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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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산토끼 잡으려다 집토끼 놓치다 댓글:  조회:2442  추천:3  2017-11-16
친분이 있던 한국 친구와 15년 만에 만나 환담을 즐기였다. 그는 중한일 3국을 오가며 20여년간 무역을 벌였고 초기부터 조선족 파트너들과 인연이 깊어 조선족사회를 손금 보듯 잘 아는 친구이다. 대담 가운데는 조선족 이야기가 시나브로 많았는데 필자는 그중 조선족의 새 발견이라는 말구에 귀가 끌리였다. 개혁개방 후 조선족사회는 인구 감소, 공동체 해체, 인구대이동, 교육 위축 등 생사존망의 위기를 겪었지만 여전히 나라 건설과 국제교류에 매진하면서 든든한 경제기반을 구축하였고 요동치던 민족사회도 연착륙(软着陆)을 이루고 있다. 민족의 3, 4세들은 이미 새 가치관을 수립한 인적자원을 형성하였고 흩어진 구성원들은 민족사회의 전승과 발전을 위해 긍정적 미래를 키우고 있다. 이것은 민족문화가 맺은 결실이다. 현재 재일 조선족이 7만명에서 10만명 가량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들 역시 세계화 물결에서 성장한 새 세대로서 상당한 학력과 기반을 닦았고 첨단기술, 국제무역, 제조업, 대중서비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며 실력 창업자들이 륙속 탄생하고 있다. 일본에서 조선족 한명이면 타민족 3명의 리용가치와 효률성을 낸다는 소문도 있다. 조선족에 대한 일본인들의 시각이 밝아지고 있다. 보다시피 민족문화가 순발력을 발휘하여 민족을 다급한 고비에서 넘겨주었고 수많은 대항적 모순을 유연하게 소화하고 세계 사회 심부에 파고 드는 지혜를 실어주었다. 민족문화는 조선족들에게 경제, 문화, 인적교류 등 모든 면에서 자국과 타국에 기여하는 핵동력을 부여해 주고 있다. 그중 이중언어는 일본어를 쉽게 받아 들이는 천연적 구조로서 남들은 조선족만의 문화 유전자라며 불가사의 신비라 말한다. 조선족문화와 일본문화의 근친성은 조선족의 또 다른 천연 우세가 아닐 수 없다. 들머리 화제로 돌아와, 조선족의 미래가 넓어지고 인재 수요도 증가 일로로 나가는데 인구는 반대로 감소된다. 그런데 민족문화를 포기하는 상황이 그냥 벌어진다는 소문이 끊임없다. 그 발상은 멀쩡한 눈으로 앞을 못 보는 오산이다. 저쪽에선 부러워 침을 흘리고 제쪽에선 제풀에 내버리는데 이것이 인간이 쉽게 걸리는‘물 속에서 물 귀한 줄 모르는’즉‘귀중불감증’의 증세, 바로 그거다. 내 친구가 씁쓸해했다. 동북아시아는 유러시아대륙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여기의 핵심 원소는 중일한 3국이고 조선족은 이 무대 심장부인 중국에서 3국 문화를 소유한 문화 강자이고 현재는 화상(华商), 한상(韩商), 일상(日商)을 겸지우겸(兼之又兼)한 일인삼역(一人三役) 기재(奇才)들이 속출해야 한다는 국제적 기대가 부풀고 있다. 그런데 그걸 버리는 소행은‘산토끼를 잡으려다 집토끼를 놓치는’오동작이고 나라에 유해무익하고 민족을 뒤걸음질치게 하는 거친 처사이다. 내 친구의 말이다.  길림신문 2017.11.15
62    늦가을 날 혼잣말 댓글:  조회:4564  추천:0  2017-11-10
별일없이 며칠간 두문불출하다 잔뜩 가라앉은 기분이나 추스를 료량으로 집 뒷산으로 산책을 떠났다.   이 동네는 대륙성 계절풍 기후에 속하고 동북의 최남단 해변에 위치하고 있어 해양 특성이 짙은 편이다.하여 상강이 지나면 은행나무들은 단풍을 맞아 이파리들이 조락을 서두르나 다른 활엽수들은 대개 짙은 록색을 확보하면서 사람들에게 가을날의 시원한 정취를 안겨준다.하지만 초목들이 한살이 정리에 서두르는 자연의 숭고한 섭리를 헤아려보며 계절이 남기는 의미에 대하여 찰나적인 자문자답이 불끈거리기도 한다.이 맥락에서 이 생각 저 생각이 줄지어 떠오르며  이 가을의 상념은 좀 무겁고   란잡하다.   속절없는 세월을 따라 쉼없이 달려왔는데 다가오는 무술년이면 오락가락하던 생계 마당에 종지부를 찍고 다른 의미의 생활에 방향을 틀고 내 인생은 새 전환기에 들어서게 된다.어쩐지 제풀에 가슴 부위가 후줄근해 지면서 어깨가 낮아지고 과거를 반추하는 시간이 시나브로 많아진다. 청춘과 정열을 밑천으로 세상살이 스타트라인(起跑线)에서 출발하여 화복의 산맥도 수없이 넘고 아득한 희로애락의 초원도 지나왔다.정작 일터의 골라인(终点线)이 밟히게되니 뒷등에서는 찔리는 통증이 감지된다.돌아서서 지난 발자취를 헤아려보니 탐욕에 눈이 멀었던 시절의 어리석은 소행들이 인과응보로 되어 고민거리들을 자초한 것이 아닌가 불안이 생긴다.불타는 홍엽들은 부유인생(蜉蝣人生)을 살고 있다는 처연한 기분에 북을 돋구어 준다.    대자연의 초목들이 고색을 내비치는 절박한 이 시절에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하며 도처에 피여나는 들국화가 감동의 기분을 곰삭아 내고 있다.뿌리내린 땅의 비옥이나 척박에 연연하지 않고 찬가을을 맞아 꽃을 뿜어내고 싱싱한 잎사귀를 피워내는 그 자태야말로 삼라만상 속의 백미(白眉)이다.잔꽃,소엽과 가냘픈 수관으로  강직한 진실을 소박한 모습으로 드러내는 겸손함인가 본다.만추의 계절에  개화와 토향(吐香)을 연출하는 그 대견한 모습은 인간의 눈길과 가슴을 매혹하기에 충분하다. 으슥한 수림속에서 그가 전달하는 멧세지는 ‘목 마른 사람에게 들리는 물소리’ 이고 생명의 절대적 진수와 활력소가 아닐 수 없다.     도전이 이어지던 지난 세월에 나름대로 원칙의 틀에서 자아실현을 위해 무엇을 우직하게 고집하며 살아오다 귀착지에 이르러 보따리를 풀어보니 남들께 보일만한 뭐가 없어 황당하기도 하다.속세의 생존년대 구분법을 짚어보니 이젠 이순의 문턱을 넘어섰는데 자기는 인생의 이모작 초입에서 무엇을 해야하나 갈피를 잡지못해 허둥대는 풋내기로 복원된 모습이다. 그래도 ‘인생은 60부터’라는 사촉에 현혹되어 미래 요행수를 바라며 어디에 덤비기 싶다는 심사만 지우기가 어렵다.가부간에 우선  ‘맥도 모르고 침통을 흔드는’ 웃음거리를 만들지 않도록 조심조심해야 할 터이다.    다른 삶에 돌입하는 길목에서 지난날 쌓은 좌우명으로 스스로를 들여다보며 곰곰히 명상하고 있다.지금부터라도 세속의 천박한 가치에 연연하지 말고,우직한 졸장부의 틀에 매이지 말고, 매일매일 자기삶의 뜰을 한바퀴 돌면서, 적정 안경을 걸고 세상 만물을 심시세람(审视细览)하며 꼿꼿이 살아야 할 것이다. 물신주의에 함몰되어 리타(利他)와 리기의 경계선에서 위태롭게 넘나들던 짓들도 살판뛰기이니 이제는 금물이다. 분수에 넘는 바람은 절대 절제하고 오만 방자의 ‘미세먼지’와는 아예 담을 쌓고 벽을 친다.    과거 일상에서 기를 쓰고 토해냈던 언사들은 꿍얼거려도 잠꼬대일 것이고 늦으나마 웨치는 각성의 소리도 남들에게는 조지약차(早知若此)의 넉두리가 될 것이지만 그래도 내 아이들과는 듣든말든 곱씹을 생각이다.더우기 '춘불경종추후회(春不耕种秋后悔)'라는 진리는 귓등으로 듣더라도 틈만 보이면 되풀어 보려한다.   이제 생활전선에서 퇴장하면 뒤가 켕길 일도 없고 애들도 내 노릇은 내 한다고 호언하니 거칠 것도 없다.그저 홀몸으로 어느 한 모서리를 찾아 정성을 쏟고 가졌던 생각이나 실천해 보려 한다. ‘소 힘도 힘이요 새 힘도 힘’이라 하였다. (끝)   2017-11-10 연변일보
61    지능화시대의 취직 준비 댓글:  조회:1773  추천:2  2017-11-02
요즘 무인공장, 무인자동차, 무인매장, 무인사무실 등등 새 사물들이 줄줄이 등장하며 무인이 세계적 화두가 되고 있다. 오늘은 일본의 백화점에 안내로봇이 등장하여 독자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생생한 뉴스가 전해온다. 인간 로동이 인공지능에 대체되는 비디오 장면을 보며 당혹감마저 느껴진다. 로봇은 고객의 물음에 따라 상품의 가격, 기능 및 소재를 일본어와 영어, 그리고 화면으로 소개하고 고객의 수요에 따라 목적 장소까지 안내하고는 원 위치로 정확히 돌아온다. 페점후 상품 태그(标签)를 확인하고 재고정리하며 수자도 계산해놓는다. 초인간적으로 령민한 감응신호장치의 작동으로 고정물과 사람사이에서 통로의 광협장단(广狭长短)을 판단하고 장애물을 피하며 전후좌우로 움직이는데 그야말로 신비 세계의 체험이다. 최근 한국고용정보원에서는 2025년이 되는 때 한국내 현재 일자리중의 61.3%가 지능기기에 의해 대체된다는 분석 결과를 발표하였다. 그것은 단순로무직, 관리직, 사무직 등의 일반 직종 뿐이 아니고 변호사, 의사, 교수, 과학연구 등 많은 분야가 망라된다. 오래지 않아 전통 일자리에는 천지지변이 발생할 것이란 확언이다. 지능과학의 발전으로 새 지식의 창조와 습득이 전례없이 빨라지고 업무지식 학습도 손바닥 뒤집듯 쉬워지는 대신 로동시장은 다양화, 세분화와 분할화(碎片化) 되고 로동형태에도 상전벽해의 변혁이 일어날 것이라는 판단이다. 현재 상식으로 행해지는 주5일 근무제는 유연 근무제로 바뀌여 자택근무, 주2일 혹은 3일 근무제, 시간제, 요일제 같은 림기응변 방식들이 보편화되고 일상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 혼돈의 시대를 살아갈 후대들은 평생 공부의 준비가 있어야 하고 일생동안 적어도 5개 이상의 직종에 적응할 대비가 있어야 한다. 또 2개 혹은 3개의 직장에 동시 근무할 마음가짐도 갖추어야 한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도래할 로동시장의 수요라고 전문가들과 유식 기업인들이 입을 모은다. 오늘의 젊은 세대들은 현재의 교육 환경을 탈피할 수 없더라도 그 시대를 살아가기 위하여 그 세월의 필수 인프라로 부상할 언어기능(핵심기능), 정보수집기능, 소통기능과 정감교류기능을 육성하기 위하여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이 기본기능이 바로 그 불확실한 시대의 도전과 역경을 극복하는 비결이고 비법이다. 생물세계의 종(种)은 힘이 세여서가 아니라 외부 환경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해야 만 생존할 수 있다. 인간도 다를 바 없다. 오직 닥쳐오는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고 력사의 흐름에 그때그때로 순응해야 설자리와 살자리가 차례지는 것이다. 조선족은 천부적이고 나라의 지원을 받는 중국어, 조선어 이중언어 소유자이다. 이것은 지능화시대에 있어서 조선족의 최대 문화자원이고 무수한 갈등과 미로를 헤쳐나가는 만능열쇠라는 것이다. 길림신문 2017.11.1
