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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28일(음력 정월 대보름), 심수의 번화한 새박광장에서 한 남자가 어느 회사의 총경리인 하해청을 칼로 찌르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때 하해청과 곧 결혼하게 될 장화려가 나서서 몸으로 날아오는 칼을 막았다. 박투중에 범인도 칼날에 손을 상해 입원했는데 며칠후 경찰들은 병원의 감시카메라에서 장화려가 이 범인과 함께 병원을 떠난것을 발견했다. 이것은 도대체 어찌된 영문일가?
금년에 27살인 하해청은 심수태생인데 대학을 졸업한후 부모의 도움을 받아 자체로 전자과학기술회사를 세웠다. 2007년 5월에 하해청의 회사에서는 제품포장설계사 장화려를 초빙했다. 광동성 소관에서 출생한 장화려는 모 대학 예술설계학부를 나왔는데 키가 크고 예쁘게 생겼다. 장화려한테 첫눈에 반한 하해청은 기회를 타서 사랑을 고백했다. 장화려는 하해청이 비록 외모는 잘 생기지 못했지만 젊은 나이에 회사를 세운것을 보고 그의 사랑을 받아들였다. 2010년 2월 24일에 결혼식을 올린 그들은 3월 3일에 결혼등록을 하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정월 대보름날에 뜻밖에도 난데없이 나타난 낯선 남자의 칼에 찔리는 사건이 발생했던것이다.
범인은 도망치고 하해청과 장화려는 심수시제2인민병원에 실려가 구급을 받았다. 하해청은 가슴, 등, 어깨에 10여곳이나 찍혔지만 심장이 찔리지 않았기때문에 생명의 위험에서 벗어났다. 장화려도 등이 깊게 찔렸지만 내장이 상하지 않았기때문에 생명의 위험이 없었다.
사건제보를 받은 심수시공안국 복전분국 원령파출소의 경찰들은 즉시 현장에 달려와 사건수사에 달라붙었다…
2008년말의 어느날, 장화려는 “독약”이라는 닉네임으로 “마귀”라는 인터넷유회를 놀다가 닉네임이 “기사”라는 남자를 알게 되였다. 장화려는 “당신은 왜 ‘기사’라는 이름을 달았어요? 애인을 위해서인가요? 아니면 련적과 결투하기 위해서인가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기사”는 “사랑을 위해서라면 난 생명마저 바칠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한후 “당신은 왜서 ‘독약’이란 이름을 달았습니까?”라고 물었다. 장화려는 “어느 노래에 사랑은 독약이란 구절이 있잖아요? 제가 바로 사랑독약이예요. 난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에게 푹 빠져서 나오지 못하게 할거예요.”라고 대답했다. 그들은 대화가 통하자 서로 QQ로 화상채팅을 하기 시작했다. 장화려는 “기사”가 미남인것을 보고 마음이 움직였다. “기사”도 장화려의 미모에 반하여 인테넷으로 각양각색의 장미꽃을 선물했다. 그때로부터 그들은 함께 인테넷유회를 놀고 QQ로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정이 깊어졌다.
어느날, “기사”는 유희를 놀다가 “우리 ‘부부’로 되면 더욱 힘이 강해질거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장화려는 “가상부부”로 되는것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즉시 대답했다. 인터넷유희에서의 결혼도 결혼등기를 하고 결혼식을 올리는 절차가 있어서 매우 재미있었다. 그들은 인터넷에서 서로 “여보”, “당신”하고 부르면서 미묘한 감정을 느꼈다. “기사”는 자신의 본명이 당옥령이며 료녕성 무순시에서 사는데 어느 운수회사의 주관경리라고 알려주었다. 장화려도 자신의 진실한 신분을 알려주었지만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만은 숨겨두었다.
2009년 4월의 어느날, 당옥령은 QQ로 대화를 하다가 며칠간 휴가를 맡고 그녀를 만나러 심수로 가겠다고 말했다. 장화려는 남자친구 몰래 다른 남자와 만나는것이 두렵기도했지만 신선하고 자극적이라고 느껴졌다. 당시 그녀는 하해청이 외모가 짝지지만 재주가 있다고 여겨져 그한테 시집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는 사업이 바빠서 련인절이거나 생일에 그녀를 기쁘게 해주지 못했다. 랑만적인 사랑을 갈망하던 장화려는 당옥령과 만나는데 동의했지만 약속지점은 심수가 아니라 광주로 정했다. 장화려는 하해청에게 광주에 있는 고모가 앓는다는 핑게를 대고 광주로 가서 당옥령과 만나 려관방에서 함께 사흘을 묵으면서 뜨거운 밤을 보냈다. 그후 그들은 여러번이나 만나서 불륜을 즐겼는데 그때마다 당옥령은 뜻밖의 선물을 선사하군 했다. 당옥령은 월급이 2000원밖에 안되였기때문에 심양에서 광주까지의 기차표를 사려면 아름찼다. 그래서 매번 10여일전에 특수가격비행기표를 예약하여 한달에 한번씩 광주로 날아가 장화려와 만나군 했다. 당옥령은 한번 장화려와 만나면 돈지갑이 텅텅 비기때문에 “내가 광주나 심수에 와서 품팔이를 하면 우리가 만나는데 편리하지 않겠소”라고 말했다. 장화려는 당옥령과 빈번이 만나면 하해청의 의심을 사게 될가봐 “가장 큰 행복은 먼곳에 있는 한 사람이 당신을 그리는것이란 말이 있잖아요? 난 이런 감각을 특별히 좋아해요”라고 말했다.
