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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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    피해의식은 문제해결에 역효과 댓글:  조회:7291  추천:58  2011-05-09
피해의식은 문제해결에 역효과 이수산        한국영화 '황해'에 대해 너무 신경 쓸 필요는 없다고 본다.   한국에 가서 법을 잘 준수하고 일자리를 잘 지켜가며 선진적인 문명, 기술경영 및 생활문화습성을 허심히 체험하며 배우고 돈을 벌어 정착하는 조선족들은 걱정할 필요없다.   문제는 일은 안하고 너무 쉽거나 불법적으로 돈을 벌려 하거나 자질과 기술이 없으면서도 허심히 배우려 하지도 않고 푸대접을 받는다 트집을 걸려는 사람들은 한국에서나 중국에서도 반성을 하여야 한다. 농촌과 연변의 낙후한 문화생활습성도 통하지 않는다.   우리신문과 사회언론은 이러한 비틀어진 심리와 감정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잡아주고 위안해주는 한편 적합한 방식으로 연수 자문 상담 고무 격려 교육 비평도 해주어야 한다.정확한 것은 긍정 고무해주고 잘못된 것은 주저없이 지적도 해 주어야 한다. 근면 자조 협동정신으로 한국에 가면 한국의 법을 잘 지키며 살아가고 중국에 돌아오면 중국의 국민답게 잘 살아가는 길 만이 제3의 길일 것이다.   낙후한 가치관으로나 중국의 50,60년대 정치운동 관념, 대국우위의식, 동포피해의식으로는 해결이 안된다. 불쌍하다 해서 너무 감싸서는 안되는 법이다.   문학예술작품에 너무 기대를 하거나 그 기대감과 분풀이를 한 예술작품에 모두다 담으려 하는 생각도 편협한 사고방식이다.   이러한 소용돌이에 잘못 말려들지 말고 보다 높이 서서 멀리 미래를 내다보며 총괄적으로 한국과 중국동포문제를 두 나라의 법으로 풀어가야 한다.   중국정부와 한국정부는 금후에도 점차 긴밀히 협력해서 한국이나 중국국민과 나라 사회를 해치는 범죄집단과 개인을 용서하지 않고 처단 할 것이다. 같은 동포라 해서 중국과 한국의 법을 떠나서 그 어떤 기대와 요행을 바라는 것은 너무나도 비현실적이고 낙오된 사고방식이다.   중국정부와 한국정부도 근면하고 성실하며 법을 잘 지키며 사회에 적극 기여하는 동포들은 보호해주고 포용해 줄 것이다.   중국과 한국정부가 금후 어떻게 손잡고 협력하는가 잘 지켜보며 신문언론을 꾸려가고 미래지향적으로 인도해가는 것이 더 바람직한 선택일것이다.  
164    웃으며 살아가야 (이수산) 댓글:  조회:7539  추천:57  2011-03-28
웃으며 살아가야 -이수산        대부분 농촌에서 한국으로 간 조선족들에게있어 한국체류에서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담보된 일자리와 안정한 소득이다.   문제는 지식이 좀 있다 하시는 분들이 이 분들에게 어떠한 도움을 주느냐에 달렸습니다. 일자리알선. 경제고민, 생활상의 모든 어려움, 한국사회와 소통 대조선족한국국가정책조정을 해결 조절해주는데 도움을 주는것이 아니라 “트집잡기”, “걸고 들기”, “자아위안”식 즉 이름 하나, 명사, 외래어, 생활풍속을 가지고 오히려 제가 옳다는 식으로 한국문화 생활풍속 가치관을 “바로잡기”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고마움을 느끼지못하고 마음속에서 늘 울분과 그늘이 생기는 심리원인으로도 될 수 있습니다.   어느 한국분이 지적한바와 같이 40만 재한조선족을 위하여 5천만 한국인들이 창조해낸 문화와 가치관을 버릴 수 없는것입니다.그것도 선진화로 내닫는 한국의 과학기술 인문문화를 “외래어제거” “이름달기표준”을 모두 “중국식”으로 고친다는 것도 현실 가능성과도 너무 떨어진 일방식 사고방식입니다.   로마에 가면 로마식으로 적응해야 긍정적으로 살아가며 발전할 수 있고 일상생활에서 보다 많은 수확이 이루어지는 법입니다. 같은 민족이라해도 한국에 가면 한국의 법과 문화 도덕 가치관을 존중하고 준수하며 한민족의 동질성에 맞추어가야 자신의 위치와 삶의 보람도 찾을 수 있습니다.   문명기준과 세계화 글로벌화에 어긋난 그 어떤 유아독존의 발상과 고집은 봉폐 낙오되고 어리석은 사고방식이며 비틀어진 마음가짐과 언행으로 치닫을 수 있습니다. 결국 그 악과가 우리자신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우리민족 신문방송사이트에선 한국사회에서 고맙게 즐겁게 행복하게 열심히 노력하며 잘 살아가고 사회에 기여하는 모습을 발견하고 적극 홍보하며 극구 추천해야합니다. 한국사회의 선진문화 인성관 가치관 도덕관도 더 많이 소개하고 잘 적응할 수 있는 방법도 소개해야하고 “심리문제진단상담전문란” “노무일군연수교육전문란”도 설치해서 올바른 마음가짐과 문명한 언행, 그리고 정확한 인생관 도덕관 문화예의를 어떻게 갖출것인가 어떻게 문명수준을 항상 제고할 수 있을가 뭄명인 지성인의 시각으로 가르쳐주고 지적해주는 것이 우리의 책무일것입니다.   자신의 기쁨과 고마움을 전달할 수 있는 웃음은 인간에게 “전염”한다 합니다.우리의 매체들은 이러한 “웃음”을 발견하고 재조명해야 건강하고 지해롭고 보람있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163    與五常大米 /李水山 댓글:  조회:10635  추천:34  2011-01-18
李冰冰與五常大米 李水山    若是有人问我,你来自何方,我就自豪地告诉他:我来自五常。    五常盛产大米,我很自豪。我是学“大米专业”(水稻育种栽培),不相信吗?我在哈尔滨的东北农大就是学大米专业,在日本读研究生也是读大米专业,我的导师一井(yichiyi)先生也是研究水稻的教授,如今当上了日本香川大学校长。    我还写了关于大米的论文,1993年刊登在沈阳农业大学学报,2005年11月24日刊登在光明日报上(题目:日本的大米鉴别技术)。因为学习大米,还认识了日本著名水稻专家原正市先生,在大学毕业实习期间,协助他在中国工作与研究半年多,还写了关于原正市的感人报道。江泽民、李鹏、田纪云、温家宝等党和国家领导人曾会见过原正市先生,人民日报曾专门报导过他的事迹。     五常,说起来,不少同事说:啊,武昌,湖北啊。我说黑龙江哈尔滨附近还有叫五常的县,现在改为哈尔滨市管辖内的五常市,过去属于黑龙江省松花江地区。一说五常大米,采访过李冰冰的凤凰台许戈辉都知道。    五常盛产大米,很多北京人都知道,五常大米在农业部组织的全国农业展览馆历届农副产品展销中多次荣获金奖。不过,请消费者们注意啊,也有假的五常大米。    我从1981年到1985年每年回家,院子里养鸡,前院种了菜,还有果树。后来就几年回一次家。过去还没有出租车,下火车后只好乘坐小毛驴拉的车回县城内的家,经过五常小学和电影院。后来,毛驴车改为小摩托车,现在又有改进了吧。    1987年国家机关组建中央讲师团支援黑龙江的教育工作,那时,我在牡丹江支教负责一个支队,那年农业部有一个支队还在五常县师范学校,队长就替我常回家看了看。    前几年,有一天,同事跑来告诉我,电影演员李冰冰就是你们五常的,我赶紧打开电脑一查询,人家是哈尔滨的,很失望。当时,我还分不清李冰冰和范冰冰。最近,听人家说,李冰冰今年得了华表奖,电影《云水谣》很不错,什么时候我一定要看这部我的老乡主演的电影,祝贺老乡李冰冰一路成功。    1995年母亲去世,那时我还在河北石家庄藁城市挂职当副市长,和兄弟、妹妹把骨灰撒在五常镇附近不知名的小河中。将来,我一定要经常回去看看那条母亲河。当我和弟弟把母亲的骨灰撒入河流时,出身韩国江原道,当年朝鲜国皇亲国戚的父亲低声对骨灰说,你可以回到梦寐以求的故乡,不知是黑龙江省鸡西、牡丹江一带,还是北朝鲜的咸境道。    五常,是新中国的老解放区,一方水土养一方人,也养育着献身于国家建设与发展的现代科学家与艺术家。早年,很多人参加了东北抗联和解放军,我家直系亲属中有五人参加过中国人民解放军第四野战军,为新中国的解放转战南北,其中一位光荣牺牲。    著名的黑山阻击战中的钢八连指战员中有不少都是五常人,父亲还曾执笔撰写过关于这个英雄钢八连指导员的回忆录。五常人民为抗日斗争与祖国解放做出了很大贡献。   不过,最有名的还是李冰冰和五常大米。           (此文未正式发表,欢迎转载)                                              2007.9.9
162    조선족의 밝은 미래 /이수산 댓글:  조회:4251  추천:47  2011-01-13
중국조선족의 미래는 밝다. 이 밝은 미래는 자식을 공부 잘 시켜서 대도시로 보내고 부모가 그 곳으로 가 모여살고 모두가 한국에가서 조선족들만 모여사는 좁은 동네를 만들며 연변을 쪼개서 세계 각국과 연해지역 곳곳에 흩어져가는 <모래성>이 아니라 본다. 한나라나 지역이 농업인 1차산업에서부터 출발하여 공업 정보 서비스산업인 2차 3차산업으로 전환발전되는 행보처럼 조선족사회발전도 이러한 과정을 거치게 된다.농민이었던 부모가 자식을 공부시켜 교원, 의사, 직원이 되고 손자손녀는 더 많은 공부를 해서 석사, 박사가 되고 경리 사장이 되며: 공정사, 설계사, 디자이너 ,공무원으로, 인민대표 국회위원으로 된다. 그러므로 중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자식을 한국에 유학을 보내는 것이 밝은 미래를 향한 우리 민족의 가장 현실적인 선택일 수도 있다.  한국에 가서 힘든 노동을 하면서 자식들의 공부를 마친 분들은 될 수 있으면 병이 나기전에 정든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도 한 갈래의 선택일 수 있다.고향마을이 가난하고, 한산해서 돌아가고 싶지 않다면 연변, 심양만융같은 조선족집거지와 <마을도시><도시마을>로 돌아오는 것도 또 다른 한갈래의 정확한 선택일 수 있다. 아직 건강하고 너무 늙기 전에 고향마을로 돌아와 고향건설 신농촌건설에 기여한다면 보다 적은 자금으로도 현대식 자택과 경치 좋은 고향마을을 얼마든지 건설할 수도 있고, 보다 윤택한 생활을 누릴 수도 있다.   하지만 년로해서 일은 못하더라도, 자식이 대학공부를 마치고 이미 취직해서 자립했다 하더라도 이미 정착해 살고 있는 한국이 좋아 떠나기 싫다고 생각한다면 한국의 법과 제도의 혜택을 빌어 노년생활보장과  경제내원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같은 동포로서 한국의 법을 잘 준수하고, 선진문화에 적응하며 사회발전에 기여하여 그만큼 나라와 사회의 인정과 혜택을 받는 것도 한갈래의 선택일 수 있다.