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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의식, 당대의식 및 민족의식의 관계
2009년 05월 16일 14시 29분  조회:1674  추천:0  작성자: 방룡남

자기가 발딛고 선 사회와 문화의 성격을 올바르게 리해하고 접수하여 후세에 력사로 기증할 현재를 사회발전의 흐름에 맞게 꾸미려는것은 모든 학문, 적어도 사회과학의 거창한 주제이며 기본과제이다. 그만큼 지금 전 사회적으로 온양되고 다듬어지고있는 관념갱신과 당대의식의 탐구도 무게있는 력사적 의의와 현실적 의의를 담고있다.
과연 이런 사명감을 념두에 둘 때 우리 문단의 모지름도 만삭의 임신부가 겪지 않으면 안될 산전진통임이 틀림없다. 비록 한족문단에 비하여 지루한 침묵의 연장선을 그어왔었지만 오히려 그로 하여 엄숙성과 과학성에 담보를 얻을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런 담보가 차라리 남의 흉내만 내지 말고 한족문단에 대해 찬히 살펴보고 제나름의 사변적 연구를 할 때에만 가능할텐데 우리 문단의 현실태를 두루 살펴보면 남이 부른 구호를 뒤늦게나마 따라 부르는 페단이 퍽 활기를 띠고있는것이 민망스럽다. 자기의 두뇌를 움직일새도 없이 남의 뒤를 따라 덩달아 웨치는 그런 <<구호웨침식>>으로는 도저히 우리 문단의 미래를 불밝힐수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한족문단의 지나간 페지를 다시 번져보면 민족의 렬근성을 찾던 나머지 민족의식으로는 안된다느니, 서방으로부터 당대의식을 받아들여야 한다느니 하는식의 주장들이 적지 않은 페지를 차지하였었다. 또 지금도 민족의식과 당대의식을 병렬 혹은 대립시키면서 민족의식이냐 아니면 당대의식이냐 하는 극단적인 선택에 네니 내니 하고 얼굴을 붉히고있다. 유감스러운것은 오랜 침묵을 지키던 우리 문단도 대개는 이러루한 주장들로 은근히 끓고있는 그것이다. 풀어말하면 이런 주장들과 견해들의 그 제기법에 한해서는 전혀 아무런 의심도 던짐이 없이 다만 어느것을 선택하느냐 하는 질문에 전투적태세를 취하고있다는 말이다. 사실 우리는 어느것을 선택하느냐 하는 질문에 앞서 이런 제기법부터 과학적이 되느냐 하는데 질문을 던져야 할것이다.
첫째, 만약 민족의식과 당대의식을 병렬 혹은 대립의 위치에 갈라세운다면 벌써 민족의식은 당대의식이 아니라는 상식적인 결론이 내려지지 않을수 없다. 그리고 당대의식이란 그 정의를 내리기에 앞서 벌써 현대인의 사고범주에서 산생되는 의식을 말함은 지극히 자명한 일인데 이에 따르면 우리의 민족의식은 현대인의 사고범주밖에 놓여야 한다는 황당한 결론을 내리게 된다.
둘째, 민족의식에는 조상세대가 유구한 력사의 흐름속에서 다듬어놓은 전통의식과 현대인인 우리가 다듬고있는 의식이 포함됨도 의심할바 없는것인데 전통의식과 구별되여야 할 후자를 구경 무슨 의식이라고 하는가 하는 웃음거리 비슷한 질문도 필요하게 된다.
셋째, 전통의식이나 당대의식이나 모두 시간적차원이라는 동질적근원을 갖고있다. 그런데 그들이 전통의식을 포섭한 민족의식을 당대의식과 병렬 내지 대립시킴으로 하여 전통의식과 당대의식은 각기 다른 두개의 의식에 주소를 붙이게 된다. 그렇다면 전통의식은 민족의식을 시간적차원에서 쪼갠 종개념이라 할 때 당대의식은 어떤 의식을 시간적차원에서 쪼갠 종개념인가 하는 질문이 던져짐을 막을수 없다.
