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유복
http://www.zoglo.net/blog/huangyoufu 블로그홈 | 로그인

※ 댓글

<< 11월 2024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나의카테고리 : 칼럼/단상/수필

(수필)《잔인한 달》, 4월을 보내면서
2006년 01월 19일 00시 00분  조회:4926  추천:44  작성자: 황유복
《잔인한 달》, 4월을 보내면서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20세기 모더니즘의 대표적 시로 평가되는 토마스 엘리엇 (Tomas S.Eliot)의 장편시《황무지》제1부 《죽은자의 매장》의 머리부분이다. 평론가들은《황무지》가 제1차 세계 대전후의 시대적 환멸과 한번 황폐해진 인간의 심성은 더는 영적생명 을 새롭게 피워낼수 없는 황무지로 변해버린다는 현대문명의 불모성을 잘 그려내고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그 러나 정작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한 시인 본인은 도리여⟪자신의 사사로운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쓴 시⟫일뿐이라고 평론가들의 해석을 일축하였다. 하지만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란 시구는 나름대로 여러 맥락에서 자주 인용되여 왔다.

⟪황무지⟫라는 시와는 전혀 관계없이, 금년 북경의 사월은 우리에게 진짜 ⟪잔인한 달⟫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고 훌쩍 떠나가 버렸다.

해마다 북경의 봄은 소리없이 조용히 찾아온다. 봄을 알리는 전령사(傳令使)는 단연코 양지바른 땅에서 싱그러운 냄새를 풍기며 흙을 비집고 돋아오르는 파란 봄풀들일것이다. 살 구꽃과 산도화(山桃花)가 활짝 피면서 계절감각이 무딘 사람들도 봄을 느끼게 된다. 봄바람에 민감한 버드나무는 수관 꼭대기에서부터 초록빛 잎이 피여나 서서히 아래가지로 번져 내려가고 땅기운에 예민한 백양나무는 땅에서 가까운 아래 가지에서 윗가지 로 연두빛을 옮겨간다. 황금빛 개나리가 눈부시게 피여 나고 흰빛과 연자줏빛의 목련꽃이 고고한 자태를 선보이며 하얀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여나면서 봄은 서서히 짙어간다. 이어서 복숭아꽃, 사과꽃, 배꽃, 홍매, 자등, 박태기, 해당화, 오동, 모란 등 꽃들이 줄줄이 화려한 봄의 화폭에 흰빛, 노란빛, 연분홍빛, 보랏빛, 자줏빛, 빨간빛, 연두빛의 물감을 칠하여 문자 그대로《만자천홍(萬紫千紅)》 의 계절을 성숙시킨다. 그러다 가 오월이 되여 노랑가시장미 와 라일락 그리고 아카시아가 다투어 향기를 자랑할 때 봄날은 조용히 물러간다.

봄날이 만들었던 다양한 색깔의 화려한 화폭을 하나의 진록 색으로 덮어버릴 때 여름은 우리 앞에 바싹 다가온다.


그런데 북경의 이번 봄날에는 이변이 생겼다. 그 끔찍한 일 들이 일어나게 된것은 모두가 해님탓이였다. 화사한 봄날이여 야할 사월을 《잔인한 달》로 만들어버린 장본인도 물론 해님 이였다.

사월의 시작은 여느해처럼 꽃의 물결을 몰고 서서히 찾아 왔다. 그런데 중순으로 접어들면서 온화해야할 해님이 마치 첫사랑에라도 빠진것처럼 갑자기 뜨거운 정열을 퍼붓기 시작 했다. 섭씨30도를 넘나드는 날씨가 지속되면서 봄날은 리듬을 잃고 말았다. 북경의 매스컴들은 《이상(異常) 고온 때문에 꽃 들이 10일정도 앞당겨 피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문제는 화신(花信)보다는 화기(花期)였다. 꽃소식이 열흘정도 앞당겨 진다는 것은 초여름에 피여야 할 꽃들도 봄에 피게 했다는 말 이겠지만 동시에 그 많은 꽃들의 화기를 줄여서 락화를 재촉 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북경식물원이 기획한 봄꽃축제들은 플 래카드를 내걸기 바쁘게 꽃잎들이 떨어지기 시작하여 엉망진 창이 되여버렸다. 목련축제가 그랬고 벚꽃축제, 튤립축제, 모 란축제도 마찬가지였다.

