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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웬만하면 발을 사랑하시지
—어처구니들의 이야기
한영남
망발
옛날에 그림을 아주아주 잘 그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다 빈치라고 들어보셨지요? 그럼 “다 빈치 코드”라는 영화는 보셨어요? 괜찮습니다. 몰라도 됩니다. 그 사람이 그린 그림중에 “최후의 만찬”이라는 굉장한 그림이 하나 있는데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도(그리고 모름지기 앞으로도) 세상사람들의 찬탄을 자꾸자꾸 받는 그림이지요. 그 그림을 너무 골똘히 들여다보고 너무 골똘히 연구하고 너무 골똘히 사랑하던 한 녀자가 어느날 그 그림속에 들어가게 되였습니다.
녀자가 그림속에 자원해서 들어간게 아니고 어느날 그 녀자가 “최후의 만찬”에 초대되였던것입니다.
아무래도 최후의 만찬에 대해 좀 얘기해야겠군요. 제가 본래 해석하는데는 좀 무뎌서 그냥 사이트에서 한 단락 퍼오기로 하지요.
최후의 만찬(最后的晚餐, The Last Supper).
이딸리아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의 작품.
작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
종류: 회벽에 유채와 템페라.
크기: 460×880㎝.
제작년도: 1498년.
소장: 산타마리아 텔레 그라치에교회, 밀라노.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제1밀라노시대(1482-1499년)에 그린 그림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 전날 열두명의 제자와 함께 만찬을 나누었다(마태 26:20, 마르 14:17, 루가 22:14)는 매우 낯익은 주제를 전무후무한 방식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르네상스의 전성기는 이 작품의 장대한 구도와 함께 시작되였다는 평가도 있다.
15세기 피렌체에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이전의 작가인 안드레아 델 카스타뇨(Andrea del Castagno)나 기를란다요(Ghirlandajo)에 의해 “최후의 만찬”이라는 주제는 거듭 그려졌는데 이들 작품의 구도에서는 유다 한 사람이 식탁의 건너편에 위치하고있었다. 그러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전혀 새로운 형태의 “최후의 만찬”을 시도하였다. 즉 유다까지 열두 제자의 무리속에 포함시켜서 그 열두 제자를 세명씩 작은 무리를 짓도록 하였다. 이것은 이전의 작가들이 “최후의 만찬”과 유다의 배반이라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화면의 조형성에 력점을 두었다는 말이 된다.
화면의 구도는 대단히 수학적인 구조로 이루어져있다. 3개의 창문, 4개의 무리를 이룬 12제자 등은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 4권의 복음서 그리고 새 예루살렘의 12개 문 등을 각각 상징하는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화면 한가운데 위치한 예수의 몸은 삼각형을 이루고있다. 정확한 원근법으로 작품이 짜여져있지만 감상자의 립장에 그 원근법을 정확하게 볼수 있는 자리가 없도록 되여있는데 이것은 이 그림이 일상의 차원이 아니라 리상적차원에서 존재하는것으로 기획되였음을 의미한다.
기존의 전통적방식을 뛰여넘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독창성 그리고 예리하면서도 정확한 형식미, 숭고한 주제를 다루는 뛰여³ 방식 등으로 이 작품은 르네상스 전성기의 가장 뛰여³ 성과로 평가된다.
인용이 좀 길었습니다만 옛말을 하려고보니 이 인용이 빠지면 잘 진행될것 같지 않아서 장황한대로 인용하였습니다. 미안합니다. 계속하겠습니다.