해외에서 정년퇴직한 동포들도 이러한 선택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해외동포들을 관심해주고 포용해주는 정책개선은 한국의 선진제도의 상징과 국력 및 소프트파워일것이다. 옛날 봉건사회처럼 <자식이 출세하면 부모 형제 친척이 모두다 하늘에 오르려>는 생각은  오해나 착오이고 부모가 자식을 키워서 덕만보려는 생각도 봉건사상이다.자식은 자식이고 부모는 부모이다. 자식을 공부시키는 목적은 건강하고 참다운 인간으로 성장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지 그 비좁은 대도시지하실에 있는 작은 방에 부모가 같이가 사는것이 아니였다.3 0평방도 안되는 집에 시부모 형제, 친척이 연달아 가서 외동딸을 고생시키는것을 지켜 본 부모는 온지 이틀도 안되여 <제일만해도 어렵게 사는 딸사위만 고생시킨다>며 다시 생각하고 인차 고향의 넓은 제집으로 돌아갔다 한다.그래서 제집과 정든 고향이 제일 좋다 한다.중국에선 늘 부모들도 늙으막엔 두분이 다 <첫째로는 건강해야 하고 두번째로는 제집이 있어야 하며(자식의 집이 있다해도 피곤하고 괴로우면 대낮에도 누울 수 있는 제집 ) 세번째로는 양로에 쓸 저축이 꼭 있어야 하고 네번째로는 이사를 너무 자주하지말아야 한다>고들 말한다.이것은 바로 조선족중노년층이  항상 기억해야 할 명언이자 조언인바 우리민족의 참다운 인생철학과 한갈래 현실적이고 미래지향적 선택이 아닐 수 없다. 민족네트워크가 중요하다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것은 연변, 심양서탑 ,청도 이창, 북경 왕징같은 민족자치지역 민족거리를 더 잘 건설하고 발전시키며, 신농촌건설 민족경제문화교육 신문출판방송사업을 시종일관하게 잘 하는 것이 전반민족의 밝은 미래지향적 방향이고 목표이며 선택일 것이다.<돌아오는 고향> <발전하는 고향> <번영하는 고향>이 바로 우리들의 밝은 미래와  걸어갈 수 있는 올바른 길이다.                                                                               - 2011.1.12              
161    조선족사회발전의 걸림돌 댓글:  조회:9863  추천:45  2011-01-07
[필자의 말]:원래 이제목을 <조선족이 늘 성공할 수 있는 길>이라 달았다가 고쳐버린 원인은 신문방송에서 우리민족의 성공자와 모범사례가 너무도 자주 소개되여 우리민족이 내실없는 만족감으로 겉치례 자존심과 허영심으로 부풀어 올랐기 때문에 민족사업발전엔 별로 도움이 안된다는 판단이였다. 조선족사회발전의 걸림돌                    이수산      1,전반민족의 심리문제:조선족사회발전의 가장 큰 걸림돌은 전반민족의 심리문제이다.즉 중국땅에서 실패하면 우리는 언젠가 고국인 한국으로 돌아가겠지하고 안도의 숨을 쉬면서 스스로 위안을 하고 주저앉게 된다.조선족이 한국에서 실패하게되면 우리는 언젠가  약자들을 돌볼 줄 모르는 <나쁜 자본주의나라>(기실 한국은 빈부격차가 가장 낮은 일류복지국가로 변하고 있음)를 떠나겠다하며 돌아서는 생각이 늘 들기 때문이였다.토지와 집을 잃고 가정이 무너져 사처로 갈팡질팡하는 우리고향의 부모 형제 자매들과 그들가정의 오늘날 정경이였다.  이러한 심리상태의 결과로는 우리가 내놓는 노동이나 연구 노력성과가 중국에서나 한국에서도 뒤떨어지다보니 어느편에서도 그 가치를 인정해주기 어렵다는 점이다.심지어 중국이나 한국에 대한 분석과 해석도 시원치 않아 다른 사람들을 찾거나 중국어 일본어 영어책자를 찾군한다.한국의 포항제철 현대자동차 삼성전자LG SK롯테그룹이 세계일류기업으로 성공한 원인은 일본을 잘 알고 미국을 잘 알고 유럽을 잘 알고 중국을 잘 알았기에 대성공을 이룩한것이다.     2, 낙후하고 경직된 민족문화교육제도와 구조조선족사회발전의 다른 하나의 걸림돌은  낙후하고 경직된 민족문화교육제도와 구조인바 산업 경영 금융 공업 직업교육이 결핍하기 때문이였다.일반적으로 선진적 교육구조로는 <기초교육+대학교육+직업교육+계속교육>인데 지금까지 <응시교육>에만 집중하는 <기초교육+대학교육>이였고 반성 개진할 의도와 노력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의학 공학 농학전공을 나온 대학생들은 거의다 도시 기업 정부 연구기관에 취업했기에 고향건설 지역발전엔 별로 관심도 도울 수도 없는 현실이였다.그리고 너무나도 쉽게 이룩할수있는 번역 통역 비서 문서 언어의 공부와 역할만 중요시하다보니 어디로 가던 <번역통역><비서문서>식의 <안내군>밖에 되지 못한다.독자적인 연구 개발 생산과 경영 유통 금융엔 거리가 너무나도 멀었다.   3, 비졻은 <울타리>모임:조선족사회발전의 또 다른 하나의 걸림돌은 <울타리>에만 매달리는 봉페적인 사유와 언행궤도이다.어디에 가보나 한국인들이 많이 가는 식당에 중국의 기타민족도 많아지는데 조선족들은 오히려  적어진다는 사실이다.이는 소위 조선족들만이 모이는 <울타리모임>인바 결국 중국에도 한국에도 외면당할 수 있다.같은 민족인 한국에 가서도 마찬가지인것 같다.스스로 심리적 장벽을 쌓지말아야 했다.결국 <조선족은 조선족과 한국인들의 돈만 벌려>하니 같은 민족이라도 소동 난리 분쟁 원한도 많아진다.한국에 간 동포들은 고국을 친척집으로 간주하고 건너갔는데 시장경제의 효율성과 지렛대로해서 과도한 기대와 냉철한 현실의 차이가 생기고 불만과 원한도 많아져 돈은 한국에서 벌면서 한국을 원망하게 되고 그 원망풀이로 원한 위장 도박 불법언행 쌍욕 싸움 범죄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4,우려되는 취업구조:중국의 큰 배경도 있겠지만 조선족은 적은 인구규모에다가 정부기관 사업단위에만해도 만여명 취직할 수 있어 조선족대학생들의 취업진로우려를 많이 덜어주었지만 그대신 200만 인구를 가진 중국조선족이 70만밖에 안되는 재일동포들보다 거물급 인재가 적다.대학교수 연구자들의 일개인의 성취도는 얼마간 있다겠지만 조만간에 모래밭의 물방울로 사라질것이다.재일동포신격호(롯테그룹) 손정의(소프트뱅크)같이 세계를 질주하며 주름잡는 기업인이 사회와 나라를 떠일군다는 도리는 30여년전 개혁개방이 시작되면서 20여년전 서울역에 걸어놓은 한국기업인의 초상을 보며 인식되기도 했다.청소년들은 응시교육에만 집념할것이 아니라 전업기술과 경영법 노하우를 지닌 기업인으로 경영인으로 상인으로 되는것을 미래의 리상 포부와 분투목표로 간직하는것이 더 바람직하다.     우리민족에겐 간나곡절도 많았지만 마음을 정리하고 노력해서 성공한 사람도 점차 많아진다.중국에선 중국손님이 많아져야 돈을 벌 수 있듯이 <한나산><권금성><자하문>등 한식당엔 중국인 한국인 외국인들로 꽉찬다. 롯테 현대 삼성 LG SK같은 기업은 중국 일본 한국 미국 유럽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우리현대차><우리삼성전자><우리롯테백화>로 보이고 불리며 인정받는데 있다. <한나산><권금성><자하문>의 성공도 여기에 있다.  중국엔 <배를 침몰시기고 솥을 부셔버린다>란 명언이 있다.안일을 추구하거나 도망칠 길을 없애 버리니 항우(项羽)가 거느리는 군사가 최대의 투지와 최후의 기력을 내여 적들과 용감히 싸워 이겼다는 이야기에서 나온 말이다. 중국엔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师)란 말도 있다.남의 말을 허심히 들어보아야 지혜가 나오는 법이다.남의 지혜를 자신의 지혜와 파워로 전환시기는 것이 중국의 지혜라면 <일찍 일어나는 새에겐 먹이가 먼저 차려지는 법>이니  아침 2시 4시에 일어나 현장을 돌아보며 날파람 신바람 잘 일구는 한국기업인은 성공할 수 있었다.남의 것을 보고 더 보기좋고 편리하게 잘 만들어내는 일본인들의 지혜, 전세계의 인재들을 모집해 흡수하는 미국인의 흉금과 지혜도 그저보고 지나갈 일이 아닌상 싶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이고 노력은 성공의 아버지이다. 걸림돌을 제거하고나면 어제날의 품팔이 막벌이군이 아니고 <길안내>만하는 번역통역이 아니라 기업의 경리 사장 거상으로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다. 2011.1.6
160    중국조선족앞엔 놓인 갈림길 /이수산 댓글:  조회:4641  추천:50  2011-01-06
