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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철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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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선족수리’□ 신철국 댓글:  조회:520  추천:0  2019-03-22
미혹과 매혹의 경계를 뻔질나게 드나들던 아들녀석이 결국 혹애의 나락으로 깊이 추락할줄은 전혀 뜻밖이였다. 그 ‘사람 한번 미치게 하는 잔디밭운동’-축구에 말이다! 가뜩이나 학습부담으로 운동이 부족한 고중단계에 좋은 휴식의 방편을 얻었답시고 초기엔 쾌재를 불렀으나 시나브로 녀석이 축구에 아주 주화입마(走火入魔)의 증세를 보이는데는 저으기 근심과 걱정이 치고 박지 않을 수가 없었다. 최대 관심사인 연변축구팀의 관련 뉴스를 일일이 체크하는건 둘째 치고 국내를 넘어 국외 축구상황에까지 무한정 촉수를 뻗쳐나가는데는 생각 밖의 저쪽이였고 거기에 동아리를 무어 각종 장비로 무장하고 정기적인 활동을 펼쳐나가는데는 아차! 해도 이미 쏟아진 물이였다. 오히려 궐자가 싸구려축구화 때문에 망신만 당했다며 감각 무딘 부성애를 호소하는데는 당장 인터넷 쇼핑몰에 들어가 고급축구화 한컬레를 사주는 도박사적인 용기까지 과감히 동원해야 했다. 세상에 자식을 이기는 부모가 없다고 하더니… 헌데 그놈의 축구화가 고작 열흘도 가지 않아 코등이 따질 줄이야! 단통 짝퉁으로 의심을 했으나 이제 와서 물릴 수도 없는 노릇이요, 그렇다고 해서 던질 수도 없는 ‘발그릇’이라 하는 수 없이 눈을 흘기는 아들놈 대신 신기료장수를 덜레덜레 찾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안해가 알려주는 시장통 뒤골목에 들어서니 이런저런 생활용품들을 닥치고 수선하는 난전과 가게들이 즐비하게 늘어섰는데 그중에는 내가 찾는 신기료장수들도 여럿이 포진해있었다.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다가 마분지 쪼박에 ‘조선족수리’라고 쓴 신기료 난전이 보이 길래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는 선조들의 말씀이 떠올라 그리로 향했다. “어서 오십쇼!” 뒤굽이 가느다란 녀사용 뾰족구두에 열쌔게 기름칠을 올리고 있던 40대 초반의 상고머리 아저씨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간질간질 웃는 얼굴에 먹이 쫓는 수탉처럼 제창 고개를 갑삭거리는 품이 마치 당신 할아버지의 신이라도 내민양 금세 공짜로 수선해줄 그런 기색이였다. “축구화잼까? 어찌 됐음까? 자, 이리 주쇼. 내 좀 보기쇼. 오, 여기 코등이… ” 손을 보던 녀사용 뾰족구두를 한쪽에 밀어두고 내가 내민 축구화부터 이리저리 살펴보던 상고머리가 곧 기계를 덜커덕거리며 구두수선에 달라붙었다. 보매 시시부레한 공사라 굳이 허리까지 구부정해가지고 열심히 지켜볼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일단 난전 앞에 놓인 손님용 쪽걸상에 엉뎅이를 붙이고 앉았다. 어쭈, 편안히 엉뎅이를 붙이고 앉으니 뭔가 버릇처럼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요즘 세월 무슨 초면인사 같은 그놈의 한마디가 말이다. 그래서 심심파적으로 지나가는 물음처럼 툭! 하고 던져보기에 이르렀다. “아저씬… 한국에 안 가요?” “한국?” 상상외로 상고머리가 힐긋 나를 스쳐보더니 엉뚱하게 반문했다. “남조선 그램까?” “남조선?!” 어랍쇼! 불각시에 한방 죽 떠먹은 기분이였다. 하긴 중한수교 전에는 다들 그렇게 부르지 않았던가. 