60    개구리 증후군 댓글:  조회:1612  추천:0  2017-10-26
오랜간만에 친구들과 마주앉아 말보따리를 풀어 제끼고 즐거운 한 시각을 보낼 수 있었다.   그 와중에 한 친구가 자기 집 아이는 조선족 소학교를 다니는데 초중부턴 타민족 학교에 전학시켜 벼슬 공부를 시킨다며 ‘난쟁이 키 자랑’하듯 으스댔다.조선어는 소학교만 나와도 글 보고 소통하는 데 넉넉하다는  리유를 들먹들먹한다.중국인데 한어를 잘하면 족하고 민족어는 떠듬거려도 지장이 없고 한국에 가서도 밥벌이엔 부족이 없다며 주어섬겼다.그까짓 조선어라며 비죽거리는 모습에 기분이 말째지며 ‘삶겨지는 개구리’를 련상하였다.   지나간 19세기 말, 서방 과학자들의 실험 결과이다.개구리를 뜨거운 물에 넣으면 순간에 뛰쳐나오지만 그의 최적온도인 15℃에 맞추고 서서히 가온하니 느긋이 잠겼다가 뜨거움을 느낄 때는 신경이 마비되여 도약력을 잃고 죽으러 가더라는 것이다.그들은 이 현상을 ‘개구리 증후군’으로 작명하였고 그후 점진적인 변화에 무감각하다 위기가 오면 ‘쪽도 못 쓰고’ 령락하는 현상을 설명하는 비유어로 리용되었다.이를 연원(渊源)으로 변화에 둔감한 무신경이면 ‘변화무지 증후군’, 현실에 안주한 무사태평이면 ‘비전(希望)상실 증후군’이란 신조어가 파생되기도 하였다.   지난 세기 90년대 초,개혁개방이 급물살을 탈 때 조선족은 자기의 문화 특히는 이중언어에 힘입어 궁핍에서 신속히 해탈하고 민족사회 재건의 경제 및 사회적 기반을 구축할 수 있었다.그래도 그 당시는 그 조선어 수준에다 힘만 있다면 밥벌이는 넉넉했고 상당한 적금도 이룰 수 있었다.다름이 아닌 민족문화가 불시에 괴력을 발휘하여 조선족을 중국의 민족 속에서 선두주자 자리에 밀어올린 것이다.이 사실은 문화 저력의 거대성을 립증하였다.이것은 또 그 차원의 문화가 그 력사에 적응되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런데 오늘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지난해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한국의 바둑 9단 이세돌과 미국 구글그룹이 개발한 인공지능프로그램(人工智能程序)인 알파고의 바둑 대결에서 이세돌의 참패는 인류에게 새 시대의 도래를 선언하였다.인간은 사상혁명을 앞세우고 미래 수요에 높낮이를 맞추는 고민을 해야한다는 계시이기도 하다.지능사회가 돌격해 오는 때 미래 인재의 핵심적 력량은 인간만이 가진 인본주의 정신과 광활한 정보력으로 타인과 심각한 교류를 진행하며 자신의 활동 공간을 넓혀가는 것이라고 한다.여기의 핵심은 더 고차원적인 이중언어 혹은 다중언어 능력이다.그 친구의 뜻대로 간다면 그 때의 그 아이는 마주해야 할 경쟁에서 사대육신(四大肉身)의 어느 쪽에 기능불구나 부자유가 발생할 것이 틀림없다. 우리나라도 지능화 발전의 전략 경보를 울리며 새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그런데 친구의 말처럼 자식을 가르친다면 변천을 따르기 커녕 되려 역행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상승하는 온도를 느끼지 못한 것일가.오늘의 지식이 10년 간격을 두고 상당 부분이 무용물이 되는데 말이다.주입식 교육과 세간의 무사주의(无事主义)에 푹 젖은 ‘온수 속의 개구리’가 아닌가 싱거운 걱정이 앞선다.   기성세대는 후대에게 사유재산을 만들어 주기가 급급해도 더 큰 가치는 미래의 청사진을 그리는 것이다.옛날 어느 현자가 아들에게 고기를 주지 않고 그물짜기를 가르쳐 부자로 키웠다는 이야기는 명기할 귀감이다.포식한 배를 어루쓸며 매일매일을 까먹듯 하지말고 간혹 머리를 돌려 주변의 변화를 살피는 게 시대적 삶이겠다.갑자기 뭔가 느껴지는 때면 길몽(吉梦)도 대몽(大梦)도 죄다 탁발승 나무아미타불이 되고 만다.   내 친구가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은 뛰어도 늦다는 ‘토끼와 거북이 경주’의 교훈을 살리고 ‘삶겨진 개구리’가 되지 말기를 바란다.고부가치 자본인 민족문화에 눈을 돌리고 아이의 이중언어를 완벽한 원어민 수준에 인상하는 층계를 만들어 전승시켜야 한다.그리고 민족문화와 이중언어가 지능사회를 살아가는 활주로라는 귓띔을 귓등으로라도 들어줬으면 좋겠다. 연변일보 2017-10-25
59    조선족 이중언어의 핵심가치 댓글:  조회:1957  추천:2  2017-10-12
지난 세기 90년대 초반부터 발을 뗀 조선족의 대이동과 출산기피의 만연으로 인구가 격감되면서 민족 공동체가 해체된다는 아우성으로 들썩거렸다.그런데다 누가 장본인이었던지 ‘불난 집에 부채질’하며 아이들을 타민족 학교에 보내는 선풍을 일구었는데 조선족 학교는 입학생의 급감으로 심각한 위기에 몰리었다.그 결과로 민족 인재가 격감하고 이중언어 수준이 급하락되는 양상이 오늘 벌어지고 있다.이리하여 요즘 민족 인재의 수급관계(需给关系)의 엄중한 실조가 발생하여 조선족 이중언어의 가치를 재고양해야 한다는 소리가 곳곳에서 높아가고 있다. 조선족 언어는 중국 특색의 중한이중언어(中韩双语)이다.개혁개방 30년 이래 조선족 이중언어는 민족의 발전과 나라의 건설에서 탁월한 역할을 하여왔고 국제 경제문화 교류의 마당에서 특유의 작용과 매력을 발산하여 타민족에게 선망의 대상으로 되어 왔다.오늘의 기성 세대들은 지난날 아이들을 민족어에서 리탈시킨 득과 실을 따져보고 그 처사가 독인가 약인가를 곰곰히 되새겨야 한다.한국어 사용인구는 세계적 순위에서 제 13위를 차지하지만 그 경제성,문화성과 침투성으로 말하면 10위 이내일 것이라는 일반적 평가이고 급속히 발전하는 중국은 신흥 대국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이것이 바로 조선족 이중언어의 잠재적 가치 원천이다. 중국 조선족 사회는 해외 한민족이 중국에 진출하는데서 교두보이고 역참(驿站)이었다는 사실은 세인이 공인하는 바이다.이 력사적 변혁 속에서 그 발전을 추진하는 데서  조선족의 이중언어가 결정타를 치는 도구였을 뿐만 아니라 해외 한민족이 조선족과 불가분리적 뉴대를 형성하는 리유도 이 이중언어가 불가결 요소이기 때문이다.중국의 국제적 교류와 세계 한민족의 대중국 진출에서 련결 고리가 되는 이 이중언어는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더 높은 차원의 세계적 문화자원으로 승화되고 있다.이와 같이 조선족 이중언어의 가치는 그의 국제성에 있다. 조선족이 세계화의 물결과 합류하는 길에서 이중언어는 경제적 유용성과 효용성의 거대한 작용이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립증하였다.이 력사 과정에서 조선족은 이중언어로 대량의 비지니스 기회를 잡을 수 있었고, 세계화 교류의 지식을 습득하였다. 뿐만아니라  국제적 네트웍을 구성하였고. 그 충실한 일원으로 발돋음하였으며 우리 나라 발전의 길에서 선두주자 지위에 서게 되었다.우리의 이중언어가 중국 건설에 기여하고 한민족 경제교류를 추진하고 민족사회의 건설에서 전략무기라는 이 점은 이중언어의 선명한 경제적 시장가치를 실증하고 있다. 우리의 이중언어는 이미 민족의 공동체와 민족성을 지킨다는 협애한 공간을 뛰어넘어 중한 문화교류를 추진하고 중국의 문화적 다양성을 번영시키는 데서  탁월한 작용을 일으키었다.또한 중국문화와 한국문화의 력사적 련대성과 현실적 발전에서 우리는 이중언어가 시종 불가결의 요소라는 사실(史实)을 보게 된다.우리는 이중언어의 발전을 중한 문화교류를 추진하고 두 나라 문화 발전에 기여하는 동시에 자체의 문화를 업그레드시켜 세계 문화의 보고(宝库)에 풍부히한다는 높이에서 인식해야 한다.그가 중국과 한민족의 문화 융합을 추진하고 인류 문화를 추진하는 데서 강력 촉매제라는 이것은 중국특색 조선족 이중언어의 문화적 고부가가치이다. 타산지석의 철학으로 이중언어 왕국인 싱가폴을 살펴본다.그들은 550만 인구의 700여평방킬로메커의  촌토척지(寸土尺地)에서 ‘아세아 네마리 룡’으로 떠오르는 경제기적을 이루었다.물마저 수입에 의거하는 자원 극빈국에서 경악할 번영을 이뤄낸데는 태통령으로부터 시종 이중언어 교육을 발전의 핵심 전략으로서 실시한데 있다고 말한다.그들의 발전 모델에서 우리 조선족도 이중언어 강족(强族)이란 힘으로 번영을 시도한다면 결코 과욕이 아니라는 판단을 이끌어 내게 된다. 다가오는 지능화시대는 언어 강자의 시대이다.조선족은 시대를 선도한다는 숭고한 사명감으로 부터 이중언어를 배우고 또 잘 배워야 한다.민족의 전체 성원이 우수한 바이링궐(二语人),트라이링궐(三语人),멀티링궐(多语人)로 육성되어 세계 민족의 수림 속에서 우수한 구성원으로 화려하게 변신한다면 결코 몽상가의 몽상은 아닐 것으로 본다. 연변일보 2017-10-11
58    '청년경찰'과 우리의 자세 댓글:  조회:1798  추천:1  2017-10-11
한국 영화《청년경찰》이 남긴 어두운 여운이 아직도 남아있다. 영화 제작자들은 흥행 효과와 인기 영합에 무게를 두고 사회적 후과에 대한 참작이 부족하였다며 모호한 사과도 표시한다. 그러나 조선족을 어두운 이미지로 포장하고 애꿎은 집거지마저 범죄의 소굴로 묘사하면서 500만 관객을 낚아내여 동족 화합을 꺼꾸로 돌리는 악효과를 초래하여 대중의 분노를 유발하고 리성을 흐리게 하였다. 색안경이 걸린 시선과 무리한 추리로 작성된 시나리오다. 고난에 찬 조선족 생활상에서 부정적 일면을 골라내여 과장기법을 기묘하게 써가며 사회 전체에 먹물을 뿌려댄다. 자기보다 약한 타민족과 이방인을 차별시하는 제노포비아(仇外心理) 요소가 아직도 한국사회 저변에 뿌리가 깊다며 지성인들이 이구동성으로 질타한다. 그러나 서로간의 리해와 량해가 깊어가는 오늘에도 구시대 배타주의가 문화시장에서 유령처럼 떠다니는 현실은 우리의 고민을 부르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동향에 대하여 과분한 감성적 해석이 필요없다. 그것은 한국사회에서 점멸(点灭)하는 편협한 사고로서 민족 화합과 세계화를 지향하는 주류사회에 휘말려있을 뿐이다. 시대 흐름이 이러하니 우리는 되술래잡기나 ‘이에는 이(以牙还牙)’ 식 앙갚음 역공을 들이댈 것이 아니라 그저 우리에게 보내는 하나의 비판 정보로 수용하는 것이 성숙된 사고가 아닐가 본다. 필경 한국땅에서 현지인들의 눈을 수없이 찌프리게 하였다는 전력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특히 립장을 바꾸어 생각한다는 역지사지(易地思之) 철학으로 《청년경찰》 사건을 랭철히 생각해야 한다. 지난날 한국에서 발생하였던 여러건의 조선족 강력범죄는 우리의 이미지에 사정없이 악영향을 끼치였고 그 여파가 상당히 남아있다. 어느 사회에도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개별건이지만 타인에 대비하여 범죄 비례가 낮고 극소수라는 사실로 자신을 위안할 수 없다. 우리는 현지인들과 권익이 부동한 이국의 집단으로서 내국인과 비동류 관계에 처한 ‘손님’임을 명기해야 한다. 손님이 주인집에서 악행을 저질렀다면 주인보다 천백배의 질책을 받을 것은 인간세상의 지극한 당연지사이다. 《청년경찰》은 민족 화합과 중한 두 나라 공동 발전을 저애하는 반작용적 문화상품이다. 여기서 묘사된 조선족의 일그러진 모습은 순수한 파괴적 비판으로서 우리가 뜨거운 항의를 제출하는 건설적인 반비판도 지극히 마땅하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의 창을 활짝 열고 비판, 반비판과 자기비판을 동시 진행하는 개명하고 정의로운 행동으로 생동한 조화마당을 조성한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이렇다면 중국조선족은 숙성한 모습으로 세인 앞에 용립(耸立)할 것으로 보아진다. 비판을 거부하는 심리는 인간이 고유한 본능이다. 그러나 ‘비판이 싫다면 비판을 달갑게 받으라’는 리성적 교시가 우리 민족 비판의 문화 속에 뿌리 내리기를 기원한다. 길림신문 2017-10-10