한 녀자가 “최후의 만찬”에 초대되였는데 그녀는 최후의 만찬에 참가할수 있게 된 급작스런 영광에 그만 조금 어리둥절해졌고 그러다가 차츰 제정신이 들면서부터는 예수와 그의 제자들을 한 사람씩 뜯어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경박하기 그지없는 이 녀자는 그것이 어떤 장소인지, 자신이 그렇게 해도 되는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포도주에 조금 취기가 오른 그녀는 이사람저사람 눈박아보다가(처음에는 곁눈질로만 보다가 담이 커져서 눈여겨보다가 눈박아보게 된것이겠지요) 웬 일인지 유다한테 눈길이 쏠렸습니다. 그녀는 유다가 가장 자기와 어울린다고 생각했고 유다야말로 자기 속셈을 챙길줄 아는 지혜로운 사내라고 생각했습니다. 급기야 그녀는 유다한테 추파를 보내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그녀한테 관심이 없었고 예수와 다른 제자들도 그녀를 전혀 무시하고있었습니다. 그녀는 어떡하다가 최후의 만찬에 초대는 되였지만 만찬상에 놓인 빈그릇 하나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유다가 사랑스러워 더 이상 참지 못하게 된 그녀는 포크를 들어 유다의 발을 쿡 찔러서 야금야금 먹기 시작했습니다. 유다의 발은 잘 구워진 빵처럼 그녀의 입술이 스치기전에 목구멍을 타고 그녀의 배속으로 미끄러져들어갔습니다.
시간이 대충 흐르고 그녀는 어느새 유다의 두발을 말끔히 먹어버렸습니다. 발이 없어진 유다는 그녀를 힐끗 보더니 그녀의 귀에 대고 의족을 해넣고 와야겠다면서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그녀는 그러라고 머리를 까닥거렸습니다. 유다의 발 두개를 먹어버린 그녀가 만족스레 배를 슬슬 어루만지는 오만무례한 행동을 두어번 했을 때에야 예수의 말씀에 도취되였던 사람들이 끝내 유다가 사라진 사실을 알아챘습니다.
예수와 그의 12명 제자(아니 유다가 없으니 11명 제자들이겠지요)들은 문제의 녀자에게 눈길을 집중하였습니다.
예수가 말했습니다.
아무리 못³ 제자라도 유다는 내 제자인데 없어서야 되느냐?
—말했습니다.
유다는 비록 평소 린색한편이지만 그래도 오늘 만찬에 없어서는 안되지요.
—말했습니다.
유다는 비록 못생겼지만 이 자리에 빠질 정도는 아닌데요.
—말했습니다.
유다는 비록 나의 녀동생한테 추근거리긴 했어도 그건 이미 지나간 일이고 오늘 같은 날에 유다가 없어서야 될 말입니까?
—말했습니다.
유다는 비록 유다이지만 유다가 없는 최후의 만찬이 또 어디 있어요?
—말했습니다.
유다는 비록…
—말했습니다.
유다는 비록…
…
그녀가 말했습니다.
저는 유다를 사랑합니다. 그런데 제가 유다님을 사랑할 때까지 여러분들은 무엇을 하셨나요? 왜 제가 유다님의 발을 먹을 때 아무도 말리지 않았나요? 저는 그래도 괜찮은줄로 알았어요.
그것은 리유가 될수 없다.
리유는 그렇게 대는게 아니다.
그런것이 다 리유라니…
리유는 리유다와야 하느니…
그러니 저더러 어떻게 하라는 말씀인가요?
그들은 함께 모여서 잠간 의논을 하더니 결론을 내렸습니다.
최후의 만찬에는 유다가 없어서는 안되고 유다가 빠진 최후의 만찬은 최후의 만찬이 아니기에 이제부터 이 최후의 만찬에서는 그녀가 유다노릇을 해야 한다는것이였습니다.
동양인이며 녀성이며 예수를 전혀 믿지 않는 그녀는 억울하기 그지없었지만 한입으로 열두 입을 당해내는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아주 박수까지 짝짝 쳐대면서 유다인 그녀의 참석을 환영하여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인 그녀의 잔등을 자애롭게 투덕투덕 두드려주었습니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그녀의 입에서는 때아닌 교성이 새여나왔습니다.
그래서 최후의 만찬은 흐지부지 끝나게 되였습니다.
여기서 영화 “다 빈치 코드”보다 더 기막힌 비밀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말하자면 그렇게 흐지부지 끝나버린 최후의 만찬으로 하여 세계적명화 “최후의 만찬”은 가짜라는 사실입니다. 지금 이딸리아 밀라노 쌍마리아 다일레 그라치수도원에 걸려있는 “최후의 만찬”은 위불없는 가짜입니다. 이 사실이 대중화되는 날까지는 아마 대단히 오랜 세월이 걸리겠지만 미리 알아두시는게 랑패 없을듯해서 이렇게 알려드리는겁니다.
