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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사촌
2017년 05월 09일 15시 22분  조회:761  추천:0  작성자: 김춘식
“발 뒤꿈치도 한번 들지 않았었구나/몸 낮추어도 하늘은 온통 네게로 왔구나/울타리 하나 세우지 않고도/꽃밭을 일구었구나/올망졸망 어깨동무하고 사는구나”
 
이는 <채송화>란 제목의 지하철 시로서 제가 서울 지하철 5호선 종로3가역에서 베껴온 것입니다.‘몸을 낮추고’,‘올망졸망 어깨동무 하고’이웃들과 함께 사는 삶의 소중한 리치를 시인은 작은 꽃 채송화에서 발견합니다.
 
속담에 멀리 사는 형제보다 이웃사촌이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어려운 일, 즐거운 일에 항상 부닥치며 살아가기 마련입니다 즐거운 일은 함께 나누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서로 도와가며 살아야 하는 것이 사람 사는 맛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다정한 형제자매 지간이라 하더라도 서로 멀리 떨어져 살다 보면 마음뿐이지 실제로 이런 정과 어려움을 나누며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담장 하나 사이에 두고 있는 이웃 간 사이 좋게 지내다 보면 이런 일은 흔히 이루어지기 마련인 것입니다.
 
엊저녁 빌라 주인이 한 빌라에서 세를 내고 사는 사람들을 몽땅 자기가 살고 있는 3층에 불러다 풍성한 저녁상을 차려놓고 함께 식사를 나눴습니다. 한 빌라에서 사는 사람들인 것 만큼 서로 얼굴도 익히고 얘기도 나누며 정을 쌓아 앞으로 화목하고 따뜻한 이웃으로 될 것을 기원하면서 말입니다. 나는 주인의 이 처사에 매우 감복했습니다. 날이 갈수록 높아지는 고층 아빠트에 비하면 낮고 아담해서 단출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과 빠듯해지는 생활만큼 각박한 마음 탓에 지척에 있어도 천리에 있는 듯 같은 층에 살고 있는 이웃과 안부조차 나눌 여유가 없다는 건 이곳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이 빌라에는 모두 여섯세대가 사는데 그중에는 주인을 포함해서 우리까지 네세대가 올여름 주인이 이 집을 사서 수리한 후 새로 이사온 집들입니다. 그러니 주인 내외를 내놓고는 여적 어떤 이들과는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었고 어떤 이들과는 가끔 만나기는 하지만 아직 말 한마디 건네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자리를 마련한 의미가 너무나 소중한 것입니다. 단지 전에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던 이웃과 안면을 익히고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는 화기애애한 시간을 가지는 것 뿐이 아닙니다.
 
누군가 이웃이란 힘이 들 때 가서 얘기할 수도 있고 좋은 일이 있을 때 서로 기뻐해주는 곳이라 했습니다. 작은 관심사 하나로 모이고 즐기고 소소하게는 반찬도 나누어 먹고 술자리도 갖고 퇴근길에, 주말에 찾아가 수다를 떨고 싶은 소통의 온기가 가득한 공간이 바로 이웃들입니다. 안 쓰는 것 나눠쓰고 필요한 것 같이 만들고 작아진 아이 옷도 나누고 안 쓰는 물건들도 나누며 부침개며 팥빙수며 음식도 나누고 그리고 무엇보다 정과 소소한 재미를 나누는 곳입니다.
 
무엇을 하지 않고 쉬고 놀고 수다를 떨고 같이 하고 싶은 일이 생기는 곳이지요. 이웃 분들이 혼자 산다고 반찬도 가져다 주고 김치도 챙겨주는 등 서로를 알아가고 챙겨주는 일이 이웃사촌의 본질입니다 우리 빌라의 주인집은 이 면에서 항상 본보기를 보여줍니다.주인님은 남이 선물한 좋은 술을 곧잘 이웃한테 보내주고 사모님은 김치를 담그면 꼭꼭 이웃에 보내줍니다.
 
이번에도 참 좋은 이웃들을 만났습니다. 짐을 무겁게 들고 오면서 복도 문을 어떻게 열가 근심하는데 3층 집 처녀애가 멀리서부터 달려와 문을 열어주고 짐까지 들어줍니다. 안해가 량손에 남새를 들고 오는데 멀리서부터 봤는지 4층 집 대학생 총각이 복도문을 연 채 안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웃사촌이란 말 그래서 생겨난 것이 아닐가요.
 
“출근합니까?”, “김장고추를 샀네요.” 평범한 인사말이지만 이런 인사말을 주고받노라면 마음이 더 가까워지는 것 같습니다.
 
비록 농촌의 인심과는 비할 바가 없겠지만 나름대로의 시내인심을 유지하며 살고 있는 이웃들이 있으니 삶이 참 성수가 납니다.이웃과 마음을 활짝 열고 산다면 삶이 한결 신바람 나고 그리고 세상도 한결 밝아질 것입니다.
 
전에 《좋은 생각》이란 잡지에서 <119보다 빠른 이웃>이란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산골 마을에서는 이웃보다 소중한 사람이 없습니다. 팽기할아버지 집 아궁이 옆에 쌓아 놓은 장작더미에 불이 났을 때 얼른 달려가 불을 끈 사람도, 갑자기 가을비 내릴 때 길 우에 여기저기 널어놓은 나락을 함께 덮은 사람도, 혼자 사는 인동할머니가 살아 계신지 틈만 나면 들여다보는 사람도, 사슴농장 아주머니가 화상 입었을 때 아침마다 보건소에 모시고 간 사람도, 설매실 어르신이 경운기 사고로 피 흘리며 쓰러졌을 때 병원에 모시고 간 사람도, 새터할머니가 날이 갈수록 정신이 없어 가스레인지 불을 켜 놓고 산밭으로 나갔을 때 가서 가스렌지 전원을 꺼준 그 사람도, 밤새 눈이 내리면 아침 일찍 동네 길 눈을 치는 사람도 모두 가까운 이웃입니다… 피붙이가 아무리 소중하다 해도 이웃만큼 소중하지는 않습니다. 119구조대가 아무리 빠르다 해도 이웃만큼 빠르지 않습니다...”
 
오늘 이 도시에서도 바로 이와 같은 옛 이웃의 풍경을 만나니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크고 작은 일들을 겪다 보면 남에서 이웃이 되고 이웃에서 이웃사촌이 되어간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길을 내고 살아야 하리/마음에 가선도로/그대와 거래할/사랑의 회선 하나/고독의 감옥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비상구 하나/속이 답답하고 우울할 때 이야기 나눌/별자리 하나쯤”(서울 지하철 6호선 역촌역에서 베낌)
 
유감스럽게도 10여년을 같은 아파트에 살아도 인사조차 나누지 않는 이웃들, 층간 소음 때문에 고소는 물론 살인까지 저지르는 이웃들. 이웃 사이에 너무도 마음을 닫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참 안 됐다는 생각이 듭니다.그래서 마음에 간선도로,사랑의 회선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시인도 안타까워 했을 것입니다.지금 곁에 있는 이웃들을 좋은 인연으로 만들며 살아가기를 기원합니다.

길림신문 20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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