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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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대자연의 품에 폭 안기게 댓글:  조회:3206  추천:2  2013-05-22
며칠전 한국은 “어린이의 날”이였다. 새벽 4시에 여느때처럼 아침운동을 하려고 흥릉공원숲으로 갔는데 벌써 어르신들이 여러분 와서 대청소를 하고있었다. 놀이기구와 운동시설 그리고 의자 등 부설물들도 새롭게 칠을 하였다. 이날은 특히 어린이들만 와서 놀게 개방한다는것이였다. 이날 따라 북한산에도 남한산성에도 청계천가에도 중랑천에도 강변과 호수와 바다가와 숲속에는 온통 어린이 천지였다. 진정 그들의 세상이였다. 어린이의 날을 맞아 가장 주목을 끄는 행사의 하나가 바로 “대자연의 품에 폭 안기는것”이였다. 여기서 저마다 옷과 신발이 온통 흙투성이 되여서 무엇을 만든답시고 자기 맘대로 놀면서 장끼를 뽐내는 한패의 어린이들을 보았다. 저마다 손에는 나무가지나 푸르른 풀, 노랑, 빨강, 분홍색 갖가지 꽃들이 쥐여졌는데 의기양양한 개선장군 같았다. 어른들은 훈수도 안하고 꾸중도 안하고 그저 곁에서 보기만 하면서 애들이 자률적으로 놀게 하는데 진정 어린애들이 왕이였고 어린애들이 주재하는 천국이였다. 청계천, 중랑천 물가의 잔잔한 파도, 물 만난 아이들이 선생님과 어른들의 별다른 지시나 지도가 없이도 저마다 익숙한 놀이에 푹 빠져있다. 삼삼오오로 떼를 지어 나무껍질로 쪽배를 만들고 돛을 올린다. 종이배를 만드는 애들도 있다. 자기들이 만든 종이배가 푸른 물결을 헤가르며 겨끔내기로 질주하는것을 응원하는 애들의 조그마한 얼굴에는 행복이 넘쳐 흐른다. 깜직한 새둥지를 만드는 애들도 있다. 주요한 물자는 바로 나무껍질, 나무가지 그리고 나무잎이나 마른 풀이다. 자기들이 만든 새둥지에 먹이를 채워서 어른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높직이 걸어놓는다. 이처럼 놀이에 푹 빠진 애들은 가끔은 자기의 아이디어와 주장을 관철하느라고 쟁론하고 지휘하면서 떠들썩하다. 그래도 그 소리가 조금도 시끄럽지 않다. 오히려 그 모습이 아주 대견스럽고 몹시 만족스럽다. 이런 숲속, 호수가, 강역은 말그대로 가장 넓고 가장 크고 가장 생기가 넘치고 가장 인기적인 학습장, 숲속의 교실, 교양의 현장이다. 여기서 교원이나 부모들이나 어른들은 아이들의 놀이를 관찰하고 가끔 훈수나 줄뿐 절대 간섭은 금물이다. 교육전문가들은 절대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하고 지시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아이들이 스스로가 스승이 되여 자률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면서 놀이속에서 배우도록 하라는것이다. 묻는것에만 답을 주면 된다. 아이들이 자기절로 책임감, 사회성, 독립성을 키우는 절호의 기회인것이다. 여기서는 아이들에게 교육한다기보다 동행한다는것이 더 적절한 용어이다. 선진국에서는 유아교양, 소학교교육도 선진적이다. 이런 나라는 언녕부터 자연교육을 몹시 중시하였다. 한국의 경우 어린이의 날은 물론이고 평소에도 일주일에 적어도 한번 정도는 자연교육을 시키고있다. 독일의 경우 현재 전국 각지에 자연유치원이 500여개, 소학교 자연교실이 수천개가 있다고 한다. 현장교육을 이처럼 중시하는것이다. “도시 아이들에게 일주일에 1차 정도는 숲속에서 맘껏 뛰놀게 하는것은 아이들에게 주는 가장 귀중한 선물이다.” 이곳의 교육일군들의 주장이다. 장난감이나 컴퓨터도 중요하지만 대자연 그대로 보여주는것도 아주 중요하다는것이다. 이제 6.1국제아동절도 오라지 않다. 우리 아이들이 심신이 더욱 건강하고 창의력도 뛰여나고 사회적응력도 강한 나라의 믿음직한 기둥으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6.1절 선물을 화제에 담아보았다. 연변일보 22일자  
25    무형문화재,귀중한 정신적재부 댓글:  조회:3108  추천:1  2013-03-19
문화재는 일명 문화유산이라고도 한다. 사전에 이르기를 문화유산이란 문화활동에 의하여 창조되여 그 가치가 높다고 인정되는 유형, 무형의 축적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문화유산이라는 개념은 영국에서 18세기후반 산업혁명이 흥기하면서 천연자원의 개발이 활기를 띠는 사회환경속에서 자연의 파괴와 력사적 문화유적의 훼손을 예방하기 위하여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발기된 문화보호운동에서 유래한것이다. 2003년 9월 29일부터 10월 17일까지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는 프랑스 수도 빠리에서 제32차 회의를 거행, 바로 이 회의에서 “무형문화재보호공약”을 채택하였다. 이는 무형문화재를 보호하는 중요한 국제성 공약으로서 각 성원국들이 상관국내법을 제정하는데 국제법적 의거를 제공하였다. “공약”은 30개 나라가 신청하여 가입하면 상기 공약이 효력을 발생한다고 규정하였다. 2006년 1월 20일 루마니아가 제30번째 성원국으로 가입하면서 상기 공약 제34조에 근거하여 3개월후부터 정식으로 효력을 발생하였다. 우리 나라는 2006년부터 매년 6월 두번째 토요일을 “중국문화유산의 날”로 규정하고 기념행사를 진행하고있다. 그리고 2011년 6월 1일 “중국무형문화재법”을 정식으로 제정하여 공포실시하고있다. 문화유산은 물질문화유산과 비물질문화유산 두가지로 나뉜다. 물질문화유산은 유형문화재라고도 부르는데 력사적, 예술적 가치, 과학적가치가 있는 문물을 말하는것이다. 비물질문화유산은 무형문화재라고도 부르는데 여러 가지 비물질형태로 존재하는 그런것, 다시 말하면 인간의 생활과 밀접히 상관되여 대대손손 대물림하는 전통문화의 표현형태인것이다. 례컨대 농사수렵, 의식주행, 관혼상제, 민속놀이, 민요민무, 민속공예 등등이다. 하다면 중국 조선족 무형문화재란 무엇인가? 앞에서 언급한 개념으로 말하면 바로 중국조선족들이 960만평방킬로메터의 신주대지에 정착하면서부터 대대손손 대물림하여 온 전통문화의 갖가지로 표현된 그런 각양각색의 형태를 말하는것이다. 19세기 60년대이후 우리 민족이 조선반도에서 두만강을 건너 혹은 압록강을 건너 중국 땅에 와서 살면서 농사를 짓고 사냥을 하고 약재를 캐고 살면서 아이를 낳고 혼인하고 제사를 지내고 민속놀이를 하고 민속공예품도 만들고 노래하고 춤추면서 전해 온 전통문화인것이다. 우리 주에서는 다년간 무형문화재사업을 중시하여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몇년간 우리 주의 각 부문들에서는 전면적인 조사를 거쳐 민간음악, 민간무용, 민속, 민간미술 등 도합 9개 류형의 300가지 무형문화재종목을 수집했다. 주정부에서는 3차에 걸쳐 모두 89가지에 달하는 무형문화재를 지정했는데 그중 77가지 무형문화재가 성급무형문화재로, 16가지가 국가급무형문화재로 지정되였다. 중국 조선족 농악무는 2009년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재 대표작으로 등재되였다. 심사를 거쳐 63명이 주급무형문화재종목의 대표적인 계승인으로, 40명이 성정부에 의해 성급종목의 대표적계승인으로, 2명이 문화부에서 명명한 국가급종목의 대표적인 계승인으로 선정되였다. 우리 주에서는 농악무양성쎈터 등 10개의 무형문화재전승기지를 건립하고 6개의 무형문화재전시장을 건설하였으며 왕청현 배초구진의 “상모춤고향” 등 14개의 특색이 있는 문화향진을 명명하였다. 그리고 여러가지 명절과 기념일, 경제무역행사, 관광 등 활동과 결부하여 무형문화 특색전시, 풍채전시, 기능전시 등 문화활동을 펼쳤다. 그중 퉁소문화절 등 대형문화행사는 우리 주의 문화브랜드로 자리잡았다.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60돐을 맞으면서 우리 주의 무형문화재 보호성과를 집대성하여 출판한 《연변무형문화재화첩》은 88가지 주급이상 무형문화재종목을 수록하였는데 세인들이 연변의 전통문화를 료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있다. 중국 조선족 무형문화재는 자체 특색이 다분하다. 다시 말하면 중국 조선족특색의 무형문화재라고 할수 있다. 우선, 우리 조상들이 중국 땅을 밟고 이곳에 정착하면서 그 시각부터 한족, 만족, 몽골족, 회족 등 수많은 민족과 함께 생활하고 생산활동을 하면서 그 과정에 서로 융합되고 서로 보충하고 서로 충실하게 받아들이면서 그 내용과 형식이 아주 풍부하고 다채롭게 되였다는것이다. 타방으로 중국조선족이 살고있는 그런 자연적환경, 사회적환경의 특점에 의하여 결정된다는것이다. 인간은 그 어떤 환경에 처하게 되면 그 영향을 받게 되고 그 락인이 찍히게 된다. 우리는 흔이 이를 가르켜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고 한다. 무형문화재는 중국조선족의 가장 보귀한 정신적재부이다. 날이 갈수록 그의 경제적가치 물질적가치가 발굴되면서 중국조선족들이 부를 창조하는 중요한 산업으로 자리매김하고있다. 지금 연길시에서 건설중에 있는 국내에서 가장 큰 중국조선족민속원, 도문시 백룡 100년부락 민속전통마을, 이미 다채롭게 펼쳐지고 세인을 깜짝 놀래웠던 자치주창립 50돐 기념행사 등은 가장 유력한 증명으로 된다.
24    송년잡감 댓글:  조회:7113  추천:2  2012-12-19
어느덧 또 세모다. 젊은이들은 벌써부터 크리스마스를 맞이한다면서 잔뜩 부풀어있다. 늙은이들도 양력설, 음력설을 어떻게 쇨가 하면서 즐거운 고민이다. 크게 해놓은것이 없는데 벌써 또 한해가 훌쩍 지나가니 조금은 서글프지만 그래도 감개가 무량하다. 실상 가는 해가 좋았다. 나로 말하면 비록 정년퇴직하는 해였건만 마지막 날까지 일터에서 자기 직무에 충실하면서 열심히 인생의 전반생을 마무리하였다는데서 자기안위한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신문사의 혜택으로 조선나들이 두번, 조건이 생겨서 한국나들이 두번 하면서 안계도 많이 넓혔다. 이는 나의 인생을 2모작하는데 아주 훌륭한 토대가 되였다. 그리고 정년퇴직하면서 오는 공허감에서 해탈하고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는데 좋은 계기가 되였다. 가는 해에 명실상부한 할아버지로 된것도 하나의 경축거리라 하겠다. 4월에 손군을 보고 7월에 환갑생일을 쇠고 얼마후 손군의 백일잔치도 치른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아바이”라고 불리우는게 딱 질색이였다. 그만큼 준비도 안되고 또 아직도 새파란데 “아바이”라니 하는 생각에 항상 마음이 불편하였다. 그래서 나보다 한참 후배인 친구들이 먼저 “아바이”가 되여 “로짱은 아직 멀었다니”하면서 놀려줄 때도 오히려 홀가분하였다. 헌데 세월할아버지는 못 속이는것이다.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면서 승인할것은 승인하고 그에 알맞는 삶을 사는것이 옳바른 선택이고 분수에 맞는 처사라는것을 점차 터득하게 되였다. 그렇잖고 맹목 자신하면서 자기를 과시한다면 결과적으로는 상반되는 상황을 맞게 될수도 있다는것이다. 퇴직하면 완전히 끝나는가 하였더니 그것이 아니였다. 한 려정이 끝나니 새로운 시작이였다. “정년퇴직하고 환갑도 지났으니 인젠 볼장을 다 보았다. 인제는 사회와는 담을 쌓고 천륜지락이나 누리면서 고독이나 즐기면 된다”고 생각하였는데 그게 아니였다. 인생은 2모작이라고 정년퇴직후에도 역시 나름대로 할 일이 있고 그것을 성사하고나면 그에 알맞게 즐거움이 온다는것도 느끼기 시작하였다. 그러니 절대 “성 쌓고 남은 돌”이 아님을 알것 같다. “성 쌓고 남은 돌”, 공직에서 물러나고 정년퇴직만 하면 흔히 이렇게 말한다. 또한 그렇게 되기마련이다. 하지만 설사 성 쌓고 남겨진 막돌이라도 역시 그 막돌로서의 존재가치가 있는것이 아니겠는가. 문제는 그 “돌”의 하기에 따른다. 이 세상이 필요로 하는 유용한 “돌”이 된다면 다시 “옥돌”이 될수도 있지만 그냥 자포자기하고 부담거리가 된다면 그때는 걸림돌이 되는것이다. 실상 우리 주변에는 “성 쌓고 남은 돌”이 되였지만 자기 가치를 열심히 살려가면서 만년에 우리 문화지킴이, 새세대양성보도원, 훌륭한 사회봉사자 등 유익한 일을 하는분들이 적지 않다. 멀리 말고라도 얼마전에 작고한 중국조선족의 저명한 언론인 오태호선생이 훌륭한 본보기이다. 그는 퇴직한후 26년간을 일각도 천금처럼 아끼면서 불시로 타계하는 그때까지도 집필활동을 계속하였다. 그래서 선후로 《인생에 부치는 편지》, 《마닐라의 풍운》, 《세계를 가는 기자》, 《세로잡곡》 등 15부의 무게있는 작품을 남기지 않았던가. 이는 후대들에게 남긴 극히 중요한 유산이 아닐수 없다. 중국조선족소년보사 사장으로 10여년간 사업하다가 정년퇴직한 한석윤선생의 사례도 지극히 귀중한 전형이다. “지나친 불평으로 애끓지 말고 안계 넓혀 풍물을 멀리 내다보시라. 모택동주석이 생전에 늙은이들에게 권고한것이다. 예순이 넘고보니 지난날의 이런 불평, 저런 불만, 요런 후회 등 좋지 않던것을 자꾸 생각하게 되는것도 지어 평생 다시 보지 않겠다고 작심할 정도로 미웠던 사람이 있는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묵은것에 집념하는것은 다 부질없다. 오직 자기에게만 해로울뿐이다. 그러니 마음을 비우고 긍정해주고 리해해주고 용서해주는 그런 바다 같은 심태가 가장 절실한 시점이다. 물론 가는 해도 좋았지만 오는 해는 더욱 좋을것이다. 그러니 모든것을 먼지 털듯이 털어버리고 거뜬한 마음으로 새 출발을 하자. 새해를 맞아 떠오르는 첫 해돋이가 가장 찬연할것이다.