네째, 민족의식이란 결국 민족의 미래를 도안하는 주체의식이다. 어떤 민족이든지간에 오직 민족의 미래를 도안하면서 끈질기게 민족의 자활력을 키우는데 은근한 야심을 품고있다면 그 민족에겐 틀림없이 유일 체계적인 민족중심의 자주의식이 기본 물줄기를 이룰것이다. 이런 민족은 외래의 의식도 그대로 받아넘기는것이 아니라 자기의 주체의식을 튼튼히 굳힌 배경하에서 가치판단에 의한 취사선택을 하여 주체적으로 리용하는것이다. 이것은 결코 이질적인 마구바꿈이 아니라 역시 자기 전통에 대한 발전적이고 계승적인 개편 또는 재편이며 현대적 민족의식의 창조인것이다. 사실 매개 민족의식은 그 사회적배경에서부터 자연환경에 이르기까지 워낙 동근일원(同根一元)적인 것이 아닌데 어떻게 외래의것을 그대로 받아들일수 있겠는가? 그리고 한 민족이 자기 민족의식의 체계밖에 이른바 없어선 안된다는 다른 의식의 체계를 세워 병진시킨다는것은 더구나 상상할수 없는 일이다. 민족의 확대된 시점에서 세계를 정시할 때 전통에 대한 검토이든 새 질서에 의한 창조이든 외래요소에 대한 비판적 수용이든 모두 결국은 성장을 기탁한 민족의 미래에 선물할 새로운 <<전통>>을 창조하는것이다.
즉 당대의식이란 결국 민족의식의 현대적표현이며 미래의 전통이라는것을 의심할 필요가 없는것 같다. 사실 우리가 관념을 갱신한다느니 당대의식을 키운다느니 하는것은 우리 민족의 현실사회를 대변하고 삶의 현실에 대응되는 의식체계를 세우려는것이다. 역시 민족의식의 현대적주소를 찾으려는것이다. 때문에 당대의식을 키우고 관념을 갱신한다는것은 개척을 모르는 고루한 사고방식이나 진부한 관념을 개변하는것이지 결코 전통을 외면하는것이 아니며 민족의식과는 더구나 저촉될수 없는것이다. 만약 당대의식이 민족의식의 현대적 표현이라는 제기법이 그런대로 성립된다면 현대적 민족의식으로서의 당대의식은 곧 미래의 전통이 아닐수 없다. 때문에 우리 민족의 삶의 내용을 담은 당대의식을 키우려면 모름지기 민족전통에 발을 붙이고 조상세대와 피줄을 끊지 말아야 한다. 하나의 민족으로서 자기의 정신적 기틀로 되는 문화전통이 없다면 그 민족은 벌써 령혼을 잃은 육체나 다름없이 분해되고말 운명일것이며 자기의 얼굴을 가지지 못하고 외래의 유혹에 저마끔 열사람이 열한개의 반응을 보여주는 민족은 사실 벌써 민족으로서의 참된 함의를 잃고만것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의식이 력사의 범주에 속하는것이지 결코 력사가 의식의 범주에 속하는것이 아니다. 풀어말하면 력사의 흐름에 따라 의식은 부단한 선택과 다듬음이 있게 되는것이다. 바로 우리의 전통이 유구한 력사의 흐름에도 흩어지지 않고 우리 세대까지 전해질수 있은것은 시대에 따르는 갱신과 변질이 끊임없이 시도되여 왔기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에 들어와서 많은 전통들이 시대의 요청을 받지 못한다고 하면 그것은 조상세대의 잘못이 아니라 바로 새로운 시대의 요청에 따르는 갱신과 변질을 꾀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 세대의 잘못인것이다. 오늘을 예견못한 조상세대에 죄를 씌운다는것은 과분한 처사이다. 오히려 우리가 조상들이 용케 물려준 전통을 미래에 전해지도록 현대적주소를 찾아주고 잘 가꾸어가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벗기 어려운 죄가 아닐수 없다.
확실히 우리는 흔히 전통을 다만 발생시간적차원에서 대상하였기에 미래지향적인 안목에서 전통에 대한 재창조를 기도하는것이 아니라 회고적인 자세로 마치 썩은 감자와 성한 감자를 고르듯이 기성되 형태자체에 대한 가치판단에 그만 주저앉고있다. 이런 틀린 자세는 전통연구를 골동품을 만지는것과 같은 취미에 빠지게 하는바 미래를 위하여 과거의 맥박을 찾는것이 아니라 단순한 말타고 꽃구경식의 감상에 머무르게 한다.
우리의 문단을 살펴보면 이는 아주 뚜렷한 흠집으로 나타나고있다. 이른바 민족특성을 나타낸다는것이 현대성을 몰린대로 <<전통적>>인 복장, 풍속, 성격, 기질, 륜리도덕 등만을 민족적인것으로 잘못 확신하면서 조금이라도 옛날의 것과 어긋나는것이면 곧 민족특성에 맞지 않는다고 도장찍는다. 즉 삶의 내용은 새로운 광장에서 변했음에도 여전히 조상세대의 전통을 물려받은 그대로 주장하는것이다. 이것이 의식면에서는 민족의식을 다만 전통의식으로만 생각하게 하는 페단을 초래하였다. 하기에 이른바 당대의식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고루한 전통을 배격하는것과 민족의식을 비난하는것을 혼동시하고있는것이다.