57    '청년경찰'과 ‘색안경' 댓글:  조회:3810  추천:0  2017-09-23
어느 때인가 한 심리학자가 어느 때 가장 분노하는가를 테마로 500명 대상으로 단순임의추출법(简单随机抽样法) 설문조사를 진행하였는데 76%가 인격 무시와 인간 차별시었다는  결과를 본 기억이 있다.인간의 일상생활이나 사생활을 살표보면 이 결과치가 뒤틀린  결론이 아닌 같다.   그런데 요즘 한국에서  ‘청년경찰’ 영화가 조선족을 악역으로 내세우고 전체 민족을 악당으로 매도하여 조선족들과 지역 지성인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냈다.이방인에 대한 멸시와 차별을 로골화한 영화이다.한국인들이 외면하는 힘들고,위험하고,더러운 로동의 고통을 감내해야 되고 싸늘한 시선과 차별과 싸우는 조선족을 범죄 집단으로 취급했다는 이것이다.영화는 손쉽게 사실화 된다는 리치에서 보면 그는 조선족의 민감 신경을 건드렸다는 것이다.   중국의 개혁개방, 한국의 발전, 문화의 동질성 이 3대 요소가 조선족이 한국에 대량 진출한 원동력이었고 한국 정부의 지속적인 출입국 정책 완화와 한국 내 주류사회의 배려도 강대한 외적 추동력이었다.이 물결 속에서 오늘의 조선족 한국 생활은 생계형에서 정착형과 생활형으로 변하고 있다. 이 나날은 조선족이 현지 사회와 상호 이해를 심화하고 자체의 위상을 높여 가는 과정이었고 공동 발전의 력사를 창조하는 장면이었음이 분명하다.이 주류를 불고하고 사라지는 불화에 부채질하는 작태는 시대를 역행하는 반동 소행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요즘 한국의 조선족들도 현지 사회에 부응하고 기여한다는 취지에서 환경 개선,현지인과 화합,범죄 방지 등 자신의 이미지를 제고를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따라서 현지인들의 리해도와 만족도도 높아가고 범죄도 대량 감소되고 있다는 한국 사회의 적극적인 평가도 나온다.그런데 조선족의 개별적 범죄를 민족 전체에 대입하면서 500만의 관객을 향해 왜곡되고 저급한 흥행을 벌였으니 이것은 로동과 차별의 이중고에서 시달리는 량민들의 가슴을 허비는 매무시가 아닐가.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좋은 사람 속에 나쁜 사람들이 잔존하는 법이다.조선족 속에 분명 불량자가 혼재되고 한국인들 속에도 오합지졸이 뒤섞인다.현실이 이러하니 개별적 강력범죄자를 조선족 전형으로 묘사한다면 한심한 언어도단이고 조선족을 순결무구의 인간군으로 그려놓아도 희극 놀음이 된다.그렇다면 현실을 반영하는 영화는 그 사물의 속성에 기초하여 연출되어야 함이 기본의무일 것이다.   책임을 진 문화콘텐츠(文化产品) 생산자라면 색안경을 던지고 악당이 있지만 영웅도 있는 근로한 조선족 모습을 가감도 없고 더덜이도 없이 그대로 극화(剧化)하면 어떨가. 상업성,대중성,사실성,예술성이 일체화 된,한국 땅 조선족의 진실한 영상을 본질적이고 미학적이고 해학적인 시나리오로 각색하시기를 한국 예술가들에게 충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길림신문 2017-9-22  
56    검정개 도투 숭 하라! 댓글:  조회:1866  추천:0  2017-09-14
‘검정개 도투 숭’이란 속담은 ‘검은 개 돼지 흉’이란 사투리적 표현인데 피비판자가 비판에서 모면하기 위해 비판자의 비판을 되받아치는 ‘진공형 방어무기’로 널리 쓰이고 있다.역반응 심리를 반영하는 이 관념이 아직도 민간이나 사회에 뿌리가 상당히 깊다는 맥락에서 보면 그가 사람들의 의식 속에 이미 합리한 도덕률이 되는 듯 하다.실생활에서 누가 나를 비평할 때 ‘너 그 주제에 남을 왈가불가할 체면이 되냐!’고 일격을 가하면 상대방은 곧바로 ‘서리 맞은 호박잎’이 되어 쥐구멍을 찾는 장면을 늘 보게 된다.   어느날 사이트를 번지다 타인의 비판을 대하는 태도에서 극명한 차이가 나타나는 글귀들을 보았다.어느 댓글 란에는 분명 선의적인 비평인데도 불구하고 ‘니 다 뭐라고 지껄거리냐! 진짜 검정개 도투 숭이다’며 역공을 들이대는 위인이 있었다.다른 한 어른은 분명 비난하는 욕설이었으나 “비판을 환영합니다”며 어른답게 화답한다.어느 나라 국회의 인사청문회에서 재야당 의원들이 후보자를 추궁하며 비판하자 이쪽 동아리들은 ‘너는 그리 깨끗하냐? 말할 자격도 없으며 무슨 지적질이냐’라며 말 폭탄을 쏟아냈다.내가 검은 건 사실이지만 너도 검은 색이니 내 검다는 말을 할 자격이 없다며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이다.고속으로 나가는 디지털 시대에 현대 문명의 발전에 부응되는 과학적 비판관을 수립하기 위하여  비판리론에 대한 철학적 사색이 절실하다고 느끼였다.   보아하니,결함이 있으면 비판할 자격이 없고 자격이 없으면 입을 닫으라는 사이비 리론이 대방의 입을 막는 저지력이 크지만 방어력도 만만치 않다.너희도 검기는 나와 일반인데!라고 면박을 주고 지청구를 들이대면 그 타격에 확실히 배기기 쉽지 않은 현실이다.그런데 이것이 도리라면 지고지순한 부처님이나 거룩한 하느님 손자 이외에 남을 비판할 수 없을 것이고 인간 공동체에는 결국 비판이 사라지고 온 세상은 너나없이 입은 막고 무언으로 사는 동물세계여야 한다.반전하여 비판할 자격이 없다고 대드는 사람에게 너는 완전무결한 투명인간이냐 질문한다면 그 대답이 어떨가.이 탈시대적 주장이 순환을 이룬다면 오류나 차질은 묻혀버리고 결국 어디가 잘 못 되어 피차가 공도동망(共倒同亡)하는 패착을 두게 된다.    비판에 대한 역공 무기의 하나가 ‘제 코도 못 씻는 주제에 남의 코 씻으려나’는 식의 신경질적 반박이다.모든 인간은 복잡한 자연적 사회적 제한 속에서 살지 않을 수 없고 또한 타인의 시각이 서로 부동하므로 하여 여러가지 사회적 평판과 시비곡직 세평이 뒤따를 것은 지극히 당연할 것이다.당신의 몸무게를 검증하는 지표가 저울추이듯이 내가 어떠한가는 타인의 눈에 나타나는 법이다.비판을 포함하는 여러가지 세론이야말로 그의 미숙성을 보충하고 오류를 개정하는 최고의 정화제이다.비판에 대한 척력(斥力)이 센 사람일수록 그의 내심 세계는 더욱 황량한 페허이고 행동은 좌충우돌하는 란탕(乱荡)이고 제조물은 불량품이 아니면 말짜 조악품이 된다는 사실(史实)이 너무 많다.   사실상, 찬양을 기피할 인간이 없고 비판을 소납(笑纳)할 인간이 없다.사람은 칭송을 받을 때 흥분신경이 즐거워지고 지적을 받으면 본능적인 심리적 방어기제(防御机制)가 작동하는 것이다.이런 비판은 자신에게 불이익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비판,비난,비방 사이의 경계도 상당히 모호하므로 대방의 의도에 대한 판단이 늘 흐려지면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게 인간이다.이런 원인으로 비판이 사람 사이의 트러블씨가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그리하여 리론상에서 비판은 권장되나 그를 이성적으로 받아들이는 실천이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때문에 사회에는 비판을 보호하는 법제적 장치와 자체적인 의식개혁의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며 자아억제를 유력하게 추동하는 문화 환경과 사회적 구조가 필요한 것이다.   건전한 비판,이것은 사회의 발전을 추동하고 민주적 조화를 실현함에 있어서 불가결의 전재조건이다. 위하여 ‘검정개 도투 숭’을 해야 하고 ‘도투도 검정개 숭’을 하고 ‘검정개가 붉은개 흰개 숭’도 서슴없이 진행해야만 개방적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다.때문에 이 비판 론리는 생활의 전반에서 불가결의 철칙으로 수립되어야 한다.모택동이 말한 “할 말은 다하고,아는 것은 다 말하고,말한 사람이 죄가 없고,듣는 사람이 삼가해야 한다”는 명언은 우리의 비판문화의 핵으로 되기에 손색이 없다.그를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을 승화시키는 추진기(推进器)로, 문화 대기를 거르는 려과기(过滤器)로 되도록 해야 한다. (끝)   연변일보 2017-9-13
55    조선족 인재의 희귀성 댓글:  조회:1882  추천:0  2017-08-31
