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카테고리 :
나의카테고리 : 칼럼
청명을 두고 이런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춘추시대 다섯 패왕의 하나인 진문공이 젊은 시절 19년이나 망명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 후 자기 나라로 돌아온 진문공은 왕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는 왕위에 오른 날 자기를 따라다니며 뒤 시중을 들던 신하들과 친척들에게는 후한 상금을 주면서도 일편단심 자기에게 충성을 다한 개자추라는 사람에게는 그만 잊고 상금을 주지 않았습니다. 개자추는 진문공이 굶어죽게 되었을 때 자기의 허벅다리 살점을 베내여 진문공의 허기진 배를 달래준 사람입니다. 개자추는 비록 랭대를 받았지만 명리를 따지지 않고 오늘의 산서성 개휴현 동남쪽에 있는 금산이라는 곳에 은거하면서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습니다. 후에 진문공은 개자추의 모자를 찾아 금산으로 떠났습니다.
진문공이 사람들을 시켜 개자추 이름을 부르면서 산에서 내려오라고 했지만 개자추는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때 그 지방 사람들은 진문공에게 개자추는 효자이기에 산에 불을 놓으면 어머니를 업고 산에서 나올 것이라고 귀띔해 주었습니다. 진문공이 들어보니 그 말에 도리가 있는지라 신하들에게 명하여 산불을 놓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밤낮 사흘동안 불이 붙어도 전혀 소식이 없었습니다. 진문공은 하는 수 없이 또다시 사람을 보내 찾아보도록 하였습니다. 헌데 공명을 따지지 않는 개자추 모자는 산 속에서 나올 념을 하지 않고 한 버드나무 밑에서 불에 타죽었던 것입니다. 죄송스러운 생각을 가진 진문공은 개자추 모자를 금산에 안장한 후 그 산 이름을 개산으로 고쳐 영원히 기념하도록 했습니다.
전하는데 의하면 금산에 불을 놓던 그 날이 바로 24절기의 청명 전날이었다고 합니다. 그 후부터 사람들은 개자추 모자를 추모하여 해마다 청명전날이 돌아오면 불을 삼가 찬 음식을 먹었고 그들 모자의 묘에 가서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청명을 맞으면서 청명의 유래와 공명을 따지지 않는 개자추의 이야기를 떠올려 보니 다른 한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한나라 때 적공(翟公)이란 사람이 벼슬자리에 오르기 바쁘게 그를 찾아오는 사람이 문전성시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얼마 후 그가 벼슬을 그만두자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져 문 앞은 참새 잡이 그물을 쳐놓을 만큼 쓸쓸해졌다고 합니다. 그 후 그가 다시 벼슬자리에 오르자 그의 집 문턱이 다슬 지경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고 합니다.
궁지에 빠진 사람에게 자기의 허벅다리 살까지 베여주고는 궁지에 빠졌던 그 사람이 나중에 왕으로 되어 봉록을 주려고 하여도 얼굴을 내밀지 않는 개자추의 이야기로하여 남이 역경에 처했을 때 그 어떤 보상을 바라지 않고 돕는 것이 진심으로 사람을 돕는 것이라는 말이 생겨났을지도 모릅니다. 그와 반대로 벼슬자리를 보고 철새처럼 오가는 사람들을 두고 [재상집 개가 죽으면 문상객이 줄을 잇지만 재상이 죽으면 문전이 썰렁하다]는 풍자가 나왔을런지도 모릅니다.
청명절에 즈음하여 세월의 이끼가 앉은 옛이야기를 떠올려보면서 오늘의 인간상을 다시 한 번 눈여겨보게 됩니다. 권력과 부를 척도로 삼고 [재상집 개가 죽어도 문상을 가는] 그런 사람이 날로 적어지고 공명과 그 어떤 보상을 따지지 않고 역경에 처한 사람을 진심으로 도와 나서는 사람이 날로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