결코 틀린 말도 아니였기에 옳다는 양으로 고개를 끄덕였더니 이번에는 코방귀를 살짝 곁들인 이른바 ‘썩소’를 피식거리는 것이였다. “누기나 거기 간다구 해서 다 덕대돈을 버는건 아니잼둥? 여기서두 잘만 일하믄 먹구사는건 근심없습꾸마. 거기 가믄 돈을 잘 번다고 해두 노라리는 어디 가나 매한가집지. 목에 떡함지를 처달아두 게으른 놈은 굶어죽는다는 말이 있잼둥.” 그러면서 상고머리는 낮은 소리로 재빨리 소곤거리는 것이였다. “내 낮에는 신수리를 하고 저녁에는 다른 일을 한다꾸마.” “?” 일시 얼빤해가지고 상고머리의 면전에 물음표를 날리는데 궐자가 기다렸다는듯 씨익 뒤를 다는 것이였다. “사우나에 가서 둬시간씩 때밀이를 하는데…” “때밀이?” “내 하루에 얼매 버는지 암둥?” “얼매를?” 상고머리가 당장 입귀를 삐죽거리더니 ‘지난해 대학동네에다 120평방메터짜리 새 아빠트를 마련하고 차도 한대 새로 뽑았다’며 시뚝해서 내 등뒤를 가리키는 것이였다. 고개를 돌려 상고머리의 손끝을 따라가 보니 멀지 않은 주차장 끝머리에 멋진 승용차 한대가 기세등등해 서있는 것이 아닌가. “남조선이 무슨… 여기서두 잘만 하믄 부러울게 없습꾸마. 아임둥?” 빈정거림 같은 상고머리의 올곧은 말에 나는 그저 할 말을 잃고 고개를 주억거리는 수밖에 없었다. 제딴에는 신수리로 생계를 유지하는 인생이 보기가 참 안돼서 걱정하듯, 권고하듯 꺼내본 화두였는데 오히려 빗나가도 한참을 빗나갔으니 말이다. 말한 본전은 커녕 새로 할 말마저 잃어버린 채 머쓱해서 앉아있는데 상고머리가 수선을 끝낸 축구화를 쓱 내밀었다. 뭔가 면구스러워 얼른 자리를 뜰 생각에 급급히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 지갑을 찾으며 수선료금을 물어보았다. “25원임다.” “뭐?” 어마지두 터지는 내 물음에 상고머리가 그런 반응이 나올줄을 미리 알았다는듯 입이 삐죽해서 부연하는 것이였다. “축구화는 원래 비싼 신이길래 오래 전부터 이 가격임다.” 호주머니를 뒤져보니 수선료금을 지불하기에는 현금이 부족했다. 할 수 없이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상고머리가 인차 자기의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위챗 금액지급 프로그램을 리용해 수선료금을 지불하자 상대방의 이름이 금세 내 스마트폰 형광막에 떠올랐다. “‘후건신(候建信)’! 뭐야?” 순간 나는 멍해졌다. 이건 뻔할 뻔자, 타민족 이름이 아닌가? “당신… 조, 조선족이 맞소?” 내가 스마트폰에 현시된 이름과 상고머리를 번갈아보며 의아한 눈길을 던지자 상고머리가 곧 능갈맞게 히히 웃더니 “맞심다! 맞심다!”하는 것이 아닌가. 마치 불량기가 있는 소년한테 은근슬쩍 엿 먹은 기분이였다. ‘짝퉁 축구화, 짝퉁 조선족, 짝퉁… ’ 그때였다. 저쪽으로 삐익 돌아앉아 녀사용 뾰족구두에 계속해서 기름칠을 올리고 있던 상고머리가 무슨 변명처럼 중얼거리는 것이였다. “자기게라구 해두, 아무리 좋은게라구 해두 던지거나 쓸줄 모르믄 쓸데 없지무. 남의게라두 잘 배워서 제대로 쓰문 좋은게 아임둥?… ” 찰찰 기름기 도는 우리 말 솜씨보다 어딘가 서투른 바늘솜씨로 징검징검 수선 받은 짝퉁축구화를 내려다보며 나는 그만 그 자리에 멍하니 그루 박히고 말았다. 불쑥 오래전부터 즐겨 써오던 사투리를 언제부터인가 써오지 않았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순간 볼멘소리 한마당이 혀끝에서 사투리로 미끌거렸다. “글쎄 ‘한국’이나 ‘남조선’이나 다를게는 없지만, 그렇다구해서리 ‘조선족수리’는 말로만 하는게 아이재이유? 그러챈소? 제, 와늘 제맘대리구만!” 연변일보 
1    심금의 이중주 댓글:  조회:673  추천:3  2014-04-10
