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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음문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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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훈민정음"은 문자에 그치지 않는다 댓글:  조회:1614  추천:3  2016-04-26
"훈민정음"은 문자에 그치지 않는다                  정신철 “훈민정음”은 조선시대 제4대왕 세종(1397~1450, 재위 1418~1450)이 집현전의 진보학자들을 인솔하여 창제한 우리문자로 1443년(세종 25년)에 완성되고 1446년에 반포되였다. 훈민정음의 뜻인즉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이다. 훈민정음의 창제목적은 그 서문에서 말한바와 같이 “우리 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는 서로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바가 있어도 끝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으니라. 내가 이것을 가엾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익혀서 날마다 쓰는데 편하게 하고자 할따름이니라”고 하였다.  “훈민정음”의 창제와 반포는 우리민족 문화발전에 있어서 하나의 획기적인 거사였다. 봉건시대 통치자인 대왕이 백성들의 편리를 돕자고 문자를 창제한것은 지금에 와서도 아주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기득권층의 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창제한 우리문자임에랴.  이처럼 세계 력사상 나라왕이 백성을 위해 문자를 만든 사례가 없듯이 “훈민정음”은 단순히 문자에 그치지 않았으며 그속에는 우리문화의 독자성, 민주성과 포용성 등이 뚜렷하게 보였다.  첫째, “훈민정음”은 민족자주성의 결실이였다. 세종왕이 “훈민정음”을 창제반포할 시기 조선은 깊은 사대주의경향에 빠져있어 “모화숭화”(慕華崇華)관례에 어긋나는 일을 하기에는 아주 어려웠다. 더우기 당시 집현전 사실상 책임자였던 부제학 최만리는 상소문을 올려 우리 조정은 태조대왕때부터 지성으로 중국을 섬겨 한결같이 중국의 법제를 따라와서 지금도 글자나 풍속이 중국과 한가지인 이때에 백성에게 훈민정음을 익히게 하는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리유로 반대까지 하였다. 이와 같이 세종왕이 참여하고 지시하여 만든 “훈민정음”은 강한 민족자주성의 결실이라고 볼수 있다. 둘째, “훈민정음” 창제와 반포에는 민본주의사상이 깊이 스며져있다. “훈민정음”이전에는 복잡한 한문과 이두(한문으로 우리말을 표기하는 글체)를 사용하였는바 이는 문신들조차 알기 어려운 글이였다. 이토록 어려운 글을 생활난에 시달리는 서민들이 배운다는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였다. 따라서 량반이 아닌 백성들도 쉽게 읽고 쓸수 있도록 창제한 “훈민정음”에서 세종왕의 깊은 민본주의사상을 력력히 읽을수가 있다.  셋째, “훈민정음”은 백성들이 쉽게 익히고 편리하게 쓸수 있는 실용성이 강한 문자로 기층문화보급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 일례로 리조시기의 “서당”과 일본 도꾸가와바꾸후시기의 “데라꼬야”(寺子屋)를 비교해볼수 있다. “서당”이나 “데라꼬야”는 모두 서민교육장소이다. 당시 리조인구 1300만에 서당이 16000여개 있었고 일본은 3000만 인구에 데라꼬야가 11000여개 있었다. 여기서 보다싶이 조선은 평균 800명에 서당이 하나 있은데 비해 일본은 1700명에 데라꼬야가 하나 있었다. 다른 한면 당시 일부 지배층들은 훈민정음을 '언문'(諺文)이라고 부르면서 업신여기고 잘 사용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을 감안한다면 “훈민정음”이 서민들의 교육열에 얼마나 큰 역할을 하였는가를 보아낼수 있다. 그리고 유네스코가 문맹퇴치 공로상이름을 “세종대왕상”이라 할 정도로 “훈민정음”은 우리민족의 문맹탈퇴와 기층문화보급에 아주 크게 기여하였다.  “말은 사람의 특징”이라고 하듯이 민족언어는 민족구성의 중요한 요소이며 민족문화의 표상이기도 하다. 민족의 기층문화는 시대가 어떻게 변하든 단절되지 않고 유유히 전승되고있으므로 그 민족문화의 명맥을 이룬다. “훈민정음”은 민족문화의 명맥을 이루는 기층문화보급과 전승에 막대한 기여를 하였는바 단지 문자에 그치지 않고 그속에는 우리의 문화가 스며있다.  민족문화는 민족력사의 결실이고 민족주체성의 뿌리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언어문자는 민족문화를 이어가는 가장 중요한 고리이며 민족존립과도 련결된다. 다문화시대에 사는 우리는 자기 문화와 언어를 잘 살리면서 타문화를 리해하고 포용해야 기타 민족으로부터 존경을 받을수 있고 자아발전에도 더욱 유리할것이다. 하지만 어떤 민족이든 막론하고 자기의 주체성을 상실할 경우에는 뿌리없는 부평초와 같은 운명을 면하지 못한다. 현재 도시화와 더불어 많은 사람들이 주류사회진출을 운운하면서 민족언어를 무시하고 심지어 익숙한 민족문화마저 멀리 또는 포기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만약 이러한 경향이 깊어지면 민족 생존과 발전에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것인지는 자명한 일이다. 【정신철 략력】 직장: 중국사회과학원 민족학&인류학 연구소 전공: 민족리론, 중국민족문제 및 조선민족연구 학력: 연변대학 력사학 박사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생원 법학석사 연변대학 력사학 학사 경력: 중국사회과학원 민족연구소(현 민족학&인류학 연구소) 조리연구원, 부연구원, 연구원 한국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객좌교수(2003.8-2004-7) 한국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방문교수(2008.11—2009.4) 중앙민족대학 “985”공정 초빙 전문가(2012.1—2014.12) 겸직: 중국조선민족사학회 회장 중국사회과학원 국제이민과 해외화인연구중심 비서장 등. 주요론저: 《民族主义思潮与国族建构》(2014)、《朝鲜族》(2012)、《조선족사회의 현황과 미래》(2010)、《在日朝鲜人历史及其现状研究》(2007)《한반도와 중국 그리고 조선족》(2004)등 저서 《少数民族人口流动与城市民族关系研究》(2002)、《马克思主义的民族平等观及其实现途径》(2008)、《走向多元民族、多元文化社会的韩国现状及对策》(2010)、《辛亥革命对中国统一多民族现代国家构建的贡献》(2011)、《论新时期城市民族关系发展态势》(2013)、《论少数民族流动人口的城市适应与融入》(2014)등 130여편 론문。 출처 인민넷
