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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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조선족문화예술 60년 산책 2
2013년 05월 14일 12시 08분  조회:3886  추천:1  작성자: 김희관
연변조선족문화예술  60년 산책 2
---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60돐을 맞이하여
 
<문화시대>잡지 2011 4 ----
 
조선족문화예술의 열매
 
건국이후 연변의 광대한 조선족문학예술가들은 시종일관하게 당의 문예의 <두가지를 위하는>방향과  <백화만발 백화쟁명>방침을 견지하면서 군중속에 심입하고 생활에 심입하여 부단히 시대의 정신을 따르고 짙은 민족특색을 자랑하는 문예작품을 창작해내여 중국조선족특색이 있는 문예를 번영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탄탄한기초를 닦았다.
 
문학창작은 새로운 천지를 개척해 나갔다. 1954년1월 연변문련 기관지인 <연변문예>가 창간되고 <해란강> 등 10집의 시가집이 발표되면서 시단은 활기를 띄였다. 임효원의 <나에게 총을 주오> 리욱의 <어머니의 품> 등 시편이 시단의 주목을 끌었다. 1955년 11월 시인 김철의 서정시 <지경돌>이 <연변문예>에 발표되여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동년 11월 <연변일보>에 발표된 시인 김성휘의 서정시 <첫괭이>가 발표됐다. 이러한 시편들은 짙은 민족풍격과 향토기질로 하여 광대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소설창작에서는 100여편의 단편소설과 10여부의 중편 장편소설이 발표되였다. 건국초기 토지개혁후 자라난 선진적인 농민형상을 제재로 한 단편소설       <새마을>(김창걸 작)이 발표되면서 육속 <돼지장>(김순기 작) 등 많은 단편소설이 발표되였다. 해란강반을 배경하여 9.18사변전후 연변인민들의 항일무장투쟁의 피어린 력사를 반영한 장편소설<해란강아 말하라>(김학철 작)는 건국이래 중국조선족문학계의 첫 장편소설이였다. 잇따라 해방전쟁시기 연변인민들의 혁명투쟁을 반영한 장편소설 <범바위>(리근전 작) 봉건혼인의 부패와 죄악을 폭로한 력사소설 <규중비사>(김용식 작)이 발표되였다. 이러한 소설들은 우리민족 소설창작사상의 <리정비>적인 효과를 낳았다.
 
건국이후 희극문학과 민간문학방면에서도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건국초기 창작된 주요한 작품들로는 농업합작화정책을 구가한 장막극<우리의 조장동지>, 단만극<농민학교로 가는 길> <몰래 기여든 독사> 등이 있다. 그중<우리의 조장동지>는 그시기의 대표작으로서 광대한 관중들이 열렬한 반응을 일으켜 농업합작화운동의 발전에 커다란 추동작용을 놀았다. 1950년대 중기에 접어들어 연변에서는 농업합작화와 사회주의개조의 고조가 형성되였다. 극작가들은 이러한 형세에 발맞추어 당의 중심사업에 배합하여 농업합작화시기 농촌의 새면모와 광대한 농민들의 정신면모를 제재로 하는 여러부의 단만극을 창작하였다. 단막극<합작사는 나의 집>  <완두종자> <봄날에 있은 일>과 전쟁이 가져다 준 사회적비극을 묘사한 단만극<귀환병>, 가정을 제재로 한 <김원장의 일기>, 공인계급과 선진적인 로동자을 반영한 단막극<5.1절 전야> 등이 발표되였다. 또한 1930년대 연변조선족의 항일무장투쟁을 제재로 한 장막극<장백의 아들>(황봉룡 박영일 등 작)은 사상과 예술방면에서 거둔 성과는 그 시대 조선족희극문학의 고봉에 올랐다.
 
1956년 연변민간문예연구회가 성립되여 민간문학수집, 정리, 출판사업을 벌려 <조선족민간문학자료집>제1권,제2권을 출판했고 민간이야기집<맑은 천지물> (정길운 수집정리), <인삼처녀> 등을 출판했다.
 