23    이웃이 복 댓글:  조회:4043  추천:2  2012-12-12
일전에 뉴스에서 여든여섯에 나는 독거안로인이 사망한지 보름만에 이웃에 의하여 발견되였다는 기사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무슨 연고로 독거하게 되였는지? 정말 친인척이 없는지?하는 궁금증도 있었지만 혼자 살다가 사망하였는데도 이처럼 오래동안 누구도 몰랐다는것이 더 충격적이였다. 하지만 필경은 이런 일이 한두번도 아니고 우리 주변에서 심심찮게 생기고있다는것이 오늘날 부인할수 없는 현실이다. 사실 가족은 없어도 이웃은 있어야 산다. 그것이 인간 사회의 현실이다. 의식주를 비롯한 모든 인생살이가 이웃이 있음으로써 가능하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그러니까 이웃은 고마운 존재다. 내게만 고마운 것이 아니라 서로서로 고마운 존재다. 하지만 요즘은 옆집은 있어도 이웃은 없다고들 한다.그제날 단층집에서 살 때는 옆집이자 훌륭한 이웃이였는데 지금은 한 단원에 두세집만 살다보니 자기 집에 들어 간후 문만 꼭 잠그면 몇달이 지나도 옆집에서 무슨일이 생겼는지 모른다. 그래서 옆집은 있어도 이웃은 없다는 론제도 생기는것이다. 이웃이 없는 오늘의 삶, 오늘의 문화는 외형으로는 풍족해 보여도 너무나 삭막하다. 훈훈한 사랑과 정이 없어 마치 사막지대에 사는것 같다. 예전에는 옆집뿐만 아니라  온 동네가 나의 이웃으로 살았다. 온라인처럼 밤이나 낮이나 항상 대화와 정이 통했고, 특히 집안에 관혼상제같은 큰일이 생겼을 때는 이웃이 서로가 내 일처럼 적극 돕고 도움받았다. 지난날 우리 동네에는 명문화하지는 않았지만 조상때부터 전해내려 온 "촌민규약" 비슷한것이 있었다. 그것을 보면 이웃과 마을간에 화목할것을 권장하고 일이 있으면 자기일처럼 돕고 좋은 음식이 있으면 절대 혼자 먹지 않고 사발에 담아서 이웃에 돌리였다.서로 다투는것도 엄격하게 금하였다. 그 밖에도 주민들이 지켜야 할 여러 가지 약속사항이  있는데 이를 위반할 경우 벌조까지 정해놓았다.그중에서 가장 중한 책벌의 하나가 바로 불통화수(不通火水)였다.  당시의 미풍량속인 불씨 나눔과 한우물을 길어먹는 유무상통을 단절시킴으로써 이른바 마을에서 "왕따"를 시킨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웃과의 단절은 곧 죄악이며 제재가 뒤따른다는것을 알수 있다. 이제 돌아 오는 새해의 양력설을 맞은 뒤면 음력설, 정월대보름이 련달아 이어진다. 이 황금주간 기간 고향을 찾은분들이 많을거고 저마다 친구나 친척 그리고 피붙이를 만나 얼싸안고 반가움을 나눌거고 옛정을 키워온 다정했던 이웃들과도 만나서 회포를 풀게 될것은 십분 자명하다.  그래서 더욱 화제에 올린다. 연길의 한 사회구역에서 일어난 일이다. 지난날 산간벽지에서 살다가 도시진출을 한 집에서 고향에 갔다오면서 고구마와 떡호박을 삶아 가지고 와서 이웃에 돌리였다. 인정미가 풋풋한 거동이라 과시 칭찬할바였다. 헌데 한 젊은 새각시는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면서 "촌스럽게 이런것을 돌리느냐. 우린 이런것 안먹는다"고 하더란다. 아파트 이웃은 벽돌 한장 사이다. 빽빽이 몰려사는 밀집거주지역, 20센치메터 안팎의 벽은 깨뜨리기 쉽지만 이웃간의 두터운 마음의 벽은  허물기가 절대 쉽지 않다.그렇찮아도 한아빠트에서 여러 해를 함께 살아오면서 이웃을 모르는 신세대가 적지 않다.  집은 뜨르르하게 현대가장집물을 갖추어놓았고 먹는것도 산해진미 없는것이 없지만 이웃정은 그지없이 메말라간것이다. 경제는 더없이 성장하고 생활수준은 훨씬 높아갔지만 정신문화는 아주 피페해진것이다. 도시는 물론 농촌에서도 자기나 자기 집밖에 모르는 개인주의, 리기주의가 팽배하여 "이웃"이나 "공동체"의식이 메말라가고있음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초가집에서 살면서 흙을 밟고 자란 세대와 현대식아빠트에서 자란 세대간의 차이와 거리감을 절감하면서 우리 이웃이 정이 없다고 질타하기에 앞서 먼저 내가 이웃과 잘 지내려고 어느만큼 노력해보았는가고 자문해 볼 일이다. 연길시안의 일부 가두에서 "이웃간의 화목 도모"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이웃절"이라는 활동을 펼치고있고 주내의 적지 않은 지역에서도 이와 류사한 행사를 하고있다니 조금은 위안이 된다. 이런 움적임은 크고작음을 떠나 필경은 적극적인 거동으로서 충분한 긍정을 받을바이다.조화로운 사회, 화기애애한 세상은 바로 이웃과의 정나눔과도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아야 할것이다. 이웃은 복! 인간이 사는 모든 곳에서 이웃의 화목이 반드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22    하나 해도“쟁이”가 되라 댓글:  조회:4246  추천:0  2012-10-24
“쟁이” 하면 흔히 난쟁이, 겁쟁이, 난봉쟁이, 등등 안좋은 쪽이나 폄하하는데로만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사전에도 사람의 성질이나 특성, 행동, 직업 등을 나타내는 일부 어근 뒤에 붙어, ‘그러한 특성을 가진 사람’의 뜻과 얕잡는 뜻을 더하여 명사를 만드는 말이다고 해석하였다. 하지만 내가 오늘 론하고저 하는것은 목공쟁이, 야장쟁이, 리발쟁이 등등 긍정적인 방면 다시 말하면 장인과 동등시한 그런 전문인을 두고 말하는것이다. 어느 주말, 사회에 진출한지 오라지 않는 동창들이 모임을 가졌다. 모두 직업이 마땅찮아서 빈둥대면서 몇년을 허송한 “백수”들이였다. 하지만 아직도 입은 시퍼렇게 살아있어서 서로 짝지지 않았다. “나는 말이야 이제 몇해 노력해가지고 안되면 아버지뒤나 이어 석탄장사나 할란다.” 부친이 자그마한 탄광을 경영한다는 젊은이가 입을 열었다. “그래, 그러거라. 나도 몇해 노력해서 안되면 너한테 가서 파낸 석탄을 관리하는 지킴이나 할런다.” 그러자 일동은 웃음으로 화답하였지만 그래도 천한 직업이다고 얕잡아보는 심리가 그대로 들어났다. 동창모임이라 서로 허물없이 찧고 빻고 하는데 유독 B군만은 덤덤해 앉아 있었다. “야, 이 놈. 너는 아직도 고려중이야? 몇년 놀았으니 무얼 해도 해야 할거 아냐?” 옆에서 장난꾸러기친구가 건드리자 B군은 정색해서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사실 지난 몇년간 무슨 고상한 직업이나 없냐하고 많이 다녀도 보고 수소문도해 보았지만 별재간이 없는 놈은 그래도 자기가 하고싶은 일, 적성에 맞는 일, 가장 잘 알고 있는 일을 하는것이 맞는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제 집에 돌아가 아버지를 도와 그가 하고있는 목공일이나 시작해 볼련다.” “야, 그건 아니다. 어렵사리 시가지에 진출해서 이만큼 역사질하였는데 이제 결과가 있겠지. 왜 중도이페하려 하나?” 친구들은 그것이 아니라며 한사코 만류하였다. 하지만 몇해후 B군은 아버지가업을 이어받아 열심히 한데서 그 지역에서 알아주는 목공이 되었다. “처음에는 물론 내키지 않았다. 우리 집안은 대대로 목공이였어.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물론이고 아버지도 우리 이 고장에서는 목공의 대목수로서 이름이 있었지. 아버지의 밑에서 차근차근 배워가면서 점차 목공일도 단순 밥벌이 일인것이 아니라 공예작업이고 예술이라는것을 인식하였다. 여기에 미술을 하고 디자인을 배운 내가 새로운 공예, 새로운 기술로 새로운 제품을 만들고 창안하여 시장에 내 놓았더니 실로 대단한 가치를 창출하였다.” B군이 구직실천에서 얻은 값진 체득이였다. 인간의 한생이 보건대는 아주 긴것 같지만 실상 따져 보면 얼마 되지 않는다. 아무런 부담도 없이 들말처럼 뛰놀던 유년시절, 생각은 간절하지만 체력적으로나 정력적으로 따라주지 않아서 멀거니 쳐다만 보게 되는 고령시기를 빼라. 그리고 또 일상적인 생활 이를테면 밥 먹고 잠자고 휴식하고 놀고 관광하고 기타 이런저런 행사에 참가하고 나면 실상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골고루 잘하는 수재보다 한가지밖에 모르는 바보가 낫다.”고 선배님들은 말한다. 이미 실천에 의하여 증명된 충고라 하겠다. 지난날에는 “36업종에 업종마다 장원이 나온다.”고 하였다. 기본은 자신이 선택하고 그걸 꾸준이 추진하는것이라 하겠다. 이것저것 고추장 맛보기식이나 자기체신에 대한 파악은 없이 무턱대고 여러가지를 돌파하려고 드는것은 금물이다. 벌써 10월중순이다. 이미 몇달이 지난 지금도 올해의 대학교 졸업생중 아주 많은이들이 놀면서 방황하고있다. 대학문은 나오는 즉시 자신만만하고 용기백배해 이곳저곳 취업의 문을 두드렸는데 여의치가 않다. 비싼 교육비를 지원하며 열심히 뒤바라지를 해 준 부모님들을 뵐 낯이 없어서 미안하고 송구스러운 심정일것이다. 그래서 하는 얘기다. 눈높이를 조절하여 직성에 알맞고 자기가 가장 잘아는 그런데 눈길을 돌려라. 그리고 가장 하찮고 가장 눈에 띄우지 않는 그런 구석도 찾아보라. 우리가 사는 인간세상의 가장 밑바닥을 훑으면서 온갖 직업과 삶의 형태를 보고 느끼라, 기필코 터득함이 적지 않을것이다.
