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리광수씨의 연극작품에서 한때 성황리에 공연되고 큼직한 상까지 탄 작품이 하나 있었는데 그 연극명이 《도시+농민=?》이다. 지난해에 있은 대학교 동창모임에서 동창생부인이 《나+너=?》란 알아맞히기 문제를 내놓았을 때 어쩔수없이 떠올린것이 리광수씨의 연극 《도시+농민=?》였다. 도시에 진출한 농민들의 희로애락을 그린 리광수씨의 연극을 보면 연극명 《도시+농민=?》의 정답이 나온다. 그 정답이 바로 《도시농민》이다. 그럼 《나+너=?》의 정답은 과연 무엇일까?
지난해 가을, 대학교 동창모임이 있었다. 졸업후 15년만에 처음으로 가지는 동창모임이였다. 학교를 떠나 산지사방으로 흩어졌던 동창생들이 D시로 모여들었다. D시를 택한것은 최근년간에 D시에 볼만한 관광지가 많이 개발된데도 있겠지만 동창생중 가장 출세를 한 D시 부시장 한철이가 동창모임에 드는 비용을 전담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동창모임이란 대체로 첫날엔 1차부터 4차, 5차로 이어지는 술자리에서 잔을 들며 회포를 나누고 이튿날에는 관광겸 들놀이겸 야외로 가서 개나 양을 잡아놓고 또 술을 마시고 그렇게 날마다 술에 곤죽이 되고 나면 작별의 인사를 나눌 《최후의 만찬》이 막을 올릴 때가 된다. 사흘동안 D시에서 괜찮다는 식당과 노래방, 다방, 사우나를 전전했는데 한철이는 첫날부터 동창모임에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말로는 갑자기 긴급회의가 있어서 성 소재지로 갔다고 했다. 하여 동창생도 아닌 한철의 부인이 남편을 대신하여 우리들과 줄곧 어울려 다녔다. 사실 어울려 다녔다기보다 열심히 안내를 맡았다는것이 더 적합한 표현일것 같다. 수수한 용모에 성격이 활달한 한철의 부인은 시 계획위원회 과장이라고 했다.
마지막 날 저녁 우리는 한철이네 집에서 개를 잡아놓고 《최후의 만찬》을 가졌다. 다른 날과 달리 《최후의 만찬》에는 개개인한테 선물꾸러미가 차려졌다. 선물은 그 지방 특산물인 값비싼 송이버섯이였다.
한철의 부인은 선물을 나눠주기에 앞서 이런 말을 꺼냈다.
《방금 애아버지가 전화를 걸어왔는데 동창모임에 참가하지 못해 아주 유감스럽다고 하면서 약소한 선물이지만 달게 받아주시면 고맙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4년간 고락을 같이 하고 또 15년간 헤어져 서로 만나지 못한 동창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알아맞히기 문제 하나에 담는다고 하셨습니다.》
《알아맞히기 문제?》
동창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집약해서 담았다는 알아맞히기 문제가 대체 뭔지 모두 귀를 앙구었다.
《아주 간단한 문젭니다. 나와 너를 합치면 뭐가 됩니까? 말하자면〈나+너=?〉》
어쩐지 다시 소학생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글 첫머리에 밝혔듯이 나는 알아맞히기 문제를 듣는 순간 어쩔수없이 작가 리광수씨의 연극작품 《도시+농민=?》을 떠올렸다.
《잠깐만, 나와 너는 특정된 대상, 말하자면 남자와 녀자라던가 아니면 남자와 남자, 녀자와 녀자, 이런 식으로 무슨 규정이 따로 없습니까?》
누군가 이렇게 묻자 한철의 부인이 말을 받았다.
《따로 없습니다. 나와 너에는 남녀로소가 다 포함될수 있습니다. 나가 녀자이면 너는 남자가 될수도 있고…》
《알만합니다.》
누군가 한철 부인의 말을 잘랐다.
《나와 너가 합치면 남녀의 경우엔 부부가 됩니다. 남자와 남자, 혹은 녀자와 녀자 경우엔 친구가 되고 친구가 아니면 동성련이 됩니다.》
그 말에 집안은 웃음마당이 됐다. 반장이였던 남씨가 웃음마당을 수습하고 말을 꺼냈다.
《이봐, 그런 식으로 풀면 남과 녀의 경우엔 부부만 되는게 아니지. 어떤 경우엔 남과 녀가 합치면 정부가 될수도 있고 또 정사라는 답도 나오지. 이건 다 우스갯소린데 한부시장이…》
《반장님, 한부시장, 한부시장 하지 말고 이름을 부르라구. 말끝마다 한부시장하니 회의에 참가한 기분이라니까…》
《그럼 이름을 부르지. 한철이가 우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알아맞히기 문제에 담았다고 하니 꼭 뜻이 있다고 보오. 내 가 보기엔 이 문제의 정답은 동창생. 동창생인 나와 너가 합치면 어디까지나 동창생이 아니겠소.》
《비슷한데…》
《정답이군 그래.》
남씨가 한철 부인한테 물었다.
《정답이지요?》
《비슷하긴 한데 정답은 아닙니다. 정답은 우립니다.》
《〈우리〉?!》
《네, 애아버지는 정답은 〈우리〉라고 했습니다. 그이께서는 지금 세상은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살아가는것이 아니라 우리가 되여 더불어 사는 세상이라고 했습니다.》
거창한 말이다. 어느 책에선가 보았던 대목이다. 맞다. 어느 책이였던지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혁명가의 일생을 다룬 글인데 그 혁명가가 선각자로 되여 대중들에게 무산자들이 하나로 뭉쳐야 한다고 호소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가 나로만, 너가 너로만 있으면 힘이 안됩니다. 나와 너가 뭉치여 우리가 되면 그 힘은 막강합니다.》
이 뜻을 조선의 혁명가극 《피바다》에서는 《싸리나무 한가지는 꺽기 쉽지만 아름드리 나무는 꺽지 못하리》라고 비유했다.
《〈우리>, 그래, 우리가 정답이지.》
남씨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한부시장, 아니 한철의 뜻을 알겠소. 우리 비록 산지사방에 흩어져 살아가는 몸이지만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살아가지 말고 언제나 더불어 함께 살아가자는 얘기군. 자 그럼 한철의 말을 이번 동창모임의 결속어로 말하자면 페막사로 삼겠습니다. 자, 우리를 위하여!》
모두들 잔을 높이 들고 《위하여》를 합창했다. 그날 《최후의 만찬》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한철 부인은 진짜《최후의 만찬》은 다른 곳에 마련되였다고 하면서 우리를 D시에서 가장 호화스러운 호텔의 노래방으로 안내했다.
초호화판이라도 과언이 아닐상싶은 큰 홀이 《최후의 만찬》장이였다. 으리으리하다고 할가 황홀하다고 할가 북경에 살면서 노래방을 여러 곳 다녀봤어도 그처럼 잘 꾸며진 홀은 보지 못했다. 잘 꾸려진 노래방답게 이름도 《황제노래방》이였다. 한철 부인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우리는 이런 말들을 주고받았다.