아빠는 올해 《3학년 6반(36세)》입니다. 그런데 아기와 같습니다. 아기들처럼 《응가》랑 받아내야 하기때문입니다. 왜냐고요? 허리가 불편한 아빠는 걸어다닐수가 없답니다. 그래서 매일 누워계십니다. 모레면 내 생일이니 저렇게 침대에 누워계신지도… 벌써 2년입니다. 6월 8일, 그러니까 2년전의 내 《응아날(생일날)》, 아빠는 늦은저녁에 생일단설기를 사오다가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구급차에 실려갔던 아빠는 다행히 우리곁으로 돌아오셨지만 저렇게 아래몸을 움직일수가 없게 되였답니다. 아빠는 원래 롱담도 잘하시고 때로는 트럼프장이랑, 유리알이랑 가지고 마술도 잘했습니다. 그런데 사고를 당한후부터는 롱담이랑 웃음이랑 뒤전입니다. 저와 별로 말도 하지 않습니다. 내가 어쩌다 마술을 보여달라고 응석을 부려도 묵묵부답입니다. 나는 그런 아빠가 싫습니다. 점점 두렵습니다. 글쎄, 하늘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별 방법이 없습니다. 구린내랑, 지린내랑 풍겨도 용하게 참아야 합니다. 저분이 아빠고 나 또한 남자이기때문입니다. 할머니가 자주 말씀하시는 《칼》 찬 사내애. 헤헤… 앗! 그런데 말입니다. 이상하게도 아빠는 오늘아침 내내 즐거운 표정입니다. 미풍이 산들거리는 날씨에 또 일요일이니 나는 아까부터 엉뎅이가 근질거리지만 아빠는 절대로 그래서가 아닐것입니다. 왜냐고요? 헤이, 나는 잘 알고있습니다. 쉿― 바로 오늘아침 한국에 간 엄마가 전화를 걸어왔기때문입니다. 아주 까맣게, 오랜만에 말입니다. 2 크큭― 나는 지금 웃고있다. 바보처럼 킬킬 웃고있다. 발치에서 숙제하는 아들녀석이 수상하다는 눈빛이지만. 아, 오늘에야 나는 드디여 안해에게서 그 말을 듣게 되였다. 얼마나 기다렸던 말이였던가. 언젠가 꼭 나오리라 기대했던 그 말! 언제면 나올가 가슴이 두근거렸던 그 말! 정말이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이름할수 없는 흥분과 격동으로 가슴이 뭉클했고 하마트면 왈칵 눈물을 쏟을번했다. 크큭― 오늘에야 나는 드디여 깨달았다. 진작 망설임이 없이 밀고 나가야 했을 일을 나는 왜 굳이 오늘까지 미적거려야 했던가? 그래 귀밑머리에 서리가 내린 어머님때문에? 아니면 소학교 3학년인 아들애때문에? 아니였다! 그게 아니였다. 죄다 안해때문이였다. 꼭 내 허리를 치료한다며, 허리를 치료하여 옛날의 나를 찾아온다며 분연히 한국으로 떠난 안해의 약속때문이였다… 그런데 오늘 안해에게서 드디여 그 말을 듣게 되였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심장이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 쿡― 저도 몰래 쓴웃음이 나왔고 오랜만에 들어보는 안해의 구성진 울음소리에 가슴이 후련했다. 아, 드디여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을 깨닫게 되였으니… 3 아빠가… 왜 자꾸 저렇게 웃고있을가요? 이상합니다. 오랜만에 걸려온 엄마의 전화지만. 오늘아침, 공교롭게도 할머니께서 출근하자마자 엄마의 전화가 왔습니다. 할머니는 지난해 봄부터 《로년활동실》에 출근합니다. 엄마가 한국으로 간지 한달이 채 안되여서부터입니다. 할머니는 그곳에서 커피랑 타주고 라면이랑 끓여줍니다. 언젠가 내가 가보니 그 《로년활동실》에는 이상하게 할아버지랑 할머니랑은 없고 대신 젊은 아저씨와 아줌마들이 가득했습니다. 끼리끼리 앉아서 마작을 쌓고있었는데 백원짜리 지페들이 수시로 오갔습니다… 오늘아침 엄마는 먼저 전화 받은 나보고 《공부는 잘하니? 할머니의 고장난 휴대폰은 수리했니? 아빠의 병세는 어떻니?…》련속 물었습니다. 나는 엄마와 더 오래 말하고싶었지만 아빠가 기다리는것 같아 얼른 수화기를 바꿔드렸습니다. 엄마와 통화하는 아빠의 기색은 옛날과 다름없었지만 전화를 놓은후 저렇게 자꾸 바보처럼 웃고계십니다. 웬 일일가요? 진짜 나처럼 오랜만에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즐거워 저러는것일가요? 