그럼 도대체 세계명화 “최후의 만찬”은 어떻게 생겨나게 되였을가요? 그 이야기는 다음에 계속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나발
이어서 간추린 뉴스입니다.
오늘 미니광장에서는 해마다 진행되여온 발족시회가 있었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모여온 수백쌍의 발들이 모인 오늘의 제33회 족발대잔치에서는 69센치짜리 거족과 13센치짜리 전족이 나란히 전시되여 수만쌍의 눈길을 모았습니다. 69센치짜리 거족은 생물촉진제를 쓴 흔적이 있다는 목소리가 높은 반면 13센치짜리 전족은 인간의 발이 아니라 모조품이 분명하다는 의론이 거셌으나 발만은 확실하다는데 의견이 모아지면서 이번 대회의 우승을 나란히 거머쥐였습니다. 요즘 같은 알칼리성비에도 쉽게 부식되지 않는 거족과 전족이라서 수상은 당연한것이라는 의견이 압도적이였습니다.
이상 뉴스를 마칩니다. 지금 이 시각 기원 2669년 13월 13일 18시 28분 38초가 흐르고있습니다. 다음 프로 기대해주십시오.
비발
밖에 비가 오고있니?
이미 그쳤습니다.
그런데 왜 우산을 펴고 다니니?
접기 싫어서…
쯔쯔, 언제부터 그렇게 게을러졌니?
요즘은 웬지 아무것도 하기 싫습니다.
밥은 제대로 먹겠지?
저야 두부만 있으면 밥 하나는 죽여주지요. 지금도 두공기정도는 게 눈 감추기입니다. 두부가 없었더라면 어떻게 살았을가요? 두부발이 잘 선 모두부를 보면 군침이 두공기입니다. 아, 이거 말하다보니 오늘점심에 또 두부를 먹어야겠군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고기가 있으면 두부를 먹게 되지 않더군요. 정말, 한가지 물어봅시다. 꼭 두부를 먹어야 합니까? 누군가 두부는 단백질이고 단백질은 곧 생명이다, 두부를 먹는것은 생명을 연장하는 지름길이다, 뭐 그런 말을 하는것 같던데요.
지금 두부나 고기가 중요한게 아니다.
그럼 뭐가 중요합니까?
무좀을 치료해야겠구나.
저의 발은 항상 깨끗하고 건조한대로인데요.
너는… 무좀이… 발에… 생긴게 아니라… 저 그러니까 겨드랑이에… 흐흐흐, 우습게도 겨드랑이에…
겨드랑이에도 무좀이 생깁니까?
내가 무좀이라면 무좀인거지 무슨 말이 그리 많니?
하두 이상해서…
의사의 말을 듣지 않을거면 병원에는 왜 왔니?
미안합니다. 엄중합니까?
내가 엄중하다면 엄중한거고 경하다면 경한거지…
도대체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일단 이 약들을 먼저 써보아라.
그런데 이건 소화제 아닙니까? 영양제도 있고…
너는 소화가 안되고 영양이 따라 못 가서 무좀이 생긴거다.
좀 리해가 되게 말씀해주실수 없습니까?
치료하겠니? 안하겠니?
하겠습니다.
그럼 의사의 말을 들어야지. 군말 말고 이 처방대로 먼저 한동안 치료해보자.
치료될수 있습니까?
환자가 먼저 신심이 있어야지. 의사를 알기를 뭘로 아는거니?
미안합니다. 그저 병만 낫게 해주십시오.
괜찮다. 그저 돈만 내면 된다.
그럼 오늘은 먼저 가보겠습니다.
더 있어보아도 무좀은 치료되지 않을걸. 빨리 가서 그 약이나 먹어라.
수고했습니다.
돈 받고 하는짓인데 수고는 무슨…
닥터 지바고님,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잘 가라, 양철북아.
고발
정신팔이는 그러니까 정신을 팔아먹고 다니는 놈이 옳긴 옳았다.
