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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월 시모음 2
2020년 05월 19일 14시 55분  조회:2101  추천:0  작성자: 강려
송시월 시모음 2
 
출처 http://blog.daum.net/siiwoell
 
비명 
 
  창 밖은 지금 회오리가 일고 은행나무 
  수천의 노랑나비를 허공에다 풀어놓고 있다
  날개를 걸고 팔랑팔랑 흔드는 놈, 등 떠민 놈, 납작 껴안고
  공중회전을 하다가 함께 떨어지는 놈, 패거리로 
  껄렁껄렁 몰려다니며 밟고 밟힌다
 
  유리창 밖의 낙엽 하나
  두 손으로 감싸든 잔에 날아드는 든다, 나비 
  비스듬히 기우는 날개
  치켜 뜬 좁쌀 만한 눈의
  들릴 듯 말 듯 파르르 떠는 나비,
  (이모, 나 "살고 싶어"
  원자력병원에 새로운 암치료기가 들어 왔대)
  창 밖은 우수수 "살고 싶어"가 쏟아진다
 
  청계천에 비명 노오란 조각, 조각조각 떠내려가고 있다
 
광인
 
   길가 느티나무 밑
   녹슨 철벤치에 앉은 까치집머리 중년의 한 남자
   그 옆 한 쪽 귀떨어진 채 졸고 있는 쇼핑백 하나
   그 앞엔 배가 홀쪽 누워 있는 깡통 하나 
   남자가 툭툭 깡통을 찬다
   갑자기 회오리바람 인다
   까치집머리 찌그러져 엉키고
    "명퇴 세상 깡똥 세상"
   달리는 버스를 향해 빌딩을 향해 삿대질하고 소리치는 남자
   밀고 밀리는 나뭇잎 틈새
   빌딩 한 쪽이 사내 쪽으로 조금씩 기운다
  그 빌딩 등에 입 쩍 벌리고 있는 초이레 칼날 달
 
   사내의 머리 위로 흐르는 고압전선이 부르릉 떤다
 
 
중복 날
      -언어의 감옥 8 
  
  
 
     잠자리들 공중으로 치솟아 수십 겹의 포물선
    얼크러졌다 풀렸다 하는 중복 날
 
    웨이브머리에 잠자리날개핀을 꽂은
    키 큰 여자
    수박을 안고 줄장미 몇 송이 피어 있는
    담장길을 돌아 
    서른 살 통굽 소리 똑똑 찍고 간다
    그녀 왼쪽 어깨에 닿을 듯 말 듯
    줄무늬 푸른 대문의 담장을
    장미 넝쿨이 넘쳐 내리고 있다
 
    꼬리가 반원으로 휜 담장 위의 잠자리
    하트?
    한 낮, 암컷의 머리에다 꽂고 비행을 한다
    호흡이 잘 맞아 싱싱 흐른다
    씩 웃으며 대문을 들어서는 우체부 아저씨 
    싱싱하게 햇살 몇 송이 핀다
 
아차산
          - 언어의 감옥 7
 
 
 
      
       휙 휙 스치는 언어의 푸로펠라
 
       길목마다 터지는 4월의 햇볕탄
 
       와와 치솟는 색색의 문장
 
       여기저기 나뒹구는 불발 접속어 야생화 
 
       이 꽃 저 꽃 음소를 빠는 윙윙 소리
     
       백운대를 향해 45°바윗길 오르는 리듬들
 
       아차, 미끄러진다 
 
눈을 쓸다가
 
 
 
     흰옷, 눈이 내린다
    북풍에 조각조각 떨어진다
    명주두루마기를 입은 아버지가
    회색허공을 가만가만 내딛다가. 두 손으로 거머쥐다가.
    무명저고리 어머니가
    아버지와 부딪힐 듯 부딪힐 듯
    아버지 위로 어머니가 쌓이고 어머니 위로 아버지가 쌓인다
    내 비질에
    은발을 날리며 어머니가 쓸린다
    흰 수염의 아버지가 쓸린다
    눈이 그치고
    겹겹 쌓인 눈의 고요 속에다 가만히 귀기울이면
    어머니의 바느질 시침 소리, 아버지의 붓끝 스치는 소리,
    "이제 그만 잡시다" 호롱불 부는 소리
    몸이 시린 나뭇가지, 얼굴과 얼굴들 모두 지워지고
    높고 낮음, 길고 짧은 밋밋한 선들 사이
    나는 티끌 만한 검은 점으로 우두커니 서 있다
 