4월 7일, 나는 안해와 함께 식물원의 목련축제를 구경하러 갔 다. 목련원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있었다. 만개한 목 련꽃무리를 보면서 느끼게 되는 환희로운 감정도 잠깐이였다. 해님의 때 아닌 성화에 못이겨 피여난지 오래되지 않는 싱싱한 꽃잎들이 우수수 떨어지고 있었기때문이였다. 아무리 오래 필 수 없는것이 꽃의 숙명이라 할지라도 그 《오래 필수 없는》 화기도 못 채우고 지고있는 락화를 바라보면서 애틋한 심정이 짙어진다. 대여섯명의 젊은 녀성들이 손 수건을 펼쳐놓고 나무 아래 떨어진 목련꽃잎을 주어모으고 있었다. 무엇에 쓸려고 줍 고있느냐고 물었더니 ⟪때아니게 떨어진 꽃잎들이 애처롭다는 생각도 안드세요?⟫라고 반문해왔다. ⟪홍루몽⟫의 주인공 림 대옥이 떨어진 꽃잎들을 주어모아 장사를 지내던 그때의 심정 을 어느 정도 리해할것 같기도 하다.


식물원을 돌아나서는데 대추나무 한그루가 보였다. 초여름 에 가서야 늦잠에서 깨여나는 잠꾸러기 대추나무도 뙤약볕을 방불케하는 따가운 해빛을 견뎌낼수 없었던지 긴 기지개를 켜면서 철갑같이 단단한 나무껍질을 뚫고 연두빛 새싹들을 삐 죽삐죽 내밀고있었다. 그러니 그 연약한 꽃잎들이야 더 말할 나위 있겠나 싶었다.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시인 이형기는 락화를 청춘에 대한 송별사로 노래했다.

바람에 휘날리며 한잎 두잎 떨어지는
꽃잎은 얼마나 아쉬운가.

동양철학가인 김근선은 락화를 심리적 감상(感傷)으로 나타 냈다.
그들이 말하는《하롱하롱》,《한잎 두잎》 지는 꽃잎은 화기를 마치고 자연스럽게 지고 있는 락화이지만 내가 이봄에 본 락화는 그것이 아니였다. 이번 사월은 봄꽃과 초여름꽃들을 함께 모아 화기도 못채운 그 아름다운 꽃들을 《대량학살》시 킨것이다. 늦가을 락엽처럼 목련꽃잎들이 우수수 떨어지게 했고 겨울날 눈보라를 방불케하는 살구꽃, 벚꽃, 복숭아꽃, 사과꽃, 배꽃의 꽃보라가 일게 했다. 지나간 사월은 그렇게도 《잔인》했다.
해는 이 세상 모든 생물들의 생명의 원천이고 만물을 키워주 는 어머니의 품이다.

해는 모든것에게 젖을 주었나보다
동무여, 보아라
우리의 앞뒤로 있는 모든것이
햇살의 가닥-가닥을 잡고 빨지 않느냐.
(이상화:⟪비 갠 아침⟫)