힘을 팔아먹는 사람도 아니고 지식을 팔아먹는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빽이나 권세나 돈 따위가 있는것도 아니니 정신을 팔아먹을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그였던것이다.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는(여기서 “거들떠보지도 않는”이라는 표현은 매우 십분 극히 최고로 대단히 꼭 들어맞는 유일한 어구임을 기억해두시기 바란다) 시시껄렁한 말들을 대충 얼버무려놓고는 굉장한 명작이나 되는듯이 으시댈줄 아는 사람이 바로 정신팔이기때문이다. 명색이 기자라는 사람이 명기사 하나 제대로 쓸줄 모르고 언론인이라고 자처하면서도 칼럼 하나 제대로 맞추어낼줄 모르는 사람이 바로 정신팔이다.
정신팔이는 어찌하다가 그와 비슷한 꼴모양으로 아무런 재능도 없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어떤 글쟁이덕분에 소설의 주인공으로 둬번 오르고는 아주 명인이라도 된듯한 기분이 되여 만날 붕― 뜬 기분을 주체할줄 몰라했다. 그게 아니꼬와서 곁에 앉은 선미양은 늘 선떡 먹은 기분이였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뭐라 할수도 없는 상황이여서 일단 얼마쯤 그리 기고만장일가 안테나만 잔뜩 살리고있는 판이였다.
오늘따라 정신팔이는 자기가 맡은 지면을 흠잡힐데가 없나 두세번이나 검사하고 무³하다고 결론짓고서야 부장한테 넘겼다. 그는 글쟁이덕분에 주인공이 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지만 두부모기사를 운운하는 바람에 그만 약은 수가 들통이 나버려서 더욱 열심히 정신을 팔아 기사를 만들수 밖에 없게 되였다. 그러나 그는 그렇다고 해서 시시해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루일을 끝냈다싶어서 그는 즐겨찾기에 무더기로 저장해둔 사이트들을 넘나들며 재미스런 뉴스들을 씹고있는중이였다.
담배쉼이나 하지.
동료들이 그런 말을 하며 휴계실로 나가자 정신팔이도 그들뒤에 묻어나섰다. 잡담들이 오가고 육담들이 란무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였다.
개나발이래라.
화제에도 끼이지 못하고 듣기만 하던 정신팔이가 더는 참을수 없어 버럭 고함을 질렀다. 기껏 한다는 소리가 말의 톤을 한껏 낮춘 개나발이였고 그 말은 아무에게도 욕이 되지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주변사람들의 야유와 조롱이나 받기 좋을상싶었는데 그 순간 정신팔이는 진짜 정신이 잠간 나가게 되였다. 그렇다고 무슨 큰일도 아니였다.
모두들 둘러앉아 한담을 하던중에 누군가 도적방귀를 뀌였고 그 방귀의 임자를 찾던중 정신팔이에게 시선이 집중되였고 정신팔이는 어쩌구려 드디여 입이 열개라도 변명할수가 없는 처지가 되여버렸던것이다.
사실 그때 정신팔이는 속이 안 좋아서 내심 화장실에 가야겠다고 생각하던중이였고 모두들 그런 시선을 주기 시작하자 처음에는 황당하다가 나중에는 숫제 이거 정말 내가 뀐것이 아닌가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사실상 배속사정이 어려워 화장실로 가게 되였는데 그의 그런 융통성 없는 행동은 기어이 그를 방귀의 주인공으로 몰아붙이는 꼴이 되여버렸던것이다.
어쨌거나 정신팔이는 화장실에서 시원하게 일을 마치고나서야 이제 화장실문을 나서게 되면 사람들이 자기를 무엇으로 어떻게 볼가 이리저리 따져보게 되였다.
다른 사람들 같으면 그냥 웃으며 지나쳐도 얼마든지 좋을 일인데도 정신팔이는 잔뜩 긴장해가지고 그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야 하냐에만 골똘하고있었다.
그때 부장이 화장실로 들어오다가 그런 지극히 부자연스런 상태의 정신팔이를 보자 알조가 있다는듯이 머리를 끄덕끄덕하더니 자연스런 생리현상인데 무얼 그리 심각해가지고 병신같이 구느냐며 웃어주었다.
부장의 말을 듣지 않았으면 또 모를가 부장까지 그렇게 말하자 정신팔이는 화장실문을 나설 용기마저 잃고말았다.
