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4월 2025 >>
  12345
6789101112
13141516171819
20212223242526
27282930   

방문자

홈 > 詩人 대학교

전체 [ 1570 ]

100년 시인 윤동주를 그리며                                                                           / 강 순 화       지난 2월16일, 룡정 윤동주연구회에서는 우리민족의 걸출한 시인 윤동주탄생 100주년과 시인 윤동주 옥사 72주기를 기념하여《100명 시민 100년 시인을 노래하다》는 테마로 룡정과 연길시의 100여명 시민들을 이끌고 룡정 명동 동산에 자리잡은 윤동주묘소를 찾아 경배활동을 진행하였다.   필자도 소식을 듣고 이 뜻깊은 행사에 참여하였는데 현장에서의 감회는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힘든《깊은감동》그 자체였다. 특히 젊은 문화인들이 주최하고 어린 학생들까지 참여한 이 행사를 보면서 우리민족시인 윤동주에 대한 사랑과 추모는 세세대대로 이어지고 있음을 심히 느끼게 되었다.     사실 나는 80년대부터 중국조선족의 걸출한 학자이고 교육자이며 우수한 작가와 평론가이신 원 연변대학 부총장 정판룡교수님을 보좌하면서 그이께서 병환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12년간 함께 사업할 수 있는 행운을 가졌었다. 수년간 정판룡교수님을 따라 진행해 온 우리민족 문화사업중 시인 윤동주묘소를 찾고 시인 윤동주를 세상에 알리는 각종 기념활동들을 조직하면서 동분서주했던 그 나날들이 오늘따라 유달리도 새롭게 머리에 떠오른다.     일찍 80년대 초만 하여도 우리는 시인 윤동주에 대하여 잘 모르고 있었다.《룡정에서 태여나고 룡정에서 공부를 하였으며 지금도 룡정 동산에 고이 잠들고 있는 우리고향 시인 윤동주》는 사실 우리와 가장 가깝고 가장 자랑으로 여겨야 할 엄연한 우리민족 시인임에도 오랜 세월동안 우리는 마치 그저 외국에서나 기념하는 우리와는 거리가 먼 력사인물로만 여긴 것이다.     운명적인 시대의 풍운으로 하여 시인 윤동주는 짧디짧은 28년의 생애에 무려 17년이란 세월동안 두만강을 넘나들고 한국, 일본땅을 정전하면서 학업의 끈을 놓치 않았고 일제의 박해와 이역땅의 고통, 지어 옥중에서도 민족의 량심과 예지로 저항하며 피와 정열과 재능으로 엮어진 주옥같은 시로서 민족의 넋과 얼을 굳게 지켜 왔다. 하지만 그의 고향땅에 살고 있는 우리는 그이가 세상을 떠난 50년이 되도록 그에 대해 잘 모르고 지냈던 것이다.     윤동주시인에 대하여 깜깜부지인 연변땅에 처음으로 등불을 밝혀 정보를 가져오고 룡정 동산에 묻혀있는 그의 묘소를 발견한 이는 바로 연변대학에 객좌교수로 오신 일본 와세다대학교 오오무라 마스오교수였다. 그이는《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가는것을 사랑》하는 학자였다. 오오무라 마스오교수는 1950년대 중반부터 조선문학에 관심을 모았고 특히 세월의 거치른 언덕에 묻히여 망각되였거나 희미해진 항일지사와 문인들을 발굴하고 자료를 수집하며 그들의 생애를 추적하는 많은 저서들을 펴냈다. 하여 일찍부터 윤동주연구에도 힘을 기울려왔고 그의 생애와 문화적 업적을 정리하면서 시인 윤동주는《고향이 낳은 세계적 대 시인》이란 평가까지 하고 있었다.     시인 윤동주묘소를 찾은 5일 후인 1985년 5월 19일, 연변대학 정판룡교수를 위수로한 5명교수와 연변민족박물관의 책임일군 그리고 오오무라 마스오교수와 부인 등 일행 9명은 정성껏 제물을 갖추어가지고 시인의 묘소에 가서 조선민족의 풍습대로 제사를 지냈는데 이번 행차는 이곳 룡정땅에서 광복후 최초로 되는 시인에 대한 추모의식이였다. 그 이후로부터는 학생들, 친척들 그리고 각분야의 인사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추모활동들을 이어 왔다.     1995년7월14일과 15일에는 연변대학조선한국연구중심, 중국작가협회연변분회, 연변문학예술연구소, 연변대학조문학부, 연변대학조선언어학연구소, 룡정시문학예술계련합회의 공동주체로《민족시인 윤동주50주기기념학술토론회》를 가졌다. 반세기만에 처음으로 시인의 고향땅 룡정에서 첫 기념회를 가졌고 고향이 낳은 세계적인 시인 윤동주를 기리게 된 것이다. 이 회의에서는 기념활동으로 시랑송과 노래표연, 학술론문발표, 모교참관과 묘소에서의 제사 등 행사들을 진행하였다.     1993년 2월 25일 연변대학조선한국연구중심, 중국작가협회연변분회, 룡정시문학예술계련합회와 시인의 친속들은 공동으로《윤동주생가 유지에 문학비를 세울데 대한 발기서》를 발표하고 모금활동을 벌리였다. 1993년 6월30일에는 다시 윤동주생가를 복원하고 그 정원에 표식비를 세우자는 의견에 합의를 내오고 연변대학의 정판룡교수를 회장으로 권철교수를 주관으로 한《시인 윤동주생가복원촉진회》를 성립하였다.      시인 윤동주 생가는 1900년에 그의 조부 윤하현선생이 명동촌으로 이주하면서 지은 집으로 기와를 얹은 10간과 고간이 달린 조선민족전통구조로 된 농가집이다. 시인 윤동주는 1917년 12월 30일 이 집에서 태여났다. 1932년 4월 시인 윤동주가 은진중학교에 승학하게 되자 그의 조부는 가족을 이끌고 룡정으로 이주하였다. 나중에 이 집은 매도되여 다른사람이 살다가 1981년에 허물리운 것이다.     1993년 3월 지신향 명돈촌이 룡정시의 관광명소로 지정되면서《윤동주생가복구》가 의사일정에 오르게 되였다.《시인 윤동주생가복원촉진회》를 내온 후 우리 연변대학조선한국연구중심에서는 전문가를 초청하여 직접 설계도를 그리고 경비예산을 연구했으며 복구자재를 락실하는 등 많은 일들을 벌리였다. 그 과정에서는 실로 많은 어려움이 부딪쳤으나 국내외 인사들, 특히 리윤기선생 등 한국한민족연구회와 룡정시지신향정부 등 단위의 협찬하에 1994년 8월 28일 드디여 이 생가와 명동교회당을 복원하게 된 것이다.     그동안 필자 역시 이 사업 추진회의 한 일원으로 연길-룡정-명동을 수없이 오가며 문건을 전하고 후원금을 전달하였는데 그때에 어데 지금같이 통신이나 은행계좌가 구전했던가? 한국이나 사회 각지에서 전해 온 딸라나 한화로 된 후원금들은 현금 그대로 봉투에 넣어들고 룡정문련을 찾아 다녀오던 일들이 아직도 어제일 같이 떠오른다.     한번은 답사를 갔다오던 자동차가 명동촌으로 가는 올리막 산비탈에서 번져지는 바람에 연변대학 권철교수가 앞가슴 륵골 다섯대나 부러지는 큰 사고를 내고야 말았다. 그때 온 가슴을 붕대로 감고 병상에 누워 입원치료를 하면서도 우리에게《생가복구》일정을 문의하고 의견을 주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선히 보인다. 선인들의 이같은 각고한 노력이 있었기에 시인 윤동주 생가도 다시 복구될수 있었고 시인의 정신은 오늘도 래일도 드팀없이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가장 민족적인 시인만이 세계적인 시인으로 될수 있으며 또 모든 세계적인 시인은 우선 먼저 민족적인 시인으로 되어야 하는 것처럼 시인 윤동주도 우선 먼저 우리의 시인이면서 동시에 전 민족의 시인인 것이다. (정판룡)》우리는 연변이 낳은 민족시인 윤동주의 숭고한 지조와 그가 우리민족문화 발전에 기여한 거대한 공헌을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할것이다.     윤동주의 생애는 너무나도 짧았고 그가 남긴 유작도 많지 못하다. 하지만《시인이란 슬픈 천명인줄 알면서도》《주어진 길》에서《한점 부끄럼》없이 분투한 그의 일생과 불후의 시편들은 세세대대로 세인들의 경탄과 찬사를 받고 있다.《그처럼 캄캄한 일제하의 암흑기에 윤동주는 한민족에게 그 어둠속에 빛나는 빛줄기였다》라고 오오무라 마스오교수는 말한다. 서서히 빛을 뿌리는 혜성 윤동주는 영원히 우리의 마음속에 살아있을 것이다.     오늘 다시금 시인 윤동주묘소앞에서 그의《서시》를 정히 읊으니 가슴은 뭉쿨하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또한  한없이 숙연해 지기도 한다. 우리모두 시인의 유지를 받들어 그이처럼《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이《주어진 길》에서 떳떳이 걸어갈 수 있을까 가슴에 손을 얹고 다시한번 심사숙고 하지 않을 수 없다.                                                                                             2017년 2월  
289    시가 스스로 울어야 독자들도 따라 운다... 댓글:  조회:2657  추천:1  2017-02-27
시와 이미지(Visual Image)  시는 개념으로 생각하고 시각적 이미지로 느낀다. 러시아의 형식주의자 쉬클로프스키(V.Chklovski)도 ‘예술의 목적은 대상의 감각을 인식이 아니라 이미지로 부여하는 것이다.’고 했다. 시는 이처럼 관념 혹은 감정의 진술이 아니라 어떤 사상(事象)을 그림을 그리듯 이미지로써 상황묘사(描寫)하는 노력에서부터 시작된다. 마치 화가가 되기 위해 데상(dessin)에서부터 미술 공부를 시작하듯 묘사(描寫)는 습작기에 반드시 거쳐야할 소중한 시창작의 바탕이 된다.  그러기에 시인은 감독처럼 무대(시) 뒤에 숨어버리고 대신 시인이 제시한 객관적 상관물을 통한 이미지 제시로써 독자를 울려야 한다. 배우가 먼저 웃는 코미디가 없듯 시 속에서 독자보다 시가 먼저 울어야 되겠는가? “시가 스스로 울음으로써 독자를 먼저 울리려고 하는 시가 있다. 그런 경우 우리는 그러한 치기(稚氣)를 웃을 수밖에 없다.”는 김기림의 지적은 이런 의미에서 새겨볼 만하다.  * 객관적 상관물(objective correlative)  T.S 엘리어트가 주장한 시작(詩作)의 한 방법. 표현하고자 하는 어떤 정서나 사상을 그대로 나타낼 수 없으므로 그것을 대신 나타내주는(그것과 닮아 있는) 어떤 객관적 사물, 정황, 혹은 일련의 사건들을 선택하여 그것들을 유기적으로 결합해 놓음으로써 독자의 정서를 자극하는 표현기교.  1. 시는 이미지에 의한 정서적 환기다.  시인이 ‘외롭다’거나 ‘불안하다’는 심정을 전달하고자 할 때, 이를 직접적으로 ‘외롭다, 불안하다.’ 라고 진술하거나 토로할 것이 아니라 ‘외로움’과 ‘불안’의 정서를 자아낼 수 있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그려(제시하여)줌으로써 ‘외로움’과 ‘불안’의 정서가 효과적으로 유발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는  *이 아니라 →   o. 그 여자는 예쁘다. → 그 여자는 모란꽃처럼 탐스럽다.  추상적 설명 구체적 감각(Visual 이미지)  o. 그는 성질이 냉정하다 → 그는 성질이 칼날이다.  추상적 설명 그림(Visual 이미지)  o. 나는 지금 나는 지금  몹시 불안하다. → 무너지는 절벽 위에 서 있다.  추상적 설명 구체적 상황(Visual 이미지)  o. 나는 외롭다. → 널따란 백사장에  추상적 설명 소라  오늘도 혼자랍니다. (구체적 상황제시)  2. 대상(對象)은 이미지로 인식한다.  -추상이나 개념보다 이미지가 앞선다.-  우리가 ‘어머니의 사랑’이란 단어를 떠올릴 때, 우리의 머리 속에 먼저 떠오른 것은 과거 경험 속에서 몸소 체험했던 그 어떤 구체적 영상 이미지가 클로즈업 되면서 비로소 ‘어머니의 사랑’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예1) ‘어머니는 고맙고 사랑스런 분이다 ’  - 추상적 관념적 시어로서 구체적 체험의 재현이 없으므로 별다른 감동이 없다.  예2) ‘겨울날 학교에서 친구와 돌아오는 길에 길가에서 생선을 팔고 계시는 어머니’  - 구체적이고도 감각적인 영상 이미지가 재현됨으로써 우리를 위해 온갖 수모와 희생을 감수하시는 어머니상을 느끼게 된다.  예3)  들녘이 서 있다.  밤새 한숨도 못 잔 얼굴로  부시시  그러다 못해  앙상하게 말라버린  날카로운 촉수로  굳어버린 우리의 겨울은  보이지 않은 우리의 겨울은  차가운 들녘 위에  영하의 긴 침묵으로  꼿꼿이들 서 있다.  -김동수의 「겨울나기」, 1986년  자신이 처한 현실적 불행 상황을 ‘겨울’의 다양한 감각적 이미지로 형상화(形象化) 하여 독자들에게 그의 불행한 처지를 호소력 있게 전달해주고 있다.  겨울’이라고 하는 일반적 추상 의미가 흐릿한 관념의 틀 속에 가려(갇혀) 있지 않고 그가 맞고 있는 겨울이 보다 구체적이고도 생생한 현장감(Presence)으로 드러나 있다. ‘밤새 한잠도 못 잔 부시시한 얼굴’이거나, ‘앙상하게 말라버린 날카로운 촉수’, ‘영하의 긴 침묵’, 그러면서도 ‘꼿꼿이 서 있는’ 그러나 ‘보이지 않는 우리의 겨울’등 의인적 시각 이미지가 부정과 실의의 절망적 상황 속에서도 눈 감지 않는 오기와 집념으로 생동감 있게 살아 있다.  이처럼 관념, 개념, 사상 등도 정서와 더불어 시의 주요 내용이긴 하나 이것들이 감각적. 구체적으로 형상(이미지)화되지 못하면 예술적 감동이 죽거나 감소되고 만다.  예4)  무릎 앞의 소유는  모두 껴안고도  외로움의 뿌리는 깊어  사람이 부르면  날짐승처럼 운다.  어느 가슴을 치고 왔기에  사람이 부르면  하늘에 들리고도 남아  내 발목을 휘감고야  그 울음 그치나  -최문자의 「산울림」에서  자칫 관념적이고 상투적 인식에 그치기 쉬운 산울림(메아리)에 대한 개인적 인식의 정도가 남달리 개성적이고 치열하다. 활유법에 의한 역동적 표현, 그러면서도 이를 응축된 정서적 시어로 탄력 있게 이미지화 하여 외롭고 허망한 산울림의 내면적 속성을 호소력 있게 전달하고 있다.  3. 관념의 형상(이미지)화  추상적 관념을 소재로 하는 시에 있어서 관념어(사랑, 그리움, 슬픔 ....,)을 그대로 설명하거나 진술하는 것이 아니고, 한 폭의 그림을 보듯, 혹은 현장감 있게 구체적 이미지를 통해서 실감나게 표현(시각화, 청각화 등)하고 있는 것이 관념의 형상(이미지)화이다.  그러나 형상화는 단순히 겉모양을 묘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것이 안고 있는 본질적 특징이나 상징적 사건을 중심으로 시대적 풍경화를 포착하였을 때 시적 의미를 지니게 된다.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 곽재구의 「沙坪驛에서」중에서  행상(行商)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막막하고 고달프게 살아가고 있는 변방인(서민)들의 고달픈 일상과 그 표정들을 ‘막차’, ‘간이역’, ‘밤새 퍼붓는 눈’, ‘톱밥 난로’, ‘대합실에서 졸고 있는 사람들’, ‘기침에 쿨럭이는 사람들’,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 등의 객관적 상관물(客觀的相關物)에 의해 꼼꼼하게 그려주고 있다.  출렁일수록 바다는  頑强한 팔뚝 안에 갇혀버린다. ---------절망적 상황에 대한 구체적 이미지화  안개와 무덤, 그런 것 속으로  우리는 조금씩 자취를 감추어 가고 --------존재의 소멸  溺死할 수 없는 꿈을 부등켜 안고  사내들은 떠나간다.  밤에도 늘 깨어 있는 바다 ----------- 포기할 수 없는 꿈  소주와 불빛 속에 우리는 소멸해 가고 --------- 존재의 소멸  물안개를 퍼내는  화물선의 눈은 붉게 취해 버린다. ------- 포기할 수 없는 꿈에 대한 안타까움  떠나는 자여 눈물로 세상은 새로워진다 ---극적전환(형이상학적 깨달음)  젖은 장갑과 건포도뿐인 세상은 ------을씨년스럽고 건조한 현실상황  누구도 램프를 밝힐 순 없다  바닷가 기슭으로 파도의 푸른 욕망은 돋아나고 -- 꿈에 대한 새로운 의지  밀물에 묻혀 헤매는  게의 다리는 어둠을 썰어낸다 ----------- 현실극복을 위한 행동개시  어둠은 갈래갈래 찢긴 채  다시 바다에 깔린다.  떠나는 자여  눈물로 세상은 새로와지는가 --‘눈물’을 통한 새로운 세계의 확신  우리는 모든 모래의 꿈을  베고 누웠다  世界는 가장 황량한 바다 -------- 그러나 아직 삭막한 현실상황 재인식  - 윤석산, 「바닷속의 램프」에서  절망적 상황에 갇혀버린 자신의 우울한 심사를 ‘출렁일수록 바다는/완강한 팔뚝 안에 갇혀버린다 ’거나 ‘어둠은 갈래갈래 찢긴 채/ 다시 바다에 깔린다.’ 혹은 ‘모래의 꿈을/ 베고 누워 있다.’등의 구체적 형상의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가 한 편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시인의 자기 고백이 아니라 시인이 제시한 시적 정서에 젖어들고 싶어함이다. 이는 한 편의 시가 시인의 주관적 감정의 발로이지만 그가 제시하고자한 그 주관적 감정을 향수하기 위해선 독자가 공유할 수 있도록 객관정서로의 제시 장치, 곧 객관적 상관물(objective correlative) 을 통한 주관적 감정의 객관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4. 좋은 이미지란?  1. 신선하고 독창적이다.  2. 차원이 높고 깊이가 있다.  3. 주제와 조화를 이루며 이미지들 간에 상호 유기적 상관성이 있다.  4. 이미지가 체험과 관련되어 구체적이고도 감각적이다.  6. 강한 정감을 불러일으키는 환기성(喚起性)이 있다.  5. 이미지 창조의 방법  1.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볼 때 새로운 진실이 발견된다.(deformation)  2. 시는 실제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시인의 철학적 인식에 의해 선택된 주관적 감정이다.  3. 이미지가 시의 정서를 표현하는데 기여하지 않다면 과감하게 그것을 버려야 한다.  4. 불필요한 낱말이나 형용사는 가급적 쓰지 말 것. 그것들이 추상과 구체를 뒤섞으면서 이미지를 둔화시키기 때문이다.  5. 진정한 이미지는 부분적인 한 行, 한 句보다도 ‘시 전체의 그림’ 속에서 그 가치가 발휘되는 것이다  6. 이미지의 종류  1) 시각적 이미지  [대상을 - 시각적 이미지로]  o. 구름은 보랏빛 색지(色紙) 위에  마구 칠한 한 다발의 장미(薔薇) - (김광균의 )  * 구름 = 보랏빛 색지/ 한 다발의 장미  o. 초록 치마를 입고  빠알간 리본 하나로 서 있는 少女 -(박항식의 )  * 코스모스 = 빨간 리본의 소녀  [청각을 - 시각적 이미지로]  o.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 - (김광균의)  * 종소리 = 흩어지는 분수  o. 꽃처럼 붉은 울음 -(서정주의 )  * 울음 =붉은 꽃  [관념을 - 시각적 이미지로]  o. 인생은 풀잎에 맺힌 이슬 (인생 = 이슬)  o. 그리움이란  내가 그대에게  그대가 나에게  서로 등을 기대고 울고 있는 것이다.  * 그리움= 등을 기대고 울고 있는 모습  o. 내 마음은 고요한 물결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고  구름이 지나가도 그림자 지는 곳 - (김광섭의 )  * 마음 =고요한 물결  o. 내 마음은 촛불이요  그대 저 문을 닫아주오  나는 그대의 비단 옷자락에 떨며, 고요히  최후의 한 방울도 남김없이 타오리라. - (김동명의 )  * 마음 =흔들리는 촛불  2) 청각적 이미지  [사물을 - 청각적 이미지로]  o. 워워, 꼬끼오, 짹짹, 졸졸, 돌돌  o. 윙윙, 쏴아아 쏴아-, 주륵 주륵  [상황을 - 청각(공감각)적 이미지로]  o.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정지용의 )  *차가운 밤바람 소리 = 말 달리는 소리  o. 우우 몰려 왔다  포말(泡沫)지는  하얀 새떼들의 울음 -(김동수의 )  *물거품 사그라지는 소리 = 새떼들의 울음  [시각을 - 청각적 이미지로]  o. 피릿소리가 아니라  아주 큰 심포니일거야 -(박항식의 )  * 눈 = 심포니  o. 발랑 발랑 발랑 발랑  조랑 조랑 조랑 조랑 - (박항식의 )  * 포풀러 = 발랑 발랑  [관념을 - 청각적 이미지로]  o. 산이 재채기를 한다. - (박항식의   * 청명 = 재채기  *청명: 춘분과 곡우 사이에 있는 24절기의 하나(양력 4월 5. 6일 경)로 봄이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됨.  o. 어쩌다 바람이라도 와 흔들면  울타리는  슬픈 소리로 울었다. -(김춘수의 )  * 부재= 슬픈 소리의 울움  ===================================================================     ―정재학(1974∼ ) 바다에 가라앉은 기타, 갈치 한 마리 현에 다가가 은빛 비늘을 벗겨내며 연주를 시작한다 소리 없는 꿈…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지만 부끄러워져 당분간 손톱을 많이 키우기로 마음먹는다  백 개의 손톱을 기르고 날카롭게 다듬어 아무 연장도 필요 없게 할 것이다 분산(奔散)된 필름들을 손끝으로 찍어 모아 겹겹의 기억들 사이에서 맹독성 도마뱀들이 헤엄쳐 나오도록 할 것이다 달의 발바닥이 보일 때까지 바다의 땅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나도 나의 사정거리 안에 있다 네가 고양이처럼 예쁜 얼굴을 하고 딸꾹질을 하고 있는 동안 나는 보라색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생선이 되어 너의 입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아무 미동도 없이, 고요하게 어른이 되고 싶었다       화자에게 삶은 음악의 형상으로 전해지고 그 연주가 삶의 형식이다. 화자 자신이기도 하고 화자가 생을 표현하는 도구, 가령 시이기도 한 기타. 그 기타 바다에 가라앉아 버렸단다. 아연실색 망연자실이련만 ‘현에 다가가’는 화자다. 한 마리 갈치가 되어서라도 기타를 버리지 않고 전신으로 ‘은빛 비늘을 벗겨내며 연주를 시작한’단다. 하지만 역시 ‘소리 없는 꿈’,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망가진 악기, 망가진 삶. 무엇이 화자를 이런 악몽에 처하게 했을까. ‘네가 고양이처럼 예쁜 얼굴을 하고 딸꾹질을 하고 있는 동안’, 이 구절의 ‘너’는 예쁘고 앙큼한 어떤 여인이거나 그 여인으로 의인화한 이 사회다. 딸꾹질하는 그녀는 만취한 걸까, 격렬하게 울고 있는 걸까. 어쩌면 그녀는 대화할 의사가 없음을 딸꾹질로 교묘히 숨기고, 혹은 드러내는 것인지 모른다. 아무튼 그녀가 딸꾹질을 해대는 ‘동안’ 화자는 ‘보라색을 뚝뚝 흘리고 있었’단다. ‘보라색’은 세상이든 자기 자신이든 가리지 않고 파헤치고, 가차 없이 채찍질하고 담금질하겠노라 맹세하는 둘째 연에 붙으면 피 같은 선율이 되고, ‘생선이 되어 너의 입속에 들어가고 싶었다/아무 미동도 없이,/고요하게’에 붙으면 나약한 눈물이 되리라. 영국의 작곡가이며 색소폰 연주자 존 서먼의 곡목에서 딴 제목이다. ‘어른이 되고 싶었다’…. 4월 16일, 오늘의 궂은 날씨만큼이나 마음이 안 좋다. 이만 줄여야겠다.
288    시의 창으로 넘나드는 시어는 늘 신선해야... 댓글:  조회:2565  추천:0  2017-02-27
        돈을 세는 것은 분명 행복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매일같이 수만 위안어치의 0.1위안~1위안짜리 잔돈을 세야 한다면 과연 행복할까? 쿤밍(昆明, 곤명) 버스회사의 ‘화폐 계수원’들...   정호정/수정작품과 단번에 완성한 작품 나는 시를 어림으로 고친다. 무슨 이유로 어떻게 고친다는 이론이나 전문 용어는 잘 모른다. 그러므로 ‘나의 시 이렇게 고쳤다’고 하기보다는 ‘나의 시 이렇게 썼다’고 밝히는 것이 마땅할 것 같다. 시를 완성해 가는 길이라는 동질성에서 감히.  써 놓은 시에 수정을 가한 것과, 초점이 잘 맞아 단번에 완성할 수 있었던 작품 두 편을 예시하기로 한다. 1 ‘능견난사(能見難思)’라는 유기 응기(應器)를 보았다. ‘잘 살펴보고도 보통의 이치로는 추측할 수 없는 일’이라는 뜻을 가진 ‘능견난사’의 정보에 충실하기로 한다. 송광사 박물관 소장. 고려 후기. 전남 유형문화재 제19호. 구경 16.7cm, 높이 4.7cm. 두께 1mm. 송광사 구전에 의하면 금(金)나라의 장종황제의 황후가 쓰러져 기도할 때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사용했던 접시라 한다. 숙종조에 사찰을 중창하며 나라에 진상하였으며, 어떤 대장장이도 그대로 만들어내지 못함에 왕이 어필로 ‘能見難思’라 써 내린 것이 이름이 되었다 한다. 어필은 남아 있지 않다. 송광사 기록에는 500개, 1828년 충청도관찰사 홍석주의 기행문 「여천옹유산록」에서는 50개를 보았다 하나, 지금의 송광사에는 30개가 현존한다. 조계산을 넘어 선암사로 가고 있었다. ‘능견난사’는 내내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날아갈 듯이 고운 살결에 나의 모습이 어려 있었다. 그것은 나의 별이며 나의 시였다. 조계산의 밤하늘에서 총총히 빛나던, 나의 유년의 별이 아니라, 살아오는 동안에 갈개다 찢긴, 상처자국들 그득한, 빛을 잃은 별이었다. 부득부득 태어나고 있는 나의 시집이 세상에 나와 어떤 수모를 당할지, 많은 좋은 시들 앞에서 얼마나 초라할지 모를 불쌍한 나의 시였다.  조계산을 넘으며①(초고분)  능견난사能見難思에서 너를 본다② (너는 많이 일그러져 있다  능견난사는 송광사 박물관이 소장한  방짜유기접시 숙종때 사찰을 중창하며 진상한,  어떤 장인도 그대로 만들어내지 못해  왕이 어필로 써서 내렸다는 이름)  고운 살결에 가장자리를 가는 실금으로 말아올렸다③ (16.7cm의 구경이며 4.7cm의 높이, 1mm의 두께가  한결같다 차곡차곡 겹쳐진다)  겹쳐지는 놋쇠덩이를 주무른 망치의 힘을 본다④ 스치며 날아앉는 얇은 사의,  스미는 물소리의,  깊이 가라앉은 하늘빛의, 유년의 냇가에 구르던 웃음소리의 춤, 춤의 흔적같은  너의 살결은 뭉쳐 있는가 하면 창이 나려 한다  돌산이 들판이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다  (‘능견난사’에 비치는 나의 너)  돌각다리 길을 오르며 내릴 때  내 안에서 이는 물 소리 바람 소리, 갈대의 서걱임마저 나를 깨운다 (누구도 재현하지 못한 신기만이 사랑이 아니라고 잘 생기지 못한 너를 다독인다.)  쪻괄호는 수정에 필요한 것임. ⑴ ①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지 못하는 제목을 버리고, 구전을 참작하여 ‘누군가 방짜유기접시를 능경난사라 했네’로 개작하였다. ⑵ ②에서 ‘능견난사’를 ‘방짜유기접시’로 수정하였다. ⑶ 구전이나 사실의 서술 또는 군더더기로 여겨지는 괄호 안의 부분을 모두 삭제하였다.  ⑷ ③과 ④의 순서를 바꾸어 놓았다.  누군가 방짜유기접시를 ‘能見難思’라 했네 (수정분) 방짜유기접시에서 너를 본다  겹쳐지는 놋쇠덩이를 주무른 망치의 힘을 본다  고운 살결에  가장자리를 가는 실금으로 말아올린  스치며 날아앉는 얇은 사의  스미는 물소리의  깊이 가라앉은 하늘빛의  유년의 냇가에 구르던 웃음소리의  춤 춤의 흔적같은  너의 살결은 뭉쳐 있는가 하면 창이 나려 한다  돌산이 들판이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다  돌각다리 길을 오르며 내릴 때  내 안에서 이는 물소리 바람소리  갈대의 서걱임마저 나를 깨운다. 2  고산(孤山)의 세연지(洗然池)는 매우 아름답다. 굴뚝다리로 보(洑)를 삼은 계담(溪潭)으로 물이 소리 없이 스민다. 이리저리 늘어놓은 바위들을 돌며 ㄹ자의 물길을 따라 다시 회수담(回水潭)으로 흐른다. 나는 동산에 떠오르는 달이며, 춤추는 무희의 너울이 잠기는 물을 그려 보기로 하였다. 아무리 그려 보아도 세연지의 아름다움일 뿐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나는 세연지의 홍보원이 아니지 않은가. 문득 고요한 물에서 묵묵한 인종이 보였다. 할머니의 할머니로부터 이어온 아름다운, 그것은 바로 나와의 관계였다. 이 여인들의 인종이 고요하게 가라앉아서 모든 힘의 원천이 되고 있었다. 굴뚝다리에서 한바탕씩 갈등이 풀리고 있었다. 울리는 물소리를 즐기고 싶었을지, 물의 갈등을 풀어주고 싶었을지, 굴뚝다리를 놓은 고산의 의도를 내가 헤아릴 필요는 없었다. 나는 다만 물의 입장을 헤아리면 그만이었다. 창으로 넘나드는 자연은 늘 신선하다  고산은 흐르는 물에 굴뚝다리를 놓아 연못을 만들었습니다 물이 고개를 숙이며 돌틈으로 스며듭니다  숨을 죽입니다 발뒤꿈치를 듭니다 소리 없이 이리저리 늘어놓은 바위며 배롱나무섬을 돕니다 산에서 흐른 암반 위에서 물은 맑고 고요합니다 맑고 고요한 물의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으신지요 큰 소리로 외치고 싶은, 서로 얼싸안고 싶은, 목놓아 울고 싶은, 위로받고 싶은, 살아 있음이며 반가움 서러움 고달픔들  두드리면 통통 소리가 납니다 속이 텅 비어 있습니다 암반 위에 양쪽으로 돌판을 세우고, 다시 돌판으로 덮은, 평소에는 건너다니는 다리가 되고, 물이 넘치면  폭포가 됩니다 물의 소리에 공명하는,  모두 다 내어준 이의 가슴입니다 때때로 차오른 나의 갈등이 풀리는 가슴으로 하여  계담의 물은 늘 아름답습니다.◑ ◇정호정 경기 안산 생. 98년 『문학과 창작』 신인상 당선. 시집 『프로스트의 샘』. ====================================================================     늙는 것의 서러움 ―마광수(1951∼ ) 어렸을 때 버스를 타면 길가의 집들이 지나가고 버스는 가만히 서 있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어렸을 때 물가에 서면 물은 가만히 있고 내가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그러나 지금 버스를 타면 집들은 가만히 있고 나만 달려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지금 물가에 서면 나는 가만히 있고 강물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인생은 고통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 같다.’ 쇼펜하우어의 이 말을 마광수 에세이에서 처음으로 읽고 크게 공감했던 게 세월을 헤아리기 싫을 만큼 오래전이다. 쇼펜하우어도 그랬을까. 그러니 찰나의 즐거움이나마 악착같이 잡아채자고, 그를 징검돌로 인생의 지겨움을 견뎌 건너자고, 쾌락을 추구했을까. 가장 단순하고 확실한 쾌락은 육체의 쾌감이리라. 마광수가 필화를 겪게 한 성적 판타지를 거침없이 펼친 글들, 말하자면 ‘음란한 묘사’들은 쾌감을 원하는 게 육체의 본성인데 정숙한, 하다못해 정숙한 체하는 게 미덕인 사회에 대한 예의로 그것을 자기 속에 눌러두는 사람들의 숨통을 터주고 싶은 욕망에서 나왔을 테지만, 그의 관능에의 허무적 탐닉을 보여준다. 육체는 즐거워라! 몸뚱이가 닿고 포개짐으로 서로의 체온과 떨림이 스며들고 증폭되는 그 순간만은 존재의 외로움, 허무감이 잊히리. 당신은 숭늉을 좋아하십니까? 나는 달콤하고 짜릿한 ‘환타’를 좋아합니다. 다들 정장 차림인데 혼자 해수욕장인 양 수영팬츠 하나 걸치고 유유해서 점잖은 양반들 입술을 실룩거리게 하던 마광수가 ‘늙는 것의 서러움’이란다. 이제 고통도 쾌락도 덤덤해질 연세이련만 여전히 ‘느끼는’ 그다. 어렸을 때는 세상 이치도 잘 모르고 주의 산만해서 착각과 환상 속에 산다. 그런데 이제 바로 보고 바로 느낀다. 그것이 시인은 도무지 서먹하고 쓸쓸하고 재미없다. 사물과 현상을 곧이곧대로 느끼는 게 영 이물스러운, 이 이상한 감각이 다 늙어서 생긴 거라고 서러워하는 시인이다. 보아하니 나라는 존재에 아랑곳없이 세상 돌아가고 세월이 흘러가누나. 도취도 상상도 멀어진 노년의 우수가 찰랑찰랑 와 닿는다.
287    "알파고"와 미래의 조선족 댓글:  조회:2576  추천:0  2017-02-24
    태여나서부터 중한 이중언어를 구사하는 조선족에게 있어서 조선말은 하늘이 하사한 천복(天福)이 아닐수 없다. 사회가 어떤 혼선을 빚더라도 조선족들은 언어 우세로 언제나 노란자위를 선취득하는 기득권자로 될것이다.”  인류의 진화사와 미래상에 대하여 한다하는 학문가들이 자설(自说)을 제가끔 우겨대며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어느 창조주의 피조물(被造物)로서 그의 뜻을 어기지도 말고 그 론리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원론(原论)에는 반론이 없다. 여기서 류추하여 인간도 자기 제조품은 자기의 뜻에 순응하며 복종한다고 확신해왔다. 그런데 요즘이 억만년의 불변칙이 변화의 무게를 감내하지 못하고 리론 외곽에 균렬이 생기고 있다..   2016년 3월 15일, 한국의 바둑 9단 리세돌(李世乭)과 알파고바둑프로그램 간의 승부대결에서 1:4의 점수로 후자의 완승을 세상에 선고하였다. 알파고인공지능(AI)의 개발자인 구글딥마인드 회사가 백만달러의 상금을 걸고 펼친 금번의 인간:AI의 각축은 인류진화사에서의 하나의 획시기적 사건이라며 세간이 수런대고 있다. 지금까지 1000번이 넘는 우승을 따냈고 국제경기에서만 18번 왕좌를 제패한 천재가 AI앞에 무릎을 꿇은 장면을 지켜보며 구경군들은 악연하였다. 인간의 생물지능이 물리지능에 패배, 이것은 하나의 시대를 가름하는 제야종소리가 아니일가 본다.   인간의 최고 지능을 요한다는 바둑에서 사람을 재끼는 소프트웨어라면 이것은 그가 인간생활의거의 상당한 부분을 대신 가능하다는 방증이고 인력만의 령역 거의를 대체하여도 무난스럽다는 례시(例示)이다. AI가 속세에 몰고 올 파장에 대비하여 사람들은 어기채기로 화제를 만들어 탁상공론으로 올리기도 한다. 각국의 수많은 기업들은 전통적 사업들을 인터넷과 결합시키는 인터넷+ 단계로부터 승화시켜 인터넷+인공지능+의 높이에서 시각을 조절하고 있다. 나가는 세월과 동행해야 살아난다는 세월, AI시대에 도래할 생산、분배、소비、류통 그리고 사회구조와 의식구조를 전망해 보지 않을수 없다.   알파고의 승리는 전대미문의 기술혁명의 상징으로서 인류사상의 제4차산업혁명으로 규정하는 위인들도 상당수이다.멀지않아 길위의 자동차 70%가 무인차이고, 인간의 수명은 100년 이상이고, 인공지능로봇이 생활의 거의 전부를 대체하며, 재택근무로 지역 제한이 없는 취직이 가능하다는 등등 화제들과 새로운 지능제품들도 물밀듯 나오고 있다.보자보자하니 결국 AI가  인간의 전통 생활구조를 뒤집듯 바꿔버린다는것이고 기존의 가치관은 뭉그러지고 만다는 이상한 소리이다.  그렇다면 재래로 내려오던 수많은 직업이 사라지거나 양태를 바꾸며 새 서비스들이 우후죽순처럼 발생할것인데 이것이 인간이 미구에 마주해야 할 엄연한 현실이다.   거창한 의론은 접어두고 그 때의 조선족 상을 그려본다. 하늘이 땅이 돼도 인간사회의 기본요소인 의·식·주·행·어(語)만은 영구불변이다. 생명의 필수인 의식주행은 차치하고, 사회 구성의 핵심요소인 언어에도 심각한 변화가 도래할것도 령락없다. 현재 구글이 개발한다는 만국번역기(万国翻译器)가 출시되면 언어생활에는 상상조차 못하던 편리가 조성되고 언어문화가 질적변화를 초래할것이지만 동시에 AI에 대한 의뢰성으로 인간들의 언어 수준은 기능저하의 심각한 도전을 불러오게 된단다. 그와 반대로 즉시성,무상성과 정확성을 요구하는 다원화된 고수준언어의 수요가 더욱 절박해 질것이란다. 그렇다면 태나부터 중한 이중언어를 구사하는 조선족에게 있어서 조선말은 하늘이 하사한 천복(天福)이 아닐수 없다.   알파고와 리세돌이 누가 이기든지 결국은 인류의 승리이다. 세상이 천선지전(天旋地转)으로 변해도 이 세상은 인간이 주도하도록 되어있다. 조선족들은 언어의 보루를 더 다지고 확고히 해야 한다. 지리적으로나 국가 정책적으로나 언어 발전의 감제고지(瞰制高地)에 서있는 조선족에게 있어서 그는 교류와 비지니스를 전개하는 값비싼 기초시설이고 막강한 민족적 소프트파워이다. 결국 민족에 대해 말하면 경쟁속에서 공방의 검순(剑楯)이 되고,악천후속에서 항로리탈을 막는 수호신이 되고, 문화후생 생활에서는 벅찬 정신생활을 도입하는 매개물로서 작용을 하고도 남음이 적지 않을것이다.   요즘 몇몇 친구들과 한담을 나누는 중 사회가 어떤 혼선을 빚더라도 조선족들은 언어 우세로 언제나 노란자위를 선취득하는 기득권자로 될것이라고 춰주었다. 비위에 맞추려 주어대는 감언리설이 아닌 같았다.두개 나라와 민족에 동시에 향인설화(向人说话)가 가능한 언어기능, 이것은 어떠한 AI도 대체가 불가능하다는 공동한 판단이다. 그렇다면 지능시대의 조선족은 조선말(중한이중언어)의 신세를 톡톡히 볼것으로 내다 보인다. //연변일보 /김인섭  
286    인공지능 번역기가 없다?... 있다!... 댓글:  조회:2789  추천:0  2017-02-24
인간이 번역에서 인공지능에 승리했다. 21일 국제통역번역협회와 세종대학교가 주최한 ‘인간 대 인공지능 번역 대결’에서 번역가 4명이 영한(영어를 국어로) 번역과 한영(국어를 영어로) 번역에서 인공지능(AI) 번역기보다 평균 10점 이상을 더 받았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곽중철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교수는 심사평에서 “인간 번역사는 30점 만점 중 25점 내외 점수를 받은 반면 제일 나은 번역기가 15점, 나머지 두 번역기가 10점 이하를 받았다”면서 “인공지능 발전이 눈부시지만 아직 정복 못한 분야는 텍스트(text)”라고 말했다.   이날 대결에는 구글 번역과 네이버 파파고, 시스트란 번역 솔루션이 기계번역에 쓰였고 신원을 밝히지 않은 현업 전문 번역사 4명이 인간 대표로 대결에 참가했다. 주최 측은 최종 합산 점수를 발표하면서 해당 점수를 받은 번역가나 번역기 이름을 공개하지 않았다. 평가 기준은 총 6개 항목으로 각각 5점 만점으로 구성됐다.  항목은 크게 정확성, 언어표현력, 문장 논리 및 조직 세가지로 나뉘었다.    결과는 대결 전 예상된 것이었다. 세종대학교가 대결 당일 신입생 오리엔테이션(OT)에 참석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서는 전공을 불문하고 “인간이 승리한다”는 응답이 많았다. 행사를 주최한 김동익 국제통역번역협회 회장을 비롯한 전문가들도 축사와 사전 토론 시간을 통해 인간 승리를 예측했다.   김동익 회장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지는 불안함은 인간번역이 필요 없어지나 하는 부분”이라면서 “우리는 지식이나 판단을 기계에 맡기지 않으며 조금의 오류도 인간이 발견하고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은 번역 문화가 더 고급한 것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사람이 인공지능 번역의 발달을 보고 활용분야는 어떻게 넓힐 지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유석 시스트란 상무(왼쪽부터)와 신석환 솔트룩스 부사장, 허명수 한국번역학회 회장, 곽성희 숙명여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애드리안 호주 맥퀄리 대학 교수가 21일 '인간 대 인공지능 번역대결' 부대 행사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한 모습. / 사진=민보름 기자 이번 대결에는 4가지 출제 지문이 쓰였다. 비문학에서 각각 영한 번역과, 한영 번역 지문이 따로 나왔고 문학에서도 영한, 한영 번역 지문이 출제됐다. 출제위원단은 통번역대학원 시험 방식대로 인터넷에 번역문이 없는 지문을 찾아 출제했다. 난이도는 변별력을 위해 높게 정해졌다.   이 4개 지문 중 특히 문학에서 승패가 크게 갈렸다. 곽 교수는 “특히 문학에서 차이가 많이 났다”며 “기계 번역이 어쩔 줄을 몰랐다”고 강조했다. 상징적이거나 간접적인 표현, 등장인물의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문학 번역은 기계번역이 인간을 따라가기 힘들었다.   비문학에서도 인간 번역사들은 우위를 지켰다. 비문학 영한 번역 출제문은 미국 폭스(Fox) 방송국 비즈니스 뉴스 중 “레고, 영화를 통해 가장 강력한 브랜드로 도약하다”는 제목의 기사였다. 경제뉴스는 온라인 상에서 수집 가능해 번역기가 학습하기 좋은 대상이다.   곽 교수는 “그나마 3개 번역기 중 한 개가 훌륭하게 번역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번역기를 개발한 회사가 어디인지 함구했다.   결과 발표에 앞서 허명수 한국번역학회 회장은 번역을 넘어 통역 분야로 가면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기기가 더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기계번역이 결국 음성으로 받은 텍스트를 음성으로 답변하는 통역으로 가게 될 것”이라며 “기계가 사람의 태도, 음성, 눈빛 등 인간이 가진 변수를 기계는 감히 따라올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속도에서만큼은 기계번역이 압도적이었다. 기계번역은 원래 정해진 시각인 2시를 약 10분지나 진행됐다. 3개의 노트북 PC가 각각 A와 B, C 컴퓨터로 나눠 각자 구글, 시스트란, 네이버 번역 시스템에 접속해 출제 문장을 넣고 동시에 버튼을 눌렀다. 결과는 참가자들이 버튼을 클릭하자마자 나왔다.   인간 번역가 4명은 1시 10분부터 2시까지 각자 가, 나, 다, 라 PC에 번역문을 작성했다. 이런 시간 구성은 기계보다 번역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인간 번역가들을 배려한 것이었다.     김유석 시스트란 상무는 “방대한 사전이나 어휘를 사용할 수 있는 인간과 비교하면 현재 시점에서 컴퓨팅(computing)에 한계가 있는 기계가 불리한 부분이 있다”면서도 “같은 단어나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전문분야에서는 기계번역이 유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2~3년간 인공신경망기술(NMT)이 번역 소프트웨어에 적용되면서 기계번역 기술은 급성장했다. 그 결과는 문법 기반 기술부터 구문 번역 기술까지 지난 30년간 발전했던 성과를 넘어섰다. 그러나 신경망기술이 적용된 번역 서비스 출시는 불과 작년부터 본격화됐다. 네이버 파파고는 지난해 9월, 구글 신경망번역은 지난해 10월 출시됐다.     이에 대해 번역 업계가 기계번역 발달로 위기감을 느끼기보다 더 고차원적인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번 행사에 자원한 번역가 4명은 모두 국제통역변역협회 소속으로 5년이 넘는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곽 교수는 “흔히 번역기가 번역을 잘 한다고 하면 비교 대상은 아마추어 번역사”라면서 “구글 알파고와 대결한 이세돌 9단이 바둑계 최고인 것처럼 번역기도 최고의 전문 번역가들과 대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분간은 AI가 결코 인간을 이길 수 없다”면서도 “번역기보다 못한 번역을 하는 번역사는 자연 도태될 것이고 그렇지 않은 번역사는 끝까지 AI의 발전을 지켜보면서 적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공지능 솔루션 기업인 솔트룩스의 신석환 부사장도 “우리가 지식이나 판단을 기계에 맡기지 않 듯 조금의 오류도 인간이 발견하고 바로 잡아야 한다”며 “초기에 자동번역이 속도를 보완하기 위해 도입된 만큼 번역사 입장에서는 더 고급화된 역할로 나아가면서 분야를 넓힐 기회를 찾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 출제 지문   ▲비문학 한글지문 [김서령의 길 위의 이야기] 중 ‘셀프빨래방’ / 김서령 (문자 수 157)   ▲문학 한글지문 [어머니와 딸] / 강경애 (문자 수 142)   ▲비문학 영어지문 How a Movie Propelled Lego Back to the World's Most Powerful Brand/ Ben Brown (단어 수 220)   ▲문학 영어지문 Thank You For Being Late/ Thomas L. Friedman (단어 수 232)  
285    인공지능이 영화대본을 못쓴다?... 썼다!... 댓글:  조회:4134  추천:0  2017-02-24
인공지능이 쓴 최초의 단편영화 대본, 놀랍게도 인간을 대신하는 멋진 엔터테인먼트 영역의 인공지능 대체 기능 시작이다. 2016.07.04 /박영숙 유엔미래보고서     "대량 실업의 미래에, 젊은 사람들은 피를 판매하도록 강요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올해 공상과학영화제 ‘사이파이 런던(Sci-Fi London)’ 챌린지에 출품한 단편영화의 오프닝 라인이다. 어둡고, 수수께끼 같고, 현대적인 이야기 ... 이것은 컴퓨터가 쓴 영화대본이다. 사실, 영화의 전체 시나리오를 쓴 것은 다름 아닌 공상과학 시나리오를 입력해 훈련받은 신경회로망이다. 소프트웨어가 시나리오를 완료하면, 그것을 사람들이 실제로 볼 수 있는 뭔가로 만드는 것은 감독과 배우의 몫이었다. 그들은 이 일을 훌륭히 해냈다.  아래 동영상이 그 놀라운 결과다. Sunspring | A Sci-Fi Short Film Starring Thomas Middleditch   영화 ‘선스프링’(Sunspring)은 이 대회에서 톱10 자리를 차지했지만, 이 인공지능은 뿐만 아니라 관객 투표에서 스스로에게 수천 표를 투표하기도 했다.   인간과 어깨를 나란히 한 역사적인 시상식 인터뷰에서 인공지능은“나는 그들이 마음을 열 때 그들의 깃털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하면서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공개했다. “나는 벤자민입니다.” 이 영화의 각본은 모두 벤자민이 썼지만, 창의력은 뉴욕대학교(NYU) 대학원에서 통신 및 기술을 공부하는프로그래머로 로스 굿윈으로부터 나왔다. 그는 계산 창작, 즉 인공지능을 이용한 시, 산문, 그리고, 각본 쓰기에 빠져 있다. 알고리즘이 일부 뉴스 기사 초안을 쓴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았을지 모르지만, 이는 대부분 스포츠 또는 금융통계에 대한 일률적인 요약일 뿐이었다. 인공지능 작가들이 긴장을 풀고 글을 쓰는 또 다른 분야가 있다. 예를 들어, 나노젠모(NaNoGenMo)는 매년 프로그래머들이 소설을 쓰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드는 행사다. 작년에는 500개의 소설이 매우 다양한 (종종 이상한) 주제로 창작되었다. 이 맥락에서, 굿윈은 계산 창작을 다음 단계로 끌어올리려고 한다. 굿윈은 미디엄(Medium)에 정치 연설 작가에서 신경 네트워크의 작가로 전환한 자신의 이야기를 올렸다. 그는 소프트웨어에게 시, 산문, 사전, 공상과학 소설, 노암 촘스키의 작품 전체를 훈련시켰다. 그중 한 소프트웨어는 시적 이미지 캡션을 쓰고 구글의 딥드림 알고리즘이 만든 멋진 시각예술에 (적절하게) 제목을 달아 준다. 굿윈이 만든 최신 알고리즘 벤자민은 뉴욕대학교(NYU)의 고성능 컴퓨팅 연구실의 매우 강력한 컴퓨터에서 실행되는 중단기기억(LSTM) 신경네트워크다. 중단기기억 신경네트워크는 알고리즘 작성에 사용되는 다른 소프트웨어 기술에 비해 긴 분량의 텍스트를 처리할 수 있다. (입력된 정보중에 임의의 문장을 연결시키는 것이 아니다.) 벤자민은 굿윈이 온라인으로 찾은 수십 편의 영화나 드라마 공상과학영화 대본을 학습했다. 여기에는 X파일, 스타트랙, 그리고 퓨처라마 등 오래된 작품들 목록 전체가 포함됐다. 엄격히 공상과학 작품만 공부한 인공지능이었기에 다음과 같은 문장을 사용하길 좋아한다. "아니, 난 그게 뭔지 모르겠어요. 잘 모르겠어요." 굿윈에 따르면 이것은 공상과학 주인공들이 얼마나 자주 익숙하지 않은 상황을 파악하려 하는지 말해준다. ‘선스프링’(Sunspring)의 감독 오스카 샤프는 “벤자민은 일종의 거울이다. 수많은 것을 거기에 반사시켜 그 모든 것들을 설명할 수 있는 일종의 평균적인 것을 만들어낸다.”라고 말한다. “예술은 종종 이러한 일들을 하기 때문에 매우 유용한 도구인 듯하다. 또한 항상 독창적인 것을 만들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독창적이지 않은 게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굿윈은 벤자민에게 경연에서 제공된 프롬프트(운영 체제에서 사용자에게 보내지는 메시지)를 주어 시나리오를 쓰게 했다. 최종 스크립트는 작은 열전사기로 인쇄되었다. 그때부터는 스크립트를 편집하고 무의미한 대화에 신비한 메시지까지, 해석 불가능한 부분을 해석하는 것은 감독 샤프와 배우와 스탭들의 몫이었다. 시나리오에서 실리콘 밸리의 토마스 미들디치라는 인물은 “입에서 눈을 빼낸다”라는 프롬프트를 받고 안구를 토해낸다. 나중에는 “카운터에 앉아 카메라를 끌어당겨 등 위에 올려놓고 쳐다본다”라는 프롬프트를 받고 카메라를 붙잡고 들여다본다. 이상하게도 최종 작품은 불가항력적으로 재미있다.   그렇다면 시나리오 작가들은 더 이상 필요 없게 될 것인가? 우리는 곧 "피를 판매"해야만 할 것인가? 아마 아닐 것이다. 오히려 선스프링은 인간의 손길이 아직 얼마나 필수 불가결한지를 보여준다. 배우와 스탭이 있기 때문에 영화를 조금이라도 볼만 하다. 그러나 어쨌든 이것은 매혹적인 새로운 파트너십이다. “컴퓨터에게 시나리오 쓰는 것을 가르칠 때, 컴퓨터는 인간을 대체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피아노가 피아니스트를 대체하지 않는 것과 같다.”고 굿윈은 말한다. “컴퓨터는 우리의 펜이 되고, 우리는 작가 이상이 된다. 우리는 작가의 작가가 된다.” 이 모든 것은 인간과 기술의 지속적인 협력을 의미한다. 한쪽이 다른 한쪽에게 어떻게 생명을 불어넣느냐 하는 점 때문에 나는 이 선스프링을 지금까지 인공지능이 쓴 소설가운데 가장 좋아한다. 벤자민은 그 후 영화 시놉시스를 만드는 일도 시작했다. 바로 아래의 시놉시스가 그것이다. 빈티지 X파일 같은 느낌이 드는, 뜻모를 제목의 영화다. 고도로 진보된 폭력적인 이방인이 자신의 부모와 함께 캘리포니아의 작은 마을에 도착한다. 이들은 모두 숲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그들은 동네의 농부와 이상한 대면에 휘말린다. 그는 클럽에 아기를 데려오고자 하는 유일한 사람이다. 부부는 집에 연애편지를 받고 아내는 감옥에 보내진다. 부부는 세계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84    시도 모르는 비인간적인 사회는 배부른 돼지들만 사는 세계 댓글:  조회:2811  추천:1  2017-02-24
인공지능과 시(詩)에 대한 일말(一抹)의 추론             1973년 충북 보은 출생   2009년 「시인동네」신인상 수상   시집 :『아이의 손톱을 깎아 줄 때가 되었다』               내가 당신에게 “인공지능도 시(詩)를 쓸 수 있을까?” 묻는다고 가정하자.       황당하다면 황당할 수 있는 이 질문에 당신은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아니요!”라고 단순하게? 그렇다면 그 “아니요!”의 근거는 무엇인가? 강력한 반대 근거를 제시하는(앞으로 조목조목 제시할 것이다) 논리에 반박할 논거(論據)를 가지고 있는가?       어쩌면 당신은 거꾸로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으리라.   “그렇다면 인공지능이 시를 쓸 수 있는 근거를 나에게 보여 주시오!”라고. 이 같은 질문을 답변으로 던지는 것은 당신이 나에게 교묘한 굴복을 했다는 의미다. 나는 그 근거를 댈 수 없으니, 당신이 가지고 있는 근거로 자신을 설득해 달라는 논리이다.       나는 단호히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미래를 상상하라. 백 년 전 까지만 해도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것들이 과학 기술의 진보(進步)에 따라 미래라는 이름으로 현실이 되었다. 그렇다면 당신의 의심하는 그것, 인공지능이 시를 쓰는 시대가 멀지 않아 도래할 것이다.”라고.   당신은 나의 추론에 반박할 수 있겠는가?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시를 쓰는 사람,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시인(詩人)이다. ‘흔히’는 표현을 쓴 까닭은, 그만큼시인이 많기 때문이다. 자칭 타칭, 시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시와 관련된 단체, 예를 들어 작가회의나 문인협회, 시인협회, 그리고 수많은 사설 단체들의 숫자를 다 합하면 몇 만 명은 훌쩍 뛰어넘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떼거지 숫자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만약 인공지능이 놀라운 능력의 시를 쓰기 시작하면, 숫자는 무의미에 불과하다.       나의 논리는 강력한 반발에 부닥칠 것을 직감한다. 근대 신문에 실린 찰스 다윈의 삽화가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이 문제는 시인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특히 전업시인들의 경우)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자존심의 문제가 더 크다.       타 문학에 비해, 예를 들어 소설가, 수필가, 극작가라고 불리는 것에 비해 시인은 –인(人)이라고 불린다. 자존심 하나로 지켜온 세월이 얼마인가. 시인(詩人)이라는 자존심마저 무너진다면 시인이 시를 쓸 아무런 근거도, 명분도 사라지게 된다. 시는 소멸할 것이고, 박제되어 박물관에 전시되는 인간의 여러 고전(古傳) 중 한편으로 남을 것이다.   ​       1. 인공지능(人工知能)의 원리           물화(物化)된 인간 지능의 상징, 인공지능은 얼마나 발전을 했을까? 지금 현재의 기술 발전 수준을 논하는 것은 그렇게 큰 의미 있는 일이 아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진보하고 있고, 멀지 않아 엄청난 미래에 도달할 것이다.   어찌 보면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사용 중인) 기술은 미래의 기술이 아니라 과거의 기술이다. 실용화라는 단어가 가진 언어의 상징성은 ‘과거’라는 직접적 증거다.       세계의 석학들이 인공지능 무기를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실린 기사나 체스 세계 챔피언이 인공지능과의 경기에서 패배한 것이나, 경제와 스포츠 기사를 쓰는 인공지능이 등장했다는 기사는 더는 놀랄만한 사건이 아니다.       인공지능은 물체를 인식하는 것을 거의 완벽히 해결했을 뿐더러, 구글(Google)이라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하여 다양한 자료를 취합·재생산할 수 있는 상태, 논리적으로서의 인간의 능력을 손바닥 뒤집듯 손쉽게 뛰어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시(詩)는? 시인으로서 기술의 위험한 도발에 직면하게 된다.       ‘인공지능이 시를 쓸 수 있는가?’에 대한 추론을 이끌어 내기 위해선 먼저, 인공지능 구조(system)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인공지능에 완벽한 알고리즘(algorithm)을 가지고 있다면 인공지능이 시를 쓸 수 있는 배경이 된다. 알고리즘은 다음과 같다.           1. 입력 : 외부에서 제공되는 자료가 있을 수 있다.   2. 출력 : 적어도 한 가지 결과가 생긴다.   3. 명백성 : 각 명령들은 명백해야 한다.   4. 유한성 : 알고리즘의 명령대로 수행하면 한정된 단계를 처리한 후에 종료된다.   5. 효과성 : 모든 명령들은 명백하고 실행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알고리즘을 아는 것은 인공지능 진행방식을 아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알고리즘이 인공지능 전체를 상징하는 것은 아니다. 알고리즘이란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명확히 정의된 명령」의 집합이며, 한정된 규칙을 적용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알고리즘의 관점으로 시를 제작한다고 가정을 하자. 먼저 입력, 방대한 문장의 데이터가 ‘구글’이나 ‘네이버’를 통해 제공될 수 있다.   두 번째로 출력, 입력이 가능하면 출력도 가능하다.   세 번째로 명백성, 특정한 상징과 비유를 가지는 문장을 완성한다는 문학 기술(이제 문학도 하나의 기술로 볼 수 있다)의 명백성이 존재한다.   네 번째로 유한성, 알고리즘의 명령대로 수행될 것이며, 인공지능은 어떤 인간보다 성실히 이 작업을 마칠 것이다.   다섯 번째로 효과성, 인공지능은 알고리즘에 따라 명령 자체를 효과적으로 실행할 수 있지만, 실제로 인간이 쓰는 시보다 더 뛰어난 시를 쓰는 것이 가능할지 ‘아직’ 장담할 수 없다.       이와 같은 ‘알고리즘의 개념(다섯 가지 수행과정)’으로 추론할 때 ‘인공지능은 시를 쓸 수 있다’고 보는 것에 근접할 것이다. 인간의 뇌도 알고리즘과 유사한 과정을 거쳐 시를 쓰기 때문이다.       컴퓨터의 언어는 0과 1로 만들어져 있다. 0이 참이라고 한다면 1은 거짓이다. 참과 거짓을 무한 반복하면 어떤 논리값이 만들어진다.       인공지능 개발이 어려웠던 이유는 참과 거짓 사이(0과 1이 아닌, 그리고 그 사이에 놓인)에 애매모호한 (정의할 수 없는)개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탁구공과 골프공을 비교했을 때 시력이 좋지 않은 사람은 멀리 떨어져 있는 두 개의 공을 구분할 수 없을 것이다. 골프공을 탁구공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탁구공을 골프공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 선택은 참과 거짓의 명제를 벗어난 선택이다. 인간의 선택은 주변 상황에 따라 옳을 수도 있으며,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 컴퓨터는 선택의 오류가 없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지 항상 옳은 답만을 구한다. 만약 틀린 답을 구할지라도 그것은 개념적으로 옳은 답이다.       이 문제에 대안은 존재한다. 인간의 시각적 기능을 대입하여 명백하지 않는 것은 무작위로 선택하게 하는 것이다. 마치 난수(亂數)를 사용하듯. 물론 여기에 인위적이라는 문제와 함께 인간의 자유 선택과 다른, 앞서 말한 틀린 것을 구한 값도 개념적으로 옳은 답이라는 변증법적인 문제에 도달한다.       이와 같은 문제를 제기를 통해 인간의 의지란 기계와 다르게 순수하며, 언제나 자유의지에 따라 판단을 내린다고 역설적으로 두둔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에게 진정한 의미로서의 자유의지라는 것이 존재할까?’라는 궁극적인 의문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2. 인간은 생체 지능 컴퓨터           인간의 행동 패턴을 조금만 유심히 관찰하면, 창의적인 행동보다 반복적이고 유사적인 행동을 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마치 알람시계처럼 같은 시간에 깨고 같은 시간에 밥을 먹고 출근하며, 컴퓨터와 한 몸이 돼서 일하고, 점심을 먹고, 다시 일하고 퇴근하고 밥을 먹고 잠을 잔다.       대부분의 활동(큰 행동 패턴으로 봐서)이 이와 같다. 주말이면 이 범주를 벗어나지만, 일주일이라는 시간 패턴으로 보면 한 주일은 지난 주일의 패턴과 비슷하다. 그리고 지난해와 올해의 행동패턴이 유사하고, 모든 사람의 생체주기는 유사하다.       어찌 보면 인간의 두뇌가 아닌 ‘인공지능보다 낮은 기능의 참과 거짓을 구별할 수 있는 행위의’ 기능만 가지고 있어도 인간과 같은 기본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며, 만약 외모 구별에 문제만 없다면 우리는 인간형 안드로이드 로봇을 오랜 시간 자세히 관찰하지 않고서는 인간인지 아닌지 구별하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는 하나의 추론에 도달할 수 있다. 인간이 ‘인공지능 컴퓨터’와 유사한 개념인 ‘생체 지능 컴퓨터’으로 작동한다는 가능성에 대해서.       이것은 문학적 접근방식 아니다. ‘인공지능 컴퓨터’는 문학적인 텍스트로 수도 없이 반복되었던 낡은 개념이다. 인공지능 컴퓨터를 파격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까닭은, 다음과 같은 진보적인 추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생체 지능 컴퓨터라면, 인공지능 컴퓨터도 시를 쓸 수 있다! 일종의 귀납적 추론이다.       컴퓨터로서의 인간이라는 생체 컴퓨터(어디까지나 가정일 뿐이다)와 기계적 기능의 인공지능 컴퓨터가 다른 것은 그 에너지원을 무엇으로 하고 있느냐가 전부다.   인간이라는 생체 컴퓨터는 인간이 섭취하는 ‘다양한 영양소’에서 추출하는 전기에너지이고, 인공지능 컴퓨터는 ‘석유나, 가스, 원자력으로 생산된’ 전기에너지다. 결국, 전기를 얻는 방식이 다를 뿐 우리의 뇌나 컴퓨터의 CPU는 모두 전기에너지를 통해 작동하고 있다.       논리 연산도 유사하다. 인간은 극단(極端)을 선호한다. 컴퓨터가 0과 1로 연산을 하듯이. 인간에게 있어 논리의 접근 방식은 보통 두 가지이다. 칸트가 ‘3대 비판서’에서 말한 선과 악, 옳음과 거짓, 미와 추, 친구와 적 등의 개념은 ‘결국 나에게 유리한가, 그렇지 아니한가’의 개념이다. 나에게 유리한 것을 1로 놓으면, 나에게 불리한 것은 0이다. 1과 0의 계산으로 인간 행동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       때론 용기 있는 사람들은 이러한 논리를 거부한다. 때때로 나에게 불리해도 0을 선택하는 자아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것을 ‘이성’이라고 부르는데, 인문학자는 분명 ‘이성’이 인간이 컴퓨터와 가장 다른 요소임을 강조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성까지 연산할 방법은 없을까? 우리 스스로가 이성이라는 철학적 허구에 빠져 있지 않은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인류멸망보고서』라는 영화를 기억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영화에는 하나의 로봇이 등장한다. 부처의 현신과도 같은 논리를 가진 안드로이드 로봇. 사원의 수행자들은 그 안드로이드를 하나의 불성(佛性)을 가진 존재로 인정한다.       하지만 안드로이드를 만든 회사는 안드로이드의 행위를 시스템 오류라고 평가 절하한다. 수행자들은 안드로이드를 지키려고 하지만 회사의 강력한 반발과 안드로이드 자신의 결정에 따라 폐기되는 것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로봇이 불성(佛性)을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한 철학적 접근은, 어쩌면 ‘로봇이 시를 쓸 수 있는가’ 보다 쉬운 문제다. 철학은 철학으로서의 존재자가 아니다. 철학은 개체다. 철학은 희랍시대에 확립된 이후 변증법적인 추구를 목표로 한다.       거칠게 말하면 철학은 하나의 연산행위다. 철학적 논리에서도 컴퓨터는 0과 1의 숫자를 고르면 된다. 컴퓨터는 지금 까지 수많은 인간이 개념화 시킨 철학적 데이터를 이용해 인간이 말하는 개념의 옳고 그름을 심판할 수 있다.       만약 로봇이 종교적 데이터에 철저히 따르고, 그 종교적 데이터에 따라 절대자의 폭력에 항거하며 민중의 편에서 스스로(알고리즘화 된 스스로의) 전원을 차단한다면 그 로봇은 그 어떤 종교에서나 인간의 이성적 가치를 초월한 성자(聖者)가 될 수 있다.               3. 인공지능은 어떻게 시를 쓰는가?           모든 인간을 대상으로 살펴봐도 시를 쓰는 사람은 소수다. 시는 문학 장르 중 가장 어렵고 접근하기 난해한 장르다. 시는 단순히 문장의 재배치나 비트겐슈타인 방식으로 말하는 ‘철학적 언어의 놀이’가 아닌 언어의 순수성에 입각한 ‘상징과 비유의 문학’이다.       언어의 순수성은 논리적 문장과 비논리적 문장을 동시에 포괄할 수 있게 한다. 논리적 문장은 문장의 문법에 충실하지만, 비논리적 문장은 문장이 전통의 문법적 구성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래서 시는 비문(非文)이며 무문(無文)이기도 하다. 문장이면서 문장이 아니기도 한 것이다.       시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지식인의 특권은 아니지만, 한국어를 안다고 해서 시를 읽을 수 있는 것도, 문장의 독해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시를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시인(詩人)이 다른 시인들의 시를 읽어내지 못할 수 있다. 그 까닭은 자신만의 길(道)을 가진 시인에게는 고유한 문법이 있기 때문이다.       시(詩)라는 문학 장르로의 합류를 형이상학적인 차원에서 찾으면, 인공지능은 시를 쓰지 못한다는 이상적인(고귀한 플라톤의 철학처럼) 추론에 이른다.   이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작은 피난처에 불과하다. 노아의 방주라는 특별한 해결책을 찾은 것도 아니다. 타조처럼 작은 구덩이에 머리를 박고 엉덩이를 하늘로 쳐들고 있는 형상이다. 자신의 엉덩이 살이 붙어있는지 잘려나가는지도 모르는 채.       인공지능이 시(詩)의 형이상학을 극복하지 못하라는 법이 있는가? 구글(Google)의 데이터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하다. 구글은 그 자체로 형이상학적이다. 구글은 자본주의 문명의 절대 권력을 가진 신(神)과 같다.   방대한 데이터에는 온갖 종류(인종과 언어를 넘어서는)의 시의 데이터를 포함하며, 시를 분석한 평론, 전문적 논문을 포함한다. 만약 몇몇 악마적인 신앙을 가진 해커가 배움(STUDY)이란 특별한 알고리즘을 만들어 인공지능에 축복의 성수를 붙는다면, 인공지능은 어쩌면 인간이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문법의 시를 탄생시킬 수도 있다(이런 일들이 절대 불가능하다고 보는가? 아니면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인가?).       그렇다면 인공지능은 어떻게 시의 문장을 조합할 수 있는가? 정말 인공지능이 시를 제작(製作)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인공지능이 처음부터 모든 시를 완벽하게 쓸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언어 번역 프로그램의 진보와 같다. 우리는 영어를 한국어로, 한국어를 영어로 바꾸는 프로그램을 인터넷에서 손쉽게 만난다.       처음 번역 프로그램을 접하게 될 때면 마법처럼 느껴지지만, 누구나 이내 실망하게 된다. 번역이 너무 엉터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 나온 번역 프로그램을 보면 기술이 진보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리 멀지 않아 완벽한 직역이 가능한 프로그램이, 그리고 그 이후 직역을 넘어 의역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의 진보는 사람의 기분까지 인식하는 번역 프로그램이다. 컴퓨터가 사람의 분위기나 기분까지 인식하면 우리는 어떤 외국인과도 자유롭게 대화를 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언어의 국경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소멸하는 것이다.       만약 내가 인공지능공학자라면, 그래서 인공지능이 시를 쓸 수 있게 하는 알고리즘을 만든다고 가정하면, 인공 번역기와 같은 관점에서 출발할 것이다.       언어의 습득은 모방을 기초로 한다. 문학도 마찬가지이다. 거칠게 말하면 문학은 일어날 것 같은 현실(리얼리티)을 문자로 모방하는 것이다.       인간의 모든 감정과 상황은 문자화되었다. 애니미즘을 비롯한 종교의 신비성은 물화(物化)된 계몽에 의해 사라졌으며(문자화, 데이터화 되었으며), 그 성스러운 증거는 바로 구글이다. 구글의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는 이미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논리와 감정의 문장들을 이미 수집 완료했으며 지금도 수집하고 있다.       앞서 월스트리트 저널의 기사를 참고하면, 지금 개발된 알고리즘만으로도 스포츠나 경제 뉴스 기사를 작성할 수 있다면, 인공지능 문장 완성도는 이미 보장된 것이며, 이 문장에 비유와 상징의 코드를 가미하면, 완벽하지 않아도 어떤 특정한 시(詩)를 닮은 문장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시를 구글의 방대한 데이터에 접속하여 다른 시와 비교하는 것이다. 문장과 단어, 그리고 해석상의 비유가 적절한 것인지. 적절하지 않다면 1과 0의 연역적 방식으로 끊임없이 단어와 문장을 재배치하는 것이다.       만약 이것만으로 부족하다고 판단된다면, 과도기적인(21세기 인간과 기계의 고도의 분업화처럼) 인간의 고유한 시적 기술(technology)을 인공지능기능에 일정 부분 가미하는 것이다.       분명 이것은 우리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인공지능이 시를 쓰는 일’이 시작되는 대사건일 것이다. 마치 초벌 번역을 하듯, 일차적으로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시의 방향과 구조(뼈대)를 완성하고 시인의 고유한 방식으로 첨삭하여 시인이 원하는 방향의 시를 완성하는 것이다.       기술적으로 고민해야 할 문제는 인공지능이 시를 쓰는(만드는) 기능적인 면이 아니다.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기술은 인공지능이 ‘자의적’으로 시를 쓰게 만드는 것이다.   인공지능의 진보는 다행스럽게도 ‘주체’라는 인간 영혼에 유사한 무엇을 만들지 못했다(만약 인공지능에 주체가 생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러므로 인공지능이 시를 쓰기를 원한다면, 아직까지는 시스템화된 인공지능을 조작(시를 쓰게 명령을 내리는)하는 누군가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단서가 붙는다.   ​   ​   4. 시(詩)를 포기한다는 것           아직 멀게만 느껴지는 이야기지만, 인공지능이 시를 쓰기 시작한다면 직업으로서 시인의 존재가치의 가능성은 극도로 낮아진다.       직업은 시대와 사회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다. 그러기에 직업의 필요성은 변한다. 인기 있는 직업도 순식간에 변한다. 과거 70~80년대 그렇게 많았던 버스의 안내양도, 80년대 인기를 누렸던 문서를 타자로 대신 작성하던 타이피스트도 사라졌다. 우리나라의 부흥을 일구었던 구로공단의 노동자들이나 전화국의 전화교환수도 그 외의 셀 수 없는 다양한 직업군이 사라졌다. 산업의 고도화는 새로운 직업의 생성과 소멸을 부추기고 있다.       그렇다면 시인에겐 시인이라는 직업을 지키기 위해서 어떤 대안을 선택해야 하나. 아니 ‘대안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앞선다.       어쩌면 인공지능 발전을 막는 것이, 인공지능공학자를 테러하는 것이 최고의 방법일까? 순수문학을 지키기 위한 극단주의 저항단체를 조직하여 폭탄을 던지고, 차량폭탄 테러를 하는.       시인이 멸절하는 시대가 오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는가? 메멘토 모리. 우리의 과거 세대가 겪었던 죽음을 기억하라.       나치는 유대인이라는 단순한 이유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육체성을 가진 유대인을 뿌연 연기로 기화(氣化)시키는 홀로코스트(유대인식의)라는 놀라운 마법을 부렸다.       60년 전의 이 나라의 우울한 과거는 어떠한가? 총칼의 위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부역한 이들을 빨갱이라 몰아 학살했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각 세계의 현장, IS라고 불리는 이슬람 과격단체는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강간과 폭행, 학살을 서슴지 않는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가치관을 가진 인간이 우리의 머나먼 미래, 시(詩)에 대해서 관대함을 가질 수 있겠는가? 시(詩)는 쌀도, 빵도 그 어떤 물질도 만들 수 없다. 폭력이 난무하던 시대 문학은 언제나 그늘로 숨어들었다. 문학의 부흥이란, 다시 말해 시의 부흥이란, 지극히 폭력적인 권력에 반하는 ’인본주의 운동’이다.       왜 우리가 시를 버릴 수 없는가? 버려서는 안 되는 것인가? 자본주의적인 경제적인 관점에서 지극히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시의 명맥을 유지해야 하는가? 그 이유는 너무나도 지극히 단순하다.       시를 포기한다는 것은 우리의 ‘인간성’을 다시 말해 ‘인간의 본성’를 버리는 것과 같다. 인공지능 컴퓨터를 통해 우리는 ‘인간의 의지’를 얼마나 수혈 받을 수 있겠는가? 수혈은 수혈일 뿐이다. 수혈로 공허한 허기를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수혈을 받는 것은 내 피가 아니다. ‘인공적’인 피다. 시를 문학을 포기한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안드로이드 로봇이 된다는 것과 동격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차라리 인간은 안드로이드 로봇이 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인간의 이기심과 욕심, 증오와 분노를 삭제하는 극단적인 방법을 통하여. 그렇게 된다면 인간의 욕심은 영원히 사라지고 세계는 평화를 얻을 것이다. 인간 종족은 그것으로 영원할 수 있을 것이며, 결코 멸망하지도 않을 것이다.       당신은 이 가정에 동의하는가? 당신은 평화주의자이기에 이와 같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을 순화(純化)하는 것에 동의하는가? 만약 인공지능기술이 발전하여 인간의 뇌에 직렬로 접속할 기술의 진보가 이뤄진다면, 파시스트는 이와 같은 폭력적인 사건을 벌일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수술대에 누워 ’평화‘라고 불리는 축복의 저주를 받을 것인가?       우리는 인본주의의 본질을 착각하면 안 된다. 평화는 인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하나의 단편적 모습에 불과하다. 평화는 인본주의의 궁극적 가치와 목표가 아니다. 시도 마찬가지이다. 시는 이 땅의 영원한 평화를 원한다. 그러나 시의 최종목표는 평화가 아니다. 시인은 오직 평화를 위해 시를 쓰지는 않는다. 때론 시는 폭력을 선동한다. 시위를 선동하고, 사람들의 가슴에 선량한 불을 지른다. 불가능에 맞서 싸우자고, 이때 시는 평화가 아닌 피를 부르는 악덕(惡德)의 발화이다.               5. 물화(物化)된 인간과 시(詩)의 의미           과학은 진보하고 있다. 그 진보의 끝이 어디인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과학의 진보는 무엇을 위함인가? 진보의 목표는 인간이다. 인간이 편리하고 윤택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런데 편리함이란 진보의 칼끝이 우리의 심장을 향하고 있다. 무엇이 진보이며, 무엇이 인간을 위한 것인지 진지한 개념 정립이 필요하다.       진보의 변증법은 진보의 내면에 퇴행의 의미가 숨어있음을 누설한다.   아도르노는 『계몽의 변증법』에서 ‘끊임없는 진보가 내리는 저주는 끊임없는 퇴행이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아도르노의 선험적 체험에 귀 기울여야만 한다. 우리의 진보 행위가 인간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진보가 진보 자체를 위한 진보인지, 그 진보로 인해 인간이 퇴행을 거듭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이미 인간은 많은 부분에서 물화(物化)되었다. 인간은 기계의 부속품처럼 공장에서 일한다. 만약 한 명의 근로자가 아프거나 특별한 일로 일하지 못할 경우 대체 부속품을 제공하듯 대체 인원을 투입한다. 공장뿐만이 아니라 인간은 많은 부분에서 물화된 부속품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잘 정립된 인간의 제도(예를 들어 법률이나 체계와 같은)는 궁극적으로 물화된 인간의 표상이다. 물화된 인간은 모든 문제를 마치 수학공식처럼 대입하여 옳고 그름, 잘잘못을 파악한다. 앞뒤와 전후 상황을 진지하게 따져보고, 철학적으로 생각할 자유의지를 가지지 못하고 제도라는 공식에 대입하여 문제를 해결한다. 우리는 그것에 합리적 무엇이라 이름 붙였다.       문학은 물화된 인간이 지켜야 할 인간성의 마지막 보류다. 만약 문학까지 인공지능에 양보한다면 인간은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       문학은 인간의 정신적인 생식기(生殖器)이다. 인간이 생식기를 제거하면 다음 세대로 인간의 유전자가 전달되지 못하듯, 시를(문학을) 제거하면 우리의 정신적인 유전자는 우리의 다음 세대로 전달되지 못한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인류의 정신적 멸절이다. 인간이지만 안드로이드 로봇처럼 껍데기만 인간으로 살아가는 비(非)인간이다.       당신은 로봇과 같은 삶을 살고 싶은가?   철저히 0과 1에 의지하여. 좋고 나쁨이, 옳고 그름이...   내가 원하고 원치 않고 아닌, 기분과 감정을 벗어난 단순히 0과 1에 연역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이라는 원칙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회가...   그렇게 걱정과 배고픔이 소멸한 사회가 진정 행복한 사회, 우리가 꿈꾸던 유토피아라고 생각하는가?   시(詩)도 문학 작품도 무엇인지도 모르는 비인간적인 사회가....   그것은 소크라테스가 말했던 (정신이 황폐해진) 배부른 돼지의 세계다.     