그 따스한《햇살》이라는《젖》을 먹고 들판의 봄풀들이 자라 나고 아름다운 꽃들이 피여나며 모든 농작물과 기타 식물들이 성장하고 영글어간다. 그러나 생명의 상징으로 되는 그 해가 때에 맞지 않게 과다한 햇빛을 발산하게 되면 그에 의해 자라난 생명들도 말라죽어버리게 된다. 이번 4월에 화기를 못 채우고 분분히 떨어진 꽃들이 바로 너무 많이 그리고 너무 뜨 겁게 내리비치는 햇살에 의해⟪끔찍⟫하게 ⟪대량학살⟫된 것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집착때문에 꽃은 아름다움, 사랑, 청 춘, 화려함, 즐거움, 번영, 영화로움 등 긍정적인 의미의 상징 물로 선택되여 왔다. 그 많은 비유나 상징가운데서 《청춘은 한순간이며 아름다운 꽃이다》라고 한 M. 오닐의 명제가 가장 설득력있게 나의 마음에 와 닿는다. 그리고 내가 제일 마뜩찮 게 생 각하는것은 《녀성은 꽃》이라는 비유이다. 그 비유에 는 남성 중심주의적 사고의 냄새가 너무 짙게 풍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프랑스의 플로리스트(꽃 장식가?)인 다니엘 피숑이《꽃은 왜 아름다운가》라는 질문에 《꽃은 금세 시들어버리기때문에 아름다운겁니다. …뭐든지 영원하다고 하면 아름답다고 할수 있을까요.》라고 대답한 것 처럼 인생에서 청춘도 《한순간》이기때문에 아름다운것이 아 닌가 싶다. 이번 사월의 락화를 보면서 나는 지나간 나의 청춘 을 반추해 보게 되였다. 1966년, 나는 23세의 나이로 대학을 졸업하게 되였다. 그런데 졸업과 동시에 발발한 《문화대혁 명》은 10년이나 지속되였고 나는 그 《대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방황하다가 청춘을 혼돈의 언덕에 묻고 말았다. 그때도 《붉은 태 양》이 너무 많고 뜨거운 빛을 뿌리고있었다.

이제 봄은 바야흐로 저 멀리 사라져가고 있다. 해가 바뀌면 봄은 다시 오겠지만 그 봄은 또 다른 한 해의 봄일것이다. 금년의 봄은 묻혀버린 나의 청춘의 한 순간과 같이 두 번 다시 만날수 없다. 인간의 청춘이 단 한번뿐이듯이 봄도 그리고 그 봄에 피였다 사라진 꽃들도 단 한번뿐이다. 아무리 이 애틋한 봄날의 옷자락을 붙들려고 해도 우리는 다시 이 봄을 만날수 없다.

2004. 5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99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19 (수필)사랑의 민족학 2006-02-07 49 5025
18 (수필)사랑의 언어학 2006-02-06 56 5504
17 (수필)남자 · 술 그리고 약속 2006-02-05 63 5080
16 (수필)이순의 인생 2006-01-27 52 5164
15 (수필)오늘의 삶에 충실해야 2006-01-26 59 4839
14 (수필) 이름도 없이 이 세상을 살면서 2006-01-25 55 4924
13 (수필)택호 2006-01-24 59 5052
12 (수필)태항산 기슭에 핀 들국화 2006-01-23 37 4702
11 (수필) 태항산 기슭에 핀 들국화 2006-01-20 55 4706
10 (수필)《잔인한 달》, 4월을 보내면서 2006-01-19 44 4926
9 내가 만들었던 눈사람 2006-01-18 53 4564
8 (수필) 첫 사랑 이야기 - 둘 2006-01-17 50 5200
7 (수필) 첫 사랑 이야기 - 하나 2006-01-16 38 4450
6 (수필) 가난이 선물하는 삶의 지혜 2006-01-13 58 4834
5 (수필) 옥년이와 봇나무 2006-01-12 53 5963
4 (수필) 가슴속에 새겨진 할머님의 초상 2006-01-11 62 5148
3 (수필) 군 감자와 <<이바구>> 2006-01-10 60 6222
2 (수필)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면 2006-01-09 70 6387
1 (수필) 원일 아침 수상록 2006-01-05 60 6035
‹처음  이전 1 2 3 4 5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