버리고 말았다. 자기의 자리로 비틀거리며 돌아가자, 김이 떠오르는 머리를 식히면서 큰 소리로 아우성을 쳤다.
"저, 저, 정정당당하게 승 승부, 승부를!"
그렇다면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겨루자. 나는 말의 안장에 매달았던 카우보이 식의 던지기 밧줄을 풀어 바른손에 쥐었다.
사구라마 경은 이번이야말로 단번에 찌른다고 맹렬히 돌진해왔다. 나는 편히 말 위에 앉아 머리 위에 큰 동그라미를 그리다가 사구라마 경이 12,3미터 되는 곳에 가까이 왔을 때, 싹 밧줄을 던졌다. 그리고 곧 뒤로 돌아서서 고삐를 당겨 말을 뛰게 했다.
이영차! 밧줄은 팽팽하게 뻗고 사구라마 경은 멋지게 말에서 굴러 떨어졌다.
말할 것도 없이 이 시대의 이 나라에서는 카우보이의 던지기 밧줄 같은 것은 본 일도 없었으므로, 사람들은 열광하고 날뛰면서 소리를 질렀다.
"야! 굉장하구나! 다시 한번 부탁한다!"
그러나 말에서 떨어지면 '승부 결정'이 규칙이다.
경은 힘없이 물러갔다.
"자아, 누구든지 오시오."
나는 기사들에게 소리쳤다.
"상대하여 모시겠음!"
하비스 드 레레르 경이 나서서 불같은 속력으로 무섭게 돌진해왔다.
얼씨구, 나는 몸을 피하면서 재빨리 던지기 밧줄.
상대는 밧줄을 목에 건 채로 달리다 말에서 굴러 떨어졌다.
자아, 한판 승리!
또다시 요란한 박수. 자아, 다음 차례다. 나는 나오는 놈, 또 나오는 놈마다 모조리 말에서 떨어뜨렸다.
다섯 번째 기사가 굴러 떨어진 후에는 더 이상 나오는 자가 얼어졌다. 놈들은 의논을 시작한 모양이다.
이윽고 의논을 하여 시합의 대표로서 세상에 이름높은 기사인 라모라크 경, 이어서 호걸로 이름 높은 갈라하드 경을 내보냈다. 그리고 나는 이 두 사람 모두 말에서 떨어뜨리고 말았다. 아서 왕의 눈앞에서 보여주었으니 얼마나한 영광!
이 대시합에서는 아무도 피를 흘리는 일없이, 더군다나 나의 대승리로 끝났으니 경사스러운 일이다. 이제 덤비는 자도 없을 것이어서 나는 아서 왕에게 인사를 하기 위하여 몸을 단정히 챘다.
그리고 문득 깨닫고 보니 바로 조금 전에 무엇인가 수상한 몸짓으로 나의 주위를 어슬렁대던 멀린이 맨 처음 골탕을 먹은 사구라마 경과 이쪽을 엿보면서 소곤소곤 의논하고 있었다.
흉계를 꾸미는 것이 틀림없다. 나는 이상하게 느껴져 말에 매달아 놓은 던지기 밧줄을 보았다.
없다! 없어지고 말았다! 도둑고양이 같은 멀린 놈이 훔쳐간 것이다. 내가 승리의 기쁨에 들떠 있을 때, 미국에서 내가 살고 있었을 때의 하우트포드에 있는 나의 약혼자에게 이 모양을 보여 주고 싶다고 공상을 하고 있는 틈에 당한 모양이다.
나팔이 울리었다. 도전자가 나타났다는 신호이다. 도전자는 또다시 사구라마 경이었다.
"보스 경, 그대는 손이 빠르다. 그러나 이것에는 당할 수 없겠지. 마법의 아지랑이가 걸려 있으니까, 보이지 않을지 모르지만 이번에는 벅찰 거다."
사구라마 경은 칼자루를 치면서 음산한 웃음을 띠었다. 나를 찔러 죽일 작정인 것이다.
나와 경은 나란히 아서 왕에게 인사를 했다. 왕은 불안한 듯이 눈썹을 모았다.
"보스 경, 그대의 기묘한 무기는 어떻게 했지?"
"임금님, 그것은 도둑을 맞았습니다"
"그럼 또 가지고 있는가?"
"아니요, 그것뿐입니다."
그 때, 멀린이 살살 걸어나와서 말했다.