그 시기 연변의 민족음악 무용분야에서는 백화가 만발하는 국면이 나타났다. 건국과 자치주의 성립은 광대한 음악가, 무용가들의 창작 격정을 불러일으켜 민족음악과 무용예술의 아름다운 봄날을 맞아 민족음악, 무용 창작의 풍년을 맞이했다.
 
음악분야에서는 서정가곡, 통속가요, 혁명가요, 아동가요이 있을뿐만아니라 대형음악 례하면 관현악협주곡, 교향대합창 등 작품도 있어 국내외에 명성을 떨쳤다. 대중가곡분야에서는 우선 군중이 즐겨부르는 애정가곡 례하면 <처녀가 반한 총가 따로 있다네>(리홍규  작사 정진옥 작곡), <아! 꽃마차 왔네> 등 가곡은 후날 정치운동중에서 격조가 저속한 가곡으로 인정되는 불운을 겪었다. 그 시기 향토인정을 담은 <배꽃>(김철 작사 정창권 작곡), <마을에 돌아온 중학생>(초산 작사 도산 작곡), <내고향 좋구좋다>(임효원 작사 동희철 작곡), <연변타령>(임효원 작사 정진옥 작곡), <내고향 금파도>(김동호 작사 김덕균 작곡) 등 가곡이 발표되였다. 그중에서 가곡<마을에 돌아온 중학생>은 1950년대 농촌건설에 헌신한 광대한 지식청녕들이 가장 즐려부르는 가곡이였다.
 
그 시기 여러수의 송가도 창작되였는데 례하면 <모주석께 드리는 노래>(장동운 작사 동희철 작곡),<사랑하는 나의 조국>(리행복 작사 정진옥 작곡), <공산당과 모주석의 은덕일세>,<모주석 따르면 승리한다네>(장작성 작사 김화섭 작곡),<붉은 해 변강을 빛추네>(한윤호 작사 김봉호 작곡) 등이다. 1960년대 발표된 한윤호 작사 김봉호 작곡인 가곡<연변인민 모주석을 열애하네>는 연변의 아름다운 산천경개에 대한 찬미를 통해 억만인민들의 모주석에 대한 경의의 심정을 잘 그려내여 전국에서 널리 불려졌다.
 
그 시기 높은 수준의 예술가곡도 창작되여 민족음악을 더욱 빛냈다. 그 대표작들로는 <베짜기 노래>(채택룡 작사 허세록 작곡), <좋은 종자 가려내세>(김태희 작자 박우 작곡), <고향산 기슭에서>(김경석 작사 동희철 작곡), <연변목가>(리황훈 작사 안국민 작곡), <처녀의 노래>(최정연 작사 정진옥 작곡), <모아산타령> (김태희 작사 박우 작곡), <산간마을에 드리는 노래>(김경석 작곡 동희철 작곡), <사과배 따는 처녁>(장동운 작사 최삼명 작곡), <깜둥이 처녀>(장동운 작사 정진옥 작곡) 등 이다. 그중에서 <처녀의 노래>는 조선족 예술가요사상의 경전으로 인정받았다.
 
관현악대합창분야에서도 새로운 성과를 보았는바 <항일의 봉화> <해란강> <홍기하강반의 붉은기 휘날린다> <장백의 노래> <싸우라, 흑인형제여> <영원한 태양> <고향에 드리는 노래> 등 작품들은 그시기 창작된 대표작들이다. 그중에서 대합창교향곡<장백의 노래>(김철 작사 정진옥 작곡)은 북경에서 공연을 하여 북경음악계를 뒤흔들었다. 또한 쏘련 모스크바 제6차세계청년련환절에서 은메달을 받는 영광을 지녔다. <싸우라, 흑인형제여>는 장춘음악절에서 처음 선을 보이면서 광대한 관중들의 뜨거운 반을 일으켜 국내의 일류이며 세계적수준의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건국후 아동가곡창작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1951년에 첫 출판된 <조선족소년아동가곡집>에는 <대기따라 앞으로> <고개길> <아동가> 등이 실렸다. 1954년 출판된 <유치원가요집>과 <소년아동가요집>에는 차악 아동가요 <제비> <기차놀이> <아름다운 산야> 등이 실려 광대한 소년아동들이 즐려불렀다. 1957년에는 <반디불>이 발표되고 1960년초에는 <우리조국 아름다워> <선생님 안녕하세요> <아름다운 조국> <학교가는 길>  <쪽배>와 소년합창곡 <모닥불> 등 민족음악풍격이 짙은 작품들이 실렸다. 그중 <고개길>(김례삼 작사 허세록 작곡)은 조선족아동들이 즐려부를뿐만아니라 국외에도 소개되였다. 동요<반디불>(조룡남 작사 김덕균 작곡)은 50년대부터 지금까지 아동들속에서 널리 불러지고 있어 중국조선족아동가요중의 명곡으로 평가받고 있다.
 