그래서 다시 조금 끙끙 앓다가 그야말로 세기적인 용기를 내여 화장실문을 나섰는데 이미 사람들의 화제는 방귀차원을 많이 떠나있었다.
그런데도 정신팔이는 사람들이 아닌보살하며 자기를 골려준다고만 생각했다. 텔레비에서 중계하는 스포츠생방송프로를 열심히 설명하는 스포츠담당 김기자를 보아도 마치 자기가 안스러워 일부러 화제를 달리 돌리는것으로 보였고 김기자의 말을 경청하며 텔레비에만 시선을 집중하는 박기자나 최기자도 평소 스포츠를 관심하지 않던 친구들이라 의심은 곱배기가 되고말았다.
괜히 정신팔이는 헛기침을 컹컹거리다가 자기 사무상에 돌아와 앉았다.
그런데 곁에 앉은 선미양이 별스레 신경쓰였고 마우스를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마저 아닌보살하는것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드디여 여기까지 말이 새여들어왔구나! 할일없는 사람들의 극성이란… 젖같이!
좆같이라는 말을 항상 젖같이라고 말하는 정신팔이는 그만 무슨 정신인지 몰랐다. 그는 목덜미까지 벌개지는 자신을 의식하며 머리를 수굿하고 자기의 발만 내려다보았다.
그의 발은 그의 동생의 표현을 빌리자면 생강발이였다.
막 생긴 생강모양으로 길지도 둥글지도 가늘지도 굵지도 않고 정말 아무렇게나 생겨먹은 발이였다. 엄지발가락은 엄지손가락 두개를 나란히 붙여놓은것처럼 잔뜩 굵은데 비해 새끼발가락은 어린애 손가락모양으로 작은것이 옹송그리고 붙어있었고 그가 가장 잘생겼다고 스스로 칭찬해마지않는 둘째발가락도 그러고보니 무슨 어른 중지만큼이나 불쑥 길게 생겼었다.
그는 자기의 손가락을 슬그머니 둘째발가락에 대보았다. 무명지만큼이나 길었다. 왜 발이 이렇게 생겨먹었을가 그는 잠간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못했다.
정확히 28센치짜리인 그의 발은 기실 너무 추한것도 아닌데 어느날 동생이 그렇게 표현을 해버리고나서는 자꾸 들여다보게 되였고 볼수록 스스로도 생강처럼 생겼다고 단정하기에 이르렀던것이다.
그러고부터 정신팔이는 웬지 자신이 기껏 남들의 조롱대상으로밖에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떨쳐버릴수 없었고 그는 더는 사무실에 앉아있기가 불편해서 훌쩍 자리에서 일어섰다. 너무 급작스레 일어서는 바람에 곁에 앉은 선미양이 화들짝 놀라 토끼눈이 되였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봉투에 뭔가를 넣어가지고는 무슨 다른 용무가 있는 사람처럼 급한 걸음으로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휴계실에서는 여전히 스포츠화제로 화기애애한 담소들이 이어지고있었지만 그는 자기가 나타났길래 방귀화제를 달리 돌린것이라고 결론짓고는 엘레베터속으로 스며들어갔다.
신문사밖은 언제나처럼 해빛이 쨍 빛나고있었다.
그제야 정신팔이는 기지개를 쭈욱 폈다. 그는 어깨에 힘을 주고 가까운 음식점으로 발길을 움직였다.
아이구, 정기자님은 발도 기셔.
내 발이 길다구?
그럼요. 오늘 새로 개고기를 들여와서 팍 고아놓았는데 마침 정기자님이 이렇게 행차하셨으니 말이죠.
아하, 그런 발…
그는 구석진 좌석을 차지하고나서 복무원이 오기전에 또 한번 자기의 발을 힐끗 내려다보았다. 괜찮게 생긴 발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는 늘 그래왔던것처럼 개발쪽을 시키고 맥주를 두병 시켰다.
퇴근시간까지 그렇게 죽치고 앉아있을 심산이였다.
날씨가 날씨여서 단숨에 두병 비우고 다시 두병 시킨 맥주에서 한 반병정도 마셨을가. 강원도가 문득 음식점에 들어섰다. 아무데나 앉으려던 강원도는 정신팔이를 발견하고는 오래 못 본 친구를 본 사람모양으로 덮치듯이 그한테로 왔다.