호랑나비
 
 
 
    4월의 아차산 생태공원 입구,  골목에서 벚꽃이 뻥튀기처럼 뻥 핀다. 벚꽃
 사이 햇살 속에서 튀어나온 호랑나비, 묻힐 말 듯 꽃 속을 난다. 내  동공 안
 으로 푸른 하늘의 배경을 확 당기자, 꽃술을 밀며 들어가는 나비! 내 눈썹에
 와  간질간질 닿는다. 나비가  떤다. 내가  떤다. 떨리는 두 팔이 가벼워지고
 나도  나폴거려  본다. 이때, 일방통행길에  포크레인이 지나가고  생태공원
 호랑나비의 환영, 드르르르 뭉개진다.
 
입술에 걸린다
 
 
 
   비 100mm 쏟아낸 청계천 먼 하늘을
   빨대로 쭈―욱 빨자
   물 젖은 별이 입술에 걸린다
   은하수를 휘저어 다니던 피라미 떼가 와서 걸린다
 
   주말 새벽 2시 
   가물가물 선잠 휘저어오르는  피라미떼들 
   가로등 불빛 엷게 들어서는 유리창을 때린다 
   아침 장교동과 수하동 사이를  휘젓고 다닌다
 
   유리창 때리는 철거반의 쇠망치 소리
    냉장고 에어컨 컴퓨터 골프채 인쇄기기
   붉은 딱지를 붙이고 질질 끌려나온다
   보관소를 향해 100m 쯤 늘어서 가는 이사짐차들
   우리 집 옆으로 펜스가 쳐진다
    
   청계천의 팔뚝만한  잉어 한 마리
   저음의 으르렁 소리를 내며 재빨리 꼬리 감춘다
   파아란 통유리문 때리고 나서 
    구름 사이로 미끄러지는 빗방울들
 
   하늘의 사타구니에서 쏟아지는 햇살
   내 속눈썹 가닥가닥에 걸려 파들거리는
 
제2 한강교
 
    1  
   제2 한강교를 여자가 걸어간다
   강물에서 안개가 피어오른다
   한강철교가, 달리는 차들이 흐물흐물 안개가 된다
   여자가 안개를 딛고 사박사박 걸어간다
   여자의 오른쪽 다리가 지워진다
   왼쪽 다리가 지워진다
   두 팔로 허우적 허우적 몸통을 끌고 간다
   두 팔이 한꺼번에 지워진다
   가슴으로 안개를 밀고 간다
   여자가 완전히 지워진다
   12월 32일의 안개가 여자 속을 걸어간다
 
    2
   붉은 런닝에 맨발의 가로수들
   아침해를 이고 차선을 달린다
   노랑머리 날리며 은행나무가 달린다
   붉은 머리칼 떨구며 단풍나무가 달려온다
   어깨 스치며 토막울음 우우우......
   이른 출근길의 자동차들 꽁무니에
   부싯돌이 쉴새없이 그싯고
   더러는 꽁무니에 아침노을을 매달고
   빨간 스카프를 두른 한강교
   노을노을 앰블런스가 지나가고
   토막울음소리 우우우......
 
여승의 합장 보살보살
 
 이사 온 첫날 아침
 남으로 난 원형의 통유리에 붉은 장미가 핀다
 맞은편 용천사 기와지붕이 미끈한 버선코를 세운다
 장마비 앞산에 초록초록 내리고
 4층의 나를 올려다보는 여승의 합장 보살보살 내리고
 (이번 토요일 오전 10시 올림픽 경기장 평화공원 호수 가에서
 시화전)
 핸드폰에 문자멧세지 뜬다
                 