7    조선족 로후문제에 대한 사색 댓글:  조회:1388  추천:1  2016-04-22
조선족 로후문제에 대한 사색 예동근 요즘 사회의 핫이슈중의 하나가 고령화이다. 중국에서 인구절벽과 인구보너스(紅利)의 소실로 두 자녀 정책의 실시, 고령화에 대비하는 사회보장제도개혁 모두 중요한 주제로 떠오르면서 관심을 받고있다. 2015년 WHO(세계보건기구)에서 발표한 중국의 평균수명은 남성은 74세, 녀성은 77세이다. 실제수명과 달리 사람들이 기대하는 수명도 1990년의 60대 중반에서 2000년에 70대로 높아졌고 2010년에는 평균 80대로 높아지고있다. 2011년에 상해지역의 평균 기대수명은 89.2세로 높이 나타났고 연변조선족들도 평균 기대수명이 80.58세로 높은 수치를 보이고있다. 그럼 우리 조선족의 고령화문제는 중국 다른 민족의 고령화문제와 비교할 때 어떤 특수성을 띠고있는가? 우선 비교적 특수한 1945-1955년에 출생한 세대에 관심을 두고싶다. 이 세대는 조선족인구의 증가에 거대한 공헌을 하였고 또한 조선족 고령사회진입의 속도를 늦추는 중요한 집단이기때문이다. 이 세대는 평균 2자녀 이상을 출산하였고 낮은 영아사망률과 중국의 평균적인 양육환경, 전쟁이 없는 평화적인 환경에서 조선족인구의 증가는 물론 높은 교육열로 조선족의 인구질제고에도 엄청난 공헌을 하였다. 하지만 현재 안타까운것은 이 세대의 높은 사망률이다. 이 세대는 지금 고령화에 진입하는 주축이지만 90년대 산업화-인구이동 과정에서 “산업전쟁”의 가장 큰 피해를 본 집단이다. 우리가 유심히 이 세대집단의 소학교, 중학교 동창모임을 관찰하면 쉽사리 이 세대의 많은 사람들이 다른 세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빠른 속도로 사망하고있다는 아픈 현실을 발견할수 있다. 이 세대의 대다수는 문화대혁명 등 원인으로 높은 학력을 갖추지 못한 반면 농촌을 지키는 파수군으로 전통문화를 가장 많이 보유한 집단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자녀세대들의 활발한 도시진출로 도농격차가 지역을 넘어 세대간의 문화격차로 나타났고 전에 자신이 겪은 고부갈등 등과는 다른 양상의 가족갈등을 겪고있다. 대표적인것이 “손자보다 일을 선택”하는것이다. 조선족의 전통문화에서 손자, 손녀와 함께 있는것을 천륜을 누린다고 하지만 지금은 자신이 돈을 벌어 용돈을 주는것을 낫게 생각하고 자식들과 같이 한집에서 살기 싫어하는쪽으로 의식이 많이 기울어지고있다. 이런 가족관념과 가족의 변화, 로동시장에서 퇴출하고싶지만 로후와 자녀를 위해 계속 일을 하는 이 세대집단은 “초불처럼 자신의 모든것을 태워 자녀에게 주는” 마지막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 이 세대는 도시문화에 아직 익숙하지 않지만 농촌으로 다시 돌아가려 하지 않으며 자녀와 함께 한집안에서 살기도 싫어하지만 가족을 위해 일에 파묻혀있는 집단이다. 이들이 어떻게 로후에 대비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자신들의 건강을 지켜야 하는지? 어떻게 자녀들과 소통을 해야 하는지? 이 모든면에서 새로운 경험과 지식이 필요한 시점에 와있다. 또한 조선족연구자들도 이 세대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갖고 연구해야 하며 조선어 언론과 매체도 깊은 관심을 갖고 심층보도를 통해 사회적관심을 일으켜야 한다. 이 세대에 깊은 관심을 돌려주는것이 조선족사회의 커뮤니티를 다시 활성화시키는 첫 발자국이 아닐가 생각된다. [예동근 략력] 성명: 예동근(芮東根)  소속: 한국 부경대학교 국제지역학부 중국학전공 전공: 사회학, 조선족문제 학력: 한국 고려대학 사회학과 문학 박사 중앙민족대학 민족학리론 법학 석사 연변대학 중문학부 문학 학사 경력: 한국 국립대학교 국제지역학부 조교수를 거처 현재 부교수 미국 UCSD 이민비교정책연구소 방문교수(2015.2 - 현재) 한국 고려대학 아세아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009.9-2010.2) 겸직: 한국사회학회, 동북아문화학회, 재외한인학회, 대한중국학회, 국제지역연구학회, 한국공공사회학회, 일본 조선족연구학회등 여러 학회의 국제이사, 편집이사를 겸임. 주요 론저: 공저로는《차이나 핸드북》(2014, 한국, 김영사)、《조선족 3세들의 서울이야기》(2011, 서울, 백산서당)、《조선족의 국제이주와 네트워크》(2006, 일본, 아시아경제문화연구소)등, 역서로는 《마르크스철학에서 유철학으로》(2015, 한국, 백산서당). 《The Cultural Theory of Laurel Forest and Japanese Scholars’ Culture Researching to Southwest China Minority》(2014)、《Will the American Model Be the Future of Ethnic Minority in China?: A Case Study of Korean Chinese Community in Beijing》(2014))、《From rural to urban areas: On the formation of Korean-Chinese enterprises》(2013)、《Acclimation and Multiethnic relationships of chaoxianzu community in the process of urbanization》(2012)、《한국의 지역 다문화공간에 대한 비판적 접근》(2011) 등 다수 론문을 국내외 학술지에 발표.
대청제국의 근대적 앎은 너무 혹독하고 굴곡적이였습니다. 새로운 식민지를 찾아나섰던 서양렬강부터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저 했던 유럽 자본가, 프레스터 존을 찾아 떠났던 종교인까지, 어느 순간부터 이들은 지구 반대편의 이 거대한 뭍을 거저 먹어도 체하지 않는 떡으로 보기 시작했던것 같았습니다. 심지어 양놈 코스프레라고 비웃음의 대상이였던 섬나라 왜구조차 이곳에 진입하여 빠가야로를 열창하고있었으니 말입니다.    두만강, 압록강, 송화강 등 자연의 경계는 태평양 서안에서의 패권을 위해 극동지역까지 팽창한 제정로씨야, 칙칙한 아시아에서 벗어나 구라파적 삶을 추구하고저 안달이 난 일본, 아무리 비실거려도 굶어 죽은 락타는 말보다 크다고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고저 했던 청, 마냥 고요할수 없어 무언가라도 하고저 했으나 그 소박한 념원마저 요절된 조선 등의 문명적 충돌과 절충의 내용을 고스란히 간직한 대하드라마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드라마의 프롤로그인 장백산에 갈 때마다 온천속의 닭알에게까지 경의를 표하고싶은 충동이 단전부터 인중까지 빛의 속도로 상승하군 합니다.    