"그것은 바다의 마왕의 것으로서 이 세상에 둘도 없는 물건입니다. 그리고 8번을 쓰면 사라지고, 마왕에게로 되돌아가기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보스경은 무기가 없는 것인가? 그건 안 돼."
그러자 왕비의 열에 친던 랜슬롯 경이 나에게 소리 쳤다.
"나의 칼을, 훌륭한 다시없는 용사 보스경에게 빌려 드리기로 하겠소."
그렇게는 하지 못하게 사구라마 경이 방해를 했다.
"그건 쓸데없는 짓이야. 랜슬롯 경, 무기를 빌려서 싸우는 것은 안 돼. 만일의 경우에 보스경이 생명을 잃는 일이 있어도 그것은 제 마음대로야."
"뭐라고! 그건 도가 지나친 말. 정신이 돌았는가? 사구라마 경. 무기 없는 사람을 죽이는 일을 저지르면 내가 귀하의 상대를 하겠음."
무술의 명수 랜슬롯 경이 힘주어 말하자, 사구라마 경은 화가 나는지 눈에 불을 키고 노려봤다.
거기에 또 멀린 놈이 나왔다.
"뒤의 일은 뒷일. 보스경은 이 시합을 승낙했으니까 우선 시합을 시작하면 좋을 것입니다. 히히히."
이렇게 하여 시합은 시작되었다.
좌우로 헤어지자, 사구라마 경은 긴칼을 뽑았다. 칼은 공중에 원을 그리며 번쩍거렸다. 구경꾼들은 흥분하여 외 쳤다.
"보스 경, 도망쳐요! 이건 시합이 아니다. 살인이다!"
그러나 나는 몸도 움직이지 않고 말을 멈춰 세우고 상대를 지켜보았다. 경의 큰 몸집이 폭풍 같은 위세로 눈앞 15걸음 정도 앞까지 다가왔다. 나는 허리에 손을 대자 손도 보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꽝!
하고 한 발 나의 공장제의 권총이 불을 뿜었다.
속사(빨리 쏘기)다. 눈에는 보이지 않을 만한 빠른 동작으로 권총은 회전하여 들어갔다.
저쪽에는 임자 없는 말이 서 있고 땅바닥에는 사구라마 경의 돌과 같은 시체가 쓰러져 있었다.
도와주려는 사람이 경에게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상처가 없다. 그런데 경은 목숨이 끊어져 있어!"
하고, 놀랐다. 뭘, 경의 갑옷 가슴에 총알이 뚫은 작은 구멍이 나 있는 것을 놈들은 알지 못했던 것이다.
시체는 왕 앞으로 운반되었다. 사람들은 그저 어리둥절해 있을 뿐이었다. 나에게 이 기적의 설명을 해 달라고 했으나, 나는 말하지 않고 시합장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쳤다.
"나의 승리에 불복하는 분은 누구든지 좋아. 이쪽에서 싸움을 걸겠다. 다발이 되어 나오너라."
"뭐라고? 다발이라고!"
사구라마 경의 부하 기사들이 떠들기 시작했다.
"응하지 않으면 이쪽의 창피야. 비겁한 자가 된다."
다발치고는 너무 컸다. 5백 명의 기사가 말을 타고 와! 몰려왔다.
으응! 이건 큰일이다. 나는 선두에서 오는 놈을 겨누었다.
빵! 하나의 안장이 비었다.
빵! 또 하나. 빵 빵! 떼굴떼굴 놈들은 잘도 굴러 떨어 졌다.
그러나 총알은 11발. 이걸 다 쓰면........ 12명 째의 기사가 나를 죽일 것이 틀림없다.
9번째다. 나는 비장한 기분으로 두 자루의 권총을 들었다. 그러자 기사들은 멈춰 섰다. 다음 순간 한꺼번에 모두들 후퇴했다. 마치 거미 새끼들이 흩어지는 것처럼 ........
이날이야말로 나의 일생 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하루였을 것이다. 잘난 체하는 기사도 같은 건 납작해지고 말았다. 그리고 멀린 놈의 점수는 뚝 땅에 떨어지고 벌레처럼 자랑도 못하게 되었다.
 