283    인공지능이 천여편의 시를 못쓴다?...썼다!... 댓글:  조회:2665  추천:0  2017-02-24
[경향신문] 권두영, 이상한 익선동, 2016, 인터랙티브 영상 설치, 종이에 프린트, 가변설치 ‘하늘근처에만플랫폼소리가공예는하나의플랫폼옆에성장(중략)/ 하늘에대해공장맞은편에보고한환경을보고약간의구름’(153의공간) ‘153의공간’은 시인이자 건축가 이상의 시를 닮았다. 떠도는 무의식의 창조적 힘을 예술로 표현하기 위해 등장했다는 자동기술법은 전위적인 실험주의자 이상이 즐겨 쓰던 기법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무의식의 흐름을 담아 띄어쓰기를 무시한 채 쓰인 시는 독해의 시간을 지체시킨다. 내용을 곧바로 지각할 수 없으니 기술하는 대상은 낯설게 다가온다. 난해한 문체 덕분에 메시지는 복잡하고 모호해진다. 해석이 분분하다. 오늘의 서울도 그에게 다채로운 시상을 제공할 텐데. 오늘을 담은 그의 시도 매우 흥미로울 텐데 시인은 1937년 세상을 떠났다. 할 수 없지. 작가 권두영은 컴퓨터에게 이상의 문체를 가르쳐서 이상처럼 시를 쓰기로 했다. 자본의 판타지가 집적돼 있는 백화점의 풍경을 담았다고 알려진 시 가 주요 교재였다. 작가는 일단, 온·오프라인에서 수집한 익선동에 대한 방대한 시각정보를 분석하고 처리하는 빅데이터 기술, 공간과 장소를 구조화하고 처리하는 지능형 공간기술을 동원하여 컴퓨터 안에 서울시 종로구 익선동의 공간을 구현했다. 이상의 문체를 배운 인공지능은 하나의 ‘점’이 되어 가상의 익선동 골목을 돌아다녔다. ‘점’은 골목 곳곳에서 마주한 시각 정보를 실시간으로 분석, 처리해서 시어를 추출했다. 시각 정보뿐 아니라 장소의 명칭, 기능도 컴퓨터에게 시상을 주었다. 이상의 문체를 배운 ‘점’은 시어와 시어를 마치 이상이 익선동에 대한 심상을 자동기술하듯 연결하면서 시를 출력했다. 일주일간 가상의 익선동을 돌아다닌 ‘점’은 ‘153의공간’을 비롯한 천여 편의 시를 창작했다. 왕성한 창작열이었다.
282    중국 연변 룡정 동산마루에 "별의 시인" 윤동주묘소가 있다... 댓글:  조회:2669  추천:0  2017-02-24
명주 백년을 날아온 사람아, 사람아                     - 2017.2.16 윤동주묘소에서/ 심명주   1. 2월의 룡정 동산, 깊은 겨울에서 깨여난 날씨가 아직 거둬가지 못한 싸늘한 바람으로 성성하니 산길을 맴돈다. 아침 7시반이라 아직 얼음이 미끌거리는 위태위태한 산등성이를 톺아 동산마루 큰길에 들어섰다. 이른 봄 낯선듯 익은 산의 기운들이 확 안겨온다. 립춘이 지난뒤에 추운 날씨가 이토록 바장이는것은 해빛의 세례가 아직  완연하지 못한 까닭이요 더구나 바람을 안고 갈길을 담금질하는 사람맘이 은근한 초조함과 벌써부터 맞혀오는 그리움으로 얽혀있는 까닭이다. 동산 산마루에 올라 익혀둔 큰길을 따라 한참을 달리니 라고 쓴 패쪽이 타향에서 만난 지인처럼 반갑게 안내해준다. 얼마전에 내린 흰눈들이 아직 도톰한 이불인양 갖가지 옛말이 다듬이된 줄느런한 묘소들을 메워주는 사아사이를 가로질러 정갈한 정원을 방불케하는 윤동주의 봉분앞에 다다랐다. 소담하게 쌓인 묘 앞켠 량쪽에는 키높이로 자란 소나무 두그루가 변함없는 푸름을 선사하고 다시 그 뒤 량옆으로 장성한 박달나무 두그루 역시 예전의 문무호위인듯 혹은 시인의 성품인듯 어질게, 그러나 드팀없이 서있다. 눈이 내리고 또 바람불기를 몇십성상이던가. 이른 아침 잠간 광명을 선사한 해돋이는 어느사이 모습을 감추고 낮은 하늘에는 푸근한 구름층이 덮여있다. 그들의 보우로 어제까지 싸하던 바람날씨에서는 봄을 예고하는 훈훈함이 묻어난다.   룡정.윤동주연구회(룡윤회)의 주최로 진행될 라는 테마의 윤동주추모 행사에 동참하고저 조금뒤 이곳으로 200여명의 시민들이 모일것이니.   2. 오전 9시반, 묘소 봉분 량옆의 푸른 소나무에는 룡윤회 회원들이 직접 손으로 한송이 한송이 정성들여 만들어 달아놓은 몇백개의 희디흰 종이꽃들이 목련마냥 소담히 피여있었다.  흰 생화로 한광주리 가득 메운 꽃바구니도 묘소곁에 다복히 놓여있었다.  범상치 아니한 시인의 과거를 뜻하는듯 옅은 흙색을 바탕으로 프린드된 프랑카드.  그 오른쪽 크낙한 한면을 감성적이나 강인한 시인의 흑백 모습이 바탕색과 강렬한 조화를 이루어 눈길을 끌고,  프랑카드 왼쪽은 짙은 락엽색의 손바닥인양 라는 검은테의 하얀 이름 석자를 오연히 떠받치고 있다. 하늘과 땅을 잇닿아주는 오롯한 병풍처럼 두개의 대형 프랑카드는 묘소뒤 그리고 묘소 맞은편 나무에 각각 세워져 서로 호응하듯 어우르듯 곧 도착할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을 기다려 일사불란히 달려온, 유표한 명찰을 앞섶에 드리운 룡윤회 회원들은 저마다 자기 위치에서 묵묵히 대기중이였고;  곧 다가오는,  기억에  새겨질 장면 한컷이라도 놓지지 않으려는듯 드론(航拍机)촬영과 미리 준비된 음향설비가 시민들을 맞이할 자세로 가지런히 세팅되여 있었다.   9시 50분 좌우, 드디여 서향받이 묘소의 비탈뒤로 재를 넘어 길게 뻗은 큰길에 대형 뻐스 3대가 나란히 도착했다. 초봄속에 무연히 스러진 길곁의 허랑한 옥수수밭을 배경으로 정거한 차가 문을 열었다. 그리자 차속을 발원지로  질서정연하고 숙연한 분위기의 검은색  물결이 묘소쪽을 향해 천천히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석대의 차량속에서 세 줄기로 나뉘어 흘러내리던 물결들은 자드락에 누운 묘소를 겨냥한 사이곬에 들어서면서 이윽고 한갈래의 길고 장중한 모듬강줄기로 변하여 묘소를 향해 흑룡인양 검게, 유연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저마다 가슴에 푸른잎을 띄운 작고 아담한  흰 조화를 정중히 달고 천편일률로 고인명복을 기원하는 무거운 분위기의 복장을 착복한 사람들. 그 시민들속에는 머리발이 하얀 팔십여세 지존의 어르신이 계시는가 하면 이제 눈발을 헤치고 곧 봄눈을 녹이며 땅속에서 돋아오를 햇풀같이 싱싱한 칠팔세받이 어린 아이들도 있었다. 남녀로소 세대가 폭넓게 포용되여 운집된 사람들속으로  맑고 발랄하고 깨끗한 눈망울의 고인 윤동주의 어린 모습이 보였다가, 백년을 날아 잠시 지상을 소풍하러 내려온 하늘의 별- 희끗한 머리발의 백세 윤동주의 환영이 엇갈려 눈앞에서 어른거린다.   3. 기승부리던 산바람이 잠풍으로 가라앉았고, 몇백명  시민들의 움직임마저 짓누른 고요가 묘소주위를 틈없이 꽉 메웠다. 드론의 비행소리가 나지막히 창공을 가르며 예언자인듯 시간의 흐름을 가리켜주고, 이미 사람들은 시인의 령혼에 빙의된듯 절절한 추모에 젖어들었다. 제전에 따라 올리는 한잔 한잔의 술들은 그리움의 이슬이요 저승강에 흩날리는 파도가 아닌가.     1917년에 태여나 1945년에 떠나기까지 순간인양 짧았던 시인의 생몰력사이다. 어두운 시대와 타협하여 범인凡人으로 함몰되기를 거부하고 하늘, 바람과 별에 의탁하며 끝없는 성찰과 참회로 거듭나기를 이어온 백년의 우주 소울-윤동주, 그 앞에 따르는 제전술은 그이의 령혼과 만나는 징검다리임에랴. 그리고 펼쳐진 시읊기 향연. 찬란한 이십대의 나이에 적어 남긴 , , , ... 시인의 동시에서마저 이국땅 정착의 아픔이 묻어있거니, 묘소앞에서 읊는 시인의 시 한수한수 그대로가 다시 여운으로 회귀되여 사람들속으로 스며들었다. 그 기를 받아 이음이려는가 마지막으로 이백명 시민은 동성으로 시인의 를 읊어 그 소리가 하늘가에 닿았거니.    불우한 시대를 거쳐 하늘을 가로지른 혜성인양 세상에 굵직하게 이름을 박은 별의 시인은, 저 창공 어딘가에 서서 회심의 미소를 보내고 있을가. 백년을 거쳐 이곳에 다시 날아온 사람아, 사람아, 시인이여!  
281    시인은 궁핍(窮乏)으로 시인의 이름에 누를 끼치지 말아야... 댓글:  조회:2508  추천:1  2017-02-24
      허난(河南, 하남)성 덩펑(登封, 등봉) 쑹산(嵩山) 소림사(少林寺)에서... 1.  한 평론가의 지적처럼 요즈음엔 "고통스런 열정이 없이 단순히 일상의  표현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문화귀족주의적 삶에 대한 동경으로 시인이  되려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이들에게 문학이란, 시란 귀걸이나 머리핀 같은 하나의 악세사리에 불과하다. 거기에 새로운 미라든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기 위한 고뇌가 있을 리 없다. 어쩌면 그것은 성가신 것이거나 귀찮은 요구사항일른지 모른다. 그저 고만고만한 작품을  만들어 자기만족 혹은 자기과시를 위한 발표에 부산을 떨며 혈안이다가  성공하면 이번에는 잡지 월평이나 계간평에 주목한다. 거기서 주목을  받으면 기고만장하지만 소외되면 또 불만을 표하며 평자들을 싸잡아  욕하기도 한다. 이러한 부류의 인간들에게 허영은 끝이 없다. 부르주아적  삶이 보편화되면서 궁핍을 잃어가는 혹은 망각해가는 시인들이 많아졌기  때문일까. 나타한 일상의 삶에 생채기를 내고 새로운 피를 수혈해야 할  문학이 오히려 타락한 현실에 영합하여 부화뇌동한다면 문학의 존재이유는  어디에 있을 것인가. 이러한 문학과 예술의 세속화현상은 후기자본주의  사회의 필연적 현상인가. 종교의 경우에도 애초의 성스럽고도 강렬한 영적 힘을 지녔던 성인의 가르침이 날로 때가 묻고 타락하여 그 빛나던 광휘를 잃어온 것처럼, 이제 문학도 그 찬란하고 도저했던 아우라aura를 상실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자본주의 사회의 물화현상을 반성케 하고 그 결핍을 보완해 주어야 할 문학의 본분은 무엇인가. 물질적 풍요의 이면에 간절히 궁핍을 원하는 또 하나의 마음들이 있다는 사실은 굳이 정신분석학의 이론들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번 달에 발표된 시들을 읽으며 확인할 수 있다.  시는 궁해진 뒤에 더 좋아진다(詩窮而後工)는 말이 있다. 구양수가 언명한  이 말에서 "궁"이란 작가가 처한 궁핍한 상황을 말하는데, 물질적 의미보  다는 정신적 의미가 더 강한 것으로 이해된다. 체험의 절실성을 강조한 것  이다. 식민지시대 시인 李箱의 "절망이 기교를 낳는다"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건강한 생의 중심부에서 밀려나 있다는 소외감이 시인의 내부  에 한을 머금게 하고 그것이 예술에 투사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픈 상처  가 결국 마음의 지도를 만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체험의  절실성이 잘 드러난다고 생각되는 시들을 중심으로 이 달의 시를 읽어보기  로 한다. 먼저 정체불명의 병마와 싸우고 있는 최춘희 시인의 시다.  2.  제주에 사는 鄭시인이 작은 상자에 향기를 가득 담아 보냈다.  7.8월이면 바다를 향해 잘디잔 보라빛 꽃을 피운다는 해녀들이  물질할 때 꽃과 잎을 따 귀를 막으면 아무리 깊은 물 속이라 해도  멀미가 나지 않는다는 숨비기꽃 그는 바다 몰래 잎과 열매를 뜯어  말렸다고 한다 깊고 서늘한 노래 하나가 가만히 내 발등을 덮으며  내려오는 저녁이었네 햇빛이 잘 들지 않는, 중심에서 비껴 선 어느  그늘 자리에 아픈 몸과 마음이 서로 동무하며 길 떠나자 등을 떠미네  공복의 삶이여 오늘은 너의 속쓰린 얼굴이 왜 이리 못내 보고 싶으냐한  번도 배불리 채워주지 못한 창자 깊숙이 독한 약쑥향기 같은 숨비기꽃  이 저릿한 내음을 꾹꾹 눌러 담아 던지고 싶다 잎진 겨울나무 숲 시퍼  렇게 입술 터진 그 틈새 봄을 기다리며 숨죽인 불씨들, 속의 불꽃되어  꽃의 바다로 둥글게 퍼져 나가네 어머니, 당신의 꽃무덤 자궁 속으로  힘껏 자맥질하여 나,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손이 닿으면 사라지는  사람의 향기  꽃의 향기도 이와 같아서  그 속에 얼굴을 대니 맟을 수 없네  -최춘희, [산책]-숨비기꽃에 길을 묻다 전문  시인이 처해 있는 현실은 "햇빛이 잘 들지 않는", "중심에서 비껴 선  어느 그늘 자리"이다. 그곳에서 남달리 감수성이 예민한 시인이 느끼는  실의와 좌절의 강도 또한 절실할 것이다. 생의 욕망이자 에너지인 "에로스"  가 좌절될 때 죽음의 충동("타나토스")이 얼굴을 내민다. "몸과 마음  동무하며" 길 떠나자고 한다. 몸은 마음이 깃드는 장소이니 분리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몸이 허하니 공복감 또한 강하다. 절박한 허무감이  엄습한다. 화자는 "공복의 삶이여" 하고 탄식한다. 同病相憐! 나처럼  "속쓰린" 너의 얼굴이 못내 보고 싶어진다. 이러한 때에 멀리 제주에  사는 친구가 보내온 "숨비기꽃"의 향기를 맡으며 화자는 황혼에 "깊고  서늘한 노래"인 시의 순간을 만난다. 그러면서 아무리 깊은 생의 물 속  이라 해도 "멀미"가 나지 않는 그 꽃을 닮고 싶은 것은 아닐까. 그러나  아직도 시인에겐 "한 번도 배불리 채워 주지 못한 창자"의 몸이 있고,  "봄을 기다리며 숨 죽인 불씨들"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속의 불꽃"  되어 "꽃의 바다"로 둥글게 퍼져나가고 싶다. 그것은 생명의 근원인  "어머니"와 이어지며 재생에의 욕망으로 타오른다. 그런데 이러한 재생은  어머니의 "자궁" 속으로 힘껏 자맥질하여 들어가야만 가능하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의 하나인 "자궁회귀본능"이 미의식의 원천이라는  마광수 교수의 이론을 빌지 않더라도 이 시는 생명의 결핍을 겪고 있는  시의 화자가 좀더 완전한 생명의 근원에 이르고자 하는 소망을 노래하고  있으며, 그것은 마지막 연에서 보듯이 진정한 만남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또한 "독한 약쑥향기"와도 같은 극한의 궁핍을  이겨내는 고뇌의 "불꽃"이 타올라야만 재생과 부활에 이를 수 있음을,  나아가 새로운 예술의 창조에 다다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3.  대개 병이라는 것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알게 모르게 오랜 동안 병인이 누적되어 오다가 어느 시점에 현상하는  것이다. 조지훈도 [病에게]란 시에서 "자네는 나에게 휴식을 권하고  生의 畏敬을 가르치네"라 노래했지만 몸의 궁핍이라 할 병을 만날 때  우리는 살아온 날의 허물을 되돌아보게 되고 더욱 겸허하게 절대자에게  용서를 빌게 된다. 방만하게 경영하던 국가가 거덜이 나고 환란의 궁핍에  처해서야 비로소 실상을 자각하고 헛된 거품을 가라앉혀 보려 하는 오늘  의 우리에게처럼, 병은 그런 의미에서 정다운 교사이기도 하다.  갑자기 목이 메이고  두터운 안개 파도처럼 밀려왔다.  끝모를 억울함에 주먹을 움켜쥐고  기도하였으므로  손에 묵주가 쥐여 있었더면  아마 묵주알이 물렁물렁해졌을 것이다.  하느님 제가 통 속에서  모래나 먼지보다 더 작아져 비오니  부디 지난날을 보지 마시고  제 더러움도 낱낱이 덮어주시어  올무에서 저를 건져주소서.  -조창환, [통 속에서] 부분  화자는 "거칠어진 오장육부" 때문에 씨티촬영을 체험하면서 "갑자기 목이"  메인다. "두터운 안개"와도 같은 두려움과 회한이 "파도처럼" 밀려옴을  느낀다. 모든 것은 자업자득의 업보임에도 불구하고 "끝 모를 억울함"에  분노하기도 한다. 그것은 어쩌면 한 사람의 건전한 중년 가장으로서 나름  대로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하는데도 이렇게 병마가 도래하여 고통스러워  해야 하는 현실에 대한 불만일 것이다. 그러나 인류 공동의 업보로 인한  공해와 거대 조직사회가 주는 스트레스, 존재의 운명이라 할 시간의 압박,  각종 문명의 공해 등에 둘러싸인 현대인들은 살아남아 있다는 것이 곧  축복이자 기적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존재의 부조리에서 오는 것일지라도  신체생명의 위협은 매우 원초적인 것이어서 이 경우 삶에의 집착은 엄청  나게 강해지는 것이다. "손에 묵주가 쥐어 있었더면/아마 묵주알이 물렁  물렁해졌을 것이다." 결국 유한하고 나약한 존재인 인간은 "통"으로  상징화된 극한상황에서 그 오만을 버리고 "모래와 먼지보다 더 작아져"  그 올무(올가미)에서 건져달라고 애원한다. "부디 지난날을 보지 마시고/  제 더러움도 낱낱이 덮어"달라고 기도한다. 그 기도 속에서 인간은 비로소  부끄러움을 자각하고 아집을 벗어나 순수고도 절실한 마음의 상태가 된다.  궁핍한 상황이 결과적으로 순정한 정서를 유발시켜 창작의 계기가 되고  있다.  4.  문명의 진보와는 별 상관없이 궁핍이 생활화되어 살아가면서도  불만스러워하지 않으며 오히려 생을 달관한 듯한 행복한 표정들을  담은 다큐물을 볼 때마다 우리는 진한 감동을 받는다. 한국 내에도  이런 오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많고 그들을 취재한 프로들은 더욱  친근하고 진하게 삶의 본질이 뭔가를 생각하게 한다. 문명의 때가 덜  묻은 청정한 오지 중의 하나로 강원도 정선 땅을 드는 것은 그러한  오지의 궁핍한 삶이 낳은 "정선아라리"의 깊은 맛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많은 시인들은 그곳을 찾고 또 노래부른다. 지난 설날에도 다큐  멘터리 "동강"과 "비둘기호 풍경 그리고 정선이야기"라는 두 개의 프로  그램을 보면서 우리가 잃어버린 시간으로의 아련한 여행을 경험했다.  첩첩산중, 고립된 공간에서 형성된 독특한 산간문화는 그들 삶의 바탕이  되어 집과 일터와 자연이 혼연일체가 되어 있는 독특한 양상을 보인다.  정선 출신 진용선 시인은 아예 귀향을 했다지만, 대구의 시인 문인수도  틈만 나면 정선을 찾는다고 한다. "내 속이 정선인 것 같다"는 시작메모  처럼 그것은 어쩌면 문인수 시의 전반적인 특징의 하나인 한의 미학과  정서에 딱 맡는 구체적 지리공간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필자의 주변에도 동강을 사랑하는 모임의 회원으로 있는 시인들이  많다. 고재종 시인은 우리 나라 강 중에서 가장 강다운 강이 동강이라고  도 해서 나로 하여금 빨리 가 보고 싶은 충동을 갖게도 했다.  {현대시학} 2월호에는 문인수 시인의 정선 시편이 10편이나 발표되어  있어서 제재의 일관성, 분위기의 통일성을 느끼게 하는 독특한 시적  개성을 보여주고 있다. 유장하게 이어지는 길의 이미지며, 짧은 형식에서  오는 간결미, 정제미, 한의 정서 등이 우리 서정시 전통을 잘 계승하고  있다. 그래서 친근감도 더하다.  강원도 정선땅은 산이 많다.  산이 많으니 산 넘는 고개도 많다.  비알밭에 호미 걸고  막장에서 막장으로 산 넘어 봐라  한 세상 넘는 일이 숨이 차고 눈물 나지  그리하여 저 노래는 애가 터진다.  애 터지게 느리고 구성져서  끊어지거나 무너지지는 않는다.  소나무 등허리가 그렇게 다 굽었다.  동강 물길이 또 섧게 돈다.  -문인수, [정선아리랑] 전문  우리는 왜 정선아라리만 들으면 가슴이 콱 막히고 눈물이 나려고 하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 나라 어느 산에서나 볼 수 있는 "등허리가" 굽은  소나무처럼 집단무의식 속에 내재된 보편정서의 동질감에서 말미암는  것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위의 시는 민족정서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  하고 있는 시라 하겠다. "끊어지거나 무너지지 않는" 무궁화와도 같은  끈질긴 생명력과 서러움과 풍류 같은 것 말이다. 국토의 70퍼센트가  산악인 우리 나라 지형상 느리고 유장한 리듬의 정선아리랑은 그만큼  동질성이 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정선이라는 시적 공간은  문인수 시인의 말처럼, 자신의 내면과 "궁합"이 잘 맞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시인은 같이 발표된 시화에서 "정선엘 가면 물안개  속에서도, 밤중 부엉이 소리의 암흑 속에서도 내가 잘 보인다. 정선엘  가면 풀려나고 싶다가도 금세 또 더 깊숙이 갇히고 싶다"고 말하는 것  이다.  노향림의 시는 시적 수사의 방법론은 다소 다르지만 문인수가 정선에  갇히고 싶어하는 심정과 같은 궁핍의 정서를 남도의 공간을 통해 보여준다.  몇 걸음 더 가고 싶은 비둘기호가  마지막으로 남원 옹정역에 닿는 날  날개 없는 비둘기들 사이에 나는  앉아 있었다 마음은 마냥 산줄기를  타고 넘어가 구른다.  기적 소리도 없이 굴러가는 낡은 쇠바퀴 소리 하나  붙들지 못했다 나를 붙드는 건  밤톨만큼씩 굴러 다니는 사투리였다  장꾼들이 이고 지고 온 보퉁이마다  눈이 부은 잠 부족한 아침이 꽂혀 있다  보석같이 반짝이는 찬서리 묻은 하늘이 덮여 있다  머리에 수건을 쓰고 적삼 아래  둥그런 젖무덤을 보인 아낙들이  제 키들을 낮추며 비둘기호에서 내린다  졸업 사진 속 얼굴같은 새벽 하늘을  배경으로 맘껏 서성인다  집찰구 밖으로 뚫린 역마당엔  옆구리가 다 터져나온 보퉁이들  나도 주저앉는다  -노향림, [비둘기호] 전문  비둘기호 기차는 주로 서민들이 타고 다니는 기차다. 그런 점에서 삶의  현장의 냄새가 가장 짙게 배어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정든 사투리들, 냄새  나는 보퉁이들, 그리고 생존에 지친 서민들의 궁핍한 삶의 모습들, 어쩌면  시인이 또한 삶에 지쳐 잠시 잊어버리고 있던 그러한 고향의 풍경이 눈에  선한 듯하다. 그곳은 "머리에 수건을 쓰고 적삼 아래/둥그런 젖무덤을 보인  아낙들"이 살아가는 원초적 건강함의 세계일 것이다. 아마도 시인은 그러  한 건강한 원초적 삶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날개없는  비둘기"라는 표상 속에서 그러한 세계로의 회귀는 실현가능성이 그렇게  높아보이지는 않는다는 점이 안타까움으로 다가오며 어쩌면 그것은 인간  존재의 숙명적 결함에서 말미암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시인은 궁핍의 상태에서 사물에 대한 감각이 더 예민해지기 마련이지만,  "시의 공졸(工拙)은 궁달(窮達)과 관계되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타고난  능력에 관계되는 것일 뿐"(정민, {한시미학산책} 참조)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궁핍하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고, 다만 중요한 것은  시인이 그 궁핍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려 있을 뿐이다. 조선 중기  한문 4대가의 한 사람인 월사(月沙) 이정귀는 "궁함이 능히 오로지  하게끔 하여, 오로지함을 이루면 능히 저절로 공교해지는 것(詩專而後工)"  이라 했으니 예술창조를 향한 일념정진의 매진이야말로 좋은 작품을 생산  하는 유일한 길이 아닐까 여겨진다. 다만 시가 능히 사람을 궁하게 한다  (詩能窮人)는 말은 오늘날의 현실에도 부합되는 사실이니 무명의 설움과  고독과 가난과 같은 시인됨의 궁핍을 이겨낼 결의와 자신이 서 있지 않은  사람들은 더 이상 시인의 이름에 누를 끼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     울울창창 ―한세정(1978∼ ) 기다려라 관통할 것이다 나를 향해 나는 전진하고 나를 딛고 나는 뻗어나갈 것이다 손이 없으면 이마로 돌격하리라 절망이 뺨을 후려칠 때마다 초록의 힘으로 나는 더욱 무성하게 뿌리 내릴 것이다 기다려라 압도할 것이다 절망 위에 절망을 얹어 내가 절망의 목덜미를 물어뜯을 때까지 초록의 목덜미가 선연한 핏줄로 붉어질 때까지 나는 이파리를 움켜쥐고 또 다른 이파리를 향해 울울창창(鬱鬱蒼蒼) 온몸으로 나를 흔들어댈 것이다     ‘기다려라/관통할 것이다’, 나무의 목소리를 빌려 화자는 의지를 표명한다. 나무의 관통은 수직으로 이행된다. 나무처럼 뿌리에서 우듬지까지 꿰뚫고 하늘을 향해 뻗치는 기세로 살아가리라는 이 수직 상승의 의지! ‘나를 향해/나는 전진하고/나를 딛고/나는 뻗어나갈 것이다’, ‘나’, ‘나’, ‘나’! 뿌리 내린 자리에서 평생을 보내는 대개의 식물같이 ‘나’라는 뿌리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초록의 힘으로’ ‘더욱 무성하게/뿌리’ 내리려는, ‘나의 생’에 대한 옹골찬 지향이 인간이라는 동물의 특징이겠다. 그런데 살아가노라면 그 인간 고유의 자존(自存) 감각과 생명력을 꺼뜨리는, ‘절망이 뺨을 후려칠 때’가 언제 어디에서라도 생길 수 있다. ‘손이 없으면/이마로 돌격하리라’, ‘절망 위에 절망을 얹어’ 등의 언표만으로도 현재 화자의 심정이나 처한 상황이 절망에 압도당할 지경으로 팍팍하다는 게 짐작된다. 하지만 삶아, 네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익히 알지만, 나 또한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야! 조용히 시들어 버리고 사그라질 내가 아니야. 하지만 어떻게 그렇게 한다지? 그래, 온몸으로, 온몸으로 맞받아치리라. 한파로도 가뭄으로도 뿌리가 옹골차지는 나무처럼, 어떤 절망도 내 ‘초록 힘’을 키우는 밑거름으로 만들리라. ‘나는 더욱 무성하게/뿌리 내릴 것이다’! 화자는 자신에게 ‘기다려라’ 속삭이며 기를 살린다. ‘기다려라, 압도할 것이다’, 능히 절망을 절망시킬 것 같은 화자의 기세다. 내 결코 생이파리인 채 지지 않으리. ‘초록의 목덜미가/선연한 핏줄로 붉어질 때까지’, 내게 주어진 생명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태우리! 우리도 울울창창 숲에 가서 화자처럼 무럭무럭 김 오르는 초록 피를 수혈받고 힘을 냅시다!
280    윤동주 시와 이육사 시를 재조명해 보다... 댓글:  조회:9254  추천:1  2017-02-23
목차 쉽게 씌어진 시(윤동주)와 광야(이육사)의 작품 설명 쉽게 씌어진 시(윤동주)와 광야(이육사)의 핵심 정리 쉽게 씌어진 시(윤동주)와 광야(이육사)의 이해와 감상 쉽게 씌어진 시(윤동주)와 광야(이육사)의 작품 설명 [억압된 현실에 대한 저항과 극복 의지] 이육사의 ‘광야’는 우리 민족의 삶의 터전인 광야를 배경으로 하여 일제 강점기의 현실에 대한 극복과 희망의 미래에 대한 확신을 드러낸 작품이다. ‘광야’와 윤동주의 ‘쉽게 씌어진 시’는 당시 억압된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나타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하지만 ‘쉽게 씌어진 시’가 자기반성과 성찰을 통해 현실 극복의 의지를 나타냈다면, ‘광야’는 웅장한 상상력과 강인한 지사적 의지, 남성적 어조를 통해 현실 극복의 의지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쉽게 씌어진 시(윤동주)와 광야(이육사)의 핵심 정리   쉽게 씌어진 시 광야 갈래 자유시, 서정시 자유시, 서정시 성격 저항적, 반성적, 미래 지향적 의지적, 저항적, 미래 지향적, 상징적 제재 현실 속의 자신의 삶(시가 쉽게 씌어지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 광야 주제 어두운 시대 현실에서 비롯된 고뇌와 자기 성찰 조국 광복에 대한 의지와 염원 특징 ① 상징적 시어를 대비하여 시적 의미를 강화함. ② 두 자아의 대립과 화해를 통해 시상을 전개함. ① 독백적 어조로 내면의 신념을 드러냄. ② 상징적 시어와 속죄양 모티프를 통해 주제를 형상화함. ③ ‘과거 - 현재 - 미래’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상을 전개함. 쉽게 씌어진 시(윤동주)와 광야(이육사)의 이해와 감상 쉽게 씌어진 시(윤동주) 이 시는 윤동주가 일본에 유학 중이던 1942년에 쓴 작품으로, 어두운 시대 현실에 무기력한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과 자기반성을 통해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 광야(이육사) 이 시는 ‘광야’라는 광활한 공간과 현실 초월적인 시간 인식을 바탕으로, 일제 강점기의 암담한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와 조국의 광복을 염원하는 미래 지향적인 신념을 드러낸 저항시이다. 시인은 광야에서 태초를 포함한 역사를 생각하고, 현재가 민족적 비극의 시기이지만 반드시 밝은 미래가 올 것이라고 확신하며 자신을 희생할 것을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Daum백과] 쉽게 씌어진 시(윤동주)와 광야(이육사) – 함께 읽으면 좋은 문학작품, 천재교육 편집부, 천재학습백과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덤으로 더 보기+= 공통점 이육사, 한용운, 윤동주 세분 모두 일제시대에 일본에 항거한 저항시인들입니다. 또한 옥고를 치르셨습니다 독립운동을 하다가 옥살이를 하기도 합니다. 이육사님은 옥살이 할때 죄수번호가 '264'라서 필명을 이육사로 정했고 윤동주님은 옥살이를 하다가 결국 옥에서 돌아가셨고 만해 한용운님은 민족대표 33인중의 한분으로 그 33인중 유일하게 변절하지 않고 끝까지 지조를 지키신분입니다. 이육사님의 대표시는 '광야','절정'등이 있고, 윤동주님은 '서시', '별헤는밤' 등이 있고 한용운님은 '님의 침묵', '복종'등이 있습니다. 또한 시들이 미래지향적이고 조국광복 염원하는 시풍이라는 점도 잇습니다 차이점 이육사의 작품 대개가 참여적 저항 문학의 성격을 띠는 데 비해, 윤동주의 시는 참여시로 분류되는게 어색하다는 점 이있고 한용운의 시에는 여성적 어조가 많이 가미되어있고 '임의침묵', '나룻배의행인'에서 알수잇음 저항시 뿐만이 아닌, 그의 종교관인 부처에 향한, 마음도 실려있음 스님으로 주로 종교적색채가 가미된 시를 주로 썼고 불교의식고취와 독립운동을 체계적으로 펼친 역사적 인물이라는 점입니다 윤동주의 시에는 자기반성이강함. 아름답고도 투명하고 결곧은 결정체들로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하며, 자신의 동무들이 일본에 대항해 싸울때, 그는 아무것도 못했다는, 자기 반성적시들이 많은 편이며 저항의식으로 일제시대에 살아가는 지식인의 고뇌를 부끄러움으로 표현함을  '쉽게 씌여진 시'에서 알수있습니다 이육사의 시는 윤동주와 한용운과는 굉장히 진취적이고, 저항적이시며, 대륙적이고, 남성적 어조를 띈다 이육사는 강한 의지를 시에 담고 있으며, 윤동주과는 다르게, 자기희생적이고, 굉장히 대륙적이다. '광야'에서 알수있음. -------------------------------------------------------------------------------- 1. 윤동주가 시를 썼던 시대인 1936~43년은 온 인류가 시를 외면한 시대였다. 그가 릴케와 프랑시스 잠을 노래했을 때는 포연이 장미의 향기를 쫓고 나귀등에다 탄환을 운반하던 때였다. 그가 즐겨 바라보던 하늘과 바람과 별의 허공엔 공습 경보가 요란하게 울리던 시절이었다. 인간의 역사 중 사람의 생명이 가장 값싸게 거래되었던 시대였고, 자유, 평등, 박애가 군국주의의 넝마주이 집게에 집혀서 오물 처리장으로 실려가던 때였다. 철학자에게는 복종의 철학이 강요되고, 음악인에겐 군가 작곡이 명령되며, 시인에게는 원고지와 펜으로 탄환을 만들 것을 강요하던 시대였다. 이 시대엔 고향을 애절하게 그리워하는 것만으로도 죄가 성립되었고, 친한 벗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는 것까지도 감시를 받았다. 하물며 창씨 개명도 하지 않은 '순이'에 대한 추억이나 '흰 옷'과 '살구나무'와 '희망의 봄'이야 영락없는 불온이었다. 1940년 전후 - 지구는 군가와 화약냄새로 가득 차서 모든 약소 민족은 겟슬러 총독 아래서의 윌리엄 텔처럼 두 개의 화살을 가지고 사과를 겨누고 있었다. 1876년 이후 유럽열강과 미국은 매년 24만 평방마일의 땅을 얻어왔다. 그 결과 1914년에 이르자 지구상엔 거의 모든 약소 민족이 어느 강대국의 한 식민지로 변하고 말았으며, 이것은 1940년대까지 계속되었다. 그래서 이 시대의 문학은 본의든 아니든 식민 종주국의 이익을 옹호하던가 아니면 민족독립운동을 돕던가 둘 중 하나에 봉사하게 된다는 양자 택일의 갈림길에 서야만했다. 한국 문학사는 이 시대를 '암흑기'로 말한다. 시와 소설의 발행고가 가장 낮은 시대였을 뿐만 아니라 그 질적인 면에서도 예술적 여과를 거치지 못했으며,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나마도 식민 종주국의 이익에 보탬을 준 것이 많아서, 암흑기란 시대적 명칭은 자연스럽게 사용되어 왔다. 시인 윤동주는 바로 이런 암흑기의 몇몇 유성 중 뛰어난 시인의 하나이다. 이 시대에 우리는 어학자 이윤재와 시인 이육사 그리고 윤동주를 함흥과 북경과 후쿠오카의 옥중에서 잃었다. 고문, 영양실조, 동상 그리고 정신적 고뇌 등으로 일관된 하루하루의 옥중생활을 윤동주도 1943년7월, 체포이후 1945년 2월16일, 죽는 날까지 반복했을 것이다. 이 시인의 동생 윤일주의 기록에 따르면 1944년 6월 이후 월 1매의 엽서 쓰기가 허락되었다고 하는데, 아마 이때가 형이 확정된 때로, 그 이전엔 모든 외부와의 연락이나 독서가 금지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후 주사를 맞았다고 하는데, 그 내용물은 아직도 상상에 맡길 수밖에 없으며, 최후의 순간에 큰 소리를 치며 죽었다는 간수의 증언도 그 내용은 알 수가 없다. 이 모국어의 순수 시인이 우리말로 고함 지르고 죽은 심정이야 이해가 가지만 왜 간수에게 일어로 한마디를 남기지 않았을까! 2. 흔히들 시인 윤동주를 저항의 시인이라 부른다. 원래 저항이란 순수 예술의 한 속성이 된다. 일반적으로 저항의 예술과 순수예술을 이원론 적으로 분리시키는 경향이 최근 우리 문단을 지배하고 있는데, 예술이란 그 순수성 자체가 가장 강력한 저항을 나타낸 것임을 수긍해야 될 것이다. 예술적 창조란 말할 필요도 없이 개성의 표현이다. 이 '개성'이란 곧 타아와의 조화와 갈등을 동시에 지닌 것으로 이는 바로 모든 '자기 개성'의 반대자에 대한 조화를 위한 저항이 되는 것이며, 이것이 순수 예술의 본질이 된다. 따라서 저항은 고대 원시예술의 시발점부터 순수예술이 지닌 한 속성이 되어 왔다. 즉 자연에 대한 저항을 나타낸 동굴의 벽화로부터 종교에 대한 저항을 표현한 르네상스시대, 이어 권력과 사회에 대한 근대화예술과 비인간화해 가는 과학에 대한 저항을 보여주는 현대예술로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음을 우리는 본다. 이런 세계사적 보편성으로서의 저항의 문학이 1940년대 암흑기의 한국에서도 독특한 양상으로 나타났으며, 그 중 윤동주의 큰 비중을 차지한다. 위에서 본 저항문학의 주제에 의한 분류와는 달리 이는 문학인의 기능이나 대사회적 자세로 나누어보면 다음 세 가지의 형태를 보게 된다. 첫째는 문학인 자신이 단체나 결사 등에 직접 가담하는 경우로, 이때 그 문학인의 작품은 오히려 매우 서정적일 수도 있다. 둘째는 일시적인 의무나 지원 세력으로 어떤 단체나 운동에 뛰어든 경우가 있다. 마지막 셋째는 직접운동권에 가담하거나 지원하지는 않으면서도 순수한 문학작품으로 정서적인 저항을 시도하는 예가 있다. 이런 세 가지 형태의 저항적 자세는 세계 문학사에서 얼마든지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우리의 짧은 문학사에서도 첫 번째에 해당하는 예로는 이육사를 들 수 있는데, 그는 지하운동에 참여하고 있으면서도 지극히 서정적인 작품을 남긴 좋은 본보기가 된다. 두 번째 경우는 이상화, 한용운이 항일운동에 참여한 것을 들 수 있다. 마지막 세 번째는 바로 윤동주나 김소월 같은 시인으로, 자칫하면 이런 시인에 대한 저항의지를 묵과해 버릴 수도 있을 만큼 그 작품은 깊은 서정과 민족 정서에 뿌리를 박고 있다. 그래서 오늘의 우리는 윤동주에게 왜 윤봉길이나 안중근처럼 되지 못하고, 아니 하다 못해 이육사처럼 비밀 결사에라도 참여하지 못했느냐는 추궁은 할 수 없으며, 이런 시가 지닌 진정한 가치를 재음미, 평가하는 겸허한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옥사 그 자체가 윤동주의 시문학 전체를 대변해 주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의 순수한 시가 곧 역사적 저항의지의 표현으로서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치 인류사에서 가장 혹독했던 짜르 치하에서 가장 찬란했던 문학이 창조되었듯이, 1940년대의 혹독한 식민 통치 아래서 우리의 순수 저항시는 태어났던 것이다. 이런 시대를 배경으로 이루어진 저항의 시는 진정한 영혼의 고통을 겪는 사람만이 아는 순수한 고뇌의 절규가 스며 있으며, 그 끝간데 모를 고뇌의 깊이 속에 '순수 저항시'의 참된 가치가 스며있다. 이런 시는 누구를 선동하지는 않으나 감동을 주며, 울리지는 않으나 가슴을 찌르며, 취하지는 않으나 각성제가 된다. 윤동주의 저항시도 바로 이런 각도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그것은 인간이 원하는 삶의 최소공약수를 빼앗긴 시대를 배경으로 나온 것이었다. 따라서 혁명이니, 평등이니, 자유니 하는 어마어마한 이상들은 내일의 시인에게 남겨 두고서 그는 오직 하나의 평범한 약소 민족의 생활인으로서 열심히 살고자 했을 뿐이었다. 이 평범한 꿈-"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며, 별과 어머니와 소녀와 서정 시인을 그리며 살고자 하는 꿈이 허락되지 않았을 때 그는 하는 수 없이 저항시인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럼 윤동주의 이런 순수한 약소 민족의 서정적인 삶의 추구 자세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가장 쉬운 해답을 우리는 멀리 북간도에서 찾을 수 있다. 1886년, 증조부 때부터 북간도로 이주해 간 윤동주는 짧은 생애 중 모국이라고는 학창 시절 4~5년 정도밖에 있어 보지 못한 영원한 방랑자 였다. 새봄이 다 가도록 기별조차 없는 님 가을밤 응신까지 또 어찌 참을래요 두만강 눈 얼음은 다 풀리어 간다는데 새봄은 아니오라 열 세 봄 넘어와도 못참을 나랴마는 가신 님 날 잊을까 강남의 연자들은 제집 찾아 다 왔는데 (간도 이민 민요 '기다림') 기온의 차이가 극심한 대륙, 근대 이후 배일 사상의 온상지였던 땅, 일본력이 아닌 단군기원을 공공연히 사용하며 헌옷을 입고 추위에 동포들이 떨며 청국인 지주와 일본 군인들에게 이중으로 혹사당하던 원한과 설움과 서정과 꿈과 웅지의 옛 땅 -- '총독부 문서 1912년 청국 국경 부근 관계 사건철'에는 간도로의 조선인 이주 원인을 이렇게 분석하고 있다. 즉 토지가 비옥해서 생활난을 타개하기 위하여 가는 것, 항일 및 망명 이주, 기독교 연구 전파 등등. 할아버지 때부터 기독교를 믿었다고 전하는 윤동주는 이런 독특한 환경 속에서 민족 고유의 순수한 정서를 그리워하면서 자랐을 것이며, 특히 문학 청년 시절에 백석의 '사슴'을 통하여 한민족의 서정을 익혔기 때문에 나중 일본에 가서도 민족 정서를 잊을 수 없었으리라. 3. 이처럼 행동적 저항보다 순수한 민족 정서로서의 저항시인인 윤동주는 시를 통하여 1) 조국만가와 조국 부재의식, 2) 민족적 피해의식 3) 민족적 저항의식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굳이 따진다면 이 세 가지는 다 민족적인 정서의 순수 저항으로, 독립이나 조국에 대한 열망에까지 확대 해석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을까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바람이 불어'에서)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 합니다. ('별헤는 밤에'에서) 위의 인용에서처럼 시인 윤동주는 '시대를 슬퍼한 일도'없고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하늘의 별을 헤일 수 있는 약소 민족의 이방인의 한 민감한 청년으로 살았다. 따라서 그의 시를 너무 도식적으로 해석하여 '흰 옷'은 민족의 저항을 '봄'은 해방을 상징한다는 식의 풀이는 버려야 할 것이다. 이런 단견적인 비평은 자칫하면 우리의 민족이 지닌 보다 근원적인 정서의 저항성을 속류화 시킬 소지가 없지 않다. 따라서 윤동주가 지닌 시 세계에서의 저항의식은 대충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북간도 이주민의 윤택하지 못한 생활 정서를 노래함으로써 우리 민족 정서의 한 영역을 확보해 주었다. 시계도 없는데 애기가 울어서 새벽을 안다는 '애기의 새벽'이나, 장에 가는 엄마를 내다보려고 손가락에 침을 발라 문을 쏘옥쏘옥 뚫는 '햇빛.바람'등은 평범하면서도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는 소년적 정서를 잘 전해주고 있다. 또 프랑시스 잠의 영향을 많이 받은 당나귀와 시골 풍경의 차분한 묘사는 북간도의 추위를 녹여주는 가작들이다. 특히 이와 같은 생활적인 서정시 속에서 우리가 높이 평가해야 될 점은 궁극적으로는 허무주의가 아닌, 생에 대한 애정과 긍정적 자세가 스며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소년적인 정서의 탈을 벗고 보다 민족적 정서의 원천적인 시로서의 저항의 세계로 돌입하는 모습이 다음에 나타난다. 한번도 손들어 보지 못한 나를 손들어 표할 하늘도 없는 나를 ('무서운 시간'에서) 이런 자괴와 겸허속에서 이 시인은 민족의 슬픔을 깊숙이 맛보며 현실과의 대결에서도 항상 자성의 자세를 잃지 않는다. 그래서,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쉽게 씌어진 시'에서) 라고 하면서도,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자세로 '나팔소리 들려올 ' 새벽과 '모가지를 드리우고 /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 조용히 ' 흘릴 날을 기다리면서 지조 높은 개가 어둠을 짖는 소리를 들으며 짧은 생을 끝냈다. 이처럼 동주의 시는 간도로 간 조선인의 정서와 식민지 조선인의 서정을 노래한 것으로, 그 저항의식을 나타냈다. 그의 저항시가 가진 특징 중 우리가 지적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기독교와 관련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를 크게 노출시키지 않았다는 점과 복고주의적인 정서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 당시 기독교는 물론 우리나라 민족의 저항세력에 도움을 주기는 했으나 근본적으로 민족적 전통의 정서와 많은 갈등을 겪어왔는데, 윤동주는 이를 극복하여 종교보다 민족적 정서를 우위에 둔 훌륭한 시인이었다. 또 복고주의 역시 간도로 이민간 사람들 속엔 상당히 간직되었고 당시의 군국주의적 식민지 치하에서도 공공연히 자행되었건만, 이를 극복하며 새 시대의 민족적 정서를 노래해 주었다. 그러기에 윤동주의 시가 오늘의 독자에게도 신선감을 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4. 그렇다면 윤동주의 시와 그의 저항은 우리 문학사에서 어떤 위치에 서게 될까. 위에서 본 것처럼 그는 저항의 자세 중 순수한 서정적 작품으로 저항을 시도한 이른바 예술적 저항의 시인으로서 한 표본을 이룬다. 이런 계열에 속하는 다른 시인으로는 김소월을 들 수 있는데, 윤동주는 소월에 비하면 보다 진한 저항의 체취가 묻어 나온다. 다만 민족적 공동운명체로서의 정서는 소월이 단연 으뜸이며, 이 점에서는 동주는 그에 뒤진다. 원래 예술에서의 저항이란 가장 전염력이 강하려면 서정성을 지녀야 되는 것이다. 흔히들 전투적 선동성을 저항문학의 제일로 삼는 예가 있으나, 대중적 내지 민중적 저항의 유발엔 짙은 서정이 더 강력한 호소력을 지닌다. 코자크 부대가 폴란드를 침략했을 때 쇼팽의 피아노를 박살내어 땔감으로 쓴 것은 가냘픈 그의 음악이, 그 환상적이고 아름다우며, 서정적인 선율이 어느 독립군가보다도, 폴란드 인에게 애국심을 강력히 호소했기 때문이다. 윤동주가 오늘의 독자에게 깊은 감동과 호소력을 줄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그의 서정성에 있다는 사실은 오늘의 민중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 설정에 많은 암시를 준다고 하겠다.   일제강점기 시를 통해 우리 민족의 한을 달래준 한용운·이육사·윤동주 등 민족시인 3명의 모습과 대표적 시 구절을 담은 ‘영원(永遠)우표’(사진)가 2014년 4월 9일 발행됐다. 경북지방우정청에 따르면 영원우표는 근·현대 유명인물을 분야별로 선정해 발행하는 추억의 인물 시리즈 우표 두번째 묶음으로 민족 시인 3인이 선정됐다. 앞서 첫번째 묶음은 야구인으로 고인이 된 장효조와 최동원 선수를 담았다. 이번에 발행된 영원우표는 3종으로 총 136만8천장이 발행됐다.         ▲윤동주 생가 서시 시비 앞에서
279    책을 그렇게도 사랑했던 덕화 남평 길지籍 허봉남 문학가 댓글:  조회:2675  추천:0  2017-02-23
둘째형님의 책장                                 허두남   “야, 딸은 가져가도 되지만 책은 안된다!”   ㅡ사위가 책을 빌리려 할 때 둘째형님이 한 말이다.    그렇다고 나의 형님을 몰인정한 랭혈인간이라고 보지 말라! 딸 셋밖에 없는 “가라지농사군”이지만 자식들을 금쪽같이 여기는 정 많은 아버지이다. 어머니보다 아버지를 더 따르는 조카들이 줄줄이 그 증인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에게 비긴것은 책을 더없이 사랑한다는 뜻이다.   “남의 책을 빌리는자는 머저리이다. 남에게 책을 빌려주는 자도 머저리이다. 남의 책을 빌려갔다가 돌려주는 자는 더욱 머저리이다.”   ㅡ이것은 어느 작가가 책장앞에 써붙인 글이란다.    한쪽 벽을 다 차지한 책장, 세계명작들이 어깨를 비비며 서있는 책장을 흐뭇하게 올려다보면서 이 말을 외우던 형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참 교묘한 말이다. 세마디밖에 안되는 말에 책을 빌려주지 않는 정당성을 빈틈없이 박아넣었다. 더구나 세번째마디는 그 말밖에 진의가 있다.  “나는 책을 빌려갔다가 돌려온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는것이다. 주인이 철같은 리론으로 방어선을 쳐놓고 앉아있는데야 누가 감히 부끄러운 손을 내밀수 있겠는가?     책장앞에 그 글귀를 써붙이지는 않았지만 형님은 언녕 마음에 써붙이고있었다.   형님은 늘 금고문 채우듯 책장문에 자물쇠를 꽁꽁 잠그었다. 동생들인 우리도 책을 빌리려면 먼 바다로 떠나는 어부가 하늘을 살피듯 형님 낯빛을 살펴야 했다. 하지만 하늘을 살펴도 날씨를 제대로 예측할수 없는때가 많은법이다.    “그 책이 어디 들어가 꽂혔는지 모르겠다.”   “책장열쇠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어째 도서관에 가서 빌리지 못하니?”   구실은 단조로왔지만 책장안은 풍부하기만 했다. 도서관에 없는 좋은 책도 형님에게는 많았다.   형님 친구들은 형님이 세집을 열몇번이나 옮기면서 고생한 이야기를 입에 올릴 때가 있다. 재산이라곤 아글타글 모아놓은 책뿐이라 이사할때마다 비닐마대들에 책을 담아가지고 휘주근해서 거리를 일주하던 일… 책을 더러 골라서 팔아치우라고 권고하니 그게 무슨 소리냐고 펄쩍 뛰더란다. 살아가기 힘들다고 조강지처를 내쫓겠냐는듯이.    강은 원천이 있고 꽃은 수분과 자양분을 보내주는 뿌리가 있듯이 책에 대한 형님의 남다른 사랑에는 아픈 사연이 슴배여있다.    형님은 어렵게 책을 모았다. 도적놈이 얼굴 붉힐지경으로 집이 가난했기때문이다. 형님이 고중에 붙던 해의 일이 기억에 생생하다. 그해 남평중학교에서 현소재지고중에 녀학생 둘과 형님까지 셋만 붙었다. 선생이 와서 蔚진학소식을 알리자 우리집은 마치 초상이라도 난듯 했다. 뒤바라지 할 일이 너무나도 막연했던것이다. 아들이 어서 초중을 졸업해서 밭일할 일군이 한사람 불어나기를 은근히 바라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공부 잘하는 아들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결국 형님은 고중에 갔다가 몇달만에 경제휴학을 했고 한해 지나서 손아래 누이(나의 둘째누나)가 공급판매합작사에 취직해서야 누이의 도움으로 고중을 마칠수 있었다.   형님은 고중에서 기숙사생활을 할 때 책을 사기 위해서 3전씩 하는 국도 먹지 않았다. 집에서 가지고 간 고추장에 밥을 먹으면서 식비를 절약해서는 한책에 2, 3원도 넘는“세계문학선집”들을 샀다. “동키호테” “하이네시선” “쉑스피어희곡선”… “동키호테”를 읽으며 희비극이 뒤엉킨 주인공의 운명을 두고 울고 웃던 그때 책 한권을 위해 한달은 꼬장꼬장한 수수밥을 강다짐으로 삼켜야 하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도 비탄과 허구픈 웃음을 쏟아야 했다…   책이 책장안에 넘쳐났지만 형님은 전혀 성차하지 않았다. 눈에 드는 책이 있으면 값을 따지지 않고 사들였다.   한국책이 밀려들자 돈을 많이 들여서 원래의 명작들을 보기 좋은 한국판 새책으로 바꿔놓은 형님, 환난을 같이 한 조강치처를 한층 폼내주려고 멋진 시체옷으로 단장시킨것이라고나 할가? 자신은 한평생 멋부리는것과 인연이 없었지만 책들을 위해선 주머니사정따윈 전혀 헤아리지 않았다.    아빠트에 들자 형님은 객실 한켠벽을 책장으로 만들고 건축설계사가 고층빌딩을 설계하는 정성으로 알심들여 장서했다. 낡은 책과 겉보기에 못한 책들은 안쪽에, 표지가 멋스러운 책과 양장본으로 된 책들은 바깥쪽에ㅡ이렇게 두겹으로 모셨다.    한평생의 품을 들여 “완미한 책장”을 만들어놓은지 얼마 안되여 형님은 손에 책을 쥔채 병으로 쓰러졌다.    먹을것, 입을것을 아끼며 수십년을 하루와 같이 열심히 책을 모아놓은 형님, 형님에게 책은 과연 무엇이였던가?    그것은 허구한 날 갖은 세파속을 헤쳐나온 정신적 버팀목이였고 삶의 보람이였으며 인생 전부였다.    식당은 흥성하나 도서실은 썰렁한 현실이지만 소를 팔아 자식을 공부시킨다는 미덕은 이 책장안에 살아있다. 세 딸의 성장을 견실하게 이끌어준것이 유일한 가보인 책들임을 책장은 알고있다. 아버지가 책을 사가지고 집에 들어서면 독수리 병아리 채듯 낚아다가 걸탐스레 읽군 하던 딸들의 풍성한 삶을 책장은 똑똑이 보았다. 새 신문이 나지면 어서 빨리 보려는 욕심에 세 자매가 한면씩 쪼개가지고 읽던 모습, 잡지 하나를 가져다가 책심을 빼고 나누어서 서로 넘기면서 읽던 모습은 감격 그 자체였다.     아버지가 서점에 다닐때(注; 존경하는 허봉남선생님은 "허씨네 3형제 작가" 중 둘째로서 중국 조선족작가 중견소설가이다. 필자가 드문드문 화룡에서 연길로 갔다가 일 다 본후 신화서점과 고서점 및 길거리 헌책파는 가게를 찾는것이 버릇 아닌 버릇으로 굳어진지 오래된 터, 길거리 헌책파는 가게에서 종종 허봉남선생님을 만났었는데 만날적마다 이미 그의 옆구리에는 본인이 맘에 드는 헌책들로 두둑히 끼워있었었다... 서로 인사를 나는후 봉남선생님은 어디론가'선배님께서 좋아하시는 책장으로' 발길을 옮기시는 뒷모습이 지금도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데 항상 참 너무나도 거룩해보였었다... 봉남선생님의 쾌유를 빌면서 하루 빨리 길거리 헌책파는 가게가에서 만나기를...)마다 졸졸 따라다니던 셋째딸은 이미 청화대학 박사연구생을 마쳤다. 산동대학에서 교편을 잡고있는 그 애가 한문으로 책 두권을 냈고 지금 아버지를 그리는 장편수필을 쓰고있다는것을 형님이 안다면 얼마나 대견해하랴!    형님은 몇년째 병석에 누워있다. 일생동안 알심들여 모은 책들이 눈길을 끄는 정성껏 장식해놓은 책장앞에… 바퀴 달린 작은 침대에 말없이 누워있는 형님의 얼굴에서는 좋은 책을 얻었을때의 기뻐하던 표정도 누가 책을 다쳤나 책장을 살피던 때의 걱정어린 표정도 찾아볼수 없다.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오늘도 형님은 리기영과 함께 “고향”을 둘러보며 조선문학을 담론하고있을것이라고. 래일은 그리고리와 어깨 나란히 말 타고 돈강가를 거닐것이며 그 다음날엔 사형장에서 자기를 향해 총을 쏘는 병사들을 지휘하는 등에의 장렬한 최후를 지켜보면서 비장한 눈물을 훔칠것이라고.   책과의 끈끈한 정으로 수십년을 이어온 형님, 언제나 혼신을 바쳐 사랑할수 있는 책이 있어 고생속에서도 행복했다면 오늘은 사랑하는 책이 병상을 지켜주어 빈방에 홀로 누워있어도 외롭지 않을것이다. 2010.12. ======================== //////////////////////////////// ========================   수필 둘째형님의 책장 허두남   “야, 딸은 가져가도 되지만 책은 안된다!” ㅡ사위가 책을 빌리러 갔을때 둘째형님이 한 말이다. 그렇다고 나의 형님을 몰인정한 랭혈인간이라고 보지 말라! 딸 셋밖에 없는 “가라지농사군”이지만 자식들을 금쪽같이 여기는 정 많은 아버지이다. 어머니보다 아버지를 더 따르는 조카들이 줄줄이 그 증인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에게 비긴것은 책을 더없이 사랑한다는 뜻이다.  “남의 책을 빌리는자는 머저리이다. 남에게 책을 빌려주는 자도 머저리이다. 남의 책을 빌려갔다가 돌려주는 자는 더욱 머저리이다.” ㅡ이것은 어느 작가가 책장앞에 써붙인 글이란다. 한쪽 벽을 다 차지한 책장, 세계명작들이 어깨를 비비며 차렷자세로 서있는 책장을 흐믓하게 올려다보면서 이 말을 외우던 형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참 교묘한 말이다. 세마디밖에 안되는 말에 책을 빌려주지 않는 정당성을 빈틈없이 박아넣은것이다. 더구나 세번째마디는 그 말밖에 진의가 있다.  “나는 책을 빌려갔다가 돌려온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는것이다. 주인이 철같은 리론으로 방어선을 쳐놓고 앉아있는데야 누가 감히 부끄러운 손을 내밀수 있겠는가?   책장앞에 그 글귀를 써붙이지는 않았지만 형님은 언녕 마음에 써붙이고있었다. 형님은 늘 금고문 채우듯 책장문에 자물쇠를 꽁꽁 잠그었다. 동생들인 우리도 책을 빌리려면 먼 바다로 떠나는 어부가 하늘을 살피듯 형님 낯빛을 살펴야 했다. 하지만 하늘을 살펴도 날씨를 제대로 예측할수 없는때가 많은법이다. “그 책이 어디 들어가 꽂혔는지 모르겠다.” “책장열쇠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어째 도서관에 가서 빌리지 못하니?” 구실은 단조로왔지만 책장안은 풍부하기만 했다. 도서관에 없는 좋은 책도 형님에게는 많았다. 나는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다. 이전에 형님의 책을 몇번이나 잃어버렸으니깐. 형님은 소책자 여러권을 함께 묶기 좋아했는데 한번은 소설책 다섯책을 묶은걸 잃어린적도 있다. 책을 함부로 못 다치게 하는 형님이였지만 내 안해에게만은 례외였다. 결혼후 안해가 첫인사차로 형님집에 가자 가문에 첫 대학생식구가 생겼다고 특혜를 베푼것인지 책을 마음대로 골라보라고 책장열쇠를 내주었다. 난생 본적 없던 풍경에  식구들은 서로 희한해하는 눈길을 주고받았다. 그 뒤에도 그 사람이 책을 보자고 하면 언제나 푸른등이였다. 책이 책장안에 넘쳐났지만 형님은 전혀 성차하지 않았다. 눈에 드는 책이 있으면 값을 따지지 않고 사들였다. 형수님이 책방을 하다가 책 2만원어치를 도난당한 일이 있다. 산눈 빼먹을 도적놈이 밤에 자물쇠를 마스고 책방안에 있는 좋은 책들을 몽땅 실어간것이다.  그 일이 있 은지 1년도 더 지난뒤였다. 형님은 룡정으로 갔다가 책방이 눈에 띄자 어떤 책들이 있을가 궁금하여 문을 떼고 들어섰다. 책방안을 둘러보니 진렬되여있는 책들이 어쩐지 눈익어보였다. 책을 몇개 뽑아서 훑어보던 형님은 하마터면 놀란 소리를 지를번했다. 책우모서리마다에서 “명월서점”이란 도장자리가 “나 여기 있어요!” 하는듯 또릿또릿한 눈으로 쳐다보고있었다. 그랬다. 그 책방의 책들은 몽땅 형수님의 책방 “명월서점”에서 도적맞힌 책들이였다… 그렇게 잃어버렸던 책을 다 찾았다. 책방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는 집착스런 책사랑이 종적을 감췄던 책까지 도로 돌아오게 한것이다. 형님 친구들은 형님이 세집을 열몇번이나 옮기면서 고생한 이야기를 입에 올릴 때가 있다. 재산이라곤 아글타글 모아놓은 책뿐이라 이사할때마다 비닐마대들에 책을 담아가지고 휘주근해서 거리를 일주하던 일… 책을 더러 골라서 팔아치우라고 권고하니 그게 무슨 소리냐고 펄쩍 뛰더란다. 살아가기 힘들다고 조강지처를 내쫓겠냐는듯이.  한국책이 밀려들자 돈을 많이 들여서 원래의 명작들을 보기 좋은 한국판 새책으로 바꿔놓은 형님, 환난을 같이 한 조강치처를 한층 품 내주려고 멋진 시체옷으로 단장시킨것이라고나 할가? 자신은 한평생 멋부리는것과 인연이 없었지만 책들을 위해선 주머니 사정따윈 전혀 헤아리지 않았다.  아빠트에 들자 형님은 객실 한켠벽을 책장으로 만들고 건축설계사가 고층빌딩을 설계하는 정성으로 알심들여 장서했다. 낡은 책과 겉보기에 못한 책들은 안쪽에, 표지가 멋스러운 책과 양장본으로 된 책들은 바깥쪽에ㅡ이렇게 두겹으로 모셨다.  강은 원천이 있고 꽃은 수분과 자양분을 보내주는 뿌리가 있듯이 책에 대한 형님의 남다른 사랑에는 아픈 사연이 슴배여있다.  형님은 어릴적에 누구보다도 어렵게 책을 모았다. 도적놈이 얼굴 붉힐지경으로 집이 가난했기때문이다. 형님이 고중에 붙던 해의 일이 기억에 생생하다. 그해 남평중학교에서 현소재지고중에 녀학생 둘과 형님까지 셋만 붙었다. 선생이 와서 입학소식을 알리자 우리집은 마치 초상이라도 난듯 했다. 뒤바라지 할 일이 너무나도 막연했던것이다. 아들이 어서 초중을 졸업해서 밭일할 일군이 한사람 불어나기를 은근히 바라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공부 잘하는 아들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결국 형님은 고중에 갔다가 몇달만에 경제휴학을 했고 한해 지나서 손아래 누이(나의 둘째누나)가 공급판매합작사에 취직해서야 누이의 도움으로 고중을 마칠수 있었다. 형님은 고중에서 기숙사생활을 할 때 책을 사기 위해서 3전씩 하는 국도 먹지 않았다. 집에서 가지고 간 고추장에 밥을 먹으면서 식비를 절약해서는 한책에 2, 3원씩 하는“세계문학선집”들을 샀다. “동키호테” “하이네시선” “쉑스피어희곡선”… “동키호테”를 읽으며 희비극이 뒤엉킨 주인공의 운명을 두고 울고 웃던 그때 책 한권을 위해 한달은 꼬장꼬장한 수수밥을 강다짐으로 삼켜야 하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도 비탄과 허구픈 웃음을 쏟아야 했다… 한평생의 품을 들여 “완미한 책장”을 만들어놓은지 얼마 안되여 형님은 손에 책을 쥔채 병으로 쓰러졌다.  먹을것, 입을것을 아끼며 수십년을 하루와 같이 열심히 책을 모아놓은 형님, 형님에게 책은 과연 무엇이였던가?                  그것은 허구한 날 갖은 세파속을 헤쳐나온 정신적 버팀목이였고 삶의 보람이였으며 인생 전부였다.  식당은 흥성하나 도서실은 한산한 현실이지만 소를 팔아 자식을 공부시킨다는 미덕은 이 책장안에 살아있다. 세 딸의 성장을 견실하게 이끌어준것이 유일한 가보인 책들임을 책장은 알고있다. 아버지가 책을 사가지고 집에 들어서면 독수리 병아리 채듯 낚아다가 걸탐스레 읽군 하던 딸들의 풍성한 삶을 책장은 똑똑이 보았다. 새 신문이 나지면 어서 빨리 보려는 욕심에 세 자매가 한면씩 쪼개가지고 읽던 모습, 잡지 하나를 가져다가 책심을 빼고 나누어서 서로 넘기면서 읽던 모습은 감격 그 자체였다.   아버지가 서점에 다닐때마다 졸졸 따라다니던 셋째딸은 이미 청화대학 박사연구생을 마쳤다. 산동대학에서 교편을 잡고있는 그 애가 한문으로 책 두권을 냈고 지금 아버지를 그리는 장편수필을 쓰고있다는것을 형님이 안다면 얼마나 대견해하랴!  형님은 몇년째 병석에 누워있다. 일생동안 알심들여 모은 책들이 눈길을 끄는 정성껏 장식해놓은 책장앞에… 바퀴 달린 작은 침대에 말없이 누워있는 형님의 얼굴에서는 좋은 책을 얻었을때의 기뻐하던 표정도 누가 책을 다쳤나 책장을 살피던 때의 근심어린 표정도 찾아볼수 없다.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오늘도 형님은 리기영과 함께 “고향”을 둘러보며 조선문학을 담론하고있을것이라고. 래일은 그리고리와 어깨 나란히 말 타고 돈강가를 거닐것이며 그 다음날엔 사형장에서 자기를 향해 총을 쏘는 병사들을 지휘하는 등에의 장렬한 최후를 지켜보면서 비장한 눈물을 훔칠것이라고. 책과의 끈끈한 정으로 수십년을 이어온 형님, 언제나 혼신을 바쳐 사랑할수 있는 책이 있어 고생속에서도 행복했다면 오늘은 사랑하는 책이 병상을 지켜주어 빈방에 홀로 누워있어도 외롭지 않을것이다.                                                                                                 2010.12.  
278    시는 꽃씨와 불씨와 꿈을 지닌 여백(餘白)의 미학이다... 댓글:  조회:2564  추천:0  2017-02-23
                  중국 연변 사진작가 리윤선은 “우수한 사진 한장속에는 장편소설이 들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늘 말한다...    *시(詩)는 꽃씨와 불씨와 꿈을 지닌 여백(餘白)의 미학(美學)이다  시는 작지만 깨닫고 나면 커지고 미약하지만 터득하고 나면 강해지는 것이다. 이것이 시의 특수성이기에 그 원리는 꽃씨에도 적용되고 불씨에도 적용되고 꿈에도 해당된다. 그러나 시는 별스럽게 작다. 사람으로 말하면 그저 꿈만 지닌 어린이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서사과정을 감출 수밖에 없는 것이고 행간에 의미를 숨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자연히 행간과 끝 구절 다음에는 뒷맛이 길게 이어질 수밖에 없다. 분명 시는 긴 감동의 여운을 주는 여백의 미학이다.  시의 본질은 정서(情緖)와 사상(思想)의 결합이다. 이때 정서와 사상은 교직된 직물처럼 서로 녹아 있어야 한다.  사상은 지각(知覺) 지식(知識) 신념(信念) 의견(意見)의 종합물이고 정서는 감화적 요소로서 유기체의 전신적 감각이다. 그러나 시의 효용은 궁극적으로 감동과 쾌락에 있기 때문에 사상이 정서를 앞설 수는 없다.  그런데 문제는 시의 정서가 한없이 약하다는 점이다.  어떤 형태의 정서라 할지라도 시라는 근원적 모체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 전무하리 만큼 미미한 태생적 한계를 넘어서고자 반응 할 수 없다는 점이다.  기쁨, 두려움, 슬픔, 근심, 노여움 등을 유발하는 매체는 시각과 청각이 주를 이룬다. 이때 시각의 예술이 미술이고 청각의 예술이 음악이다. 연극과 영화는 시청각을 다 합친 것이다.  미술은 원초적 반응을 유발시키고 음악은 몸을 흔들어 춤을 추게 한다. 연극과 영화는 사람을 흥분시키고 눈물을 흘리게 한다. 그러나 시는 사람을 흥분시키지도 눈물을 흘리게 하지도 못한다. 시는 율동을 하게 할 신명의 청각적 요소도 없고 미추를 구별케 할 시각적 요소도 없다.  이처럼 시는 다른 장르의 예술에 비하면 초라하다 할 만큼 내 세울 것이 없다. 동물로 말하면 날카로운 이빨도, 추위를 견딜 수 있는 털도, 빨리 달리 수 있는 다리도 없는 하등동물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그 하등동물이 인간인 것처럼 미미한 정서를 수반하는 시 또한 굴절의 예각 같은 지각의 촉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차원적인 시청각과는 다른 영역을 점유하고 있는 것이다.  환언하건데 시는 사물의 순간적 파악을 속성으로 하는 상상력의 산물이기에 작고 가볍다. 그래서 누구든지 쉽게 암기할 수 있다. 일단 시를 외워 몸의 살붙이가 되도록 만들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수없이 반복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경험이나 비전이 집중되는 결정의 순간들 속에 존재하는 시의 특성상 인간을 취하게 하고 인간을 변모하게 하는데 있어 더 이상 좋은 처방이 아닐 수 없다. 그러고 보면 시는 예술 중에서도 명약임이 분명하다  시는 바로 이런 강점을 지닌 탁월한 정서를 지닌 문학인 것이다. 강한 충격 한 방으로 인생을 전환시키는 음악과 미술, 연극과 영화도 상당히 효과 있는 장르이긴 하지만 가랑비에 속옷 젖듯이 아무리 거대한 철옹성 같은 인간이라 할지라도 시를 외워 암송하기만 하면 그 시의 정서는 마음속을 파고 들어가 드디어 한 인간을 참 사람으로 바뀌어 놀 것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시는 참으로 작지만 매력적인 장르임이 분명한 것이다.  전쟁이 한참 치열하던 어는 날,  석양 녘 적탄의 총을 맞은 국군 병사 하나가 피가 흐르는 다리를 끌며 민가에 찾아든다.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생사기로에 처해 있는 위급한 상황이다. 의식은 점점 희미해져 간다. ‘이러다간 죽고 말겠구나’ 절망이 엄습할 때 주인집 딸로 여겨지는 젊은 여자가 툇간 옆 은폐된 지하곳간으로 병사를 숨겨준다.  병사는 그만 안도감과 함께 의식을 잃는다.  한참 뒤 의식을 차린 병사는 아름다운 처자를 바라보며 고마움의 표시로 씩 웃음을 짓는다. 고맙다는 말은 목 속에 잠겨 혀 밑에 숨고 만다. 젊은 처자는 전쟁의 비극 속에 희생되고 있는 꽃다운 젊은이의 부상이 안쓰러워 울먹 울먹거린다. 젊은이도 눈물이 맺힌다.  “걸을 수 있을는지 모르겠네요?”  “- - - - -- - -”  “저어 - - - - - ”  “저도 최대한 지혈을 하고 치료를 했습니다만 특별히 준비된 약이 없어 죄송하군요”  젊은 처자는 모든 것이 자신의 죄인 듯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그런 뜻이 아니고- - - - - ”  “ - - - - - - - ”  병사는 젊은 처자의 방울진 눈동자를 보고 가슴이 뭉클해진다. 잠시 두려움이 없어진다  부상당한 군인병사와 산골 젊은 처자와의 만남, 그것도 전쟁터에서 피아간의 교전 중에 일어난 불행이 주선한 가교, 별난 조우, 숨막히는 치료, 공포와 두려움의 시간, 목숨을 건지게 해달라는 간절한 기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막연한 궁금증, 절박한 상황의 눈빛과 눈빛, 그리고 짧은 대화, 바로 여기에 슬픔과 연민의 정이 교차하면서 희망이라는 거대한 생의 좌표가 떠오르는 것이다.  이것이 한편의 시이며 아름다운 정서의 채색인 것이다. 생각해 보라. 이 상황에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어 보겠다고 꾸역꾸역 자꾸 말을 건넨다면 이것이 어찌 전쟁터의 긴박한 상황의 분위기라 할 수 있으며 처음 만난 남녀의 떨림과 애처로움이 섞인 모습이라 하겠는가. 무언의 눈빛에 담겨진 수줍은 슬픔, 이미 서로의 마음이 다 드러나 있는 것이다.  시는 이처럼 많은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 여인의 작은 손길의 정서, 순박한 정서, 애절한 정서, 말을 다 삼켜버린 아픔의 정서- - - 그런 다음 처자의 가슴에 짙게 배어있는 고혹적인 정서, 그리고 한 움큼의 피와 출렁이는 긴 머리, 숨죽인 산 그림자, 이 모든 것을 보고도 못 본 척하는 자연, 그 침묵의 여백  우리는 이들의 다음 대화를 더 들을 필요가 없다.  그 뒤의 상황을 작가가 책임을 지면 소설이 되고 눈에 보이게 만들면 연극이나 영화가 되는 것이다  시는 짧은 대화로 형식적 소임을 다한 것이다. 비록 주인공이 치료 불능으로 살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고 살아난다 해도 불구자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독자는 비극적 결말보다 행복한 결말을 상상하며 유추할 것이다. 그 유추가 여백이다  시는 꽃씨이기 때문에 착지하기만 하면 꽃을 피울 것이고  시는 불씨이기 때문에 눈빛과 만나기만 하면 생의 불을 지필 것이다  시는 꿈이기 때문에 한 발자국 내딛기만 하면 현실로 나타날 것이다.  이렇게 상상의 날개 속에서 형용키 어려운 감격을 느낀다면---  생각만 해도 시의 여백은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이다.  시란 참으로 위대하다. 그 작은 것이  시(詩)는 꽃씨와 불씨와 꿈을 지닌 여백(餘白)의 미학(美學)이다.  =====================================================       풋사과 ―고영민(1968∼ ) 사과가 덜 익었다 덜 익은 것들은 웃음이 많다 얘들아, 너희들은 커서 잘 익고 듬직한 사과가 되렴 풋! 선생님이 말할 땐 웃지 말아요 풋! 누구니?     풋! 자꾸 웃음이 나오는 걸 어떡해요     ‘풋내’는 ‘풋나물이나 푸성귀 등에서 나는 (싱그러운) 냄새’라는 뜻인데 ‘미숙하고 유치한 느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덜 익은 것, 미숙한 것’이란 뜻을 가진 접두사 ‘풋’은 ‘푸르고 싱싱하다’라는 뜻의 형용사 ‘풋풋하다’에서 파생됐을 것이다. 풋감, 풋고추, 풋내기, 풋바심, 풋솜씨, 풋술, 풋잠, 풋사랑! 한입 베어 물면 잇새에 상큼하게 배어드는 풋사과 맛이 나는, 떫은 듯 새콤달콤한 ‘풋’ 단어들이여!      사과는 좀 덜 익어도 날것으로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과일이다. 그 풋풋한 맛을 잘 익은 사과맛보다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맏물 사과에 앞서 당당히 시장에 나온다. 빨강, 노랑, 보랏빛 과일들 속에서 파릇한 풋사과는 무르익은 여인들 속의 소녀 같으리. 풋사과를 보면 ‘풋사과’라고 읊조리고 싶어진다. 윗입술과 아랫입술이 살짝 벌어지면서 마음을 싱그럽게 간질이며 나오는 소리, ‘풋’. 시도 때도 없이 참지 못하고 터뜨리는 소녀들의 웃음이란다.  ‘얘들아, 너희들은 커서 잘 익고/듬직한 사과가 되렴’, 선생님 말씀에 소녀들이 ‘풋!’ 웃는다. 우스운 건 우스워서 웃기고 진지하면 진지해서 웃긴다. ‘선생님이 말할 땐 웃지 말아요’, 그 말에 소녀들은 또 ‘풋!’ 웃는다. ‘누구니?’, 언짢아진 선생님은 화난 눈으로 둘러봤을 테다. 소녀들도 웃음을 쥐락펴락하는 게 권력이라는 것, 웃을 자리 안 웃을 자리 가려야 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선생님의 권위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도무지 감정 조절이 안 되는 것이다. ‘풋!/자꾸 웃음이 나오는 걸/어떡해요’, 좋은 나이일세. 나이 들수록 웃을 일이 적어진다. 웃음이 웃음을 불러 배를 쥐고 숨이 넘어갈 정도로 웃어본 게 언제 적인지 모르겠다.  