21    3초 먼저 가려다가 30년 먼저 간다 댓글:  조회:10313  추천:3  2012-09-05
며칠전 친구의 장례식에 갔다온후 여러 날이 지났지만 의연히 가슴이 찜찜하다. 사인은 음주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이다. 석달도 안되는 사이에 가까운 사람들이 이처럼 음주운전으로 사고친 소식을 네댓번 접하고보니 기분이 좋을리 만무하다. 고금중외 지구촌의 그 어디에서나 무릇 자동차가 생산되고 자동차가 거리를 질주하면서 차사고는 필연적으로 생겨났다. 그리고 술이 존재하는 한 음주운전도 불가피면적이였다. 최근 세계위생보건기구의 통계에 따르면 년간 50여만명이 교통사고로 숨지는데 그중 50%, 혹은 60%가 음주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음주운전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일대 사회우환으로 그 어느 나라나 모두 골머리를 앓고있다. 뿌리 깊은 사회난제의 하나,  사회적 고질병이라는 말이다. “3초를 먼저 가려다가 30년을 먼저 간다”는 격언도 있다.  살펴보면 음주운전의 가장 뚜렷한 특징이 바로 과속운전이다. 그리고 이런 음주운전자들은 거지반 젊은이들이다. 한창 혈기가 왕성한 때라 무섭고 두려운것이 없다고 할는지. 아무튼 음주운전이 아직도 비일비재이고 한두번쯤 걸려든 전과가 있지만 적지 않은이들은 의연히 개의치 않는다.”음주운전은 실상 목숨을 가지고 도박을 한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건만. 사고를 낸 운전수들은 거지반 일을 저지른후 피해보려는 요행심리가 작간하는데 그중에는 사건현장에서 뺑소니치거나 그렇찮으면 이런저런 경로를 통하여 사건을 무마하거나 없애려는 현상이 극히 보편적이다. 큰 사고 특히 사람을 치였거나 지어 사람을 깔아 죽였다면 더욱 그러하다. 하다면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운전수들은 음주운전을 하였거나 사고를 쳤다면 이는 큰 일이 아닐수 없다. 만약 음주운전을 한후 사고를 냈다면 공직자라면 공직을 떼우고 형사책임을 추궁당하는 엄한 결과가 초래된다. 인명피해를 냈다면 그 후과는 더욱 엄청나다.  그리고 음주운전은 인신보험보상도, 차보험보상도 없다. 모든것이 손실로 결론난다. 오늘날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강도가 대단히 높아진데서 인제는 절대 소홀할수 없다. 혹자는 지금도 의연히 사고를 치고나서 인맥관계를 리용하여 아는 교통경찰을 찾거나 이런 직능부문의 지도자를 찾거나 혹은 기타 경로를 통하여 일을 작게 만들려고 한다. 혹은 사고현장을 피하여 달아나려 하거나 하는데 이런 심리의 산생은 아주 정상적이지만 반드시 삼가해야 할것이다. 필경 사고인것만큼 법규대로 처리를 받는것이 마땅하다. 그 어떠한 요행심리도 결국은 더욱 큰 화를 불러온다는것을 잊지 말아야 할것이다. 음주운전현상도 실상 건전하고 옳바른 자동차문화가 형성되지 못하였거나 상응한 제도가 완벽화하지 못한데 있다. 하기에 선차적과업이 바로 법률적문제, 도덕적문제 등 기본문제들을 포함하여 전사회적으로 이 문제에 대한 시민의식의 전면적제고를 가져오는데 큰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것이다. 옳바른 자세와 옳바른 행동을 하는것이 전민적인 자각적행동으로 되고 시민들의 몸에 배여 습관으로 되여야만이 우리 사회가 일층 살맛나고 서로 배려하는 훌륭한 사회로 되지 않을가 생각한다.
20    인생 2모작 댓글:  조회:3906  추천:1  2012-07-11
한가한 날 두만강변에 서서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노라니 감회가 깊다. 세월이 흘러가는것이 이와 같아 어언 만 60, 환갑이 되였다. 개울가에서 입술까지 흘러내린 코물을 손등으로 슥 문대고는 세치네 잡느라고 여념이 없던 개구쟁이시절이 어제 같은데 벌써 이순의 년대에 접어들다니!  “15 지학(志学) ”,  “30 이립(而立) ”,  “40 불혹(不惑)”,  “50 지천명(知天命) ”,  “ 60 이순(耳顺) ”,  “70 종심(纵心) ”. 이는 공자가 73세를 일기로 인생을 마감하기 직전에 자기 성장의 발자취를 귀결하면서 토파한 자선적회상이다. 공자가 한 상기 명언에서 인생이 쉰이면 “지천명(知天命)”이고 예순이면 “이순(耳顺) ”이라고 하였다. 그 뜻을 풀이하면 인간이 50을 넘기면 “하늘이 맡긴 사명을 깨달았다”는것인바 그래서 자기 사명을 자각하고 인생의 마감까지 최선을 다한다는것이다. 그리고 60이 되면 “이순(耳顺) ”경지에 도달하여 어떤 말을 들어도 귀에 거슬리지 않고 인간의 도리에 맞게 행동하고 인생을 참답게 정리한다는것이다. 이 명언은 오늘도 우리들에게 심령의 등대, 인생의 좌우명으로 되여 제시하는바가 아주 심오하다. 비록 아주 평범한 한 인간이지만 “인간은 저마다 한부의 장편소설이다”고 한 성현이 지적하였듯이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필경 나의 인생도 년대마다 그 나름대로의 격정적인 편린들로 장식되였었다. 돌아보면 우리들의 어린 시절은 비록 물질적으로는 가난에 허덕이였지만 그래도 자유로운 시기였다. 지금과는 달리 공부를 해라, 손풍금을 배워라, 서예공부를 해라 등등 조기교육이라는것이 거의 없어서 아무런 부담 없이 들녘의 송아지처럼 날치며 잘도 놀았다. 실상 그때가 좋았다. 우리들의 청소년기는 불운한 년대였다. 공자는 15세에 학문을 하라고 하였건만 우리 세대는 방금 초중에 입학하여 1년만 배우고 사상 전례없는 “문화대혁명”의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한창 배워야 할 나이에 때리고 마스고 없애는 반란에만 열중하면서 이것을 “혁명”으로 받아들였다. 이렇게 초중단계를 보내고 공자가 15세에 학문을 하라고 한 지상의 특명과는 정반대로 우리는 만 15세를 맞아 고향마을에 귀향하여 빈하중농의 “재교육”을 받았다. 인생의 황금시기, 관건적시기에 이처럼 방황할 때 《연변일보》사가 내가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고 다시 학습하는 대학교로, 재교육의 요람으로 되였다. 1972년부터 《연변일보》의 리론통신원, 농촌통신원, 문예통신원을 하면서 장정일, 김희관, 김경석 등 선배님들이 나의 스승이 되여 이 제자를 가르쳐주었던것이다. 정녕 이네들의 가르침이 없었더라면 특징적인 환경, 특징적인 조건에서 한낱 초중 1학년생이 초중, 고중 단계를 훌쩍 뛰여넘어 대학에 진학하는 그런 “기록”을 절대 창조하지 못하였을것이다. 대학입시가 회복되여 첫 시험에서 높은 점수로 연변대학 정치학부에 입학하였던것이다. 1982년 2월 대학을 졸업하자 《연변일보》 리론편집사업을 하시던 장정일선생님이 룡정주재 기자로 추천하고 당시 《연변일보》 부총편집으로 주재기자사업을 주관한 오태호선생님이 비준하여 기자생애를 시작하였다. 만약 그렇잖았더라면 오늘날까지 《연변일보》의 직업기자로 30년간 사업한다는 이런 영광은 절대 상상도 못하였을것이다. 인생이 바뀌고 인생사를 새롭게 쓰게 된것이다. 세월은 류수와 같아 어언 퇴직할 때가 되였다. 인생의 상반부를 졸업한것이다. 하다면 인생의 하반부는 어떻게 쓸가? 대답은 하나. “인생을 2모작하자”이다. 한 인간의 인생에서 청년기는 활달하고 능동적이고 개척과 모험정신이 강하지만 아직 미성숙단계고 덜 익은 열매라고 할수 있다. 하다면 로년기는 원숙한 아름다움이 있지만 체력적으로 혹은 기력적으로 쇠잔해져 흔히 마음뿐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들은  흔히 “자식도 다 길러냈고 근력도 옛날 같지 않으니 편히 쉬라”고 한다. 대개 60세를 계기로 현직에서 물러나 조용히 남은 인생을 정리하는것이 전통적인 습관으로 자리매김한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은 그렇지 않다. 삶의 질이 향상되고 고령화사회에 진입하면서 따라서 은퇴하고도 살아야 할 기간이 길어졌다. 건강관리를 잘한 이들은 은퇴후에도 웬만한 젊은이들을 찜쪄먹을 정도로 체력과 정력이 왕성하다. 그래서 물질적으로도 인생 2모작은 물론이고 3모작도 가능하게 된 시점이다. 저명한 철학자 루소는 이를 “제2의 탄생”이라고 갈파하였다. 인류력사의 기나긴 행정에서 한 인간의 일생은 천공을 헤가르며 피끗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별찌에 지나지 않는다. 이처럼 짧기에 귀중하고 귀중하기에 진붉고 화려한 목단꽃처럼 그 존재의 가치를 더욱 살리려 하는것이다. 우리는 인생의 전반기에는 흔히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먹고사는 문제로 로심초사하면서 거의 모든 정력을 할애하기마련이다. 모종의 의미에서 말하면 제정신이 아닌 동물적인 삶인것이다. 하다면 2모작을 한후 인생의 후반기에는 거의 모든 부담을 일소하고 또한 살기 위하여 남의 눈치를 보던것도 어제 일로 되였다. 인제는 제정신에 인간으로서의 제 삶을 살수 있는것이다. 그래서 2모작한 인생의 후반생이 삶의 가치가 더욱 값진것이 아니겠는가!
19    음주운전, 목숨갖고 하는 도박 댓글:  조회:3703  추천:0  2012-05-23
고금중외 지구촌의 그 어디에서나 무릇 자동차가 생산되고 자동차가 거리를 질주하면서 차사고는 필연적으로 생겨났다. 그리고 술이 존재하는 한 음주운전도 불가피면적이였다. 최근 세계보건기구의 통계에 따르면 년간 50여만명이 교통사고로 숨지는데 그중 50, 혹은 60%가 음주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음주운전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일대 사회우환으로서 그 어느 나라나 모두 골머리를 앓고있다. 뿌리 깊은 사회난제의 하나, 사회적고질병이라는 말이다. "음주운전은 실상 목숨을 가지고 도박을 한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하기에 사고를 낸 운전수들은 거지반 일을 저지른후 피해보려는 요행심리가 작간하는데 그중에는 사건현장에서 뺑소니치거나 그렇잖으면 이런저런 경로를 통하여 사건을 무마하거나 없애려는 현상이 극히 보편적이다. 큰 사고 특히 사람을 치였거나 지어 사람을 깔아죽였다면 더욱 그러하다. 하다면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운전수들은 음주운전을 하였거나 사고를 쳤다면 이는 큰일이 아닐수 없다. 만약 음주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냈다면 공직자라면 공직을 떼우고 형사책임을 추궁당하는 엄한 결과가 초래된다. 인명피해를 냈다면 그 후과는 더욱 엄청나다. 오늘날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강도가 대단히 높아진데서 인제는 절대 소홀할수 없다. 하기에 사고를 치고나서 인맥관계를 리용하여 아는 교통경찰을 찾거나 이런 직능부문의 책임자를 찾거나 혹은 기타 경로를 통하여 일을 작게 만들려고 한다. 혹은 사고현장을 피하여 달아나려 하거나 하는데 이런 심리의 산생은 아주 정상적이다. 필경 인간이기에. 문제는 이런 사고를 낸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하는것이다. 속담에 "일만이 무섭지 않고 만일이 무섭다"고 한다. 다시말하면 "간대루야" 혹은 "내사 뒤심이 든든한게" "혹은 수차 술마시고 몰아도 한번도 걸린적이 없는데" 이처럼 요행심리가 작간한다면 기필코 그 어느날 큰코 다치고만다. 차를 모느라면 사고치기는 십상이다. 그래서 “운전수는 한쪽 발을 감옥에 들여놓고 차를 몬다”는 격언까지 생겼으리라. 만약 음주운전행위를 직면하게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답은 아주 간단하다. 반드시 적시에 제지하여야 한다는것이다. 친구나 혈육이라면 더욱 그러해야 할것이다. 우선 술장소에 운전자가 있다면 절대 권하지 말아야 하며 이미 마시기 시작하였다면 절대 운전을 시키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일단 교통사고를 저질렀거나 음주운전이 들통났다면 반드시 법과 제도에 따라 에누리없이 집행해야 하지 조금이라도 인정을 베풀어서는 안되는것이다. 만약 이런 현상을 돌봐준다면 일후 더욱 큰 사고를 저지를수 있는 그런 습관을 양성하는것이나 다름 없다 하겠다. 동시에 운전자라면 음주후 운전을 할것을 요구한다면 단연히 거부하여야 할것이다. 그 누가 시키든지 그 무슨 리유든지간에 음주후에는 절대 금해야 한다. 만약 술을 마셨다면 적당한 휴식을 취한후 알콜이 완전히 해소된후 차를 모는 그런 습관을 키워야 할것이다. "중화인민공화국 도로교통안전법"에는 혈중알콜농도가 20밀리그람에서 80밀리그람이면 음주운전, 80밀리그람 이상이면 만취운전이라고 명시하였다. 하기에 우리 운전자들은 항상 이 수치를 명기하고 안전에 또 안전을 기해야 할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타인을 위하고 결과적으로는 자기를 위하는 상책임을 아로새겨야 할것이다.