어찌 되였거나 1800년대말~1900년대 초 전혀 균형적이지 않았던 정치경제질서의 각축구조, 이 구조와의 타협, 충돌 속에서 중국조선족의 “근대성”이 잉태했던것 같습니다. 이 “근대성”은 이후 1900대 전반을 휩쓴 지속적인 이데올로기각축을 통해 때로는 물리적이고 문화적인 폭력을 통해 오늘날의 양태로 재구성을 거듭하고있었던것입니다.    이른바 중국조선족의 “력사적기원”은 설움과 한으로 맺힌 이주와 논농사 중심으로 묘사되는것으로 보여집니다. 동북지역의 주요 하천을 따라 이주한 조선인이 기능적으로 익숙한 농업경제를 구성함으로써 논의 북방한계선을 높이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것이지요. 나아가 이 농업경제에 기반한 계급관계는 이후 사회혁명의 토대가 되여 신중국의 건국력사에 중국조선족의 이름을 당당하게 새겨넣는데 실천적, 론리적 근거를 제공하게 됩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이런 력사적경험 못지 않게 중국조선족의 근대를 설명하는 중요한 척도가 더 있는듯 합니다.   “룡정촌은 빠르게 발전하고있으며, 중국의 조약항보다는 미국 중서부의 프레리거주지 같아 보인다. 건축업자의 비계(脚手架)와 외양이 단조로운 외국건물들이 조선인거주자의 진흙움막 사이로 솟아오르고있다.”   페리 앤더슨이 《현대사상의 스펙트럼》(p531) 말미에서 언급한, 1925년 8월 4일자 부친의 일기중 일부입니다. 하나 더 있습니다.   “1932년에 남편이 카나다에서 돌아왔다. 얼마뒤에는 룡정중앙교회 목사로 부임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룡정에 완전히 뿌리를 내리게 되였다. 룡정에서는 중앙교회와 동산교회가 가장 중심적인 교회였다. 룡정교회가 잘 된 리유중 하나는 상업지대에 있었기때문에 장사를 하는 이들이 많아서 돈도 많았기때문이다.”    문재린과 김신묵 회고록 《기린갑이와 고만녜의 꿈》(p486)의 일부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도시입니다. 물리적인 경계에 근거한 공간적,지리적 령역과 상공업이 결합되였을 때 이를 도시라고 하듯이 도시는 상공업의 장이고 근대사회 그 자체입니다. 도시는 단일한 부류의 사람을 분화시키는 강제력이 있고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수 있게 하는 포용력이 있습니다.   이주해온 많은 조선인들이 광활한 수전과 한전을 개척할 때, 그들에 의해 생산된 재화는 상업과 공업을 통해 상품이 되였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속에서 이 상품화의 과정을 어떻게 조작하면 리윤을 극대화할수 있을지 생각하는 사람들과 리윤이 극대화되는 과정에 자신의 로동에 대한 보상이 합리적으로 이루어지는지 생각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들을 어떻게 효률적으로 관리할수 있을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나뉘기 시작했을것입니다. 왜냐하면 도시의 제도를 결정하는 구조는 너무나 력동적으로 변하고있었기때문에 도시를 구성하고있는 인구가 단일한 수준으로 남아있기 쉽지 않았을것입니다.    더 광활한 동북대지로 가보겠습니다.   유럽의 한복판에 세워진 높이 300메터의 철탑이 여기가 근대 자유주의중심이라고 오만함을 뽐낼 때, 더 무지막지한 규모의 Fe원소는 제정로씨야에 의해 유라시아대륙을 관통하는 철도로 조직됩니다.    제정로씨야는 중동철도의 첫 삽을 1897년 8월 29일, 현재 조선족인구가 약 40%인 흑룡강성 동녕현 삼차구진에서 뜹니다. 1901년 3월 3일까지 할빈에서 수분하 구간의 동부간선 빈수선, 같은 해 11월 3일 할빈부터 만주리까지 서간선 빈주선이 완공되고 1902년 11월 할빈부터 려순까지 남부지선이 완공되였습니다. 그리고 그뒤의 30여년 동안 동북지역에는 거미줄같은 철도망이 구축됩니다. 연변지역에 부설된 철도는 일제가 패망하기 몇해전에 부설되였습니다. 광활한 동북평원의 그윽한 풀내음은 철도의 향연으로 전도되기 시작했습니다.   철도가 부설되면서 연선에는 일련의 도시들이 출현합니다. 제국주의침탈의 구체적 반영이 철도라는 점, 그리고 이 도시는 철도를 통해 근대를 경험했다는 점 등은 부정할수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흔히 표현하는 산재지구의 중국조선족은 바로 이 철도 연선에 출현한 도시와 이 도시의 근교에 분포된 농촌에서 한족, 만족, 몽골족 등 민족과 함께 거주하고있었습니다. 또한 동북 주요 4개 도시의 조선족은 철도역을 중심으로 한 부속지와 상부지에서 여러 민족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증기기관과 《국부론》의 대화가 1900년대 초 중국 동북지역 조선(족)인사회에서도 들리기 시작했던것입니다.    도시문명에 대한 묘사 없이 중국조선족의 근대는 설명 가능할가요. 상업화된 농업, 이식된 공업 등 난해한 낱말은 제쳐두고 중국조선족인구가 내면화한 근대적내용을 도시에 기초하여 생각해볼수는 없을가요.   오늘날 중국조선족의 문화는 벼와, 한복과, 물동이와, 김치와, 장독 등에서만 배태되고 정형화된 “특수한것”만이 아니라 동서양의 문물과 사상의 융합, 변형, 경쟁 속에서 재생산되고 재구성되는 “보편적인것”도 포함합니다. 중국조선족의 “근대성”은 이주, 지주-소작농-자작농의 관계와 함께 장마당(시장), 기업(공장), 금융(은행), 교육(학교), 종교(교회), 의료(병원), 교통(도로), 출판(도서), 정보(우정), 국가(정부), 사법(법원) 등 다양한 제도와 조직이 어우러진 도시에 대한 설명과 묘사를 필요로 합니다.    100년전 중국 동북지역에서 살았던 선인들은 치렬하게 “근대적인간”으로 살고저 했을것입니다. 그들에게는 랑만이 있었을것입니다. 그들의 노력과 랑만을 재구성하고 재해석할수 있는, 아니, 그렇게 해야 하는 시대가 온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런 시도가 오늘날 중국조선족사회의 변화를 더욱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지도 모릅니다.  【박우 략력】   성명: 박우(朴佑)    소속: 한국 한성대학 교양교직학부 전공: 이민사회학, 정치사회학, 동아시아 이주와 시민권 문제, 한국의 조선족 사회 학력: 한국 서울대학 박사과정 수료         한국 서울대학 사회학 석사         연변대학 식품공학 학사 경력: 한국 한성대학 교양교직학부 전임강사를 거쳐 현재 조교수.  주요 론저: 편저로는《우리가 만난 한국(2012, 한국, 북코리아)、역서로는 《한국과 중국의 사회변동 비교연구》(2013, 한국, 나남), 《중국 동북지역 도시사 연구》(2016, 한국, 진인진)등.