오래 됐어? 녀편네가 친정집에 가는 바람에 아침을 굶었더니 배가 출출해나서…
굳이 리유는 필요 없어도 꼭 리유를 꼬나드는 성미인 강원도는 언제나처럼 실실 웃음을 빼물고 너스레를 떨며 그를 건너다보았다.
뒤발을 시켰군. 앞발이 더 맛있는데…
별 쓰잘데 없는 말들도 꼭 강원도의 입에서 나오면 제법 심각해지고 듣는 사람의 기분까지 료리해버리는게 강원도의 특점이라면 특점이다.
왜… 앞발이… 더 맛있지요?
응. 무릇 모든 짐승들은 앞발로 파헤치고 덮치고 얼굴 쓰다듬고 뭐 앞발 사용량이 뒤발의 20배라나. 그래서 앞발이 근육도 발달되고 맛도 더 있는 법이지.
근데… 앞발뒤발… 어떻게… 가리지요?
보면 몰라? 앞발을 자꾸 쓰게 되니까 앞발은 발톱이 모지라지고 단단한 반면 뒤발은 발톱이 예리하고 좀 무른축이지.
정말 그런지는 몰라도 강원도는 확실히 고수는 고수였다. 정신팔이는 또 한번 강원도한테 빨려들어가는 자신을 의식해야 했다.
나오면서 볼라니 정기자한테 송금표가 온것 같던데…
송금표요? 돈 보낼 사람 없는데요.
이 사람아, 그걸 내가 어떻게 아나? 접수실 처녀가 정기자 보았나 물어보길래 알았지.
정신팔이는 예쁠데라고는 안성맞춤으로 뚫린 코구멍밖에 없는 접수실 곰보처녀를 잠시 떠올렸다.
또 술 한번 겨뤄보지 그래?
맥주잔을 들며 강원도가 시물거렸다.
관둡시다. 술은 즐기는것이지 취하는게 아니잖아요?
허허, 언제부터 정기자 술문화 다 연구하시고… 오케이. 그럼 오늘은 문명한 술문화를 위하여…
하여튼 강원도는 술상에 앉으면 무슨 위할것도 많았다. 아무렇지도 않은것을 가지고도 강원도가 위하겠다고 하면 별스레 거창해지는것이였다.
위하기로 합시다.
어허, 사람이. 그렇게 술마시는 법 어딨어? 흐흐. 하긴 그래서 정기자는 내 구미에 맞는다니깐.
반발
무대는 쇼윈도를 배경으로 하고있다. 거기에 큼직한 발 하나가 과장되게 놓여있다. 사뭇 껑충한 다리에 달린 발은 금시라도 어디론가 뛰쳐나갈듯한 태세다. 쇼윈도곁에는 그 발을 지키기라도 하는 사람처럼 이쁘게 생긴 복무원아가씨가 해반주그레 미소를 바르고 마네킹처럼 서있다.
손발톱미용광고가 요란한 가운데 막이 오른다.
무대 왼쪽에서 볼모양없이 꾀죄죄하게 생긴 사내 하나가 주춤거리며 쇼윈도로 다가온다. 유심히 발을 여겨보다가 손을 조심스럽게 내밀어 만지려고 한다.
복무원: 손님, 발톱미용 하시렵니까? 이쪽으로 오세요.
사내: 아니, 저어…
복무원: 오세요. 아주 싸게 해드릴게요.
사내: 그게 아니라 저어…
복무원: 한번만 하시면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을겁니다. 어서 오세요.
사내: 저는 의족인데요.
복무원: 우씨— 재수없다. 오늘은 첫 손님부터 쉬 싹 날군다. 소금이나 뿌려야 할가보다.
복무원이 힝하니 쇼윈도뒤로 사라지고 사내는 잘못을 저지른 소학생처럼 다소곳이 서있다가 발을 가볍게 굴러보고는 무대 오른편으로 사라진다.
