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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에프 세계 명작 <한국편> 한국SF작가협회 편 텔레파시의 비밀 김학수 지음
2023년 08월 23일 14시 12분  조회:363  추천:0  작성자: 강려
에스에프 세계 명작 <한국편>
한국SF작가협회 편
 
텔레파시의 비밀
 
김학수 지음
 
 
김학수
부산대학교 문리과 대학 교수
한국 SF 작가협회 회원
연구 논문, 번역물 다수
 
편집 위원
아동문학가 이원수, 박흥근 / 문학박사 최안학
공학박사 양옥룡/이학박사 김회규
전교육감 김성북
표지그림 신동우/속그림 ․최충훈
 
 
<차 례>
 
해상우주연구소(海上宇宙硏究所) K기지(基地)··· 4
우주에서 온 소녀의 실종············ 13
일본인 사사키················· 21
배터리 상점·················· 32
산록산장(山麓山莊)··············· 35
사사키의 부하 야마모도············· 39
전기 충격··················· 43
아사의 텔레파시················ 50
아사의 예감·················· 60
드디어 출발·················· 62
첫번째 위기·················· 66
연달아 닥치는 위기··············· 72
자장(磁場) 함정················ 73
눈이 먼 우주선················· 75
우주선이 뜨거워진다·············· 75
결단······················ 78
논쟁······················ 79
10분 안에 들어와요··············· 81
이수미 아줌마의 활약·············· 83
사사키가 온다················· 88
텔레파시 치료················· 92
착륙······················ 99
여기는 사사키················· 101
사사키의 최후 통첩·············· 103
뇌파 증폭기·················· 111
격론(激論)·················· 114
야간 순찰··················· 119
긴 낭떠러지·················· 121
적선····················· 122
서치라이트·················· 126
추격····················· 128
새떼····················· 133
항복이냐 ! 항전이냐 !············· 136
핵융합 총··················· 141
비상 수단··················· 144
텔레파시의 비밀················ 153
 
SF 단편 : 우주 도난·············· 162
 
작품 해설··················· 195
 
해상우주연구소(海上宇宙硏究所) K기지(基地)
 
8시 5분 전에 우리는 전부 도서실에 모였다. 오늘 따라 재빨리 저녁 설거지를 해치운 아줌마가 기대에 찬 얼굴을 빛내면서 TV를 향해 앉았고, 스파이크 씨와 아저씨는 원자력 엔진 도면을 가운데 놓고 캐도늄 제어봉(制御棒)의 설치 위치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었는데, 화면 쪽을 간혹 힐끔거리는 폼이 그래도 궁금한 모양이다.
실은 어제 아침에 KBS-TV 녹화(錄畵)반이 이 연구소에 갑자기 나타났었다. 매주 일요일 저녁 8시에 방송되는 우주 시간에 이 베이스 K 연구소를 소개하고 싶다고 2주 전부터 아저씨에게 수차 전화 연락이 왔었는데, 바쁘다는 이유로 - 사실 헤시코스행 이륙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 번번이 퇴짜를 놓았던 것이다. 가만히 앉아서 전화만 빈번히 해 보았자 소용이 없겠음을 깨달았는지 이제는 아예 아무런 사전 연락도 없이 그렇게 불쑥 나타났던 것이다. 별 수 없게 됐다. 아저씨와 기사 주임 스파이크 씨는 심히 못마땅한 눈치였으나, 할 수 없이 베이스 K의 녹화를 허용했었다.
KBS에서 구태여 이 연구소의 녹화를 고집하고 있는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기지의 녹화도 녹화지만 그보다 - 그들은 「아사」에 더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녹화반은 기지의 촬영에 50분 남짓 걸렸지만 아사와의 대담은 2시간이나 걸렸다. 그들은 또 오늘 저녁 녹화 방송에 아사와의 대담(對談)을 생방송으로 꼭 보내고 싶다고 방송국으로 왕림해 줄 것을 간곡히 청했다. 물론 아사는 쾌히 응했다. 그녀의 이런 흔쾌한 수락은 이유가 있었다.
녹화반이 떠난 이튿날, 그러니까 오늘 오후 6시경 아사는 방송에 출연하기 위해 제송라(諸松羅)양을 따라 헬리콥터 편으로 KBS를 향해 떠났다. 우리는 지금 그 방송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아사가 생전 처음 그런 곳엘 가서 무사히 방송을 끝낼 수 있을까?"
무료하게 기다리고 있던 아줌마가 벽시계를 쳐다보며 하는 말이다.
"그럼! 미스 제보단 훨씬 잘 해낼 거야. 어쩌면 스튜디오에 모인 사람 중에 제일 침착한 사람이 「아사」일지 몰라."
도면에만 열중해 있는 줄 알았더니 스파이크 씨도 관심을 보인다.
"동감이야. 그녀처럼 자신감에 차 있는 여자는 못 봤으니까. 헤시코스에서는 다 그런 훈련을 받으며 자라는 모양이지?"
역시 엔진 도면에만 관심이 있는 줄 알았더니 자기 턱을 슬슬 문지르면서 아저씨가 한 마디 거든다. 아저씨의 턱 문지르는 습관이 나왔으니까 말이지 좀 별난 버릇이다. 성났을 때도 턱, 기분 좋을 때도 턱, 곤란한 문제에 부딪쳤을 때도 턱…… 걸핏하면 턱을 문질렀다. 그러나 같은 턱을 문지르는 데에도 형편에 따라 다르다. 화가 나거나 어려운 일에 부딪쳤을 때는 급하게, 기분 좋을 때나 일이 잘 되어 갈 때는 슬슬…… 지금 턱을 슬슬 문지르는 걸로 보아 아무리 방송에 관심이 없는 체해도 화면에 나타날 광경을 속으로는 은근히 기분 좋게 기다리는 게 분명하다.
9시 2분 전에 내가 입체 천연색 TV에 전원 스위치를 넣었다. 8시 차임벨 소리가 사라짐과 동시에 '우주로'라는 시그널 뮤직과 함께 입체 TV화면 가득히 우리 베이스 K의 조감도가 나타났다. 아나운서의 해설이 흘러나온다.
"여러분이 기다리시던 우주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김영준 박사의 책임하에 있는 총․채의 해상우주연구소 베이스 K와 1개월 전에 김 박사와 함께 지구에 도착한 헤시코스의 공주 아사 양을 여러분께 소개하겠습니다."
나는 아저씨의 옆얼굴을 슬쩍 훔쳐보았다. 묘한 웃음이랄까, 입 언저리가 기다랗게 이지러지는 은근한 미소가 화면에서 나오는 빛 속에 드러났다. 그러면 그렇지! 보름 안으로 아사를 헤시코스로 돌려보내기 위해 K우주선에 원자력 엔진을 장비하는 일이 급하다는 이유로 기지의 내방(來訪)을 끝까지 못마땅해 왔던 아저씨였더라도, 막상 우리 연구소와 아저씨를 필두로 한 연구소 전 종사원이 전국에 소개되고 있는 화면에 그렇게 관심이 없을라구! 아나운서의 유창한 이야기가 계속 흘러나온다.
"베이스 K! 한국인으로서는 두 번째의 노벨상 수상자이자 유일한 우주 물리학자인 김영준 박사가 몸소 건설했고, 또 현재 그의 책임하에 운영되고 있는 베이스 K 연구소! 한국에서는 그 처음으로 실현을 본 해상 연구소 베이스 K의 규모는 과연 어떠하며, 그간 어떤 학술적 성과를 올렸으며…… 등등이 우리에게는 궁금한 바 있는 것입니다."
"울릉도 비행장을 출발한 헬리콥터가 서남쪽으로 바다 위를 한 시간쯤 날자 망망한 대해 위에 한 작은 점이 나타났습니다."
"점을 향해 계속 접근함에 따라 그것은 급속도로 확대되어서 화면에 보시는 바와 같은 웅장한 자태를 나타냈습니다."
"그 기묘한 연구소의 모양, 그것은 '장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먼저 박사님께 카메라의 초점을 맞추고 베이스 K의 하는 일을 알아봤습니다."
화면에 아저씨의 얼굴이 나타났다. 아저씨의 얼굴을 처음 대하는 사람은, 그의 모습에서 노벨상 수상자다운 대가의 풍모를 찾지 못해 실망하리라. 짧게 깎은 머리, 매섭게 빛나는 눈, 미 우주항공국(NASA)에서 놓치기 아까워했던 학자였다는 것을 느끼기보다는 차라리 운동장에 선 축구 코치를 먼저 연상하리라. 그러나 좀 더 주의 깊은 사람이라면 풍부한 양 볼에서 학자의 고집스런 인상도 함께 느꼈으리라.
"우리 연구소는 행성간의 항해에 큰 문제가 되어 있는 태양의 방사능비(放射能雨)와 우주 먼지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외계(外界)에서는 우주선(宇宙線)이라고 해서 막대한 양의 고속 입자가 비처럼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묘한 것은 이들 고속 입자는 방사능 주머니라고 해서 일정한 지역 밖으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안에서만 나선 운동을 하며 돌고 있습니다. 태양의 활동이 활발할 때는 이 방사능 주머니가 커져서 태양계 구석구석에까지 그 효과가 미칩니다. 이 주머니가 태양계의 곳곳에 도깨비처럼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중차폐(重遮蔽)가 되어 있지 않은 우주선이 그 안에 빠지면 승무원은 치명상을 받습니다. 우리 연구소는 이 주머니의 소재지를 조사하고 그 안의 방사능 강도를 측정하여, 주머니의 변화하는 모양을 예측하는 자료를 만들어서 주로 미 우주항공국에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 한가지 중요 임무는 우주 먼지라는 것에 대한 것으로서 여기에는 직경 수 밀리미터로부터 크게는 산같이 큰 것도 있습니다. 태양계 자체가 고속 운동을 하는 만큼 이 우주 먼지, 흑은 운석(隕石)은 상대 속도가 엄청나게 커서 이 역시 항해하는 우주 차량에 상당한 위험이 되고 있습니다. 이 운석이 태양계 내의 항로에 나타날 확률을 수학적으로 엄밀히 정립시키는 것이 우리가 맡고 있는 크게 어려운 문제 중의 하나입니다."
아저씨의 긴 설명이 끝나고 아나운서의 말이 다시 흘러 나왔다.
"이런 문제를 취급하고 있다는 베이스 K 연구소에 대해 그 동안의 연구 실적을 물어 보았습니다."
다시 아저씨의 프로필이 화면에 클로즈업 됐다.
"업적이라고는 아직 그렇게 자랑할 만한 것은 없습니다만 간단히 두 가지만 들면, 먼저 말한 운석에 대한 문젠데 금성에서 화성 사이의 전 외계에 나타날 우주 먼지와 운석에 대해서는 90%까지는 예측할 수 있는 자료를 모아서 정리했습니다. 그래서, 이 공간을 비행하는 우주선은 저희가 제공한 자료만 컴퓨터에 입력하면 그 우주선이 운석의 장애를 받지 않고 항해할 수 있는 항로가 저절로 컴퓨터에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확실치는 않습니다. 나머지 10%가 불확실하니까요. 이 10%도 쉬 해결될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헤시코스라는 하나의 새로운 행성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미 신문으로 보도된 일이 있습니다만, 지난 해 12월이었습니다. 화성 근방을 자료수집차 비행하던 우리들은 우연히 - 사실은 우연이라기보다는 헤시코스인의 텔레파시에 유도된 것이 나중에 판명됐습니다만 - 여하튼 예기치 않게 한 작은 행성을 -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작은 행성 - 사실 좀 큰 운석이라고 할 정도입니다 - 우리와 완전히 동일한 인간이 존재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여기에 살고 있는 인간 헤시코스인의 생태에 대해서는 이미 지상으로 발표된 깃과 같습니다."
다시 아나운서의 내레이션이 계속된다.
"헤시코스! 인간이 살고 있다! 누구도 짐작 못했던 사실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 방송국에서는 헤시코스의 공주 아사 양을 여러분에게 직접 생방송으로 소개할 예정으로 있는 것입니다."
"그럼 거기에 앞서서, 박사의 기사 주임 스파이크 씨에게 초점을 돌려 연구소 내부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스파이크 씨의 모습이 나타났다. 전형적인 서양 미남이다. 좁고 우뚝한 코, 깊고 파란 눈, 얇은 입술, 바쁘다고 투덜대면서도 녹화할 때에는 부랴부랴 작업복을 벗어 던지고 저고리 왼쪽 주머니에 흰 손수건까지 얌전히 꽂고 카메라 앞에 선 신사다.
스파이크 씨의 한국어는 완벽하다. 우리와 함께 생활한 지가 벌써 만 2년이 넘었으니까 '와' 자나 '왜' 자 같은 중모음이나 'ㄴ'과 'ㄹ'을 확실하게 구분하지는 못하지만 그만하면 어디 갔다 놓더라도 손색없는 한국어다. 하기야 엑센트가 약간 문제이지만.
"해상 기지를 제일 처음 생각해 낸 사람은 우리 미국 사람이었습니다. 이름은 리차드 B. 플러입니다."
쳇! 역시 자기 나라 자랑부터 먼저 시작이군.
"플러씨의 아이디어에 의해 세계 여러 곳에 해상 도시와 해상 연구소가 생겼습니다. 우리 베이스 K 연구소는 세계적으로 한 30번째 될 겁니다. 베이스 K 연구소는 김영준 박사님과 제가 같이 설계한 것입니다."
스파이크 씨의 말은 어떻게 들으면 단조로운 것 같지만 체계는 뚜렷하고 논리적이다. 사실, 이런 논리가 그들의 생활에 파고들고 나아가서는 저희들의 찬연한 기계 문명의 바탕이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스파이크 씨의 설명에 따라․연구소 내부가 하나하나 화면에 나타났다.
"연구소는 크게 두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한 부분은 직경이 210미터, 다른 한 부분은 직경이 50미터인데, 두 부분은 45O미터 되는 다리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큰 부분은 연구실, 도서실, 기계 공작실, 거실, 우주선 조립실, 배(船)대는 부두 등이고 작은 부분은 우주선 발사장입니다."
"기지는 파도를 막기 위해 실리콘 수지 유리로 완전히 막혀져 있습니다. 또 파도에 흔들리지 않도록 10톤짜리 닻 4개가 물 속에 드리워져 있습니다."
"해상 연구소가 움직일 때는 2천 5백만 마력의 플루토늄 원자력 엔진이 가동됩니다. 시속 20노트를 낼 수 있습니다. 해상 연구소의 장점은 이 기동성입니다.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이동할 수 있습니다."
아나운서가 다시 나왔다.
"다음에는 김 박사님의 조카 김태진 군에게 녹음 마이크를 돌려 다른 여러 가지를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김 박사와 스파이크 씨의 관계."
내 차례다. 내 얼굴이 나타났다. 내 얼굴을 내가 보고 앉았으니 기묘한 생각이 든다.
"아저씨는 미국 프린스턴 대학 아인슈타인 연구소에 계실 때 노벨상을 받으셨어요. 그 연구소에서 오랫동안 숙제로 되어 오던 통일장(統一場)이론을 완성시켰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몰라요 - 그 후에 아저씨는 미 우주항공국에 초빙되어 가셨는데, 스파이크 씨는 그 때부터 아저씨 밑에서 일하게 됐대요. 후에 아저씨가 귀국하시려 하자 항공국에서는 여러 가지 좋은 조건을 내놓으면서 만류했대요. 아저씨께서 기어코 귀국하시려 하자 항공 당국에서는 이 베이스 K 기지를 설치하고 항공국에서 하시던 일을 계속해 달라고 부탁했답니다. 아저씨께서는 이것까지는 차마 거절하시지 못하고 이 일을 맡았답니다. 그러나 미 우주항공국의 자본으로 건설된 연구소이기는 하지만 NASA 소속은 아닙니다. 일종의 물자 차관으로서 돈으로 갚는 게 아니라 연구 보고로서 빚을 갚고 있습니다. 앞으로 논문 5개만 더 내면 연구소는 완전히 우리 것이 되는 셈입니다."
다시 아나운서가 나왔다.
"베이스 K의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사람 - 가정부 이소미(李素美) 여사를 만났습니다. 항시 검푸른 바다만을 보며 살고 있는 베이스 K에서 살림을 도맡아 보면서 끓임 없는 유머로서 기지에서의 단조로운 생활에 항상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여사의 역할 - 또한 작다 할 수 없다는 박사의 말이었습니다."
아나운서의 말이 흘러나오는 도중에 아줌마의 얼굴이 잠시 나타났다 사라졌다. 내가 곁눈으로 아줌마의 얼굴을 슬쩍 쳐다보았더니 약간 실쭉한 표정이다. 자기 얼굴이 너무 짧게 나타났다 사라진 게 불만인 모양이다. 이 때, 스테미너를 불어넣는 드링크제라도 마신 듯한 힘찬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아줌마의 시선을 화면 쪽으로 다시 끌어 들였다.
 
우주에서 온 소녀의 실종
 
"그러면 여러분이 보고 싶어하시던 아사 양을 카메라 앞으로 모시겠습니다!"
운동 선수라도 소개하듯, 열띤 아나운서의 목소리다 아사와 제양이 다소곳이 나타났단. 스파이크 씨 말이 맞았다. 아사는 담담하고 의젓한 티를 그대로 간직한 채지만 얼굴은 상기되어 있다.
"아사는 우리말을 못합니다. 아니 아예 말 같은 것은 하지 않습니다. 텔레파시란 기상천외의 방식으로 생각을 그대로 전합니다. 그녀 텔레파시의 위력은 상대편과 정확하게 뇌파가 동조만 된다면 수십 킬로미터 떨어져 있어도 생각을 송수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처음 보는 사람과는 이 동조(同調)가 어렵답니다.
그래서 오늘은 김 박사의 여비서 제송나 양으로 하여금 아사 양의 텔레파시를 수신해서 제양의 입을 통해 아사 양과의 대담을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먼저 아사 양 - 처음 지구에 오신 소감을 말씀해 주십시오."
화면에는 아사 양만 나타났다. 먼저 1미터 90이 넘는 늘씬한 몸매 전체가 나타났다가 황금빛 머리칼 아래의 둥근 얼굴이 화면을 채웠다. 누나(제송나 양을 나는 이렇게 부른다)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지만 화면에는 아사 양뿐이기 때문에 그녀가 직접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다른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말씀드릴 게 있어요. 그것은 우리 헤시코스에 있는 지하 도시를 새로 발굴해 낸 사람이 김영준 박사님 일행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철학과 예술 - 특히 전기 분야의 과학에서는 고도로 발달된 문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만 박사님이 오시기 15년 전에 갑작스런 대 화산 폭발로 헤시코스의 공전 궤도가 태양에서 멀어지면서 모든 것을 얼려(氷) 버리는 무서운 한파가 몰려왔습니다. 그 동안에 인구의 5분의 3이 죽어 갔습니다.
물이 얼어 버리는 바람에 수력 발전도 불가능해서 단 하나의 연료인 전기도 끓어졌습니다. 우리는 나무란 나무는 모조리 긁어모아서 불을 때면서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그 때 마침 저의 땅에 오신 박사님께서는 우리가 그 때까지 찾지 못하고 있었던 지하 도시를 찾아 냈습니다. 실은 수천 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서 우리의 선조들이 땅 속으로 들어가서 지하 도시를 건설했던 것인데, 정확한 문헌이 없어서 그 장소를 확실히 몰랐던 것입니다. 지하 도시를 찾아 낸 박사님께서는 또 다른 광명의 실마리를 저희들에게 제시했습니다. 그것은 원자력입니다. 사실은 벌써 2만 년 전에 저희 조상들이 원자력의 비밀을 알아 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원자력을 동원한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결과는 황폐를 가져왔을 뿐입니다. 모든 문명이 송두리째 파괴된 것은 물론이고 하늘과 땅에 가득한 방사능은 인간을 서서히 죽게 했습니다. 간신히 살아남은 선조들은 대 결단(大決斷)을 내렸던 모양입니다.
원자력의 개발을 불법화(不法化)시키고 그와 관련되는 문헌은 깡그리 없애 버렸습니다. 이 지독한 경험을 가졌던 우리 종족은 나중에는 원자력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것을 마귀처럼 두려워하고 입에 올리기조차 꺼려했습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박사님은 원자력의 도입을 제의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펄쩍 뛰었지요. 연방 죽어 가면서도 말입니다. 그러나 박사님은 굴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설득했습니다. 원자력은 자제(自制)를 가지고 적절히 통제만 한다면 아무런 위험이 없다는 것을 설득하고 또 설득했습니다.
결과는 박사님 측의 승리였습니다. 이건 정말 엄청난 변화였습니다. 사고 방식의 완전한 변화, 철학의 완전한 변화였으니까요. 저는 이번에 박사님을 따라 여기까지 왔습니다. 물론 유람온 셈입니다. 그러나 원자력의 이용 방법을 보러 오기도 한 겁니다. 두 주일 후에 저는 저희 나라로 돌아갑니다. 그 때에는 원자로를 건설할 자재를 가져갑니다. 지금도 흐르노프 교수는 헤시코스에 남아 계시면서 새 자재가 도착하는 즉시로 원자로를 건설하고 운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기술자를 훈련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헤시코스로서는 지구로부터 톡톡한 은혜를 입고 있는 셈이군요."
아나운서가 웃으면서 한 말이다.
"진정으로! 진정으로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박사님께서 저와 같이 가시면 저희의 뇌파 증폭기의 사용법을 배우시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 기계는 오래 전에 선조가 만들어 여태까지 사용하여 오고 있는 것인데 멀리까지 생각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그럼, 제가 처음에 여쭈어 본 지구에 대한 인상은 어떻습니까?"
"우선 중력이 커서 걸어다니기가 힘들어요. 센 중력에 끌어당겨서 그런지 지구인들은 키가 작은 것 같아요. 헤시코스에서는 완전히 성장하면 남녀가 다 보통 2미터 10은 되어요. 그리고 또 하나 인상 깊은 것은 - 지구인들은 미래에 대해서 확고한 신념들을 가지고 과감하게들 일하고 계세요. 또 여기에는 헤시코스에 없는 음악이라는 것도 있고요."
"또 색다르다고 생각되는 것은 없었나요?"
"예 있어요 - 여러분들은 입으로는 저마다 평화와 정의를 사랑하신다고 하지만 실제는 어디 그래요. 저마다 서로 시기하고 다투고 있잖아요? 더욱이 사람을 살상시키는 무기를 생산해서 돈을 번다는 사실이 얼마나 그릇된 것인가를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지 않는 것 같아요. 놀랄 일입니다. 헤시코스에서는 아무도 돈을 가지고 있지 않고, 따라서 아무도 가난하지 않습니다. 부자니 가난뱅이니 하는 것은 오로지 그 사람이 가진 지식으로만 판단되니까요."
이것이다. 아사가 방송에 출연하기를 기꺼이 승낙한 것은 이 말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동안 많은 신문기자들과의 대담에서도 항시 이 말을 덧붙이기를 잊지 않았던 그녀인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생각나는데 그 곳에서는 수천 년 동안 전쟁이란 없었다지요?"
"예, 그렇습니다. 그 원자전 이후에는 전쟁이란 말(생각)도 잘 쓰지 않는 형편이 됐으니까요. 아무쪼록 여기서도 우리의 예를 본받으시길 진심으로 빕니다."
1, 2초 동안 아나운서의 말이 끊어진다. 아사의 말에 감명을 받은 모양이다.
"매우 고마우신 충고라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오늘 본 방송국에 출연한 것이 즐거우십니까?"
"예! 즐겁고 보람이 있어요. 제 말을 들으신 많은 분들이 더 한층 큰 우정과 사랑을 저에게 보내 주시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나……"
아사가 무척 어려운 말을 할 때처럼 잠시 머뭇거린다. 아나운서, 미소로서 아사를 재촉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분도 간혹 계시는 것 같아요.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함으로써 오히려 저에게 강렬한 증오감을 보내 오고 있는 사람이 있어요. 저는 그걸 느끼고 있어요. 무서워요!"
도서실에 있던 우리들은 눈을 둥그렇게 뜨고 서로 마주 보았다. 아사의 팔은 그만큼 신중하고 불길한 예감을 우리에게 주었던 것이다. 아나운서도 잠시 당황해 하는 표정이었으나 곧 밝아지며 원기 있게 말한다.
"그럴 리가 있습니까? 그 점에 대해서는 아사 양께선 너무 지나치시게 생각하시는 듯 합니다."
아나운서가 얼굴을 화면 쪽으로 향했다.
"오늘 아사 양을 본 방송국에 모신 것을 다 같이 기뻐하는 바입니다. 오랫동안 훌륭한 말씀 감사합니다. 아무쪼록 헤시코스까지 즐거운 여행이 되기를 빕니다."
곧이어 '우주로‘라는 음악이 울려 나오면서 대담은 끝났다. 이 '우주로'라는 시그널은 아사가 제일 좋아하는 곡이다. 내가 스위치를 끈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아사의 말을 듣고 아사를 미워할 사람이 있다니 그게 무슨 뜻일까?"
하고, 내가 먼저 고즈넉한 침묵을 깬다.
"아사는 남이 가진 생각에 얼마나 민감한지 너도 알지. 우리가 추위를 타듯이 그녀는 감정을 느낀단다."
아저씨의 대꾸다. 턱을 쓰다듬는 손길이 약간 바빠진다.
"그러나 누가 아사를 미워한단 말입니까?"
하고, 스파이크 씨가 파란 눈을 아저씨 쪽으로 돌렸다. 아저씨의 손길이 더욱 바빠진다.
"아사를 미워한다기보다 그녀의 생각을 꺼릴 가능성은 있어. 아사는 여기 온 후, 헤시코스에서 이룩된 평화의 복음을 기회 있는 대로 세상에 얘기해 왔거든. 그 복음이 사람들에게 끼칠 영향을 두려워 할 사람이 있어."
"원 박사님도. 아무리-그런 수도 있을라구요."
아줌마가 이의를 제기한 소리다.
"아줌마! 예수는 추종자도 많았지만 적도 많았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갑자기 요란한 마이크로 웨이브의 전화 벨 소리가 대화를 중단시켰다. 육감이란 이상한 것이다. 항상 듣던 벨 소리지만 지금은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머리 뒤가 서늘하다. 아저씨가 수화기를 들었다.
"예, 김영준 입니다. 무엇이라고? 수상한 차가 있었다고요? 예! 예! 경찰에 벌써 연락했습니까?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여섯 개의 눈은 아저씨가 들고 있는 전화기에 못 박혔다. 수화기를 놓는 아저씨의 손이 가늘게 떨고 있다. 아저씨의 왼손은 물고 늘어지듯이 턱을 움켜잡고 있다. 최악의 사태를 뜻하는 것이다.
"무슨 일입니까?"
내가 다급하게 물었다.
"방송국에서 온 전화야 "
아저씨의 목소리는 경황이 없다.
"2분 전에 방송국을 나온 아사와 제양이 괴한에게 유괴 당했어!"
 
일본인 사사키
 
아저씨와 내가 KBS의 옥상 헬리포트에 도착했을 때는 자정이 조금 넘었다. 스파이크 씨는 원자력 엔진을 조립하고 있는 60명이 넘는 기술자를 감독해야 하기 때문에 연구소에 남았다.
눈이 자라는 데까지 불꽃의 바다를 이루고 있는 서울의 야경(夜景)은 망막한 바다 위에 툭 있는 좁은 연구소에서 파도 소리를 유일한 벗으로 하며 오랫동안 살아온 나에게는 새삼스럽게 왈칵 고독을 느끼게 했다. 그러나 이렇게 감상에 오랫동안 잠겨 있을 새는 없었다.
수은등 아래 참새처럼 웅크리고 있는 주인 잃은 누나의 빨간색 헬리콥터를 보았을 때 다시 마음이 찡해 왔다. 도대체, 누가 무슨 이유로 누나와 아사를 납치해 갔을까? 지금쯤 무슨 고초를 당하고 있을까? 몇 시간 전에 TV 화면에 다소곳하게 나타났던 그들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
방송국에서 얻은 정보로는 사건의 실마리를 찾는데 아무런 도움도 안됐다. 방송을 마친 누나와 아사는 시내 구경을 간다면서 방송국을 나오다가,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최신형 폭스바겐 속으로 갑자기 끌려 들어갔다는 것이고, 이를 목격한 수위가 그 차번호를 즉각 경찰에 신고했지만, 번호는 가짜라는 것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방송국에만 오면 설마 무슨 단서가 잡히겠지 하던 희망도 사라졌다. 오직 하나의 위안이라야 모든 항구와 비행장에 납치된 지 10분 후부터 엄격한 감시망이 펴져 있었기 때문에 누나와 아사가 아직도 국내 어딘가에 머물고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가정뿐이었다.
밤이 깊어서야 아저씨와 나는 근방 호텔에 들었다. 그러나 밤새 잠을 이룰 수는 없었다. 다음 날 오전 중에는 줄곧 호텔 방에 머물러 있었다. 간간이 경찰을 불러 상황을 알아보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소식을 기다리고…… 달리 뾰족한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건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경찰에서는 사건의 윤곽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에 갇힌 맹수 신세가 된 아저씨는 신경질만 늘어간다. 하잘 것 없는 일에도 벌컥벌컥 화를 낸다. 잠시도 쉬지 않고 방 안을 서성거린다. 껍질이 벗겨지라고 턱을 문지르면서…….
아저씨의 성미를 잘 아는 나는 묻고 싶은 일이 있어도 아예 침묵을 지키기로 했다. 오후 세 시경에야 늦은 점심을 먹고 휴게실에서 잠시 쉬며 커피를 마셨다.
휴게실에는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다. 우리는 그저 묵묵히 앉아 있다. 흡사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이 때, 어떤 사람이 휴게실에 나타났다. 그 사람이 들어섰을 때 우연히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 나는 얼른 외면해 버렸다. 쏘는 듯한 매서운 눈초리를 오래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저씨와 눈 씨름이라도 붙여 놓으면 재미 있겠다는 실없는 생각을 하고 픽 웃었다.
그 사람은 우리 뒤쪽 자리에 앉는다. 나는 그 사람을 다시 몰래 훑어보았다. 눈은 실같이 가늘다. 키는 1미터 60쯤 될까? 작은 키다. 그러나 어깨는 딱 벌어졌다. 한 마디로 강철처럼 단단해 보이는 체격이다.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한국인은 아닌 것 같은 인상이다 일본 사람? 중국 사람?
그런데 이 사람은 간혹 이 쪽 - 우리 쪽을 힐끔거린다. 내가 자기를 보고 있는 것을 느끼기 때문에 자기도 이상 한 생각이 들어서 우리편을 보는 건가? 아닌 것 같다. 아무래도 무슨 할 이야기라도 있는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말을 걸어왔다.
"안녕 하싱니까?(안녕하십니까?) 박사님."
발음이 형편없는 우리 말이다. 독특한 비음이 없는 걸 보니 중국인은 아니다.
"네, 안녕하십니다."
혼자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아저씨간 얼떨결에 건성으로 대꾸한 말이다. 전국에 명성이 자자한 아저씨가 낯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이런 인사를 듣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그 때마다, 아저씨는 모르는 사람이긴 하지만 역시 반갑게 마주 대꾸해 줘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형편이 다르다. 아사와 누나 일로 머리가 꽉 차 있기 때문에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아저씨의 흥미를 끌 수 없는 상태다. 그 사람이 다시 말을 걸어왔다.
"이 소넹(년)은 박사님 조카 깅대징 꿍(김태진 군)이궁(군)요. 우주 여행에 노렝(련)한 경험을 가진 소넹(년)찌 (치)고는 아직 영(연)소하므니다."
"……"
나는 그에게 아는 체를 했다. 이런 자리가 아니고 혼자서 이런 서투른 발음을 듣는다면 나는 틀림없이 웃음을 참지 못했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내가 아저씨에게 이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더라면 벌써 벼락이 떨어지고도 남을 일이다.
"잉(인)사성도 발꿍요(밝군요)."
하고 그는, 아저씨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제법 붙임성 있게 계속 지껄이기 시작한다. 발음은 돼 먹지 못했지만 말의 순서만은 제법 훌륭했다.
"요새 젊응 애들은 버릇이 정차 엄어져 가능 것 같아요. 어릉을 몰라보고 항부로 대들려는 경향이 있거등요."
무슨 쓸데없는 얘기야? 아저씨가 은근히 화가 동하는 모양이다.
"요점을 빨리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실례지만 저는 지금 좀 바빠서. 헌데, 우리는 전에 어디서 만난 적이 있었던가요?"
아저씨의 약간 모난 소리다.
"아닝(닙)니다. 만난 일이 없었으므니다. 그래서 제 이릉(름)을 대보아야 별 도움이 안되겠으므니다만…… 저는 사사키라고 하므니다."
분명히 아저씨의 기분 따위는 아랑곳 않는다는 태도 같다. 말을 해 가는 동안에 발음은 많이 나아졌다.
"아-그렇습니까? 나는 김영준입니다. 차라도 한 잔 드시지요."
"감사하므니다. 저능(는) 다른데서 벌써 마셨으므니다. 용서한신다(면) 담배를 한 대 피우겠으므니다."
스므니다는 잘 안 되는 모양이다.
"물론 피우시죠. 보아하니 일본서 오신 것 같은데 우리말을 잘 하시는 군요."
아저씨의 마지못한 대꾸다. 사사키는 담배를 꺼냈다. 그 때 얇은 종이 한 장이 떨어졌다. 성냥을 그어 담뱃불을 붙인다. 그의 태도는 첫인상과는 달리 상냥했다. 연방 생글거리면서 가는 눈을 더욱 가늘게 뜨고 눈웃음을 치며 말을 이어간다. 아저씨가 마지못한 듯 하면서도 여태까지 그의 상대가 피어 준 것도 이런 그의 태도 때문인지도 모른다.
"저능(는) 약감(간) 국제적이죠."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남의 태도와 형편이야 어찌됐던 말을 빙빙 돌려가면서 시간이 가거나 말거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 하고 말겠다는 배짱인가?
"여러 나라 큼(큰) 회사에(의) 대행 업자 노릇을 하느라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보니 약감(간) 외국어를 지껄일 줄 알게 됐으므니다."
정말 이따위가 있어? 그럼 제 자랑이나 하려고 그렇게 말을 질질 끌었나?
"그래요? 그럼 좀더 정확하게 용건을 말씀해 주실까요?"
기분과는 달리 억지로 말만은 용하게도 신사의 체모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아줌마가 보면 웃음을 참느라고 틀림없이 쩔쩔맬 것이다. 사사키는 다시 한번 싱그레 웃었다.
"나를 고용하고 있능(는) 사라믄(람은). 일본의 항(한) 무기 생상(산) 업자이므니다."
"그래서 저와 얘기하고 싶은 것은 그것 때문인가요? 댁의 대행 사무에 관계되는 일 때문에?"
아, 알겠오. 그러면 더 이야기할 필요가 없으니 이제 그만 합시다 하는 투다.
"그렁(런) 명(면)도 있지요. 그런데 그 보다 나는 유괴 당한 박꾸사님에(의) 두 소녀를 찾는데 도움이 되기 위해 찾아 왔으므니다."
나른하게 의자에 깊숙이 앉아 있던 아저씨가 스프링에 퉁긴 듯이 사사키 앞으로 다가앉는다. 창 밖은 자동차 소음이 한창이지만 방 안에는 한참 동안 무거운 침묵이 흐른다. 소리가 꺼진 무성 영화처럼.
"누나와 아사 말씀인가요?"
침묵을 견디다 못해. 내가 급하게 끼여들었다.
"그래, 깅꿍(김군)."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는 빛나는 눈으로 사사키를 똑바로 쳐다본다.
"선생께서는 어떻게 우리를 도와주겠다는 겁니까? 그 얘들이 있는 곳을 알고 계신단 말씀이신가요?"
사사키는 창 쪽으로 시선을 보낸 채 말이 없다. 우리의 조바심을 일깨우려는 태도일까?
"깅 박꾸사! 나는 그들이 있능(는) 곳을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소. 그것은 오로지 박꾸사에(의) 태도 여하에 달려 있소."
시선을 돌려 입을 연 그의 태도에는 여태까지의 상냥함은 간 곳이 없다. 가는 눈을 똑바로 뜨고 아저씨의 눈을 마주 쳐다본다. 조그맣고 새까만 눈동자가 무섭도록 빛을 낸다.
"내게 달렸다니? 그게 무슨 말이요?
"서르맹(설명)하지요."
그는 담배 한 모금을 길게 내뿜는다. 여유 작작하다. 위압적인 태도다.
"나를 고용하고 계신 분께서는 헤시코스인이 가지고 있다능 그 경이적인 물건을 소유하고 싶어하시므니다. 뇌파 증폭기라던가요? 그래서 나의 제앙(안)은 현재 건조 중인 우주선으로 당장 헤시코스에 가서 그 물건을 가져다가 우리에게 넘겨 주면 아사와 제송나를 돌려보내 주죠. 짐작컨대 헤시코스 국왕의 딸의 안전을 위해서 그 뇌파 증폭기와 운전 방법을 순순히 내어놓을 거요."
"알겠소."
물어뜯는 듯한 아저씨의 대꾸다. 아저씨는 화산처럼 터지려는 분노를 억지로 참고 있는 것이 역력하다.
"당신 같은 악당을 적절하게 묘사할 말을 찾을 수가 없군요. 사사키상."
사사키는 서양 사람처럼 어깨를 으쓱하며 재미있다는 듯이 낄낄댄다. 소름이 쭉 끼친다.
"하하…… 제바르(발) 제바르(발) 고정해요. 바꾸사! 바꾸사는 여태까지 만도 그럴 수 없이 무례하고 기분 나쁠 정도로 거망(만)했소."
아저씨를 아예 아이 취급하듯 한다. 말은 부드러웠으나 상대를 위압하는 힘이 있다. 사사키의 태도는 불꽃 꼬리를 길게 그으며 떨어지는 운석을 연상시킨다. 표범 같은 자세라고나 할까?
"나의 고용주는 일본 모처에서 현재 우주선을 건조 중에 계시므니다. 무장한 사람을 헤시코스에 보내서 그 기계를 탈취해 올 수 있는 망방(만반)의 중(준)비가 되어 있단 말씀이므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아까 제의항(한) 방법이 훨씬 강당(간단)하고 또 그것이 일층 진보한 문멩(명)인에 태도이기 때문에……"
"만약 우리가 그 잘난 당신의 간단하고 문명인다운 안을 거절한다면?"
"하하- 그망항 건 알 덴데. 그들에게 더할 나위 엄능(없는) 불행이 오겠지요. 그리고 결국에는 아까 말항 것처럼 무장 우주선을 보내서 그 기계를 탈취해 오겠죠."
"도대체 당신들은 그 기계를 어디다 쓸 작정이요?"
"솔직히 말하시오."
사사키는 음흉한 미소를 짖는다.
"박꾸사와 같은 어리섞은 이상가들이 잠꼬대 같은 평화르(를) 떠들어대면, 우리가 만든 무기는 쓸모 엄(없)게 되고 폐물이 되고 말 것이 아니겠소까? 그러나 원래 인간은 경쟁과 투쟁을 좋아하니까 전쟁을 선동할 수 있도록 새롭고 기발한 생각을 그 기계를 통하여 세상에 끊임없이 퍼트리면 투쟁을 좋아하는 인간들에게는 적선을 베푸는 셈이고, 또 우리의 무기도 폐물이 되기는커녕 자꾸자꾸 더 필요해 질 것이 아니겠오?"
기가 막힌 아저씨는 한참 동안 말을 못한다. 일본인의 상혼(商魂)이 어떻다는 것은 전 세대들로부터 익히 들어오던 바지만 이렇게 악랄한 사사키 같은 자가 있는 줄은 정말 미처 몰랐다.
"참으로 솔직하군요 사사키상 ! 정말이지 내가 아는 한 당신은 최고의 악마요!"
사사키가 또 낄낄댄다.
"하하-. 연설은 필요 없어 박꾸사. 그러나 나의 제안 이 박사에게 큰 충격을 준 것은 인정하오. 그래서 이 문제를 좀더 신중히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주겠오. 내일 정오에 전화를 거르(걸)겠오. 그 때 답해 주시요."
사사키는 일어섰다.
"또, 그 동안에 경찰에 연락하지 말 것을 엄숙히 경고하오. 예를 들어 레가 이 호테루(호텔)를 나간 후 미행당하는 흔적이 발견될 때는 여자들에게 지체없이 큰 재남(난)이 닥칠 거요."
그는 문간에 버티고 서서 친근한 미소를 던졌다.
"박사가 알아듣도록 잘 말하게, 깅꿍."
아저씨가 벌떡 일어나면서 소리쳤다.
"한 대 치기 전에 빨리 나가."
천장이 쩡 울린다.
"그건 좋은 방법이 아니오. 박꾸사 몸에 해로울 뿐이오. 그럼 사요나라."
배터리 상점 문이 닫혔다.
기가 막히는 순간이다. 사사키는 우리를 철저히 우롱하고 유유히 사라졌다.
기분 같아서는 당장 쫓아나가서 놈을 때려 눕혔으면, 그리고 경찰서까지 질질 끌고 갔으면 싶은 심정이지만 그러나 그렇게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아사와 누나 때문이다. 사사키는 그 점을 정확하게 계산하고 한 행동임은 물론이다. 한참 동안 우리는 그대로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 때, 나는 갑자기 생각나는 계 있어서 의자 밑으로 엎드렸다.
"그자가 담배를 꺼낼 때 의자 아래로 무엇이 떨어지는 걸 보았어요? 아저씨?"
"못 봤는데."
평소의 아저씨답지 않은 힘없는 대답이다.
"종인 것 같던데요. 아- 여기 있어요."
나는 무릎을 털고 종이를 펴 들었다. 의정부의 어떤 배터리 상점에서 발행한 영수증이다.
"의정부라-. 어디 보자."
아저씨는 눈이 번쩍 뜨이는 모양이다.
"형제 동력 배터리 상사, 의정부시 낙선동 5가 120번지 동력 배터리 A형 교환. 245원. 흠~ 날짜는 오늘이구나!"
영수증을 움켜 쥔 아저씨는 원기를 되찾았다.
"사사키 놈은 여기에 오기 두어 시간 전에 배터리를 교환한 모양이구나."
"그럼, 누나와 아사도 의정부 어디에 잡혀 있겠군요."
"확실히는 모르지만 그럴 것 같구나. 자, 가자. 1시간 반 남짓하면 갈 수 있다. 배터리 상점에 가서 우선 알아보아야겠다."
"경찰에 연락하면 안되나요?"
"아직은 안돼. 사사키의 경고를 함부로 무시할 수는 없지. 우리끼리만 놈을 기습하자!"
우리는 구르듯이 카운터로 달려가서 지프 한 대를 빌렸다. 일부러 삼분의 일쯤 방전이 된 동력 배터리로 교환해서 출발했다. 형제 배터리에 가서 교환하기 위해서다.
요즘은 공기 오염 때문에 고출력을 요하는 특수 차량 외는 내연 기관의 장비를 법률로써 금하고 있다. 내연 기관 대신에 전부 동력 배터리로 대치된 배터리 카가 등장한 것이다. 그래서, 전 세대에 흔했다는 주유소가 자취를 감춘 지 이미 오래다.
배터리 카는 48시간 계속해서 굴리고도 2시간이면 거뜬히 재충전이 끝난다. 충전할 틈이 없는 경우에는 도로 양편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배터리 상점에서 쓰던 것과 바꾸면 된다. 사사키도 무슨 급한 일이 있었던지 밤사이에 집에서 충전하지 않고 형제 배터리에서 동력 배터리를 교환한 모양이다.
고가 도로로 서울 시내를 벗어난 우리들은 한적한 시골길로 접어들자 풀 스피드로 차를 몰았다. 누나와 아사가 당하고 있을 고통을 생각하면 한시가 급한 것이다. 길옆에는 추수를 마친 빈 논밭이 쓸쓸하게 펼쳐져 있다. 누나와 아사를 잃은 우리 마음처럼……
 