하여튼 지켜봐야겠습니다… 지난 금요일오후, 학급 주제활동시간에 선생님은 우리한테 어떤 꿈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잠을 자면 볼수 있는 그런 꿈이 아니라 리상을 말입니다. 손을 든 애들은 모두 한가지씩 말했는데 나는 두가지나 갖고있었기에 감히 손을 들지 못했습니다. 나는 지금 아빠의 발치에 앉아 그때 그 말 못한 리상을 작문숙제로 쓰고있습니다. 《나의 리상 나의 리상은 두가지입니다. 첫번째 리상은 경찰입니다. 경찰이 되여서 내 생일날에 아빠 허리를 쳐놓고 도망친 그놈을 붙잡는것입니다. 두번째 리상은 의사입니다. 이름난 의사가 되여서 아빠의 허리를 치료하는것입니다. 이전처럼 다시 나하고 줄뛰기랑 축구랑 할수 있게 말입니다. 그런데 나는 이 두가지 리상때문에 머리를 앓았습니다. 두가지를 다 실현할수 없다고 생각했기때문입니다. 왜냐 하면 하나는 하늘이요 다른 하나는 땅이였으니깐요. 오래동안 머리를 앓다가 엊저녁에야 텔레비죤에 나오는 경찰영화를 보고 알았습니다. 될수 있는 방법을 말입니다. 그 방법이라면 바로 법의―경찰의사가 되는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몹시 기뻤습니다. 나는 이 리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더욱 열심히 공부할것입니다.》 4 《왜 사는지… 점점 힘드네요.》 안해는 분명 전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래 힘들것이다. 당연히! 남자들도 힘든 한국로무에 녀자가… 아무리 식당일이라고 하지만… 안해의 눈물 섞인 하소연을 듣는 순간 난 심장이 부서지는듯했다. 그만 울컥― 하고말았다. 내가 교통사고만 당하지 않았어도… 어허헛. 그동안 안해는 내 치료비를 대느라 동분서주했다. 결국 한국에까지 나가야 했다. 이 못난 병신을 살리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내 허리는 인젠 가망이 없다는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있다. 그러니 진작 결단을 내렸어야 했다. 헌데 나는 왜 오늘까지 주저했던가? 사내구실도 아빠구실도 아들구실도 못하는 병신주제에 무슨 행복을 더 줄수 있다고… 그래서 나는 《살기가 힘들다》는 안해의 말이 반가왔고 더없이 기뻤다. 안해가 이 세상을 살아가기 힘든건 바로 나때문이였으리라. 살아있다고 해도 시체와 다름없는 이 병신! 어머니와 안해와 아들에게 짐만 되고 괴로움과 슬픔만 안겨주는 이 괴물! 그래 이 세상에 어느 녀자가 이런 병신괴물하고 한평생을 같이 살겠는가?!… 자, 이제 결단을 내리자. 사내답게, 어서! 5 이상한데?… 아빠는 인젠 웃지 않습니다. 갑자기 심각한 표정입니다. 《응가》를 보려고? 아니면 《쉬》를 하려고? 뚫어져라 천정을 바라보며 두눈을 슴벅이는걸 보면 그런것 같지도 않고… 뭔가 깊이 생각하고있는 기색입니다. 전화에서 엄마가 아빠한테 무슨 말을 했는지 참 궁금합니다. 아빠는 그냥 가담가담 《응》, 《그래》, 《알았다》, 《몸 잘 챙기고》, 《나는 괜찮으니까》란 말만 하셨습니다. 엄마가 무슨 말을 하셨길래 아빠가 저 혼자 자꾸 웃더니 지금은 또 저렇게 체육선생님처럼 딱딱한 표정으로 뚫어져라 천정만 쏘아보고있을가요? 내가 어제 하학길에 아래집 민이하고 싸운 사실을 눈치라도 챈것이 아닐가요? 나보다 키가 큰 민이가 어제 나를 아빠의 대소변을 받아내는 《하수도》라고 비웃길래 그만 부아가 나서… 입술에 묻은 코피는 싹 닦고 들어왔는데? 그래도 나는 민이보다 열배 아니 백배, 천배가 낫습니다! 민이의 아빠 엄마는 한국에 나간지 여러해 지나도록 한번도 온적이 없답니다. 우리 학급에 그런 애들만 해도 11명이나 됩니다. 그들과 비하면 나는 아무리 대소변을 받아내도 좋기만 합니다. 아빠곁에 누우면 밤이 되여도 무섭지 않으니깐요. 