사막과 계곡에서 음료수 한병의 가치는 천양지차 이상이다.계곡에서는 물의 실존량이 크고 체내 수분의 소모가 적기에 수요가 적고 값도 싸며 지어는 무상으로 취득할 수 있다.그러나 사막에서는 물의 소모가 크나 존재량이 적고 욕망이 절박하기에 비쌀 수밖에 없다.공급이 적으면 가격이 상승하고 요구가 박절하면 고가를 호가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며 심지어 부르는 값을 내라며 강매(强卖)를 당해도 어쩔 수 없이 수긍 해야 한다.사막에서 목이 타는 사람에게 있어서 한병의 물과 한덩이 금 가치를 대비할 때 전자의 무게가 얼마나 더 클 것인가는 불 보듯 뻔하다. 유용하고 가치를 가진 재화(혹은 서비스)가 수요에 비해 수량이 적다면 고가로 거래되는 것을 ‘희소성 원리’라고 말한다.다시 말하면 량적으로 한정된 어떤 재화에 대해서 꼭 쓸모 있다고 느끼는 경제적 주체가 있다면 그는 시장의 평균가격보다 높은 값을 지불하고 구입하는 현상을 흔히 보게 된다.그 재화가 더 가질 기회가 없다거나 적다고 생각할수록 더 희망하게 된다는 것, 그리고 고가의 지불도 감행하는 경향은 이 시장법칙이 부추기는 필연적인 구매 심리이다.석유가 물보다 더 비싼 것은 그가 인간에게 대하여 물보다 더 중요하고 소중한 데 있지 않고 그가 필요하면서도 희소하기 때문이다. 희소성 원리는 경제 생활에서 이러한 특유의 반사작용을 가지기에 우리들 생활 속에서 시종 세차게 숨쉬고 있다.제품의 재조업자나 서비스 제공자를 포함한 모든 납품자들은 자기의 상품에 희소성 요소를 침투시키기 위해 머리를 짜고 있으며 구매자들을 향해 그 희귀성을 주장하며 우월한 가성비(价性比)를 만들어 홍보하는 데 열을 올린다. ‘한정된 공급, 제한된 시간,마지막 몇개’ 등등 구매욕을 부추기는 문구들이 희소성 원리를 대변하는 것이다. 시장경제가 급속히 발전하고 광고 수단이 교묘해지면서 장사에 이골이 튼 상업가들은 적고,귀하다는 수식적 미사려구를 쏟아내면서 소비자를 매료시키는가 하면 날뛰는 재주까지 부리며 리속을 챙기는 것이다. 요즘  우리 나라는‘일대일로’ 전략의 구도에서 동북아세아 지역의 무역과 물류의 허브(Hub-枢纽)로 급부상한다며 도처에서 정부와 기업이 련동되여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있다.그런데 이 연선에 60여개 나라가 망라되고 사용되는 관변언어만도 60여종이나 되는데 우리 나라 고등학교에 아직 개설하지 못한 언어학부가 18종이고 한개 대학에만 개설된 학부가 20가지라는 정보이다.이리하여 나라 전략의 실시가 언어 인재 부족의 상황에 당장 부딪치고 있다고 전해오고 있다.원래 충분한 언어 인력이 보장된다던 조선족 인재마저 딸리고 있다는 현실에도 부딪치게 된다. 오늘의 조선족 구직자들 대부분은 80년대 아니면 90년대 출생인데 당시는 조선족의 대이동,출산기피,민족어 외면 등 이상(异状) 물결을 이루던 혼돈의 년대였다.그 결과가 지금 나타나는데 인수가 적고 수준이 낮은데다 높은 대우로 영입하려 해도 마땅한 인재를 찾기가 어렵다는 사실이다.이 력사를 돌이켜보면 후대들이 선택해 준 길에서 에돌아 나오려면  장장 20~30년이 걸리는데 오늘 조선족 인재의 부족이 바로 그 당시 아이들의 미래 선택에서 오류가 발생한 것이 원연(远缘)이라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민족문화를 탈리하였거나 외면한 이 교훈을 심각히 받아들이고 후대들의 인생길을 잡아줄 때 그들이 사회에 진출하는 그 앞날을 바라보는 안목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조선족이 수량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는 여전히 현재지속인 엄연한 현실이다.따라서 조선족 인재의 희귀성은 증가의 일로에 놓여있다.총명하고 성공했다는 사람의 기본적인 재주는 자기를 잘 알고 자기의 기존 자원을 충분히 활용하여 그 가치를 극대화하는 데 있었다.그러므로 우리는 지속적으로 비싸게 될 이중언어라는 이 천혜적인 귀한 물건을 지속적으로 고이 간직하고 부가가치를 추증(追增)해야 한다.다시 말하면 조선족은 중한 이중언어를 핵으로 한 이 민족문화의 희귀성을 살리는 데 힘과 마음을 쓰고 돈을 아낌없이 쏟아야 한다. 우리 후대가 민족문화의 가치를 잘 인식하고 그를 자기발전의 자본으로 충분히 활용하는 기반을 구축해 주는 것은 기성세대의 책임임을 명기해야 한다.물건은 희귀하면 비싸지고 또 고와진다.값이 가고 아름다운 자원을 영원히 독점한다는 특권이 바로 민족의 양양한 전도를 대변하는 것이다. 연변일보 2017-8-30
54    이중언어는 지능화시대의 부스터(助推器) 댓글:  조회:1525  추천:0  2017-08-31
인공위성이 예정한 궤도에 진입하려면 시동하는 바로 그 시각에 초강력 추진력을 수요하는데 그 장치가 부스터(助推器)이다. 조선족이 변혁과 빈곤의 소용돌이 속에서 신속히 해탈할 수 있었다면 이중언어가 부스터작용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 오늘 제4차 산업혁명이 몰고 오는 지능시대를 체감하며 조선족만의 조선어와 한어 이중언어의 곱셈작용을 다시 부각시키게 된다. 제4차 산업혁명은 자동화, 련결화, 지능화 등 기능을 주축으로 진실 세계와 가상 세계를 통합시키는 생산력의 변혁이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클라우드컴퓨팅(云计算), 빅데이터(大数据), 모바일 (移动通信) 등 지능 정보기술이 기계, 제품과 인간을 인터넷에서 융합시켜 사회의 모든 산업 및 행정관리가 소인수화 혹은 무인화 조건에서 실시간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현재 선진국들에서 흥기하는 로봇공장, 무인자동차와 우리 신변의 무인매표기, 무인행정서비스 등도 지능사회의 발단이다. 인공지능은 이미 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등 인간의 창조 령역까지 뛰여들었다. 이 변화는 최우선으로 일자리 지형에 충격파를 몰아오게 된다. 과학연구를 포함한 모든 분야의 인력 수요가 급감하고 산업체는 지역 제한이 없는 원격 관리가 가능해 지며 취직도 국제화되고 있다. 근무 방식도 자택근무, 다회사 근무, 시간제 근무 등 형태로 변화될 것이다. 대개 10~20년 후면 현 직종의 70%가 사라지고 새 일자리들이 등장한다는 예측이다. 미구하여 인간은 인간 자체, 인공지능과 동시 경쟁해야 한다. 지능기기의 도움으로 연구개발과 업무습득이 ‘손바닥 뒤집기’로 쉬워진다. 대신 지식과 정보를 실시간 대량 수집하고 타인을 리해, 설득시키고 감동시키는 교류 기능이 최고 대접을 받는다고 실천가들이 말한다. 그러면 언어 강자가 일자리의 선택과 피선택에서 우선권을 가진다는 결론을 끌어낼수 있다. 20년을 배우고 30년 써먹는다는 고금어(古今语)도 이제는 옛말로 되고 있다. 로동시장이 글로벌화 되고 로동형태도 와렬되는데 먹고 살려면 일생동안 5개 이상의 직장에서 근무하고 2개 이상의 회사를 동시 근무해야 할 준비가 되여야 한다. 이 절박한 상황을 대비하여 우리는 조선어와 한어 이중언어 진지를 더 튼실하게 구축해야 한다. 준비가 잘 된 자에게 득의지추(得意之秋)가 차례지는게 인간세계의 일상사이다. 초읽기로 변하는 시대의 국제화 교류 마당에서 우월한 립지를 다지고 대량 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집, 정리하며 협력의 공간을 넓여가는데 필수인 이중언어의 가치는 무량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저쪽의 변화를 ‘강 건너 불 보듯’지나치지 말고 훌륭한 2개 언어의 원어민으로 되는 돌파 작전을 펼쳐야 한다. 길림신문 2017-8-30
53    저급 1등주의의 허와 실 댓글:  조회:1562  추천:0  2017-08-22
지금은 한창 대학 입학생들의 피로연이 분주한 시절이다. 그런데 좌석에 참가해 보니 1등 찬사가 판을 친다. 대학도 1등, 성적도 1등, 대우도 1등… 1등이 아니면 전부 패배자 취급을 당하는 혼탁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이 같은 1등주의는 나라의 교육방침과 인재 양성의 터전을 멍들게 하는 기류로서 뿌리를 뽑아야 할 적페인 것이다. 1등주의는 창조와 기여를 간과하고 최고, 최대, 최다라는 허울을 량산하며 다수인의 희망과 도전정신을 무시한 결과물이다. 1등이 우선이고 그들만이 절대적 우세를 점하는 승자독식(胜者独食)의 사회는 혁신과 공생의 가능성이 그만큼 적어진다. 침묵하는 2등, 3등과 꼴찌라는 절대다수의 잠재력이 외면 당하면 필연적으로 인간관계 격차가 확대되고 사회는 심각한 대항성 모순을 안게 되여 대립, 불안, 불만 같은 대중심리가 차넘치게 된다. 지금의 신세대들은 부모의 힘과 재력의 도움으로 1등이 되려거나 또는 1등이 되는 현실을 피면할 수 없다. 또 그 자녀들의 명문대 진학률, 사회적 신분이나 경제적 우렬에서 우위에 처하는 경향을 막을 수 없다. 그러나 공공교육과 사회교육은 1등 편향주의에서 탈피하여 진정 모든 분야의 수요에 따르는 인재교육을 실시하고 창조성과 발전성에 공정한 평가를 내리는 여론환경을 조성해야 할 것이다. 특히 학교와 교사들이 1등 자트러이너(指导教师)가 되는 성향을 단호히 극복해야 한다. 1등이 찬양을 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전민의 자질교육을 유지부동의 주선으로 지켜야 하고 약자들의 재능과 창의력이 발휘되는 사회적 보장체제를 반드시 구축해야 한다. 인생살이의 3대 요소는 부모의 힘, 천부적 유전자, 본인의 노력이다. 그중 부모와 유전자는 본인의 선택이 아닌 남이 준 것이지만 본인의 노력은 자신 선택의 몫이다. 수학적으로 말하면 부모와 유전자는 상수(常数)이고 본인의 노력은 변수(变数)이다. 리론과 실천적  의미에서 볼 때 누구를 막론하고 이 변수의 크기를 얼마만큼 만들어가는가에 따라 인생의 복불복(福不福) 여부와 삶의 가치의 대소가 결정된다. 그러므로 교육분야마다 인생의 변수 앞에서는 사람마다 평등하다는 철학을 전달하고 관철해야 한다. 사람마다 어느 한 부분에서 혼자만의 1등이 될 소지를 가지고 있다는 과학적 분석이 있다. 그러므로 개개인의 개성과 특성을 찾아 기량을 련마시킴과 동시에 계발을 주는 교육을 도입함이 시급하다. 그렇게 나온 1등은 고급적이며 마땅히 제창할 바이다. 바다의 룡과 개천의 룡도 평등하게 룡으로 변신하는 제도와 가치관이 정착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길림신문 2017-8-22
52    비속해 지는 부조 문화 댓글:  조회:1640  추천:0  2017-07-19