인구고령화의 위기와 그 출로 리천국 요즘 동북지역에 가면 작은 도시나 농촌에서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고있는 모습을 느낄수 있다. 소학교부터 초중, 고중까지 학생수가 현저하게 감소되고있고 농촌의 많은 학교는 이미 문을 닫았거나 페교의 직전까지 다달으고있다.  오래동안 우리 나라는 세계인구대국으로 불리우며 수많은 농촌유휴로동력을 보유하고있다고 자처하였으나 이제 이런 상황에 슬슬 변화가 오기 시작한것이다. 중국이 얼마만큼의 농촌로동력인구를 보유하고있는지에 대하여 정확한 통계는 사실 힘들다. 중국통계년감에 의하면 농업인구가 3억명 정도 된다고 하지만 실제 로동에 참여하고있는 인구는 이보다도 적을것으로 사료된다.  20세기90년대 우리 나라 국유기업개혁과 더불어 로동력시장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였고 취업도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더는 국유기업이나 집체기업이 주된 형식이 아닌 규모가 방대한 비정규형태의 취업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농촌로동력이 농업으로부터 해방되면서 비농업부문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1억명이 넘는 농촌인구가 도시로 진출하였다. 이러한 취업방식은 공식적인 통계에 반영되기 어려웠고 학자들은 통계년감의 수치에 근거하여 그 로동력수자에 대하여 추측을 할뿐이였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로동력난현상이 나타나면서 로동력문제의 심각성에 대하여 느끼기 시작하였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루이스는 한 국가가 공업화를 실현하는 과정에 농촌유휴로동력은 비농업부문으로 점차 전이하게 되며 나중에는 로동력의 과잉에서 로동력부족에로 이르는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는데 이를 루이스변곡점이라고 불렀다. 루이스변곡점에 도달하게 되면 로동력공급이 적어지면서 로동력의 임금이 상승하게 되고 이로 인하여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국가의 경쟁력이 감퇴하게 된다.  루이스의 리론에 의하면 한 국가가 공업화를 실현하는 과정에 세가지 단계를 거치게 되는데 “고출산, 고사망, 저성장”단계, “고출산, 저사망, 고성장”단계와 “저출산, 저사망과 저성장”단계로 나뉠수 있다고 한다. 현재 많은 발달국들은 이미 인구구조전환을 완성하였고 인구 고령화사회에 진입하였으며 우리 나라도 이제 세번째 단계로 진입하고있다. 인구구조가 가장 생산적이고 효율적일 때에는 충족한 로동력공급과 고저축률은 경제성장에 큰 동력을 제공하여주는데 이를 경제학에서는 인구보너스라고 부른다. 하지만 인구구조가 고령화로 인하여 더는 생산적이지 않을 때에는 인구보너스가 상실되며 이는 경제성장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우리 나라는 1978년 개혁개방을 실시한 뒤로부터 30여년동안 년평균 9% 되는 고성장률을 이룩하였다. 장기간의 고성장으로 하여 사람들은 높은 성장률에 익숙하게 되였고 따라서 최근에 나타난 경제성장속도의 감퇴에 대하여 받아들이기 어려워하고있다. 하지만 경제학적으로 볼 때 이는 중국경제가 루이스변환점을 맞이하면서 인구보너스가 소실되는 시점에 도달하였기에 의아할바가 아니다.  30년간 우리 나라는 세계 최대의 인구를 가진 국가로서 인구증가속도를 줄이기 위해 갖은 방법을 실시하여왔다. 한 가정에서 한명의 아이를 가지는것을 제창하는 산아제한정책은 정부가 항상 강조하여온 기본국책의 하나였다. 하지만 중국사회가 서서히 인구고령화사회에 진입하면서 이젠 더는 예전과 똑같은 산아제한정책을 견지할수가 없게 되였다.  우리 나라의 현재 출산률은 80년대의 23‰로부터 이젠 12.1‰로 하락하여 심지어는 많은 발달국보다도 출산률이 낮은 저출산국가로 변하였다. 세계은행의 통계에 의하면 미국의 출산률은 13‰이고 말레이시아나 윁남의 출산률도 18‰과 16‰에 달한다고 한다. 출산률의 하락은 우리 나라의 15세부터 64세 사이의 인구를 급격히 하락시켰으며 이는 전사회의 로동가능인구수를 줄였다.  사회로동력의 급격한 감소때문에 우리 나라도 일부 발달국이 겪어온 인력난에 시달리게 될수 있고 부족한 로동력으로 인하여 높은 경제성장을 지속적으로 이룩하기 어렵게 될수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여 우리 나라는 2016년부터 “한 가구 한 자녀” 정책을 페지하고 “한 가구 두 자녀”출산을 허용하게 되였다. 하지만 산아제한정책을 완화한 효과가 얼마나 클지 현재로서는 장담하기 어렵다. 장기간의 엄격한 산아제한정책은 사람들의 관념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높은 양육비용과 교육비용 등은 부모들의 출산의지를 떨어뜨렸다. 이러한 현상은 정부가 이젠 오히려 점차 출산장려정책을 고민해야 할 시기가 되지 않았냐는 의문을 가지게 한다. 물론 산아제한정책에 대한 완화는 여러면에서 사회에 영향을 미칠것으로 사료된다. 이는 우리 나라의 소비시장, 교육시장, 심지어 부동산시장과 주식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현재로서는 중국의 로동력감소와 고령화사회로의 진입을 이런 정책으로 피하기는 어려울것이다.  고령화사회에 직면하여 정부가 해야 할 우선 과제는 자본시장 등을 통하여 사회복지자금을 지속적으로 확보할수 있는 선순환의 사회복지제도를 마련하고 의료개혁과 교육제도개혁에 힘을 쓰는것이다. 그리고 퇴직년령을 늦추는것도 또 다른 하나의 방법이라고 할수 있다. 물론 퇴직년령을 연장하기전에 퇴직년령이 다가온 로동자들의 생활수준도 고려해야 할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것은 우리 나라 경제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하여 경제적구조를 변환하고 기술혁신을 권장하며 적은 로동력으로 높은 생산을 이룩할수 있게끔 로동생산성을 높이는것이라고 할수 있겠다. 우리 사회의 매 성원은 현재 사회가 직면한 고령화현상에 대해 바른 인식을 가지고 보다 나은 삶을 위하여 적극적인 대응을 할 때가 되지 않았나싶다. [리천국 략력] 성명: 리천국(李天國)  소속: 중국사회과학원 아시아태평양&글로벌전략연구원 전공: 신흥국경제, 한국과 조선 경제, 중국거시경제 등 학력: 한국 서울대학 경제학 박사 연변대학 경제학 석사 연변대학 경제학 학사 경력: 연변대학 경제관리학원 강사, 한국 서울대학 경제학과 박사후 연구원을 거쳐 현재 중국사회과학원 아시아태평양&글로벌전략연구원 조리연구원. 주요 론저:  2008년 《키움과 나눔을 넘어서—한국경제의 미래설계》 (정덕구 저, 21세기북스, 2006년)를 공동 번역, 2005년 《대두만강지역개발》 부주필, 《新兴经济体蓝皮书: 金砖国家发展报告2014》,《印度洋地区蓝皮书: 印度洋地区发展报告2014》 등 집필에 참여. 《经济管理》, 《经济理论与经济管理》,《经济地理》,《人口学刊》 등 국내외 학술지에 30여 편의 경제학 논문을 발표. 이 외에 《경제일보》(经济日报), 《상해증권보》(上海证券报) 등 신문에 경제학 관려 문장을 다수 발표. 출처 인민넷 2016-3-7