배터리 상점
 
6시 반경, 의정부에 도착했다. 행인이 일러준 대로 의정부 시내에서 서북으로 뚫린 길을 30분쯤 달리니까 낙선동이 나타났고 5분도 더 채 못 가서 우리는 쉽게 간판을 찾았다. 형제 동력 배터리 상사. 새로 생긴 배터리 진열대에 차를 세웠다.
뒤편 사무실에서 푸른 유니폼을 입은 나와 비슷한 또래의 소년이 뛰어 나왔다. 해맑은 얼굴이 좋은 인상을 준다. 아저씨의 주문을 받은 소년은 능숙한 솜씨로 차체 밑에 있는 얇고 넓은 배터리를 꺼내서 양극에 계기를 대 본다.
"극판 용량은 새 것과 마찬가진데요. 50시간 사용하셨군요."
충전과 방전이 반복됨에 따라 극판이 전해액에 녹아 들어가서 극판의 작용 물질이 점차 감소된다. 소년의 말은 배터리의 사용 시간이 얼마 안돼서 극판이 아직 멀쩡하다는 뜻이다. 소년은 진열대에서 전지 하나를 꺼내 왔다
"같은 B형인데 사용 시간도 50시간입니다. 보시죠."
"됐네, 그 걸로 빨리 해 주게."
소년은 차체 밑으로 배터리를 밀어 넣으면서 말했다.
"급하신가요?"
"뭐 별로…… 이 근방에 살고 있는 친구 한 사람을 찾아보려고 그래. 아참, 그 친구도 여길 자주 들른다던데, 자네 혹시 기억에 없나. 귀가 작고 눈이 좀 가는 편인데……"
소년은 전극을 연결하고 있다.
"눈이 가늘어요? 일본 사람 말인가요?"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래, 일본 사람이야. 어디 살고 있는 지 아나?"
흥분을 감춘 아저씨의 말이다. 소년은 차체에 기대서서 영수증을 쓰고 있다.
"아저씨 친구 분은 말씨가 참 재미있던데요."
영수증을 쓰면서 혼자 씨익 웃는다. 사사키의 우스꽝스런 발음이 생각난 모양이다.
"산록산장에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저씨가 나를 돌아보면서 눈을 껌벅한다. 걷잡을 수 없는 흥분이 등어리를 타고 슬금슬금 올라온다. 소년이 영수증을 내밀었다.
"190원입니다."
아저씨가 200원을 꺼내 주었다.
"거스름은 필요 없네."
제법 큰 팁이다. 볼펜 하나가 1원밖에 안 하니까.
"산록산장이 어디 있지?"
소년은 지폐를 만지작거리며 말한다.
"오시다가 전철(電鐵) 정거장을 보셨죠.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 정거장에서 오른 편으로 꺾어서 한 40분쯤 달리면 채석장이 나와요. 바로 채석장에서 산 쪽으로 200미터만 가면 울창한 숲이 나오는데, 그 숲 속에 있어요."
"고맙네, 덕택에 친구를 빨리 만나 보게 됐군. 산장에는 다른 사람도 많이 살고 있나?"
"예, 많이 있어도 맨 일본 사람인 모양입디다. 일주일 전에 세 들어 온 모양인데, 그 분 말씨가 하도 재밌어서 이렇게 잘 알고 있는 거예요. 아저씨 친구 분은 참 부자인 모양이죠. 차도 맨 폭스바겐이고 헬리콥터도 세 대나 있대요."
"틀림없군. 자…… 일 잘하게. 고맙네."
우리는 차에 올랐다.
"안녕히 가세요."
우리는 소년의 인사를 등뒤에 받으며 힘차게 가속 페달을 밟았다.
 
산록산장(山麓山莊)
 
형제 배터리의 해맑은 그 소년이 일러준 대로 우리는 전철(電鐵)정거장 맞은 편에서 오른 쪽으로 핸들을 꺾었다.
산허리에서 한 뼘쯤 높게 걸린 해가 제법 눈부신 초가을의 햇살을 보내 온다. 시계를 보니 6시 50분이다. 전철에서 정확하게 35분 달렸다. 벌써 땅거미가 지기 시작한다.
길 왼편에 널찍한 채석장이 희뿌연 어둠 속에 드러났다. 드디어 나타났다!
채석장 입구와는 반대편으로 측백나무 울타리를 한 넓은 길이 산 쪽으로 길게 뻗어 있고, 길이 끝나는 성싶은 곳에 검은 숲이 나타났다. 저 숲 속이다. 아사와 누나가 저 숲 속에 갇혀 있는 것이다.
전철에서 여기까지의 거리부터 가늠해 본다. 4km를 6분에 주파한다고 하면 의정부에서 24km 쯤 달려온 셈이다. 차부터 적당한 곳에 숨겨야 한다. 채석장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다. 안으로 차를 몰고 들어갔다.
산더미 같은 원석(元石) 사이에 지프차를 숨겼다. 시계는 7시 10분을 가리키고 있다. 아저씨는 어둠이 더 짙어질 때까지 20분쯤 더 기다리자고 했다.
원석에 걸터앉았다. 으스스한 한기가 스며든다. 주위는 쥐 죽은 듯 고요하다. 아저씨와 나는 서로 별 말이 없었다. 지금부터 어떻게 해야 하나? 별 뾰족한 수가 없다. 무조건 숲 속으로 들어가 보는 게다. 들어가서 그때 그때의 상황에 적절히 대처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서로 의논할 말이 없는 것이다.
나는 아까부터 이상한 것을 느끼고 있다. 아사가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이제야 그 느낌이라는 것이 아사의 텔레파시 통신일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이 떠오른다. 나는 애써 정신을 모아 아사의 생각을 수신해 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는데, 간절하게 구원을 청하는 생각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아저씨도 같은 생각을 수신했는지.
"태진아, 가 보자. 아사와 제양은 틀림없이 저 숲 속에 있는 것 같다. 숲 속으로 우리를 오라고 하는 것 같구나."
우리는 측백나무 울타리 길을 조심스럽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10월 상순의 이른 가을이라 길 주위에서는 아직 밤벌레 소리가 한창이다. 우리가 한 걸음 한 걸음 지나갈 때마다 약속이나 한 듯 한꺼번에 소리가 뚝 그쳤다가 몇 발자국 지나가면 또 일제히 울어댄다. 벌레 소리까지 신경이 쓰인다.
주위는 완전히 어두워졌다. 울타리 길 끝에 이르렀다. 별장은 아직 보이지 않고 울창한 숲 속으로 넓은 차도가 뚫려 있고 100와트가 넘는 휘황한 수은 가로등이 켜져 있다. 길가 숲 속의 어둠 속으로 얼른 피하는데, 입구에 서 있는 작은 간판의 글씨가 눈에 띈다.
「산녹산장 입구」
우리는 길을 따라 숲 속을 전진했다. 20분쯤 나아갔을까 갑자기 시커먼 집 그림자가 눈앞에 다가선다. 마(魔)의 집처럼 시커멓게 길게 누운 건물에서는 빛이라곤 없다. 그래서 마지막 가로등 다음의 컴컴한 어둠 저쪽에 집이 도사리고 있는 줄은 몰랐던 것이다.
아저씨와 어둠 속에 숨은 채 건물 주위를 살펴보았다. 학교 건물처럼 엄청나게 큰 집이다. 건물 정면에 큰 철문이 있고 문 옆에 수위실 같은 것이 있다. 수위실 양 옆으로 울창한 정원수가 검게 보이고 밖은 한길이 넘는 담이 둘러 쌓여 있다. 집 뒤쪽은 어두워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시꺼먼 숲 외는 불빛이라곤 없으니 더 기괴하다. 아저씨가 소곤거린다.
"태진아, 집 뒤로 돌아가 보자."
아저씨가 몇 걸음 앞서고 내가 뒤에 서서 주위를 조심스럽게 살피며 집 뒤로 돌아가서 건물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담 밖의 언덕 위까지 갔다. 불빛이 보인다. 두 군데다. 둘 다 건물 중간쯤에서 새 나오는 빛인데, 하나는 일층이고 다른 하나는 이층이다. 일층에서 새 나오는 빛으로 건물 뒤편의 잔디밭이 보인다. 그러나 빛이 비추는 범위는 극히 좁다. 또 아저씨가 낮은 소리로 말한다.
"아래 층 빛이 새 나오는 곳까지 가 보자. 어두워서 들킬 염려는 없는 것 같다."
우리는 한길이 넘는 담을 넘어 정원수를 빠져 나왔다. 그리고는 빛이 새 나오는 사이를 피해서 재빨리 잔디밭을 가로질렀다. 불빛이 새 나오는 창 앞에 바짝 엎드렸다. 1, 2분을 그런 자세로 기다려 보았다. 아무 기척이 없다. 내가 살그머니 고개를 들고 창문에 눈을 바짝 들이댔다. 있다! 사사키가 있다. 큰 방에 혼자 있다.
방 가운데 있는 엄청나게 큰 테이블 앞에 앉아서 턱을 한 손으로 괸 채 무엇을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 나는 아저씨도 가까이 와서 보라고 손짓을 했다. 아저씨도 방 안을 한참 들여다본다. 우리는 다시 창에서 떨어져서 어둠 속에 몸을 숨겼다.
"아사와 누나가 어디 있을까요?"
내가 속삭인 말이다. 아저씨는 말없이 불켜진 2층을 쳐다본다. 나도 그 방을 올려다보았다. 이상한 일이다. 아사와 누나를 생각할 때마다 아사의 생각이 전달되는 것 같다. 아저씨와 내가 거의 동시에 이층을 쳐다본 것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틀림없이 이층에 있는 것 같다. 아사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때 아닌 피아노 소리가 들린다. 부루호라는 아사가 제일 좋아하는 곡이다.
아사도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을 알고 있을까? 그래서 저 소리를 일부러 우리에게 들려 준 걸까? 피아노 소리는 곧 그쳤다. 우리는 다시 창가로 다가갔다. 이층은 까마득하게 높게 보인다. 다시 사사키가 있는 방을 기웃거린다.
 
사사키의 부하 야마모도
 
이 때, 아저씨는 기절할 듯이 놀랐다. 바로 우리 등 뒤에서 낯선 소리가 들려 왔기 때문이다.
"그대로 조용히 손을 들어! 서툰 짓 하면 용서 없어."
얼떨결에 나와 아저씨는 두 손을 번쩍 쳐들었다. 그 침착한 목소리는 다시 명령했다.
"손을 든 채로 돌아서요."
우리는 바보처럼 손을 든 채 돌아선다.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았으나 어둠에 눈이 익음에 따라 사람 형체가 나타났다. 아저씨만큼이나 키가 크다. 얼굴은 잘 보이지 않으나 아주 말라깽이 같다.
"당신들은 김영준 박사와 김태진 군?"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었군. 수위실에 사람이 있는 것도 몰랐나?"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나쁜 놈들! 나쁜 짓을 하다가 보니 수위실에 불도 켜지 않은 채 망을 보고 있었구나. 그는 들고 있는 권총 끝으로 우리를 사사키의 방으로 몰고 들어갔다. 책상에 앉아 있던 사사키도 우리를 보더니 우리가 놀랐던 만큼이나 놀라는 눈치다.
우리를 방 안으로 몰고 온 자가 몸수색을 했다. 무기라곤 있을 리가 없다. 아예 그런 것을 생각도 안해 본 우리였으니까. 그자가 사사키 앞으로 나아가서 귀에다가 무어라고 한참 쑥덕거렸다. 사사키나 그 자나 조금도 서두르지 않고 조용조용히 얘기하는 품으로 보아 상당히 훈련된 범죄 집단에 틀림없다. 귓속말로 보고를 받은 사사키가 입을 열었다.
"오 ! 깅 박꾸사(김 박사), 어떻게 여기까지 왔소?"
"……"
아저씨는 사사키를 노려보면서 말이 없다. 사사키는 혼자 낄낄대더니 아무래도 궁금한 모양이다.
"태진군, 우리가 여기 있는지 어떻게 알았지."
나는 거짓말을 했다. 아니 반은 진실인지 모른다.
"사사키씨, 우리는 아사의 텔레파시가 시키는 대로 왔을 뿐이에요. 미리 알려 드립니다만, 당신들이 어디를 가던지 아사가 옆에 있는 한 우리는 당신 있는 곳을 알 수 있어요."
사사키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그게 정말인가, 깅꾼?"
"정말입니다. 아사와 우리와의 텔레파시 통화거리는 수십 킬로미터는 됩니다."
"그럼 왜 경찰을 데려 오지 않았어?"
"당신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지요."
그 말에 사사키는 넓은 어깨를 들썩거리며 웃어제꼈다
"하하하…… 고맙군 깅꾼, 그러나 내가 경찰에 연락하지 말라고 했을 뿐이지, 서로 약속한 건 아니잖아……"
"그러나 잠깐, 사사키 씨"
나는 그의 말을 막았다.
"사사키 씨, 당신은 알아 둬야 할 일이 있어요. 연구에는 스파이크 씨가 있어요. 스파이크 씨도 우리와 같이 살아왔기 때문에 미국에 아사의 텔레파시를 수신하고 경찰을 데리고 이리로 올 거예요."
나는 실수를 했다. 사사키에게 겁을 주어 보려는 뜻이 오히려 아주 나쁜 결과를 가져왔다. 왜냐 하면 내 말을 듣고 나를 한참이나 빤히 쳐다보던 사사키가 불쑥,
"그래? 좋아 그럼, 내일 아침 일찍 우리는 당신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떠난다!"
라고, 했기 때문이다. 방 안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사사키상, 당신은 우리를 일본으로 데려다가 어떻게 할 참이요?"
하고, 아저씨가 조용히 입을 연다.
"박꾸사, 아주 안성맞춤이 되었소이다. 당신들을 일본에 억류해 놓고 내가 몸소 헤시코스에 가서 아사를 미끼로 뇌파 증폭기를 뺏어 오겠소."
내가 그의 말을 받았다.
"사사키 씨, 당신은 노벨상 수상자 한 사람을 납치함으로써 생길 국제적인 분규를 생각해 보셨나요? 우리 정부에서는 일본에 즉각 항의를 제기할 거고, 세계 여론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요. 그렇게 되면 일본 경찰도 당신을 체포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지요."
"하하…… 깅꾼, 이론이 제법이군. 그런데 이거 봐."
그는 자기가 앉았던 책상 위에서 종이 한 장을 들고 왔다.
"이게 무언지 아나? 이스라엘과 아랍 양국이 어제 무기 수출 계약이 체결됐다는 내 부하의 전보(電報)야. 금액은 자그마치 10억 불? 그뿐인가, 곧 북평정권에도 무기 수출 계약이 다 되어가고 있어. 나의 정부가 나를 체포하면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이젠 알겠지? 연간 수억 만 불의 외화 손실이야 알아듣겠나? 깅꾼."
아저씨가 끼여들었다.
"이스라엘과 아랍 제국에 같이 무기를 판단 말이죠?"
"하하 그렇소. 박꾸사, 그들 양국은 거의 20년 간이나 나의 변함없는 고객이었소."
"무기를 팔아서 서로 싸우게 하고 당신은 돈을 번다는 말이죠. 사탄은 딴 데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여기 이 방에 있구려."
사사키는 예의 그 낄낄거리는 웃음으로 혼잔 히히덕 거리다가 갑자기 웃음을 뚝 그치고 금방 험악한 눈초리로 아저씨를 잠시 노려보더니, 부하를 불러 뭐라고 지시했다. 눈치로 보아 우리를 이층 방에 가두고 내일 아침 4시에 일본으로 떠날 준비를 하라는 모양이다. 그리고 사사키 입에서 야마모도라는 이름이 나오는 걸로 보아 우리를 잡아온 자의 이름이 야마모도인 모양이다.
 
전기 충격
 
아저씨와 나는 이층으로 끌려 올라갔다. 방 안에 들어서니 피아노 앞에서 울고 있던 누나가 쓰러질 듯이 달려와서 아저씨 품에 안긴다. 아사는 표정 하나 흐트러트리지 않고 우리 쪽을 쳐다보고 서 있다.
나는 속으로 감탄했다. 이런 절대절명의 위기에서도 저렇게 침착하다니. 등뒤에서 문이 잠겼다. 아사의 침착한 태도를 보니 나도 새삼 정신이 드는 것 같다. 그렇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을 차리라고 했지. 아사가 생각을 전해 왔다.
"나는 박사님과 태진이가 잡힌 것을 벌써 알고 있었어요."
역시 그랬었구나. 아사가 우리의 뇌파를 벌써부터 수신하고 누나를 시켜 우리에게 피아노까지 쳐주었구나. 그 동안에 일어났던 일을 다 듣고 난 누나는 더 서럽게 울었다. 속수무책이다. 열쇠 구멍으로 내다보니 야마모도가 아닌 다른 자가 문 앞에 보초를 서 있다.
나는 탈출 방법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으나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는다. 아저씨도 무엇을 깊이 생각하고 있다. 누나는 한쪽 구석에서 여전히 훌쩍이고…… 태연한 사람은 아사뿐이다. 조바심이 나는 시간은 자꾸 흘러간다. 벽시계가 1시 50분을 가리키고 있다. 4시 전까지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 곳을 빠져나가야 한다.
창 밖으로 내다보니, 아래층에 불이 꺼졌다. 언제 떴는지 축구공 같은 달이 공중에 매달려 있고, 뜰 안에 가득한 달빛 속에 쥐 죽은 듯한 정적만이 깃들어 있다. 이따금 누나의 훌쩍이는 소리가 적막을 깰 뿐.
나는 창가에 서서 달빛 속에 누워 있는 검은 숲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때, 나의 눈길이 내가 서 있는 창가에 미쳤다. 지붕에서 내려오는 물을 받아 흘려보내는 물받이 관에 눈이 미쳤다. 합성 수지로 된 튼튼한 파이프다. 한참 동안 나는 멍하니 그것을 보고 있었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아저씨에게 창 아래를 가리켰다. 아저씨가 다가왔다.
"아저씨! 이 물받이 관을 보세요. 충분히 타고 내려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저씨의 눈에 별이 번쩍하면서 관을 한참 동안 내려다본다.
이윽고 고개를 든 아저씨가 힘없이 말했다.
"이걸 타고 내려갈 수는 있겠는데…… 그러나 밖에 서 있는 보초가 알 것 아냐."
모처럼 생각해 전 책략이 허사가 되었다. 한참 말없이 서 있던 아저씨가 새삼스럽게 눈을 빛내면서 내 귀에 바짝 입을 가까이 댔다.
"보초에 전기 충격(電氣衝擊)을 주자."
내가 무슨 말인가 싶어 멍하고 쳐다보니
"문가에 전기 콘센트가 보이지. 기기서 전기를 끌어내어 보초 몸에다가 220V를 바로 가하는 거야."
전주(電柱) 변압기를 생략함으로써, 변압(變壓) 과정을 한 단계 줄여, 송전 비용을 절하하기 위해 220V가 일반 수용가에 바로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보초 몸에다 갔다 대나요?"
"수가 생길 거야."
아저씨와 나는 문제를 오랫동안 의논했다. 결국 이렇게 하기로 합의했다. 실내 전화선을 끊어서, 콘센트에 연결하고, 아저씨와 내가 한선 씩 손가락에 감고 있다가, 보초를 유인한 후에 보초의 양손을 아저씨와 내가 하나씩 잡아서 보초에게 전기 충격을 준다는 것이다. 아저씨 계산에 의하면 220볼트 전선을 가하면 인체 저항이 100킬로옴쯤 되기 때문에 전류는 2밀리암페어를 넘지 않지만 보초는 양손에서 내장을 통해 다른 곳으로 전류가 흘러가기 때문에, 1, 2초만 전류를 통해 주면 일시적으로 실신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전선을 잡은 끈으로 보초의 손을 잡기 때문에 일종의 점접촉(點接觸)이 되어 우리 몸에는 전류가 전연 흐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라도 손바닥이 약간 찌릿한 정도라는 것이다. 시간을 보니 2시 20분이다. 아저씨와 나는 바쁘게 작업을 시작했다. 누나는 이젠 지쳐서 피아노 앞에 엎드려 있고, 아사는 눈을 말똥말똥 뜨고 앉았다가, 아저씨와 나 있는 쪽으로 걸어와서, 우리의 말을 다 알아들었는지 그녀의 생각을 보내왔다.
"박사님, 설사 우리가 잡혀가는 한이 있더라도 사람을 죽이지는 마세요."
그녀의 평화 신봉, 박애 정신을 익히 알고 있다. 아저씨가 그녀를 무마시킨다.
"아사, 보초를 죽이지는 않아. 잠시 실신 상태를 만들뿐이야. 염려 말아."
아저씨의 말에 안심을 했는지 아사는 우리가 일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전화선을 3미터쯤 끊어 냈다. 두 선을 콘센트에 끼웠다. 이제는 보초를 유인할 일이 남았다. 아저씨가 누나에게 우리 계획의 대략을 설명하고 보초를 꾀도록 했다. 설명을 들은 누나는 약간 생기가 도는 눈으로 방 안을 둘러보더니 물주전자를 들고 문 앞으로 갔다.
"아저씨! 보초 아저씨!"
여태 훌쩍이던 끝이라, 일부러 과장하지 않아도 울음 섞인 누나 목소리는 애절하게 들린다.
"왜 그러십니까? 아가씨."
문 밖에서 들려오는 보초 소리다. 제법 정중하다.
"물 좀 주세요. 목이 타 죽겠어요."
보초는 한참 말이 없더니
"아가씨 안됩니다. 물은 아래층에 있습니다. 떠오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누나가 우리 쪽을 쳐다본다. 아저씨가 자꾸 조르라는 손짓을 했다.
"목이 타 죽겠어요. 물도 안 주시려고 그래요? 수도까지 1, 2분이면 되잖아요."
보초는 한참이나 말이 없다. 실패인가 하고 우리는 바짝 긴장했다.
"그릇 있어요?"
누나의 가냘픈 말에 넘어간 모양이다. 누나가 얼른 말한다.
"여기 주전자 있어요."
"주전자 이리 주세요."
문이 열린다. 보초는 바짝 경계하는 태도로 옆구리에 찬 권총을 시위하면서 손을 내민다. 우리는 얼른 딴청을 부린다. 다시 문이 잠기고 보초의 발자국 소리가 멀어진다. 나와 아저씨가 문 앞에 붙어 선다. 심장이 소리가 나도록 쿵쿵거린다.
1분쯤 지났을까? 보초의 바쁜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점점 가까이 온다. 문 앞에 선다. 열쇠를 꽂는다. 찰가닥 소리가 나면서 열쇠가 열린다. 문이 열린다. 앞에 서 있는 누나에게 주전자를 내밀던 보초가 문 옆에 붙어선 우리를 보고 약간 놀라면서 손이 허리로 간다. 이 때다. 나와 아저씨는 번개처럼 달려들어 그자의 손을 움켜쥐었다.
"으으……윽."
졸지에 당하는 심한 전기 충격이라 고함도 지르지 못하고 털썩 주저앉는다. 나는 그자의 총을 재빨리 빼앗았다. 그자는 반항할 기운을 잃었는지 그대로 멍하니 앉아 있다.
아저씨가 커튼을 찢어다가 자갈을 물리고 그자를 침대 다리에다가 꽁꽁 묶어 버린다. 순식간의 일이다. 벽시계는 3시 5분이다. 우리는 서둘렀다.
창문을 소리 안 나게 열고 아저씨가 먼저 내려갔다. 그 다음이 누나인데 애를 먹었다. 겨우 땅까지 내려가긴 내려간 모양인데 중간쯤에서 주르륵 미끄러져 땅에 떨어졌다. 쿵 소리가 없는 걸 보니 아저씨가 무사히 누나를 받은 모양이다. 그러나 이 때 미끄러지는 소리가 고요한 밤의 정적을 뚫고 크게 들려왔다. 내가 부축하면서 함께 내려가던 아사 양이 미끄러진 것이다. '쿵'하는 소리가 크게 나자, 건물 뒤쪽에서 요란한 벨 소리가 울리면서 강한 서치라이트가 이 쪽을 향하여 훑어온다.
"방금 누가 담을 뛰어넘는 소리가 들렸다. 저 숲 속을 샅샅이 뒤져라!"
외치면서 뛰어나온 사람의 손에는 늑대처럼 사나운 개가 으르렁거린다. 우리는 반사적으로 땅에 납작 엎드렸다. 그러나 그 곳은 사나운 개가 으르렁거리는 곳에서 지척간이다.
개의 이빨이 불빛을 받아 번쩍 한다. 금방이라도 목덜미를 물고 늘어지는 것 같아서 전신에 식은땀이 쭉 흐른다. 우리는 꼼짝 못하고 엎드려 있다. 개를 주시하면서. 개를 붙들고 있는 자가 사사키가 분명하다. 작은 키, 넓은 어깨, 사사키가 무어라고 외친다.
나는 무슨 소린 지 모르겠는데 숲으로 나가는 길을 막으라는EMB000004b0648a
 소리라고 아저씨가 귀뜸 한다. 사사키와 몇 명은 개를 따라 잔디밭을 왔다갔다한다. 우리는 숨을 죽이고 눈으로 개의 동작을 좇았다. 개는 거의 10여 분이나 사사키를 끌고 잔디밭을 우왕좌왕 한다. 코를 땅에 끌며 우리와 반대편으로 가다가는 다시 우리 쪽으로 오고, 그러다가는 다시 옆으로 움직이고…… 잔디밭이라서 우리의 냄새를 쉽게 찾아 내지 못하는 모양이다. 나는 약간 안심이 되었다.
"결국 저 놈이 냄새를 찾지 못한 모양이지."
이렇게 혼자 생각했을 때다. 개는 우리가 조금 전에 내려온, 물받이 관에 코를 대고 한참 있더니 고개를 번쩍 쳐들고 우리 쪽을 쳐다본다. 입을 떡 벌리고 산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짖어댄다. 사사키 손에서 풀려 나오려고 발광을 하고 있다.
사사키가 개의 끈을 풀어 준다. 개는 쏜살같이 우리 쪽을 향해 달려온다. 푸른 달빛 속에 검붉은 입과 송곳 같은 이빨이 생생하게 드러났다.
"아이구머니!"
기어 들어가는 소리를 지른 누나가 내 팔을 움켜잡고 와들와들 떤다.
 