건국초기 조선족의 무용예술은 아직 완정한 예술형태를 갖추지 못하였기에 비교적 단조로웠다. 후날 전업적인 민족예술단체가 점차 발전하면서 민족무용예술인잭 자라나면서 무용예술창작방면에서 새로운 돌파를 가져오기 시작했다. 1951년 조선족무용예술가 조득현선생은 해방후 조선족의 현실생활을 제재로 무극<연원한 평화와 행복을 위하여>를 창작하였으며 륙속 무극<금도끼와 은도끼> <홍기하반에 나붓기는 붉은기> 등을 창작해냈고 력사제재를 바탕으로 무용 <활춤>을 창작했다. 그중에서 무극<영원한 평화와 행복을 위하여>는 중국무용예술사상 현실생활을 제재로 창작된 첫 무극이라는 영예을 받았으며 조선족무용예술창작의 튼튼한 기초를 닦는데 일조했다.
 
1950년대 후반기 각현,시에 문공단이 선후로 세워지면서 무용예술창작과 공연의 시공이 부단히 넓어지게 되여 조선족무용예술의 발전에 생동하고 활발한 국면을 이룩하였다. 1960년대의 무용대표작들로는 항일혁명전통교육을 목적으로한 3인무<유격대행진곡>(남일권 안무), 광대한 농민들의 사회주의건설의 적극성을 묘사한 4인무<독보조 노인들>(김룡준 안무 마문호 개편), 광활한 천지에 뿌리내리고 열심히 농촌을 건설하는 지식청년들의 불꽃튀는 생활을 반영한 쌍무<풍년을 맞은 공사벌에서>(박하성 안무), 5인무 <우편배달원과 처녀들>(홍수천 안무), <콩심기춤>(리록순 안무), 무용조곡<종자와 추수>(조득현 안무),  독무<옥중전가>(조득현 안무), <책을 이고 만리길>(최옥주 최성국 윤청자 안무), <논물관리원>(남일권 안무 최옥주 개편), 군무<왕가물과 싸우는 처녀들>(화룡문공단) 등이다. 그중 4인무<독보조 노인들>이 1964년 전국업여무용콩클에서 광대한 관중들의 열렬한 박수를 받았으며 군무<왕가물과 싸우는 처녀들>이 우수절목상을 받았다.
 
그 시기 민족무용영역에서 조선족무용가들은 민족무용유산을 발굴하고 제고하는데 심혈을 아끼지 않았다. 1951년 연변가무단의 저명한 무용가 조득현선생은 민간의 <농악놀이>를 성공적으로 정리하고 제고하여 조선족농민들의 풍년의 기쁨을 잘 표연한 <농악무>를 창작하였다. <농악무>는 그 예술적 내함을 부단히 늘리면서 장수프로로 자리매김하여 길림성과 국가의 우수상을 여러번 받았다.
 
<물동이춤>은 조선족소녀들의 순박하고 부지런하며 수줍고 착한 소녀들의 모습을 예술적으로 표연한 군무이다. 이 무용은 1954년 연길현 조향천업여문예표연대가 처음 무대에 올린 무용이였는데 연변가무단 안무가 리인숙의 재창작을 거쳐 1956년 국경절헌레무대에 올려 우수프로상을 받았다.
 