지난 4월 26일 연변일보 6면에서 축의금 부담에 젊은이들의 고민이 깊어간다는 기사를 보고 뒷맛이 씁쓸했다.확실히 오늘의 부조는 명목이 많고 회수가 잦고 액수가 크고 정성이 희박하고 시야비야가 많다는 핫뉴스(热点新闻)이다.말그대로 우리의 부조문화는 이기적 속계산을 앞세우며 빚을 지고,지우고,받고,갚고 하는 천박한 비지니스 관계로 변해가는 현실이다.   원시적인 부조(扶助)는 자연경제 시대에 인근이나 친인들의 관혼상제 행사에 보탬을 주는 뜻으로 약간의 물품을 증정하거나 일손이 모자랄 때 서로 돕는 교환로동이었던 ‘품앗이’가 발단이었다는 것이 통설이다.이 증답의례(赠答仪礼)적인 호조정신이 기반이었던 가치관은 남을 도우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공동체 의식을 반영한 것으로서 당시 미의식으로 민간의 륜리 세계에 뿌리내리고 있었다.결과적으로 그들의 부조에도 상부상조라는 교환적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으나 그래도 남을 돕는다는 데 무게를 둔 우리 민족의 전통적 미풍양속이고 우수한 문화유산이 틀림없었다.   대략 20여년 전부터 우리의 부조는 명색이 과다하고 부담이 과중하다는 말썽이 일기 시작하였는데 그래도 음주가 과도하다는 데 초점을 맞추었을 뿐이었다.얼마도 안되는 돈돈을 부짓돈으로 들고 다니며 취생몽사(醉生梦死)의 나날을 보내고 길바닥에서 후주잡기(酗酒杂技)를 연출하며 술집 순례를 다닌다며 떠들썩하기도 하였다.이 타락적 소비는 어느 일부 개별적인 현상이 아니였는바 민족 문화로 고착되다시피 하여 조선족 사회가 술에 망한다는 우려의 소리가 무성하였었다.그러나 조선족의 술소문은 해외에까지 자자해도 부조로 진정을 드린다는 성의만은 다분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요즘의 부조 사상은 이상하게 번지는데 사람들은 속셈을 굴리고 이해관계를 앞세우는데서 증정의 의미가 반감(半减)으로 줄어들고 낯가림 때문에 부득이 억지로 수응하는 것이 다부분 부조자들의 진실한 자세이다.부좃돈은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유지한다는 의미의 대부분을 상실하고 눈치놀음을 놀고 내가 했으니 받아야 마땅하다는 적라라한 대가적 금전관계로 발현되고 있다.청첩이 ‘채무고지서’로 변하고 ‘강매’ 당하는 불요물(不要物)이 되었고 다수가 눈을 찌프리며 참가하는 것이 오늘 조선족 부조문화의 현주소이다.‘부조인플레션(膨胀)’은 사람들의 덜미를 잡고 있는 멍에로 되었고 우리의 전통문화는 허위와 탐욕이란 악충(恶虫)에게 잠식당하고 있다..   농경사회에서 진실한 호조호혜 기능을 발휘했던 부조문화가 어쩔수 없이 끌려가며 주억거리고 어느 땐가 돌려받는다는 보상 속셈이 뒤따르는 졸부 문화로 변질하는 엄연한 사실, 이것은 간과할 수가 없는 사회악이 되고 있다.초청장이 두려워 지고 회피하고 싶은 일로 되어버렸으니 부조문화에 대한 고정관념은 이미 악변(恶变)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남이 하니 나도 따라야 체면이 서고 부조를 받았으니 변상해야 한다는 되풀이 반복이 오늘 부조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추레한 양상이다.상부상조의 문화 세포에 악성변이가 발생한 것이 아닌가 묻지않을 수 없다.   조선족의 부조 풍속에는 독균이 감염되었고 금전만능의 혼탁한 세태 속에서 신속한 세포분렬이 일으키고 있다고 말한다.오늘의 이 민폐는 결코 순간 지나는 일진풍(一阵风)이 아니고 갑을 사이의 간단한 수수관계가 아닌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는 마당인데 지도층에서 심각하게 인식하고 시대적 사명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문명사회 건설을 추진한다는 취지에서 정책적 대안을 수립하려 한다면 안 될 것인가?풍속이란 ‘상풍하속(上风下俗)’으로서 위에서 바람을 쏘면 민습으로 고착된다는 말이 있다.그렇다면 사회를 선도하는 공직자들이 총에 맞을 비장한 각오를 수립하고 솔선수범하여 적게 주고,적게 받고,적게 참가하고,적게 청하는 모범이 되지 못할가?하물며 사람마다 찬사를 보낼 터인데야….   부조는 인간의 삶에서 피치못할 통과의례(通过仪礼)이고 세상이 뭉개지듯 변해도 영원히 존속할 문화이다.위하여 우리 민족은 누구도 기형적으로 주고받고으며 회전상승하는 부조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끊는 아픈 결단을 내려야 한다.우리의 부조문화 토양에서 비속한 속물주의 세포를 단연히 제거해야 한다.  (끝) 연변일보 2017-7-19
51    연변축구, 어제의 자신을 이겨라! 댓글:  조회:1633  추천:1  2017-07-11
인류의 4분의 1 이상이 관전하거나 시청한다는 월드컵세계대회를 보면서 축구가 무엇이기에 이처럼 팬들이 열광하고 온 지구가 달아오르는지 리해하지 못한다.스포츠라면 숙맥불변(菽麦不辩)이고 구경해도 ‘물 건너 불 보듯’하는 관조자인 나에게는 다만 체육일 뿐이다.뽈과 같이 들썩거리는 정서 변화와 피끓는 함성 그리고 스릴이 넘치는 공방 순간의 격정을 보면 확실히 축구가 그 민족과 국가에 있어서 고도의 합창을 끌어내는 장엄한 교향곡인 것만은 틀림없다.   요즘 중국슈퍼리그에서 연변 축구의 실패 빈도가 높아지면서 연변의 최고 자랑이라며 축제 기분에 들뜨던 축구팬들의 가슴은 무겁게 내려앉았다.승리와 희망의 함성을 울리던 극력분자들마저 장탄식을 늘어놓는데 김빠진 뽈을 련상시킨다.매체를 살펴봐도 선수들의 사기가 상당한 저조에 처했다는 강한 신호를 감지하게 된다.만약 이러한 정서가 자신감까지 떨어뜨린다면 향후의 경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고 연변축구의 이미지 추락은 불 보듯 뻔하다.잃어버리긴 쉬워도 찾아오기란 결코 쉬울 수 없다.   축구는 간단한 골 개수로 승패를 가름하고 수준의 높낮이를 명료하게 평가한다.그러나 그의 준비,진행,결과 판정의 과정에는 수많은 요소들이 복합작용을 하게 된다.속도,력량,기술,팀웍(团队协作),전술,심리소질,운수 등 가시적 요소들과 경제수준,문화특성,사고방식 등 음성적 요소들도 강력히 작용한다.거기다 운이 안 따르고 재판의 오심을 당해도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그러기에 최강을 자랑하던 선수단도 삽시에 나락에 떨어지고 셈에도 안 들던  팀이 수상대에서 우쭐하는 장면도 보게 된다.실패와 승리를 예측하기 어렵고 천만갈래 불가예측의 우연성도 축구의 묘미와 매력이 아닌가 본다.   이처럼 변화불측의 축구에서 실패했다면 단순히 감독이나 축구팀을 원망할 것이 아니라 지역의 경제,정책,문화 환경과 관중 축구에 대한 관념 등 다방면의 원인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그리고 관계 부문들과 관중과 팬들도 반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이리하여 승패이 여부를 떠나 축구의 각종 요소의 발전을 추구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이렇다면 대표당하는 그 군체의 기대 속에서 최대의 성과와 최대의 행운을 끌어내는 축구 단체 즉 사실상 우수팀이 되는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축구 강자의 최종 징표는 승리이지만 강자가 반드시 이기는 것도 아니고 약자가 꼭 지는 것이 아닌 것이 축구이다.그렇다면 진정한 강자는 실패를 담담히 받아 들이고 자기의 부족을 지속적으로 메우며 내일에 더 나은 내가 되는 팀이라 말할 수 있다.위하여 남을 이기기 앞서 지속적으로 어제의 나를 이기는 연변축구야말로 진정 필승불패적 지위에 섰다고 단언해고 과언이 아닐 것이다.  (끝) 길림신문 2017-7-11
50    물질과 정신의 량극화 댓글:  조회:1580  추천:0  2017-06-11
이 동네의 막심한 교통 정체와 체증을 개선하기 위해 관련 부서가 수고하는 모습은 확연한데 그냥 일가월증(日加月增)의 일로를 걷고 있다.보이는 원인은 차량의 폭증에 있으나 리면을 보면 유형적인 물질과 무형적인 시장의 수급관계,관리체제,시민문화 등 수많은 ‘부품’들이 치륜같이 맞물리어 일어나는 련쇄반응의 결과이다.그 중에서 물질과 정신의 격차가 두말없이 중요한 발생 요인이 되고 있다.   어느날 운전 중, 사거리에서 차가 막혀 전진할 수 없었다.영문을 알아보려 내려가 보니 어느 택시가 뒤에서 오는 차를 보지 못하고 차선을 바꾸려다 접촉사고를 일으킬뻔했는데 분노한 뒷차 기사가 BMW(德国宝马)차를 택시 앞에 가로 세우고 운전사에게 욕설을 퍼붇는 연출이었다.주인공은 40대의 미끈하고 번듯한 미남인데 택시 기사가 미안하다고 굴신 동작을 반복하며 사죄하는데도 마다하고 그냥 쇠막대같은 식지로 찌를 자세를 취하고 된욕에다 쌍욕을 섞어가며 몰아세운다.한참 “불 덴 소 날뛰듯’하다가 곁사람들의 항의가 어린 권고를 듣고서야  ‘ㅁㄹㄱㅂ’ 육담을 뱉아버리며 차에 오른다.사건의 원인 제공이 누구 몫인지를 떠나 근본은 강자가 약자를 경멸하는 모욕극(侮辱剧)이었다.   혼잡한 거리에서 택시가 곡예비행을 하는듯 빠져다니는 것은 례사로운 일이고 뭇사람들이 속으로 힐난하면서도 묵인하는 것이 이 동네의 관례이다.하루살이가 급급한데 원래 질서를 고지식하게 고집하다 보면 ‘밥 먹고 죽 벌이’도 모자란다는 것이 택시들의 론리이다.그렇다 보니 교통사고의 상당한 부분은 택시차의 차질이라는 현실도 간과할 수 없다.그건 그렇다쳐도 외제 고급차를 버젓이 몰고 부를 뽐내면서 약자의 차질을 틀어잡고 올리치고 내리치며 욕보이는 그 모습이 가소롭기만 했다.대방이 죽도록 사과한다면 꾸중 쯤으로도 지나치는 건 항간의 상식인데 자기 힘에 턱을 대고 치욕을 안겨주는 작태가 아닌게아니라 볼만하게 꼴불견이다.이 강자와 약자의 격돌에 우리 사회의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의 단면이 응축되었다고 사무치게 느꼈다.   사회 경제의 발전과 더불어 려객운송 택시업이 부단히 흥성하고 부유층의 외제차들도 다량으로 증가되고 있다.하지만 차량의 증가에 대비해 운전 문화가 너무 미흡하다는 현실이다.위의 사례들이 바로 삶의 수준이 높아졌으나 심적 소양이나 행위 방식은 갈 길이 멀다는 명증이다.물량의 절대적 증가와 의식의 상대적 락후라는 이 차이가 지나치면 경제 활력의 발목을 잡을 것은 물론 사회의 안정에도 거대한 역작용을 한다는 도리는 유물사관적 정의이다.특히는 빈부 격차에 부채질하고 계층간의 대립을 조장하는 호르몬(激素)로 전화될 충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사회 발전의 궁극적 목표는 행복으로서 이것은 물질과 정신의 두 방면의 풍요를 전제로 한다.재물의 방대한 집적과 화페의 대량적 축적이 결코 행복도를 가늠하는 수치로 될 수 없다.빈자와 부자간,강자와 약자간의 소통이 단절되고 인간의 존엄성이 무시되고 사람들이 리해관계에 급하여 나만의 터전에서 해매일 때면 탐욕,불안,공포,침체와 파괴등 사회악이 성행하고 사회는 대항적 정면충돌이 폭증하는 어수선한 세상이 된다.때문에 정신적 에너지를 키우는 것은 행복을 바라는 인간들이 반드시 걸어야 할 길이다.도덕이 무시되는 사회에서 총재부의 량이 커질수록 소외 계층의 반발 심리가 정비례로 커진다는 법칙도 명기해야 할 바이다.    성숙된 사회란 부의 대량적 루적이 아니고 물질과 정신이 완미하게 결합되어 공정과 평화가 넘쳐나고 약자의 권리가 보장되는 세상이다.이것이 바로 과학적 발전이고 경제적 성장 의지와 도덕적 성장 의지가 이어진 리상 사회이다.즉 잘 살려는 의지와 정확히 살려는 의지가 불타는 공동체이다.정신과 물질의 격차를 줄이는 사업을 전투처럼 벌이어 망각의 대기 속에서 부서진 인륜 도덕을 찾아야 할 때가 아닌가.   풍요라는 리(利)와 문명이라는 의(义) 정신이 동시에 빛나는 사회가 우리의 발전 목표이다.그렇다면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의 량극화를 해소하는 시스템 공정, 도덕의 빈곤을 뿌리 뽑는 프로젝트,이 과업을 물질적 가난 구축을 위해 진행하던 전략적 사업과 동일한 시점에서 정복하는 전역을 벌어야 할 때인 같다. (끝)   연변일보 2017-6-7