18    독서, 인생의 기본적일과 댓글:  조회:3130  추천:1  2012-04-25
요즘 향후 10월 23일까지 6개월 동안 지속되는 연변 독서의 축제가 시작되였다.  해당 인사에 따르면 이번 “연변독서절”은 우리 주 공중문화봉사체계건설의 중요한 구성부분으로서 모든 분야가 올해 독서절의 주제를 둘러싸고 활동의 다양성, 실효성을 기하면서 전민독서를 추진하고 “책향기 그윽한 연변”을 건설하는데 일조할것이라고 피력하였다. 이번 독서절에는 개막식에서 연변인민출판사 등 도서출판단위들이 가치가 무려 1만 1000여원에 달하는 도서 약 1000권을 연길시 부분적 학교, 사회구역, 동존서부대 등에 기증한데 이어 주내 여러 출판사와 서점에서 도서전에 동참, 다양한 도서판촉행사를 벌렸다. 그리고 이번 활동은 향후 6개월 동안 지속되면서 대학생, 중소학생, 기관단체 등 7개 분야의 독서활동을 기반으로 풍부하고 광범위한 독서활동을 벌리게 된다고 한다. 독서절은 일명 “독서의 날”  혹은“책의 날”이라고도 한다. 독서절축제는 지난 세기 90년대 중기인 1995년 유엔총회에서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유네스쿄)가 세계인의 독서증진을 위해 정한 날이다. 공식명칭은 “독서와 저작권의 날”이고 “독서의 날”, 혹은 “책의 날”이라고도 한다. 4월 23일로 정한것은 에스빠냐 카랄루니야 지방에서 책을 읽는 사람에게 꽃을 선물하던 “세인트 조지”축일과 1616년 쎄르반테스와 쉑스피어가 동시에 사망한 날이 바로 이 날인데로부터 유래되였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는 문화인으로서 독서는 빠질수 없는 기본적인 일과이다. 하기에 인생과 독서, 진정한 의미에서 이 량자는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다. 독서라고 하면 책을 읽는 행동을 말하는데 글은 다양한 삶의 표현이라고 할수 있다. 그러니 글을 읽는다는것은 인간의 다양한 삶과의 만남이라 할수 있다. 특히 좋은 글은 삶의 진정한 가치와 삶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기때문에 독서를 통해 글쓴이의 인생에 대한 통찰력과 개성을 음미하는것이다. 그러기에 독서의 궁극적인 목적은 더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 책에 들어있는 글쓴이의 의도를 파악해서 자신의 삶과 련계시키는데 있다. 이를테면 우리가 위인전을 읽을 때면 인물전기의 주인공을 바르게 파악하는것이 중요하다. 그 인물이 어렸을 때의 생활은 어떠했는가? 어떤 고생과 어려움을 참고 견디며 살아왔는가? 나는 이제부터 어떻게 생각하고 살아야 하겠는가? 전기의 주인공이 존경받게 된 점은 무엇인지 이런것을 생각해보면서 그 인물이 오늘날까지 존경받고있는 리유는 무엇인가? 그 인물이 살았을 당시와 오늘날을 비교해보면서 오늘날 우리는 어떤 점을 본받아야 하는가?  그 인물은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을 하며 빛을 남겼는가? 하는것들을 생각하며 전기를 읽게 된다. 이렇게 책을 읽으며 우리는 그속에서 느낌을 가지게 되고 저도 모르게 자신을 승화시키는 과정을 걸치게 된다. 정보화시대에서는 과거에 비해 읽어야 할 내용이 훨씬 많아졌다. 독서는 개인이 직접 경험할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안내해주고 공간과 시간을 무한정으로 확대하여 대리경험을 시켜준다. 한 인간을 자연스럽게 그대로 방치하면 그가 경험할수 있는 범위는 매우 좁아진다. 그렇지만 독서는 독자를 수천년전의 과거로 안내하기도 하고 또 미래의 세계로 인도하기도 한다. 이렇게 안내되고 인도되면서 사람들과 대화도 하고 행동도 하고 감정을 서로 주고받기도 한다. 또한 사회의 가치,  규범과 문화를 습득하고 공동체적인 삶의 질서속에 개인과 주체적인 삶을 관련시키기도 하는데 이를 통해 독자는 폭넓고 깊이있는 삶을 간접적으로 체험할수 있다.  독서에서 빠질수 없는 중요한 한가지는 정보와 지식을 획득하는것이다. 다시 말하면 독서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될 정보획득의 수단이라는것이다. 다른 무엇보다 실용적인 가치를 지닌다. 또한 독서는 정보획득 이외에도 지식습득이란 더 본질적인 기능을 가지고있다. 인간은 자신이 발견한 지식을 문자로 기록하여 후대에 책으로 전승하여왔기때문에 이전시대의 사상, 과학기술,  력사, 문화 등을 알기 위해서는 독서에 의존할수밖에 없다.   현대 정보화사회에서 독서가 어느때보다 더 필요한 리유는 정보가 대부분 활자매체를 통하여 전달되기때문이라고 할수 있다. 물론 활자매체가 아닌 전파매체 같은것을 통해 필요한 정보를 얻기도 하고 인쇄매체가 속도면에서는 도저히 전파매체를 뒤따를수가 없지만 순간 전달로 곧 사라져버리는 전파매체의 특성때문에 복합적이고 고차원적인 정보는 아무래도 활자매체를 통해 얻을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임진년 검은 룡의 해도 역시 학습의 시대, 독서형의 사회건설은 기본이다. 이처럼 학습을 중심으로 하는 시대인만큼 지식은 이미 새로운 세기 사회, 경제 발전을 추동한 원동력이 되고있다. 그러니 번영하고 문명하며 조화로운 지역사회를 건설하자면 보다 많은 사람들의 종합적자질을 제고하고 학습능력과 혁신능력을 높여줘야 한다. 그러자면 우리 매개인이 책임의식과 긴박감을 가지고 학습을 제1수요로 인식하며 학습분위기를 형성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독서절의 형식에 매이지 말고 항상 노력하고 분발하는 자세로 독서를 내 생활의 하나의 중요한 습관으로 자리잡게 해야 하지 않을가싶다. 그러자면 책 읽는것은 즐겁고 유익한것이라는 관념을 확고하게 수립하는것이 절실하다. 그래서 독서를 재삼 강조하여도 결코 과분하지 않다고 주장하는것이다.     
17    거울은 먼저 웃지 않는다 댓글:  조회:3570  추천:2  2012-03-07
“거울은 먼저 웃지 않는다.”  일본의 저명한 만담가인 우쓰미 케이코씨의 명언이다. 우쓰미 케이코씨의 아버지는 리발사이다.  그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내가 웃으면 거울이 웃는다” 였단다. 우쓰미씨는 이 말을 좋아해서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고있다고 한다.  일본의 수필가 가네히라 케노스케씨는 자기 수필작품에서 상기 격언을 인용하면서 “나도 나만의 격언을 가지고있다. '거울은 먼저 웃지 않는다'는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먼저 웃음을 보이는 삶을 살고싶다고 나 자신을 타이른다”고 토파하였다. 우리도 일상생활에서 상기 격언을 좌우명으로 삼는것이 지당하다고 본다. 결코 호언장담이 아니고 그 무슨 장엄한 승낙도 아닌 바로 우리들의 일상생활가운데서 나온것이면서도 철리적이고 계발가치가 큰 명언인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2001년 9월에“공민도덕실시요강”을 공포하고 그동안 다양한 형식의 공민도덕건설실천활동들을 견지해왔다. 이런 효과적인 조치와 실천활동으로 우리 사회 공민도덕건설은 새로운 걸음을 내딛게 됐고 새로운 진전을 가져왔다. 이미 10여년이란 시간이 흘렀는데 전반적으로 볼 때 사회 문명정도와 공민도덕자질이 부단히 제고되고있고 공민도덕건설도 량호한 발전추세를 보이고있다. 하지만 발전하면서도 문명하지 못한 행위로 인한 불협화음들이 있는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문제점들이 존재하는 한 우리의 공민도덕건설은 진일보로 추진해야 할 필요성을 가지게 된다. 이런 기본적인 도리가 잘 지켜지지 않기때문에 시민의식의 제고와 사회도덕 건설이 필요하게 되는것이다. 이를테면 공중시설을 아끼지 않는 사람, 가로등을 마음대로 마사버리고 거리의 공중전화박스를 마스고 공중장소에서 꺼리낌없이 가래를 뱉고 담배꽁초를 버리고 쓰레기를 버리는것, 그리고 공중장소에서 큰소리로 떠들어대고 거친 말을 스스럼없이 내뱉는것과 같은 현상들은 비일비재이다. 이런것이 바로 수많은 사람들이 실감하고있는 공중도덕의 실추사례라고 할수 있다. 더욱 한심한것은 길거리에서 기절한 로인을 부축하는 사람이 없고 차에 치인 어린애를 보고도 못본체 지나가는 사람들이며… 오늘날 우리 국민들가운데는 이렇게 한심한 사람들이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며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시민도덕의식제고는 아주 절박한 문제가 아닐수 없다.   사회공민도덕은 매 공민이 사회교제에서 그리고 공중생활에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행위규범이다. 한 개 도시로 놓고볼 때  시민들의 도덕의식은 한 도시의 문명정도를 가늠하는 척도로 된다. 우리 연변의 수부도시인 연길도 지금 전국문명도시의 대렬에 들어서고있는데 세상사람들에게 우리 연변, 연길의 문명한 모습을 보이려면 정말 모든이들이 항상 웃는 그런 인간이 되기에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어른은 어른대로 아이들에게 좋은 본보기를 보여야 하고 질서를 지키고 공공위생을 지키고 공중도덕을 지키는 훌륭한 시민, 주민이 돼야 할것이다. 공중도덕은 나부터, 지금부터라는 마음가짐으로 누구나 쓰레기가 눈에 보이면 쓰레기상자에 주어넣고 로약자를 보면 달려가 도와주고 이런 작은 일에서부터  좋은 본을 보여준다면 우리들은 진정 맘속으로부터 활짝 웃게 될것이다. 분명한것은 거울은 먼저 웃지 않는다는것이다. 거울이 웃게 하자면 우리 모든 인간들이 먼저 웃는 인간이 되여야 할것이다. 진정 웃는 인간이 되자면 반드시 교양이 있는 인간, 례절이 바른 인간, 문명한 인간, 도덕품성이 고상한 인간으로 되여 아무런 가식이 없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그런 웃음을 활짝 웃어야 할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거울도 덩달아서 활짝 웃을것이 아니겠는가!  