제발
바람이 분다. 구름은 진작부터 있었다. 비는 구름과 땅 사이 한 절반쯤 왔을가. 먹안개속에서 번개가 칼을 간다. 대지는 일단 전률부터 하고본다. 으르릉— 우뢰가 짖어대고 사위는 일순 고요에 잠긴다. 사람마다 비 대신 치킨이 쏟아지거나 머리통이 깨지도록 은화가 쏟아지기를 갈망한다.
다시 바람이 분다. 비구름을 몰고 온 바람은 비구름을 휘휘 불며 산너머로 사라진다. 바라던 치킨도 은화도 내리지 않았고 지어 그 흔한 비도 오지 않는다. 이제 치킨이요, 은화요보다 비만이라도 와주었으면 하지만 어림도 없다. 하늘은 거짓말처럼 파랗다.
이제 바람도 없다. 시원히 씻어내릴 비도 없고 먼지를 날려버릴 바람마저 없다. 온통 징그러운 해빛, 해빛, 해빛뿐이다.
끝발
자꾸 술을 권하는 강원도를 폭탄주로 간신히 이겨버린 정신팔이는 신문사에 다시 돌아왔다. 출근을 다시 하려는게 아니고 누가 돈을 보내왔나가 궁금했던것이다.
정기자님, 잡지사에서 원고료가 왔어요.
원고료?
좋겠어요. 재간이 좋으셔서 원고료도 나오고… 언제 한턱 사세요.
웃으면 더욱 가관인 접수실 곰보처녀가 하얗게 웃어주며 애교삼아 지분거린다.
기분이 싫지는 않다.
언젠가 보낸 시 한수가 발표된 모양이였다. 일년에 두세번정도 나오는 원고료다. 30원짜리 송금표.
정신팔이는 그래도 좋았다. 이 정신팔이가 세상에 살아있다는것을 증명해주는 또 다른 표현인 셈이다. 네따위들이 웃겠으면 웃어보라지. 어디 나처럼 원고료를 척척 타본적이 몇번이나 있는가. 치잇…
신문사를 나서는 정신팔이는 공연히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턱이 자꾸 쳐들렸다. 그는 공공뻐스를 타려다가 택시를 타기로 생각을 바꾸었다. 신문사앞에서 택시는 서주지 않는다. 기어이 몇걸음 더 걸어가야 한다.
아무래도 좋았다. 정신팔이는 코노래를 흥얼거리며 모처럼 차례진 이 좋은 분위기가 망가질세라 아주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얼마쯤 가다가 이쯤이면 택시가 서주겠지 하고 턱 멈춰서서 길 량켠을 휘둘러보았다. 문득 그의 시야로 새로 내건 광고포스터가 쑥 꽂혀들어왔다.
저 세인들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세계명화 “최후의 만찬”을 패러디하여 그린 포스터는 유다 대신 웬 금발머리 팔등신처녀를 앉혀놓고있었다. 그녀는 상에 발을 올려놓고있었는데 빨간 매니큐어를 칠한 엄지발가락이 전체 그림의 초점에 놓여있었다.
손발톱미용을 위한 광고포스터였다. 그런데 우스운것은 어느 위대한 미술가의 솜씨인지는 몰라도 2008년 3월 3일에 오픈한다는 글자들이 이상하게도 정신팔이 눈에는 2669년 13월 13일로 보여지고있었다는 점이였다. 특히 0자를 6자처럼, 8자를 9자처럼 처리한 점과 3자의 앞부분을 일부러 길게 늘여 13처럼 보이게 만든 점이 정신팔이의 시망막을 어지간히 즐겁게 해주고있었다.
젠장, 이젠 명화마저 광고에 리용되는군.
정신팔이는 저도 모르게 언제부터 가려웠는지 모르는 겨드랑이를 썩썩 긁어댔다.
갑자기 앞에서 무슨 일이 생겼는지 차량흐름이 멈춰서더니 숱한 차들이 일제히 경적을 울려대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귀를 멍멍하게 하였다. 그때라고 생각한 정신팔이는 아래배에 힘을 지그시 주어 방귀를 뀌였다. 그러나 정신팔이의 기대와는 달리 퍼엉— 하는 속 빈 방귀가 나왔다.
그것은 온종일 참고참았던, 다지고다져진 방귀였다.
(<연변문학> 2009년 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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