49    두뇌 "기억부전"의 예방 댓글:  조회:1695  추천:0  2017-05-10
내 머리에 기억해 둔 전화번호가 몇개 되는지 더듬었더니 본인 핸드폰과 사무실 전화번호는 떠오르는데 아들의 핸드폰번호와 집 전화번호는 어떻던지 아리숭숭했고 기타는 애당초 새까맿다.필요한 련락 정보는 기기내에 저장하고 통신을 한지가 꽤 오래되다보니 별로 기억할 핖요를 느끼지 못했던것이다.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음성 영상통신은 말말고 웬만한 업무도 길을 걸으며 뚝딱 속결하고 궁금한게 있으면 수시 검색이 가능한가 하면 초행길도 누구와 물을 걱정이 없는 호세월이다.그런데 정보 취득이 너무 간단하다보니 사람들의 기억 의지가 희박해지고 기억 강도가 약해지고 기억 량도 대폭 줄 것은 당연하다.이리하여 정보과학의 은혜를 헤아릴 수 없이 입는 인간이 기억력을 잃어간다는 우려가 소리소문없이 확산되고 있다.   스마트폰은 지식정보시대의 중요한 표지로서 사회 발전과 인민 생활의 향상에 특유한  추진 작용을 일으키고 있다.향후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예측이 어렵지만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되고 고기능화로 발전하면서 생활에 막중한 편의와 편리를 가져올 것은 틀림없다.그러나 사람들이 그에 대한 과분한 의존과 애착으로 지식과 지능이 동시에 발전해야 한다는 교육 리념과 상충되는 심각한 부작용이 로출되고 있다.   최근 매체들이 디지털의 과도한 리용으로 기억력이나 계산 능력이 쇠락하는 현상을 자주 쟁점으로 다루는것이 그 방증이다.특히 스마트폰의 주력인10~30대 세대들의 중독되는 경향이 창의력 배양에 심각한 영향이 미치고 있다는 학자들의 지적이다.디지털의 사용으로 인간의 지적 능력이 대대적으로 빨라지고 확장되지만 지혜의 원동력인 인간의 생리적 기억력이 훼손의 일로를 걷고 있다.이것은 후세 육성에 관련된 중대한 사안으로 대두되고 사회적 병리 현상으로 인정되면서 과학이 기억력 퇴화를 부른다는 의미로서  ‘디지털치매’라는 신조어가 탄생되였다.   인간의 기억력도 근력과 동일한 원리에 따라 존속하는 바 그 유지와 발전은 단련과 활동을 전제로 한다.지능의 발육과 학습의 전성기인 젊은 시절에 디지털 기기에 집착하여 정보를 검색하고 저장하고 리용하면서 기억하는 의욕과 노력을 버린다면 기억인자의 급감으로 기억과 기억량의 지속적 감소를 초래하게 되고 따라서 사고력의 저하를 일으키고 결과적으로 기억력의 쇠퇴가 발생하게 된다.하여 뇌신경학자들과 정신분석학자들이 디지털 기기에 대한 과도한 의뢰는 외인성 기억장애를 불러올 것이고 나아가 일종의 정신질환으로 등장할 가능성까지 제기한다.오늘 도처에 보이는 스마트폰 심취자들을 보며 그 소견은 결코 로파심에서 나오는 군걱정이 아니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살아야만 하는 디지털 문명 시대에 후대들의 두뇌가 총기로 넘치는 창조적인 샘터로 육성하는 방법이 무엇인가.미국 학자들이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 종이책을 주요 자료로 학습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이 디지털 기기를 위주로 한 사람들보다 기억력이 월등하였다고 설명하였다.한국 서울대에서 우수생들은 고찰하였는데 그들의 공통점 하나가 정보기기를 리용하지만 주요하게 책을 읽고 손으로 메모하는 전통 방식을 고집한다는 것이다.바로 전통적 독서가 뇌의 주의력을 갑절로 제고시키는 동시에 독서 과정에서 반복적인 사고의 기회가 많이 조성되기 때문이라 한다.정보기기가 학습의 불가결 요소지만 종이책에 열중하고 필기하고 명상하며 생각을 정리하는 것은 학습 효과를 제고하고 기억력을 배양하는데서 필수 조건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모든 학습자들은 시대의 물결을 타고 있어도 그 파도에 휘말리지 말고 디지털을 유효적절하게 사용하면서 다양한 사고를 병행하는 전통적인 아날로그 방식을 포기하여서는 안된다.특히 독서하면서 나타나는 난제와 난점을 반복적으로 분석하고 다양한 상상 속에서 미묘한 명제들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뇌력의 로고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이것은 현대인들 특히는 성장 단계의 젊은이들에게 있어서 뇌력 단련의 최선책이고 지식 습득의 최상책이다.   창조의 지지대는 기억력을 기반으로 한 두뇌의 사유이다.경쟁이란 결국 "두뇌싸움"이라는 시점에서 우리는 후대들의 두뇌가 기억과 멀어지는 상황을 보고 넘길 수 없다.후대들의 기억력을 보위하고 향상시키는 책임을 지는 것, 비범한 지력적 인간으로 키우는 것,두뇌의 "기억부전"을 예방하는 것,이것은 기성세대들의 신성한 과제로 부상되고 있다. 연변일보 2017-5-10
48    지식의 류통기간(保质期) 댓글:  조회:1837  추천:0  2017-04-26
한가하면 인터넷이나 뒤적거리며 시간을 때우는 게 제식동작(制式动作)이 되어버린지 오랜데 종이책을 훓어보며 정독해 본  때도 어느 때던지 기억이 아련하다.혹시 무슨 책이 필요하다 싶으면 온라인서점(网络书店)에 들어가 보이는대로 사버리면 고작이고 책방이 어디 있던지 거의 잊고 살아간다.전자책이나 온라인서점(实体书店)의 부흥으로 전통 서점들이 휘청거리고 있다는 소문도 무성하고 경영난을 못 이겨 페점했다는 책장사들의 죽는소리도 쟁쟁하게 들어왔다.거기다 스마트폰 기능의 급속한 향상과 영상 문화의 번영도 책사기와 책보기 거부를 조장하여 도서 시장을 사양길로 내몰았다는 분석도 있다.   어느 날이었던가 이 동네 서점마트 앞에서 서성대는 기회를 가지게 되어 시간을 때울 겸 책구경이나 해볼 겸 하는 료량으로 발을 들여놓았다.그런데 생각과 달리 끔찍하게 쏟아진 신간 도서에 괄목하고 말았다.모든 분야의 책들이 상상 외로 세분화되어 참신한 언어와 마인드로 수없이 출판되었고 제본 역시 썩 정교로왔다.눈을 비비며 서가를 둘러보니 시대가 새 지식을 부르고 새 지식은 또 변혁을  떠밀며 상전벽해의 혁신과 창조를 부추기는데 우리 사는 역사가 일신월성하는 맥박을 확연히 감지할 수 있었다.무수한 새 멧세지는 어제의 정보와 지식을 진부한 구닥다리로 취급하여 고물이 아니면 구물로 심지어 폐물로 만들어 력사의 뒤안에 몰아넣고 있다.책 한권을 골라 가지고 돌아와 읽어가며 인터넷에 매달려 있으면서도  경화되고 경직되어 천박해진 나의 사고방식을 발견하였다.   지식 정보의 생산과 유통이 핵분열을 일으켜 고차원의 새 정보를 낳으면서 현대 사회에는 분명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는 가속도가 붙고 있다.정보 혁명의 패러다임(范式)으로 형성된 어제의 지식이 오늘의 무용물이 되어 써먹으면 독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지성인들의 성공을 이끌었다는 지혜와 경험이 오늘의 걸림돌이 되는 사례도 파다하다.어느 노벨 물리학수상자는 요즘 지식의 류통기간이 2년으로 짧아졌는데 계속 짧아진다고 주장하고 있다.인터넷과 디지털 정보기술의 진보와 더불어 각종 소셜네트웍(社交网站),블로그(博客),트위트(微博),위챗(微信) 등등 신형 학습 수단들은 새로운 문화꽃을 피워가고 있다.지나간 아날로그시대(模拟时代)와 디지털시대라는 오늘의 알량한 지식에 휩쌓여 있는다면 결국 제4차산업혁명 시대와 담을 쌓게된다는 예감에 부쩍 말려들었다.   이젠 학교 중심의 현대 교육도 서서히 막을 내리어야 될 듯 싶다.학교에서 배운 지식으로 한평생을 살아가던 세월은 다만 역사로만 남게 된다.교육은 상시교육,평생교육이라는 관념과 체제에로 전화해야 하지 않을가.바야흐로 몰려오는 지능화 시대의 교육이란 결코 학교 교육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학교 교육이 교육의 핵심 표준이 될 수도 없다.현대인들은 교육의 전담 기구에 의거하던 타률적 교육의 굴레에서 벗어나 수동적이 아닌 주동적이고 자률적인 학습의 존재로 탈피하여야 하고 매개인은 자체가 학습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패턴을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는 학습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산지식을 발견하여야만 탈시대적 지식과 사유를 폐기처분할 수 있다.이리하여 지난날 만들어진 관념의 틀을 수시로 바꾸는 각오를 갖춰야 하고 모든 지식에 대하여 예리한 분석 감각을 키움으로서 고물단지들은 발견하는 족족 버리는 관습을 키워야 한다.배우기 보다 버리는 것이 더 어렵다고 말한다.이런 이유로 이미 형성된 지식과 경험에 의존하려는 본능적 관성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노력을 지금부터 쏟아야 한다.   그러나 신물을 흡수하고 구물을 폐기한다는 것은 ‘목욕물 버리려다 아이까지 버리듯’하는 기존의 것을 무작정 갈아엎는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우리는 토고납신(吐故纳新)과 온고지신(温故知新)의 철리적 지혜로 묵은 지식을 업그레이드시키면서 창조적인 포기를 선택해야 한다.다시말하면 지식을 부단히 승화시키는 선순환(善循环)적 지식 구조를 만들어가야 한다.과거의 지식은 여전히 새 지식과 사유의 밑바탕이 되고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   지식의 류통기간이 축소의 일로를 걷고 있다.제4차산업혁명 시대도 파고를 높여가며 밀려오는 때 끊임없는 탐구와 추구는 우리들이 반드시 떠메고 가야 할 숙명이 되였고 우리 삶에서 필수일과(必修日课)로 되고 있다. (끝) 길림신문 2017-4-25
47    탐관참회록이 주는 계시 댓글:  조회:1972  추천:1  2017-04-13