16    문학수양 쌓으라 댓글:  조회:3128  추천:0  2012-02-20
문학 하면 사람들은 흔히 이는 작가나 시인 그렇잖으면 문학애호가들의 일이라고 인정하기 십상이다. 최저로 가방끈이 짧은 사람이 아니라 학문이 깊은 학자나 그렇잖으면 높이 노는 지식인들이 추구하고 담론하는것이라고 인정한다. 하기에 문학수양을 쌓으라고 하면 이는 일반인들과는 거리가 먼 고상한 습관이라고 하면서 도리머리한다. 실상 그러하면서도 또한 그렇지 않은것이다. 문학은 인간의 문화자질 그리고 인간의 총체적자질을 더욱 높은 차원에로 승화시킨다. 한 인간의 문화자질의 고저는 문학수양이 척도이다. 이는 문학이 문화에서의 역할 그리고 문학이 인생에 대한 역할에 의하여 결정되는것이다. 하기에 문학수양을 구비한다는것은 결코 문학작품이나 문학평론을 발표하여서만이 아니다. 문학에 애호를 가지고 상당한 수량의 문학작품을 탐독하였으며 고품위의 문학작품에 도취되여 일정한 문학감상력을 소유한다는것이다. 문학은 인간의 정신을 승화시킨다. 문학은 문화에서 승화된 리상적결정으로서 인간을 격발시키고 향상시키는 등대이다. 진정한 문학은 줄곧 인류의 생존환경과 정신세계와 밀접히 관련시켜 관심하고 사고하고 탐구하는것이다. 동시에 리성적인 정신으로 인간의 심령을 안위하고 따사로움을 주어 인간이 고통에서 해탈되고 정열을 불사르며 삶의 새로운 불꽃을 튕기게 하는것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프크나는 수상연설에서 “작가의 천직은 바로 인간의 심령이 더욱 고상하게 하고 그들의 용기, 영예감, 희망, 자존심, 동정심, 련민감, 자기희생정신을 부활시킨다”고 갈파하였다. 문학은 인간의 도덕을 일층 순결하게 한다. 문학과 도덕은 서로 밀접한 하나의 동체로서 문학은 도덕의 힘을 빌어 더욱 고상하고 순결하여지여 인심을 감동시키고 고상한 정조를 갖추게 하고 심령을 정화하고 그릇된 풍속을 시정하게 한다. 도덕은 문학의 힘을 빌어 리성적인 규범을 생활화하고 피와 살이 있는 인간형상으로 인간을 감화시켜 본보기로 되게 하며 인간의 고상한 구체적행동으로 변화시킨다. 문학은 인간의 기질도 변화시킨다. 문학은 그 자신이 아름답다. 하기에 문학수양을 쌓으면 심적감수가 깊어지며 심적자질이 일층 제고되여 자기승화를 실현하는것이다. 문학적수양이 구비되면 백만장자라도 반감을 느끼지 않게 되고 높은 권력층에 있더라도 관료기질과 거리가 멀어 평민화하며 평백성들의 환심을 얻게 된다. “문학은 인간학이다.”  이는 세인이 주지하는 명제이다. 한것은 문학은 직업을 목적으로 한 학문이 아니라는 의미가 강하다. 이는 또한 수학, 물리, 화학 등 학과들과 달리 높고 심오한 지식을 요구하는것도 아니다. 이 면의 지식이 있고 문학을 열애하고 문학작품을 즐겨 탐독하면 되는것이다. 지구촌에서 로씨야사람들은 문학을 애호하고 문학수양이 높기로 정평이 났다. 로씨야는 도서출판량이 으뜸인데 한때는 전세계도서출판량의 25%를 차지한적도 있다. 특히 고전명작독서량이 가관이다. 불완전한 통계에 따르면 뿌쉬낀의 작품집만 하여도 출판량이 10차에 걸쳐 도합 1000여만조를 초과하였다고 한다. 이는 《뿌쉬낀문집》을 5세대당 한조를 수장하고있다는 얘기다. 한 나라의 국력은 결국 그 나라 인구의 정체적자질의 고하에 의하여 결정된다. 하다면 이 정체적자질에서 문화자질은 기본이다. 이에 우리는 국민들이 문화자질향상에 힘쓰며 문학수양을 쌓도록 인도하는것도 아주 절실한 사안임을 항상 명기해야 할것이다.  (론설위원)  
15    임진년 룡띠해를 맞는 감회 댓글:  조회:3604  추천:0  2012-01-29
새해는 농력으로 임진년, 룡띠해이다. 갑자를 한번 돌았으니 나도 인젠 환갑년이다. 그래서 더욱 감회가 깊다. 올해는 양력설을 쇤지 스무날이 지나면 곧바로 음력설이라 설명절이 련속 들이닥친다. 그래선지 줄곧 명절의 분위기에 푹 빠져있는 상태이다. 친척, 친우를 례방하고 상가를 산책하는가 하면 음식점에서, 술집에서, 노래방 같은 유흥업소에서 설명절의 즐거움을 한껏 만끽하고있다. 이제 음력설을 쇠고나면 정월 대보름이 기다린다. 그리고 “3.8녀성의 날”까지 지나야 새해의 일들을 시작하는것이 인젠 습관이 아닌 습관으로 자리매김한 실정이다. 음력설은 실상 지구촌의 중화권은 물론이고 특히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에서 공동히 즐기는 민족을 초월하고 국계를 초월한 만천하가 공동히 즐기는 전통적인 명절이다. 전통적인 문화습관에 따라서 그 어떠한 정치적색채도 띠지 않고 오직 만물이 소생하는 새봄에 대한 동경, 미래의 생활에 대한 아름다운 축원, 가정과 고향에 대한 사랑, 친척과 친우들에 대한 우정 등 인간본능에서 출발한 순수한 명절인것이다. 여기서는 피부와 종족이 관계없이 모든 인간들에게 접수되는것이다. 설명절은 련휴일과 본질적인 구별이 있다. 련휴일은 공민들에 대한 복리의 일종으로서 일주일간의 사업에서 쌓인 피로를 푸는것이 주되기에 아무렇게나 휴식을 취하면 된다. 하지만 설명절은 의미가 심오한바 풍부한 문화적내포와 민족적정신을 함유하고있는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 민족으로 말하면 응집력을 한결 결집시키게 되는것은 곧바로 설명절로 하나의 문화풍경선을 이루기때문이다. 설명절은 실상 감정을 나누고 마음을 주고받으며 사랑을 베푸는 나눔의 명절이다. 지난 세기 70년대초, 농촌에서 생산대장사업을 할 때이다. 그때는 가정에서 동네에서 서로 돌보면서 누구네가 새해에 무엇이 부족한가를 서로 살피고 돌봐주는것도 주요한 행사였다. 설명절을 앞두고 며칠전부터 동네에서 가장 어렵게 사는 집들을 찾아서는 묵은 년을 여한이 없이 훌훌 털어보내고 즐거운 마음으로 새 년을 맞도록 관심과 배려를 돌리는것이다. 그래서 먼 옛날부터 우리 민족에게는 “담치기”라는 미풍량속도 생겨났으리라. 설명절은 고향을 찾고 온 가정이 단란하게 한자리에 모여서 천륜지락을 향수하는것이 기본이다. 지구촌의 그 어디까지 일자리를 찾아서, 돈벌이를 찾아서 출국한이들도 될수 있는 한 고향으로, 부모곁으로 돌아왔다. 오지 못하는 상황에서 전화를 하고 이메일로 통하고 지어 인터넷을 통하여 화상상봉도 하면서 정을 나누는것이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우리 민족의 인구가 길림성과 흑룡강성에서는 대폭 줄었지만 료녕성을 포함한 국내 거의 모든 지역에서 대폭 증가된것으로 나타났다. 하다면 개혁개방의 물결을 타고 신주의 그 어느 구석이든지, 지구촌의 어디든지, 나갔지만 음력설을 맞아 거지반 집에 돌아온것이다. 뿌리를 찾아온것이다. 먼 옛날 고구려시기나 리씨조선시대에도 우리 민족은 타국의 먼곳에 갔다가도 설명절이면 백방으로 고향을 찾았다. 집안의 웃어른들을 모시는 미풍량속이 지금까지 그 맥을 이어오고있는것이다. 설명절이면 정을 나누는것이 기본이다. 빈손으로라도 고향을 찾아 부모님곁에서 뜨근뜨근한 온돌방에 앉아 토장국에 김치를 찢으면서 소주잔을 기울이고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어간다. 기별없이도 이웃들을 찾아다니면서 이상분들한테 세배를 올리고 술 한잔을 얻어 마시면서 진솔한 정을 나누면 만족이였다. 그리고는 손풍금반주에 기타를 타고 바가지장단에 맞춰 도라지를 추었건만 하냥 즐겁기만 하였다. 그래서 늘 “덜도 말고 더도 말고 설만 같아라”고 말하였던것이다. 설명절의 내포가 이럴진대 최근년간에 문화적색조가 많이 퇴색하였다는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있는것만큼 정성을 다하면 되는것이고 그리움을 해소하고 살뜰한 정을 나누면 그만이건만 돈냄새가 너무 풍긴다는것이다. 그래서 원래 화기애애하여야 할 현장이 서로가 말 못할 억울함과 알륵으로 이가 벌어지고 얼룩이 간다. 내놓는 설선물과 풀어헤치는 돈주머니의 무게에 따라 대접이 달라지는 그런 어설픈 상황이 재현되여 심히 서운하고 서글프다. 혹자는 출국해서 혹은 연해지역에 가서 목돈이나 쥐였다고 통이 크게 내번지는바람에 곁사람들이 불편할 때가 많다. 그에 뒤지지 않으려고 봄농사준비로 마련한 자금을 설에 탕진한 지방의 새내기들도 적지 않다. 우리 민족 전통적설명절문화가 색바래지고 가장 퇴색된것이 바로 세배라 하겠다. 지난날에는 설명절이면 집안에서 웃어른들에게 세배를 하고는 귀밝이술을 받아 마셨다. 그리고 아침 일찍 동네를 돌면서 동네 좌상어른들을 모시고 설세배술을 받아 마시면서 건강장수를 축하하면 덕담으로 젊은이들을 격려하여주었댔다. 헌데 인젠 거의 사라지고 천방야담처럼 들린다. 세배돈도 마찬가지이다. 웃 어른들은 세배값으로 가정을 이루지 못한 자식들에게 자그마한 용돈을 주거나 그렇잖으면 간단한 술상을 차려 한두잔 나누면 고작이였다. 아이들은 상징적으로 받은 세배돈으로 학용품이나 사면 고작이였다. 헌데 지금은 상승세를 타다 못해 어지간해서는 오히려 세배를 시키기 저어하고 세배를 받기도 무섭다. 준비가 없으면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어지간해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어른들은 세배돈을 많이 준것으로 안위하고 아이들은 많이 받으면 어깨를 으쓱한다. 그리고는 마구 탕진하는데 실상 얻는것보다 잃는것이 훨씬 많아서 심히 우려된다. (론설위원)
14    적선지가 필유여경 댓글:  조회:3402  추천:1  2011-10-26
"적선지가,필유여경(积善之家,必有余庆)" 이란 속담이 있다. 동양인들이 가문마다 좌우명으로 삼던 격언인바 그 참뜻인즉 선행을 많이 하면 그 가문에 경사가 남는다는것이다. 이처럼 우리 선조들은 재래로 선량한 마음으로 덕을 많이 쌓는것을 숭상하고 선행하여왔다. 우리는 자선사업을 펼치면서 선량함을 보이고 덕을 쌓으라고 선전하면 흔히 그 무슨 거창한 일을 펼치고 남 보기에도 감복할만큼한 거동을 보이는것으로 오해하기 십상인데 실제는 자그마한 일들이 큰 감동을 주는 경우가 많다. 사소한 일, 자그마한 거동에서도 그 마음을 읽을수 있으면 되는것이다.  우리 신문의 사회면에는 거의 모든 기마다 불우이웃을 돕거나 빈곤학생을 위해 의연한다든가 혹은 무료봉사활동을 펼치는 감동적인 기사가 실린다. 그 형식도 다양하여 거지반 심금을 울리고도 남음이 있다. 사랑은 꽃과 같이 아름답고 보석같이 고귀하다고 시인들은 읊조린다. 이런 사랑은 받는 사랑인것이 아니라 주는 사랑이다. 참된 사랑은 타인에게 행복을 주는것이며 준다는것은 언제나 헌신과 희생을 동반한다. 그래서 더욱 고상하고 돋보이는것이다. 일본에서 다년간 사업하다가 돌아온 친구에 따르면 일본인들에게는 따라배울바가 아주 많다고 하면서 이런 얘기를 하였다.   "에도(도꾜의 옛 이름)의 몸짓" 중에는 뒤에 온 사람이 앉을수 있도록 허리를 들어 조금씩 자리를 당겨주는 일명 "허리들기", 길에서 남들과 부딪치지 않도록 어깨를 오므리는 "어깨 오므리기",  비 오는 날 우산에서 물방울이 떨어지지 않도록 도로쪽으로 우산을 기울이는 "우산 기울이기" 등이 있다. 일상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으려는 몸가짐이라고 하겠다. "화장실 슬리퍼 돌려놓기"도 있다. 화장실에서 나올 때 뒤사람이 슬리퍼를 편하게 신을수 있도록 배려하는 일본인 특유의 몸짓이란다. 그 몸짓은 우리도 배울바가 아주 많다고 생각된다. 다만 일본인들의 그런 배려가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에도 적용되고있느냐는 점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것은 바로 그 마음, 그 정신, 그 풍격인것이다. 바로 일본인들의 "허리들기"  같은 풍격도 국제화, 세계화로 되여 널리 일반화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이 세상은 각양각색의 온갖 사랑으로 차넘친다. 그 형태나 그 내용이 다양하다. 이런 사랑에는 리기적인 사랑, 리해관계로 얼기설기 뒤엉킨 사랑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 핵심은 바로 자기중심주의로서 자기만 챙기는 그런 속된 사랑이다. 타인에게는 피해를 주더라도 자기만 챙기면 되는것이다. 공공장소를 포함한 일상생활현장에서 남을 의식하기보다 자기만 좋으면 된다는 무분별한 행위, 자기밖에 없는듯이 떠들어대며 타인을 무시하는 무례한 행위, 안하무인적인 협애한 인간, 무뢰한들이야말로 실질적교양을 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겠는가! 일본인들을 본받아 그들처럼 신변에서 항상 맞띠우게 되는 사소한 일, 일상적인 일에서부터 마음을 써보기로 하자!  (론설위원)