자꾸 싫은 냄새가 풍겨와 기분이 좀 그렇기는 하지만… 6 수면제… 그렇다. 저 창턱쪽 책장안에 있는 수면제를 어떻게 하면 손에 넣을수 있을가? 여기서 고작 열발자국이면 가닿을 거리를 나는 심각하게 고민한다. 억지로 기여갔다 해도 책장앞에 가서는 일어설수 없다. 수면제와 내가 늘 먹는 약들이 저 책장안 웃쪽켠에 보란듯이 진렬되여있지만. 아들애가 갖다주었으면 좋겠는데 《그 일》이 있은 다음부터 할머니의 허락 없이는 절대 가져오지 않는다. 지난해 안해가 한국에 무사히 도착했다고 전화가 왔던 날, 나는 수면제를 다량 복용했었다. 하지만 결국 어머니에게 발각되여 구급차에 실려갔고 다시 이 괴로운 세상에 돌아와야만 했다. 휴― 저걸 어떻게 하면 손에 넣을수 있을가? 아들애를 시킬수 밖에 없는데… 다른 방법은 없을가? 오, 맞다! 그렇지, 아들애가 좋아하는 마술을 보여준다고 하자. 저 약병들을 가지고말이다. 그다음 슬쩍 한병을 감춰버리고 아들애더러 찾으러 갔다오라고 하면 되는걸. 그사이에 나는… 허허. 7 방금 아빠가 마술을 보여주었습니다. 고만고만한 약병 세개를 갖고말입니다. 오랜만에 마술을 한다길래 나는 귀가 솔깃해졌습니다. 제꺽 자리에서 일어나 책장앞에 가서 서성이다가 아빠의 말대로 약이 가득 들어있는 자그마한 약병 세개를 가져왔습니다. 아빠는 그 약병 세개를 두손에 갈라쥐고는 한동안 성수나게 바꿔치기를 했습니다. 빵처럼 큰 아빠의 손에서 약병은 숨박곡질하며 재롱을 부렸습니다. 내가 왼손에 있다고 소리치면 오른손에서 나타났고 오른손에 있다고 소리치면 왼손에서 나타났습니다. 그러다 신기하게 약병 하나가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할머니가 아빠에게 통채로 주어서는 절대 안된다던 그 약병 말입니다. 아무리 찾아도 없습니다. 헤이, 이걸 어쩌지? 아빠하고 그 약병 어데 갔냐고 물어봐도 시물시물 웃기만 합니다. 그러시다가 아마 지금쯤은 할머니의 호주머니에 들어가있을걸… 라고 합니다. 거짓말! 날개도 없고 발도 없는 약병이 어떻게 《로년활동실》까지 갈수 있단 말입니까? 내가 뭐 유치원 꼬마라고… 그러자 아빠는 두눈을 부릅뜨며 버럭 화를 냅니다. 아빠의 말이 그렇게 믿기지 않으면 네발로 찾아가 한번 확인해보라고 말입니다. 아주 정색입니다. 혹시? 정말? 진짜?… 할머니의 휴대폰이 고장만 나지 않았어도 인츰 확인할수 있을텐데. 나는 어쨌으면 좋을지 몰라 한동안 손톱여물만 썰었습니다. 그러다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화를 내시면 아빠의 허리통증이 더 심해지기때문입니다. 나머지 약병 두개를 호주머니에 잘 간수했습니다. 한번 속는셈치고 《로년활동실》에 가보는겁니다. 아빠가 숨긴것이 분명한데 어쩔수 없습니다. 왜 숨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쳇, 사람을 잘못 보았습니다. 내가 누굽니까? 미래의 경찰의사가 아닙니까! 그쯤은 이미 헤헤… 8 아들애가 나갔다. 나는 제꺽 자리밑에 숨겨두었던 약병을 꺼냈다. 눈에 익숙한 수면제 약병이다. 손이 떨린다. 흔들어보니 약이 그득하다. 이제 이 수면제를 모두 삼키면… 꿀꺽― 마른침이 넘어간다. 《로년활동실》은 집아래에서 2선 뻐스를 타고 두 정거장만 지나면 된다고 했다. 그러니 시간이 없다. 빨리 서둘러야 한다. 내 귀여운 아들아, 잘 커서 좋은 사람이 되거라! 어머니, 이 불효자식을 용서해주십시오! 여보, 다시 좋은 남자 만나 행복하게 사오! 나는 바삐 약병 마개를 땄다. 그리고 안에 있던 내용물들을 힘껏 손바닥에 털어냈다. 노오란 알약들이 또르르, 줄줄 굴러나온다. 이상하다. 노오란 색갈이 그리고 냄새도. 이건? 순간 내 눈이 휘둥그래졌다. 아, 이건 원래 모두 《비타민C》였구나. /신철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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