《역시 벼슬은 해야 겠다.》
《이번 행사에 꽤나 돈을 쓴것 같은데.》
《시장한테 그까짓게 다 돈이야. 듣는 말에 의하면 연해지방의 자그마한 향의 향장도 하루 저녁 초대비를 몇 만원씩은 쓴다더군.》
《설마 한철이가 공금을 썼겠나.》
《이봐, 자그마한 도시의 부시장 로임이 얼마나된다고 동창모임에 몇 만원씩 척척 내놓겠나. 보나마나 시정부의 접대비를 허물었겠지.》
《공금을 쓰던 무슨 돈을 쓰던 무슨 상관인가. 우리 대접만 잘 받으면 되는거지.》
노래방에서 모두 좌석을 정하자 한철 부인이 키가 훤칠하게 큰 한 사내를 데리고 들어왔다. 두 눈이 이상하게 크고 튀어나온 사내, 눈에 익은 모습이였다. 한철 부인은 그 사내를 우리들에게 소개했다.
《이 분은 일송정그룹의 강덕만회장입니다.》
강덕만, 그래 듣던 이름이다. 맞아, 《개구리》다. 《개구리》는 강덕만의 어릴 때 별명이다. 강덕만은 나와 한마을에서 자랐고 소학교도 함께 다녔다. 눈이 하도 크고 개구리 눈처럼 툭 튀어나온 상이여서 별명은 《개구리》였다. 중학교로 진학할 때 부모를 따라 시내로 자리를 옮긴 뒤로 나는 그를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다. 몇 해전 들리는 소문엔 강덕만이가 도토리를 외국에 수출해서 짭짤한 재미를 본다고 했다. 도토리장사군이 인제는 그룹의 회장으로 되였다고 하니 어쩐지 상전벽해를 실감하는 듯한 기분이였다. 그 뿐이 아니였다. 《강덕만회장을 간단히 소개해 드린다면 강회장은 D시 기업인협회 회장이며 정치협상회의 위원입니다. 솔직히 말씀 드린다면 이번 동창모임에 든 경비는 강회장이 전담한것입니다.》
모두들 박수를 쳤다. 강덕만회장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송구스럽습니다. 형님의 동창생이면 저의 형님들이고 누님들이기에 한번 모시고 싶었을 뿐입니다…》
한철이가 강덕만의 형님이란 뜻인데 강덕만은 나와 동갑이고 한철은 나보다 두살 아래다. 두살어린 한철이가 어떻게 강덕만의 형님이 됐는지… 그것이 몹시 궁금했다.
《즐거운 밤이 되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제가 먼저 노래 한곡 선물하겠습니다.》
강덕만이 선창으로 노래 한곡 뽑았다. 프로급은 몰라도 수준급은 될만했다. 점수가 99점이 나왔다.
《돈 먹은 소리군》
《아니지. 돈 뿌린 소리지.》
돈 뿌리며 노래방에서 다듬어진 소리라는 뜻이다. 노래를 부른 강덕만은 맥주컵을 들고 나한테로 다가왔다. 나도 엉거주춤 일어나 그를 맞았다. 강덕만이 나의 컵에다 맥주를 부으며 나직이 말했다.
《잘못보지는 않았겠는데 너 〈까마귀〉지?》
내 얼굴이 철색이라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 《까마귀》였다.
《그럼 넌 〈개구리〉맞지?》
나와 그는 동시에 손을 내밀었다. 으스러지게 악수를 나눈후 우리 둘은 말없이 맥주컵을 부딪치고 단숨에 굽을 냈다. 강덕만이가 내곁에 앉으며 나직이 말했다.
《난 너를 한눈에 알아봤다.》
《나 역시. 너 그 눈 지금도 여전하구나.》
《여전하지. 너 역시 얼굴색이 그대로구나.》
《암, 그냥 〈까마귀〉지.》
우리 둘은 흔쾌하게 웃었다. 강덕만이 컵에 맥주를 따르며 물어왔다.
《지금 어디서 뭘하니?》
《북경에서 자그마한 잡지를 꾸리고 있어.》
《어떤 잡진데?》
《북경에 진출한 한국인과 조선족을 상대로 무료 배표하는 자그마한 주간지야.》
《너 어릴때부터 글쓰기 좋아하더니 글쟁이신세 면치못했구나.》
《배운 〈도적질〉이 그건데 하는수 없지.》
《언제 떠나니?》
《다른 일도 볼겸 한 이틀 더 있어야겠다.》
《그럼 오늘 긴 말 하지 않겠는데 래일 저녁 우리 만나자. 오후 5시에 차를 호텔로 보낼게.》
이튿날 오후 5시에 나는 강덕만이 보낸 벤츠 승용차에 앉아 호텔을 떠났다. 승용차는 시내를 벗어나서 개울물이 흘러내리는 골짜기에 접어 들어섰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나의 물음에 운전기사가 말했다.
《산장에 갑니다.》
《산장?》
《네. 강회장이 별장삼아 지어놓은 산장이 이 골 막바지에 있습니다.》
골짜기를 따라 포장되지 않은 길로 올라가니 숲이 우거진 곳에 층집이 나타났다. 층집 겉면은 죄다 통나무를 대서 숲이 우거진 주변의 경관과 잘 어울렸다. 층집이였으니 말이지 단층집이였으면 산에서 흔히 보는 토굴막으로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차가 산장앞에 이르니 강덕만이 편한 운동복차림으로 나를 맞았다.
《어때 이곳이?》
《공기 좋은데.》
《너, 공기가 혼탁한 도시에서 오염에 찌든 몸이니까 산림욕이나 하라고 이곳을 정한거야.》
산장안에 들어가 보니 벽은 죄다 흙벽이였다. 토굴막에 들어선 기분이였다. 강덕만의 말로는 땅의 기를 받으며 살다가 종당에는 흙으로 돌아가는게 인간이기에 아예 흙집을 만들었다고 했다.
《흙이라는게 참 신기해. 빌딩 회의실에서 몇 사람만 담배를 피워도 그 냄새가 진동하는데 흙집에선 수십명이 담배를 피워도 냄새가 전혀 없어. 흙벽이 다 흡수해 버린다는 거야.》
산장의 벽은 흙벽으로 되였지만 내부구조는 호텔과 비슷했다. 꽤나 큰 홀이 있고 자그마한 커피숍도 있었다.