13    “담치기”는 전통미덕 댓글:  조회:3678  추천:2  2011-09-22
일전에 이름을 밝히기를 원하지 않는 한 자선가가 거금을 해당 부문에 전하여 대학입학생중 빈곤한 학생들을 부조해줄것을 바랐다는 소식이 주내 매체에 실렸다. 청화대학 입학생을 비롯한 대학입학생 다섯명이 등록자금을 해결하는데 큰 보탬이 된것이다. 물론 자선가는 이름도 주소도 밝히지 않고 흔연히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이 뉴스를 시청하면서 순간 뜨거운 그 무엇이 용솟음쳐오름을 금할수 없었다. 이로부터 어릴 때 로인들에게서 전해들은 “담치기”미담이 떠오른다. 먼 옛날에도 우리 겨레들은 해마다 초봄부터 앞만 보고 일에 쫓기다나니 세밑이 되여야 비로소 한해를 돌아보고 이웃도 살펴보는 여유를 갖게 되였다. 그때면 동네 이상어른들은 아이들을 시켜 풍물을 치며 집집이 돌아다니게 한다. 그러면 집집마다 나름대로 쌀자루를 풀어내주는데 이를 모아 로인만 사는 집이나 중병에 시달리는 집안, 가난한 집들을 돌아다니면서 담너머로 곡식자루를 던져주고 간다. 누가 이런 곡식자루를 주고 갔는지 알지 못하였다. 알아도 모른체하였다. 가난한 이웃들이 추운 겨울과 설명절에 배를 곯지 않게 보살피는 이웃정이였다. 도움을 받은 이웃은 후에 춰서면 그 은혜를 배로 갚았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도 불우이웃돕기활동이 수시로 펼쳐지고있다. 회사에서, 단위에서, 기관에서, 무릇 집단이 형성된 그런 곳이면 당연지사로 여겨지고있다. 얼마 입지도 않은 새옷을 내여놓거나 넉넉치 못한 살림에서도 수백원이나 의연하는 아름다운 행동을 수시로 보게 된다. 이렇게 모여진 물자나 성금은 그자리로 도움이 필요한 가정에 전달된다. 참여자들의 진심이 푹 배이고 받는이들도 소박한 기쁨을 느끼는 이런 값진 자선활동은 언제나 광범한 호응을 받는다. 자고로 “베푸는자는 받는자보다 복하다”는 격언이 전통미덕으로 전해내려왔다. 무릇 베푼다고 하면 우선 남을 위하여 그 무엇을 하였다는 즉 다시 말하면 곤경에 처하였거나 원조를 갈망하는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었다는데서 오는 만족감에 자기도취되기에 자기절로 즐거움을 금치 못한다는 얘기다. 받은자는 물론이고 베푼자도 그 순간 한갈래의 따사로운 감정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솟아오름을 감지하게 되는것이다. “남몰래 주는 일”, 이처럼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는 일은 그것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본인 스스로에게 무한한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한다. 더우기 생색을 내지 않고 남몰래, 본인 자신도 모르게 남에게 주는 일은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에게 더 큰 기쁨을 안겨준다.  “남몰래 주는 일”, 실상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런 조건없이 준다는 뜻이다. 그 어떤 계산이나 뒤에 돌아올 보상따위를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선의와 자비와 측은지심으로 돕는다는 뜻이다. 그 고결한 뜻에 하늘이 감동하고 하늘이 움직인다. 이웃간에 서로 물건이나 돈으로 도와주고 자기 힘을 보태면서 어려움을 풀어주고 종이장도 맞들면 가볍다고 하면서 조그마한 편리라도 도모해주는것은 전통적인 거의 본능에 가까운 아름다운 거동이였다. 물론 이는 선행의 일종이지만 오늘날 우리들이 널리 일반화하고있는 자선사업과는 많이 다르다. 오늘날의 자선은 서로 모르지만 조직적인 활동을 통하여 그 무슨 바람도 없이 체계적으로 소리없이 펼쳐지는것이다. 여기서 자선활동참가자들은 그 무엇도 바라는것이 없다. 오직 그 이름모를 상대자가 자극을 받지 않으면서도 어려움을 헤쳐나가기만 바랄뿐이다. 도움줘도 남모르게, 이런 현대판 “담치기”는 정녕 해가 가고 세월이 흘러도 지속적으로 고양하여야 할 우리 민족의 고매한 정신이다. 어려울 때 쌀독을 채워주는 이웃, 온기 없는 집안을 살펴보고 난방시설을 갖춰주는 이웃, 이런 “설중송탄”은 오늘날에 이어서 명년, 후년 이렇게 대대로 이어지리라 믿어마지않는다. 론설위원
12    공성계 댓글:  조회:3969  추천:1  2011-09-07
공성계(空城计) , 글자 그대로 성을 비우는 전술로서 군사작전에서 흔히 쓰인다. 중국 고대의 저명한 군사가 제갈량이 위나라의 대장군 사마의가 거느리는 대군을 대파하고 혼뜨검을 낸 유명한 전술이다. 한때 구라파를 호령하던 나뽈레옹이 로씨야의 모스크바를 칠 때 로씨야의 저명한 군사가 구뜨쪼브가 쓴 화공을 겸한 공성계에 걸려 수백만 대군이 불에 타 죽고 굶어 죽고 얼어 죽고 하여 대패망을 하고 결국 국세가 뒤집힌 사건도 세계전쟁사에 길이 남는다. 이런 공성계가 우리 사회 생활에서도 흔히 볼수 있다. 전 한시기 기관이나 사업단위나 기타 적지 않은 봉사단위들에서 승낙제도가 출범하면서 사업작풍이 큰 전변을 가져왔다. 이는 주지하는바이다. 이처럼 자기가 무엇을 어떻게 하며 결과적으로는 어떤 목표에 도달하며 이를 실현하지 못하면 어떤 책벌을 받는다는 식의 승낙제도는 나으리작풍을 개변하고 관료주의를 극복하고  대중을 위하여 실제적인 일을 하는 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일부는 여기서도 형식주의가 나타나는것만은 사실이다. 너무 구체화하거나 승낙표준이 너무 높거나 너무 많이 하거나 하는데서 텅 빈 승낙이 되는 경우가 흔히 있다. 일부 간부들의 사업작풍문제인것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려는것이 바로 공성계, 즉 텅 빈 공약이 문제이다. 관직에 앉은 혹자는 실적을 쌓고 재빨리 승진하고저 일부러 이런 "공성계"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승낙조건이 아직 구비되지 않았는데도 높은 격조로 승낙하는것이다. 혹자는 타지방이나 형제 단위의 조항은 물론이고 지어 문구까지 그대로 옮겨온다. 그 단위나 그 지방의 특점은 하나도 없고. 그래서 마치도 이런 공약은 연변지역은 물론이고 장춘, 길림에서 내걸어도 되고 황하, 장강을 뛰여넘어 저 멀리 해남도에까지 가서도 맞을법한 그런 "그 어디에도 알맞는 명작"이라 하겠다. 이처럼 "무대랑이 두부를 팔듯이" 억지공사를 한 공약은 "외할미의 넉두리" 처럼 그게 그것이라 아무런 약속력이 없는것이다. 전형적인 당팔고라 하겠다. 해당 일군에 따르면 왕청현은 전 성적으로 펼쳐진 연성환경건설암행검측에서 지난해까지 련속 2회나 1등 보좌에 올랐다고 한다. 지난 몇년간 왕청현에서 투자유치나 도시건설이나 기타 제반 사업이 재빨리 춰선 주요한 조치가 바로 연성환경건설을 잘한것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서 관건이 바로 현정부가 백성들에게 한 승낙공약이거나 기타 청사진이 바로 왕청의 실정에 알맞고 지도일군들이 드팀없이 밀고나간것과 갈라놓을수 없는것이다. 하지만 일부 현시는 그렇지 못하여 지적을 받고있는 실정이다. 실상 연성환경건설을 그처럼 틀어쥐고 또한 검사를 하면 회보전문가들이 회보를 잘하고 눈가림을 잘하여서인지 성적이 괜찮다. 그러나 백성들이 바라는 그런 표준과는 거리가 멀다. 이런 고장은 암행감독을 하고 암행실사를 하면 곧바로 드러난다. 백성들은 이런 "공성계"를 가장 염오하고 이런 텅 빈 공약을 가장 싫어하는것은 십분 자명하다. "장부일언 중천금"이라 하였다. 로백성은 진실만 믿고 실제적인것만 믿는다. 그러니 할수 있으면 승낙을 하고 공약을 맺어야 할것이지만 할수 없으면 할수 없다고 말해야 할것이다. 그래도 백성은 리해를 한다. 그리고 일단 승낙을 하였다면 에누리가 없어야 할것이다. 할수도 있는데 검사도 독촉도 없다면 그것은 텅 빈것이라 안하기만 못하다. 올해도 이제 몇달 남지 않았다. 마지막 분기에 자기가 한 승낙이 어느 정도 실현되고있는가를 잘 점검해보는것도 유익무해하다. 그래서 언급해본다.  연변일보 론설위원  
11    “관리냄새” 적어야 좋다 댓글:  조회:3334  추천:2  2011-08-24