우리민족성원들에겐 지금 두갈래 갈림길이 놓여있다.한갈래는 전원다수가 한국에 가 경제적 사회적 복지적 혜택을 누리는 길이고 다른 한갈래는 자식을 잘 공부시켜서 대도시로 해외로 이전하는 길이다.고향과 농촌 민족자치지역은 당연히 황페해지기 마련이다. 물론 자신과 가정의 출로를 위해서 걸어갈 수 있는 곧 바른 길이므로 나무람할데도 별로 없다.하지만 우리언론의 주제곡이 중국내의   현시대수준에도 많이 뒤떨져있어 어떤면에선 1980년대초의 인식정도라할 수 있겠다.<사회는 학교이자 생활은 교육><밥을 먹으면서 벼농사를 안하고 집에서 자면서 조림을 모르며 사치향낙만 추구하고 농촌에서 도시에로만 빠져나가는>교육을 비판한 중국의 저명한 교육가이며 사상가인 토싱즈(陶行知)선생의 국민사상과도 거리가 너무 멀다. 1978년 개혁개방초기, 중국계미국인들은 자금이 없고 기업경영엔 더욱 생소하다보니 대부분이 정계와 산업계를 도피하여 공부를 많이 해서 대학원을 나와 대학교수로 되였다.이에 대해 중국국내에선 은근히 우려가 많았다.민족을 떠나고 사회와 멀리하는 대학학술계로 빠져나간다는것은 그만큼 사회적 힘과 지혜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였다.하지만 미국사회는 중국사회와 다르다.대학교수라도 업무량의 1/3은 교학이고 1/3은 연구이며 나머지 1/3은 꼭 사회봉사이다.자식들이 공부를 잘 하고 많이 해서 앞으로 나라의 과학자 기둥감이 되는것은 좋겠지만 <현대인재학>적 사상이 아니라 <나사못공구논>에 불과했다.이 <공구논>도 일찍 1990년대 남경모대학교수로부터 비판을 받은지도 오래다.  <떠나가는 교육>과 <돌아오는 교육>의 가장 큰 차이점은 고향건설 농촌건설 지역발전에 봉사하느냐 안하느냐에 있다.우리가 늘 경계하고 비판하는 사회적 경향이 바로 이 입시교육에만 매달리며 높은 점수로 명문대학에 입학하고 <개인출세+명성날리기>식의 <떠나가는 교육>이다.그들이 아무리 명성을 날리며 개인적 창조적 성공을 했다한들 자신을 성취에만 깊숙히 파묻힐뿐  민족사회 고향건설엔 별로 관심하거나 기여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중국계미국인교수의 이러한 한계와 단점을 미봉하기위하여 대륙의 대학에서 초청하여 학술교류와 보고를 한다던가 대륙의 대학원생을 받는다던가 공동연구실 개발시험단지 등 프로젝트를 설치한다던가 인재도입재정과 투자를 확대한다던가이다.이것이 바로 30여년전의 프로젝트였다.하지만 자신이 자신을 구할 수 없다면 이것만으로선 역부족이였다.그러면 현재의 우리민족의 인재와 노동력마저 모두 류실되는 현실에서 어떻게 고향과 농촌 자치지역의 발전을 실현할수있을가?정답은 어제나 오늘도 미래도 변함이 없다. 즉 <떠나가는 교육>을 <돌아오는 교육>으로 전환시켜야 한다.사회언론도 숨가쁘고 허망한 <출세교육>  <민족자랑>보다 한국가서 벌어온 자금 기술 경험과 자원 및 지혜와 힘을  모두어 민족직업학교 사립학교 산업학교 경영학교 창업학교를 적극 꾸려가야 한다.대학도 마찬가지이다.좀 문턱 조건과 수준을 낮추더라도 졸업생들이 자치지역 고향건설에 기여할 수 있는 전업인재와 <향토인재>들을 더 발굴하고 육성해야한다.졸업생중 2/3가 미국으로 빠져나가는 북경대와 청화대식 연변대가 아니라 고향건설에 기여하는 인재를 더 많이 배출해야 한다. 직업교육가운데 외국어 전업만 꾸리면 더 많은 인재가 빠져나갈 수 있으니 고향건설 지역건설과 발전엔 도움이 별로 안된다.<배움은 움직이는데서부터 시작되고 움직이여야 배울수 있다>  <우리가 학문을 연구하는것은 개인이 행복만 누리는것이 아니라  사회를 개조하는데 그 총적목적을 두고 있다>. 향낙 출세보다 더  참다운것이 무엇일가?토싱즈선생의 말씀이다.                                                                                        2011.1.5
159    토론문제: 조선족대학생들의 취업과 창업 댓글:  조회:5651  추천:37  2011-01-04
 토론문제:     2009년 교육부의 연구과제로 한국 등 해외의  대학생 취업과 창업에 관한 조사연구를 좀 해 본 적이 있다.해마다 700만명의 대학생 1000만명의 농민공들의 취업은 중국의  큰 사회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우리200만명의 중국조선족이 배출한 대학생들의 취업과 창업문제가 조선족사회의 가장 큰 사회문제로도 떠오르고 있다.이 문제에 대하여 사회각계층인사들의 고견과 졸업을 앞둔 조선족재학생들의 생각 타산 우려 고충을 이 토론방을 통하여 서로 교류한다면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이 토론방은  정부관계자 기업인들 재학생들과 지성인들의 반가운 만남이기도 하다.                                이수산 2010.1.4   조선족청년들-준비된 자세 그리고 북경진출   [출처:조글미디어 media.zoglo.net] [길림신문 2011-01-03 박광익 특약기자]    젊은 청년층을 위주로 하는 동북3성의 조선족들은 도시진출의 파도에 실려 꿈의 도시, 희망의 도시, 성공의 도시로 불리우는 북경으로 끊임없이 들어오고있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좋은 일이다.   그러나 북경은 아무리 큰 포부와 아름다운 꿈을 품었다고 해도 아직 준비와 경험이 부족하거나 자질이 낮고 배운 지식이 적은 관념을 개변하지 못한 청년들에 대해서는 《무정》하다.   이런 청년들은 부모들이 보내오는 돈으로 망경(왕징)의 지하에 주숙하지 않으면 부모등에 업혀있고 또 일부는 고향사람들이나 친구들의 신세로 살아가고있다. 그들은 지하에서 잠시나마 지친 심신을 달랜후 직장을 찾거나 새 출발을 기다리고있다.   얼마전 기자는 망경(왕징)의 지하실에서 이런 부류의 몇몇 조선족 젊은이들을 만나 보았다.   그들은 새 회사에 취직할때까지 한사람이 한달에 400~500원씩 내고 지하실에서 생활하고있는데 벌써 몇달째, 한 청년은 사직후 마땅한 직장을 찾지 못하고 무직업자로 된지 거의 반년이 되여온다고 실토정했다.      8년전에 북경으로 왔다는 흑룡강성 모현의 김모(30세)씨는 교외의 한 한국독자기업에서 중층관리자로 있었는데 웃음속에 칼을 품고있는 한 한국인과 모순이 발생후 몇달간 대치상태로 지내다가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고 분김에 사직했다고 한다.   일정한 관리기술이 있는 그는 여러 회사를 찾아가 수차 면접을 보았지만 로임이 적은 등 원인으로 지금까지 취직하지 못하고 로임이 높은 직장을 찾기 위해 인터넷으로 매일이다싶이 리력서를 보내고있다고 했다.   그는 《대학졸업생이 아니라해도 차운전과 같은 한가지 기술이라도 있으면 이곳에서 2500원이상 받을수 있다》고 했다. 김씨청년은 북경에 와서 8년이 되도록 운전기술을 배우지 않은것을 후회하면서 지금 운전기술을 배우고 있는중이라고 했다.   길림성 연변주 어느 현에서 어머니를 따라 북경에 왔다는 리모는 19세되는 고중 중퇴생이였는데 몇달간 모 합자회사에서 2000원씩 받으며 취직하다가 퇴사를 당했다.   료해에 의하면 그는 뚜렷한 목표도 없고 부지런히 일해 살만한 재간과 경험도 없었다. 다행히 그의 어머니가 북경에 있기에 주숙은 근심할 필요가 없단다. 그는 구직광고를 내는 한편 소개소를 통해 재취직을 기다리는 중이다.   북경에 온지 5년철이 되는 최모(25세)씨는 원래 어느 한국회사에 취직하고 통역에서 현장관리직으로 일하다가 이런저런 원인으로 그만두고 나왔다고 한다. 그는 사직후 면접을 본것만 해도 10차가 넘지만 아직까지 리상적인 직장을 찾지 못했다고 실토정했다.   그는 회사생활을 하려면 조선족청년들은 고향에 있을때의 언어, 행동, 습관, 관념 등을 고쳐야 하며 또 열심히 본직업무에 임해야 호평을 받을수 있다고 자신의 절실한 감수를 털어놓았다.   상술한 실례들은 북경에 진출한다고 가슴이 부풀어 오르던 일부 청년들에게는 찬물이 아닐수 없다. 우리 조선족청년들의 맹목적인 북경진출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취할바가 아니다. 아울러 북경으로 온후 관념과 생각을 개변해야 새로운 환경과 생활에 적응하고 북경땅에 뿌리를 깊이 내릴수 있는것이다.   료해에 의하면 우리의 조선족청년들은 직종, 환경, 로임, 복리 등을 너무 따지기에 《합당》한 직장을 찾기가 상대적으로 힘든 편이다. 교외 등에 위치한 회사는 아예 면접도 가지 않는 상황이다. 이같은 현상들은 조선족청년들의 취직에 《설상가상》이 아닐수 없다.   북경은 말그대로 《꿈의 도시》, 《기회의 도시》, 《희망의 도시》, 《성공의 도시》가 아니다. 북경도 여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오직 준비된 자세, 든든한 실력, 갱신된 관념을 구비한 자만이 생존하고 발전하면서 자신의 위치를 찾고 성공일로를 나가는 도시이며 활무대이다!   우리의 조선족청년들이 준비된 상태에서 도시로 진출하고 또 도시로 진출한후 관념을 갱신하여 하루빨리 도시생활에 수응하면서 열심히 자신을 키워가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158    조선족에 롯데같은 대기업 나올수 없을가 댓글:  조회:8775  추천:37  2010-12-23
200만 조선족이 살고 있는 중국에 왜서 롯테같은 대기업이 나올 수 없을가?이수산 재일남북동포가 약 70만명 된다면 중국에 사는 조선족은 3배되는 200만명이다.그런데도 건국이후 60년이 지나도록 롯테그룹 신격호 같은 기업인이 한명도 나오지 못했다. 날씨가 따뜻한 아프리카에서 입을 걱정 먹을 적정 없으니 사회가 진화될 수 없듯이 추운 유럽에서 오히려 더 빠른 속도로 발전해왔다.재일동포들은 국적이나 일본의 국책으로 기본상 교직원이나 공무원으로 될수없고 하천한 직종과 자신의 특기와 노력으로  연예인으로만 될 수 있다.대국에만 의존해 살아가는 나라는 늘 빈궁하고 나약한 나라이기도 하다.와세다공업학교를 졸업한 신격호는 취직은 못하고 미군이 전해 온 씹는 껌연구와 개발로 작은 창업을 시작했다.그후 성공에 이르러 관광 호텔 백화상점경영에로 대거 진출하여 고국인 한국과 이웃인 중국으로 진출하기 시작하여 러시아 동남아시아 세계로 진출하여 대성공을 이루고 있어 그의 이름은 삼성이병철 LG구인회 현대의 정주영과 나란히 하고 있다. 그렇다고 중국의 각급정부에서 일하고 있는 공무원들과 교직원들을 모두 하해시켜서 기업을 꾸린다면 인차 신격호 롯테같은 그룹이 나올 수 있는것도 아닐상 싶다.  이 문제는 중국전반의 정체이자 문제의 근본인것 같다.사회주의 계획경제체제로부터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로 전환되여가고 있지만 그렇게 쉬운 일들이 아니였다.지금도 중국엔 세계급 대기업은 거의다 자원규모 독점방식의 국영경영체제에서 배출된 석유화학 군사공업 공상은행 같은 기업일뿐이다. 지금은 기업인들의 창업환경은 많이 개선되여가고 있다.조만간에 민간대기업도 나올 전망이지만 조선족들은 준비되여 있는가?아직도 계획경제 시대처럼 대학입시시험에 누가 일등을 하고 누가 정치인물 노동모범인가만을 주시하고 흥분할 때가 아니다.중소기업 민간기업 자주창업 대학생 창업 2차 3차 창업, 정년퇴직후 고향에 돌아와 창업 혹은 사회봉사자들의 사적을 적극 권장하고 격려하며 홍보를 하여야 한다.정부에만 기댈것이 아니라 우리가 자체의 힘과 능력으로 우리의 사회를 먹여 살릴 수 있는 기업과 창업의 길을 선택하여야 할것이다.이것이 바로 가장 바람직한 민족경제이다. 앞으로 정부의 일련의 체제개혁으로 정부의 투자만으로 살아갈 수 없는것이 시장경제이다.사회기본복지제도는 정부에서 책임질것이만 일상생활까지 보장해줄 수 없는것이 현실이다.우리민족사회는 아직도 경직된 옛날의 <정부> <국영><명분>의 허울과 환상 그리고 허영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절강 온주 광동 복건 강소 사람들과 매우 대조적이 아닐 수 없다. 현재 한국기업이 중국에 대거 진출해서 근 4만여 회사를 경영하고 있으니 많은 조선족인재가 필요하겠지만 중국에서 제대로 발붙이자면 꼭 롯테같은 민간 기업이 필요할것이다.우리민족사회도 이러한 <기업문화> <창업문화>분위기 조성에 소리를 높이고 각급정부나 신문출판교육분야에서  성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이달의 성공자>란 제목을 새로 설치하고  조금이라도 성공한 민간기업인 중소기업인을 홍보해주고 재학생 청소년들로하여금 보다 많은 사람들을 먹여살릴 수 있는 창업이야말로 가장 보람있는 인생으로 간직하게끔 교육하여야 할것이다.조선족사회의 새로운 <기업문화> <창업문화>를 꾸준하게 육성하면 중국조선족중 신격호 롯테같은 인물과 대기업이 조만간에 배출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2010.11.22 