아사의 텔레파시
 
개는 이미 눈앞에 다다랐다. 날카로운 이빨이 금방이라도 목덜미를 물고 늘어지는 것 같아서, 나는 무의식 중에 눈을 딱 갚았다.
"제양! 겁내지 마. 내가 개하고 친해 볼께."
이 때, 절대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으면서도 추호도 당황한 흔적이 없는 아사의 침착한 생각이 전해 왔다. 헤시코스 인들은 새나 짐승의 생각을 수신할 수 있는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침착한 아사의 텔레파시 통신에, 이런 일이 번개처럼 내 머리에 떠올랐지만, 오래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성난 개의 뜨거운 콧김이 이미 코 앞에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사가 겁도 없이 한 팔을 내밀어 개의 머리에 손을 얹는다.
"쉬! 조용히! 너는 우리를 해치지 않겠지! 그지?"
혼신의 힘으로 개를 향해 복사(輻射)되는 아사의 텔레파시 에너지다. 실로! 기적이 일어났다. 그렇게 무섭게 짖어대던 개가 단박 조용해지면서 주인을 만난 듯 킁킁거리며 아사의 손등을 핥는다. 텔레파시가 계속 복사된다.
"넌 우리하고 친구가 된 거야!"
개가 알아들은 듯이 꼬리를 흔들며 킹킹댄다. 사사키 일당은 벌써 십 미터 이내의 거리까지 다가왔다. 아사는 개의 머리를 두 손으로 쥐고, 개의 큰 코에 다시 정신 감응력을 집중시킨다.
"이제 저리 가! 빠져 나갈 때까지 딴 곳을 보고 짖고 있어!"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아사는 그녀의 생각을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듯이 동물에게까지도 자기의 의사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개는 마지막 이별이라는 듯이, 크게 한번 짖고 사사키 일당을 끌고 반대편으로 달린다. 나는 전신이 식은땀으로 후줄근하다. 누나와 아저씨가 긴 한숨을 토하는 소리가 들린다.
"사실 지구에 있는 짐승에까지도 생각을 전할 수 있을는지는 의문이었어요."
하고, 아사가 생각을 보내온다. 누나는 몇 초 사이에 일어난 이 기적 같은 일에 멍한 표정으로 아사를 쳐다보고만 있다. 누나 뿐 아니라, 아저씨도 나도 한참 동안은 정신 나간 사람처럼 그냥 엎드려만 있었다.
"아사! 넌 참 멋지게 해 치웠어!"
"가자."
한참 만에야 겨우 정신을 수습한 아저씨가 엎드렸던 자리에서 일어선다.
"자! 가자! 정문에서 될 수 있는 대로 멀리 떨어진 담을 넘어 가자.“
"차가 그대로 있는지 모르겠어요."
우리는 아저씨가 이끄는 대로 풀 속을 헤치며 나아갔다.
"아사는 우리의 마스코트야. 아사가 같이 있는 한 아무 일 없을 거야."
아저씨 말대로 우리는 더 이상 사사키 일당의 방해를 받지 않고 채석장의 차 있는 곳에 이르렀다.
채석장을 빠져 나와 의정부를 향해 힘차게 차를 몰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안도의 숨을 가슴이 후련하도록 후- 내쉬었다.
우리는 다시 해상 기지로 돌아왔다. 궁금해 하는 스파이크 씨와 아줌마를 위해 그 동안에 일어난 일을 아저씨가 간단히 말해 주었다. 우리가 채석장을 떠난 후, 약 1시간 후에 우리의 전화 신고를 받은 경찰이 산장을 습격했지만, 사사키 일당은 이미 헬리콥터로 국외로 탈출하고 난 뒤였다는 사실은 우리가 해상기지로 비행해 오는 도중에 서울 시경에서 마이크로 웨이브 전화로 우리에게 연락해 주어서 비로소 알았다. 아사의 텔레파시 통신으로 개를 다른 곳으로 돌려 보냈다는 이야기를 들은 아줌마는 새삼 경탄했다. 마침내 스파이크 씨가 우리 모두가 은연 중에 걱정하던 일을 끄집어낸다.
"아사를 놓쳤으니 이젠 사사키는 우리보다 먼저 헤시코스에 갈려고 하지 않을까?"
아저씨도 스파이크 씨의 의견에 동조한다.
"틀림없이 그렇게 할 꺼야."
침착한 아사도 얼굴이 파랗게 질린다.
"그렇게 되면 정말 큰 일이에요. 헤시코스에서는 아무도 사사키와 맞싸울 정도로 마음이 악하지 못해요."
"나도 그 점을 알고 있어."
중대 결정을 내릴 듯한 표정을 하며, 아저씨가 천천히 입을 연다.
"우리는 그자들이 기계를 뺏어오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 헤시코스에서 충분한 응전 태세를 갖추도록 사전에 일러 주어야 해!"
"그럼 예정보다 일찍 출발하신단 말인가요. 아저씨?"
"그래, 태진아. 내가 수집한 정보에 의하면 사사키의 우주선이 지금 당장 출발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닌 것 같아. 그러나 일을 틀림없이 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7일……"
"그래, 그건 나도 알아. 그런데 이 친구는 사사키를 아는 모양이야."
사사키! 전기가 통하듯이 정신이 찌르르하다. 나는 사나이를 새삼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런데! 아니! 이자는 야마모도가 아닌가! 산록산장에서 우리를 붙들었던 사사키의 부하 야마모도란 자가 아닌가? 나는 정신없이 외쳤다.
"아니 사사키의 부하 야마모도가 아니요!"
사나이는 벌써부터 나를 알아보고 있었는지 새삼 고개를 끄덕한다.
"그래, 맞았다. 나는 사사키의 부하였었지. 그러나 지금은 형편이 달라. 나는 너의 아저씨에게 미리 일러 줄 이야기가 있어 일부러 온 거야. 너의 아저씨는 지금 위기에 처해 있어!"
나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잠시 생각해 보았다. 야마모도! 무슨 이유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이 자가 일부러 여기까지 나타났는데, 보통 방문객처럼 무작정 쫓아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더구나 그의 말이 좀 이상하지 않은가? 사사키의 부하였었지만 지금은 형편이 달라? 나는 야마모도를 아저씨의 서재로 안내했다. 한참 동안 야마모도를 묵묵히 쳐다보고 있던 아저씨가 입을 연다.
"당신이 하고 싶다는 말이 뭐요?"
야마모도는 볼품 없는 수염을 만지작거린다.
"나는 사사키의 일 때문에 박사님에게 급하게 알려 줄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이자는 일본인인데도 우리 말이 아주 유창하다.
"급하게? 사사키 일 때문에?"
"예, 사사키는 지금 박사님의 우주선을 파괴할 계획을 하고 있어요."
아저씨는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그런데 당신은 내게 왜 그런 걸 일러 주는 거요?
"당신이 스파이가 아닌 것을 어떻게 안단 말이요?"
"말씀드리죠. 사사키는 한 때 나의 친구였습니다. 그의 우주선에 원자력 엔진을 설계한 것도 접니다. 그러나 놈은 나의 설계도만 뺏고 약속한 돈은 주지 않았습니다. 나는 본의 아니게 그자의 부하 노릇을 하면서 돈을 받아내려 애썼습니다. 기회 있을 때마다 약속한 돈을 독촉했죠. 귀찮아진 놈은…… 이 손 좀 보십시오."
야마모도는 밝은 곳으로 두 손을 내밀었다. 차마 바로 쳐다볼 수 없는 꼴이다. 손은 으깨어지고 살점이 떨어져 나간 상처가 커다란 입을 벌리고 있다.
"그 놈은 동경에 있는 그의 집 지하실에 나를 감금시켰소. 나는 수갑을 돌멩이로 쳐서 손을 빼고 가까스로 탈출했죠."
산록산장에서 우리를 붙잡아 사사키에게 넘긴 것이 불과 일 주일 전이다. 그런데 그 동안에 그런 일이 벌어졌었단 말인가? 다시 아저씨의 질문.
"알겠소. 그런데 한국엔 언제 왔소?"
"오늘 왔습니다. 도착하자마자 보트 한 척을 빌려 여기 까지 달려왔죠."
아저씨는 한참 동안 말이 없다. 야마모도의 말을 생각해 보는 모양이다.
"무슨 댓가를 요구하는 거요?"
야마모도는 서양 사람처럼 어깨를 으쓱한다.
"내가 사사키의 계획을 자세히 일러 주면 얼마를 주겠소? 박사님 "
"공갈로 재물을 취득할 참이요?"
"아니, 아니, 천만에!"
그는 두 손을 야단스럽게 내젓는다.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단지 나는 지금 무일푼의 상태입니다. 돈도 집도 없습니다!"
드디어 아저씨가 협상 안을 내놓는다.
"좋소! 그럼 당신이 한달 동안 서울에서 살만한 돈을 주리다."
야마모도는 얼굴이 훤해지면서 입이 떡 벌어진다.
"아이구 박사님 ! 고맙습니다. 역시 박사님은 인심이 후하십니다."
"자 그만, 그럼 사사키의 계획이란 걸 빨리 말하시오."
야마모도는 메마른 입술을 축인다.
"사사키의 우주선은 큰 결함이 하나 있어요. 이 결함은 앞으로 일 주일 안으로는 해결이 안 됩니다. 그런데 박사님의 우주선은 지금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놈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놈의 지하실을 탈출하기 전에 놈이 부하들에게 지시하는 말을 엿들었어요. 오늘 밤중으로 사사키의 부하 몇 놈이 여기에 잠입합니다. 우주선을 파괴하려고요. 소형 잠수정을 이용할 겁니다!"
"오늘 저녁!"
나는 무의식 중에 큰 소리를 질렀다.
"박사님이 내일 출발하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아저씨는 야마모도의 말을 음미하듯 또 한참 무얼 생각하더니 서랍에서 수표책을 꺼낸다.
"야마모도씨, 당신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당신은 이 돈을 받을 자격이 있소!"
아저씨가 내민 수표를 받아 든 야마모도는 수표를 잠시 쳐다보더니 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허리를 굽신거린다.
"자 그만 해 둬요. 그런데 당신이 동경에서 여기까지 일부러 허겁지겁 달려와서 구태여 이런 정보를 제공해 주는 이유를 나는 아직도 잘 납득할 수 없는데-"
"그러실지 모릅니다."
그는 여윈 몸에서 어디에 그런 힘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주먹을 쥔 오른 팔을 높이 흔들어 댄다.
"박사님! 이거 보세요! 저는 죽도록 그 놈을 미워합니다. 놈에게 손해를 줄만한 일이라면 무슨 일이라도 서슴지 않을 작정입니다. 저는 이 손에 대한 원한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겁니다."
지금 야마모도가 연극을 하고 있다면 그는 천부(天賦)의 배우 소질을 타고 났다고나 할까? 방 안에 있던 우리들은 그가 펄펄 뛰고 있는 모양을 보고 야마모도가 사사키에 대해 품은 원한이 정말 골수에까지 사무친 것처럼 느껴진다.
"흠- 이제 당신의 행동을 약간은 이해하겠오."
야마모도가 하는 짓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아저씨가 한 말이다. 아주 어려운 일을 부탁할 때처럼 야마모도는 다시 난처한 웃음을 띄운다.
"한 가지 더 요청이 있습니다. 저는 과학자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사사키에게 원자력 엔진을 설계한 것도 바로 접니다. 저의 일생의 관심사는 기계입니다. 죄송합니다만 박사님의 원자력 엔진을 한번 구경할 수 없을까요?"
"아니, 그건 왜 또?"
아저씨의 얼굴 표정이 흐려진다.
"우리의 설계는 스파이크 군이 이미 논문으로 발표한 건데요. 우리의 엔진은 그 설계에 따라 제작한 것일 뿐인데요."
"예 저도 그건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박사님!"
야마모도는 애원한다.
"단지 기계를 보는 것, 그것을 만져보는 것, 이것이 제 소원입니다. 화가가 다른 사람의 작품을 보고 싶어하듯 여하튼 나도 뚜렷하게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기분입니다."
아저씨는 잠시 머뭇거린다. 과학자가 다른 과학자의 작품을 보고 싶다는 심정에 공감이 가는 모양이다. 갑자기 결심한 듯,
"한번 보는 정도로는 상관없겠지. 태진아! 전자실장에게 방금 들은 이야기를 전하고, 소너로 바다 밑을 감시하고 동해의 기동함대에 연락해서 만약의 사태에 응원을 부탁토록 해라. 그리고 스파이크 군을 이리 오라고 전해라. 스파이크 군과 나는 야마모도씨를 안내해서 엔진을 구경시키겠다."
내가 방을 나올 때 그 수상한 사나이는 다시 기분이 회복되어 지껄이기 시작한다.
"고맙습니다. 박사님은 같은 과학자로서 저의 심정을 이해하신 모양입니다. 그저 기계를 구경하는 것뿐입니다. 번쩍번쩍하는 금속을 만져 보고, 알큰한 기계유의 냄새를 맡아보고…… 그것뿐입니다. 또 제가 설계한 엔진과 비교해서 말씀드리면 차후에라도 박사님에게 어떤 도움이 될지 누가 압니까? 헤헤……"
나는 부리나케 전자실로 달려가서, 실장에게 아저씨의 명령을 전달하고 스파이크 씨와 함께 아저씨의 서재로 돌아왔다. 아저씨와 스파이크 씨는 우주선으로 야마모도를 안내했다. 물론 나도 따라갔다.
야마모도는 엔진을 보자 예상 외로 별 말이 없다. 흡사 꿈꾸는 사람처럼 엔진의 외피를 어루만지며 혼자 무어라고 중얼거리곤 한다. 계기의 배선 상태를 보고 싶다기에 조정판을 뜯고 안을 보여주었다. 그 때, 야마모도가 발을 잘못 디뎌서 조정판 위에 쓰러졌다. 스파이크 씨가 그를 도와 일으켜 준다. 쓰러질 때 오른 팔을 호되게 다친 모양으로 그는 연신 팔을 주무른다. 우주선 안을 한 바퀴 쭉 둘러 본 야마모도는, 고맙다면서 연방 허리를 굽신거리며, 바짝 마른 그림자를 끌고, 올 때 탔던 보트로 어둠이 덮인 바다 위로 총총히 사라졌다.
 
아사의 예감
 
야마모도가 떠나자, 우리는 저녁에 닥칠 일이 걱정이 되어 그에 대한 생각을 말끔히 잊어버렸다. 밤새 우리는 전자실에서 소너가 그리는 브라운관의 반점을 주시했다. 그러나 브라운관에는 밤새 이상이 없었다.
새벽 4시경에야 잠자리에 든 나는 정신없이 골아 떨어져서 9시가 훨씬 지나서야 눈을 떴다. 충분한 휴식은 아니었지만 기분은 상쾌하다. 식탁에 둘러앉았으나 여행 때문에 맘이 들떠서 별로 식욕이 없다. 역시 재잘거리는 측은 이수미 아줌마다.
"밤에 우주선을 폭파하러 온다더니 아무 일 없이 지나갔어. 이상하잖아!"
"글쎄, 어떻게 된 셈일까? 야마모도가 탈출한 걸 보고, 그가 벌써 여기를 다녀간 걸 알고, 안 온 것이 아닐까?"
누나가 한 말이다.
"아마 틀림없이 그럴 거야. 이 쪽에서도 미리 준비가 되어 있을 테니 와 봐야 헛일이라고 생각했겠지. 아사 네 생각은 어때?"
아줌마가 스스로 편리하게 결론을 내려놓고, 그래도 불안했던지 아사에게 묻는다.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우리를 습격한다는 것은 야마모도의 거짓말인 것 같아.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큰 위험에 처해 있는 것 같은 느낌이야."
"위험에?"
누나가 불안한 표정으로 묻는다. 왜냐 하면 아사의 예감은 항상 적중했으니까.
"그래, 나는 뭐라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큰 사고가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아사, 제발 그런 기분 나쁜 생각은 말어. 꼭 비관론자처럼 말이야."
항상 낙천적인 아줌마가 아사의 어깨를 두드리며 아사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기분을 - 돌리려고 애쓴다. 이 때, 아저씨가 식당에 들어선다. 아저씨와 스파이크 씨가 우주선을 최종 점검했을 때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고 한다.
"회전 분사기의 회로에 한 군데가 단락되어 있었는데 스파이크 군이 금방 수리했다. 너희들은 11시 30분에 승선한다. 무슨 물어 볼 것 있나?"
아줌마가 질겁을 한다.
"물어 볼 건 없어도 야단 났어요. 나는 아직 백 한 가지나 할 일이 남았어요. 아침 설거지하고……"
아사와 누나가 도와주겠다고 해서, 아줌마의 호들갑을 겨우 멈추게 했다. 승선할 때까지 아직 시간 여유가 있어서 나는 스파이크 씨가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곳엘 갔다.
"이상한 일이야. 아사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고 했는데, 나도 그래."
스파이크 씨가 나를 보고 한 말이다.
"스파이크 씨답지 않은 소리군요. 도대체 무슨 사고가 난단 말입니까? 최종 점검 때 아무 이상이 없었다면서요. 이륙이 위험한 건 사실이지만, 우리가 뭐 한두 번 타 본 건가요?"
"그건 그래. 그러나 무어라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려운 일을 할 때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고 불안해."
아사와 누나가 아줌마의 설거지를 다 거들어주고 우리 있는 곳으로 온다.
"여기를 떠나는 것이 장말 섭섭해."
아사의 머리칼이 햇빛에 유난히 반짝거려서 아름다운 황금빛 머리칼이 올올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정말 이 곳은 아름다워. 넓은 바다, 시원한 공기, 푸른 나무, 끝없이 피어오르는 구름, 모두가 정말 좋아. 다만 걱정되는 건, 사사키가 헤시코스에 오면, 사람들을 악에 물들게 할까봐 겁이 나."
누나가 아사를 위로한다.
"박사님과 너의 아버지가 사사키를 격퇴시킬 묘안을 짜낼 거야. 걱정 마."
그러나 아사의 표정은 여전히 어둡다.
 
드디어 출발
 
11시 반. 우리들 6명은 전원 승선했다. 아저씨와 스파이크 씨는 컨트롤 패널 앞에 앉고, 나와 나머지 세 사람은 조정실 귀퉁이에 준비된 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안전벨트를 묶었다. 아저씨는 인터폰을 잡고 우주선 밖과 연락한다.
"전자 조정실장 나와주게, 오버."
"예, 전자실장입니다. 오버."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를 잘 듣고 내 말대로 시행 해주기 바라네. 첫째, 출발 후 항상 본선과 교신이 가능하도록 레이저 빔으로 쭉 본선을 추적해 주게. 둘째, 화성 방면으로 항진하는 다른 우주선이 있거든 즉시 본선에 연락해 주게. 셋째, 헤시코스로 가는 도중이거나 돌아오는 길엔 의외의 사고가 본선에 생기거든 나를 대신해서 사사키 일당의 만행을 세상에 공포하고 그들 일당의 발호를 세계의 여론으로 막도록 노력하고, 내 이름으로 한국은행에 예치된 전 연구 자금을 인출해서 기지 종사원의 퇴직금을 지불하도록 하게 알았나? 오버."
"알았습니다. 그러나 박사님 일행은 무사히 돌아오실 겁니다. 행운을 빕니다. 통화 끝."
아저씨의 비장한 말에 나와 누나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서로 마주보았다.
"발사대 나와라. 오버."
"발사대 나왔음. 오버."
"애드벌룬(풍선)에. 가스를 충전하라. 오버."
"발사대 알았음. 오버."
대원들은, 조정실 벽에 붙어 있는 텔레 스캐닝 TV화면을 응시한다.
지름 50미터의 풍선 위에 우리가 탄 작은 우주선이 얹혀 있다. 지름 7미터의 우주선을 중심에 올려놓은 채 윗 부분을 조금 잘라 낸 거대한 반구(半球)같이 생긴 풍선은 지금 수소 가스로 급속히 팽창하고 있다. 풍선 위를 잘라 내어 평평하게 된 곳에는 두 겹으로 된 초전도체 물질이 깔려 있고, 그 위에 덩그러니 올려진 우주선은 컴퓨터로 자세 제어를 받으며 풍선과 함께 공중으로 천천히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TV 화면에는 베이스 K 기지가 점점 작아져가고, 고도계의 지시는 100미터, 500미터 차츰 오른쪽으로 기울고 있다. 20분 후 고도계의 눈금은 5000미터.
아저씨가 체크 버튼을 누르자 버튼 옆에 붙어 있는 두개의 전구 중 푸른 전등이 반짝 빛을 켠다. 모든 계기는 정상이라는 신호다.
20세기 말엽까지도 계기 점검을 하려면 카운트다운이라고 해서 며칠씩 걸린 모양인데, 지금은 방금 아저씨가 한 대로 버튼 하나로 확인할 수 있다. 몇 분의 1초 밖에 걸리지 않는다. 기계 중 어느 한 부분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푸른 등 대신 붉은 등이 커지고, 그 부분을 맡고 있는 컴퓨터에도 붉은 등과 부저가 울리게 되어 있다.
계기가 이상 없음을 확인한 아저씨가
"3초 후에 도약, 2초 후에 점화한다."
대원들은 전부 의자를 수평으로 눕히고 천장을 향해 누운 자세를 취한다.
"3초, 2초, 1초, 영, 도약!"
아저씨의 말이 떨어지자 스파이크 씨의 오른 손에 쥐어진 두개의 리모콘(원격 조정) 중 한 개의 스위치가 눌려짐과 동시에, 우주선은 공중으로 도약한다. 처음에는 점점 멀어져 가는 풍선의 윗 부분이 보인다.
"2초, 1초, 영, 주엔진 점화!"
나는 무의식 중에 눈을 딱 감았다. 동시에 몸 전체를 잡아 누르는 듯한 중압감을 느낀다. 중력권 탈출은 언제나 고통스럽다. 잠잠하던 우주선은, 원자력 엔진의 울부짖는 소리와 진동으로 마치 생명을 되찾는 것 같다. 15초 후, 대기권을 어지간히 벗어난 모양이다. 우주선의 진동은 여전하지만 선체와 공기와의 마찰음은 거의 사라졌다.
"이온 엔진으로 전환!"
아저씨의 말이 떨어지자, 스파이크 씨의 오른손이 짧은 레버를 젖힌다. 선체의 진동이 뚝 그쳤다. 삼중 수소를 내뿜던 주 엔진이 정지하고 출력이 작은 수은증기의 이온 엔진이 가동된 것이다.
1960년대, 인간들인 처음으로 외계에의 비행을 시도할 때는 지구 표면에서부터 출발하는 방법 밖에 몰랐기 때문에, 막중한 우주차륜의 무게를 중력권 밖으로 끌고 나오기 위해서는 우주선 전체의 길이가 100미터가 넘고 무게도 3-4천 톤이나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요즈음은 우주차륜을 지구 표면이 아닐 6, 7km 상공까지 풍선으로 끌어 올려서, 그리고 메뚜기가 날 때 깡충 뛰어서 날 듯, 풍선 꼭대기에 붙은 두 겹의 초전도체물질에 거의 무한대의 전류를 흘려 풍선과 우주차륜이 같은 극의 수억 가우스의 자석이 되게 함으로써 풍선과 우주차륜은 서로 반발하여 메뚜기가 뛰듯 차륜이 공중으로 치솟게 되어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선 연료가 옛날보다 80% 이상이 절약되었고, 또 이것은 불과 5mm 정도의 두께로서도 모든 방사선을 충분히 차폐할 수 있는 변성 실리콘 수지가 발명됨으로써 옛날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만큼의 가벼운 원자력 엔진의 설계가 가능해진 때문이다.
이륙 후 꼭 35분 경과. 진공의 우주 공간으로 나왔다. 창 밖은 칠흑같이 어둡고 군데군데 반짝이지도 않는 별이 박혀 있다. 텔레 스캐닝 TV에는 공처럼 생긴 지구가 화면 전체를 메우고 있다. 저 공 속에 40억 가까운 인구가 득실대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는 사사키도 야마모도도 물론 있겠지. 주위는 쥐 죽은 듯 조용하다. 이온 엔진의 약한 진동음 뿐 죽음의 세계에 들어선 것이다. 2억 2천만 킬로미터의 긴 여행을 시작한 것이다.
 
첫번째 위기
 
컨트롤 패널 앞에는 스파이크 씨만 앉아 있고, 아저씨는 옆방의 연구실로 가버렸다. 아줌마와 아사도 취사실에서 무슨 별다른 요리를 만든다고 나오지를 않는다. 나와 누나는 레이저 펄스로서 항속과 항로를 체크하고 있다. 이온 엔진의 가속으로 우주선은 점점 가속되고 있다. 현재의 속력은 0.3 광속도에 접근하고 있다.
'태진아! 이리와!"
기절할 듯이 놀란 스파이크 씨의 목소리다. 깜짝 놀라 스파이크 씨 쪽을 쳐다본 나는 순간 절망감 같은 것에 의해 전신의 힘이 쭉 빠진다. 스파이크 씨의 눈알은 똑바로 박혀 있고, 자세는 엉거주춤 굳어 있다. 회복할 수 없는 위험에 직면한 표정이다.
"빨리, 박사님을 오라고 해라."
수 초 동안 얼빠진 듯이 멍하니 쳐다보고 있던 스파이크 씨가 겨우 한 말이다. 나는 부리나케 아저씨를 모셔왔다. 스파이크 씨의 표정으로부터 벌써 절박한 사태를 짐작한 아저씨지만 기장답게 침착하게 말한다.
"스파이크 군, 무슨 일인가?"
"여기 패널 이 쪽에 귀를 대 보십시오!"
나와 아저씨는 거의 동시에 스파이크 씨가 가리킨 부분에 귀를 대어본다. 그런데 약한 이온 엔진의 진동음에 섞여 때아닌 시계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아니, 시계 소리 아닌가!"
귀를 댄채 아저씨가 스파이크 씨를 쳐다보며 한 말이다.
"그렇습니다. 시계 소립니다. 시한 폭탄 소리입니다."
메마른 입술을 축이며, 스파이크 씨가 겨우 뱉은 소리다.
"시한 폭탄!"
성대가 조여지듯 들려오는 아저씨의 신음.
"야마모도가 시한 폭탄을 처넣은 겁니다. 어제 그 놈이 엔진을 보고 싶다고 할 때, 이 패널을 열어 보여 주었거든요. 그 때, 그 놈이 쓰러진 걸 기억합니까? 일부러 쓰러지면서 우리의 주의를 딴 곳에 모아 놓고 그 틈에 폭탄을 집어넣은 겁니다."
뼈를 깎는 듯한 후회와 저주를 담은 스파이크 씨의 넋두리다.
"자! 빨리 패널을 열어 보자."
애써 침착을 되찾으며 아저씨가 재촉한다. 아저씨와 스파이크 씨가 떨리는 손으로 후크를 벗기고 패널을 열었다. 이온 엔진의 약한 진동음과 시계 소리가 더 크게 들려온다. 그러나 어두워서 어디에 있는 건지 보이지는 않는다.
"태진아, 아토믹 토치(원자력 등불)를 가져오너라."
나는 기기실로 달려가서 토치를 가져다 주었다. 서치라이트 같이 센 토치의 불빛은 어두운 곳을 비추었다. 불빛을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한 군데 멈추었다. 있다! 엔진 시동용 배터리 옆에 초록색을 띤 물체가 붙어 있다.
"들어가 봐야지."
하고, 혼자말로 중얼거리며 아저씨가 패널 속으로 고개를 밀어 넣고 어깨를 집어넣으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어림없다. 구멍이 너무 좁은 거다.
"아저씨 비키세요. 제가 해 보겠어요."
아저씨가 무어라고 말릴 기회를 주지 않고, 나는 잽싸게 머리와 몸뚱이를 구멍 속으로 밀어 넣었다. 아저씨의 목소리가 등뒤에서 들린다.
"그래 용타. 최선을 다 해 보아라. 스파이크 군, 방사능이 오염될 지 모르니 엔진을 끄게."
엔진의 진동음이 그쳐 버리니 시계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나는 엔진을 지지하고 있는 철봉을 따라 한치 한치씩 접근해 갔다. 목이 탄다. 어깨가 후들후들 떨린다. 나는 혼자 스스로를 타이른다.
"태진아, 기운을 내라. 기운을 내. 네 한 손에 전 대원의 생명이 달려 있다. 아니, 그 뿐 아니라 전 인류의 장래가 네 손에 달려 있다. 우리가 여기서 죽으면 뇌파 증폭기는 틀림없이 사사키 손에 들어갈 거고 그렇게 되면……"
사사키와 뇌파 증폭기의 생각이 떠오르니 한결 진정되는 것 같다. 시한 폭탄은 이제 바로 코 앞으로 다가왔다. 오른 손을 내밀었다. 아직 좀 모자란다. 조금 더 전진한다.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는 거리가 된다.
나는 손을 뻗어 그 놈을 잡으려고 하지만, 신들린 사람처럼 팔이 떨려서 잘 되지 않는다. 폭탄에 손을 대자마자 그놈이 꽝 터질 것 같다. 그렇게 되면 우주선도 없어지겠지만 나, 태진이는 갈기갈기 찢어져서 무한한 우주 공간을 떠돌아다니다 우주 먼지가 되겠지. 자식아! 우주 먼지가 되는 것은 너뿐이 아니다. 아저씨도 아사도 누나도 스파이크 씨도 마찬가지다. 기운을 내라. 기운을 내 마지막 순간에 이렇게 시간을 지체하면 어떡하니.
나는 독사라도 잡는 기분으로 눈을 꽉 감고 폭탄을 덥석 잡았다. 꽝! 터지지는 않는다.
대신 차가운 감촉과 시계의 진동이 더 크게 느껴진다. 힘을 주어 폭탄을 떼어 내려 한다. 그러나 잘 안 떨어진다. 센 영구 자석이 금속제 배터리 케이스에 꽉 달라붙어 있다. 두 손으로 거머쥔다. 다시 당겨 본다. 역시 안 떨어진다. 토치를 비추어 주며, 초조하게 지켜보던 아저씨의 목소리가 굴속에서처럼 우렁우렁 들려온다.
"태진아, 떼라 떼! 어떡하든지 떼어 내라. 힘을 내라."
두 손으로 잡은 채 안간힘을 써 보지만 옴짝달싹도 않는다. 이젠, 두 손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폭탄이 미끄러지기만 한다. 30초뿐이다!
이럴 때, 망치라도 있으면 옆으로 두들겨서 떼어 보기라도 하겠는데, 그러나 지금은 도로 기어 나가서 망치를 가져올 여유가 없다. 아저씨가 던져주더라도 좁은 틈 사이로 여기까지 용케 닿을 수도 없다.
나는 러닝 셔츠를 뜯어서 붕대처럼 손에 감았다. 셔츠도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다. 붕대를 감은 손으로 폭탄을 힘껏 내리쳤다. 뒷골이 찡하도록 통증이 온다. 그러나! 약간 움직인다. 나는 이를 악물고 계속해서 내리친다. 이 놈!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또 내리친다. 폭탄은 배터리 케이스의 가장자리로 조금씩 미끄러져 나간다. 이놈! 이놈! 나는 악을 쓰며, 내리치고 또 내리친다. 주먹이 불덩이 같이 뜨겁다. 폭탄이 이제는 배터리 가장자리에 반쯤 물렸다.
두 손으로 잡고 혼신의 힘으로 잡아당긴다. 딱 떨어진다. 덕택에 뒷 꼭지가 철봉에 호되게 부딪혔다. 그러나 그런 건 문제가 아니다. 이제 이 놈을 빨리 들고 나가야 한다. 앗! 그런데! 시계 소리가 뚝 그쳤다.
"아저씨, 시계 소리가 안 들려요!"
"빨리 갖고 나오너라. 30초 후에 폭발한다."
나는 폭탄을 든 채 결사적인 포복을 감행한다. 하나 둘 셋…… 벌써 20초도 넘은 것 같다. 이를 악물고 입구, 입구만을 향해 기어나간다. 손과 얼굴이 부딪히고 긁히는 것은 이젠 문제가 아니다. 30초, 30초 이내에 입구까지 끌고 나가야 한다. 아저씨의 손이 이만큼 들어와 있다. 나도 폭탄 든 손을 내민다. 그러나 아직 안 미친다. 조금씩 기어나가면서 손을 다시 내밀어 본다. 아직 안 자란다. 기어나가며 또 내민다. 아! 드디어 아저씨의 손이 폭탄에 닿았다. 폭탄이 아저씨의 손에 잡혀서 굴 속을 빠져나갔다.
"빨리 쓰레기 총을……"
다급하게 외치는 아저씨의 소리가 들린다. 우주 공간에서 만 부득이 버릴 쓰레기나 물체가 있으면 소독해서 공간으로 쏘아 낸다. 지금 아저씨는 그 쓰레기 버리는 총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폭탄을 밖으로 쏘아 버리려는 것이다.
 
연달아 닥치는 위기
 
쓰레기 총이 장전되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쿵' 둔탁한 진동음이 들린다. 폭탄을 밖으로 쏜 것이다. 아니 쿵하는 쓰레기 총의 진동음과 거의 동시에 그보다 몇 배나 더 큰 진동이 그 뒤를 따랐다.
동시에 우주선 외피에 무엇이 부딪히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온다. 폭탄이 바로 밖에서 폭발한 것이다. 그래서 그 파편이 우주선 외피에 날아들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위기일발의 시간. 주위는 다시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나는 패널 입구에 얼굴을 내민 채 땀으로 완전히 목욕을 한 상태로 조정실 안을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완전한 침묵과 고요가 무의미하게 계속된다. 폭탄이 외피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터졌다면 우주선에 구멍이 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대원들은 이제 다음에 올 우주선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완전한 침묵이 5분 간 계속되었다.
그 침묵을 아저씨가 깼다.
"자, 태진아 이제 나오너라. 정말 수고했다. 현재로서는 별 이상이 없다. 이리 나와서 항로를 계속 체크해 보아라. 몇 분 동안 엔진을 껐기 때문에 항로가 태양 쪽으로 많이 기울어졌을 거다. 자, 그리고 스파이크 군, 주 엔진을 점화해서 항로를 수정해야 될 것 같네."
아저씨의 말이 떨어짐과 거의 동시였다. 갑자기 선 내의 전등이 모조리 꺼져버렸다. 불이 꺼지는 것과 함께 찌…… 찌…… 괴상한 음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아니 이건 또 무슨 벼락인가. 우주선 전체가 불에라도 타고 있는 것 같다. 찌……찌…… 칠흑 같은 어두움 속에서 들리는 괴상한 소리, 찌……찌……
 
자장(磁場) 함정
 
찍찌……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상한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 온다. 그것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반도체 태양 전지 패널에 이상이 생긴 것 같다. 스파이크 군, 전력을 원자력으로 대치하게."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아저씨의 목소리다. 그제야 멍한 상태에서 깨어난 듯, 스파이크 씨가 아토믹 토치를 비추면서 동력 전환 스위치를 잡아 젖힌다. 조정실이 환하게 밟아졌다. 우선은 살 것 같다. 그러나!
더 기막힌 사실이 조정실이 밝아지면서 밝혀졌다. 조정석 앞에 있는 패널에는 모조리 붉은 불이 켜 있지 않은가! 우주선의 각 부분이 전부 고장이란 뜻이다.
그 붉은 등 중에서 우리들의 시선이 못 박힌 곳은, 외부의 방사능 강도를 측정하는 방사능 강도 기록기이다. 기록지 위를 움직이게 되어 있는 핀이 휘어져 있지 않은가! 기록 용량을 넘어선 센 방사능이 닿아서 계기를 망쳐버린 것이다.
"무서운 방사능 대에 들어선 것 같다. 태진이가 폭탄을 꺼내려고 패널 안으로 들어갈 때, 10여 분 간 엔진을 껐기 때문이다. 추진력이 없었기 때문에 컴퓨터 항로 추적기도 우주선 외피 밖으로 나온 렌즈 시스템이 시한 폭탄의 파편에 맞아 고장인 것 같다. 하여튼, 이런 상태에서 2시간 이상 지나면 우리 모두는 치사량의 방사능에 오염된다."
온통 붉은 전등으로 수 놓여진 조정석 패널을 쳐다보며 아저씨가 한 말이다.
"박사님, 이 자이로 진자가 이상한 운동을 해요."
등 뒤에서 누나가 갑자기 한 말이다.
"어디 보자."
깜짝 놀란 듯이 아저씨가 누나 곁으로 달려간다. 누나가 가리키고 있는 자이로 진자의 운동을 아저씨가 세밀히 관찰하고 있다.
"음! 돌고 있구나. 이거 야단났구나. 자장 트랩 (함정)에 빠졌다. 찌찌하는 소리는 고속의 대전 입자가 지나가면서 우주선에 고압의 전류를 유기시켜서 방전하는 소리고, 우주선 외피에 유기된 전류 때문에 고속의 대전 입자의 자장 때문에 나선 운동을 하면서 이 방사능대 속을 돌고 있는 것이다."
자이로 진자는 우주선의 가속 방향을 보기 쉽게 하기 위해 만든 간단한 진자(흔들이)이다. 이것이 약 2분에 한번쯤 돌고 있는 것으로 보아 우주선이 주기가 2분인 나선 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 아저씨의 말인 것이다.
 
눈이 먼 우주선
 
"에그머니! 그림 박사님 우리는 이 자석띠 속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는 말씀이세요?"
아저씨의 설명을 듣고 있던 누나가, 울상이 되면서 물은 말이다.
"제양! 염려마라. 방법이 있을 것이다. 침착하게 앉아 있거라."
하고,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누나를 레이저 펄서 옆에 있는 의자에 살그머니 앉힌다. 굳은 얼굴을 하고 조정석에 앉아 있는 스파이크 씨 옆으로 아저씨가 돌아왔다.
"스파이크 군! 할 수 없네. 장님 흉내를 내야겠네."
스파이크 씨가 말뜻을 몰라 아저씨를 올려다본다.
"이것 보게. 레이저 펄서까지 붉은 등이네. 우주선은 장님이 된 거야. 지팡이 없이는 오도가도 못하는 장님 말일세. 방안에 있다가 갑자기 불이 나갔네. 그러면 싫어도 장님 행세를 하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문을 찾는 유일한 방법은 팔을 뻗어 더듬을 수밖에 없지. 이 쪽으로 더듬다가 안되면 다른 쪽을 더듬고…… 그런 식 말고는 문을 찾는 방법이 없지. 우주선이 눈이 멀었으니까, 아무 방향으로도 우선 달려봐야지. 그래서 용케 자장을 벗어나면 레이저 펄서를 수리하세. 지금 같은 방사능 강도에서는 우주선 밖에 10분 이상 나가 있을 수 없어. 자! 주 엔진을 점화해서 우주선의 속력을 0.4 광속도로 해서 이리저리 달려보세."
 
