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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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에 대한 어떤 기억
2008년 06월 24일 08시 06분  조회:1696  추천:118  작성자: 조남철
 
우리말에 대한 어떤 기억


조남철
한국방통대 국문과 교수



대학에서 한국문학을 강의하는 일이 직업이다 보니 우리말과 글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애정을 가지게 된다.

우리말과 글이 우리들이 서로가 하나의 핏줄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게 도와주고 또 처음 보는 사람들도 하나의 핏줄로 묶어주는 정서와 소통의 주요한 도구라는 사실을 새삼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낯선 나라에서 우리말을 쓰는 사람을 만났을 때의 그 감동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말과 관련해 다소 특별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러시아의 고려인 동포와 관련된 경험이다. 2,3년 전 관계하고 있는 시민단체에서 러시아의 우수리스크에 한글학교를 세우기 위해 후원회를 결성하고,‘후원회 밤’에 우수리스크의 실행위원장인 러시아인 동포를 초청하였다.

의례적인 몇 가지 행사가 끝나고 실행위원장인 동포 여성이 인사말을 하였다. 1937년 ‘스탈린에 의한 강제이주’로 다른 지역의 동포들에 비해 우리말을 잘 하지 못하는 고려인 실행위원장은 원고지를 써 와 떠듬거리며 인사를 했다.

장내에 모든 이들이 고려인 동포 여성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있었다. 떠듬거리기는 했지만 진심이 담긴 그 말은 그 자리에 같이 한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말이 더 이어졌다.‘정말 미안합니다. 같은 민족인데도 우리말을 잘 하지 못해 이렇게 글을 써 와 읽고 있는 사실이 너무 미안합니다.

다음에 만날 기회가 있을 때에는 유창하지는 못해도 원고를 보지 않고 말 할 수 있도록 우리말을 열심히 배울 것을 여러분에게 약속드립니다’. 순간 나는 너무 엄청난 충격에 쌓였다. 누가, 그 자리에 있었던 우리들 중 누가 그 러시아 동포에게 우리말을 하지 못한다고 비난할 수 있단 말인가?

몇 십 년 동안 낯 선 남의 땅에서 온갖 시련과 고통을 혼자 견디어 내야 했던, 나라도 겨레도 아무도 그들에게 관심조차 주지 않았던, 이제야 겨우 우리 곁에 함께 선 이 누이와 핏줄들에게 누가 우리말을 모른다고 비난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는 탄식이 절로 터져 나왔다. 그 동포의 너무나 순박한 모습에 가슴이 저려 왔다.

다른 한 기억은 중국에 있는 어느 동포 대학에서의 경험이다. 그 동안 이런 저런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을 모아 동포 학생들에게 아주 적은 금액의 장학금을 지원하는 일을 할 수 있었다.

얼마 전 그 장학금 전달식에서의 기억이다. 전달식이라고 해야 한국에서 문학기행을 같이 간 대학생 40여명에게‘민족’을 느끼게 할 생각으로 급조된 의식이어서 한국 학생들 이외에는 조선족 동포와 대학교의 중국인 관계자, 그리고 장학금을 받는 동포 학생들이 전부였다. 조촐하게 식이 진행되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 같이 한 한국인 모두를 당황하게 하는 일이 생겼다. 식을 모두 중국어로 진행하는 바람에 축하하기 위해 참석한 한국 학생들은 멍하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민족’을 느끼게 하기 위한 행사가 오히려 이질감을 더 분명하고 크게 드러낸 것이다.

학생들을 이끌고 그 자리에 참석한 글쓴이도 크게 당황하였고, 순간 크게 불쾌했다. 행사 후 그들에게 불만을 표시하였고, 그들 역시 미안하다는 뜻을 표현하기는 했지만, 꽤 오랫동안 불쾌한 감정을 버리기 어려웠다. 그것은 분명 우리말을 모욕한 일이었고, 말을 모욕하는 일은 민족을 모욕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말과 글은 민족을 하나로 엮는 가장 큰 얼개이다. 당연히 세계화 시대 700만 동포를 하나로 묶는 가장 쓸모있는 도구도 우리말과 글이다. 그리고 이것은 재외 동포에게 우리말과 글에 대한 교육을 더 강화할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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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1 ]

1   작성자 : 그림쟁이 최강
날자:2008-07-01 10:56:42
좋은 글 잙 읽었습니다~!! 방통대 교수님이시군요~!! ^_^ 방통대앞을 지나 마로니게공원, 빨간벽돌건물, 소극장들을 찾던때가 그립습니다아~!!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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