4    경계의 창조력 (박광성 중앙민족대학 민족학&사회학학원) 댓글:  조회:1204  추천:1  2016-04-07
경계의 창조력 박광성 금년 1월 28일, 미국 할리우드의 한 영화제작사가 제작한 영화 “쿵푸팬더3”(功夫熊猫3)이 세계 각국에서 동시 개봉되여 선풍적인기를 불러일으켰다. 중국만 보더라도 개봉 당일의 티캣판매액수만 1.04억원에 달해 그 인기를 실감케 하였다. 쿵푸팬더 영화계렬은 중국적인 문화소재를 미국식 가치관으로 해석한 작품으로 볼수 있다. 이번에 개봉된 3집만 보아도 미국식의 사람을 기죽이는 거대한 장면 스케일과 강대한 악마에 맞서서 공동체를 구원해내는 미국식 영웅주의가치관으로 참대곰, 무술, 기공, 룡, 거북, 만두, 초롱불, 제기차기, 삿갓 등 중국의 문화적소재를 표현해냈다. 이러한 문화적경계를 허문 합성으로 동서양의 관객들로 하여금 문화적익숙함에서 오는 식상함을 잊게 하여 새로운 재미를 제공했을뿐더러 기타 문화권의 관중들에게는 동서양의 문화적요소를 동시에 느낄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줌으로써 한편의 영화가 세계적인 선풍적인 인기를 끌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경계의 창조력”이다. 만약 경계가 “물리적속성”을 띤다면 서로 부딪치여 불꽃을 튕길수 있지만 “화학적속성”을 띤다면 상호작용속에서 “화학반응”이 일어나 새로운 물질을 생성할수 있다. 이러한 물질이 바로 창조의 꽃이고 이것이 우리들의 생활을 날로 풍요롭게 만든다. 따라서 “물리적경계”를 “화학적경계”로 전환해나가는것이 오늘날 인류역사발전의 추세로 되여가고있다. 경계의 창조력은 비단 “쿵푸팬더”에서만 나타난것이 아니다. 2014년 세계를 강타한 한국가수 싸이가 부른 노래 “강남스타일” 또한 그 힘을 증명해준다. 동영상사이트 유트브를 통하여 몇십억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세계 방방곡곡에서 울려퍼진 이 노래는 제목부터 결합식이다. “강남”이라는 한국식 표현과 “스타일”이라는 영어식 표현이 결합된것이다. 이 노래는 한국가수가 한국어로 불렀을뿐이지 음악동영상을 보면 춤과 제스처 거의가 서양식이다. 말춤만 보아도 승마운동 등 말과 련관된 문화는 현재 서양이 동양보다 훨씬 발전되여있어 그쪽에서 계발받았을 가능성이 더욱 크다. 이런 의미에서 “강남스타일”은 미국이 “쿵푸팬더”를 통하여 중국의 문화를 표현했듯이 한국인이 재해석한 서양의 문화로 볼수 있다. 이러한 경계를 허문 재해석이 문화적가치를 배가시켜주고있는것이다. 또 하나의 실례를 들면, “라면”은 일본의 대표적인 국민음식이다. 해외에 있는 일본인들이 귀국하면 제일 먹고싶은 음식으로 라면을 찍을 정도로 라면은 일본에서 인기있는 식품이다. 그러나 라면은 전통적인 일본음식이 아니고 도꾸가와막부시기에 중국에서 전해졌으며 메이지유신후에 퍼지기 시작하였다. 중국에서 류입된 라면은 일본의 조미료와 조리법에 의해 일본인들의 구미에 맞는 일본식 라면으로 개조되였으며 현재 이 일본식 라면은 일본뿐만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무수히 복제생산되여 명실공히 세계적인 대중적음식으로 자리를 잡고있다. 미국의 한 인류학자는 일본식 라면이 세계적으로 환영받고있는 원인을 쉽게 다른 나라의 식문화와 결합될수 있는데서 찾고있다.  인류사회의 거대한 성취는 거의가 창조력에서 기인되여왔으며 따라서 오늘날 인류는 창조력에 목말라있다. 그러나 창조력은 하늘에서 떨어지는것이 아니다. 기존에 창조력을 길러내던 메커니즘들이 점차 활기를 소진해가면서 최근에는 그 원천을 각종 경계에서 찾고있는 사조가 일고있다.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일어나는 “화학적반응”의 힘에 주목하고있는것이다. 우에서 지적한 사례들은 바로 그러한 힘을 보여주는것들이다.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그 사이에서 상호 융합되는 콘텐츠가 생산되려면 그 사이에서 매개작용을 할수 있는 력량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쿵푸팬더3”의 감독중 한사람은 동서양의 문화를 두루 섭렵할수 있는 한국계 미국인이며, 가수 싸이는 미국의 버클리음대에서 음악교육을 받은 재원으로 서양음악에 익숙한 한국인이며, 라면은 명나라에서 망명한 중국 유학자밑에서 수학한 일본의 한 다이묘에 의하여 일본에서 퍼지기 시작하였다. 만약에 이러한 문화적경계를 넘나들수 있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진 “작품”들이 탄생못하였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경계를 새로운 창조력의 원천으로 보는 오늘날에 있어서 경계사이에 끼인 집단은 매우 소중한 존재로 된다. 경계가 “물리적속성”을 띨 때 그 중간에 끼인 집단은 괴로운 처지에 놓이기 쉽지만 오늘날과 같이 글로벌화로 인해 경계가 무너지면서 “화학적속성”을 띨 때에는 그 집단이 가장 창조적인 집단으로 부상할수 있기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조선족이 바로 이러한 위치에 있다. 그간에 이동을 통하여 조선족은 글로벌환경하에서 다면적인 경계 사이로 포지션을 옮겨왔다. 각종 경계 사이에서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있는 작금의 현실은 조선족에게 그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내용물을 합성해낼수 있는 천혜의 기회와 사명을 제공해주고있다. 보석도 그 가치를 알아내지 못하면 주추돌로 쓰일수 있듯이 조선족도 자신의 “보석”과 같은 존재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주추돌”로 쓰여버릴수 있다. 창조력이 곧 재부인 시대이다. “경계의 창조력”–이는 이 시대를 살고있는 조선족에게 더욱 큰 세상과 만나게 할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가져다주는 귀중한 힘의 원천으로 우리는 이를 깊이깊이 자각하면서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활용할 필요가 있다.  [박광성 략력] 성명: 박광성(朴光星)  소속: 중앙민족대학 민족학&사회학학원  전공: 사회학리론, 인구이동과 도시화, 경제글로벌화와 초국경 인구이동, 조선족문제. 강의: 서방사회학리론, 서방사회사상사, 사회학개론 등 과목 학력: 한국 서울대학 사회학과 박사 한국 서울대학 사회학과 석사 연변대학 민족연구소 석사 연변대학 력사학 학사 경력: 중앙민족대학 민족학&사회학학원 강사를 거쳐 현재 부교수, 석사생 지도교수.  2012年“教育部新世纪优秀人才”资助项目获得者. 겸직: 중국조선민족사학회 상무리사 겸 부비서장 中国社会学会 环境社会学分会 理事 北京市社会学会 理事 韩国《海外韩人研究》 国外编辑委员 주요 론저:  저서로는《全球化时代中国朝鲜族的劳动力流动及其社会变迁》(2008, 韩国, 学术信息出版社), 공저로는《1990年代中国朝鲜族社会的变迁》(2006, 韩国, 首尔大学出版社) 등 . 이 외에 국내외 학술지에 10여 편 이상의 론문을 발표. 출처 인민넷