우주선이 뜨거워진다
 
자조 섞인 아저씨의 긴 설명을 듣고 있던 스파이크 씨가 간단히 대꾸한다.
"그렇게 해 봅시다. 박사님."
스파이크 씨가 캐도늄 제어봉을 앞으로 쑥 뽑았다. 갑자기 우주선에 맹렬한 진동이 온다. 노즐에서 뿜어 나가는 삼중수소가 우주선에 진동을 주는 것이다. 우선 살 것 같은 기분이다. 무의미한 침묵과 뇌신경을 자극하는 찌…… 하는 소리뿐이던 우주선에 가스 분출의 반동으로 생기는 맹렬한 진동은 우주선이 아직 건재 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것이다.
우주선의 생명은 뭐니 뭐니해도 추진력이다. 추진 장치에 고장이 있으면 고칠 방법이 없지만, 우선 이 추진 장치가 완전하고 보면, 아직 절망할 필요는 없다. 우주선이 날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신경을 찌르는 찌찌…… 하는 방전음은 여전히 들려오고 있지만 추진력 반동에 의한 진동으로 확실히 우리도 약간의 생기를 되찾았다. 부엌에 있던 아사와 아줌마까지 나와서 스파이크 씨를 쭉 에워쌌다. 스파이크 씨는 정확하게 20분 간격으로 우주선의 진행 방향을 45도씩 바꾸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360도의 방향 전환에 140분, 약 2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계산하고 있는 것이다.
0.4광속도, 즉 광속도의 10분의 4의 속도로서 45도의 방향전환을 한다는 것은, 지상에서 시속 100마일로 하이웨이를 달리던 차가 180도의 방향 전환을 할 때에 차에 닥칠 위험과 같은 정도의 위험이 우주선에 생긴다. 시속 100마일의 자동차가 갑자기 180도의 회전을 하면 10중 8, 9 자동차는 전복한다. 큰 운동량의 갑작스런 변동으로 차에 타고 있는 사람은 앉은 자리에서 튕겨져 나와 유리를 깨고 차 밖으로 내동댕이쳐질 가능성이 큰 것이다.
우주선은 방향을 바꿀 때마다 선체에 생기는 큰 스트레스로 끼-ㄱ-, 긴 금속성의 비명을 지른다. 우주선체 바로 밖에서 터진 폭탄 때문에 선체에 어떤 흠이 생겨 있을지도 모르는 이 판국에 이렇게 심한 스트레스를 계속 우주선에 준다는 것은 말할 수 없이 위험하다. 그러나 이런 위험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면서도 아저씨와 스파이크 씨가 이렇게 위험스럽게 우주선을 운전하고 있는 것은 물론 제한된 시간 때문이다. 2시간! 2시간 내에 우리는 이 자장의 함정을 벗어나야 한다. 2시간이 지나면 대원 전원에게는 치사량의 방사능이 온 몸에 쏘이게 된다고 했다.
45분이 지났다. 그러나 여전히 찌찌…… 하는 무서운 방전음 속을 빠져 나가지 못하고 있다.
"박사님 ! 선실의 온도가 자꾸 올라가요!"
갑자기 누나가 한 말이다.
"응?"
계속되는 위험에 신경이 둔해졌는지 무슨 뜻인지 몰라 아저씨가 누나를 멍하니 쳐다본다.
"저 온도계 좀 보세요. 25도에요. 아까부터 자꾸 더운 것 같아서 온도계를 보았더니 글쎄……"
누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인다. 침통하게 온도계를 응시하며 아저씨는 말이 없다.
"센 자장 속에서 우주선이 맹렬한 속도로 움직이니까 선체에 큰 소용돌이 전류가 흘러서 우주선이 가열되는구나. 발생 열량이 너무 많아서 반도체 온도 조절기가 제대로 동작을 못하는구나. 하여튼 좀 두고 보자."
힘없이 말을 마친 아저씨는 조정석의 스파이크 씨 옆에 털썩 주저앉아, 고개를 숙이고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눈치다.
다시 15분이 지났다. 자장 함정을 벗어나지 못한 건 물론이고 선실의 온도가 올라가서 대원들의 얼굴에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돋아나 있다. 35도. 15분 동안에 10도가 올라간 것이다. 계속 이런 비율로 온도가 올라간다면 30분 후에는 55도가 될 것이다. 그 동안에 우주선이 주파한 거리는 대략 계산해 보아도 실로 4억 킬로미터에 접근하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 마의 함정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추측컨대, 우주선은 직선 거리를 비행하지 못하고 자장 때문에 진로가 휘어져서 뺑뺑 도는 나선 운동을 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결 단
 
65분 경과. 땀에 얼룩진 얼굴을 빛내면서 아저씨가 조종석에서 마침내 천천히 일어선다․.
"스파이크 군, 속도를 0.1광속도로 줄이게. 함정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고속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발생하는 맴돌이 전류를 크게 해서 우주선의 온도만 올려주는 효과밖에 없겠네. 할 수 없네. 레이저 펄서의 렌즈 시스템을 고쳐서, 베이스 K의 방향 지시를 받을 수밖에 없겠네. 아까도 말했지만 이런 방사능 강도에서는 우주선 밖에서 10분 이상 있을 수 없네. 다시 말하면, 10분 내에 렌즈 시스템을 수리해야 해."
말을 잠시 중단하고 아저씨는 대원들을 새삼스럽게 쭉 둘러보다가 침을 꿀꺽 삼키면서 결연히 말한다.
"내가 나가서 렌즈 시스템을 수리한다."
잠시 동안 선실에는 침묵이 흐른다. 다만 기분 나쁜 방전음 만이 선실을 채울 뿐. 마침내 아저씨가 수리함에서 여분의 렌즈 시스템과 연장을 꺼낸다.
 
논쟁
 
꺼낸 렌즈 시스템을 재빠른 솜씨로 하나 하나 점검하고 나서, 밖에 입고 나갈 우주복을 챙기고 있다. 우리는 아저씨가 하는 양을 물끄러미 보고만 있다. 이 때,
"박사님, 제가 나가겠어요. 박사님이 나가신다면 고장난 우주선의 여러 가지 증세에 누가 적당한 지시를 내리겠어요. 제가 나가겠어요."
하고, 갑자기 나선 사람은 뜻밖에도 이수미 아줌마가 아닌가! 말을 마친 아줌마가 아저씨의 손에서 우주복을 뺏어 든다.
"아니- 아줌마가- "
너무나 뜻밖이라는 듯이, 아저씨는 아줌마를 한참 쳐다보다가, 다시 우리를 쭉 둘러본다.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우주복을 이리 주어요. 여자가 나설 곳이 아니에요."
하고, 아저씨가 다시 우주복을 뺏으려 든다. 아줌마는 재빨리 우주복을 뒤로 감추면서 야무지게 항변한다.
"박사님, 무어라구요. 여자가 나설 곳이 아니라구요? 그게 무슨 케케묵은 소리에요. 어째서 제가 나가면 안 되지요?"
조금도 양보할 수 없다는 듯이 서슬이 시퍼래서 달려드는 아줌마에게 아저씨는 별로 반박할 이론적 근거가 없는지,
"하여튼 안 된다면 안 되는 줄 알아요! 어서 그 우주복 이리 내요. 아줌마는 이 어려운 일을 해 낼 수 없어요."
"뭐라구요. 해 낼 수 없다구요. 제가 기계 공학을 전공했다는 사실을 박사님은 잊고 계시는군요. 저도 베이스 K에 들어갈 때, 어려운 시험을 다 거쳐서, 박사님 자신에게서 엔지니어의 자격을 인정받았던 거예요. 그 사실을 잊지는 않았겠지요?"
하도 야무지게 공박해오는 바람에 아저씨도 말을 잇지 못한다. 참다못해 내가 나선다.
"아줌마 이리 주세요. 제가 나가겠어요."
"여긴 또 뭐야, 네가 나가?"
아줌마는 눈을 똑바로 뜨고 나를 노려본다.
"안 돼. 이런 일에 어린애가 나서는 게 아니야. 너는 잠자코 있어."
나는 오랫동안 같이 생활해 오면서 아줌마의 이런 면은 한 번도 본 일이 없다. 그는 우스개 소리만 잘 하는 아줌마, 조금만 우스운 일이 있어도 참지 못하고 깔깔대는 아줌마, 태산이 무너져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태평스런 아줌마. 이런 것이 아줌마에 대한 나의 인식의 전부였다. 아니 비단 나뿐이 아니다. 아저씨도 누나도 스파이크 씨도 나와 같이 느껴왔으리라. 그런데! 지금의 아줌마는-. 조금 전에 나를 쳐다보던 아줌마의 표정은 추상같았다. 감히 무어라고 다른 소리를 끄집어 내지 못하게 하는 위엄이 있었다. 나는 잠자코 있을 수밖에 없다. 무어라고 대들었다가는 뺨이라도 한대 얻어맞을 형편이다.
 
10분 안에 들어와요
 
아저씨가 이제는 사정을 한다.
"아줌마, 이리 주어요. 아줌마의 뜻은 알겠지만 지금 우리는 위험에 처해 있어요. 이럴 때, 책임자인 내가 모든 것을 처리해야 될 것 아닙니까?"
그러나 아줌마의 태도는 어림없다.
"맞습니다. 박사님, 말씀 잘 하셨어요. 박사님은 책임자이십니다. 책임자 되시는 분이 어떻게 그런 곳에 생각이 미치지 못하십니까? 박사님은 책임자이기 때문에 경솔하게 행동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책임자에게 만일의 일이라도 생긴다면 나머지 대원은 어떻게 되라는 것입니까? 전쟁터에서 장군은 항상 후방에 있으면서 최고의 작전 지시를 내려야 합니다. 박사님은 최고 책임자이기 때문에 최후의 순간까지도 냉정을 잃지 말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베스트의 상태에 있으면서 명석한 판단으로 대원에게 지시를 내려야 합니다. 자, 더 이상 논쟁을 벌릴 시간이 없습니다. 렌즈 시스템을 수리하는 데 필요한 이야기가 있으면 들려 주세요."
아줌마의 논리에 아저씨도 이젠 할 말이 없는 모양이다.
"아줌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겨우 말을 꺼낸 아저씨는 종이를 펴놓고 렌즈 시스템 수리에 필요한 이야기를 그림을 그려 가면서 설명한다. 아저씨의 간단한 설명을 듣고 난 후, 아줌마는 우리의 도움으로 우주복을 입고, 공구 세트와 렌즈 시스템을 허리에 매어 달고 에어 록이 있는 곳으로 간다. 스파이크 씨가 스위치를 돌리자 에어 록의 문이 소리 없이 열린다. 아줌마는 거리낌없이 에어 록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에어 록 문 앞에서 아저씨가 다시 아줌마에게 확인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10분 안에는 우주선 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설사 수리가 덜 되었더라도 그대로 들어와야 합니다. 다시 말하거니와 10분 안으로 꼭 들어와야 합니다."
아줌마는 간단히
"알겠어요. 박사님"
하고는 대원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 에어 록을 닫아버린다.
"아줌마-"
하고, 가늘게 외친 누나는 아사의 어깨를 부둥켜안고 울고 있다.
 
이수미 아줌마의 활약
 
이수미 아줌마가 사라진 에어 록에는 기압이 급격히 하강하고 있다. 기압 상태에서 밖과 통하는 문을 그대로 열어 버리면 선 내의 공기가 진공의 우주로 분출해 나가면서 수십 톤의 힘으로 사람을 밖으로 내동댕이 쳐버린다. 그래서 우주선 밖으로 나갈 때는 먼저 에어 록 내의 공기를 진공 펌프로 뽑고 난 뒤에 문을 열어야 한다.
진공 펌프 돌아가는 소리가 그쳤다. 에어 록의 공기가 거의 다 빠진 것이다. 아저씨는 목석처럼 제자리에 굳어 있다. 아사와 누나는 서로 얼싸안고 의자에 쓰러져 버린다. 스파이크 씨만이 콘트롤 패널의 각종 계기를 부지런히 점검하고 있다.
에어 록에 빨간 불이 켜졌다. 밖으로 통하는 문이 열렸다는 신호다. 나는 반사적으로 손목 시계를 쳐다본다. 큰 바늘이 3을 가리키고 있다. 이 바늘이 5를 가리키기 전에, 즉 10분이 지나기 전에 아줌마가 선 내로 들어와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아줌마는 치명적인 방사능에 오염될 것이다. 2분이 지났다. 텔레 스캐닝 TV도 고장이기 때문에 선체 밖에 나가 있는 아줌마를 볼 수가 없다. 선 내의 공기는 호흡이 곤란할 정도로 뜨겁다.
"레이저 펄서를 동작시켜 보아라."
하는 아저씨의 말에 나는 급히 펄서의 전원 스위치를 넣었다. 펄서는 잘 동작하고 있다. 그러나 반사광을 포착하는 스코프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레이저 빔이 선체 밖으로 빠져 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폭탄이 터질 때, 선체 밖으로 나와 있는 렌즈 시스템을 부수면서 경통을 막아버린 것이 분명하다.
"아줌마, 들려요?"
아저씨가 인터폰에 대고 한 말이다.
"잘 들립니다. 박사님."
인터폰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카랑카랑한 아줌마의 소리.
아줌마의 목소리라도 들으니 한결 마음이 놓인다.
"렌즈 시스템의 고장 상태는 어때요?"
"염려할 정도는 아닙니다. 경통이 꾸부러져 있습니다만 새 것과 금방 교환할 수 있겠습니다."
하는 아줌마의 대답. 경통이 휘어졌어? 염려할 정도가 아니라고? 천만에 말씀! 아줌마는 우리를 안심시키려고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말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경통이 휘어질 정도면 일은 커졌다. 왜냐 하면 움푹하게 들어간 곳에 있는 경통이 폭탄의 열 때문에 휘어질 정도면 경통 부근의 파괴상은 간단히 수리할 정도가 아닌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쉽게 교환되겠어요? 쉽게 고쳐질 것 같지 않거든 다시 들어와서 의논하도록 합시다."
이마에 송송히 돋은 땀방울을 훔치며, 아저씨가 인터폰에 대고 한 말.
"염려 마세요. 고장은 대수롭지 않습니다. 다시 연락할 때까지 기다리세요. 통화 끝."
역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카랑카랑한 소리. 이어 선체 외피를 깎는 전기톱의 소리가 들려온다. 갑자기 들려오는 전기톱의 진동음에 아저씨와 나는 기약 않고 서로 눈이 마주쳤다. 톱소리! 심상찮다. 톱으로 외피를 잘라 내야 될 형편이라면 일은 분명코 간단치가 않다.
톱소리는 그치지 않고 들려온다. 상상해 보라. 초속 12만 킬로미터로 날으는 로케트의 껍데기(외피)에, 연약한 여자가 달라붙어서 필사적으로 전기톱을 휘두르고 있는 광경을. 나는 메마른 입술을 축이며, 손목 시계를 들여다본다. 바늘은 벌써 4를 넘어서고 있다. 이 바늘이 5까지 가기 전에, 즉 5분이 지나기 전에 렌즈 시스템이 수리되어야 한다.
조바심 나는 마음을 달랠 길이 없어, 펄서의 스위치를 또 넣어 본다. 스코프에는 여전히 깜깜 무소식. 아저씨는 벌겋게 충혈되도록 턱을 문지르고 있다. 손목 시계를 초조하게 들여다보면서, 아사와 누나도 의자에 한 덩어리가 된 채로 시계를 부지런히 들여다보고 있다. 시계를 보기가 겁이 나서 시계 찬 손을 되도록 외면하려 하지만 눈은 저절로 시계 찬 손으로 간다. 아줌마가 에어 록 밖으로 나간지 꼭 8분이 되었다. 9분. 1분밖에 남지 않았다. 마침내 아저씨가 인터폰의 수화기를 집어든다.
"아줌마, 이제 그만하고 들어오세요.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
"아줌마 안 들려요. 그대로 들어와요!"
카랑카랑한 아줌마 소리가 스피커를 울린다.
"박사님, 염려 마세요. 염려하는 것만큼 방사능 강도가 크지 않습니다. 그리고 작업이 거의 다 마쳐 갑니다."
"안돼요! 아주머니! 그대로 들어오시오. 명령이요."
"다시 명령하거니와, 지금 곧 선 내로 들어와요."
"박사님 조금만 기다리세요."
아저씨는 송화기를 든 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스피커만 들여다보고 있다. 다시 시간은 2분이 초과되었다. 여전히 톱 소리가 들려 오고. 다시 더 2분. 아줌마가 나간지 꼭 14분이 되었다. 갑자기 톱 소리가 멈추었다. 아저씨가 인터폰에 대고 큰 소리로 말한다.
"아주머니 14분이어요. 그대로 들어오시오!"
"안 들려요? 들어와요. 이제 더 이상 기장의 명령에 불복종하면, 다른 여행 때는 아주머니를 제외하겠오."
"……"
여전히 스피커는 침묵이다.
선실에는 숨막힐 듯한 침묵이 흐른다. 톱 소리까지 그쳤으니 밖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불안해지지 않을 수 없다. 누나는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아저씨가 다시 송화기를 끌어당긴다.
"아주머니, 내 말이 들립니까? 들리거든 대답하세요. 오버"
"……"
"아! 박사님. 펄서 스코프에 반사 반점이 나타났어요."
이 때,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누나가 외치는 소리에 아저씨와 나는 반사적으로 펄서 스코프로 고개를 돌렸다. 스코프에는 바라고 바라던 푸른 반점이 나타나지 않는가! 레이저 빔이 우주선체를 빠져 나가 다른 물체에 부딪쳤다가 다시 펄서에 수신되었다는 표시인 것이다.
"레이저 빔이 수신됩니까? 박사님."
스코프를 들여다보며 감격에 차 있는 우리들은 순간적이나마 방사능 빗속에 있을 아줌마를 잠시 잊고 있었다. 이 때, 우리의 정신을 일깨우듯이 카랑카랑한 아줌마의 소리가 들려 왔던 것이다.
"예, 수신 상태 양호합니다. 빨리 들어오세요. 아주머니."
감격에 찬 아저씨의 대꾸였다. 아줌마가 나간지 19분이 넘고 있다. 에어 록에 푸른 불이 켜졌다. 아줌마가 에어 록 안으로 들어와서 외피의 문을 닫았다는 표시다. 이어, 에어 록 안으로 공기가 들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문이 열린다. 아주머니가 우주복 차림으로 걸어 나온다. 얼굴은 백짓장처럼 창백하다. 그런데! 가금에 꽂힌 도시메터(방사능 감지기)는 꼭대기까지 빨갛게 물들어 있지 않은가. 허용량 이상의 방사능 오염을 뜻하는 것이다.
"빨리 방사능 클리닝 룸(소제하는 방)으로."
하는, 아저씨의 말에 스파이크 씨가 달려들어 아줌마를 덥썩 안고 클리닝 룸으로 종종걸음을 친다.
 
사사키가 온다
 
아주머니를 클리닝 룸에 갖다 누이고 클리너(소제하는 약품)의 스위치를 넣고 난 뒤, 스파이크 씨가 조종실로 다시 달려왔다.
"아사와 제양은 클리닝 룸에서 아주머니를 간호해라. 자, 스파이크 군, 로케트를 1마이크로 광속도로 떨어뜨리게. 베이스 K와 연락해서 방향 지시를 받아야겠네. 아사 양과 제 양은 지금부터 정각 2분 후에 심한 감속을 하게 될테니 그 때까지는 안전 벨트를 잡아매도록."
아저씨의 지시와 설명이 끝나자 아사와 누나는 클리닝 룸으로 가고 조정석 안의 우리들은 로케트의 진행 방향에 90도가 되도록 의자를 회전시켜 벨트로 묶었다.
"1초 후에 역추진, 4초, 3초, 2초, 1초, 영 분사!"
아저씨의 카운트다운이 끝나자, 수십 메가와트의 역추진 에너지 분사로 로케트는 격렬하게 진동하기 시작한다. 선체의 맹렬한 진동음 때문에 그렇게 극성스럽던 이온의 방전음도 일순 들리지 않는다. 0.4광속도로 비행하는 로켓이 베이스 K의 진행 방향 지시를 받으려 해야 헛일이다. 왜냐 하면, 로켓의 레이저 펄서에서 복사되는 레이저 빔을 베이스 K가 수신하여 방향 지시를 보내올 때는 로켓의 속도가 너무 엄청나기 때문에(광속도 10분의 4) 이미 로케트는 최초의 신호를 보내고 난 위치에서 벌써 수십만 킬로미터나 위치를 바꾸고 난 뒤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득이 로켓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데, 작은 속도(1마이크로 광속도 음속)로 비행하는 것은 오차가 거의 없기 때문에, 아저씨는 로켓의 속도를 1마이크로 광속도로 줄일 것을 지시한 것이다.
0.4광속도로 비행하던 로켓을 1마이크로 광속도로 떨어뜨리는 것은 재래식의 화학 연료 로켓으로서는 어림없는 일이다. 이렇게 하는데는 중력권 탈출에 필요한 연료의 수천 배가 들기 때문이다. 다행히 우리 우주선은 삼중 수소를 추진제로 하는 원자력 로켓이기 때문에 적은 연료로서도 그만한 효과를 낼 수 있다. 역추진 분사가 시작되고 20분이 지났다. 펄서 스코프의 스케일에는 우주선의 속력이 초속 0.3km가 된 것을 가리키고 있다.
"역추진 분사 끝."
하는 아저씨의 명령에 스파이크 씨의 조종으로 맹렬한 분사 진동이 끝났다. 다시 방전음이 극성을 떨기 시작한다. 선실의 온도는 섭씨 56도. 찌는 듯한 더위다. 조종실 패널에 달려 있는 방사능 누적 강도기에도 벌써 붉은 표시를 한 위험 영역에 육박하고 있다.
"태진아, 베이스 K와 교신해 보아라."
하는 아저씨 말에 벌써 부터 펄서 앞에 앉아서 지시만 기다리고 있던 나는 마이크를 당겨 베이스 K를 흐출한다.
"베이스 K, 베이스 K, 여기는 K-3 우주선, 여기는 K-3 우주선, 대답하라. 오버."
"……"
30초를 기다려 보았으나 응답이 없다. 나는 다시 처음과 똑같은 순서로 반복하고 수신 위치로 바꾸고 기다렸다.
"여기는 베이스 K, 여기는 베이스 K, 수신 상태 양호, 오버."
귀를 기울이고 있던 아저씨의 표정이 밝아지면서 마이크를 끌어당긴다.
"여기는 K-3 우주선. 본선의 자동 항로 추적기 고장. 기지의 방향 지시를 바람. 본선의 현재 위치와 진행 방향을 알려달라, 오버."
"K-3 우주선은 감마-13 방사능 함정에 빠져 있음. 현재 진행 방향에서 시계 방향으로 15도 방향으로 항진하면서 계속 본 기지의 유도를 받으라, 오버."
"알았다. 계속 유도 바란다. 통화 끝."
스파이크 씨가 벌써 방향 수정을 하고 있다. 5분 후에 2도 수정, 다시 5분 후에 3도 수정하라는 베이스 K의 연속적인 유도로 20분 후에는 그 극성스럽던 방전음의 소용돌이 속에서 빠져 나왔다. 우주선 외피에 쏟아지는 벼락치는 듯한 방전음의 틈바구니를 벗어났을 때 조정실의 우리들은 일순 허탈감에 빠져 한참 동안 서로 말이 없다.
"감마-13 함정은 1분 전에 완전히 벗어났다. 현재 진행 방향으로 항진하라. 사사키의 우주선은 30분 전에 중력권을 벗어나서 헤시코스로 항진 중에 있음."
허탈감에 빠져 있던 우리들은 사사키가 지구를 출발했다는 베이스 K의 연락을 받자 악몽을 되새길 때 모양 몸서리가 쳐진다. 우주선에 시한 폭탄을 장치하여 세상 사람들의 이목이 미치지 않는 먼 우주 공간에서 우리들을 폭살 시키려던 잔인한 사사키. 그 사사키 때문에 우주선의 자동 항로추적기가 고장을 일으켜 무서운 방사능 함정에 빠져 오도 가도 못할 지경에 이르렀고, 아줌마의 여자답지 않은 거사로 우리는 겨우 함정을 벗어났지만, 그러나 아줌마는 지금 생사의 기로에 있지 않은가!
그 사사키가 우리 뒤를 따라 지구를 떠났다는 것이다. 그 음흉하고 잔인 무도한 사사키 일당이 헤시코스에 오면 장차 헤시코스인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헤시코스 인들은 전쟁과 같은 폭력 행위하고는 담을 쌓은 지 오래 라지 않는가. 양떼를 향해 이리가 달려드는 모양이 되지 않겠는가?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오싹해 진다.
 
텔레파시 치료
 
"스파이크 군, 방사능 함정을 벗어났으니까 이제부터 자네가 나가서 항로 추적기와 텔레 스캐닝 TV를 수리하도록 하게. 나는 조종실이 남겠네. 태진이 너는 아줌마에게 가서 증세가 어떤가를 보고 오너라. 사사키의 우주선은 본선과 성능이 같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그는 우리보다 3시간 정도 뒤떨어져 있다. 되도록 빨리 본선을 수리해서 한 시간이라도 빨리 우리가 헤시코스에 가서 무슨 방비를 해야겠다."
사사키의 추격 소식을 듣고 잠시 침울한 생각에 빠져 있던 아저씨가 스파이크 씨와 내게 내린 지시다.
스파이크 씨는 우주복을 갈아입고 우주선 밖으로 나가고 나는 아줌마가 누워 있는 클리닝 룸으로 달려간다. 아줌마는 혼수 상태에 빠져 있다. 전신 샤워를 하고 난 뒤 비타민과 필수 아미노산을 주사했을 뿐이라고 한다. 별다른 치료법이 없기 때문이다.
인체(人體)라는 소우주. 신비하고 신비한 것이 인체라는 유기 물질의 집합이다. 인간은 그 동안 태양의 상당한 부분에까지 탐색선을 보낼 정도로 지혜로워졌지만, 인체에 대한 비밀의 베일은 손도 못 대고 있는 형편이다. 거대한 우주선은 조립할 수 있지만 스스로 생명력을 가지고 인체 환경에 적응해 가는 가장 간단한 유기체, 박테리아 하나도 합성해 내지 못하고 있다.
방사능 오염이라는 병도 그렇다. 1억분의 1밀리미터 이하의 작은 알맹이가 인체 속을 지나가면서 닥치는 대로 세포를 파괴하여 세포의 기능을 마비시킨다. 파괴되는 세포가 심장이라든가, 호르몬 생산 기관이라든가, 뇌와 같은 중요 기관의 것인 경우는, 그 치명상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만일 파괴된 세포의 기능을 즉시 원상으로 회복시킬 수 있는 약품이나 새로운 세포로 대치시킬 수 있는 물질이 발명되지 않고는 방사능 오염이라는 무서운 병은 역시 영원한 불치(不治)의 병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지금도 그렇다. 아주머니가 받은 치명상에 대해 뾰족한 방법이 없다. 그저 인체 표면에 묻은 방사능을 씻어 내고 흡수가 빠른 양질의 단백질을 주사하는 길 밖에는. 그만큼 인체라는 유기질은 현재의 인간의 지혜가 미치지 못하는 신묘한 원리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원자핵의 구성까지도 하나 남기지 않고 낱낱이 파헤쳐 온 인간이 아직 그 정체를 가늠할 수 없는 유기체(有機體)라는 것의 비밀은 오직 신만이 알고 있고 인간의 접근을 영원히 허용치 않는 신만의 독점물이란 말인가?
새하얗다 못해 푸른기 마저 띄우고 죽은 듯이 누워 있는 아줌마를 보았을 때, 나는 인간의 능력 한계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추연하게 서 있는 나를 향해 아사가 이런 말을 해 왔을 때, 나는 과학이 무엇인지 비과학이 무엇인지를 구별할 수 없는 혼란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태진아, 그다지 염려하지 마. 고향이 가까워지니까 아버지의 텔레파시가 명확히 수신되는데 아줌마의 병은 내 힘으로 고칠 수 있을 것이래. 나의 의지를 한번 불어넣어 보라는 거야."
나는 무슨 뜻인지를 몰라 그저 멍하니 아사를 쳐다보고 있을 수밖에 없다. 의지를 불어넣어? 무슨 뜻일까?
"인간의 능력은 묘한 거야. 인체는 근본적으로 정신력, 즉 의지(意志)의 지배를 받거든. 병이 들었을 때 병자 자신이 자기의 병에 대해 체념해 버리면 인체는 체념해 버린 정신력을 따라 행동하여 결국 병자를 죽이고 마는 거야. 반대로 병자 자신이 자신을 가지고 병을 이긴다고 생각하면 인체는 무서운 잠재력을 발휘하여 병을 치료하여 때때로 인간들이 말하는 기적을 만드는 거야, 믿음, 신념이라고도 하지.
지구인들이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 같은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예수님은 내 병을 틀림없이 고쳐주실 거다. 그분의 옷이라도 만지면 그분의 능력이 나의 병을 좇아 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다시 말하면 자기의 병에 대한 신념을 갖기 때문에 사람이 가진 잠재력으로 병은 고쳐지는 거야. 아까도 말했지만 이 때, 중요한 것은 병자가 갖는 믿음, 신념인 거야. 나는 꼭 병이 나을 수 있다는 신념 말이야."
아사의 긴 설교조의 설명을 듣고 나는 어이가 없다. 하기야 고도의 형이상학적인 문명을 이룩한 헤시코스 인들인지라, 그래서 텔레파시라든가 기상천외한 정신 감응이란 수단으로 의사 소통을 하는 방법까지 개척한 그들인지라 나는 정확히 판단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아사의 설명이 도저히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아사는 이런 나의 마음의 움직임을 벌써 알아 냈는지,
"좀 건방진 말이지만 지구인들이 여태까지 쌓아온 과학은 절름발이 과학이야. 기계를 만들고 그래서 인간의 물질 생활을 풍요하게 하고 기껏 그런 정도야. 그러나 물질 과학보다 몇백 배 더 중요한 정신 과학을 아주 등한시하여 왔거나 혹은 전연 모르고 있어. 앞으로 너는 헤시코스에 가서 나의 이런 말을 이해할 때가 올거야."
아사의 말은, 반박하고 싶은 구석이 너무도 많지만 지금은 그런 논쟁으로 시간을 허비할 때가 아니다. 무엇보다 아줌마가 위독하지 않은가?
"그럼 아사 너는, 네가 말하는 그 정신 과학으로서 아줌마를 치료할 수 있단 말이지?"
"물론 장담은 못해. 그러나 해볼 테야, 될 거야."
황금빛의 금발을 양어깨에 치렁치렁 늘어뜨리고 옥처럼 티 하나 없는 얼굴을 한 아사가 결의에 찬 표정으로 이런 말을 할 때는 성녀(聖女), 바로 그것 같이 착각된다. 코웃음으로 날려 버리기에는 너무나 숙연한 그 무엇이 서려 있다.
"그럼 아사, 최선을 다 해 주어."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튀어나온다.
"나는 지금부터 무의식 상태에 있는 아줌마의 의식 속에 나의 정신력을 집어넣을 거야. 아주 조심해 줘. 나의 텔레파시가 방해받지 않도록 말이야."
이렇게 말한 아사는 죽은 듯이 누워 있는 아줌마의 이마에 한 손을 얹고 눈을 감는다.
"아줌마 당신은 방사능 때문에 약간 병이 생겼어요. 그러나 그 병은 겁날게 조금도 없는 것입니다. 방사능 때문에 파괴된 당신 몸의 세포는 지금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요…….."
물론, 아사가 소리를 내어 말하는 것이 아니다. 텔레파시 통신으로 아줌마의 뇌파에 동조(同調)시키고 있는 것이다. 아사와 오래 같이 있었기 때문에 누나와 내가 그녀의 통신을 수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방사능이 지나간 세포의 원형질이 약간 파괴되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 원형질이 점차 회복되고 있어요."
아사의 최면술을 거는 것과 같은 텔레파시 치료가 죽은 듯한 적막 속에 진행되고 있다. 이 때, 누나가 나의 소매를 슬그머니 끌어당기며 밖으로 나가자는 눈짓을 한다. 조용히 문을 닫고 나와 누나는 밖으로 나왔다.
"태진이, 너는 아사의 말을 신용 안 하는 것 같지만, 나는 달라. 나는 아사의 뜻을 믿어. 우선 아사의 놀랄만한 예언을 생각해 봐. 아사는 우리가 위험에 놓여 있다는 것을 미리 예언했잖아. 아사 말대로 헤시코스 인들은 지구인이 전혀 모르고 있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 한 거야. 나는 그 새로운 과학이 점점 사실인 것으로 느껴지기 시작해."
나의 태도는 여전히 부정적이다.
"도대체 과학이란 객관적인 증거가 있어야 하고, 재현성(再現性)이 있어야 하는 거야. 그런데 그런 종류의 과학은 우리가 지각할 수 있는 증거가 없는 거 아냐?"
"태진아, 네 말은 지구인들의 사고 방식으로는 틀림없는 말이야. 그러나 전연 증거가 없는 것도 아니야. 벌써 20세기 후반에 와서 알려진 사실이기는 하지만 우리 피부에는 60 킬로사이클의 교류가 흐르고 있다는 것이 발견되었잖아. 60킬로 싸이클이면 공간으로 복사될 수 있는 전자 에네르기야. 하기야 이 60킬로싸이클이 인체의 어떤 정보를 가지고 있는지는 몰라. 그러나 인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뇌 아니야. 그러니까, 이 대뇌의 명령이 이 주파수 속에 들어 있을 가능성이 있어. 그러니까 대뇌의 명령, 즉 우리의 사고 작용(思考作用)이 고주파에 실려 공간으로 복사된다고 생각해 봐. 참 재밌잖아. 사람들 중에 극히 감각이 예민한 사람은 이 60킬로싸이클을 수신할 수 있을지 몰라.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겠니, 그런 사람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다는 얘기가 되는 거야."
나는 누나의 아주 그럴 듯한 이론에 반신반의한다.
'그럴 수가 있을까?'
이 때, 아저씨가 수심에 쌓인 표정으로 이쪽으로 걸어온다.
"어떻게 되었니, 아주머니의 증세는 어때"
하는, 아저씨의 물음에 누나가 아사의 텔레파시 치료에 대해 그 동안의 경과를 간단히 보고한다. 아저씨도 나와 마찬가지로 그럴싸하다는 표정은 아니다.
"할 수 없지.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니까. 그리고 항로 추적기가 수리되었다. 벌써 헤시코스가 TV 스크린에 나타나고 있어. 45분 후에 도착할 것 같다. 현재 속력은 1대시 광속도."
 
착 륙
 
나와 누나는 조종실로 돌아와서, 레이저 스코프 앞에 앉았다. 스파이크 씨와 아저씨는 아줌마의 병세(病勢)를 보기 위해 간호실에 가 있다.
우주선은 완전히 정상(定常)을 회복했다. 선실 내의 온도계도 섭씨 17도를 가리키고, 자동항로 추적기도 파란 불을 켠 채로 정확하게 1초 간격으로 레이저 빔을 복사(輻射)하고 있다.
폭풍 후의 고요, 눈이 스스로 감겨지는 기분 좋은 상태다. 이런 중에서도 사사키 생각이 후딱 떠오르면 무의식 중에 오금이 조여들고 심장이 소리내어 쿵쿵거린다. 사사키! 그 매서운 눈, 딱 벌어진 어깨, 능글맞은 웃음, 생각만 해도 진저리가 난다. 더구나 그 사사키가 30분 전에 지구를 출발했다니까 불과 2시간 간격을 두고 우리를 추격하고 있지 않은가? 그 무섭고 잔인한 놈이 헤시코스에 가면 선량하기만 한 헤시코스 인들은 어떻게 될까? 놈은 뇌파 증폭기를 뺐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도 사양하지 않겠지. 양떼 속에 뛰어든 이리가 흰 양떼를 피로 물들이며 처참한 살육을 저지르는 광경이 벌어지겠지.
그러나 전연 그렇지 않을 지도 몰라. 왜냐 하면, 뭐니뭐니 해도 아저씨와 흐르노프 교수가 있으니까. 교수는 지금 헤시코스에 있으면서 헤시코스 인들에게 원자력 이용의 방법을 가르치고 있지만 위험이 닥치면 아저씨와 의논해서 무슨 기상천외의 묘책(妙策)을 강구할런지 모르지. 또 아사의 아버지인 솔베즈 추장이 있지 않은가? 수만 년 간이나 정신 감응술을 연마해 온 종족의 후예니까 지금 내가 상상도 못하고 있는 비책(秘策)을 알고 있을 지도 몰라.
"태진아,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하게 하고있어? 자, 20분 후에는 착륙이다. 레이저 스코프(Laser scope)를 가동시켜 보아라."
하는 아저씨 말에 나는 꿈에서 깨어난 듯 새삼 주위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아저씨, 스파이크 씨, 아사가 조종실에 들어와 있다. 사사키 생각에 골몰해서 사람이 들러오는 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아사는 언제나 처럼 그림자 같이 조용히 서 있다. 나는 얼른 그녀의 표정부터 살펴본다. 원래, 좀체로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 아사니까 표정을 보아서는 그녀의 감정을 짐작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지금은 표정이 무척 밝다. 아사의 텔레파시 치료에 의해 효과가 나타난 것일까?
"아줌마의 병은 상당히 회복됐다. 이제 원기만 회복하면 돼. 2, 3일 후에는 완전히 회복할 것 같다."
아저씨가 나의 궁금증을 풀어준 말이다. 아사도 아저씨의 말을 긍정하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레이저 스코프에 스위치를 넣었다. 스코프에는 동전 만한 크기의 헤시코스가 나타난다. 정확하게 거리를 측정해 보니까 15분 후에는 대기권에 돌입하게 될 것 같다. 조종실은 다시 활기를 찾았다. 역추진 분사기가 점검되고 우주선 자세 제어용 로켓이 시험되고 우주선의 진행 속도를 줄이는 역추진 분사가 1분 동안 계속되었다.
숨 돌릴 새도 없이 아저씨의 명령이 떨어지고 그 때마다 스파이크 씨의 손이 콘트롤 패널 위를 바쁘게 움직인다. 레이저 스코프에는 헤시코스의 육지 모양이 가득차 있다. 다시 역추진 로켓이 분사하고 우주선 외피를 스치는 헤시코스의 대기(大氣)와의 마찰음이 점점 크게 들려 온다. 대원 전부가 의자 위에 누운 채 벨트로 몸을 묶고 있다.
드디어 심한 감속이 시작되고 역추진 분사음이 크게 들려오기 시작한다. 대기와의 마찰음은 점점 커져서 이제는 우주선이 격렬하게 진동하기 시작한다. 동시에 레이저 스코프에 나타난 헤시코스가 급격하게 확대되고 있다. 쿵-하는 둔탁한 소리에 이어 우주선이 크게 기우뚱거리다가 조용해 졌다. 드디어 2억 5천 킬로미터의 긴 여정을 무사히 끝내고 헤시코스에 도착한 것이다. 우주선의 해치를 열고 아저씨를 선두로 우리는 바쁘게 밖으로 나왔다.
아직 핼쑥한 낯빛을 한 아줌마도 누나의 부축을 받아 밖으로 나왔다.
 
