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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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만 재외동포를 활용할 바람직한 재외동포정책
2009년 09월 28일 10시 25분  조회:3701  추천:127  작성자: 김범송
700만 재외동포를 활용할 바람직한 재외동포정책 (연재1)



한국정부의 역대 재외동포정책 회고

1. 제1~3공화국의 해외교포정책, “기민(棄民)정책”

철저한 반공·반일주의를 국책으로 선정한 제1공화국의 이승만 정부는 당시 ‘유일한 해외교포’인 재일동포에 대해 부정적 태도로 일관했다. 따라서 재외교포를 포기하는 이른바 “기민(棄民)정책”이 실시되었다. 반면 북한정부는 재일동포교육정책을 적극 추진해 조선학교 건립을 위한 정부자금을 조달했는데, 이는 재일교포들의 환영을 받았다. 정부의 기민정책에도 불구하고 재일교포들은 한국에 주일(駐日)공관을 희사하는 등 많은 공헌을 했다.

제3공화국 시기에는 반공(反共)은 강화되었지만 반일(反日)은 약화되었고, 한국의 공업화를 ‘일본의 지원에 의존’하게 되었다. 한국정부는 친일정책을 추진하면서 재일교포들에게 일본에 귀화할 것을 권장했고, 1965년의 한일(韓日)조약은 재일교포들의 반발을 초래했다. 그 이유는 일본정부의 경제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재일교포의 법적 지위에 관한 사항인 협정영주권 문제를 일본정부의 요구에 순응하였고, 재일교포의 의견을 전혀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일교포들은 한국정부의 기민정책을 무관심·몰이해·무대책의 “3무(三無)정책”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 시기 재일교포는 ‘새마을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자기고향에 다리를 놓고 길을 보수하며 새마을회관을 건립하는 등 모국에 많은 공헌을 했다.

2. 1960~70년대 이민 장려정책

제3공화국 시기 한국정부는 인구과밀과 고출산율 등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62년 해외이주법을 제정하고 이민정책을 적극 추진했다. 초기의 이민 장려책은 남미로 시작되어 유럽의 독일 등 국가에 간호원 노무수출이 정부에 의해 추진되었다. 하지만 본격적 이민은 1965년 미국정부가 신이민법을 실시하면서 유럽중심 이민법을 수정하여 한국에 2만명의 쿼터를 주면서부터이다. 이 시기 미국 연고자의 초청에 의한 연고·초청이민이 많아진 것은 국제결혼으로 미국에 이주한 한국여성이 국내 친인척을 초청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미국에 이주한 한국이민들은 국내에서 높은 교육을 받았고 이민이 가족중심이었으므로, 이들을 ‘엘리트이민’·‘가족이민’으로 불렀다. 한편 남미와 서독 등으로 이주한 한인들도 대부분 도시의 중산층과 교육수준이 높은 젊은이들이었다. 따라서 1965년 이후 미국·남미·서독으로 이주한 한인들은 모두 ‘엘리트이민’이라는 점에서, 구미(歐美) 선진문화권에 빨리 진입할 수 있는 공통된 특성을 지녔다. 또한 정부가 이민을 장려하면서도 출국인원에게 휴대외화를 1000달러로 제한했기 때문에 이민국가 정착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한민족의 특유의 근면성으로 거주국에 성공적으로 정착했고 이민국의 인정을 받게 되었다.