《호텔같아 보이는데?》
《그래. 실상은 호텔이지. 다만 벽이 흙벽으로 되였을 뿐이야. 나와 사업거래가 있는 사람들이나 친구들이 여길 자주 리용하지.》
산장 아래층은 크고 작은 연회장이였고 위층은 룸으로 된 노래방이였다.《산장이 아니라 완전히 유흥업소구나.》
《그래, 유흥업소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지. 그런데 시내안의 그런 유흥업소와는 판판 달라.》
《첫 분위기부터 다른것 같은데.》
《분위기뿐이 아니지. 한번은 어머어마한 벼슬을 가진 사람을 여기에 모셨는데 그 사람이 하는 말이 뭔지 알아?》
《뭐라고 했기에?》
《여긴 인간이 허울을 벗는 곳이라고 했어.》
《허울?》
《인간이 살아가노라면 꼭 두개 모습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남한테 보이는 모습, 다른 하나는 가지고 있는 본연의 모습이라나. 보이는 모습은 사회 제도적인 장치나 도덕적인 구속 등으로 어쩔수없이 허울을 쓴 모습이고 가지고 있는 모습은 가식이 없는 자연인의 모습 그대로라는 거야. 하여간 그 사람 며칠 여기서 보내면서 내가 듣기에도 모를 소리를 많이 지껄였어. 아무튼 이곳을 떠나면서 그 사람이 〈자연인이 되는 곳〉이라는 족자를 써주었어.》
《그 사람 누군데?》
《여기를 거쳐간 사람에 대해선 비밀에 부치는게 여기 계율이야.》
《비밀아지트에 온 기분이구나…》
《그래. 어찌보면 여긴 비밀아지트지. 역시 먹물 먹은 놈이 반응도 빠르고 표현력이 좋아.》
장덕만이 내 어깨를 치며 껄껄댔다.
《비밀아지트면 혹시 나 오늘 여길 들어왔다가 영영 나가지 못하게 되는게 아니야?》
《그럴수도 있지. 여기가 맘에 들면. 하긴 내 친구 한 녀석은 아예 여기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오늘 저녁엔 가까운 친구 몇을 청했는데 다 사업하는 친구들이야. 책만 뒤적이는 너하고는 공동언어가 없겠지만 술자리는 같이 할만한 친구들이야.》
그날 저녁 강덕만의 친구 넷이 각기 녀자 하나씩 데리고 산장에 왔다. 처음엔 부인을 데리고온 줄 알았는데 소개를 듣고 보니 그게 아니였다. 무역회사 사장이라는 강씨가 데리고 온 녀자는 한참 잘 나가는 시 예술단의 무용배우라고 했고 부동산회사 사장이라는 허씨가 데리고 온 녀자는 어느 학원의 부교수라고 했다. 특산물회사 사장이라는 방씨가 데리고 온 녀자는 시 대외무역국의 과장이라고 했고 제지업을 하는 최사장이 데리고 온 녀자는 가장 젊었는데 지금 한창 석사과정을 밟는 연구생이라고 했다.
강덕만이 나를 나를 간단히 소개하고는 오늘만은 나의 파트너로 되겠다고 하니 모두 버쩍 떠들어댔다.
《안돼, 동성련을 하려면 이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어.》
《강회장님, 오늘따라 웬일이세요? 동창생앞에서 점잔을 차리시려는 건가요? 어서 애인 부르시고 동창생에게도 파트너 하나 정해주세요.》
《이성 파트너가 없는 사람과 자리를 같이 하면 기분이 나빠. 미안합니다. 청도에서 오신 선생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닌데 언제 볼라니 이성파트터가 없는 사람은 술자리에서 남한테만 신경 쓰더군요.》
《강사장님이 동창생앞에서 애인 부르기 뭣하다면 제가 대신 전화걸가요?》
《이봐요 강회장, 난 그래도 강회장을 무슨 일이나 딱 소리나게 마무리짓는 사람으로 알았었는데 오늘 보니 그게 아니군그래. 오늘 이자리는 동창생을 위해 마련한 자리가 아니오. 분위기 깨지기전에 어서 지금이라도 조처를 하시오.》
《하는수 없군. 어때 괜찮겠지?》
강덕만이 나한테 물어왔다. 그 말이 녀자 파트너 불러와도 괜찮겠냐는 말인줄 번연히 알면서도 나는 짐짓 그 뜻을 리해못한듯이 나왔다.
《뭐가 괜찮아?》
《강회장, 그런 물음이 바로 부질없는 물음이라는거야. 이 세상에 녀자 마다할 남자 어디 있나. 중도 고기맛을, 허, 이건 적당한 비유가 아닌데. 실례했습니다.》
부동산회사 허사장이 나한테 고개를 굽석했다.
《알았어.》
강덕만은 내 잔등을 한번 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갔다. 술 두어순배 돌리면서 시답잖은 이야기를 주고받고 하는데 강덕만이 아가씨 하나 데리고 들어왔다. 키가 늘씬한 미모의 아가씨였다.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모델같은 아가씨였다.
《여기 지배인이야.》
아가씨가 고개를 깊이 숙이며 나한테 인사했다.
《향단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허사장이 너스레를 떨었다.
《춘향전에서 나오는 향단이가 방자님을 모시려고 모처럼 오셨구만. 자 어서 오늘의 방자님곁에 앉으시오. 그런데 강회장은?》
《좀 있다 오니까 자 술이나 들지.》
술이 돌고 화제도 돌고 돌아 사업얘기로 부터 시작한 화제는 시공간 제약을 받지않고 세상만사를 모두 망라시켰다. 술좌석에서 세계를 일주한다는 말이 있다. 하문특대밀수사건, 클린톤대통령 추문, 조선반도 남북 정상 상봉 등 굵직굵직한 세계적인 사건들이 거론되다가도 어느 녀배우의 사생활이 내비치기도 하고 타이슨, 로나왈드, 쵸단 등 스포츠계의 명인들을 제 조카처럼 다루다가도 어디서 얻어들은 남녀간의 정사를 다룬 싸구려 유머를 되옮기면서 말초신경을 자극하기도 했다. 장만덕이 불러온 파트너는 시 검찰원에서 사업하는 30대 초반의 녀자였는데 말수가 적은 편이였다. 내 곁에 앉은 향단이는 화제에는 끼우지 않고 부지런히 나의 잔만 쳐주었다. 술이 좀 거나해지자 내 호칭도 《북경 선생》이던것이 《북경친구》가 돼버렸다.
《북경친구, 나 하나 물어볼것이 있는데 왕보삼이 진짜 자살한거요?》
제지업을 하는 최씨가 물어왔다.
《자살했다고 자니까 자살한거겠지.》
《그런데 풍문엔 다른 말이 돌더구만.》
《난 그런 뒷골목 소식엔 흥미가 없소.》
《왕보삼, 듣던 이름인데요. 티베트에서 현위서기를 했다는 그 사람인가요?》
무역회사 강사장의 파트너인 무용수가 물었다.
《이사람아, 자넨 춤만 추다나니까 세상 돌아가는덴 아주 까막눈이군그래. 티베트에서 현위서기를 했다는 사람은 인민의 충복으로 추대받는 공번삼이고 왕보삼은 북경시 부시장을 했던 탐관이야.》
강사장이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름 마지막 자가 다 삼으로 끝나니 헷갈리네요.》
제지업을 하는 최사장의 파트너인 석사연구생이 화제에 끼여들었다.
《지금 항간에 도는 말이 하나 있는데 탐관들은 〈낮에는 공번삼을 따라 배우고 밤에는 왕보삼을 따라 배운다〉더군요.》
《이건 아주 탐관들에 대한 신랄한 풍잔데.》
《그럼 우리도 지금 이시각 왕보삼을 따라 배우는게 아닌가? 하하하…》
최사장이 파트너인 석사연구생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부동산 회사의 허사장이 그의 말에 쐐기를 박았다.
