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료녕신문 2011-12-13 리덕권 기자]
수수한 옷차림에 텁텁한 말투, 직업외교관과는 어쩐지 거리가 멀어보이는 계옥근(1963년생)씨, 그러나 그는 분명 근 20년을 외교관으로 보내온 오리지날외교관이였다.
심양의 한 조선족군인가정에서 태여난 그는 어려서부터 한족학교를 다녔고 중학교도 료녕성실험중학교를 졸업했다. 중국재정대학 국제무역학부를 졸업하고 강소성 련운항시상품검사국에 배치받았다가 2년후인 1986년에 독일류학길에 올라 함브르그대학에서 국제정치외교과를 전공, 1989년에 석사학위를 수여받고 졸업한후 주함브르그중국상무부사무소에서 무역특파원으로 근무하다가 1995년에 주독중국대사관 보은령사관에 전근해 문화참사로 직업외교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2002년말, 중독 량국간 외교관 교환파견협의에 의해 그는 독일문화관광부에 파견, 중국담당부서에서 근무하다가 2007년후에 북경에 돌아와서 주중독일문화부 령사사무소에서 독일류학을 희망하는 동북지역 류학신청자들의 자격심사를 위주로 하였다. 3년전부터 심양에 와 료녕성정부 대외봉사센터에 사무실을 잡고 근무하고있다.
량국간 문화교류가 주업무이기도 한 그지만 장기간 독일에 체류하면서 경제계인사들과도 친분을 쌓아 독일과 료녕성간 경제교류방면에서도 기여하였다. 독일 대표적 자동차제조회사 “푸마”의 심양진출에도 그의 역할이 있다. 상담초기단계부터 통역을 맡았고 심양시정부책임자들의 독일행을 안내하였으며 또 독일관계인사들의 심양방문과 고찰에 참모역할을 해주었다. 또 독일의 한 대형광산기계제조회사와 기타 여러 독일회사가 심북신구지역에 진출하는데도 교량역할을 해주었다. 성 및 심양시정부와 심북신구관계자들은 그의 능력을 높이 평가했고 독일측에서도 그의 로고를 높이 치하해주었다.
계옥근씨는 독일체류기간 동북3성과 성내 각지의 정부책임자들이 독일을 방문할 때 독일정부 또는 대기업책임자들과의 만남을 주선하여 넓은 인맥관계를 쌓았는데 이는 그가 동북에서 사업을 펴나갈수 있는 밑거름이 되였다. 영어, 독일어, 에스빠냐어에 능통하고 유럽사정에 밝은 계옥근씨의 적극적인 교량역할로 하여 독일계기업인들이 동북지역을 방문하고 동북이나 료녕지역에 진출하고있다.
그의 소개에 따르면 독일은 유럽에서도 보수적성향이 비교적 강한 나라인데 전에는 독일대학들에서 외국류학생을 잘 받지 않았다. 지난 1980년대 그가 함브르그대학에서 류학하던 시절만해도 대학내 중국류학생은 거의 없었다. 후에 독일대학들에서 중국류학생들에게 조금씩 문호를 개방해 년평균 100여명씩 받아 현재 3,500여명의 중국류학생들이 독일의 수십개 대학들에서 공부하고있다. 독일은 사회복지가 잘되여 대부분 대학들에서는 학비를 받지 않거나 적게 받는다. 외국류학생들한테도 학비를 받지 않거나 적게 받기에 독일에 류학가면 학비 걱정없이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만 해결하면 된다.
그렇게 어렵던 독일류학길이 열려 국내에서 독일류학을 원하는 젊은이들이 대폭 늘어나고있다. 계옥근씨가 접수한 서류만해도 수백통에 달했고 그중 36명을 내보냈는데 그중 조선족젊은이는 2~3명밖에 안돼 유감이라고 말했다.
중국내 영어붐이 지속되여 영어인재는 많으나 독일어인재는 극히 드물다. 래년 1월 심양에 설치하는 독일령사관에서도 부득불 상해, 광주 등 남방에서 독일어에 능숙한 직원들을 모집해왔는데 독일어만 잘해도 취직이 그만치 쉽다는것이다.
계옥근씨는 “조건이 웬간한 조선족젊은이들이 독일류학을 원하면 기꺼이 돕고싶다”며 “독일어기초가 없더라도 영어4급 이상이면 독일류학을 신청할수 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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