일전에 모 시 한 부문에서 소집한 기층사회감독원좌담회에 참가한적이 있다. 헌데 참가자들의 대부분이 서기나 촌주임이 아니면 향진직속부문의 주요책임자들이였다. 일반 백성대표는 고작 한두 사람이였다. 기층관료일색이 력력하였다. 실상 이런 현상이 수두룩한것만은 사실이다. 개혁개방이 심입되면서 지방이나 기층의 직능부문에서 이를테면 공상, 세무, 사법, 의료위생, 금융, 상업 등 집법부문이나 직능부문 혹은 봉사부문에서 사회감독원을 초빙하여 감독망을 형성하고있다. 사회감독을 강화하고 봉사기능을 높이며 량호한 사회형상을 수립함으로써 사회적효과성과 경제적효과성을 동시에 이룩할수 있는 이런 기제는 확실히 필요하고 필수적이였다. 이런 사회력량을 동원하여 다차원의 감독을 실시하는것은 동시에 부패를 척결하고 방지하는 강력한 수단의 하나이기도 하다. 하기에 역시 개혁개방의 산물이라고도 할수 있다. 사회감독원은 이름 그대로 사회상에서 가장 광범위한 백성, 시민들의 리익을 대표하고있는만큼 응당 사회상에서 정책수준이 높고 의정능력이 강하며 시비가름이 분명한 그런 신분이 있는 인원들로 조직되여야 함은 십분 자명하다. 그러므로 관리색채도 있어야 하지만 그보다도 백성색채가 더욱 강해야 한다. 그 구성원들은 부동한 계층의 사람들을 대표하고 부동한 정보를 장악하고 부동한 사회적경력의 소유자들이기에 감수와 경력이 부동하여 서로 보충하고 서로 빈구석을 메울수 있어야 할것이다. 집법부문이든지 아니면 봉사부문이든지 막론하고 전업과 봉사대상은 다르더라도 그 봉사대상, 대표한 주체가 바로 인민대중인것만은 공성이다. 이것이 바로 사회감독원이라면 “관료냄새” 적어야 좋다고 주장하는 주요한 론거이다. 타방으로는 사회감독기구에서 관료성분이 너무 많으면 자칫 관료화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 만약 감독강도가 무기력하다면 “죽정이기구”가 되는것은 물론이고 조금만 소홀히 한다면 오히려 서로 감싸고 돌고 서로 덕담이나 하면서 한껏 춰주는 용속적인 도구로 전락할수도 있다. 하다면 그 사회영향력은 얼마나 나쁘겠는가 하는것은 알고도 남음이 있다. 상기 현상의 출현은 결코 우연하지 않다. 이런 현상도 그 존재하게 되는 객관적조건과 주관적원인이 있는것이다. 다시말하면 객관적으로는 부패현상의 새로운 형태로서 형식상에서 감독원이지 실상은 서로 편리를 도모하고 서로 감싸주는 그런 반상적인 역할을 하는것이다. 동시에 서로 “좋은 일”을 해주면서 자기리익을 도모하는것이다. 혹자는 주관적으로 진정한 사회감독을 무서워하는 나머지 잘 아는 사람, 친구나 지인들로 자기보호막을 설치하는것이다. 우리 당과 정부의 고매한 형상에 먹칠하는 그런 사회감독망도 반드시 사전에 그 존재를 방지하고 일단 그런 냄새가 난다면 적시에 시정하고 재정돈, 재정비를 하는것이 마땅하다. 오직 이것만이 오염이 없는, 인민대중이 신뢰하는 그런 진정한 사화감독망으로 되여 전사회적으로 조화롭고 화기로운 그런 사회가 구축될것이다. 연변일보 론설위원
10    글짓기를 배우라 댓글:  조회:3704  추천:40  2011-02-10
글짓기를 배우라  -연변일보 론설위원 장경률 주내 모 향에 취재차로 갔을 때의 일이다. 주요 지도일군의 책상에는 최신식컴퓨터, 복사기, 투영기 등 현대식사무시설이 즐비하게 갖추어져있는걸 보고 저도 몰래 탄복이 갔다. 헌데 이런 사무설비들을 문서나 전문일군이 다룰줄이야. 알고보니 그 주요지도일군은 아직 컴퓨터관을 넘지 못하였던것이다. 물론 리해가 갔다. 2년후 다시 그 향에 갔는데 사무시설은 더욱 고급스러운것들로 갖추어져있었다. 하지만 그 주요 책임자는 의연히 컴맹이였다. “왜 아직도 컴퓨터로 글쓰기를 배우며 다루지 않는가”고 물으니 “배울 시간이 없어서 그렇다”고 하는것이였다. 다시 대화를 나누면서 보니 그 지도일군이 말은 변설이였는데 글은 엉망이였다. 그래서 내가 “글짓기도 배우라니. 당신이 사업하는데 크게 도움이 될거요”라고 충고를 주었다. 이는 단순히 이 책임자에게만 권장한것이 결코 아니다. 누가 만약 이런 요구를 한다면 너무나 일반적이라고 일축할지 모르겠다. 당원간부 그것도 지도일군들에게 이런 요구를 제기한다면 케케묵은 론조라고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도 적지 않은 주요한 지도일군들이 말은 버젓하게 하지만 글짓기 특히 문장을 지으라고 한다면 눈앞이 캄캄해 하는이들이 적지 않다. 비서들이 써준 발언고나 읽고 비서들이 준 문건에 회시나 할줄 알지 구체적으로 글을 쓰라면 숙맥이라 숱한 웃음거리를 남기는 현상이 비일비재이다.“지도간부는 붓대를 놀릴줄 알아야 한다.” 일찍 새 중국이 갓 설립된 초기 1950년에 등소평동지는 해방전쟁이 곧 결속되고 전국적으로 평화건설시기에 진입하는 그 력사적전환시기에 전 당의 지도간부들에게  이와 같이 호소하였다. 다시말하면 공부를 하고 글짓기를 배우고 문장을 지을줄 알아야 한다는것이다.  21세기에 진입하여 이미 10여년이 지난 오늘 지식이 폭발하고 과학이 비약의 나래를 펼치고 천변만화하는 현 상황에서도 이 호소는 그 현실적의의가 의연하다.   다른것이라면 오늘날 붓이나 필이 아니라 컴퓨터로 문장을 짓고 핸드폰으로 대화를 하는 IT산업시대에 진입하면서 그 수단이 현대화한것이다. 지도간부가 글짓기를 배우고 문장을 지을줄 안다는것은 그의 총체적자질이 높음을 단적으로 표명해준다. 글짓기를 하고 문장을 펴내자면 우선 학문이 있어야 하고 조예가 깊어야 한다. 자기주장이 분명하고 지식면이 넓고 리론수준이 일정하게 겸비되여야 하는바 그러찮으면 도저히 불가능하다. 정치리론수양이 있어야 하고 정치, 경제, 문화, 철학, 력사, 과학기술, 문학 등 제 방면의 학문에 통하여야 하는바 만약 알둥말둥하거나 머리가 텅 비고 주대가 없다면 이런 지도간부는 실상 자격미달이다. 오늘날 간부들에 대한 시험제도가 갈수록 완벽화되고있다고 하지만 아직도 적지 않은 간부들은 행정사무에 푹 빠져 행정달인으로 자처하지만 실제적인 학문에는 빵점인것이다. 오늘날 IT산업시대에 진입하면서 컴퓨터가 보급된 현 시점에서 컴에 올라 글짓기를 하고 문장을 펴내자면 상당한 수준을 요한다. 특히 문장에 새로운 내용을 부여하자면 반드시 뇌즙을 짜고 사색하고 문구를 다듬으면서 자기 의견과 견해를 분명히 밝혀야 할것이다.  그리고 분석하고 추리하고 관점을 도출하면서 자기주장을 펼치여야 할것이다.  그러느라면 새로운 경지에 이를것인바 자기제고를 가져온다는것은 십분 자명하다. 지도일군이 글짓기를 하고 문장을 펴내는것은 작풍을 개진하고 관념을 전변하는 하나의 과정으로 될수 있다. 체험은 가장 훌륭한 스승이다. 동시에 가장 훌륭한 자기교양, 자기제고의 과정이기도 하다. 지도일군이 직접 결의문을 작성하고 특정보고문을 쓰고 총화자료를 만들면서 뇌즙을 어지간히 짜서는 되지 않는다.  그 와중에 주제를 도출해내고 문자를 다듬고 론리정연하게 문틀을 조직하느라면 몹시 간고한 작업인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정작 일을 끝내고나면 그 즐거움이 한량없다 하겠다.주지하다싶이 우리 당의 로세대 령수들인 모택동, 주은래, 류소기, 주덕 등 이들은 거지반 혁명가인 동시에 리론가이고 문장가들이였다. 이들중에는 시인, 수필가들도 적지 않다. 등소평동지는 90세의 고령에도 친히 필을 들고 “등소평문선(제3권)”을 전부 심열하였다. 오늘날 중앙으로부터 지방에 이르기까지 각급 주요 지도일군들중에도 직접 글을 짓고 문장을 펴내는이들이 많다. 이런 정신과 풍격은 새로운 력사시기에 더욱 고양되고 발휘되여야 할것이다. 그래서 오늘 화제에 올렸다.  
9    명절은 련이어 꼬리를 무는데…(장경률) 댓글:  조회:3822  추천:44  2010-09-16
명절은 련이어 꼬리를 무는데…장경률  연변일보 론설위원방금 9.3명절을 맞아 련휴일까지 3일간 쇠였는데 또 추석이 당금이라 3일간 쇠게 된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면 국경절을 맞아 근 10일간 쇠게 된다. 련이은 명절을 어떻게 즐길가, 어떻게 의미있게 지낼가, 고민이 아닐수 없다.이제 따져 보기로 하자. 양력설부터 시작하여 음력설, 정월대보름, 청명, 단오, 추석 그리고 국경절이 국정명절이다. 여기에 소수민족지역은 자치일을 명절로 하루 더 쇤다. 그래서 련휴일까지 합치면 1년치고 116일이 된다. 헌데 우리 연변지역에서는 명절이 아닌 명절, 명절보다 더 굉장하고 더 즐기는 지방성격의 놀이절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3.8절을 계기로 <<3.8절맞이, 3.8절 쇠기, 3.8절 보내기>>로 3월 한달을 거의 모두 즐긴다. 거기에 6.1절이면 또 학생이 있는 가정에서는 부모는 물론이고 로인들까지 합세하여 대출동한다. 그러니 1년간의 3분지 1, 아니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놀고즐기는데 할애하니 정말 인젠 놀기에도 지친 모습들이다.전통적으로 보나 습관적으로 보나 명절이면 흔히 친척, 친우를 례방하거나 상가를 산책하거나 음식점에서 술집에서 노래방에서 다방에서 그러찮으면 남다른 유흥업소에서 맘껏 즐긴다. 그 재미를 맘껏 보기에 뇌즙을 짠다. 하지만 이런 놀이와 즐김이 인젠 어느 정도 퇴색한것으로 보인다. 인간들이 새로운 그 무엇, 남다른 이색적인것을 추구하기에 골몰하고있는것도 사실이다. 어떻게 하면 전통과 현대가 반죽되고 서로 잘 맞물린 그런것이 없을가?물론 가정상황이 다름에 따라 그리고 시기와 장소 그리고 기타 요소의 제약으로 말미암아 제나름일것이다. 돈 많이 번 부자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경제형편이 넉넉하다면 가족단위로 혹은 친구들과 동아리를 뭇고서 외국려행을 하는 붐이 일기도 한다. 연길시의 경우 등산을 하는것도 일종 풍경선을 이루고있다. 하다면 다른 나라들은 어떨가? 바다건너 일본같은 나라에서는 명절이나 주말 혹은 휴가기간이면 농촌을 찾아가는 <<그린투어리즘(록색관광)>>이 널리 보급되고있다. 영국, 프랑스, 스웨리예 등 서방의 선진국들에서는 명절이나 휴가에는 농촌에 찾아가서 지내는것이 오랜 전통으로 자리매김하였다. 그 력사도 오랜것이다. 한국같은 이웃나라에서도 <<농촌찾기휴가>>라는 새로운 휴가문화가 한창 흥기중이라고 한다.메마른 도시환경에서 고리타분한 생활에 푹젖어 명절을 허송하지 말자. 도시인들에게는 더없이 감미롭고 정서적인 농촌현지 대자연속에서의 생활체험이 자못 의의가 있다. 장기간 도시에서 근무한 년장자들에게는 그렇게 넉넉한 인심에 다정다감하였던 농촌에서의 개구쟁이시절의 친구를 찾고 그들과 한잔을 기울이면서 그젯날의 회포를 나누는것은 더없이 즐거운 시간이 될것이다. 색다른 음식만 있으면 서로 날라가지고 다니던 이웃, 조그만 일이라도 있으면 서로 허물없이 도움을 청하던 그젯날의 얼굴들을 찾는다는것도 일종 무한한 쾌락이 아닐수 없다. 그리고 틈만 있다면 잠간이라도 농사일을 거들거나 그 무슨 고충을 들어 준다거나 그러찮으면 옛정담이라도 나눈다면  도시인들과 농촌인들간의 거리가 한결 가까워질것이 아닌가. 명절의 대폭 증가와 련휴일제도의 출범은 모종의 의미에서 말하면 대중의 소비를 자극하여 경제발전을 추진하기 위한 전략적방침이기도 하다. 따라서 상기제도의 실시와 함께 전국적으로 명절소비경제, 휴가일경제가 새로운 경제생장점으로 급부상하였다. 연변지역의 경우 대도시나 연해 지역에 비하여 손색이 가지만 그래도 이미 상당한 규모를 이루고있는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명절소비경제와 휴가일경제를 경제일반의 총체적발전간의 유기적관계를 잘 처리하고 잘 접목하여 국민들의 소비잠재력을 효과적으로 발굴할것이 요청된다. 민중이 소비심리, 부동한 년령, 부동한 계층의 소비욕구를 연구하고 소비관념을 적극 인도하는것을 선차적과제로 삼아야 할것이다.명절마다 내포가 다르고 아주 풍부하고 특점이 뚜렷하다는데 류의하고 그에 따른 소비잠재력을 발굴하는것도 필수적이다. 그에 대한 내용을 잘 음미하고 터득하면서 관광제품, 명절소비품을 개발한다면 소비자들이 즐겨 돈주머니를 풀것이고 명절도 한결 즐거워질것이 아니겠는가!