여기는 사사키
 
생소한 총경이다. 태양은 지구에서처럼 바로 쳐다보지 못할 정도로 눈이 부시게 빛나지를 않는다. 그저 검붉기만 하다. 산과 들은 서로 구별이 어려울 정도로 뚜렷한 차이가 없이 평평하기만 하다. 우주선 밖으로 나오자 한기(寒氣)가 단숨에 몸을 엄습한다. 바람도 별로 없다. 공기의 성분은 지구에서와 비슷해서 산소통이 없어도 불편은 없다. 기온은 섭씨 3도. 그늘진 곳에는 고드름까지 달려 있다. 500여 일의 긴 겨울이 시작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식물은 시들어져 맥이 없고, 키가 큰 놈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잔디같이 낮게 깔린 이름 모를 식물이 있어 거기에는 흰 꽃이 한창이다. 흡사 눈(雪)과 같다. 산과 들을 구별할 수 없는 땅에 눈 가는 데까지 깔려있다. 좁은 선실에 갇혀 있던 대원들은 땅 위를 뛰어다니며 가벼운 운동을 하고 있다.
1000미터쯤 떨어진 곳에 커다란 굴이 입을 벌리고 있다. 헤시코스의 지하 도시로 들어가는 입구다. 굴 속의 지하 도시는 원래 헤시코스 조상들이 벌써 몇천 년 전에 건설해 놓은 것인데,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에 심한 풍화 작용(風化作用)으로 굴 입구가 폐쇄되어 나중에는 지하 도시의 위치 조차 모르게 되었다. 그러다가 헤시코스에 다시 한파가 몰려와서 헤시코스 인들이 전멸할 위기에 처했을 때, 우리 베이스 K 조사팀이 우연히 이곳에 와서(사실은 우연이라기보다 헤시코스 인들의 텔레파시 통신에 유도되어 화성 근방을 탐험하던 우리가 헤시코스에 착륙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하 도시를 찾아 냈던 것이다.
섭씨 마이너스 50도의 혹한 속에서 나와 스파이크 씨가 다이나마이트를 안고 저 굴 속을 한 발짝 한 발짝 폭파해 들어갔던 것이다. 오래된 굴이 다이나마이트 폭발음에 무너져서, 나와 스파이크 씨는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깜깜한 굴 속에서 만 72시간을 견뎌 냈었다. 그러니까 나와 스파이크 씨에게는 헤시코스가 새삼스런 감회를 안겨 주고 있다. 자칫했으면 목숨까지 버릴 뻔했던 저 굴!
꼭 열흘 동안 부지런히 굴을 뚫은 보람이 있어서 지하 도시를 발견하게 되었고, 그래서 추위에 떨던 헤시코스 인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하였을 때, 헤시코스 인들의 그 기뻐하던 모습. 그리고 우리들을 위해 벌어졌던 그 호화찬란하던 축제(祝祭). 나는 그 때 얼마나 어깨가 으쓱했는지, 죽어 가던 5000명의 헤시코스 인들을 구했다는 자부심으로.
그런데 목숨을 걸고 구해 낸 그 헤시코스 인들에게 다시 검은 구름이 닥쳐오고 있지 않은가?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검은 구름은 나와 같은 지구인인 사사키가 아닌가? 헤시코스 인들은 은인으로서의 지구인도 가졌지만, 또한 영원한 원수의 관계를 가질 지구인도 생기려고 하고 있지 않은가?
 
사사키의 최후 통첩
 
굴 쪽에서 지프차 한 대가 급히 달려오고 있다. 우리를 마중 나오는 모양이다. 지프차는 지난번 여행 때 우리가 남겨놓고 간 것이다. 인력이 작은 이 곳에 맞게 차체가 무겁도록 개조한 배터리 카(Battery Car)다. 아사가 차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차에 탄 사람은 페트라다. 솔베즈 추장의 부관이다. 차에서 내린 페트라가 아사 앞에 잠시 무릎을 꿇고 공주에게 예를 드린 후 아저씨 앞으로 걸어왔다.
페트라의 표정은 어딘지 모르게 침울해 보인다. 자기들에게 사사키의 위험이 닥쳐오고 있는 것을 감지(感知)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조금도 겁내거나 당황해 하는 거동은 아니다. 이 점 아사와 다를 바 없는 헤시코스인의 기질이다. 페트라가 아저씨에게 생각을 전해온다.
"먼 여로에 수고하셨다고 추장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김영준 박사와 의논할 것이 있다고 하십니다. 같이 가십시다."
말을 마친 페트라는 스파이크 씨와 나를 차례로 껴안는다. 비록 지구인들처럼 말로써 환영의 뜻을 나타내지 않지만 진심으로 환영하는 그의 텔레파시를 우리들은 충분히 느끼고 있다.
아줌마는 처음 여행이기 때문에 아저씨가 페트라에게 아줌마를 소개했다. 아줌마는 창백한 안색으로나마 기쁜 듯이 손을 내민다. 페트라도 지구인의 인사 방법에 익숙했는지라 마주 손을 내밀어 아줌마의 손을 잡는다. 페트라가 생각을 전한다.
"아줌마가 여행 도중에 겪은 재난(災難)에 대해 추장께서는 진심으로 위로의 뜻을 가지고 계십니다."
아줌마가 얼굴을 붉힌다. 나이가 40이 다 된 아줌마가 새삼스레 얼굴을 붉히는 건 격에 맞지 않는 것 같지만, 그러나 저렇게 잘 생긴 남자에게 손을 잡힌 채 위로의 말을 들을 때, 얼굴에 홍조를 띠는 건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만큼 페트라는 미남이다. 눈처럼 흰 피부, 2미터가 넘는 키, 굽이치는 금발, 거기에 정신 감응술로 단련된 지혜로운 표정과 태도, 과연 같은 남자인 나도 반할 형편이다.
"스파이크 군! 태진이와 여기 남아서 사사키의 우주선을 감시해 주게. 사사키의 우주선이 보이거든 무전으로 연락해 주게. 나머지는 이 차로 지하 도시로 가자."
일행이 지하 도시로 떠나자 나와 스파이크는 우주선으로 다시 들어왔다. 사사키의 우주선이 레이저 스코프에 나타나려면 아직 1시간 반은 기다려야 한다.
레이저 빔(Laser Beam)에 의한 탐지 방법이 마이크로 웨이브(Micro wave) 탐지법보다 그 성능이 수백 배 우수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몇천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우주선 같은 작은 물체를 포착해 내지는 못한다. 그래서 사사키의 우주선이 레이저빔의 탐지 거리에 들어올 때까지 우리는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깜깜한 스코프를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심신이 나른한 것이 금방이라도 잠에 떨어질 것 같다.
베이스 K를 출발하고 난 뒤, 겹치는 사고 때문에 잠시도 눈을 붙이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졸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으나 어느새 나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졌던 모양이다. 어깨를 흔드는 바람에 눈을 번쩍 떴다. 스파이크 씨의 웃고 있는 얼굴이 바로 얼굴 앞에 있다.
"태진 군, 무척 졸렸던 모양이군. 그런데 이거 봐."
하는 스파이크 씨 말에 겨우 눈을 비비고 스코프를 쳐다보았다. 아- 거기에는 어느새 콩알만한 크기의 반점이 나타나 있지 않는가.
"사사키야. 5밀리 광속도로 접근하고 있어. 사사키도 원자력 엔진을 장비한 모양이야."
스파이크 씨의 말이다. 너무나 여유만만하다. 이 서양 신사에게는 다가올 모험이 즐거운 모양인가? 이것이 소위 말하는 개척 정신이라는 건가?
여유 만만한 스파이크 씨와는 반대로 나는 심장이 조여오는 듯한 긴장을 느끼면 스코프를 계속 응시한다. 반점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다. 우주선의 속도가 빠르다는 뜻이다. 보고 있는 동안에 반점은 우주선의 모양을 갖추며 벌써 손목 시계만 해졌다.
"사사키가 틀림없는 모양이다. 박사님께 네가 연락해라."
하는 스파이크 씨 말에 출발할 때의 아저씨의 말이 생각나서 얼른 단파 무전기의 마이크를 끌어당겼다.
"여기는 우주선, 여기는 우주선, 아저씨 나와 주세요, 오버."
아무 반응이 없다. 지프차에 장치된 무전기에 스위치를 넣지 않고 있는 건가? 나는 다시 아저씨를 부른다.
"여기는 우주선, 여기는 우주선, 아저씨 나와 주세요. 오버."
이번에는 반응이 있다.
"여기는 지하 도시. 무슨 일이냐? 오버."
"사사키의 우주선이 나타났습니다. 현재 5000킬로미터 지점에서 계속 접근 중임, 20분 후에는 착륙할 것 같습니다. 오버."
"알았다. 계속 감시해라. 곧 그 곳으로 가겠다. 통화 끝."
단파 무전기의 전원 스위치를 끊고 나는 다시 스코프를 응시한다. 우주선은 화면을 가득 채우며 접근해 오다가 사라졌다.
"착륙한 모양이다. 여기서 200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이다."
우주선이 화면에서 사라지자 스파이크 씨가 한 말이다. 이 때, 지프차 오는 소리가 나더니 곧 이어 아저씨가 우주선 안으로 들어섰다. 사사키가 200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착륙했다고 보고한다.
"200킬로미터쯤이라. 음, 태진아, 단파 무전기를 이동시켜 놓아라. 사사키가 행동하기 전에 우리에게 무어라고 할 꺼다. 3, 4시간 지나면 해도 질 테니까 오늘밤은 행동을 못하겠지. 놈은 이 쪽의 동정을 알아볼 꺼야. 그리고 사사키는 지하 도시의 위치를 정확하게 몰라. 그래서, 우리와 더 연락을 하고 싶을 거야."
하는 아저씨 말에 나는 다시 무전기에 전원 스위치를 넣자마자 음산한 사사키의 소리가 들려온다.
"여기는 사사키, 여기는 사사키. 김영준 박사에게 말한다. 당신은 내가 시한 폭탄이 실패한 것을 모르고 있는 줄로 알지 모른다. 그러나 시한 폭탄이 실패한 것을 알고 있다. 박사의 우주선이 폭발하는 광경이 레이저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도착했다. 무기와 군인을 싣고. 그래서 박사는 다음과 같이 행동할 것을 요구한다. 앞으로 12시간 내에 뇌파 증폭기와 그것을 운전할 줄 아는 헤시코스 인을 내게 인도하라. 시한을 넘길 때는 가차없이 공격한다. 오버."
사사키의 말이 끝나자 아저씨가 스위치를 꺼버린다.
"저건 사사키가 녹음해 둔 걸 꺼야. 2, 3분마다 저걸 반복하겠지. 그러나 응답해서는 안돼. 우리의 위치를 쉽게 알아낼 테니까."
아저씨의 말이었다. 나는 여태까지 궁금해하던 일을 조심스럽게 물어 본다.
"아저씨, 그런데 어떻게 하실 작정입니까, 이쪽에는 아무런 무기도 없잖아요?"
"그래, 우리에게 무기가 없는 것은 사실이야. 그렇다고 전연 승산이 없는 것은 아니야. 우선 사사키는 우리의 정확한 위치를 모르고 있어. 그리고 인원도 이쪽이 월등하게 많고. 그런데 문제는 추장이 분란을 피하기 위해 기계를 사사키에게 순순히 내어 주려 하고 있는 점이야.“
아저씨 말에 나는 놀랐다.
"그 기계가 사사키 손에 넘어가면 지구는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추장에게 말씀드렸나요? 아저씨."
"물론 이야기했다. 그러나 추장은 자기 종족의 안전만 생각하고 있어."
잠시 말을 끊고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겨 있던 아저씨가 결연히 말한다.
"사사키는 우리에게 12시간의 시간을 주었다. 그 안에 우리는 기어코 추장을 설득하여 사사키를 방어할 계획을 세우도록 해야 한다. 12시간 안에 말이다……"
해치를 닫고 우주선 주위를 정돈한 후 우리는 지하 도시를 향했다. 헤드라이트를 켜고 긴 터널(Tunnel)을 한참 달렸다. 어마어마하게 두꺼운 철문을 지나 아름다운 도시 입구에 들어섰다.
평평한 지붕을 한 집이 질서 있게 늘어서 있고 집집마다 온갖 꽃이 만발한 정원이 보인다. 위기가 닥친 것을 느끼고 있을 터인데도 통행인의 몸가짐은 동요되는 법이 없이 침착하다.
지하 도시 전체를 덮고 잇는 거대한 돔(Dome) 가운데에 장치된 통풍관을 이용한 환기 시설은 완벽하다. 5천의 인구가 살고 있는데도 공기의 신선도는 도시 밖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집집마다 꽃나무와 수목이 울창한 것도 주민이 내뿜는 막대한 양의 탄산가스를 제거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이곳의 수목은 독특해서 태양 광선이 없는 밤에는 일시적으로 가사 상태(假死狀態)가 되는 것이다. 지하에서만 수만 년 간 살아오는 동안 신진 대사량이 점점 줄어들어 이제는 아예 밤에는 생명 활동이 중단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낮에는 탄소 동화 작용으로 주민이 쏟아놓는 탄산가스를 흡수하고 밤에는 가사 상태가 되어 도시 내의 산소를 소모하지 않게 되어 있다.
식물도 인간의 요구에 순응한 것이다. 이것은 근래 새삼스럽게 다시 말썽이 일기 시작한 다윈의 진화론을 보완(補完)하는 하나의 새로운 증거가 된 것인데, 지난 번에 흐르노프 교수가 이 사실을 세상에 발표했을 때, 생물학계가 잠시 떠들썩했었다. 차가 지나갈 때, 키가 크고 혈색이 좋은 시민들이 인사의 생각을 보내온다. 사사키가 최후 통첩을 보내온 것은 아직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뇌파 증폭기
 
시 중앙에 있는 광장에서 아사와 아줌마를 만나 나는 차에서 내리고 스파이크 씨와 아저씨는 추장의 집으로 계속 차를 몰았다. 조용한 방에 누워서 정양을 취하라는 주위 사람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아줌마가 기어이 뇌파 증폭기를 보기로 했다고 한다.
나와 아줌마는 아사를 따라 작은 빌딩 안으로 들어섰다. 아저씨들은 추장 집에서 사사키 문제를 토론하고 있으리라. 롤러 위에 얹힌 문이 소리 없이 열린다.
갑자기 실내에 들어온 우리들은 처음에는 아무 것도 잘 볼 수가 없다. 실내 벽에서 반사되어 오는 우리의 발자국 소리가 기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한참 그대로 서 있으려니까, 방 가운데에 둥그런 울타리가 보인다. 울타리 안에는 희미한 불이 켜져 있고 가운데에 투명한 운모상자가 있다. 상자 안에는 수만 개의 번쩍이는 철사가 서로 엉켜서 맥박처럼 뛰고 있다. 가까이 다가감에 따라 기계가 스르륵 스르륵하며 우주 공간을 향해 텔레파시 에너지를 복사하는 약한 소리가 들린다.
우리는 숨을 죽이고 쳐다본다. 이것이 사사키 일당을 유혹하여 헤시코스에 때아닌 유혈의 참극을 불러일으키려고 하고 있는 뇌파 증폭기인 것이다. 한참만에 아줌마가 입을 연다.
"이것은 정말 상상도 못할 기계야 ! 유리로 된 핏줄 속으로 피를 들여보내고 있는 것처럼 철사가 꿈틀거리고 있잖아?"
"좋은 비교예요. 철사는 생물체의 뇌세포의 역할을 하거든요."
하는 아사의 대답이다.
"기계를 운전할 때는 어떻게 하면 되니?"
역시 아줌마의 물음이다.
"기계가 적당한 송신 파장으로 조정되면 기계 운전자가 이 극판 두 개를 꼭 붙잡아요. 그러면 운전자의 뇌파가 증폭되어 복사되지요."
"그럼 우리도 사용할 수 있을까? 태진이나 나나 말이야."
"그럼요. 할 수 있고 말고요. 훈련만 받으면 말예요. 기계운전자는 생각을 송신하는 방법을 알아야 하거든요. 이것은 일종의 복사 에너지가 공간을 누비며 주사(走査)되고 있어요. 이 에너지는 훈련을 받지 않는 마음에는 치명상을 입혀요."
나는 아사의 말에 그 에너지라는 것에 대해 더 상세한 설명을 요구했다.
"간단히 말하면, 이 뇌파 증폭기의 운전 동력은 지구에서와 같은 전기임에는 틀림없어. 그러나 주요 부분품은 이리도늄인데 이 금속에 대해서는 태진이 너도 알고 있지? 헤시코스에만 있는 거야. 흐르노프 교수께서 지난 번에 분석한 바에 의하면 원자 번호 111.5라는 기묘한 원소야. 이 이리도늄은 충전되면 감마선과 같은 일종의 센 방사능을 내뿜게 되는데, 이 방사능에 견디도록 훈련을 받지 않은 마음은 마비되고 마는 거야."
감마선이라는 바람에 약간 찔끔하는 눈치지만, 그래도 아줌마의 호기심은 그칠 줄 모른다.
"그럼, 그렇게 위험하면 사사키가 쉽게 이용할 수 있을까?"
"쉽게 이용할 수 있을 거예요. 우리 국민 중의 누구에게서나 일주일 이내에 조정 방법을 배울 수 있거든요. 그의 정신은 단단하고 강력하기 때문에 아주 쉽게 배울 거예요."
방 안에는 잠시동안 침묵이 흐른다. 스르륵 스르륵 하는 기계 소리가 음산하게 들려올 뿐, 소리가 날 때마다 에너지가 충전되느라고 철사가 맥박처럼 뛰고 있다.
"꼭 살아 있는 짐승을 묶어 놓은 것 같구나"
한참만에 아줌마간 내뱉듯 한 말이다. 징그러운 물건을 대할 때처럼 상을 찡그리며,
"우리 국민들이 다른 세계에 우리의 생각을 보내온 수천 년 동안 기계는 이렇게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대요. 지난번에 우리가 절멸의 위기에 처했을 때도 필사적인 구원의 호소를 외계를 향해 보냈어요. 그 때마침 화성 근방을 지나가던 박사님 일행이 우리의 정신을 수신하고 여기로 오신 거예요."
아사가 말하는 동안 기계를 보고 있던 아줌마는
"알겠어 아사. 헤시코스는 이 기계 때문에 살아났단 말이지. 그러나 나는 너의 기계가 싫다. 겁이 난다."
사실 아줌마가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흡사 간교한 짐승을 울타리에 놓아둔 것처럼 요기 같은 것을 풍기고 있기 때문이다.
실은 나도 뇌파 증폭기에 대해서는 호감이 가지 않는다. 기계라고는 하지만 우리 지구인이 여태까지 생각하고 있던 기계의 개념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그런 것이다.
아사는 나와 아줌마의 그런 기분을 금방 느꼈음인지 밖으로 나가자고 한다. 추장 집에서 헤시코스의 명물인 순 과일로만 된 저녁을 먹고 아사와 아줌마는 동물원 구경을 가고 나는 응접실로 갔다.
응접실에서는 추장, 아저씨, 흐르노프 교수, 스파이크 씨가 둥근 테이블에 앉아서 논쟁을 하고 있다. 그러나 논쟁은 예상 외의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추장은 사사키의 최후 통첩에 겁을 먹고 뇌파 증폭기를 순순히 내어주려 하고 있는 것이다. 드디어 급하디 급한 아저씨의 성미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격론(激論)
 
아저씨가 탁자를 탕 내리치며 소리친다.
"분명코! 이런 말은 일국의 통치자가 할 소리가 아니오. 줏대 없는 협상이며 너무나 유약한 사실상의 항복이요!"
솔베즈 추장은 희랍 신화에 나오는 신처럼 키가 크고 귀공자 같은 얼굴에 범하지 못할 위엄을 갖춘 사람이다. 그러나 지금 그의 말은 눈동자에는 고뇌와 초조감이 안개처럼 서려 있다.
"김영준 박사! 나는 귀하의 용기를 칭찬합니다. 그러나 내 마음은 이미 결정되었소이다. 박사의 말과 같이 나는 많은 사람의 운명을 결정해야 하는 통치자이오. 그렇기 때문에 그와 같은 결심을 하지 않을 수 없소이다. 백성에게는 투쟁과 유혈의 모험이 결단코 있어서는 안되겠소이다. 수천 년 동안 우리 국민은 평화 속에 살아 왔소이다. 그리고 나는 이 평화의 철학을 자손만대에 영구히 계승시킬 의무가 있소! 전쟁에 휘말려 드는 것은 생각할 여지조차 없소이다."
추장의 태도는 확고하다. 일순 방 안에는 긴박한 침묵이 흐른다.
여태까지 두 사람의 논쟁을 묵묵히 지켜보고만 있던 흐르노프 교수가 천천히 일어서면서 정중하게 입을 연다.
"솔베즈 추장! 나는 당신 국민들과 수 개월 동안 같이 생활해 왔소. 그 동안에 나도 당신들의 그 평화를 신봉하는 철학을 숭상하기에 이르렀오. 그러나 생각해 보시오. 나는 50억의 지구인의 한 사람으로서 당신의 과학자에게 원자력의 원리를 가르치기 위해 그간 무던히도 애써왔소. 이제 김 박사가 천신만고 끝에 원자재와 기계까지 운반해 오지 않았소이까? 그래서 당신들에게는 추위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새로운 도시를 건설할 기회가 주어진 게 아닙니까? 이 점 우리들에게, 아니 전 지구인에게 당신들은 은혜를 입고 있는 것입니다."
"나도 그 점은 무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맙게 생각합니다."
추장의 태도가 약간 수그러지는 듯하자, 교수의 웅변이 계속된다.
"생존의 기본은 협조입니다. 이것은 행성 간이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지구인은 당신들을 도와왔습니다. 이제 당신들이 우리를 도울 차례입니다. 사사키에게 뇌파 증폭기를 허용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들은 평화와 사랑을 퍼트리는 데 사용해 왔지만 사사키는 적의와 전쟁을 도발시키는 데 사용할 것입니다."
추장은 괴로운 듯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흐르노프 교수, 배은망덕한 것 같아서 나의 마음은 괴롭습니다만 어쩔 수 없소이다."
"한 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하고, 흐르노프 교수가 다시 추장의 말을 가로챘다. 숨가쁜 열변이다.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고, 자기에게 비록 약간의 이롭지 못한 일이 일어날 위험이 있더라도 진정으로 그들을 협조한 수 있는 태세를 갖추지 못한 종족은 진보할 자격이 없습니다. 또 위험이 바로 코앞에 닥친 이런 결정적인 위기에서도 자기 몸만 도사리고 위험에 적극적으로 부닥치는 일말의 용기도 없는 비겁하고 피동적인 종족은 영원히 고립되고 기필코 멸망합니다."
격앙된 모욕조의 열변이 끝났다.
순간 추장은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한대 얻어맞은 사람처럼 한참 동안이나 마룻바닥을 응시하며 넓은 이마에 한 손을 얹고 침묵을 지킨다. 이윽고 고즈넉이 고개를 든 추장은,
"나의 친구여! 당신의 논리는 무어라고 대답하기 심히 어려운 비약이요. 그런데 설사 나와 국민들이 당신들을 기꺼이 도와 줄 생각이 있더라도 사사키에게 대항할 방법이 있소? 우리에게는 무기라고는 없지 않소?"
"추장의 말은 일리가 있습니다."
하고, 아저씨가 다시 대화에 끼여든다.
"무기와 같은 물리적인 면에서는 불리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추장, 당신과 흐르노프 교수와 나는 일종의 방어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충분한 지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
추장은 대답하지 않는다. 아저씨의 말을 수긍한다는 것인가? 한참만에 흐르노프 교수가 다시 입을 연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기계는 바로 여기 도시의 중심에 있소. 그리고 여기로 들어오는 길은 철문이 막고 있는 터널 뿐이요. 그럼 추장! 당신 국민들이 흙 한 포대씩만 운반해다가 철문 뒤에 쌓아놓으면 어떨까요? 사사키가 특별한 무기와 장비를 준비해 오지 안았다면 두꺼운 철문과 흙 포대를 뚫지는 못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열흘 후에 닥쳐 올 맹추위 때문에 쫓겨가게 될 겁니다."
"오라, 그것 참 멋진 생각이오."
아저씨가 기쁨의 환성을 지른다.
"그러나 다른 입구가 없는 것이 아니오."
하고, 추장이 무겁게 입을 연다.
"통풍구와 지하로 흐르는 수로 입구로도 침투할 수 있습니다."
"거기는 수비하거나 처단하기가 간단하지 않습니까?“
하고, 아저씨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또 나선다.
"추장! 흐르노프 교수의 뜻을 내가 다시 한번 말하리다. 우리는 필요한 인력만 확보하면 사사키를 막아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사키가 우리에게 허용한 시간은 불과 24시간입니다. 쓸데없이 논란으로 허비할 시간이 없습니다."
"지금 나는 참으로 어려운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말은 알아듣겠습니다."
"그럼, 우리를 도와 주겠다는 겁니까?"
아저씨가 표범처럼 눈을 빛내며 다그쳐 묻는다.
"철문 앞에 바리케이드를 치도록, 사람을 동원하겠습니다."
"만세! 훌륭하신 용단입니다!"
다혈질인 아저씨가 어린애처럼 두 손을 번쩍 들고 외친 말이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다시 알려 둘 것은, 이 모든 조치는 우리 국민이 여태까지 신봉해 온 원리와는 완전히 어긋난다는 사실입니다."
"이해합니다. 그래서, 추장의 영단(英斷)을 거듭 칭찬합니다. 그런데 그 동안에 사사키 일당의 무장 상태와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정찰대를 파견해야겠습니다. 추장, 지원자를 선발해 주시오."
아저씨가 추장에게 부탁한다.
"그럴 필요 없어요. 스파이크 씨와 제가 지프차를 타고 갔다 오겠어요."
하고, 내가 재빨리 나섰다.
 
야간 순찰
 
적선이 착륙한 근방의 지도와 약간의 C-레이션, 열 개의 다이너마이트와 나침반을 준비하고, 광장의 중앙에 대기하고 있는 지프에 올랐다. 스파이크 씨가 운전대에, 나는 그 옆에 앉아서 나침반으로 방향을 지시하기로 한 것이다. 차에 시동이 걸리자, 아저씨가 스파이크 씨에게
"되도록 모험은 피하게, 지금 출발하면 어두워지기 시작할 때쯤에는 적의 2, 3km까지 접근할 수 있을 거야. 거기서 부터는 도보로 정찰을 행하도록. 어둡다고 함부로 행동해서는 안돼. 사사키가 서치라이트 같은 것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니까. 정찰 목적은 3가지 - 첫째 적의 병력 수, 둘째 적의 무장 상태, 셋째 적의 기동 수단, 이상. 그러면 잘 갔다오게!"
흡사 야전군 사령관처럼 엄숙하게 다짐하는 아저씨에게, 미국인 특유의 우스꽝스런 거수경례를 척 갖다 붙이고 난 스파이크 씨가 차의 클러치를 밟는다. 이 때, 우리의 야간 순찰을 전송하러 나온 추장과 함께 서 있던 아사가 갑자기 우리 차 뒤에 뛰어오른다.
"나도 같이 갈래요."
질겁을 한 추장이 딸의 어깨를 잡는다.
"아니- 얘가? 네가 정신이 있니? 없니?"
"아니에요, 아버지. 저는 정신이 멀쩡해요. 저는 스파이크 씨와 태진이만 그런 위험한 곳에 가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어요. 저는 이분들보다 이 땅을 더 잘 알고 있지 않아요?"
"그러나 사사키에게 다시 붙들리면……..
"염려 마세요, 아버지. 저는 이제 어린애가 아니에요."
그려는 아버지의 손을 뿌리치고 어서 가자고 스파이크 씨에게 재촉이다. 추장이 다시 딸의 팔을 잡는다.
"아사-"
"전 꼭 같이 가겠어요. 박사님 일행이 지난 번에 여기 오신 이후로 저는 그분들과 같이 있기를 바랬어요. 그분들처럼 용감하고 대담하게 되려고요. 우리는 매사에 너무 소극적이에요."
"가게 내버려 두시죠. 추장."
아저씨가 아사 편을 들고나선다.
"나 같으면 이런 딸을 둔 것을 큰 자랑으로 알겠습니다. 당신의 국민들이 이제 도시 밖으로 용감히 뛰어나가서 새로운 생활을 개척하려는 이 때, 아사는 그들을 이끌어갈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늙은 추장은 머뭇거리다가 딸을 잡고 있던 손을 힘없이 놓는다.
"그렇군요, 박사. 헤시코스에는 이제 나 같은 늙은이가 아닌 적극적인 생각을 가진 젊은 사람이 필요하겠군요."
스파이크 씨가 액셀러레이터를 힘차게 밟는다. 초록색의 이끼가 끝 없이 뻗어 있는 평원에 군데군데 솟아 있는 핑크 색의 바위를 피해가면서 차를 몬다. 북쪽으로 160km 정도 떨어져 있는 적선에 이르는 진로를 그르치지 않으려고 나는 시종 나침반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다. 물론 헤시코스에서는 지구에서처럼 나침반이 자기상의 북극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고, 뇌파 증폭기에서 발생하는 강력한 방사능 에너지 때문에 지하 도시를 향하고 있다.
 
긴 낭떠러지
 
두 시간쯤 달렸을 때, 동서로 한없이 길게 펼쳐져 있는 큰 낭떠러지에 도달했다. 처음 착륙했을 때부터 이미 우리는 이 벼랑을 알고 있었다. 그 때는 반대편에서 오다가 이 낭떠러지를 만나 더 이상 탐험을 계속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그 때, 우리는 낭떠러지를 올라가는 대각선의 좁은 길을 발견했었는데, 긴 양옆에는 녹슨 금속제의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 이것으로 우리는 헤시코스에 고대 문명이 존재했었EMB000004b0648b
 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금 같은 길을 달려 내려가다가 그 가파른 경사와 깊은 계곡에 사지가 오그라드는 것 같다. 그러나 스파이크 씨는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계속 차를 몬다. 돌멩이에 타이어가 몇 번 미끄러진 것 외는 무사히 계곡 아래까지 내려갔다. 다음에는 가끔 말라붙은 강바닥의 푸석푸석한 땅 위를 지나가게 되었는데, 지구에서만큼 중력이 크지 않아서 여기도 사고 없이 통과했다.
 
적 선
 
남쪽에 뾰족하게 솟은 언덕으로부터 어둠이 갑자기 몰려온다. 그러나 그 어둠이 미쳐 다가오기 전에 돌로 된 벼랑을 옆에 낀 계곡을 볼 수 있었고,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차에서 내렸을 때, 저절로 기운이 번쩍 날만한 광경을 그 계곡에서 발견했다.
"불빛이다!"
무의식 중에 튀어나온 나의 부르짖음에
"적선의 해치에서 나오는 불빛 같다."
하고, 스파이크 씨가 흥분을 감추고 침착하게 말한다.
"놈들이 우리를 못 봤어야 하는데 …….."
하는, 나의 걱정에 아사는
"우리는 사사키들의 시야가 미치지 않는 곳에서 달려 왔으니까 우리를 알아봤을 리가 없어."
출발할 때, 아저씨가 일러 준 대로 여기서부터는 도보로 정찰을 하기로 하고, 우리는 군데군데 솟은 바위 사이로 경사진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한다. 20분쯤 조심스럽게 걸어 내려가다 보니 이젠 완전히 어두워졌다.
돌멩이에 채이고 바위에 미끄러져서 몇 번인가 넘어질 뻔했지만, 그 때마다 서로 잡아 주어서 넘어지지는 않았다. 크리스마스 트리에 달린 전구처럼 별이 반짝이고 있지만, 계곡에는 전혀 빛이 와 닿지 못한다. 적이 눈치채지 못하게 접근해서 정찰하기에는 오히려 안성맞춤이다.
계속 접근함에 따라 어둠 속에서나마 하늘을 향하고 우뚝 서 있는 형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사사키의 우주선이다. 눈짐작으로도 우리 것보다 더 큰 것 같다. 가까이 감에 따라 약한 기계 음이 들려온다. 배터리를 충전하고 있는 원자력 엔진 소리라고 스파이크 씨가 귀뜸 해 준다. 추측했던 대로 지상에서 6m쯤의 높이에 있는 해치에서 불빛이 새 나오고 있다. 아사가 생각을 보내 온다.
"그들의 생각을 이제 느낄 수가 있어요.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굳은 생각이에요. 우리가 여기 있는 줄은 아직도 모르고 있어요.",
우주선 안을 들여다보기 위해서 오른쪽으로 돌아서 적선에 바짝 가까이 다가갔다. 입체 사진 같은 광경이 나타났다. 선실 한 가운데에 놓인 탁자 주위에 15명의 대원이 식사 중이다.
검은 상의에 푸른 바지를 입고 긴 가죽 장화를 신고 있다. 선실 귀퉁이의 수신기 옆에서 무엇인가를 쓰고 있는 사사키도 보인다. 사사키 옆에는 어깨에 금색 견장을 달고 지휘봉 같은 것을 들고 있는 깡마르고 키가 큰 사람이 왔다 갔다 하고 있다. 15명의 대원을 통솔하는 장교 신분 같다.
"사사키, 장교 1사람, 군인 15명, 도합 17명입니다. 그런데 무기는?"
하는, 나의 귓속말에 스파이크 씨가
"소총은 다 가지고 있는 것 같군. 선실 뒷벽을 보아. 나란히 세워 둔 개인 화기가 보이지. 무슨 총인지는 모르지만."
스파이크 씨 말에 아사가 와들와들 떤다.
"큰일났어요. 저들이 도시 안으로만 들어오면 우리는 대항할 방법이 없어요. 아이구 무서워."
스파이크 씨가 아사를 진정시킨다.
"나도 그렇게 생각은 하지만, 그러나 아직 놈들은 도시 밖에 있어. 놈들은 너의 국민들이 쌓고 있는 굴을 뚫지 못할 거야."
우주선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 놈들이 차를 가져온 흔적은 안 보인다. 그러나 화물을 풀어서 우주선 아래 어디엔 가에 내려놓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둠 때문에 우주선 아랫부분은 보이지 않는다. 이 때, 갑자기 아사가 생각난 듯이
"얼마 안 있으면 화성이 떠오를 거예요. 그 때는 땅이 대낮처럼 밝아져요."
아사의 말에 새삼스럽게 지평선 쪽을 보았다. 벌써 희끄무레한 빛이 북쪽 산봉우리 근방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돌아가야 할 것 같아요. 더 있으면 밝아져서 적이 우리를 발견할지 몰라요."
하고, 내가 조바심이 나서 움직일 생각을 않고 있는 스파이크 씨를 재촉한다.
"태진이! 놈들에게 차가 있는지 알아보아야 해. 그런데 저게 뭐야. 군인들이 움직이고 있잖아."
정말 군인들이 부산하게 움직인다. 바짝 긴장된다. 서치라이트가 켜지면서 우주선 아랫부분을 비춘다. 네 명의 군인이 사다리를 타고 땅으로 내려온다. 동시에 여태까지 들리던 기계 음이 훨씬 더 커지면서 기중기의 긴 팔이 우주선 안에서 나타난다. 그런데 그 기중기의 팔 끝에는 대형 장갑차 같은 것이 달려 있지 않은가? 먼저 내려온 군인들이 바쁘게 설치더니, 그들 머리 위로 내려오는 장갑차 같은 것을 땅에 풀어놓는다. 거의 30분간 지켜보고 있는 동안에 적은 장갑차 4대와 무언지 알 수 없는 화물을 땅에 내려놓는다. 무기, 탄약, 음식물인 모양이다. 화물 중에는 별로 크지는 않지만 대포 같은 것도 있다. 벌써 지평선에 둥근 화성이 반쯤 고개를 내밀고 있다.
"저봐요! 화성이 떠오르고 있어요. 빨리 가요."
아사의 재촉이다.
"가자!"
스파이크 씨가 일어선다.
"박사님이 지시한 사항은 다 체크했다. 인원, 무기, 차. 자, 소리 안 나게 빨리!"
아사와 내가 앞에 서고 스파이크 씨가 뒤에 서서 우리는 급하게 귀로(歸路)에 오른다. 적선에서 나는 기계 음이 점점 멀어진다. 벌써 화성이 높이 떠올라서 사방으로 찬연한 빛을 보내고 있다. 3개의 긴 그림자가 길게 앞장선다. 나는 점점 불안해진다. 대낮 같은 빛 속에 우리는 완전히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적 쪽에서 우리 쪽을 보기만 하면 우리의 긴 그림자가 금방이라도 발견될 형편이다.
 