277    "하이쿠시"는 불교, 도교, 유교의 종합체이다... 댓글:  조회:2937  추천:1  2017-02-22
프란시스코 에르난데스의 시에 나타난 하이쿠적 요소 윤 영 순 1. 들어가는 말 하이쿠는 원래 일본에서 생겨난 시 장르지만 이제는 세계인의 관심을 끄는 장르가 되어 미국의 중?고등학교 학생들까지 하이쿠 수업을 듣고 직접 지을 정도로 보편화되었다. 오히려 일본의 이웃인 우리나라보다 서양에 더 알려진 느낌이 든다. 그것은 일본의 식민통치 이후 극도로 고조된 반일감정과 수 십 년 동안 국가 차원으로 이루어진 한?일 간의 문화 장벽 유지로 인해 우리가 하이쿠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문화적 사대주의나 국수주의 모두 경계해야 할 사고다. 이 글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나마 혹시 우리의 편견으로 인해 놓치고 있을 지도 모를 하이쿠의 미학적 요소를 한 멕시코 시인의 작품을 통하여 접근해 보고자 한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에는 하이쿠에 대한 소개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단계에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우선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 형식인 하이쿠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자. 2. 하이쿠의 성립과 동양사상 일본에는 원래 전통적 시 형식으로 ‘와카’(또는 단카)라는 것이 있었는데, 5/7/5/7/7 의 5행으로 되어있는 짧은 형태였다. 와카는 자연의 섬세함이나 세속적 감정을 노래하는 상류층의 문학이었다. 와카는 한 사람이 5행을 전부 읊기도 하지만, 한 사람이 앞 3행(5/7/5)을 읊고 나면 다른 사람(청자)이 뒤 2행(7/7)으로 화답하는 형식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후자의 방식에서 앞 부분 5/7/5의 3행만 독립해 나온 것이 하이쿠가 된 것이다. 따라서 하이쿠는 와까의 뒤 2행을 말하지 않고 침묵함으로써 언젠가 누군가의 화답을 기다리는 시 형태인 것이다. 그렇다고 하이쿠가 불완전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이쿠의 침묵은 ‘의도적 미완성’인 것이다.  하이쿠는 어떤 주장이나 설명, 결론 따위는 뒤의 두 행에 맡겨버린다. 다음 말을 붙이는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 하이쿠는 암시성을 띠게 되고 청자나 독자는 자유를 누리면서 하이쿠의 완성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하이쿠라는 시 장르는 열려있는 것이다. 3행의 시에다 자세한 설명을 하기는 원래부터 부적절하다. 어쨌든 하이쿠는 짧은 형식으로 인해 독자는 동양화의 여백과도 같은 하이쿠의 침묵을 상상속에서 채워야하는 운명을 갖게 된다. R. H. 블리스(R. H. Blyth)는 하이쿠의 탄생에 영향을 미친 복잡한 문화관계를 도표로 단순화시켜서 우리에게 제시하면서 하이쿠는 인도의 불교와 중국의 도교, 유교, 한시가 일본의 토속 신앙과 어우러져 빚어진 결과물로 설명하고 있다.  대승불교는 본 고장 인도보다 오히려 중국에서 꽃을 피웠다. 그것은 중국의 노장사상이 인간정신의 완전한 해방 또는 해탈을 추구하는 불교와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기 때문이다. 나와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에 대한 추구도 대승불교의 우주적 관점과 일치한다. 이 두 사상은 중국에서 선불교라고 하는 합작품을 탄생시켰다. 한편 유교는 극동인들의 생활 전반에 걸쳐 스며들어 있기 때문에 하이쿠에서 정확하게 이것이 유교의 영향이라고 지적하기는 힘들다. 예를 들어 자연에 대한 긍정, 일상적 삶에 대한 예찬, 검소한 생활 등은 유교적 요소이기도 하면서 딱히 그 영향이라고만 보기는 어려운 문제다. 하이쿠에서 자연을 찬미하는 경향이 보이는데 신도에서도 산과 수목에게 신성을 부여하는 애니미즘이 아주 중요한 특징을 이룬다. 그리고 한자와 함께 일본에 소개된 한시는 그 형식 뿐만 아니라 내용도 변화를 겪게 된다. 일반적으로 한시가 개인의 삶을 역사나 우주적 테마와 연결시키는 거시적 관점을 보이는 경우가 많은 반면에 일본시는 개인의 일상적 삶이나 자연의 일부를 묘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처럼 보인다’라고 말하는 이유는 단순히 작은 사물이나 사건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작은 대상을 통해 커다란 세계에 도달하려는 미니멀리즘 성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이 작은 축소물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의 정원이나 분재, 꽃꽂이 등은 제한된 작은 공간에서 자연과 그것을 조화롭게 하는 음양의 원리를 재현하고자 하는 의도가 나타난다.  축소된 자연과 대자연의 일치에 대한 사고는 하이쿠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다. 하이쿠를 짓는 ‘하이진’은 풀 한 포기, 나뭇잎 한 장, 나비 한 마리에서도 온 우주를 발견한다. 대승불교의 제일 중요한 경전 중의 하나인 화엄경은 바로 ‘하나가 전체’라는 사고를 보여준다. 이 경전은 우주만물의 동등한 자격과 아울러 모든 것이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이러한 대승불교의 교리가 나중에 선불교로 발전하게 된다. 선불교에서는 하나의 개체를 이루는 원리에서 다양한 사물이 나오고 다양한 사물들은 다시 하나의 사물을 이루는 원리 속에서 합쳐지기 때문에 삼라만상은 연결되어 있으며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은 바로 이것을 의미한다. 하나의 그물코에 달린 진주가 자신을 포함한 그물 전체를 비추고 있다는 제석천도 이러한 불교의 우주관을 상징한다. 게다가 업에 따른 윤회의 사고는 가이아의 유기체적인 우주를 뛰어넘어 시간까지도 끌어안는다. 그러나 이러한 화엄의 가르침은 절대적 경지에 이르게 되면 전혀 다른 차원으로 접어들게 된다. 스즈키(Daisettz T. Suzuki)는 이 상태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여여함은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존재하면서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하나인 것도 아니며 여럿인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하나이면서 동시에 여럿인 것도 아니다 … 이 상태는 인간의 사고가 개념화할 수 있는 것을 넘어선다. 그래서 그것을 일컬을 가장 적절한 말은 여여함일 것이다. 특히 선불교에서 이 깨달음의 순간을 오(悟, 사토리)라고 하는데 이것은 인도전통 불교의 기본 이론과는 일치하지 않는 개념이다. 옥타비오 파스는 바쇼의 하이쿠를 번역한 『오쿠의 오솔길』의 서문에서 이러한 선불교의 입장에 동의하면서 하이쿠가 우리에게 깨달음으로 가는 문을 열어주고 있다고 말한다. 선은 기존의 불교 형식이나 경전 뿐만 아니라 석가와 수많은 대가들의 가르침조차도 불필요한 것이라고 한다. 모든 인간은 바로 지금 사토리의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 선은 단박의 깨침, 즉 돈오를 설파한다. 해탈은 이 세상을 벗어난 곳이나 죽음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순간이 모든 순간이며 우주 전체가 무너져 내리는 현현의 순간,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 이 순간은 시간을 부정하고 우리를 진실과 대면하게 하며 마침내는 우리의 가면을 걷고 발가벗긴다. 3. 멕시코의 하이쿠 수용  스페인어권 문학에 본격적으로 오리엔탈리즘이 등장한 것은 19세기 말 전기 모데르니스모 시기다. 데카당스와 상징주의 작가들이 동양철학의 가르침에 관심을 가졌듯이 중남미 모데르니스타들도 이국적 정취를 자아내기 위해서 동양적 대상물이나 테마를 채택했다. 그들은 불교와 노자, 선, 신지학에 빠져들었다. 이러한 것들이 그들에게 실재에 다가가고 개인적 경험을 표현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공해 주었으며, 이러한 형이상학적 주제는 당 시대의 예술적 이상에 빛을 던져줄 수 있는 아주 암시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들은 극도의 암시성을 띤 하나의 문구를 통하여 일상적 경험 저 너머의 현실을 자신의 시 속으로 불러오고 싶어 했고 독자를 그 세계로 데려가고 싶어 했다. 게다가 시에서 그 현실의 본질을 찾는다고 말한다. 일부 시인, 특히 아마도 네르보(Amado Nervo), 엔리케 곤살레스 마르티네스(Enrique González Martínez)를 비롯한 몇몇은 “사물의 영혼”이 시의 테마가 되기에 이르기도 하였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들어온 일본의 하이쿠는 동양미학의 정수로 여겨졌다. 멕시코에 하이쿠가 소개된 것은 20세기 초 에프렌 레보예도(Efrén Rebolledo)와 호세 후안 타블라다(Jos? Juan Tablada)에 의해서다. 파스는 「하이쿠 전통」이라는 글에서 이 두 시인을 비교하면서 레보예도보다 타블라다가 더 멕시코의 하이쿠에 영향을 주고 있음을 시사한다.  레보예도가 타블라다에 비해 일본을 더 잘 알고 있기는 했지만 그의 시는 모데르니스모적 수사학에 머무르는 수준이었다. 그가 일본문화를 바라볼 때는 세기 말 프랑스 시인들처럼 언제나 정형화된 이미지로서 바라보았다. 다시 말하면, 그에게 있어 일본은 라틴아메리카인의 눈에 비친 일본이 아니라 프랑스 파리인들의 이국취향적 시각 속의 일본이었다. 타블라다도 처음 시작은 레보예도와 다를 바 없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일본시에서 언어사용의 절제, 유머, 회화체, 정확하고 기발한 이미지 취향 등 몇몇 요소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한 요소들은 타블라다에게 모데르니스모를 벗어나 새로운 표현방식을 모색하게 하였다. 존 페이지(John Page)의 연구에 따르면, 타블라다가 하이쿠에 대한 자극을 처음 받은 것은 일본인들에게서가 아니라 프랑스인들로부터라고 한다. 시작은 그랬지만 1900년에 『레비스타 모데르나 Revista Moderna』라고 하는 잡지의 특파원 자격으로 1년 가량 일본에 거주하기도 하면서 지속적으로 하이쿠에 관심을 가져오다가 1919년에 『어느 하루… Un d?a…』라는 제목의 하이쿠 시집을 출간했고 이어서 3년 뒤에는 『꽃병 Un Jarro de flores』 이라는 하이쿠 시집을 하나 더 내기에 이른다. 그러나 타블라다는 선구자로서의 역할에 만족해야 했다. 그의 하이쿠는 모방의 차원에서 그리 멀리 벗어나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지의 비약 같은 하이쿠의 전통적 수사법이나 일본 하이쿠에 자주 등장하는 동물, 곤충, 풍경 같은 동양적 자연물을 그대로 흉내 내어서 사용했다. 파스의 하이쿠는 타블라다보다 더 원형에 가깝다. 파스는 선불교적 내용에까지 관심을 기울였고 이미 이국취향에서 벗어나 하이쿠를 깊이 있게 이해한 시인이기 때문이다. 카를로스 페이세르(Carlos Pellicer), 하비에르 비야우루티아(Xavier Villaurrutia), 호세 고로스티사(José Gorostiza) 등의 시인들도 타블라다를 신봉하여 하이쿠에 관심을 가졌지만 파스만큼 하이쿠를 자기 것으로 만들지는 못했다. 파스 이후에도 하이쿠를 연상시키는 단시를 조금이라도 실험해 보지 않은 시인이 없을 정도로 하이쿠는 늘 멕시코 시인들의 관심을 끌어온 시 장르다. 그렇지만 두드러진 대가가 없는 상황에서 그들을 모두 정리해서 열거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현재 멕시코를 대표하는 현역 시인 중에서 하이쿠적 요소가 확연히 드러나는 단시를 많이 쓴 한 시인의 경우를 예로 들어 좀 더 집중적으로 조명해 보고자 한다.  4. 프란시스코 에르난데스와 하이쿠적 요소  4.1. 자연물의 수용 그러면 여기서 현재 멕시코를 대표하는 시인 중 한 명으로 시작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프란시스코 에르난데스(Francisco Hernández)의 시 중에서 비교적 짧고 기법이나 이미지 면에서 하이쿠와 가까운 시들을 대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마른 소나무 푸른 숲 속에 마른 소나무 한 그루, ... 불꽃.  은빛 물고기  물고기들 반짝이며   삐루나무에서 헤엄치는  달 밤. 위의 두 시는 하이쿠와는 달리 제목이 붙어 있기는 하지만 4/7/4, 5/7/5의 음수율을 띠고 있어서 하이쿠의 길이에 아주 가깝다. 「마른 소나무」는 모든 초목이 녹색으로 물들어 있는 계절(여름이나 봄)에 마른 소나무 하나가 돌출되어 있는 풍경을 포착하여 세 줄에 옮겨놓은 것이다. 그냥 자연의 한 장면을 옮겨놓았을 뿐 아무 설명이 더 붙어있지 않다. 이 때문에 독자는 참여의 가능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모든 식물이 푸르러야 하는 것이 당연한 신록의 계절에 유독 한 그루의 소나무만이 죽었거나 말라가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녹색과 붉은 색의 강한 대조를 느낄 수 있다. 녹색이 생명의 색깔이라면, 붉은 색은 죽음의 색깔이거나 생명을 태우고 있는 색깔이다. 그것은 바로 삶과 죽음의 대조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조를 넘어 다른 녹색의 소나무들도 결국은 마른 소나무와 같은 운명을 갖고 죽어 가야함을 암시한다. 이러한 대조는 하이쿠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주제 중의 하나다.  「은빛 물고기」는 밤에 달빛이 나뭇잎에 비칠 때의 반짝임을 묘사한 시다. 일반적인 하이쿠는 첫 행에 시간에 해당하는 이미지가 놓이고 다음엔 사물이나 자연에 대한 묘사 그리고 마지막엔 기레지라고 하여 비약적 이미지를 보여주는 부분이 놓인다. 에르난데스의 앞 두 시는 언어구조상 순서는 다르더라도 이 세 가지 요소를 모두 만족시킨다. 먼저 시간을 살펴보면, 앞 시는 녹색의 계절인 여름임을 알 수 있고 뒤 것은 하늘에 달이 떠 있는 밤임을 알 수 있다. “cuando la luna” (‘달 떠 있을 때’ 라고 번역할 수 있음)는 ‘접속사 + 주어’로 불완전하게 끝을 맺고는 있지만 나머지 술어는 필요가 없는 문장이다. 여기서 시인의 과감한 생략을 엿 볼 수 있다. 그리고 두 번째 요소인 사물은 각각 소나무와 삐루나무다. 세 번째는 “llamarada”(불꽃)라는 표현과 “peces de plata nadan”(은빛 물고기들 헤엄치는)이라는 표현이다.  위의 세 가지가 하이쿠 시작의 구조상의 요건이라면, 내용상으로는 시간?장소?사물의 3요소가 있다. 이어령은 『하이쿠 문학의 연구』에서 이 3요소를 언급하면서 특히 이때의 시간은 ‘지금’을 나타내고 장소는 ‘여기’를 나타낸다고 하였다. 지금과 여기의 공간에 사물이 놓여있는 것이다. 따라서 하이쿠는 순간적 자연의 모습을 잘라내어 옮겨놓은 하나의 풍경화다. 그러나 이 풍경화에는 사진처럼 모든 사물을 담고 있지 않다. 불과 몇 개의 사물만 그려져 있다. 다음의 에르난데스의 시도 이러한 하이쿠의 그림에 어울리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새도 없는데 새도 없는데  나무가 혼자 노래 부른다. 이 시는 하나의 시간에 하나의 장소 하나의 사물로 이루어진 동양화를 그리고 있다. 에르난데스의 시에서 특별히 시간을 말하고 있는 단어는 없지만, “No hay un p?jaro”(새도 없는데) 라는 구절은 이 시의 시간이 우리에게 계절 중에는 겨울, 하루 중에는 오후 늦은 시간이나 밤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이러한 삼일치를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장소가 여럿 등장하는 하이쿠도 있고 시간이나 장소가 나타나 있지 않은 것도 있다. 사물만을 강조할 때는 장소 뿐만 아니라 시간까지도 없애고 사물을 클로즈업할 수도 있다. 다만 하나의 시간과 하나의 장소에 하나의 사물을 배치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여길 뿐이다.  이번에는 동양시의 중요한 테마 중의 하나인 정중동의 이미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아래의 시에서 “SOL DE INVIERNO”는 추위로 얼어붙은 고요함을 의미한다.  해 뜬 겨울날 해 뜬 겨울날 안개에 흔들리는 목화송이 아무도 없는 추운 겨울 들판에서 추수되지 않은 하얀 목화송이가 울린다, 그것도 거의 무에 가까운 안개에 의해서. 여기서 목화송이가 ‘울린다’라고 표현한 것은 원 시에 ‘목화송이’ 대신 “목화 종”(campana de algodón)이라고 되어있기 때문이다. 안개가 목화송이를 어루만져서 흔들리는 움직임은 너무나 미세하고 연약한 것이다. 따라서 한 겨울의 고요를 깨기보다는 오히려 그 고요함을 강조하는 역설적 이미지를 주고 있다. 우리는 에르난데스의 이 시에서 기존의 하이쿠를 능가하는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꽃과 종의 교묘한 결합이다. 목화송이는 정확히 말하자면 목화의 열매에 붙은 부드러운 섬유지만 그것이 주는 이미지는 화석화된 꽃이라 할 수 있다. 꽃과 종은 하이쿠에서 시인들이 자주 애용하는 소재들이다. 꽃은 삶의 기쁨이며 또한 사라져가는 슬픔이기도 하다. 특히 지는 꽃은 삶과 죽음, 기쁨과 슬픔이 서로 뒤얽힌 모순을 자아낸다. 종소리도 마찬가지다. 소리란 생명의 세계에 속해 있다. 정적, 즉 소리가 없는 것은 죽음의 세계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소리는 모든 꽃과 마찬가지로 사라져버린다. 에르난데스는 이러한 꽃과 종에 대한 이미지를 꽃 중에서는 특이한 꽃인 목화를 등장시키면서 종과 결합을 시킨 것이다. 목화의 흔들림이 시각적인 반면에 종소리는 청각적이다. 시인은 공감각적 표현을 통해서 두 가지 상반된 요소를 시 속에서 일치시키고 있다.  허공에 멈춰라 공중에 멈춘 벌새 날갯짓 하는 한 송이 꽃 위의 시에는 벌새가 등장한다. 하이쿠에 나오는 새는 주로 참새지 벌새가 아니다. 하지만 시인은 멕시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벌새를 소재로 사용한다. 이국적 소재가 아니라 자기 주변의 자연과 환경에서 한 장면을 골라내는 것이 하이쿠라면 「허공에 멈춰라 Tente en el aire」는 그 점을 충족시킨다. 벌새의 날갯짓과 꽃이 동격을 이루고 있는 이 시는 언제나 벌새의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행위인 날기가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나타낸다. 나비든 새든 날아다닐 때 가벼움을 유지할 때 그 존재가 빛나는 것이다. 날개를 접고 내려앉아 있는 모습은 무겁다. 그것은 울리지 않고 있는 종이다. 그래서 시인은 벌새의 비상을 찬양한다. 그 비상은 날아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꽃에 가늘고 긴 부리를 꽂고 꿀을 빨고 있는 벌새의 날갯짓이 너무 빨라서 움직이면서도 움직이지 않고 있는 듯한 모습이 마치 허공에 활짝 피어있는 한 송이의 꽃처럼 느껴진다. 다만 결국에 가서는 그 날기가 멈추리라는 사실을 알기에 슬플 뿐이다. 그래서 한 번 자연에게 명령조로 “허공에 멈춰라”라고 소리쳐보는 것이다. 물론 자연은 그의 소망을 들어주지 않을 테지만 말이다. 4.2. 선불교적 요소 현현 I 소년 어른 숲          묻는다          밀렵꾼이 무어냐고           한 방  두 방 세 방          두           번은           과녁에           명중했다           숲 이 시는 형태상으로는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의 공간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내용상으로 볼 때는 하나의 하이쿠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시인이 참지 못하고 앞에 약간의 배경 설명을 덧붙이기는 했지만 그리 흠이 되지는 않는다. 그렇게 하고도 독자가 즐길 수 있는 부분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 시는 시각적 효과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밀렵꾼이 무어냐고”라는 질문은 가운데 줄에 놓여있는 것으로 보아 “어른”이 하지만 그 내용은 “소년"이 할 수 있는 질문이다. 그렇다면 소년은 어른 속에 들어있는 분신이며, 따라서 이 시의 등장인물은 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총성은 모두 세 방이 있었는데 그 중의 두 발만 과녁에 맞고 다른 한 방에 대한 언급은 없다. 그리고 세 번째 줄에 위치했던 “숲”이 자리를 옮겨 가운데 “어른” 줄의 밑에 와서 놓여있다. 두 발의 총성과 함께 “소년”과 “어른”이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숲”만 남았다. “어른”이 “숲”과 일치가 된 것이다. 세 번째 총알이 내는 총성은 하이쿠의 종소리처럼 긴 여운을 남기며 시인과 숲을 묶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하이쿠가 추구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자연합일?물아일체의 경지와 다르지 않다. 나와 자연이 이미지 속에서 하나가 되는 테마로 인해 하이쿠는 종종 선불교와 관련을 맺는다. 하이쿠는 순간적이며 심오하고 일시적이며 영원한 하나의 비젼을 담은 고상한 단가다. 하이쿠는 일종의 깨달음 상태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깨달음은 선불교에서 공안 수행에서 경험하는 내용과 비슷하다. 게다가 하이쿠는 이 깨달음을 독자에게 전달하려 한다 -토시로 다나카 선은 마음을 공으로 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마음을 공백으로 한다는 것은 나와 세계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의 주체까지도 밖으로 끄집어내는 일이다. 즉 존재를 무화시키는 일이다. 그릇은 비어있기 때문에 물건을 넣을 수 있고 방도 비었기 때문에 사람이 들어가 살 수가 있다. 하이쿠는 마음을 비우고 세계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그의 『논리철학 논고』에서 말하기를 ‘보여질 수 있는 것은 말로 설명될 수 없다. 세상이란 발생하고 있는 모든 것이며 세상은 어떤 것인가가 아니고 단지 그 자체인 것이다’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하이쿠는 세상에 대한 설명이나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그 자체로 향하는 문을 열어주기 위해서 한 순간을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에르난데스의 하이쿠 풍의 시에서는 자주 작가의 관념이나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다. 이 말이 ‘그의 시가 좋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라 단지 하이쿠와의 차이점을 얘기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하이쿠도 하나의 시이기에 작가가 있기 마련이고 그 작가는 어떤 방식으로든 시와 관련을 맺고 있다. 그러나 하이쿠의 작가는 시 속에 숨어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드러나 있더라도 인위적으로 자연을 조작하지 않는다. 정확히 연못 한 가운데 백조 한 마리 물에 비친 목 그림자에 질식하고 있다 백조의 목과 물음표의 연상은 모데르니스모의 냄새가 난다. 루벤 다리오는 『불경스런 글 Prosas profanas』에서 “커다란 흰 백조의 모가지가 내게 묻고 있다”(el cuello del gran cisne blanco que me interroga)라고 노래했다. 보통의 백조는 자신의 그림자를 보고 질식하지 않는다. 이 백조는 곧 시인 자신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연못에 비친 백조 목의 반영은 자기 자신의 본 모습이라기보다는 자신의 본 모습을 보기를 갈망하며 자신의 허상에 절망해 하는 실존적 물음표다. 그래서 백조는 질식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그림자를 바라보면서 죽어가는 백조의 시선에서 더 나아가 이 전체 풍경을 또 하나의 그림자로 내려다보고 있을 다른 시선을 읽어낼 수 있다. 바로 라캉이 “나는 내가 생각하지 않는 곳에 존재한다”라고 말할 때의 ‘나' 말이다.  대개 하이쿠에 작가의 목소리는 쉽게 나타나지 않는다. 독자의 다양한 해석 속에 살아있을 뿐이다. 바쇼의 유명한 하이쿠 “해묵은 연못이여, 개구리 뛰어드는 물소리런가!”에 나오는 연못에는 일상적으로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하나의 장면, 즉 한 마리의 개구리가 연못에 뛰어드는 행위를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바쇼의 또 다른 하이쿠 “말 위에 타고 가는 내 그림자 심연 속에 흔들리네”에는 시인이 직접 등장한다. 에르난데스의 그림자나 바쇼의 그림자나 모두 허구적 자신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차이점이 있다. 바쇼는 그냥 말이 걸어감에 따라 자신의 그림자가 흔들리는 자연 현상을 묘사하고 있다. 이처럼 시인 자신이 등장하는 하이쿠에 있어서 조차 시인의 목소리는 절제되어 있다. 에르난데스의 경우에는 ‘목 그림자에 숨이 막힌다’라는 표현 속에 자신의 감정이 적나라하게 이입되어 있다.  4.3. 이미지와 유머 다음의 시를 읽어보면 그의 시의 출발이 하이쿠와 다름을 알게 된다. 에르난데스는 현실 또는 실재를 시로 옮기려는 시인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그 적확한 언어의 선택에 고뇌하는 시인인 것이다. 따라서 그의 시는 시 쓰는 행위 자체에 대해 생각하는 메타시의 성격을 띠고 있다. 말로 옮기려는 순간 단어들은 그의 눈을 뽑아버렸다 에필로그 시는 사건 현장에 살인자가 남기는 유일한 흔적 (백지는 완전범죄다) 하이쿠의 시인은 현실의 재현에 대해서 특별한 강박관념을 갖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에르난데스의 하이쿠에 관한 관심도 사실은 이런 재현 의식의 한 실험이다. 시인이면서 비평가이기도 한 비센테 키라르테(Vicente Quirarte)는 “현실을 단순화시키려는 노력이 그를 중국화의 투명성과 유사한 결론에 이르게 했다”라고 말했는데 그의 분석은 적절하다. 말이란 것은 기표가 기의를 담지 못하는 불완전한 도구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시인은 이러한 불완전한 도구를 가지고 우주의 비밀을 열려고 하고 있으니 두 번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 것도 말하지 않고 있는 것은 더 큰 죄악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하얀 백지가 완전범죄라는 표현은 시인이 글을 쓰지 않는 것이 완전 범죄라는 말이다. 그러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될 텐데 그러지 못한다는데 시인의 딜레마가 있는 것이다. 눈 덮인 평원을 달리는 고삐 풀린 말처럼 백지 위에 흩어진 어지러운 말들에게 질서를 부여해줄 의무가 시인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질주 얼마나 많은 단어들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 하얀 평원을 달리고 있는가? 그래서 에르난데스가 제일 먼저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이 이미지의 세계다. 에즈라 파운드에 따르면 이미지는 ‘한 순간의 지적이고 정서적인 복합체를 제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에게 갑작스런 해방감 또는 해탈 감을 주려고 하는 것이다. 그의 이런 이미지에 대한 생각은 선불교에서 각의 순간에 대한 묘사와 유사하다. 또한 ‘순간적 이미지 포착’은 하이쿠의 기본 특성이기도 하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지금’의 순간적 상황을 하나의 이미지로 제시해 주는 것이 하이쿠이기 때문이다. 에르난데스는 에즈라 파운드의 시 「지하철역에서 In a Station of the Metro」를 거의 정확한 스페인어 번역으로 옮겨놓는다. 한 번 영어로 된 원시와 에르난데스의 시를 비교해보자. In a Station of the Metro The apparition of these faces in the crowd; Petals on a wet, black bough. EZRA POUND EN UNA ESTACIÓN DEL METRO La aparición de sus cambiantes rostros en la multitud: pétalos en una oscura, húmeda flama. 두 시의 차이점이라고는 에르난데스의 시 제목에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라는 이름이 덧붙은 것과 첫 행에 “cambiantes”라는 단어가 삽입되었고 마지막 행에 “bough" 대신 “flama”가 사용된 것이 다른 점이다. 제목 뿐만 아니라 원시의 저자도 밝혀놓았으니 우선 표절은 아니다. 이미지즘은 서양의 전통적 시작과 단절을 꾀한 동양풍의 새로운 시학이라는 차원에서 그 대표자인 에즈라 파운드가 옛것을 그대로 답습하는 일반 군중들보다 두드러져 보였을 것이다. 더 나아가 이미지즘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나 요소들이 다른 작품들 속에서 두드러져 보임을 암시하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이 멕시코 시인의 단시가 보여주는 또 다른 특징은 그 이미지가 유머, 아이러니와 자주 결합한다는 사실이다. 서구에도 유머와 아이러니의 전통이 있으므로 이것이 반드시 하이쿠의 영향을 받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순간적 이미지 포착과 더불어 유머와 아이러니 또한 하이쿠에 자주 등장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이다.  닫힌 밤 양키 스타디움 개똥벌레 가득 찬 플라스크. 크리스토퍼 거리(그래피티)  아무도 운동하지 말아요. 장수할 위험이 있어요. 위의 두 시 모두 현대 미국인의 생활을 스케치해 놓은 듯 보인다. 그냥 단순한 스케치가 아니라 약간의 풍자도 곁들여서 말이다. 첫 번째 것은 야간 경기가 펼쳐지는 야구 경기장을 개똥벌레가 가득 담긴 유리 플라스크에 비유했다. 그 비유는 너무나 참신하고 유머러스하기까지 하다. 온 세상이 깜깜한 한 밤중에 경기장만 환한 대낮처럼 닫힌 공간에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와글거리고 있는 모습을 외계인이 보고 있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두 번째의 「크리스토퍼 거리(그래피티)」라는 시도 현대 미국인의 생활을 그려놓은 것이다. 그들은 아침에 거리를 달리거나 공원에서 운동을 하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있다. 물론 건강하고 오래살기 위해서다. 시인은 이러한 그들의 행위 속에서 인간의 삶에 대한 욕망을 본다. 그리고 “장수할 위험이 있어요”라고 말함으로써 더 오래 사는 것이 과연 더 좋은 것이냐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어떻게 보면 더 산다는 것은 더 많은 고통일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세상에 대하여 우리가 갖고 있는 생각이 언제든지 틀릴 수 있다는 시인의 생각까지도 엿보인다. 5. 맺는 말 우리는 지금까지 멕시코에서 하이쿠가 소개 발전된 과정과 멕시코의 시인 프란시스코 에르난데스의 하이쿠 풍의 짧은 시들을 중심으로 하이쿠와 비교해 보았다. 사실 스페인어로 일본어의 음절수에 맞추어 5/7/5로 하이쿠를 짓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대체로 한 두 음절이 하나의 뜻을 갖는 일본어와 같은 의미의 내용을 말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음절이 필요하다. 그리고 동양에서는 일상생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들(잠자리, 매미, 나비, 벚꽃, 국화, 연꽃, 매화 등)이 서구인들에게는 이국취향으로 받아들여진다. 따라서 스페인어 사용자들에게 좋은 하이쿠를 쓰기 위해 반드시 이국취향적 소재들을 사용해야 한다거나 5/7/5의 음수율을 맞추어야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에르난데스는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선배 시인들이 했던 하이쿠 형식과 소재에 대한 단순한 모방을 되풀이 하지 않는다. 우리는 위에서 그가 자신의 시적 토양이라고 할 수 있는 모데르니스모, 이미지즘 같은 서구시의 전통에 하이쿠적 요소를 잘 접목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이쿠를 단순히 모방하는 차원을 넘어 자기 것으로 완전히 이해한 뒤 창조적으로 시를 쓰려고 하는 모습이 엿보인다. 이따금 은유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아주 절제를 하고 있고 작가의 개입이나 설명도 시를 읽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현실을 시로 옮기려는 그의 욕망은 끝없는 도전을 의미한다. 일단, 하이쿠풍의 단시를 통한 현실로의 접근 시도는 그의 시 활동에 있어서 작은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276    덕화 남평의 "마당형님"이였던 허충남 문학가 댓글:  조회:2411  추천:0  2017-02-22
'마당형님' /허두남        나는 발가는대로 공원 숲속으로 걸어간다. 휘청휘청…걸음마다 집요하게 매달리는 비애와 고통과 공허감을  털어버리려고 모지름을 쓴다.   찌푸린 하늘처럼 가슴이 답답하다. 한숨이 나온다. 말없이 서있는 우울한 소나무들도 하나같이 짙은 한숨으로 칠해놓은듯하다.   며칠전 맏형님이 하늘나라로 떠나갔다.   둘째형님이 인사불성이 되여 자리에 누운지 여러해 되는데 맏형님마저  떠나가니 나홀로 무인고도에 버려진 기분이다.   소나무우둠지를 스치는 바람도 처량한 애가런듯 내 가슴을 후빈다. 발밑에서 바스락대는 마른 잔디풀의 속삭임은 세월의 묵은 덤불을 헤치고 나를 잊지 못할 동년의 언덕으로 데려간다.   개구쟁이시절, 내가11년 이상인 맏형님의 이름을 부르니 어머니는 형님을 그렇게 부르면 못쓴다고 손사래를 치면서 맏형님이라고 부르라고 가르쳐주었다. 그런데 “맏형님”이라고 외운다는것이 자꾸 “마당형님”으로 번져졌다. 그바람에 집안을 들었다놓던 웃음폭탄…   어버지, 어머니, 형님,누나들 모두 허리건사를못하고 웃었고 나도 덩달아 웃고…가난하지만 화목한 우리 가정에 큰 웃음을 선물했던 그때의 일이 어제런듯 기억에 새롭다.   그런데 맏형님은 그뒤 정말 “마당형님”이 되였다.   맏형님은 초중때 “소년아동”신문에 작문 “소조학습의 저녁”을 발표하였다. 그때엔 아이들이 볼 신문, 잡지라고는 “소년아동”신문 하나뿐이였는데 산골학생이 거기에 글을 발표했다는것은 하늘의 별을 딴것만큼 대단한 일이였다.    첫작품을 발표하고 형님은 더 본격적으로 습작을 했고 둘째형님과 나도 숫눈길에 찍힌 발자국을 저겨딛듯  맏형님의 발자국을 콕콕 넘겨밟으며 글쓰기에 나섰다. 뒤에 둘째형님은 작문 “눈내리는 아침”을, 나는  “생일날”을  “소년아동”에 발표했다.   나를 우화창작에로 이끈 사람도 맏형님이다. 형님은 스무살이 금방 지나면서 3년간 풍담으로 앉음뱅이신세가 되여 고생한적이 있는데 투병중에 우화시를 많이 습작했 다. 우화시 “메돼지”는 버덩이를 드러낸 박색의 초상과 함께 “소년아동” 지면에서 해빛을 보기도 했다. 그때  소학생이였던 나는 형님이 보는 끄릴로브우화집을 따라 읽었고 형님을 본받아 우화시를 쓰느라고 긁적거렸다. 그것이 내 우화인생에서 걸음마전의 엎치기연습이였을것이다. 그 엎치기연습이 뒤에 첫걸음마로, 우화시창작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갱신하려 고행을 거듭한 수십년의 려정으로 이어졌다.   맏형님의 영향은 우리 동생들에게만 미친것이 아니였다.   형님의 고향인 산 좋고 공기 좋고 정서 좋은 남평이라는 이색의 땅에서는 문학의 새싹들이 곳곳에서 푸른 하늘을 향해 손을 저으며 파란 꿈을 펼치였다. 그 될성부른 함함한 새싹들은 비바람의 세례를 거쳐  최룡관, 김응룡, 박장길, 김영건(注; 이 시지기-죽림이도 허씨네 3형제님들의 영향을 많이 받은 문학도였음, 그리고 남평고중을 다닐 때와 덕화농촌신용사에 출근할 때에도 자주 만났던 문학선배님이기도 하였으며, 제가 남평지역 "두만강문우회"를 결성하고 활동할 때 고문으로 모시기도 한 박식한 도사이기도 했음. 그때 김영건시인께서 연변TV문예부에 있을 때 "남평문우들 시특집"을 편집방영해주기도... 허충남선배님의 그 소탈하게 웃으시는 모습이 지금 이시각 주마등마냥 스쳐지나가고... 고인의 명복을 늦게나마 빌고 빕니다...)이라는 가지 창창하고 잎새 무성한 시나무로 자라났다.   연변작가협회 부주석이였던 최룡관은 맏형님때문에 문학에 발을 들여놓아 “고생을 사서 한다”고 맏형님과 부르튼 소리를 곧잘 했다.      맏형님때문에 “고생을 사서 한” 사람들은 문학(文鹤)의 날개를 쫙 펼치고 훨훨 날아 로임 많고 살기 편한 국자가에 모였다. 그러나 선구자이고 스승인 맏형님만은 여전히 고향에 남아 제집마당을 지키였다. 진짜 “마당형님”이 된것이다.   누구보다도 재능이 처지지 않았지만 산골에서 한생을 다한 형님을 생각하니 마음이 괴롭다. 하지만 형님은 도시의 유혹에 몸이 달아하지 않았고 산골에 정을 두고 만족했다. 고향에 정을 묻었기에 화룡3중에서 작문교원으로 초빙할때도 외면했다. 고향을 떠나기 아쉬워 현성길을 밟지 않았다면 남평중학교에서 교장을 하라는 청탁은 왜 밀막아버렸는지? 산골에서도 알짜 백성으로 사는것이 편했던 모양이다.   산골백성이 달갑게 된 형님의 시작품들에는 고향의 정서가 청초한 산꽃향기처럼 묻어났다.   오불꼬불 길을 따라 멀리 떨어진 우리 시골   내물도 길을 흉내 내듯 오불꼬불 흐르는 곳   하늘도 좁은 산들사이에 오불꼬불 펼쳐졌다.   형님의 동시 “시골”이다.   형님은 다산작가는 아니였지만 자기 작품에 아주 책임졌다. “나는 남이 어떻게 썼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안썼는지 알고싶다”고 했다.   2002년봄, 나는 남평에 가서 형님과 같이 사흘동안 고향산천을 돌아다녔다.   형님이 태를 묻은 조선 무산군 량영리의 오리장마을이 두만강 건너 먼 꿈처럼 바라보이는 고향의 뒤산마루 “가마후렁”에 올랐을때였다.  오래만에 고향산 정상에 오른 우리는  푸른 하늘에 얼굴을 묻고 덧없는 인생에 대해 주고받았다. 형님은 젊어서는 시를 쓰고 늙으막엔 아동문학작품을 쓰라는 말이 백번 옳다면서 누구도 써본적 없는 독특한 형식의 장편동화를 쓰고싶다고 했다.   우리는 발아래 펼쳐진 고향의 다정한 모습을 눈에 담다가 군데군데 가랑잎이 가슴까지 쌓인 오봉바위골에 발자국을 남기며 산을 내렸다. 나는 형님이 뒤에서 돌이라도 굴릴가봐 골짜기 중간이 아닌 한옆에 치우쳐서 걸었다.   “너 내가 돌을 굴릴가봐 한켠에 붙는게지?”    “그걸 아는걸 보니 아직 멀었구만! 치매걱정은 안해도 되겠소.”   내 말에 형님은 허허 웃었다.   “너 나를 아주 귀신취급하는구나!”   그때만 해도 가파른 산길을 별 불편이 없이 걷던 형님이 불과 7년만에 하려던 일을 다 접어두고 불귀의 객이 되여 떠나간것이다.   고생속에서 한생을 보내면서도 작은 행복에 만족했던 형님, 뼈를 깎아 살을 깎아 한편한편의 글을 빚어내며 자신만의 보람을 찾고 늘 락천적인 웃음을 잃지 않았던 형님, 형님은 이제 이 세상에 없다!   담요 하나를 깔고 옆에 책 하나를 놓고 누워있던 형님의 자리는 비여있다. 형님에 대한 그리움만 그물그물 피여나는 휑뎅그렁한 빈 자리…   솔방울이 보인다. 허리를 굽혀 집어들었다. 잣알이 다 빠져버린 묵은 솔방울, 정성껏 키운 기름진 씨앗을 공원의 귀동자가이드 다람쥐에게 내주고 빈몸으로 누워있는 솔방울, 자기의 의무를 다하고는 미련없이 생명의 근원에서 뛰여내린 이 자연의 뜻을 읽노라니 인생도 이와 같구나 하는 느낌이다. 하다면 맏형님도 심혈을 몰부어 키워온 알맹이를 이 세상에 남겨놓고 갈때가 되여 훌쩍 떠나간것일가?. 아니, 그렇게 말하기엔 너무나 애석하다. 형님은 아직 가서는 안된다. 형님은 하려던 일을 채 하지  못했다. 우리 3형제를 위해서라도 남아서 재능을 더 빛내야 한다. 하지만 이미 길을 달리한 형님, 무엇이 급하여 가지 말아야 할 곳으로 발길을 내디뎠을을가? 내 한숨의 안개속으로 멀어져가는 형님의 뒤모습…   자연은 새봄을 선사했건만 기다려오던 이 봄은 형님과의 영별을 통보하는 슬픈 봄이 되였다. 누구나 한번 가야 하는 길이언만 좀 더 앉았다 가도 될것을 총망히 떠나가니 더 슬프다. 평생 남에게 페를 끼치기 싫어하는 분이라 조문객들을 위해 날씨가 풀리자 서둘러 떠나갔으리라!   이제 한달남짓 지나면 청명이다. 묵은 풀덤불을 뚫고 연두빛 새싹이 눈을 뜰 때 형님을 찾아 술잔을 부어올리며 가슴저미는 아픔을 딛고 형님을 영영 바래련다.   2009.2.   허충남(许忠男) (1)일반략력  성명: 허충남, 성별: 남, 1939년  9월 12일 조선 함경북도 무산군에서 출생. 2009년 병으로 사망. 한평생 교원사업에 종사, 연변작가협회 회원 (2)창작성과  동화집 《거꾸로나라 려행기》 (1992. 연변인민출판사). (3)수상정황 1992년 동화집 《거꾸로나라 려행기>>가
275    시는 예쁜 포장지속에 들어있는 빛나는 보석이여야... 댓글:  조회:2452  추천:0  2017-02-22
              윈난(운남)성 군구(軍區) 지뢰제거 지휘부, 마리포(麻栗坡)현 바리허둥산(八裏河東山)에서 지뢰제거 하다... 중국-베트남 국경지역에서ㅡ 시(詩)는 감춤의 미학(美學)이다  시를 은유적으로 진술하면 여인의 한복이라고 정의 할 수 있다. (시=한복)  목부터 발끝까지 몸을 완전히 가리고 덮은 옷, 성적 매력은 눈을 씻고 보아도 찾아지지 않는 여성이 제거된 상태 그러니까 머리부터 발 밑까지 내려가면서 점점 넓어지고 퍼지는 전형적인 산의 모습인 이등변 삼각형 속에 인간이 묻힌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여인에게서 생명선이라 할 수 있는 가슴라인, 허리라인, 다리라인이 완벽하게 사라진 미(美)의 실종은 말할 것도 없고 통상적으로 표현하는 날렵한 몸매인지 밥상을 다 석권한 몸매인지조차 가늠이 불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감추고 여미는 한복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남자의 시선을 단숨에 잡아당기는 하반신과 그에 따르는 각선미를 도외시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여인들이 가장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상반신의 가슴마저 치마끈으로 꽁꽁 묶어 천인단애한 상태를 만들어 놓았으니 상대적 박탈감 운운 이전에 여성은 이미 에로스의 대상에서 제외된 탈 여성의 형이상학적 존재가 되고 만 것이다.  그러나 한복은 앞 코가 뾰족한 버선과 꽃무늬 고무신으로 발의 본 모양을 대치시킴으로써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미를 불러 일으켰으며 반투명의 질감으로 전신의 모습을 우련의 상태로 만들어 매혹감을 증폭시키는 장치를 해 두었던 것이다. 즉 모시 저고리 속으로 가는 어깨 끈을 보이게 함으로써 속화되기 쉬운 욕정을 천천히 눈빛으로 더듬어가게 하는 미적 배려라든지, 또 속살이 보일 듯 말 듯하게 함으로써 미감(美感)의 살색을 극대화 시켜 노골적이며 천박해지기 쉬운 급진적 성욕을 반감시킨 다음, 여인의 섬세한 감정을 숨이 막힐 듯 흘러내리는 멋으로 승화시킨 혜안은 한복만이 가진 최대의 상징적 장점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단선적 즐거움을 배제시키고 저고리와 버선의 합일치를 통한 곡선과 몸이 움직일 적마다 사각거리는 음향을 배합한 후, 보는 이로 하여금 스팩트럼의 즐거움을 향유케 하는 고차원적 사랑의 과정을 대변하는 한복, 바로 이 한복이 시(詩)이며, 이 시가 바로 한복인 것이다. 한복은 틀림없이 시(詩)의 변형된 현시적 사물인 것이다.  한복은 감춤의 옷이지 가림의 옷이 아니다. 한복은 숨김의 옷이지 막음의 옷이 아니다. 한복은 밝힘의 옷이지 어둠의 옷이 아니다. 한복은 분명 뜨거운 감성을 용해시키기 위해 걸친 것이지 음흉한 시선을 거부하기 위해 감싼 것이 아니다. 덧붙이면 신비스러운 몸을 자연의 한 부분으로 수용하기 위해 한복을 도구로 삼았다는 뜻이다.  한복이, 몸의 아름다움을 증대시키기 위해 전신을 감추고 숨겼다면, 시는, 느낌의 절묘함을 극대화하기 위해 현묘한 사상을 숨긴 것이다.  한복이 은근함을 강조하는 굴절의 시선을 선호하며 상상력을 발동하여 무한한 황홀감에 접근토록 하는 감춤의 의상이라면, 시는 비유와 압축으로 깊은 맛을 숨긴 감춤의 미학인 것이다.  따라서 한복이 노출을 거부하듯 시도 직설적 표현을 거부해야 한다. 한복이 은근함을 좋아하듯 시도 은근한 비유의 표현을 좋아해야 한다.  한복이 보는 이에 의하여 아름다운 자태가 드러나는 효과를 감춤 속에서만 확인할 수 있게했다면, 시도 읽는 이로 하여금 곰씹는 맛의 효과를 극도로 절제된 단어와 문장 속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감춰야 하는 것이다.  한 마디 부연하면,  “웃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우울해 보이기도 하는 의 그 미소의 비밀이 뭔지 아십니까?”  이 질문은 미술에서도 감춤의 미학을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감춤의 미학은 이렇게 예술 전반에 펼쳐져 있는데 시에서 이것을 소홀히 하고 있어 화룡(畵龍)에 점정(點睛)이 빠진 것이나 진 배 없다는 느낌이 듭니다.  모나리자의 비밀이요? 그건 눈 꼬리와 입가에 있습니다. 살짝 그림자로 덮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감춤의 미학의 진수를 보았을 것입니다. 즐겁지 않습니까?  < 재인식의 기쁨>을 위한 한복의 감춤, 시도 그래야 할 것 아닙니까  역시 시는 예쁜 포장지 속에 들어 있는 빛나는 보석이며 감춤의 미학입니다.  ==============================================================     여름 뜰 ―김수영(1921∼1968)       무엇 때문에 부자유한 생활을 하고 있으며 무엇 때문에 자유스러운 생활을 피하고 있느냐 여름 뜰이여 나의 눈만이 혼자서 볼 수 있는 주름살이 있다 굴곡이 있다 모오든 언어가 시에로 통할 때 나는 바로 일순간 전의 대담성을 잊어버리고 젖 먹는 아이와 같이 이지러진 얼굴로 여름 뜰이여 너의 광대한 손을 본다 <조심하여라! 자중하여라! 무서워할 줄 알아라!> 하는 억만의 소리가 비 오듯 나리는 여름 뜰을 보면서 합리와 비합리와의 사이에 묵연히 앉아있는 나의 표정에는 무엇인지 우스웁고 간지럽고 서먹하고 쓰디쓴 것마저 섞여있다 그것은 둔한 머리에 움직이지 않는 사념일 것이다 무엇 때문에 부자유한 생활을 하고 있으며 무엇 때문에 자유스러운 생활을 피하고 있느냐 여름 뜰이여 크레인의 강철보다 더 강한 익어가는 황금빛을 꺾기 위하여 너의 뜰을 달려가는 조고마한 동물이라도 있다면 여름 뜰이여 나는 너에게 희생할 것을 준비하고 있노라 질서와 무질서와의 사이에 움직이는 나의 생활은 섧지가 않아 시체나 다름없는 것이다 여름 뜰을 흘겨보지 않을 것이다 여름 뜰을 밟아서도 아니 될 것이다 묵연히 묵연히 그러나 속지 않고 보고 있을 것이다  김수영은 잘도 자연에 메시지를 담아낸다. 생명력이 가장 왕성한 계절 여름, 그 뜰은 나무와 풀이 뿜어내는 생기로 진동한다. 그런데 시의 ‘여름 뜰’이 전하는 메시지는 부정적이다. ‘여름 뜰’에 그 구성원들이 왕성한 생명력을 자유로이 뻗치지 못하게 통제하는 어떤 ‘광대한 손’이 있는 것. ‘이렇게는 못 살아!’ 불끈하지만 시인이 무슨 힘이 있나, 이내 젖먹이처럼 무력감을 느낀다. 이 시가 쓰인 1956년에는 제3대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못 살겠다. 갈아보자!’라는 구호를 내건 민주당 후보 신익희는 5월 5일 선거 유세차 호남으로 내려가던 기차에서 뇌일혈로 급서하고, ‘갈아봤자 소용없다’ ‘구관이 명관이다’로 대응하던 자유당 후보 이승만은 큰 표 차로 당선됐다. 그럼에도 진보당 후보 조봉암의 30% 가까운 득표율에 “아직도 대한민국에는 간첩이 많은 듯하다” 했단다. ‘나의 표정’을 착잡하게 만든 데는 민주당과 진보당의 후보 단일화 실패와 그 결과가 크게 작용했을 테다. 환멸과 좌절감으로 말을 잃은 중에도 시인은 ‘그러나 속지 않고 보고 있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조심하여라! 자중하여라! 무서워할 줄 알아라!>’는 당시 온 국민에게 내면화된 공포의 소리이자 그 공포의 대상에게 시인이 꼭 돌려주고 싶은 소리이리라.
274    "한글통일"이 언제 오려나(4)... 댓글:  조회:3582  추천:0  2017-02-22
띄어쓰기를 바로 알자 띄어쓰기에 관한 규정은 다음과 같아요. 항목이 많으니 중요한 것만 선택적으로 나열해 볼게요. '조사’는 체언이나 부사, 어미 등에 붙어 그 말과 다른 말과의 문법적 관계를 표시하거나 그 말의 뜻을 도와주는 품사이므로 앞 말과 반드시 붙여 써야 한다. 1. 조사는 앞 말에 붙여 쓴다. * 조사가 여러 개 겹칠 경우에도 모두 붙여 쓴다. - 집에서처럼, 학교에서만이라도 * 어미 뒤에 붙는 경우에도 붙여 쓴다. - 나가면서까지, 들어가기는커녕 2. 의존 명사는 앞 말과 띄어 쓴다.     3. 단위를 나타내는 명사는 앞 말과 띄어 쓴다. 한 개  차 한 대  금 서 돈  소 한 마리 단 , 다음과 같은 경우는 붙여 쓸 수 있어요. * 순서를 나타내는 경우 : 두시 삼십분 오초, 제일과, 삼학년, 육층 * 숫자와 어울리어 쓰이는 경우 : 1446년 10월 9일, 16동 502호, 80원, 10개 4. 두 말을 이어 주거나 열거할 적에 쓰이는 다음의 말들은 띄어 쓴다. 청군 대 백군  이사장 및 이사들 : 말을 이어 주는 말 책상, 걸상 등이 있다 : 열거할 때 쓰는 말 5. 단음절로 된 단어가 연이어 나타날 때에는 붙여 쓸 수 있다. 좀더 큰것 (○) 좀 더 큰 것 (○)  이말 저말 (○) 이 말 저 말 (○)  한잎 두잎 (○) 한 잎 두 잎 (○) 6. 보조 용언은 띄어 쓰는 것이 원칙이지만, 경우에 따라 붙여 쓸 수 있다.   7. 성과 이름, 성과 호는 붙여 쓰고, 호칭어, 관직명은 띄어 쓴다. 이순신(이름), 이율곡(호), 채영신 씨(호칭), 최치원 선생(호칭), 이순신 장군(관직) * 성과 이름을 구분할 필요가 있을 경우에는 띄어 쓸 수 있다. 남궁억 (○) / 남궁 억 (○), 독고준 (○) / 독고 준 (○) 8. 고유 명사*는 단어별로 띄어 쓰는 것이 원칙이지만, 단위별로 띄어 쓸 수 있다.   9. 전문 용어는 단어별로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하되, 붙여 쓸 수 있다.             * 보조 용언(補助用言) : 본용언과 연결되어 그것의 뜻을 보충하는 역할을 하는 용언. 보조 동사와 보조 형용사가 있음. * 고유 명사(固有名詞) : 특정한 사물이나 사람을 다른 것들과 구별하여 부르기 위하여 고유의 기호를 붙인 이름. 홍길동, 대한 중학교 등 * 돈 : 귀금속이나 한약재 등의 무게를 재는 단위. 한 돈은 3.75그램 * 손 : 조기, 고등어, 배추 등을 한 손에 잡을 만한 분량으로 세는 단위. 큰 것과 작은 것을 합해 세고, 미나리나 파 등의 한 손은 한 줌 분량을 말함. * 죽 : 옷, 그릇 등을 열 벌씩 세는 단위. 버선 한 죽은 버선 열 켤레 * 쾌 : 북어를 묶어 세는 단위. 한 쾌는 북어 스무 마리 [Daum백과] 띄어쓰기 – 천재교과서 국어 문법, 천재교육 편집부, 천재학습백과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우리말 띄어쓰기의 기본 원칙  지난 2008년 9월에 "한글 맞춤법 전문" 가운데에서, 제5장, 띄어쓰기 부분을 관련 내용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띄어쓰기와 관련한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을 4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실 가장 많이 헷갈릴 수 있는 제3절 보조 용언은, 띄어쓰거나 붙여쓰기를 둘 다 허용하는 경우로, 이 기회에 신경 써서 읽어두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제 5 장 띄어쓰기  제 1 절 조사 (제41항) 제41항 조사는 그 앞말에 붙여 쓴다. 꽃이 꽃마저 꽃밖에 꽃에서부터 꽃으로만 꽃이나마 꽃이다 꽃입니다 꽃처럼 어디까지나 거기도 멀리는 웃고만 제 2 절 의존명사, 단위를 나타내는 명사 및 열거하는 말 등 (제42항~제46항) 제42항 의존 명사는 띄어 쓴다. 아는 것이 힘이다. 나도 할 수 있다. 먹을 만큼 먹어라. 아는 이를 만났다. 네가 뜻한 바를 알겠다. 그가 떠난 지가 오래다. 제43항 단위를 나타내는 명사는 띄어 쓴다. 한 개 차 한 대 금 서 돈 소 한 마리 옷 한 벌 열 살 조기 한 손 연필 한 자루 버선 한 죽 집 한 채 신 두 켤레 북어 한 쾌 다만, 순서를 나타내는 경우나 숫자와 어울리어 쓰이는 경우에는 붙여 쓸 수 있다. 두시 삼십분 오초 제일과 삼학년 육층 1446년 10월 9일 2대대   16동 502호 제 1 어학실습실 80원 10개 7미터 제44항 수를 적을 적에는 ‘만(萬)’ 단위로 띄어 쓴다. 십이억 삼천사백오십육만 칠천팔백구십팔 12억 3456만 7898 제45항 두 말을 이어 주거나 열거할 적에 쓰이는 다음의 말들은 띄어 쓴다. 국장 겸 과장 열 내지 스물 청군 대 백군 책상, 걸상 등이 있다. 이사장 및 이사들 사과, 배, 귤 등등 사과, 배 등속 부산, 광주 등지 제46항 단음절로 된 단어가 연이어 나타날 적에는 붙여 쓸 수 있다. 그때 그곳 좀더 큰 것 이말 저말 한잎 두잎 제 3 절 보조용언 (제47항)  제47항 보조 용언은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하되, 경우에 따라 붙여 씀도 허용한다. (ㄱ을 원칙으로 하고, ㄴ을 허용함.) ㄱ ㄴ 불이 꺼져 간다. 불이 꺼져간다. 내 힘으로 막아 낸다. 내 힘으로 막아낸다. 어머니를 도와 드린다. 어머니를 도와드린다. 그릇을 깨뜨려 버렸다. 그릇을 깨뜨려버렸다. 비가 올 듯하다. 비가 올듯하다. 그 일은 할 만하다. 그 일은 할만하다. 일이 될 법하다. 일이 될법하다. 비가 올 성싶다. 비가 올성싶다. 잘 아는 척한다. 잘 아는척한다. 다만, 앞말에 조사가 붙거나 앞말이 합성 동사인 경우, 그리고 중간에 조사가 들어갈  적에는 그 뒤에 오는 보조 용언은 띄어 쓴다. 잘도 놀아만 나는구나! 책을 읽어도 보고… 네가 덤벼들어 보아라. 강물에 떠내려가 버렸다.  그가 올 듯도 하다. 잘난 체를 한다. 제 4 절 고유 명사 및 전문 용어 (제48항 ~ 제50항)  제48장 성과 이름, 성과 호 등은 붙여 쓰고, 이에 덧붙는 호칭어, 관직명 등은 띄어 쓴다. 김양수(金良洙) 서화담(徐花潭) 채영신 씨 최치원 선생 박동식 박사 충무공 이순신 장군 다만, 성과 이름, 성과 호를 분명히 구분할 필요가 있을 경우에는 띄어 쓸 수 있다. 남궁억/남궁 억 독고준/독고 준 황보지봉(皇甫芝峰)/황보 지봉 제49장 성명 이외의 고유명사는 단어별로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하되, 단위 별로 띄어 쓸 수 있다. (ㄱ을 원칙으로 하고 ㄴ을 허용함). ㄱ ㄴ 대한 중학교 대한중학교 한국 대학교 사범 대학 한국대학교 사범대학 제50장 전문 용어는 단어별로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하되, 붙여 쓸 수 있다. (ㄱ을 원칙으로 하고 ㄴ을 허용함). ㄱ ㄴ 만성 골수성 백혈병 만성골수성백혈병 중거리 탄도 유도탄 중거리탄도유도탄 가장 일반적인 것은 사전에 낱말로 올라 있으면 붙여 쓰고 그렇지 않으면 띄어 쓰라는 것입니다. 물론 국어 사전이 한 낱말이냐 아니냐를 가름하는 가장 믿을 만한 판단 근거가 되지만 덮어놓고 사전만 따를 일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국어 사전에 ‘뛰어다니다, 날아다니다’는 올림말로 올라 있는데, ‘걸어다니다, 기어다니다’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뛰어다니다, 날아다니다’는 붙여 쓰고 사전에 아직 오르지 않은 ‘걸어 다니다, 기어 다니다’는 이처럼 띄어 써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는 사전에 미처 올리지 않았을 뿐, 사전에 없으니 띄어 쓰라고 말할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사전에 ‘귀성길, 고향길, 귀국길, 귀경길’이란 낱말이 없습니다. 물론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올라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귀성 길, 고향 길, 귀국 길, 귀경 길’처럼 띄어 쓰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들은 사전에 오른 ‘귀향길, 등굣길, 하굣길’들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몇 가지 이유로 국어 사전에서 낱말, 곧 붙여 써야 할 말들을 다 올림말로 다루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윗감, 며느릿감’은 올려 놓았지만, ‘반장감, 동장감’ 따위는 사전에 올라 있지 않습니다. 이는 자리나 직위를 뜻하는 말 뒤에는 거의 ‘감’이 붙을 수 있어서 이런 말들을 죄다 사전에 올리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귀성길, 고향길’ 같은 말들은 두루 찾아서 사전에 올려야 하는데 아직 그러지 못하고 있을 뿐임을 유념하고 적절히 활용하시길 바랍니다. 가장 먼저 사전을 믿고 따르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지만 그렇다고 너무 경직되게 해석하는 것은 피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한글을 쉽고 재미있게 활용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각종 '우리말 사전'들을 가까운 곁에 두고, 적극 활용하는 것입니다. 우리말이 쉬워질 수 있는 방법들 가운데 가장 쉽고 좋은 방법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제 이웃들 모두 띄어쓰기로 인하여 부담갖지 말고, 글쓰기를 즐기며 쉽게 할 수 있길 바랍니다.  이런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하나하나에 부담을 갖기 시작하면, 모든 글쓰기의 시작에서부터 어려움을 토로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전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받으면서 쉬운 글쓰기, 재미있는 글쓰기를 매번 순간순간 즐길 수 있길 바랍니다. 의미의 전달이 우선이지, 우리말과 글에서 띄어쓰기가 잘못되었다고 뜻이 달라지는 경우는 거의 드물기 때문입니다. 