157    階級社會和等級社會 댓글:  조회:11173  추천:17  2010-12-17
阶级社会和等级社会 作者:李水山       现在,一提起阶级社会和等级身份,很多人会笑话,都什么年代了,还有阶级社会和等级身份吗?一想想,如今表面上虽然不讲了,但这种封建思想残余无时无刻地困扰着改革开放已经30多年的中国大地,阻碍着社会进步和政治文明进程。     我们这个国家和社会封建统治的时间太长了,以至于很多人都把封建残余当做身边的东西和合理的成分有意无意地默认保留着,与其共存。为了推翻剥削阶级,毛泽东和他们老一代走出并不贫穷的家庭,迈出了革命的第一步。毛泽东一生追求公平正义,在雨天拒绝父亲的严厉吩咐,没有去盖场上雨淋的粮谷,而去照料了贫困的邻居而成为传世佳话。     曾记得,小时候显得很酷极帅的解放军军衔突然不见了,问了大人们。大人告诉我,毛主席一听到一名尉级军官因一位列兵在街上擦肩而过而未行礼便破口大骂,就勃然大怒、大笔一挥取消了,开始实行“五星红旗两边挂”的新式军服,人民警察的服装也很亲民。因此,那时盛传“人民军队爱人民”,感激不尽的全国人民要向解放军学习。     即使是具有反抗权威精神和一生追求公平正义的毛泽东,也没有摆脱等级身份制的枷锁和束缚,开始实行新的阶级身份制度,这是他最欣赏的阶级斗争和无产阶级专政的需要。在旧社会以物质贫富为身份特征的阶级等级社会,转换成阶级加权益的政治等级身份社会。 每个中国人都会记忆犹新那学生档案、人事档案、政审表上方赫然有一栏叫“家庭成分”,要填写资本家、地主、富农、中农、下中农、贫农、雇农,长相很酷的小伙子或出众漂亮的姑娘也因成分较高而不能找如意对象和结婚,入不了党团组织,当不了兵,上不了大学,招不了工,回不了城,一辈子受各种压抑而过着无尊严可言的生活。那时的阶级斗争是家常便饭,战争结束了,无仗可打,就变个法子搞国内政治斗争、群众运动,红旗招展、锣鼓喧天、声势浩大,有人觉得其乐融融、其乐无穷。一旦不搞轰轰烈烈的阶级斗争和政治运动了,有人就会吃不香、睡不着。      物极必反。那时,除了贫下中农外,比较吃香的就是军属和干部家庭,以能填写“家庭成分”为“干部”和“军人”为时尚和光荣。未成想,文化大革命的一声雷响,这一干部,一转眼就变成了“走资本主义道路的的当权派”、“死不改悔的走资派”,连老子带子女一同被斗批、下放改造而受迫害,其处境不亚于前一阵子和这一阵子的地富反坏右,尝尽了阶级斗争、阶级社会、政治身份和等级制度的苦头了,才知道做中国的老百姓何其难。     物极必反。伟人走下神坛,昔日的“走资派”回到了工作岗位,子女回到了自己的家,激情万分的知青们也随之回到了当年毅然离开的城市中的家,一个温暖的家,一个新的文明悄然开始了、复活了。邓小平在江西被改造的孤独的日子里,深深体会到昔日欣然、兴奋甚至自豪过的诸多想法、做法对中国老百姓是多么不公平而不合理,甚至荒唐和错误,“换位思考”和“反思矫正”是对他的最大冲击和收获,也正是伟人开始醒悟、奋起的起点。他有深深的人民情结,因此而深情地说他是中国人民的儿子,而不是父母官。他有一辈子追求实事求是、改革创新的宿命。     毛泽东有胆识、有魄力,指点江山、激扬文字,感言数风流人物还看今朝。邓小平放下包袱、解放思想、实事求是,力挽狂澜,提出全面、准确地理解毛泽东思想,系统、全面指出和纠正毛泽东的错误,力主拨乱反正,中国终于重新起航,走向改革开放。那时,老一代革命家及其子女和全国人民同呼吸、共患难、共命运,这就是时代的脉搏和民众的心声。即使是文革中的红人或造反派,也都在文革后期知道他们“越斗越穷”的所作所为和穷途末日,已经很不得人心了。邓小平力挽狂澜、力排众议,结束了以阶级斗争、阶级身份、阶级社会为标志的“无产阶级专政下的继续革命”,主张“有错必纠、有错必改”,果敢地组织和领导全国性的拨乱反正,领导全国人民实行改革开放,走上依法治国、以经济建设为中心、实现物质文明、精神文明和世界大同的文明道路。 那时的老一代革命家及其众多子女和全国人民的感受、感悟和想往是绝对吻合一致的,因而改革开放取得了人民的齐心拥护,获得了巨大的成功。即使在那场史无前例的文化大革命中因年幼无知而随大流、喊口号、毅然决然的众多青年学生们也大都经历阶级斗争和上山下乡的洗礼,学会了明辨是非,处事文明、理性、客观的人生哲学,不再被政治运动、盲目宣传和阶级斗争所忽悠了。     毛泽东成功地摧毁了旧的物质贫富等级社会,解放了劳苦大众,却产生了“阶级+权益的新的政治身份社会”,毛泽东有他的伟大和错误。邓小平成功地把握时代的脉搏和人民的呼声,纠正了前人的错误,结束了以阶级斗争为纲的政治身份社会,却没有完成共同富裕的伟业,邓小平有他的伟大和遗憾。三十年的改革开放既有辉煌成就,也留有堆成如山的社会问题。毛泽东、邓小平和后继者们的伟大和成功,将取决于是否与全国人民、世界文明同呼吸、共命运、齐分享,他们的决策才能发挥到极致,才能走上正确而成功的道路。 成功者和后继者们都有共同点,那就是实事求是、解放思想、与时俱进、改革开放、开拓创新,发展生产力,发展先进文化,代表最广大人民群众的根本利益,消除万恶的等级身份社会,通过经济发展、社会福利改革和政治文明进程,实现物质极大丰富、人人享有社会福祉,分享改革开放的文明成果,平等、民主、自由、和谐的公民社会和文明社会。      如果,对过去、对政绩、对成就、对历史,不解放思想、不科学分析、不实事求是、不与时俱进、不改革创新,死抱着僵化的教条和即成事实,墨守陈规、因循守旧、僵化保守、一意孤行,邓小平的警告依然有效,社会主义只要不改革开放,那是死路一条。如果,既得利益者们又在迷恋、维护和重复封建特权和物质贫富等级社会,那么就有可能激化社会矛盾,改革开放才有必要;如果重蹈文革思维覆辙,欣赏、鼓吹政治运动、阶级斗争和冷战思维,那么改革开放就有必要;如果思想和主张左右摇摆,改革开放、与世界同步,就更有必要。     改革开放三十多年,物质极大地丰富了,富人、穷人、左派、右派都不可怕,但对绝大多中国人来说,有人一觉醒来,又想搞阶级斗争和政治运动,深挖洞、广积粮、准备早打、大打、打一场世界大战,把所有刚享受文明甜头的中国人又分成三六九等,拉回到那提心吊胆、如履薄冰、人人自危的阶级斗争、政治运动和备战备荒的蹉跎岁月里,那又是一场世纪浩劫与巨大灾难。     永别了,政治运动、阶级斗争和等级身份社会!那不适合中国人民,也不适合世界公民! 2010.10.31        
156    농민공들의 기쁨과 설음 댓글:  조회:9179  추천:31  2010-12-13
팔형제에 관한 이야기    -농민공들의 기쁨과 설음 리수산   최근 드라마<팔형제>(八兄弟)가 북경TV에서 방송되고 있다.농민공들의 성공의 기쁨과 불행을 화폭으로 잘 담아 깊은 감명을 주고 있다.우리조선족의 운명과 깊은 인연도 있지 않는가 생각해 보았다.   개혁개방이되면서 수많은 동북의 농민들이 대도시로 북경 상해 심천으로 대거 진출했다.돈을 버는것도 목적이지만 농촌에서는 남을 너무 평가의론하며 숫소문을 내는것이 너무 싫고 도시에 가면 자신의 뜻대로 부지런히 일하고 노력만하면 얼마든지 잘 살아갈 수 있다는것이 그들의 신조였다.    인력거를 끌면서 짐을 힘겹게 나르던 육호(六虎)는 어느하루 14세 이상이고 돈많은 여성을 마났다.대학시절의 첫사랑이였던 그 남자와 똑같게 생겼기 때문에 매일 찾아오다 싶이 이 여성은 많은 돈을 주면서 사랑을 고백하고 속삭인다.시골에서는 절때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 없는 윤리도덕문제라 팔형제는 가정회의를 열고 토론을 벌렸지만 그들의 경험과 지혜로선 결론을 낼 수 없었다.     셋째형 삼호(三虎)는 원래 철도공인이였고 예술재능도 없지 않았고 연설도 잘했다.병으로 인해 퇴직한후 팔형제들과 같이 북경으로 왔지만 일을 찾아하려도 안하고 술로 세월을 보내니 밥먹을 돈도 없었다.말을 꺼내면 옛날 철도공의 자랑이다. 술을 잔뜩 마인후 실수로 숙사가 불타 징역의 위기에 처하자 팔형제들이 조상이 남겨준 향로를 팔아 백만원을 내고야 겨우 투옥은 면하고 풀려 나왔다.몇번이나 보고도 좀처럼 나서지 않았던 안해와 딸애는 술을 끊고 열심히 일하기로 철저히 결심한 그를 끝내 용서해주고 다시 받아들인다.   대호(大虎)는 어머니가 재가할때 데려온 <조롱박아들>(葫芦子)이였지만 계부의 깊은 사랑을 받았고 일자리를 잃어버릴정 여러 동생들을 항상 보호해준다.하지만 도시문화와 시장경제에 소외된 낡고 전통적이며 경직된 정신과 의식세계로 매사를 처리하기엔 너무나도 힘들었다.나이가 이상이고 돈많은 여성이 여섯째를 좋아한다니 기어코 반대했고 둘째가 이혼할때도 반대해왔지만 나중엔 돈도없고 힘도 없으니 결국 둘째형에게 양보하고 농촌에서 호령만하던 맏형위상을 잃게 된다.    사호(四虎)는 무능하지만 처자에겐 각별해 가정을 줄곧 지켜가며 유지한다.교통사고로 다리를 상하자 처자가 북경으로 왔고 안해가 대신 남성들도 힘겨운 빌딩외벽유리닦기일을 한다.하지만 얼굴이 이쁘장한 안해가 동네 장경찰과 좋아하는가 뒤쫓아 다니며 질투한다.안해는 남편이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으로 받아 들이고 장경찰과 다시 만나지 않기 위해 <파출소도우미>를 사직하고 어려운 일을 찾아한다.그들에겐 행복한 가정이 있었고 귀여운 딸애가 있었다.  칠호(七虎)는 응석받이로 어려서 늘 이불에 오줌을 쌌고 여려형들의 목마를 타면서 커왔으며 열여덟살까지 아버지의 옆에서 자왔다.어려운 일을 하면 오줌이 절로 나오고 까무러친다.여러형제의 간곡한 요청으로 둘째형이 옷가게의 직원으로 받아들이지만 같이 일하던 아가씨를 연인으로 착각하며 홀리운다. 