《이사람아, 우릴 왜 탐관들과 같은 위치에 놓는가 말이야. 왕보삼을 따라 배우는건 어디까지나 탐관들이고 우리는 말이야 열심히 벌어서 열심히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지.》
이렇게 화제가 탐관들에 대한 얘기로 옮겨졌다.
《지난해 회뢰죄로 감옥에 간 시 공상국 국장 있잖아. 그 녀석이 법정에서 자신을 변호하는 말을 내가 직접 들었는데 우리 사업가들한테서 발가낸 돈을 전부 로무비라고 하더군. 나 참, 한심해서. 우리 회사 청사 착공식에 온걸 내가 만원을 찔러줬는데 그 돈을 뭐라고 했는지 아나. 착공식 테프를 끊은 로무비라고 하더군.》
특산물회사 방사장의 말이였다. 제지업을 하는 최사장이 말을 받았다.
《나 말이야. 지난주에 광주에 갔다왔는데 지금도 거기 탐관들은 우리 사업가들을 노복으로 보고 있더구만. 광주 무역국의 과장깨나 한다는 녀석이 날 접대했는데 그 녀석과 같이 온 두 사람이 각기 〈007가방〉을 들고 서있더군. 첨엔 비서아니면 수하 직원이겠거니했는데 그게 아니더군. 알고보니 둘 다 우리같은 사영업자였어. 그날 연회비용이 5만원 나왔더군. 별로 먹은것이 없었는데. 2차로 룸살롱 같은데 갔는데 아가씨 열두명을 불러들여서 라체쇼를 벌이게 하더군. 상상 해봐. 실 한 오리 걸치지 않은 아가씨들이 알몸으로 쇼를 벌이고 술 권하고 춤추는 그 광경을 말이야.》
《군을 뗐겠군 그래.》
《군을 뗐다는게 뭐야. 난 아주 기가 질려버렸어. 그날 팁만해도 2만원 가량 나왔는데 그날 돈을 누가 물었는지 알겠나. 〈007 가방〉을 들고 대기하던 사영업자들이 물었지. 이튿날 사업관계로 두 사영업자를 만났는데 거기선 그게 류행이래. 공직에 있는 자가 공금으로 유흥비를 물면 인차 탄로가 나기 때문에 깨끗하게 사영업자들의 등을 처먹는다는거야. 그것도 현금으로 깨끗이 결산을 끝낸다는거야. 그 녀석들의 말로는 공직에 있는 자들이 사영업자들을 좋아하는것은 사영업자들이 현금 동원력이 있어서 그런다는거야. 하긴 개체경제의 중요 특징이 현찰이니까.》
무역회사 강사장이 어이없는 웃음을 입가에 떠올리면서 말했다.
《거긴 아직도 초급단계군그래. 지금 어느 때라고 사업가들을 노복으로 부려먹어. 지금은 말이야. 우리가 상전이 된 시대야.》
부동산회사 허사장이 그 말을 받았다.
《맞아. 우리도 한때는 그런 처지에 있었지만 지금은 다르지. 시 공안국 국장있잖아. 지금은 사석에서는 날 형님이라고 한다니까.》
그말에 강덕만이 어깨를 추스르며 한마디 껴들었다.
《부시장도 지금은 사석에서 날 형님이라고 한다니까.》
이 말에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부시장인 나의 동창생 한철을 형님이라고 하더니 하루 사이에 그가 동생이 됐다.
《강회장, 그런데 왜 강회장은 공석에서는 부시장을 형님이라고 하나?》
허사장이 바투 들이댔다.
《그거야 체면을 살려주는거지. 진짜야. 사석에서는 날 형님이라고 한다니까. 워낙 내 나이가 두살우이니까. 지금이라도 내가 오라고 하면 30분내로 온다니까. 지금 불러볼까?》
이말에 내가 강덕만의 귓전에 대고 나직이 말했다.
《한철이는 회의하러 성에 갔다고 하던데.》
강덕만이 내 어깨를 툭 쳤다.
《이 고지식한 사람아. 한씨는 회의간게 아니라 너들 동창생들을 피한거다. 왜 피했는지 알아? 동창생들이 모이면 술을 마셔야겠고 노래방 가야겠고 하니 우정 피한거다. 이 쪼고만 시내에서 부시장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니. 한씨는 공개 영업을 하는 식당이나 노래방은 죽어도 안가. 뭐 말마따나 형상유지라나.》
제지업을 하는 최사장이 강덕만을 꼬드겼다.
《강회장, 그럼 부시장을 한번 불러보라니까. 진짜 30분내에 오는가보자구. 우리도 강사장의 동원력을 한번 확인하고 싶어.》
《오면 어쩌겠나?》
《오늘 드는 비용 내가 전담하지.》
《오케!》
강덕만은 그 자리에서 휴대폰을 들고 전화를 쳤다.
전화는 곧바로 이어졌다.
《나 덕만인데 여길 오라구. 알만한 친구들이지. 그래, 인차 와.》
나는 쇼를 보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강덕만이 좌중에 한마디 주의를 주었다.
《여럿이 모인 자리니 한씨가 오면 깍듯이 대해주길 바라네. 나도 그렇게 하겠지만.》
이 말에 사장들은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진짜 30분만에 한철이가 왔다. 그는 나를 보더니 저으기 놀라는 눈치였다. 어떻게되여 이런 자리에 참석했느냐는 눈빛이였다. 그 눈빛을 읽고 강덕만이 나를 가리키며 한철에게 말했다.
《형님, 수길인 나와 소학교때 동창생이요.》
강덕만의 말에 나는 또 한번 내 귀를 의심했다. 방금전까지만해도 동생이 됐던 사람이 또다시 형님으로 둔갑한것이다.
한철이가 술 한잔 나에게 권하며 말했다.
《동창모임에 참가못해서 미안하네. 자 술 한잔 받게.》
나는 술잔을 받으며 물었다.
《언제 왔나?》
《오늘 저녁차로 도착했네.》
그 말에 강덕만은 나한테 눈을 찡긋해 보였다.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뜻인것 같다. 한철이가 오자 술판 분위기가 아주 따분하게 바뀌였다. 한철이가 사장들에게 사업이 잘 되느냐, 무슨 애로사항이 있느냐, 앞으로의 타산은 어떤것이냐 하는 식으로 물으면 사장들은 아주 경직된 자세로 일일이 대답을 올리는것이였다. 술판이 아니라 사업회보를 받는 장소같았다. 한철이가 오기전만해도 《지금은 우리가 상전이 된 시대》라고 목에 핏줄을 세우던 무역회사 강사장은 한철이를 개여올렸다.