손 가는대로 인터넷 사이트들을 뒤적거리다 탐관들의 참회록 몇편을 읽어 보는 시간이 있었다.거개가 아츠라한 권좌에서 번뜩이는 권력을 휘두르며 일세를 풍미하던 고위자들이었는데 한결같이 후회막급을 중언부언 되뇌일가 눈물을 짜내 볼기를 적시기도 한다.간대로야 요행을 바라다 으슬으슬힌 법정에서 의사봉의 피타(被打)를 당하고 보니 정신이 번쩍 든다는 이구동성 하소연이다.인간성에 내포된 선과 악의 량면이 고스란히 들어나는 재판장의 판결문과 죄수의 참회문을 번갈아 보며 어쩐지 혐오와 측은의 잡감이 교차되며 갈마들었다.   참회록에서 출현 빈도수가 제일 높은 키워드(关键词)라면 신앙의 상실, 법의식의 약화,신념의 결여,사상개조의 방임 등등 반성의 말구절들이다.대개가 이런 원인으로 범죄의 길에서 갈수록 깊이 빠졌고 결국 쇠고랑 신세를 진다는 고백이다.현재 일반적 여론도 부패 범죄의 원인을 그 개인의 각오 수준에 몰아부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돋아나면 자른다는 의식이 절대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현상만을 고찰한다면 그럴 법도 하겠으나 진정 청렴한 공직 사회를 건설하려면 복잡한 요소에 의하여 산생하는 이 독버섯을 움이 트고 아귀가 트는 시각부터 ‘뿌리가지자르기’를 해야 한다는 과학적 방법론이 오늘 제기된다.즉 사전 예방하고 조기 제거하는 동시에 사회적 관념의 정화도 필히 수반해야 한다.   소수의 인간 말째들을 제외하고, 이 위인들의 공동성이라면 사업 초기에는 대체로 열혈 사업자로서 업적을 쌓으려는 리상주의적 인간들이었다는 사실이다.그들은 선진분자로부터 범죄자에로 전락되는 기나긴 과정을 걸어왔고 죄의식을 가지던데로부터 범죄 불감증 단계를 거치며 죄악을 쌓았다는 력사가 력력하였다.만약 이 전부의 과정에서 고무,감독,적발,징계 조치가 있었다면 개인도 타락의 심연에 떨어지지 않고 공적 자산의 대량적인 류실도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고 사회 자원의 막대한 손해도 피면했을 것이다.가능하였다면 그들이 완미한 인간으로 육성되었을 지도 모른다.호랑이도 파리도 잡아야 한다.그러나 위의 사례에서 보다시피 애기 호랑이와 애벌레 파리를 일소하는 소탕 작전도 지극히 중요한 반부패 투쟁이다.   우리들의 일상에서 체면을 중시하는 의리 문화의 뿌리가 너무 깊다.이 친구들 역시 집권 초기에는 친구,동향,동창 등의 의리에 얽매여 대충 권력을 써가며 방조하던 데로부터 서로 결탁하며 부패 덩어리로 전화되는 것이었다.이리하여 직권을 람용하여 패거리를 확장하고 꺼리낌없이 근친 번식을 하며 그 동맹에 말려들어 간다. 초기에는 그래도 두려움을 앞세우며 무가내로 합류하다가 공동범죄로 나갔다며 울먹거린다.물론 범죄의 책임은 당신이 지고 대가도 당신이 지불해야 할 몫일 것이나 정과 체면 앞에서 원칙이 무력해지는 체면 문화가 부패의 상당한 호환경을 조성한다는 점은 간과할 수가 없다.누구나 고민해야 할 중대사가 아닐가 본다.   우리 다수인들은 대인관계에서 연줄에 연연하는 전통적 의식에 푹 젖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일이 있으면 정책,법제와 륜리의 루트에서 해결안을 찾는 것이 아니라 연줄을 찾고 연줄을 만들고 연줄의 힘으로 풀어가려 하는 의지가 보편적이다.그리하여 나중에는 연줄이 부정 축재의 막대한 자본으로 전화되는 것이다.연줄 중시의 사회 풍토는 부패가 형성되는 우순풍조(雨顺风调)의 호천후(好天候)이다.연줄로 법규의 굳은 잣대를 연화(软化)시키고 휘둘러야 할 곤봉을 솜방망이로 일변시키는 사례는 어디서도 볼수 있다.공권력이 연줄에 매어 휘둘리어 부패가 둥지로 형성되고 그 일당이 부패의 전리품을 분배하는 범죄는 사법 전선에서의 적발 난제로 되고 있다.   부패는 인간의 견물생심(见物生心)이란 본능적 욕망과 외부적 유혹이 결합되어 산생되는 것이다.만약 욕망 측이 그 유혹에 끌려도 어떤 위협이 없다고 인정되면 즉시 요행심이 발동하여 야합하게 된다.권력을 잡는다는 것은 공권력과 개인권리가 그의 일신에서 집합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만약 이 공사(公私) 사이에 어떤 완벽한 브레이크 장치가 없다면 이 권력자는 즉시 부패의 위험 요소를 안게 된다.만약 외부적으로 유력한 제도적 감독이 부재할 경우라면 극히 미약한 ‘촉매제’의 작용에서도 공공재부를 점유하는 충분한 조건을 가지게 된다.심각한 문제는 인간의 욕망이란 하나가 실현되면 더 높은 욕망으로 치닫는 법칙을 가진다는 것이다.   결국, 부패란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을 합리한 한도 내에 제어하지 못한 결과물이다.우리나라의 반부패 투쟁의 목표는 ‘감히 못하고,할 수 없고,하려고 하지 않는(不敢腐,不能腐,不想腐)’의 제도적 장치를 건립하는 것이다.앞의 량자는 제도적 감독을 핵으로 한 타률(他律)적 강령이고 후자는 자률(自律)에 속하는 관념 제고의 방침이다.   비분한 야망을 다스리는데서 간단히 징계의 외적 작용만으로는 과부족이다.완벽한 제도로서 조기 척결하고 동시에 전민의 문화 의식을 제고시켜 내적억제와 외적억제를 동시에 유발시키는 사회적 시스템을 수립해야 한다.이것이 바로 바라고 있는 청정 사회임을 다시 력설한다. (끝) 연변일보 2017-4-12
46    민족문화의 고지에로… 댓글:  조회:2098  추천:2  2017-03-17
중국슈퍼리그의 절정기가 지난지 이슥한데 연변축구의 잔열(残热)을 뜨겁게 느꼈다.   며칠 전, 몇몇 동인들이 술놀음을 하다가 화제가 연변축구에 돌아갔다.그런데 동석하여 잠자코 가만있던 숙녀급 색시가 내 차례인 듯 불쑥 끼여들더니 링아나운서(擂台司仪)  어투로 말문을 연다. 고 열변을 쏟는데 그 수준은 축구 전문가 뺨을 올리치고 내리치기에 충분하였다.격렬한 남성화 운동에다 가냘픈 령부인을 잇놓을려니 언짢았는데 암튼 수준급의 축구 마니아(狂热者)가 틀림없었다.그의 남편이 몇 마디 끼어들었다고 기염을 토하며 문다져버리니 찍소리도 없이 기죽어 김빠진 뽈이 되는 그 맵시도 볼만했다.지난 봄여름 연변 뽈쟁이들이 축구기를 곳곳에서 자랑하고 무리 지은 팬들이 뒤따라 가세해 들썩거리는 장면을 보면서 감동했는데 또다시 연변축구가 스포츠문화의 고공에서 행진한다고 새삼스레 느꼈다.   자기 문화에 대한 열애는 그 민족사회 발전의 활력소로 전화된다.조선족문화는 중국의 문화 속에 뿌리박고 발전한 민족 성격과 특색이 선명한 력사적 산출물이다.이 성과는 민족 사회의 발전과 더불어 중국과 세계의 발전에도 불후의 기여를 하여 왔다는 사실은 공론되는 력사적 평가이다.60년대에 연변 축구팀이 전국 우승을 따내 연변인들의 흥분신경 흥분을 유발했고 80,90년대에는 연변의 소년 축구가 국가 우승을 부지런히 탈취하여 지역민들이 기쁨을 고조시키던 장면이 새삼스럽다.가무 문화는 내놓고 80년대 연변의 만명당 인구의 대학생 수가 196몀을 차지하여 전국 평균수 3배를 초과하였으며 제3차 전국 인구조사에서도 역시 전국의 3배를 초과하여 교육 민족으로 소문이 파다했다.오늘 비록 이산되고 분산되는 고배를 마시고 있지만 이미 누적한 우수한 문화 밑천은 력사의 질곡을 헤쳐나갈 강력한 소프트파워(软实力)라는 점은 긍지를 가져야 할 바이다.   해체의 위기를 맞고 있는 조선족 사회를 보며 디아스포라(大流散犹太人)의 력사를 짚어 본다. 유대인들은 고향에서 쫓겨난 2000여년 동안 추방、유배、학살、박해 등등 인간 언어에 있는 모든 고난과 재앙을 수없이 겪어왔고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는 독일나치스들에게 600만의 대도살을 당하는 전대미문의 참변을 당하였다.그러나 오늘 그들은 재난의 터전에서 국제 금융시장을 만두반죽 주무르듯 해대며 최고 수준의 과학기술、군사력、경제력을 쌓고 중동의 거인이 되었으며 미니(小型) 초대국의 별호를 달고 있다.노벨상의 30% 이상이 세계 인구 0.3%인 유대인 손에 넘어 갔고 세계의 모든 첨단과학 성과에서 유대인의 그림자가 언뜰거린다.유대인이 노벨상의 단골 손님이 되고 경악할 사회 발전을 이룩하는 저변에는 무엇이 있을가 곰곰히 생각해 볼 바이다.   유대인 사회발전의 원동력은 다름아닌 민족 문화에 대한 불요불굴의 신념이다.기나긴 공포、고난과 슬픔의 파도를 헤치면서도 그들은 자기 전통을 철석같이 지키고 눈동자처럼 간주하여 왔다.그들은 후대들에 대한 문화 전승을 필생의 성사(圣事)로 완수하고 있으며 엄마들은 자기 뼛속의 문화를 아이의 골수에 심어주기 위하여 고난에 찬 민족의 이야기를 끝없이 들려 준다는 이야기다.동시에 그들은 소재국의 문화 정수를 흡수하여 자기 문화를 세련화시키며 가는 곳마다에서 선진 생산력으로 발돋음하고 있다.그리고 이 땅에 알알이 흐트러진 그들은 자신만의 촘촘한 네트웍을 구축하고 상호협력의 튼튼한 뉴대를 가지고 있다.만약 조선족이 유대인의 반의반 강타를 맞았다면 어떠할가? 사람들은 문의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민족은 140여개 국가에 600여만 명이 거주한다는 얘기이다.시대적 사연에 따라 체제나 이념, 력사와 가치관이 판이한 다른 나라에 거주하지만 지금은 인터넷에서 국경을 문지방 넘나들 듯이 누비며 교류하는 시대가 열리었고 조선족은 개혁개방이 길을 재촉하는 중국 땅에 서있다.우리들도  유대인의 문화 정신에서 무언가를 배운다면 나라와 민족의 발전에 거대한 성장 동력을 창출하지 않을까! .아직도 명암(明暗)으로 테로와 증오의 대상이 되고 있는 유대인들보다 우리에게는 월등한 국내 국제적 환경이 있다는 얘기다.우리가 나라의 전략에 따라 문화 발전을 위해 새 철학을 결집하고 실천한다면 이는 국가와 국제 사회에 공헌하고 민족의 웅비를 다지는 초석될 것이라고 확신한다.이중 언어를 핵심으로 한 조선족 문화를 고도의 수준면에서 건설해야 함을 되풀이함이다.   중국 특색의 조선족 문화는 강열한 민족성과 시대감각을 가져야 세계 속에서 공명을 일으키고 매력적 가치를 창조한다.우리는 모범 공동체로 발돋움하기 위하여 축구문화 열기의 향상과 더불어 문화 전체를 더욱 높은 고지에 떠밀어 올려야 한다.정신문화강족、물질문화강족、민족문화강족、민족교육강족、민족단결문화강족으로 되자고 외친다면 누군가 고 비아냥거리며 야유할가!? (끝) 연변일보 2017-3-15
45    스마트카(智能汽车)에 대한 기대 댓글:  조회:2141  추천:2  2017-03-01