이 아가씨는 나중엔 칠호의 이름으로 10만원을 채가지고 도망갔다.나약한 사람이 도시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하는 도리를 일깨워주는 대목이다.    오호(五虎) 육호(六虎)는 한마을 한반동창생인 유위링(柳玉玲)을 사랑하게되였다.육호가 쓴 사랑의 편지를 오호가 제가 쓴것처럼 들고가 위링에게 보이며 사랑을 속삭인다.발안마를 하던 위링을 겨우찾아낸 그들은 2만원을 주고야 데려내올 수 있었다.작문은 잘쓰지만 무뚝뚝하며 군에 갔다와 불평만 보면 싸워대는 동생보다 오호는 성격이나 수완도 좋아 위링과 사귄다.  막내팔호(八虎)는 여러형제와 달리 공부를 잘해 북경의 명문대학에 입학해 미국의 유학생 이림과 사귀지만 나중엔 흑인 유학생과 결혼한다 한 다.영어를 잘하고 문화적 소양이 있지만 그대신 허영심에 벅차있고 현실과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자신은  잘 모르고 있었으니 그 만큼 대가도 치를 것이 당연했다.     팔형제중 둘째형 이호(二虎)가 가장 걸출하다.시골에 있을땐 겨으르고 먹기와 놀기만 좋아하던 그가 도시에와 모두 변했고 두번되는 죽음의 고비에서 북경의 한 철도공인의 딸 방방(方方)에게 구원되였다.방방이가 무한시의 한 대학에 입학되여 너무 기뻐하시던 아버지가 뇌출혈로 사망된후에도 이호는 꾸준히 방방의 대학공부를 지원해주었다.그의 진정한 마음이 사랑으로 바뀌여 대학과 남자친구도 그만두고 유부남인 이호와 동거하고  집을 팔아 가게를 꾸렸다.생활이 좀 나아지자 칠형제를 북경에 불러왔다.배수관안에서 겨울을 보내며 기아와 병환으로 죽음에  허덕이던 이호를 구해주었고 여러형제들을 줄곧 도와주는 방방이의 착하고 감격적인 사연을 듣고 이호의 안해 취메이펑(曲美凤)은 이혼에 동의한다.이혼수속을 하는날 취메이펑은 남편이 피와 목숨으로 벌어온 돈으로 호의호식하고 매일 해바라기와 술 마작으로 허송세월을 보내던 자신이 결국 자신을 잃어버렸다 후회하고 북경에가 가게를 경영하며 다시 시작한다.   농촌에서 볼 수 없던 일들은 여러형제들이 골을 싸매고 열론하며 고민할때마다 둘째형인 이호는 <자신만의 길을 굳건히 걸어가라!>라고 여러 형제들을 고무격려해준다.한 동북시골의 농민이 대도시에와 경영을 하면서 온갖 올가미에 걸리고  덫에 치웠지만 자신만의 길을 선택하고 굳건히 걸어가고 있다.그들에겐 성공의 기쁨과 웃음 그리고 간난곡절의 설음과 고통은 너무나도 많았다.그들이 성공할 수 있는 기회는 바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였다.자신의 인생을 개선하려는 격정과 동력으로 부지런한  그들에겐 후회할 겨를이  없없다.                              2010,11,21
155    조선족,환상과 허영심을 버려야 활로를 찾을 수 있어 댓글:  조회:8561  추천:36  2010-12-13
환상과 허영심을 버려야 돌아 오는 교육과 민족의 활로를 찾을 수 있어 한국과 연해지역에 나간 노무일군을 제외하면 동북고향에 남은 조선족인구는 고작해서야 백만명을  겨우 웃돈다.백만명의 인구를 가진 자치지역의 조선족으로서 13억인구를 대상으로 대학응시에 일등을 했다고 자랑해 보아야 별로 큰 의미도 없을 뿐더러 비뚤어진 을 권장하는 것 밖에 안된다.  어려운 기술연구에 공헌했다고 우리자신들만이 자랑해 보아야 밖에 안된다.이러한 과학기술일군들은 우리들의 민족사회와 너무나도 떨어져있다.우리들에겐 어떤 교육이 필요한가?돌아오는 교육으로 우리들의 민족자치사회를 되살리려면 다시 심사숙고 자아정검할 필요가 있다.   온가보총리는 라고 말씀하셨고 왜서 중국정부가 그렇게도 농업 농촌 농민사업에 심혈을 기울이는가 알 수 있다.우리민족자치사회에 가장 도움이 되는 일은 신농촌건설이고 민족교육이고 자주창업이지 대학시험에 일등을해서 명문대학으로 대도시로 연해지역으로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이 결코 아니다.산동청도가 살기좋다해도 연변처럼 자치주가 일어서기 어려운것도 사실이다.연변사람들이 모두가 청도에 가 살면 연변자치주는 붕괴될 수도 있다. 일들은 찾아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니 모두가 농촌에 눌러 앉아 있으라는 권장은 아니다.재간있는 사람은 도시나 해외로 진출해 돈을 버는 것이다.일년에 만원벌기와 20만원벌기가 확연히 다를것이다.30여년전 재간없는 사람들은  마을의 그 누가 대학에 가고 도시에 가 돈을 번다하면 시샘이 나서 뒤공론을 하고 헛소문을 퍼뜨리고 저처럼 가난하고 불행하고 잘 못 살아야 마음이 편안해진다.하지만 모두가 떠난후 지금도 농촌과 농지를 지켜가고있는 사람들은 무능한 사람들이 아니라 재주있고 현대농업의 기술과 경영지식을 가진 포부가 있고 유능한 인재들이다.   신농촌건설 도농통합발전 현대농업 민족교육 신문 출판사업은 우리민족의 생명선이다.모든 환상과 허영심을 포기하고 앞으로의 갈 길을 구상하고 구축해가야 한다.우선 성 혹은 전동북지역를 꾸리고 정기적으로 기술경영연수회와 토의회를 조직하며 명품교류교역대회를 일년에 한번 혹은 두번씩 열어야 한다.옛날 조선족 운동대회가 인기를 끌었다면 민족 운동회도 겸한 가 인기를 더 끌게 될것이다.이러한 상품문화축제로 인해 보다 더 많은 조선족의 브래드화된 명품이 나올 전망이다.  신농촌건설이나 현대농업 도농통합발전엔 인재가 근본이다.30여년전  떠나가는  모든 사람들은 영웅이라 볼 수 있었지만 현재는 자본과  경영지식을 가지고 돌아오는 사람들이 진정한 영웅들이다.해방군의 계급을 없애버린 모택동은 지식과 경제를 무시해 비극을 초래했지만 으로서 전반사회에 더 깊은 감명을 줄 수 있는 촌간부와 해방군의 반장 전사의 모범사적을 더 널리 홍보하도록 권장하였다.의 시대였고 보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기에 지금도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그리워한다 한다.        한국지방정부에서 최근에 를 꾸린다 한다.너무 많이도 받지말고 백명정도 받아서 농촌을 사랑하고 농촌에 뿌리밖고 현대농업으로 신농촌건설과 도농통합발전을 이끌어갈 인재들과 를 확보하는 올바른 길이였다.동북지역의 한개성에다 이러한  (기실은 연수회임)을 꾸려 와 를 꾸리고 대를 이어갈 인재발굴과 확보하는 길이다. 성민족사무위원회 신문방송 교육 연구소가 힘을 합하여 실행할 수 있다.해마다 대학에서 열리는 학회에서 탄탄한 월금으로 생계걱정 없어 교수각자가 저각기 저좋은 소리나 하고  흩어지는 것보다 실질적인 일 하나를 성사 시키는 것이 더 의미가 있고 긴박한것 같다. 우리민족은 환상과 허영심을 버려야 돌아 오는 교육을 찾을 수 있고 민족사회의 활로를 찾을 수 있다. /이수산               2010,11,22
154    200만조선족에 왜 롯테같은 대기업 없나? 댓글:  조회:8998  추천:40  2010-12-13
200만 조선족이 살고 있는 중국에 왜서 롯테같은 대기업이 나올 수 없을가? 재일남북동포가 약 70만명 된다면 중국에 사는 조선족은 3배되는 200만명이다.그런데도 건국이후 60년이 지나도록 롯테그룹 신격호 같은 기업인이 한명도 나오지 못했다.  날씨가 따뜻한 아프리카에서 입을 걱정 먹을 적정 없으니 사회가 진화될 수 없듯이 추운 유럽에서 오히려 더 빠른 속도로 발전해왔다.재일동포들은 국적이나 일본의 국책으로 기본상 교직원이나 공무원으로 될수없고 하천한 직종과 자신의 특기와 노력으로  연예인으로만 될 수 있다.대국에만 의존해 살아가는 나라는 늘 빈궁하고 나약한 나라이기도 하다. 와세다공업학교를 졸업한 신격호는 취직은 못하고 미군이 전해 온 씹는 검연구와 개발로 작은 창업을 시작했다.그후 성공에 이르러 관광 호텔 백화상점경영에로 대거 진출하여 고국인 한국과 이웃인 중국으로 진출하기 시작하여 러시아 동남아시아 세계로 진출하여 대성공을 이루고 있어 그의 이름은 삼성이병철 LG구인회 현대의 정주영과 나란히 하고 있다.  그렇다고 중국의 각급정부에서 일하고 있는 공무원들과 교직원들을 모두 하해시켜서 기업을 꾸린다면 인차 신격호 롯테같은 그룹이 나올 수 있는것도 아닐상 싶다.  이 문제는 중국전반의 정체이자 문제의 근본인것 같다.사회주의 기획경제로부터 사회주의 시장경제로 전환되여가고 있지만 그렇게 쉬운 일들이 아니였다.지금도 중국엔 세계급 대기업은 거의다 자원규모 독점방식의 국영경영체제에서 배출된 석유화학 군사공업 공상은행 같은 기업일뿐이다. 지금은 기업인들의 창업환경은 많이 개선되여가고 있다.조만간에 민간대기업도 나올전망이지만 조선족들은 준비되여 있는가?아직도 기획경제 시대처럼 대학입시시험에 누가 일등을 하고 누가 정치인물 노동모범인가만을 주시하고 흥분할 때가 아니다.중소기업 민간기업 자주창업 대학생 창업 2차 3차 창업, 정년퇴직후 고향에 돌아와 창업 혹은 사회봉사자들의 사적을 적극 권장하고 격려하며 홍보를 하여야 한다.정부에만 기댈것이 아니라 우리가 자체의 힘과 능력으로 우리의 사회를 먹여 살릴 수 있는 기업과 창업의 길을 선택하여야 할것이다.이것이 바로 가장 바람직한 민족경제이다. 앞으로 정부의 일련의 체제개혁으로 정부의 투자만으로 살아갈 수 없는것이 시장경제이다.사회기본복지제도는 정부에서 책임질것이만 일상생활까지 보장해줄 수 없는것이 현실이다.우리민족사회는 아직도 경직된 옛날의 의 허울과 환상 그리고 허영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절강 온주 광동 복건 강소 사람들과 매우 대조적이 아닐 수 없다. 현재 한국기업이 중국에 대거 진출해서 근 4만여 회사를 경영하고 있으니 많은 조선족인재가 필요하겠지만 중국에서 제대로 발붙이자면 꼭 롯테같은 민간 기업이 필요할것이다.우리민족사회도 이러한 분위기 조성에 소리를 높이고 각급정부나 신문출판교육분야에서  성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란 제목을 새로 설치하고  조금이라도 성공한 민간기업인 중소기업인을 홍보해주고 재학생 청소년들로하여금 보다 많은 사람들을 먹여살릴 수 있는 창업이야말로 가장 보람있는 인생으로 간직하게끔 교육하여야 할것이다. 조선족사회의 새로운 를 꾸준하게 육성하면 중국조선족중 신격호 롯테같은 인물과 대기업이 조만간에 배출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이수산                2010.11.22 