프랑스 해안으로의 여행
 
그로부터 3년이 흘렀다. 그 동안 나는 여러 가지로 많은 일을 하여 나라의 질서를 바로 잡았다. 아서 왕도 나와 모험 여행을 하면서 국민의 생활과 인간에 대한 제도의 모순을 확실히 자기의 눈으로 보았기 때문에 내가 하는 일을 스스로 뒤에서 밀어주었다. 내가 한 일 중에서 가장 큰 것은 뭐니뭐니 해도 노예의 해방이었다. 이제 이 나라에는 노예라는 것은 없다.
노예도 자유민도 귀족도 모두 평등하다고 법률로서 정해졌다. 교회의 사제며 영주들, 특히 사제들은 마음속으로 불평이어서 뒤죽박죽이었을 것이나, 어쨌든 아서 왕이 나의 뒤를 밀어주고 있으므로 아무 말도 못했다. 밥벌레였던 기사들은 나라에서 월급을 받고 토목 공사 같은 여러 가지 일
<나는 알리산도 공주와 결혼했다. 그리고 헬로 센트랄이라는 딸을 낳았다.>
 
을 했다. 놀고먹는 자는 아무도 없게 되었다.
집안이나 혈통에는 관계없이 누구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때까지 비밀로 해두었던 나의 학교나 공장도 공개했으며, 동시에 영국 안에 학교를 세웠다. 나는 가까운 장래에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기 위하여 탐험선대를 보낼 계획도 세웠다.
그리고 나 개인에 대해서도 말해두지 않으면 안 되겠다. 나는 그 전에 살아온 문명 세상일은 깨끗이 단념하고 그 알리산도 공주와 결혼했다. 나는 행복했다. 모든 것이 잘 되어갔다. 나의 가정에는 여자아이도 하나 생겼다. 헬로 센트랄이라는 이름이다. 그 이름은 알리산도가 지었다.
나는 그 즈음 전화를 지방으로 널리 보급하는 일에 열중하고 있어서 꿈속에서까지 전화로 교환국을 부를 때의 '여보세요 교환국=헬로 센트랄'하고 잠꼬대까지 했다. 그것을 들은 알리산도는 내가 옛날에 헬로 센트랄 이라는 여자를 좋아졌다고 생각하여 착한 마음에서 헬로 센트랄 이라고 이름을 붙여 주었건 것이다.
나는 웃지는 않았다. 그리고 감사했다. 그러나 우습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정도가 아니라 웃음을 참는 것이 어려운 일이었다. 온 몸의 뼈가 모두 제멋대로 떨어져나갈 것 같이 힘을 주어 참았기 때문에, 덕택에 그 후 몇 주일은 걸을 때마다 뼈에서 빠드득 소리가 날 정 도였다.
그 헬로 센트랄이 병을 앓게 되었다. 디프테리아였다. 나와 알리산도는 늘 붙어서 간호를 하여 쓰러질 만큼 지쳐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안녕하세요. 따님의 병 어떻습니까?"
찾아온 것은 무용이 비할 바 없이 뛰어난 랜슬롯 경이었다. 랜슬롯 경은 영국에 수많이 생긴 주식회사의 증권 시장에서 주식의 상담을 하는 회의 회장을 하고 있었다. 화려한 갑옷을 입고 거기에 출석하는 도중 들려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곁들여 말해두는데, 유명한 원탁기사(기사들이 원탁에 둘러앉아 음식을 먹고 담론한 데서 온 말)의 그 테이블은 지금은 주로, 기사들이 질이 나쁜 주식을 어떻게 하면 시장에서 추방하느냐, 또는 부당하게 주식이 오르내리는 데 대한 의논을 하는 데 사용되고 있었다.
랜슬롯 경은 증권 장사를 해도 역시 내가 아서 왕 이야기에서 읽은 대로 훌륭한 무인이었다. 그는 이때에도 주식의 일은 내버려두고 헬로우 센트랄을 위해 밤낮 사흘 동안을 붙어서 간호를 해 주었다.
랜슬롯 경의 간호와 나의 증기 흡입기의 덕분으로 딸은 병에서 회복되었다. 랜슬롯 경은 큰 팔로 헬로우 센트랄을 안아 올려 뺨을 비벼대고 돌아갔다.
문병을 와 준 다른 기사도 탄복하는 시선으로 랜슬롯 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아아, 이것이 이 랜슬롯 경을 마지막으로 보게 되는 것일 줄이야 그 누가 예상할 수 있었겠는가!
우리 부부는 그 후 궁정의 의사의 권유로 딸의 요양을 위해 프랑스의 해안으로 여행을 떠났다. 예정은 1개월이었다. 그 한 달이 지났다. 우리를 데리러 올 배도 2, 3일 중에 올 것이었다. 뭔가 재미있는 소식도 들을 수 있을 것이 틀림없다.
오늘은 올까, 오늘은 올까 하고 기다리는 것이 또 한 달이 지나고 말았다. 나는 불안해졌다.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
어느 날 나는 언덕에 올라가서 바다를 바라보고 깜짝 놀랐다. 넓고 넓은 바다에 배가 1척도 없었다. 여느때 같으면 나의 미국 공장 기술을 배워서 만든 배가 무역 때문에 빈번하게 왕래할 것이었다.
확실히 나라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 그것도 반드시 좋지 않은 일이!
"너희들은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나만 나라에 돌아가 보겠어. 별 일이 없으면 배를 보낼 테니까."
알리산도에게 이렇게 말하고 나는 작은 배를 1척 얻었다. 배라고는 하지만 이름뿐인 발동선 정도의 것이었다.
작별할 때의 헬로 센트랄의 서툰 말씨는 나를 눈물짓게 했다. 실제로 이 세상에서 어린애가 말하는 것처럼 가슴에 스며드는 것은 없다.
"잘 있어라. 헬로 센트랄!"
다음날 아침 나는 영국에 도착했다.
"이건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항구의 배는 죽은 것처럼 오그라들어 움직이지 않고, 일요일이어서 번잡해야 할 캔터베리 성당이나 거리에는 사람의 그림자 하나 없었다. 가는 곳마다 죽음의 고요가 감돌고 있었다.
교회의 앞을 지나치려다가 문득 쳐다보니 교회의 종에 검은 천이 걸려 있었다. 나는 어느 정도 알 것 같았다. 나라가 뒤집힐 것 같은 나쁜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것에는 교회가 관계되고 있다.
나는 허술한 차림으로 변장하고 함께 가던 사람들과도 헤어져서 홀로 행동하기로 했다. 그쪽이 사람 눈에도 띄지 않고 오히려 안전하다.
비참한 여행이었다. 교통 기관은 모두 끊어지고 길을 가는 사람은 말을 하지 않고 웃음을 잃은 얼빠진 표정이었다.
화요일 밤 겨우 카멜롯에 도착해서 보니, 이때까지 나의 발전소에서 보내는 전기로 밝게 비치고 있던 카멜롯은 깊은 어두움 속에 갇혀 있었다.
"교회는 내가 쌓아올린 문화를 송두리째 뽑아치웠구나!"
거리에는 사람의 그림자 하나 없었다. 나는 무겁고 괴로운 마음으로 어두운 길을 더듬어 나아갔다. 거대한 성이 언덕의 꼭대기에 검게 드러나 있었다. 문은 활짝 열려지고 병사도 없다. 도개교(움직일 수 있는 다리)는 내려진 채였다. 나는 성에 들어갔다.
무덤 같이 조용하기만 하다. 나의 발자국 소리만이 헛되게 메아리쳤다.
 