2009년 12월의 어느날, 장화려가 광주에서 당옥령을 만나 불륜을 즐기고 화장실에 들어갔을 때 하해청한테서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은후 장화려는 핸드폰소리를 진동으로 바꿔놓고 핸드폰을 핸드빽에 넣었다. 그런데 그녀가 다시 화장실에 갔을 때 당옥령이 그녀의 핸드폰을 받았다. 당옥령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오는것을 보고 의심이 들어 장화려가 화장실에서 나오자 방금 전화를 걸어온 남자가 누구인가고 따져물었다. 장화려는 하는수없이 사실을 털어놓았다. 장화려가 하해청이란 남자와 결혼하게 될 사이라는 말을 들은 당옥령은 화가 나서 따져물었다.
“난 당신과 인터넷으로 결혼한 사이인데 왜서 나를 배반한거요?”
“난 당신을 사랑해요. 난 정말 당신과 함께 있는 아름다운 감각을 좋아해요!”
장화려가 급히 변명하자 당옥령은 그녀의 손을 잡고 말했다.
“그럼 우리 정식으로 결혼하자구!”
“당신의 월급이 고작 2000원밖에 안되는데 그 돈으로 어떻게 살겠어요?”
한시간이나 다투게 되자 장화려는 화가 나서 “난 원래 당신과 관계를 오래도록 유지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당신이 이렇게 따지니 우리 차라리 헤여지는게 좋겠어요!”라고 말한후 그날밤으로 고속렬차를 타고 심수로 돌아갔다.
그후 당옥령은 장화려가 2010년 2월 29일에 하해청과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옥령은 사랑하는 녀인에게 버림받은 기분이 들면서 화가 솟구쳤다. 그는 심수에 가서 자기의 녀자를 빼앗아간 하해청을 혼내주겠다고 별렀다.
2010년 2월 17일 오전에 심수에 도착한 당옥령은 장화려의 핸드폰메시지(手机短信)를 보고 알았던 하해청이란 이름과 이전에 기억해두었던 화강북, 컴퓨터회사 등 관건적인 정보에 의해 복수할 목표를 찾기 시작했다. 몇시간후 하해청의 회사를 찾았지만 하해청과 장화려는 모두 그곳에 없었다. 그 회사의 직원에게 하해청의 핸드폰번호를 물었지만 알려주지 않았다. 그는 이튿날 아침 다시 찾아가서 그 회사의 직원을 보고 “나는 하해청의 친구입니다.
새박광장에서 만나 장사에 대해 상의하려고 하니 그한테 전해주십시오”라고 말하고는 슬그머니 그 자리를 떠났다.새박광장의 은밀한 곳에 숨어서 기다리던 당옥령은 장화려가 어떤 남자의 팔을 끼고 다정하게 걸어오는 모습을 보자 질투심이 북받쳐올랐다. 그는 미리 준비해두었던 비수를 품고 하해청의 뒤로 다가가서 손으로 그의 어깨를 툭 치면서 “당신이 하해청입니까?”라고 물었다. 하해청이 “네. 그런데요”하고 대답하자 당옥령은 그가 하해청이 틀림없다는것을 확인하고 비수로 그의 가슴을 사정없이 들이찔렀다. 난데없이 나타난 당옥령이 하해청을 비수로 찌르는것을 본 장화려는 깜짝 놀라 멍해졌다가 정신을 차리고 당옥령의 손에서 비수를 빼앗으려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당옥령의 손에 밀려 땅바닥에 넘어지고말았다. 그녀는 다시 일어나서 몸으로 하해청을 막아나섰다. 그 바람에 그녀의 등은 당옥령의 비수에 깊이 찔렸다. 박투중에 당옥령도 칼날에 손근육이 손상을 입었다. 그는 동관으로 도망친후 80여곳을 봉합해서야 손을 살릴수 있었다.
2010년 3월 12일에 공안부문에서는 법에 의해 당옥령을 구류했고 2010년 4월 6일에 심수시 복전구인민검찰원에서는 법원에 기소를 제기했다. 당옥령을 기다리는것은 법률의 엄한 판결이다.이 사건의 다른 한 관건적인 인물인 장화려는 비록 비호죄의 혐의가 있지만 그녀도 부상을 당했고 몸으로 칼을 막아 하해청을 보호했기때문에 검찰기관에서는 그녀에 대해 기소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치료중에 있는 하해청은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된후 슬픔에 잠겨 장화려를 보고 “당신은 도대체 나를 사랑하오? 아니면 그를 사랑하오?”라고 물었다. 그러자 장화려는 “전 당신을 더 사랑해요. 당옥령에 대해 말하면 전 그저 저한테 미친듯이 반한 그 감각이 좋았을뿐이예요. 제가 평생 함께 살고싶은 사람은 당신이예요”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정신적 육체적으로 모두 큰 상처를 입은 하해청은 장화려의 이런 황당한 해석을 받아들일수 없었다. 장화려는 눈물을 흘리면서 갓 신방으로 차려놓은 집을 떠나지 않을수 없었다.
《법제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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