 산까치 한 마리 날아간다, 밖으로 열린 창틀
 쌍무지개 걸어 놓은 산등성이
 
백지
 
 
         맞은편 숲이 나를 받아쓰고 있다 4층 베란다 하늘색 유리탁자 앞에 앉아 데리다 192페이지 “기원에 대한 꿈: ‘문자의 교훈’을 펼쳐 놓고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끄떡거리다 하는 내 얼굴을 정면의 아카시아나무가 잎을 팔락거리며 받아쓰고 있다 허공에다 상형의 소문자로 쓰고 있다 띄어쓰기나 행갈이도 없이 빽빽하게 쓰고 몇 번을 덮어씌우고 하다가 계란형의 중앙에다 눈. 코, 입, 귀 구멍을 내고 구멍만큼의 하늘을 넣는다 그 하늘이 뭐야뭐야 새울음을 운다 내가 기지개를 켜자 우우우 일어서며 옆의 물푸레나무가 대문자로 내 팔을 받아쓰고 키를 받아쓴다 내가 물푸레나무만큼 키가 커지고 몸통이 커지며 바람에 두 팔이 흔들리자 문자들이 뒤집히며 일그러져 날려간 백지
 
          내가 나를 읽을 수가 없다
 
 
 
딸아이의 집.1
 
    그녀 생일날 딸아이가 내 배꼽의 벨을 누르고 들어간다. 앞이 환해지며 딱딱한 허공이 말랑말랑 따뜻해진다. 앞으로 옆으로 그 옆으로 뒤로 그 뒤로 촘촘히 꽂혀 있는 책들, 앞쪽 밑에서 다섯째 줄 중간쯤에 내 동인지 디지털리즘 3호 표지의 D자가 나를 향해 바짝 귀를 세운다 오랜만에 빨간 귓부리를 만지니 따뜻하다. 허공이 탁자 위에다 두툼한 책을 펼쳐 놓고 있는 우측으로 옥매트가 깔려 있고 가지런히 걸려있는 옷가지들 사이 낯익은 밤색벨트가 원피스의 허리를 팽팽하게 조이고 있는 그 앞 가스레인지 위에선 압력밥솥이 밭은 숨을 내뿜으며 딸랑딸랑 나를 부르고 있다. 소파에 앉아 리모콘의 파워키를 누르자 딸아이가 튀어나오고 2007년 1월 1일 0시 종을 울리며 보신각이 뜬다.
 
딸아이의 집 3
        ―윈드서핑
 
한 시인이 붉은 바다를 입고
지하도를 걸어간다
등짝의 물고기들 아가미를 벌린 채
물살을 차고 튀어 오른다
바다가 뛰어간다
그 뒤로 딸아이가 뛰어간다 
붉은 파도가 밀려가고 지하도를 들었다 놓았다
상점의 배들이 기우뚱
덜덜덜 진동이 인다
천정으로 튀어 올라 가로등 눈을 켠 물고기들
환히 비추는 붉은 바다  
윈드서핑
저녁 8시 15분의 시침과 분침 사이로
미끄러져나간다
 
화분에서 자라는 새     
 
                  
    오월 창가 화분에 해가 뜬다 
    내리쬐는 C32˚의 초록 햇살 쪼아 먹고
    찰랑이는 머릿결 초록바람 쪼아 먹고
    간지럽게 파고드는 겨드랑이의 초록그늘 쪼아 먹고
    느티나무의 초록 지저귐 왼 종일 쪼아 먹고
    화분에 달이 뜬다
    동맥 정맥 청계천 꿈틀꿈틀 흐르는 사이로
    실핏줄 달의 골목 몇 바퀴 휘감아 도는 사이로            
    버들치 한 마리, 흐르는 물살에 뒷걸음질 치다가
    거슬러 오르다가 허기진 저물 녘
    굴러오는 어둠 몇 알 깨트려먹고
    별꽃을 먹고 달꽃을 먹고
    물밑 모래알에 비스듬히 엎드려 잠이 든다
   