153    唯有人才才能發現人才 댓글:  조회:11751  추천:21  2010-12-04
唯有人才才能发现人才 ——中国的杰出人才在哪里?                 李水山        古人、先人为我们后世留下了极其宝贵的经典,那就是“伯乐发现千里马”和“不拘一格降人才”。后来,有人主张这未免有些人为成分,不如依靠法律、制度选拔人才,这一书生理论被采纳,于是“伯乐发现千里马”和“不拘一格降人才”被束之高阁,这是我国难以出现杰出人才的致命要害。     古今中外,杰出人才和批量人才的涌现不等同。人才辈出有三种环境,这是大环境的变化,时势造英雄,即改朝换代、改革开放和制度创新。在皇权旨意下或历史推动下的古人变法、明治维新、戊戌变法、美国的兴起、新中国的成立都是契机。20世纪初的新政、新学、实学是时代变化和制度创新重叠时期,明治维新也如此,中国的改革开放也如此,人才辈出、人尽其才是这一时代的特征。     新学是新的教育制度,优于封建科举制度,是制度创新,成为人人成才的新制度,自然会形成人才辈出和人尽其才的大环境,但这是发现和培育批量人才的制度,只为培育杰出人才奠定了基础,因为杰出人才不是考出来的,而是从群众中来,从实践中产生。戊戌变法、明治维新、改革开放涌现出许多世纪杰出人才,其主要特征就是人才发现人才。     至今,虽然在法律、制度决定论的理论下,颁发了许多相关法令、文件,但是见效甚微,其主要原因是违背了“伯乐发现千里马”和“不拘一格降人才”的经典真理。不能说古人没有制定法令或制度,但过了几千年留下来的不是这种繁文缛节,而是颠扑不破的简明真理。     发现、推举、培育、选拔杰出人才,不是某一行业部门的垄断专利,如垄断专利成立,则可以炮制出繁琐法令、文件,最终变为潜规则,迈进的门槛则变高、启用人才的模式或尺码僵化而固定,程序或手续更复杂,条条框框何其多,笔试、面试加多次考察,制度性、程序性或集体考察研究决定的结果,大都选出无太大争议、徒有其表、华而不实的平庸人才。     “伯乐发现人才”,正是尊重和遵循杰出人才特有规律,有一特长就是人才,求全责备则选不出杰出人才。唯有人才才能发现人才。三国时期,水镜先生和徐庶向刘备推举了庞统和孔明,这还在信息不发达的时代,如现在全国、全世界范围内请人才发现和推举人才就不只是一个局地小范围了。日本的明治维新时期,兴办实业,就是由武士出身,后来变为官吏,再经商办企业的现代企业创始人涩泽荣一(1840——1931)等杰出人才,都是相互发现和推举的结果,培养和选拔出成千上万名实业家、改革家,这是明治维新成功的主因。蔡元培不拘一格发现和推举了很多杰出人才,成为国家栋梁和传世经典。没有学历、腿还残疾的华罗庚发现和推举了其貌不扬、没有口才的数学奇才才陈景润。如按部就班、墨守陈规、因循守旧地选拔人才,庞统因长相丑陋、态度清高,张飞凶相毕露,诸葛亮弱不禁风,华罗庚没有学历,爱恩斯坦是外来户,都是第一轮早早被淘汰的对象。 人们对“人才发现人才”的忧虑是近亲繁殖和任人唯亲,但真是那样推举近亲和庸才弟子的人,本身就不是人才,将成为千古罪人和庸才。还有一种顾虑就是孔明是杰出人才,但他推举的都是三流庸才,从这一点看他只会用人才,但他发现不了杰出人才,所以一人专断是有缺陷的,要对被推举人进行科学评估。    “伯乐与千里马”告诫人们,这也是一项制度创新,将成为打破目前行业部门垄断人事与人才工作的新突破。“不拘一格降人才”告诉人们,只要是杰出人才,花木兰可以上战场,年近古稀也可以当总统,二十岁也可当将军,不会骑马也可统帅三军,不是博士也能当教授、获得诺贝尔奖,没有口才也能当科学家,非洲裔奥巴马也能当美国总统。       不拘一格降人才、唯有人才才能发现人才,这是人才、人事工作的制度创新,古人并没有错。                                2010.12.4
152    虛心向改革開放初期學習 (이수산) 댓글:  조회:11991  추천:22  2010-12-03
虚心向改革开放初期学习                 李水山   改革开放三十年来,我国取得了巨大成就,也遇到了空前的困惑与难关,不仅中国,美国、日本、韩国、欧洲也遇到了世纪难题,如何解决?我们可以向古人学习,也可以向国外学习,也可以向我们的人民学习。在改革开放初期,比现在困难多得多,文革动乱刚结束,百废待兴,但是一个个难关都解决了,为什么?我们可以向改革开放初期的人民、知识分子、干部学习。 一是虚心学习。当时,我们曾热读过日本的《百年激荡史》,向日本的明治维新学习,而使明治维新成功的精髓就是“求知于世界”。我们现在比过去富裕了,国力也提升了,有这种谦虚、好学、敬畏的心情和姿态吗?当时,我们曾虚心向曾经侵略过中国的日本国学习,向欧洲、美国学习,向韩国、印度学习,学习他们包括资本主义的先进技术与管理方式的一切人类文明成果。现在,比过去自信了,但是这种虚心学习的精神、热情和态度是否大大降温了呢,我们仍需虚心学习,补充能量,加大动力,鼓足干劲,克服难关。 二是低调处世。既然虚心向人家学习,当初我们的姿态是谦和虚心的,并不是急于显示自己的富足、力量和发达,而是关心和贴切国内贫困地区和尚未脱贫的父老乡亲们。在各种有争端的国际问题上,先听听人家怎么说,看看人家怎么做,再决定自己怎么做。因此,虽然意识形态不同,政治体制不同,但这个世界都把中国当做自己的知心朋友和同路人,在政治、经济、文化、教育、科技、体育、交流方面可以说阻力很小。 三是实事求是。得益于邓小平的这一高瞻远瞩和谆谆教导,每个中国人都心领神会这句话的深刻含义和分量。实事求是,让每个中国人感到做任何事,门槛小了,“帽子”没了,束缚小了,管制少了,而且各行各业都在不断改进,谁都在鼓励你大胆地往前走,只要辛勤劳动就有相应的收获与前程,每个人都觉得有希望,有动力,有干劲,敢想、敢做、敢闯,可以甩开膀子、放下包袱、解放思想、开拓进取。怪不得邓小平反复强调说:实事求是是马克思主义的精髓。 四是有错必纠。无休止的阶级斗争和政治运动,让中国人都觉得自己底气不足、胆战心惊、如履薄冰。不管有没有错误,每个中国人都知道戴上“帽子”被人死整是什么滋味,然而邓小平、胡耀邦力挽狂澜、拨乱反正、有错必纠,使全体中国人卸下包袱、扬眉吐气,不再怀疑自己是“阳痿”了。三十年过去了,举国上下在取得巨大成绩的同时,大小权威、门槛、束缚是多了,还是少了?我们能像改革开放初期那样,敢于质疑、批判和矫正既定论点、历史与做法吗?即使严重过失,能拿到桌面上自我批评和立即纠错、改正吗?“实事求是”和“有错必纠”,是在那文革动乱后,改革开放顺利起航、乘胜前进的巨大动力和坚实保障。 五是每个人都觉得有机遇。在改革开放初期国内外专家、学者对中国最有价值的论断,就是改革开放让每个中国人感到有希望,给每个中国人一次次发展的机会,这是多大的动力和干劲啊!这才是中国发生翻天覆地的巨变的真正动力和源泉。这是检验我们的每项国策与论点正确与否的唯一标准。 六是凡事可以讨论。文革结束,大快人心的事就是不打棍子,不扣帽子,不抓辫子,凡事可以平等、自由讨论,在这样的社会氛围中,经济、文化、科技、教育得到飞跃发展,人才辈出、人尽其才、人人成才。如今人性、人道主义可以讨论,自由、博爱、民主可以讨论,普遍认为民主和自由是好东西,不是谁的垄断专利。过去国家最高领袖说过的、批过的、做过的,大多数人熟悉、习惯和认为对的,如果不符合科学实际,凡经过历史和实践检验错误的,就可以批判和改正。民主的基础是讨论,农民、草民也学会了自由讨论,可以写博客,可以参与讨论政府的重大决策,可以发表评论,可以维权,可以批评权威。  改革开放是全中国人民创造的巨大精神财富和世纪经典,我们不仅要向古人、洋人学习,还可以向改革开放初期的人们学习。  我们可以从中找到很多社会及国际难题的科学答案。                           2010.12.1      
151    農産品可以物美價廉 댓글:  조회:11651  추천:16  2010-11-24
农产品可以物美价廉李水山 作为我国早期农大毕业生,做了一辈子“三农”工作,虽然不是农经大专家,多少也能看出点门道,农产品与人们的生活息息相关,确实不能乱涨价了。有些农业同行大学者动不动口头禅似地说,农产品的低成本时代已经过去了,这话有些人爱听,恐怕连他自己也不会轻松、好受,除非他自己做农产品生意。因为我们天天进超市去买菜、卖肉、买蛋。农业部有“菜篮子办公室”,菜篮子实行市长负责制,米袋子省长负责制,这是党中央、国务院的科学决策。汽油、煤气、水电、电话、上网费,也是让所有公民揪心焦虑,担心哪一天又轮番涨价,但不是天天加油,是隔一星期、一个月、几个月交付,而买粮买菜是每天必须的,除非天天吃食堂,出差吃饭次数比在家次数多。曾记得上一世纪八十年代随着水稻考察团第一次去了日本,看到橱窗上的网纹瓜标价五千日元,那时日立牌小彩电才标价2万日元,大家无不惋惜地开玩笑说我们每人背过来4个网纹瓜换一台彩电好了,都觉得我国农民伟大,我国的农产品物美价廉。后来,为在日本学习多待了几年,对中国留学生来说最熟悉不过的是日本各地方农协经营的农产品超市,好大米本来20、30元人民币一斤(还有更贵的),但这种农产品专门超市还比较便宜,只有5——10元人民币,这对于月薪2、3万人民币的日本职工家庭,还算可以。每盘包装蔬菜不超300日元,约20元,便宜时只有70日元,也就4、5元人民币,多数菜只有120——220日元,约8——15元人民币。日本农民的农地是他们私人的,受国家法律严格保护,任何地方政府、部门、企事业单位不得强行剥夺。因此,从东京成田或大阪国际机场缓缓下降时,看见日本花花绿绿、无规则地散落各地的农民房顶。日本农民虽不集中居住、但过着田园式的生活。对一个国家来说,农村和湿地、山川、湖泊一样,是新陈代谢的呼吸系统。农民多半是兼业农民,利用一星期休闲时务农,家庭主要收入来自非农产业。不少年过六旬的老人依旧从事农业、有几亩葡萄园和菜地,有几亩水田,他还可以租房增收,还可以通过储蓄增值,儿女孝敬给钱,还可以买几台自动售货机放在路口挣钱。农民参加农民组织——农协,农协的好处很多,有统一技术培训和指导、统一提供种子和农资、统一植保防治病虫害,统一收购、储藏、加工或包装,统一销售,还有农协的金融储蓄、各种保险,因为农协是非政府全国性组织,政府的各种农业补贴都通过农协来兑现给他们熟悉的会员——农民。他们自己还有化肥厂、农资厂、流通网和物流体系,尽可能缓解农资涨价,不受煤油涨价影响,还具备分布各地的农产品超市连锁网点。别看日本人收入高,多数市民还是去这种农产品专门超市买每天吃的蔬菜和水果,收获季节,季节性蔬菜、水果都摆到门口小广场,按堆、按框、按网兜卖,更是物美价廉。所以市民对本地农民和农业是十分敬仰,对农业工作者和农业部门也是十分尊重,每年的“农业节”,那么多的市民参与,参与率极高。因为,农业和人们的衣食住、环境、健康密切相关,一家人开着私家车来到每年在农业院校、农业试验场、 农业公园、市民农园轮流举办的这一“农业节”,盛况空前。不仅有儿童游戏、木工教室、卡通漫画屋、民歌比赛、时尚表演、计算机或盆景讲座,还有新产品展示,“牛奶选美小姐”为摄影爱好者做各种优美姿势,现场做各种食品,展示农耕文化。全国各地的西瓜节、桃花节、美食节比比皆是。在科学家们的创意运筹下,还有新的农业应运而生,如空运农业(用飞机从产地运送新鲜农产品到消地,如鲜花、水果)、零成本农业(超市自己种菜生产农产品)、都市农业、田园农庄、有机农业、植物工厂、周末农场、农业体验学校等。即使这样,每年的收获季节,街道上来自本地农户的桔子、苹果、西瓜、桃,摆摊位卖,产销两地的直销活动自然形成,问了一位小伙子,他说地方政府支持,既不收费,也不赶走,成为一道风景线。农协是对内保护农民的,价跌、受灾、意外时都有对策,农协银行鼓励市民储蓄,优先贷款给农民,比商业银行优惠方便;农协又是优惠、方便消费者,比百货、超市的农产品种类多、新鲜、物美价廉,分布广。蓝天白云下边,绿油油、金黄色的稻田,跑着一辆辆自家车或自行车,蜻蜓飞、青蛙叫、鱼儿游,一眼望去、田园生活尽收眼底。这种田园美景,引来了原先在大都市闹市区的大学,医学院、农学院、名牌高中都迁过来了,教授与农民做邻居,形成了城乡统筹发展的新格局。 2010 .11.23  
