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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미국을 지키나> (제2편)
2012년 11월 23일 10시 25분  조회:3319  추천:0  작성자: 훈이

 미국을 납세자들이 지킨다고 하지만 미국을 방문비자나 여행비자로 드나드는 나에게는 미국을 지키는, 말하자면 파수꾼은 미국의 납세자가 아니라 미국 관문을 지키고 있는 이민관이다. 미국에 발을 들여놓으려면 꼭 두 번 이민 관원을 만나야 한다. 첫 이민 관원은 비자를 내주는 중국 주재 미국 대사관 영사부 직원이다. 미국 방문 관련 모든 서류를 준비해 가지고 비자 수수료를 낸 뒤 날짜를 받아 비자 관련 면담실에 가면 자그마한 뙤창 너머로 영사부 직원이 높이 앉아 내려다보고 있다. 그 앞에 서면 마치도 판사 앞에 나선 피고나 원고가 된 느낌이 든다.  비자 신청에 관해 지침이 많다. 우선 제출할 자료를 잘 준비해야 한다. 초청장 원본과 경제 담보서는 물론이고 비자 신청서, 본인의 신분증, 직업 증명서, 수입 증명서, 호구부, 부부 동반인 경우엔 결혼증, 부부 증명 관련 공증서외에도 명함도 지참해야 한다. 명함 지참을 특히 부탁한 사람은 2001년 비자 신청 시 유료로 신청서를 영어로 작성해 준 여성분이다. 그 당시 미국 영사관 곁에는 책상 하나를 앞에 놓고 비자 신청자들에게서 일정한 액수의 요금을 받고 자문을 제공하고 신청서를 대신 써주는 분들이 꽤나 되었다. 여러 사람들 중 우리 내외는 외모 상 수더분해 보이는 30대 중반의 여성을 택했다. 영어를 모르는 우리 내외 신청서를 대신 대필해 주면서 그 여성이 당부한 말이 명함 지참 필수였다. 사실 8분가량 진행된 면담에서 큰 은을 낸 것이 내 명함이었다. 그날 우리 내외를 맞은 면담 직원은 40대 초반의 남자직원이었다. 앉은키가 훌렁 커 보였고 이마가 많이 까졌는데 인상을 보면 그리 차지도 덥지도 않은 그런 모습이었다.

 당시 부부가 함께 비자 신청을 하면 비자가 잘 나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부부 동반이면 이민 경향이 더 짙으니까. 비자 비준 여부는 중미 관계 변수도 작용한다. 한 때 미국에선 중국 유학생들이 미국 유학 중 미국의 첨단 기술을 뽑아가는 첩자로 활약하고 있다고 언론이 떠들어댔다. 2006년 미 대사관은 여름 방학에 귀국한 중국 유학생 5백여 명에게 입국 비자를 내주지 않아 큰 물의를 빚었다. 재수 없게 그 해 북경공대를 졸업한 아들이 미국 비자를 신청하게 되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대학원의 입학통지서와 대학원 총장의 친필 서한까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대사관 면접관은 제출한 서류를 대충 보고는 5분 내로 유학 동기 불순이라는 구실로 비자 신청을 거절했다. 처음 발급받은 아들의 여권 맨 마지막 폐지에 비자 거절 표시로 면접관이 낸 동그란 구멍 하나를 내려다보면서 내가 <비자 신청 거절하면 거절한다고 말하면 됐지 하필 남의 나라 여권에 함부로 구멍을 내? 몰상식한 자식들!>하고 소리 지르자 자존심이 크게 상한 아들이 받는 말이 <나 절대 미국 안 가!>였다. 아들은 그 맹세를 행동에 옮겨 그 해 몇 달 동안 일어공부를 열심히 하고는 이듬해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우리 내외가 처음 비자를 신청한 2001년은 중미관계가 마치도 우리를 대한 면접 관원의 표정처럼 그리 덥지도 차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면담 시 금기사항이다. 비자 신청을 내본 사람들이 거론한 금기사항인데 미국 비자 신청을 하게 될 분들에게 도움이 될 가 싶어 참고로 제공한다. 미국 비자 신청 시 반드시 정장을 해야 한다. 면담직원과 마주서면 우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말을 하자. 꾀죄죄한 꼴을 보여서는 안 된다. 면접관 앞에서 비굴한 웃음을 지어서는 안 되지만 무뚝뚝하거나 거만한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된다. 미국인들은 떳떳이 쳐다보지 않으면 이상스럽게 생각하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거나 허리를 굽실거리면 혐의자로 보는 경향이 있기에 면접관의 눈을 정시하되 쏘아보거나 째려보지 말아야 한다. 조선 민족의 예의로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바로 쳐다보면 결례가 되지만 미국에선 상대방을 눈을 정시하지 않고 대화하면 상대방에 대한 무시로 된다.