273    "한글통일"이 언제 오려나(3)... 댓글:  조회:2476  추천:0  2017-02-22
한글 맞춤법 띄여쓰기 규정 및 새로 추가된 표준어             (2014년 한국)  한글 맞춤법에서는 띄어쓰기에 대해 별도의 규정을 두고 있다. 제2항에서 문장의 각 단어는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한다는 큰 원칙을 정하고,  제5장에서 세부 규정을 마련해 두고 있다.   1. 조사는 그 앞말에 붙여 쓴다.    ꄤ 꽃이 / 꽃마저 / 꽃밖에 / 꽃입니다 / 어디까지나 / 거기도 / 멀리는 / 웃고만   2. 의존 명사는 띄어 쓴다.    ꄤ 아는 것이 힘이다. / 나도 할 수 있다. / 먹을 만큼 먹어라. / 그가 떠난 지가 오래다.   3. 단위를 나타내는 명사는 띄어 쓴다.    ꄤ 한 개 / 차 한 대 / 금 서 돈 / 소 한 마리 / 열 살 / 연필 한 자루 / 조기 한 손    * 다만, 순서를 나타내는 경우나 숫자와 어울리어 쓰이는 경우에는 붙여 쓸 수 있다.    ꄤ 두시 삼십분 오초 / 제일과 / 삼학년 / 육층 / 16동 302호   4. 수를 적을 적에는 ‘만(萬)’ 단위로 띄어 쓴다.    ꄤ 십이억 삼천사백오십육만 칠천팔백구십팔 / 12억 3456만 7898   5. 두 말을 이어 주거나 열거할 적에 쓰이는 다음의 말들은 띄어 쓴다.    ꄤ 국장 겸 과장 / 열 내지 스물 / 청군 대 백군 / 이사장 및 이사들 / 사과, 귤 등   6. 단음절로 된 단어는 연이어 나타날 적에는 붙여 쓸 수 있다.    ꄤ 그때 그곳 / 좀더 큰 것 / 이말 저말 / 한잎 두잎   7. 보조 용언은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하되, 경우에 따라 붙여 씀도 허용한다. (ㄱ을 원칙으로 하     고, ㄴ을 허용함)                   ㄱ                              ㄴ     불이 꺼져 간다.                 불이 꺼져간다.     내 힘으로 막아 낸다.            내 힘으로 막아낸다.     어머니를 도와 드린다.           어머니를 도와드린다.     그릇을 깨뜨려 버렸다.           그릇을 깨뜨려버렸다.     비가 올 듯하다.                 비가 올듯하다.     그 일은 할 만하다.               그 일은 할만하다.     * 다만, 앞말에 조사가 붙거나 앞말이 합성 동사인 경우, 그리고 중간에 조사가 들어갈 적에는      그 뒤에 오는 보조 용언은 띄어 쓴다.      잘도 놀아만 나는구나!   / 책을 읽어도 보고   / 네가 덤벼들어 보아라. /    강물에 떠내려가 버렸다. / 그가 올 듯도 하다. / 잘난 체를 한다.   8. 성과 이름, 성과 호 등은 붙여 쓰고, 이에 덧붙는 호칭어, 관직명 등은 띄어 쓴다.    ꄤ 김양수(金良洙) / 서화담(徐花潭) / 채영신 씨 / 최치원 선생 / 박동식 박사    * 다만, 성과 이름, 성과 호를 분명히 구분할 필요가 있을 경우에는 띄어 쓸 수 있다.    ꄤ 남궁억 / 남궁 억, 독고준 / 독고 준   9. 성명 이외의 고유 명사는 단어별로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하되, 단위별로 띄어 쓸 수 있다. (ㄱ     을 원칙으로 하고, ㄴ을 허용함)        ㄱ                              ㄴ    경일 고등학교                  경일고등학교    한국 대학교 사범 대학          한국대학교 사범대학   10. 전문 용어는 단어별로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하되, 붙여 쓸 수 있다. (ㄱ을 원칙으로 하고, ㄴ      을 허용함)        ㄱ                             ㄴ    만성 골수성 백혈병            만성골수성백혈병    중거리 탄도 유도탄            중거리탄도유도탄   2011년 8월 31일에 새로 추가된 표준어 목록(출처 : 국립국어원) ㅇ 현재 표준어와 같은 뜻으로 추가로 표준어로 인정한 것(11개) 추가된 표준어 현재 표준어 간지럽히다 간질이다 남사스럽다 남우세스럽다 등물 목물 맨날 만날 묫자리 묏자리 복숭아뼈 복사뼈 세간살이 세간 쌉싸름하다 쌉싸래하다 토란대 고운대 허접쓰레기 허섭스레기 흙담 토담     ㅇ 현재 표준어와 별도의 표준어로 추가로 인정한 것(25개) 추가된 표준어 현재 표준어  뜻 차이 ~길래 ~기에 ~길래: ‘~기에’의 구어적 표현. 개발새발 괴발개발 ‘괴발개발’은 ‘고양이의 발과 개의 발’이라는 뜻이고,  ‘개발새발’은 ‘개의 발과 새의 발’이라는 뜻임. 나래 날개 ‘나래’는 ‘날개’의 문학적 표현. 내음 냄새 ‘내음’은 향기롭거나 나쁘지 않은 냄새로 제한됨. 눈꼬리 눈초리 ․눈초리: 어떤 대상을 바라볼 때 눈에 나타나는 표정.예) ’매서운 눈초리’ ․눈꼬리: 눈의 귀 쪽으로 째진 부분. 떨구다 떨어뜨리다 ‘떨구다’에 ‘시선을 아래로 향하다’라는 뜻 있음. 뜨락 뜰 ‘뜨락’에는 추상적 공간을 비유하는 뜻이 있음. 먹거리 먹을거리 먹거리: 사람이 살아가기 위하여 먹는 음식을 통틀어 이름. 메꾸다 메우다 ‘메꾸다’에 ‘무료한 시간을 적당히 또는 그럭저럭 흘러가게 하다.’라는 뜻이 있음 손주 손자(孫子) ․손자: 아들의 아들. 또는 딸의 아들. ․손주: 손자와 손녀를 아울러 이르는 말. 어리숙하다 어수룩하다 ‘어수룩하다’는 ‘순박함/순진함’의 뜻이 강한 반면에, ‘어리숙하다’는 ‘어리석음’의 뜻이 강함. 연신 연방 ‘연신’이 반복성을 강조한다면, ‘연방’은 연속성을 강조. 휭하니 힁허케 힁허케: ‘휭하니’의 예스러운 표현. 걸리적거리다 거치적거리다 자음 또는 모음의 차이로 인한 어감 및 뜻 차이 존재 끄적거리다 끼적거리다 〃 두리뭉실하다 두루뭉술하다 〃 맨숭맨숭/ 맹숭맹숭 맨송맨송 〃 바둥바둥 바동바동 〃 새초롬하다 새치름하다 〃 아웅다웅 아옹다옹 〃 야멸차다 야멸치다 〃 오손도손 오순도순 〃 찌뿌둥하다 찌뿌듯하다 〃 추근거리다 치근거리다 〃       ㅇ 두 가지 표기를 모두 표준어로 인정한 것(3개) 추가된 표준어 현재 표준어  택견  태껸  품새  품세  짜장면  자장면        우리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가까와 → 가까워 가정난 → 가정란 간 → 칸 강남콩 → 강낭콩 개수물 → 개숫물 객적다 → 객쩍다 거시키 → 거시기 갯펄 → 개펄 겸연쩍다 →겸연쩍다 경귀 → 경구 고마와 → 고마워 곰곰히 → 곰곰이 괴로와 → 괴로워 구렛나루 →구레나루 괴퍅하다 →괴팍하다 -구료 → -구려 광우리 → 광주리 고기국 → 고깃국 귀엣고리 → 귀고리 귀절 → 구절 귓대기 → 귀때기 귓머리 → 귀밑머리 깍정이 → 깍쟁이 깡총깡총 →깡충깡충 꼭둑각시 →꼭두각시 끄나불 → 끄나풀 나뭇군 → 나무꾼 나부랑이 →나부랭이 낚싯군 → 낚시꾼 나무가지 →나뭇가지 년월일 → 연월일 네째 → 넷째 넉넉치않다 → 넉넉지않다 농삿군 → 농사꾼 넓다랗다 →널따랗다 담쟁이덩굴→ 담쟁이 덩굴 대싸리 → 댑사리 더우기 → 더욱이 돐 → 돌(첫돌) 딱다구리 →딱따구리 발발이 → 발바리 둥근파 → 양파 뒷굼치 → 뒤꿈치 땟갈 → 때깔 떨어먹다 → 털어먹다 마추다 → 맞추다 멋장이 → 멋쟁이 무우 → 무 문귀 → 문구 미류나무 → 미루나무 미싯가루 → 미숫가루 미쟁이 → 미장이 뼉다귀 →뼈다귀 반가와 → 반가워 발가송이 → 발가숭이 변변챦다 →변변찮다. 보통이 → 보퉁이 볼대기 → 볼때기 빈자떡 → 빈대떡 발자욱 → 발자국 빛갈 → 빛깔 뻐치다 → 뻗치다 뻗장다리 → 뻗정다리 봉숭화 → 봉숭아 사깃군 → 사기꾼 삭월세 → 사글세 살별 → 꼬리별 숨박꼭질 → 숨바꼭질 상판때기 → 상판대기 새앙쥐 → 생쥐 생안손 → 생인손 설겆이하다 → 설거지하다 성귀 → 성구 세째 → 셋째 소금장이 → 소금쟁이 소리개 → 솔개 숫병아리 → 수평아리 : ;숫닭 → 수탉 숫강아지 → 수캉아지 숫개 → 수캐 숫놈 → 수놈 솔직이 → 솔직히 술부대 → 술고래 숫소 → 수소 심부름군 → 심부름꾼 심술장이 → 심술쟁이 살어름판 → 살얼음판 아니꼬와 → 아니꼬워 아니요 → 아니오 아닐껄 → 아닐걸 아름다와 → 아름다워 아뭏든 → 아무튼 아지랭이 → 아지랑이 앗아라 → 아서라 애닯다 → 애달프다 어귀 → 어구 여늬 → 여느 오금탱이 → 오금팽이 오똑이 → 오뚝이 웅큼 → 움큼 -올습니다 → -올시다 얼룩이 → 얼루기 욕심장이 → 욕심쟁이 웃니 → 윗니 웃도리 → 윗도리 웃목 → 윗목 오뚜기 → 오뚝이 웃쪽 → 윗쪽 웃츰 → 윗층 옛부터 → 예부터 웃통 → 윗통 윗돈 → 웃돈 윗어른 → 웃어른 으례 → 으레 -읍니다 → -습니다 이맛배기 → 이마빼기 익살군 → 익살꾼 오무리다 → 오므리다 일군 → 일꾼 일찌이 → 일찍이 우뢰 → 우레 있구료 → 있구려 지푸래기 → 지푸라기 자그만치 → 자그마치 장군 → 장꾼 장난군 → 장난꾼 장삿군 → 장사꾼 저으기 → 적이:  적쟎은 → 적잖은 주착없다 → 주책없다 죽더기 → 죽데기 지겟군 → 지게꾼 지리하다 → 지루하다 짓물다 → 짓무르다 짚북세기 → 짚북데기 천정 → 천장 총각무우 → 총각무 춥구료→ 춥구려 켸켸묵다 → 케케묵다 코맹녕이 → 코맹맹이 코보 → 코주부 콧배기 → 코빼기 탔읍니다 → 탔습니다 트기 → 튀기 판잣대기 → 판자때기 팔굼치 → 팔꿈치 팔목시계 → 손목시계 펀뜻 → 언뜻 푼전 → 푼돈 풋나기 → 풋내기 하게시리 → 하게끔 하는구료 → 하는구려 하는구면 → 하는구먼 하옇든 → 하여튼 한길 → 행길 할께 → 할게 할찌 → 할지 허위대 → 허우대 허위적허위적 → 허우적허우적 호루루기 → 호루라기 새 맞춤법의 주요내용 ● [읍니다]와[습니다]로  있읍니다 →있습니다. 없읍니다 → 없습니다. ● [장이]와[쟁이]를 구분  미장이,유기장이 등 기술자를 일컬을 때에는 [장이]로, 욕쟁이, 심술쟁이 등 버릇을 일컬을 때에는 [쟁이]로 한다. ● [군]을 [꾼]으로  일군 → 일꾼, 농삿군 → 농사꾼 ● [와]를 [워]로 고마와 → 고마워, 가까와 → 가까워 ● 수컥을 이르는 말은[수]로 통일  수꿩, 수캉아지, 수컷, 수평아리  (예외:숫양,숫쥐,숫염소) ● [웃], [윗]은 [윗]으로 통일 ·윗도리, 윗니, 윗목 (된소리나 거센소리 앞에서는 [위]로 쓴다 : 위짝,위턱) ·[아래·위]대립이 없는 단어는 [웃]으로 쓴다. 예 : 용돈,웃어른) ● 성과 이름을 붙여쓴다. 이 순신 → 이순신, 김 구 → 김구 ● 수를 적을 때는 만·억·조·의 단위로 쓴다. 이억팔천오백십육만칠천팔백구십팔 개정된 외래어 표기법 ● 인명·지명의 표기 고호 → 고흐 베에토벤 → 베토벤 그리이스 → 그리스 시저 → 타이사르 뉴우요오크 → 뉴욕 아인시타인 → 아인슈타인 뉴우지일랜드 → 뉴질랜드 에스파니아 → 에스파냐 뉴우튼 → 뉴튼 처어칠 → 처칠 디이젤 → 디젤 콜룸부스 → 콜롬버스 루우스벨트→루스벨트 토오쿄오 → 도쿄 페스탈로찌 → 페스탈로치 마오쩌뚱 → 마오쩌둥 모짜르트 → 모차르트 헷세 → 헤세 말레이지아 → 말레이시아 힙포크리테스 → 힙포크라테포 뭇솔리니 → 무솔리니 바하 → 바흐 ● 일반용어의 표기 뉴우스 → 뉴스 도우넛 → 도넛 로보트→ 로봇 로케트 → 로켓 보올 → 볼 보우트 → 보트 수우프 → 수프 아마튜어 → 아마추어 어나운서 → 아나운서 유우엔 → 유엔 텔레비젼 → 텔레비전 포케트 → 포켓      
272    "한글통일"이 언제 오려나(2)... 댓글:  조회:2854  추천:0  2017-02-22
총     칙 (조선 국어사정위원회 1987년판 조선말규범집 띄여쓰기 규범) 조선어의 글에서는 단어를 단위로 하여 띄여쓰는것을 원칙으로 하되 자모를 소리마디단위로 묶어쓰는 특성을 고려하여 특수한 어휘부류는 붙여쓰도록 한다. 제1장   명사와 관련한 띄여쓰기 제1항. 토가 붙은 명사는 뒤의 자립적인 명사와 띄여쓴다. 례:  ―  사상에서 주체, 정치에서 자주, 경제에서 자립, 국방에서 자위     당과 수령의 배려     숨은 영웅들의 모범   ―  당의 유일사상체계     주체위업을 만대에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 제2항. 명사들이 토없이 직접 어울린 경우에는 하나의 개념을 가지고 하나의 대상으로 묶어지는 덩이를 단위로 띄여쓴다. 1) 일반적인 대상을 나타내는 경우 (1) 기관이름이나《국, 처, 과…》등의 조직기구체계의 이름과 그 직명사이는 줄어들지 않는 경우에 띄여쓴다. 례:  조직계획처 처장, 강연과 과장, 당위원회 지도원, 행정 및 경제지도위원회 지도원 그러나 기관, 부서의 이름과 직무사이가 줄어든 경우에는 그것들을 붙여쓴다. 례:  정무원총리, 도당책임비서, 조직계획처장, 연구실장, 군당조직비서, 인쇄직장장, 상점책임자, 출판사장, 갱구장 (2) 일정한 단계를 이루면서 련달아 결합된 단위는 단계적으로 내려가면서 띄여쓴다. 례:  ―  지난해 늦가을 어느날 이른새벽에     ○○사범대학 력지학부 지리과 2학년 1반     1986년 10월 10일 금요일 오전     협동농장 1작업반 2분조   ―  도당위원회 ○○부 ○○과 지도원     동경 62도 5분     오후 3시 20분, 령하 20도, 기원전 3세기, 섭씨 2도 (3) 앞의 명사가《부문, 분야, 기관, 담당, 관계, 이상…》등과 함께 쓰이는 경우에 이 단어들은 앞단위에 붙여쓰며《부문, 분야, 기관, 담당, 관계, 이상…》의 뒤에 오는 단위는 띄여쓴다. 례:  관계부문 일군들   농촌경리부문 일군들   행정경제분야 책임일군들   국가기관 지도일군들   사회과학과목관계 교원들   소대장이상 간부들   체육담당 지도원들 그러나 이것들이 딴 단어와 결합되여 하나의 단위로 될 때는 붙여쓴다.   부문위원회, 기관책임자, 관계기관, 담당지도원 (4) 개념상《하나의 대상으로 묶어지는 덩이》인 일반명사에서 앞에《년(년도)》이 오는 경우에는 그것을 뒤의 단어와 띄여쓴다. 례:  1985년 인민경제 및 사회발전계획 초안   1985년 국가예산   1986년도 1.4분기 세부계획 (5) 명사들이 토없이 련달아 어울리는 경우에는 하나의 대상으로 묶어지는 단위별로 띄여쓴다. 례:  우리 나라 사회주의건설 장성속도 시위   우리 당 언어정책 관철정형에 대한 서술   전공지식 습득정형 료해장악과 관련   하루 평균생산실적 부쩍 장성   도내 제철공장 콕스 7억여톤 절약   이웃집 마루방벽에 걸린 그림   15세기중엽 우리 나라 사회경제형편 (6) 같은 명사끼리 토없이 어울린 경우에 하나의 개념을 가지고 하나의 대상으로 묶어지는 덩이는 붙여쓴다. 례:  ―  사회의주건설, 물고기잡이전투, 사회주의농촌, 강철공업, 사회주의농촌건설, 국제로동운동   ―  어업로동자, 국어교원, 단행본편집원, 농업근로자, 철도로동자 (7) 명사가 토없이 수사나 부사와 어울려 하나의 대상을 나타내는 단위는 붙여쓴다. 례:  ―  2중영웅, 2중3대혁명붉은기, 백날기침, 7개년계획, 3개년인민경제계획, 열두삼천리벌   ―  세벌김, 네발짐승, 1년열두달, 3년석달     척척박사   ―  산들바람 2) 고유한 대상을 나타내는 경우 (1) 단계적으로 내려가면서 이루어지는 정식으로 되는 기관, 부서, 직무는 각각 띄여쓴다. 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 부장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무원 총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의원   사회과학원 과학지도국 국장   ○○공산대학 학장(강좌장)   ○○제1사범대학 도서관 관장(부관장)   3.8유치원 원장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대표단 단장 【붙임】 고유명칭에서 차례, 등급, 특징, 돐 등을 따로 드러나게 할 때에는 이에 준한다. 례:  ―  자유독립훈장 제1급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 20주년 기념훈장     전사의 영예훈장 제1급     제3차 7개년계획, 제2차 세계대전     제1차 원수폭금지세계대회     사회주의10월혁명 60돐 기념행사 (2) 단계적으로 마디를 이루는 회의, 사변, 기념일 등은 그 매개 단위를 띄여쓰되 마지막의 명칭은 그앞의 단위에 붙여쓴다. 례:  ―  화룡현 홍기하전투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6기 제10차전원회의     평양시 농촌경리부문 책임일군협의회   ―  공화국정부성명지지 ○○시군중대회     보천보전투승리기념 사회과학원토론회   ―  조선인민군창건 ○○돐기념 평양시경축대회     보천보전투승리 ○○돐 사회과학토론회     꾸바혁명승리 ○○돐 7월26일대회 【붙임】 이 경우에 기념대상, 시기, 주최자 등의 일부가 줄어들 때는 한 단위 또는 두 단위로 띄여쓸 수 있다. 례:  ―  공화국정부성명 ○○시지지대회     공화국창건 20돐기념   ―  보천보전투승리 기념강연회     인민군창건기념일 (3) 고유한 명칭이 한덩어리로 붙지 못하고 떨어지는 경우는 단어들의 결합관계를 고려하여 다음과 같은 형식으로 띄여쓴다. 례:  조선통일지지 라오스위원회   주체사상연구 부르끼나파쏘위원회   주체사상연구 마다가스까르 프로레타리아운동 전국위원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주재 독일민주주의공화국대사관   오끼나와주둔 미해병대소속 고용병놈 (4) 개념상《하나의 대상으로 묶어지는 덩이》를 이루는 고유명칭은 붙여쓰는것을 원칙으로 한다. 례:  ―  조선로동당,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일성종합대학, 타도제국주의동맹, 조선사회주의로동청년동맹,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새날협동농장, 김종태사법대학, 서남아프리카인민조직, 평양제1고등학교, 사리원제1사범대학, 개성학생소년궁전   ―  김혁, 차광수, 리보배, 김한길, 황보노을, 독고영숙   ―  김일성저작집, 김일성훈장, 자유독립훈장, 주체사상탑, 개선문,《승리―58》형,《만경봉》호,《자주》호 그러나 외국의 나라이름이나 고유대상이름, 사변이름, 사람이름 등은 그 나라에서 하는대로 따른다. 례:  세인트 루씨아   산토메 프린시페   싼 마리노   에르네스또 체 게바라   크라스나야 즈베즈다 (5) 주요 사변, 운동, 회의, 조약, 기념일, 공식대표, 강령, 선언 등의 이름은 하나로 붙여쓴다. 례:  ―  4.15명절, 4월15일명절, 2.16명절, 2월16일 명절, 평양선언, 7.4공동성명, 9.9절, 남호두군정간부회의, 동년현성진공전투, 3대혁명붉은기쟁취운동, 3.1인민봉기, 독일민주주의공화국대표단, 3.8국제부녀절, 전국어머니대회, 조국광복회10대강령, 2월17일과학자, 기술자돌격대 (6)《쏘련, 중국, 민주예멘, 영국, 프랑스, 일본…》등은 국가의 정식이름이 줄어든 형태로 보고 그 뒤에 오는 단위는 붙여쓴다. 례:  쏘련외무성 부상   중국문화부장 도착   프랑스정부 각료 3) 고유한 명칭의 앞뒤에 보통명사적인것이 어울린 경우 (1) 고유한 명칭의 앞뒤에 오는 보통명사적인것은 원칙으로 띄여쓴다. 례:  ―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조선중앙방송위원회 탁구선수     량강도 지방공업, 평양시 건설, 청진시 근로자들   ―  창성군내 인민들, 함흥경기장 앞마당, 2.8문화회관 뒤면   ―  중앙인민위원회 정령, 로동행정부 지시, 국영 제○○농장 종업원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성명, 조선로동당 친선참관단, 조선중앙통신사 대변인성명, 일본사회당 특별성명 (2) 동격어나 이에 준하는 단위는 띄여쓴다. 례:  ―  항일혁명투쟁참가자 오중흡, 공화국영웅 안영애, 박사 김준식, 인민배우 김인덕, 원사, 박사 김경남, 공훈예술가 리익성, 외교부장 ○○○○○○각하, 본사기자 황병희   ―  당보 《로동신문》, 당기관잡지 《근로자》, 영웅도시 평양, 천하명승 금강산     로씨야작가 레브. 똘스또이의 《전쟁과 평화》     소설가 에틸리온 보이니츠의 《등에》 (3) 칭호, 직명 등이 뒤에 올적에는 그것을 앞에 붙인다. 례:  ―  김철수동지, 옥희아주머니, 리수복영웅, 성희누나, 소창길부장, 순철로인, 김춘식박사, 김일순선생님, 안영철아바이, 죠리오큐리녀사   ―  위노그라노브원사, 사스뜨라 아미죠오각하, ○○부장동무   ―  한일권대의원선생, 김철이박사선생 그러나 뒤에 오는 칭호나 직명을 붙여씀으로써 달리 리해될수 있는 경우에는 띄여쓸수 있다. 례:  김철 부부장, 장욱 총국장 (4) 고유한 명칭의 중간에 끼는《직속, 부속, 소속, 산하, 아래…》등은 앞단위에 붙여쓰며 그 뒤단위는 띄여쓴다. 례:  ○○○사범대학부속 ○○○고등중학교, ○○동무소속 해안포중대, 채취공업워원회산하 광산, 탄광, 과학원아래 각 연구소들 【붙임】 그러나 이것들이 일반적인 대상과 어울릴적에는 뒤단위에 붙여쓴다. 례:  직속기관, 부속인민학교, 산하기업소, 소속구분대, 아래기관 (5) 기관, 부서, 행정단위 등의 이름앞에《3대혁명붉은기, 근위, 천리마…》와 기타 칭호들이 오는 경우에 칭호는 뒤단위와 띄여서 쓴다. 례:  ―  천리마 ○○○일용품공장, 3대혁명붉은기 ○○탄광기계공장, 근위1급 ○○군 ○○ 협동농장   ―  천리마 청년작업반, 평안북도 ○○군 ○○협동농장 천리마 제1작업반 3분조 그러나 이것들이 뒤에 오는 단위와 결합되여 하나의 단위로 될 때에는 붙여쓴다.   3대혁명붉은기공장, 천리마작업반 4) 나란히 어울린것에 공통적으로 걸리는 단위가 온 경우 (1) 자립적으로 쓰이면서 두 단위에 각각 공통적으로 걸리는 단위는 모은 경우에 띄여쓴다. 례:  ―  해주와 사리원 지방     사상혁명, 기술혁명, 문화혁명 수행   ―  세계각국 국회 및 국회의원들     축구와 배구 및 롱구 경기 (2) 다른 명사의 앞에서 그것과 붙여서 쓰는《국제, 선진, 원시, 원생…》등이 공통적인것의 앞에 올 때는 띄여쓴다. 례:  ―  국제 공산주의운동과 로동운동     선진 기술과 리론     원시 유적과 유물     원생 식물과 동물 (3) 반점(,)과 같은 부호를 찍어서 명사들이 렬거된 경우에는 앞뒤에 오는 공통적 단위는 띄여쓴다. 례:  교원, 학생, 사무원 협의회   대학내 교원, 학생 사무원   세멘트, 강철, 석탄 생산실적   사진, 도서 전람회   국영 공장, 농장, 사무원들 【붙임】 뒤에 공통적으로 걸리는 칭호, 직명 같은것도 앞명사와 띄여쓴다. 례:  ―  김정법, 박곰손, 황영순 동무들     김한길, 리순이, 정일모 연구사들 (4) 공통적으로 걸리는 단위로 보아도 불합리하고 공통적으로 걸리지 않는 단위로 보아도 불합리한 경우에는 다 띄여쓰는것을 원칙으로 한다. 례:  당, 국가, 경제 기관 일군들   국영농장, 협동농장, 개인부업 경리 (5) 호상관계가 두번이상 이루어지는 단위를 나타내는 말마디나 단어《사이》는 띄여쓰는것을 원칙으로 한다. 례:  ―  국영, 협동단체 및 합영기관 공업총생산액     학교, 마을 그리고 가정 위생상태   ―  협동적 소유와 협동적 소유, 전인민적 소유와 전인민적 소유, 협동적 소유와 전인민적 소유 사이 (6) 두개 또는 그이상의 명사가 아무런 부호없이 같은 자격으로 어룰리는것의 뒤에 공통적인것이 올 때는 붙여쓴다. 례:  ―  사상기술문화혁명을 수행한다.     대외대내정세의 연구     아침저녁식사를 여기서 한다.     교원학생궐기모임이 있었다.     조직정치사업에 뒤이어     사회정치활동 진행정형을 총화한다. (7) 공통적으로 걸리는 단위가 하나의 소리마디로 되였거나《하다, 되다, 시키다…》등이 오는 경우에는 그 앞단위에 붙여쓰는것을 원칙으로 한다. 례:  각 도, 시, 군당 책임비서   창성, 피현, 대관군 소재지   기술신비주의, 보신주의적 태도   계속혁신, 계속전진하는 집단 5) 앞명사를 다시 받는다고 할수 있는《자신, 자체, 전체, 전부, 전원, 일행, 일가, 일동, 일체, 모두…》등은 그 앞단위에 붙여쓰는것을 원칙으로 한다. 례:  기사장자신이 만들었다.   지구자체도 돈다.   로동자전체가 일떠섰다.   학생전원이 참가했다.   려행자일행은 휴식도 없이 걸어갔다.   박사일가는 오늘도 모여앉았다.   아들딸모두가 행복하게 자랐다. 【붙임】《스스로》도 이에 준하여 처리한다. 례:  참가자스스로가 이야기의 참뜻을 깨달았다.   학생스스로가 대답하였다. 제3항. 불완전명사와 이에 준하는 단위들은 원칙적으로 앞단어에 붙여쓰며 일부 경우에 띄여쓰는것으로 조절한다. 1) 순수한 불완전명사는 앞단어가 어떤 품사이건, 이떤 형태에 놓여있건 언제나 그것에 붙여쓴다. 례:  ―  분…그분, 어느분, 걸어가고있는분     탓…아이탓, 누구탓     것…좋은것, 나의것, 갈것     나위…말할나위가 없다     녁…해질녘, 날이 샐녘     지…떠난지, 간지가 오래다     때문…그때문에, 가기때문이다     리…갈리 없다, 모를리가 없다     번…이번 전람회     양…아는양을 한다   ―  걷거나 앉아있는분     좋고나쁜것, 말하거나 쓸나위가 없다, 날이 새고 동틀녘, 그와 나때문이다, 가거나 올리 없다 2) 《상, 중, 간, 판, 경, 항, 측, 장, 조, 전, 편, 산, 호, 성, 하, 전, 후, 내, 외, 차, 초, 말, 발, 착, 행, 년, 부, 별, 용, 분, 과, 급, 당, 기, 계, 래, 형, 제, 식, 상(모양), 적》 등과 같은 한자말이나 불완전명사와《뒤붙이적 단어적》는 그 앞단위에 붙여쓰며 그뒤에 오는 단위는 띄여쓴다. 례:  ―  상…시간상 제약을 받는다.     중…회의중 사담을 하지 말것     간…형제간 의리를 지킨다.     전…학령전 아등교양문제     후…전쟁후 6년간의 생활     내…학교내 위생환경을 변혁     초…올해초 기후변동은 매우 심했다.     발…평양발 급행렬차, 보건부발 제00호     부…3일부 신문     분…5월분 강철생산계획     별…개인별 경쟁     용…학생용 책가방     급…대사급 외교관계     과…화본과 식물     당…단위당 생산능률     계…민단계 인사들     차…제20차 올림픽경기대회     조…제1조     행…개성행 렬차     래…몇십년래의 대풍년     착…평양착 2렬차     외…계획외 공사     전…영웅전     말…12월말 생산실적     하…현정세하에서…     기…제1기 졸업생, 최고인민회의 제8기 제1차회의     상…반월상 긴경절     판…제1판     경…12월경     항…제1항     측…우리측 대표     장…제1장     편…제1편     편…《만경봉호》편     호…제1호     형…최신형 중거리미싸일     식…중앙련쇄식 계전기련동장치     제…외국제 경기관총     성…만성 진행성 변이성 이발주위염     산…○○○산 닭고기     적…전국적 전력소비실태자료 3) 시간과 동간의 뜻을 추상적으로 나타내는 고유어명사 《앞, 옆, 뒤, 끝, 속, 밖, 안, 우, 아래, 밑, 사이(새), 때, 제, 곁, 길, 군데, 해, 달, 날, 낮, 밤, 곳, 자리, 고장, 어간, 어구, 가운데, 구석》 등은 토없는 명사, 수사, 대명사 뒤에서 붙여쓰며 일부 경우에는 규정형뒤에서도 붙여쓴다. 례:  학교앞에, 말뒤에, 처마끝에, 인민대중속에, 대문밖에, 걸어갈제, 일제때, 이해, 그날, 지난날, 그날밤, 그날낮, 그길로, 제자리, 시는곳, 쉴사이(새) 《년, 놈, 녀석, 자》등도 이에 준하여 처리한다. 【붙임】이러한 경우에《들》은《뒤붙이》와 같이 처리한다. 례:  ―  인민들속에서, 학생들사이, 집들곁에 그러나 이러한 단어들은 다른 단어의 앞뒤에 오면서 자립적인 기능도 수행하며 따라서 띄여쓴다. 례:  ―  앞 키큰 사람     밤 10시     뒤 련합부대 4) 《등, 대, 겸, 따위》와 같은 불완전명사는 원칙적으로 띄여쓴다. 례:  ―  김나리 등이 이겼다. 걷고 뛰고 달리는 등 운동   ―  의학대학 대 체육대학 축구경기     공중 대 지상 화력 시험훈련     대학교원 겸 공장기사     사과, 배, 감 따위의 과일이 많다. 【붙임】그러나《대》,《따위》가 다른 단어와 어울려 하나의 덩이로 됨을 나타낼 때는 붙여쓴다. 례:  ―  지대공유도탄, 지대지미싸일   ―  이따위짓, 그따위놈, 제따위 제4항. 합친말이나 숙어로 된 명사는 붙여쓴다. 1) 동사나 형용사의《ㄴ》,《ㄹ》형이 시칭의 뜻이 없이 명사와 어울리면서 그앞에 다시《ㄴ》,《ㄹ》형의 규정어를 받을수 있는것은 붙여쓴다. 례:  ―  된장(묽은 된장), 식은땀(심한 식은땀), 작은아버지(키큰 작은아버지), 뜬소문(돌아가는 뜬소문), 들돌(내려놓은 들돌), 잔돈(많은 잔돈) 2) 두개이상의 단어가 어울려서 하나로 녹아붙은 단위처럼 된 명사는 붙여쓴다. 례:  ―  못할말, 못된놈, 몹쓸일, 여러차례, 하루밤, 한나절 3) 두개이상의 단어가 겹쳐서 하나로 녹아붙었거나 병렬되는 명사는 붙여쓴다. 례:  ―  집집, 사람사람, 순간순간, 구석구석, 가지가지   ―  아침저녁, 하루이틀, 밤낮 제2장   수사, 대명사와 관련한 띄여쓰기 제5항. 수는 아라비아수자로만 적을수도 있고 순수 우리 글로만 적을수도 있으며 아라비아수자에《백, 천, 만, 억, 조》등의 단위를 우리 글자와 섞어서 쓸수도 있다. 이때의 띄여쓰기는 다음과 같다. 1) 아라비아수자로 적을 때에는 단의 자리로부터 세자리까지는 반점을 찍지 않고 붙여쓰며 그이상의 자리수에서는 세자리씩 올라가면서 반점(,)을 찍는다. 례:  ―  12     325     1,482,522     9,372,586,65   ―  23.5     1,482.52 2) 수사를 우리 글자로만 적거나 아라비아수자에《백, 천, 만, 억, 조》등의 단위를 우리 글자와 섞어 적을 때에는 그것을 단위로 하여 띄여쓴다. 례:  ―  구십삼억 칠천 이백 오십팔만 륙천 삼백 륙십오   ―  3만 5천 6백 25   ―  십삼점 이오(13.25)   ―  삼과 이분의 일 (3 1 ) 2 3) 우리 글자로만 수를 적되《십, 백, 천, 만》등의 단위를 표시하지 않고 수자의 이름으로만 적을 때는 붙여쓴다. 례:  삼오(35), 삼오삼(353), 이사오륙(2456), 칠구공공찰오(790085) 특별한 목적으로 반점을 찍을 필요가 있을 때에는 아라비아수자로만 적을 때와 같은 자리에 (즉 단의 자리로부터 세자리씩 올라가면서) 찍는다. 례:  이, 사오륙(2,456)   칠구공, 공팔오(790,085) 제6항.《수》나《여》, 《나마(나문)》가 수사와 직접 어울려서 대략의 수량을 나타내는것은 붙여쓴다. 례:  ―  수십, 수백만, 수십억, 삼백 수십(개), 수백수천(발), 수삼년, 수삼차   ―  백여, 50여, 1,000여(톤), 5년여, 3시간여, 수십여(년), 수만수천여(개)   ―  100나마, 오백명나마, 석달나마, 스무나문, 여나문 제7항. 수사가 토없이 완전명사와 어울린것은 띄여쓰며 단위명사(또는 이에 준하는 명사)와 어울린것은 붙여쓰는것을 원칙으로 한다. 1) 수사가 토없이 완전명사와 어울린것 례:  두 공산주의자의 이야기   세 기술일군의 참관   일곱 녀학생의 아름다운 소행 2) 수사가 토없이 단위명사(또는 이에 준하는 명사)와 어울린것 례:  50명, 48톤, 5시, 2년, 5일, 두살, 다섯개, 세마리, 한두름, 두벌, 네말, 여섯컬레, 39분, 28초, 네그릇, 12자, 세묶음, 여덟병, 한길, 석단, 학생 9명, 1등, 최근 100년간, 실 한토리, 1급, 1항차, 1량 【붙임】《성상, 세월, 나이, 평생, 고개》등과 같은 완전명사도 단위명사에 준하여 처리한다. 례:  15성상, 70나이의 고령, 60평생, 20여성상, 60여평생, 70살나이에, 마흔고개, 칠순고개, 60살고개 제8항. 대명사는 원칙적으로 다른 품사와 띄여쓰며 불완전명사(또는 이에 준하는 일부 명사)와 직접 어울린것만 붙여쓴다. 례:  ―  내 조국, 우리 식, 우리 말, 이 나라, 제 땅우에서, 제 힘으로…     저기 저 바다로 우리 함께 가자.     내 네 말을 잊지 않고 있다.   ―  이것, 그이, 저분, 무엇때문에, 누구것이냐?, 네탓이다, 이해, 이달, 그밖에, 그곳, 그때, 이때, 제때… 【붙임】대명사가 다른 품사와 어울려 하나의 덩이로 굳어졌거나《자신, 자체, 전체, 모두, 스스로》와 어울리는 경우의 띄여쓰기는 기본적으로 명사의 경우와 같다. 례:  ―  내남없이, 너나들이, 저저마다   ―  나자신, 우리들전체, 그들자체, 우리스스로… 제9항. 같은 수사나 대명사가 겹치면서 강조 또는 여럿의 뜻을 나타내는것은 붙여쓴다. 례:  ―  하나하나, 둘둘, 하나씩하나씩, 둘씩둘씩, 열스무(차례), 하나둘(구령)   ―  누구누구, 무엇무엇(뭣뭣)   ―  너도나도, 그나저나, 이곳저곳, 네것내것, 내일네일 제3장   동사, 형용사와 관련한 띄여쓰기 제10항. 동사나 형용사끼리 어울렸을 경우의 띄여쓰기는 다음과 같이 한다. 1) 토가 붙은 자립적인 동사나 형용사가 다른 자립적인 동사나 형용사와 어울린것은 원칙적으로 띄여쓴다. 례:  ―  들고 가다, 가면서 말한다, 들어서 올리다, 붉게 타다, 깨끗하여 좋다, 용감하고 지혜롭다.   ―  맑고 아름다운 강산, 슬기롭고 용감한 우리 인민 2) 토가 있지만 띄여쓰지 않는것은 다음과 같다. (1)《고》형의 동사가 다른 동사와 어울려 하나의 동사로 녹아붙은것은 띄여쓰지 않는다. 례:  ―  짜고들다, 먹고떨어지다, 밀고나가다, 들고뛰다, 캐고들다, 타고나다, 놀고먹다, 들고치다, 파고들다, 안고뭉개다 (2)《아, 어, 여》형의 동사나 형용사가 보조적으로 쓰이는 동사가 직접 어울린것은 붙여쓴다. 례:  ―  돌아가다, 돌아치다, 몰아내다, 볶아대다, 잡아쥐다   ―  젊어지다, 쓸어버리다, 들어보다, 애써보다, 적어두다   ―  베껴주다, 견디여내다, 버티여내다, 다녀가다   ―  반가와하다, 미워하다, 두려워하다 (3)《아, 어, 여》형이 아닌 다른 형 뒤에서 보조적으로 쓰인 동사나 형용사는 붙여쓴다. 례:  ―  읽고있다, 쓰고있다, 맡고있다, 쉬고있다, 읽고계시다, 쓰고계시다, 맡고계시다, 쉬고계시다   ―  읽고싶다, 먹고싶다, 가고싶다, 듣고싶다, 읽는가싶다, 먹는상싶다, 될상싶다, 아시다싶이, 보시다싶이   ―  하고나서, 끝나고나서, 읽다나니, 늙다나니, 보고나니, 돌아다니다나면   ―  쓰고말다, 보고말다, 버리고말다, 가고말다, 나가자마자, 들어서자마자, 물어보자마자   ―  읽는가보다, 올가보다, 왔댔나보다, 알고보니, 써놓고보니, 세워놓고보니 (4)《아, 어, 여》형의 동사나 형용사가 잇달아있을 경우에는 자립적인 행동의 단위마다 띄여쓴다. 례:  ―  기여넘어가 살펴보다, 들어가 집어올리다, 만나보아 알고있다, 받아안아 덮어쌓다 (5) 토《나, 디, 고, 도 ㄴ…》을 사이에 두고 두개의 동사나 형용사가 겹친것은 붙여쓴다. 례:  ―  크나큰, 기나긴, 머나먼, 높으나높은, 젊으나젊은, 깊으나깊은, 자나깨나   ―  달디단, 쓰디쓴, 높디높은, 깊디깊은, 차디찬, 넓디넓은   ―  넓고넓은, 멀고먼, 부르고부르는, 크고작은, 높고낮은, 주고받는   ―  가도가도, 오도가도, 길고도긴, 넓고도넓은   ―  긴긴(밤), 먼먼(옛날) 【붙임】그밖의 형태의 합친말, 겹친말도 이에 준한다. 례:  ―  높으락낮으락, 이러쿵저러쿵, 죽을둥살둥, 이러니저러니, 들락날락, 왔다갔다, 들쑥날쑥, 본숭만숭, 앞서거니뒤서거니, 덮어놓고, 묻다못해, 하다못해, 보아하니 (6)《듯, 만, 번, 법, 사, 척, 체…》등이 붙은 동사나 형용사가 토없이《하다》와 어울린것은 붙여쓴다. 례:  ―  올듯하다, 들을만하다, 만날번하다, 갈법하다, 웃을사하다, 가는척하다, 아는체하다   ―  올듯말듯하다, 웃을사웃을사하다, 아는체마는체하다 그러나《듯, 만, 번, 법, 사, 척, 체…》뒤에 토가 붙으면《하다》는 띄여쓰기로 한다. 례:  ―  갈듯도 하다, 오를만도 하다, 그럴법도 하다   ―  그럴만은 하다, 아는체를 한다, 웃을사는 한다   ―  올듯말듯도 하다, 웃을사웃을사는 한다, 아는체마는체를 한다 (7) 토《지》가 붙은 동사나 형용사가 다른 단어와 어울린것은 띄여쓴다. 례:  ―  그렇지 않다, 이기지 못하다, 맞갖지 않다, 갈지 모른다   ―  마지 못해, 머지 않아, 못지 않다   ―  믿어마지 않다 바라마지 않다     그리여마지 않다, 존경하여마지 않다 제11항. 동사, 형용사가 명사, 부사와 어울린 경우의 띄여쓰기는 다음과 같다. 1) 토없는 명사에《하다, 되다, 시키다》가 직접 붙은것은 붙여쓴다. 례:  ―  건설하다, 겨냥하다, 나무하다, 눈짓하다, 바느질하다, 창조하다, 투쟁하다, 이신작칙하다, 영광찬란하다   ―  구현되다, 련관되다, 참되다, 창설되다, 영웅되다, 공고발전되다   ―  련습시키다, 분리시키다, 숙련시키다, 공고발전시키다, 긍정감화시키다 그러나《하다, 되다, 시키다》의 앞에《못, 아니, 안》등이 끼일 때에는 앞의 명사단위를 띄여쓴다. 례:  용서하다 ― 용서 못하다   말하다 ― 말 못하다   허용되다 ― 허용 안되다   모순되다 ― 모순 안되다   운동시키다 ― 운동 안시키다   숙련시키다 ― 숙련 못시키다 2) 명사에《지다》가 직접 어울린것은 붙여쓴다. 례:  ―  값지다, 홑지다, 건방지다, 외지다, 구성지다, 멋지다, 둥글지다, 아롱지다   ―  모지다, 살지다, 그늘지다, 굽이지다, 장마지다, 언덕지다, 얼룩지다, 열매지다, 짝지다 3) 토없는 명사에《답다, 거리다, 겹다, 맞다, 궂다, 적다, 어리다》등이 직접 어울려서 형용사를 이루는것은 붙여쓴다. 례:  ―  꽃답다, 남자답다, 청년답다, 녀성답다, 인민군대답다   ―  흥겹다, 눈물겹다, 정겹다   ―  능청맞다, 방정맞다   ―  심술궂다, 버릇궂다, 험상궂다   ―  멋적다, 맛적다, 열적다   ―  지성어리다, 정성어리다, 정기어리다, 피어리다 4) 토없는 명사에 고유어로 된 동사와 형용사가 직접 어울려서 하나의 동사나 형용사를 이루는것은 붙여쓴다. 례:  ―  꿈꾸다, 춤추다, 잠자다, 짐지다, 셈세다, 숨쉬다, 금긋다, 걸음걷다, 뜸뜨다   ―  가살부리다, 극성부리다, 심술피우다, 익살피우다, 방정떨다, 엄부럭떨다, 소리치다, 활개치다, 굽이치다, 고동치다, 끝맺다, 시집가다, 맴돌다, 감사납다, 길차다, 힘차다, 주제넘다, 몸풀다, 눈팔다, 낯설다, 일삼다   ―  낯익다, 눈멀다, 힘들다, 빛나다, 유벌나다, 끝나다, 한결같다, 낮같다, 류다르다, 눈부시다, 때늦다, 움트다, 싹트다, 해지다, 번개치다, 대바르다, 가슴아프다, 심술궂다, 남부럽다, 마음놓다, 의리깊다, 실속있다, 패기있다, 활기있다, 깊이있다, 무게있다, 쉴새없다, 맥없다, 힘없다, 례절없다, 눈치없다, 나많다, 꼴사납다, 나어리다, 발벗다, 수놓다, 마감짓다, 매듭짓다, 손대다, 밥먹다, 발맞추다, 꽃같다, 꿀같다 【붙임】대명사나 그밖의 품사와 어울려 하나의 동사나 형용사로 쓰이는것도 이에 준한다. 례:  ―  그같은, 이같은, 나보고, 너나들이하면서, 제자리걸음하고…   ―  곧이듣다, 내리누르다, 가로채다, 올리벋히다, 가로지르다, 냅다지르다, 냅다치다, 기껏해서 5) 동사, 형용사가 명사, 부사와 어울려 잇달아있는 경우에는 행동의 단위에 따라 처리한다. 례:  ―  몸바쳐 일하고있다.     어깨겯고 나아간다.     앞장서 나가고있다.     몸바쳐 투쟁해나가고있다.   ―  해빛을 받아안고 솟구쳐나다.     일을 바로잡아 고쳐나갔다.     제품을 만들어 내려보냈다.     물에 씻겨 내려가고있었다. 6) 동사, 형용사의 앞에 오는 명사에 토가 없어도 토를 줄였다는것이 뚜렷하고 끊기여 발음될 때는 띄여쓰는것을 원칙으로 한다. 례:  은혜로운 해발 안고   사랑의 정 품고   간절한 마음 담아   멸적의 기세 드높은   우리의 정성 담은 선물 제11항.《앞, 뒤, 곱, 겹》등이 동사나 형용사와 어울린것은 붙여쓴다. 례:  ―  앞서다, 앞지르다, 앞당기다, 앞차다, 앞두르다   ―  뒤서다, 뒤늦다, 뒤떨어지다, 뒤쫓다, 뒤돌리다   ―  곱먹다, 곱가다, 곱돕다, 곱씹다   ―  겹쓰다, 겹쌓다, 겹입다, 겹차다, 겹싸다 【붙임】《앞장, 버금, 다음, 으뜸》과《첫째》도 이에 준한다. 례:  ―  앞장서다, 버금가다, 다음가다, 으뜸가다, 첫째가다 제4장   관형사, 부사, 감동사와 관련한 띄여쓰기 제13항. 관형사는 그뒤의 단어와 띄여쓴다. 례:  ―  모든 공장, 여려 책, 온갖 문제, 새 규정책, 온 마을, 별의별 이야기, 별 이야기, 각 도서관, 여느 기술자, 제반 사실, 첫 전투, 첫 프로레타리아정권, 맨 웃자리, 현 국제정세, 매 도, 매 군, 무슨 일, 어느 동무, 웬 사람, 순 독학으로, 귀 대표부, 딴 사람, 전(이전) 대통령, 한다는 선수, 이까짓 종이   ―  온갖 한다는 선수들, 별 딴 문제, 무슨 별별 이름모를 식물들, 여러 새 양복, 그까짓 딴 마음, 한다는 여러 인사들, 제반 새 사전들, 별의별 새 이야기   ―  원 이름밑에 새 이름을, 옛 전우들의 모습, 온 정신을 가다듬어, 각 대학 학생들 이와 관련하여 관형사《첫, 새》등은 일부 합친말의 구성부분으로 된것만을 례외적으로 붙여쓰기로 한다. 례:  ―  첫코, 첫발, 첫맛, 첫날옷, 첫젖, 첫어구, 첫인상, 첫길, 첫더위, 첫물, 첫울음, 첫술, 첫눈, 첫정, 첫끝, 첫입, 첫날밤, 첫머리, 첫시작, 첫새벽, 첫추위, 첫아침, 첫인사, 첫출발, 첫국밥, 첫솜씨, 첫마수걸이, 첫닭울이, 첫걸음마   ―  새색시, 새각시, 새신랑, 새서방, 새해 그밖의 관형사도 합친말의 구성부분으로 들어간것은 붙여쓴다. 례:  ―  각살림, 온종일, 전당, 별소리, 헌쇠, 딴판, 옛말, 헛물, 맨주먹, 원가지, 전세계 【붙임】《일단》과《전체, 일부, 소수, 극소수, 력대, 해당》등은 관형사적으로 처리하여 명사의 앞에서 띄여쓴다. 례:  ―  일단 유사시, 전체 인민, 일부 력량, 해당 력사적 사실   ―  소수 자본가계급, 극소수 특권층, 력대 위정자들 제14항. 부사는 기본적으로 띄여쓰되 특수한 경우에 조절하여 붙여쓴다. 1) 자립적인 모든 부사는 띄여쓴다. 례:  ―  나란히 눕다, 따뜻이 보살피다, 먼저 가다, 무척 애쓰다, 바로 찌르다, 극력 아껴쓰다, 아까 떠났다, 가까이 접근하다   ―  비교적 높다, 편의상 한곳에 넣어둔다, 사실 알고있었다, 정말 기적적이다   ―  똑바로 서다, 스스로 물러가다, 더욱 아름답다, 차차 더워지다, 철렁 떨어지다, 반드시 읽어야 한다, 잘 쓴다, 잘 간다 2) 일부 부사에《하다, 되다, 시키다》가 붙어 하나의 동사처럼 된것은 붙여쓴다. 례:  못하다, 잘되다, 안시키다, 덜되다 3) 부사를 겹쳐쓰거나 잇달아쓸 경우에는 붙여쓴다. 례:  ―  가득가득, 서로서로, 거듭거듭, 고루고루(골고루), 어슬렁어슬렁, 차츰차츰, 높이높이, 다시다시, 다시금다시금, 두고두고   ―  더욱더, 더더욱, 이리저리, 울긋불긋, 그럭저럭, 얼기설기, 허둥지둥, 올망졸망, 곧이곧대로   ―  또다시, 한층더, 모두다, 다같이, 똑같이 4) 부사가 다른 품사의 단어와 어울린 경우라도 한덩어리로 굳어진것은 붙여쓴다. 례:  ―  가슴깊이, 심장깊이, 가슴뿌듯이, 가슴듬뿍, 하늘높이, 가뭇없이, 영낙없이, 난데없이, 끝없이, 한량없이, 한없이, 한결같이, 감쪽같이, 불같이, 벼락같이, 꿈결같이   ―  더없이, 꼼짝없이, 덧없이, 다시없이, 하염없이, 두말없이   ―  꼼짝못하게, 쥐죽은듯이   ―  왜냐하면, 다시말하여, 아닌게아니라, 다름아니라 5) 이음부사 《및, 또, 또한, 또는》등이 두개 이상의 단어를 련결할 때에는 그 앞뒤단위를 언제나 띄여쓴다. 례: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당 및 정부대표단     로동자, 농민, 근로인테리 및 군인들     평양시행정 및 경제지도위원회     화학 및 경공업위원회   ―  전진, 전진, 투쟁 또 투쟁     사과와 배 또는 복숭아와 감     솜씨있는데다가 또한 용단도 있다 제15항. 두개이상의 서로 다른 품사가 하나로 녹아붙어 한마디의 부사와 같이 된 경우는 붙여쓴다. 례:  ―  간밤에, 오는해에, 지난해에, 지난달에, 이른봄에, 이른아침에, 낮은가을에   ―  여름날에, 봄날에   ―  이다음, 요사이, 이해에, 그해에, 이달에, 그날에, 그사이, 그동안 제16항. 감동사나 느낌을 나타내는 말마디들은 소리와 뜻을 고려하여 따로 띄여쓴다. 례:  ―  아아 아!   ―  아 아아!     이뿔사, 열쇠를 잊었군!   ―  여, 빨리 끝내세, 박동무!     응, 곧 끝내겠네.     좋소! 기다리지   ―  얼씨구 절씨구 얼싸 둥둥     얼씨구절씨구 얼싸둥둥 제5장   특수한 말, 특수한 어울림에서의 띄여쓰기 제17항. 글의 론리적 련관에 따라 붙여쓰고 띄여쓰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 1) 동격어를 받는 단어의 뒤에 온 명사는 띄여쓴다. 례:  신문《민주조선》창간   박사 김준석동지 집필원고   작가 리기영선생 창작사업 2) 련달아서 명사들이 토없이 어울릴 때 그 명사들사이를 떼고 붙이는것은 앞에 놓인 단위와의 론리적 련관에 따른다. 례:  ―  우리 당 정책 관철에서     우리 집 문제, 새 전망계획 기간     낡은 사상 잔재, 낡은 사상 독소     사상, 기술, 문화의 3대혁명 수행     여러가지 광물 생산실적     우리 나라 주재 ○○대사관   ―  김 아무개 청년을 포함한 대표단성원(대표단성원 전체)     김 아무개 청년을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 성원(대표단의 한 성원)   ―  새 전쟁 도발책동(새 전쟁)     새 전쟁도발책동(새 책동) 제18항. 고유어로 된 차례수사가 규정어로 될 때는 그 뒤 단위를 띄여쓴다. 례:  ―  첫째 문제, 둘째 강의, 셋째 주, 넷째 손잡이 이에 준해서《첫번째, 두번째…》등도 같이 처리한다. 례:  첫번째 교실   두번째 집   다섯번째 공격 제19항. 명사와 토없이 직접 어울린《너머, 따라, 건너, 걸러》는 붙여쓴다. 례:  산너머 외가집에 갔다.   오늘따라 바람이 세군.   바다건너 먼 대륙에서 왔다.   두달걸러 받았다. 제20항. 여러가지 부호 다음에 오는 토는 그 부호뒤에 붙여쓴다. 례:  ―《가》에서《ㅏ》가 모음이다.   ― X는 모르는 수이다. 례:  ―  그는《불이야》라고 웨쳤다. 제21항. 학술용어, 전문용어의 띄여쓰기는 다음과 같다. 1) 하나의 대상, 하나의 개념을 나타내는 용어는 품사소속과 형태에는 관계없이 붙여쓰는것을 원칙으로 한다. 례:  ―  난바다, 먼바다, 먼거리수송대, 나도국수나무, 꿩의밥풀, 굳은-넓은잎나무   ―  나무타르, 변형이음률, 세마치장단, 끝소리법칙, 한곬빠지기현상 2) 규정어, 보어, 상황어로서의 구획이 뚜렷한 대상의 이름은 원칙적으로 그 규정어, 보어, 상황어 단위로 띄여쓴다. 례:  ―  모뜨는 기계, 모내는 기계, 벼베는 기계, 풀베는 기계, 벼가을하는 기계, 강냉이영양단지모 옮겨심는 기계, 짐싣고부리는 기계   ―  키큰 나무, 키작은 나무, 떨어진 과일, 물얕은 바다 제22항. 성구나 속담 등의 띄여쓰기는 다음과 같다. 1) 단어들이 토없이 어울려 이루어진 속담이나 고유어성구는 윈칙적으로 붙여쓴다. 례:  ―  곁불맞다, 량다리치기, 식은죽먹기, 수박겉핥기   ―  이웃사촌, 오누이쌍둥이, 부엉이셈, 토끼잠   ―  두루미꽁지같다, 선손쓰다, 코떼우다 2) 토가 줄어진 속담이나 성구는 원칙적으로 단어 또는 단어화된것을 단위로 띄여쓴다. 례:  ―  소 닭보듯     고양이 쥐생각하듯     꿩구워먹는 자리 ===================================== /////////////////////////////////////////////////////////////////////////////////////// ===================================== (조선 국어사정위원회 2003년판 띄여쓰기 새 규정) 단어를 단위로 띄여쓰는것을 원칙으로 하되 글을 읽고 리해하기 쉽게 일부 경우에는 붙여쓴다. 1항 토뒤의 단어나 품사가 서로 다른 단어는 띄여쓴다. 례: ○ 선군정치는 민족의 자주성을 위한 필승의 보검이다. ○ 하나에 하나를 합하면 더 큰 하나가 된다. ○ 건설을 하다, 가슴이 뜨겁다, 꿈을 꾸다. ○ 두 대학생의 아름다운 소행 ○ 온갖 새들이 찾아드는 숲 ○ 온 도가 떨쳐나섰다. ○ 전쟁시기 잘 싸운 로병부부 ○ 아, 얼마나 아름다운 마을인가 ○ 옴의 법칙, 피타고라스의 정리 ○ 저녁을 먹은 후에 보자 ○ 일을 시작하기 전에 준비작업을 빈틈없이 해야 한다. 2항 하나의 대상이나 행동, 상태를 나타내는 말마디는 토가 끼이였거나 품사가 달라도 붙여쓴다. 1) 토가 없이 이루어져 하나의 대상, 행동, 상태를 나타내는 경우 례: ○ 선군혁명로선, 군사중시사상, 조선민족제일주의 ○ 건설하다, 각성하다, 궐기시키다, 꽃피다, 불타다, 애쓰다, 때이르다, 가슴뜨겁다, 기쁨어리다, 꿈꾸다, 잠자다. ○ 척척박사, 갑작부자, 만세소리 ○ 1211고지, 1호발전기, 3,000t급짐배 ○ 최신형설비, 혁명적군인정신, 조선식사회주의 ○ 세손가락울림법, 미리덥히기, 갑작변이 ○ 새날, 새서방, 별말씀, 온종일, 총지휘자, 총참모부, 대조선정책 ○ 아침저녁, 서로서로, 가슴깊이, 다같이, 때아닌, 첫째가는, 지대공미싸일 2) 토를 가지고 이루어져 하나의 대상, 행동, 상태를 나타내는 경우 례: ○ 작은아버지, 큰고모, 잔돈, 맬가방, 앉을자리, 가까운바다, 먼바다, 찬단물, 식은땀 ○ 모내는기계, 붉은기, 푸른색, 짠맛, 신맛 ○ 떨어지다, 몰아치다, 놀아나다, 빚어내다, 먹어대다, 놀고먹다, 가고말다, 먹고싶다, 짜고들다, 가르쳐주다, 돌아보다, 들었다놓다 ○ 여러말할것없이, 의심할바없이 아니나다를가, 가나오나, 가든오든, 가건말건, 달디단, 가네오네, 가리오리, 죽기내기로, 하다못해, 왜냐하면, 무엇보다먼저 3항 고유한 대상의 이름을 붙여쓰되 마디를 이루면서 잇달리는것은 매 마디마다 띄여쓴다. 례: ○ 조선로동당,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책공업종합대학, 대동문식료품상점, 리제순사리원제1사범대학 ○ 조선로동당 평양시 강남군위원회, 평양시 중구역 대동문동, 사회과학원 행정조직국 ○ 조선직업총동맹 중앙위원회, 조선농업근로자동맹 중앙위원회 ○ 조선통일지지 라오스위원회, 아시아지역 주체사상연구소 ○ 로씨야 차이꼽스끼명칭 모스크바국립음악대학 합창단, 제20차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 ○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기 제○차전원회의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 55돐기념 중앙과학토론회 ○ 근위 서울류경수105땅크사단, 금성친위 제○○군부대, 2중3대혁명붉은기 ○○공장, 3중영예의 붉은기 ○○소학교 ○ 김영남군당책임비서, 리순실동사무장, 장철남1비서, ○○○외무상, 리남순과학지도국장, 리천호실장선생 ○ 인민과학자, 원사, 교수, 박사 ○○○선생 4항 수사는《백, 천, 만, 억, 조》단위로 띄여쓰며 수사뒤에 오는 단위명사와 일부 단어는 붙여쓴다. 례: ○ 3조 2억 3천만 ○ 닭알 3알, 살림집 두동, 학습장 5권 ○ 70평생, 60나이, 20여성상, 3년세월 ○ 서른살가량, 20명정도, 10℃이하, 150% 5항 불완전명사(단위명사포함)는 앞단어에 붙여쓰되 그 뒤에 오는 단어는 띄여쓰는것을 원칙으로 한다. 례: ○ 아는것이 힘이다, 모르면서 아는체 하는것은 나쁜 버릇이다. 힘든줄 모르고 일한다, 커서 인민군대가 될터이다. ○ 4월초 봄날씨, 2일부 로동신문, 3개 공병려단 ※《등, 대, 겸》은 다음과 같이 띄여쓴다. 례: ○ 알곡 대 알곡, 부수상 겸 농업상 ○ 사과, 배, 복숭아 등(등등) 6항 단어들사이의 맞물림관계를 고려하여 뜻을 리해하기 쉽게 띄여쓰기를 할수 있다. 1) 앞단어와 맞물리지 않는 단어는 띄여쓴다. 례: ○ 이 나라 주재 우리 나라 대사관 ○ 고유한 우리 말 어근으로 새말을 만든다. 2) 붙여쓰면 두가지 뜻으로 리해될수 있는것은 뜻이 통하게 띄여쓴다. 례: ○ 김인옥어머니(어머니자신) ○ 김인옥 어머니(김인옥의 어머니) ○ 중세 언어연구(중세에 진행된 언어연구) ○ 중세언어 연구(중세의 언어) ○ 사리원, 평산일대(두 지역 포괄) ○ 사리원, 평산 일대(사리원일대, 평산일대) 3) 토없이 결합된 단위가 너무 길어 읽고 리해하기 힘들 때에는 뜻단위로 띄여쓸수 있다. 례: ○ 중증 급성 호흡기증후군 ○ 3대혁명붉은기쟁취운동 궐기모임참가자들  
271    "한글통일"이 언제 오려나... 댓글:  조회:2838  추천:0  2017-02-21
중국조선어규범 ― 명사ㆍ수사ㆍ대명사와 관련한 띄여쓰기 기사 2012-03-10  조선말맞춤법은 단어에서 뜻을 가지는 매개 부분을 언제나 같게 쓰는 형태주의원칙을 기본으로 한다.  1. 자모의 차례와 그 이름 1) 자음자(19개)  ㄱ(기윽)  ㄴ(니은)  ㄷ(디읃)  ㄹ(리을)  ㅁ(미음)  ㅂ(비읍)  ㅅ(시읏)  ㅇ(이응)  ㅈ(지읒)  ㅊ(ㅊ읓)  ㅋ(키읔)  ㅌ(ㅌ읕)  ㅍ(피읖)  ㅎ(히읗)  ㄲ(된기윽)  ㄸ(된디읃)  ㅃ(된비읍)  ㅆ(된시읏)  ㅉ(된지읒) 자음자의 이름은 각각 다음과 같이 사용할수도 있다. (그, 느, 드, 르, 므, 브, 스, 으, 즈, 츠, 크, 트, 프, 흐, 끄, 뜨, 쁘, 쓰, 쯔) 2) 모음자(21개) ㅏ(아)  ㅑ(야)  ㅓ(어)  ㅕ(여)  ㅗ(오)  ㅛ(요)  ㅜ(우)  ㅠ(유)  ㅡ(으)  ㅣ(이)  ㅐ(애)  ㅒ(얘)  ㅔ(에)  ㅖ(예)  ㅚ(외)  ㅟ(위)  ㅢ(의)  ㅘ(와)  ㅝ(워)  ㅙ(왜)  ㅞ(웨) 2. 명사ㆍ수사ㆍ대명사와 관련한 띄여쓰기  명사에 토가 붙는 경우에는 뒤의 단어와 띄여쓴다.  례: 정원의 화초는 사람에 의해 자라고 학문은 자기의 노력에 의해 닦아진다.  하나로 굳어진 단어는 토가 끼여도 붙여쓴다.  례: 곰의열, 귀에고리…등. 명사들이 토없이 직접 어울리는 경우에는 의미상으로나 발음상으로 하나의 덩이를 이루는 것을 단위로 하여 띄여쓴다. (수사가 섞이여도 단일한 사물의 명칭으로 되는것은 여기에 준한다.) 3. 붙여쓰는 경우 1) 개혁개방, 인민대중, 경제건설, 사회주의나라, 오늘밤, 금년봄, 5개년계획, 100메터선수, 력사적사명, 정보화시대, 흐름식생산, 학생용가방, 가소성물질, 필승불패, 일심전력, 이신작칙, 국제국내정세, 반제반봉건투징, 아침저녁식사…등. 2) 중국공산당, 중화인민공화국, 중국인민혁명군사박물관, 연변조선족자치주인민정부, 할빈시조선족제2중학교, 심양시공안국, 북경2.7공장, 남경장강대교, 심수경제특별구, 김철호, 박철, 독고길룡…등. 3) 중국인민, 중국정부, 중국청년, 조선손님, 일본제품, 연변특산, 흑룡강일대…등. 4) 장xx동지, 지xx동무, 김xx주임, 권xx국장, 박xx선생, 리xx아바이, 전xx아주머니…등. 4. 띄여쓰는 경우 1) 당조직, 국가기구, 사회단체, 행정구역 등의 명칭은 전체와 부분(또는 급별)의 사이를 띄여쓴다. 례: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중공중앙)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중공중앙 정치국 상무위원회), 중화인민공화국 외교부 아시아주사, 중국공산당 료녕성위원회 선전부(중공료녕성위 선전부), 연변대학 사범학원 조선어문학부 조선어학과, 연변대학 교무처(연대 교무처), 연길시 하남가두 신원거주민위원회 18조 등. 2) 회의명칭(전람회, 운동회 명칭도 포함함)은 회의의 주최단위를 나타내는 부분, 순차를 나타내는 부분, 범위를 나타내는 부분, 내용을 나타내는 부분을 각각 띄여쓴다. 례: 중국공산당 제16차 전국대표대회 중국공산당 제16기 중앙위원회 제1차 전원회의(당중앙 제16기 제1차 전원회의), 연길시 각족각계인민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50돐 경축대회, 제1회 전국조선족축구대회 등. 3) 기관이나 부서의 이름과 직무이름(또는 직업, 신분, 칭호), 사람이름 사이는 각각 띄여쓴다. 례: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위원 조xx(중공중앙위원 조xx), 선전부 부장 김xx(선전부장 김xx), 교육국 국장 장xx(교육국장 장xx), 정치부 주임 리xx, 중국공산당 당원 리xx(공산당 당원 리xx, 공산당원 리xx), 연변대학 교수 리xx(연대 교수 리xx) 등. 4) 국가나 정당, 사회단체 등의 정식이름뒤에 오는 보통명사는 띄여쓴다.  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성명 중화인민공화국 외교부 각서,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기관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귀빈, 중화전국체육총회 성명 등. 5) 동격어나 이에 준하는 말은 띄여쓴다. 례: 수도 북경, 텔레비죤드라마 “사랑이 뭐길래”, 잡지, 1년 열두달, 여름 삼복때, 동서남북 사방…등. 6) 반점(,)을 찍어서 렬거되거나 토 “-과”, “-와 ”, 접속부사 “및” 등에 의하여 렬거된 명사의 앞뒤에 공통적으로 어울리는 단어는 띄여쓴다.  례:  학교 교원과 학생, 당과 인민 앞에, 현대적 공업과 농업, 20세기 초엽과 중엽. 아시아, 아프리카 및 라틴아메리카 인민들 등. 7) 장소적의미를 나타내는 고유명사뒤에 오는 명칭은 띄여쓴다. 례: 할빈시 흑룡강신문사, 연길시 연변인민출판사, 중국 북경 등. 8) 관형사적으로 쓰이는 “각급, 각종, 각항, 력대, 매개, 소수, 전체, 해당, 일부, 일체, 각계각층…” 등 명사는 뒤의 명사와 띄여쓴다. 례: 각급, 당조직, 각종 활동, 각항 정책, 매개 기업소들, 력대 통치배들, 소수 농민들, 전체 로동자들, 해당 기관, 일부 학교, 일체 문제, 각계각층 대표…등. 9) 앞의 명사를 다시 받는다고 할수 있는 명사 “자신, 자체”는 앞의 단어와 띄여쓴다.  례: 학생 자신이 만든것이다. 지구 자체도 돈다. 10) 사람의 이름뒤에 오는 “작곡, 작사, 안무, 각색, 목각, 시…” 등 명사는 띄여쓴다. 례: 김xx작곡, 리xx작사, 문xx안무, 박xx각색, 최xx목각, 안xx시…등. 11) 학술용어는 원칙적으로 붙여쓴다. 례: 염알칼리성토양, 고속도전자계산기, 거센소리, 꿩의바람꽃, 1원2차방정식, 직각2등변삼각형…등. 12) 불완전명사는 앞의 단어에 붙여쓴다. 례: 것-아는것이 힘이다, 나위-더 말할나위가 없다, 따위-사과배따위의 과실.(김, 나름, 녘, 둥, 대로, 데, 리, 만, 무렵, 바, 번, 법, 분, 사, 상 수, 시, 자, 적, 줄, 즈음, 지, 짓, 척, 채, 체, 터, 턱, 폭, 따름, 때문, 뿐, 쪽, 양, 이…등) 다음과 같은 한자어도 앞의 단어에 붙여쓴다. 례: 상-사상상, 정치상…, 중-회의중, 학습중…, 부-3일부…등. (내, 외, 전, 후, 초, 말, 차, 발, 행, 경, 래, 착, 당, 별, 급, 측, 분, 여….) 13) ”등, 대, 겸”은 띄여쓴다. 례: 극, 음악, 무용 등 각종 예술형식, 복무원 겸 선전원(“ㄹ겸-볼겸, 할겸….” 은 붙여쓴다), 2중 대 3중 축구시합.(”2대1”은 붙여쓴다.) 14) 시간이나 공간의 뜻을 나타내는 “앞, 뒤, 안, 밖, 우, 아래, 속, 가운데, 밑, 옆, 곁, 끝, 곳, 사이, 동안, 다음, 때, 날, 달, 해, 이래, 초엽, 말엽, 초순, 중순, 동쪽…,” 등 명사들이 토가 붙지 않은 단어뒤에 올 경우에는 붙여쓴다.  례: 앞-문화궁전앞ㆍ뒤-대렬뒤, 그뒤에ㆍ사이-둘사이, 그사이, 어느사이ㆍ동안-그동안, 한동안ㆍ날-이날,그날, 어느날ㆍ때-어느때, 여느때 등. 15) 일부 경우에는 뜻의 리해에 따라 띄여쓰기를 할수 있다. ㄱ 단어의 맞물림관계에 따라. 례: 당의 민족정책 관철, 우리 나라 경제발전, 새 농촌 건설, 학교와 집 사이에 공장이 있다. ㄴ 토없이 결합된 단위가 너무 길 때 뜻단위에 따라 띄여쓸수 있다. 례: 중증 급성 호흡기증후군, 세가지 대표사상 선전활동 권기모임 참가자들. 16) 수사는 아라비아수자로 적는것을 원칙으로 하되 조선문자로 단위를 달아줄 경우거나 순 조선문자로 적을 경우에는 “만, 억, 조”, 등의 단위에서 띄여쓴다. 례: 9억8,765만 4,321 등. 구억 팔천칠백륙십오만 사천삼백스물하나 17) 수사가 완전명사와 어울리는 경우에는 띄여쓴다. 례: 두 사람, 일곱 학생, 다섯 나라, 13억 중국인민…등. 70 평생, 30 나이, 20명 정도, 30도 이상, 100% 담보…등. 그러나 단위명사와 어울리는 경우에는 붙여쓴다. 례: 한개, 1개, 세마리, 3마리, 열장, 10장, 일년, 1년, 1949년 10월 1일, 11시 23분 5초,  95퍼센트(95%) 등. 완전명사가운데서도 단위명사적으로 쓰이는 “그릇, 병, 통, 뽐, 자, 책…”, 등도 수사에 붙여쓴다. 례: 열그릇, 열병, 두통, 세뽐, 다섯자, 일곱책…등. 18) “손, 발, 귀, 눈, 입, 어깨, 몸….” 등 명사도 수사에 붙여쓴다. 례: 한손에, 두발로, 두눈으로, 한입으로, 두어깨, 한몸으로, 열손가락…등. 대명사는 아래 단어와 원칙적으로 띄여쓴다. 례: 우리 나라, 내 나라, 이 책, 그 사람, 누구 모자, 여기 있다.  그러나 명사 또는 부사와 어울려 하나의 단어로 굳어진것은 붙여쓴다. 례: 제노릇, 제몸, 내남, 제아무리…등. 뜻이 같거나 비슷한 명사, 수사, 대명사가 겹쳐쓰이여 강조 혹은 여럿의 뜻을 나타내는것은 붙여쓴다. 례: 집집, 골목골목, 고개고개, 조목조목, 누구누구, 무엇무엇, 이것저것, 이집저집, 한마음한뜻…등. ///연변통보 2012-03-10
270    세계가 기리는 100년의 시인... 댓글:  조회:2368  추천:0  2017-02-21
'100년 윤동주' 특강 연변도서관서 개최 (ZOGLO) 2017년2월21일  연변도서관이 주최하고 연변시랑송협회가 주관한 “자랑스런 내 고향 알기” 계렬행사의 일환으로 “세계가 기리는 내 고향의 100년 시인을 알다” 특강이 2월 18일 오전, 연변도서관에서 개최되였다. 연변도서관 부관장 최철은 인사말에서 세계가 기리는 100년의 시인 윤동주 탄신 100주년, 윤동주 옥사 72주년을 맞으면서 자랑스러운 내 고향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대중들의 문화생활, 독서활동을 다채롭게 하려는 취지에서 이번 행사를 조직하게 되였다고 하면서 국가 1급 도서관으로서 연변도서관은 우리의 문화를 보급하는 이같은 문화행사에 적극 동참하고 지지할것이라고 밝혔다. 특강에서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룡정윤동주연구회 회장 김혁이 “우리는 왜 윤동주를 기리는가”라는 제목으로 윤동주의 생평과 력사배경, 활동반경과 시창작환경을 소개하였고 연변시랑송협회 회장 송미자시인이 “윤동주의 시를 어떻게 랑송할것인가?”라는 제목으로 애잔하지만 의미심장한 윤동주의 시를 랑송하는 방법에 대해 소개하였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갈망했던 윤동주(1917.12.30-1945.2.16)시인은 저명한 조선족애국시인이며 룡정시 명동에서 태여나 후꾸오까감옥에서 간악한 일제의 생체실험으로 짧은 일생을 마쳤다. /글 길림신문 김태국 기자 /사진 룡윤회 김향자 제공
269    진정한 시는 "찾아지는 감춤"의 미덕과 미학의 결과물이다... 댓글:  조회:2834  추천:0  2017-02-21
[ 2017년 02월 21일 09시 13분 ]     최근, 안후이(安徽)성 완난황산훙촌 촌민들이 봄날의 쾌청한 날씨를 빌어 “후이저우 햄”을 햇볕에 말리고 있다. 알아본데 의하면, 봄이 오면 완난 현지 사람들은 햄을 햇볕에 말리는 전통 풍속을 가지고 있다. 돼지 통다리를 집앞과 집뒤의 나무판 건조대에 말리는데 그 장면이 장관이다. 햇볕에 말린 햄 색갈이 투명하고 윤기가 나며 향이 좋고 오래동안 저장할 수 있다. /원문 출처: ntp /조글로 * 시(詩)는 감춤의 미학(美學)이다  시는 예쁜 포장지 속에 들어 있는 빛나는 보석이다. 고로 감춤의 미학이다.  그러나 시는 감춤만을 본질의 특성으로 삼는 것이 아니다. 때론 우회나 굴절 그런 다음 스팩트럼의 추상에서 즐거움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것은 시가 지각(知覺)에 의해서만 기쁨과 즐거움을 배태하기 때문이다.  그럼 시는 지각 이외에는 기쁨과 즐거움을 얻을 수 없는 것일까? 불행하게도 그렇다. 그러나 다른 장르는 예외다  또한 예술과 관련, 즐거움을 주는 것이 모두 다 아름다우며 모두 다 가치 있는 것이냐 하는 명제의 질문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만 답변할 수는 없다.  가령, 미술에 있어 ‘로센버그’의 를 예로 들어보면 페인트칠한 침대를 벽에 걸어놓음으로써 침대는 예술작품으로 인정되는데 이때 폭신폭신한 느낌을 주는 예쁜 색깔의 침대가 우리에게 대단한 즐거움을 주는 사물임은 분명하게 인지되지만 실용성과 관련 있는 그 침대가 꼭 아름다워야 한다는 법은 없는 것이다. 결국 시는 아름답지 않을 수도 있다. 또 예술에서 한 발짝 멀리 떨어져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역순으로 보면 예술의 맨 앞자리에 있음을 보게 되는 것이다  ‘미’는 본디 유용성이나 그와 비슷한 이유에서 즐거움을 주는 것은 아니다. ‘미’란 바라보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즐거움을 얻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단계 더 천착해 보면 진정한 즐거움이란 현상적 감각적 즐거움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지적 즐거움에 가까운 것이어야 한다. 시각이나 청각에 의존한 감각적 즐거움은 순간적이며 단순하지만 지각에 의존한 즐거움은 직선적으로 전달되지 않기 때문에 비밀이 이해되지 않는 한 쾌미음을 부를 수 없다.  그러나 어려운 수학문제를 한참 끙끙거리며 풀어나가다가 갑자기 해답이 전광석화처럼 눈에 들어올 때의 그 기쁨은 예상외로 크다. 그것은 노력 뒤에 오는 배가된 희열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기쁨을 이라고 하였는데 감춤의 껍질을 벗긴 뒤에 나타나기에 피부반응보다 더 큰 물결 같은 감동이 되는 것이다.  시는 바로 이 이라는 장르이기에 다른 예술보다 한 단계 위에 자리 매김 되어진다.  예술은 신의 예지에 의해 창조된 질서정연한 자연을 인식함으로써 성립하는 모방이다. 따라서 예술에는 자연의 질서가 반영된다. 또 예술은 자연에서 표현수단과 방법을 빌려온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예술을 신의 창조와 비교한다. 신은 자연의 내적 원리에 따라 창조를 하셨지만 예술가는 자연의 외적원리에 따라 모방할 뿐이다.  예술은 새로운 형상을 만들어 낼 수 없고 단지 신이 창조한 자연 속에서 형상을 인식하여 그걸 모방할 따름이다. 그러므로 예술은 신의 창조보다 저급하다. 하지만 예술은 인식활동 및 도덕적 실천 활동과 함께 인간정신 활동의 하나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시는 이런 토양 위에서 삶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인간의 정신적 행복을 가장 작은 그릇에 담아내기 위하여 비유를 통한 압축을 동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노력의 산물인 예술이 '시’이다.  그런데 문제는. 언어가 가지고 있는 분절성, 상상의 한계성, 추상성이 전제되어 있는 정형성을 깨뜨리지 않는 한 진정한 시문학이 탄생할 수 없다고 제창하며 추상적 기호로서의 언어를 극복하고 언어의 인습을 거부해야 한다는 낯설게 하기(포스트 모더니즘 포함)의 기법을 주장하면서 실천해야 한다는 시인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마 이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인의 모방은 아무런 통일성도 없는 사건의 복합을 사진사처럼 복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유기적인 통일을 이루고 있는 사건을 필연적인 인과관계의 테두리 내에서 재현하는데 있다’라는 이 말을 왜곡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물론 어떤 형태로든 시인들은 단순한 모방자가 아니라 일종의 창작자임이 분명하기에 기존의 질서와 전통을 파괴하면서 새로운 것에 대해 도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감춤의 원리에 의한 암시성의 본질을 몰각한 채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에 긴장감이 흘러 넘쳐야만 좋은 시가 되는 줄 알고 기상(.奇想)과 절연(絶緣)만을 일삼는 시업은 반드시 재고되어야 하는 것이다.  시란, 자아와 세계의 만남으로 인한 미적 체험을 바탕으로 인간구원으로 나가야함을 직시해야 하는데, 그것은 웅변과 같은 호소나 만화 같은 표현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찾아지는 감춤만이 진정한 시의 미덕이며 미학이기 때문이다.    ================================================================================       잠이 참 많은 당신이지  ―김충규(1965∼2012)     오늘 내가 공중의 화원에서 수확한 빛 그 빛을 몰래 당신의 침대 머리맡에 놓아주었지 남은 빛으로 빚은 새를 공중에 날려보내며 무료를 달랬지 당신은 내내 잠에 빠져 있었지 매우 상냥한 것이 당신의 장점이지만 잠자는 모습은 좀 마녀 같아도 좋지 않을까 싶지 흐린 날이라면 비둘기를 불러 놀았겠지 비둘기는 자기들이 사람족이 다 된 줄 알지 친절하지만 너무 흔해서 새 같지가 않지 비둘기가 아니라면 어느 새가 스스럼없이 내 곁에 올까 하루는 길지 당신은 늘 시간이 모자란다고 말하지만 그건 잠자는 시간이 길어서 그래 가령 아침의 창가에서 요정이 빛으로 뜨개질을 하는 소리 당신은 한 번도 듣지 못하지 그게 불행까진 아니지만 불운인 셈이지 노파들이 작은 수레로 주워모은 파지들이 오래지 않아 새 종이로 탄생하고 그 종이에 새로운 문장들이 인쇄되는 일은 참 즐겁지 파지 줍는 노파들에게 훈장을 하나씩! 당신도 그리 잠을 오래 잔다면 노파가 될 때 파지를 줍게 될 거야 라고 악담했지만 그런 당신의 모습도 나쁘진 않지 잠이 참 많은 당신이지 마부가 석탄 같은 어둠을 마차에 싣고 뚜벅뚜벅 서쪽으로 사라지는 광경을 보지 못하지만 꼭 봐야 할 건 아니지 잠자면서 잠꼬대를 종달새처럼 지저귈 때 바람 매운 날 이파리가 서로 입술을 부비듯 한껏 내 입술도 부풀지 더 깊은 잠을 자도 돼요 당신 화자는 ‘공중의 화원에서 수확한 빛’, 아마 시 한 편을 잠든 연인의 머리맡에 놓아준다. ‘남은 빛으로’, 버리기 아깝지만 시에 넣지 않은 구절들로 ‘빚은 새를 공중에 날려 보내며 무료를’ 달랜다. 연인이 내내 잠에 빠져 있으니 다툴 일도 없을 테지만 외로울 테다. 밤새 한숨도 자지 않은 화자는 잠자는 연인의 모습을 굽어보며 연인의 잠에 대한 상념을 흘러가는 대로 나른히 풀어놓는다. 불면증 남자와 기면증 여자인 이들은 잠자는 숲 속의 공주와 입맞춤으로 그녀 잠을 깨우는 왕자가 아니다. 가난한 연인들이다. 가난한 젊은이가 잠이 너무 많으면 더욱 가난한 노년을 보내게 될 테다. 출근시간을 지켜야 하는 직장생활인들 할 수 있을까. 미래도 암담한 현실의 압박감으로 졸리고 또 졸리기만 할 테다. 어쩌면 화자도 연인의 눈감고 싶은 현실일까. 잠꼬대 하는 연인의 뽀뽀를 부르는 입술에 화자의 입술이 한껏 부풀지만, 연인의 혼곤한 잠을 외로이 지키는 화자다.  
