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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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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래지는 석양빛
2017년 03월 22일 08시 25분  조회:1490  추천:1  작성자: 최장춘
인생의 황혼을 석양빛에 비유한다. 빨갛게 물든 구름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눈부신 해살이 그림같이 아름답다. 노래도 많고 춤도 많아 생의 쾌락이 정점에 이른듯 싶다. 얼마전 동창생파티가 열렸다. 서로 반가와서 얼싸안고 덕담을 나누면서 술 둬잔 돌아가니 흥이 도도해졌다. 한창 파티가 무르익어갈쯤에 마주앉은 녀성동창생의 핸드폰소리가 크게 울렸다.

통화를 끝낸 녀성동창생의 얼굴색이 갑자기 흐려져 모두 의아해서 물었다. 연해도시에서 사는 딸이 애를 보살필 사람이 없어 급히 와서 봐달라는 내용이였다. 그 말에 웬지 동창생들 저마다 남의 일만 아니라는듯 막무가내로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긴 너도나도 당직을 서듯 몇번씩 겪어야 하는 곤혹을 인식해 부글부글 끓던 술판이 문뜩 찬물을 끼얹은듯 푹 깔앉았다. 현재 연변의 젊은이들은 대학교를 졸업하면 대다수가 큰도시 아니면 외국으로 나간다. 가난을 털어버리려는 욕심이 부풀어 타고장에서 가정을 꾸리고 애까지 낳는다.

신접살이 맞벌어 살기 힘든 세월에 애는 누가 보살펴야 하는가. 자연 부모들의 몫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키워줘야 한다. 부모를 부르는 초청장도 자녀가 둘,셋이 되는 집에서는 흔히 한꺼번에 겹쳐서 갈팡질팡할 때가 많다. 몇년째 바깥에서 이집저집 돌며 "품팔이"하는 동안 제 집일은 파밭이 되여 엉망진창이다. 부모들은 갓난애를 손자손녀라 이름 지어 강보에 싸안아보면 유별나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법이다. 나날이 커가는 영아의 밝은 모습과 재롱질에 홀딱 반하다싶이 밤낮이 따로없이 정성드려 보살피는 사이에 자신의 어깨는 어느새 휘우듬해졌고 이마에 패인 주름과 하얀 서리발이 지친 로고의 흔적으로 남는다.

물론 자식들은 태반 부모의 은혜가 고맙기도 하고 죄송스럽기도 해서 일부러 비싼 옷도 사드리고 맛있는 음식을 대접시키면서 못내 신경을 쓴다. 어린 애를 놓고 사돈집을 포함해 세가족이 팽이처럼 돌아간다. 때론 사돈끼리 눈치가 보여 서로 짐을 챙겨들고 먼저 떠나느라 부산을 피워 해프닝을 만들 때도 있다. 애를 키우는 일이 고역이다. 깊은 밤에 졸려도 부모는 자식에게 잠을 양보하고 뜬눈으로 애를 보살펴야 하고 걸음마 떼서부터는 애와 같이 갖가지 손짓몸짓해가며 놀아줘야 하고 때론 몸에 열기가 오르면 먼저 둘쳐업고 병원쪽으로 줄달음쳐야 한다.

오죽하면 살까기하려거든 애뒤바라지하라는 말까지 나왔을가. 힘들어도 항상 자식들앞에서 참고 웃어야 되니깐 자신 몰래 성격마저 변해서 의문스러워질 때가 많지만 무럭무럭 커가는 애들의 밝은 모습을 보면 지지리 고달펐던 기억이 깡그리 잊혀져 기분이 사뭇 거뜬해진다. 인생의 륙십을 청춘이라 했다. 성취감이 주렁진 고개마루에 올라 걸어온 자욱을 뒤돌아보며 이마에 흥건히 돋힌 땀방울을 쓰윽 문지르는 여유를 갖는 시절이다. 친구끼리 어울려 즐겁게 운동도 하고 가끔 들놀이도 펼치고 려행도 떠나고 다채로운 사회활동에 참가하여 그동안 방치되고 망각된 삶의 한 공간을 칠색도안으로 단청하여 아직 젊음을 넉넉히 가지고 있음을 세상에 자랑하는 계절이다.

평생 자식뒤바라지에 눈코뜰새 없이 살아오고도 부족하여 자신은 헐망한 집에서 살면서 자식에게 좋은 집을 마련해주려고 아껴 먹고 아껴 쓰면서 무등 애를 쓰는 부모들의 처지가 그저 불쌍하고 안타까울뿐이다. 일전 전국정협회의에서 몇몇 대표가 육아문제를 민생개선의 이슈로 부각시켜 제출한적 있다. 조만간 육아조건이 많이 바뀌여서 편한 세상이 되겠지만 가정을 말할진대 제가 낳은 자식은 제가 키워야 가정의 완벽한 질서가 잡힌다. 애의 성장도 친부모의 슬하에서 더 건실하고 총명해진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진 상식인데도 요즘의 부모들은 자식의 애한테 지나친 관심을 갖고 접근한다.

마치 소홀히 대하면 자식들한테 죄를 짓는 것처럼 힘에 부쳐도 애오라지 도맡아 키워야 시름을 놓는다. 대대로 내려온 전통적인 관념을 고치려면 당분간 힘들 것 같다. 세월이 흘러 대가 바뀌여도 아마 자식들에게 쏟는 부모의 일괄식 사랑이 먼 후날에도 끈끈한 뉴대로 이어질듯 싶다. 서산마루에 걸린 저녁노을이 오늘따라 물기를 머금고 누렇게 색바래져있다.

바람에 부대끼고 땡볕에 그을러 퇴색한들 어떠하리. 오늘도 행복의 웃음소리 흘러나오는 어느 아빠트창가를 쳐다보노라니 어쩐지 가슴이 뭉클해진다. 서글픈 석양빛이 부딪히는 술잔에 비껴 유난히 감동적이다. 오랜 쓴맛이 우려낸 찐한 향기가 황혼의 멜로디가 되여 마음마음을 뜨겁게 휘젓는다.

길림신문 2017-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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