 면접관이 묻는 말에 시시껄렁한 말을 늘여놓지 말고 간단명료하게 요점만 말해야 한다. 요점만 말하되 상대측이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은 삼가야 한다. 서로의 문화권이 다르기에 상대방이 이해가 갈 수 있는 말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말 한마디에 화를 부르는 경우도 종종 있다. 내 후배의 경우 말 한마디에 비자 신청이 기각되었다. 그 후배는 북경에서 사업체 몇 개를 가지고 있는 이사장이다. 투자 고찰 겸 세계 한상대회 참석차로 미국행을 택했는데 면접관이 명함을 요구했다. 후배는 명함을 몸에 지니지 않았다고 하니 면접관이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실례지만 이사장이면 한 달 노임이 얼마나 되는가 물어왔다. 미국에서도 여자 나이와 상대방의 노임 액수에 대해 묻는 것은 몰상식에 속한다. 그러나 면접관은 이런 물음을 물을 자격이 있다. 후배는 물음 자체가 너무 몰상식하다고 생각해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난 노임이 없다고 면접관의 물음을 잘랐다. 회사가 내 것인데 노임은 무슨 노임이라는 뜻도 내포된 말이다.

 미국에선 회장이라도 매달 노임을 받는다. 그런 문화권에 자란 면접관에게 노임이 없다고 하면 틀림없이 명함만 손에 들고 다니는 유령 회사 이사장으로 보일 수밖에. 하긴 지금 명함에 이사장이다 회장이다 총 경리다 제멋대로 찍어가지고 사기 행각을 펴는 유령 회사 <유령>들이 적지 않으니까. 내 후배는 그 말 한마디로 비자 신청이 기각됐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상대방이 살아온 문화적 배경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주의보로 될 사례다. 또 다음 금기 사항!  면담직원에게 거절을 당할 경우 인차 창구에서 물러서야지 그냥 붙어 서서 구구히 설명을 하지 말아야 한다. 설명 해봤댔자 들어주지 않으니까.

 구구히 설명하는 실례를 내가 직접 목격했다. 첫 비자를 신청할 때 바로 내 앞에 섰던 늙은 양주다. 보통 노인네들은 아들이나 딸이 보낸 친척 방문 초청장을 갖고 비자 신청을 한다. 노인네들의 비자는 잘 나오는 편이다. 그런데 무슨 영문인지 내 앞에 섰던 노인네는 면접관한테 <빵구>를 맞았다. 두 노인네가 겨끔내기로 설명을 한참 했지만 면접관은 두 눈을 책상에 내리 깔고 서류만 정리하고 있었다. 밖에 있던 인턴 요원이 비자가 거절당했으면 3달 후 서류 잘 챙겨가지고 오라고 했지만 노인네들은 창구에서 물러서지 않고 그냥 소귀에 경 읽기로 해명만 해댔다. 노인네들의 소귀에 경 읽기는 대사관 면접관이 짜증스런 표정으로 창구의 휘장을 내려놓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듣지 않는 설명을 구구히 하는 노인네가 딱해 보였지만 휘장을 내려버리는 면접관 또한 몰인정해 보였다. 앞에 선 사람이 <빵구>를 맞으면 재수가 없다는 말이 비자 신청자들 중에 유행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 내외가 재수 없는 사람이 돼버렸다. 은근히 노인네들 때문에 재수 옴에 붙을 가 걱정하면서 조심스레 준비 서류를 뙤창 안으로 들이 밀었다. 이것저것 서류를 뒤적이면 면접관이 지나가는 말로 명함 있으면 보여줄 수 있겠는가고 청을 들었다. 이미 준비했던 차라 나는 제꺽 내 명함을 건넸다. 중국국제방송국이란 글자가 영어로 찍힌 명함이었다. 명함을 보고나서 면접관은 내가 제출한 서류를 한 쪽으로 밀어놓으며 다른 창구에 가서 기다리라고 했다. 처음 비자를 신청한터라 그 말이 무슨 뜻인지 헤아리지 못하고 있는데 뒤에 섰던 나이 지긋한 분이 행운이군. 하면서 내 어깨를 가볍게 쳤다. 한 시간 남짓이 기다리니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다. 비자 신청 성공이었다.

비자를 받은 후 며칠 지나 한국 대사관에서 있은 파티에서 우리 내외는 생각밖에도 우리 내외 면담을 담당했던 미국 대사관 면접관을 만났다. 와인 한 잔 손에 들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 내가 비자 내줘 고맙다는 인사를 하자 그 면접관이 하는 말이 희한하다.

 <첨엔 좀 망설였습니다. 부부동반이니 이민 경향이 짙어 보였는데 명함을 보니 감을 잡을 수 있더군요.>
 면접 시 면접관은 제출 서류를 보면서 몇 분 내로 나름대로 감을 잡는다고 한다. 서류야 거의 비슷하겠지만 면접관이 받는 느낌은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면접관이 감을 잘 못 잡아 비자 신청을 거절해도 할 말이 없다.

(다음 날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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