오래간만에 차를 몰고 나섰더니 찻길이고 보도이고 구석이고 구석의 구석까지 차들로 차 있었습니다.주차가 안되어 헤매다가 벌금에 얻어 맞을 비장한 각오로 서는대로 세워놓고 볼일은 두루마리 말듯 말아 버리고 돌아왔습니다.사무실에 돌아와 창문 너머에서 뭉기적거리는 차량 물결을 보며 과유불급(过犹不及)이란 리치를 되새기며 다만 거대한 물량만을 쳐들고 발전했다고 부르짖는다면 적어도 발전이란 개념에 대한 무지나 곡해(曲解)가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을 되풀이 하게 되었습니다.오늘날 주장하는 인본주의(以人为本)의 원칙이 차문화에도 관철되어야 한다는 시각에서 자원절약、지속적발전、에너지절감、환경보호、교통개선、관념승화 등등 과제들을 풀어가기에는 슬기로운 해법이 절박하다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이게 유인(诱因)이었던지 요즘 인공지능 스마트카에 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습니다.작년 미국의 구글그릅(谷歌集团)이 개발한 스마트카가 300만 킬로를 하나의 작은 접촉 사고를 냈다는 옥하금뢰(玉瑕锦纇)의 결과로 운행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였습니다.인간이300만 킬로 무사고 운전이란 있었던가요? 만약 스마트카들만의 도로라면 900만Km 주행에서 사고 확율이 0.5%라 합니다.지난해 싱가폴에서도 세계 최초의 스마트택시를 시범 운행하였는데 원만한 성공을 거두고 바야흐로 정식 운영체제에 착수한다고 합니다.환상 속의 무인차가 만져지고 보여지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스마트카는 자율주행차(无人驾驶车)라고도 부르는데 5가지 급수로 나뉜다고 합니다. 제1급,자동긴급제동장치 등 2개 이상의 자동  기능이 탑재된 것; 제2급,핸들조작、차선유지 등에서 자동이 가능하나 사람 개입이 필요한 것; 제3급; 자동화 시스템이나 긴급 상황에서 브레이크、핸들에 인간 조종이 필요한 것; 제4급, 사람이 목적지만 입력하면 자동적 판단으로 주행하는 것;  제5급, 사람없이 자동적으로 주행하는 등입니다.현재 구글의 수준은 이미 제4급에 이르렀고 2018년부터 상용화에로 돌입하려는 계획이라 합니다.5급 단계라면 따르는 사회적 관리시스템과 인프라 건설이 구비되는 그 때라 합니다.확실히 실질적 스마트카 시대가 도래하였고 이 산업 분야는 업체들간의 경쟁 격전지(激战地)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다녀야 산다는 견지에서 볼때 스마트카는 우리 생활을 뿌리채로 바꾸게 됩니다.우선 끼어들기、꼬리물기、과속운전、란폭운전、음주운전、대리운전 등 현상이 없던듯이 사라지고; 자가용차도 자기 이용 외의 시간은 택시 이용이 가능한데 자연 자원과 공공자원 그리고 에너지 절감이라는 효과를 발생하고; 택시의 개념에 질적인 변화가 생기고 택시회사는 앱(应用软件) 하나로 수만대의 차를 배차가 가능하여 차량 활용의 극대화와 교통체증의 불식과 온실가스 배출의 극소화란 실효를 발생하며; 차량관리、교통감독、사회정책 등 상부구조가 원래 양태를 철저히 쇄신하고 행정원가의 최적화와 행정효율의 최대화 목표를 실현하게 됩니다.따라서 인간이 차량 소유와 사용에서의 관념도 천지가 바뀌듯 변하게 됩니다. ​ 물론 스마트카의 대중적 보급、생산、판매는 시간을 소요됩니다.기술적 개발은 완료되어도 복잡한 환경에 적응 시키려면 시간을 검증을 거쳐야 할 뿐만 아니라 안전운행에 대한 사회적 확신이 뿌리내려야만 구매 의욕을 일으키게 됩니다.그리고 새로운 기기에 적응하는 사회 인프라 건설도 뒷따라야 합니다.더우기 사고 발생 이후의 원인 및 책임 소재의 확정과 상응하는 법제 및 윤리적 규정이 뒤따라야 합니다.일부 나라들은 이미 제도적 장치의 정비와 새 문명의 기기가 몰고올 충격과 마찰을 극복하는 노력을 쏟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의 발전과 확장이 어디가 끝인지 보이지 않지만 시대 표지로서의 스마트카는 제4차산업혁명이란 지능화 시대의 모습을 미리 엿볼 수 있는 창이라 하겠습니다. 그 탄생을 바라보며 소수 사람들이 자기 소견대로 이런저런 논단을 펼치고 있지만 아무튼 미래의 변수에 대한 대처 방안들은 그 시대를 맞이하는 모두들이  고민하고 이해해야 할 론제입니다.이것이 바로 역사를 맞이하는 슬기로운 자태이자 자세라 하겠습니다.   촌사람이 자기 높낮이도 모르고 시대요 혁명이요 들썩거리지만 평안만을 바라는 초민의 삶이 획기적으로 변한다니 궁금증이 도지니 말입니다. 스마트카가 인간을 기계로부터 해방시키는 신비한 다른 세계가 저절로 눈앞에 언뜰거립니다.이제 육신의 쇠약이나 지체의 부자유로 운전이 불가능할 때 혹은 체내의 어느 부품이 노화되어 어정거리는 때라도 누구의 신세가 없는 나들이가 충분할 같습니다. 그러할진대 락빈가(乐贫歌)를 부르며 안빈락도(安贫乐道)의 나날을 보내도 결코 주지육림(酒池肉林)의 부귀영화가 부럽지않을 것입니다.  (끝) 길림신문 2017-2-28
44    제4차 산업혁명시대, 조선족의 긍정적에너지 댓글:  조회:1978  추천:3  2017-02-15
작년 1월, 스위스에세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제4차산업혁명시대의 도래를 선언하였다.새 시대를 맞이하여 독일、일본、미국 등 선진국들은 참신한 문명리기들의 개발과 적용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사회교육 혁신、사회구조 조정、법규정책 제정 등 상부구조의 건설에 서두른다는 멧세지들이 부지런히 전해온다.그런데 혁명이란 물결이 파고(波高)를 높히며 몰려오고 남들은 보폭을 넓히며 빠른 행보를 보이는 때 우리의 준비 수준은 덤덤한 급수에 머무른 상태이다.급물살을 탄 력사 항선에 우리는 즉각 승선의 차비새로 만전을 기해야 한다.   지난해 독일의 스포츠제품 업체인 아디다스는 중국、베트남 등 저임금 나라를 전전하던 력사에 종지부를 찍고 10명의 인원으로서 로봇과 3D프린터(立体打印机)를 주축으로 한 년생산량이 50만 켤레인 공장을 본국에 세우고 올해부터 본격적인 생산에 투입하였다.24시간의 작업체제로 운영되는 이 공장은 건물 면적이 4800m2일 뿐이고 소비자들은 홈페지에서 직접 디자인、색깔、깔창、신발끈 등을 직접 선택하는 주문이 가능하다.따라서 시체 변화에 즉시 대응하고 납기를 대대적으로 단축하고 한 켤레 단위 오더의 생산을 진행한다.수백명의 로동자를 요하던 노동집약형 산업이 자본 및 첨단기술 집약형으로 전화하는 일대 혁신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인터넷 플랫폼(平台)에서 인트라넷(局域网) 기술을 이용하여 사물인터넷 정보 체계를 도입하고 인공지능과 로봇이 결합된 이 공장은 차세대 기업들의 경영방식 개모(概貌)를 보여준다.물론 이 신생 사물은 어느 한 기업에서 발생한 일 것이나 새 산업시대를 예고하는 싸이렌으로 봐야 한다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그 사회의 특징이라면 디지털、생물학、물리학 등 개별 학과들이 융합되고 사회의 경제、문화、정치 생활의 매개 단위들에 인공지능이 보편적으로 주입되어 자주적으로 내외부를 연결하며 작동하게 된다는 것이다.즉 인공지능 기기들이 임의의 시간에 지역、분야、업종의 제한을 넘어 자체로 인간이 지정된 과업을 완수한다는 것이다.   인류는 끊임없이 기술 혁명을 통하여 자연 조건과 육체 및 정신적 한계를 극복하면서 문화를 창조하고 풍요를 누리며 살아왔다.그러나 새 기술의 도입은 동시에 로동력을 배제하는 과정이었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다.인공지능(IA)도 인간의 체력과 지력을 대대적으로 배척하는 결과를 가져와 인간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위기감이 일각에서 고조되기 시작하는 현실이다.미국에서는 2020년까지 500만개의 일자리가 로봇으로 대체된다는 전망이다.향후 20년간 아시아 노동자 1억3700만명이 로봇에 일자리를 떼운다고 소문도 있다.생계와 직결되는 취직이 인류가 바로 직면하게 될 엄연한 도전이다.   지난 1월 미국에서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의 뉴스가 세인들을 놀라게 했다.남의 뒤만 따른다는 우리 나라 업체가 전체 참여자의 1/3을 차지하고 세계의 최고를 겨루는 성과를 수두룩히 내놓아 참여자가 아닌 주인의 지위에 섰다는 것이다.이 사실은 우리도 나라와 함께 변혁의 맴돌이에 말려들고 있다는 방증이다.이 새로운 경쟁 속에서 우리의 결정적인 무기는 무엇일 것인가?더 말없이 역사적으로도 현재로도 실증되고 실증하는 즉 두 문화 세계에서 자유내왕하고 두 부류의 문화인과 동시 소통하면서  타인의 신뢰를 받도록 하는 중한이중문화 이것이 답이다.우리는 지속적으로 이중언어를 핵심으로 하는 조선족 문화、특유한 서비스 민습、우아한 예절 전통 그리고 민족융화 정신이 넘치는 을 추구해야 한다.조선족 발전사를 보면 이 문화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최고의 매력 포인트이고 초강력 소프트파워(软实力)였다는 사실(史实)을 손금보듯 할 수 있다.   새 시대에도 걸출한 엘리트가 박절히 수요될 것이나 강대한 인공지능의 작용으로 수요량은 급감할 것이고 전통적인 일자리가 다부분 사라지는 대신 신형의 서비스 업종이 줄줄이 생기고 소통능력이 뛰어난 노동자를 대량으로 수요하게 된다.그리고 사람마다 일생동안 적어도 몇개의 일자리를 전전해야 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무성하다.이에 적응되는 인간의 기본기(基本功)은 천차만별일 것이나  골자 인프라(基础设施)는 다양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이해하고、접수하고、해석하고 무수한 타인과 수시로 교류를 전개하는 기능이다.그렇다면 이중언어를 기본으로 하는 민족문화로서 경쟁력을 결집하는 방향으로 지혜를 모으는 것이야말로 조선족 삶의 탄탄대로일 수 밖에 없다.   정보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지식과 업무의 습득은 날로 간단해 지고 있다.그러나 언어와 문화의 습득은 독특한 환경에 물젖으며 연마하지 않으면 도저히 불가능하다.조선족은 자신만의 긍정적 에너지-민족문화로서 제4차산업혁명의 시대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바로 문화의 전승과 발전이 유비무환(有备无患)이란 최상급 대비책이다.   조선족은 명견만리(明见万里)의 선견지명까지 필요가 없고 명견백리(明见百里)의 문화적 안목만 있어도 잘 살기에는 애당초 문제가 없다.. (끝) 길림신문 2017-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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