이 모든것은 그네들이 전통문화의 본질적특성에 대한 몰리해에서 기인된것이다. 전통문화의 본질적특성은 바로 부단한 발전연변성 또는 계승성과 상대적인 응고성 또는 력사적관성이다. 이는 문화는 인류로동의 창조물이라는것과 근원적인 인과관계를 맺고있다. 즉 문화는 인류의 로동성장의 반영물로서 거기엔 어차피 부단히 자기를 확장시키고 완성시켜 최종적으로 자연상태에서 완전히 탈피하려는 인류의 향상심과 함께 또 자기가 마련한 질서와 체계를 유지하면서 자기가 발딛고 선 자연환경, 사회환경의 현실상황에 미덥게 적응되려는 점착력이 두개의 힘이 되여 모순운동을 형성하고있다. 바로 이와 같은 공제성과 가변성으로 하여 전통문화의 공제계통은 자아공제계통과 자아조절계통으로 이루어진다. 하여 전통문화는 력사의 흐름속에서 결코 무작정 본원적 혹은 발생적인 형태 그대로 후새대에 강요되는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광장에서 여로모로 자활능력과 존재적가치를 검험받게 된다. 이때 전통문화는 자아공제계통을 통하여 극력 이미 굳혀온 생활방식, 법률, 도덕규범 등으로 사람들을 단속하는 한편 자아조절계통을 통하여 새로운 력사시대의 요구에 만족을 주기 위하여 내적인 조절과 변질을 꾀한다. 그런데 인류문화가 저급단계에서 고급단계에로 발전함에 따라 특히는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전하고 시간적, 공간적으로 세계가 좁아지면서 전 지구촌을 단위로 하는 현대화 문화의 가능성이 날로 현실화됨에 따라 민족의 전통문화는 자기의 자아공제계통을 엄격히 단속하고 약화시키는 한편 자아조절계통을 훨씬 강화함으로써 수용, 융합, 다듬기 등 창조적기능을 활발히 키워 민족의 확대된 시점에서 외래의 선진적문화도 적극 섭취하면서 기성된것에 부단히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현대적주소를 찾아주는것이다. 현대적주소를 찾았다는것은 론의할나위조차 없이 그것이 새로운 내용으로 현대사회를 대변하며 삶의 현실에 대응된다는것을 뜻하는것이다.
또 인간의 삶의 흐름을 봐도 그럴수밖에 없다. 인간력사는 결코 이어달리기처럼 한세대 한세대의 계선이 선명한 련계로 되여있는것이 아니라 3대 혹은 4대가 일정한 자연환경과 시대배경하에서 함께 삶을 엮어간다. 하기에 자신은 그 시대에 살지 않았더라도 그 시대를 넘어와서 그와 함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전세대가 혈연의 끈이 되여 결코 그더러 과거로부터 완전히는 독립해서 존재하게 하지 않는것이다. 이렇게 후세대는 어차피 전세대에 의하여 마련된 환경, 즉 전통의 제약속에서 살게 되는것이다. 하지만 삶의 공간이 달라졌음에도 삶의 내용은 여전히 그대로라면 거기에 벌써 동시대로부터의 락후가 찾아드는것이다. 하기에 시대적요청으로부터 후세대는 어차피 전통의 변질을 꾀하게 되며 전세대도 시간적, 공간적 이질감으로부터 결국 전통을 반성하지 않을수 없게 된다. 이로부터 전통에 대한 현대적의미매김이 가능하게 된다. 이때 도저히 현대적주소를 찾아줄수 없는것은 자연도태될수밖에 없는것이고 새롭게 창조된것, 외래적인것 등이 그 공간을 보충해주면서 미래에 새로운 환경을 마련한다. 력사는 이렇게 세대세대로 이런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흐른다.