268    안도현 시론을 재정리하여 알아보다... 댓글:  조회:3411  추천:0  2017-02-21
  안도현시론 정리 시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감정의 순서를 정하는 것이다. 시는 감정의 배설물이 아니라 감정의 정화조다. 묘사란, 사물이 하는 이야기를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언어로 그려내는 것. 시인은 감정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물이 하는 이야기를 받아적는 사람. 시인은 묘사한 언어를 보고 독자는 머릿속에 어떤 그림을 그리게 되고, 그 그림을 이미지라 한다. 시인은 자기가 말하고 싶은 것을 최대한 정확하고 절실하게 언어로 그릴 책임이 있다. 시인은 “시적이라는 말을 배반하는 방식을 통해 시적이라는 말을 진화시킬 수는 없을까”(이원, 2007년 가을호)를 고민하는 사람이 시인이 아닐까? 좋은 시란? 첫째, 새로운 언어로 표현된 시.  둘째, 새로운 인식을 도출하는 시.  셋째, 새로운 감동을 주는 시.  여기에다 시인의 시작 태도가 공자의 말씀대로 ‘사무사’(思無邪) 바로 그것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의 감동은 일차적으로 시인과 독자와의 교감, 즉 소통 위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소통이 이루어졌다고 해서 모든 시가 다 울림을 갖는 것은 아니다.  허망한 소통보다는 고독한 단절이 오히려 서로를 행복하게 할 때도 있으니까 말이다.  시를 보는 미학적 관점과 언어에 대한 경험이 자연스럽게 일치할 때 시적 감동은 증폭될 것이다. “시란 개인적인 욕망에서 이루어지는 욕망의 발산 형식이 아니라 개인적인 ‘나’의 욕망을 억제하고, ‘나’의 욕망 가운데 가치 있는 어떤 경험을 선택하고 객관화하는 작업을 통해서 남과 다른 세계를 유형화해 보여주는 의도적 행위이다.”(오규원, , 문학과지성사) 무비 스님은 에서 ‘나 아닌 다른 경계에 동요하지 말라’는 말이고, ‘일체를 부정하고 벗어나라’는 말이며, ‘그 어떤 권위나 관념들로부터도 벗어나라. 인정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풀이하였다.  즉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서는 ‘안에도 있지 말고 밖에도 있지 말고 중간에도 있지 말라’는 것이다.  일체의 얽매임으로부터 벗어나야 깨달음에 이르듯 시로 접어드는 길도 그러한 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시는 절대자와 부모,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바치는 양식이 절대 아니다.  시의 초보자일수록 ‘무엇을 위해서’ 쓰려고 한다.  또 ‘누구를 위해서’ 쓰려고 한다.  시가 천박해지는 순간이다. 창의적 사고의 기능은 크게 다섯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민감성이다. 주변 환경에 예민한 관심을 보이는 능력을 이른다. 자명한 듯한 현상에서도 문제를 찾아보고, 나와 친숙하지 않은 이상한 것을 친밀한 것으로 생각하는 일이 그렇다.  둘째, 유창성이다. 특정한 상황에서 가능한 한 많은 양의 아이디어를 산출하는 능력이다. 초기의 아이디어가 최선의 아이디어인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한층 많은 아이디어를 얻고자 하는 과정에서 최선의 것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대상이나 현상들로부터 많은 것을 연상하기, 문제 상황에서 가능한 해결 방안을 있는 대로 많이 찾기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셋째, 융통성이다. 고정적인 사고방식이나 시각 자체를 변환시켜 다양한 해결책을 찾아내는 능력이다. 상투적이고 고정적인 사고의 틀을 깨고 발상의 전환을 꾀하는 것이다. 전혀 관계없는 사물들의 유사점을 찾아본다든지, 사물의 구체적인 속성에 주목하는 일과 관련이 있다.  넷째, 독창성이다. 기존의 것에서 탈피하여 참신하고 독특한 아이디어를 산출하는 능력이다. 다른 사람과 같지 않은 나만의 것을 찾고, 기존의 생각이나 가치를 부정하는 사고를 말한다. -현대창의성연구소장 임선하 박사의 '창의성의 초대'에서 관념어는 진부할 뿐 아니라 삶을 왜곡시키고 과장할 수도 있다.  또한 삶의 알맹이를 찾도록 하는 게 아니라 삶의 껍데기를 어루만지게 한다.  당신의 습작노트를 수색해 관념어를 색출하라.  그것을 발견하는 즉시 체포하여 처단하라.  암세포 같은 관념어를 죽이지 않으면 시가 병들어 죽는다. 상상력을 옥죄고 언어의 잔칫상이어야 할 시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관념어를 척결하지 않고 시를 쓴다네, 하고 떠벌이지 마라. 묘사는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화할 수도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리와 냄새는 오로지 묘사를 통해서만 언어로 그릴 수 있다.  장미 꽃잎이 열릴 때 나는 소리, 단풍이 햇볕에 빨갛게 물드는 소리, 배고플 때 맡는 짜장면 냄새, 감나무에서 우는 매미소리가 내 귓가에 닿기까지의 길, 나비가 날개를 너울거리며 날아가는 허공의 길을 언어의 연필로 그리는 게 묘사다. 또한 묘사는 개념을 해체한다.  밤은 어둡다, 여름은 덥다, 꽃은 아름답다, 개나리는 노랗다와 같은 문장은 고정관념이 만든 개념적 표현이다.  묘사는 개념을 구체화하거나 해체하는 데 기여한다. 예를 들면 ‘시장에는 여러 가지 채소가 많다’고 쓰면 죽은 문장이다. ‘가락시장에는 배추, 시금치, 상추가 많다’고 쓰기 시작해야 문장에 조금이라도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시는 하나의 창조적 생명으로서 시인을 간섭하고, 가르치고, 지시하고, 격려하고, 고무하고, 나아가게 하고, 물러서게도 한다.  그래서 한 편의 시를 완성하는 순간, 시인은 자신의 시가 가리키는 방향대로 살아갈 운명에 처하게 된다.  이 무서운 진리 앞에서 시인은 엄숙해질 수밖에 없다. 몰입과 열정이 필요하다. 이태준은 산문 에서도 퇴고에 대해 힘주어 말한 적 있다.  “아마 조선문단 전체로도 이대로 3년이면 3년을 나는 것보다는 지금의 작품만 가지고라도 3년 동안 퇴고를 해 놓는다면 그냥 나간 3년보다 훨씬 수준 높은 문단이 될 것이다.” “글은 다듬을수록 빛이 난다. 절망하여 글을 쓴 뒤, 희망을 가지고 고친다”고 한 이는 소설가 한승원이다. 니체는 “피로써 쓴 글”을 좋아한다고 했고, 의 작가 최명희는 “원고를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다”고 말했다.  시를 고치는 일은 옷감에 바느질을 하는 일이다. 끊임없이 고치되, 그 바느질 자국이 도드라지지 않게 하라. 꿰맨 자국이 보이지 않는 천의무봉의 시는 퇴고에서 나온다는 것을 명심하라. 시적 허구(詩的虛構) 속에서 노래하고 연출가·배후 조종자가 되라 시 속에서 말하는 사람을 화자라고 한다.  화자는 때로 ‘서정적 자아’ ‘시적 자아’ ‘시적 주체’ ‘서정적 주인공’ ‘페르소나’(persona)와 같은 용어로 다르게 부르기도 한다.  어떻게 부르든 시인과 화자를 따로 구별하는 것은 그 둘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습작기에 있는 사람일수록 시인과 화자를 의식적으로 구별하는 공부가 꼭 필요하다.  시를 쓰는 시인은 화자를 통해 말해야지 스스로 시 속에 뛰어들면 안 된다.  그러면 시가 시인의 사적인 발언으로 전락하고 만다.  시인과 화자를 동일하게 여기지 말고 구별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라는 형식이 하나의 허구임을 전제로 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문학교과서는 ‘소설은 허구’라는 명제를 강조하면서도 ‘시는 허구’라는 말을 기술하는 데 인색하다. 모든 시가 허구가 아니라면 시가 예술로서의 자주성과 독립성을 보장받을 수가 없다.  신변잡기 같은 사사로운 글을 문학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시는 시인의 사적이고 주관적인 체험의 바탕 위에 만들어지는 것일 뿐, 시인의 체험이나 감정을 단순히 나열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시인의 사소한 체험은 작품 속에서 치밀하게 재구성되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그것을 우리는 시적 허구(詩的虛構)라고 부른다.  오규원의 말대로 “시 속의 ‘나’는 현실 속의 ‘나’가 아니다. 시 속의 ‘나’는 허구 속의 존재이며, 어디까지나 창조적 공간인 작품 속의 존재이다.  그러므로 그 ‘나’는 객관화된 ‘나’이며 화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어떤 국면 속의 형식화된 인간으로서의 ‘나’이다.” 따라서 일상의 경험을 시로 표현할 때는 일상 속의 ‘나’가 아닌, 구체적 경험 속의 ‘나’를 그리는 시인의 형상적 시각이 필요하다.  시인은 현실 속의 ‘나’를 죽이고 구체적 경험 속의 또 다른 ‘나’를 살려 형상화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형기는 또 “사실의 세계가 신의 창작물이듯 허구의 세계는 인간의 창작물”이라고 했다.  이 말을 조금 바꾸면, 신은 ‘사실’을 만들고 인간은 ‘진실’을 만드는 자라고 할 수 있다.  즉 시인은 사실보다 진실에 복무하는 자라는 말이다.  어떠한 진실을 그리기 위해 시인은 사실을 일그러뜨리거나 첨삭할 수 있다.  사실과 상상, 혹은 실제와 가공 사이로 난 그 조붓한 길이 바로 시적 허구다.  이 시적 허구를 인정하지 않고 사실 속에 갇혀 있으면 시인은 숨을 내쉴 수도 없고, 상상의 나라에 가지 못한다. 물론 진실을 노래할 기력도 사라진다.  그의 시는 제자리걸음을 하느라 아까운 세월을 다 보내게 된다. 모방을 배워라.  모방을 배우면서 모방을 괴로워하라.  모방을 괴로워할 줄 아는 창조자가 되라.  모방의 단물 쓴물까지 다 빨아들인 뒤에, 자신의 목소리를 가까스로 낼 수 있을 때, 그때 가서 모방의 괴로움을 벗어던지고 즐거운 창조자가 되라.  모든 앞선 문장과 모든 스승과 모든 선배는 당신이 밟고 가라고 저만큼 앞에 서 있는 것이다.  당신은 그들을 징검돌 삼아 그들을 밟고 뚜벅뚜벅 걸어가라.  시인은 모든 세계를 파괴하고 새로이 구성할 임무를 타고난 사람들이다. 시마와 동숙할 준비를 하라! 시는 실용과 경제의 반대편에 똬리를 틀고 있는 그 무엇이다.  때로는 어슬렁거림이고, 때로는 삐딱함이고, 때로는 게으름이고, 때로는 어영부영이고, 때로는 하릴없음인 것이다. 시는 실용적이고 도덕적인 가치와는 다른 시적 가치를 요구한다.  그것은 세상의 미학적 가치를 탐구하는 일인데, 우리는 그것을 시작(詩作)이라고 하거나 시적 순간을 찾는 일이라고 말한다.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에 묻혀 살다 보면 시적인 순간은 쉽게 우리를 찾아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조바심을 낼 필요는 없다.  영감(靈感)이나 시상(詩想)이 떠오르는 시적 순간은 의외로 곳곳에 산재해 있다.  초보자는 시적 순간이 수시로 입질을 하는데도 그것을 낚아채는 때를 놓쳐버리기 일쑤다.  “영감이 오는 순간에 당신은 신과 하나가 될 수 있다. 번득이는 첫 생각과 만나는 순간 당신은 자신이 알고 있던 것보다 더 큰 존재로 변화한다.  우주의 무한한 생명력과 연결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나탈리 골드버그, ) 한 편의 시는 한 사람의 시인이 쓴 것이지만 그 시는 시인의 것이 아니다.  시인은 우주가 불러주는 감정을 대필하는 사람일 뿐이다.  시에다 쓴 언어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의 것이며 독자의 것이지 시인의 개인 소유물이 아니다.  그러니 마음에 드는 한 편의 시를 완성했거든 그 순간 그 자리에서 그 시를 잊어버려라.  당신은 그 시로부터 미련 없이 떠나라. 김춘수는 에서 시행 구분의 원리에 대해 심도 있는 의견을 제출한 적 있다.  그는 일본 시인 기다조노 가즈에의 말을 인용하면서 시의 각 행은 ‘사상의 분량’ ‘의미의 분량’ ‘이미지의 분량’에 따라 결정된다고 하였다.  이것만 봐도 계산된 의도 없는 시행 바꾸기가 시를 얼마나 허약하게 만드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 문장의 빛깔과 무늬를 문채(文彩)라고 한다.  시의 문채는 행과 연의 배치, 어휘의 선택 등을 통해 나타난다.  1980년대 이후 우리 시에 대폭 도입된 ‘양행 걸침’ 형태는 시의 형식과 내용에 엄청난 변화를 불러왔다. 그것을 선도한 것은 이성복의 시집 (1980)이다.  이 양행 걸침 기법은 한국시에 고질적으로 스며 있던 관망과 관조의 태도를 일시에 혁파하였다.  행갈이의 변화가 한국시의 질서 전체를 역동적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그 파급력은 기형도의 (1989)에 와서 거의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오랫동안 시작활동을 멈추었다가 최근에 좋은 작품을 발표하고 있는 세 시인이 있다.  서정춘, 위선환, 신현정 시인이 그들이다.  이 시인들의 시가 왜 좋은가?  다른 것 다 젖혀두고, 행과 연부터 다르다.  문채가 다르다.  오랜 시간의 내공이 개성적인 형식을 낳았다. [출처] 안도현시론 정리|작성자 조한수
267    시 안에서 "잔치"를 벌리라... 댓글:  조회:2833  추천:0  2017-02-21
  제발 삼겹살 좀 뒤집어라   - 묘사는 관찰로부터 -   나는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그 음식에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 곰곰이 따져본다. 모르면 음식점 주인에게 물어본다. 그리고 음식의 재료가 어떤 순서로 조리되었는지 생각해 본다. 즉 음식을 나름대로 관찰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한테 이 음식을 만들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시란 내가 먹어본 맛난 음식, 내가 바라본 멋진 풍경을 언어로 재현해 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눈이 우르릉거리는 사나운 날엔 국수를 해 먹는다. 애 곤지 알이 명태머리 꼬리가 처박는 폭설. 된장을 푼 멸치국물이 가스불에 설설 맴도는, 까닭 없이 궁핍한 서울. 엉덩이 들고 홍두깨로 민 반죽을 칼질하고 밀가루 뿌려놓은 긴 국숫발. 바다 모래불 가 눈발을 그리는 20년 객지, 하며 창밖에 펄펄 날리는 하늘 눈사태 바라보는 나는 이런다,   이런 날은 이 조태 칼국수만이 저 을씨년하고 어두운 날씨를 이길 수 있다.   고형렬,  전문   객지 땅 서울서 먹는 조태 칼국수는 원초적 기억을 불러오는 중요한 매개다. 여기에서 고향은 단지 그리움의 기억 장소가 아니라 을씨년스럽고 어두운 현실을 견디게 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어릴 적에 먹던 조태 칼국수라는 음식이 이렇게 긴장감 넘치는, 힘 있고 품격 높은 서정을 낳았다.   기억은 시의 중요한 질료가 된다. 삼겹살을 구울 때 고기가 익기를 기다리며 젓가락만 들고 있는 사람은 삼겹살의 맛과 냄새만 기억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고기를 불판위에 얹고 타지 않게 뒤집고 가스레인지의 불꽃을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은 더 많은 경험을 한 덕분에 많은 기억을 소유하게 된다.그런 사람이 시인이다. 묘사는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화할 수도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리와 냄새는 오로지 묘사를 통해서만 언어로 그릴 수 있다.   햇살 깔깔대며 양철지붕 구르는 봄날 할머니들은 식은 밥덩이처럼 모여 앉아 감자 눈 딴다 ~ (중략) ~ 초승달 양철지붕에 내려 앉히는 소리 속에서 감자 씨눈 트는 소리 잔설 그림자 기웃거리는 개울물 소리 속에서 피라미 지느러미 터는 소리 소리가 소리를 끌고 또 소리를 끌고   김남극,   봄날에 들릴 법한 소리들이 한 편의 시 안에서 잔치를 벌이고 있는 듯하다. 시인의 예민한 귀는 감자 씨눈 트는 소리, 피라미, 지느러미 터는 소리까지 듣는다. 이런 것들을 언어의 연필로 그리는 게 묘사다. 묘사는 개념을 해체한다. 밤은 어둡다, 여름은 덥다, 꽃은 아름답다, 개나리는 노랗다와 같은 문장은 고정관념이 만든 개념적 표현이다. 묘사는 개념을 구체화하거나 해체하는 데 기여한다.예를 들면 “시장에 여러 가지 채소가 많다”라고 쓰면 죽은 문장이다. “가락시장에는 배추 시금치 상추가 많다”고 쓰기 시작해야 문장에 조금이라도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 대상과의 거리 두기 -   신석정의 시 을 읽으며 묘사가 어떻게 한 편의 시를 열고 닫는지 살펴보자.   난이와 나는 산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것이 좋았다 밤나무 소나무 참나무 느티나무 다믄다믄 선 사이로 바다는 하늘보다 푸르렀다   난이와 나는 작은 짐승처럼 앉아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이 좋았다 짐승같이 말없이 앉아서 바다같이 말없이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는 것은 기쁜 일이었다   난이와 내가 푸른 바다를 향하고 구름이 자꾸만 놓아가는 붉은 산호와 흰 대리석 층층계를 거닐며 물오리처럼 떠다니는 청자기빛 섬을 어루만질 때 떨리는 심장같이 자지러지게 흩날리는 느티나무 잎새가 난이의 머리칼에 매달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난이와 나는 역시 느티나무 아래에 말없이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는 순하디순한 작은 짐승이었다   1연 - ‘밤나무/소나무/참나무/느티나무‘라고 나무 이름을 한 행씩 배치한 이유는 무엇일까. 뒤에 나오는 ’다믄다믄‘이란 부사의 도움을 받아 촘촘한 간격으로 서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특별한 장식이나 화려한 수사를 동원하지 않고도 우리는 시가 제시하는 정황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다. 묘사의 혜택이다.   2연 - 그런데 난이와 나는 왜 바다를 바라보고 있을까? 2연이 그 궁금증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바다를 앞에 두고 난이와 ‘작은’짐승처럼 앉아있는 까닭은 들끓는 현실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다는 것이다. 격정의 바다가 말없이 평온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난이와 나도 말없이 앉아 있음으로 해서 바다와 일체를 이루려고 한다.   3연- 풍경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비교적 화려하게 등장한다. 그래서 3연은 시에 아연 활기를 불어 넣으며 흐름의 전환점을 마련하는 데 기여한다. 화자의 호흡은 길어지고 이제까지 원경을 비추던 시의 카메라는 ‘난이의 머리칼’로 클로즈업된다. 바다에서 구름으로 이동했던 화자의 시선이 다시 지상의 느티나무로 옮겨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 된다. ‘느티나무 잎새가/난이의 머리칼에 매달리는 것을’ 바라보는 장면은 이 시의 절정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느티나무 잎새가 머리카락에 붙음으로 해서 난이는 자연스럽게 느티나무와 한 몸이 된다. 난이와 느티나무의 연결은 ‘난이=느티나무=작은 짐승’이라는 등식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한 것이다.     11. 체험을 재구성 하라   - 시적 허구 -   없는 것이 너무 많아서 아버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낡은 목선을 손질하다가 어느 날 아버지는 내게 그물 한 장을 주셨다   안도현,  부분   스무 살 때 쓴 졸시 의 한 부분이다. 이 시는 사실이 아니다. 나는 낙동강이라는 제재를 붙들고 할아버지-아버지-나로 이어지는 삼대의 면면한 핏줄을 노래하고 싶었고 그물 한 장을 물려받는 것으로 마음속의 메시지를 구체화하고자 했다. 관계를 상징하는 그물을 어떻게든 시로 끌어들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본의 아니게(아니 의도적으로) 아버지를 어부로 둔갑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있지도 않은 사실을 있는 것처럼 시로 말했으니 사기를 친 것인가? 나는 시인으로서 진실하지 않은 뻥쟁이인가?   시 속에서 말하는 사람을 화자라고 한다. 화자는 때로 ‘서정정적 자아’ ‘시적 자아’ ‘시적 주체’ ‘서정적 주인공’ ‘페르소나persona'와 같은 용어로 부르기도 한다. 어떻게 부르든 시인과 화자를 따로 구별하는 것은 그 둘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습작기에는 시인과 화자를 의식적으로 구별하는 공부가 필요하다. 시인은 화자를 통해 말해야지 스스로 시 속에 뛰어들면 안 된다. 그러면 시가 시인의 고백, 즉 사적인 발언으로 전락하고 만다.   시인과 화자를 동일하게 여기지 말고 구별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라는 형식이 하나의 허구임을 전제로 해야 한다. 시는 시인의 사적이고 주관적인 체험의 바탕위에 만들어지는 것일 뿐 시인의 체험이나 감정을 단순히 나열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시인의 사소한 체험을 작품 속에서 치밀하게 재구성되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그것을 우리는 ‘시적 허구’라고 부른다.   ‘시 속의 나’는 ‘현실 속의 나’가 아니다. 시 속의 나는 허구 속의 존재이며 창조적 공간인 작품 속의 존재이다. 시인은 현실 속의 나를 죽이고 구체적 경험 속의 또 다른 나를 살려 형상화할 의무가 있다. 신은 ‘사실’을 만들고 인간은 ‘진실’을 만드는 자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은 사실보다 진실에 복무하는 자라고 할 수 있다. 어떠한 진실을 그리기 위해 시인은 사실을 일그러뜨리거나 첨삭할 수 있다. 사실과 상상, 혹은 실제와 가공 사이로 난 그 조붓한 길이 바로 시적 허구이다. 이 시적허구를 인정하지 않고 사실 속에 갇혀 있으면 시인은 숨을 쉴 수도 없고 노래할 기력도 사라지며 상상의 나라에 가지 못한다.   - 화자의 뒤에 숨은 시인 -   시를 한 편 한 편 쓸 때마다 당신은 연출가가 되어야 한다. 화자를 시의 무대위로 내보내 놓고 화자의 뒤에 숨어 배후 조종자가 되어야 한다. 배우(화자)의 연기가 서툴거든 호되게 꾸짖어라. 우리 현대시의 훌륭한 배후조종자인 김소월과 한용운은 과 에서 여성 화자의 입을 빌려 이별의 정한을 멋들어지게 노래했다. 고은의 가계에는 실제로 누이가 없다. 그러나 그러한 허구가 빚어낸 노래에 탄복할 뿐 아무도 시인의 시를 두고 가식의 산물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눈 내리는 만경 들 건너가네 해진 짚신에 상투 하나 떠가네 가는 길 그리운 이 아무도 없네 녹두꽃 자지러지게 피면 돌아올거나 울며 울지 않으며 가는 우리 봉준이 풀잎들이 북향하여 일제히 성긴 머리를 푸네   안도현,  부분   80년대 대학 4학년 때 신춘문예를 준비하면서 나는 혁명에 실패하고 서울로 잡혀가는 전봉준을 그리기 위해 고심하고 있었다. 80년대라는 시대와 시를 어떻게 결합할 수 없나 하는 것이었다. 그 무렵 읽은 한국근대사의 뒤표지에 실린 사진 한 장, ‘서울로 압송되는 전봉준’을 나는 노트 한 쪽에 적어 두었다. 그 것을 ‘서울로 가는 전봉준’으로 고쳐 제목으로 삼고 동학농민전쟁에 대한 또 다른 책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상상력을 건드리는 몇 가지 허구의 재료를 모았다. 체포 시기는 음력 정월, 이걸 보고 시의 배경에 눈을 퍼부어 대기로 했다. 이렇게 시작되는 시는 시가 끝날 때까지 눈이 내린다. 시적 허구는 역사적 사실보다 생동감 있는 진실을 보여 준다.   이라는 시를 발표한 후 독자들한테 전화를 몇 차례 받았다. 그 바닷가가 도대체 어디냐, 한 번 가보고 싶다는 것, 정보통신부에서도 연락이 와서 그 바닷가 우체국의 위치를 알려 주면 시비를 하나 세워 보겠다는 것이었다. 아아, 나는 그분들을 모두 실망시키고 말았다. 나는 가끔 변산반도 쪽으로 바람을 쐬러 가는데 그 바닷가 언덕에 몇몇 낡은 집에 매혹되어 오래오래 바라본 적이 있었다. 그게 죄였다. 그 언덕위의 낡은 집 문 앞에 빨간 우체통을 세워두고 우체국장을 출근시키고 우표를 팔고 우체부의 자전거를 굴러가게 하고 ‘바닷가 우체국’이라는 간판을 거는 상상을 한 죄!    
 빈둥거리고 어슬렁거리고 게을러져라     - 발효와 숙성 -   젊은 이형기 시인이 대선배 조지훈에게 어떻게 하면 시를 잘 쓸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것은 그저 방치해둘 수밖에 없는 일이오”라고 말했다 한다. 시를 방치하는 일, 그게 시를 잘 쓸 수 있는 길이라니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그러나 오해하지 마라. 좋은 시를 쓰기 위해 무조건 한가하고 낭만적인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빈둥거리며 노는 시간을 발효와 숙성의 시간이라고 부르고 싶다. 만약에 당신이 맛있는 술을 마시고 싶거든 술이 제대로 익기를 기다려라. 좋은 술일수록 절대로 혼자 병마개를 따고 홀짝이며 마셔서는 안 된다. 함께 마실 친구가 저녁 어스름에 당신을 찾아올 때가지 기다려라.   나는 어슬렁거리며 걷는 시간을 좋아한다. 어슬렁거려야 미세한 데 눈길을 줄 수 있고 세상의 뒤편을 응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를 공부하는 학생에게 나는 특별한 이유 없이 되도록 많이 걸을 것을 주문한다. 한적한 오솔길이나 들길이 아니더라도 좋다. 모든 길은 세상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훌륭한 통로다. 그러나 시가 오지 않으면 아등바등 시를 찾아 나서지 마라. 그냥 놀아라. 시를 써서 무슨 이름을 얻겠다는 허영심을 버리고 시가 실패할지 모른다고 초조해하지도 마라.     - 쓰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시간 -     시를 쓰다가 슬럼프에 빠지면 어떻게 해결하나 물어보지 마라. 시를 한 편 한 편 쓸 때마다 슬럼프인 것이니 정말 시를 쓰고 싶거든 슬픔마저 사랑하고 즐길 도리밖에 없다.   시를 다시 쓰면서부터는 신문을 끊었고 티브이를 거의 끊었고 외출을 거의 끊었다. 내가 문밖으로 나오는 것은 아침저녁 아파트 옆 구릉 위로 난 산책로를 걷는 때로 한정되어 있었다. 그 길을 걸으면서 시를 생각하고 머릿속에다 집을 짓듯 시를 짓고 지는 시를 외우며 돌아와서는 외워온 시를 입력하고 한 밤중에도 일어나 앉아 시를 고쳐 쓰곤 했다.   이렇게 말하는 위선환 시인은 30년간 시를 끊었다가 근래에 빛나는 시를 생산해내고 있는 분이다.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김종삼,  전문   비록 여섯 줄밖에 안 되는 짧은 시이지만 행간과 행간 사이에 여백은 무한하고 시행은 끝났지만 마지막 쉼표는 소와 할머니의 상처와 그 둘 사이의 적막이 오래 지속되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이러한 적막을 사랑하라. 적막에 사로잡힌 적막의 포로가 되라. 적막 속에서 빈둥거리다보면 문득 소란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그렇다고 세상의 소란 속으로 단번에 뛰어 들지 말고 가능하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라. 그러다보면 시를 쓰지 않고는 못 배길 시간이 찾아올지 모른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을 알면서도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람이 시인이다.”     감정을 쏟아 붓지 말고 감정을 묘사하라   - 함축인가, 비유인가 -   교과서에서 시를 이렇게 정의한다. ‘시는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함축적이고 운율적인 언어로 표현한 글’이라고. ‘함축과 운율’은 시의 형식적 특성을 나타내는 용어임에 틀림없다. 시에서의 함축은 긴 내용을 ‘줄여 말하기’가 아니라 ‘비유해서 말하기’이다. 시의 함축은 ‘감추어 말하기’에 가깝다. 독자의 입장에서 함축의 의미는 ‘시인의 말’을 듣는 게 아니라 ‘시인의 마음’을 읽는 것이다. 즉 함축이란 겉으로 드러난 언어의 뜻을 좇는 게 아니라 언어가 내포한 속뜻과 암시하는 바를 살피는 일이라 할 수 있다. 행간을 읽으라는 말이다. 시의 함축성보다는 오히려 시가 비유적 표현을 뚜렷이 할 필요가 있다. “긴 이야기를 짧게 말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비유적인 표현의 사용이 시의 특성에 가깝다는 말이다”라고 이남호는 강조한다. 매우 정확하고 적절한 의견이다.     - 고백 · 감상 · 현학 -   감정을 드러내고 쏟아 붓는 일은 시작법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이다. 슬프다 기쁘다 보고 싶다 아름답다거나 하는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우리는 ‘고백’이나 ‘넋두리’ 혹은 ‘하소연’이라 부른다. 그런 것은 시의 일부분이 될 수는 있어도 시의 모든 것은 아니다.   시가 고백적 양식이라 믿는 사람들이 범하기 쉬운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 과장이다. 제발 그리운 척하지 마라. 혼자서 외로운 척하지 마라. 당신만 아름다운 것을 다 본 척 하지 마라. 그런 것들은 우습다. 두 번째, 감상(感傷)이다. 세상의 모든 슬픔을 혼자 짊어진 척하지 마라. 아프지도 않은데 아픈 척하지 마라. 질질 짜지 마라. 그런 것들은 역겹다. 세 번째, 현학이다. 무엇이든 다 아는 척, 유식한 척하지 마라. 시에다 제발 각주를 좀 달지 마라. 그런 것들은 느끼하다. 시는 감정의 배설물이 아니라 감정의 정화조다. 속에서 터져 나오려는 감정을 억누르고 여과시키는 일이 바로 시인의 몫이다.     - 묘사의 힘 -   “내가 내 감정을 말하지 않아도 사물이 대신 이야기 해준다.” 고 말한 이는 연암이다. 그렇다면 시인은 감정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물이 하는 이야기를 받아 적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 시인의 받아 적기는 언어를 통해 이루어지고 감정을 언어화 하는 과정을 ‘묘사’라고 한다. 묘사란 감정을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언어로 그려내는 것이다. 시인이 묘사한 언어를 보고 독자는 머릿속에 어떤 그림을 그리게 되고 그 그림을 이미지라고 한다.   달개비 떼 앞에 쭈그리고 앉아 꽃 한 하나를 들여다본다 이 세상 어느 코끼리 이보다도 하얗고 이쁘게 끝이 살짝 말린 수술 둘이 상아처럼 뻗쳐 있다.   황동규,  부분   혹시 들길을 걷다가 당신은 달개비 꽃잎 속에 코끼리 한 마리가 들어 앉아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식물을 자세히 들여다봐야 하고 귀에 들리는 새소리를 언어의 그림으로 그릴 준비를 해야 한다.   어떤 시가 언어예술로서의 기본적인 꼴을 갖추었는가의 여부는 묘사의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 사물에 대한 묘사능력으로 시의 품격을 판단할 수 있다는 말이다. 묘사는 시를 습작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오랜 시간을 들여 공부해야 하는 필수과목이다. 시인은 세상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자가 아니라 세상을 세밀하게 그리는 자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자기가 말하고 싶은 것을 최대한 정확하고 절실하게 언어로 그릴 책임이 있다. 내 마음 속에 있는 감정을 그대로 까발려 드러내면 시가 추해 진다. 내 마음을 최대한 정성들여 그려서 보여주기, 그게 바로 시다.   산등에 붙은 오막살이 까치둥지 같다 그래도 울타리에는 가지마다 봄꽃이 곱다 집이 너무 헐어서 바람도 딱하게 여기나 보다 꽃이파리 휘몰아다가 낡은 지붕을 깁는다   조선 후기 한욱의 한시   서정시에서 자아가 대상에 스미는 것을 ‘동화’ 혹은 ‘감정이입’이라 하고, 대상한테 자아를 맡기고 비춰보는 것을 ‘의탁’ ‘투사’ 혹은 ‘투영’이라 한다. 주체와 객체의 동일시라는 전통적인 서정시의 문법이 여기서 발생한다. 이 시에서 1, 2연은 자아가 풍경에 동화되는 순간을 제시한다. 3, 4연은 자아의 감정을 바람에 의탁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산등성이 오막살이집의 낡은 지붕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화자의 심정을 바람이라는 자연현상에 투사하고 있는 것이다. 애처롭고 딱한 감정을 단순 토로하는 게 아니라 꽃잎이 낡은 지붕을 덮는 객관화된 풍경과 동일시하는 이 기법은 묘사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묘사는 무엇보다도 구체적 형상화에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다. 시에서 구체성은 감동의 원천이고 삶의 생생한 근거이기 때문이다.   시에서 묘사에 충실해야 하는 이유는 대상의 현상을 생생하게 그리기위해서만 아니라 대상의 본질에 이르는 관문이기 때문이다. 묘사는 시의 화자인 ‘나’를 객관화하는 데 기여하는 형상화 방식이므로 묘사를 통해서 대상과 시적 화자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게 된다. 시로써 말할 수 있는 게 많은가? 처음부터 끝까지 묘사 한 줄 없이 뱃속에 든 것을 줄줄이 쏟아 놓기만 하는 시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265    시인이여, 단순하고 엉뚱한 상상력으로 놀아라... 댓글:  조회:3643  추천:0  2017-02-21
상투성의 그물     상투성은 시의 가장 큰 적이다. 시인의 미적 인식에 의해 사물을 재발견하는 게 중요하다. 절대 죽은 인식을 되풀이 하지 말라(남들이 많이 써먹은 비유는 하지 말것) -> 죽은 언어를 구별하여 과감히 버리고 살아있는 언어와 사투를 벌여라.   똥누듯이 쓰라. '무엇'을 쓰려고 하지 말라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을 써라. "오래 들여다봐라. 오래 들여다보면 주변의 것들이 모두 시가 된다." -> 사과를 예로 들면 사과를 오래 바라보고 사과에 스민 햇빛을 상상해보고 (중략) 사과를 완전히 잊어버려라.(p. 61) 큰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을 써라. 이론이나 세계관이 시를 낳는 게 아니다. 당신의 시가 당신의 이론과 세계관을 형성한다고 믿어라. 화려한 것이 아니라 하찮은 것을 써라 책으로 얻은 지식과 지혜를 말로 옮겨 쓰려 하지 말라. 현학이나 지적 허영의 늪에 빠질 수 있다. 어깨와 팬 끝에 힘을 주지 말고 자연스럽게 써라.   상처를 통해 이야기하고  흉터를 감추지 말고 말하며  자신이 미쳤음을 부끄러워 하지 말라   시를 쓰는 동안은 당신이 받은 훈장과 상장을 반납하고 행운과 행복과 영광을 외면하라 당신이 자랑하고 싶은 것들과는 이별하고 당신이 부끄러워하는 것들과 손을 잡고 결혼하라. 당신이 두고두고 치욕스럽게 여기는 것, 감춰두고 싶은 것, 그래, 그것을 꺼내 써라   무엇을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 쓰지 말라   무엇을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 쓰지 말라 시가 천박해진다. 그래도 부처와 예수와 부모와 아내를 시에 쓰고 싶어 못 견디겠다면? -> 부처의 말씀을 관념의 테두리 안에 가둬버리고 실천할 줄 모르는 자들에 대해 써라 예수를 팔아 제 잇속을 챙기는 자들을 꾸짖는 시를 써라 부모의 비겁함과 치부와 죄를 찾아 써라 아내의 째째함과 실수와 과욕에 대해 써라   묘사   묘사는 개념을 해체한다. 고정관념이 만든 개념을 쓰지 말라. 묘사는 개념을 구체화하거나 해체하는 데 기여한다. 예를 들면 "시장에는 여러가지 채소가 많다"라고 쓰면 죽은 문장이다. "가락시장에는 배추, 시금치, 상추가 많다"라고 쓰기 시작해야 문장에 조금이라도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출처] 안도현의 시작법 다섯가지|작성자 소나여우 [창작강의] 단순하고 엉뚱한 상상력으로 놀아라 비유는 일상적 언어 규범에서 일탈해 새로운 의미를 형성하는 언어 용법이다. 은유·직유·제유·환유의 뒷글자인 ‘유’(喩)는 ‘말하다’는 뜻의 ‘구’(口)와 ‘옮기다’라는 뜻을 가진 ‘유’(兪)의 결합이다. 즉 비유란 말의 원래 뜻을 옮겨 다르게 표현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개나리꽃은 노랗다”는 일상 언어를 “개나리꽃은 병아리 부리다”라는 비유적 표현으로 바꿔보자. 이 ‘병아리 부리’ 속에는 노란 색깔 이외에도 개나리꽃의 모양, 꽃잎의 연약함, 봄의 이미지 등이 첨가된다. ‘노랗다’는 일상 언어의 평이함이 전면 확장되어 의미의 전이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대상과 대상 연결하는 ‘은유’  비틀고 꼬며 덧칠해야 할까  여러 가지 비유 중에 은유는 차별성 속에서 동일성을 찾는 수사법 중의 하나다. 옥타비오 파스는 “시는 대립적인 것들의 역동적이고 필연적인 공존뿐만 아니라, 그들 사이의 최종적인 동일성을 선언한다”()고 말했다. 누가 뭐래도 시는 은유의 덩어리다. 은유적 표현을 한정해서 말하는 게 아니라 시라는 양식이 은유에 기대어 태어났고 성장하고 있는 존재다.  그런데 때로 은유의 폐해를 지적하는 연구도 우리의 흥미를 끌어당긴다. 구모룡의 에 따르면 시는 근대적 개념인 세계의 자아화나 동일성으로 설명할 수 없다. “은유는 다른 대상을 자기화하는 수사학이다. 다시 말해서 은유는 대상과 대상을 강제적으로 연결한다.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억압하는 논리이다. ” 이러한 은유적 욕망이 근대에 와서 주체중심주의, 이성중심주의, 남성중심주의를 낳았다는 진단이다. 이처럼 “타자에게 폭력적”인 은유에 대한 대안으로 유기론을 바탕으로 하는 제유 시학의 가능성을 제시하기에 이른다.  말을 비틀고 교묘한 표현을 일삼는 이들에 대한 비판에 일찍이 허균도 가세했다. “에 실려 있는 여러 편의 명문장을 보라. 모두 문장으로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지만, 어려운 말로 교묘하게 꾸민 구절이 있는가? (중략) 제자백가서만 보더라도 모두 자신들의 도리를 논했기 때문에 그 글은 쉽고 간결했다. 그런데 후대에 와서는 문장과 도리가 둘로 쪼개져 마침내 어렵고 교묘한 말로 글을 꾸미는 일이 생겨났다. 이것이야말로 문장의 재앙이다.”(허균 )  나도 땅을 가지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민병하 선생님도  수원 근처에 오천평이나 가졌는데……  싼 땅이라도 좋으니  한 평이라도 땅을 가지고 싶다.  땅을 가졌다는 것은 얼마나 좋으랴……  땅을 가지고 싶지만,  돈이 있어야 한다.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  땅을 가지고 있으면,  초목을 가꾸고,  꽃을 심겠다.  천상병의 시 이다. 시인은 가진 땅이 한 평도 없어 “나도 땅을 가지고 싶다”고 직설적으로 욕망을 드러낸다. 땅을 가지기 위해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소유욕을 숨기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이라 할 만하다. 어떤 이들은 도대체 이런 게 무슨 시인가, 되묻고 싶을 것이다. 이 시에는 시적인 비유도 없고 시적인 발견도 없다고, 이런 시라면 하룻밤에도 수십 편을 쓰겠다고 투덜댈지도 모르겠다. 천상병이라는 유명한 시인이 쓴 것이니까 좋은 시라고 추어올리는 게 아니냐고 볼멘소리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땅을 소유하고자 하는 시인의 욕망은 “초목을 가꾸고,/ 꽃을 심겠다”는 아주 작지만 근원적인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땅을 가진 뒤에 땅값이 오르기를 기다리거나 거기에 부동산을 짓겠다는 투기 욕망 따위는 일절 없다. 오히려 그런 심리를 비웃기라도 하듯 시인은 그저 초목과 꽃을 심겠다고 한다 (그러다 보면 땅값이 오르겠지, 하고 의심한다면 당신은 정말 속물이다). 이러한 단순성의 미학이 천상병이라는 시인을 만들었다.  이 시에서 무욕의 욕망을 읽고 은유 아닌 은유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바로 은유의 성채 입구에 도달한 사람이다. 그러니 시를 쓰기 위해 책을 뒤져 은유를 배우지 마라. 은유를 잘못 배우면 말을 요리조리 비틀고 무슨 문장이든 꾸미려 하고 교묘하게 꼬는 일이 시의 전부인 줄 알게 된다. 나는 그것을 ‘비유의 덧칠’이라고 부른다. 비유를 덧칠하지 않고 단순한 상상력의 깊이를 아는 사람은 저녁에 술 마시러 나갈 때 천상병의 이런 시 구절을 흥얼거릴지도 모른다. “저녁 어스름은 가난한 시인의 보람인 것을……”( 일부분)  내 늙은 아내는  아침저녁으로  내 담배 재떨이를 부시어다가 주는데,  내가  “야 이건  양귀비 얼굴보다도 곱네.  양귀비 얼굴엔 분때라도 묻었을 텐데?”  하면,  꼭 대여섯 살 먹은 계집아이처럼  좋아라고 소리쳐 웃는다.  그래 나는  천국이나 극락에 가더라도  그녀와 함께  가 볼 생각이다.  미당이 작고하기 두 해 전, 1998년 1월호에 발표한 시 다. 그 한 해 전에 나온 마지막 시집 (시와시학사)도 그렇지만 말년에 미당은 여든을 훨씬 넘은 나이에 놀랍게도 소년의 목소리를 얻었다. 어른은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세상사에 대해 이것저것 따지고 분석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소년은 단순하게 세상을 읽으려고 한다. 삶의 갈등과 고뇌에 물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당의 시에 나타나는 이 단순성은 이 세상을 한 바퀴 휘휘 돌아본 뒤에 마침내 다다른 시선(詩仙)의 경지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문학과 인생의 산전수전 끝에 미당은 천진성이라는 새로운 문학적 눈을 갖게 된 것이다.  *특정한 틀에 갇히지 말고  천진난만한 상상 표현하길  내 아내는 여기 등장하는 ‘늙은 아내’와 달리 내 담배 재떨이를 아침저녁으로 비워본 적이 별로 없었다. 집에서 내 재떨이는 담배꽁초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버린 휴지 조각, 방바닥에서 집어낸 머리카락, 손톱 따위들을 담는 쓰레기통쯤으로 취급되어 왔었다. 나는 이 시를 아내에게 보여주었다. 아내는 시를 보고 뭔가 찔리는 게 있었던 모양이다. 그 다음날부터는 정말 내 재떨이도 확연히 달라졌다. 아침저녁으로 담뱃재 하나 묻어 있지 않은 재떨이를 보면서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야 이건 양귀비 얼굴보다도 곱네. 양귀비 얼굴엔 분때라도 묻었을 텐데?”  담배 재떨이는 대체로 둥글다. 그 둥근 모양과 부부 관계가 알맞게 버무려진 이 시를 읽으면서 나는 보름달을 떠올린다. 모자라는 것도, 더 채워야 할 것도 없는 보름달의 원형은 우리가 궁극적으로 가 닿아야 할 사랑의 종착지를 상징한다.  “아 내곁에 누어있는 여자여./ 네 손톱 속에 떠오르는 초생달에/ 내 戀人(연인)의 꿈은 또 한 번 비친다.” ( 일부분) 그동안 미당의 시에 숱하게 등장하던 초생달의 이미지는 이 시에 이르러 비로소 환한 보름달로 가득 차올랐다. 미당은 자연스럽게 보름달의 세계를 갖게 되었다. 단순함의 힘이다.  나주 들판에서  정말 소가 웃더라니까  꽃이 소를 웃긴 것이지  풀을 뜯는  소의 발밑에서  마침 꽃이 핀 거야  소는 간지러웠던 것이지  그것만이 아니라  피는 꽃이 소를 살짝 들어 올린 거야  그래서,  소가 꽃 위에 잠깐 뜬 셈이지  하마터면,  소가 중심을 잃고  쓰러질 뻔한 것이지  윤희상의 이다. 근래 이 시를 잃고 한참 동안 행복했다. 특정한 개념과 틀에 갇히지 않은 상상력이 이런 유쾌한 시를 생산했다. 엉뚱함의 힘이다. 꽃이 소를 웃겼다고, 소의 발바닥을 간질였다고, 연약한 꽃이 육중한 소를 살짝 들어 올렸다고 한다. 정말 소가 웃을 일이다. 세상에 시인이 아니면 누가 이런 엉뚱한 발언을 하랴.     
264    시어는 "관념어"와 친척이 옳다?... 아니다!... 댓글:  조회:3035  추천:0  2017-02-21
관념적인 한자어를 척결하라                                     /안도현 - 일상어와 시어   (말이 늙으면 시는 죽으리)   어떤 말이 시가 될 수 있고 어떤 말이 시가 될 수 없을까? 일상어와 시어는 따로 존재하는 것일까?이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들이 분분하지만, 대체로 모든 일상어가 시어로 쓰일 수 있다는 데에는 동의하고 있는 듯하다.   문장과 대화에서 쓰이는 모든 말은 시어가 될 수 있다. 우리 현대시에는 표준어뿐만 아니라 꽤 오래 전부터 방언과 비속어까지 심심찮게 시어로 등장했다. 김용택은 “환장하것네 환장하것어/ 아, 농사는 우리가 쌔빠지게 짓고/ 쌀금은 저그들이 앉아 올리고 내리면서/(…)/ 풍년 잔치는 저그들이 먼저 지랄”()이라며 전라도 사투리를 통해 노골적으로 농민들의 편을 든다. 김진경은 “복어새끼처럼 왜 그런대유/ 배에다 바람을 잔뜩 집어넣구/ 가시를 있는 대루 세우믄 누가 무서워헐 줄 아남유”()하고 충청도 말로 능청을 부린다. 안상학은 “보래요. 삼시세끼 빵만 묵고 살라믄 살니껴? 대한민국 워델 가도 그런 사람 없을께시더”()라면서 경북 안동 말을 시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   김수영이 일찍이 “그년하고 하듯이 혓바닥이 떨어져나가게/ 물어제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지간히 다부지게 해줬는데도/ 여편네가 만족하지 않는다”()며 너스레를 떨자, 한참 후에 이에 화답하듯 황지우도 풍자의 대열에 합류한다. “간밤에도 그는 외국 바이어들을 만났고, “그년”들을 대주고 그도 “그년들 중의 한 년”의 그것을 주물럭거리고 집으로 와서 또 아내의 그것을 더욱 힘차게,더욱 전투적이고 더욱 야만적으로, 주물러주었다.”()이에 질세라 박남철은 한 발 앞서간다. “내 시에 대하여 의아해하는 구시대의 독자놈들에게→차렷,열중쉬엇, 차렷,”() 하고 호통을 친다.   현대어뿐만 아니라 중세국어, 영어, 화살표 같은 기호까지 시어의 영역에 들어와 있다. 그리고 문장에 쓰이는 마침표·쉼표·물음표·따옴표·줄표와 같은 부호가 시에 끼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못해 절대적이다. 심지어 옥타비오 파스는 침묵도 말이라고 한다. “침묵조차도 무언가를 말하는데, 침묵은 무(無)가 아니라 여전히 기호들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어는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강철 조각이 아니다. 적어도 용접공이 강철과 강철을 이을 때 일어나는 불꽃이거나 그 불꽃의 뜨거움이거나 불꽃이 내장하고 있는 위험한 미래여야 한다. 그래서 때로 시어는 한글맞춤법이나 국어순화운동에 딴청을 부리기도 한다. 나는 자장면보다 ‘짜장면’이,메리야스보다 ‘런닝구’가, 브래지어보다는 ‘브라자’가, 펑크보다는 ‘빵꾸’가, 머큐로크롬보다 ‘빨간약’이나 ‘아까징끼’가 더 시적인 말이라고 생각한다. 옥타비오 파스도 시적인 언어는 일상으로부터 일탈할 때 태어난다고 말하고 있다.   “시적 창조는 언어에 대한 위반으로 시작한다. 이러한 작용의 첫 번째 행동은 말들을 지탱하고 있는 뿌리를 뒤흔드는 일이다. 시인은 일상적인 일들, 그리고 그것들과 맺고 있는 연관 관계에서 말들을 뿌리째 뽑아내어 일상적 언어의 획일적인 세계와 결별시킨다. 이때 단어들은 이제 막 태어난 것처럼 생생한 것이 된다.”   동아시아의 한자문화권 전통 속에 말을 하고 글을 쓰는 우리는 한자 혹은 한자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 시인들은 한자의 형상이 드러내고 있는 시각적 이미지에 끌릴 수밖에 없었다. 한자가 시인들을 자극하고 고민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기호의 의미는 같지만 ‘산’이라고 쓸 때와 ‘山’이라고 쓸 때 그 함의는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인다.(우스운 이야기 하나. 어릴 적에 나는 음식점 간판에 적힌 ‘산낙지’를 보고 한동안 산에 사는 낙지인 줄 알았다. 가재처럼 심산유곡의 돌덩이 밑 어디쯤 사는……)   그런데 뜻글자라고 해서 그 뜻과 형상이 다 미학적으로 완전한 것은 아니다. 관념적인 한자어는 시에서 척결해야 할 대표적인 낡은 언어다. 시적 언어의 성취 목표를 한 50년 이전쯤에 두고 있는 사람일수록 관념적인 한자어를 쉽게 지워버리지 못하는 습성이 있다. 유치환이 에서 “哀愁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라고 노래한 것은 1930년대 말이었고, 박인환이 “사랑의 진리마저 愛憎의 그림자를 버릴 때”라며 절망스러워한 것은 1950년대 한국전쟁 직후였다. 김현승이 ‘堅固한 고독’을 발표한 때는 60년대 중반이었다. 이 시인들이 ‘애수’와 ‘애증’과 ‘견고한 고독’을 노래할 즈음에 그 시어들은 ‘막 태어난 것처럼 생생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 그 시어들은 시간의 무덤에서 하얗게 풍화된 죽은 말들이다.   무엇보다 관념적인 한자어를 써야만 그럴 듯한 시가 된다는 착각이 문제다. 정진규는 시에서 관념이 ‘화자의 우월적 포즈’()라고 꼭 집어 말한 바 있다. 당신은 관념적인 한자어가 시에 우아한 품위를 부여한다고 착각하지 마라. 품위는커녕 한자어 어휘 하나가 한 편의 시를 누르는 중압감은 개미의 허리에 돌멩이를 얹는 일과 같다. 신중하고 특별한 어떤 의도 없이 아래의 시어가 시에 들어가 박혀 있으면 그 시는 읽어 보나마나 낙제 수준이다.   갈등 갈망 갈증 감사 감정 개성 격정 결실 고독 고백 고별 고통 고해 공간 공허 관념 관망 광명 광휘 군림 굴욕 귀가 귀향 긍정 기도 기억 기원 긴장 낭만 내공 내면 도취 독백 독선 동심 명멸 모욕 문명 미명 반역 반추 배반 번뇌 본연 부재 부정 부활 분노 불면 비분 비원 삭막 산화 상실 상징 생명 소유 순정 시간 신뢰 심판 아집 아첨 암담 암흑 애련 애수 애정 애증 양식 여운 역류 연소 열애 열정 영겁 영광 영원 영혼 예감 예지 오만 오욕 오한 오해 욕망 용서 운명 원망 원시 위선 위안 위협 의식 의지 이국 이념 이별 이역 인생 인식 인연 일상 임종 잉태 자비 자유 자학 잔영 저주 전설 절망 절정 정신 정의 존재 존중 종교 증오 진실 질서 질식 질투 차별 참혹 처절 청춘 추억 축복 침묵 쾌락 탄생 태만 태초 퇴화 패망 편견 폐허 평화 품격 풍자 피폐 필연 해석 행복 향수 허락 허세 허위 현실 혼령 혼령 화려 화해 환송 황폐 회상 회억 회의 회한 후회 휴식 희망   “진부한 말이란 보통 사람들이 일상에서 쓰는 말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모든 경서와 옛사람들이 이미 언급한 말의 대부분이 이른바 진부한 말이다.”(김창협,  외편) 시는 이런 진부한 시어의 무게를 감당할 수가 없다. 사유라는 것은 원래 그 속성상 관념적인 것이고 추상적인 법이다. 하지만 관념을 말하기 위해 관념어를 사용하는 것은 언어에 대한 학대행위다. 관념어는 구체적인 실재를 개념화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관념어가 시만 좀먹고 있는 게 아니다. 예식장에도 있다. 흔해빠진 주례사가 그것이다. 행복과 공경과 우애와 사랑이라는 말이 들어간 주례사가 귀에 들리면 한시바삐 밥을 먹으러 가고 싶어진다. 진정한 사랑은 개념으로 말하는 순간 지겨워진다. 황지우의 시처럼 “그대 옷깃의 솔밥이 뜯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 보이는”( 것, 그게 사랑의 표현방식인 것이다.   관념어는 진부할 뿐 아니라 삶을 왜곡시키고 과장할 수도 있다. 또한 삶의 알맹이를 찾도록 하는 게 아니라 삶의 껍데기를 어루만지게 한다. 당신의 습작노트를 수색해 관념어를 색출하라. 그것을 발견하는 즉시 체포하여 처단하라. 암세포 같은 관념어를 죽이지 않으면 시가 병들어 죽는다. 상상력을 옥죄고 언어의 잔칫상이어야 할 시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관념어를 척결하지 않고 시를 쓴다네,하고 떠벌이지 마라.   관념어를 떠나보내고 나면 그 휑하니 빈자리가 몹시 쓸쓸하게 보일 것이다. 당신은 그 빈자리를 오래 응시하라. 당신의 상상력이 가동하기 시작할 것이고, 상상력은 이미지라는 처녀를 데리고 올 것이다. 말로 그림을 그릴 줄 아는 그 처녀를 꽉 붙잡고 놓지 마라. 관념어를 떠나보낸 자리에 그 처녀를 정실부인으로 들어앉혀라. 그래도 관념어의 옛정이 그리워져 못 견디게 쓰고 싶거든 그 말을 처음 쓴 지 30년 후쯤에나 써라.   당신에게 시 한 편을 읽어주겠다. 이시영의  전문이다. 나는 이 시에서 ‘고독’이라는 말을 발견하고 온몸이 찌릿찌릿해졌다. 이쯤은 되어야 고독을 말할 자격이 있다.   고독을 모르는 문학이 있다면 그건 사기리 밤새도록 앞뜰에 폭풍우 쓸고 지나간 뒤 뿌리가 허옇게 드러난 잔바람 속에서 나무 한 그루가 위태로이 위태로이 자신의 전존재를 다해 사운거리고 있다.     형용사를 멀리하고 동사를 가까이 하라   - 한심한 언어 -   커다란 황금물감 푹 찍어 가을들판에 가만가만 뿌려 놓았다 탱글탱글 누우런 벼이삭 살랑살랑 가을바람 불어오면 빠알간 고추잠자리 두둥실두둥실 흥겨운 춤사위   참새친구 멀리 이사 가도 외롭지 않은 허수아비 허허허 허수아비의 정겨운 웃음소리에 농부아저씨의 어깨춤 덩실덩실   초등학교 6학년생이 쓴 동시   글을 아름답게 하려고 다듬고 꾸미고 무엇인가를 덧붙이는 일을 수사(修辭)라고 한다. 이 시는 온전히 수사의 기술로 쓴 동시라고 할 수 있다. 시어중 명사 10개, 그것도 2개 이상의 단어가 결합한 복합어 형태다. 이 명사들은 가을을 피상적으로 바라본 결과로서 스스로 빛나는 시적영감을 던져주지 못하고 시를 위해 동원되고 있다. 여기다 의성어 의태어가 7개, 색깔이나 상태를 표현하는 커다란 누우런 빠알간 흥겨운 정겨운같은 형용사가 쓰이고 있다. 이러한 부사, 형용사를 빼고 이 동시를 읽어 보자   황금물감 찍어 가을들판에 뿌려 놓았다 벼이삭 가을바람 불어오면 고추잠자리 춤사위   참새친구 이사 가도 허수아비 허수아비의 웃음소리에 농부아저씨 어깨춤   이렇게만 해도 작자가 형용사를 통해 대상을 간섭하고 감정을 드러내는 기회가 대폭 줄어든다. 엘리엇은 시가 ‘정서로부터의 해방이 아니고 정서로부터의 도피’라고 강조하면서 시에서 감정의 직접적인 표출을 경계했다. 형용사는 시인의 감정을 직접 노출시키는 구실을 한다. 쉽게 시인의 감정을 드러내는 데에는 형용사가 유리한 것이다.     - 동사의 역동성과 종결어미의 변화 -   형용사의 과도한 사용은 시의 바탕이라 할 은유와 상징이 설자리를 빼앗는다. 이미지가 들어앉을 자리를 형용사가 차지하고 있으면 그 시는 겉은 화려해 보이지만 내용이 없고 뜻은 쉽게 드러나지만 깊이가 없어 천박해 진다. 사물의 핵심을 표현하는데 게으른 시인일수록 형용사를 애용한다. 그 형용사를 따라다니다 보면 독자는 상상할 시간을 갖지 못하게 된다.   문장에서 형용사는 뒤에 오는 말(명사)을 치장하는 역할을 한다. 쓸떼 없는 치장은 하지 않음만 못하다. 특히 색채를 표현하는 빨갛다 노랗다등의 감각형용사는 아예 잊어 버려라. 이런 색채형용사들이 들어갈 자리에 동사의 역동성으로 채워 시를 살아 꿈틀거리게 하라. 기어가게 하라. 뛰어가게 하라. 날아가게 하라. 형용사가 사물의 성질 감각 색깔 시간 수량등 정지상태를 표현하는데 반해 동사는 사물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역동적 어휘다. 동사가 움직이는 선이라면 형용사는 고정된 하나의 점에 불과하다. 그러니 당신은 가능하다면 형용사를 미워하고 동사를 사랑하라. 동사는 경험과 실질의 세계고 감각의 세계다. 동사는 우리가 사는 얘기다. 자고 먹고 누고 낳고 좋아하고 미워하고 울고 웃고가 다 동사로 표현된다.   우리말의 언어적 특성은 조사의 종류가 많고 어미의 변화가 매우 다양하다. 조사와 어미의 변화에 주목하라. 토씨, 즉 조사 하나가 시의 어조와 호흡에 결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근대이전의 시에서 주로 쓰이던 -노라 -도다 -지어다와 같은 종결어미는 시대의 변화와 함께 죽은 어미가 되었다.   나는 소금 좌판 위 주발이다. 지게 목발이다 헤쳐도 헤쳐도 산, 고드름의 저문 산 새발 심지의 등잔   박용래  전문   은유적 표현에 기대어 의미를 단정하는 ‘-이다’는 70년대 시에 자주 나타났으나 요즘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요즘은 ‘-같다’가 점령할 시대가 오는 건 아닐까?     출처 :시는 강물처럼 ===============///////////===덤으로 더 보기+=   저는 제가 유죄라고 여겨지지 않습니다. 반대로 저는 오로지 악에 대한 공포와 혐오만을 불러일으키는 책을 냈다는 것이 매우 자랑스럽습니다. ―샤를 보들레르    나는 감히 견자이어야 하며 의식적으로 견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겠습니다. 시인은 모든 감각의 오랜, 엄청난 그리고 추리해낸 착란에 의해서 자신을 의식적으로 견자로 만듭니다. 사랑과 고통, 광증의 모든 형태들이 다 그런 것입니다. ―아르튀르 랭보    신들은 고맙게도 어떤 시의 첫 구절은 공짜로 준다. 그것과 화음을 이룰 둘째 구절을 불러내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다. 이렇게 하나의 단어로 시작되는 시는 ‘아직 말을 더듬거리기 때문에’ 우발적인 단어를 빌려 쓸 수밖에 없는데,그 단어들은 ‘놀라우리만큼 정확하게’또 다른 단어를 불러온다. ―폴 발레리    시는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완성된다. 작가는 그의 텍스트를 아직 모를 뿐이다. ―고트프리트 벤    시를 통해서는 개인들이 표현되기도 하지만, 그 개인들이 속한 계급도 표현된다. 또한 여러 시대의 모습이 시 속에 표현되는가 하면 인간의 격한 감정 역시 표현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결국 표현되는 것은 ‘인간 그 자체’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많은 양의 작품들을 내놓는 것보다 일생에 걸쳐 하나의 이미지를 제시하는 것이 낫다. ―에즈라 파운드    예술가의 과정은 계속적인 자기희생의 과정, 즉 계속적인 개성 소멸의 과정이다. ―T. S.엘리엣   시인은 문장 속에서는 물론이고 일상적인 삶 속에서도 자신에게 신호를 보낼 수 있는 의미심장한 우연의 일치들,기묘한 유사점들을 주의 깊게 포착하는 일종의 감시병이 된다. ―앙드레 브르통    왜 어째서 문학은 한쪽 구석으로 몰려야 하는가? 그것은 모든 신문에, 매일같이 모든 페이지마다 실려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디저트 정도로만 내놓는 문학 따위라면 죽어버려야 한다.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    예술 작품이 진정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세련되고 잘 다듬어진 기법뿐 아니라 영감이라는 거대하고도 신비로운 불꽃이 필요하다.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언어는 리듬이 되려고 하는 본래의 경향을 갖는다. 마치 신비스러운 중력의 법칙에 따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들은 자발적으로 시로 돌아간다. ―옥타비오 파스    대낮에 광장에서 읽는 시가 되어야 한다. 책이란 숱한 사람들의 손길에 닳고 닳아 너덜너덜해져야 한다. 낯선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해변에서, 낙엽 속에서 문득 시를 낭송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들이 지은 시를 소중하게 낭송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만이 우리는 진정한 시인이며 시는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파블로 네루다     
263    멕시코 시인 옥타비오 파스가 "이미지"를 말하다... 댓글:  조회:3470  추천:0  2017-02-20
   [옥타비오 파스] 이미지 (1)        이미지라는 단어도 다른 말들처럼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예를 들면, 아폴로 신이나 성모 마리아의 조각처럼 상의 의미를 갖기도 하고, 상상력을 통하여 상기하거나 만들어내는 실재적 혹은 비실재적  모습을 뜻하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말은 심리적 가치를 지닌다고 말할 수 있다. 즉, 이미지들은 상상적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상적 결과물들이 이미지가 갖는 유일한 의미도 아니며,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여기서 이미지라는 말이 가리키는 것은 모든 언어적 형태, 즉 시이이 말하는 구와, 이것들이 모여서 시를 구성하는 구들의 총체라는 것을 밝혀둔다.      수사학은 이러한 표현들을 분류하여 비교, 은유, 말의 유희, 유사어, 상징, 알레고리, 신화, 우화 등으로 부르고 있다. 이러한 용어들을 가르는 차이점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들을 묶는 공통점은 구나 구들의 총체의 구문론적 통일성을 깨지 않고 말이 갖는 의미의 다원성을 보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각각의 이미지 --혹은 이미지들오 이루어진 각각의 시편--는 자신 안에 품고 있는 대립되거나 조화되지 않는 많은  의미들을 하나도 제거하지 않은 채 껴안아 화해시킨다. 그래서 십자가의 성 요한은 "침묵의 음악"이라는 시적 구를 사용하여 겉으로 보기에 화해 불가능한 두 단어를 걸합시킨다.     이런 맥락에서, 비극적  영웅도 하나의 이미지이다. 가령, 안티고네라는 인물은 선험적 가치인  효와 사회적 가치인 인간 법 사이에서 고뇌하는 비극적 영웅이다, 아킬레우스의 분노 역시 단순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는 파트로클로스에 대한 사랑과 프리아모스에 대한 연민, 영광스러운 죽음에 대한 매혹과 오래 살고자 하는 욕망의 대립이 얽혀 있다. 세히스문도에게서는 불면과 꿈이 풀리지 않는 불가사의한 방법으로 결합되어 있다. 오이디수스에게는 자유와 운명이 얽혀 있고........이처럼 이미지는 인간조건의 표식이다.   서사적이거나 희극적 혹은 서정적이거나 간에, 하나의 구에 농축 되어 있거나 혹은 천 페이지에 걸쳐 풀어 헤쳐져 있거나 간에, 모든 이미지는 대립되거나 무관심하거나 혹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요소들을 가깝게 접근시키거나 결합시킨다. 다시 말해, 다원적 현실에 통일성을 부여한다.  개념과 과학적 법칙이 의도하는 바도 이와 다르지 않다.  동일한 논리적 환원 덕분에 개체적 대상들--가벼운 깃털과 무거운 돌--은 동질적인 단위로 변화된다. 어느 날 어린아이들이 돌 일 킬로그램은 깃털 일 킬로그램과 똑같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놀라는 것은 당연하다. 돌과 깃털을 킬로그램이라는 추상성으로 환원시키는 것은 어린아이들에게 쉬운 일이 아니다. 어린아이들은 돌과 깃털이 스스로의 존재 방식을 포기하였을 뿐만 아니라, 속임수에 의해 그것들이 가지고 있던 모든 질적인 특성들과 자율성을 상실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환원이 갖는 통일적 기능은 그러한 질적인 특성들과 자율성을 망가뜨리고 빈약하게 만든다. 시에서 는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시인은 이것은 깃털이고, 저것은 돌이라고 이름붙인다. 그리고 느닷없이 돌이 깃털이고, 이것이 저것이라고 단언한다. 이미지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자신의 구체적이고 독특한 성질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돌은 여전히 거칠고, 딱딱하고, 불투명하고, 태양처럼 누렇거나, 이끼에 덮여 초록빛을 띄거나 간에 어쨌든 돌, 무거운 돌이다. 그리고 깃털은 여전히 가벼운 깃털이다.이미지는 '무거운 것은 가벼운 것이다'라는 모순의 원리에 도전함으로써 물의을 일으킨다. 대립되는 것들의 동일성을 말하는 것은 우리의 사유 토대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미지가 보여주는 시적 현실은 옳고 그름을 지향하지 않는다. '시는 ~이다'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될 수 있다'를 말한다. 시의 왕국은 존재의 왕국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적인 "불가능한 그럴듯함"의 왕국이다.      [옥타비오 파스]활과 리라 '이미지' 중에서 =============   [옥타비오 파스]이미지 (2)     이러한 반대되는 언급에도 불구하고, 시인들이 고집스럽게 단언하는 것은 이미지가 드러내는 바는 '~이다' 이지,'~이 될 수 있다' 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지는 존재를  재창조한 다고 말한다. 이미지의 철학적 권위를 회복하려는 욕심에서 어떤 이들은 변증법적 논리로부터 그 근거를 찾아내는 일에 주저하지 않기도 한다. 결국, 많은 이미지들은 변증법적 과정의 세 시기에 부합된다. 즉, 돌은 실재의 한 단계이며, 깃털은 또 다른 단계이고, 양자의 충돌에서 새로운 실재로서의 이미지가 솟아나는 것이다. 그러나 변증법이 모든 것에 적용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 이미지들을 무한히 열거할 필요는 없다. 어느 때는 첫번째 용어가 두번째 용어를 삼켜버린다. 또 어느 때는 두번째가 첫번째를 중화한다. 혹은 세번째 용어는 산출되지 않고 두 요소가 환원 불가능하고 적대적인 상태로 마주서 있는 모습으로도 나타난다. 유머의 이미지들은 일반적으로 마지막 경우에 해당한다. 모순은 단지 현실이나 혹은 언어의 복구 불가능한 부조리한 특성을 가리키기 위하여 쓰인다. 결국,많은 이미지들이 헤겔의 변증법적 질서에 의거하여 전개된다고 할지라도, 거의 언제나 문제가 되는 것은 정과 반의 진짜 동일성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유사함이다. 변증법적 과정에서 돌과 깃털은 돌도 아니고 깃털도 아닌 제 3의 현실을 위하여 사라진다. 그러나 어떤 어미지 정확히 말해 가장 높은 이미지에서는 돌과 깃털은 여전히 돌과 깃털이다. 즉, 이것은 이것이고 저것은 저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이것이 저것이다. 돌은 돌이면서 깃털이다. 무거운 것이  가벼운 것이다. 여기에는 과학이 요구하는 양적인 환원도 없고, 헤겔의 변증법이 요구하는 질적인 변화도 없다. 요약하면, 변증볍의 입장에서 볼 때 이미지는 물의를 일으키는 도전이며, 사유의 법칙을 침해하는 것이다. 변증법은 현실의 모습적인 성격을 소화시키기 어려운 논리적 원리들, 특히 모순의 법칙(이것이 이것이지 저것이 될 수 없다) 같은 것을 해결하려는 시도이다. 따라서 변증법의 입장에서 볼 때 이미지는 소위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들처럼 그렇게 실제적으로 우리 눈앞에 있는 어떤 것을 설명할 수 있기에는 불충분한 것이라고 보인다. 정은 반과 동시에 주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양자는 새로운 긍정에 자리를 내주고 사라지는데, 새로운 긍정은 양자를 포괄하면서 그것들을 변화시킨다. 세 단계들의 각각에는 모순의 원리가 지배한다. 긍정과 부정이 결코 동시적인 실재로 주어지지 않는 것은 그것이 과정이라는 개념 자체를 말살하는 것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모순의 법칙을 존중하는 변증법적 논리는 그러한 법칙을 뛰어넘는 이미지를 비난한다.   여타의 학문들처럼, 논리학도 모든 체계가 어느 순간 스스로에게 던져야만 하는 질문, 즉 자신들의 근거에 대한 비판적 질문을 던진다. 만일 내 생각이 틀리지 않다면, 버틀란트 러셀의 역설이 의미하는 것과, 러셀과는 정반대의 위치에 있는 훗설의 연구가 의미하는 것도 역시 논리의 근거에 대한 질문들이다.  이렇게 새로운 논리적 체계들이 출현해다.  어떤 시인들은 뤼파스크의 연구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는데 그는 자신이 상보적 모순의 원리라고 부른 것에 기초한 일련의 명제들을 발전시키자고 제안했다. 뤼파스코는 대립되는 용어들을 그대로 존중하면서, 양자간의 상호의존성을 강조하였다. 각각의 개념을 상호 직접적이고 모순적인 관계 속에서 의지하고 있는 상대 속에서 현실화될 수 있다. 즉, A는 B와의  모순적 기능에 의해 존재한다. A에서 발생하는 하나하나의 변화는 겨로가적으로 B에게 상반된 의미의 변화를 가져온다. 부정과 긍정, 이것과 저것, 돌과 깃털은 동시적으로 그리고 상대의 상보적인 기능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이다.  ================   [옥타비오 파스] 이미지 (3)       동양의 가르침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앎은 공식이나 이성으로 전달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진리는 경험이며 각자가 스스로 위험 무릅쓰고 경험해야만 한다.  가르침은 우리에게 길을 보여주지만, 아무도 우리 대신 그 길을 갈 수는 없다. 그래서 명상의 기법들이 중요하다. 배움은 지식을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와 정신을 단련시키는 것이다. 명상이 가르쳐주는 것은 모든 가르침을 잊어버리고 모든 지식을 포기 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시험 뒤에 우리는, 아는 것을 감소하지만 더 가벼워진 자신을 느끼게 된다, 즉, 우리는 여행을 떠날 수 있고, 아찔하고 텅 빈 진리의 시선을 마주할 수 있게 된다. 정중동이며 만중허, 헤겔이 절대의 무와 충만한 존재 사이의 최종적인 일치를 발견하기 훨씬 전에, 우파니샤드는 범의 상태를 존재와의 교감의 순간들로 정의했다.  "오감이 고요해지면서 정신 속에서 하나로 합쳐질 때, 그 안정된 정신을 통해 인간은 가장 높은 경지에 이르게 된다." 생각한다는 것은 숨쉬는 것이다.    숨을 멈추는 것은 관념의 순환을 정지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존재가 모습을 드러내도록 비우는 것이다. 생각하는 것이 숨쉬는 것인 이유는 사유와 삶이 개별적 우주가 아니라 연통관이기 때문에, 즉 이것은 저것이기 때문이다. 인간과 세계, 의식과 존재, 존재와 실존의 최종적인 동일성은 인간의 가장 오래된 믿음이며 고학과 종교, 주술과 시의 뿌리이다. 우리의 모든 활동은 오래된 오솔길, 즉 양쪽 세계를 소통시키는 잃어버린 통로를 발견하는 것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원초적 동일성을 반영하는 것, 대립물의 보편적 상응을 재발견하거나 검증하는 것이다. 이러한 원리에 영감을 받은 탄트라 불교의 체계는 육체를 우주의 은유 혹은 이미지로 인식한다. 육체의 경락은 에너지의 매듭이며, 별자리와 혈액과 신경의 흐름이 합류하는 곳이다. 포옹하는 육체들이 취하고 있는 각각의 자세는 수액, 혈액 그리고 빛의 삼중 리듬에 의하여 움직이는 점성술의 황도 12궁에 해당한다. 남인도의 코나락 사원은 서로 위얽힌 현란한 육체들이 밀림처럼 뒤덮여있다. 이 육체들은 화염의 잠자리에서 깨어나는 태양들이며, 서로 교미하는 별들이다. 돌은 불타오르고 사랑에 빠진 사물들은 서로 결합한다. 연금술적 결합은 인간의 결합과 다르지 않다. 백거이는 자전적 시편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한밤중에 나는 슬쩍 훔쳐보았다 음양이 다정하게 껴안고 있는 것을, 상상도 못한 자태로 아내와 남편처럼 껴안고 있었다. 두 마리 용처럼 서로 칭칭 감은 체.   동양적 전통에서 진리는 개인적 경험이다. 그 때문에 엄격한 의미에서 진리는 소통 불가능한 것이다. 진리의 탐구는 각자 스스로 해 나가는 것이다. 충만함에 도달했는지, 존재와의 동일함에 도달했는지의 여부는 모험을 감행하는 당사자 외에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체험적 앎은 말로 전달할 수 없다. 이러한 '깨달음의 상태'는 너털웃음, 미소 혹은 역설로 표현된다. 하지만 그러한 미소는 수행자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음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모든 앎은, 앎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경전들은 자주  이러한 모순적인 말을 한다. 가르침은 침묵으로 귀결된다. 도는 규정할 수 없고 이름을 붙일 수도 없다. "길은 길이라 말하면 늘 그 러한 길이 아니고, 이름을 이름지으면  늘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 장자는 언어란 본래 절대를 표현할 수 없다고 확신했다. 이것이 상징 논리 학의 창시자들을 노심초사케 하는 난제이다.   "도는 말로 규정할 수 없는 것이다.....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는다.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고로, 현자는 말없는 가르침을 전한다." 상대적이며 상호 의존적인 대림물들의 세계를 초월하지 못하는 언어의 무능력이 말의 근원적 한계를 야기한다.   "사람들이 진리를 배운다고 말할 때, 그들은 책을 생각한다. 그러나 책은 말로 되어 있다. 말도 가치를 갖는다고 할 수는 있다. 말의 가치는 말이 숨기고 있는 의미에 있다. 이 의미는 바로 말로는 도달할 수 없는 어떤 것에 도달하려는 노력 그 자체이다. "   결국, 의미하는 사물들을 지향하고, 사물들을 가리키지만, 결코 그것들에 도달할 수는 없다.  대상은 말 너머에 있다.     [옥타비오 파스] 이미지 (4)     장자는 언어를 비판했지만, 말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이것은 선불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뛰어난 언어적 창조물인 연극 노오와 바쇼의 하이쿠는 역설과 침묵으로 용해되는 선불교의 가르침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러한 모순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장자는 현자는 "말없는 가르침을 전한다"고 확신한다. 기독교와 달 리 도교는 좋은 가르침도 나쁜 가르침도 믿지 않는다. 간단히 말하 면, 언어로 된 가르침을 믿지 않는다. 장자가 말하는 말없는 가르침 이란 모범이 되는 가르침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로 되어 있으 면서도 언어를 넘어서는 언어, 즉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말을 뜻한다. 장자는 이것과 저것의 의미를 초월하여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언어가 시라고 말한 적이 없지만, 그의 글은 이미지, 말의 유희, 그 밖의 시적 형태들과 떼어놓을 수 없다. 장자에게서 시와 사유는 날줄과 씨줄이 되어 하나의 기막힌 천을 짜낸다. 다른 경전 들도 마찬가지이다. 도교, 힌두교, 불교의 사유가 이해될 수 있는 것은 시적 이미지 대문이다. 장자가 도의 경험이란 언어가 갖는 상 대적인 기의들이 무효화되는 자연적이고 원초적인 의식으로 돌아 가는 것이라고 설명할 때, 그 말은 말의 유희, 즉 시적 수수께끼를 암시하는 것이다. 본래의 우리 자신으로 돌아가는 경험은 "새들을 놀라게 하지 않고 새장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새들은 말을 의미하기에, 이 말은 결국 말없이 하고 싶은 것을 표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여여함의 왕국인 침묵으로 돌아가는 것, 즉 " 이름이 필요 없는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혹은 이름과 사물이 융합하여 하나가 되는 곳, 즉 말이 존재가 되는 시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지는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가벼운 깃털은 무거운 돌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언어가 말할 수 없는 것을 이미지가 어떻게 말하는 지 보기 위해서는 언어를 살펴봐야 한다.    ===================   [옥타비오 파스] 이미지 (5)        언어는 이것 혹은 저것의 의미이다.  깃털은 가볍고 돌은 무겁다. 가벼운 것은 무거운 것과의 관계 속에서 가벼운 것이며, 어두운 것 은 밝은 것에 비교해서 어두운 것이다. 모든 의사 소통의 체계는 지시체들과 그 의미들의 세계 안에서 가능하다.  그러므로 언어 체계는 가변성을 갖는 기호들의 총체를 구성한다. 예를 들어, 수의 경우에 왼쪽에 쓰인 영은 오른쪽에 쓰인 영과 같지 않다. 숫자는 놓이는 위치에 따라 의미가 바뀌는 것이다. 언어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며, 단지 기타의 의미화와 의사 소통 수단에 비해 가변성의  폭이 더 넓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각각의 낱말은 서로 관련을 맺고 잇는 여러 의미를 갖는다. 그러한 의미들은 문장에서의 낱말의 위치에 따라 정돈되며 뜻이 정해진다. 낱말들이 구를 형성하게 되면 문맥의 의미라는 다른 의미가 만들어진다. 낱말들의 다른 의미들은 사라지거나 약화된다. 혹은 달리 말한다면, 말은 그 자체로 무한한 의미의 가능성이지만, 하나의 구 속에 들어가 활성화될 때, 즉 언어로 변화될 때, 그러한 가능성은 단지 하나의 방향으로 고정된다. 산문에서 구의 통일성은 의미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그 의미는 구를 이루는 모든 낱말들을 동일한 대상 혹은 동일한 방향을 겨냥하게 겨냥하는 화살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미지는 의미의 다원성이 사라지지 않는 구이다. 이미지는 일차적인 의미와 이차적인 의미 그 어느것도 배제하지 않고 단어의 모든 가치들을 거두어 고양시킨다. 그렇다면 어떻게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는 이미지가 단순히 말장난이 아니라, 하나의 이미지가 되어 상반되는 여러 힘들의 긴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일까?  어떤 명제들은 문법적이며 논리적인 구문으로는 완벽하게 옳지만, 의미상으로는 모순되기도 한다. 가르시아 바카가 그의 책 [근대의 논리학 입문]에서 인용하는 있는 것처럼 (" 숫자2는 두 개의 돌이다"). 논리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는 명제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이미지는 모순도, 무의미도 아니다. 이미지는 모순적, 무의미적 혹은 비일관적인 명제들을 훨씬 뛰어넘는 통일성을 갖는다. 만일 다양하며 서로 다른 의미들이 이미지의 내부에서 투쟁한다면, 이미지의 의미는 무엇일까?    시인의 이미지들은 다양한 층위에서 의미를 갖는다. 첫째로, 이미지는 진정성을 갖는다. 