대 전쟁
 
어둠 속에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오는 방이 있었다. 나는 가까이 가서 살짝 보았다.
"오, 클라렌스!"
클라렌스는 힘없이 앉아있던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달려왔다.
"보스 님, 살아서 뵈옵다니!"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
나는 클라렌스를 재촉하여 사정을 물었다.
아아! 내가 책에서 읽은 아서 왕 이야기에 나오는 일이 확실히 일어난 것이다. 훌륭한 아서 왕과 다시없는 친구 랜슬롯 경이 싸움을 했던 것이다. 왕비와 랜슬롯 경이 한패가 되어 왕의 자리를 빼앗으려 하고 있다고 왕에게 자꾸만 고자질한 놈이 있었다. 굳게 친구를 믿는 아서 왕에게........
게다가 랜슬롯 경은 증권에서 속아 보잘 것 없는 주식을 사기꾼들로부터 비싸게 사서 웃음거리가 되었다. 경은 화가 나서 사기꾼들을 발가벗겨 힘껏 두들겨 주었다. 그런데 발가벗겨 놓은 놈 중에 그 전부터 경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했던 귀족과 왕의 조카가 섞여 있었다.
궁정에는 피비린내 나는 흉계가 감돌기 시작하고 끝내 왕과 랜슬롯 경의 두 편으로 갈라지고, 나라는 두 쪽으로 갈라졌다. 나라는 전쟁터가 되고 말았다. 거기에 교회가 가운데 끼어서 화해를 시켰다. 랜슬롯 경은 이 이상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 위하여 자기편을 데리고 바다를 건너 가이엔 공국(프랑스 남서부에 있는 지방)으로 가 버렸다.
그런데 그 후 왕을 충동질한 악질 우두머리 모드레드 경이 왕위를 빼앗고, 아서 왕에게로 군대를 출동시켰던 것이다.
"임금님과 모드레드의 두 군대는 심하게 싸우고, 임금님은 모드레드와 1 대 1로 싸웠습니다 임금님은 경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임금님도 상처를 입고_......."
"아아, 내가 있었으면 싸움은 피할 수 있었을 텐데, 아서 왕은 이제 회복되었는가?"
"아니요, 그 상처가 좋지 않아서 고생을 하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나는 멍해지고 말았다.
"얼마나 큰 변화냐! 겨우 얼마 아닌 동안에! 믿을 수 없다. 대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아서 왕이 죽었기 때문에 교회가 정치의 힘을 장악해 버리고, 그리고 당신에게 저주를 내렸습니다. 보스 님이 만든 것은 신에 배반된다고 하여 제도와 모든 것을 파괴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또 싸움에서 살아 남은 기사들을 모아 당신을 발견하는 즉시로 공격하려 하고 있습니다."
바보 같은 놈들! 나에게는 군대 병기와 훈련된 군대가 있는데. 나는 웃어 버렸으나,
"아니 아니!"
클라렌스는 진지하게 머리를 가로 흔들었다. 그의 설명을 듣고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돌봐주고 교육한 자들도 교회의 힘만인 세상이 된 오늘날은 도금이 벗겨진 것처럼 다시 미신을 믿는 인간으로 되돌아갔던 것이다. 다만 다행하게도 클라렌스가 14세에서 17세까지의 소년만을 골라 보스경의 군대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그 수는 52명.
"왜 소년만을 골랐지?"
"소년들은 아직 미신에 젖지 않고 있습니다. 한줌밖에 안 되는 인원이지만 충성스러운 우리편입니다. 교회는 흉계에 있어서는 굉장히 재빠릅니다. 보스 님을 전지 요양으로 해외에 가도록 한 것도 교회의 계략이었습니다. 의사를 그 앞잡이로 사용한 것입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놀라운 일뿐이다. 클라렌스는 급히 서둘러 멀린의 낡은 동굴을 방패로 하여 포위되었을 경우의 준비로 식량을 많이 운반해 놓았다고 한다.
"잘 했어. 클라렌스!"
"그 동굴에는 4명의 소년이 지키고 있습니다. 수상한 놈은 거기에 절대로 접근시키지 않습니다. 그리고 궁정의 당신의 방에서 공장의 지하에 있는 다이너마이트 창고까지 비밀 전선이 부설된 것이 있었지요. 그것을 지금 몰래 멀린의 동굴에 연결시켰습니다. 만일의 경우에는 공장을 적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폭발시킬 수 있습니다."
"응, 훌륭해!"
"또 있습니다. 우리들은 동굴의 주위에 철조망을 쳤습니다."
"철조망?"
"2,3년 전에 당신이 가르쳐 준 것을 그대로 실행했을 뿐입니다. 동굴 속에 발전기를 비치하고 철조망을 12줄 둘러쳤습니다. 그리고 철조망의 안쪽에 높이 2미터의 받침대를 쌓아서 기관총을 13정 비치했습니다."
"좋았어, 좋았어! 지뢰도 실수 없이 했겠지?"
"네, 바깥 쪽 철조망의 전방 백 미터 되는 곳에 거의 13미터 간격으로 둘러 파묻었습니다."
"그야말로 더 말할 나위 없는 솜씨다. 클라렌스!"
다음은 내가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남아 있을 뿐이다. 드디어 일어서서 결전이다. 나는 곧 포고문을 만들었다.
 