보다싶이 민족의식은 전통보다 훨씬 넓은 의미에서 설명되여야 하며 민족의 미래를 도안하는 의식의 총체로 확인되여야 한다. 풀어말하면 민족의식이란것도 결코 최종적으로 고정된 개념이 아니라 민족의 삶의 현장에서 새로운 생활원리에 대한 발견과 실천을 통하여 사회의 본질적파악에 병행되는 의식의 부단한 창조과정인것이다. 그런데 이와같이 현대적 삶의 매듭을 풀어나가는 과정에 산생되는것이 바로 당대의식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당대의식을 민족의식과 병렬 혹은 대립시키고있기때문에 흔히는 전통에 없거나 때지난것을 민족의식에 없는것으로 잘못 인정하여 그것을 이른바 민족의식의 밖에서 찾고있는것이다. 이처럼 전통을 민족의식으로 확대하여 리해하는것은 기실 민족의식은 조상세대들이 창조하여 물려준것이 전부이고 우리는 그것을 보충, 창조할 가능성이 없다는것으로도 풀이된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지금 말하는 전통도 력사의 흐름에 띄워놓고 살펴보면 결코 한날한시에 창조된것이 아니고 전세대의 전통에 후세대의 창조와 다듬음이 끊임없는 가운데서 가지를 쳐왔다는것을 당연하게 발견할수 있으며 그로부터 우리도 전통에 대한 보충과 새로운 창조가 가능한것은 물론 력사가 벌써 그만한 한토막을 다름아닌 우리한테 부탁하고있다는것이 자명한 사실이다.
이와같이 민족의식의 내용의 전부가 전통뿐이 아니라고 할 때 오늘 우리가 처한 시대에서의 민족의식은 구경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민족의식의 현대성을 빼놓고는 전혀 대답이 완전할리 만무하다. 또 민족의식의 현대성을 말하자면 당대의식을 몰리고는 도저히 설명이 되여지지 않는다. 즉 우리가 발딛고 선 삶의 마당을 참으로 미더웁게 꾸며가자면 반드시 그 삶의 내용을 대변하는 당대의식을 세우지 않으면 안되는것이다. 쉽게 풀어말한다면 내가 사는데는 에누리없이 내 나름의 사고방식이 있어야 한다는것이다. 조상의것도 내것으로 만들고 남(외래)의것도 내것으로 되게 하여야 한다.
사실 당대의식이란 개념이 언제부터 제기되였느냐 하는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한다면 시대적요구로서의 관념갱신, 당대의식의 정립은 인류문명사를 발전시켜온 원동력임을 승인하지 않을수 없다. 어느 민족의 어느 시대의 문화적발전이든지 모두 자기의 원래의것을 반성하고 외래의것을 수용하며 새로운것을 창조하는 이 세가지 경로를 밟지 않은것이 없음을 력사는 증명하고있다. 이는 문화발전의 필연적인 객관법칙이기도 하다. 우리의 전통도 이런 경로를 거쳐왔음이 틀림없고 거기엔 결코 고유한것만이 아닌 외래적요소가 포함되여 있음도 확연하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하나의 민족적전통으로 확고히 굳혀질수 있었음은 바로 어떤 경로를 통하여 어떤 변화나 변질을 겪었든지간에 그것이 하나의 핵, 즉 민족의 주체성에 의해 유기적으로 통일되였기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당대의식을 민족의식과 병렬 혹은 대립시킨 나머지 당대의식을 단면적으로 서양의식의 탈바꿈으로 잘못 알고있다. 민족의식의 밖에서만 찾자고 하니 그럴수밖에 없는 노릇이기도 하다. 이런 착오를 진리로 알고있는 사람들은 서양의 철학, 서양의 사상, 서양의 그 무엇에 그대로 당대성의 탈을 씌워가지고는 이를 수용하는것이 곧 당대의식이요, 관념갱신이라고 우겨대고있다. 그들한테서는 당대의식과 서양의식이 동의어로 되고있다. 하여 그들은 당대의식을 수립하는가 안하는가 하는 표준을 서양의식을 접수하는가 안하는가 하는것으로 삼고있다. 우리 문단을 살펴보아도 작가들이 관념을 갱신했는가, 당대의식을 수립했는가를 진단할 때 흔히는 모더니즘문학을 대표로 하는 서양의것을 접수하는가 안하는가, 지어는 한 작가의 <<의식의 흐름>>소설이 서양의 <<의식의 흐름>>소설파의것과 일맥상통한가 안한가 하는것을 놓고 아니어니하고 시비할 정도의 페단까지 나타나고있다. 조금이라도 다르면 가짜라고 비난하고 이른바 서양의것을 접수하지 않고 사실주의문학을 견지하면 보수적이요, 시대의 락오자요 하는 질책까지 들이댄다. 왜서 이처럼 극단적인 주장들이 문단에서 춤을 출수 있는가. 