《저는 중국 전역을 거의 돌아다닌 사람인데 한부시장처럼 우리같은 사영업자들과 무랍없이 어울리는 령도는 보지 못했습니다. 지금 사영업자들을 이붓애비 자식처럼 생각하는 령도들이 많고도 많습니다. 그런 령도들은 시장경제 안목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사영경제도 사회주의경제의 중요한 구성부분이 아닙니까.》
한철이도 듣기가 난감했는지 화제를 바꾸자고 했다. 그러나 술판은 한철이가 오기전처럼 떠들썩하지 못했다. 강덕만은 2층에 있는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기자고 했다. 한철은 급히 쓸 자료가 있다고 핑계를 대고는 산장을 떠났다. 한철은 나한테 미안하다는 말을 곱씹으면서 떠나기전에 함께 식사라도 나누게 시간을 내달라고 했다. 나는 건성으로 시간을 내보겠다고 했다.
한철이가 떠나가자 그자리에 있던 사장들과 함께 온 녀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앓던 이를 뺀것 같다고 했다.
《내가 왜 자리를 옮기자고 했는지 아나? 한씨는 노래방이라면 영 질색이야. 목을 매여 끌어도 안 가는 사람이거든.》
강덕만의 말이였다.
《음치겠군.》
《아니야. 노래를 얼마나 잘한다구. 그러나 딴 사람이 있으면 절대 노래방에 안가.》
《그럼 그것도 형상유지를 위한것이겠군.》
《그렇다고 봐야지. 그러니까 2차로 자리를 옮깁시다 하는건 한씨한테는 일종의 축객령이지. 자 분위기를 다시 살려 보자구.》
《분위긴 한번 깨지면 끝이야. 다른 분위기를 잡아봐야지.》
무역회사 강사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그렇게 시간이 갔나?》
강덕만이 시계를 들여다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다른 분위기 잡을 시간이 됐구만. 그럼 각자가 알아서 분위기들 잡아보라구.》
사장들과 그들과 함께 온 녀자들은 나하고 작별인사를 나누고는 끼리끼리 나가버렸다. 강덕만이 자기 파트너한테 귀속말로 뭐라고 몇 마디 하니 강덕만의 파트너는 나의 파트너와 함께 나가버렸다. 그들이 나가자 강덕만이 술을 부으며 말했다.
《술 한잔 더 하지.》
《인젠 그만 하자. 머리가 다 어질어질해난다.》
《그럼 그만하지. 》
《좀 있다 향단이가 널 객실로 데려갈게다.》
《나 절로 가겠으니 방 번호만 알려달라.》
《너 혼자 못가. 길을 모르니까.》
《길을 모른다는건 무슨 뜻이야?》
《이 본채에는 객실이 없어. 손님방은 이 주변에 널려있는데 첨 오는 사람은 절로 찾아가기 힘들어. 더군다나 밤에.》
잠시후 향단이가 왔다. 나는 향단을 따라 산장을 나왔다. 향단을 따라 숲속에 난 길을 따라 5분가량 걸으니 아담한 초가집 한 채가 나타났다. 한국 민속촌에서 보았던 그런 전통적인 민가였다.
《겉모양은 전통적인 민가로 꾸렸지만 안은 호텔방과 다름이 없어요.》
향단은 나를 방으로 안내했다. 응접실에 침실이 달린 방이였다. 실내장식은 북경의 호텔수준에 준하면 3성급 호텔의 손님방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응접실 한구석에는 자그마한 찬장이 있었는데 거기엔 각가지 모양의 술병이 얹혀있었다. 대부분 양주병이였는데 값비싼것이였다.
《불편한 점이 있으면 전화하세요. 그럼 좋은 밤이 되십시오.》
향단이는 곱게 인사하고는 자리를 떴다. 술이 과했는지 머리가 욱신욱신했다. 목욕하려고 화장실 문을 열던 나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를번 했다. 화장실에는 금방 샤워를 마친 미모의 아가씨가 타월만 걸친채 거울앞에 서있었던 것이다.
놀란김에 그 자리에 얼어붙은 나에게 미모의 아가씨는 미소를 날려왔다.
《아가씨는…》
나는 할 말을 찾지 못하고 허둥댔다.
《연이라 해요. 강회장님이 저보고 선생님을 모시라고 했어요. 어서 목욕하세요. 제가 등을 밀어드릴게요.》
얼결에 나는 화장실 문을 닫아버렸다. 소파에 앉아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는데 타월만 걸친 아가씨가 화장실에서 나왔다.
《술 한잔하시겠어요?》
말이 나가지 않았다.
…아가씨가 포도주 한 병과 술잔 두 개를 들고 다가온다.
아가씨가 술잔을 입에 가져가는 순간 몸에 걸친 타월이 몸에서 미끄러져 내린다. 튕기면 소리라도 날 듯이 탄력있는 피부가 눈이 시도록 희다. 아가씨가 마이다 남은 포도주를 자기 가슴에 천천히 붓는다. 우뚝 솟은 내두산 사이로 깊게 패인 골짜기를 따라 분홍빛 물이 흘러내려 은밀한 숲속으로 숨어든다…
어느 영화에서 나오는 장면이 환각으로 잠깐 펼쳐졌다가 사라졌다. 아가씨는 잔에 포도주를 따르고 있었다.
나무 잎새로 하늘의 별이 보였다. 나는 어떻게 방을 나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한참만에야 비로소 날숨이 시원하게 나왔다. 문득 강덕만이 하던 말이 생각났다.
《여긴 인간이 허울을 벗는 곳이라고 했어》
이제야 그의 말뜻을 알만했다. 그리고 여기를 다녀갔다는 어마어마한 벼슬을 가진 분이 족자에 남겼다는 《자연인이 되는 곳》이란 글의 함의도 알 것 같았다. 강덕만의 말대로 여기가 인간이 허울을 벗는 곳이라면 나는 허울을 벗지 못한 사람이다. 아니, 아예 그 허울을 벗으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자연인》이 되기를 거부해서일가, 아니면 내가…
《북경에서 산다는 녀석이 촌놈들보다 더 촌스럽구나. 이제보니 넌 사내가 아니야.》
방에 있던 아가씨가 전화로 알렸는지 강덕만이 와서 나한테 던진 첫마디였다.