150    沒有土地的農民從事的中國農業令人堪憂 댓글:  조회:11558  추천:39  2010-11-22
没有土地的农民从事的中国农业令人堪忧                      李水山我曾听说过中国人大农业与农村发展学院的一位教授讲,中国的农民实际上都没有地了,名义上有、账本上有,但早已被村干部们折腾没了,还是十几年前的事情,我判断这是近郊、中近郊农村的事情,地广人稀的黑土地除了劳务输出多、村里没有剩下几个人的村庄外略有不同。 农民以低成本收获并出售的粮食和农产品,被农业部门的企业层层包装加工增值,那时还被称之为乡镇企业的壮举,中国农业的二次飞跃,这还留在农口,多少再投入于农业算好点,现在更严重的是非农业企业,如与农业毫无相干的国家大中型企业也进军农业,大量购置土地和农产品,农民仍以廉价给他们打工,依然赚不到钱,但农产品已经涨了几倍甚至十几倍,和日本、韩国差不多,可怜天下消费者。 日本、韩国政府对农业补贴还能通过农民合作社准确无误地到农民手里,在中国就很困难,有些地方基层政府层层截留或盘剥。这是中国农业的致命杀手锏,令人堪忧。日本、韩国员工的十分之一、二十分之一的工资,承担与日本、韩国同样的农产品价格,这是令人震惊的中国农业的未来蓝图,从这一点看,中国农业其实是很危险的。 日本、韩国还有真正保护农民的合作组织——农协,农民就是有国家法律保护的自家私人土地的真正的农民,而中国的农民合作组织却大打折扣,中国农民是在保护农地的幌子下,一点点被剥夺,没有土地的农民,没有土地的农民生产的农产品,大小企业层层倒腾后,将来会是什么样?不堪设想!  希望农业经济专家、学者专题研究此问题,这并不是危言耸听,是眼前的现实。                      2010.11.21
149    中國外交困局的反思和展望 댓글:  조회:12557  추천:18  2010-11-16
中国外交困局的反思和展望                         李水山       2010年是多事之秋,中国的国力迎来大跨越,却在外交上遭遇空前的困惑,被称为“孤独的大国”,哲学家看来,这也许是高调亮相的反射。也有不少自信的学者认为这是以美国为首的西方各国看着中国的崛起而嫉妒、吃醋甚至敌视,“周边小国”更是感到恐惧;还有些敏感的学者认为意识形态上的斗争从来就没有静止过,西方国家对社会主义国家进行和平演变的痴心妄想从来就没有停止过,“周边小国”对中国日趋强大的猜忌和恐惧从来就没有消除过,这是耿直的人们未曾反思过的思维定势。     国内外的仁者、智者对事态的变化,格外冷静、理性,他们的最可贵之处在于知道反思和换位思考的科学价值,提出中国需要冷静和反思。中国外交的困局症结,究竟在哪里?要想从源头上分析和解决,需要从纵横两方面思考与分析。     从远古到今,纵观历史和横向观察,一个国家的发展历史悠久,国土辽阔、资源丰富,传统文化博大精深,往往是归属民族万分自豪的资本和依据,也正是这个资本成为现实和未来沉重的国家包袱。“胜者为王、败者为寇”的封建统治历史与文化,给这块土地上的人们留下看得见的博大遗产和看不见的沉重包袱。老子、孔子、秦皇、汉武、唐宗、宋祖、一代天骄成吉思汗,伟人毛泽东和邓小平,成就了昨日和今日的辉煌,也留下了不可磨灭的历史经典,造就了博大文化与国家版图,也出示了从屈辱到“走出去”的世界范本。 正如“孟姜女哭长城”一样,封建帝王的统治历史与文化不仅造就了诸如伟大的长城那样的辉煌建筑,也造就了民间无数的的哀怨和悲伤,可能是国内人民的,也可能是周边国家和民族的,我们从历史教科书上只记住了辉煌的一面,却没有学会换位思考和反思意味着什么。就像张仪如何英雄般为秦国统一周边诸国出谋划策,而因亡国而极度愤怒、悲伤的屈原最终选择投河自尽一样,正反两方面都给予后人和世人太多的联想。 郑和下西洋也如此,历代封建帝王与周边国家交往的时候,不仅带给世界以繁荣、灿烂的文明与和谐,也可能带有诸多负面影响,只是我们不太知道而已,而科学家们将逐一解开历史的神秘。正如八国联军和日本帝国主义带给中国人民刻骨铭心的创伤和屈辱一样,当我们设身处地地关爱近邻,像伟人毛泽东那样,谦和、主动、自觉反省尘封的历史,反思老祖宗的过去和一些做法,批判封建反动统治阶级,纠正农耕社会小农意识赋予人们的“大国”与“小国”概念和口头禅;自觉开展“批评和自我批评”,而不是“表扬和自我表扬”的时候;不是用眼前利害和位差态势敲定臣服关系,而是真心平等、民主对待“周边小国”并建立互助合作关系的时候,“友邻”、“睦邻”、“富邻”与“和谐亚洲”才能成立。即使在森林法则面前,始终谦和、平和、自律的大象要比咆哮的豺狼虎豹更赢得生灵们的欢呼和拥戴。     想当年,国人高度警觉并提防过北方和西方帝国主义的亡我之心不死,如今经济实力无比扩充和强大的中国要“走出去”,信息一体化、经济全球化、文化世界化、国防现代化,对一个国家和地区来说本来无可厚非,如果说军力、财富、实力在一百年前是走向世界的开路先锋的话,历史、现实和未来清晰地告诉人们,平等、关爱、互助、人性、民主、自由、和谐,在21世纪比什么都和谐而重要。因此说,仅仅依靠外在的财力、军力和实力走出去,那是硬道理,而不是软实力,更不是内涵和谐与文明价值的巧实力。      在三十多年前的中国,在改革开放初期,有待奋发的中国比起急着“走出去”,更多的是“请进来”,敞开双臂去迎接世界一切先进的文明,这就是内需和发展的第一要务,过去如此,今后也应如此,这就是平衡原理,是自然万物能持久而永恒的真理。即使是经济实力倍增的情况下,这两者是平衡、互助、和谐的。企业如此,商品如此,文化、军力、实力更如此,不是平等、相助、互助、和谐的军力和实力是居高临下的位差,不能双向选择或出自内心需要而失衡,这是难以持久永恒的,中国的和谐和西方的平等、自由、民主也是同样道理,放之四海也不会走样。     古人说的不都是错误,比如“远亲不如近邻”,就比“远交近攻”更理性、更科学、更高尚些;古人说的并不都是真理,封建统治阶级的精神、思想、观念中有很多糟粕,就不能与现代文明相媲美,即使对国内人民也是不公平的,夜郎自大、唯我独尊、顺我者昌、天朝史观、华夷秩序,就不如平等、博爱、民主、自由、和谐等现代意识和公民意识因开明、民主、人性、科学、文明和时尚,被更多的人们所接受和拥戴,不管种族、性别、年龄和国界。以我为中心、实力外交、军事较量,在一百年前还能说服和臣服一些人的话,平等、民主、自由、人性、和谐,这种包括先进的中华文明在内的世界文明,更能打动、感化、深入世界各国人民的心中。     “一分为二”的“斗争哲学”,在那个特定时代还能发挥过一些作用的话,与其相辅相成的“合二而一”、“世界大同”也是不可或缺的真理,是更为持久而永恒的,虽然运动是永恒的,但前者是矛盾的一个侧面或者横断面,而后者是运动的整体和结局,古人通过周易早已告诉了人们独立、制衡与和谐的永恒真理。在斗争哲学至高无上的年代,为了生存和发展,扶植与一个大国亲近的国家邻国,求得相互制衡,如印度和巴基斯坦,越南和柬埔寨,南北朝鲜,也发生过代理战争,但这在历史长河中是暂时、局部和功利的,而不是持久、长效的,更不可能是平等、民主而和谐的,因此是幼稚、短视、不科学的,一旦对立双方和解的时候局面会更加难以收拾。目前,与周边国家的矛盾和冲突,有些原因是历史造成的,有些原因是封建伦理,陈旧落后的传统文化、思想、观念,冷战思维和格局,以及与之相适应的的外交思想所酿成的。在缺乏平等、民主、和谐的国际关系的情况下形成的对外关系,就有可能是扭曲而不正常。如果至今一些人还对一对一的对外关系抱着某种寄托和幻想的话,那是没有摆脱封建传统文化意识的缘故,而全方位平等、民主、和谐的国家外交和国际关系,正是构筑平等、正常、和谐的国际关系和国际秩序的基础和保障,要比枪炮军舰对峙有效得多。     有些比起文明古国发展历史和传统文化积蓄浅薄的后发国家,运用现代意识、文明观念、科学技术和务实的决策,更加轻便、快捷而成功地走向现代化、面向未来,赢得世界的认同,受到世界各国各民族的赞扬和拥戴,这并不仅取决于他们的经济发展、文化积淀和军事实力,而是拥有与时俱进的现代文化、现代文明和科学民主的价值观。相对而言,他们更加务实,实事求是、解放思想、与时俱进、改革开放、开拓创新,而不是首先考虑祖宗、上帝和先人是否同意。多元、多变的世界期待的中国也是这样的改革开放和文明进程。     以人为本的科学发展观,是为了我们这个国家和民族的和谐发展,也是为了世界的和平与发展而建立,而不是为了高高挂起来给人看或当摆设。哲学家告诫我们,形式永远要为内容服务。复杂多变的世界局势,给一直在单向思维的单元社会提出了严肃而沉重的时代课题:那就是如何放下历史、传统、文化、习俗、意识形态、国家体制、冷战格局、唯GDP主义、屈辱的百年悲情、自然界生存法则所支持的的优越感、自卑感、使命感、冲动感带来的种种困惑、束缚和包袱,正确面对和应对经济全球化、信息一体化和政治民主化带来的挑战和机遇,进一步解放思想、改革开放和与时俱进,走世界大同、和谐与文明的康庄大道。 反思过去、展望未来。具备平等、公正、民主、自由、人性、反思、自律、和谐的现代公民意识的中国,从奋发到自豪,再到谦和、宽容、文明,这是一个国家和民族不断走向文明进步的前提条件和必要条件。                            2010.11.4  
148    中國如何與周邊國家改善關系? 댓글:  조회:9627  추천:28  2010-11-14