이미지는 시인이 본 것이며 들은 것이고, 세계에 대한 시인의 비전과 경험에 대한 진솔한 표현이다. 그 때문에 이미지는 심리학적 차원의 진리를 다르는 것이며, 명백히 우리가 걱정하는 논리적인 문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둘째로, 그러한 이미지들은 그 자체로 유효한 객관적 실재를 구성한다. 즉, 이미지들은 작품들이다. 공고라의 작품에 나타나는 풍경은 자연 풍경과 동일하지 않다. 그러나 비록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할지라도, 양자는 현실성과 확실성을 갖는다. 즉, 서로 병행하며 자율성을 갖는 현실의 두 질서이다. 이 경우에, 시인은 진리를 말하는 것 이상의 행위를 한다. 즉, 스스로의 실존의 진실이라는 또 다른 진리의 세계를 창조한다. 시적 이미지들은 스스로의 논리를 가지며,  시인이 '물은 유리이다'라고 말하거나 혹은 '물오리는 수양버들의 사촌이다" (카를로스 페이세르)라고 말한다고 해서 문제를 삼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이미지의 미학적 진리는 단지 자신의 세계 안에서만 대해서 무엇인 가를 말하며, 그 무엇은, 비록 이상하게 보일지라도, 우리에게 우리가 누구인 지를 진정으로 드러내준다고 확신한다. 시적 이미지들에 관련된 이러한 주장은 어떤 객관적인 근거를 갖는 것일까? 시적 언어가 보여주는 외견상의 모순 혹은 무의미는 어떤 의미를 내포하는가?   우리가 어떤 대상을 자각할 때, 이 대상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성질들, 감각들, 의미들의 복합체로 나타난다. 이러한 복합성은 접촉의 순간에 즉시 동일된 상태로 지각된다. 다양한 성질과 형태의 모순적인 총체를 동일시키는 요소는 의미이다. 사물들은 의미를 갖는다. 현상학적인 분석이 보여주는 바에 따르면, 가장 단순하고 우연적이고 방심한 상태로 지작하는 경우에조차도 어떤 지향성이 주어진다. 이렇게 의미는 언어의 근거이면서 동시에 실재를 포착하는 근거이다. 실제의 복합성과 모호성에 대한 우리의 경험은 의미 속 에 녹아든다. 일상적인 지각과 비슷하게, 시적 이미지는 실재의 복합성을 살려내는 동시에 통일성을 부여한다. 여기까지는 시인이 하는 바가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다. 이제 살펴보아야 할 것은 실재를 표현하는 다른 형태들과 이미지를 구별시켜주는, 이미지의 통합 작용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옥타비오 파스]이미지(6)     실재에 대한 우리의 모든 해석들 --삼단논법, 묘사, 과학적 공식, 실천적인 수준의 논평 등--은 표현하고자 의도하는 것을 재창조하지 않고 그것을 표상하거나 혹은 묘사하는 데 그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의자를 본다면 우리는 순간적으로 의자의 색깔, 형태, 재료 따위를 지각한다. 이러한 분산적이고 모순적인 특성들에 대한 감지는 그것의 의미, 즉 의자가 기구이며 도구라는 것을 아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의자에 대한 우리의 지각을 묘사하기를 원한다면, 세부적으로 들어가야 한다. 맨 먼저, 의자의 형태, 그 다음에는 색깔 그리고 의미에 이를 때까지 이렇게 계속해야 한다.  묘사의 과정에서 대상의 총체성은 점점 상실되어간다. 처음에 의자는 단지 형태였다가 나중에는 나무의 종류가 되고 마침내는 순수한 추상적 의미 '의자는 앉기 위해 사용하는 대상이다' 가 된다. 시에서 의자는 느닷없이 우리의 주의를 자극하는 순간적이고 총체적인 현존이 된다. 시인은 의자를 묘사하지 않고 대신 우리 앞에 의자를 보여준다. 지각의 순간에서처럼, 의자는 그것의 모든 모순적인 성질들을 지닌 채 우리 앞에 주어지며, 그 순간의 정점에는 의미가 자리잡는다. 이렇게 이미지는 지각의 순간을 되살려내며 독자로 하여금 언젠가 지각한 일이 있는 대상을 자신 안에서 되살려내도록 충동한다. 리듬을 갖는 구인 운문은 일깨우고, 되살려내고, 환기시키고, 재창조한다. 혹은 마차도가 말했던 것처럼, 한 번 걸러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현시한다. 실재에 대한 우리의 경험을 재창조하며 되살린다. 그러한 부활은 우리의 일상적인 경험의 부활일 뿐만 아니라, 우리삶의 가장 어둡고 멀리 떨어져 있는 부분의 부활이기도 하다. 시는 우리가 잊고 있는 것, 즉 진실한 우리 자신을 기억하게 해준다.    의자는 동시에 여러 가지 사물이 된다. 앉기 위해서 사용하기도 하지만 다른 쓰임을 가질 수도 있다. 그리고 이것은 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말이 자신의 충만함을 회복하자마자, 잃었던 의미들과 가치들을 다시 획득 하게 된다. 지각의 순간에 감지할  수 있는 것처럼, 이미지의 복합성은 실재의 복합성과 다르지 않다. 즉각적이고 모순적이며 복합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숙이 숨어 있는 의미를 갖는다. 이미지에 의해서 이름과 대상, 표상과 실재 사이에 순간적인 화해가 이루어진다. 그 때문에 주체와 객체는 매우 충만한 일치를 이룬다. 만일 시인이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이미지 덕분에 그 언어가 원초적인 풍요로움을 회복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의견의 일치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말이 맨 처음의 상태로, 다시 말해, 의미의 복합성으로 복귀하는 것은 시적 기능의 첫 번째 행위일 뿐이다. 우리는 아직 시적 이미지의 의미를 완전히 포착하지 못했다.    모든 구는 다른 구와 관련되며, 다른 구로 설명되는 것이 가능하다.  기호의 가변성 덕분에, 말은 다른 말로 설명될 수 있다. 뜻이 모호한 구문에 부딪혔을 때, 우리는 '이 말들이 뜻하는 것은 이것이 나 혹은 저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 혹은 저것'을 말하기 위해서 또 다른 말들에 의탁한다. 모든 구는 다른 구에 의해서 말해지거나 설명될 수 있는 어떤 것을 뜻한다. 결과적으로, 의미는 말하고자 함이다. 혹은 다른 방식으로 말해질 수 있는 언표이다. 이와 반대로, 이미지의  의미는 이미지 자체이지 다른 말로 설명 될 수 없다. 이미지의 의미는 그 자체로만 설명된다. 그 자신을 제외하고는 어떤 것도 이미지가 의마흔 것을 말할 수 없다. 의미와 이미지는 동일하다. 하나의 시편은 이미지 이외에 다른 의미를 갖지 않는다. 의자를 볼 때, 우리는 즉시 그것의 의미를 감지한다. 아무 말없이 우리는 의자에 앉는 것이다. 시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난다.   시의 이미지들은 산문과는 달리 우리를 또 다른 사물로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구체적인 실재와 마주서게 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입술이 내게 "소리 얼음을 쌀쌀맞게 내뱉는다"라고 시인이 말할 때, 그는 새하얀 것 혹은 교만함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지는 우리로 하여금 긴말이 필요 없이 직접 현실에 마주서게 한다. 즉, 치아., 말, 얼음, 입술, 부조화한 실재가 느닷없이 우리 눈 앞에 출현한다. 고야는 전쟁의 공포에 대해서 묘사하는 것이 아니고 있는 그대로 전쟁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주석도, 지시체도, 설명도 필요치 않다. 시인은 의미하지 않고 말한다. 문장과 구는 수단이다. 그러나 이미지는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며, 이미지 자체가 의미이다. 그 의미는 이미지에서 시작하고 이미지에서 끝난다. 시의 의미는 시 자체이다. 이미지들은 어떠한 설명과 해석으로도 환원 불가능하다. 이렇게 원초적인 복합성을 최복한 말은 이제 또 다른 당황스럽고 과격한 변형을 겪는다. 이것은 어떻게 성립되는가?      [옥타비오 파스]활과 리라 '이미지'중에서 ===================   파스의 와 을 읽다 노트해 두었던 그의 시론에 관한 그리고 삶에 대한 시적 잠언 몇 구절을 다시 옮겨봅니다.  "시는 이 세계를 들어내면서 다른 세계를 창조한다." "시는 색깔이고 소리이면서 의미이기도 한 말로 이루어지는 애매한 존재이다." "말들은 규정을 거역한다." "시어는 관계를 형성하며 일어선다. 시는 일어선 언어이다." "삶을 소재로 시를 쓰는 것보다 삶 자체를 시로 변화시키는 것이 더 바람직한 것은 아닐까?" "단어들도 사랑한다" -부르통 재인용- "모든 언어 현실의 밑바닥에는 리듬이 존재한다. 단어들은 어떤 리듬의 원리에 따라 서로 모이고 흩어진다." "시인은 리듬을 통하여 언어를 유혹한다. 리듬은 기대를 유발하며 어떤 바램을 떠받이고 있다. 리듬은 내용이 없는 단순한 측량이 아니라 방향성이고 느낌이다." "모든 춤은 리듬이며, 모든 리듬은 춤이다. 리듬에는 이미 춤이 있고 춤에는 이미 리듬이 있다." "리듬의 반복은 원초적 시간의 초대이며 소환이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원형적인 시간을 재창조하는 것이다." "산문은 행진, 시는 춤" -발레리 재인용- "파운드는 분묘 도굴범의 영웅적 분위기를 가지고 인용들을 끌어 모았고, 엘리엇은 난파선의 유품들을 거둬들이는 사람처럼 인용들을 정돈하였다. 파운드의 작품은 우리를 아무 곳에도 데려가지 않는 여행이며, 앨리엇의 작품은 조상의 집을 찾는 탐색이다." "말의 가치는 말이 숨기고 있는 의미에 있다. 대상은 말 너머에 있다." "어떤 교리도 설하지 않는 것, 그것이 진짜 교리를 설하는 것이다." "근대 예술의 비판은 근대성이 지향하는 직선적 시간에 대한 부정이었고, 동시에 자기 자신에 대한 부정이었다. 이러한 부정을 통하여 예술은 지속되었다." ""자본주의가 인간을 기계로 취급했다면, 후기 산업사회는 인간을 기호로 취급한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영원과 미래를 생각해냈지만, 이것이 바로 치명적인 함정이었다. '지금'은 우리를 우리의 현실과 화해시킨다. 우리의 현실이란 우리가 죽는다는 것이다. 오직 죽음 앞에서만 우리의 삶은 진실한 삶이 된다." "자연은 창조하고 예술가는 인식한다." "시는 부분들간의 유사성과 대립성의 상호 보완적인 운동에 의하여 움직이는 -감동(서로를 느껴(感) 움직이는 (動) 총체다." "시장은 이념을 갖지 않는다. 시장은 가격만을 알 뿐, 가치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18세기 기하학적 균형을 부순 낭만주의가 번갯불의 섬광아래 탄생했을 때부터 우리 시대의 황혼녁의 혼돈에 이르기까지 시는 고집불통이고 완강한 이단이 되어왔다. 그것은 지그재그의 쉴새없는 운동이고 모든 이념과 종교에 대한 끊임없는 반란이며, 동시에 비천한 현실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이고, 독단적인 신앙과 이성주의의 관념론적 공론에 대한 항거였다. 시, 그것은 근대성에 파문을 일으킨 돌이었다." 모든 예술, 특히 미술과 조각은 형체를 가지고 있는 물건이어서 간수할 수 있고 팔 수도 있고, 또한 투기의 대상이 될 수도있다. 그림과 반대로 시는 어떤 형상도 무늬도 없으며 단지 독자들에게 말의 주문을, 청자들에게는 심적인 이미지들을 불러일으킨다. 시는 귀를 통해 듣지만 상상력을 통해 본다. 그 이미지들은 이중적인 침묵이어서 생각이면서 형태고 소리이면서 침묵이다." "시는 기술과 시장에 대한 해독제다." "우주는 유사성과 대립성으로 짜여진 살아 있는 그물이다. 시의 작용은 언어를 끌어당김과 밀어냄이라는 두 흐름에 의해 흘러가는, 살아 있는 우주로 인식한다. 언어 내에서는 천체와 세포 간의, 입자와 인간간에 투쟁과 사랑 그리고 뭉침과 흩어짐이 재생산되고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언젠가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던져서 그에 대해 답할 수 있을 때까지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히는 질문에 대답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신은 우리에게 첫 구절을 베풀어 줄 뿐이다(발레리 재인용). 그것을 완성하되, 첫 구절에 육박하도록 써내야 하는 것은 오로지 시인의 몫이다."             자의식의 성장은 대화와 독백이라는 언어의 두 가지 기능을 위협한다. 대화는 다의성에 기초하고, 독백은 동일성에 기초한다. 대화의 모순은, 각자가 타인들과 말할 때 사실은 자기 자신과 말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독백의 모순은, 자아가 결코 자신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말하는 것을 듣는 타인이기 때문이다. 詩란 언제나 용어의 전환을 통해 이러한 불화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되어왔다. 그것은 대화 속의 나를 독백 속의 너로 바꾸는 것이다. 시는 ‘나는 너’라 하지 않고, ‘나의 나는 바로 너’라고 말한다. 시적 이미지는 ‘타자’이다. 의사불통이라는 근대의 현상은 주체의 복수성 때문이라기보다는, 개별의식의 구성요소로서 ‘너’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타인들과 말할 수 없는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과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아의 암세포 같은 증식은, 세계가 이미지를 상실한 원인이 아니라 그 결과다. (…) 파편과 분산 속에서 세계의 이미지를 발견하는 것, 하나 속에서 타자를 인지하는 것은 언어에게 은유의 능력을 되돌려주는 일이 될 것이다.  - [출처] [옥타비오 파스]이미지 (5/6)|작성자 몽당연필  /////////////////////////////     오늘은 옥타비오 파스와 함께 하루를...^^   시는 언젠가부터 나의 연인이 되었다. 시가 없는 삶은 참으로 사랑없는, 호흡의 정지와도 같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짧은 시에 숨어있는  역설, 아이러니, 모호성.. 그속에 숨어있는 샘물같은 잠언과.. 사랑..꿈틀거리는 무심의 언어들....   실오라기처럼 올올이 나를 휘감는 언어들이 언젠가부터 떨림으로 다가 왔다.   시인들마다의 모습이 다르듯 그들이 추구하는 시의 형태라든지 구사들이 아주 독특하고 개성있게 창작으로 우리앞에 다가오면 우리는 눈으로 읽고 가슴으로 느끼며 머리로 생각하게 된다 또 우리 내면 깊숙히 매만지면 시는 치유요, 힘이요, 사랑이요, 꿈이요, 원동력이 되기도 하다.   옥타비오 파스의 활과리라를 읽으면서 시란 뭘까 ...시가 도대체 무엇이길래 나를 이렇게 감전시키고 변화시키고..나로 하여금 역동적인 힘을 부여해 주는 것인가, 해답을 찾게 될 것이다   아울러 시를 통해 나는 내적 치유함을 얻게 되고 시로 표출하면서 내속의 잔 오물들을 내 벹음으로서 후련함을 얻는 것인가, 다시 한 번 되짚어 보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MR       활과 리라 / 옥타비오 파스    무심無心의 언저리를 건드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무심의 경험은 방심자, 은둔자 그리고 심약자까지도 인간의 원형으로 제시하려는 서구 문명의 지배적인 경향에 반대된다. 무심한 사람은 근대 세계를 부정한다. 근대 세계를 부정할 때, 그는 전체를 얻기 위해서 자신의 전체를 건다. 지적인 면에서, 그의 결단은 생의 저편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자살을 하는 사람의 결단과 다르지 않다. 무심한 사람은 이성과 소극적 안일함의 다른 편에는 무엇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무심이란 이 세상의 반대편에 대한 매혹이다. 의지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방향을 바꿀 뿐이다. 즉, 의지는 분석적 힘에 봉사하는 대신에, 분석적 힘이 자신의 목표를 위하여 정신적 에너지를 억압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이 문제에서, 서구 언어의 심리학적이고 철학적인 빈곤함은 시적 표현과 이미지의 풍성함과 대조가 된다. 십자가의 성 요한의 '침묵의 음악' 혹은 노자老子의 '텅 빈 충만'이라는 말을 기억해보자. 수동적인 상태는 침묵과 빔의 경험일 뿐만 아니라 능동적이고 충만한 순간의 경험이기도 하다. 즉, 존재의 핵심으로부터 이미지가 샘솟는 것이다. '나의 가슴은 한밤중에 꽃들을 피운다'라고 아즈텍인의 시는 말한다. 자발적인 마비는 정신의 다른 부분을 상승시킨다. 한 영역의 수동성은 다른 영역의 능동성을 야기하며 분석적이고 담론적이며 혹은 추론적인 경향성에 맞서 상상력의 승리를 가능케 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창조적 의지는 사라지지 않는다. 창조적 의지가 없으면, 실재와의 만남을 가능케 하는 문들은 완고하게 닫혀있게 된다.'                 ***       자신 너머의 저곳으로 발사되어 날아가는, 끊임없이 대기를 가르며, 항상 앞을 향하여 날아가는  화살인 인간은 쉼없이 전진하고 추락한다. 그 순간 순간 그는 '타인'이며, 자기 자신이다. '타자성'은 인간 안에 있다. 그치지 않는 죽음과 부활이라는, 하나의 통일성이 '타자성' 속에서 용해되어 다시 새로운 통일성으로 재탄생한다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비로소 어쩌면 '다른 목소리'라는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릴지 모른다.    여기 한 시인이 종이 앞에 앉아 있다. 그가 사전 계획을 가지고 있건 없건, 그가 앞으로 쓸 것에 대해 길게 사색을 했건 안 했건, 번갈아가며 그를 유혹하고 거부하는 순결한 백지처럼 그의 의식이 비어 있건 아니건 상관없다. 글을 쓰는 행위는 먼저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마치 허공으로 던져지는 것 같은 이탈을 요구한다. 이제 시인은 혼자 있다. 조금 전만 해도 그를 신경 쓰게 만들었던 모든 일상 세계가 사라진다. 만일 시인이, 단지 의례적인 글쓰기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글쓰기를 원한다면, 그의 행위는 그를 세상과 단절시키고 그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을 괄호 속에 집어넣는다. 그때 두가지 가능성이 일어난다. 모든 것이 증발하고 희미해져서 중력을 잃고 떠다니다가 결국 녹아 없어지거나, 혹은 모두가 스스로를 닫아걸어 의미의 빛이 뚫고 들어갈 수 없는 물질인 무의미체가 되고 만다. 세계는 스스로를 연다. 그것은 하나의 심연, 거대한 하품이다. 책상, 벽, 컵, 기억나는 얼굴 등 세계는 스스로를 닫아걸고 균열없는 담으로 변한다. 두 경우 모두 시인은 의지할 곳 없는 외톨이가 된다. 다시 세계를 창조하여, 저 위협적인 외부의 텅 빔을 하나 하나 이름붙여야 한다. 책상, 나무, 입술, 별, 그리고 무까지도. 하지만 낱말 역시 증발하여, 도망가고 만다. 말 이전의 침묵이 우리를 감싼다. 같은 침묵의 또 다른 얼굴인 무분별하고 말로 옮길 수 없는 중얼거림, '알아들을 수 없는 말과 분노the sound and the fury', 수다, 아무 의미 없는 소음 등이. 세계가 사라질 때, 시인에겐 말 역시 사라진다. 어쩌면 이 순간 그는 뒷걸음질치고 있는지 모른다. 그는 말을 기억하려하고, 학습했던 모든 것, 즉 조금 전만 해도 그에게 외부로의 길을 열어주고 모든 문을 열 수 있는 열쇠 같던 그 아름다운 말들을 내부에서 끄집어내려 애쓴다. 그러나 뒤에, 혹은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팽팽하고 긴장되게, 앞을 향해 던져진 시인은 문자 그대로 그를 벗어나 있다. 시인처럼, 말들도 저 너머, 언제나 저 너머에서, 스치기만 해도 바스러질 듯이. 자신 밖으로  던져진 그는 결코 말과, 세계와, 그리고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될수 없다. 시인도 말도 '항상 저 너머이다'. 말들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것은 주어진 상태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어떤 것이 아니다. 마치 매일 우리가 우리 자신과 세계를 창조하듯이, 그것들을 창조하고 발명해 내야 한다. 어떻게 말들을 창조하는가? 무에서는 무만 나온다. 만일 시인이 무에서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다 해도, '언어를 발명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언어란, 당연히, 대화이다. 언어는 사회적인 것이고, 언제나 최소한 말하는 자와 듣는 자 두명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시인이 발명하는 말은--그 말은 모든 순간을 포함하는 한 순간에 허공으로 사라지거나 아니면 침투할 수 없는 물건으로 변한다--매일 매일의 일상의 말이다. 시인은 자신에게서 그 말을 꺼내지 않는다. 외부에서 오는 것도 아니다. 우리 앞에 세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사실상 안도 밖도 없다. 우리가 존재한 순간부터, 우리는 세계 안에 있고, 세계는 우리 존재의 구성 요소 중 하나이다. 말들도 마찬가지이다. 그것들은 안이나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존재의 일부를 구성하는 것, 즉 우리 자신이다. 그것들이 바로 우리 존재이다. 그리고 우리 존재의 일부이기 때문에, 우리와는 낯선, 다른 사람들의 것이다. 즉, 그것들은 우리를 구성하는 '타자성'의 여러 형태 중의 하나이다. 시인이 스스로를 세계에서 떨어져 나온 존재로 느끼고, 언어를 포함한 모든 것이 그로부터 떠나고 해체될 때, 그 자신도 떠나고 사라진다. 그 다음 순간 침묵이나 알아듣지 못할 혼돈과 정면으로 맞서기로 결심하고 더듬더듬 언어를 창조하려고 시도할 때, 그 자신이 새로 창조되고 치명적 도약을 통해 재탄생해서 다른 사람이 된다. 자신이 되기 위해서는 타인이 되어야 한다. 그의 언어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 타인의 것이기 때문에 자기 것이 된다. 그것을 진짜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이미지와 형용사와 리듬에, 즉 그것을 타자화하는 모든 것에 의지하게 된다. 이렇게 그의 말은 그의 것이면서 또한 아니다. 시인이 어떤 이상한 목소리를 듣는게 아니다. 자신의 목소리와 자신의 말이 이상한 것이다. 그것은 세계의 목소리와 말인데 단지 그가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을 뿐이다. 그의 말과 목소리만 이상한 게 아니다. 그 자신, 그의 존재 전부가 끊임없이 낯선 것, 항상 타자로 변하는 무엇이다. 시어는 우리의 원초적 존재 조건의 계시이다. 왜냐하면 시어를 통하여 시인은 타인으로 불리며, 이렇게 그는 동시에 이것이며 저것이고, 그 자신이면서 타인이 되기 때문이다. -활과 리라, 中에서 /////////////////////////////// =====================   1. 시에 대한 다양한 정의 시는 앎이고 구원이며 힘이고 포기이다.  시는 이 세계를 드러내면서 다른 세계를 창조한다.  시는 경험이며 느낌이고 감정이며 직관이고 방향성이 없는 사유이다.  시는 우연의 소산이자 계산된 결과물이다.(13쪽)  시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며 성교이고 낙원과 지옥 그리고 연옥에 대한 향수이다.  시는 민중의 목소리이자 선민의 언어이고 고독한 자의 말이다.  2. 시편에 대한 정의  시편은 음악이 울리는 소라고둥이고, 시편의 운율과 각운은 전체적인 조화의 상응이자 울림이다.(14쪽)  3. 시와 시편에 대한 종합적 정의  시는 순수하면서 순수하지 않고, 신성하면서도 저주받았고, 다수의 목소리이면서 소수의 목소리이고, 집단적이면서 개인적이고, 벌거벗고 치장하고, 말하여지고, 색칠되고, 씌어져서, 천의 얼굴로 나타나지만, 결국 시편은 밤—인간의 모든 작위의 헛된 위대함에 대한 아름다운 증거!—을 숨기고 있는 가면일 뿐이다.(14쪽)  시는 모든 시편들의 합계가 아니다. 모든 시적 창조물은 그 자체로 자기 충족적인 단위이다. 부분이 곧 총체이다.(17쪽)  시편의 다양성은 시의 단일성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확인하는 것이다.(29쪽)  모든 시편은 유일하다.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작품에는 시의 맥박이 뛰고 있다. 이 때문에 시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역사적이고 문헌학적인 연구보다 단 한 편의 시를 읽는 것이 더 확실하다.(29쪽)  4. 시(시편)의 조건  운율의 법칙에 따라 만들어졌다고 해서 모든 작품이 시를 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시는 양극화되기도 하고 한곳으로 모이기도 하면서 그림, 노래, 연극의 형식으로 생산된다.  시적인 것이 무정형 상태의 시라면, 시편은 창조물, 즉 ‘일어선 시’이다.  시는 단지 시편이라는 형식을 통해 자신을 완전히 드러낸다.  시편은 단순한 문학적 형식이 아니라 시와 인간이 만나는 장소이다.  시편은 시를 품고 있고 시를 유도하며 시를 방출하는 언어적 유기체이다. 형식과 본질은 동일하다.(15쪽)  5. 시(시편)에 대한 역사 전기적 접근  시편의 공감을 일으키는 열쇠는 역사적 탐구가 아니라 전기이다.  역사와 전기는 역사적 시기와 삶에 대한 주조를 말해주고 작품의 경계를 보여주며 작품의 외재적 스타일을 설명해준다. 또한 하나의 경향성이 가지는 의미를 명확히 보여줄 수도 있고 시편이 왜 씌어졌으며 어떻게 씌어졌는지도 보여줄 수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시편이 무엇인지는 말해줄 수 없다.(19쪽)  6. 시와 스타일  시인은 스타일에서 자양분을 공급받고, 스타일은 자라서 죽지만, 시편은 영속한다. 왜냐하면 하나하나의 시편은 자기 충족적인 단위, 결코 반복되지 않을 독립된 본보기를 이루기 때문이다.(22쪽)  예술의 다양성은 예술의 단일성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각시키는 것이다.(22쪽)  재료의 면에서나 의미의 면에서나 작품은 인간을 초월할 수 없다.(25쪽)  *하나의 스타일 안에서, 시편을 운문으로 씌어진 논문과 구별짓고, 그림과 교육적 삽화를 가르며, 가구와 조각을 분리시키는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차별적 요소가 바로 시이다. 창조와 스타일을 구별짓고, 예술 작품과 도구 사이의 차이점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시이다.(26쪽)  7. 시와 산문  산문의 가장 상위의 형태는 담론이다.  산문은 말해지는 것이 아니라 씌어지는 것이다. 말해지는 언어는 산문보다 시에 가깝다. 말을 하는 것은 글로 쓰는 것보다 덜 반성적이며 더 자연스럽기 때문에, 산문 작가가 되기보다 시인이 되는 것이 더 쉽다.(26~27쪽)  산문에서 언어는 많은 의미의 가능태들을 희생시키고 그 중의 단 하나와 동일화를 시도한다.(27쪽)  시인은 결코 단어의 다의성을 거역하지 않는다. 산문과 일상 언어가 강요한 구속으로 불구가 되었던 언어는 시 속에서 원초의 상태를 회복한다 . 본성의 회복은 총체적이어서 의미론적 가치뿐만 아니라 음악적이고 조형적인 가치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렇게 자유를 찾은 말은 농익은 과일처럼 혹은 하늘에서 폭발하기 직전의 불꽃처럼 자신의 내부, 즉 모든 의미들과 암시들을 드러낸다. 시인은 말을 자유롭게 풀어주고 산문 작가는 말을 구속한다.(27쪽)  돌은 조각으로 변형될 때 광휘를 회복한다. 시적 기능은 기술적 조작과 정반대이다. 시적 기능에 힘입어 재료가 본성을 회복하게 됨으로써 색깔은 더욱 색깔다워지고 소리는 충만한 소리가 된다. 시적 창조에서는 재료나 기구에 대한 구속을 찾아볼 수 없으며 오히려 그것들에 자유를 부여한다 .(27쪽)  시적 창조에서 시의 재료(언어)는 의미 작용과 의사 소통의 도구이면서 ‘다른 사물’로 변화한다. 다른 사물이 된다는 것은 원래의 사물이 되는 것이다.(27쪽)  8. 다른 예술장르와 시  광채를 발하거나 혹은 불투명한 재료를 있는 그대로의 상태로 되돌려서 유용성의 세계를 부정하며, 다른 한편으로 그것을 이미지로 변화시키며 동시에 의사 소통을 위한 특별한 형태로 만드는 시적 작용을 고려한다면, 조형 작품이나 음악 작품도 시로 간주될 수 있다.(28쪽)  그림은 회화적 언어 이상의 어떤 것일 때 시가 된다.(28쪽)  수공예업자가 자신의 도구라 할 수 있는 돌, 소리, 색깔, 말을 이용하는 것과 달리 예술가는 그 재료들의 고유한 본성을 회복하기 위하여 그것들에게 봉사한다. 언어의 봉사자는 그 언어가 무엇이든지 간에 언어를 초월한다.(29쪽)  9. 시의 독서  모든 시편이 갖는 공통점은 참여이며, 이것 없이는 결코 시가 될 수 없다. 독자가 진실로 시편을 소생시킬 때마다 그는 시적이라고 일컫는 상태에 참여한다. 그러한 경험은 이런저런 형태를 취할 수 있지만 언제나 자기 자신을 뛰어넘는 것이며 시간의 벽들을 부수고 다른 ‘나’가 되는 것이다.(31쪽)  시편을 읽는 것은 시적 창조와 거의 흡사하다. 시인은 이미지, 즉 시편을 창조하며 시편은 다시 독자를 통해 이미지, 즉 시로 태어난다.(32쪽)  *시편은 순수한 시간에 도달하는 통로이며 실존의 생명수에의 잠항이다. 시는 끊임없이 창조하는 리듬 이외에 그 어떤 것도 아니다.(32쪽)      시인이란     홀로 독백하는 외로운 산책자이다   시인이란 숭고하면서도 괴상하고 가련한 악마이며 타고난 채플린이다   사소한 것, 가까이 있는 것, 친근한 것에 대한 미적 향수자이다 즉 일상적 언어가 갖는 비밀스런 호흡이며, 힘이다   하나의 독백 속에 반성과 서정, 노래와 아이러니 산문과 운문이 뒤섞이고 분리되며, 관조하고 또다시 합일된다   그것은 노래의 단절이다 더듬거리는 독백이며, 그것은 침묵의 여백으로 끊긴다   시는 노래의 단절에서 비평의 체계로 변했다 여기에 엉뚱한 이미지와 상투어 같은 말들을 덧붙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시는 결국 노래일 수밖에 없으며 포퓰리즘(대중)의 공유재산이 아니라 고독한 자의 사유재산이다       ==========///////////======         영감은 인간의 구성 요소인 '타자성'의 발현이다.  그것은 우리 내부에 있지도 않고, 과거의 진흙으로부터 갑자기 솟아닌 존재처럼 뒤에 있지도 않으며, 굳이 말하자면 앞에 있으면서 우리 자신이 되기 위해 우리를 부르는 무엇, 혹은 차라리 누구이다. 그 누구는 바로 우리 자신이다.그리고 사실 영감은 그 어디에도 있지 않다.     그냥 '있지 않으며', 그 무엇도 아니다. 그것은 지향이며, 나아감이며, 바로 우리 자신인 그것으로 향한 앞으로의 움직임이다. 이렇게 시적 창조는 우리의 자유와 존재하고자 하는 결심의 연습이다. 여기서 되풀이 말하지만, 이 자유는 좀더 충만해지기 위해서 우리 자신 너머에 있는 저곳으로 가고자 하는 행위이다.     자유와 초월은 시간성의 표현이며, 움직임이다.  영감과 '다른 목소리'와 '타자성'은 본질적으로, 끊임없이 스스로를 발현시켜서 흐르게 하는 시간성이다. 영감, '타자성', 자유 그리고 시간성은 초월이다. 하지만 그 초월과 존재의 움직임은 어디로 향하는 것인가? 우리 자신을 향해서이다.     보들레르가 "우리의 가장 고귀하고 찰학적인 능력은 상상력이다"라고 주장할 때, 그는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는 진실을 확인한 것이다. 상상력을 통하여, 즉 우리들의 본질적인 시간성에 내재하면서 바로 그 시간성을 육화하려는 끈질긴 욕망을 이미지로 바꾸는 능력을 통하여, 우리는 자신에게서 벗어나, '자신과의 만남을 위해 자신 저 너머로 갈'수 있는 것이다.     영감의 첫 단계에서, 우리는 먼저 자신이되기를 멈춘다. 두 번째 단계에서 자신으로부터의 탈피는 더욱더 전체적인 자신이 된다.  신화와 시적 이미지가 말하는 진실은, 대개 매우 신비롭게 나타나는데, 이탈에서 귀환으로, '타자성'에서 통일성으로 가는 변증법에 들어 있다.            
262    애송시가 되는 비결은 우리 말로 우리 정서를 표현해야... 댓글:  조회:2548  추천:0  2017-02-20
  시는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누가 써온 것인가? 그 기원을 찾아서.  이승하(시인.중앙대 교수)  시의 질료는 언어뿐일까요?  애드가 앨렌 포의 정신적인 제자라고 할 수 있는 샤를르 보들레르는  "시의 목적은 진리나 도덕을 노래하는 것에 있지 않다. 시는 그 자체가 목적이다"라는  유명한 자기목적설을 주장했습니다.  존 홀 힐록은 보들레르의 말을  흉내 내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산문은 언어를 어떤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지만,  시는 언어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다."  과연 시는 언어만을 목적으로 삼는 것일까요?  이 세상에는 크게 두 가지의 언어가 있습니다.  지시어와 함축어가 그것입니다.  지시어는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정보를 전달하거나  의사소통에 사용하는 언어입니다.  일상생활 가운데서도 모든 사람이 지켜야 할 규칙이나  법령은 반드시 지시어로 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언어를 다른 말로 과학적 언어라고 합니다.  법조문이 지시어로 되어 있지 않고 애매한 표현이 있어  자구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면 큰 혼란이 올거예요.  하지만 문학의 언어는 가급적이면 함축어를 써야 합니다.  지시어는 머리(이성)에 의존하지만  함축어는 마음(감각)에 호소합니다.  함축어를 제일 많이 쓰는 이는 역시 시인입니다.  언어와 사물이1:1의 관계가 아니라  1:多의 관계를 시인은 지향합니다.  알 듯 모를 듯한말,  행간에 숨은 뜻이 있는 말,  해석의 여지가 풍성한 말이 문학적인 말(언어)입니다.  그와 아울러 시는 근본적으로 애매한 언어이며  역설적인 언어입니다.  시는 언어를 구사하여 이루어진 것이되 일상적인  언어로부터해방되려는 모순된 노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노력이 현대에 들어 점차 가솟화되어  언어를 거부하거나 언어를 파괴하는 극단적인 형태로  치닫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시에 사진. 그림. 만화. 악보. 화학 방정식이 함께  등장하기도 합니다.  악보를 사람 얼굴 모양으로 찢어붙이기한 이런 것이  시라고 발표되고 있는 세상입니다.  이밖에도 외형이 시 같지 않은 시가 대단히 많습니다.  시인은 유사 이래 언어를 갖고 논 말 놀이꾼이었고,  언어로 사물을 찍어낸 언어의 연금술사였으며,  마침내 언어를 부숴버리려 든 이상한 족속입니다.  시의 언어 즉 시어는 축소지향의 언어입니다.  시인은 한 마디의 말에 여러가지 뜻을 담고자 애씁니다.  정원사가 잔가지를 쳐내어 나무를 더 잘 자라게 하고  보기 좋게 하듯이 쓸데 없는 말을 줄이는 것이  시를 쓰는 과정입니다.  앙상한 가지만으로  깊은 뿌리와 무성한 잎까지 이야기해 줄 수 있어야  시가 됩니다.  하지만 소설은 이야기에 살을 자꾸만 붙여,  구체성, 사실성, 개연성을 추구합니다.  확대지향의 언어, 즉 산문이 소설의 언어가 되는 것이지만,  소설도 때에 따라서는 함축적인 언어를 써  축소를 지향할 때가 있습니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언어는 존재의 집니다"하는 말을  한 적이 있지요.  사물과 현상을 다 껴안고 있는 것이 언어이기 때문에 언어가 없으면  생각이 이루어지지 않고,  언어를 통한 인식이 없이는 사물과  현상은 있어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말이 있어야 모든 사물과 현상의 존재가 가능하며,  문학은 말에서 출발하여 말에서 끝납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시에서도 말의 파괴현상이  위험 수위를 넘어 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문학의 언어에 온갖 욕설과 음담패설이, 비어와 속어가,  외래어와 전문어가 넘쳐납니다.  그래서 영랑과 소월, 백석과 만해,  윤동주와 이육사의 시가 지금까지도  국민적인 애송시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의 시는 우리말로 우리 정서를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       맛있었던 것들  ―한영옥(1950∼ ) 실한 풋고추들이 쪼개져 있었다. 쪼개진 풋고추 처음 보여준 사람은 고추전 잘 부치시는 우리 어머니 풋고추 싱그럽게 채반 가득한 꿈이 아침나절 덮어와 어머니 곁에 왔다 함께 기우는 목숨 언저리 햇살 한껏 잡아당겨 서로를 찬찬히 눈여겨두는 나물 그득한 점심이 달다 내가 아는 모든 것, 어머니가 처음으로 비춰준 것들이었다 떠나서 배운 이 골목 저 골목은 끌고 다니며 발길질만 했다 두 눈 가리우고 끌려 다녀 어디가 어디인지 하나도 모른다     이제야 눈가리개 풀고 어머니, 맛있게 잡수시는 곁에서 맛있었던 지식(知識)들 햇살 채반에 널어본다 모조리 어머니가 먹여주신 것들이다 다시 나는 끌려 다닐 것이다 다만 여기 이 점심이, 죽을 것 같은 날짜를 덮어 주리라고 어머니 곁에 앉은 김에 꾹꾹 먹는다     씹으면 아삭아삭 맵고 단 맛이 배어날 싱싱하고 실한 풋고추가 채반에 가득하다. 그 싱그러운 냄새와 빛깔의 꿈은 화자 무의식 속 갈망이 불러낸 것일 테다. 화자는 현재 행복하지 않다. 화자가 몸담고 있는 ‘이 골목 저 골목은/끌고 다니며 발길질만 했’단다. 그리고 무슨 일인지 ‘죽을 것 같은 날짜’를 앞뒀단다. 칙칙하고 울적하던 차에 한 꿈이 햇살처럼 비춘다. 화자의 꿈에서 풋고추들은 깔끔하게 반으로 쪼개져 있다. ‘쪼개진 풋고추를 처음 보여준 사람은’ 어머니였지. ‘고추전 잘 부치시는 우리 어머니’, 그리운 어머니!  쪼개진 풋고추뿐일까. ‘내가 아는 모든 것, 어머니가/처음으로 비춰준 것들이었다’. ‘까꿍!’부터 도리도리 짝짜꿍은 어머니가 맨 처음 가르쳐주시는 삶의 기호들. 자식에게 살아가는 법, 살아가는 맛을 가르치는 것, 그것이 어머니의 살림이다. 반면 세상의 ‘스승’들은 진을 뺄 뿐이다. 두 눈 가리고 끌고 다니다가 ‘어디가 어딘지 하나도’ 모르는 상태로 내팽개친다. 나보다 배움이 짧다고 생각해 온 어머니, 그런데 ‘맛있었던 지식들’은 ‘모조리 어머니가 먹여주신 것들’이구나. 화자는 한달음에 어머니를 찾아가 ‘나물 그득한 점심’을 달게 먹는다. ‘함께 기우는 목숨 언저리 햇살’이라니 화자는 젊지 않은 나이이고 어머니는 많이 연로하셨을 테다. 어머니 손맛이 그리울 테지만 밥상 차리시게 하지 않고 어디 맛있는 밥집에 갔었기를.  
261    창조적 모방을 위하여 // 트럼블 스티크니 / 정지용 댓글:  조회:4208  추천:0  2017-02-19
    창조적 모방을 위하여 - 정지용의 [鄕愁]를 중심으로               Ⅰ. 모방과 표절      예술 행위 혹은 예술 작품의 표절시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저질시비가 종종 있는 대중가요로부터 소위 국전의 수상작이라는 고급 예술작품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심심찮게 이 표절시비를 보아 왔으며, 이러한 현상은 문학작품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신춘문예에 당선된 작품이 얼마 후 외국 작가의 작품을 모방한 것으로 판명이 된다든지, 베스트셀러 대열에 낀 어느 소설이 국내 몇몇 작가의 작품을 조사 하나 틀리지 않게 짜집기한 것으로 독자에 의해 고발된다든지 하는 것은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근년의 일이다.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할 일은 모방과 표절은 엄격히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방은 말 그대로 모방이다. 남의 것을 본떠서 하는 행위이다. 즉 남의 것을 이용하되 결과는 그것과 똑같지 않다는 것이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격언처럼, 모방은 또 다른 창조를 전제로 해야 한다. 모방이 이러한 창조로 나아가지 못하고 단순한 모방에 그칠 때, 우리는 그것을 아류라고 부르며 폄하하게 됨은 물론 나아가 표절이라고도 한다.    표절은 글자 그대로 남의 것을 허락없이 베끼는 행위이다. 근래에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어색한 사조 아래 남의 것을 그대로 베끼는 행위가 모든 예술 작품에 성행하다시피 하고 있으나, 그러한 행위를 통해 또 다른 예술적 창조를 하지 못하면 그것은 단순한 베끼기에 불과할 것이며, 이는 바로 무슨무슨 사조라는 그럴싸한 이름 아래 숨겨진 표절에 해당하는 것이다.    모방이든 표절이든 예술가에게는 특히 경계해야 할 일이다. 남의 영감을 이용하여 나의 작품을 완성하겠다는 것은 결국 남의 피와 땀을 거저 먹겠다는 도둑 심보에 다름 아니다. 이는 법의 문제보다 양심의 문제이기도 하다. 남의 것을 모방 혹은 표절하여 또 다른 예술적 창조를 이루었는지의 여부를 가리는 것은 비평가나 독자의 몫이지만, 근본적으로는 모방이나 표절을 한 당사자가 더욱 잘 알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모든 예술가의 예술행위는 모방이나 표절에서 시작한다는 데에 있다. 모든 예술행위, 예술작품이 자연을 모방한 것이라는 문학에서의 '모방론'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천재가 아닌 이상, 공자가 이른 대로 생이지지자(生而知之者)가 아닌 이상 예술가들의 학습기 혹은 습작기 작품은 앞 선 예술작품을 모방하거나 표절하면서 이루어진다. 대부분의 시인들은 그가 문학 소년 혹은 문학 소녀였을 시절에, 소월이나 윤동주, 혹은 만해나 미당의 여러 시에서 따온 구절들을 적당히 배열해 놓고 시를 썼다는 쾌감에 젖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모방과 표절을 통한 학습기와 습작기를 거치면서 예술가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찾게 되고, 그 목소리가 뚜렷하면 뚜렷할수록 그는 개성있는 예술가로 평가받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예술행위에서 모방과 표절은 있을 수 있는 문제이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한 모방이나 표절이어서는 참다운 예술행위로 간주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술가들의 모방과 표절은, 그것을 빌어 또 다른 예술적 창조를 이루어낼 때에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즉 창조적인 모방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면 이제 문제는 어떻게 모방하고 표절을 하여 예술적인 창조로까지 나아가느냐에 있다. 이러한 물음에 적절한 답을 하기는 쉽지 않다. 이에 정지용의 [향수]와 이 작품이 모방한 것으로 짐작되는 트럼블 스티크니의 [추억]을 비교 분석함으로써 답을 대신하려 한다. 먼저 트럼블 스티크니의 생애와 그의 [추억]이란 작품을 소개하고, 이어서 정지용의 생애와 [향수]를 제시한 다음, 두 작품의 비교 분석을 통해 창조적 모방의 구체적인 모습을 제시하고자 한다. ​   Ⅱ. 트럼블 스티크니와 [추억]      미국의 시인 트럼블 스티크니(Joseph Trumbull Stickney)는 1874년 6월 20일 제네바에서 태어나 다섯 살까지 스위스와 이탈리아에서 살다가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왔다. 그의 아버지(Austin Stickney)는 트리니티 대학의 라틴학과장이었고, 어머니(Harriet Champion Stickney)는 코네티컷 주지사의 직계 후손이었다. 그의 부모가 오랜 동안 주로 외국에서 살았기 때문에, 클리브돈과 뉴욕에서의 1,2년을 제외하면, 스티크니는 어린 시절을 주로 유럽에서 보냈다. 게다가 하바드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자신의 아버지가 그의 유일한 선생이었다.    1895년 문학사학위를 받은 스티크니는 곧 프랑스로 가 소르본느 대학에서 7년 동안 희랍 문학과 산스크리트 문학을 공부했으며, 1903년 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그 분야의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위를 받은 후 3개월 간 그리스에 있다가 하바드 대학 희랍문학과의 강사로 돌아왔는데, 이때 이미 그는 한 권의 시집을 출간({Dramatic Verse} 1902년)했으며, 또 계속적으로 시작을 하는 한편 그리스의 비극시인인 이스킬러스(Aeschvlus)의 시를 번역하기도 했다.  그러나 스티크니는 하바드 대학의 강사이자 결혼을 앞 둔, 온 세상이 그의 앞에 활짝 열려있던 30세의 나이에 아깝게도 뇌종양으로 죽고 만다. 이때가 1904년 10월 11일이었다.    그가 죽은 이듬 해인 1905년 그의 친구들이 스티크니가 생전에 출간한 시집에 그의 유작들을 미완성인 채로 묶어 {트럼블 스티크니의 시들}({The Poems do Trumbull Stickney})이란 제목으로 다시 출간했는데, 이것이 그가 남긴 작품 전부이다. 흔히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요절한 시인들에게 올바른 평가가 아닌 잘못된 동정을 보내는 경향이 있으나, 스티크니의 경우에는 당시 빈틈없는 비평가로 알려진 브룩스(Van Wyck Brooks)나 윌슨(Edmund Wilson)으로부터도 '약속의 시인이자 실행의 시인'이라고 칭송될 정도로 찬사를 받았다.    친지들의 회고에 의하면 스티크니는 키가 크고 말랐으며 이름다운 음성을 소유한 우아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더구나 부끄러움을 잘 타고 친구들 간에는 인정 많은 사람으로, 자연에 대한 우울함은 있었으나 유모어로 넘친, 청년 시인의 한 본보기였다고 한다. 반면 그는 진정한 학자이자 음악가로서, 그의 바이올린 솜씨는 아마츄어 수준을 넘어 거의 천재적이었으며, 아름다운 회색 눈과 당황해 하는 슬픈 얼굴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문학의 경우 특히 '내가 진실로 관심을 두는 것은 바로 시'라고 말할 정도로 스티크니는 시에 강한 애착을 보였다. 스티크니의 친구이자 유고시집의 편집에 참여했던 무디(William V. Moody)의 말에 따르면 '그는 동서양의 사고를 새로이 종합한 자신만의 시를 쓰기를 꿈꾸어 왔다'고 한다. 그의 작품에는 포우(Poe)나 스윈번(Swinburne)의 영향이 강하게 나타나며, 시의 리듬의 경우 종종 와그너(Richard Wagner)의 시에서 빌려오기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음은 그의 대표작인 [추억]이란 시이다.(시행의 번호는 분석의 편의상 필자가 붙인 것임) Mnemosyne    A-① It's autumn in the country I remember.    B-① How warm a wind blew here about the ways!    ② And shadows on the hillside lay to slumber    ③ During the long sun-sweetened summer-days. ​    ④ It's cold abroad the country I remember.   C-① The swallows veering skimmed the golden grain    ② At midday with a wing aslant and limber;    ③ And yellow cattle browsed upon the plain. ​    ④ It's empty down the country I remember.   D-① I had a sister lovely in my sight:    ② Her hair was dark, her eyes were very sombre;    ③ We sang together in the woods at night.       ④ It's lonely in the country I remember.    E-① The babble of our children fills my ears,    ② And on our hearth I stare the perished ember    ③ To flames that show all starry thro' my tears.       ④ It's dark about the country I remember.    시의 제목인 'Mnemosyne'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뮤즈신의 어머니이자 '기억의 여신'의 이름이다. 우리말로 옮길 때, '기억'보다는 '추억'이라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즉, 시의 전체적인 내용은 바로 '추억'이다. 어설프게나마 이 시를 우리말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추억     지금은 가을이 오는 내 추억의 고향   따사로운 바람결은 길모퉁이 스치고 향그러운 태양의 긴 여름날 산마루엔 그림자 누워 졸던 곳   지금은 추운 내 추억의 고향   날씬하게 기울은 제비 날개 한낮에 금빛 곡식물결 박차고 소소떨고 누런 소 넓은 들에 풀 뜯던 곳   지금은 비인 땅 내 추억의 고향    칡빛 머릿단에 수심 짙은 눈망울 내가 보아도 사랑스러운 내 누이와 밤이면 숲 속에서 노래부르던 곳    지금은 쓸쓸한 내 추억의 고향    어린 자식들 도란거리는 소리 내 귀에 가득한데 난로 속 남은 재 응시하면 눈물 속에 별인양 불꽃이 반짝이던 곳    지금은 어두운 내 추억의 고향      원작이 이미지보다는 운율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음송 형식의 시이기에, 그 운율을 살려 번역하기는 다소 어려운 일이다. 엉성한 번역이었지만 향토적인 고향의 모습은 충분히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시를 김현승은 그의 수필 [가을에 생각나는 詩들]에서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그 많은 추억의 시편들 가운데서도 생각나는 것은 미국 시인 트럼블 스티크니의 걸작 [추억]이다. (중략) 얼마나 다사롭고 눈물겹게 만드는 추억의 시편인가? 이 시 한줄 한줄은 민감한 독자들의 추억을 오래도록 사로잡을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끝 연 마지막 두 행은 얼마나 눈물겹고 감각적인 표현인가?      김현승이 지적한 것은 '가을'에 생각나는 시이다. 그의 가을과 관련한 시에서 느낄 수있는 것처럼, 그가 이 시를 택한 것은  'Mnemosyne'라는 제목과 함께 'It's autumn in the country I remember.'라는 시행, 그리고 시 전체적인 분위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만큼 이 시는 가을과 함께 고향에 대한 '추억'을 느끼게 해주는 좋은 시이다.     Ⅲ. 정지용과 [향수]       정지용은 1902년 5월 15일(음력) 충북 옥천군 옥천면 하계리 농가에서 아버지 정태국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한약상을 경영하여 농촌에서는 비교적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내지만, 불의에 밀어닥친 홍수의 피해로 가세가 갑자기 기울어져 가난하게 되었다고 한다.    김학동이 정지용의 시를 빌면서 소개한 정지용의 고향은 이런 곳이다.    천재 시인 정지용이 태어난 곳은 실개천이 지즐대며 흐르는 농가마을이다. 지금은 문명의 때를 타고 그 원초적인 자연조차도 과도기적인 열병으로 진통하는 마을로 변해가고 있으나, 그 당시로는 소박하고 인정미 넘치는 그런 마을로 온통 전설의 바다를 이루어 출렁이고 있었다.     정지용이 태어나서 자란 마을 뒤로는 높고 한일자로 뻗어간 '일자산'이 있다. 그 산의 계곡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실개천을 이루고 청석교 밑을 지나 들판을 가로질러 동쪽 끝으로 흐르고 있다. 그 산기슭에 자리한, 그가 태어나서 자란 집은 일자산의 계곡에서 이어지는 개천을 따라 산 정기가 곧바로 뻗어있는 것도 같지만, 범상의 눈엔 그것이 잘 보이질 않는다.    1913년 그의 나이 12세 때에 혼인을 하여 이곳에 살았고, 옥천공립보통학교를 졸업(1914년)하고 4년간 한문을 수학하면서도 이곳에서 살았다. 어쨋거나 정지용은 그가 태어난 이곳에서 유년기는 물론, 휘문고보를 거쳐 동지사대학을 마치고 모교인 휘문고보에 교사로 취임하여 서울로 이사할 때까지 살았다. 그러나 이는 주소지일 뿐, 실제는 14세이후 고향을 떠나 객지의 고달픈 삶을 영위했다.      정지용의 문학적 재능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18년 4월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이다. 선배로 홍사용, 박종화, 김영랑 등이 있었고, 후배로는 이태준이 같은 학교에 다녔다. 1학년 때의 성적이 88명 중 1등을 할 정도로, 창가나 체조 등 실기과목을 제외하면 전 과목에 걸쳐 고루 성적이 우수했으며, 특히 영어와 작문에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었다. 이는 후에 동지사대 영문학부에 진학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집안이 넉넉하지 못한 그는 교비생으로 휘문고보를 나녔다.    박팔양의 기록에 의하면 이 때(1918년) 이미 휘문고보, 중앙고보, 일고, 고상, 법전 등의 학생들이 모여 문학동인을 결성, 등사판 문예동인지인 {요람}을 발간하기도 했다는데, 휘문고보의 중심 학생이 정지용이었다고 한다. 이 {요람}을 통해 정지용은 많은 습작을 발표하였다.    한편 1922년에는 휘문고보의 재학생과 졸업생이 함께하는 문우회의 학예부장을 맡아 {휘문} 창간호의 편집위원이 된다. 이듬해 3월 휘문고보 5년제를 졸업하고, 4월에는 일본 경도에 있는 동지사대학 영문학부에 진학한다.(이하 정지용의 생애는 이 글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기에 생략한다.)    이러한 정지용의 삶을 통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먼저 그는 농촌 출신이라는 것이다. 이는 자연과 벗삼아 유년시절을 보냈다는 것이 된다. 다음으로 그는 14세 이후 객지 생활을 통해 누구보다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컸으리라는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휘문고보 시절 이미 시인의 자질을 보였다는 것이다. 더구나 영어와 작문에 능통하여 영문학부를 전공으로 대학에 진학했다는 사실은 이 글에서 밝히고자 하는 사실과 깊은 연관이 있다.    정지용의 초기 시의 대표작인 [향수]는 1927년 3월 {조선지광}에 발표되지만 작품 말미에 1923년 3월에 쓴 것으로 표기되어 있다. 박팔양의 기록에 의하면 1918년에 시작한 {요람} 동인지가 1923년까지 약 10호 정도 나왔으며, 여기에 [향수]를 비롯한 그의 여러 작품이 실렸다는데, 현재로서는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정지용의 동시나 민요풍의 여러 시편들이 [향수]와 함께 이미 {요람} 동인지 시대인 1918년부터 1923년 사이에 쓰여진 것으로 추측할 수는 있다.    {조선지광}에 발표된 [향수]는 이렇다.(표기는 모두 {조선지광}에 실려있는 그대로이며, 시행의 번호는 분석의 편의상 필자가 붙인 것임) 鄕  愁    Ⅰ-① 넓은 벌 동쪽 끄트로     ② 녯니야기 지줄대는 실개천 이 회돌아 나가고,     ③ 얼룩백이 황소 가     ④ 해설피 금빗 게으른 우름 을 우는 곳,       ⑤ ------ 그 곳 이 참하 꿈엔들 니칠니야.     Ⅱ-① 질화로 에 재 가 식어 지면     ② 뷔인 바 테 밤ㅅ바람 소리 말 을 달니고,     ③ 엷은 조름 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     ④ 집벼개 를 도다 고이시는 곳,       ⑤ ------ 그 곳 이 참하 꿈엔들 니칠니야.     Ⅲ-① 흙 에서 자란 내 마음     ② 파아란 한울 비치 그립어 서     ③ 되는대 로 쏜 화살 을 차지러     ④ 풀섭 이슬 에 함추룸 휘적시 든 곳,       ⑤ ------ 그 곳 이 참하 꿈엔들 니칠니야.     Ⅳ-① 傳說바다 에 춤 추는 밤물결 가튼     ② 검은 귀밋머리 날니 는 누의 와     ③ 아무러치 도 안코 엽블것 도 업는     ④ 사철 발 버슨 안해 가     ⑤  가운 해쌀 을 지고 이삭 줏 든 곳,       ⑥ ------ 그 곳 이 참하 꿈엔들 니칠니야.     Ⅴ-① 한울 에는 석근 별     ② 알수 도 업는 모래성 으로 발 을 옴기고,     ③ 서리  막이 우지짓 고 지나가는 초라한 집웅,     ④ 흐릿한 불비체 돌아안저 도란도란 거리는 곳,       ⑤ ------ 그 곳 이 참하 꿈엔들 니칠니야.      유행가의 노랫말로 쓰일 정도로 친숙해 진 이 시에서 우리는 정지용의 고향을 그리는 마음과 함께, 그가 그리워했던 고향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즉, 평화롭고, 사랑스럽고, 정겨운, 지극히 향토적 서경이 그것이다.      시 전편에 유년 시절의 추억이 담겨져 있으며, 한가로운 서경과 함께 아버지, 누이, 그리고 안해와 그들이 '돌아안저 도란도란거리는' 행복한 고향의 모습이 생생하게 살아있다. 서경과 서정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하는 이 시는 정지용 개인만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마음의 고향이라 할 만큼 우리들의 정서와 부합되는 것이다.     Ⅳ. [추억]과 [향수]의 거리      앞에 소개한 트럼블 스티크니의 [추억]과 정지용의 [향수]는 우연의 일치라고 치부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많은 유사점을 갖고 있어, 누가 보아도 [향수]가 [추억]의 모방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살 수 있다. 두 시인의 생애와 관련하여 두 작품의 창작 연대와 그 구조를 분석해 보면 이는 분명해진다.    우선 생애와 관련지어 볼 때, 정지용의 습작기는 그가 휘문고보에 입학하던 1918년에서 일본 경도의 동지사대 영문학부에 수학하던 1925년 사이가 된다. 당시 문학도로서 접할 수 있는 현대시는 대략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엽의 국내외 시이다. 식민지 시대인 만큼 일본 시인과 함께, 서구 시의 대표라 할 프랑스 상징주의 시는 물론 영미시를 접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    더구나 앞에서 소개한 트럼블 스티크니는 미국의 근대시가 현대시로 전환하고 있던 1900년대 초의 과도기에 나와 활동한 대표적인 시인의 한사람임은 물론, 요절한 시인으로 젊은이들에게 상당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던 시인이었다. 게다가 정지용은 영어에 능통하고 문학적 소양을 갖추고 있었다. 따라서 1923년 3월 [향수]를 쓰기 전에, 정지용은 스티크니의 [추억]을 읽었을 것이라는 추측은 상당한 설득력을 갖게 된다. ​    다음으로, 이러한 추측은 앞에 소개한 [추억]과 [향수]의 구조 및 기법을 견주어 보면 더욱 신빙성을 획득하게 된다. 우선 외형상으로 무척 닮아 있다. 전체 5연의 구성은 물론 매 연이 끝나며 후렴구의 형식 1행이 반복되는 것이 그렇다.    먼저 스티크니의 [추억]을 보자. 형식 면으로 볼 때, 시 전체 내용을 아우르는 한 행(A)을 독립된 하나의 연으로 처리하면서 전체를 5연으로, 한 연은 3행과 후렴구 형식의 1행으로 구성하고 있다. 이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유행했던 음송시의 전형이다.      이러한 음송 형식은 각운에서 명확하게 나타난다. 매 연의 끝에 나오는 후렴 형식의 1행(B-④, C-④, D-④, E-④)은 It's로 시작하여 항상  remember로 끝난다. 게다가 B연에서는 1행의 ways와 3행의 days, C연에서는 grain과  plain, D연에서는 sight와 night, 그리고 E연에서는 ears와 tears를 통해 매 연마다 1행과 3행의 각운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행 구분과 동음어의 반복을 통해 정형시 혹은 음송시의 전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정지용의 [향수] 역시 전체 5연으로 구성된 하나의 정형을 이루고 있다. 스티크니의 [추억]처럼 시 전체 내용을 아우르는 독립된 연은 없다. 그러나 매 연마다 4(5)행으로 묘사하고 있는 고향의 모습은 모두 '.....는(든) 곳'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후렴구 형식의 1행은 그러한 고향의 모습, '그 곳 이 참하 꿈엔들 니칠니야.'의 반복이다.      따라서 [향수]의 전체적인 시형식은 [추억]의 한 변형으로 볼 수 있다. [추억]의 5연 형식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그 모습을 5개의 연에 균등하게 분배했고, 각운의 맛을 살리려 매 연의 4(5)행은 '.....는(든) 곳'으로 끝맺고 있다. 게다가 [추억]에서는 매 연의 끝에 나오는 후렴형식의 1행은 It's로 시작하여 항상  remember로 끝나지만 그 내용은 서로 상이한데, [향수]는 이를 하나로 통일하여 5회에 걸쳐 반복함으로써 '향수'를 더욱 절실하게 표현하며 운은 물론이요 그 맛을 살리고 있다.      결국 [향수]의 형식은 [추억]의 그것을 빌어 나름대로 변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다음으로 시의 내용을 보자. [추억]의 전체적인 내용은 내가 기억하는 고향의 가을은 이러이러한 곳(각연의 ①②③)이었는데 지금은 춥고 cold(B-④), 텅 비어있고 empty(C-④), 외롭고 lonely(D-④), 어두운 dark(E-④) 곳이라는 것이다. 즉, 과거 기억 속의 고향과 현재의 고향이 대조를 이루며 흔히 가을이란 이미지가 주는 쓸쓸함을 더해주고 있다. 문제는 기억 속의 고향이다.    김현승이 지적한 것처럼 [추억]의 고향은 다사롭고 눈물겨운 곳이다. 지극히 평화로운, 서정적 자아의 행복이 가득한 곳이다. 길모퉁이를 돌아 부는 바람, 졸고 있는 언덕의 그림자, 향기로운 여름날, 황금들판을 나는 제비, 풀을 뜯는 소, 검은 머리의 누이, 숲 속의 노래, 어린 자식들의 재잘거림, 별빛 같은 불꽃, 이 모든 것은 서정적 자아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고향의 모습이다. 그런 곳이 지금은 춥고, 텅 비어있고, 외롭고, 어두운 곳으로 바뀌고 말았다. 그러기에 '추억'처럼 눈물겨울 수밖에 없다.    정지용의 [향수]는 바로 [추억]에서 서정적 자아의 기억에 내재하는 고향 모습을 그대로 옮겨 놓고 있다.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황소가 게으른 울음을 울고, 질화로에 재가 식고, 아버지가 졸고 있고, 검은 머리 누이, 안해, 따가운 햇살, 하늘의 별, 흐릿한 불빛, 도란거리는 소리, 이 모두는 [추억]의 고향 모습과 다를 것이 없다. 바로 소재와 이미지의 차용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소재 혹은 이미지가 유사한 것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Ⅰ-⑤ 꿈엔들 니칠니야.             A-① I remember Ⅰ-② 회돌아 나가고                 B-① blew here about the ways Ⅰ-③ 황소                              C-③ yellow cattle Ⅱ-①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E-② the perished ember Ⅱ-② 뷔인 바테                       C-④ empty down Ⅱ-③ 엷은 조름                       B-② lay to slumber Ⅳ-② 검은 귀밋머리 날니는       D-② hair was dark Ⅳ-② 누의                              D-① a sister Ⅳ-⑤ 따가운 해쌀                    B-③ the long sun-sweetened Ⅴ-① 별                                 E-③ starry Ⅴ-③ 우지짓고 지나가는           C-① veering skimmed Ⅴ-④ 흐릿한 불비체                 E-② the perished ember Ⅴ-④ 도란도란거리는               E-② babble      한 편의 시에서 이렇게 많은 유사점을 찾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예는 바로 [향수]가 [추억]을 모방했다는 결정적인 증거이다. 특히 Ⅴ-①과 Ⅴ-④의 소재와 분위기는 E-①②③을 그대로 빌은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Ⅲ연을 제외하면 모든 연이 [추억]의 전 연의 여러 행에서 그 소재와 분위기 혹은 이미지를 빌어 온 것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향수]는 분명 [추억]의 형식을 빌었고, 소재와 이미지를 차용했다. 즉 모방을 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시의 구조와 기법을 빌었을지언정 그 주제와 감흥은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특히 서정적 자아의 모습이 전혀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추억]은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과거와 현재의 대조이다. 서정적 자아는 현재 고향에 돌아와 있다. 그리고 지금은 가을이다. 그런데 고향의 모습이 너무 변해버렸다. 나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고향의 모습은 평화롭고, 아름답고, 따뜻한 곳인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구태어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을씨년스럽고, 공허하고, 외롭고 어두운 곳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러기에 김현승의 지적대로 다사로우면서도 눈물겨운 모습이다.    그러나 [향수]는 과거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음에도 이를 현재와 대조시키지 않는다. 서정적 자아도 고향이 아닌 타향에 있다. 타향에서 고향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서정적 자아의 기억 속에 살아있는 고향의 평화롭고, 아름답고, 정겨운 모습들 만을 생생하게 그리면서 이를 현재까지 지속시키는 것이다. 여기에 '그 곳 이 참하 꿈엔들 니칠니야.'를 반복함으로서 '향수'를 더욱 절실하게 할 뿐이다.    또한 서정적 자아의 시각의 경우 [추억]은 B, C, D, E로 진행하면서 원경에서 근경으로 집중된다. 그러나 [향수]는 원경과 근경이 혼합되어 있다. Ⅰ연은 원경, Ⅱ연은 근경, Ⅲ연은 다시 원경으로 나가다가 Ⅳ연과 Ⅴ연은 다시 근경으로 돌아온다. 이러한 원경과 근경의 혼합을 통해 [추억]처럼 서정적 자아의 시각이 자연에서 인간으로, 즉 고향의 모습에서 가족의 모습으로 집중된다. 특히 [향수]는 [추억]의 누이와 어린 자식들만이 아니라, 아버지, 누이, 안해 그리고 그들이 모여앉아 도란거리는 모습을 통해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정겨운 삶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비록 정지용의 실제 고향의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 다소 서구적인 '말' 달리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지만, 당시 조선의 농촌에서 느낄 수 있는 향토적인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깔려있다. 즉 정지용은 비록 [추억]의 여러 면을 모방하면서도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조선의 농촌에 걸맞는 분위기와 감흥을 창조해 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창조적인 모방인 것이다.     Ⅴ. 창조적 모방을 위하여       앞에서 정지용의 [향수]는 미국의 시인 트럼블 스티크니의 [추억]을 모방한 것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그러나 단순한 모방도 아님을 아울러 밝혔다.      두 작품의 발표 연대와 정지용의 생애로 미루어 분명 정지용은 습작기에 트럼블 스티크니의 [추억]을 접했고, 그는 이 시를 매우 감명 깊게 읽은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는 분명 이 시를 염두에 두고 [향수]를 썼을 것이다. 시의 형식이나 소재 그리고 이미지를 빌었음이 분명하다. 이를 두고 정지용의 [향수]가 모방작이라거나 번안 작품이라 폄훼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그러나 더욱 분명한 것은 그가 스티크니의 시를 단순히 번역이나 번안만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정지용은 [추억]을 읽으며 스티크니가 사용한 시의 구성 기법, 행과 연의 구분, 후렴구의 기능, 그리고 소재와 이미지를 완전한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그런 연후에 이를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조선의 농촌, 자신의 고향의 서경과 서정에 맞게 재창조한 것이다.    [향수]에는 [추억]에서 읽을 수 있는 cold, empty, lonely 그리고 dark와 같은 춥고, 공허하고, 쓸쓸하고, 어두운 가을을 찾을 수 없다. 언제 읽어도 정겹고 따뜻한 고향이 머리 속에 그려지는 것은, 비록 형식이나 내용 면에서 모방을 했다고 하더라도, 정지용은 이를 통해 조선에 어울리는 서경과 서정을 창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창조적인 모방을 하였다는 것이다.    정지용의 [향수]가 미국 시인의 시를 모방하였다는 것을 밝히면서도, [향수]가 아름다운 시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스티크니의 [추억]을 읽고, 이를 통해 자신의 고향을 생각했고, 정지용은 [추억]의 제요소를 빌어 자신의 고향을 그렸다. 구성기법, 소재, 리듬, 이미지는 물론 구체적인 시어까지 빌면서도 그는 이를 온전한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가슴 속에 남아있는 고향을 그렸다. 그리하여 전혀 새로운 조선의 서경과 서정을 읊었다.      모방은 하되 단순한 모방이 아니며, 하다못해 시어까지 그대로 빌면서도 그 시어의 쓰임이 시 전체의 내용 속에 용해되어 있도록 만들었다. 정지용은 그가 느꼈던 고향에 대한 그리움 - [향수]를 스티크니가 창조해 놓은 [추억]을 통해 재창조해 낸 것이다. 이는 바로 창조적인 모방인 것이다. 정지용의 천재성은 바로 이러한 면에도 있는 것이다.    창조적인 모방, 그것은 모든 예술행위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다.   * 다음의 책들을 참고하였으나 일일이 인용표기를 하지 않았음을 밝혀둔다. 1. Twentieth Century Authors,Ed. by Stanley J. Kunitz,New York,1942 2. An Anthology of Famous English and American Poetry,The Modern Library,New York,1944 3. 김현승,{고독과 시},지식산업사,1977 4. 김학동,{정지용연구},민음사,1987   [출처] 정지용의 는 번안 작품이다?|작성자 이병렬   ​//////////////////////////////// 정지용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정지용 鄭芝溶 출생 1902년 6월 20일  대한제국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사망 1950년 (49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특별시 또는  대한민국 경기도 양주군 이담면으로 추정(사인은 폭사로 추정) 필명 아명(兒名)은 정지룡(鄭池龍) 직업 시인 국적  대한제국(1902~1910)  대한민국(1948~1950) 소속 前 동국대학교 전임교수 前 서울대학교 강사 학력 도시샤 대학 활동기간 1926년 ~ 1949년 부모 정태국(부), 정미하(모) 배우자 송재숙(宋在淑) 자녀 장자 구관(求寬), 차자 구익(求翼), 삼자 구인(求寅), 장녀 구원(求園) 종교 천주교(세례명:방지거) 웹사이트 "); padding-right: 13px;">정지용 사이버 문학관 정지용(鄭芝溶, 일본식 이름: 大弓修 오유미 오사무[*], 음력 1902년 5월 15일/양력 1902년 6월 20일 ~ 1950년)은 대한민국의 대표적 서정시인이다. 아명은 지룡(池龍)이다.[1] 대한민국에서는 납북 여부와 사인이 모호하여 한때 이름이 '정X용'으로 표기[2]되고 그의 시가 금기시 되었으나, 1988년 해금되어 국어 교과서에도 그의 시 향수가 수록되었다.   목차   [숨기기]  1생애 2이력 3작품 경향 4작품 5기타 6같이 보기 7기타 8각주 9바깥 고리   생애[편집]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면 하계리에서 한의사인 정태국과 정미하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12세 때 송재숙(宋在淑)과 결혼했으며, 1914년 아버지의 영향으로 로마 가톨릭에 입문하여 '방지거(方濟各, 프란치스코)'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옥천공립보통학교를 마치고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해서 박종화·홍사용·정백 등과 사귀었고, 박팔양 등과 동인지 〈요람〉을 펴내기도 했으며, 신석우 등과 문우회(文友會) 활동에 참가하여 이병기·이일·이윤주 등의 지도를 받았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이선근과 함께 '학교를 잘 만드는 운동'으로 반일(半日)수업제를 요구하는 학생대회를 열었고, 이로 인해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다가 박종화·홍사용 등의 구명운동으로 풀려났다. 1923년 4월 교토에 있는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영문과에 입학했으며, 유학시절인 1926년 6월 유학생 잡지인 〈학조 學潮〉에 시 〈카페 프란스〉 등을 발표했다. 1929년 졸업과 함께 귀국하여 이후 8·15 해방 때까지 휘문고등보통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재직했고, 독립운동가 김도태, 평론가 이헌구, 시조시인 이병기 등과 사귀었다. 1930년 김영랑과 박용철이 창간한 〈시문학〉의 동인으로 참가했으며, 1933년 〈가톨릭 청년〉 편집고문으로 있으면서 이상(李箱)의 시를 세상에 알렸다. 같은 해 모더니즘 운동의 산실이었던 구인회(九人會)에 가담하여 문학 공개강좌 개최와 기관지 〈시와 소설〉 간행에 참여했다. 1939년에는 〈문장〉의 시 추천위원으로 있으면서 박목월·조지훈·박두진 등의 청록파 시인을 등단시켰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이화여자대학으로 옮겨 교수 및 문과과장이 되었고, 1946년에는 조선문학가동맹의 중앙집행위원 및 가톨릭계 신문인 〈경향신문〉 주간이 되어 고정란인 '여적'(餘適)과 사설을 맡아보았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에는 조선문학가동맹에 가입했던 이유로 보도연맹에 가입하여 전향강연에 종사했다. 1950년 한국 전쟁이 터지고 피난길에 오르지 못한 채 서울에 남아있게 된다. 그리고 인천상륙작전이 끝나고 수복한 서울에서 그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오랫동안 그는 납북되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어 왔으며, 정지용 사이버 문학관에는 계광순의 증언을 바탕으로 '6ㆍ25전쟁이 일어나자 정치보위부로 끌려가 구금됨. 정인택, 김기림, 박영희 등과 서대문형무소에 수용되었다가 평양감옥으로 이감. 이광수, 계광순 등 33인이 함께 수용 되었다가 그 후 폭사 당한 것으로 추정'이라고 기술하고 있다.[3] 그러나 전쟁 당시 월북하였다가 2000년 남한을 방문한 정지용의 둘째 아들은 북조선에서의 아버지의 행적을 전혀 알지 못하였고, 2003년 문학평론가 박태상은 그가 납북되던 중 1950년 9월 25일 미군의 동두천 폭격에 휘말려 소요산에서 폭사하였다는 내용의 자료를 공개하여[4] 정지용이 실제 납북되어 북조선에서 활동하였는가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단, 박태상이 공개한 자료는 북조선 언론 자료에 기초한 것이어서 남한에서는 신빙성을 크게 인정받지 못하였고, 현재까지 정지용의 정확한 사망 일자나 원인에 대해서는 확실한 사실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력[편집] ");"> 1902년 (1세) 5월15일(음력) 충북 옥천군 옥천읍 하계리 40번지에서 정태국과 정미하의 장남으로 태어남. 1910년 (9세) 옥천공립보통학교(현재 죽향초등학교)에 들어감. 1913년 (12세) 동갑인 송재숙과 결혼 1914년 (13세) 옥천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함. 1918년 (17세)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함. 학교성적은 우수하고 집안이 어려워서 교비생(校費生)으로 학교를 다녔음. 1922년 (21세)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함.마포 하류 현석리에서 첫 시작품인 〈풍랑몽〉을 씀. 1923년 (22세) 일본 교토 시의 도시샤 대학 영문과에 입학함. 1924년 (23세) 시 〈석류〉· 〈민요풍 시편〉을 씀. 1925년 (24세) 〈새빨간 기관차〉· 〈바다〉등을 씀. 1926년 (25세) 《학조》 창간호에 〈카페 프란스〉등 9편의 시, 《신민》· 《문에시대》에 〈Dahlia〉· 〈홍춘〉 등 3편의 시를 발표하며 문단활동을 시작. 1927년 (26세) 〈뻣나무 열매〉· 〈갈매기〉 등 7편의 시를 교토와 옥천을 오가며 씀. 《신민》· 《문에시대》· 《조선지광》· 《청소년》 · 《학조》 지에 〈갑판우〉· 〈향수〉등 30여편의 시를 발표함. 1928년 (27세) 장남 정구관 출생(음력 2월). 《동지사문학》 3호에 일어시 〈馬1· 2〉를 발표함. 1929년 (28세) 도시샤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귀국함. 12월에 시 〈유리창〉을 씀. 1950년 (49세)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정치보위부로 끌려가 구금됨. 정인택, 김기림. 박영희 등과 서대문형무소에 수용되었다가 평양 감옥으로 이관되는 도중 또는 이관된 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나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음. 작품 경향[편집] 시인 정지용은 초기엔 모더니즘과 종교적(로마 가톨릭) 경향의 시를 주로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보다는 널리 알려진 작품 에서 보이듯이 초기엔 서정적이고 한국의 토속적인 이미지즘의 시를 발표함으로써 그만의 시 세계를 평가 받고 있으며 전통지향적 자연시 혹은 산수시라 일컫는다. 