서치라이트
 
언덕을 반쯤 올라왔을 때, 기어코 일은 터졌다. 내가 큰 바위 위를 지나가는데 갑자기 바위가 흔들거려서 나는 몸의 균형을 잔지 못하고 바위와 함께 언덕 아래로 미끄러지기 시작한다. 이 때, 잽싸게 달려든 스파이크 씨의 손을 잡고 나는 겨우 돌에 치이는 것을 면했지만 큰 바위가 굴러 내려가면서 와당탕 하는 돌 사태를 막을 수는 없다. 다행히도 돌 사태가 크게 일어나지 않고 중간에서 멎었지만 그 소리는 적선에까지 충분히 들렸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약하게나마 들리던 기중기 소리가 뚝 그치더니 센 서치라이트 빛이 우리 쪽을 향해 날아온다. 숨을 죽이고 서 있는 곳에서 50m쯤 떨어진 바위 위에 날아온 둥근 불빛이 마의 함정처럼 흔들거리며 우리 쪽을 향해 슬금슬금 다가온다.
"가자. 20m만 달려가서 저 바위 뒤에 숨자!"
스파이크 씨의 다급한 부르짖음에 놀란 토끼처럼 우리는 언덕을 오르기 시작한다. 둥근 서치라이트 빛이 야금야금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 바위 있는 곳에서 15m쯤 떨어진 곳에 이르렀을 때, 서치라이트가 우리 머리 위로 휙 다가온다. 곤두박질하듯이 우리는 땅에 엎드린다. 숨을 죽인다. 서치라이트 함정 속에 우리를 가둔 채 불빛은 잠시 그대로 있다.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다. 그런데! 불빛이 다시 오른쪽으로 움직여 간다. 그럼 적은 아직 우리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단 말인가?
나는 벌떡 일어난다. 스파이크 씨가 내 팔을 낚아채면서 외친다.
"꼼짝 말고 있어!"
이유는 금방 명백해졌다. 1, 2m쯤 떨어진 곳에 잠시 멈춘 불빛이 다시 우리에게로 덮쳐온다. 우리는 다시 마귀의 손에 잡혔다. 내가 다시 엎드리기 전에 나의 어른거리는 그림자를 눈치 챘으리라. 두려움에 떨면서도 행여나 하고 잠시 그대로 엎드려 있다. 갑자기 2, 3m 떨어진 곳에서 불꽃같은 먼지를 내면서 금속성의 비명을 지르며 총알이 떨어진다.
"바위 있는 곳으로 달려라."
스파이크 씨의 숨가쁜 부르짖음과 함께 우리는 쏘는 듯한 불빛을 등 뒤에 받으며 필사적으로 언덕을 기어오르기 시작한다. 앞에, 옆에, 빗발처럼 총알이 날아와 박힌다. 바로 내 머리 위에 있던 바위가 산산조각이 나서 내 입술을 때린다. 짭짤한 피가 입 속으로 흘러 들어오지만 이런데 신경 쓸 새가 없다. 총알을 맞기 전에 어떻게 하든지 한시 바삐 저 바위 뒤로 숨어야 한다. 9m……, 5m……, 총탄이 쏟아진다. 소낙비처럼.
 
추 격
 
우리 발꿈치 바로 뒤에 총알이 비명을 지르며 따라와 먼지를 풀썩일 때, 우리는 꼭대기에 이르렀다. 구르듯이 바위 뒤로 몸을 숨긴다. 불빛이 이곳까지는 못 미친다.
우리는 새삼 각자의 몸을 살펴본다. 총알을 맞은 흔적은 없다. 총알이 사람을 피해 간다더니, 빗속을 뛰어 다니면서도 비 한방울 안 맞은 격이라 할까? 총소리가 그치고 급히 시동이 걸리는 차 엔진 소리가 들린다. 살그머니 내다보니, 몇 사람이 총을 든 채 장갑차 속으로 급히 뛰어들고 있다.
"언덕을 빙 돌아서 앞길을 차단할 모양이다. 빨리 빠져 나가자."
하는, 스파이크 씨의 말과 함께 우리는 또 다시 죽자고 달리기 시작한다.
언덕을 다 내려와서 평원을 달릴 때는 이제는 제법 높게 뜬 화성(火星)의 반사광 때문에 세 사람의 긴 그림자가 우스꽝스럽게 춤을 추며 우리를 끌고 간다.
지프차가 숨겨져 있는 바위 뒤를 돌아서 우리는 한 덩어리가 된 채 차에 오른다. 스파이크 씨가 황급하게 엔진을 넣어 막 움직이려 하자 오른쪽 언덕 아래서 적의 장갑차의 머리가 나타난다. 장갑차와의 거리는 800미터 정도. 다른 사고만 없다면 장갑차가 우리를 따라 잡기 전에 벼랑까지 우리가 먼저 도착할 수 있는 충분한 거리다.
스파이크 씨가 잡고 있는 핸들 앞에 붙어 있는 속도계가 60을 가리키고 있다. 현재 상태로 달리면 벼랑까지 45분 정도 걸릴 것 같다. 곳곳에 솟아 있는 바위와 작은 나무의 긴 그림자가 차의 운전을 어렵게 한다.
그림자 때문에 눈이 현혹되어 헤드라이트를 켜고서도 자칫하면 바위를 향해 돌진할 가능성이 있다. 설사 큰 바위와 정면 충돌은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주먹만한 돌멩이가 타이어에 깔리기만 해도 큰일난다. 중력이 작기 때문에 차가 공중으로 튕기기 쉽고 그러면 자연 전복될 위험이 있다. 적의 사정도 우리와 마찬가지인지 우리와의 간격을 조금도 좁히지 못하고 있다. 20분쯤 달리자 밤하늘에 까맣게 솟은 벼랑이 보이기 시작한다.
차 뒷자리에서 아사가 생각은 전한다.
"벼랑 위에까지 우리를 쫓아오면 어떻게 하지?"
스파이크 씨가 안심하라는 듯이 말한다.
"다이너마이트가 있잖아? 꼭대기에 먼저 올라가서 길을 폭파시켜 버리면 그만이야."
멋진 계획이다. 급한 중에서도 이 코 큰 신사의 머리가 이렇게 빨리 돌아가는 것이 놀랍다. 우리가 사사키 일당을 벼랑에서 저지시키면 놈들은 640킬로미터 이상을 돌아야만 지하 도시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상태로만 달린다면 아무 일 없겠구나 하고 혼자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쉴 때다. 바로 이 때 피- 웅 하고 공기를 찢으며 날아온 총알이 바로 귓전을 스친다.
"앗! 스파이크 씨! 적이 다시 쏘기 시작해요."
하고, 다급한 비명을 지르며 아사가 자라처럼 목을 움츠리고 차 속에 납작 엎드린다. 차 뒤에는 그녀의 황금빛 머리칼만이 국화꽃잎처럼 휘날린다.
"난 벌써 그럴 줄 알았어!"
스파이크 씨가 침착하게 뇌인 말이다.
"그러나 과히 염려할 것 없다. 멀리 떨어진 차 속에서 정확하게 조준할 수는 없어."
총알이 또 날아온다. 그러나 우리에게서 20미터나 떨어진 곳에 먼지를 일으킬 뿐이다. 현재의 차의 속력은 65마일. 이제 땅은 그렇게 울퉁불퉁 하지는 않다. 그런데! 적의 속력이 빨라진 것처럼 보인다. 그 동안에 눈에 띄도록 거리가 좁혀지고 있다.
"점점 가까워지고 있어요!"
눈만 내밀고 뒤를 쳐다보고 있던 아사가 부르짖는다.
"얼마나 가까워졌니?"
스파이크 씨가 물은 말이다.
"전 잘 모르겠어요. 태진이, 넌 알겠나?"
나의 추측으로는 우리와의 거리가 540미터쯤 된다고 했다.
적은 바위와 나무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가면서 산새 처럼 잘도 달려온다. 이렇게 가다가는 10분 안에 우리를 따라잡을 것 같다. 적은 장갑차이기 때문에 차체가 육중해서 웬만한 속력을 내더라도 돌멩이에 튕겨서 전복될 염려가 없다. 그래서 속력을 증가시킨 모양이다. 또, 총알이 날아와서 앞 타이어에서 불과 10센티 정도 떨어진 곳에 풀썩 먼지를 일으킨다. 스파이크 씨와 나는 앞에서, 아사는 뒤에서 되도록 자세를 낮춘다. 그러나 가장 걱정되는 것은 타이어다. 타이어에 총알이라도 맞는 날이면 만사가 끝난다.
"지금 거리는 어떠냐?"
앞을 노려본 채 스파이크 씨가 물은 말.
"더 가까워 오고 있어요."
"할 수 없다. 속력을 더 내자."
전복을 각오하고 속도계가 70을 가리키도록 속력을 올린다. 적도 눈치를 챘는지 더 요란한 엔진음을 내면서 적의 속력도 더 빨라진다. 이제는 벼랑을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뻗어 있는 울타리 길이 보인다. 공중에 높이 뜬 화성의 반사광으로 은실처럼 반짝이는 작은 길!
그러나 그 길은 아직도 멀다. 그런데 사사키 일당은 미친개처럼 악착같이 달려오고 있다. 스파이크 씨가 액셀러레이터 밟은 발에 힘을 준다. 속도계가 90을 가리킨다. 조금만 잘못되어도 차는 전복한다. 적이 400미터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총알에 맞는 것을 겁내기보다는 폭풍을 만난 배처럼 제멋대로 흔들리는 지프차에서 떨어져 나갈까봐 더 겁이 난다.
"스파이크 씨! 큰일 났어요. 점점 더 가까워져요!"
하고, 뒷자리에 엎드려 있는 아사가 발을 동동 구른다.
"사격도 점점 정확해지고 있습니다."
하고, 나는 조바심이 나서 스파이크 씨를 재촉한다. 총알이 지프차의 본넷에 맞아서 삐웅하는 날카로운 금속성을 낼 때, 스파이크 씨가 체념한 어조로 중얼거린다.
"이제는 기적을 믿을 수밖에 없다."
 
새 떼
 
놈들의 차의 엔진소리가 점점 높게 그리고 점점 가까이 들려온다. 이제는 금시라도 우리 뒷덜미를 낚아채는 것 같다. 이 때,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무의식 중에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을 새까맣게 덮은 새떼가 우리 머리 위를 지나가고 있다. 아사도 고개를 들어 새떼를 쳐다본다.
"아버지가 보내신 거야. 아버지는 벌써부터 나의 생각을 수신하고 계셨어. 새떼를 보내 우리를 도우려는 거야."
"그러나 새 따위가 무슨 도움이 돼?"
“이해 못하겠니, 태진아? 새떼가 차 주위를 둘러싸면 운전사가 앞을 못 보아서 운전을 못할 것 아냐!"
그 동안에도 스파이크 씨는 묵묵히 차만 몰고 있다. 나는 일이 어떻게 되나 하고 뒤를 돌아다본다. 정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벌어지고 있다. 새떼가 장갑차를 덮었다. 벌떼 처럼 겹겹이 둘러싼 새의 날갯짓이 장갑차의 헤드라이트 빛 사이로 어른거린다. 새 날개로 된 담요를 뒤집어 쓴 꼴이 되었다.
"스파이크 씨, 저걸 한 번 보세요!"
하고, 아사가 기쁨의 환성을 지른다.
"적은 완전히 포위 당했어요. 아- 지금 차가 섰어요. 스파이크 씨 , 차가 섰어요."
하고, 나도 덩달아 부르짖었다. 차는 새와 구름 같은 먼지에 둘러 쌓여 정지해버린 것이다. 스파이크 씨는 돌아볼 념도 내지 않고 여전히 최고 속력으로 차를 물고 있다. 그러나 말만은 천연덕스럽다.
"거봐! 기적이 필요하다고 했잖아. 이제 기적이 일어난 거야!"
이 때, 자지러질 듯한 기관총 소리가 밤하늘을 찢는다. 그와 함께 애처로운 새 울음이 가슴을 뭉클하게 찬다. 놈들이 새 떼를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한 것이다.
콩튀듯하는 총소리와 함께 공중으로 풍지박산하는 새떼의 날개소리가 바람소리처럼 들려온다. 공중으로 솟아오른 새 떼는 검은 담요처럼 뭉쳐서 대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적은 새떼의 포위를 벗어났다. 그러나 이 때 쯤에 우리는 1600미터나 그들 보다 앞 서 있다.
스파이크 씨의 계산으로는 이제는 적보다 먼저 벼랑까지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 새들은 그들의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했다. 아사는 새떼에게 생각을 보내어 위험을 피해 공중 높이 솟아오르도록 한다.
드디어 벼랑까지 도달했다. 급커브를 틀어 울타리 길을 달려 오르기 시작한다. 중력이 작아서 험한 길에 타이어가 잘못 반동을 일으키면 차는 나르듯이 해서 계곡 사이에 떨어지기 쉽다. 그러나 스파이크 씨의 운전 솜씨는 가히 일품이다. 반동이 일어날 만한 바위를 용케 피해서 잘도 달려 올라간다.
벼랑 꼭대기에 무사히 도착한다. 나와 스파이크 씨는 차 뒤에서 다이너마이트를 꺼내어 급히 오던 길로 도로 달려 내려간다. 적은 이제 벼랑길로 접어드는 참이다. 우리는 녹슨 울타리 쇠 하나를 빼버리고 폭약 2개를 묻었다. 이 정도면 지름 2미터쯤의 함정을 만들기에는 충분하리라.
스파이크 씨가 퓨즈에 불을 붙이고 우리는 놀란 토끼처럼 꼭대기로 다시 뛰어 올라갔다. 뛰면서 힐끗 쳐다보니 적의 장갑차가 마지막 커브를 돌고 있는 중이다. 아사를 태운 채 약간 움푹 들어간 곳에 세워둔 지프차 아래로 곤두박질해 들어갔다.
이 때, 천지를 뒤흔드는 폭음이 들려온다. 뒤이어, 폭파 찌꺼기가 비처럼 쏟아져서 지프차의 본넷을 두드린다. 다시 조용해진다. 우리는 벼랑 꼭대기로 다시 올라갔다. 길 가운데 커다란 웅덩이가 입을 벌리고 있다. 탱크라도 통과하지 못할 장애물이 생긴 것이다. 멀리 벼랑 중간쯤에 장갑차가 정지해 있고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그들 중에는 팔짱을 끼고 올려다보고 있는 사사키도 알아볼 수 있다.
"이젠 숨쉴 시간이 생겼다. 그러나 사사키는 계곡을 빙 돌아서 결국은 지하 도시로 오고 말 것이다."
스파이크 씨가 숨을 헐떡이며 한 말이다. 우리는 다시 지프차에 올랐다. 머리 위로 돌아가는 새떼의 울음소리가 공중에 가득하다.
 
항복이냐 ! 항전이냐 !
 
야간 정찰에서 돌아왔을 때는 수백 명의 헤시코스 인들이 흙 포대를 산더미처럼 준비해 두고 있었다. 책임자인 추장의 부관 페트라는 우리가 들어서자 무거운 철문을 잠그고 굴 안쪽에서부터 흙 포대를 쌓기 시작한다. 추장 집에서 늦은 저녁을 먹으면서 그간의 정찰 결과를 스파이크가 보고했다.
"적은 전부 20명 정도이고, 장갑차가 3, 4 대, 개인 자동화기에다가 포 같은 것도 있단 말이지. 그리고 벼랑의 길이 폭파되었기 때문에 빙 돌아와야 한단 말이지."
하고 혼잣말처럼 뇌인 아저씨가
"추장, 벼랑은 동서로 얼마나 뻗어 있습니까?"
"약 640킬로미터 됩니다."
"그럼 여기까지 오는데 줄잡아도 6시간은 되겠지."
하고, 또 한참 무얼 생각하는 눈치더니
"나는 사사키가 공격을 개시하기 전에 먼저 무선 접촉을 해올 것 같아.“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흐른다. 추장은 눈을 내리 감고 그린 듯이 앉아 있다. 무기력한 침묵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흐르노프 교수가,
"그럼, 김 박사! 우리는 그 동안에 어떤 대비책을 강구해야겠오? 터널에 흙 포대만 쌓아 놓으면 그만이겠오?"
아저씨가 대답한다.
"잘 알다시피 터널 말고도 도시로 잠입하는 길이 2개 또 있소. 사사키도 그걸 다 알고 있을 겁니다. 그도 흐르노프 교수께서 집필한 저서와 신문 보도를 읽었을 테니까. 놈들은 우선 지하 강으로 들어올 수 있어요. 이렇게 하자면 배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럴 시간은 없을 것 같소. 또 한 가지는 통풍관을 이용하는 건데, 이건 수km나 되는 줄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사사키가 이 방법을 쓸 가능성도 희박합니다. 그러나 나는 이 두 곳에 만일을 위해 보초를 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거야 어렵지 않습니다. 그대로 지시하겠습니다."
그린 듯이 앉아있던 추장의 말이다.
"예, 고맙습니다. 그러면 그 동안에 되도록 충분한 휴식을 취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사사키가 보내올 무선 연락을 기다려야하는데. 놈의 동태를 알 필요가 있으니까 교대로 잡시다. 처음에는 흐르노프 교수와 내가 맡고, 다음에는 태진이와 스파이크 군이 맡게."
나는 아줌마가 휴양하고 있는 방으로 갈려고 나서다가 갑자기 생각이 나서 아저씨에게 물었다.
"아저씨, 우리 우주선은 어떡합니까? 터널 입구에 그대로 놓아둔 걸 보면 사사키가 폭파하려 들텐데요?"
"그는 우주선을 폭파하기가 어려울 거야. 해치의 개폐 주파수(開閉周波數)를 모를 테니깐. 해치는 열지 못할 거고, 유압 착륙 장치는 폭파하려면 폭약이 많이 들텐데, 모르긴 해도 터널 폭파에도 폭약이 모자랄 걸."
이 때, 추장의 부관 페트라가 들어선다.
"터널 입구를 잠그고 흙 포대를 다 쌓았습니다."
"수고했네. 사람들을 쉬게 하게."
하는, 추장의 말에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는 곤란해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런데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시민들은 현재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정확히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추장이 대답한다.
"알겠네, 기계를 통해 내 생각을 전하겠네. 내 생각을 수신할 때까지 시민들은 집에 머물러 있도록 하게. 그리고 또 한 가지 지하 강 입구나 통풍갱에도 보초를 세우도록 하게."
추장의 지시를 받고 페트라가 물러나자
"박사, 나는 불안하오, 정찰 결과로는 저들은 많은 장비를 갖추고 있는 것 같지 않소?"
하는, 추장의 조심스런 말에
"이해합니다. 불안하고 두려운 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아무 일 없을지도 모릅니다. 사사키가 굴을 통과하지 못할지도 모르니까요."
하고, 아저씨가 위로한다.
"당신의 판단이 정확하기를 바랍니다."
하는 비꼬는 듯한 여운 있는 말을 남기고 추장은 기계실로 가버린다.
나와 스파이크 씨는 아줌마의 병실에 들렸다가 다시 돌아와서 긴 의자에 누웠다. 아줌마는 많이 회복되어 있었으나 아직도 파리한 얼굴은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이런 것이 다 사사키 놈의 소행이라 생각하니 새삼 속에서 불같은 것이 울컥 치밀어 오른다.
야간 정찰에서의 흥분 때문에 졸리는 줄은 몰랐으나 이내 깜박 잠이 깨었다. 추장의 텔레파시가 산울림처럼 우렁우렁 크게 들려왔기 때문이다. 추장이 시민들에게 생각을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친애하는 시민 여러분! 지금은 위기입니다. 수천 년 동안 우리는 평화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적이 침투해 왔습니다. 지구로부터 어떤 파렴치한 적이 몰려온 것입니다. 그들은 나쁜 목적에 사용하기 위해 우리의 뇌파 증폭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복이냐 항전이냐 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만약 항복하면 우리에게 육체적 고통은 없습니다. 그러나 적은 뇌파 증폭기를 이용하여 우리의 지구 동지들에게 처절한 죽음과 살육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항전을 시도한다면 우리는 우리 일신의 위험은 각오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지구인 친구 김영준 박사의 말은 겨울이 닥쳐올 며칠 간만 터널을 봉쇄하면 적은 저절로 물러가지 않을 수 없답니다. 우리는 헤시코스의 새로운 역사의 문턱에 서 있습니다. 김 박사는 연장과 기계와 지식을 우리에게 가져 왔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게 하고 우리의 찬란했던 옛 문명을 되살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럼 여러분의 답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항복하여 우리의 친구를 배반하겠습니까? 아니면 항전하여 우리는 우리뿐 아니라 위험에 놓인 이웃까지도 도울 수 있는 용기의 소유자라는 것을 증명해야 하겠습니까?"
그 이상의 생각은 내 머리에 들려오지 않는다.
"스파이크 씨 들립니까?"
"그래, 들려."
그는 일어나 앉아서 팔을 베고 옆으로 비스듬하게 눕는다. 낙천적인 이 카우보이의 후예도 표정이 침울하다.
"추장은 훌륭한 사람이야. 그러나 시민들은 그를 배반할 거야."
라는, 스파이크 씨 말에 내가 발끈하여
"그걸 어떻게 압니까? 국민들의 대답이 들립니까?"
"아니, 지금은 안 들지만 그렇게 생각될 뿐이야."
우리는 기다렸다. 도시가 한꺼번에 숨을 죽인 것 같다. 미동도 없는 고요가 도시를 무겁게 싸고 있다. 추장의 텔레파시가 다시 들려온다.
"여러분의 답은 무엇입니까? 항복입니까? 항전입니까?"
나는 정신을 집중하려고 애를 쓴다. 갑자기 침묵을 깨고 터진 봇물처럼 헤시코스 인들의 대답이 들려온다.
"우리는 항전한다. 우리는 항전한다. 우리는 항전한다…"
평화만 알고 평화 속에서만 살아오던 헤시코스 인들이 드디어 궐기한 것이다.
 
핵융합 총
 
나는 4시간 동안 잤다. 그 때 아저씨가 어깨를 흔들어서 깨었다.
"자, 일어나. 이제는 네 차례다. 옆방에 수신기를 갖다 놓았다. 스파이크 군은 먼저 가 있다."
"사사키에게선 무슨 연락이 있었나요?"
"아니, 숨소리도 없었다."
스파이크 씨와 나는 90분이나 묵묵히 앉아 기다린다. 맡은 시간이 거의 다 되도록 수신기에는 아무 반응이 없다. 아저씨의 말로는 사사키가 무선통화로서 사람들을 겁내게 하려는 일종의 심리전을 펴려고 꼭 연락을 할거라는 것이다.
그러나 저러나 처량한 생각이 든다. 헤시코스 인들을 돕는 것은 좋지만, 그리고 뇌파 증폭기를 보초 함으로써 지구 도처에서 일어날 분쟁을 막는다는 대의 명분이 좋기는 하지만, 이러다가는 동해의 베이스 K기지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여기서 영영 불귀의 객이 되고 말 것이나 아닌지? 이런 하염없는 생각에 잠겨 있던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수신기에 반응이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수신기의 볼륨을 올렸다. 그러자 소름끼치는 사사키의 탁한 음이 들려 온다.
"여기는 사사키, 내 말이 들려요? 오버."
내가 옆방으로 달려가서 아저씨를 불러왔다.
"여기는 사사키, 내 말이 들려요? 오버."
또다시 들려온다. 수신 상태가 양호하다. 그가 가까이 있다는 증거다. 아저씨가 송화기를 끌어당긴다.
"김명준이가 사사키에게 말함. 수신감도 양호."
사사키 소리가 뒤따른다.
"사사키가 말함. 터널 앞에 있는 철문을 발견했음. 철문 뒤에 바리케이드를 쳐둔 것도 알았음. 그러나 당신들은 바보. 당신들은 우리를 못 들어가게 하지 못함. 우리는 어떤 장애물도 제거할 수 있는 핵융합 층을 갖고 있음. 폭력을 피하고 뇌파 증폭기를 순순히 내어줌이 좋을 것임. 오버."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하는, 나의 안타까운 물음에 아저씨가 고개를 젓는다.
"모르겠어. 모르겠어."
아저씨가 다시 송신기를 누른다.
"김영준이가 사사키에게 말함. 뚫을 수 있으면 뚫어보기 바람. 당신들은 앞으로 열흘 밖에 시간이 없음. 그 다음은 무서운 혹한 때문에 견디지 못함. 오버."
"여기는 사사키!"
사사키의 소리가 일층 날카로워 진다.
"당신은 바보, 김 박사. 바보에게는 행동으로 일깨워 주겠음. 오버."
무서운 협박과 함께 통화는 끝났다. 우리들은 망연자실, 그대로 한참이나 서 있다.
"핵융합 총? 핵융합 총이 뭡니까? 아저씨."
아저씨의 손가락을 무릎 사이에서 폈다, 오므렸다 하고 있다. 초조하다는 뜻이다.
"그게 바로 수소탄이야! 다만 대포에 장비해서 쏠 수 있을 정도로 위력이 좀 적을 뿐이야, 총알을 맞는 부분에는 순간적으로 100만도 가까이 온도가 올라서 모든 물질을 순식간에 증발시킬 수 있어."
이 어마어마한 말에 우리는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그럼 철문과 흙 포대는 별 소용이 없겠군요?"
"그것도 경우에 따라서겠지. 그가 정말 핵융합 총을 가지고 있다면 허세 부린다고는 말할 수 없어. 그러나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쉽게 부서지지 않을 가능성은 있어. 철문은 두꺼워. 철문 뒤에는 흙 포대가 또 있고 그가 뚫는다고 하더라도 그가 뚫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우리 쪽에서 흙 포대를 쌓을 수도 있고."
하고, 아저씨가 일어선다.
"추장에게 이 사실을 보고해야겠다. 그후에 터널로 가서 철문 저쪽에서 사사키가 정말 작업을 하고 있는지를 알아보아야겠다."
아저씨는 서둘러 밖으로 나간다. 나는 헤시코스를 처음 방문했던 때를 기억하고 있다. 그 때는 상쾌하고, 평화로운 가운데 행복한 기분이 충만했었다. 그래서 우리도 덩달아 같은 기분에 젖을 수 있었다. 그런데 현재는 헤시코스 인들의 가슴속에는 공포와 전율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우리에게까지 전달되어 우리의 마음을 더 한층 무겁게 한다.
아저씨가 추장 일행과 함께 들어선다. 추장과 무슨 일 때문에 다툰 모양이다. 아저씨는 지구에서 종종 그랬던 것처럼 더 한층 성미가 급해 졌다.
"여기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안돼! 나는 터널에 가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를 알아봐야겠어! 누구 같이 안가겠어?"
바로 이 때다. 쿵-그르르-쿵. 둔탁한 음이 방안을 흔든다. 흡사 지진을 만난 것 같다.
"드디어 시작이군!"
아저씨의 자조적인 말이 공허하게 들린다.
 
비상 수단
 
쿵-구르르-쿵. 둔탁한 진동음이 숨을 죽이고 기다리고 있는 우리들의 귓전을 계속해서 두들긴다.
"자- 모두들 터널로 가보자."
하는, 아저씨 말에 우리는 허둥거리는 걸음으로 아저씨를 따라 나선다. 그러나 추장은 앉은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는다.
"추장께서는 안 가보시겠습니까?"
추장이 조용한 소리로 말한다.
"갑자기 생각나는 게 있어요."
추장의 표정은 잔잔하게 흐르는 물과 같다.
"몇 세기 전에 헤시코스가 다른 행성인으로부터 침공을 받았다는 기록이 갑자기 생각납니다. 그 때, 당시의 추장이 어떤 엄청난 조치를 취해서 침공한 외적을 물리쳤습니다. 도서관 어디엔 가는 당시의 추장이 썼던 그 비상 수단에 대해 상세히 기록해 둔 것이 있을 겁니다. 나는 지금 그 기록을 찾아 보아야 하겠습니다. 현재의 우리 입장에 어떤 도움이 될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요."
아저씨는 아까보다 더 기분이 언짢아진 것 같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든, 그게 현재의 우리에게 무슨 도움이 된단 말이요. 과거의 일이 아니오. 융합탄이 계속 터지고 있소. 현재의 일을 걱정해야 할 때요. 지금은."
"과거란 미래를 구축하는 기반이요."
추장은 아저씨를 타이르듯이 조용하게 말한다.
"역사와 과학은 순서 있게 짜여져야 비로소 발견이 있는 거요, 김 박사."
"쳇, 쓸데없는 이론이요. 차라리 흙 포대 쌓는 시민들을 거들어 주는 것이 나을 거요."
"거긴 페트라가 돌보고 있어요. 김 박사."
추장의 시종 침착한 태도에는 아저씨의 급한 성미로도 어쩔 수 없는 위엄이 도사리고 있다. 아저씨의 성미가 수그러진다.
"미안하오, 추장. 당신의 일을 비방하려는 뜻이 아니었오. 단지 지금 신경이 팽팽해져 이제는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요."
하는 아저씨의 사과에, 추장은
"그 심정은 알겠소! 그러나 박사! 침착해서만 새로운 계획을 도모할 수 있소. 침착하시오."
하고는 다시 눈을 감고 그린 듯한 자세로 돌아간다.
우리는 아저씨를 따라 터널을 향했다. 추장 집에서 빤히 바라다 보이는 곳이긴 하지만 거리로서는 꽤 멀다. 수 km는 실히 된다.
굴에 가까워질수록 둔탁한 진동음은 커진다. 굴에 도달했을 때는 바로 서 있으면 발이 저려올 정도로 땅의 진동이 심하다.
골굴 근처의 흙에는 여기저기 박혀 있는 이리도늄이 고양이 눈처럼 반짝이고 있다. 뇌파 증폭기의 주요 원료 금속인 것이다. 흐르노프 교수가 이리도늄과 납을 반응시키면 금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그리고 그 때의 촉매로서는 단지 식염이 쓰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아 냈을 때, 우리가 탄성을 올렸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이리도늄은 공간을 지나는 동안에 소멸되어 버린다는 어이없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가졌던 실망감도 지금의 급박한 사정에 이르러서는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 그 후에도 여러 가지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었지만, 그러나 그 발견들이 융합탄이 터지고 있는 현실을 타개하는데 어떤 도움이 된단 말인가?
굴 입구에는 큰 혼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흙 포대를 더 쌓기 위해 동원된 사람들이 융합탄의 진동 때문에 새파랗게 질려서 우왕좌왕 하고 있다. 페트라가 시민들 사이로 돌아다니면서 그들을 타이르고 있지만, 아무도 흙 포대를 메고 굴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없다. 이런 혼란 상태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던 아저씨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저고리를 벗어 던지고 흙 한 포대를 들러 메고 굴 속으로 들어간다.
나와 스파이크 씨도 아저씨의 뜻을 눈치채고 각기 흙 포대를 짊어지고 아저씨의 뒤를 따랐다. 아저씨는 몸소 흙 포대를 지고 굴 속에 들어가 보임으로써 융합탄이 터질 때, 나는 진동음으로는 굴이 무너질 정도로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시민들에게 보이고자 하는 것이다.
아저씨의 의도는 맞아 들어갔다. 우리가 세 포대째의 흙 포대를 짊어지자 시민들도 각기 흙 포대를 지고 굴 속으로 따라 들어오는 것이다. 이제 시민들은 진동음 때문에 겁을 내지는 않는다. 페트라의 지시에 따라 부지런히 굴 속으로 흙 포대를 운반한다.
시민들과 함께 땀을 뻘뻘 흘리며, 흙 포대를 운반하던 아저씨가 또 무슨 생각이 났는지 흐르노프 교수와 함께 시내로 들어가 버린다. 아저씨의 다른 명령이 없었기 때문에 나와 스파이크 씨는 계속해서 시민들과 함께 흙 포대를 운반하고 있다.
세 시간쯤 지났을 때, 아저씨와 흐르노프 교수가 다시 굴에 나타났다. 교수의 손에는 이상하게 생긴 전자 기기와 같은 휴대용 컴퓨터가 들려 있다. 전자 지진계다.
아저씨와 교수는 굴 입구에서 땅을 50cm쯤 파고 지진계를 묻고 전선을 끌어 내어 컴퓨터에 연결한다. 그 동안에도 시민들의 작업은 계속된다. 아저씨와 교수는 컴퓨터를 심각하게 들여다보며 낮은 소리로 무슨 의논들을 하고 있다. 1시간쯤 컴퓨터를 관찰하고 있던 아저씨와 교수는 다시 시내로 들어간다.
페트라는 시민들을 바꾸어 가면서 부지런히 굴을 막고 있다.
우리는 다시 추장 댁의 응접실에 모였다. 추장과 아사는 아직 도서관에서 돌아오지 않고 있다. 응접실에 모인 사람들은 한결같이 침묵을 지키고 있다. 저마다 깊은 감회에 젖어 있는가 보다. 나에게 여러 가지 생각이 끊일 사이 없이 떠오른다. 사사키가 굴을 뚫을 것인가? 못 뚫을 것인가? 만약 뚫는다면? 우리도 이제는 마지막이겠지! 아저씨도, 스파이크 씨도, 추장도, 아사도, 시민들도, 그리고 나도. 그럼, 우리는 동해의 베이스 K에는 영영 다시 돌아가지 못한단 말인가? 아니 이 무슨 이기적인 생각이야! 헤시코스 인들이 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에 베이스에 돌아가느냐 못 돌아가느냐를 걱정하게 되어 있어?
나는 아직 19살밖에 안되었지만, 그래서 앞으로 할 일이 태산 같이 많지만 옳은 일을 위해서라면 죽는 것쯤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누구나 한 번은 다 죽는 게 아닌가? 옳지 못한 일을 쫓다가 욕된 삶을 길게 이어가는 것보다 차라리 옳은 일을 일해 끝까지 싸우다가 깨끗이 죽는 것이 실로 장한 일이 아니겠는가? 하물며 아저씨와 같은 세계적인 학자도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는데.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나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오냐! 올 테면 와라 너 사사키! 굴이 꿇린다면 내겐 쇠붙이 한 조각도 없는 상태지만 내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너와 싸우리라.
이 때, 아사와 추장이 응접실에 나타났다. 좀체 표정을 나타내지 않는 아사도 수심에 가득 찬 얼굴이다. 그러나 추장은 그대로다. 아무런 표정의 변화가 없다. 융합탄이 터질 때마다 머리에서 금방이라도 불이 쏟아져 내릴 것 같지만 추장의 태도는 실로 의연, 바로 그것이다. 전장에 임한 야전군 사령관의 태도도 저럴 수가 있을까 ?
안온한 품위를 잃지 않고, 조금도 동요의 기색이 없는 추장의 태도를 보니 나는 한결 기운이 솟는 것 같다. 저런 사람이라면, 이런 절대절망의 한계 상황 속에서도 저렇게 침착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무슨 비책을 가슴속에 묻어 놓고 있을지도 몰라 -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박사, 터널이 며칠이나 견딜 것 같소."
추장이 아저씨에게 조용히 묻는다.
"조금 전에 나와 흐르노프 교수가 급하게 만든 지진계로 융합탄의 폭발 진원을 조사해 보았더니 한시간에 약 1.4m쯤 전진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터널 l00m를 완전히 막아 놓는다면, 사사키가 터널을 통과하는데 3일 내지 4일이 걸리는 셈입니다."
3일 내지 4일. 그럼 3, 4일 후면 결국 굴을 돌파한단 말인가? 행여나 하고 기대를 걸고 있던 마지막 희망이 무참하게 깨어지자 나는 순간 정신이 아찔해진다. 혈색 좋은 스파이크 씨의 얼굴에도 핏기가 싹 가신다. 겨울이 오려면 아직 7일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데 굴을 뚫는데 3, 4일밖에 걸리지 않는다면, 아- 생각만 해도 눈앞이 캄캄하다.
아저씨의 대답을 들은 추장도 더는 말이 없다. 흡사 묵도를 드리는 신자처럼 눈을 지그시 내리 감고 입가에 야릇한 미소를 띤 채로.
"추장, 놈들이 터널을 돌파하면 어떻게 할 작정이오?"
한결 기가 죽은 아저씨가 조심스럽게 묻는 말에 추장은 미소를 머금은 채 아저씨를 묵묵히 쳐다보고 있다가 한참 만에야 입을 연다.
"박사, 박사는 시민들만 동원하면 사사키를 막을 수 있다고 하지 않았소? 그런데 이제 와서 터널이 돌파당하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되려 내게 묻는군요?"
잔잔하게 흘러나온 추장의 텔레파시는 아저씨를 가볍게 힐책하고 있다. 추장의 태도에, 아저씨도 다시 발끈한다.
"추장, 내게 방법이 전연 없다는 말은 아니오. 단지 추장에게 어떤 묘안이 없는가를 물어 본 것 뿐이요. 나와 흐르노프 교수는 이렇게 의견을 모았어요. 즉, 터널 바로 앞에 폭약을 묻는 것입니다. 그랬다가 적이 나타날 때, 그것을 터뜨리는 겁니다. 그러면……"
"잠깐 박사, 그것은 안됩니다. 첫째, 사사키의 장갑차를 부수려면 상당한 폭약을 묻어야 하는데 적이 그것을 눈치채지 못 할 리가 없고, 둘째 설사 적이 통과할 때 요행히 폭약을 터뜨린다 하더라도 특수강으로 된 장갑차 4대를 부수려면 장갑차는 그만 두고라도 굴이 무너집니다. 외부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인 굴을 무너뜨리면 지하 도시에 갇힌 우리는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보시다시피 굴은 특수하게 설계 시공된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과 같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겠다는 겁니까? 뇌파 증폭기를 내어 주고 항복하겠다는 겁니까?"
추장은 다시 아저씨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아저씨도 이글거리는 눈으로 추장을 마주 대하고 있다.
"박사, 그건 아니오. 뇌파 증폭기를 내어 주지 않기 위해서 우리 헤시코스 인은 적들과 싸우겠다고 총의로 결정하지 않았소이까? 일단 일어선 우리는 물러서지 않습니다."
"아니, 그럼 무기도 없는 시민들로 하여금 사사키의 장갑차로 돌격이라도 하게 할 셈입니까?"
아저씨의 말에 추장이 실소를 금치 못한다.
"아하, 그건 당치도 않는 생각이요."
"그럼 어떻게 하겠다는 겁니까?"
추장은 다시 말문을 닫는다. 한참 동안 묵묵히 앉아 있던 추장은 방 안을 왔다 갔다 한다. 방안에 있는 사람의 눈길은 자석에 끌린 듯이 추장의 뒷모습을 쫓는다. 서성거리던 추장은 굴 쪽을 한참동안 응시한다. 그리고는 우리를 향해 돌아선다.
"여러분,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내게도 생각이 있습니다."
하고는 다시 추장은 등을 돌리고 굴 쪽을 쳐다본다. 웬일인지 추장의 뒷모습은 고뇌와 슬픔에 젖어 있는 사람의 그것처럼 쓸쓸해 보인다. 그럴싸해서 그렇게 보이는 건지 아사의 눈동자도 슬픔에 젖어 있다.
"추장. 어떻게 하실 건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
추장은 돌아서서 다시 아사 옆에 앉는다.
"그럼 간단히 말하리다. 지금부터 2000년 전에 우리 조상들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것과 같은 곤란에 부딪혔습니다. 그 때, 추장은 뇌파 증폭기에서 나오는 텔레파시 에너지를 써서 적을 무찔렀습니다. 그래서 나도 똑같은 방법을 쓰려고 합니다."
말을 마친 추장은 아사의 팔을 꼬옥 쥔다. 무슨 일일까? 아사도 추장도 깊은 슬픔에 잠겨 있는 것 같다.
"아니, 그게 가능할까요? 무기를 가진 적을 텔레파시로 쫓아낼 수 있을까요?"
하는, 아저씨의 거듭되는 질문.
"도서관에 비치된 서류에 적을 무찌르는 방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도 오늘 그 서류를 보고서야 뇌파 증폭기의 진정한 비밀이 무엇인지를 깨달았습니다. 더 이상 묻지 마십시오. 이제 다 알게 될 겁니다. 그리고 흙 포대를 쌓는다고 적을 막을 수 없는 이상 더 이상 쓸 데 없는 노력을 들일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시민들을 다 집으로 돌아가게 했습니다."
추장은 새삼 우리들을 주욱 훑어 본 뒤에
"현재 쌓아 놓은 흙 포대는 내일 낮쯤에는 적에게 돌파됩니다. 그 때, 다시 만나기로 합시다. 그럼 다들 편히 쉬기를."
추장은 더 이상 질문할 기회를 주지 않고 아사와 함께 방을 나가 버린다.
 