《여길 거쳐간 사람들은 다 그런 서비스를 받니?》
《나름에 따라.》
《여긴 산장이 아니라 사창굴이구나.》
《그런 단어는 함부로 쓰는게 아니야. 말도 〈아〉하기 다르고 〈어〉하기 다르잖아. 례들면〈자연인이 되는 곳〉, 얼마나 듣기 좋은 말이니.》
《여긴 〈자연인이 되는 곳〉인게 아니라 〈타락의 함정〉이라고 하는게 더 적합할 것 같은데.》
《지금은 타락이라는 말을 안 써. 인간답게 산다고 해. 더 유식한 말을 쓰면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는다고 해.》
《그건 언어도단이야.》
《그만두자. 쟁론해 봤댔자 먹물이 안든 내가 너의 상대도 안되니까. 그건 그렇고 넌 생리적으로 문제가 있는게 아니야? 말하자면 고자? 하하하…》
《웃기지 마. 부부금슬 좋기로 북경판에서 소문이 짜해.》
《소박맞아 쫓겨난 아낙네처럼 밖에서 어정거리지 말고 들어가서 술이나 먹자. 색은 싫어도 술은 마다하지 않겠지?》
《방에 아가씨가 있으면 안 들어가.》
《너 혹시 녀자공포증이라도 있는게 아니니? 아까 그 아가씨가 그러던데 너같은 손님은 처음 본다더라. 혹시 우주인이 아닌가 하더라. 하하하…》
방에 들어가니 아가씨는 어느새 자리를 피했는지 없었다. 우리 둘은 양주 한 병을 따서 마시면서 밤을 밝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내가 강덕만에게 부시장인 한철이와의 이상한 관계에 대해 물었다
《너들은 이 좌석에서는 동생이 됐다 저 좌석에서는 형님이 됐다하는데 대체 무슨 관계니?》
《말그대로 관계지. 지금 관계라는 자체가 바로 일종의 생존수단이지. 그것도 아주 중요한 수단이지. 그것뿐이 아니야. 먹물이 든 너는 잘 알겠지만 지금 관계는 생존수단 차원을 넘어서 관계자본이 됐어.》
《관계자본? 나한테는 생소한 단언데.》
《글만 파먹고 사는 너한텐 별로겠지만 사업하는 사람들에게는 관계, 특히는 공직자들과의 관계는 필수적인 자본이지. 외국의 자본가들은 말이야. 가지고 있는 자본을 담보로 가치증식을 실현하지만 우리같은 사영업자들은 대체로 관계를 통해 그 가치증식을 실현하는게 지금 중국의 현실이야. 말하자면 중국특색이 있는 가치증식 현상이라고 할가…》
그 말은 맞는 말이다. 중국에서 치부한 사영업자들을 보면 대체로 빈털터리로 시작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자본이라곤 회전이 빠른 머리 하나 밖에 없다. 그래서 치부의 지름길을 찾은것이 바로 관계망 구축이였다. 관계망을 통해 대부금을 타내고 또 관계망을 통해 좋은 대상을 차지하고 관계망을 통해 탈세루세하고, 하여간 관계는 강덕만의 말마따나 가치증식을 실현하는 중국 특유의 현상이다.
《 그 뜻을 좀 알것같은데 한국의 류행어를 빈다면 한마디로 정경유착이구나.》
《그래 정경유착이지. 하긴 지금 정경유착을 권력과 돈의 공존관계, 말하자면 권력과 돈의 결탁으로 보는 부정적인 시각들이 많아. 기실 정경유착이란 좋은 단어야.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지말고 그 뜻을 정치는 경제를 떠날수 없고 경제는 정치를 떠날수 없다고 해석하면 좀 좋으냐.》
강덕만이가 정치와 경제의 상호 의존관계로 정경유착을 듣기좋게 풀었지만 정경유착은 어디까지나 부패현상이다. 정경유착은 어디까지나 서로 주고 받는 관계다. 누군가 정경유착은 무형자산과 유형 자산간의 교역이라고 했다. 권력자가 가지고 있는 무형자산에는 대부금 담보라던가 대상선정, 입찰 결정 권리, 전매특허권, 독점경영권 등등이 있지만 권력자가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무형자산은 국가기관의 신용과 권리이다. 그러한 무형자산을 돈을 사서 국가소유가 아닌 개인 소유의 유형자산으로 만드는것이 바로 회뢰자들이 노리는 목적이다.
《난 사업가는 아니지만 가끔 귀동냥해서 얻어들은 말인데너들 사업가들속에서 지금 이런 말이 류행이더구나. 〈국가간부는 사업가들에게 있어서는 가장 큰 무형자산이다〉》
《그 말 맞지. 그 말 나쁘게 해석해서는 안돼. 국가간부의 정확한 지도밑에서 경제활동을 활발하게 진행한다고 해석하면 얼마나 듣기 좋니.》
《너 진짜 달변이고 궤변인걸 보니 어디서 많이 얻어들었구나.》
《나 비록 소학교밖에 나오지 못했어도 사회대학은 몇십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거야. 날 우습게 보지 마. 사회생활에서 난 박사정도는 될거야. 참, 내가 너한테 명함을 주지 않았구나.》
강덕만이 넘겨준 명함장 뒷면엔 겸직한 직무명이 꽉 차있었다. 교육학원 명예학장, 체육인협회 명예회장, 장애자협회 명예회장, 문학예술련합회 고문, 사회발전기금회 명예회장, 21세기 발전전략 연구회 명예회장… 눈이 어지러워났다.
《다 돈 주고 산거겠구나.》
《돈 주고 산것이 아니라 내가 사회에 환원한 재부에 대한 평가라고 봐야지. 그런데 너 나와같은 사영업자들을 보는 시각이 좀 이상하다. 그런 시각에서 우릴 평가하면 넌 시대의 락오자야. 우릴 무시하지 마. 어느 한 지구를 상대로 낸 통계인데 부자들중 98%가 사영업자들이야.》
《나도 신문에 실린 그 통계를 봤어. 부자들중 70%가 농민출신이고 그 중 70%가 소학교 문화정도밖에 안된다고 했더구나.》
《그건 다 예전의 낡은 관념으로 정한 문화수준이야. 지금의 시각으로 대학을 론하면 청화대학도 대학이고 사회도 대학이야.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은 청화대학을 나온 사람보다 더 훌륭한 사회대학을 나왔다고 봐야지.》
궤변같은 말을 더 듣고 싶지 않았다. 졸음이 왔다. 그런데 강덕만은 말할수록 더 신이 나는 모양이였다. 내가 련거퍼 크게 하품을 하자 강덕만은 말을 거둬들였다.
《오랜만에 정치경제학을 풀어봤구나. 어때, 이만한 리론수준이면 어느 대학의 연단에도 나설만 하지. 하하하…》
《그래, 그 수준이면 인민대회당에서 국가 지도자들에게 강연할만도 하겠다.》
《지도자들의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경제에 대해서 진짜 아는 지도자가 별반 없어. 말로는 입버릇처럼 시장경제요, 경제전략이요 하며 떠벌리고 있지만 사실은 경제에 대해서 문맹과 다름없어.》
지도자들에 대한 화제가 새롭게 시작될가바 나는 이젠 좀 자야겠다고 옷을 벗었다.
《그래. 혼자 잘 자. 아가씨를 내쫓은걸 후회하지 말고 으흐흐…》
강덕만이 껄껄대며 나가버렸다.
이튿날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 텔레비죤을 켜니 D시 텔레비죤방송국의 아침뉴스가 나왔다. 시에서 렴정건설 좌담회를 열었다는 아나운서의 소개가 있은후 화면엔 회의 장면이 나왔다. 한철이가 한창 연설하고 있었다.