3. 노태우 정부의 재외교포정책, ‘현지화’ 정책

1980년대 후반 노태우 정부 집정시기 일본·미국·중남미·유럽 등지에 수많은 해외교포를 갖게 되면서 정부는 재외동포들이 하루빨리 거주국에 정착하고 모범적 소수민족이 되기를 희망하는 이른바 ‘현지화’ 정책을 추진했다. 한편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중국과 구소련지역(CIS) 국가의 재외동포들의 고국에 대한 이미지 전환과 한국정부가 중국과 CIS 국가 간의 관계 정상화가 진척되면서 중국과 CIS지역에 거주하는 동포들이 재외동포정책의 대상이 된 것이다. 탈냉전시대를 맞이하면서 기존 해외교포정책이 사회주의국가 중국동포(조선족)와 CIS지역 고려인을 포함하는 ‘재외동포정책’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200만 중국동포와 50여만 고려인을 포함한 재외동포 수는 많아졌고 동포의 호칭도 다양해져 혼선이 초래되었다. 재외동포 범주에는 CIS지역 고려인과 중국동포 조선족, 기타 지역의 한국계이민들이 포함된다. 이처럼 다양한 호칭은 기존 한국정부의 교포정책이 일관성이 없고 혼란스러웠다는 것을 설명해주며, 이를 계기로 한국정부는 헌법에 재외동포 관련 조항을 신설하게 된 것이다. 특히 1988년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에서는 재외동포가 언급되었는데, 이는 재외교포 ‘현지화’ 정책을 추진한 한국정부가 통일을 위한 재외동포의 역할을 처음으로 긍정한 것이다. 반면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한국정부의 ‘현지화’ 정책은 재외동포에 대한 국가의 책무를 외면한다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4. 문민정부의 재외교포정책, ‘신교포정책’

1990년대 문민정부는 국제화시대에 걸 맞는 교포정책 수립을 고민해야 했다. 이 시기 중국과 CIS지역의 동포를 포함한 전면적인 재외동포정책이 요구되었고, 미국·일본 등지의 동포들은 교민청 신설을 요구해왔다. 따라서 문민정부는 1995년 ‘신교포정책’을 발표하고 ‘재외동포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고 여러 부처에 분산된 재외동포 제반업무의 통합문제를 거론했다. 입법부인 국회에서도 동포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어 재외동포를 활용할 방안, 중국동포 조선족의 문제, 재외국민 보호와 재외동포교육, 재외동포기본법안이 제안되었다.

특히 1997년 10월에 제안된 재외동포기본법안에는 재외동포정책의 기본이념과 재외동포의 범주, 재외동포정책의 기본방향과 추진목표, 재외동포의 모국 출입국과 체류의 편의 확대, 재외동포 관련 단체의 조직과 활동을 위한 지원책 등 재외동포에 관한 포괄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당시 정치적 상항으로 이 법률안은 2000년 5월의 국회 임기완료로 폐기되었다. 문민정부는 1996년 재외동포정책위원회를 설립하고, 1997년 외무부 산하에 재외동포재단을 설립하여 재외동포문제를 일괄적으로 처리하게 했지만 여전히 동포사업은 각 부처에 분산되었고 많은 영역에서 중복되면서 사업효율을 저하시켰다.

5. 국민의 정부의 재외동포정책, 재외동포법

김대중 대통령 집정시기 정부가 선정한 ‘100대 과제’ 중 48조항에 “재외동포는 우리의 국력”이라는 재외동포 관련 사항이 수록되었다. (48)관련 내용에는 재외동포의 거주국 지위향상을 위한 정책수행과 재외동포재단의 역량강화가 언급됐고, 재외동포교육을 위한 한글학교 건립과 동포교육용 교재개발 및 교사들의 한국연수 지원이 포함되었다. 1998년 정부는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지위에 관한 법률(재외동포법)”을 제정하여 재외동포들의 자유왕래와 참정권 및 공직 취임권을 부여하기로 했지만, 외무부는 ‘현지화’ 정책을 내세워 재외동포법 제정을 반대했다. 우여곡절 끝에 1999년 재외동포법이 통과됐지만 ‘재외동포’는 1948년 이후에 출국한 동포로 한정되어, 1948년 이전 고국을 떠난 재중동포와 CIS지역 동포 및 일본의 무국적 동포는 동포의 범주에서 제외되었다.