텔레파시의 비밀
 
우리는 갖은 억측을 하면서 밤새 뜬눈으로 지새웠다. 밤새 추장과 아사는 응접실에 나타나지 않았다.
쿵 그르르 쿵 그르르……. 융합탄의 폭발음은 바로 굴 앞에서 들려오는 것 같고 그 때마다 창이 깨어질 듯이 흔들린다. 굴 속에는 금방이라도 사사키 일당이 나타날 것 같다. 아저씨와 흐르노프 교수는 밤새 무슨 의논을 하는 모양이었지만 신통한 방법을 찾지 못한 모양이었다.
완전히 날이 밝았다. 굴 입구에서는 폭발음이 들릴 때마다 먼지가 구름같이 인다. 아저씨의 지진계에 의하면 늦어도 한 시간 후에는 사사키가 지하 도시로 들어 올 것이라 한다. 응접실에 있는 사람은 전부 창가에 붙어 서서 폭발음이 날 때마다 연기를 뿜고 있는 굴 입구를 응시하고 있었다. 다시 초조하게 기다리길 40분.
추장의 부관 페트라가 소리 없이 방안에 들어선다.
"여러분, 뇌파 증폭기실로 모이시랍니다."
웬일인지 페트라도 심한 슬픔에 젖은 눈동자를 하고 있다. 헤시코스의 멸망이 눈앞에 닥쳐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인가? 우리는 뇌파 증폭기실로 갔다. 아사와 추장이 증폭기 옆에 조용히 앉아 있다. 추장을 보자, 아저씨가 다시 급하게 묻는다.
"도대체 어떡하실 작정입니까?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추장은 미소를 잃지 않은 얼굴을 조용히 들고
"그러리다. 증폭기를 통해 나의 정신력을 적을 향해 집중시키는 겁니다. 이 증폭된 텔레파시 에너지는 그 위력이 실로 무시무시합니다. 사사키의 핵융합 총도 여기에는 어림도 없습니다."
이 때 추장 옆에 조용히 앉아 있던 아사가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추장의 품에 와락 쓰러지며, 울음을 터뜨린다. 품 안에 안긴 딸의 등을 어루만지고 있는 추장의 손길도 가늘게 떨리고 있다.
이 때, 우리들의 머리에는 의혹의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나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아사가 울고 있고. 페트라도 슬픔에 젖어 있고, 추장의 눈길도 어쩐지 쓸쓸해 보인다.
무슨 일인가? 단지 사사키의 다가오는 공격이 무서워서일까?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거기에는 그 무엇인가 숨겨진 비밀이 있는 것 같다. 우리에겐 알리고 싶지 않은 비밀이.
아저씨도 이런 사태를 짐작했는지 추장에게 다가가서 무엇인가를 물으려고 할 때였다. 쿵구르 쿵. 쿵구르 쿵. 도시 전체가 날아갈 듯한 요란한 폭발음이 들리면서 굴은 시커먼 연기를 무럭무럭 토해 놓는다. 숨을 죽이고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아- 드디어 사사키의 장갑차가 연기를 헤치고 삐죽이 나타난다. 이 때, 추장은 증폭기에 다가가서 레버를 두 손으로 잡으면서 페트라에게 명령한다.
"최대 입력(入力)을……..
페트라는 증폭기에 들어가는 전원의 메인 스위치를 넣는다. 추장은 레버를 잡은 채 두 눈을 감고 정신을 모은다. 사사키의 장갑차 4대가 전부 나타났다. 핵융합 총처럼 보이는 길다란 대포를 장갑차에 장비하고 시내를 향해 천천히 들어온다. 이 때.
“사사키! 그 자리에 서라!"
하는 소리가 어디선가 우뢰처럼 들려온다. 아니, 우뢰란 말은 적합하지 않다. 도시 전체가, 공간 전체가 소리로 꽉 찬다. 거대한 소리의 바다 속에 있는 것 같다.
나는 그 소리가 추장의 텔레파시인 것을 한참 만에야 깨달았다. 추장이 잡고 있는 뇌파 증폭기의 이리도늄이 새빨갛게 달아올라서 성난 뱀처럼 꿈틀거린다. 거대한 소리, 아니 나는 텔레파시로 정신이 몽롱해진다. 그 몽롱한 정신 속에 사사키 일당의 당황해 하는 생각이 전해 온다.
"무슨 소리야, 어디서 나는 소리야!"
"누구야?"
"하느님 소리다아."
적들의 생각이 텔레파시 에너지에 흡수되어 흡사 눈에 보이는 것처럼 내 정신 속에 들어 온 것이다.
"사사키! 서라! 그 자리에 멈추어라."
다시 추장의 텔레파시가 성난 파도처럼 밀려온다.
"뭐야? 어디서 나는 소리야!"
"유령이다아-"
적은 대 혼란에 빠진다. 이미 장갑차 2대는 제자리에 서 버린다. 그러나 사사키의 지능과 생각은 아직도 강하다. 그는 부하들에게 호령호령한다.
"아니다. 아무 것도 아니다. 텔레파시일 뿐이다. 텔레파시로는 우리에게 해를 주지 못한다. 전진하라! 전진하라!"
적은 다시 대열을 가다듬어 다가오기 시작한다. 그러나 장갑차 한 대는 움직이지 않는다. 사사키는 움직이지 않는 차를 향해 다시 악을 쓴다.
"2번 차, 따라 오라. 겁낼 건 없다. 적은 우리에게 해를 주지 못한다. 우리에겐 핵융합 총이 있다."
강력한 사사키의 정신력이 추장의 텔레파시를 위압한 건가? 움직이지 않던 장갑차 한 대마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사사키 들어라! 텔레파시는 너희들에게 해를 주지 못한다고 생각하느냐? 그럼 본보기를 보이겠다. 2번 차! 2번 차! 2번 차 승무원은 15초 이내에 전부 밖으로 나오너라. 텔레파시 에너지로 장갑차를 녹여버리겠다."
다시 귓전이 우렁우렁하는 산울림 같이 울려 퍼지는 추장의 텔레파시다. 2번 차의 승무원 사이에는 다시 대 혼란이 일어났다. 내리자거니 그대로 전진하자거니 저희들끼리 실랑이를 벌이는 마음들이 환하게 들린다. 다시 추장의 텔레파시가 울려 퍼진다.
"10초 남았다. 10초 내에 내리지 않으면 인명을 살상하는 것이 우리의 평화 신봉 정신에 어긋나는 것이기는 하지만 할 수 없이 승무원과 함께 장갑차를 녹여 버리는 수밖에 없다. 8초 남았다. 죽지 않으려면 빨리 장갑차 밖으로 나오너라."
추장의 텔레파시가 승무원의 정신력을 완전히 위압했다. 장갑차의 뚜껑이 열리면서 4명의 승무원이 구르듯이 밖으로 뛰어 나온다.
"자-그럼 사사키 보아라. 텔레파시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보여 주마."
하는, 공간을 가득 채우며 울려 퍼지는 텔레파시와 함께 앗! 자- 보라!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칼날 같이 날카로운 불이 장갑차를 향해 쏟아지지 않는가?
세계의 종말! 아니 하느님의 심판이랄까?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서운 섬광이 장갑차에 날아들어 작렬하는 소리와 함께 장갑차를 시뻘겋게 달구고 있다. 수십만 개의 불화살이 날고 있는 광경과 같다고나 할까? 참으로 몸서리쳐지는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시뻘겋게 달구어진 장갑차는 다음 순간 형체도 비참한 쇳덩어리가 되어 버린다. 실로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사사키! 보았느냐? 돌아가라! 돌아가지 않으면 너희들도 저 장갑차 같이 된다."
다시 대뇌를 파고드는 추장의 텔레파시. 적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졌다. 승무원의 무서운 공포감이 그대로 전부 들려온다. 전차 1대는 슬금슬금 방향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한다. 사사키의 발악적인 호령이 다시 들린다.
"3번 차! 3번 차! 돌아서라! 돌아서서 저 안테나를 쏘아라! 핵융합 총으로 텔레파시를 복사하고 있는 저 안테나를 쏘아라!"
아- 드디어 사사키가 에너지가 복사되고 있는 증폭기실 지붕에 달려 있는 안테나를 발견한 것이다. 핵융합 총으로 안테나를 부수어 버리면 추장의 텔레파시도 맥을 추지 못할 것이 아닌가! 달아나던 차도 멈추어서 3대의 장갑차에서 순식간에 시뻘건 화염이 우리를 향해 날아온다. 그런데! 핵융합 총의 총구를 떠난 화염은 공간 속에서 어디로 빨려 들어간 듯이 사라져 버린다. 이럴 수가 있을까? 수소탄이 날아오다가 고차원의 공간으로 흡수되듯이 소리 없이 사라지다니! 사사키도 잠시 동안은 믿어지지 않는 듯이 화염이 빨려 들어간 공간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더니 다시 악을 쓴다.
"다시 쏘아라 ! 계속 해서 마구 쏘아라."
쿵구르르 쿵. 쿵구르르 쿵. 쿵구르르 쿵. 계속해서 총구를 떠나는 핵융합 총. 그러나 그들은 하나같이 중도에서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적들은 악착같이 쏘아댄다. 그럴 때마다 융합탄은 미지의 공간 함정에 빠지듯이 사라져버린다. 다시 추장의 텔레파시 통신이 흘러나온다.
"사사키! 소용없는 짓이다. 융합탄으로도 뇌파 증폭기에서 복사되는 강력한 텔레파시 탄막은 뚫지 못한다. 사사키! 돌아가라. 정 말을 듣지 않을 때는 조금 전의 장갑차 꼴이 된다. 자 돌아가라."
이 때, 사사키가 탄 장갑차의 뚜껑이 열리면서 사사키가 뛰어나온다. 손에는 번쩍이는 긴 일본도가 들려 있다.
"자 ! 전원 돌격- ---돌겨어ㄱ…….."
사사키는 미친 듯이 일본도를 휘두르며 단신 시내를 향해 달려온다. 아무도 사사키를 뒤따르는 자는 없다.
"돌격- 돌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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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키는 제 정신이 아니다. 미쳐버린 것일까? 가공할 집념의 화신, 증폭기를 소유하고 싶은 무서운 욕망이 사사키를 저렇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칼을 휘두르며 20m쯤 달려오던 사사키는 힘없이 칼을 떨어뜨리고 그 자리에서 비틀거리더니 이윽고 땅에 픽 쓰러진다. 텔레파시 에너지 탄막을 뚫느라고 드디어 기력이 다한 것이다.
"사사키를 데려가라! 단지 기절했을 뿐이다."
다시 울려오는 추장의 텔레파시에 사사키의 장갑차에서 승무원 2명이 달려와서 그를 안고 장갑차에 태운다. 이윽고 장갑차 3대는 방향을 바꾸어 굴 안으로 사라졌다. 사사키의 더러운 욕심은 정의 앞에 산산이 깨어진 것이다.
사방은 쥐죽은듯이 조용해졌다. 아직도 주위에 팽배한 뇌파 증폭기에서 나오는 에너지로 우리 모두는 그저 멍한 의식에 놓여 있다. 꿈속을 헤매는 것 같은 나의 뇌리에 어디선가 가슴을 파고드는 오열이 들려온다.
나는 끌리듯이 울음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본다. 울고 있는 것은 아사다. 그런데 아사의 무릎을 베고 길게 누워 있는 사람은? 아니 추장 아닌가? 그제야 정신이 든 우리들은 추장의 주위로 달려갔다. 아니! 저 추장의 모습은! 우리가 다가온 것을 안 추장이 힘없이 눈을 뜬다.
"여러분, 지구 친구 여러분, 나는 드디어 그대들의 은혜를 갚았소. 나는 나의 전 체력을 뇌파 증폭기에 쏟아 넣었오. 그래서 지금 보다시피 뼈만 남은 흉측한 몰골이 되었오."
추장은 한참 숨을 헐떡이다가 통신을 이어 갔다.
"2000년 전에도 이렇게 해서 추장은 자기의 목숨을 바쳤오. 그런데 박사, 지구 친구들은 빨리 이 곳을 떠나 주시오. 아까의 막대한 텔레파시 에너지 때문에 헤시코스는 태양의 궤도를 이탈했소. 이제 본래의 우리의 고향, 오메가 항성을 향해 가속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영원히 태양계를 이별하고 있습니다. 다시는 여러분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은혜, 여러분의 용기를 우리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박사 출발해 주시오. 늦으면 박사가 가진 연료로서는 헤시코스가 가속되고 있는 궤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빨리! 그리고 안녕히."
아사와 페트라가 슬픔에 젖어 있었던 이유가 저절로 밝혀졌다. 추장은 사사키와의 대전에서 그 자신 생명을 잃을 것을 아사와 페트라에게만 알려 놓았던 것이다. 화약 냄새가 짙게 풍기는 터널을 빠져 나오면서 양 볼을 타고 내리는 눈물을 닦을 염도 내지 않고 나는 속으로 뇌까린다.
"아사여! 헤시코스여! 영원히 안녕."
<끝>
 
 
우주 도난
 
뜻밖의 사고
 
먹물 같은 어두움 속에 군데군데 박혀 있는 별, 별, 별. 사방 어느 쪽으로 보나 죽고 싶도록 단조로운 광경 뿐. 완전한 진공 - 그러니까 빛을 산란시켜 줄 공기가 있을 리 없고, 따라서 별이 있다고 하지만 인류의 눈에 익어온 찬연하게 반짝이는, 그래서 우리에게 미지의 세계에의 꿈을 키워준 별은 아니다. 안간힘을 다해서 마지막으로 한줄기의 남은 빛을 발하고 그대로 폭삭 꺼져버리려고 하는, 임종 직전에서 허덕이는 것 같은 별 - 그런 별이다.
그런 별을 겹겹이 싸고 있는 지옥 같은 칠흑의 심연. 생명의 꼬투리도 없는 세계. 숨막히는 죽음의 세계. 만일 독자들이, 푸른 하늘과 신선한 공기와 짙푸른 바다가 있는 지구상의 풍경에 익숙해온 독자들이, 여기에 선다면 그대들은 아마 십중팔구는 1분 이내에 정신 착란의 징조를 나타내고 말리라.
완전한 정지의 세계 - 수없이 널려 있는 별은 제자리에서 꼼짝도 않는다. 훈련된 사람이면 지구도 금성도 화성도 쉽게 찾아볼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들도 제자리에서 꼼짝도 않는다. 행성은 태양의 둘레를 공전하고 있다고? 누가 그런 얼빠진 소리를 했나? 보라! 지구도 화성도 금성도, 그 어느 것이나 미동(微動)이나 하고 있나? 행성들의 공전 궤도가 너무 커서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일 뿐이라고? 그럴지도 모르지! 그러나 이 완전한 절대정지의 세계에서 과연 어느 누가 그런 말을 곧이 들을 것인가?
앗! 그런데 움직이는 것이 있기는 있다. 아니 어디에! 저기 저 별들 사이를 보라고! 반짝 반짝 마치 거울같이 빛나고 있지 않어? 빛나는 게 있기는 있는데 - 그런데 그놈도 움직이는 것 같지는 않은데. 아니야, 난 아까부터 저놈을 보고 있었어. 주위에 있는 별을 기준해서 보면 저놈과 다른 별 사이의 간격이 확실히 변하고 있어. 그래? 그럼 좀더 가까이 가볼까? 아니! 이건 우주 화물선이 아닌가? 아마 그런가봐. 우선 덩치가 크고 또 저놈의 진행 방향으로 보아 금성행(金星行)이 분명한데 - 먼 포물선 궤도에 진입되어 있지 않어? 여객선 같으면 여객을 태운 채로 145일이나 걸리는 저 먼 궤도를 날고 있지는 않겠지. 응, 지구에서 금성으로 곧바로 가려면 태양의 인력을 이기기 위해서 막대한 연료를 소모해야 하는데, 연료가 소모되지 않는 포물선의 자유궤도를 택한 모양이야.
좀 더 가까이 가볼까. 아이구 이건 너무 크다. 앞뒤 길이가 500미터는 될 것 같은데. 저 뒤가 동력실이고 저 앞 대가리가 조종실인 모양이다. 그럼 어디 조종실 안을 한번 들여다볼까?
40대로 보이는 혈색 좋은 사나이가 자이로 위에 얹힌 의자에 파묻혀서 멍청하게 계기판을 쳐다보고 있다. 창 밖으로 밀려가는 별 떼들의 풍경이 황홀할 지경이지만 이 사나이에게는 그런 광경도 이젠 넌덜머리가 난다는 표정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이 사나이는 이미 109일이나 우주선에 갇혀 있는 것이다.
갑자기 조종실 문이 열리면서 이건 흡사 대낮에 도깨비라도 본 것 같이 눈을 흡뜬 깡마른 사내가 나타난다. 용하게 조종실 문까지는 열고는 기력이 다 된 모양이다. 그대로 문밖에서 털썩 주저앉는다. 아니 무중력 상태에서는 마음대로 주저앉지도 못한다. 고속 필름에서처럼 공중에 뜬 채 바람이 새는 풍선같이 몸이 천천히 꼬일 뿐이다.
문이 열리는 순간에 선장처럼 보이는 자이로에 앉은 사내의 멍청한 표정에 약한 변화가 있는 것으로 보아, 문소리를 들은 게 분명하다. 그러나 돌아다보지는 않는다. 여전히 허탈 상태의 멍한 표정이 된 채. 3~4분이 그대로 지난다. 처마에 달아놓은 낙지꼴이 된 가시처럼 보이는 사내는 여전히 눈이 까뒤집힌 채, 그래도 생명이 있다는 증거라도 보이려는 듯, 어깨로 숨을 쉬고 있다. 다시 3~4 분.
"뭔가?"
마지못해 터져나온 선장의 말.
"……"
"뭔가 말이야."
뭐야? 용건이 있으면 빨리 말해 치우고 사라지지 않고 - 하는 듯 짜증이 나서 못 견디겠다는 투다.
"……"
여전히 대답할 염을 내지 못한 채 기사는 숨만 헐떡인다. 선장이 빙 돌아앉는다. 얼굴 전체가 짜증이다. 살이 통통하게 찐 양 볼이 솜에 물이 배이듯 짜증으로 배어있다. 선장은 말없이 기사를 쳐다보고 있다. 표정이 천천히 변한다. 물을 짠 빨래같이 늘어져 떠있는 기사의 몰골에서 어떤 중대한 사태를 점차 깨닫고 있는 것이다. 이젠 선장도 입을 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기사를 쏘아보기나 할 뿐.
"터졌어요!"
가까스로 기사의 입에서 기어 나온 말.
"무엇이 터졌단 말인가?"
반사적으로 기사의 말을 뒤이은 선장의 물음.
"아니 무엇이 어떻게 되었다는 거야?"
"예비 산소 탱크가 터졌어요."
순간 선장의 표정은 경악으로 변한다.
"이젠 우리는 다 틀렸어요."
말끝은 왁 터뜨리는 울음 속에 묻혀버린다. 선장은 어깨를 들먹이며 흐느끼는 기사를 말없이 내려다보고 있다. 얼굴이 점차 일그러진다. 눈길이 싸늘해지면서 그럴 수 없는 절망감으로 차여진다.
"여봐, 그렇게 다 죽어 가는 모양이 된다고 해서 터진 놈이 저절로 때워질 수는 없어."
선장은 자리를 박차고 더러운 것이라도 치워버리듯 기사를 옆으로 밀어붙이면서 화물실로 둥둥 떠간다.
화물은 초현실적으로 싸여 있다. 공중에 떠 있는 것이다. 중력이 있는 곳에서처럼 마룻바닥에서부터 차곡차곡 쌓아 올려놓을 필요가 없다. 그저 공중에 띄워놓고, 우주선이 방향을 바꾸거나 속도를 가감할 때 벽에 날아와서 부딪히지만 않도록 잡아매어 놓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화물이 몽땅 없어졌다 하더라도 선장은 그것을 눈치 채지 못했으리라. 에어록의 안쪽 벽에 볼트로 조여져 있는 산소탱크에 그의 눈은 화석처럼 굳어 있다. 탱크는 먼저 번 보았을 때와 조금이고 달라진 게 없다. 알루미늄 페인트는 여전히 번쩍이고, 금속 통은 얼음같이 차가워서 무엇이 들어 있었던가를 알려 주고 있다. 무엇이 크게 잘못되어 있다는 표시는 없다. 다만 탱크 안의 산소 압력을 말해 주는 압력계의 바늘이 0에 머물러 있다는 것 말고는.
전쟁 중에, 아내의 다정한 미소를 등 뒤에 받으며 출근한 남편이, 저녁에 집에 돌아 왔을 때 아내도 집도 무참히 폭격에 날아간 어이없는 광경을 목격하고 있는 것처럼 선장은 압력계를 쳐다보고 있다. 계기 자체가 고장이 나서 압력을 잘못 나타내고 있는 것인가 하는 쓸 데 없는 희망으로 계기를 입김으로 닦아도 보고 유리판을 두들겨 보기도 한다. 바늘은 0을 가리킨 채 꼼짝도 않는다. 선장이 다시 조종실에 돌아왔을 때 기사는 놀랄 만큼 원기를 회복하고 있다. 벌써 미쳐버리기라도 했는지 히죽 히죽 웃기까지 하면서 농담을 하려든다.
"운석(雲石)에 맞았어요. 이 정도로 큰 화물선은 일세기에 한 번쯤 맞는다는 통계가 있어요. 그러니까 앞으로 90 몇 년 간은 염려 없게 된 셈이죠."
"경보(警報)도 안 울렸잖아? 실내 기압도 변화 없고, 그런데 어떻게 탱크에 구멍이 뚫렸단 말인가?"
"구멍이 뚫린 게 아니에요."
기사는 흡사 남의 일을 얘기하는 것처럼 아까와는 딴판으로 덤덤하게 지껄인다.
"탱크 안에 있는 산소는 냉각 코일을 통해서 햇빛이 안 쪼이는 쪽으로 돌면서 액화되잖아요? 운석이 그 냉각 코일을 부숴 버린 거예요. 그래서 탱크 안의 산소가 끊어져 버린 거예요."
선장은 생각을 정리하면서 잠자코 있다. 사태는 위험하다. 그러나 치명적인 것은 아닌 수도 있다. 벌써 항해의 4분의 3을 마쳤으니까. 그리고 산소가 비등해 버리기는 했지만 우주선 밖으로 새어 나가지만 않으면 선 내에 그대로 있을 테니까.
"냉각 코일에서는 산소가 계속 흘러나오기는 하겠지. 꽤 탁해지기는 하겠지만."
한 가닥 희망을 건 선장의 말에 기사가 고개를 가로젓는다.
"자세히는 설명할 수 없어요. 그러나 답은 압니다. 우리가 내뿜는 탄산가스에 분해되어 다시 냉각기에 들어갈 때 10%의 손실이 생깁니다. 그래서 그 모자라는 만큼의 산소를 보충하기 위해 예비 탱크를 가지고 다니는 겁니다."
"우주복! 우주복 탱크는 어때?"
하고 갑자기 살 길이라도 발견한 듯이 선장이 흥분해서 외친다.
"거기에는 산소가 30분밖에 쓸게 없어요. 비상시에 주 탱크까지 가는 동안에 쓸 정도만요."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고 흥분해서 외쳤다가 금세 그 착오를 깨닫자, 기사에게 자기의 경솔을 보인 것 같아서 선장은 더 기분이 나빠진다.
"방법이 있을 꺼야. 화물을 버리고 빨리 간다든지……"
얼른 한다는 이야기가 또 실수를 한다. 선장은 이렇게 당황하고 있는 자신에 대해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또 금방 죽어갈듯이 빌빌거리던 기사는 저렇게 조리 있게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지금은 자기가 더 당황하고 있는 것 같아서 자기에게 또 성이 난다.
1세기에 한 번쯤 이라는 운석과의 충돌을 미리 예측해서 설계하지 않은 화물선 설계도에 대해서도 화가 무럭무럭 치밀어 오른다. 그러나 기한은 2, 3주일 남았다. 그 동안에 여러 가지 방법이 생길 수도 있다 - 라는 생각으로 선장은 자꾸만 엄습해오는 공포감을 떼어 놓으려고 애를 쓴다. 말할 것도 없이 비상 사태다. 우주 공간에서 만 일어날 수 있는, 그러니까 죽음이 바로 코앞에 닿는 그런 비상 사태가 아니라, 기일이 2, 3주일이나 남은 기묘한 비상 사태다.
생각할 시간은 충분하다. 어쩌면 너무 많은 시간이다. 선장은 자이로에 앉으면서 메모지를 꺼낸다.
"사태를 정확하게 정리해 보세."
아까 자기가 턱없이 흥분해서 외쳤던 위신을 되찾으려는 듯이 일부러 침착을 꾸미며 기사를 가까이 부른다.
"선 내에는 아직 공기가 대류하고 있어. 그런데 그것이 냉각기에 들어갈 때마다 10%씩 없어지고 있어. 거기 산소 소모표를 이리 주게. 나는 우리가 하루에 몇 입방 미터씩이나 소모하고 있는지 기억에 없거든. 어디 얼마나 견디겠는가 계산해 보세."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문제가 따르는 때는 단순한 덧셈과 나눗셈에도 무척이나 긴 시간이 걸리는가 보다. 선장은 자기가 방금 한 계산이 엄청나게 틀렸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여섯 번이나 셈을 반복했다.
이윽고 선장은 더 이상의 계산을 포기하고 의자에 몸을 던진다.
"최대로 절약하면 20일 간은 견딜 수 있겠는데 - 그러니까 금성까지 10일 간이 모자라는 셈이군."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면서 긴 여운을 남기고 침묵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10일! 10일만 넘기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산소 없이 단 5분을 견디지 못하는 인간이 10일이라니!
10일! 그것은 죽음과 삶과의 거리만큼이나 실로 까마득한 시간 간격이다.
공상 과학 소설의 내용이 선장 머리에 얼른 떠오른다. 지금과 같은 경우를 취급한 소설은 여러 개 있다. 그 소설에서는 보통 3가지 해결 방법이 등장한다.
그 중 가장 흔한 방법은 우주선에 식물을 재배하여 식물의 탄소 동화 작용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우주 비행사가 화학 공학이나 원자력 공학에 대한 천부의 재질을 발휘해서 산소 제조 방법을 고안하여 비행사의 목숨을 건지는 것은 물론이고 엄청난 금액의 특허권을 얻어 거액의 부자가 되는 것이다. 이 방법들은 수식(數式)과 분자식까지 동원해서 진저리가 날 정도로 상세히 써 놓았기 때문에 과학적으로도 그럴싸하게 느껴지도록 되어 있다. 마지막 한 가지 방법은, 비행 속도와 비행 진로가 완전히 일치하는 제 3의 우주선이 찬연히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모든 방법들은 어디까지나 소설 속에서의 이야기이고 현실적으로 실현이 가능한 것이 아니다. 첫번째 방법이 그럴 듯하게 보이지만 화물선에는 한줌의 풀씨도 없는 것이다. 설사 있다 하더라도 불과 20일 사이에 완전히 자라서 산소를 공급해 줄 것 같지는 않다. 산소를 제조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두 사람이 아무리 뛰어난 재주가 있고 또 아무리 필사적으로 덤빈다 하더라도, 수세기 동안이나 해결하지 못한 일을 단 20일 안에 해결할 것 같지도 않다. 우연히 주위를 지나는 화물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설사 우연히 같은 궤도를 지나가는 화물선이 있다 하더라도 - 실제는 그런 것이 없다는 것을 선장은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 그쪽 형편도 이쪽과 마찬가지여서 서로 한 발자국도 가까워질 수는 없는 것이다.
"만약 화물을 버리면 어떨까요. 질량이 작아질 테니까 궤도를 변경할 수 있지 않을까요?"
기사의 말에 선장은 깊은 생각에서 깨어난다. 힘없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까는 나도 얼른 그렇게 생각했지만 헛 일이야. 하기야 하려고만 하면 1주일 내에 금성에 도착할 수는 있어. 그러나 그 때는 화물선에 브레이크를 걸 연료가 없어져서 금성에서는 예인선이 우리를 붙잡을 수가 없게 돼."
"쾌속정도 우리를 잡을 수 없지요?"
"선적표에 보면 그 시간에는 금성에 쾌속정이 한 대도 없어. 설마 그런 것이 우리를 따라 잡는다 하더라도 쾌속정은 금성에 다시 돌아가지는 못해. 그렇게 하려면 자그마치 초속 50km가 필요해."
"우리가 적당한 방법을 생각해 내지 못하면 금성에 연락해 봅시다. 거기서는 어떤 방법을 생각해 낼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해보세. 나도 그럴 생각이었으니까. 가서 송신 안테나를 조종해 주게."
기사가 둥둥 떠서 밖으로 나간다. 선장은 침울한 표정으로 기사의 뒷모습을 좇는다.
선장은 혼자 생각한다. 꽤 말썽을 부릴 거야. 처음에는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가는 것 같이 야단이더니만 지금은 완전히 정반대가 되어 있어. 금방 침울하다가 또 금방 히죽거리는 품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
금방 죽을 상을 하고 있던 기사가 최초의 심한 충격이 가시자 재빨리 원기를 회복해서 이제는 선장 자신보다 오히려 더 침착하게 행동하고 있는 것에 선장은 강한 시샘을 갖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처음처럼 죽을 상이 되어 허덕이면 그 때는 그런 기사를 얼마든지 멸시해 주고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태연한 태도를 잃지 않는 자신에 대해 얼마나 긍지를 가질 것인가 - 하는 선장 자신의 무의식적인 욕구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기사의 갑작스런 회복을 정신이 좀 이상해진 때문이라고 단정하는 것이다.
송신기에 부저가 울린다. 안테나의 조정이 끝났다는 기사의 연락이다. 신체에 붙어 있는 포물형 안테나가, 겨우 1천만 km 떨어진 곳에서 화물선과 거의 나란한 궤도를 달리고 있는 금성을 향했다.
안테나에서 나오는 3밀리 전파는 30초도 안되어 금성에 도착할 것이다. 가혹하게도 그들의 운명이 30초 내에 결정되는 것이다. 금성의 자동 모니터가 3미리 파장을 수신하고 내용을 보내라는 신호가 왔다. 선장은 되도록 침착하게 현 사태를 조심스럽게 분석하여 설명하고 조언(助言)을 구했다. 기사의 정신 상태가 좀 이상하다는 것은 말하지 않았다. 자기 방에서 이어폰으로 듣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송신이 끝나기는 했지만, 금성에서는 이 돌발 사태를 금방은 알지 못할 것이다. 송신 내용이 테이프에 우선 녹음이 되고 있을 테니까. 그러다가 기사가 송신 내용을 알기 위해 늘 하는 대로 별 생각 없이 테이프를 틀어 보게 된다. 그래서 너무나 뜻밖의 사태에 한참은 벙벙하게 된다. 이윽고 정신을 차린 기사의 입을 통해 금성과 지구에 이 극적인 뉴스가 전해지게 된다. 신문에는 대문짝 만한 활자가 등장하게 되고 TV는 다른 프로그램을 제쳐놓고 해설이다, 구조 방법이다, 해서 연일 떠들썩하게 될 것이다. 사무실, 길 가, 차 안, 어디서나 이 문제가 화제가 되리라.
선장은 서가에서 책을 하나 빼들었다. 운석에 대한 것이다. 기사는 1세기에 한 번쯤 운석에 맞는다고 했는데, 실은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운석과 우주선이 충돌할 확률은 여러 가지 복잡한 요소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복잡한 계산을 단숨에 해치워 버리는 컴퓨터로도 어쩌지 못하고 있다. 그 동안에 통계수학자들이 한 일이란 고작 몇 가지 모호한 규칙을 세워 놓았을 뿐이다. 그래서 운석이 회오리바람처럼 태양계를 휩쓸 때는 우주선의 보험을 맡고 있는 보험 회사들이 전전긍긍하는 것이다.
운석의 대부분은 지구의 대기권에 돌입할 때 타 없어져서 지구 표면까지 도달하는 것은 거의 없다. 이것이 별똥별이다. 크기는 대부분 머리핀보다 작다. 대체로 100년만에 한 번쯤 떨어지는 산 같이 큰 놈도 간혹 있긴 하지만. 또 우주 공간을 굉장한 속도로 날아다니는 먼지 같이 작은 놈도 있다. 이런 것이 전부 운석인데, 우주 비행 중에는 운석이 선체에 맞아서 구멍을 낼 만한 놈만 문제가 된다.
운석의 위험은 크기 뿐 아니라 속도도 문제가 된다. 크기가 적더라도 속도가 크면 역시 선체에 구멍을 뚫을 수가 있으니까. 지금 선장이 들고 있는 책에는 태양계 도처에서 일어난 운석과의 충돌 사고가 대략 나와 있다.
그것에 의하면 이번에 사고를 낸 운석의 크기는 지름이 1cm, 질량이 10g쯤 되는 큰 놈 같이 생각되는데, 이런 놈과 만날 확률은 10일, 즉 300만 년만에 한 번이라고 한다. 300만 년만에 한번 만날까 말까 한 놈이 하필이면 우리에게 맞다니 - 선장은 생각할수록 꼭 죽을 운수인 것 갈다.
화물선은 너무 크다. 너무 크기 때문에 괴물과 만날 기회도 많아진다. 또 너무 커서 지구 표면에서 떠오르지도 못한다. 그래서 아예 기구의 밖을 돌고 있는 우주 정거장에서 조립되었다. 화물은 지구 표면에서 연락선 로켓으로 우주 정거장까지 운반해 온다.
금성에 가서도 금성 표면에 내려가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자기 연료 만으로서는 금성의 바깥 궤도에 진입하지도 못한다. 금성 근방에 도착하면 예인선이 기다리고 있다가 화물선과 도킹해서 궤도에 들여놓게 되는 것이다. 물론 화물은 공간에서 풀어 금성으로 운반된다. 선장은 자기들의 안전 문제에만 너무 골똘한 나머지 화물에 대한 생각을 깜박 잊고 있었다.
옛날의 선장들은, 배가 난파했을 때 자기는 배와 함께 운명을 같이 하면서도 여객과 화물을 구하기 위해서는 온갖 노력을 다하지 않았던가? 여기에 비하면 지금의 선장의 태도는? 그러나 선장은 선장대로 생각하는 바가 있다. 우주 화물선은 옛날 배처럼 일단 사고가 나면 영구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승무원에게는 어떤 운명이 떨어지더라도 화물선은 정밀하게 그 궤도를 따라가게 마련이다. 승무원이 없기 때문에 중간에 약간의 궤도 수정이 이루어지지 않아 금성을 약간 빗나가더라도 5개월 후에는 다시 지구로 돌아오는 것이다.
화물을 맡긴 화주는 화물선에 사고가 생겼다 하더라도 캘린더만 뒤적이고 있으면 된다. 이런 생각 때문에 선장은 화물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화물 생각이 나자, 화물 중에는 막대한 보험금이 걸려 있는 것이 있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무엇일까? 행여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니까 화물실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 중에는 어쩌면 도움이 될 것도 있을 것 같다. 선장은 새로운 기운이 번쩍 나서 선적표를 훑어보기 시작한다.
 