8    지도자의 자본 (장경률) 댓글:  조회:3232  추천:60  2010-07-20
  지도자의 자본장경률 연변일보 론설위원《지도자의 자본》이라고 명제를 달고보니 먼저 떠오르는것이 얼마전 연변대학 김병민교장과 인터뷰를 하면서 그가 우리에게 한 명언이다. 김병민교장은 《대학교장에게서 가장 중요한 자본은 바로 최고위교수들로 이루어진 교수진영이다》고 하면서 《연변대학교 제1책임자로서 지난날은 물론이고 지금도 앞으로도 드팀없이 최고급인재들을 영입하여 적재적소에 등용함으로써 가장 우수한 학생들을 양성해내는데 최선을 다할것이다》고 표하였다. 그의 이 말은 제시하는 바가 많은바 의미심장하다.우리들은 그 무슨 일에서 결과를 얻으려 하거나 그 무슨 사업에서 성취를 이룩하고저 한다면 선차적인 요소가 바로 충족한 자본이 안받침 되여야 가능하다. 자본이란 경제적시각에서 말하면 잉여가치를 낳는 가치 다시 말하면 잉여가치를 짜낼 목적으로 생산에 들이미는 생산수단이나 돈을 이른다. 그렇다면 사회적시각이나 정치적시각에서 풀이하여도 다름아닌 그 무엇을 이룩하고저 먼저 축적하고 사용하는 밑천일것이다.지도자들도 례외가 아니다. 지도자가 사업실적을 쌓자면 반드시 충족한 밑천이 기본이다. 이런 밑천에서 가장 첫째가는 자본은 무엇일가?혹자는 권력이다고 말한다. 소위 《권력이 있으면 모든것이 있고 권력을 잃으면 모든것을 잃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권력이 있다고 하여 결코 모든것이 있는것은 아니다. 권력이 있어도 얻지 못하는것이 많다. 하기에 지도자로 말하면 사업성공에서 권력이 필수적이지만 절대적인것은 아니다.혹자는 금전이라고 말한다. 금전만 있으면 많은것을 얻을수 있는바 부패한 사회에서는 관직도 사고팔수 있지 않는가. 그러나 결코 사업의 성공은 살수 없는것이다. 만약 금전으로 휘황한 업적을 포함한 모든것을 살수 있다면 천하를 얻은 황제가 바로 가장 성공적인 지도자일것이다. 헌데 력사의 변증법은 그렇지 않았다. 력사적답안은  고금중외에서 가장 권위적인  결론이다.중화의 사책을 번져보면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고 세운 진나라가 망한후 항우가 세운 초나라와 류방이 세운 한나라가 천하를 놓고 싸웠었다. 이는 실상 한차례 두 나라의 지도자간에 리더십의 겨룸이기도 하였는바 결과적으로 평민백성출신인 류방이 이기고 그후 한나라의 500년 집권초석을 다졌다. 천하를 통일한 류방은 경축연에서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결론적리론을 폈다. 《장막안에서 흭책하면서도 천리밖의 승리를 이룩하는데서는 장량보다 못하다. 바른 정사를 펴서 나라를 안정시키고 백성을 안무하고 군수품을 조달하고 군량이 막힘없이 보장하는 면에서 나는 숙하보다 못하다. 백만대군을 호령하여 싸우면 반드시 승리하고 보루는 반드시 격파하는 면에서 나는 한신보다 못하다. 이들 3인은 모두 세인이 알아주는 엘레트들이다. 나는 이들을 능란하게 등용하였는바 이들이야 말로 내가 천하를 얻는데서 자본이였다. 항우는 범증 하나뿐이였지만 그것마저 잘 등용하지 못하였기에 실패한것이다.》여기서 우리는 법칙적인 인식을 도출할수 있다. 곧 바로 《천리마 10필을 얻는것은 백락 한명을 얻기보다 못하고 보검 10자루를 얻는것은 그 보검을 만든 야장 한명 얻기보다 못하다》,《나라를 다스리는 비결은 바로 현인을 천거하는것이다》는것이다.그럼 무엇 때문에 인재의 발견과 등용이 이처럼 중요한것일가?력사유물주의는 이렇게 지적한다. 인민대중은 진정한 력사발전과 진보의 근본적력량이다. 하기에 재래로 《민심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고 하였다. 하지만 력사 발전과 진보는 결코 인민대중의 자발적행동으로는 이룩될수 없다. 인민대중은 오직 엘레트들에 의하여 조직되고 흭책되고 령도되여야 할것이다. 력사의 흐름을 이끌어가는 리더집단으로 말하면 또한 인민대중의 강력한 믿음과 지지가 필수적이다. 동시에 반드시 짚고넘어가야 할것은 이런 엘레트들로 무어진 리더집단은 극소수라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진정 가장 훌륭한 인재들을 찾기 힘든 원인일것이다.타방으로 엘레트들도 각종 이런저런 조건의 제한으로 하여 흔히 그 빛을 진정으로 맘껏 발휘하지 못하고있는것도 사실이다. 력사는 이 점을 항상 귀뜸하고있지만 우리는 흔히 이 가장 중요한 점을 도외시하고있는것이다. 하기에 한마디로 귀납하여보면 가장 강력한 자본실력을 소지한 지도자는 바로 훌륭한 엘레트들을 적시에 식별하고 적재적소에 등용하는 그런 《백락》일것이다. 이런 지도자들이야말로 사업에서 성공하는 그런 현명한 지도자인것이다. 오늘날 세계1류의 강국을 건설함에 있어서 우리 각급 지도자들은 그 지위가 여하든간에 하는 일들이 무엇이든지간에 상기한 도리를 항상 명기해야 할것이다.
7    룡정, 중국조선족 "성지"로 거듭나야 댓글:  조회:4055  추천:57  2009-09-18
룡정,중국조선족 "성지"로 거듭나야      —중국조선족민속문화도시건설 필요성에 대한 사고  장경률 연변일보 론설위원  룡정은 중국에서 우리 민족이 가장 일찍 개척하고 개발한 지역, 따라서 가장 많이 집거한 구역으로서 조선족인구가 12.3만여명, 총인구의 66.4%를 차지한다. 하기에 룡정은 력사적으로 정치경제적면에서나 민속문화적면에서도 우리 민족의 발원지, 우리 민족의 근거지로 손색이 없으며 <<성지>>로 불리우고있다. 아랍인들의 성지 메카, 유태인들의 성지 예루살럼처럼  중국조선족에게는 룡정이 가지는 의미가 거기에 못하지 않다하겠다. 하다면 새로운 력사시기에 격변하는 시대의 조류에 부응하면서 중국조선족의 성지 다시 말하면 고차원의 중국조선족민속문화도시로 거듭날수 있을가? 대답은 긍정적이다. 하다면 그 필요성부터 구명하는것이 선차적이다.룡정만의 자원, 우세 룡정은 력사가 유구하고 물산이 풍부하고 재래로 영걸이 운집하여 성스러운 고장, 살기좋은 락원으로 세인을 매료하고있다. 그만큼 자기특점이 도드라졌다는것을 말해준다. 룡정은 조국의 동부변강 두만강의 중류지역에 위치하여 지정학적으로 노란자위지역이다. 조선과 이웃하고서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변경선이 142킬로메터 늘여져있다. 삼합, 개산툰 두개 국가1급통상구를 가지고 있으며 조선의 회령, 온성 등 도시들과 마주보고있다. 룡정은 력사가 유구하고 민속문화와 풍속이 가장 완정하게 보존되고 계승발전되고있는 고장이다. 중국조선족은 여기 삼합이나 개산툰으로 천리두만강을 건너서 룡정에 가장 일찍 정착하고 개척하였다. 그 견증물로서 공화국창건이후 보호되고 계승, 창조된 진귀한 문화유적과 찬란한 민속문화유산들인 룡정우물지명기원지, 일송정, 명동학교유적지, 대성중학교유적지, 주덕해생가, 저항시인 윤동주생가, <<3.13>>반일운동렬사릉원, 15만원탈취유적지, 민속문화유물 3000여건을 소장하고있는 중국내에서 가장 일찍 꾸려진 민족문화박물관인 룡정조선민족문화박물관 등이 룡정의 력사를 견증하고 자랑하고있다. 룡정은 산천이 수려하고 자원이 풍부하고 풍요로운 고장으로서 독특한 자원잠재력을 소유하여  민속문화도시발전의 튼실한 물질적조건과 경제적토대를 제공하고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광물자원은 30여가지에 달하며 특산자원은 이루 헤아릴수 없다. 천평벌의 어곡미를 룡두로 하는 록색입쌀 그리고 길림성8대곡창의 하나로 불리우는 세전이벌, 연변특유의 <<화전자담배>>를 비릇한 잎담배기지, 세상에 널리 알려진 연변황소와 길림성에서 가장 큰 인공곰사양기지, 세계 최대의 사과배기지인 만무과원은 모두 자랑거리이다. 국무원은 1995년에 룡정을 <<중국사과배의 고향>>으로 명명하였다. 더구나 국가급자연보호구인 천부지산은 생태가 완정하여 살아 숨쉬는 명산으로서 천혜의 보물고이다. 여기서 나는 송이버섯은 희귀식용버섯이자 약재로서 세인이 알아주는 건강식물이다. 룡정은 경제사회발전정책의 독특한 우세와 기타 많은 우월한 조건도 구비하고있다. 서부대개발과 동북로공업기지의 특수부축정책을 향수하고있는 외에도 국가급빈곤부축개발중점대상정책, 국가급무역현과 <<흥변부민행동>>중점현정책 등도 향수한다. 특히 장길도개발개방선도구전략과 연룡도일체화전략가운데서의 한극을 형성하면서 특수우대정책을 향수하고있는것이다. 룡정 중국조선족민속문화도시로 거듭나야 룡정이 중국조선족민속문화도시로 새로운 차원에 부상하며서 거듭나야 하는것은 우리 겨레 사회의 필수이자 중화민족대가정에서 새로운 시기의 력사적과업이며 동시에 룡정 자신의 필수적인 수요라고 할수 있다. 곧바로 룡정인민들의 자체적요구라는것이 더욱 적절하다. 우선 중국조선족민속문화를 보호하고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절박한 수요이다. 지난 시기 특히 문화혁명시기의 10여년간의 동란을 겪으면서 중국조선족전통문화가 아주 많이 소실되고 퇴색하였다. 지어 한때는 완전히 말살되여 언급조차 할수 없는 상황이였다. 그 영향이 그 이후의 수십년간 오늘까지 지속되고있는것도 사실이다. 이는 주지하는바이다. 하지만 아직도 그 긴박성, 절실성에 대한 인식이 아주 결핍하다. 특히 적지 않은 간부들 특히 조선족간부들을 포함하여 마치도 강건너 불보듯하고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걸로 착각하는 현상이 엄중하다. 그 혜택을 보면서도 대체 무슨 판국인지를 모르는 이들이 적지 않으니 정말 우려가 되지 않을수 없다. 동시에 외래문화의 충격도 만만찮다는것이다. 이로서 중국조선족특유의 민속문화지킴이 중대한 력사적과업으로 대두함은 십분 자명한 일이다. 타방으로 룡정이 중국조선족민속문화산업의 차원을 급격하게 승화시켜야 하는 시대적사명을 지니고 있는바 이는 동시에 룡정자신의 절박한 수요이기도 하다. 룡정시가 지금 추진하고있는 조선민족민속문화도시건설은 조화로운 사회를 건설하고 경제건설에 접목하면서 룡정의 새로운 진흥을 시도하는데서 전략적의의를 갖고있다. 이는 조선민족문화의 지속적발전과 부흥을 위한것으로서 문화주도권을 념두에 두고 진행되는 고차원의 정부와 민간의 공동한 청사진으로서 연변지역 나아가 중국조선족사회의 발전에 크낙한 일익으로 될것은 십분 자명하다. 다음 룡정은 중국조선족민속문화도시로 거듭 날수 있는 현실적토대와 기본조건을 구비하고있다. 재래로 룡정은 중국내에서 조선족이 가장 많이 집중된 지역으로서 전통적조선족민속문화를 가장 완정하게 보존하고 계승하고 발전시켜왔다. 따라서 조선족민속문화가 가장 풍부하고 가장 집중되고 가장 정채로운 도시로서 민족적특점, 시대적특점이 가장 선명하다. 이를 토대로 오늘날 룡정에서는 해마다 송이버섯축제, 사과배꽃축제, 농부절(백중절), 모내기축제, 연변황소절 등 각종 축제와 기념행사를 활발하게 펼치고있다. 이런 축제에는 민족문화, 민속습관, 음식오락, 가무예술 등을 명절문화와 각종 제 방면에 집대성하여 우리 민족특유의 대행사, 대축제로 성공적으로 전개하고있다. 이런 축제에서는 민속놀이가 주도되고 그네, 널뛰기, 윷놀이 등 다채로운 민족문화활동이 시대에 알맞게 재편성되여 새롭게 등장하여 세인을 매료하고있다. 이런 룡정특유의 조선족민속문화은 광범한 동질성과 흡인력으로 중국조선족의 성지로 거듭날수 있는데 튼실한 여건과 기초로 되고있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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