이러한 차별적인 재외동포법이 공표되면서 시민단체의 반대와 항의가 잇따랐고, 재외동포로서의 평등한 대우를 요구하는 시위와 투쟁이 지속되었다. 시민단체는 헌법재판소에 재외동포의 평등적 대우와 재외동포법의 위헌(違憲) 판결을 호소하였으며, 헌법재판소는 2001년 1월 기존 재외동포법이 헌법에 불합치하다고 판결했다. 따라서 2001년 12월 재외동포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고, 2002년 2월 “재외동포법 개정 공청회”가 개최되었다. 2004년 16대 국회는 재외동포 범주에서 제외됐던 “1948년 이전에 고국을 떠난 동포도 재외동포의 범주에 포함된다”는 내용을 통과했다. 국민의 정부가 제정한 재외동포법은 여러 가지 차별과 불평등의 요소를 갖고 있었지만, 재외동포의 법적 지위의 확립과 700만 재외동포의 전반을 포섭하는 정책(법) 제정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해야 할 것이다.

6. 참여정부의 재외동포정책, 방문취업제

1999년 재외동포법이 제정되고 2000년대 초반 남북관계의 화해무드가 조성되면서 중국동포를 비롯한 재외동포문제는 한국정부의 중시를 받기 시작했다. 동포문제 전단기구인 재외동포재단의 독립의지와 국무총리 산하 재외동포정책위원회의 부활로 2005년 제5차 재외동포정책위원회가 개최되어 각 부처에 산재된 재외동포사업을 동포재단이 통괄·주관하는 문제가 거론되었지만, 결국 ‘부처이기주의’로 실행되지 못했다. 또한 재외동포사업이 법무부와 출입국관리국 중심으로 추진되면서 2006년 5월 국무총리 산하 ‘외국인정책위원회’가 성립되었다. 17대 국회에서는 재외동포기본법과 재외동포교육문화진흥법이 제안되었고, 재외동포사업 전담기구로 대통령 직속의 ‘재외동포업무행정위원회’ 신설이 제기됐다.

한편 참여정부가 추진한 가장 주목할 만한 재외동포정책의 업적으로 2007년 3월부터 시행된 방문취업제를 꼽을 수 있다. 중국과 구소련지역의 동포들에게 입국문호를 확대하고 기존의 특례고용허가제의 불합리한 절차와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제정된 방문취업제 실시로, 중국 등지의 무연고동포들이 오매에도 그리던 고국방문 및 합법적 취업을 통해 ‘코리안 드림’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한국정부는 ‘외국인근로자고용법령’과 ‘출입국관리법령’ 개정을 통해 동포취업과 사용자의 고용절차를 개선하고 방문취업(H-2) 체류자격사증을 발급하였는데, 이는 중국 등 해외(무연고)동포들의 환영을 받았다. 물론 현유의 방문취업제는 동포들의 입국 및 취업규제를 완화해야 하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갖고 있지만, 그동안 냉전시대의 장기간 지속으로 소외되었던 중국 및 GIS지역의 무연고동포들이 합법적으로 고국을 방문하고 취업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획기적 재외동포정책으로 평가될 것이다.

7. MB정부의 재외교포정책, 참정권과 이중국적 문제

참여정부가 방문취업제를 실시해 그동안 소외되었던 중국과 구소련지역 재외동포에게 고국방문 및 합법적 취업기회를 마련해주었다면, MB정부는 재외국민 참정권 부여(2009년 2월 국회통과)와 ‘우수한 두뇌(고급인력)’에게 이중국적을 허용을 검토하는 재외교포정책에 주력하고 있다. 정부가 미국 등 선진국의 동포들을 주요대상으로 재외교포활용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주로 국제결혼과 ‘취업이민’의 형식으로 고국에서 3D업종에 종사하고 있는 몇 십 만의 외국국적동포에게는 별다른 혜택이 부여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불법체류’에 대한 단속과 입국 및 노동시장 규제는 강화되었고, 참정권과 무관한 중국동포들에게는 취업조건과 체류허가 및 가족초청 등에 대한 제한은 강화되어 중국동포정책이 ‘퇴보’하고 있다는 비판과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예컨대 노동부가 운영하고 있는 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는 방문취업제로 입국한 재외동포들을 소외시켰고, 2008년에 어렵사리 만들어진 동포지원센터도 정부의 조직개편에 따라 (법무부)외국국적동포과가 없어지면서 ‘유명무실’해졌다.