작품[편집] 위키문헌에 이 글과 관련된 원문이 있습니다. 정지용 ");"> 〈향수〉(鄕愁) 〈유리창〉 〈바다9〉 〈비〉 〈장수산〉(長壽山) 소설 〈삼인〉(三人) 기타[편집] 그의 대표 작품 중 향수는 1989년에 통기타 가수인 이동원과 박인수 서울대학교 교수가 듀엣으로 곡을 붙여 불렀으며, 이 노래는 앨범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에 실렸다. 강원룡은 훗날 회고에서 그가 김구의 지지자라고 했다.[5] 동시에 그가 여운형의 지지자이기도 했다고 한다.[5] 한편 그의 시 는 미국의 요절한 천재시인 트럼블 스티크니(Trumbull Stickney,1874-1904)의 시 '므네모시네(Mnemosyne)'를 표절 혹은 번안한 것이아닌가라는 논란이 있다.  ///////////////////////////////   트럼블 스티크니(1874~1904) 「기억의 여신(므네모시네)」 1900년 발표 ​ 정지용(​1902~1950) ​휘문고보 문예지에 「향수」 처음 발표          정지용 「향수」 ​ ​ ​ ​ ​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활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든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의와 아무러치도 않고 여쁠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안해가 따가운 해ㅅ을 등에 지고 이삭 즛던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 하늘에는 성근 별 알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집웅,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어 도란 도란거리는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 ​ ​ ​   스티크니 「기억의 여신」 윤호병옮김 ​ 내 기억의 고향에는 가을이 왔네 ​ 골목길에 부는 따사로운 바람! 언덕 위로 드리워진 그림자는 졸고 있네. 여름날의 긴 햇살이 엷어지는 동안. ​ 내 기억의 고향에는 낯선 추위가 왔네. ​ 제비들은 황금빛 들녘을 날아 떠나갔네. 한낮에 날쌔고 유연한 날갯짓 하면서, 풀밭 위 누런 소는 풀을 뜯고 있네. ​ ​내 기억의 고향에는 아무 것도 없네. ​ 눈앞에 아른거리는 사랑스런 여동생이 있었네. 머릿결은 검었고 눈빛은 아주 슬펐네, 밤이면 숲에서 같이 노래했었네. ​ 내 기억의 고향에는 외로움 뿐이네. ​ 내 어린것들의 종알거림이 귓가를 스치네. 타들어 가는 불꽃을 보고 있노라면, 눈물 속에 반짝이는 모든 것들이 마음속에 떠오르네. ​ 내 기억의 고향에는 어둠이 왔네. ​ 내 살던 곳에는 산이 있었네. 소 발자국과 스러진 나무가 길을 덮었네. 태풍의 분노로 나무뿌리가 뒤엉켜 있었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이런 곳은 나만의 고향. 대지를 황폐시키는 그런 저주가 어떻게 일어났는지 물어보고 싶네, 사람만이 그렇게 할 수 있었으리라. ​ 내 기억의 고향을 가로지르며 비가 내리네. ​ ​ 가을이라는 시적배경의 유사성, 고향을 그리워한다는 시적 주제의 유사성. 그리고 「기억의 여신」에서는 6개의 후렴구와 「향수」에는 5개의 후렴구가 있다는 형식의 유사성이 있다. 후렴구를 제외한 5개의 연으로 이루어져있다는 것도 일치한다. 시어의 유사성은 형광펜으로 표시하였다. 대치되는 시어를 같은 색으로 표시하였다. 이러한 유사성으로 볼 때 정지용의 ​「향수」는 스티크니의 「기억의 여신」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   정지용의 鄕 愁 -① 넓은 벌 동쪽끄트로  ② 녯니야기 지줄대는 실개천 이 회돌아 나가고,  ③ 얼룩백이 황소 가  ④ 해설피 금빗 게으른 우름 을 우는 곳,  ⑤ ------ 그 곳 이 참하 꿈엔들 니칠니야.   Ⅱ-① 질화로 에 재 가 식어 지면  ② 뷔인 바 테 밤ㅅ바람 소리 말 을 달니고,  ③ 엷은 조름 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  ④ 집벼개 를 도다 고이시는 곳,  ⑤ ------ 그 곳 이 참하 꿈엔들 니칠니야.   Ⅲ-① 흙 에서 자란 내 마음  ② 파아란 한울 비치 그립어 서  ③ 되는대 로 쏜 화살 을 차지러  ④ 풀섭 이슬 에 함추룸 휘적시 든 곳,  ⑤ ------ 그 곳 이 참하 꿈엔들 니칠니야.   Ⅳ-① 傳說바다 에 춤 추는 밤물결 가튼  ② 검은 귀밋머리 날니 는 누의 와  ③ 아무러치 도 안코 엽블것 도 업는  ④ 사철 발 버슨 안해 가  ⑤ 따가운 해쌀 을 지고 이삭 줏 든 곳,  ⑥ ------ 그 곳 이 참하 꿈엔들 니칠니야.   Ⅴ-① 한울 에는 석근 별  ② 알수 도 업는 모래성 으로 발 을 옴기고,  ③ 서리 까 막이 우지짓 고 지나가는 초라한 집웅,  ④ 흐릿한 불비체 돌아안저 도란도란 거리는 곳,  ⑤ ------ 그 곳 이 참하 꿈엔들 니칠니야.     Mnemosyne A-① It's autumn in the country I remember. B-① How warm a wind blew here about the ways!  ② And shadows on the hillside lay to slumber  ③ During the long sun-sweetened summer-days. ④ It's cold abroad the country I remember. C-① The swallows veering skimmed the golden grain  ② At midday with a wing aslant and limber;  ③ And yellow cattle browsed upon the plain. ④ It's empty down the country I remember. D-① I had a sister lovely in my sight:  ② Her hair was dark, her eyes were very sombre;  ③ We sang together in the woods at night. ④ It's lonely in the country I remember. E-① The babble of our children fills my ears,  ② And on our hearth I stare the perished ember  ③ To flames that show all starry thro' my tears. ④ It's dark about the country I remember.   시의 제목인 'Mnemosyne'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뮤즈신의 어머니이자 '기억의 여신'의 이름이다. 우리말로 옮길 때, '기억'보다는 '추억'이라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즉, 시의 전체적인 내용은 바로 '추억'이다. 어설프게나마 이 시를 우리말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추억 지금은 가을이 오는 내 추억의 고향 따사로운 바람결은 길모퉁이 스치고  향그러운 태양의 긴 여름날  산마루엔 그림자 누워 졸던 곳   지금은 추운 내 추억의 고향 날씬하게 기울은 제비 날개  한낮에 금빛 곡식물결 박차고 소소떨고  누런 소 넓은 들에 풀 뜯던 곳   지금은 비인 땅 내 추억의 고향 칡빛 머릿단에 수심 짙은 눈망울  내가 보아도 사랑스러운 내 누이와  밤이면 숲 속에서 노래부르던 곳   지금은 쓸쓸한 내 추억의 고향 어린 자식들 도란거리는 소리 내 귀에 가득한데  난로 속 남은 재 응시하면  눈물 속에 별인양 불꽃이 반짝이던 곳 지금은 어두운 내 추억의 고향     구체적으로 소재 혹은 이미지가 유사한 것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Ⅰ-⑤ 꿈 엔들 니칠니야. A-① I remember  Ⅰ-② 회돌아 나가고 B-① blew here about the ways  Ⅰ-③ 황소 C-③ yellow cattle  Ⅱ-①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E-② the perished ember  Ⅱ-② 뷔인 바테 C-④ empty down  Ⅱ-③ 엷은 조름 B-② lay to slumber  Ⅳ-② 검은 귀밋머리 날니는 D-② hair was dark  Ⅳ-② 누의 D-① a sister  Ⅳ-⑤ 따가운 해쌀 B-③ the long sun-sweetened  Ⅴ-① 별 E-③ starry  Ⅴ-③ 우지짓고 지나가는 C-① veering skimmed  Ⅴ-④ 흐릿한 불비체 E-② the perished ember  Ⅴ-④ 도란도란거리는 E-② babble     /출처:한미르 문학    ///숭실대 강사 이병렬의 글. 트러블 스티크니의   미국의 시인 트럼블 스티크니(Joseph Trumbull Stickney)는 1874년 6월 20일 제네바에서 태어나 다섯 살까지 스위스와 이탈리아에서 살다가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왔다. 그의 아버지(Austin Stickney)는 트리니티 대학의 라틴학과장이었고, 어머니(Harriet champion Stickney)는 코네티컷 주지사의 직계 후손이었다. 그의 부모가 오랜 동안 주로 외국에서 살았기 때문에, 클리브돈과 뉴욕에서의 1, 2 년을 제외하면, 스티크니는 어린 시절을 주로 유럽에서 보냈다. 게다가 하바드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자신의 아버지가 그의 유일한 선생이었다.  그러나 스티크니는 하바드 대학의 강사이자 결혼을 앞 둔, 온 세상이 그의 앞에 활짝 열려있던 30세의 나이에 아깝게도 뇌종양으로 죽고 만다. 이 때가 1904년 10월 11일이었다.  그가 죽은 이듬해인 1905년 그의 친구들이 스티크니가 생전에 출간한 시집에 그의 유작들을 미완성인 채로 묶어 ()이란 제목으로 다시 출간했는데, 이것이 그가 남긴 작품 전부이다. 흔히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요절한 시인들에게 올바른 평가가 아닌 잘못된 동정을 보내는 경향이 있으나, 스티크니의 경우에는 빈틈없는 비평가로 알려진 브룩스(Van Wyck Brooks)나 윌슨(Edmund Wilson)으로부터도 [약속의 시인이자 실행의 시인]이라고 칭송될 정도로 찬사를 받았다.  Mnemosyne  A- It's autumn in the country I remember.  B- How warm a wind blew here about the ways!  And shadows on the hillside lay to slumber.  During the long sun-sweetened summer-days.  It's cold abroad the country I remember.  C- The swallows veering skimmed the golden grain  At midday with a wing aslant and limber ;  And yellow cattle browsed upon the plain.  It's empty down the country I remember.  D- I had a sister lovely in my sight:  Her hair was dark, her eyes were very sombre;  We sang together in the woods at night.  It's lonely the country I remember.  E- The babble of our chuldren fills my ears,  And on our hearth I stare the perished ember  To flames that show all starry thro' my tears.  It's dark about the country I remember.  시의 제목인 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뮤즈신의 어머니이자 [기억의 여신]의 이름이다. 우리말로 옮길 때, [기억]보다는 [추억]이라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즉, 시의 전체적인 내용은 이다. 어설프게나마 이 시를 우리말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추 억  지금은 가을이 오는 내 추억의 고향  따사로운 바람결 길모퉁이 스치고  향그러운 태양의 긴 여름날  산마루에 누운 그림자 졸던 곳  지금은 추운 내 추억의 고향  한낮에 금빛 곡식물결 박차고 소소떠는  날씬하게 기울은 제비 날개  누런 소 넓은 들에 풀 뜯던 곳  지금은 비인 땅 내 추억의 고향  칡빛 머릿단에 수심 짙은 눈망울  내가 보아도 사랑스러운 내 누이와  밤이면 숲 속에서 함께 노래부르던 곳  지금은 쓸쓸한 내 추억의 고향  어린 자식들 도란거리는 소리 내 귀에 가득한데  난로 속 남은 재 응시하면  눈물 속에 별인양 불꽃이 반짝이던 곳  지금은 어두운 내 추억의 고향  鄕 愁  I- 넓은 벌 동쪽 끄트로  넷니야기 지줄대는 실개천 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빗 게으른 우름을 우는 곳,  -------그곳이 참하 꿈 엔들 니칠니야.  II- 질화로에 재가 식어 지면  뷔인 바 테 밤 ㅅ 바람 소리 말을 달니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  집벼개를 도다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참하 꿈 엔들 니칠니야.  III-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한울 비치 그립어 서  되는대로 쏜 화살을 차지러  풀섭 이슬에 한추룸 휘적시 든 곳,  -------그곳이 참하 꿈 엔들 니칠니야.  IV- 傳說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가튼  검은 귀밋머리 날니는 누의와  아무러치도 안코 엽블것도 업는  사철 발 버슨 안해 가  따가운 해쌀을 지고 이삭 줏 든 곳,  -------그곳이 참하 꿈 엔들 니칠니야.  V- 한울에는 석근 별  알수도 업는 모래성으로 발을 옴기고,  서리 까막이 우지짓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비체 돌아안저 도란도란 거리는 곳,  -------그곳이 참하 꿈 엔들 니칠니야.  I - 꿈 엔들 니칠리야. A- I remember  I - 회돌아 나가고 B- blew here about the ways  I - 황소 C- yellow cattle  II-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E- the perished ember  II- 뷔인 바테 C- empty down  II- 엷은 조름 B- lay to slumber  IV- 검은 귀밋머리 날니는 D- hair was dark  IV- 누의 D- a sister  IV- 따가운 해쌀 B- the long sun-sweetened  V- 별 E- starry  V- 우지짓고 지나가는 C- veering skimmed  V- 흐릿한 불비체 E- the perished ember  V- 도란도란거리는 E- babble  한 편의 시에서 이렇게 많은 유사점을 찾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예는 바로 가 을 모방했다는 결정적인 증거이다. 특히 V- 과 V- 의 소재와 분위기는 E- 을 그대로 빌은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III연을 제외하면 모든 연이 의 전 연의 여러 행에서 그 소재와 분위기 혹은 이미지를 빌어온 것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 시인 정지용(1902-1950)의 대표시 ‘향수’가 미국 시인의 시를 모방하거나 표절했다는 주장에 대해 김욱동 서강대 명예교수가 반박하고 나섰다. 김 명예교수는 새로 낸 문학평론집 ‘부조리의 포도주와 무관심의 빵’에서 첫 번째 챕터를 모방 논란에 할애하면서 “정지용이 비록 몇몇 시어를 빌려왔을망정 놀라운 시적 변용을 거쳐 전혀 새로운 작품으로 승화시켰다”고 주장했다. 논란은 미국 시인 트럼블 스티크니(1874-1904)의 시 ‘므네모시네(Mnemosyne)’에서 촉발됐다. ‘므네모시네’와 ‘향수’는 시어의 선택과 길이, 전체적 구조 등에서 닮은 부분이 있다. 김 명예교수는 정지용이 스티크니의 작품을 영어 원문이나 일본어 번역본으로 읽었을 수 있다며 ‘므네모시네’에서 일부 시어를 빌려와 ‘향수’를 창작했을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김 명예교수는 정지용이 빌려온 시어를 전혀 다른 시적 상황에서 전혀 다른 방법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강조하면서 “반짝인다고 모두가 황금이 아니듯이 유사하거나 동일한 시어를 구사한다고 하여 모작이나 표절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또 1950년대에 ‘추억’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번역된 ‘므네모시네’와 ‘향수’를 비교하면서 ‘추억’의 번역이 오히려 ‘향수’를 의식한 가운데 이뤄졌다고 역설한다.  유종호 문학평론가도 2011년 낸 비평에세이 ‘과거라는 이름의 외국’에서 “사소한 공통성이나 유사성을 곧 차용이나 도용이나 흉내로 간주하는 것도 정당화될 수 없다”며 ‘향수’의 모작 가능성을 부인했다. 김 명예교수는 “구약성서의 말대로 태양 아래에 새로운 것이 없고, 이 점에서는 문학도 예외가 아니다. 그렇다면 한 시인이나 작가는 남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되 자신의 것으로 창조적으로 승화시킬 때 천재성을 인정받는다”고 썼다. /연합뉴스 ///////////////////////////////////////// 동갑내기 시인의 작품세계… (서울=연합뉴스) 김보경 기자 = "김소월은 그리움과 슬픔의 정서를 통해 인간 회복을 호소한 민족시인입니다. 반면 정지용은 우리말을 찾아서 닦고 조직하는데 시 인생을 바친 20세기 최초의 직업시인이죠. 1902년생 동갑내기인 이들이 다른 시대인처럼 느껴지는 것은 작품 세계의 차이가 빚어내는 착시 현상일 것입니다." 유종호 전 연세대 석좌교수 강연= 김소월의 '진달래꽃'과 정지용의 '정지용 시 전집'을 주제로...       유 전 석좌교수는 두 시인을 같은 해에 태어나고 사망한 마르크스와 투르게네프(1818~1883)와 비교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많은 사람이 김소월과 정지용이 동갑이라는 사실을 의외라고 느낄 것"이라며 "이들의 차이는 사회적 총화로서 인간의 개성 차이에서 오는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유 전 석좌교수는 김소월이 정지용에 비해 다작(多作)했지만 김소월의 작품 성취도는 높낮이가 고르지 못했던 반면 정지용은 상대적으로 고른 편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한국의 대표적 시인이었던 두 사람이 모두 불행하게 세상을 떴다는 것을 공통점으로 들었다. 유 전 석좌교수는 "김소월은 자살설이 정설로 굳혀졌고 북으로 간 정지용은 정치와 전쟁의 와중에서 최후를 맞았다"며 "반면 미당 서정주는 86세로 천수를 다하고 900편에 이르는 걸출한 시편을 남겼다. 미당의 상대적인 행운은 김소월과 정지용의 불운을 부각시켜 준다"고 말했다. 그는 동시 '엄마야 누나야','말'에서 두 시인의 차이가 단박에 드러난다고 주장했다. 그는 "김소월의 '엄마야 누나야'는 옛 가락에 의탁해 동심을 드러내고, 정지용의 '말'은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면에서 자연스럽게 인지의 충격을 준다"며 "이러한 면이 두 시인 사이에서 세대 차를 느끼게 하고, 이는 많은 작품에서 그대로 발견된다"고 강조했다. 유 전 석좌교수는 이후 두 시인의 본격적인 작품 해석에 들어갔다. 우선 그는 김소월의 '초혼',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차안서선생 삼수갑산', '옷과 밥과 자유' 등을 예로 들며 "김소월은 인간의 보편적인 슬픔을 표출하며 독자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안겨줬다"고 해석했다. 이어 "그는 인간 삶의 본원적인 슬픔에 대해 깊은 통찰을 보여주진 못했다"면서도 "그의 시는 이념의 명시적 표출을 멀리했기 때문에 거부감을 주지 않고 호소력을 갖는다"고 덧붙였다. 그는 김소월의 대표작 '진달래꽃'에 대해서도 "조국의 산천에 지천으로 피어 있어 상징이 될 수 있는 진달래꽃으로 조선주의를 밝혔다"며 "이는 그가 천성의 시인이었음을 말해준다"고 평가했다. 유 전 석좌교수는 정지용에 대해서는 대표작 '향수'로 강연을 이어갔다. 그는 "일제 한자어를 마구잡이로 빌려 쓰던 1920년대에 정지용은 주류 사회에서 배제된 토박이말을 찾아내 그것을 시어로서 조직하는 일을 선도했다"며 "토박이말의 시적 유효성을 보여주며 부족 방언의 순화에 크게 기여했다"고 말했다. 이어 "시가 우리말로 빚어진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통찰하고 방법적으로 자각한 그는 한국 현대시의 아버지"라고 주장했다. 유 전 석좌교수는 '향수'가 미국 시인 트럼블 스티크니(Trumbull Stickney)의 '추억'을 모방해서 짜깁기했다는 항간의 의혹을 강하게 비난했다. 그는 "모방설의 최대 약점은 스티크니의 원문을 놓고 정지용 작품과 비교·대조해야 한다는 제1원칙을 소홀히 했다는 것"이라며 "우리말 번역만 놓고 피상적으로 파악한 유사점으로 모작이라고 속단했다"고 지적했다. '백록담', '종달새', '또 다른 태양' 등의 작품을 예로 들며 정지용에 대한 각박한 평가에 대해선 안타까움을 표했다. 유 전 석좌교수는 "그의 작품 중에는 경박한 감각과 말놀이라고 여겨지는 것들도 적지 않다"면서도 "그는 서정시 쓰기가 힘든 시대에 '언어 미술이 존속하는 이상 그 민족은 열렬하리라'는 신념과 '우리 시는 우리말로 빚어진다'는 방법적 자각을 시로 실천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의 공로는 응분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20세기 최초의 직업시인이라 할 수 있는 그의 시적 성취가 후속 시인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경지를 연 정지용(1902∼1950) 시인의 대표시 ‘향수’를 모르는 이는 드물 것이다.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치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로 이어지는, 가요로도 만들어져 널리 알려진 명편이다.     ◇문학평론가 유종호씨는 “중학 시절 내게 있어 정지용은 시인 중의 시인이었고 나는 그를 통해 우리말 어휘에 관심을 갖고 개개 낱말을 세세히 음미하는 버릇을 길렀다”면서 “명품을 찾아내는 것과 함께 명품을 지키는 것도 비평의 소임”이라고 밝혔다.     이 시에 대해 원로 문학평론가 유종호씨는 “1920년대 중반 우리 시의 상황 전반을 고려할 때 ‘향수’는 기적이라 해도 좋을 만큼 매+혹적인 뛰어난 작품”이라면서 “전례 없이 적정하고 다채로운 기층 어휘의 구사와 조직, 유장하면서 감칠맛 나는 리듬감, 쉽게 잊히지 않는 갖가지 정경, 복합적인 구도, 간절하면서도 애상적인 속기(俗氣)에서 자유로운 ‘향수’는 시인이 고향과 조국과 모국어에 바친 최고 헌사(獻詞)의 하나일 것”이라고 상찬했다. 이는 유종호씨가 지난달 말에 출간된 ‘현대문학’ 5월호에 기고한 에세이 ‘사철 발 벗은 아내가 -‘향수’는 모작인가?’에서 강조한 내용인데, 이처럼 원로 평론가가 새삼스럽게 ‘향수’에 대해 다시 언급하게 된 배경이 그리 간단치 않다.  근년 들어 인터넷 포털에 ‘향수’가 미국 시인 트럼블 스티크니(Joseph Trumbull Stickney·1874∼1904)의 ‘추억(Mnemosyne)’를 모방했거나 번안했다는 글이 나돌던 터에 중진 평론가까지 나서서 “모작이라는 점을 전적으로 부정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보이자 유종호씨가 모방의 혐의를 제시한 대목에 대해 조목조목 명백하게 반박하게 된 것이다. 그는 이 사단이 1997년 ‘충남문학’에 실린 ‘모방과 창조’라는 논문에서 시작된 것으로 파악하고, 이 글의 논거를 논리적으로 해체했다.  첫째, 소재의 동일성을 말하지만 집이나 고향을 그리워하는 감정은 극히 비근하고 보편적인 것이고 둘째, 반복구가 같다지만 “the country I remember”와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가 내용상으로 같다고 말하는 것은 시의 특성에 대한 고려가 없는 소재주의적인 발상이며 셋째, ‘향수’의 시행 총수는 25행이고 ‘추억’의 시행 총수가 24행이니 과연 엇비슷하지만 ‘향수’와 같은 해인 1927년에 발표된 정지용의 ‘옛이야기 구절’의 총 행수도 24행이니 길이나 시행 수가 엇비슷하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일축했다. 이밖에도 외국에나 있을 법한 젖소 ‘얼룩배기 황소’에 대한 의문에 대해서도 재래종 ‘칡소’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줄 뿐 아니라 ‘추억’의 한국 번역판이 오히려 정지용의 시어로부터 영향을 받아 지나친 의역을 감수하고 ‘향수’의 시어들을 동원한, 그리하여 “엽전 시인 정지용이 죽은 스티크니를 모방한 것이 아니라 죽은 고전학자 스티크니가 동방의 청년 정지용을 모방한” 셈이라고 역공했다.   ◇정지용 시인 정지용이 스티크니의 ‘추억’을 읽었을 가능성을 굳이 배제할 필요는 없지만 “‘향수’는 제 땅에 제 발로 우뚝 서 있는 우리 근대시의 수작이며 설령 선행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다 하더라도 모든 것을 환골탈태한 당당한 우리의 고전”이라고 유종호씨는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향수’는 1923년에 썼지만 ‘추억’은 1929년에서야 ‘미국시선집’에 수록된 저간의 사정을 설명하면서 “아무리 일본이 재정적으로 윤택했어도 외국 군소시인의 모든 시집을 도서관에 비치했을지 의문”이라고 ‘문학외적인 호기심’을 보였다.  그는 “명품을 찾아내는 것과 함께 명품을 지키는 것도 비평의 소임”이라며 “많지 않은 우리의 정전을 지켜야겠다는 뜻도 있지만 편향된 논평과 평가가 기초적 독해를 선행하는, 극복돼야 할 우리 쪽 오랜 관행에 대한 반성의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심정도 없지 않다”고 이 글을 쓰게 된 분명한 취지를 밝혔다. 학자들마다 떠드는 기준에 따르면 ‘실낙원’은 줄잡아 2000명의 선행 문인들에게 빚졌다고 하는데 “영향 연구나 탐색자의 부질없는 호사벽에서 나온 공허한 소동은 범세계적인 현상인 것 같다”는 원로 평론가의 지적이 크게 들린다. /조용호 선임기자    [출처] 정지용 「향수」와 트럼블 스티크니 「기억의 여신」의 관계|작성자 피터팬증후군  
260    "아버지가 서점이고, 서점이 곧 아버지였다" 댓글:  조회:3119  추천:0  2017-02-19
            ​   ​ 파리를 여행할 때면 나는 센 강변을 먼저 찾아간다. 루브르박물관과 노트르담성당 등 파리를 상징하는 경이로운 문화유산들이 거기 즐비하지만, 나는 강변의 좌안에 늘어서 있는 고서점들을 가는 것이다. 나는 이 고서점들에서 빛의 미술가 윌리엄 터너의 컬러 판화를 여러 장 구하는 행운도 누렸고, 1860년대에 출간된 쥘 베른의 소설들과 풍자화가 그랑빌의 책을 구하곤 즐거워하기도 했다.   ​ 노벨문학상을 받은 바 있고 드레퓌스사건 때 진실을 밝히는 지식인 운동에 앞장선 소설가 아나톨 프랑스는 “나무가 있고 책방이 있는 센 강변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했다. 그의 아버지도 이곳에서 고서점을 했다. 20세기 초 파리 시 당국이 고서점들을 철거하려 하자 작가들과 연대하여 존치운동을 펼쳤다. 자신의 작품에서 애정 어린 필치로 고서상들을 그리기도 했다. 파리 시민들은 그렇게 책을 사랑하고 가난한 고서상들을 배려한 작가를 기려 그 한 구간을 ‘아나톨 프랑스 강변’이라고 이름 붙였다.   ​ 나는 이들 고서점을 둘러보고는 바로 이웃한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로 들어간다. 탐서 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센 강변의 고서점들과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가 있어서 파리는 나에게 파리다. 1920년대 파리에서 6년을 머물면서 셰익스피어 서점을 드나든 헤밍웨이는 파리를 ‘움직이는 축제’라고 했지만, 나는 책의 도시 파리이기에 파리로 간다. ​ 가난한 예술가들 보살핀 실비아 비치 ​ 1919년 11월 19일. 미국 뉴저지 출신의 실비아 비치가 20세기 유럽 문예사에서 가장 중요한 한 공간인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를 문 연 날이다. 청소년기를 선교사였던 아버지와 함께 파리에서 보낸 실비아는 당초 뉴욕에 프랑스책을 취급하는 서점을 내려고 했다. 그러나 그가 갖고 있는 돈으로 뉴욕에 서점 내기는 불가능했다. 1917년 서른 살의 나이에 다시 파리로 돌아왔다. 프랑스 현대문학을 공부할 생각도 했지만, 강 좌안에서 프랑스책을 판매하는 아드리안 모니에와 친구가 되었고, 그 인연으로 영어책 서점을 내게 된다.   ​ 서점 이름을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라고 했다. ‘컴퍼니’란 동료 또는 동호인을 뜻한다. 몸집이 작아 귀여운 여성 실비아는 당대의 작가와 지식인·예술가들을 운집시키는 마력을 갖고 있었다.   ​ 1차대전이 끝나면서 세계의 예술가·작가들이 파리로 몰려들었다. 작가 제임스 조이스, 화가 피카소, 음악가 스트라빈스키, 무용가 이사도라 덩컨, 영화감독 예이젠시테인이 그들이었다.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시인 에즈라 파운드, 소설가 피츠제럴드, 거트루드 스타인, 엘리스 토클라스, D.H. 로렌스가 또한 그들이었다. 파리는 이들의 정신의 은신처였다. 셰익스피어 서점은 바로 이들의 아지트였고 실비아는 이들을 수발하는 마돈나였다. ​ 실비아 비치는 서점을 연 이듬해인 1920년 한 파티에서 아일랜드 출신의 제임스 조이스와 운명적으로 만난다. 조이스의 숭배자였던 실비아는 1959년 펴낸 자서전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에서 “제임스 조이스가 파티에 참석하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너무 놀라 몸이 떨려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었다”고 썼다. 조이스는 그때 『율리시스』를 영국의 ‘에고이스트’에 연재하다가 구독자들의 항의가 빗발치는 바람에 미국의 ‘리틀 리뷰’로 옮겨 연재하고 있었다. 미국에서도 외설이다 뭐다 하면서 항의가 이어졌다. 단행본 출판 전망도 밝지 않았다.   ​ 실비아는 『율리시스』를 직접 출판하기로 했다. ‘무삭제 완전판’ 1000부 한정 출판한다고 1921년에 광고했고 1922년 732쪽에 달하는 『율리시스』를 출간했다. 전 세계에서 주문이 쇄도했다. 책은 이내 매진되면서 실비아와 셰익스피어 서점은 일약 역사적인 존재가 되었다.   나는 2014년 여름 조이스가 서명한 『율리시스』의 초판본을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뉴욕의 고서점 아고시에서 직접 만져볼 수 있었다. 보존상태가 좋아 6000만 원이라고 했다. 흰 장갑을 끼고 역사적인 한 권의 책을 만져보는 나의 손이 떨렸다. 나는 서울대 영문학과 석경징 명예교수가 10년 이상 번역하고 있는 『율리시스』 출간을 준비하고 있기에, 그 초판본을 직접 넘겨보는 감흥이 남달랐다.   독일군 말 안듣자 수용소 끌려가 고초 ​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의 살림은 그러나 늘 고단했다. 1930년대 중반에 이르면서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또한 1930년대가 끝나가면서 파리는 전장으로 변했다. 젊은이들은 징집되었다. 파리주재 미국대사관은 실비아에게 미국으로 돌아갈 것을 권유했다. 그러나 실비아는 돌아가지 않았다. 돌아갈 여비도 마련하기 어려웠다. “차라리 나치 점령하의 파리에서 친구와 함께 사는 편을 택했다”고 그는 회고록에서 기록하고 있다.   ​ 조이스가 죽는 1941년 실비아의 셰익스피어 서점도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조이스의 대작 『피네간의 경야(經夜)』 때문이었다. 대형 군용차에서 내린 독일군 장교가 서점에 진열되어 있는 『피네간의 경야』를 사고 싶다고 했다. 실비아는 남아 있는 유일본이기에 팔 수 없다고 했다. 장교는 화를 내면서 돌아갔다.   ​ 2주 후 장교가 다시 찾아왔다. 『피네간의 경야』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실비아가 치워버렸다고 하자 장교는 얼굴을 붉혔다. “오늘 중으로 서점을 압류하겠다”면서 차를 몰고 돌아갔다. 실비아는 친구들과 함께 서점의 책과 물건을 모두 위층으로 옮겼다.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라는 간판도 페인트로 지워버렸다.   ​ 54세의 실비아는 독일군에 체포되어 6개월 동안 수용소에 갇혀 있었다. 풀려났지만 서점 문은 다시 열지 않았다. 기력도 쇠약해졌다. 문학가들과 친구들이 책방을 다시 열라고 했지만 그는 서점 이름과 같은 제목의 회고록으로 한 시대의 문예사적 풍경을 기록으로 남겼을 뿐이다. 1962년 제2의 고향인 파리에서 75세로 생을 마감했다.   ​ 실비아의 맥은 파리에 유학 중인 미국청년 조지 휘트먼에 의해 이어졌다. 1951년 8월 15일 문을 연 휘트먼의 서점 이름은 ‘르 미스트랄’이었다. 앨런 긴즈버그, 로렌스 펄링게티, 윌리엄 버로스, 리처드 라이트, 윌리엄 스타이런, 훌리오 코르타사르, 헨리 밀러, 윌리엄 사로얀, 로런스 더럴, 제임스 볼드윈 등 비트제너레이션으로 불리는 보헤미안 문학가들의 사랑방이 되었다. 1964년 셰익스피어 탄생 400주년을 맞아 휘트먼은 서점 이름을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로 바꾼다. 실비아의 전설이 새롭게 이어진다. ​ 셰익스피어 서점 여기저기에 메시지가 새겨져 있다. 입구 계단에 “인류를 위해 살아라”라는 구절이 보인다. 바닥엔 “배고픈 작가들이 먹게 하라”고 써놓았고 2층으로 오르는 머리 쪽에는 “낯선 사람을 냉대하지 마라. 그들은 변장한 천사일지 모르니”라는 성서의 한 구절을 새겨놓았다.       2. 셰익스피어 서점은 가난하고 배고픈 젊은 이들이 머물고 가는 잡초여관이다.   ​ ​ 아버지 조지 휘트먼을 이어 셰익스피어 서점을 이끌고 있는 실비아 휘트먼.        갈 곳 없는 작가들 서점에 머물게 해 ​ 휘트먼은 서점을 열면서부터 갈 곳 없는 작가들과 배고픈 지식인들을 위해 수프를 끓였다. 서가와 책 더미 사이에 간이침대를 놓아 잠잘 수 있게 했다. 휘트먼은 자신의 서점을 ‘잡초여관’(Tumbleweed Hotel)이라고 불렀지만, 가난한 잡초들에게 셰익스피어 서점은 삶과 사유의 안식처가 되었다. 이곳을 거쳐간 잡초들이 3만 명이나 된다니. 지금도 하루 여섯 명씩 머문다.   ​ 서점에 머무는 잡초들에겐 세 가지 일이 주어진다. 하루에 책 한 권 읽기, 두 시간씩 서점일 돕기, 한 장짜리 자서전 쓰기가 그것이다. 이렇게 쓰인 자서전 1만여 장이 보존되어 있다.   셰익스피어 서점에서 석 달 동안 머문 캐나다의 언론인 출신 작가 제레미 머서는 2005년 『시간은 그곳에서 부드러워진다: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에서 거닌 파리』를 썼다. 가난한 작가들을 환대해준 위대한 이상주의자 휘트먼의 정신과 사상, 책에 대한 헌신과 실천을 이야기하고 있다. ‘파리무료대학’이라는 강좌를 열었고 베트남전쟁을 반대하는 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1968년 5월혁명 때는 학생들을 책 속에 숨겨주기도 했다.   “가난한 사람들을 봐. 미혼모를 봐. 이런 사람들이 문명의 척도야!”   2006년 프랑스정부는 실비아의 뒤를 이어 서점의 영원한 전설을 구현해낸 휘트먼에게 ‘예술과 문화훈장’을 수여했다. “책은 사람을 오래 살게 한다”고 말하곤 했던 휘트먼은 2011년 98세로 별세했다. 영국에서 유학하다 2001년 늙은 아버지와 함께 있기 위해 파리로 돌아온 외동딸 실비아 휘트먼(아버지는 딸의 이름을 실비아에서 따와 지었다)은 2005년부터 셰익스피어 서점을 맡아 운영하고 있다.   ​ ​ 센 강 좌안의 셰익스피어 서점에서는 매주 문학모임이 열린다.   ​ ​ “아버지가 서점이고, 서점이 아버지였다” ​ 실비아는 새로운 기획을 펼치고 있다. 2003년부터 문학페스티벌을 시작했다. 2011년에는 드 그루트재단과 함께 전 세계 작가를 대상으로 하는 ‘파리문학상’을 제정했다. 매주 월요일에는 문학행사를 연다. 일요일엔 작은 티파티를 한다. 페스티벌 비용은 십시일반으로 마련한다. 참여하는 사람들이 와인이나 샴페인을 들고 온다. 유로스타가 티켓을 보내준다. 몽블랑은 펜을 기부한다. 참여 작가들과 음악가들에게는 교통비와 숙박비만 제공한다. 지난 7월 26일 셰익스피어 서점을 취재하던 날 아일랜드 소설가 폴 머레이와의 대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는 서점에 2주일째 머물고 있는 잡초작가다.   “아버지가 서점이고 서점이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는 전 세계에 수많은 아들딸을 두었습니다. 아버지는 정말 인류를 사랑한 분이었습니다.”       1. 20세기 유럽 문학사의 아지트였던 셰익스피어 앤 컨퍼니를 방문하는 세계시민들이 1년에 50만 명에 이른다.   ​ 2004년 미국에서 개봉된 영화 ‘비포 선셋’의 첫 장면이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였다. 9년 동안 떨어져 있었던 연인이 셰익스피어에서 다시 만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책과 서점에서 사랑이 이뤄지고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다. 1년에 세계시민 50만 명이 방문한다.     기록영화로도 만들어졌다. 2003년에 발표된 ‘한 노인과 서점의 초상’이다. 셰익스피어에 기숙한 사람들, 샌프란시스코의 서점 ‘도시의 불빛’을 창립한 시인 로렌스 펄링게티, 오스트레일리아의 전기작가이자 장서가로 『한 파운드의 종이: 한 책 중독자의 고백』을 쓴 존 백스터, 서점 이웃의 카페주인들과 학자·교수들을 인터뷰한 영화다. 영국작가 크리스토퍼 길모어도 영화의 처음에 등장해 1968년 휘트먼과 처음 만나는 과정을 극적으로 설명한다.   실비아는 아버지 휘트먼의 삶을 써내는 작업을 끝냈다. 책 제목을 『내 마음의 넝마와 뼈의 책방』(The Rag and Bone Shop of the Heart)이라고 정했다. 시인 윌리엄 예이츠의 시에서 따왔다.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는 ‘신성한 공공기구’(Holy Institution)입니다.”         /김언호 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    김언호 동아일보 기자를 거쳐 1976년 한길사 창립. 한국출판인회의·동아시아출판인회의 회장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 역임. 파주북소리 조직위원장과 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책의 탄생』 『책의 공화국에서』 등을 썼다.​ [김언호의 세계 책방 기행]에서​ ​ [출처] 피카소·헤밍웨이·로렌스·조이스… 20세기를 뒤흔든 예술인들의 아지트|작성자 LEECHMANIA  
259    한국 최초의 번역시집, 최초의 현대 시집 / 김억 댓글:  조회:4732  추천:0  2017-02-19
  시대 근대 저작자 김억 창작/발표시기 1921년 3월 20일(초판), 1923년 8월(재판) 성격 시집, 번역시집 유형 문헌 권수/책수 1책 간행/발행 광익서관 분야 문학/현대문학 요약 김억(金億)의 번역시집. 목차 접기 개설 내용 의의와 평가 오뇌의 무도 / 김억 김억의 번역시집. 광익서관에서 1921년 발행했다. 우리 나라 최초의 번역시집인 동시에, 단행본으로 출판된 우리 나라 최초의 현대 시집이기도 하다. 개설 총 168면. 광익서관(廣益書錧) 발행으로 초판은 1921년 3월 20일, 재판은 1923년 8월에 나왔다. 우리나라 최초의 번역시집인 동시에, 단행본으로 출판된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 시집이기도 하다. 김유방(金惟邦)의 장정에 장도빈(張道斌)·염상섭(廉想涉)·변영로(卞榮魯)의 서문과 역자 자신의 서문이라고 할 수 있는 글, 그리고 김유방의 서시가 그 첫머리를 장식하고 있다. 내용 1918년부터 1920년 사이에 김억이 『태서문예신보』·『창조』·『폐허』 등의 지면을 통하여 발표하였던 역시들을 한데 모은 것이다. 번역의 대본은 세계어(에스페란토) 역본이며 이밖에도 영어와 일어를 주로 참고하고 불어도 힘 있는 한 참고하였다고 역자 자신이 밝히고 있다. 베를렌의 「가을의 노래」 등 21편, 구르몽의 「가을의 따님」 등 10편, 사맹의 「반주(伴奏)」 등 8편, 보들레르의 「죽음의 즐거움」 등 7편, 예이츠의 「꿈」 등 6편, 기타 시인의 작품으로 「오뇌의 무도곡」 속에 23편, 「소곡(小曲)」에 10편 등 총 85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재판본에서는 일부 시인의 작품이 삭제되거나 추가되어 초판보다 약 10편이 더 많은 94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는데, 같은 작품의 경우에도 끊임없는 퇴고 과정을 통하여 적지 않게 변모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모두 김억의 철저한 리듬 의식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는데, 김억은 역시에서 원시가 지니고 있는 리듬에는 미치지 못한다 해도, 가능한 한계까지 한국어의 리듬을 살려보려고 섬세하게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의의와 평가 『오뇌의 무도』가 우리 근대시에 미친 영향은 획기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최남선(崔南善)으로부터 끊임없이 모색되어온 한국 자유시의 형태가 이들 김억의 번역시를 통하여 자리 잡혀진 것을 우선 들어야 할 것이다. 또한, 베를렌의 「작시론(Art poetique)」의 번역은 당시로서는 하나의 새로운 시의 경전(經典)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풍기는 가늘고 여리고, 애달프고 서러운 감각은 권태·절망·고뇌를 거쳐 나타내는 병적인 아름다움과 함께 1920년대 전기의 우리 시의 체질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Daum백과] 오뇌의무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     출생일 1896. 11. 30, 평북 정주 사망일 미상 국적 한국 요약 1910년대부터 프랑스 상징파의 시 등 외국시를 번역·소개하여 근대문학 형성에 이바지했으며, 오산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김소월을 발굴, 한국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키웠다.  1920년 〈폐허〉·〈창조〉의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폐허〉에 베를렌의 시를 연재하고, 번역시 〈가을의 노래〉·〈작시론〉 등 19편과 문예이론으로 〈스핑쓰의 고뇌〉(폐허, 1920. 7)·〈플로베르론〉(폐허, 1921. 1) 등을 소개했다. 〈창조〉에는 투르게네프의 시를 비롯한 많은 외국시를 번역했고 모파상의 소설 〈고독〉(창조, 1921. 1)을 소개했다. 그가 소개한 퇴폐주의 시인과 작품은 1920년대 문단에 많은 영향을 미쳐, 한때 퇴폐주의 문학이 문단을 휩쓸기도 했다.   김억 김억의 시집 〈해파리의 노래〉, 조선도서주식회사 (1923.6.30) 발간 1910년대부터 프랑스 상징파의 시 등 외국시를 번역·소개하여 근대문학 형성에 이바지했다. 초명은 희권, 필명은 안서·안서생·AS. 오산중학교를 거쳐 1913년 게이오[慶應]의숙 영문과에 입학했으나 아버지의 죽음으로 중퇴했다. 도쿄 유학시절인 1914년 4월 〈학지광〉에 시〈이별〉을 시작으로 〈학지광〉 5호에 시 〈야반〉·〈밤과 나〉·〈나의 적은 새야〉, 6호에 〈예술적 생활〉, 10호에 〈요구와 회환〉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여 문단에 나왔다. 1916년 오산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김소월을 가르치기도 했다. 1918년 〈태서문예신보〉 4호에 투르게네프의 시를 번역하고 5호에 〈믿으라〉·〈오히려〉·〈봄은 간다〉등의 시를 발표하여 본격적인 문학활동을 했다. 최남선이 보여준 계몽성의 시를 극복하고 새로운 자유시 형태를 보여주었다. 〈태서문예신보〉 6호에 베를렌의 〈거리에 내리는 비〉·〈검은 끝없는 잠〉이란 시를 번역했으며, 〈프랑스 시단〉·〈소로굽의 인생관〉을 통해 서양 문예이론을 소개했다. 〈시형의 음률과 호흡〉(조선문예, 1919. 2)에서 운율은 생리현상인 호흡에 기초한다는 말을 했는데, 이것은 프랑스 후기 상징파 시인인 폴 클로델의 '호흡률'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여기서 예술의 내용과 형식의 이원구조성을 '심령과 육체의 조화'로 표현하여 예술의 기본개념을 밝히고 있다. 1920년 〈폐허〉·〈창조〉의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폐허〉에 베를렌의 시를 연재하고, 번역시 〈가을의 노래〉·〈작시론〉 등 19편과 문예이론으로 〈스핑쓰의 고뇌〉(폐허, 1920. 7)·〈플로베르론〉(폐허, 1921. 1) 등을 소개했다. 〈창조〉에는 투르게네프의 시를 비롯한 많은 외국시를 번역했고 모파상의 소설 〈고독〉(창조, 1921. 1)을 소개했다. 그가 소개한 퇴폐주의 시인과 작품은 1920년대 문단에 많은 영향을 미쳐, 한때 퇴폐주의 문학이 문단을 휩쓸기도 했다. 초기의 창작시는 〈해파리의 노래〉(1923)에 싣고 그밖의 번역시는 〈오뇌의 무도〉에 모아 펴냈다. 동아일보사 학예부 기자, 경성방송국 등에서 일했으며 〈가면〉의 편집을 맡기도 했는데, 이무렵 많은 번역시와 민요시를 발표하여 문단의 선구적 역할을 했다. 해방 후에는 수선사라는 출판사의 주간으로 있었고, 6·25전쟁 때 이광수·박영희와 함께 납북될 때까지 잡지 〈개벽〉·〈조선문단〉·〈신동아〉·〈신인문학〉·〈동아일보〉·〈매일신보〉를 통해 300편이 넘는 시와 150편 정도의 평론을 발표했다. 그의 시세계는 〈해파리의 노래〉·〈안서시집〉(1929)·〈안서시초〉(1941)의 시기로 나눌 수 있다. 〈해파리의 노래〉는 자유시의 형태를 잘 보여주고 있으며, 〈안서시초〉의 시대에는 7·5조의 민요시 형태를 보여준다. 후기 시에 보이는 정형성은 뒤에 그가 한시를 번역하면서 영향받은 듯하다. 시집 〈금모래〉(1925)·〈민요시집〉(1948), 희곡 〈젊은 그들〉(1933), 수필집 〈사상산필〉(1931), 번역시집 〈기탄잘리〉(1923) 등이 있으며 한시를 번역한 〈망우초〉(1934)가 있다. [Daum백과] 김억 – 다음백과, Daum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258    작문써클선생님들께; - "즈려밟다" 와 "지르밟다" 댓글:  조회:3979  추천:0  2017-02-19
1. '즈려밟다'는 '지르밟다'의 잘못된 표기입니다. 표준어는 국민의 언어생활을 고려하여 선정하는 것이므로 '즈려밟다'라는 어휘가 오랜 시간에 걸쳐 많은 이들에 의해 쓰인다면, 표준어로 인정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2. '즈려밟다'를 '지르밟다'의 평안도 사투리로 보는 관점도 있습니다. 3. '지르밟다'가 '짓밟다'의 북한어라는 견해는 확인이 되지 않아 답변을 드리기 어렵습니다. ================================   '즈려밟다' 와 '지르밟다'  우리 가요 가운데 어법에 맞지 않는 표현을 가사로 쓴 노래들이 있습니다. 미리 작곡된 음표의 개수와 노랫말을 맞추려다 보면 간혹 잘못된 어법이 등장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노래가사를 통해 잘못된 어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우리가요에서 잘못 사용되고 있는 말 : 진달래꽃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이 노래는 김소월 시인의 시 '진달래 꽃'을 부른 노래로 가사에서 '즈려밟고'는 잘못된 표현입니다. '즈려밟고'의 기본형인 '즈려밟다' 또한 잘못된 표현입니다. 이 말의 올바른 표현은 '지르밟다'로 '위에서 내리눌러 밟다'라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즈려밟다'로 알고 있어 낯설게 들리지만 '지르밟다'가 올바른 표현입니다. 따라서 노래가사뿐 아니라 시에서도 '사뿐히 즈려밟고'가 아니라 '사뿐히 지르밟고'라고 바꿔 말해야 정확한 표현이 됩니다. 올바른 우리말 표기법  '사뿐히'는 부사로서 '소리가 나지 아니할 정도로 가볍게 발을 내디디는 모양'이나 '매우 가볍게 움직이는 모양'을 말합니다. 간혹 '사뿐이'와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확한 표기는 '사뿐히'입니다. ========================////////////////////////========== 산과 들이 불이라도 난 듯 붉게 물드는 봄이다. 이 계절을 봄답게 만드는 주역 중 하나는 역시 너른 야산에 흐드러지게 피는 진달래와 철쭉이다. 그런데 둘의 처지는 천양지차다. 같은 진달랫과인데도 진달래는 참꽃으로, 철쭉은 개꽃으로 불린다. 왜일까.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 때문이다. 진달래는 칡, 쑥처럼 춘궁기(春窮期)나 흉년에 밥 대신 배를 채울 수 있는 구황식물(救荒植物)이다. 반면 철쭉은 독성이 있어 먹을 수 없다. 철쭉은 억울하겠으나 목구멍이 포도청인 시절에 붙은 이름이니 누굴 탓하랴. 참꽃의 ‘참-’은 ‘진짜’와 ‘썩 좋다’는 뜻을 가진 접두사다. 참꽃, 즉 진달래는 ‘진짜 달래’라는 뜻이다. ‘개-’는 진짜나 좋은 것이 아니라는, 보잘것없다는 뜻을 담고 있다. 개꿈 개살구 개나리 같은 낱말들을 봐도 알 수 있다.  개나리? 개나리의 ‘개-’가 별 볼 일 없다는 뜻이라면 고개를 갸웃할 독자들이 많을 줄 안다. 그러나 앞에 예를 든 ‘개나리’는 봄의 대표적 전령사이자, ‘나리 나리 개나리 입에 따다 물고요’(봄나들이·윤석중 작사 권태호 작곡)에 나오는 물푸레나뭇과의 그 개나리가 아니다. 야생하는 나리의 총칭인 ‘개-나리’를 말한 것이다.  진달래 하면, 김소월 시인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애절한 사랑과 이별, 그리고 한(恨)을 호소력 있게 표현한 그의 시 ‘진달래꽃’은 국민시나 마찬가지다. 가수 마야가 2003년 노래로 불러 히트하기도 했다. 이 시의 한 대목, “가시는 걸음 걸음/놓인 그 꽃을/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에 나타나는 ‘즈려밟다’는 표준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시는지. ‘위에서 내리눌러 밟다’라는 의미의 바른말은 ‘지르밟다’이다. 이때의 ‘지르-’는 ‘내리누르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신이나 버선 따위를 뒤축을 눌러 신는 게 ‘지르신다’이고, 아랫니와 윗니를 꽉 눌러 무는 게 ‘지르물다’이다.    철쭉에는 산철쭉 왜철쭉 황철쭉 등이 있다. 이 중 왜철쭉을 많은 사람들이 ‘연산홍’이라고 부르는데 바른말은 ‘영산홍(映山紅)’이다. 말 그대로 ‘산을 붉게 비치게 한다’는 뜻이다.  자, 그간 잊고 살던 산에 올라 봄꽃 향기에 흠뻑 취해봄은 어떨지... 아, 참꽃 한입 베어 물며 조상들이 겪었던 고생을 잠시 느껴보는 것도 잊지 마시고...  /손진호 어문기자 ========================= ////////////////////////////////////////////////////////// ========================= @@ 시인은 날마다 못을 박고 빼듯이 시를 썼다 고치다가 절로 묘비명을 새기고 만다.
257    아르헨티나 극단주의적 모더니즘 시인 - 보르헤스 댓글:  조회:4784  추천:0  2017-02-19
  출생일 1899. 8. 24,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사망일 1986. 6. 14, 스위스 제네바 국적 아르헨티나 요약 남아메리카에서 극단주의적 모더니즘 운동을 일으킨 작가로 평가된다. 1961년 사뮈엘 베케트와 함께 권위있는 포멘토상을 받은 후, 그의 소설과 시는 점차 20세기 세계문학의 고전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이전까지 보르헤스는 자신의 고향인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조차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며, 다른 작가들은 그를 단지 기교와 재주를 지닌 장인 정도로만 여기고 있었다.  그가 죽은 후에야 비로소 그가 '창조해낸' 악몽의 세계는 프란츠 카프카의 세계에 필적할 만한 것이라는 평을 받았고 일반적인 언어를 가장 지속성 있는 형태로 응축시킨 작가로 높이 평가되었다. 보르헤스의 작품을 통해 라틴아메리카의 문학은 학문적인 영역에서 벗어나 전세계의 일반 독자들과 만나게 되었다. 목차 개요 생애 평가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아르헨티나의 소설가, 시인, 평론가이다. 개요 남아메리카에서 극단주의(Ultraísmo)적 모더니즘 운동을 일으킨 작가로 평가된다(라틴아메리카 문학). 생애 보르헤스는 당시 빈민구였던 팔레르모에서 자랐으며, 이곳은 뒤에 그의 몇몇 작품의 배경이 되었다. 아르헨티나 역사상 주목할 만한 그의 집안에는 영국계 혈통이 흘러서 그는 스페인어보다 영어를 먼저 배웠다. 한 영국 학교의 교사였으며 박식했던 아버지의 서재에서 그가 처음으로 읽은 책들은 〈허클베리 핀의 모험 The Adventures of Huckleberry Finn〉, H. G. 웰스의 소설들, 〈천일야화 The Thousand and One Nights〉, 〈돈 키호테 Don Quixote〉 등 모두 영어책들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꾸준한 자극과 모범에 힘입어 어린시절부터 문학의 길을 걷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에 가족을 따라 스위스의 제네바로 갔고, 그곳에서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배웠으며 제네바대학에서 문학학위를 받았다. 1919년에 그곳을 떠난 보르헤스가(家)는 마요르카와 스페인에서 1년씩을 보냈다. 스페인에서는 98세대(Generation of '98:기성작가들의 타락에 반발하여 일어난 극단주의 운동의 젊은 작가군)에 가담했다. 1921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돌아와 자신이 성장했던 도시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풍부한 상상력으로 과거와 현재를 형상화한 시들을 통해 고향 팔레르모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그가 처음으로 출판한 책은 시집 〈시(詩),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열정 Fervor de Buenos Aires, poemas〉(1923)이다. 그는 또한 뒤에 관계를 끊기는 했으나, 남아메리카에서 극단주의 운동을 일으킨 사람으로 평가된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여러 권의 수필집·시집 등을 펴냈고 3개의 문학지를 창간했으며 전기(傳記) 〈에바리스토 카리에고 Evaristo Carriego〉(1930)를 완성했다. 그후 그는 순수주의 소설 창작을 대담하게 시도했다. 처음에는 〈불명예의 세계사 Historia universal de la infamia〉(1935)에 실린 단편에서처럼 다소 불명예스러운 사람들의 일생을 재구성하기를 즐겼다. 한편 생계를 위해 1938년 그의 조상 이름을 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도서관에서 중책을 맡아 9년간 그곳에서 일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1938년에 머리를 심하게 다쳐 그로 인한 패혈증으로 거의 죽을 뻔했는데 후유증으로 그후 말을 못하게 되었으며 자신의 정신이 온전한지를 걱정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험이 그에게 내재해 있던 가장 강렬한 창작력을 불러일으켰던 것 같다. 그뒤 8년 동안 가장 훌륭한 작품들을 창작했는데, 이 작품들은 뒤에 연작집 〈소설 Ficciones〉·〈알레프 외(外) The Aleph and Other Stories, 1933~69〉라는 영역판에 실렸다. 이 시기에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라는 작가와 함께 조상의 이름을 서로 결합해 만든 H. 부스토스 도메크라는 필명으로 탐정소설을 썼는데, 이 작품은 〈돈 이시드로 파로디의 6가지 문제 Seis problemas para don Isidro Parodi〉(1942)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실제 세계에 대한 반어적·역설적 설명이라 할 수 있는 그의 고유한 꿈의 세계를 독특한 언어와 서술 기법을 사용해 처음으로 보여주고 있다. 1946년 독재자 후안 페론이 권력을 쥐게 되자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측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도서관에서 쫓겨났다. 그뒤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강연·편집·저술활동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그는 수필집 〈다른 종교재판들 Otras inquisiciones, 1937~1952〉(1952)에서 냉철한 판단력과 분석력을 보여주었다. 1955년 페론이 물러나자 명예직인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 관장이 되었고, 부에노스아이레스대학에서 영미문학 교수직도 맡게 되었다. 이 시기에 이르러서는 앞을 전혀 못 보게 되었는데 이 병은 그의 아버지도 겪었던 유전질환으로, 1920년부터 점차 시력이 약해졌었다. 이로 인해 그는 손으로 직접 글 쓰는 것을 포기하게 되었고 어머니나 비서, 또는 친구들이 받아써주어야만 했다. 후기 작품에 속하는 〈창조가 El hacedor〉(1960)·〈가상의 존재들에 대한 책 El libro de los seres imaginarios〉(1967) 등은 산문과 운문 사이의 장르 구별을 거의 없앤 작품들이다. 후기 소설집으로는 복수·살인·공포를 다룬 〈브로디에의 보고서 El informe de Brodie〉(1970)·〈모래의 책 El libro de arena〉(1955) 등이 있는데, 두 작품 모두가 민담 이야기꾼의 소박함과 자기 내면의 미로를 파헤쳐 그 핵심에 도달하려는 한 인간의 복잡한 시각을 결합시킨 우화들이다. 평가 1961년 사뮈엘 베케트와 함께 권위있는 포멘토상을 받은 후, 그의 소설과 시는 점차 20세기 세계문학의 고전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이전까지 보르헤스는 자신의 고향인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조차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며, 다른 작가들은 그를 단지 기교와 재주를 지닌 장인(匠人) 정도로만 여기고 있었다. 그가 죽은 후에야 비로소 그가 '창조해낸' 악몽의 세계는 프란츠 카프카의 세계에 필적할 만한 것이라는 평을 받았고 일반적인 언어를 가장 지속성 있는 형태로 응축시킨 작가로 높이 평가되었다. 보르헤스의 작품을 통해 라틴아메리카의 문학은 학문적인 영역에서 벗어나 전세계의 일반 독자들과 만나게 되었다. [Daum백과] 보르헤스 – 다음백과, Daum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와 그가 키웠던 하얀 고양이. 아르헨티나의 소설가이자 시인, 평론가. 1920년대 ‘도시의 아방가르드’를 주도했으며, 1930년대에는 단편 소설을 다양하게 발전시키는 등 주로 산문을 쓰면서 문학 세계의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경험과 환상의 세계를 뒤섞어 놓은 작품들로 환상적 사실주의의 형성과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발달에 기여했다. 주요 작품으로 ‘픽션들’과 ‘알렙’ 등이 있다. 작품 기억의 천재 푸네스 단편 소설, 포스트모더니즘 소설. 놀라운 기억력을 가진 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아르헨티나 소설로, 푸네스를 통해 지각한다는 것과 사유한다는 것이 다른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줄거리 : ‘나’는 1984년에 여름휴가를 보냈던 프라이벤토스에서 이레네오 푸네스를 처음 만났다. 1987년에 다시 그곳에 갔을 때 푸네스는 말에서 떨어져 전신 마비 상태에 빠졌음을 알게 된다. 어느 날 그는 ‘나’에게 라틴 어 책을 빌려 달라는 편지를 보내왔고, ‘나’는 책을 골라 보냈다. 얼마 후 ‘나’는 책을 돌려받으러 푸네스에게 가게 되었고, 그는 그 내용을 그대로 기억하여 라틴 어로 똑같이 말했다. 푸네스는 사물 하나하나의 고유한 특징을 기억하지만 그것을 묶는 개념으로 연결시키지는 못했다. 추상적 사고를 하지 못했던 푸네스는 요절한다. *수록교과서 : (문학) 신사고   [Daum백과] 보르헤스 – 문학 작가, 천재교육 편집부, 천재학습백과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호르헤 프란시스코 이시도로 루이스 보르헤스(스페인어: Jorge Francisco Isidoro Luis Borges, 1899년 8월 24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 1986년 6월 14일 스위스 제네바)은 아르헨티나의 소설가, 시인, 평론가이다. 1955년부터 1973년까지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의 관장직을 맡기도 했다. 연작 형태의 짤막한 이야기들로 구성된 독특한 소설 《픽션들》로 유명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나 1920년대에 '도시의 아방가르드(남아메리카에서 일어난 극단적인 모더니즘 운동)'를 주도했다. 1930년대에는 단편 소설을 다양하게 발전시키는 등 주로 산문을 쓰면서 문학 세계의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이러한 노력은 작품집 《픽션들》(1940)과 《알렙》(1949)로 결실을 맺었다. 그는 시와 논픽션, 이야기체의 수필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드는 다양한 작품들을 발표했다. 후기 작품 중에서 《칼잡이들의 이야기》(1970)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주요 작품[편집] 《불한당들의 세계사》(Historia universal de la infamia), 1935년 《픽션들》(Ficciones), 1944년 《알렙》(El Aleph), 1949년 《칼잡이들의 이야기》(El informe de Brodie), 1970년 《셰익스피어의 기억》(Veinticinco de Agosto de 1983 y otros cuentos), 1983년 내가 만일 인생을 다시 한번 살 수 있다면                                                / 보르헤스 내가 만일 인생을 다시 한번 살 수 있다면 이제까지처럼 그렇게 너무 완벽하게만 살려고노력하지 않고 좀 더 실수도 많이 하고 마음 푹 놓고 한껏 늘어져 쉬기도 하며 이제까지 보다 더 바보가 되어 어떤 큰 일이 생겨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련다. 내가 다시 인생을 거듭 살 수 있다면 지금보다 덜 깔끔하게 굴고, 더 많은 모험을 하고, 더 많은 여행을 하며 날 저물 때까지 더 많은 명상을 하고 더 많은 산엘 오르고 더 많은 강에서 수영을 하련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을 여행하고 더 적은 납작콩을 먹고 더 많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허상의 문제는 제쳐 놓고 더 많은 실상의 문제를 생각하련다. 나는 평생을 너무 신중하고 유익하게만 살려고 애쓴 그런 사람 중의 하나이지만, 그렇다고 즐거운 때가 아주 없었던 것도 아니었지. 하지만 이제 다시 살 수만 있다면 전적으로 행복한 순간 순간만을 위해 살련다. 나는 어디로 여행을 가든 체온기와 온수 주머니와 우산과 낙하산을 꼭 가지고야 떠나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었지만 이제 다시 살 수 있다면 좀 더 가벼운 차림으로 유유자적 떠나리라 이제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다면 이른 봄에 시작해서 늦가을까지 맨발로 뛰어다니고 내 집 근처 골목길을 더 많이 맴돌고 더 많은 새벽을 명상 속에서 맞이하고 더 많은 아이들과 뛰어 놀련다. 인생을 다시 한번 살 수 있다면…. 그러나 나는 벌써 85세, 이제 조금씩 조금씩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뒤늦게 쓰는 보르헤스의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시학」감상 / 이원     시학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시간과 물결의 강을 주시하며 시간이 또 다른 강임을 상기하는 것, 우리들도 강처럼 스러지리라는 것과 얼굴들이 물결처럼 스쳐감을 깨닫는 것.   불면은 꿈꾸지 않기를 꿈꾸는 또다른 꿈임을 우리네 육신이 저어하는 죽음은 꿈이라 칭하는 매일 밤의 죽음임을 체득하는 것.   중생의 나날과 세월의 표상을 모년 혹은 모일에서 통찰해 내는 것, 세월의 전횡을 음악, 속삭임, 상징으로 바꾸는 것.   죽음에서 꿈을 보는 것, 낙조에서 서글픈 황금을 보는 것, 가련한 불멸의 시는 그러한 것, 시는 회귀하느니, 여명과 일몰처럼.   이따금 오후에 한 얼굴이 거울 깊숙이 우리를 응시하네. 예술은 우리 얼굴을 비추는 거울이어야 하네. 경이에 지친 율리시즈는 멀리 겸허한 초록의 이타케가 보였을 때 애정으로 눈물을 흘렸다고 하지. 예술은 경이가 아니라 초록의 영원인 그 이타케.   예술은 또한, 나고 드는 끊임없는 강물과도 같은 것. 끊임없는 강물처럼, 본인이자 타인인 유전(流轉)하는 헤라클라이토스 자신의 거울과도 같은 것.                                                                      ................................................................................................................................................................................................................................      드라마를 보고  있었어요. 사랑의 간절함이 939살 불멸을 중지하게 한다는 판타지는 익숙한 것이지만, “나도 사랑한다 그것까지 이미 하였다”, “비로 올게 첫눈으로 올게”, 이 말을 하는 얼굴은 응시하게 되지요.    모든 생을 기억하는 눈에는 심연의 슬픔과 당장의 햇빛이 동시에 담기지요. 그래서 비스듬히 보고 있다가도 시적인 순간을 경험하게 되지요.    남미 문학의 거장 보르헤스는 소설로 더 많이 회자되지만 시로 출발하였어요. “우주(다른 사람들은 ‘도서관’이라고 부르는)는 부정수 혹은 무한수로 된 육각형 진열실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그의 문장. 수수께끼를 내는 자라고 불렸다는, 그리스의 시적인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말. 거울과 강물. 회귀와 유전(流轉). 흐르는 물은 늘 다르지요. 동시에 같은 물이기도 하지요. 어디에 찍느냐, 문제는 방점이지요.    응시하는 얼굴은 비추는 얼굴이에요. 여명과 일몰은 대립적 시간이며 대립적 시간이 아니지요. 경이와 초록 중 시는 초록에 방점이 있지요. 전면적 포용이거나 초월이 된다면 거울은 텅 비게 되지요. 꿈과 죽음의 대면이 매일매일이 키우는, 초록이지요.     이원 (시인) /출처 :푸른 시의 방        보르헤스의 말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시인     1899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났다. 생전 그는『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열기』『심문』『정면의 달』등의 시집,『불한당들의 세계사』『픽션들』『알레프』등의 소설집, 『영원의 역사』 등의 에세이집을 발표했다.   이 작품들은 세계의 주요 언어로 번역되었다. 그의 단편소설은 종종 박식한 에세이처럼 읽히고 에세이는 시처럼, 시는 짧은 이야기처럼 읽힌다. 보르헤스는 시와 산문의 구분이 무의미하다고 주장, 몇몇 시집에 산문을 포함하기도 했다. 실제와 상상이 뒤섞인 그의 작품들은 문학 / 철학사에 혜안을 제공했고 자크 데리다, 미셸 푸코, 움베르토 에코 등 걸출한 옹호자들을 낳았다.   1937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립도서관에서 사서 경력을 시작했으나 페론을 비판하여 해고당했고, 페론정권이 무너진 뒤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 관장으로 취임했다. 1955년부터 조금씩 시력을 잃었는데, 그해는 앵글로 색슨어와 고대 노르드어를 공부하기 시작한 해로 이러한 정황들이 작품에, 특히 시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1961년에 국제출판인협회가 수여하는 포멘터(Formentor)상을 사뮈엘 베케트와 공동 수상했고,1971년에는 예루살렘상을, 1980년에는 스페인 국왕이 직접 수여하는 세르반테스상을 수상했다. 영국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기도 했는데, 이로써 가장 친한 친구이자 존경하는 기사인 알론소 키하노와 동지가 되었다. 컬럼비아대학교, 옥스퍼드대학교, 파리대학교로부터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6년 6월, 여든여섯에 스위스 제네바에서 사망했다.       윌리스 반스톤(Willis Barnstone) 인디아나 대학 교수  '보르헤스의 말'을 엮은이. 인디아나대학교 비교문학 교수이자 시인, 철학자. 미국 구겐하임재단 연구원을 지냈으며, 저서로 숨겨진 성서』『하느님의 시The Poems of Jesus Christ』 등이 있다. 말년의 보르헤스와 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문학, 철학,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창렬 번역자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옮긴 책으로 『축복받은 집』『저지대』 『엄마가 날 죽였고, 아빠가 날 먹었네.』『토미노커』『이곳이 아니라면 어디라도』『제3의 바이러스』『암스테르담』『촘스키』『벡터』『쇼잉 오프』 『마틴과 존』 『구원』 등이 있다.     책 소개     “보르헤스의 생각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는 게 우리에게는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작가 보르헤스가 말년에 나눈 대화를 묶은 책이다. 애초 이 책을 소개할 수 있을까 걱정하기 시작했는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과연 이 책을 소개해도 되는 걸까 싶은 의구심에 사로잡혀 여전히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의 작품이 “미로와 수수께끼로 가득하고, 심지어 짓궃은 속임수도 있다”는 평을 듣듯, 그가 “이 세상의 많은 것들에 늘 당황하고 깜짝 놀”라듯, 그의 말을 읽고 듣는 독자도 마땅한 출구를 찾지 못해 당황하기 십상이다. “보르헤스를 읽는다는 것은 모든 방향으로 뚫려 있는 정신을 만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문학평론가 황현산의 설명을 들으면, 내가 느낀 의구심과 독자가 마주할 당황스러운 상황이 조금은 이해가 되지만, 피식 웃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내가 왜 그러는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을 달갑게 여길 이는 많지 않을 게다. 보르헤스의 마법(이렇게밖에 표현하지 못하겠다.)은 여기에서 시작되는데, 골치 아프고 멀미가 나야 할 상황인데도 다음 이야기가 계속 궁금하고 이전 이야기가 쉼 없이 떠오른다. 이렇게 소개하는 게 (만약 그런 게 있다면) 이 책의 핵심에 가 닿았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지만, 어쩐지 보르헤스라는 구체적인 사람을 알게 되었다는 느낌이 든다면, 나만의 착각 혹은 얼치기 독자의 거짓말일까.     아르헨티나의 시인이자 소설가, 평론가로 세계 문학사와 지성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노년의 목소리를 담은 기록으로 1976년과 1980년에 한 인터뷰 열한 개를 모은 책이다. 시력을 잃어가던 시기에 대한 담담한 회고뿐 아니라 말년에 이른 보르헤스의 문학, 창작, 죽음에 대한 견해까지 담고 있다.   그는 인터뷰마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 에드거 앨런 포, 월트 휘트먼,에밀리 디킨슨에 대한 애정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그러면서 유아론과 영지주의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는데, 이 과정에서 보르헤스는 자신의 말이 하나의 주장으로 굳어질까 염려하여 ‘오늘은 그래요’ 라는 식으로 대화를 마무리 짓곤 했다.   “아, 그럴지도 몰라요. 오늘은 영지주의자, 내일은 불가지론자이면 어때요? 다 똑같은 거예요.” 이런 식의 불분명한 태도는 그의 작품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모호성, 사실과 허구 사이의 틈새라는 우주적 수수께끼를 연상시킨다.     목차 ; 서문 / 후기 / 옮긴이의 말 / 보르헤스 작품 목록 / 찾아보기   비밀의 섬 / 내가 잠에서 깰 때 / 그건 여름날의 더딘 땅거미처럼 왔어요 / 나는 그저 타고난 대로의 나를 나타내지요 / 군중은 환상 / 그러나 나는 꿈을 더 선호해요 /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기다리고 있어요 / 시간은 본질적인 수수께끼 / 나는 늘 낙원을 도서관으로 생각했어요 / 악몽, 꿈의 호랑이 / 나는 항상 거울을 두려워했어요     책속으로   우리는 승리를 얻을 수도 있고 재앙을 겪을 수도 있지만, 그 두 가지 허깨비를 똑같이 취급해야 해요. -104쪽 책은 상상력의 연장이고 기억의 연장이에요. 책은 아마도 우리가 과거에 대해 알고 있는 유일한 것일 거예요. -122쪽 우리에게 금지된 것은 없어요. 그걸 하는 것은, 적어도 시도해보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답니다. -155쪽 작가는 순수한 자세로 써야 해요.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아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하고 있는 게 자신의 시가 아닌 거예요. -170쪽 난 미학이라는 게 없어요. 나는 단지 시와 이야기를 ‘쓸 수 있을 뿐’이에요. -181쪽 시는 말을 넘어서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말은 단지 상징일 뿐이니까요. 시는 말의 음악성 속에 존재하는 거예요. -183쪽 궁극적으로 우정이 사랑보다 중요할 거예요. 어쩌면 사랑의 진정한 기능은, 사랑의 의무는 우정이 되는 것인지도 모르죠. 그렇지 않으면 사랑은 도중에 끝나버릴 테니까요. -186쪽 난 의무적인 독서는 잘못된 거라고 생각해요. 의무적인 독서보다는 차라리 의무적인 사랑이나 의무적인 행복에 대해 얘기하는 게 나을 거예요. 우리는 즐거움을 위해 책을 읽어야 해요. -212쪽 나는 시를 매우 사적이고 중요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답니다. 물론 그걸 느낄 수도 있고 못 느낄 수도 있죠. 만약 느낀다면, 그걸 설명할 필요는 없어요. -274쪽 나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해 계속 노력할 거예요. 나의 모든 시도가 쓸데없으리란 것을 알지만, 기쁨은 해답이 아니라 수수께끼에 있으니까요. -303쪽     서평   눈먼 보르헤스에게 말은 유일한 소통 방식 말하기는 글쓰기 못지않게 내밀한 언어 형식   1980년에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여든의 나이로 대담을 위해 뉴욕, 시카고, 보스턴을 여행했다.수많은 청중들 앞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군중이라는 것은 환상이에요.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아요. 나는 여러분에게 개인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거예요.” 당시 눈이 먼 보르헤스에게 ‘말’은 유일한 소통 방식이었다.   그에게 말하기는 글쓰기 못지않게 내밀한 언어 형식이자 세상과의 통로로 자리하고 있었다. 이를 본 시인이자 철학자 윌리스 반스톤은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예전의 사상가와 철학자들은 생각이움직이는 것이어서 파도 위의 잉크와 마찬가지로 고정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에게 남겨진 현자들의 기록은 대부분 그 시대에 우연히 그들의 말을 받아 적고 기록하게 된 익명의 사람들에게서 나온 것이다.” 실제로 반스톤은 보르헤스와 나눈 대화에서 여전히 반짝이는 사유와 정신을 발견했고, 이를 하나의 작품처럼 남겨두고자 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의 말을 받아 적던 플라톤을 자처하며 직접『보르헤스의 말』을 엮었다.   그의 말마따나 “보르헤스의 생각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는 게 우리에게는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보르헤스의 말』은 그가 1976년과 1980년에 한 인터뷰 열한 개를 모은 책이다. 시력을 잃어가던 시기에 대한 담담한 회고뿐 아니라 말년에 이른 보르헤스의 문학, 창작, 죽음에 대한 견해까지 담고 있다. 그는 인터뷰마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 에드거 앨런 포, 월트 휘트먼, 에밀리 디킨슨에 대한 애정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그러면서 유아론과 영지주의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는데, 이 과정에서 보르헤스는 자신의 말이 하나의 주장으로 굳어질까 염려하여 ‘오늘은 그래요’ 라는 식으로 대화를 마무리 짓곤 했다.   “아, 그럴지도 몰라요. 오늘은 영지주의자, 내일은 불가지론자이면 어때요? 다 똑같은 거예요.” 이런 식의 불분명한 태도는 그의 작품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모호성, 사실과 허구 사이의 틈새라는 우주적 수수께끼를 연상시킨다.     세계 시민적인 사고와 개방성 언어를 통해 아름다움을 모색한 보르헤스   보르헤스는 1899년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영국 출신 할머니와 가정교사의 영향으로 모국어인 스페인어보다 영어를 먼저 배웠다. 이러한 유년기는 그에게 언어에 대한 개방성과 세계 시민적인 사고를 갖게 하는 바탕이 되었다.   나는 두 할머니 중 한 분과 얘기할 땐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말해야 하고, 다른 분과 얘기할 땐 또 다른 방식으로 말해야 한다는 걸 알았어요. 그 두 가지 방식을 스페인어와 영어라고 부른다는 걸 알게 되었죠. 그건 자연스러운 것이었어요. -244쪽   보르헤스는 고대영어, 라틴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도 꾸준히 공부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언어 간의 유의미한 차이뿐 아니라 개별적인 음악성에도 심취했다.   앵글로색슨인들은 로마(Rome)를 로마버그(Romaburgh)라고 불렀어요. 우린 그 두 단어에 흠뻑 빠졌지요. 그리고 『앵글로색슨 연대기』에서 아름다운 문장을 발견했어요. “줄리어스 시저는 브리튼섬을 찾은 최초의 로마인이었다.”라는 문장이었어요. 그런데 그 문장을 고대영어로 읽으면 더 멋진울림이 있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페루라는 거리를 달리며 소리쳤어요. “이울리우스 세카세르…….”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봤지만 우린 개의치 않았어요. 아름다움을 발견했으니까요! -197쪽   보르헤스는 언어를 통해 아름다움을 발견하고자 했다. 여기서 그가 쏟은 노력은 자신이 쓴 작품들의근원을 찾으려는 노력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보르헤스는 언어를 통해 예술을 탐구했던 학자이고,자신을 그대로 반영한 작품들을 꾸준히 써낸 작가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말년에 얻은 언어학적,문학적 통찰은 아이러니였다. 좌절 속에서도 지켜야 할, 생의 의지였다.   반스톤 / 당신은 마음 상태나 감정이나 지성에 관한 한 단어를 찾고 있나요? 당신이 이 세상을 뜨기 전에? 만약을 가정해서 드리는 질문이에요? 찾고자 하는 건 무엇인가요?   보르헤스 / 참 단어를 발견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걸 찾지 않는 거예요. 우리는 현재의 순간을 살아야 해요. 그러면 나중에 그 단어들이 우리에게 주어질 수도 있어요. 안 주어질 수도 있고요. 우리는시행착오를 통해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해요. 우리는 실수를 저질러야 하고, 실수를 이겨내야 합니다. 그건 평생 해야 하는 일이지요. -188쪽     “기쁨은 해답이 아니라 수수께끼에 있으니까요” 죽음을 앞둔 문학가가 남긴 질문들과 답   『보르헤스의 말』은 눈멀고 나이든 문학가가 죽음을 앞두고 어떤 심정이었는지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나는 몸과 영혼, 모두 완전히 죽고 싶어요. 그리고 잊히고 싶어요. -92쪽   고통스럽게 삶을 유지해온 보르헤스에게 죽음은 “희망이 가득한 것”이었다. 그는 삶을 악몽처럼 견뎌왔기에 죽음을 매 순간 도래하는 어떤 것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난 사람이 늘 죽는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단순히 뭔가를 기계적으로 반복하고 있을 때 우리는 뭔가를 느끼지 않고 뭔가를 발견하지 않아요. 그 순간 우리는 죽은 것이에요. 물론 삶은 어느 순간에나돌아올 수 있어요. -38쪽   인터뷰 속에서 보르헤스는 수없이 자살을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의 말마따나 삶도 죽음처럼 매 순간 돌아오는 것이었기에, 그는 자신에게 남아 있는 삶을 긍정할 수밖에 없었다. 후 보르헤스는 글쓰기가 아닌 말하기를 통해 언어를, 아름다움을 탐구해나갔다. 말은 시력을 잃은 그에게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새로운 돌파구로써 작용하기도 했다.   직접적이고 내밀한 소통 방식이라는 점에서 글과 비슷하되 전혀 다른 매체였기에, 그가 삶을 대하는태도마저도 바꾸어놓았다. 그러므로 『보르헤스의 말』은 20세기 사상계에 큰 영향을 끼친 대기가남긴, 독특하면서도 유일한 형식의 ‘작품’일지 모른다.   나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해 계속 노력할 거예요. 나의 모든 시도가 쓸데없으리란 것을 알지만, 기쁨은 해답이 아니라 수수께끼에 있으니까요. -303쪽 .   . 황현산 문학평론가   보르헤스를 읽는다는 것은 모든 방향으로 뚫려 있는 정신을 만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보르헤스 본인은 정신이 늘 메말라 있었다고 말한다. 뚫려 있는 길의 끝까지 갔다는 말이 되겠다. 대화록인 이 책에서 그는 그 뚫린 길을 어떻게 만났고, 또 그 길에서 무엇을 만나고 무엇을 만들었는지 가볍고도 명석한 언어로 말한다.   그가 시력을 잃고 모든 글을 구술해서 쓰던 시절에 이루어진 이 대화는 구어가 문어의 논리성을 확보하고 문어가 구어의 구체성을 다시 회복하는 신기한 문체의 한 기적을 보여준다. 어느 페이지를 열어도 재미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면 더 재미있다.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1899년 8월 24일 - 1986년 6월 14일)은 아르헨티나의 소설가이자 시인, 평론가이다. 현대 소설의 아버지라 불리는 헨리 제임스처럼 거의 정규적인 교육과는 거리가 먼 성장기를 보냈다. 대신 그는 역시 헨리 제임스와 마찬가지로 영국계인 외할머니와 가정교사인 팅크 양으로부터 영어를 배우는 등 개인 교수를 통한 교육을 중점적으로 받았다. 그는 이미 일곱살에 영어로 《그리스 신화》 요약을 썼고, 여덟 살에는 《돈키호테》를 읽고 영감을 받아 〈치명적인 모자의 챙〉이라는 단편 소설을 썼으며 오스카 와일드의 영어 단편 〈행복한 왕자〉를 에스파냐어로 번역했다.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최초의 라틴아메리카 작가인 보르헤스는 라틴아메리카의 '마술적 사실주의'를 꽃피웠으며, '제 2세대' 라틴아메리카 예술가들이 세계적으로 도약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보르헤스는 라틴아메리카를 벗어나 프랑스의 신소설가들을 비롯 존 바스, 존 허크스, 도널드 바셀미 등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반사실주의 세대 작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경험과 상상의 세계는 문제를 야기하거나 깜짝 놀라게 하는 점에서 사뮈엘 베케트에 버금간다. 보르헤스는 1938년 어두운 계단에서 사고로 머리를 다쳐, 이로 인한 패혈증 때문에 큰 고통을 겪었다. 단편 〈피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라는 단편은 자신의 맑은 정신과 판단력을 잃었다는 두려움을 달래기 위해 쓴 작품이다. 1950년대 중반 보르헤스는 그의 아버지처럼 시력 약화 증세로 거의 실명 상태가 되었다. 보르헤스는 홀어머니와 함께 살았는데, 어머니는 그에게 글도 읽어주고 창작 활동도 도와주었다. 보르헤스는 예순여섯 살에 어릴 적 친구였던 여성과 처음으로 결혼하지만 3년 만에 헤어졌다. 그리고 숨지기 몇 주 전에 자신의 제자이자 비서인 여성과 재혼했다. 보르헤스는 앞을 못 보면서도 강의를 하러 세계 곳곳을 여행했다. 또 20세기의 매우 영향력 있는 국제적 명성도 날로 높아만 갔다. 보르헤스의 업적은 일관성과 가능성에 의해 어색해진 소설의 편협한 박진감을, 환상이 섞인 보다 광범위한 마음의 작용으로 대체시키는 능력에서 비롯된다. 상상력은 납득할 수 없는 것에도 형태를 만들어준다. 이야기꾼의 책략을 흔쾌히 받아들인 보르헤스는 하나의 일관된 이중 초점을 유지해 가면서, 언어와 독서에서 세계를 반영할 때 나타나는 역설과 함께 경험도 반영한다.   주요 작품   《불한당들의 세계사》Historia universal de la infamia, 1935년 《픽션들》Ficciones, 1944년 《알렙》El Aleph, 1949년 《칼잡이들의 이야기》El informe de Brodie, 1970년 《셰익스피어의 기억》Veinticinco de Agosto de 1983 y otros cuentos, 1983년