3    된장과 우리의 삶 댓글:  조회:1367  추천:3  2016-04-05
된장과 우리의 삶 권진홍 가끔 학생들에게 한국음식 하면 무엇이 떠오르냐고 물어본다. 그러면 학생들은 거의 모두가 불고기, 떡볶이, 김치 등을 꼽는다. 그뒤에 따르는것은 비빔밥, 김밥, 해물파전... 등등이다. 한류의 영향으로 중국사람들은 한국 드라마, 스타, 오락프로에 열광할뿐만아니라 우리 민족 음식에도 관심이 많아졌다. 허나 정작 제일로 꼽아야 할, 우리 민족의 음식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된장은 생각하지 못한다. 아마도 된장찌개는 먹어봤지만 된장 실체는 불고기나 떡볶이처럼 젓가락으로 집어서 먹어보지 못하여 이미지각인이 되지 않은 탓이리라. 그럴 때마다 나는 우리 민족 음식중에서 으뜸으로 꼽아야 할것은 뭐니뭐니해도 된장이라고 말해준다. 또한 내가 평소 먹는 음식중에서도 된장은 제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기도 한다. 세월이 흐를수록 된장과 김치의 중요함과 소중함을 유독 깊게 느끼고있다. 시장 볼 시간이 없어도 집에 김치와 된장만 있으면 걱정이 없다. 이 두가지를 조합한다든가 아니면 집에 있는 아무 음식에나 된장과 김치만 곁들이면 다 별미가 된다. 보신탕에도, 양고기료리에도, 족발에도 된장은 좋은 양념이 되고 소꼬리곰탕에도, 사골국에도 된장은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조미료작용을 한다. 이처럼 된장은 마술사 같은 료리재료이다.  우리 민족 모두가 하나같이 좋아하는 된장, 이 된장에는 우리 민족의 삶을 대변하는 오덕(五德)이 있다.  첫째는 단심(丹心), 다른 음식과 섞여도 결코 자기 맛을 잃지 않는 덕을 말한다.  둘째는 항심(恒心),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다는것이다. 오히려 더욱 깊은 맛을 낸다.  셋째는 불심(佛心), 된장은 비린 맛과 기름기를 없애준다. 불가(佛家)에서 멀리하는것을 없애주기에 불심이라 한다. 넷째는 선심(善心), 된장은 매운 맛, 독한 맛을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맵고 독한 맛을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된장의 덕을 선심이라 한다. 다섯째는 화심(和心), 된장은 어떤 음식과도 조화를 이룰줄 안다. 어떤것과 어울려도 조화를 이루어낼줄 아는 덕을 화심이라 한다. 된장의 오덕을 보면서 우리 민족 자체가 “된장삶”을 살고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오래전에 중국으로 이주하여 온 우리 민족은 벌써 중국이라는 땅에서 150여년을 살아왔다. 이중에는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고 생존을 위하여 건너온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독립운동에 투신하여온 분들도 있고, 또 강제이민으로 끌려와서 정착한 사람들도 많다. 중국에 들어온 리유, 경로는 서로가 다르겠지만 중국에서 우리는 하나의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어 다른 민족과 화합하면서 중화민족대가정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해왔다. 나는 이 과정을 콩을 삶아 메주를 만드는 과정에다 비유해보고싶다. 한알한알의 콩알이 한 가마솥에서 삶아지고 그것이 다시 어우러져 한덩이한덩이의 메주로 되고 메주가 다시 장독에서 어우러져 맛있는 된장을 만들어낸다. 이처럼 우리는 된장의 화심(和心)처럼 다양한 문화속에서 조화를 이루며 살아왔다. 하지만 경제가 발전하고 생활환경이 우월해진 지금, 우리의 원래의 공동체는 해체되고있다. 《례기》에 “만물은 ‘천’에 근본하고 인간은 조상에 근본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조상이 남겨준 우리의 언어, 우리의 관습, 우리의 례의, 우리의 문화를 점점 잊어가고있고 잊혀져가는것에도 무관심하다. 우리가 단심(丹心)을 잃어가면서 우리의 공동체가 완전히 와해되는것은 아닐가 많은 사람들이 염려하고있다. 된장은 숙성시키는 과정에 그속에 무엇을 넣어도 제 맛을 잃지 않는다. 오히려 첨가물들의 비리거나 매운 맛들은 선심으로, 불심으로 제거해주고 부드럽게 해주며 좋은 맛들은 품어서 맛을 한층 돋구어준다. 풋고추를 넣어도, 생선을 넣어도, 오이를 넣어도, 고기를 넣어도 된장은 그것들때문에 맛이 변하기는커녕 본연의 맛을 지키면서 오히려 더 아름다운 맛을 낸다. 이처럼 우리도 화합하여 살면서도 우리만의 특색(언어, 문화 등)을 살려가는 단심(丹心)이 필요하다. 된장의 항심(恒心)은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다는것이다. 오히려 세월이 더할수록 더욱 깊은 맛을 낸다(그래서 3년전부터 나는 해마다 된장을 조금씩 남겨 따로 건사해두는 습관이 생겼다. 10년 후의 맛이 너무 궁금하다). 우리의 원래의 공동체가 해체되는데는 많은 리유가 있겠지만 가장 본질적인것이라면 보다 더 우월한 물질적생활을 추구하는것을 꼽을수 있겠다. 더 풍요롭고 우월한 환경을 추구한것 그 자체는 나무랄것이 없다. 오히려 옛보금터에서 가난속에 웅크리고있지 않고 보다 과감하게 경쟁의 세계에 뛰여든것에 대해 갈채를 보내고싶다. 다만, 무한한 경쟁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리유로, 이겨야 한다는 핑계로 자신을 망각하고 자신을 잃어가고있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것이 가슴아플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점은 완전해체의 위기에서 우리 스스로를 되찾으려는이들이 힘을 모으고있다는것이다.나다와지고 우리다와지는것이 더 경쟁력을 갖춘 사람으로 되는 길이라는것을 발견했던것일가…  된장맛을 결정하는것은 바로 메주이다. 메주를 띄우다보면 그 과정과 정도가 아주 중요한데 늘 좋은 향만 나는것은 아니다. 가끔은 악취같은 냄새를 풍기기도 한다. 그래서 정성껏 손을 봐줘야 한다. 곰팡이가 피지 않을가봐, 또 곰팡이가 너무 많이 필가봐 항상 걱정이다. 오직 메주가 잘 뜨고 된장이 잘 숙성되여야만 고소한 된장맛을 낼 수 있다.  메주도 된장도 숙성과정이 필요하듯이 우리도 숙성과정이 필요하나보다. 알맞춤하게 잘 발효된 메주가 고소한 된장을 만들어내고 잘 숙성된 된장이 깊은 맛을 낼수 있듯이 어려운 환경에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잘 틀어놓은 우리도 정성껏 가꾸면 또 새로운 문화의 꽃을 피우는데서 저력을 발휘할수 있을것이라 믿는다. 된장의 단심, 항심으로 언제 어디서든지 우리를 찾고 아끼는 민족, 된장의 화심(和心)으로 이 땅의 모든 사람, 모든 민족과 화합하고 어우러지는 민족, 된장의 선심(善心)으로 뽀족한 가시를 뽑고 날카로움을 부드러움으로 어루만져주는 민족, 된장의 불심(佛心)으로 비린 맛을 제거해주는 민족으로 거듭나는것, 이것이 된장이 우리의 삶에 주는 계시리라. [권진홍 략력] 소속: 북경련합대학 관광학원 전공: 조선어학 학력: 연변대학 조문학부 문학 학사 연변대학 조문학부 문학 석사 연변대학 조선-한국학원 문학 박사 경력: 북경련합대학 관광학원 부교수 (2007.7 – 현재) 인민넷 2016-2-22  