MB정부는 선진국의 재외교포를 대상한 교포정책 추진에는 적극적이지만 중국이나 GIS지역 동포들을 대상한 동포정책에는 진전이 없으며, 외국인노동자 수급대책만 있어 동포정책의 차별화가 부각되고 있다. 최근 세계적 경제위기 하에 한국의 국내실업이 증가되면서 재한동포들이 느끼는 소외감은 갈수록 더해가고 있다. 한편 불법체류 외국인을 단속해 추방한다는 정부의 지침과 중국동포와 외국인노동자의 입국 및 취업에 대한 규제는 더욱 강화되어 많은 재한동포들은 경제위기 여파 속에서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다. MB정부의 대북정책 강경적인 입장과 동포정책의 차별화는 한미동맹 강화에 따른 친미적 대외정책과도 무관하지 않다. 현재 40만을 상회한 재한중국동포들은 3D업종에서 고국건설에 이바지하고 있으며, 이들 중 대부분이 귀국하면 한민족의 정체성 유지와 한·중 관계발전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MB정부는 전략적 동반자로 격상한 21세기 중·한 관계와 추후 민족화합과 남북통일에서의 조선족동포 역할을 감안한 미래지향적 중국동포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요컨대 한국정부의 재외교포정책은 1950~60년대의 기민정책에서 1960~70년대의 해외이민 장려정책, 1980~90년대 ‘현지화’ 정책을 거쳐 21세기 진입 후 전면적인 재외동포정책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경험해왔다. 글로벌시대 700만 재외동포는 ‘한민족의 소중한 국가적 자산’이라는 점은 의심할 바 없다. 따라서 그들이 해외에서 쌓아온 경험과 자력 및 인맥관계를 적극 활용하는 재외동포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 탈냉전 및 세계화시대에서는 한국국적을 가진 재외국민만을 위한 협애한 ‘해외교포(교민)정책’이 아닌 전체 700만 재외동포를 대상한 명실상부한 동포정책, 즉 이념과 지역에 관계없이 차별 없고 평등한 재외동포정책이 실시되어야 한다. 최근 정부가 검토 중인 ‘재외동포 통합네트워크’ 방안은 바람직한 동포정책의 일환으로 발전될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구체적 대안으로 바람직한 재외동포정책의 수립을 위해 동포문제를 전문 연구하는 정책기관을 신설하고, 동포문제를 지속적으로 개발·연구하여 정부정책에 반영하게 해야 한다. 한마디로 ‘차별 없는’ 재외동포정책만이 한국정부의 동포활용정책에 부응하는 ‘한민족 통합’의 종합적 효과를 얻을 수 있다.

* 본 논문은 제3회 <세계한인정치인포럼>에 발표 예정된 논문입니다. 추후 네 번에 나눠 <동북아신문>에 게재할 예정입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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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3 ]

3   작성자 : 한마디
날자:2009-09-28 18:13:52
동상이몽이라는 얘기가 있다.김범송씨와는 다른 생각을 한국 정치인들은 하고있다. 고위 정치인들은 조선족의 정체성을 심각하게 받아 들이고있다. 많은 조선족들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고있지 않음을 잘 파악하고잇다. 현재 이미 한국에 들어와있는 많은 조선족 인력도 지난 정권의 실수로 간주한다. 한국정부의 중국동포정책을 조선족에 유리하게 하려면 한국 국민여론을 움직여야 하는데 한국 국민감정이 많이 상해있다. 경이로울 정도로 한국민들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생명으로 여긴다.
2   작성자 : 소사
날자:2009-09-30 05:42:37
조선족을 대표해서 한국 정부인사와 얘기하는 사람들이 그들이 기대하는 한국인의 정체성(나는 국적은 미국,중국,일본,독일,영국 등이지만 한국인이라는 자기 인식)을 갖고있지 않으면 그들과 마음 속의 얘기를 하기가 힘들다. 그들이 생각하는 "우리끼리의 얘기"를 남과 하기가 힘든 것이다.
1   작성자 : 문민
날자:2009-09-30 16:36:24
늘 동포문제로 고민많으십니다. 우리 민족의 큰 명절인 한가위에 즐겁게 보내시고 귀한동포연합총회에 들려 차 한잔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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