<부채춤>은 1951년 민간예인 양창윤이 재래춤을 개편한것인데 1954년 연변가무단의 안무 최금성이 재창작해 더욱 우아하고 예술적인 무용으로 되였다. <부채춤>은 1955년 폴란드 와르샤와에서 열린 제5차 세계청년련환절에서 금상을 받았다.
 
<장고춤>은 1950년대 초 룡정일대에서 유행되고 있었는데 1954년 량상호가 독무로 재창작을 하여 연변가무단 무대에 올렸는데 자치주 우수상을 받으면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민간의 민속무용과 전통무용을 수집, 정리하여 예술적으로 향상시킨 무용은 <농악무> <탈춤> <접시춤> <승무> <부태춤> <손춤> <장고춤> <수건춤> <사자춤> <무당춤> 등 20여종이다. 그러한 민속무용과 전통무용을 기초로 하여 창작된 대표작 <팔선녀> <금도끼와 은도끼>는 조선족무용예술을 새로운 단계에로 끌어올렸다.
 
미술영역에서는 석희만화백의 유화작품<로인독보조>이 제2차전국미술전에 춤품되였고 지승원화백의 련환화<농민들의 새인물 김준희>가 제3차전국미술전에 입선했으며 임천화백의 유화<아침>, 전동식화백의 유화<전간의 아침>, 리동구 한주익 합작품 유화<림해의 청춘>이 제5차전국미술전에 입선했다.
 
촬영예술영역에서는 강찬혁의 예술사진 <천지>는 처음으로 장백산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잘 표연하였으며 뉴스시리즈사진 <주은래총리 연변시찰> 은 연변인민들이 잊을수 없는 력사적인 순간들을 잘 기록하였다. 김홍국의 예술사진<농악무>는1963년 전국촬영전에 전시되였고 네덜란드에도 출품되였다.
 
연변조선족의 민족예술교육사업도 시대의 발전에 발맞추어 진행되였다. 1951년3월 연변사범학교에서는 예능사범반을 꾸려 음악반,무용반,미술반 도합 90여명을 양성하였다. 동년 8월 연변대학에서 미술반을 설치하여 20여명 학생들을 초생하여 저명한 화가 석희만선생 등 선생들이 미술학도들을 가르쳤다. 또한 그해 북경 중앙희극학원에서 꾸리는 <최승희무용연구반>에 박용원 리인순 등 조선족 무용배우들이 최승희에게서 배움으로서 후날에 조선민족전통무용의 맥을 이을수 있었다. 1957년 10월5일 중국조선족의 첫 민족예술중등전문하교인 연변예술학교가 성립되여 음악, 무용, 미술 등 세개 전문학과를 열어 민족예술인재양성의 요람이 꿈을 이루게 됐다.
 
1957년4월에 <연변문물관리위원회>를 성립하는것을 시작으로 연변의 문물사업도 서막을 올렸는바 처음부터 문물조사와 증집사업을 활발히 벌려 많은 혁명문물을 수집하였고 또한 고대문물을 발굴하였다. 이 기초상에서 1959년 9월 국경10주년을 맞이하여 <연변고대문물과 혁명문물전람>을 열어 관람자들의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1960년 4월, 문물사업일군들은 여러가지 곤난을 극복하면서 항일련군 2군 군장 왕덕태와 정위 위증민의 혁명문물 70여건은 수집하였다. 이러한 문물은 이미 국가1급문물로 인정받아 수장하고 있다. 그해 4월부터 문물전업일군들은 각현시의 문물일군들은 함께 전주범위내에서 비교적 큰규모의 제1차문물보편조사를 진행하였다. 결과 고대유적과 묘장지 63곳, 근현대유적 67곳을 발견했으며 고대문물 216건, 혁명문물255건을 수집하였을 뿐만아니라 전주의 문물분포개황을 파악할수 있었다. 1961년1월 자치주정부에서는 전주문물보편조사결과에 근거하여 제1차 주급문물 중점보호단위 45곳을 반포하엿다. 1962년과 1963년에는 주위의 <비문물부문과 단위들은 보관하고 있는 각종 문물과 표본을 모두 연변박물관주비처에 의관하여 수장하여야 한다.>는 지시에 따라 연변박물관주비처 일군들은 연변대학 력사학부,연변고중,훈춘시인민정부 문화과 등 단위에서 고대문물과 혁명문물, 민족과 민속문물, 적위죄증문물 등 도합 1,825건을  넘겨받아 수장하였다. 1963년 연변박물관주비처는 200평방메터도 않되는 전시실에서 <연변인민혁명투쟁사진전>을 진행하여 5월부터 8월까지 2만여명의 관람자를 맞이했다.
 