256    "내 시가 독자를 감동시키지 못한다면 죽어도 쉬지 않으리라" 댓글:  조회:2421  추천:0  2017-02-19
손광성의 문학강연> 우리가 알아야할 수필정석 13가지       정석(定石)이란 말은 바둑의 용어이다. 오랜 세월동안 공격과 수비를 통해 얻은 사활(死活)의 기본기(基本技) 또는 그 원리를 말한다. 따라서 정석에 대한 연구 없이는 기력의 향상을 기대할 수 없다. 아무리 바둑을 열심히 두어도 노상 7급에 머물고 만다는 이야기다. 바둑만이 아니다. 인간이 창안한 모든 문화의 모든 분야에는 그 나름의 정석이 있다. 수학에도 정석이 있고 정치에도 정석이 있으며 우리가 잘 쓰는 “知彼知己면 百戰百勝”이란 것을 알고 보면 손자병법의 여러 정석 중 하나이다.   수필에도 물론 정석이 있다. 좋은 수필을 쓰기위한 오랜 노력의 결과로 얻어진 최선의 방법 또는 기본원리이다. 이것을 모르고 수필을 쓴다면 7급 수필 밖에 못 쓸지도 모른다. 수필 정석도 종류가 많다. 그러나 그 모두를 설명할 수는 없다. 이 글에서는 그 가운데 몇 가지만 추려서 말하고자 한다. 익혀두면 '좋은 수필'을 쓰는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첫째,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    -대상에 지속적 사고의 필요성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는 속담은 좋은 수필 쓰기에도 해당된다. 어떤 제재에 대해서 글을 쓰려고 할 때 우선 그 제재 즉 대상에 대해서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거듭 사고하라는 이야기이다. 마치 스님들이 화두(話頭)를 붙들고 늘어지듯이, 이와 같은 지속적이고 집중적인 사고는 언젠가 대상으로 하여금 스스로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 즉 자기 본질을 당신에게 털어놓게 만들 것이다. 그때 비로소 그것을 글로 쓰라. 그렇지 않고 피상적인 관찰이나 상식수준의 사고를 통해서 얻은 결과를 글로 쓴다면 그 수필 또한 피상적이고 상식수준을 넘지 못할 것이다.   대상의 본질에 이르는 것은 여러 갈래이다. 그 중 하나는 대상을 가장 가까운 이웃 대상들과 비교 대조하는 방법이다. 비교는 대상들의 공통점을 밝히는데 효과적이고 대조는 대상의 특성과 본질을 밝히는데 효과적이다. 따라서 비교 대조는 표현기법이기 이전에 효과적인 사고의 방법이라는 것을 알아두자. 나도향의 그믐달의 본질에 도달하기 위해서 가장 가까운 이웃대상인 보름달과 초승달을 가져다 비교하고 대조했다. 그 결과 그는 그믐달의 본질의 본질에 도달했고 그래서 한국현대수필문학사에 길이 남을 이란 아름다운 수필 한편을 쓸 수 있었던 것이다.        둘째, 적정한 거리를 확보하라     -대상의 심리적 거리 조정의 필요성 대상의 본질을 파악하는데 집중적인 사고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대상을 어느 지점에 보느냐 하는 대상과의 거리 또한 중요하다. 여기서 거리란 심리적 거리를 말한다. 심리적 거리를 너무 가까이 잡으면 대상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가까이 잡는다는 것은 너무 감정에 치우친다는 의미도 된다. 그렇게 되면 자칫 감상에 빠지기 쉽다. 심리적 거리를 너무 멀리 잡으면 대상의 세부는 보이지 않고 전체만 보인다. 너무 머리로만 대상을 보지 말라는 뜻이다. 대상의 윤곽만 그린 그림에서 무슨 감동을 느낄 수 있겠는가. 수필도 마찬가지다. 차디찬 수필이 될 뿐이다.   알맞은 거리란 대상의 본질이 가장 잘 보이는 거리이다. 그 지점에서 대상을 봤을 때 대상의 전모(全貌) 뿐만 아니라 세부까지 보인다. 우리가 흔히 ‘수필을 관조의 문학’ 이라 할 때 이 관조가 우리가 대상을 보기에 가장 알맞은 거리다. 관조(觀照)란 감정에 치우치지 않은 안정된 마음의 상태로 사물을 본다는 뜻이다.   관조라는 말을 달리 명경지수(明鏡止水)의 마음으로 본다는 말로 바꿀 수도 있다. 명경이란 때가 끼지 않은 맑은 거울이고, 지수란 정지된 물을 말한다. 깨끗한 거울에는 얼굴이 제대로 비치지만 때가 낀 거울에는 제대로 비치지 않는다. 잔잔하게 멈춰있는 물에는 나무 그림자가 제대로 비치지만 여울목에서는 그림자가 제대로 비치지 않는다. 따라서 마음을 맑은 거울 같이 하고, 잔잔한 물 같이 했을 때 대상의 본질이 제대로 보인다는 이야기다. 이것이 명경지수의 마음으로 대상을 보는 것이다. 즉 관조다. 대상을 제대로 파악하기에 가장 알맞은 거리다. 편견이나 선입견은 거울에 낀 때와 같고 감정에 치우친 마음은 여울목과 같다. 사물의 본질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그래서 적정한 심리적 거리의 확보가 필요한 것이다.   심리적 거리는 시간적 거리와 같은 효과를 내기도한다. 어젯밤에 겪은 일을 흥분된 상태에서 썼다면 그것을 그대로 잡지사에 보내지 말라. 일주일 또는 한 달, 때로는 일 년을 묵혔다가 다시 꺼내보라. 얼마나 감정에 치졸한 수필이 되고 말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즉 시간적인 거리가 사물을 제대로 보게 한 것이다.        셋째, 낯설게 보고 낯설게 말하라.    -개성적인 시각과 개성적인 표현의 중요성   개성적 시각으로 대상을 보고 그것을 개성적 언어로 표현하라는 이야기이다. 관습적이거나 사회통념으로 대상을 보고 그것을 쓰면 진부한 글이 되기 때문이다. 문학의 본질 중 하나는 참신성에 있다. 참신하고 개성적인 글이 되기 위해서는 나만의 시각으로 봐야하고 나만의 언어로 표현해야 한다. 이것이 쉬클로프스키가 말한 ‘낯설게 보기’ 와 ‘낯설게 하기’다.   개성적 시각에는, 현미경으로 보는 것과 같은 미시적인 시각도 있고, 망원경으로 보는 거시적인 시각도 있으며, 대상을 비틀어보는 풍자적인 시각도 있고, 뒤집어 보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예를 들어 대나무를 제재로 수필을 쓸 때 아직도 지조니 절개니 한다면 그 글은 개성이 결여된, 진부한 수필이 되고 만다. 대나무라는 대상 즉 텍스트를 자기만의 시각으로 남달리 봐야 한다. 그리고 그 내용을 남다른 언어로 표현해야한다. 필자는 ‘대나무’라는 텍스트에서 ‘게릴라’를 읽었다. 집을 개축하면서 마당에 대나무를 심었다. 2년째 되는 해 오월 어느 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나가 보니 꽃밭은 물론 잔디밭에도 여기 불쑥 저기 불쑥 온통 녀석들이 돋아나 있었다. 땅 밑으로 굴을 뚫고 기어와서는 밤사이 마당을 접수해 버리고 만 것이 분명했다. 그대로 두면 얼마 못 있어 마당은 온통 대나무 밭이 되고 말 것 같았다. 나는 삽을 들고 나섰다. 이것이 내가 낯설게 본 대나무이고 낯설게 본 것을 낯설게 표현한 글이다. 어디에도 지조니 절개니 하는 진부한 시각은 나타나 있지 않다.        넷째, 하나의 접시에는 한 가지 음식만 담아라    -주제 통일의 필요성   뷔페식당에 가면 우리는 한 접시에 여러 가지 음식을 담아서 먹는다. 그런데 이런 음식을 먹고 나면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물론 각 음식의 맛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만다. 수필을 쓰는 일도 마찬가지다. 한 편의 글에는 하나의 주제만 담아야한다. 두 개 이상의 주제를 담으면 글에 통일성이 결여되어 필자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독자는 혼란에 빠지고 만다. 통일성이 없는 글은 한 나라에 두 명 이상의 왕이 있는 것과 같다.        다섯째, 몸통부터 잡아라.     -본문부터 쓰라.   우리가 수필을 쓸 때 서두 다섯줄만 쓰면 반은 완성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을 한다. 그만큼 서두쓰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서두를 잘못 잡으면 길을 잘못 잡은 경우처럼 애초의 의도와는 달리 엉뚱한 방향으로 빠져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두부터 쓰지 말고 본문부터 쓰고 난 다음, 거기에 맞는 서두를 가져오면 된다. 결미는 본문을 요약하되 은유나 상징을 동원하여 여운이 있는 문장으로 끝맺는 것이 좋다.       여섯째, 메인 디시는 코스의 3분의 2 시점에 나오도록 하라    -서사수필에서 감동의 극대화를 위한 클라이맥스의 위치 선정   야구경기가 가장 극적인 감동을 주는 경우는 9회 말에 반전이 일어날 때다. 한 편의 서사수필도 마찬가지다. 모든 사항이나 사건은 클라이맥스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사항이나 사건의 배열은 점층적으로 배열하되. 주제가 가장 잘 드러나는 클라이맥스는 글의 후반부에 두어야 효과적이다. 클라이맥스를 앞에 놓으면 나머지 부분을 읽는 것 자체가 고역이 되기 때문이다. 잔치는 이미 끝났는데 할 일없이 어정거리고 있는 것과 같다. 한 사람의 일생도 마찬가지다. 청년기에 성공한 것보다 점진적으로 상승하다가 장년기나 노년기에 정점에 도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곱째, 말을 버려라     -수식어의 절제.   이 말은 필요 없는 수식어를 늘어놓거나, 같은 말을 중언부언하거나, 사족을 다는 것을 삼가라는 뜻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처음 글을 쓰는 사람들은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잘 나타내기 위하여 수식어를 많이 동원해야 하는 것으로 오해한다.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하나의 피수식어에 둘 이상의 수식어가 오면 오히려 묘사하고자 하는 대상의 이미지가 흐려지기 쉽다. 마치 그림을 그릴 때 세 가지 이상의 물감을 섞으면 탁한 구정물이 되는 것 같은 이치다. 가급적 수식어를 절제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여덟째, 엄살떨지 말라    -과장의 억제 .  엄살을 떤다는 말은 조금 아픈 것을 많이 아픈 것처럼 과장하는 것을 말한다. 글쓴이에 있어서도 이 말은 그대로 적용된다. 조금 느낀 것을 많이 느낀 것처럼, 조금 아는 것을 많이 아는 것처럼 과장해서 표현하는 것은 진정성이 떨어진다. 그밖에 가급적 ‘최상급’을 삼가야 한다, 예를 들면, ‘가장, 오직, 다만, 특별히…….’ 와 같은 부사를 꼭 필요할 때 외에는 쓰지 않는 것이 좋다.       아홉째, 자기 수필을 유치하게 만들고 싶은가, 그러면 의성어 의태어를 많이 쓰라    -의성어와 의태어 절제의 필요성.   처음 글을 쓰는 사람들은 우리말의 특징 중의 하나인 의성어와 의태어를 남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대롱대롱, 철썩철썩, 살랑살랑’ 과 같은 상징어를 많이 쓰면 문장이 유치해진다. 왜냐 하면 아이들이 많이 쓰는 동요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꼭 필요할 때 아니면 삼가는 것이 좋다. 당신의 수필을 유치하게 만들고 싶은가? 그러면 의성어 의태어를 가급적 많이 쓰라.       열째, 제목은 그 글 속에 있다    -제목 달기 요령.   글쓰기 가운데 어려운 것이 제목 달기이다. 제목 달기가 어려워지는 경우는 대개 한 편의 글 속에 주제가 둘 이상일 때이다. 그럴 때는 우선 글의 주제부터 하나로 통일시킬 일이다. 그것이 이루어 졌다면 제목은 그 글 속에서 찾으면 된다. 글을 찬찬히 읽다 보면 가장 매력적인 구절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주제를 암시하면서도 참신하여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단어나 구절을 찾으면 된다. 제목은 첫째, 주제를 대표해야 한다. 둘째, 참신해야 한다. 셋째, 구체적이어야 한다. ‘우정’보다 ‘남녀 간의 우정’ 이 낫고, ‘바다’ 보다는 ‘겨울바다’가 낫고, 겨울바다보다는 ‘겨울 감포 앞바다’ 가 낫다.       열한 번째, 시제를 지켜라   -시제 일치의 중요성.   영어나 외국어 학습 때는 시제를 엄격히 지키면서 우리말로 글을 쓸 때는 시제를 무시한다. 이것은 초보자에서부터 소위 대가라고 자처하는 사람 가운데도 흔한 경우다. 심하면 우리말에 시제가 있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이런 현상은 수필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말 시제는 서구어처럼 복잡하지 않다. 발화시(發話時) 즉 말을 하는 순간을 기준으로 그보다 이전에 일어난 사건은 과거, 발화 시에 일어난 사건은 현재, 발화시보다 나중에 일어날 사건을 미래라고 한다. 그밖에 동작상(動作相)이란 것이 있는데, 동사나 형용사의 어간에 ‘~고’를 붙인 다음 ‘있다’를 연결시켜, ‘먹고 있다’ 로 하면 진행이 되고, 동사나 형용사의 어간에 ‘~어’를 붙인 다음 ‘있다’를 연결시키면 완료형이 된다.   수필가의 9할이 현재로 나가다가 아무 이유 없이 과거로 바꾸고, 다시 얼마쯤 과거로 나가다 다시 현재로 바꾼다. 왜 그렇게 멋대로 바꾸느냐고 물으면 같은 것이 반복되어 그런다고 한다. 문법도 법이다. 심심하거나 따분하다고 해서 멋대로 어겨도 좋은 법은 없다. 시제는 필연성에 의해 바뀌어야 한다. 시제의 혼란은 글의 일관성을 해칠 뿐만 아니라 사건의 경과를 파악하는데 어려움을 준다. 발화시에 일어난 사건 외에 다음과 같은 경우는 현재 시제를 쓴다.   (1) 영원한 진리 : 지구가 돈다.   (2) 습관 : 그는 가끔 그 찻집에 들르곤 한다.   (3) 성격 : 그는 매우 정직하다.(과거에는 정직했지만 지금은 정직하지 않을 경우는 과거로 쓴다.)     (4) 현장감을 주기 위한 경우의 예     (a) 우리는 투우장으로 갔다. 스탠드에는 이미 많은 관중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빈 좌석을 찾아가 앉았다.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고 바로 경기가 시작되었다.    (b) 뿔이 잘생긴 검은 소 한 마리가 투우사를 향해 돌진한다. 투우사는 빨간 망토로 소를 유인한 다음 빗나가는 소의 잔등을 향해 시퍼런 칼을 꽂는다. 소는 콧김을 뿜으며 마치 실수를 만회하려는 듯이 다시 투우사를 향해 돌진한다. 투우사는 이번에도 날렵하게 비끼면서 비정하기만큼 침착하게 성난 소의 등에 칼을 찔러 넣는다. 이렇게 몇 번인가 불행한 소는 공격을 시도 했지만 결국 소는 쓰러지고 만다. 전신에 피가 낭자하다. 일방적으로 끝난 경기, 그런데도 흥분한 관중들이 일어서 환호성을 지르는 바람에 경기장의 공기는 순식간에 터질 듯이 팽창한다.     (c) 드디어 소는 끌려 나갔다. 투우사는 관중을 향해 모자를 벗고 허리를 굽혀 정중히 인사했다. 그리고는 자랑스럽게 투우장을 빠져나갔다. 나는 부끄럽게 투우장을 빠져나왔다. 그날 오후 내내 좀 우울했다. (a), (b), (c)에 일어난 사건은 모두 발화시(이 글을 쓰는 순간)이전에 일어난 일이므로 모두 과거로 써야 한다. 그런데 (b)는 시제가 현재이다. (b)만을 현재로 한 것은 투우장면에 현장감을 주기 위해서다. 이런 문학적 효과를 위해서는 과거의 사건도 현재 시제로 써야 한다는 것이 필자가 오랜 연구를 통해 얻은 결론이다.       열두 번째, 말하기와 보여주기를 적절히 구사하라    -현장감을 주기 위한 방법.   이것은 특히 서사수필에 해당되는 문제다. 대개의 경우 서사수필을 쓸 때에는 지나간 과거사를 말하기 식 telling으로 기술하기 쉽다. 말하기 식 진술은 독자의 편에서 보면 세부적인 사항이나 사건의 생생한 장면을 떠올릴 수 없다는 결점이 있다. 뿐만 아니라 자기감정에 치우친 나머지 계속 혼자 이야기하기 때문에 독자의 편에서 보면 넋두리를 듣는 기분이 든다. 이런 글을 좋은 글이라 할 수 없다. 어떤 부분은 보여주기 식 showing으로 표현하여 보다 생생한 현장감을 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화법을 사용할 때도 그렇다. 간접화법은 말하기에 해당되고, 직접화법은 보여주기에 해당한다. 따라서 두 인물이 대화한 장면 같은 경우는 간접화법을 사용하지 말고 직접화법을 사용하는 것이 현장감을 준다. 희곡은 왜 모두 현재 시제로 되어 있는지 그 이유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열세 번째, 설익은 음식을 식탁에 올리지 말라    -충분한 퇴고의 필요성   퇴고를 하지 않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적게 하느냐 많이 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퇴고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설익은 음식을 식탁에 올리는 것과 같다. 그렇다고 퇴고를 너무 많이 하는 것도 삼갈 일이다. 생선을 너무 많이 주무르면 신선도가 떨어진다. 퇴고는 하되 ‘이제다’ 싶을 때 손을 뗄 줄 알아야 한다. 피천득은 퇴고를 하지 않는 작가였다. 머릿속에서 미리 철저히 정리한 다음에 썼기 때문이다. 두보는 퇴고를 철저히 한 시인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 시가 독자를 감동시키지 못한다면 죽어도 쉬지 않으리라.”   이 충고를 좌우명으로 삼아도 좋을 것이다. 최인훈은 그의 대표작 을 일곱 번 출판했는데, 그때마다 퇴고했다. 성실한 퇴고는 독자에 대한 의무인 동시에 자기 작품에 대한 애정이다.  수필의 정석이 어찌 열세 가지뿐이겠는가. 하지만 이 정도만 지켜도 크게 부끄러운 글은 발표하지 않으리라 믿어 여기에서 멈추고자 한다. 각 항목에 대해서 더 알고 싶은 분이나 그 외에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분은 필자의 《손광성의 수필쓰기》를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출처 :수필부산문학회 
255    시작은 탈언어화로부터 시작하라... 댓글:  조회:2539  추천:0  2017-02-19
낯설음의 언어  언어의 경제학 : 시나 산문이나 문학이나 비문학이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동일하지만 그 중에서도 시가 시일 수 있는 이유는 언어를 보다 정서적인 측면에서 사용하거나 상상적인 세계를 추구하거나 사전적이고 일상적인 의미를 벗어나 함축적이고 내포적인 2차적인 의미의 확대를 꾀하는 것이 시어의 독특한 용법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러시아에서 언어와 시를 연구하던 일련의 학자들은 언어의 근본적인 형식인 운율과 구조를 연구하면서 문학의 문학스러움이나 시의 시다운 근본적 특징이 바로 언어의 특이한 용법에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들은 문학의 내용, 즉 이념성을 강조하던 시기에 문학성을 언어형식에서 찾고자 했기 때문에 형식주의라고 했는데 러시아 형식주의자들로 대표적 이론가는 야콥슨, 쉬클로프스키며 프라그 학파의 무카로브스키, 코펜하겐의 엘름슬레브 미국의 웰렉등으로 확산되었다.  이들의 기본 입장은 문학성의 발견에 있었으며 그 해결책은 전통적인 대답이나 임시변통적인 방식이 아니라 근본적인 문학성의 본질과 소재에 대한 해명이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따라서 심리학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과 함께 모든 외재적 이론들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낭만주의나 상징주의에서 즐겨 쓰는 영감이나 상상력 또는 전재등에 관한 모든 공론들도 일소에 붙였다 독특한 문학성의 소재지를 작가나 독자의 정신 속에서가 아니라 작품 그 자채내에서 찾아야만 했던 것이다.  이들은 현대시학에서 금과옥조로 여기고 있는 이미지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시의 경우에 있어 비유, 리듬, 독특한 구문, 어려운 낱말등은 그러한 정신의 절약을 돕기는커녕 오히려 정신의 노력을 더욱 강요할 뿐이라고 하였다. 그들은 산문과 다른 시의 변별성을 단순한 이미지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그것이 사용되는 용법에서 찾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것은 이미지를 전적으로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산문의 이미지와 시의 이미지가 전혀 다름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이들이 말하는 시어의 변별성, 즉 시를 시답게 하는 근본적인 어법은 무엇인가. 그것을 그들은 낯설게 만들기와 전경화로 설명한다.  낯익음과 낯설음  쉬클로프스키의 표현을 비리면 시의 문학성은 시어의 낯설음의 구조에 있다는 것이다. 친숙한 의미의 이미지가 아니라 생소한 충격을 주는 이미지, 뭔가 새롭게 생각하고 느끼도록 활력을 주는 언어의 창조가 바로 낯설음이며 산문과 구별되는 시어의 정수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존의 시어나 산문적인 언어들은 바로 낯설음의 언어가 아니라 낯익음의 언어이고 낯익음의 이미지였고 낯익음의 형식이었다는 말이된다. 사실 고전주의나 낭만주의에서 시에 대한 인식이나 시어의 기능은 효과적인 전달이나 경제적인 표현이라는 목적에서 설명되었다. 포프는 시의 재치는 늘 생각하면서도 그처럼 잘 표현할 수 없는 것, 즉 어려운 것을 적절히 표현하는 것이라 하였고 워즈워드는 낯선 세계를 인간에게 친숙하도록 만드는 기능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쉬클로프스키는 언어는 친숙이야말로 가장 비시적인 것으로 규정한다.  처음 바다를 경험하는 사람은 파도가 신기하지만 바닷가에사는 사람들은 팓오 소리에 익숙해져서 그들은 그것을 신기하게 듣지 않는다. 이런 사실은 일상적인 언어 생활에서도 언어를 친숙한 일상의 것으로 사용할 때는 감동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기계적으로 듣는다. 산문의 언어들이 그렇다. 늘 사용하는 말은 감동이 없다. 처음엔 감동하지만 차츰 만성이 되어 버린다. 그리하여 낯익은 사람끼리는 서로 바라보지만 우리는 더 이상 서로를 주의깊게 쳐다보지는 않는다.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시들어 버려서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단순한 인정뿐이다 라고 하였다.  친숙화하는 동일한 사물에 대한 우리의 지각이 반복되어 습관화 되었을 때 조성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직각은 자동화되고 감각은 마비되어 낯익은 사람 사이에는 언어를 생략하고 손짓이나 눈짓으로 의사를 교환하는 탈언어화 상태가 된다. 지각적인 인식의 언어가 생략될 때 남는 것은 기호뿐이다.  인간과 사물, 인간과 인간 사이에 기호만 존재하게 될 때 그것은 시의 세계가 아니라 수학이고 과학이고 산문이다. 추상적인 개념과 습관적이고 기계적인 생활만 존재하는 삶이란 이미 창조적 인간이 아니고 기계나 동물이나 다를 바 없는 비인간화의 무의미한 세계일 뿐이다.  (1) 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 달  어디어디 떳나  남산 위에 떳지  (2) 당신은 짐승, 별, 내손가락 끝  뜨겁게 타오르는 정적  외로운 사람들이 따모으는 꽃씨  외로운 사람들의 죽음  순간과 머나먼 곳.  이방(異邦)의 말이 고요하게 시작됩니다  당신의 살갗 및으로 대지(大地)는 흐릅니다  당신이 나타나면 한 개의 물고기 비늘처럼  무지개 그으며 내가 떨어질 테지만  -이성복「당신은 짐승, 별」  인용한 (1)의 동요에서 ‘쟁반같이 둥근 달’이란 말은 수사학적으로 보면 직유법의 구절이라고 하겠지만 쟁반이나 둥근이란 말은 너무나 익숙한 말이며 아예 복합어로 인정될 만큼 굳어버린 일상적인 말이다. 여기서 일상적이니 익숙하니 하는 말은 너무나 평범하게 사용되기 때문에 무의식 중에 나오는 자동화의 언어란 말이다. 남산이란 말도 그렇다. 이 말은 서울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 사는 고장이면 어디에나 남산은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러한 문장은 어린이들에게 교육적 가치는 있겠지만 쟁반이나 남산이란 언어가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과 감동을 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2)의 당신에 대한 표현이 구절마다 새롭고 낯설다. 당신은 짐승. 별, 손가락 끝, 정적, 꽃씨, 죽음, 머나먼 곳 등으로 전혀 상식적인 상상을 비약하여 충격을 준다.  따라서 예술가가 대항하고 투쟁해야할 것은 바로 이 일상과 습관과 안일과 매너리즘의 권태다. 대상을 습관적인 문맥에서 뜯어내고 본질적으로 다른 개념들과 함께 묶음으로써 시인은 상투적 표현과 거기에 따른 기계적 반응에 치명적인 일격을 가해서 대상들의 감각적인 결을 고양된 상태에서 인식하도록 해야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시의 언어는 바로 일상적인 낯익음의 용법을 배제하고 보다 낯선 용법을 창조하여 지각의 신선함을 회복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시적 자유이고 해방이다.  출저 : 시창작원리 홍문표 창조문학사 (p.308~311)  시 창작의 여러 기술들이 올라와 있지만 가장 중요한 낯설음에 대한 이론이 없어서 예의 없이 가지고 있는 자료를 빌려 올립니다. 미처 올리지 못한 전경과 후경, 그밖에 낯설음의 정도가 있는데 이것은 시간이 허락하는대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공부 열심히 하시고 좋은 글 많이 쓰시길 바랍니다. 아울러 저도 작품 많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문학을 꿈꾸는 사람
낯설게 하기란 말을 처음 제시한 사람은 러시아의 쉬클로프스키라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러시아 형식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로 문학과 다른 학문(즉 사회학, 철학, 심리학, 역사 등) 사이를 구분해주는 특징이 무엇인가 연구하던 중 그 차이는 문학과 다른 학문들이 언어를 다루는 방식에서 찾아야 된다는 것을 발견해내게 된다. 즉 문학을 문학답게 하고 다른 학문 영역과 문학연구 영역을 변별시켜주는 특징을 문학성이라고 할 때 그 문학성은 문학이 사용하는 언어적 특질(말하는 방식)과 관련되며 그것은 바로 낯설게 하기에 의해 특징지어진다고 했다.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흔히 지나치게 형식에만 집착한다는 점에서 다른 비평유파로부터 형식주의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 말하는 형식이라는 개념을 오해한데서 비롯된다. 일반적으로 형식이라는 말은 내용이라는 말과 대립쌍으로 사용된다. 그런 개념으로 사용될 때 내용은 알맹이, 형식은 그것을 담는 그릇으로 공간적인 개념이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에게 있어서 문학은 내용과 형식으로 이분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즉 그들은 문학 텍스트의 내용은 형식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들어 건축물을 생각할 때 건물은 형식이고 그 내 내용은 건축가의 아이디어 내지는 설계라고 할 수 있지만 건축가의 아니디어는 건물의 어느 곳에 내장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건물의 부분 부분에 실현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유기체를 유기체로 만들어주는 생명을 내용이라고 할 때 그 생명은 유기체의 특정 부분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부분 부분에 실현되어 분리시킬 수 없는 것이다.  문학 텍스트의 내용, 형식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내용과 형식은 서로 분리될 수 없고 형식의 새로움은 지금까지 기계적으로 지각되었던 바로 그 내용의 새로움, 내용의 생생한 전달, 즉 핍진성을 목표로 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문학적 형식을 통한 지각이 독자들로 하여금 인생과 경험에 대한 감각을 새롭게 해준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들의 관심은 주로 문학적 형식에 있었다. 야콥슨은 문학연구의 대상은 작품이 아니라 문학을 문학답게 만들어주는 특징, 즉 문학성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이 텍스트를 문학작품으로 만들어주는 기법, 즉 구성원리에 관심을 가졌던 것도 그 때문이다.  낯설게 하기는 시와 소설 등 각 장르별로 서로 다른 방식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그것을 문학으로 만들어주는 장르적 관습이 다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시에서는 시어와 일상언어의 대립에 의해, 소설에서는 이야기와 플롯 사이의 대립에 의해 그것은 구분된다. 시에서는 일상언어가 갖지 않거나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리듬, 비유, 역설 등 규칙을 사용하여 일상언어와 다른 결합규칙을 드러내며, 소설에서는 사건을 있는 그대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플롯을 통해 낯설게 하고 주의를 환기시킨다. 그것은 형식에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자동화된 지각을 방해하고 사물과 세계를 생생하게 지각하도록 만들기 위한 문학적 장치들이다.  슈클로프스키를 중심으로 한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언어의 기능 가운데서 의사소통을 목적으로 하는 일상어에서는 음이 의미의 부산물이지만 예술언어에서는 음이 독립적 가치를 갖는다는 것이다. 시에서 음, 리듬, 각운 등의 형식적 요소들은 그 자체의 목적을 가지고 존재하기에 의미가 오히려 형식의 부산물이 된다. 예술 언어란 일상어와 반대로 의사소통을 방해하고 늦추고 힘들게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선 문학이 왜 문학인가를 밝히는 작업의 첫 단계로 일상어와 시어를 구분하는 것에서부터 이론을 펴나가기 시작한다. 시어는 일상어와 달리 의사소통을 늦추고 방해하는 것이어서 그 형식적인 요소가 곧 독립가치를 지닌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일상어와 시어의 구별의 연장이 바로 스토리와 플롯의 구별이다. 일상어가 의사소통을 목적으로 한 것이듯 스토리는 작품의 내용이 이해하기 쉽게 전달되는 것이다. 따라서 시간 순서로 차근차근 요약된다. 이에 비하여 플롯은 의사소통을 늦추고 방해하기 위해 재배열되고 교란된 작품의 형식이다. 전자가 무엇이 전달되느냐에 대한 대답이라면 후자는 그것이 어떻게 전달되는가에 대한 대답이다. 작가는 무엇에 관해 쓰겠다는 자료를 갖는다. 그리고 이것을 미학적인 구성을 통해 독자 앞에 내놓는다. 독자는 이 표층구조를 경험하고 나름대로 의미를 산출해낸다. 이 세 가지 과정에서 독자가 경험하는 표층구조가 플롯이고 미학성을 좌우하는 형식이다. 다시 말하면 플롯 혹은 형식이란 작가가 의사소통을 늦추고 방해하기 위해 스토리를 일부러 낯설게 재배열한 것이다. 이것이 '낯설게 하기'의 근원이다.  1914년 슈클로프스키는 '낯설게 하기'의 의미를 이렇게 밝힌다.  우리는 흔한 것은 경험하지 않는다. 그걸 살피지도 않는다. 그저 받아들여 버린다. 우리는 살고 있는 방의 벽들을 보지 않는다. 친숙한 언어로 쓰인 글에서 오자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그 친숙한 언어를 '받아들이지' 말고 읽어보라고 스스로에게 강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시적'인 감지와 '미학적'인 감지를 일반적으로 정의 내린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으리라. '미학적' 감지란 우리가 형식을 경험하는 감지라고. 반드시 형식만은 아니겠지만 형식인 것만은 틀림없다고.  -----------------------------------------------------------------  소녀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소년은 혼잣속으로 소녀가 이사를 간다는 말을 수없이 되뇌어 보았다. 무어 그리 안타까을 것도 없었다. 그렇건만 소년은 지금 자기가 씹고 있는 대추알의 단맛을 모르고 있었다. 이 날 밤, 소년은 몰래 덕쇠 할아버지네 호두 밭으로 갔다. 낮에 봐 두었던 나무로 올라갔다. 그리고 봐 두었던 가지를 향해 작대기를 내리쳤다. 호두송이 떨어지는 소리가 별나게 크게 들렸다. 가슴이 섬뜩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굵은 호두야 많이 떨어져라, 많이 떨어져라, 저도 모를 힘에 이끌려 마구 작대기를 내려치는 것이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열이틀 달이 지우는 그늘만 골라 짚었다. 그늘의 고마움을 처음 느꼈다. 불룩한 주머니를 어루만졌다. 호두송이를 맨손으로 까다가는 옴이 오르기 쉽다는 말 같은 건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저 근동에서 제일가는 이 덕쇠 할아버지네 호두를 어서 소녀에게 맛보여야 한다는 생각만이 앞섰다. (황순원「소나기」중에서)  소년의 행동을 따라가며 독자는 그 애의 애틋한 그리움을 읽게된다. '그리움'이라는 혹은 '좋아한다'는 진부하다시피 익숙한 언어를 낯설게 만들어 독자로 하여금 경험케 한 것이다. (권택영, 소설을 어떻게 볼 것인가, 동서문학사, 1991>에서)     
253    시는 언어의 건축물이다... 댓글:  조회:2682  추천:2  2017-02-19
나도 시인이 될 수 있다 정영자(문학평론가, 신라대 국문과 교수)  1. 詩는 무엇인가  ① 언어로 씌어진 문학의 장르.(정서와 운율적 언어를 통하여 인생을 표현)  ② 기쁨이나 슬픔, 사랑과 같은 감정을 그 긴장된 상태에서 직관적으로 파악하여 짧은 진술을 통해 표현한 단형의 운율적인 글. 그러나 시는 정보 전달 그 자체에 목적이 있지 않다.  ③ 시는 사실의 언급, 정보 전달에 따르는 언어의 정확성, 질서화, 논리화를 배척하고 정서의 환기에서 기인되는 애매성, 직관성, 비 논리성을 추구. → 그것은 상상력에 의존.  따라서 시는 감정의 환기 및 상상력의 깊이 있는 활용에 그 본질이 있다. 그것은 시의 언어가 이미지, 상상, 은유, 신화, 역설과 같은 방법에 의해서 형상화된다는 것이다.  ④ 시는 감정의 과잉, 감상의 표출로만 쓰여지지 않는다. 감정은 가치 있고 숭고한 방향으로,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심미적 효과를 이루는 방향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종교적, 도덕적 차원의 비판, 적절한 지성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어느 정도 감정을 절제하고 객관화시킨다 하더라도 그것이 논리적, 지적인 언어로써가 아니라 은유 상징 등의 언어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은 존중되어야 한다.  ⑤ 훌륭한 시는 단일한 감정이나 긍정적 감정만으로 쓰여져서는 안 된다. 그것은 복합적 감정(때로는 절대적일 수도 있다.)으로 구성된다.  사랑과 미움, 공포와의 연민, 즐거움과 슬픔, 고독과 충만 등의 감정이 갈등과 긴장 속에서 하나의 통합된 세계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⑥ 영혼을 스쳐 가는 감정의 순간적 표현, 주관성의 우세, 리듬과 비유어의 적극적인 선택, 체험의 압축적, 집중적 표현, 시인과 대상간의 순간적 융합과 감정의 내면화. ― 이것이 시 장르의 본질이다.  운율적인 언어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개인적 체험의 순간적인 극화가 시이다. 따라서 시는 논증적인 진실이나 주지적인 개념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문학이며 개입의 소설이나 희곡에 비해 역사성, 사회성의 직접적인 소지가 적음  *운율적인 언어  일반적, 시적 언어의 차이는 일상어의 일상적, 관습적 표현을 탈피하여 낯설게 제시됨.  - 러시아 형식주의자 쉬클로프스키  빈 가지에 바구니  걸어놓고  내 소녀  어디 갔느뇨?  오일도  하늘 같은 푸르름  강물 같은 가득함  - 정 영자 < 친구에게 9 > 전문  ⑦ 시는 언제나 언어의 경제적 표현을 겨냥한다. 소설의 본질은 사실성에 있다면 시의 본질은 상징성에 있다.  어떤 정황을 산문으로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설명하지만 시는 그 감흥을 명쾌하게 요약·응축한다. 시는 "필요한 최소의 언어"에 만족한다. 시는 수사적 장치가 필요하고, 그럴수록 생동감, 역동적인 표현이 된다. 시의 역동성은 언어의 경제성에서 언어 진다. "생략과 암시"  ⑧ 개인사적 문제에서 가장 민족적인 것으로 가장 향토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  한용운의 88편은 님에게 바치는 연작시이다. 그러나 개인은 물론이지만 민족에게로 확산되고 종교적 절대자에게까지 심화됨으로 그의 시는 우리 80년 한국현대시 역사상 최고봉의 시로 남는다.  미당 서정주의 자화상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  빛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트린  병든 수캐 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애비는 종 → 조국이 일제에 예속 당했고 개인의 파란만장한 생애 → 험난한 우리민족의 역사  개인 민족  김수영의   풀이 눕는다.  ⑨ 사상의 정서화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 신경림의 에서  현실에서 누리지 못하는 자유를 누리라는 얘기.    ⑩ 시는 객관적, 과학적인 논리로는 증명하기 어려운 일련의 진술들로 이루어지며 그 진술들이 어울려 구축하는 독특한 형식과 스타일을 지니고 있다.  밤마다 휘황한 불빛을 보며  오랜만에  아들과 단 둘이 앉아  애플쿨러를 마신다.  꼭꼭  마음 닫아걸어 공부로 시간 보낸 아이,  혼자서 가을 설악을 만나고 왔다고 한다.  아들이 가져온  시월의 불타는 단풍을 만나며  세월 속에  잔잔히 피어오르는  어머니를 부른다.  살아가면서  때때로 깨달아 가는  이승의 감사로움,  바위를 씻기는 바닷물에  눈빛 던지고  레모네이드 한 잔에  싱그러운 젊음이 녹아  지구 끝  한 자리에  아들과 더불어  가을이 익고 있다.  - 정 영자 전문  "자기표현"의 진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실성"이다. 성실성은, 시인 개인의 비전이나 마음의 상태에 대한 '진실성'이다. 모방론에서는 대상의 진실성이 가치기준이지만 표현론에서는 예술가 자신의 진실성이 그 기준이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거시 자연스러운 것이며, 그것이 성실한 것이며, 순수한 표현인 것이다.  시는 ① 예술적 장인 의식으로 쓰여진 시  ( 예술적 기교와 언어 건축으로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것을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실적 삶 의 진실이나 체험이 배제된 장인의식은 생명 없는 테드마스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피가 돌지 않는 납 인형의 아름다움이다.)  ② 체험적 진실을 표출하는데 관심을 둔 시.  ( 언어적 신화적 공간이 창출해 내는 아름다움에 무관심한 현실적 체험은 예술이전의 영역이다. 생활 체 험에서 부딪친 감동, 바로 그것을 시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 생활문학의 새 지평)  ①,②의 극단에만 관심을 추구하는 시를 읽고 있으면 아쉬운 감을 가진다.  솔직하지 못한 시는 시가 본질적으로 지녀야 되는 애매성이나 암시성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사기성을 말한다.  예술적 장인 의식을 지향하는 시는 대부분 터무니없는 난해 말을 늘어놓는다. 뒤틀고, 조작하고, 비비꼬와 무슨말인지 모르도록 의식적으로 언어를 확대한다.  이런 시일수록 실험 시, 이상의 후예, 무의식의 표현이라 표방한다.  독자를 속이고 어리둥절하게 만든 시는 최소한 두 가지의 계산아래 쓰여진 것이라 보여진다.  ① 독자의 호기심을 유발하여 자신의 존재를 알리겠다는 계산.  ( 시류에 영합하여 역사의식의 성찰 없이 독자의 맹목적 감정에 영합. 선동적 언어, 개념이 정리되지 않는 용어, 전단 형식의 어투를 사용, 독자의 환심을 사려는 상투성 보임. →속임수.  ② 시류 비평가를 동원하여 자신의 시에 무언가 문제성이 있다는 식의 호평을 받아 보려는 계산이다.  ( 속임수에 의하여 자신의 존재를 돋보이려 하고, 독자들의 관심을 끌려고 하며, 무단의 화제에 오르려 한다.)  따라서 예술적 장치가 아니더라도 속임 없이 그대로 내보이는 진솔함이 우리시의 성찰과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 필요하다.  Ⅱ. 진솔한 시의 이상(성격)인 것  ① 쉽게 이해되는 것.  ② 소박한 것.  ③ 가술에 호소되는 것.  ④ 감동을 주는 것.  ⑤ 메시지가 담겨있는 것.  ⑥ 단순하면서도 극적 전환을 주는 것.  ⑦ 투명한 이미지도 형상화되는 것.  ⑧ 삶을 통찰케 해주는 것.  ⑨ 오랫동안 머리에 남는 것.  시는 가식 없는 언어로서 가슴에 직접 와 닿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나친 기교의 창작도( 홍윤속의 장식론 비유 ), 뒤틀린 언어도, 전제된 우상에 곁따르는 분장도, 고답적인 자기 현시도, 독자를 혼란시키는 연막도 없는 것  소박한 언어로써 가슴에 우러나오는 진실을 직접 호소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의 生, 자신의 통찰, 자신의 아픔을 그대로 보여주면 좋은 것이다.  이것이 시 창작의 첫 걸음 이다.  Ⅲ. 시의 정의.  「시의 정의의 역사는 오류의 역사」라는 T.S.Elidt의 말과 같이 시에 대하여 정확한 정의를 내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⑴ 기능, 효용면에서 본 것.  시를 인생과 관련시켜, 그 속에서 효용적 기능(" 시를 전달"로 보고 독자에게 끼친 어떤 "효과"를 노리는 것. 독자반응.)을 중시함. 그것은 문학이 교훈적 가치를 가져야 한다는 공리적 문학관을 바탕으로 한다.  공리적, 교훈적 → 공자曰 "시가 3백이면 생각에 사(邪)됨이 없다.  → 로마의 대시인 호라티우스  「 시인의 소원은 가르치는 일, 또는 쾌락을 주는 일, 또는 그 둘을 겸하는 일」  쾌락적, 심리적 → 아리스토텔레스는 시를 인간 행동의 모방이라 보고, 그 모방에서 기쁨이 발생한다고 봄.  → 칸트는 예술 유희설에 입각하여 예술의 미적 쾌락을 주장함.  → 엘리옷은 시를 일종의 이라고 봄.  시를 현실과 인생의 모방(반영, 재현)으로 봄. "있는 그대로의 인생"이 아니라 "있어야 하는 인생"이 모방의 대상이다. 따라서 진실도 일상적 진실이 아니라 "당위적 진실" 또는 이상적 진실이 된다.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 박목월 "나그네"―  →(있어야 하는 당위적 세계의 모방). 역사적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⑵ 형식과 내용 면에서 본 것  주로 19세기 낭만파 시인과 비평가들이 시의 존재이유를 형태 면에서는 음악적 형식, 내용 면에서는 사상과 정서 자체에 두고자함.  시는 넘쳐흐르는 감정의 자연적 발로이다.  시는 운율적 창조이다.  시란 하나의 숭고한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열망이다.  시는 가장 행복한 심성의 최고 열락의 순간을 표현한 기록이다.  ⑶ 창조과정, 방법론에서 본 것.  여기에 치중한 것은 주로 현대의 비평가와 시인들이다. "시는 무엇이냐" 보다 "시는 어떻게 구성되는가?"의 관점이다.  시를 구성하는 두 개의 중요한 원리는 격조와 은유이다.  시는 언어의 건축물이다.  시는 역설과 아이러니의 구성체.  시는 정서의 표출이 아니라 정서로부터의 도피이며 개성의 표현이 아니라 개성으로부터의 도피이다.  시는 응축 활동이며 산문은 분산 활동이다.  시는 상상과 정열의 언어다.  시는 마음이 흘러가는 바를 적은 것이다. 마음 속에 있으면 志라고 하고 말로 표현하면 시가 된다.  시는 마음에서 말하는 것이다.    출처 :초원의빛 시(詩)사랑
252    시작을 낯설게 하기도 하고 낯익게 하기도 하라... 댓글:  조회:2365  추천:0  2017-02-19
수상비율을 높이는방법  @@낯설게 하라  심사위원들이 주로 선호하는 소재가 어떤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 소재들을 사진적으로 어떻게 처리해야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지 알아보자. 이는 같은 소재라도 사진적 접근 방식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사진적 접근 방식의 대표적인 예가 낯설게 하기와 낯익게 하기인데 이는 심사위원(관람자)의 심리적 차원에서 접근해 가는 것이다.  낯설게 하기란 문학용어로서 쉬클로프스키(Shklovsky)라는 사람이 한 말이다.  말하자면 '뻔하고, 그저 그런 생각과 인식 속에서 역시 그러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인생인 데 이를 문학으로 옮길 때 전혀 새로운 충격과 인식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낯설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낯설게 하기 위해서는 순수하게 자신의 경험으로 낯 선 사진거리를 발견 하라든가, 비 일상적 시각을 동원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낯설게 하라든가, 현미경적 시각으로 관찰하여 일상적으로 볼 수 없던 초대형 이미지로 바꾸거나 이미 알고있던 인식을 깨뜨리든가, 인습적인 인과관계에서 벗어나 역전적인 발견을 하라든가 낯선 대상과 낯익은 사물, 현상을 병치(竝置)함으로써 낯선 인상을 주라든가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를 사진에 대입해도 딱 맞아떨어진다.  다른 예술보다 역사가 짧지만 그 대중성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수를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찍어댄 결과 이제는 새로운 소재, 새로운 주제를 찾기 어렵게 되었다. 멀리 떠나면 새로워질까 해서 해외 여행을 다녀본다. 낯 선 소재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발 품을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도 한 때, 너도나도 해외 여행 사진전시다. 그러다 보니 신선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도착한 곳에도 사진가가 있고 보면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심사위원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대부분의 응모자가 출품한 사진을 거의 꿰뚫고 있다. 직접 찍어 보았거나 다른 방법을 통해서 익히고 있기가 일쑤이다. 찍을 게 없다는 결론이다. 과연 그럴까? 그렇게 말하는 이 순간에도 우리는 숱한 필름을 소모하고 있지 아니한가?  결론은 새롭게 접근하는 수밖에 없다. 진부한 소재라도 새롭게, 혹은 신선하게 느껴지도록 찍는 것 그것이 바로 낯설게 하기의 참 뜻이다.  낯설게 하는 방법은 수도 없이 많다. 앞에서 언급한 메이킹 포토를 비롯하여 어안렌즈를 이용해서 화상을 왜곡 표현하는 방법, 거북 등처럼 갈라진 바닥에 마네킹을 눕혀 놓기, 비현실적인 소품을 사용하기, 비현실적인 상황 연출하기, 암실기법 활용하기 등등. 방법이야 어떻든 자기 나름대로 낯설기에 성공한다면 수상확률은 그만큼 높아진다. 다만 뻔한 낯설기나 이미 많이 사용한 방법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는 것을 명심하자.  @@낯익게 하기도 한 방법이다.  낯설게 하기가 관람자에 대한 심리적인 접근 방식이라면 낯익게 하는 것 역시 그와 같은 방법이다. 하지만 낯선 소재를 찾아가거나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경험한 요소들, 또는 최근에 널리 진행되고 있는 현상들이어서 쉽게 친숙해질 수 있는 것들을 피사체로 삼는 경우를 말한다.  새마을 운동으로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는 초가집 정경은 이미 흔하지 않은 소재가 되었기에 그런 소재를 발견해 내면 옛날에 겪었던 분위기를 느끼게 함으로써 관람자를 반갑게 만들 수 있다. 만일 초가가 흔한 시절에 초가를 소재로 삼았다면 그는 당연한 현상이기에 심사위원의 손이 쉽사리 나가지 않을 것이지만 지금은 초가집 찍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상을 탈 수 있다는 역설이 성립된다. 또, 요즘 길가에서 자주 접하는 것 중의 하나로 설탕을 녹이고 소다를 넣어 뽑기를 만들어 파는 광경이 있다. 중년층 이상이면 누구나 한 번쯤 향수에 젖어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닐 수 없다. 그 맛이야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이면서도 자녀에게 사주거나 직접 사 먹어보는 행동은 낯익은 것에 대한 친숙감이자 심리라고 하겠다.  그런가 하면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과 같은 대형 행사와 관련된 범 국민 행동, 캠페인 등의 광경, 미군 장갑차 사건 같은 시국적인 시위나 관련 행사 장면, 대통령, 국회의원 선거 같은 전 국민의 공감요소를 부각시켜 이미 알고 있는 기억에 접근하는 방법 등을 들 수 있다.  이 외에도 복고풍, 우리 것 찾기 등 사회적으로 널리 유행하는 피사체나 소재들을 촬영 대상 화 함으로써 심사위원과 관람자에게 친숙하게 다가서는 방법들이 모두 낯익게 하기의 전형적 방법이라 하겠다. 낯익게 하기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심사위원들도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기에 평범한 시각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낯익은 소재를 선택하되 색다르거나 일상적이지 않은 방향에서 접근해야 좋은 효과를 얻는다. 어떤 것이 일상적이지 않은 방법인가 하는 것은 작가마다 다르겠지만 사진인이 아닌 일반인이 바라보아도 찍을 수 있는 사진이 아니라 사진가의 시각에서만 나옴직한 그런 시각을 말하는 것이리라.  @@회화적 접근 - 소재를 형태와 형상적 특성으로 분석해 보라  이는 사진을 회화적이고 시각적으로 접근해나가는 방식을 말한다. 또 인간의 육안에 의존하는 방법보다는 렌즈가 가진 초능력 - 인간의 육안을 뛰어 넘는 -을 빌리는 사진을 말한다.  대표적인 것으로 거시적(巨視的) 시각과 미시적(微視的) 시각이 있다. 이 용어 역시 필자가 편의상 사용하는 것으로써 거시적 시각은 아주 작은 물체를 크게 확대해 보는 것 즉, 클로즈업 사진이나 매크로 사진을 말하는 데 보통 오래되어 검게 변한 목조 건물의 기둥에서 옹이가 노랗게 보일 때 옹이의 형태가 이상한 동물의 모양을 하고 있다던가 초봄의 강가에서 녹아 내리는 얼음 덩어리가 묘한 형상을 하고 있을 때 이를 근접촬영으로 플레밍 해 내는 것을 말한다. 그런 예는 아주 많기 때문에 일일이 열거할 수 없지만 거시적 시각에 대한 인식만 하고있다면 언제 어느 때건 어렵지 않게 발견해 낼 수 있고 효과적으로 작화 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하다.  미시적 시각이란 아주 크거나 넓은 피사체를 찍을 때 인간의 시각으로는 한 번에 볼 수 없는 것을 한 화면에 담아내는 것을 말한다. 때문에 광각렌즈로 한 화면에 담아 일상적이지 않게 표현하거나, 항공사진에 의한 부감 촬영, 매스게임과 같은 집체(集體)나 군중 대회 등 엄청난 스케일을 작은 화면에 담아 각 개체가 지닌 고유의 이미지나 크기를 잃게 하고 화면 구성의 작은 요소로 바꾸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월드컵 개막식에서 운동장 가득 펼치는 군무(群舞)를 화면에 잡는다면 그 군무를 하는 사람이나 기구는 분명 크기와 형태를 알아볼 수 있는 개체이지만 화면에서는 군무 전체의 이미지 속에서 하나의 작은 요소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한다.  거시적 시각과 미시적 시각 외에 형태나 형상적인 특성으로 접근하는 방법에는 카메라가 지닌 특수한 능력 즉, 슬로셔터나 고속셔터를 이용한 떨림, 흔들림, 펜닝, 순간정지 등 육안이 감지 할 수 없는 독특한 시각에 의존하는 사진도 있다. 이는 그동안 화면의 흔들림에 비교적 인색하던 경향에서 벗어나 의도적으로 화면을 흔들거나 그런 느낌을 도입했다는 판단이 들 경우 용인하는 것을 말한다. 공모전이 변하고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예인데 작가의 의도와 흔든(흔들린) 소재가 잘 어울릴 경우 어렵지 않게 수상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외에도 철저하게 사진의 평면성을 활용하여, 달리는 자동차가 슬로우 촬영에서 볼륨 감을 잃고 선으로 처리된다든지 유리벽으로 장식된 건물의 외벽을 한쪽 방향에서 촬영하여 단순한 반사체(反射體)의 평면으로 처리하는 등 입체를 평면화 하거나 평면적인 요소만 잡아내는 방법이 있다. 이때의 특징이라면 부피를 잃을 때 색채가 강하게 부각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색이 강한 피사체를 특별하게 처리하고 싶다면 부피는 느끼게 하는 입체 촬영대신에 그를 버리는 평면 촬영을 택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덧붙인다면 회화의 특징은 평면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찍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찍어야 형태와 형상이 강하게 부각되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회화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가장 확실한 소재 - 희노애락과 생로병사를 찍으라  일상이자 현실을 대상으로 하는 사진 작품 중에서 아주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인간의 감정에 호소하는 사진 즉 희노애락과 생로병사가 담긴 사진이다.  사진의 문학성과 걸작 주의 편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 사진의 본래 목적 즉, 기록성에 입각해서 볼 때 사건을 기록하되 무엇을 기록할 것인가와 연결되는 것이 바로 이 것이다.  기쁨과 분노와 슬픔과 환락, 나서 살다 시들어 죽는 이것 외에 인간의 감정을 달리 표현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 때문에 인간의 본질에 초점을 맞추는 사진은 모두 이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장바닥을 예로 들어보자. 5일장이 되었건 상설 장이 되었건 관계없다.  치열하게 손님을 부르는 행위, 폭염이나 엄동으로 손님이 잔뜩 줄어들어 오지 않는 그들을 마냥 기다리면서도, 이제는 달관했다는 표정의 무심한 상인 얼굴, 흥정을 하긴 하되 깎아줄 수도 아니 팔 수도 없어 난처해하는 표정, 겨우 마수 거리를 한 뒤에 안도의 표정을 지을 때 스며 나오는 그 눈 빛, 오가는 이의 눈초리쯤은 이제 면역이 된 듯 펼쳐놓은 바닥에서 입안 가득 떠 넣는 늦은 점심, 장사도 안 되는 데다 새벽잠을 서둘러 나온 탓에 쏟아지는 잠을 주체할 수 없어 펼쳐놓은 채소더미 옆에 그대로 쓰러져 선잠을 청하는 아낙네의 모습, 마을 뒷산에서 캐온 듯한 산나물 한 소쿠리를 펼쳐놓고 다듬으랴 손님 부르랴 연방 고개를 돌리는 할머니 모습은 통째로 사진 소재가 되지 않을 수 없다.  희노애락은 인간 본성에 기초한 가장 원초적인 감정이다. 원초적인 감정이란 학습이나 경험 또는 태어난 이후에 후천적으로 획득하여 지니게 된 감정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누구에게나 있는 감정을 뜻한다. 그런 광경이야말로 관람자나 심사위원을 자극하는 가장 좋은 소재가 된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보면 인간 삶의 현장은 배경만 다를 뿐 본질적으로는 같다는 결론이다.  삶과 죽음 역시 마찬가지가 된다. 종교의 본질적 요소인 만큼 무엇보다 무거운 소재이면서 항상 누가 다루어도 가슴 찡한 효과를 낼 수 있다. 이런 삶과 죽음이라는 소재는 그런 특성 때문에 실제 상황 아닌 민속 재현 같은 사진도 촬영의 대상이 되고 가끔은 큰상을 타기도 한다.  감상자의 감성에 호소하는 이런 소재의 특성은 그 효과가 매우 큰 반면에 접하기는 까다롭고 어렵지만 대중적 기호도가 떨어진다는 특성을 함께 가지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보기 좋은 사진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듯 자신이나 남들이 걸어놓고 보기 좋아하는 사진이 아니라는 이유로 기피하는 소재가 되기도 하지만 공모전 수상이 목표라고 한다면 반드시 눈 돌려보아야 할 소재이기도 하다.  @@구색 맞추는 사진을 찍고 있지는 않은가  공모전 사진에서 구색 맞추기라? 의아해할 독자가 많을 것 같다. 그러나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구색(具色)이라면 여러 가지 물건을 고루 갖추어 놓는 것을 말한다. 공모전에서 구색을 맞춘다는 말은 이렇다. 많이 뽑는 사진을 주류라고 한다면 뽑아 주기는 하되 많이 뽑지는 않는 사진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류를 이루는 장르가 따로 있는가? 있다면 구분이 가능한가?  대답은 '예스'이다. 주류를 구분하는 방법은 많이 뽑았다고 해서 뽑아 올린 숫자를 줄이자고 하지 않는 것이 주류이고 그만 뽑자고 하는 것이 구색 맞추기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사람 사는 이야기를 소재로 한 작품을 선발했는데 스무 점쯤 상권에 올렸다고 그런 사진을 그만 뽑자고 하지는 않는다. 물론 사진에 담긴 내용과 표현이 전부 다를 경우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내용과 표현이 전부 다르다고 해도 누드 사진이 한 열 점쯤 올라왔다고 하면 대뜸 '누드 사진이 너무 많지 않을까요?'하고 심사위원 간에 이의가 제기된다. 그리고 그런 이의는 대부분 받아들여진다. 누드 사진 공모전이 아닌 경우 누드 사진은 구색 맞추어 몇 점쯤 뽑아주는 사진이 된다는 말이다. 이렇듯 특별하게 지정한 장르가 아니면 많이 뽑지 않는 소재의 사진으로 말하는 것으로써 스포츠 사진, 생태사진, 엮음 사진, 환경사진 등이 여기에 속한다. 그러나 여기서 단서를 붙인다면 이런 구색 맞추기 사진이 큰상을 타지 못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라는 것도 밝힌다. 그런 사진 중에서도 큰상을 타는 사진이 아주 많다. 하지만 그건 역설적으로 아주 뛰어난 작품일 경우를 말하고 보통의 경우에는 구색 맞추기 사진이 분명 존재하는 만큼 내 사진적 취향이나 활동이 혹시 그런 방향이어서 효율성 떨어지는 사진작업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     출처 :사진동호회:사진과사람
251    시인은 재료 공급자, 독자는 그 퍼즐맞추는 려행자 댓글:  조회:2500  추천:0  2017-02-19
그리려는 시쓰기  강사/윤석산  둘째로, 말하려는 시와 달리 리듬화를 방지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리듬은 이성적 판단을 마비시키는 기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하려는 시를 쓸 때는 독자들이 시인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만들려면 무엇보다 리듬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미지는 곰곰이 생각하며 읽을 때 떠오릅니다. 그러므로 곰곰이 생각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리듬을 강화시켜서는 안 됩니다.  자아, 그럼 이미지화 방법을 쓴 작품 한 편을 감상하고, 이런 시의 문제점을 생각해 볼까요?  여울목에 몰린 은어(銀魚) 떼.  삐삐꽃 손들이 둘레를 짜면  달무리가 비잉빙 돈다.  가아응 가아응 수우워얼래애  목을 빼면 설움이 솟고……  백장미 밭에  공작이 취했다  뛰자 뛰자 뚸어나 보자  강강수월래.  - 이동주(李東柱), [강강술래] 중에서  이 작품에는 ·에 해당하는 시간적·공간적 배경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처음 두 연 모두가 시각적 이미지로 짜여져 있지만, 첫째 연은 정적(靜的)이고, 둘째 연은 동적(動的)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또 셋째 연은 청각과 시각을 결합시킨 공감각적 이미지로서 둘째 연보다 더 빠른 동적 이미지로 짜여져 있고, 넷째 연은 후각적인 이미지와 셋째 연보다 더 빠른 이미지로 짜여져 있습니다. 이 작품을 읽을 때, 달 밝은 밤 반짝이는 잔물결을 헤살대며 오르는 은어떼가 보이고, 빙글빙글 돌며 강강술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오는가 하면, 마주 잡은 손들의 따스한 체온이 전해져오는 기분이 드는 것은 , 인 이미지가 겹쳐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언어로 자기 밖의 대상을 그리는 작품에는 극복하기 어려운 약점이 있습니다. 파운드(E. Pound)가 이미지즘 대열에서 이탈하면서 자기 동료들을 비판했듯이, "의미 없는 텅 빈 그림(meaningless picture)"로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작품 속에서 시인의 생각을 추방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마음을 그릴 때는 되도록 낯선 것을 보조관념으로 택해야 한다  이런 약점을 극복하자면 이미지스트들이 시에서 추방했던 시인의 사상과 감정을 다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시인의 사상과 감정은 보여줄 수 없는 관념의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이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그것과 유사한 어떤 사물을 비유하는 방식을 택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어떤 사물에 빗대어 말하는 방식입니다.  이런 방식에서,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 바꾸어 말하는 것은 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원관념을 , 보조관념을 라고 할 경우, 서로 다른 것을 동정화(同定化)하면서 라고 말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비유의 유형은 와 의 관계에 따라 크게 세 유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유형으로는 우리가 흔히 은유(metaphor)라고 부르는 를 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둘째 유형으로는 상징(symbol)이라고 부르는 , 세 째 유형으로는 원관념을 숨긴 여러 개의 치환은유를 비인과적으로 나열한 를 꼽을 수 있습니다. 종래 시론(詩論)에서 별개 유형으로 꼽아온 ···는 치환은유의 하위 유형에 속하고, 알레고리(allegory)는 치환은유와 확장은유의 중간 유형에 속합니다.  치환은유는 다시 보조관념이 하나냐 여러 개냐에 따라 와 로 나누고, 원관념이 겉으로 드러났느냐 숨겨졌느냐에 따라 와 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확장은유는 원관념과 보조관념을 어떤 성질을 매개개념으로 삼아 연결하느냐에 따라 , , , 으로, 병치은유는 병치한 자질들의 속성에 따라 , , 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가운데 확장은유는 보조관념으로 내세운 사물의 의미 가운데 시인이 말하려는 것과 같은 것을 골라 쓰는 방법으로서 치환은유의 기법만 터득하면 누구나 구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병치은유는 시인이 제시한 모티프들을 독자 스스로 연결하여 의미를 창조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으로서, 앞의 두 유형과 전혀 다른 유형에 해당합니다. 그러므로 병치은유에 대해서는 언어로써 사물을 창조하는 방식을 논의할 때 설명하기로 하고 이 강의에서는 치환은유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겠습니다.  우리는 흔히 비유가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서, 보조관념은 원관념보다 더 쉽고 평범하며 구체적이고 유사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원관념과 비슷하되, ··으로 바꿔야 한다고 믿습니다. 관념보다는 사물이, 추상적인 것보다는 구체적인 것이 특수한 것보다는 보편적인 것이 더 이해하기 쉽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작품들을 살펴보면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다음 작품들만 해도 그렇습니다.  ⓐ광화문(光化門)은  차라리 한 채의 소슬한 종교(宗敎).  - 서정주(徐廷柱), [광화문]에서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늙은 비애(悲哀)다.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이다.  - 김춘수(金春洙), [나의 하나님]에서  ⓒ내 침실(寢室)이 부활의 동굴(洞窟)임을  너는 알련만  - 이상화(李相和), [나의 침실로]에서  ⓐ에서는 "광화문"이라는 구체물을 "종교"라는 추상적 관념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그리고 ⓑ에서는 "하나님"이라는 추상적인 관념을 "비애"라는 추상적인 관념과 "살점"이라는 구체물로, ⓒ에서는 "침실"이라는 구체물을 "동굴"이라는 구체물로 바꾸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①, ②, ③, ④ 등 가능한 경우를 모두 택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유사한 것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는 유사하되 전체적으로는 다른 것으로 바꾸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바꾸는 걸까요? 이에 대한 해답을 얻으려면 우리는 어떤 경우에 상대가 내 말을 유의해 듣는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문제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화법을 가지고 따져보기로 합시다. 사람들은 누구나 처음 연애를 할 때는 상대가 지나가는 소리로 요구해도 다 들어줍니다. 그러나 결혼하고 한 십년쯤 지난 뒤에는 "여보! 나 힘들어 죽겠어, 도와줘."해도 "또 잔소리가 시작되었구나"하고 건성으로 듣기가 일쑤입니다. 그것은 사랑이 식어서가 아닙니다. 아내가 늘 잔소리를 하여 남편에게는 자동화(自動化)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하소연 대신 하늘을 바라보며 하이얗게 웃다가 빤히 쳐다본다고 합시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남편은 놀라 "왜? 왜?"하고 물을 것입니다. 남편이 이와 같이 놀라는 것은 평소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러시아 형식주의자 중에 한 사람인 쉬클로프스키(V. klovski)가 말했듯이, 늘 같은 방법으로 말하면 되어 그냥 넘어가지만, 하이얗게 웃으며 침묵할 때는 긴장하고, 그에 대한 의미를 스스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비유의 유형은 와 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산문에서는 으로, 으로 바꾸면서 독자의 이해를 도와야 합니다. 하지만 사상이나 감정을 전달하기 위한 시에서는 습관적으로 반응(stocked response)하지 못하도록 잘 아는 것을 낯선 것으로 바꾸는 시적 비유를 택해야 합니다. 위의 작품에서 채택한 비유들은 모두 시적 비유로서, 독자들의 원활한 독서를 고의적으로 방해하기 위한 장치(deliberately impeded contrivances)입니다.  시에서 사용하는 비유가 모두 알기 쉬운 것을 난해한 것으로 부꾸는 것이라니, 선뜻 동의하기가 어렵다구요? 그럼 다음 문장들을 비교해 보세요.  ⓐ그녀는 아름답다.  ⓑ그녀는 빨갛게 핀 한 송이 꽃이다.  ⓒ그 여자는 아스라한 꿈길의 능선(稜線), 가뭇가뭇 내리는 어스름을 타고 하늘하늘 피어나는 한 송이 산나리이다.  어떼요? ⓐ는 누구나 다 알 수 있지요? 하지만, 그저 아름답다는 의미 이외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지요? 그리고 정신이 아름답다는 건지 외모가 아름답다는 건지, 젊은 여자인지 나이든 여자인지 알 수 없지요?  그러나 ⓑ는 좀 젊은 여자같다는 느낌이 들지요? 외모를 이야기하는 것 같구요. 그리고 ⓒ는 신비롭고, 가냘프며, 야성적이고, 관능적인 여자일 것 같은 생각이 들지요? 그냥 "아름답다"고 말하면 될 것을 "꽃"이라고 바꾸고, 그리고 어둠이 내리는 꿈길 속의 산등성이에서 피어나는 "산나리꽃"으로 바꾼 것은 누구나 생각해보도록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어떻게 낯설게 만드느냐구요? 그건 아주 간단합니다. 내가 말한 대로 독자들이 이해하도록 만들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나는 생각할 자료만 제공할 테니 내 생각을 알아 맞춰보라는 식으로 말하면 돼요.  그것만으로는 안 될 것 같다구요? 그럼 위 예문을 이용하여 제가 쓰는 비결을 알려드릴 테니 그대로 해보세요. 우선 으로 바꿔 보세요. 이 정도는 누구나 별다른 어려움 없이 받아들이겠지요? 그럼 다시 한번 바꿔보세요. 그래서 으로 바꾼 것입니다. 그리고, 그로서도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면 다시 그 무엇으로 바꾸고, 그래도 부족하면 또 바꾸는 방식을 택하면 됩니다. 그러니까, 으로 계속 치환하면서, 독자가 시인이 말하려는 원관념을 파악할 둥 말 둥 한 단계까지 끌고 가는 게 제 방식입니다.  이 때 한 가지 유의할 게 있어요. "그녀의 눈은 호수 같고, 입은 앵두 같다"는 식으로 각 부분을 따로따로 바꾸지 말고, "그녀는 호수다"라든지, "그녀는 앵두다"라는 식으로 전체를 그 무엇으로 바꿔야 한다는 점입니다. 어느 한 부분을 바꾸는 는 그 부분에 대한 이해가 끝나면 나머지는 다시 자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반면에, 전체를 바꾸는 는 이야기 전체가 낯설어지기 때문입니다.   출처 :내 가슴이 너를 부를 때
‹처음  이전 28 29 30 31 32 33 34 35 36 37 38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