모든 사람에게 고한다.
국왕은 대를 이을 사람 없이 세상을 떠났다. 우선 정치를 행하는 것은 나의 의무이다. 왕국의 시대는 사라졌다. 따라서 귀족도 기사도 없고 나라에서 정한 종교도 없다. 앞으로 모든 사람은 평등하며 어떤 종교를 믿건 자유이다. 오늘부터 영국은 공화국이다. 영국 국민이여, 즉시 모여서 선거로써 대표자를 뽑아 대표자에게 정치를 하게 하자. -- 멀린의 동굴에서, 보스
 
"이렇게 되면 우리들이 있는 곳을 가르쳐 주는 것과 같은 것이어서 적은 즉시로 밀려옵니다."
하고, 클라렌스가 걱정했다.
"이걸로 좋아. 이 포고문으로 이쪽이 먼저 공격을 한 거다. 다음은 놈들의 차례다. 곧 인쇄해 주게. 그리고 자전거 2대 없나? 있으면 그것으로 곧 멀린의 동굴로 출발이다."
"곧 준비하겠습니다. 내일 이 포고문이 나돌면 천지가 뒤집히는 소동이 일어날 것입니다."
 
멀린의 동굴에서의 싸움
 
클라렌스와 나와 52명의 소년은 멀린의 동굴에 들어가 지켰다. 소년들은 모두 발랄한 머리 좋은 소년들뿐이었다.
나의 포고문을 읽은 국민들은 모자를 집어던지며 외쳤다.
"공화국 만세!"
그러나 그것은 단 하루뿐! 교회와 귀족들이 국민들을 위협하자, 국민들은 움츠러들었다. 그리고 얼마나 무기력한 일인가! 즉시로 교회나 귀족에게 조종되어 반대로 멀린의 동굴을 향해 공격해 올 기미를 보인 것이다. 어리석은 새끼양들이여!
그리고 또 멀린의 동굴에서도 곤란한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소년들이 창백해지고 깊이 생각에 잠기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들은 잘 모르게 되었습니다. 기사들이 적이라면 상대가 1만이건 3만이건 우리들은 용감하게 싸우겠습니다. 그러나 사정이 다릅니다. 지금은 영국 전국민이 우리들을 공격하려 하고 있습니다. 상대는 우리들과 같은 국민입니다. 아아, 같은 국민의 피를 흘리게 할 수는 없습니다."
나는 다 듣고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말했다.
"소년 여러분, 여러분의 생각은 훌륭하다. 그래야 만이 영국의 소년이다. 그런데 영국의 전국민이 우리들을 공격한다고 하는데, 국민을 선동하는 것은 누구지?"
"귀족들입니다. 기사들입니다!"
"그대로다. 그리고 영주들과 교회의 사제들이다. 우리들의 싸움의 상대는 이놈들 3만 명인 것이다. 놈들은 선두에 서서 우리들 각성한 국민을 내리누르려고 행진해 온다. 여러분! 그래도 싸움을 피할 것인가?"
"아니, 싸우겠습니다!"
소년들은 일제히 진심으로 외쳤다.
싸움의 날은 드디어 밝아왔다. 새벽녘에 보초 한 사람이 보고했다.
"지평선에 대군이 나타났습니다!"
귀를 기울이자, 진격의 군악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이윽고 태양이 떠오르자 굉장한 대군이 이쪽을 향해 오는 것이 보였다. 온 영국이 진군해 오는 것 같았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깃발이 펄펄 나부끼고, 태양은 갑옷과 투구의 물결을 반짝반짝 빛나게 하였다.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자, 대군은 일제히 빠른 걸음으로 옮겨갔다. 얼마나 굉장한 아름다움이냐! 말들의 발의 파도가 와! 밀려왔다.
그러나 탄복하고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좀 있으면 지뢰의 지대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그 지대에 말을 몰아 넣었을 떼 쾅! 쾅! 귀를 찢는 울림과 함께 기사의 대군은 하늘로 날아올라갔다. 검은 연기가 자욱히 떠올라 모든 것을 덮어 버렸다.
계속하여 나는 단추를 눌렀다. 또다시 천지가 흔들리는 대음향! 우리들의 공장은 일순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정성을 들여 만든 정든 공장도 적에게 이용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이렇게 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30분 가량 지난 후 연기가 엷어지고 땅이 보이기 시작했다. 살아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지뢰의 흔적은 30미터 정도나 땅이 파지고, 우리들 동굴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이윽고 밤이 되었다. 북쪽을 감시하던 보초가 보고를 했다.
"기사 수명이 살짝 가까이 옵니다."
"음, 이쪽에는 철조망이 있으니까 걱정은 없어. 바보 같은 놈들. 귀신도 모르게 소리도 없이 철조망의 밥이 된다. 가엾다. 쓸데없이 목숨을 버리게 하는 일이 괴롭게 되었다."
옆에서 클라렌스가 싱글거렸다.
"보스 님, 그렇게 편지를 써서 적에게 보내면 어떻게 될까요. 보스 님은 귀족들의 본성을 아직 잘 모르십니다. 그놈들은 이쪽의 사지를 토막을 내서 상자에 넣어 대답은 이거다 하고 돌려보낼 것입니다."
확실히 클라렌스의 말 대로다.
밤은 조용히 깊어갔다. 놈들의 갑옷이 절컥절컥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 임자의 검은 그림자가 지뢰의 자국, 깊이 파진 곳으로 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나는 바깥에서 두 번째와 세 번째의 철조망에 전류를 보냈다. 클라렌스가 말한다.
"저놈들은 수색대입니다. 정탐하러 왔으니까 맨 바깥 철조망에는 전류를 보내지 말고 안으로 더 들어오게 하면 어떨까요?"
"그대로 했어. 내가 언제 손님 대접을 잘못한 적이 있어?"
"네, 언제나 환영을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기어서 두 번째 철조망의 실태를 보러 갔다.
한 기사가 두 손으로 철조망을 쥔 채로 죽어 있었다. 살이 타는 고약한 냄새가 났다.
그 때, 또 희미한 소리가 가까워졌다. 우리들은 땅바닥에 몸을 납짝 엎드렸다.
한 기사가 몰래 죽은 기사에게로 다가섰다.
"귀공, 뭘 멍청히 있어?"
기사는 시체 어깨에 손을 댔다. 순간 낮은 신음 소리를 남기고 저 세상으로........ 감전된 것이다.
수색대 15,6명이 모두 철조망에 걸렸다. 몸서리칠 정도의 위력이었다.
"적이 총공격해 온다! 대군이 숨어왔다!"
모두가 속삭였다. 기사들이 숨어서 다가오는 무서운 소리가 이윽고 끊어졌을 때, 철조망에는 검은 사람의 울타리가 쌓여지고 있었다. 우리들의 동굴은 시체의 성벽으로 둘러싸이게 되었다. 한 마디 소리도 없이 죽어 가는 것은 오히려 몸서리치는 무서움을 더욱 느끼게 했다.
나는 낭떠러지 위에 비치한 50개의 전등을 켜 비치고는 나도 모르게 신음 소리를 냈다.
"이건 정말 지옥과 같은 광경!"
시체의 두터운 벽의 밖에 있는 지뢰가 판 웅덩이에는 아직도 밀려오려는 기사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나는 권총을 세 발 쏘아 신호를 했다.
"물을 부어라!"
막아 놓았던 골짜기의 물이 즉시로 웅덩이에 밀려들었다. 무거운 투구와 갑옷을 걸친 기사들은 상처를 입은 딱정벌레처럼 물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기관 총대 사격!"
13정의 기관총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비참하지만 재난의 근본은 뿌리째 뽑아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싸움은 끝났다 일제 사격을 시작해서 겨우 10분, 2 만 5천의 대군은 여기서 전멸했다. 우리들 53명은 영국 전국민을 위해 자유를 쟁취한 것이다!
"신생 영국 만세!"
우리들은 하늘을 우러러 힘껏 기쁨의 고함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행운이라는 것은 모습만 보이고 사라지는 모양이다. 나의 대수롭지 않은 부주의로 엉뚱한 일이 일어나고 만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은 쓰고 싶지 않다. 나의 기록은 이것으로 끝내기로 한다.
 