연변의 도서관사업은 1948년4월에 연변도서관이 성립하면서부터 시작되였는데 1955년에 길림성정부로부터 연변조선족자치주도서관으로 명명받아 연변의 제1공공도서관으로 되였다. 하여 연변도서관은 중국조선족중심도서관역활을 하게되였다.
 
영화는 관중들이 아주 즐기는 대중예술이다. 건국전에는 영화를 못본 사람이 많아서 <활동사진>을 한번 보는것이 꿈이였다. 1952년부터는 조선족관중들이 영화를 잘 알아보게 하기 위하여 영화관에는 동성연사를 두었다. 1953년부터 우리주에도 중국영화경리공사 길림성판차처 연변영화발행소가 성립되여 주내 각지의 영화발행사업을 총괄하였다. 1965년말의 통계에 의하면 전주의 년평균 매인당 영화관람은 14.5차였고 그중 농촌은 9.6차여서 전성과 전국의 평균수치를 훨씬 초월하였다.
 
 
건국이후 17년동안 조선족문학예술은 커다란 발전을 가져왔지만 그 세월은 결코 순풍에 돛단배처럼 평화롭지 못했으며 심지어는 많은 곡절을 겪었다. 1957년 하반년에 시작된 <반우파투쟁>이 확대화되면서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우파분자로 몰리거나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되였고 그후에는 이른바 지방민족주의 민족정풍이 뒤따랐고 1959년에는 소위 당내 반우경투쟁이 계속되였으며 잇따라 문예계의 소위 <수정주의>를 비판하는 운동이 벌어졋다. 그러한 풍파속에서 우리의 문화예술사업은 풍전등화처럼 크게 흔들리게 되였다.
 
1957년 반우파투쟁으로 부터 시작된 정치운동은 끝내 1966년 봄부터 10년간 지속된 <문화대혁명>이라는 대동란을 초래하였다. 대동란은 하루아침에 조선족문화예술이 <독초>로 전락되고 유명한 문화예술인들이 잡귀신으로 몰리는것을 시작으로 앞날이 심상치않음을 예고했다.  그런과정에 1969년 7월에 있은 소위 <민족문화혈통론>에 대한 비판소동은 우리의 민족문화예술을 매국적이고 투항주의적이며 수정주의적인 잡동산이라고 헐뜯으면서 민족문화예술의 전통과 유산을 말살하고 아예 민족문화예술의 씨를 말리려했다. 그 악과로는 우리가 억지로 <양반시>같은것을 목청이 쉬게 불러야 했고 무대는 온통 살기등등한 절목이 점령하였다. 10년의 동란세월에 우리의 문화예술인들은 인권이 짖밟히고 탄압받고 옥살이를 하고 심지어 자살을 하는 전대미문의 대재난을 겪었다.
 
10년동란으로 하여 해방후부터 차근차근 쌓아올린 민족문화예술의 공든탑은 다 무너지고 민족문화예술의 꽃밭은 쑥대밭이 되여버렸다.
 
참고서적: <연변조선족사>
<해방초기의 연변>
<연변가무단 60년>
<연변연극단 50년>
<중국조선족문화활동>
<연변박물관 50주년 문집>
<예술세계>
<중국조선족 100년 문화예술 대사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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