《…지금 일부 지도간부들 중 유행되고 있는 말이 하나 있는데 그 말인즉 이러합니다.〈권력을 행사하되 도를 넘기지 말고 선물은 받아도 뢰물은 받지말며 녀자는 좋아해도 조강지처는 버리지 말라.〉 일부 지도간부들은 이 말을 지도간부 자리를 지키는 일종의 좌우명으로 삼고 있습니다. 인민의 충복으로 되여야 할 사람이 이런 말을 좌우명으로 삼으면 되겠습니까. 저의 좌우명은 이렇습니다. 인민이 준 권력은 인민을 위한 사업에 쓰고 돈은 로임외엔 받지 않으며 녀자는 안해외엔 왼눈도 팔지 않는다…》
듣는 사람들이 열렬히 박수치는 장면이 한참 나왔다. 옛날에도 벼슬한 자에 대해 네가지 부류로 나누었는데 첫번째 부류는 백성을 사랑하고 덕정을 베푸는 자이고 두번째 부류는 덕정을 베풀지 않아도 남에게 해를 끼치는 일을 절대 하지 않는 자이며 세번째 부류는 작은 득실은 챙기되 나쁜 짓은 하지 않는 자이고 네번째 부류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리속만 챙기는 자이다.
《권력은 인민을 위한 사업에 쓰고 돈은 로임외엔 받지 않으며 녀자는 안해외엔 왼눈도 팔지 않겠다》는 한철은 첫 부류에 속한다고 봐야 할것이다.
내가 북경에 돌아온 후 강덕만이 출장길에 북경을 거쳐가면서 문안전화를 걸어왔다. 내가 술 한잔 사겠다고 하니 그럴 겨를이 없다면서 언젠가는 머리도 쉬울겸해서 가족동반하여 북경에 오겠으니 그 때 시간을 넉넉이 잡고 만나자고 했다.
겨울방학에 안해가 애를 데리고 목단강에 있는 친정집으로 간지 며칠 안되여 강덕만이 기별도 없이 문득 북경에 나타났다. 급히 떠나다나니 혼자 왔다고 했다.
《호텔에 들것없이 우리 집으로 가자. 나 혼자 뿐이야.》
《마침 잘 됐구나. 나도 호텔에 들 생각이 없었어. 호텔은 사람들이 북적대니까 귀찮기만 하고.》
그렇게 해서 우리 집에 거처를 정한 강덕만은 일주일이 되여도 떠날념을 하지 않았다. 내가 출근하면 강덕만은 혼자 집에서 텔레비죤이나 VCD를 보면서 날을 보냈다. 머리나 쉬울겸 북경에 왔다고 해서 그런가했는데 일주일이 지나니 좀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강덕만은 밖엔 전혀 나가지 않았고 집에 전화도 치지 않았다. 그를 찾는 전화는 한통도 없었다. 전화련락을 아주 끊어버린것 같았다. 저녁에 퇴근하면 강덕만이 저녁상을 차려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엔 그냥 술이였다. D시에 갔을적만해도 강덕만은 여유작작한 모습으로 궤변같은 소리를 탕탕 쳐댔었는데 그런 도고한 모습을 찾아볼수 없었다. 풀이 죽은 모습이였다. 술상에서 꺼내는 화제는 거이다 시시껄렁한것이였다. 술 마시면서 가끔씩 한숨을 토해내는것이 여러번 내 눈에 잡혔다. 무슨 사연이 있는것 같아서 한번은 직방 물었다.
《너 무슨 고뇌라도 있는 모양이구나.》
《뭐 없어.》
강덕만은 말끝에 가벼운 한숨을 달았다.
《너 그 대답이 아주 맥빠진걸 보니 꼭 말못할 사연이라도 있는가본데.》
《하긴 사연이야 사람마다 다 가지고 있지.》
《그런데 내 느낌으로는 네가 가지고 있는 사연은 보통 사연이 아닌것 같은데. 혹시 너 머리 쉬우려 온게 아니고 피신온게 아니니?》
이 말에 강덕만이 발끈했다.
《야, 내가 뭐 죄인이라고 피신다녀? 네 눈에 내가 그렇게 밖에 안 보여?》
《너 왜 흥분하는거야? 까놓고 말하지. 너 북경에 와서 밖은 왜 안 나가는거야? 그리고 전화통화는 한번도 없고. 회장이면 하다못해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가라도 알아봐야 할게 아니야.》
《너 지금 나한테 축객령을 내리는거니?》
《난 그저 네가 지금 고민하고 있는 일을 알고 싶을 뿐이야.》
강덕만은 말없이 술만 연거퍼 입에 털어 넣었다.
《술 그만해라. 몸 상하겠다.》
《오늘 취하고 싶구나. 미안하지만 오늘 술동무해달라.》
술 한병 다 비운후 강덕만이 내 앞에서 실사정을 털어놓았다.
《역시 네 눈이 날카로워. 네 짐작한대로 난 지금 피해 다니는 몸이야.》
강덕만은 차 밀수에 손을 댄지 오래 됐다고 한다. 몇해전 차 밀수를 시작할 때 시 정부에서는 지방의 세금수입을 늘이기 위해 차 밀수에 푸른등을 켜주었다고 한다. 차 한대당 입경비를 만원만 내면 그냥 차 패쪽을 달아주었다고 한다. 후에 국가해관총국에서 조사조가 내려오고 성 검찰기관이 조사에 개입된후로는 차 밀수가 즘즘해졌다고 한다. 강덕만이도 한동안은 차 밀수에서 손을 뗐다가 지난해에 다시 손을 댔는데 그것이 들통났다는것이였다. 승용차 한 두대면 몰라도 건설업체에서 쓰는 대형 트럭이 십여대라고 하니 걸려도 크게 걸렸다. 밀수사건으로 판정이 나면 강덕만뿐이 아니라 거기에 개입된 많은 사람들이 다치게 된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 정부 관련 부서와 회사측은 트럭은 밀수로 들여온것이 아니고 상대측 회사가 물어주어야 할 무역거래액을 차로 변상하여 보낸것이라고 서류를 꾸미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동안 조사를 피해 어디가서 숨어있으라는 권고가 있어 강덕만은 나의 집을 피신처로 택했다고 했다.
《너 나를 죄인으로 만들었구나. 비호죄, 은닉죄, 또 무슨 죄명이 있더라…》
《너한테 련루되게 할 생각은 꼬물만치도 없어. 넌 모른다고 하면 다야. 사실 너한테 비밀로 지키려고 했었는데 네가 너무 캐묻는 바람에. 오늘 내가 말 안한셈으로 치자. 너도 아무 말도 못들었고.》
그 후 며칠이 지난후 강덕만이 장거리 전화를 한통하겠다고 했다.
《너 이제보니 휴대폰도 없구나.》
《내 휴대폰 번호는 검찰기관에 체크돼서 집에 두고 나왔어.》
내가 저녁상을 차리는 사이에 강덕만은 어디엔가 전화를 걸었다. 조용조용 말하던 강덕만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면서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래 나만 불구덩이에 밀어넣고 너들은 싹 빠지겠다는거야? 뭐라구? 한 사람의 작은 희생으로 여럿을 구한다? 개소리치고 있네. 너 똑똑히 알아둬. 나 혼자 무덤을 판게 아니야. 무덤은 함께 판것이니까 무덤에 들어가는것은 나뿐이 아니야. 너를 비롯해서 여럿이지. 그러니 내가 묻힐 무덤은 합장무덤이 될거다. 그래 나 지금 흥분하고 있다. 좋다, 조용히 네 말 먼저 듣겠으니 말해봐.》
강덕만은 한참이나 말없이 상대방의 말을 한참 듣기만 하다가 《그래 알았다. 내 생각해 보구.》하고는 통화를 끊었다.