클라렌스의 후기
 
나, 클라렌스가 보스경을 대신하여 그 후의 일을 쓰게 되었다. 보스경과 나는 동굴을 나와 간호를 하면 살아날 수 있는 부상자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보러 가려고 했다.
"클라렌스, 신음 소리가 들린다. 아직 죽지 않은 기사가 있다. 살려주지 않겠어? 싸움은 이젠 끝난 거다."
하고, 보스경이 말씀하셨다.
"아니, 그만두셔요. 놈들은 우리들을 죽이러 온 겁니다."
"그런 말은 하지 마."
그래서 우리들은 철조망의 전류를 끊고 밖으로 나갔다. 신음 소리가 나는 쪽으로 가자, 죽은 기사에게 기대어 꿈틀거리는 부상자가 있다.
"자, 정신을 차려, 치료를 해주겠어!"
보스경이 일으켜 세우려고 할 때 부상자는 힘껏 검으로 일격! 경은 그 검을 피할 수 없었다.
"아차!"
단 한 마디. 나는 경을 동굴로 운반하여 열심히 간호했다.
"보스 경, 상처는 가볍습니다. 아, 안 됩니다. 누워 있으세요."
경은 움직일 수 없는 상태로 하루 이틀이 지나갔다. 그러나 경과는 좋아지지 않았다.
그 때부터 이상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클라렌스, 무슨 냄새야?"
나는 창백한 얼굴로 구역질나는 것을 참고,
"곤란한 일이 생겼습니다 저 많은 시체에서 유독 가스가 나오고 있습니다. 소년들도 잇달아 가스로 병이 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이 무적의 동굴 밖으로 나갈 수는 없습니다 여러 곳의 사정을 잘 알고 난 뒤가 아니면...... 게다가 보스 님이 선두에 서서 지휘를 해주지 않으면........"
그리고 끝내 나는 병을 앓게 되었다.
나흘째 되는 새벽. 나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괴롭다. 누군가가 가슴을 누르는 것 같아서 번쩍 눈을 떴다. 그러자 희미한 불빛에 비치는 동굴 속을 소리도 없이 걸어가는 그림자가 있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자세히 보니, 머리칼을 풀어헤친 노파가 거기 있었다. 잠들고 있는 보스경 옆에서 이상한 손짓으로 주문 같은 것을 외고 몰래 입구로 간다
"누구냐! 무슨 짓을 하고 있어!"
그러자 노파는 나를 뒤돌아보고 슬슬 다가왔다.
"그렇다. 클라렌스야, 히히히......모르겠느냐. 이 모습으로서는 히히히. 그대는 이겼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결국은 진 거다. 여기 있는 자들은 모두 죽어간다. 그러나 보스경만은 그리 쉽게 죽게 하지 않겠어. 보스경은...... 그렇다 13세기 동안 저주를 내려 계속 잠들게 하는 것이 좋을 거다. 알았어? 히히히. 나는 노파로 둔갑한 멀린, 멀린이야."
"우우우!"
나는 일어나려고 했다. 그러나 몸은 묶여진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고함을 치려고 했으나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멀린은 흔들흔들 등불이 흔들리는 것처럼 기분 나쁘게 몸을 꿈틀거리며, 덮치는 것처럼 갈고랑이 같이 구부린 손가락을 내 앞으로 내밀어 공기를 긁는 시늉을 했다.
"히히히.......!"
멀린은 머리칼을 풀어헤치고 웃었다. 웃으면서 점점 뒤로 물러섰다.
"히히히........“
입구까지 물러서자 뒤로 손을 더듬다가 그 손이 철조망에 이어져 있는 전선에 닿았다.
멀린은 갑자기 전선에 붙었다. 눈을 뜬 채로. 그리고 시체가 흙이 될 때까지 웃는 것처럼 입을 벌리고 오래오래 서 있을 거다.
나는 눈앞이 점점 어두워 갔다. 정신이 희미해져 가는 속에 멀린의 저주가 메아리쳐 왔다.
"...그렇다. 13세기 동안 저주가 내려 잠자는 것이 좋을 거다. 좋아, 히히히......"
 
작자의 후기
 
- 이상한 나그네 -
 
나는 마크 트웨인이라는 소설가다. 영국을 여행하며 워리크 성을 구경할 때 이상한 여행자를 만났다. 이렇게 쓰면 이 책의 머리말을 여러분은 생각해 낼 것이다. 다시 한번 그 당시의 사정을 되풀이하는 것을 용서해 주기를 바란다.
그 사람은 자기의 이름은 말하지 않았으나 소탈하고 깨끗하여 중세기 기사와 무기에 대해 마치 학자처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이 이상한 나그네는 아서 왕 시대의 원탁 기사의 이야기를 할 때, 그 빛나는 기사들의 일을 친한 친구의 소문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리고 왠지 그리운 듯이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안내인을 따라 5,6명의 관광객이 왔으므로 나는 관광객의 뒤를 따라갔다. 그 나그네는 안내인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아래를 보는 듯하면서 조용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안내인의 소리가 한층 높아졌다.