     中国如何与周边国家改善关系?               李水山    “远亲不如近邻”。中国和日本、韩国分别有2000亿美元左右、与东盟有1000多亿美元的经贸关系,这对于一心一意、专心致志发展经济和追求和平发展的中国来说是举足轻重、至关重要的,占我国对外总贸易额的1/4,逐渐接近1/3。中国与周边国家有几千年友好往来的历史和渊源关系,这些都是世代“友邻、睦邻、富邻”的重要基础和保障。     然而,有时事实与愿望相违。近年来,亚洲处于多事之秋,处于多国领海、国境、历史、文化的紧张、对立关系,这对于正在和平发展和崛起的中国来说,并不是值得心安理得的事情。国际比较,世界大国都较少发生过、现实和未来再发生类似争端的可能性不大,这对于以“和为贵”、“和而不同”、“构筑和谐社会和世界”的文化为核心价值观的中国来说,不是值得乐观、欣慰的事情。     我们看来,在文化、经贸方面受益于与中国交流与合作的周边国家应俯首称臣、感恩不尽,为什么愈发感到紧张、对立呢?答案很简单,周边国家认为中国现在是韬光养晦,将来实力强大了会以武力和实力解决任何纷争与争端,对本国主权、领土完整和未来发展带来威胁。在资源越来越紧张的未来,中国这个“大哥”会与他们这些“弟弟”、“妹妹”、“侄子外甥”抢糖吃。要化解这些误解,取决于我国的对外政策取向。     我们看来,这不是歪曲事实、造谣诽谤嘛,中国历来没有侵略过外国,没有欺负过外国,没有蚕食过外国,至少在“天朝”、“朝贡”、“华夷”体系(周边国很反感这些词)中,中国给得多、取得少,而多数周边国家认为“天朝”、“朝贡”、“华夷”是不平等和屈辱历史的代名词,而且记忆犹新,就像日本人陶醉于“大东亚共荣圈”、“王道乐土”、 “皇国史观”时,中国和周边深受日本帝国主义侵略和压迫的国家人民感到莫大的屈辱一样,这叫换位思考。这就像不懂得社会心理学的执政党困惑于国政一样,不懂得国际心理学的国家,很难受人尊重。    我们看来,儒学是“和为贵”、“和而不同”,不像西方列强那样对外实行蚕食、吞并、掠夺、奴役和殖民化,但周边国家至少与西方文化比较以后,认为传统儒学是主张“上下”、“贵贱”、“从属”的社会主张,尽管孔子是“为人师表”的化身,但“君臣父子”、“长尊有序”的上下从属关系,让人感到持久的委屈、不安。     中国需要正常、持续发展,就要像“大哥哥”那样宽容、善良、开阔、大度、矜持、主动,不能与“弟弟”“妹妹”们过于计较,这不是软弱,而是包容、宽宏、民主和伟大:在资源紧缺时,不应“抢糖”吃,应平等、协商、大度;在人家在竞技比赛中优胜时,不能争风吃醋,应大方、宽厚;在发生纷争时,不应以势压人,要忍让;在人家不幸和委屈时,不应幸灾乐祸,要分忧、安抚;在人家之间发生矛盾、争斗时,不应火上加油,要坚持原则,以理服人;在文化交流中,主动接受、欣赏人家的文化与长处,为之鼓掌,不应极力贬低、排斥;在人家的合理博弈、整合中,尊重客观规律,顺应历史发展趋势,不应制造对立,阻挠历史进程;在人家有困难时,慷慨相助,比别人多出一点,不应趁火打劫;国家无论强弱、大小、贫富,主张平等、友好、合作,不彰显“实力”,更不彰显武力,坚持国际准则和公道;在出现“害群之马”时,不应当“和事老”,更不应纵容、支持和搞交易,要挺身而出,主持正义,明辨是非,高扬正气;当国内有困难时,靠自己克服,善待周围,不应纵容、扶持极端势力,转嫁矛盾;事事率先垂范、弘扬正气,开放、改革、文明、和谐、宽容。     众多弟弟、妹妹记忆中的大哥哥总是分糖分馍给大家吃,而他最后吃,还老是笑着。                              2010.7.31    
147    창업문화는 민족사회의 명맥 (리수산) 댓글:  조회:7986  추천:62  2010-10-23
창업문화는 민족사회의 명맥리수산등소평의 말은 짧고 철학적이다. 말이란 길다고 해서 더 뜻이 깊은것이 아니다. 빈말은 아무리 길어봤자 결국은 아무런 쓸모도 없는 헛소리에 불과하다. 등소평은 물질문명과 정신문명 이 “두손이 모두다 억세여야 한다”고 말한바 있다. 우리 민족이 걸어온 력사를 돌이켜보아도 매우 지당한 말이다.  우리 민족은 교육을 중시하고 많은 인재를 배출하여 다른 민족보다 앞섰다고 자부하고있지만 민족사회를 발전시키기엔 아직 엄청 부족하다. 산업과 학문 연구의 결합이 너무나 박약하기때문이다. 일례로 20년전 북경대학이나 청화대학에서 우수한 인재들이 학교담벽을 뛰여넘어 “방정”(方正)이나 “련상” 같은 컴퓨터기업을 꾸리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오늘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IT산업은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오지 못했을것이다.  여기엔 교육구조와 사회적관념이 작용을 하고있다. 즉 응시교육에만 매달리다보니 설사 좋은 학교에 승학하고 후날 대학교수로 된다고 해도 지방이나 민족사회 발전과는 동떨이진 상태가 되고만다. 하지만 우리가 좀더 일찍 직업교육에 중시를 돌렸더라면 우리 지방, 우리 민족 사회발전에 큰 도움을 줄수 있는 수많은 인재가 육성되였을것이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의 보람을 느꼈을것이다.   우리 동포들이 차별대우가 심한 일본에서 발을 붙일수 있는것도 파친코(パチンコ)와 같은 민족기업과 민족학교를 중심으로 한 민족문화가 기틀을 잡았기때문이다. 물론 정치에도 참여하고 국회의원, 장군과 대학교수도 배출되여야 하지만 그보다 창업가가 보다 많이 배출되여야 한다.   문화는 한 민족의 경제와 사회를 이어가고 지켜가는 피줄기이다. 문화가 없는 민족은 생존과 발전의 근거와 보람을 잃어버리게 된다. 아무리 경제가 발달하고 높은 직위에 있다고 해도 기반문화를 잃어버리면 별 보람을 느끼지 못하기 마련이다.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느냐는 삶의 명맥인 귀속감을 잃게 되기때문이다.  젊음이 곧 파워이고 에너지이다. 젊을 때 지식과 기술, 그리고 경영학을 배우고 노하우를 축적하라. 그러면 점차 창업의 길이 열린다. 우리 모두 인습을 답습하려 하지 말고 하루빨리 창업의 길을 모색하고 실천해보자.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수많은 민족기업들이 힘을 합치면 탄탄대로가 만들어진다. 기업이 살아남고 발전할수 있는 길은 오로지 연구와 개발뿐이다. 연구와 개발을 소홀히 하는 나라와 기업은 흔히 남의 뒤꽁무니를 따라가거나 남의 성과를 표절한다.  실학과 실업정신을 키워내는 문화가 바로 창업문화이기도 하다. 창업문화는 민족사회의 명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46    신농촌네트워크 (리수산) 댓글:  조회:8216  추천:35  2010-09-14
신농촌네트워크리수산  신농촌건설은 한국의 새마을운동의 영향을 받았지만 지금은 중국의 아이디어와 노하우일것이다.조선족중심촌건설과 민족네트워크는 우리민족지성인들의 아이디어와 노하우이다.   비빔밥의 지혜를 빌어 <신농촌네트워크>란 새로운 발상을 제기한다.집 뜨락과 마을을 뛰쳐나가 출세하려는 젊은이의 용기와 기량은 긍정적이겠지만 일반적으로 빈손으로 나가는 충동이였으나  성숙한 장년노자가 되여 되돌아 올 때는 그만한 능력과 축적이 있을 수도 있다.자금이 없어도 지혜와 노하우를 가진 선배들이다.가장 바르지않는 것은 아무런 기여없이  자신을 낳아준 고향과 민족흉보기와 헐뜻기이니 가난했던 부모탓만하는 망나니자식의 행위라 볼 수 있다.    우리는 천명내지 만여명의 성공한 기업인 지성인을 배출하고 있다.계속 흩어져만 있으면 모래사막속의 물방울로 사라지겠지만 다같이 모이면 호수가 될 수 있을것이다.다같이 모인다는 아이디어와 행동력이  바로 네트워크이고 신농촌건설에 기여한다면 <신농촌네트워크>로 부상할 수 있다.    <신농촌네트워크>의 핵심이론은 지금의 중국과 동북아 나아가 전세계의 평화와 발전의 흐름에 적응한 민족경제문화건설대안이다.하늘과 땅 그리고 바다의 교통망을 따라  물류 인적류 문화기술정보류를 집중시키는 아이디어이다.우리민족은 여러지성인들의 경고 계시와 제안에 따라 토지 집과 마을을 어느정도 지켜가고있으나 그것만으로는 피동적인 발상일 수 있다.이 더없이 귀중한 자원을 활용시키는 것이 바로 <신농촌네트워크>구성이다.북경 상해 천진 청도 서울 도쿄 뉴욕 모스크바에서 수많은 물류 인적류와 문화기술정보류가 흘러온다.<도랑>을 파거나 네트워크를 형성해서  이<류>를 받아들이는 것이 융성번영의 올바른 길과 선택이다.   올바른 길은 바로 여기에 있다.서울 도쿄 모스크바 뉴욕 북경 상해 천진으로부터, 한갈래는 심양 장춘 연길 목단강 할빈, 다른 한갈래는 심양 장춘 할빈 목단강 가목사 치치하르일것이다.하지만 큰 도시만 바라보거나 큰 도시안에 <도시마을>을 형성해서 이 <류>를 받아들이는 것도 좋겠지만 대부분 농지와 마을에 거주했던 조선족마을엔 <해빛>이 다가오지 못한다.그렇기때문에 너무나도  흩어졌던 고향마을을 중심촌으로 집중해서 민족문화특색이 짙은 <아리랑마을 ><도라지마을><진달래마을><한옥마을>을 만들어 진주처럼 연결시켜 놓으면 브랜드식 <신농촌네트워크>로 부상할 수 있는 것이다.심양 장춘 할빈 연길못지 않은 진주옥석이다.    이것이 우리민족의 마음의 고향이자 마음속의 <지도>일것이다.이 <지도>가 바로 <신농촌네트워크>의 초보적인 구상이자 설계도일 것이다.고속열차나 비행기편으로 심양에 도착하면 <중국조선족제1촌>만융촌을 가 볼 수 있고 연길에 도착하면 홍기촌 소영자촌 민들레촌 두레마을, <버섯마을> <황소마을><복숭아마을><민속마을>로 행보가 이어질것이다.장춘 할빈과 목단강 가목사 치치하르 오대연지(五大连池) 흑하(黑河) 막하(漠河) 우리민족은 이에 대한 마음속의 구상과 실천의 준비가 벌써 되여야 할 것이다.각 지방의 향  현 시정부에게도 보고하고 모두가 같이 지혜와 힘을 기여한다면 곧바로 실천에 옮겨질 수 있을것이다.   한국 일본도 기웃기웃하다가 인젠 세계지도를 거꾸로 들고 보면서 반도연장선을 남으로만 향했던 발상을 인젠 북으로 북으로  옮겨진다.멀리 내다보는 이명박대통령도 더 큰 그림을 그리려고 러시아로 달려갔다.녹색성장으로 전기차가 보급되면 양곡 식품도 석유못지않은 인간의 생존에너지 필수품으로 부상하게 되므로  곡창지대로 한국과 일본등 전세계의  자본과 기술이 들어오게 된다.러시아의 극동지역 중국의 동북지역이 반도연장선에 놓이게 되면 전 한반도도 이 궤도에 연결되여 간다.마을의 어느 늘 술주정하는 건달뱅이가 이 궤도에 안타겠다고 들어누워 고집해도 여러사람들에게 들리워가게 되고 만다.이것이 바로 지각변화이고 세계의 흐름일것이다.   우리민족향과 촌에서 기다리기만하는 시기가 아닌상 싶다. 심양만융촌 연변안도현홍기촌 연길민들레촌 소영자촌 그리고 녕안 해림 화천 아직도 발걸음을 떼지않은 마을과 사람들은 먼 고국과 큰 도시에서 부쳐오는 <우편물>만을 쳐다보기보다 우리자신의 지혜와 힘으로도 모두가 다 잘 살 수 있는 <신농촌네트워크>를 조속히 다그쳐야 할 것이다.   <도농통합발전>은 중국정부와 공민들의 <근본적요구>(加快形成城乡经济文化一体化新格局是根本要求)라고 중앙1호문건에서 여러차례 거듭 강조하고 있다. <신농촌네트워크>가 바로 이 도농통합발전의 새로운 구상이자 출발로 될 수 있다.동북지역에 먼저 10개 가장 우수한 <제1촌>(천호내지 3천호에 3천명내지 만명 인구규모)을 부상시킨후 앞으로 100여개로 건설할수있다.    우리민족대학 연구기관 신문출판방송부문에서 먼저 새롭게 탄생부각되는 고향마을을 홍보해야 하고 서로 연결되는 <고향마을사이트>를 창설해야 한다고 본다.  물류 인적류와 문화기술정보류의 흐름을 타고 <먹거리><볼거리><삶의거리>로 일떠선 활기차고 브랜드화된 고향마을을 천만리밖에서도 내다 볼 수 있어야 한다.   고향은 꼭 변해가야 하고 꼭 변해갈 수 있을것이다.   201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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