여기엔 얼핏 보기에 그럴만한 리유가 주어지는것이다. 그것은 오늘의 우리 국정으로부터 살펴보면 자연과학의 새로운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고속도의 세계적절주와 발걸음을 함께 하려면 도저히 서양을 외면할수 없으며 서양에 수용적 자세를 취하지 않을수 없음은 너무나도 자명한 현상태이기때문이다. 서양이 현대적물질문명의 창조와 함께 그 근거로 되는 동등수준의 관념을 세운데 반하여 우리는 물질문명의 근대적 행군과 함께 어느정도로는 그 원인으로 되는 의식의 세기적변질에 모대기고있는것이다. 그만큼 서양의 충격은 세계의 접근에 따르는 충격으로서 결코 일시적인것이 아니라 지속적인것이며 요청적인것이 아니라 강압적인것이며 우연적것이 아니라 필연적인것이다. 허약한 경제를 살찌우려면 무엇보다도 정신적성숙이 앞서 요청되는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지간에 수용이란것은 결코 서양의식을 그대로 당대의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과 맞물림을 이루지 않는다. 오늘 서양의 발전과 우리의 락후라는 이 특정된 현상태에서 당대의식을 세우려면 틀림없이 문화발전의 세개의 도경-반성, 수용, 창조가운데서 수용이 뚜렷한 요청으로 나서고있을뿐이지 결코 이것으로 민족적인것을 대체할수는 없는것이다. 그것이 어느만큼 중요성을 가지고 얼마나 많은 비중을 점하든지간에 에누리없이 우리를 위해 다듬어진다는데 목적성이 있는것이다. 가령 우리가 전통의 내용과 특점을 분석함도 없이 죄다 고루한것으로 도장찍어 내동댕이친다면 또 서양의식에 대해 근본적의미조직에 대한 깊은 리해와 파악도 없이 그 허울도 벗기지 않은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특히는 새로운 문화의 형성을 우리 민족의 주체적발전이란 시각에서 파악하고 추구하는것이 아니라 맹목적으로 변화의 물결에 자기의 운명을 내맡기고 밖에서 밀려오는 도전에 스스로의 힘을 분산한다면 우리는 긍정코 얻은것이 잃은것을 보상할수 없는 비극을 표현하게 될것이다. 맹목적인 수용태세 자체가 벌써 문화의 창조를 저애한다. 맹목적인 수용은 옮겨옴이지 창조가 아닌것이다. 자기의 몸에 맞게 치장할줄 모르고 남의 흉내에만 바쁜 인간, 그와같이 정신적기틀을 뿌리뽑힌 사람의 삶의 비극이 너무나도 처참하다면 민족성을 상실한 민족의 운명은 또 어떨가?!
순간의 선택이 십년을 좌우지한다고 한다. 특히 변혁의 기운이 세차게 감도는 시대일수록 우리는 명석한 두뇌를 가져야 한다. 인젠 근본적생각을 정리하고 정처없는 방황을 결산할 때다. 적어도 우리는 인간의 주체성을 높이 웨치듯이 문화의 발전과 창조에서의 민족의 주체성에 대해서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사실 오늘에 들어와서도 세계사라는것이 틀림없이 각기 다른 민족들에 의해 그 페지를 적어가고있다는것을 념두에 두고보면 민족문화의 문제는 바로 세계사의 문제외의 다른것이 아니기때문이다. 비록 세계가 시간적, 공간적으로 축소되고 민족들지간의 동질성이 뚜렷이 성장되고 지어는 융합의 대문에 들어선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매개 민족의 필연적인 성장의 결과로 되자면 틀림없이 매개 민족의 주체적인 노력을 전제로 하지 않을수 없는것이다. 그러므로 민족전통의 계승, 발전문제는 여전히 우리가 지향하고있는 현대화작업의 구심점 내지 정신적기반임이 틀림없는것이다. 그런데 계승은 반성을 전제로 할 때 바람직한것이고 발전은 창조를 외면할 때 앞길이 막힌다. 이때 반성과 창조의 요청을 받는것이 곧 수용이다.
우리는 삶의 현장에 떳떳이 서서 부단히 확대재생산되는 문화의 원동력을 충분히 발휘하여 흐트림없는 자세로 자기식의 길을 개척하여야 한다. 오직 우리의 문화적특질을 현대적의미에서 재확인하고 부단히 새로운 시대의 감각에 맞게 재창조하는 과정에 외래의것을 리해, 평가하고 수용함으로써만 비로소 민족의 밝은 미래가 미덥게 기탁되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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