"......여러분 여기를 보십시오. 이것은 기사 사구라마 경의 물건입니다. 그런데 여기 참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자, 이 왼쪽 가슴에 둥글게 뚫린 구멍. 이것은 오늘날의 총알 자국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그 시대에 총 같은 것은 없었을 텐데 총알 자국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기묘한 일입니까?"
이상한 나그네는 이 말을 듣고 싱글벙글 웃었다. 먼일을 되생각해 내려고 하는 듯한 눈매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나는 알고 있다. 이 내가 했어."
그것을 듣고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리고 언제 없어졌는지, 나그네의 모습이 없었다.
그날밤, 나는 여관 난로 옆에서 먼 옛날 세계를 꿈꾸고 있었다. 비가 창문을 두드리고 바람이 처마를 넘나들며 짖어 대는 것 같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나는 아서 왕 이야기책을 펼치고 여기저기 조금씩 읽기 시작했다.
밤도 꽤 깊었을 때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셔요."
들어온 사람은 낮에 워리크 성에서 만난 이상한 나그네였다.
"아니, 어서 오십시오."
내가 의자를 권하자 나그네는 말했다.
"내일은 또 프랑스의 해안 쪽으로 여행을 떠나므로 그 전에 당신에게 이야기를 해 두려고 생각합니다."
"프랑스의 해안 쪽? 그것은 장사일로서요?"
"아니, 찾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거기에 몇 번이나 갔지만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물론 살아있을 리는 없으나 아내와 어린것을 거기 두고 온 일이 있어서 ........"
"네에, 이건 매우 기묘한 일을 물었는데요. 부인과 아이들을요!"
"옛날 일입니다. 아내와 아이의 낡은 무덤이라도 남아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되어서."
"낡은? 그러나 당신은 아직 젊지 않습니까? 언제쯤의 일입니까?"
그러자 나그네는 내가 따른 위스키 잔을 입가에 대고 먼 곳으로 눈길을 돌리며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그해...... 6세기의 아서 왕의 시대였습니다 아내의 이름은 알리산도, 아이의 이름은 헬로 센트랄. 아아! 그리운 아내와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 때 나는 보스경이라고 불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영국인이 아니고 미국인이었습니다. 낳아진 곳은 코네티컷 주의 하우트포드. 순수한 양키였는데........나의 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내가 그의 노트를 다 읽었을 때. 밤은 밝아가고 있었다. 비도 거의 그치고 있었는데, 어디를 보아도 잿빛으로, 바람도 서글프게 위세를 잃고 가끔 흐느껴 우는 것 같은 소리를 냈다.
나는 이상한 사나이의 방에 가서 노크를 했으나 대답이 없었다. 문이 좀 열려 있어 안에서 띄엄띄엄 혼잣말이 들려나왔다. 슬그머니 안을 엿보았더니 사나이는 누워서 열이 심한 환자처럼 알리산도와 헬로 센트랄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알리산도! 알리산도! 나의 옆에 있어다오. 떨어지지 말아다오. 나의 머리가 이상해지지 않게 옆에 있어다오. 1천 3백 년이 지난 꿈. 멀고 먼 거리 얼마나 무서운 일이냐! 알리산도 듣고 있는 거냐?"
나는 사나이의 침대 옆으로 가서 말을 걸었으나, 그는 요령을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목에서 꾸럭꾸럭 하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사나이도 그것에는 놀란 양으로 귀를 기울이더니,
"나팔 소리가 나고 있구나! 아서 왕이다! 이 봐 도개교를 내려라! 성벽에 병사를 정렬시켜라! 마중을........"
그는 최후의 힘을 다해서 말하려 했으나, 말을 끝맺기도 전에 숨이 끊어졌다.
 