2    피를 물려주고 말도 물려주리 댓글:  조회:1223  추천:1  2016-03-30
병신년(丙申年) 정월에 우리 가족은 새 생명을 맞이하게 된다. 곧 아빠가 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참으로 묘하다. 신생아에 대한 기대감으로 한편 기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알수 없는 긴장감으로 살짝 떨리기도 하다. 집사람의 임신소식을 접한 순간부터 내 피를 물려받은 아기에 대한 아름다운 상상이 머리속에서 맴돈다. 그러던 어느날 내 머리속에 문득 스쳐지나는 생각! 북경에서 태여나게 될 내 자식은 앞으로 우리 말을 할수 있을가? 지난세기 50-60년대 또는 70-80년대에 대도시에 터전을 마련한 조선족의 1세대, 2세대 엘리트들이 가장 가슴아파한 일이 바로 자식들이 우리 말을 못한다는것이였다. 우리 말을 못하니 자연히 우리 문화와도 멀어지게 되였다는것이다. 조선족의 모어는 둘! 모어(母语)란 어머니의 말이란 뜻으로 자기 민족어를 가리킬뿐아니라 어릴 때부터 접하면서 배우는 하나 또는 여러가지 언어를 가리킨다. 이중언어 화자인 우리 조선족의 모어는 하나가 아닌 둘, 바로 조선어와 한어이다. 북경이나 상해, 청도 등 대도시에서 태여나 자랄 우리 후대들이 한어를 못할 걱정은 없겠지만 민족학교가 없고 언어환경이 없는 관내(关内) 도시들에서 조선어교육이 심히 걱정된다. 오늘날 젊은 세대들은관내 도시로 대거진출했을뿐아니라 해외, 특히는 한국으로 많이 진출해있다. 한국에서 취직하여 살면서 자식을 낳아 한국에서 키우고 공부시키는 사례가 점점 많아진다. 이들의 고민거리는 후세들이 한어를 잃어가고 중국문화에 대한 리해를 잃어가는것이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고유의 민족언어를 잃어가는것도 가슴아픈 일이지만 150년의 이민력사를 통해 이룩한 다른 하나의 모어-한어를 잃어가는것도 마찬가지로 마음 아픈 일이다.  언어는 문화이자 힘! 지난세기 80-90년대, 우리 고향에서는 한때 조선어무용론이 대두하여 아이를 한족 학교에 보내는것이 류행이였다. 한어를 못하면 주류사회진출이 힘들다는 리유에서였다. 이들 부모의 마음은 충분히 리해가 되지만 한어를 못하는 리유가 조선어를 배우기때문이라는 사유는 버려야 한다. 같은 시간에 한어 한가지를 공부하는 사람에 비해 조선어와 한어 두가지 언어를 공부하는 사람이 한어가 딸리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조선어를 포기할것이 아니라 한어공부시간을 더 늘렸어야 마땅할것이다. 언어학자들의 다년간의 연구에 의하면 이중언어 또는 다중언어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그렇지 못한 아이에 비해 장기적으로 볼 때 언어능력이 훨씬 뛰여나다고 한다. 유아기에 가정에서의 이중언어 또는 다중언어 사용이 아기에게 언어적혼란을 초래할수 있다는 주장도 간혹 있지만 그러한 혼란기를 겪고나면 아기의 대뇌에는 2개 또는 여러 개의 언어계통이 형성되여 일후 기타 외국어를 배우는 능력이 훨씬 향상된다고 한다.  미국의 이민자들도 초기에는 미국 주류사회 진출을 위한다는 리유로 모국어교육을 회피했다. 미국의 인구통계를 보아도 1980년에는 11%의 가정에서만 영어외의 기타 언어를 사용했다. 그러나 2007년의 통계에 의하면 평소에 집에서 두가지 이상의 언어를 사용하는 가정이 배로 늘어나 20%에 이르렀다.  글로벌 사회에서 언어는 곧 능력이고 힘이다. 글로벌 비지니스시대에 조선족은 두가지 모어의 우세로 13억 중국인외에 5천만에 달하는 해외 화교들과 언어적소통 또는 문화적뉴대감을 느낄수 있고 또 근 1억에 달하는 조선민족과 언어적소통 또는 문화적뉴대감을 지닐수 있다. 소수민족의 모어능력 향상은 국가발전전략에 부응하는것으로 된다. “일대일로(一带一路)” 발전전략과 관련하여 조선족, 몽골족, 로씨야족 등 30여개 과경소수민족이 관여된다. 조선족은 실크로드경제벨트를 통해 동으로 조선, 한국과 련결되고, 씨비리철도를 통해 유라시아대륙의 구쏘련지역의 고려인들과도 련결이 되므로 무한한 비지니스기회를 창출할수 있다.  새로운 모어교육모델 개발 필요! 전통적인 모어교육모델은 바로 가정교육모델이다. 가족내에서 공용어외에 모어사용을 일상화하여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습득하도록 하는것이다. 대도시에서 우리 조선족 아이들의 조선어교육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나 할머니에 의해 이루어져왔다. 그러나 아이가 학교에 가기 시작하면서부터 가정내의 모어환경유지가 쉽지 않다. 더우기 집에 아이를 돌봐주는 로인이 안계시고 부모들도 직장일이 바빠 가정에서의 모어교육에 신경을 못쓰는 경우도 비일비재이다.  전통적인 가정교육모델을 강화하는 동시에 새로운 모어교육모델 개발도 시급하다. 대도시의 많은 젊은 학부모들은 방학이면 아이를 고향에 돌려보내 조선어공부를 하도록 한다. 한국에 귀화한 조선족부모들은 아예 아이를 조기류학생신분으로 중국에 돌려보내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니게 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를 연수/류학교육모델이라 할수 있겠다.  그리고 북경, 상해, 청도 등지에서는 주말학교 교육모델을 적극 시도하고있다. 한국에서도 여러 다문화지원센터들에서 주말학교의 형식으로 조선족청소년들을 상대로 한어교육을 지원하고있다. 그러나 주말학교운영에 필요한 자금 및 교실, 교사 해결이 쉽지 않다.  상기 교육모델들을 적극 활용하는 동시에 온라인 교육모델에 대한 주목이 시급하다. 개방형 온라인 강좌라 불리는 MOOC(massive open online courses)교육이 미래 교육의 방향이란 평판을 받고있다. 코세라(Coursera) 등 대형 개방형 온라인강좌플랫폼에는 무료언어교육강좌들이 많지만 조선족어린이들의 특성에 맞는 조선어교육 또는 한어교육 강좌가 부족하다. 조선족청소년들을 위한 온라인모어교육모델 개발이 필요하다. 이는 정부의 지원과 학계의 노력을 통해 충분히 실행할수 있는 일이다.  글로벌시대에 세계화로 통하는 길은 민족적인 유산이라 생각한다. 민족문화를 지켜가는 길은 곧바로 민족언어를 고수하는것이 아닐가? 곧 태여날 아이에게 피를 물려주고 말도 물려주고싶다. [김청룡 략력] 소속: 중앙민족대학 조선언어문학부 전공: 언어학, 조선어 학력: 한국 경희대학 국어국문과 언어학 박사   한국 서울대학 국문학과 언어학 석사   중앙민족대학 조선언어문학부 언어학 석사   중앙민족대학 조선언어문학부 언어학 학사 경력:중앙민족대학 조선언어문학부 강사, 석사생 지도교수(2012.9 – 현재)   한국 고려대학 민족문화연구원 연구원(2011.8 - 2012.8)   한국 대진대학 교양학부 외국인 전임교수(2011.3 – 2012.8)   한국 호원대학 국제교육원 강사(2010.3 – 2010.7)   중앙민족어문번역국 조리번역(2002.8 – 2005.3) 주요 론저:  저서로는《韩中待遇词汇对比研究》(2014, 한국, 박문사)、역저로는 《韩国风俗画》(2015, 商务印书馆)등. 《浅析韩餐菜名的结构类型-以显性要素与隐性要素为例》(2015)、《韩中待遇词汇语域关系对比分析》(2014)、《基于语料库翻译学的韩汉有标识被动句的翻译研究小议》(2014)、《韩国语自我待遇词汇语义类型分析》(2014)、《韩国语汉字词与汉语的人称词缀对比分析》(2012)、《刍议中国国内韩国语教育改善方案》(2010)등 10 여편 론문을 국내외 학술지에 발표. 출처 인민넷  2016-2-15