선장과 기사
 
이 때 기사가 조종실에 들어선다.
"기압을 조금 줄였습니다. 선체에 약간 누출(漏出)이 있어서요."
선장은, 일부러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종이뭉치를 기사에게 내밀었다.
"적재 일람표야. 도움이 될 화물이 있을지 모르니까, 같이 훑어보지."
기사는 말없이 일람표를 받아들고 썩 내키지는 않는 태도로 품목에 눈길을 준다. 아무 소용이 없어도 좋다. 단 몇 분간이라도 죽음을 잊고 몰두할 수만 있으면 좋다. 품목 하나하나에 표시를 해 가면서 되도록 천천히 읽어 내려갔지만 30분도 안되어서 끝났다. 고개를 든 두 사람은 눈길이 마주치자 뜻하지 않게 공허한 웃음을 터뜨렸다. 10만 달러의 보험금이 걸려 있는 품목이 포도주였기 때문이다.
"포도주! 당치도 않게 포도주에 10만 달러라니!"
선장은 일람표를 획 집어던져 버렸다.
마침내 금성에서 연락이 왔다. 연락문을 녹음하는데 거의 1시간이나 걸렸다. 내용은 전부 우주선의 기술적인 문제에 대한 자세한 질문서였다. 너무나 꼼꼼하고 세세한 질문서여서 전부 조사해서 질문에 답할 때까지 살아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연락문을 어떻게 생각하나?"
선장이 침울한 소리로 물었다. 그리고는 기사의 표정을 조심스럽게 살핀다. 기사는 잠잠하다. 한참 있다가 불쑥 한다는 말이,
“우리를 바쁘게 하려는 속임수겠죠. 자세히 조사해서 보고하면 우리를 구할 수 있는 무슨 뾰족한 수라도 있는 것처럼 보여서 우리를 바쁘게 하려는 겁니다.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에는 죽음을 잊어버릴 수 있을테니까요."
선장은 속으로 혀를 찼다. 자신의 생각과 똑같았던 것이다. 선장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기사는 산소 탱크가 터진 것을 알았을 때, 처음에는 정신 착란 증세와 비슷한 무기력함을 나타냈었다. 그러다가 불과 몇 분이 지나지 않아서 또 금방 원기를 회복하는 것처럼 보이더니, 이제는 추리하는 방식도 정상인 선장 자신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가? 그래서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선장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문자 그대로 고지식한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예외 없이 자기가 종사하는 업무 이외에는 관심을 갖지 않고, 따라서 교우 관계도, 독서의 방향도 한정되어 있다. 또 예외 없이 상상력이 부족하다. 자기를 기준해서 모든 사태를 판단하려고 하며 융통성이 없다. 융통성이란 창조력과 상상력이 풍부한 자만이 향유한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고지식한 사람이 의외로 음흉하고 때로는 어이없게 비겁해질 수 있다. 선장은 그런 부류의 사람이다. 엄격하게 기술 교육을 받고, 또 순조롭고 기술계의 좋은 직장을 얻었다. 10년 간이나 이 직(織) - 선장 - 에 종사하고 있다. 상사로부터의 신임도 두텁다. 무엇하나 아쉬운 것이 없다. 적어도 선장 자신의 관점으로 보아서는 마음에 드는 직업과 월등히 많은 보수에 - 선장의 인생은 순탄, 바로 그것이었다. 쭉 곧은 길을 달려오면서 한눈을 팔 사이가 없었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항상 뒤적이고 있는 책은 복잡한 수식이 잔뜩 들어 있는 공학 관계 서적이다. 석달이 넘는 외로운 우주 항해에서도 소설책 하나 보는 법이 없다. 도대체 소설 따위가 세상에 필요할까 하는 생각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항해에서 기사라는 자가 갖가지 책을 한 아름 안고 나타났을 때부터 선장은 못마땅했다. 기사가 자기 방에 꽃아 두고 있는 책은 제목조차 보기 싫은 것들이었다. 윈스턴 처칠의 2차 대전 회고록이니, 무슨 미신 책과 같은 텔레파시니, 독심술이니, 황순원의 카인의 후예니……
또 기사의 경력도 선장의 비위를 거슬렀다. 전공을 세 번이나 바꾸었다는 것이다. 의학을 공부하다가 싫어서 역사를 전공하고 나중에는 그것도 싫어서 기계 공학으로. 가장 어울리기 어려운 사람이, 또 가장 협동을 요구하는 좁은 우주선에 같이 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저러나 여행이 순조로웠으면 한 사람은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든, 다른 사람은 복잡한 경력과 성격을 갖고 있든 없든, 특별한 문제가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여행이 순조롭지 못한 것이다. 못한 정도가 아니라 최악의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20일 후에 죽기 위해서 산소를 야금야금 먹어 치우고 있는 최악의 비상 상태인 것이다.
 
포도주
 
융통성이 있는 자는 심한 충격을 받았을 때, 최초에는 큰 좌절감에 빠진다. 그러나 최초의 심한 좌절은 휘어진 용수철이 곧 제자리에 돌아가듯, 곧 원상으로 복귀될 수 있다. 기사는 그런 사람이다. 검은 놈 아니면 흰 놈, 흰 놈 아니면 검은 놈 식으로, 매사가 확연하게 구분되어 있는 고지식한 선장에게는 이런 기사의 속성이 이해될 리가 없다.
시간은 자꾸 흘러간다. 시간이라야 벽에 걸린 크로노미터(정확한 시계)를 보고서야 몇 분 몇 시간이 지나간 것을 알 수 있다.
지구에서는 해가 지고 뜬다. 해의 위치에 따라 그림자가 길어졌다 짧아졌다, 서늘했다 더웠다 한다. 우주 여행에는 이런 것이 전연 없다. 창문으로 들어온 햇살이 만드는 그림자는 몇날 며칠이고 변화가 없다. 정확하게는 왜 변화가 없을까마는 시계 시침의 움직임을 얼른 알아볼 수 없듯이 그림자의 미미한 움직임을 알 수 없다. 언제 보아도 같은 자리에 같은 크기의 그림자에, 언제 보아도 한 곳에 고정되어 있는 태양 - 하여튼 변화가 없는 세계인 것이다.
사실상의 사형 선고를 받은 선장과 기사는 적어도 겉으로는 항상 하는 대로 행동했다. 선장은 항해 일지를 쓰고, 항로를 점검하고 기사는 기계를 조사하고.
운석에 맞은지 사흘이 지났다. 그 동안에 금성과 지구에서는 우주선을 구할 회담이 열렸다. 그러나 아직 그 회담 결과는 이들에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 연락이 늦어지는 걸로 보아 희망이 없는 것 같이 생각되었다. 그러나 선 내의 모든 것은 정상적인 것처럼 보인다. 공기는 여전히 깨끗하여 호흡에 아무런 불편이 없다. 이런 상태에서 쉽게 생을 포기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나흘째 되는 날, 금성에서 연락이 왔다. 전문적인 술어를 빼면 죽은 사람에게 주는 조사(弔辭) 외에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런 중에도 화물의 안전에 대해서는 지겹도록 상세한 지시를 받았다. 또 지구에서는 천문학자들이 화물선과 접촉할 수 있다는 것인데 결과는 7개월 후에 화물선이 원일점에 돌아갈 때라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보름 후에는 죽어 있을텐데 6~7개월 후라니!
연락문은 너무나 잔인했다. 연락문을 읽고나자 기사는 말없이 자기 방으로 가버렸다. 선장은 초점 없는 눈길을 창 밖에 던진 체 우두커니 서 있다. 생각난 듯이 자이로 의자에 쓰러져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쓰고 또 썼다. 아내에게, 친구에게, 회사에, 유언도 썼다.
유언장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는 동안에 죽음이란 것이 절실한 현실감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몸부림치도록 두려워진다.
벌떡 일어나서 방 을 서성대기 시작했다. 때 아니게 배가 고프다. 걷잡을 수 없는 불안에 빠지면 사람은 때로는 턱도 없는 이상 망이 나타나는 법이다. 자신을 학대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선장은 배가 몹시 고프다. 음식물을 위 안에 때려 넣어서 위를 심하게 학대하고 싶은 일종의 이상 본능의 발로인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저녁 사 때가 되었는 데도 기사가 부르러 오질 않는다. 오늘 저녁은 기사가 식사 준비를 할 차례인 것이다. 기사를 부르러 쫓아나갔다. 노크도 없이 기사의 방문을 벌컥 열어제쳤다. 기사는 침대에 태평스럽게 누워 있다. 뚜껑이 열린 화물 상자가 방 가운데에 떠 있다. 상자를 들여다볼 필요까지는 없다. 기사는 충혈된 눈을 게슴츠레 하게 뜨고 선장을 올려다본다. 10만 달러의 보험이 붙은 포도주를 마신 것이다.
"관으로 빨아 마시려니 무척 힘든데요."
기사가 태연하게 지껄이기 시작한다.
"제대로 기분을 내어 마실 수 있도록 선장은 인공 력이라도 좀 만들어 주시지 않을래요?"
선장은 기사를 노려보면서 어깨로 숨을 쉬고 있다.
"늘상 그렇게 상만 찌푸리지 말고 한잔 마셔 보세요. 이판에 어때요?"
기사가 포도주 병을 선장에게로 밀었다. 선장이 되밀어 던졌다.
"개돼지처럼 멋대로 행동한다 하더라도 도움이 될게 뭐야!"
기사는 아무렇지 않은 듯이 진홍색의 포도주를 입 안으로 쏟아 넣는다.
"장하십니다. 선장님, 임무 제일이군요."
이죽거리고는 플라스틱 통을 눌러서 포도주를 또 들이킨다. 선장은 말없이 상자를 문 밖으로 밀어 넣고 문을 깨어져라 닫아 버리고 나가 버린다.
상자를 화물실로 둥둥 띄운 채 밀고 가서 화물실을 잠궈 버리고 방 앞을 지날 때 기사의 취한 노래 소리가 들려 온다. 선장은 갑자기 몸이 부르르 떨린다. 무서운 유혹을 떨어버리기라도 하려는 듯이 세차게 고개를 젓고는 허겁지겁 조종실로 향한다.
 
무서운 유혹
 
무서운 유혹! 그렇다 무서운 유혹인 것이다. 남은 산소량을 계산할 때, 계산이 다 끝난 것은 아니었다. 선장과 기사가 말없이 계산한 새로운 산법이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이 마시면 20일 간 견딜 수 있다. 그런데 남은 여행은 30일. 열흘이 모자란다. 그러나 한 사람만이 마실 수만 있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살아서 금성 땅을 밟을 수 있는 것이다 한 사람만이 마실 수 있는 방법은?
역시 두말 할 것도 없이 한 사람은 못 마시게 하는 것이다. 죽게 하는 것이다. 기사의 방 앞을 지나가면서 선장이 몸서리친 것은 기사를 죽여 버리고 싶은 충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사와 문명인을 자처하는 선장은 그런 야만적인 생각에 일시나마 자기 마음이 사로잡힌 것을 부끄럽게 생각했다. 그래서 생각을 떨어버리기 위해 몸을 떨었던 것이다.
사흘만 굶으면 문명인도 야만인이 되고 만다는 그 잘난 문명인의 긍지 때문에. 선장은 곰곰이 생각했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죽어야 한다. 그러나 누가 죽어야 할 것인가는 공평무사하게 결정되어야 한다. 명인인 자기로서는 어떤 한계 상황에 놓이더라도 신사답게 행동해야 하기 때문에, 기사를 죽여 버리고 싶다는 등의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럼 우선 기사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 아니 그도 이미 깨닫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명백하게 밝혀야 한다. 어떻게 밝힐까? 그렇지! 편지로 알리자.
선장은 새로운 구제 방법이나 발견한 것처럼 책상에 앉아서 쓰기 시작했다. 쓰다가 말고 하다가 가까스로 편지 한 장을 만들었다. 지금 전할까? 아니야, 지금은 그가 취해 있어. 다음날 전하지. 편지를 금고 속에 보관했다. 편지를 지금 당장 전하지 못하는 진정한 이유는 선장 자신의 무의식 속에 깊이 감추어진 보다 중요한 다른 이유 때문이란 것을 깨닫지 못하고서.
이틀 후에 편지를 줄 작정이었지만 이럭저럭 다시 연기했다. 자주 연기만 하는 것이 선장답지 않았지만 자기대로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즉,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사도 알고 있을 테니까, 기사가 이 문제를 먼저 끄집어 내어 자신이 겁쟁이가 아니란 것을 증명할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다. 기사도 선장과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선장은 생각한다. 기사란 무슨 소용이 있나? 그는 가족도 없다. 화물선에 있어서도 특별한 책임을 부여받은 위치도 아니다. 그가 죽는다 하더라도 그 때문에 세상이 더 나빠진다든지 더 좋아한다든지 할 일이 없다. 그러니까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것이다. 그러나 자기는 어떤가?
우선 아내와 아이가 있다. 또 화물선을 책임지고 있는 책임자다. 기사는 없어도 그뿐일지 모르지만 자기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이렇게 보면 누가 보든지 선장과 기사 중 어느 쪽이 죽어 주어야 될지가 확실해진다. 기사가 조금이라도 인격이 있는 문명인이라면 이 문제를 먼저 끄집어 내어 자기가 죽어 주겠노라고 했어야 옳은 것이다.
그러다가 선장은 또 깜짝 놀라는 것이다. 자기가 언제부터 남을 이렇게 과소평가해서 죽음의 문제에서까지 자기에게만 유리하게 생각하려 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편지를 전하지 않은 것은 이런 자기 자신의 무의식의 발로인 것이다. 아무리 다르게 생각하려 해도 기사가 죽어 주어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다.
이제는 공기가 표가 날 만큼 탁해졌다. 그렇다고 아직 호흡하기에 불편할 정도는 아니다. 선장은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아졌다. 산소가 점점 없어져서 질식하는 꿈을 수 없이 되풀이했다. 그 때부터 전신은 멱을 감은 듯이 식은 땀 투성이가 되었다. 점점 몸이 쇠약해 가고 있는 것이다.
기사의 침착한 태도가 못 견디게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선장과 기사가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식사 때뿐이었는데 그 때마다 기사는 말없이 식사를 마치고는 말없이 자기 방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죽음을 앞에 둔 사람의 표정 같지가 않았다. 선장이 죽음의 생각으로 끊임없이 자기를 괴롭히고 있는 동안에 기사는 책에 열중해 있었던 것이다. 복잡한 생각을 잊기 위해서는 책이 제일이었다. 그러나 이 역시 누구나 흉내낼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죽음을 앞에 둔 자가 웬만큼 정신적 바탕이 탄탄하지 않고서는 책을 읽을 엄두도 못낼테니까.
선장은 육체적으로 쇠약해지면서 정신적으로도 더 이상 지탱하기가 곤란해 졌다. 기사가 아니라 자기 쪽이 정신 착란을 일으킬 것 같은 생각이 드는 때가 자주 생기기 시작했다. 기사에게 줄 편지를 더 이상 지체했다가는 큰일 나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선장은 확고한 태도로 편지를 꺼내 들고 기사의 방을 찾았다. 세상에는 하잘 것 없는 일이 도화선이 되어서 엄청난 일이 벌어지는 수가 많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 엄청난 일이란 것이 그 하잘 것 없는 것 때문에 순간적으로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엄청난 일이 미리 준비되었다가 작은 미끼를 출구로 해서 터진다는 편이 더 옳을 것이다.
선장이 기사의 방문 앞에 나타났을 때, 선장은 기사의 방에서 새어 나오는 담배 연기를 맡았던 것이다. 선장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 귀중한 산소를 쓸 데 없이 담배를 피워 소비하다니! 이래도 그는 사람 대접을 받을만한 인간인가?
선장은 기사에게 줄 편지를 구겨버렸다. 기사에게는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주어졌다. 화주가 맡긴 주요한 화물에 서슴지 않고 손해를 입히는 태도를 보였을 때도 꾹 참고 공정한 인간의 대우를 해 왔다. 그리하여 기사 자신이 죽음의 문제를 먼저 꺼낼 기회도 충분히 주었다. 그런데 이젠 더 이상 그에게 공정한 기회를 줄 필요는 없다. 기사가 피우는 담배 냄새를 맡았을 때, 순간적으로 살인을 계획한 사람치고는 선장의 행동이 이상하게 조직적이었다.
곧장 조종실로 돌아온 선장은 작은 약상자를 열고 해골 표시가 붙어 있는 약병 하나를 끄집어 내었다. 그리고는 병에 붙어 있는 레테르를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1g이면 무통 즉사.
레테르에는 쓰여 있지 않았지만 이 독약은 또한 무미인 것을 선장은 알고 있었다. 일은 결국 갈 데까지 가고 만 셈이다. 기사는 애연가였다. 담배 한 가치도 건강을 생각하면서 조심스럽게 피우다가 말다가 하는 선장으로서는 기사의 태도가 납득될 리 없다.
기사는 피우고 싶으면 목이 따갑건, 기침이 나건 심지어 감기에 걸려 있을 때도 피우지 않고는 못 견디는 사람이었다. 물론 산소가 소중한 건 기사라고 모를 리 없다. 또 담배가 탈 때 산소가 소모된다는 것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하루 4가치 정도는 산소 소모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을 기사는 계산하고 있었다. 담배 몇 개피가 소모하는 산소가 무시할 정도의 양이라는 것을 선장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산소에 신경과 민의 상태에 있는 선장에게 담배를 피워도 되느냐고 물어 보았더라면, 담배 몇 가치가 산소의 공급에 전연 지장을 주지 않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담배 피우는 것을 단호히 금지했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래서 기사는 차라리 선장 몰래 하루 4가치씩만 피우기로 했었다.
운 나쁘게도 그중 한 개피가 선장에게 들키고 단 것이다. 어차피 한 사람은 죽어야 할 운명이다. 단지 죽어야 할 사람이 기사가 선택된 것뿐이다. 또 누가 죽어야 될 것인가를 두 사람이 공평하게 제비 같은 것을 뽑아서 결정하지 않는 것이 틀릴 뿐이다.
 

 
플라스틱 컵 두개와 빨대를 들고 식당 안으로 들어오면서 적어도 겉으로는 태연하다고 선장은 생각했다. 옛날에 본 희극 영화 생각이 갑자기 떠올라서 선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영화의 내용인 즉, 독약을 탄 그릇이 잘못되어서 죽이려던 자가 되려 독약을 마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경우에는 독약이 든 그릇을 혼동할 염려는 없다. 컵에 각자의 이름이 쓰여 있기 때문이다. 기사는 컵을 받아들고 공간을 우울하게 응시하고 있다. 선장의 심장은 금방이라도 얼어붙을 것 같다. 컵을 입에 가져다 대려다 말고 기사는 입맛을 다신다.
"전에는 마시기 좋게 만드시더니 오늘은 약간 뜨겁군요."
선장의 멈추었던 심장이 다시 쿵쿵 뛰기 시작한다. 빌어먹을! 내가 왜 그걸 그렇게 뜨겁게 만들었담! 이런 사소한 실수야말로 살인범이 교수대에 가는 이유가 아닌가? 기사는 컵을 든 채 흡사 공중에 떠 있는 사람에게라도 말하듯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산소를 혼자서만 사용할 수 있다면 금성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진 않습니까?"
선장은 입술을 떨며 시선을 땅에 떨군 채 가까스로 대답한다.
"그 그건 그래. 혼자서만 쓴다면 금성까지 충분하겠지."
기사는 눈을 지긋이 감고 묵념이라도 하는 듯한 자세로 다시 말한다.
"그럼 우리 둘 중에 누가 에어 록 밖으로 나가느냐, 혹은 독약을 마시느냐 하는 것을 정하는 것이, 두 사람이 다 죽기를 무턱대고 기다리는 것보다 훨씬 분별 있는 일이 아니겠어요?"
순간, 선장은 어이가 없었다. 기사가 감히 그런 생각까지를 하다니. 그럼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어차피 죽어야만 된다는 생각을 벌써부터 하고 있었단 말인가? 단지 자기에게 이야기할 기회가 적당하지 않았었단 말인가?
"옳아, 자네 말이 옳아. 그렇게 하는 것이 문명인다운 태도지."
기사는 선장 쪽을 힐끗 쳐다보면서, 컵을 끌어 들여 빨대로 천천히 빨아 당긴다. 빨대를 따라 기사의 입 속으로 빨려 올라가는 갈색 액체를 선장은 넋을 잃고 쳐다본다.
선장은 눈을 감았다. 이제 기사는 죽고 나는 살았다는 안도감보다 죄책감과 외로움이 전신을 떨게 한다. 선장은 눈을 감은 채 일어선다. 기사의 죽어 가는 모양을 보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유난히 반짝이는 화물선이 멀리 보인다. 화물선의 에어록이 열리면서 선 내의 밝은 전등불이 우주 공간으로 왈칵 쏟아져 나온다. 불빛을 등지고 두 개의 그림자가 망망한 공간을 향해서 있다.
수 분 동안 꼼짝 않던 두 개의 그림자 중 한 개의 그림자가 공간 밖으로 몸을 던진다. 등에는 산소통 같은 것을 지고 있는데, 통 꽁무니에서는 가는 연기 같은 산소 추진제가 쏟아져 나온다. 산소 탱크가 로켓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공간 밖으로 나온 그림자는 처음에는 천천히 다음에는 상당히 빠른 속도로 화물선에서 멀어지고 있다. 15분 후에는 그림자가 캄캄한 공간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이 정도면 화물선의 만유 인력에 끌려 시체가 다시 돌아올 염려는 없게 되었다. 그림자가 사라지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에어 록의 다른 그림자는 이윽고 발걸음을 돌려 에어록을 닫아 버린다. 공간으로 쏟아져 나오던 불빛도 사라졌다. 큰 풍선 같은 금성이 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역전 (逆轉)
 
다가오는 화물선을 금성 궤도로 끌어넣을 예인선 안에서 승무원 두 사람이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다.
"화물선과의 거리는 3700입니다. 30분 후에는 도킹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사의하단 말이야. 누가 죽어야 할 것인가를 화투로서 결정짓고, 그리고서는 진자는 미련 없이 에어 록 밖으로 나가 버렸다니…… 보통 사람이라면 흉내낼 수 없는 일이야."
"그래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우리 예인선에 그런 경우가 닥쳤다면 화투고 뭐고 할 것 없이 당신은 나를 밖으로 내던져 버리겠죠."
"하하…… 그건 아마 반대일 걸. 자네야말로 내겐 기도를 드릴 시간도 주지 않고 나를 내쫓을 거야."
"그건 그렇고. 기사는 지금 어떤 기분일까? 혼자서 외롭게 수십만km를 달려왔으니까. 죽었다가 다시 깨어나는 기분일까?"
"기분 따위는 나중에 찾세. 도킹 준비나 하세."
두 사람은 부산하게 선 내를 돌아다니던 도킹 시설을 점검하고 있다. 두 개의 우주선이 초속 2km로 서로 접근하고 있다.
예인선의 꼬리 부분에는 강철제의 올가미가 곤충의 촉수처럼 빛나고 있다. 화물선의 배 부분에는 예인선의 올가미를 걸 낚시처럼 생긴 강철봉이 수없이 뻗어있다.
두 우주선은 반대편에서 서로 날아들면서 카우보이가 로프를 던져 말의 머리를 멋있게 낚아채듯 예인선의 강철 로프가 화물선의 낚시바늘을 후려 꿰어야 하는 것이다. 두 우주선이 서로 스치는 시간은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다. 그러나 컴퓨터의 제어를 받는 고리와 낚시 바늘은 서로 얽히는데 실수가 없다.
두 우주선이 서로 스치는가 싶더니 고리와 낚시 바늘로 연결된 두 우주선은 한 덩어리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덩치가 큰 화물선 쪽이 운동량이 작은 예인선을 끌고 원래의 진행 방향으로 맹렬하게 돌진하고 있다. 다음 순간, 예인선의 옆구리 방향에서 수 초 간의 방향 전환 분사가 있은 후 두 우주선은 금성의 인공 위성 궤도에 진입한다.
같은 궤도에 진입한 두 우주선의 고리가 벗겨지고 예인선의 도킹 터널이 화물선과 연결되었다. 에어록의 압력 조절의 시간이 지난 다음 드디어 우주선의 문이 열렸다.
창백한 얼굴을 한 기사가 눈앞에 나타났다. 예인선의 승무원과 기사는 흡사 다른 생물을 쳐다보듯 서로 멍하니 쳐다보고 있다. 한참 만에야 정신을 차린 듯 구급약과 산소통을 짊어진 예인선의 승무원이 기사를 영접하러 터널 속을 기어간다. 수척할 대로 수척한 기사가 예인선의 승무원 두 사람을 상대로 지난 일을 이야기한다.
독약을 탄 커피를 마신 기사가 죽어 가는 모양을 보지 않기 위해 조종실로 나가던 선장은 등 뒤에서 기사가 부르는 소리에 멈칫했다.
"선장님, 그렇게 바쁘세요? 의논할 일이 있는데……"
선장은 전신을 떨며 천천히 돌아서서 믿어지지 않는 듯 기사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본다.
"앉아요!"
기사의 엄숙한 명령이다. 선장은 몽유병자처럼 기사가 가리키는 쪽에 앉았다. 기사가 엄숙한 소리로 말한다.
"선장님, 당신은 더 좋은 사람인 줄 알았어요."
기사의 말에 끌리듯 선장은 반사적으로 되뇌었다.
"무슨 뜻이야?"
"무슨 뜻이긴 무슨 뜻이요? 도대체 언제부터 선장님은 나를 독살시키려고 마음먹었소?"
선장은 할 말을 잃었다. 한참이나 멍하게 앉아 있다가 가까스로 대답한다.
"오늘 아침이야."
어린아이를 나무라듯 기사는 선장을 질책한다.
"독약을 탄 건 오늘 아침이지만 죽이려고 마음먹은 것은 벌써 오래 됐어요. 나는 선장님의 행동을 보고 눈치챘어요. 나는 당연히 금성 본부를 불러내어 선장님을 고발했어야 할겁니다. 그러나 참았어요. 어차피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죽어야 할 마당에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이 불미스런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어요. 그대신 선장님이 나를 죽이지 못하도록 세밀한 주의를 기울여 왔어요."
바보처럼 기사의 꾸지람을 받고 있던 선장이 물었다.
"그럼 어떻게 독약을 마시고도 죽지 않았나?"
기사가 실소를 한다.
"후후…… 그건 독약이 아니고 소금이요!"
선장은 질겁을 한다.
"무어야?"
"선장님이 나를 죽이려고 마음먹은 이상 나는 죽지 않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옳지 않겠어요? 나는 그 동안에 선실을 면밀히 조사한 결과 선장님이 나를 감쪽같이 살해할 방법이 32가지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일일이 방어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두었지요. 독약도 그 중 한 가지 방법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독약을 비우고 거기에 소금을 채워 두었지요."
선장은 묵묵히 앉아 있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이제는 결판을 내야겠습니다. 이제야 말로 선장님이 죽느냐 내가 죽느냐를 결정해야 할 때입니다."
선장은 홀린 듯 고개만 끄덕인다.
"먼저 우리들은 죽기 전에 가족과 경찰 당국에 대해 유언을 녹음해 둡시다. 그래야만 나중에 이러쿵저러쿵 말썽이 없을 것 아닙니까? 화투 한 장씩을 집어서 큰 숫자가 이기는 겁니다."
선장은 긴 한숨을 토하면서 기사의 말에 동의했다. 선장과 기사는 각자 자기 방으로 흩어져서 한참 만에야 다시 식당에 모였다. 유언을 녹음하고 나온 것이다.
기사는 포장을 벗기지 않은 새 화투 한 벌을 내놓았다.
먼저 선장이 한 장을 집었다. 기사도 한 장을 집었다. 선장은 집은 화투를 책상 위에 바로 놓았나. 기사도 그 옆에 자기 화투를 놓았다. 선장 것은 난초, 기사 것은 공산. 말없이 일어선 두 사람은 악수를 교환했다. 선장은 산소통 로켓을 지고 기사는 빈 몸으로 에어 록에 나갔다. 말없이 선장은 공간으로 몸을 던졌다. 산소 분사를 가는 연기 같이 남기면서 선장은 캄캄한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끝>
작품 해설
 
SF에 관심을 가지다보니 필자도 한편쯤 써보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시작해 보려고 하니 이야기를 꾸며 본 경험이 없는 필자로서는 우선 스토리 텔링에 자신이 안 생겼다. 그래서 구성 면에서 우선 남의 것을 참고하기로 작정했는데 그 결과가 <학생 과학>에 연재되었던 이 SF이다.
처음에는 필자의 원안에 기초한 창의적인 작품을 꾸며 볼 욕심으로 여러 가지 메모도 해 두었지만, 형편은 애초의 생각대로 되지 못했다. 남의 것을 참고한다는 것은 필자의 의욕이 용서치 않았지만 상당한 열심으로 정리해 두었던 그 동안의 메모가 언젠가는 빛을 보게 되길 바랄 뿐이다.
이 작품을 쓰면서 참고한 작품은 영국 작가 Angus, Mecvicar의 'Secret of the Lost Plant'과 역시 영국 작가 Arthur C. Clarke의 'Breaking Strain'이다.
필자는 유감스럽게도 'Secret of the Lost Plant'의 작가 Mecvicar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그러나 'Breaking Strain'의 작가인 Clarke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작가이다. 그는 현재 70세의 고령인데도 그의 창작욕과 아이디어는 고갈할 줄 몰라서 연전에는 일본의 미래학회에서 초청 연사로 연설한 일도 있고 또 일본의 모 영화사의 요청으로 '서기 2001년'을 집필한 일도 있다.
이 작가의 배경을 보면 그의 작품이 평판을 받는 이유의 약간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즉, 그는 영국 Kings College에서 수학과 공학을 전공해서 각기 학사 학위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마이크로웨이브 통신에 대한 전문가이며 특히 통신 위성의 아이디어를 처음 창안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것으로 그는 벤자민 프랭클린 재단에서 금메달을 수상하였는데, 아인슈타인 등이 이 상을 수상한 것으로 보아 무게 있는 상인 것 같다.
그의 SF 중 'Possibillity'라는 단편은 미국의 MIT(매사추세츠 공대)에서 필독서로 추천되어 있고, 'Childhood's end'라는 장편 SF는 문학 작품으로까지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텔레파시의 비밀'에 소개되는 해상도시 베이스 K의 건설을 창안한 리처드 B. 플러씨는 실명이다. 이 분은 라디오 정류 회로의 전해 콘덴서, 2극 진공관 대신에 사용하는 셀렌 정류기, 이 밖에 수은전지 등의 발명자인데 일본 도쿄의 해상 도시화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출해서 화제가 되었던 사람이다.
또한 작품 속에 소개되는 배터리 카는 세계 각국이 경쟁적으로 개발을 서두르고 있는 중이다. 공해 없는 자동차로는 적격이지만 전지의 용량이 작기 때문에 아직 숙제로 남아있다. 결국 전지차의 개발은 용량이 큰 전지의 개발로 낙착이 되는 셈이다. 자동차에 장비할 동력용 소형 모터가 거의 완성되어가고 있다는 외지의 보도이고 보면 배터리 카의 실현도 시간 문제인 것이다.
우주선이 지구의 대기권을 탈출하는 방법으로 시도해 본 자석식 우주선 출발 방식은 (자석의 같은 극은 서로 반발한다. 자극이 셀수록 반발력이 클 것은 물론이다. 도로에 자석의 한 극을 포장하고 차체 밑에 다른 극을 붙이면 차는 땅에 닿지 않고 떠다닌다)는 꿈과 같은 이야기인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강력한 자석을 얻는 방법이다. 강력한 영구 자석을 만들려면 무한히 센 전류를 흘려주어야 하는데, 이 때는 도선의 저항 때문에 도선이 견디지 못한다. 이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자석의 세기는 제한을 받는다. 물론 자석의 세기도 극한치가 있어서 무한대의 세기를 갖는 자석을 만들 수는 없다. 다만 전류의 제한 때문에 이론적인 극한치의 1/100 정도의 세기를 가진 자석밖에 현재로선 얻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이 전류 문제가 해결되고 있다고 한다. 초전도라는 현상 덕택이다. 어떤 종류의 물질은 절대 영도(섭씨 -273도) 근방이 되면 전기 저항이 없어진다. 이렇게 되면 이론상 무한히 센 전류가 흘러도 열이 나지 않고 따라서 극한치에 가까운 자석을 얻을 수 있다.
물론 자성체의 재료가 문제가 된다. 이렇게 얻은 강력한 자석을 이용하여 우주선이 튀어 오르도록 하고 이 초기의 에너지에 의해 우주선의 지구 탈출에 필요한 많은 화학 연료가 절약되게 했다. 이것은 필자의 공상적인 아이디어이기 때문에 그 실현성 여부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다.
텔레파시(Telepathic Wave)란 말도 필자가 마음대로 각색한 것이다. 미국에서 노틸러스 호(이것은 쥴 베르느의 소설 '바다밑 2만리'에 나오는 세계 최초의 잠수함 이름이라는 것을 웬만한 독자들은 알고 있으리라)란 원자력 잠수함을 건조하여 그 시험 항해로서 북극의 빙하 밑을 통과한 일이 있다. 이 때, 잠수함 안의 한 방과 워싱턴 사이에는 정신감응력에 대한 실험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즉 잠수함에 타고 있는 한 실험자가 자기 앞에 몇 장의 카드를 놓고 멀리 워싱턴에 있는 다른 실험자에게 자기의 생각을 송신한다. 송신한다고 하지만 자기 앞에 벌려놓은 카드 중의 어떤 카드를 워싱턴의 실험자가 집도록 마음속으로 미는 것이다. 같은 시간에 워싱턴에 있는 실험자는 잠수함의 실험자의 것과 같은 종류의 카드를 앞에 놓고 잠수함의 실험자가 보내는 메시지를 받으려고 애를 써서(물론 마음속으로) 그럴싸한 카드를 집어내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을 송수신해서 나중에 그 결과를 대조하여 보니 놀랍게도 약 80%(이 숫자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다)가 적중했다고 한다. 이것이 필자의 아이디어를 자극하여 인간의 생각, 즉 대뇌의 신호로 변조된 일종의 파동인 정신감응력의 파를 만들어 내게 했다.
인체에 60 사이클의 교류가 흐른다는 내용도 사실에 입각한 것이다. 이번에 아이디어회관의 호의로, 그리고 SF를 사랑하는 분들의 주선으로 나의 시험작이 뜻밖에 단행본으로 출판되는 영광을 입는다. 이런 종류의 책이 청소년들에게 많이 읽혀져서 그들의 분방한 상상력을 자극하고 또 모처럼 용감하게 시도하는 건설적인 이색 출판사업에 격려의 기회가 되기를 빈다.
텔레파시의 비밀
김학수 작
 
아이디어회관 과학문고
224p. 19cm
 
인 쇄      1978년 4월 25일
발 행      1978년 5월 5일
작 자      김학수
옵셋 인쇄   삼정인쇄소
활판 인쇄   삼정 인쇄소
제 본      시문제책사
발행인     박훈
발행처     아이디어회관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 5가 19-29
      등록 제 2-213호
      전화 (25)1975, (25)1970
 
값 45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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