《무슨 일이 생겼니?》
《나 원 기가 막혀서, 나 보고 자수하라는거다.》
《누가?》
《부시장이.》
《한철이가?》
강덕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한철이와 통화했니?》
《그래, 그 녀석이 하는 말이 대형 트럭은 상대측 회사에서 물지못한 무역거래액을 변상한것이라고 일단 일을 마무리 했는데 벤츠 승용차 네대만은 안된다는거야. 그 녀석이 하는 말이 내가 희생양으로 나서 달라는거야. 뒷일은 자기가 다 처리하겠대.》
《어떻게 할 작정이냐?》
《내 입만 터지면 여럿이 함께 무덤으로 갈수 있겠지만 그럴 필요까진 없잖아. 그 녀석이 하는 말이 자수하면 기껏해야 유기형 1년에 집행유예 1년정도 될거니까 나보고 희생양이 돼달라는거야.》
《너들 관계는 대체 무슨 관계냐?》
《좋게 말하면 〈한 전호속의 전우〉이고 듣기싫은 말로 표현하면 〈한 도적배에 오른 해적〉이지.》
그날 밤 강덕만은 한철이를 《한 전호속의 전우》로 아니, 《한 도적배에 오른 해적》으로 만든 경과를 피력했다.
사영업자가 가장 필요한것은 돈이다. 빈손으로 사업을 시작한 강덕만에게 있어서는 무엇보다 먼저 대부금을 손에 넣어야 했다. 그래서 구축한것이 관계였다. 소학교나 겨우 나온 강덕만이 부시장에게 접근한다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였다. 그러나 관계를 구축하는데는 상대방의 처와 자식, 친척을 통하는 지름길이 있었다. 그래서 돌파구로 잡은것이 한철의 처였다. 지금 유행어로 《일 잘하는 놈 말 잘하는 놈보다 못하고 말 잘하는 놈 불어대는 놈보다 못하고 불어대는 놈 아첨하는 놈보다 못하며 아첨하는 놈 찔러주는 놈보다 못하다》는 말이 있다. 돈을 그냥 찔러주면 받지 않을가 싶어 강덕만은 회전이 빠른 머리를 굴렸다. 강덕만은 우선 한철의 처를 마작판으로 끝어들였다. 한철의 처는 워낙 허영심이 많고 놀음을 좋아하는 녀자라고 했다. 처음엔 놀음삼아 그냥 노는척하다가 나중에는 돈을 걸었는데 번마다 강덕만은 미리 짜고들어 그냥 져주었다. 한철의 처가 돈을 따게 되면 《재운이 트면 관운도 튼다》는 말까지 개여올리는것을 잊지 않았단다. 강덕만의 말로는 《고기는 미끼만 보지 그 속에 낚시가 든줄 모른다》는 것이다. 두번째 절차로 선물공세를 들이댔다. 선물도 그저 사 들고 가는식이 아니였다. 화초를 기르기 좋아하는 한철의 처에게 강덕만은 시가로 만원되는 군자란을 선물했다. 그리고는 이튿날 수하 직원을 한철이네 집으로 보냈다. 그 직원은 군자란 소장가로 자처하면서 세상에 보기드믄 군자란이니 한철의 처에게 군자란을 팔라고 했다. 값은 부르는 대로 주겠다고 했다. 나중에 한철의 처는 10만원을 받고 그 군자란을 팔았다. 실로 강덕만의 수완은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받는 자도 마음 편히 받게 하는것이 지금의 회뢰기교라고 했다. 강덕만은 지금 세상엔 가능하지 못한 일이 없다고 했다. 례들면 뱀이 코끼리를 삼키는것도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그다음 전략은 일가 친척들을 회사에 받아들이는것이였다. 적어도 부장직에 앉혀놓고 하는 일 없이 로임과 장려금을 꼬박꼬박 받게 했다. 한철의 아들이 외국류학에 드는 담보금과 학비, 그리고 생활비용을 강덕만이 전담했다.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강덕만은 한국에 있는 한철의 삼촌이 돈을 대주는것으로 만들었다. 항일전쟁 때〈곡선구국〉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강덕만은 관계구축에서〈곡선관계〉라는 새 단어를 발명해 냈던 것이다. 조선말 속담에 〈곁을 쳐서 속을 울린다〉란 말이 있다. 강덕만이 노린 효과가 바로 그것이였다. 〈곁〉을 부지런히 쳐대니 나중에는 〈속〉이 울렸다는것이다. 한철의 말 한마디에 대부금을 쉽게 타내올수 있었고 한철이 싸인한 쪽지 한장으로 쉽게 돈을 벌고 리윤이 많은 대상을 입찰할수 있었다. 강덕만의 좌우명이 바로〈돈을 벌려면 간부를 움직여라〉이다.
《너하고만 하는 얘기니까 너 알고 나 알고 하늘이 안다고만 생각해라. 한철의 말대로 기껏해야 유기형 1년, 그것도 집행유예 1년을 마치면 다시 사업을 시작할수 있을거고 한철이와의 관계도 그냥 남아있으니 재기가 빠를거야. 한철 그 녀석은 승진에 승진을 거듭할 감이야. 그러니 한철이와의 관계에 대해선 절대 비밀에 부쳐달라. 혹시 그 녀석이 아예 발뺌을 해서 날 아주 지옥에 처넣으면 너 글로 써서 세상에 알려라. 하긴 그럴 녀석은 아니지만 정치하는 놈 량심 개 떼줬다는 말이 있지 않니. 만일을 대비해서 하는 말이다.》
아주 유언같은 말이였다. 강덕만의 치부비결을 들으니 갑자기 한철의 처가 한철을 대신해서 동창모임에서 내놓은 알아맞히기 문제가 떠올랐다.
《너+나=?》
이 문제를 강덕만과 한철의 관계에 적용한다면 어떤 답이 나올가? 그래서 이 알아맞히기 문제를 강덕만에게 냈다.
《나와 그 녀석을 합치면 뭐가 되냐 말이지. 보나마나 관계지.》
《그건 정답이 아니야.》
《그럼 한국의 유행어를 빈다면 〈정경유착〉이겠지.》
《그것도 정답이 아니야.》
《그럼 무엇이 정답이야?》
《부패야! 부패!》
강덕만은 쓰게 웃기만 했다.
한달이 지난후 강덕만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자수했기에 벌금 60만원을 내고 감옥행은 면했다고 하면서 한철이가 시장으로 승진했다고 했다. 그러곤 강덕만은 이런 말을 했다.
《지난번에 너 알아맞히기 문제를 냈었지. 네가 말한 그 문제 정답이 맞지않아. 정답은 말이야. 나+너= 공존이야. 공존!》
그 말에 나는 어이없는 웃음만 흘리고 말았다.
2001년 6월 18일
북경에서 탈고*본 작품은 도라지 2001년 문학대상 수상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