<끝>
 
 
아서왕을 만난 사람
마크 트웨인 작 ․ 박 홍근 역
 
아이디어회관 과학 문고
224p 19 cm (SF 세계 명작 33)
 
인 쇄      1984년 8월 20일
발 행      1984년 8월 30일
역 자      박 홍근
조 판      태광 문화사
제 판      명림 정판사
옵셋 인쇄  장원 정판사
활관 인쇄  삼정 인쇄소
제 본      영지 제책사
발행인     박 훈
발행처     아이디어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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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49 청소년 위한 SF세계명작소설 원문 사이트주소 2023-08-23 0 554
48 해저 지진 도시 F. 폴 . J. 윌리암슨 작 이 인석 역 2023-08-23 0 453
47 제 4 행성의 반란 REVOLT ON ALPHA. C 로버트 실버버그 R. SILVERBERG 지음 2023-08-23 0 530
46 절대 0도의 수수께끼 ♣ E. S. 가드너 지음 2023-08-23 0 456
45 에스에프 세계 명작 <한국편> 한국SF작가협회 편 텔레파시의 비밀 김학수 지음 2023-08-23 0 363
44 에스에프 세계 명작 한국편 한국 SF 작가 협회편 북극성의 증언 서광운 지음 2023-08-23 0 329
43 에스에프 세계 명작 <한국편> 한국SF작가협회 편 4차원의 전쟁 서광운 작 2023-08-23 0 322
42 에스에프 세계 명작 《한국편》 한국SF작가협회 편 관제탑을 폭파하라 서광운 작 2023-08-23 0 330
41 양서인간 AMPHIBIAN HUMAN - 베리야에프 А. ВЕЛЯЕВ 지음 2023-08-23 0 320
40 안드로메다 성운 ANDROMEDA NEBULA - 이반 에프레모프 IVAN EFREMOV 지음 2023-08-23 0 291
39 암흑 성운 Dark Nebula 아이작 아시모프 Isaac Asimov 지음 2023-08-23 0 350
38 심해의 우주괴물- 존 윈담 지음김 상일 옮김 2023-08-23 0 255
37 불사 판매 주식회사 IMMORTALITY 로버트 세클리 ROBERT SHECKLEY 지음 2023-08-23 0 293
36 백설의 공포 - 홀덴 작 박 홍근 역 2023-08-23 0 296
35 공룡 세계의 탐험- 코난 도일 지음김 상일 옮김 2023-08-23 0 330
34 걷는 식물 트리피드 THE DAY OF THE TRIFFIDS 존 윈담 John Wyndham 지음 2023-08-23 0 303
33 강철 도시 - 아이작 아시모프 Issac Asimov 지음 2023-08-23 0 290
32 280 세기의 세계 - 레이 커밍스 Raymond Cummings 지음 2023-08-23 0 249
31 비글호의 모험 -반 보그트 A. E. VAN VOGT 지음 2022-03-31 0 591
30 지구의 마지막 날-필립 와일리 PHILIP WYLIE 지음 2021-09-22 0 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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