1    정음문화의 정신을 바로 세우자! 댓글:  조회:1430  추천:5  2016-03-29
       리성일 중국에서 백년이 넘는 력사를 가지고있는 중국조선족은 19세기부터 조선반도에서 중국으로 이주하여 정착하고 삶의 터전을 개척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러서는 떳떳한 중화인민공화국 공민으로 되였고 자랑스러운 중화민족의 한 성원으로 되였다. 오늘날, 중국조선족은 글로벌화, 도시화 시대에 부응하여 새로운 활동무대를 개척하고 새로운 삶의 터전을 가꾸어나가고있다. 중국조선족은 과거에는 주로 동북 3성에서 집거생활을 해왔으나 지금은 북경, 상해, 청도, 연태, 광주, 심천 등 대도시와 연해지역에 새로운 집거지를 만들어가고있다. 이러한 중국조선족 대이동의 배경에서 민족사회의 새로운 문화창출이 절실히 요구되고있다. 이제는 수도 북경에서도 많은 조선족단체들이 설립되여 매달 적어도 한번씩 다종다양한 활동을 벌이고있다. 이러한 문화활동을 통해 삶의 공간 개척과 함께 새로운 문화가치, 문화정신을 만들어가는것이 바로 우리 세대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라고 할수 있다.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제창하는 “정음문화(正音文化)”이다. 정음문화는 로인을 공경하고 어린이를 사랑하며 옳바른 목소리로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민족의 전통을 계승하고 사회와 지역의 발전에 기여함으로써 우리 모두의 공동한 발전을 도모하는것이 그 핵심이라고 할수 있다.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려면 문화의 핵심을 알아야 하는 동시에 문화건설을 위한 원칙을 수립하는것이 매우 필요하다. 우선, 옳바른 주체의식을 수립해야 한다.  이제 와서 우리 문화는 반드시 협애한 민족주의나 지역주의의 틀을 타파하고 우리 힘과 지혜, 노력으로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저 하는 자주정신이 필요하다. 그 누구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기 두손으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주체적자각이 선행되여야 한다. 이와 동시에 중국사회의 여러 민족, 해외에 있는 조선민족들과도 서로 교류하고 서로 배우면서 민족의 문화발전을 도모하는 자세가 자못 필요하다. 자주의식과 개방자세를 충분히 결부시키면서 세계의 다양한 문화와 상호 윈윈 관계를 구축해야 할것이다.  둘째, 과감한 개척, 창조 정신을 수립해야 한다.  도시화와 산업화, 그리고 글로벌화는 피할수 없는 추세이다. 과거 인식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건설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여기에 정확한 답안이 있는것은 아니지만 그 어떠한 곤난을 극복하기 위하여 과감하게 맞서고 나아가야 할것이다. 동시에 새로운 패턴을 마련하기 위한 창조정신이 절박히 요구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언어교육과 전통음식 체험의 상호 결합, 경로의식과 봉사문화 구축, 창업정신 양성, 새로운 터전에서의 민족명절만들기 등 다양하고 시범적인 노력이 동반되여야 할것이다. 셋째, 협동정신과 네트워크구축이 필요하다.  오늘날 날로 치렬해지고있는 경쟁의 시대에 한 개인의 노력, 작은 집단의 노력만으로는 살아나기 어렵다. 이러한 세계에서 생존하고 발전해나가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도 협동정신이 필요하다. 특히 민족의식과 열정을 지닌 엘리트들간의 협동이 이루어져야 할것이다. 또한 인터넷, 휴대전화를 통한 통신수단을 충분히 활용하여 생활, 기업, 력사, 문화 등 정보와 지식을 공유할수 있는 다양한 네트워크와 정보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학자와 전문가, 기업가, 특히 젊은 세대들 간의 협동을 위한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과거 30년동안의 1가정 1자녀 정책으로 하여 외동아들, 외동딸들이 많기때문에 서로 리해하고 협력하는 의식 양성이 더욱 필요하다. 이밖에 우리 민족의 력사를 발굴하고 기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새로운 삶의 터전을 과감하게 개척하는 동시에 력사를 잊어서는 안된다. 자신의 력사를 망각하는 민족에게는 꿈이 없다. 꿈이 없는 민족은 절대 발전하기 어렵다. 따라서 우리는 반드시 꾸준히 민족의 력사를 기록하고 이어나가야 할것이다. 또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시대적요구에 맞게 “꿈이 있고 문화가 있으며 력사가 있는” 민족으로 거듭나야 할것이다. 민족문화를 연구하고 발굴하며 구축하는 노력과 함께 “문화조선족”으로 거듭나기 위한 고민과 전략적대안 수립이 동반되여야 한다.  리성일 략력 성명: 리성일(李成日)  소속: 중국사회과학원 아시아태평양&글로벌전략연구원 전공: 동북아국제관계 학력: 일본 게이오대학 법학박사 북경대학 국제관계학원 법학석사 북경대학 정치학&행정관리학부(현 정부관리학원) 법학학사 경력: 중국사회과학원 아시아태평양&글로벌전략연구원 조리연구원(2013.1 – 현재) 한국 동서대학교 국제학부 조교수(2008.9-2012.9) 일본 게이오대학 법학부 방문연구원(2008.3-2008.9) 주요 론저:  저서로는 《중국의 조선반도정책》(2010, 일본, 게이오대학출판사), 공저로는 《조선반도의 질서 변혁》(2013, 일본, 게이오대학출판사), 《조선반도와 국제정치》(2005, 일본, 게이오대학출판사), 《조선족 3세들의 서울이야기》(2011, 서울, 백산서당), 역서로는 《일본의 미들파워외교》(2015, 사회과학문헌출판사) 등. “中日关系:转型中的博弈与磨合”(2015), “中韩建交与中国—朝鲜半岛关系的结构变革”(2014), “日本解禁集体自卫权的举措与影响”(2014), “朝鲜族研究的现状及课题-中日韩三国为中心”(2014), “东亚地区合作:中国的视角”(2014), “中国朝鲜族在中韩关系发展过程中的作用”(2013) 등 20 여편 론문을 국내외 학술지에 발표. 출처 인민넷 20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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