    화분에 발이 빠진 채 깃털 하나 둘
    빠져 날리는 새 한 마리
 
쥐의 공화국
 
우리집 천정은 쥐의 공화국, 대선 박두 인 듯 마른 쥐오즘자국이 선거벽보처럼 어지럽게 나붙어 있다 발자국 소리 쿵당거리며 새 시대 지도자의 첫째 조건인 말 바꾸기의 빠른 순발력테스트를 마라톤 경기로 대신 한다는 안내 방송이 벽지를 찢으며 내 귓속으로 오물처럼 흘러든다
  마라톤이 시작된다. 42,195Km의 지정된 난코스를 돌아 황영조의 지구력과 살라자르의 스피드로 선두 골인하는 기호 3번, 1번, 4번...... 이때 기호 2번이 검은 보자기를 어깨에 메고 본부석으로 뛰어나온다. ‘여러분 희디흰 메가톤급 비리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기호 3번이 어제의 밝음을 틈타 표 당 1톤씩의 어둠으로 수 천 표를 매수했으며 그 표들이 이 자리에 세몰이로 동원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 공화국을 탈색시킬 치욕적인 표백제입니다 지도자의 바탕은 순진 무구 검어야 합니다. 보십시오 저의 얼굴을, 저의 말을, 새카만 비로도의 이 진실 위에 현명한 한 표를 얹어 주십시오 금세 유세장은 투석전이 벌어지고 창이란 창은 모조리 깨져 어둠이 봇물처럼 빠져나간다.
 저마다  검은 공화국의 유리창을 갈아 끼울 지도자는 반드시 “나”이어야 한다고 디데이 전날, 쥐들이 사방에다 쥐덫을 놓는다.  
 
경칩날
 
 
 
아침 수도꼭지를 열자
햇살이 콸콸콸 쏟아진다
진달래화분의 팥알만한 꽃망울들
아침 노을 글썽글썽
유두가 가렵다
바람이 스치자
초경의 숨결 파르르 쏟아진다
 
지하도에서 밀려나와 리라초등학교 쪽으로
피어가는 노오란 책가방을 멘 아이들
명동 역 3번 출구 노릇노릇...
햇살이 쓸고 간다
 
남산 입구 박새가 톡톡
내가 움찔움찔 두어 발짝 물러서면
등 뒤 수령 460년 은행나무 잎눈들
검은 벽을 뚫고 개굴개굴 기어나온다
 
웰빙 상상을 사다
 
쑥고개 시장
노릇노릇 진도 봄동 한 근 1000원
뿌리 통통 살 오른 강원도 산 노지냉이 한 근 3000원
(금요포럼, 한국관광공사 3층 지리실)
William James의 재생적 상상의 티각태각 토론 500g
유리창에 비치는 생산적 상상의 햇살 500g
각각 5000원
    
주방에다 장바구니를 풀어 놓자
봄동에서 초인종이 울린다
진도아리랑 한 가락이 아라리 쓰라리 신림동 고개를 넘어오고
또 노지냉이에서 정선아리랑 한 가락이
내 시에 리듬을  깐다
금요포럼 “웰빙 상상을 사다”내시 행간 행간에에다
이월의 유채꽃 무더기무더기 피워 놓고
노오란 햇살이 렌즈를 들이민다
자! 꼰디발로 키를 맞추고 원산지 표시를 보이세요 티각,
리듬을 약간 출렁거리세요 태각,
앞자크 반쯤만 내려 보세요 티각NG, 화난 얼굴이네요
여기서는 홀랑 벗어도 흉보지 않습니다 미소를 지으세요 태각, 
티각태각 상상을  빠져나온다
된장국에다 햇살을 풀어 밥말아 먹는다
 
패션쇼
 
 쥐색 버버리에 삐뚜름히 이마를 가린 베이지색 베레모
 정오의 거울 속으로 들어간다
 거울 속 시계 속으로 들어가 다리를 약간 벌려고 몸을  살짝 틀어
 포즈를 잡는다
 반쯤 열린 창으로 들어와 사푼 다가서는
 신세대 패션 붉은 꽃무늬햇살
 옆구리에다 두 손을 얹고 둘이서
 재깍재깍 돌면서 좌로 우로 포즈를 바꾼다
 이때, 공지머리에 투명 개량한복의 앙드레김바람
혀꼬부라진 소리로 중얼중얼 끼어든다
세이서 2열 종으로 1열 횡으로 옷깃 스치며 걷다가
휙 돌아서서 나를 중심으로 나란히 선다
모자를 벗는 그들이 닮은골이다
순간, 내 오른발이 미끄러지고
뚝 떨어져 깨지는 안경알,
앞단추를 풀어헤치고 무료하게 걸려 있다
거울 속에 휴일 몇,
옷을 벗고 사라진다
유리창을 지나는 해가
입술을 바짝대고 키스마크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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