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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송월-조선족전통음식문화의 선봉 “코스모”
조글로미디어(ZOGLO) 2011년7월8일 10시35분    조회:1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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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름 : 김송월

  (흑룡강신문=하얼빈) 연변조선족자치주 수부도시 연길에서 “코스모(考世茂)”는 조선족전통음식업계의 대표적 브랜드의 하나로 널리 알려져있다. “코스모”는 대우주라는 뜻의 영음간칭이나 코스모스라는 쑥꽃의 준칭으로 아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조선족민속음식업의 한길을 헤쳐온 “코스모”의 총경리 김송월씨의 창업일화와 꿈을 향한 그 도전의 행보를 알게 되면 “코스모”라는 그 이름의 진의를 다소나마 읽어낼수 있을것이다.

[길림신문 2011-07-08 김청수 기자]

연길우의유한회사 김송월총경리의 창업이야기

       김송월(金松月)프로필

  1956년 길림성 안도현 만보진 홍기촌 출생

  빈하중농 추천으로 농업대학 졸업

  1983년-1995년 연변주위복무공사 우의식당, 호텔 경영

  1994년 연길우의유한회사 창립

  1998년 연길 “코스모호텔” 개관

  2005년 모아산 “코스모산장-민속음식체험관” 개관

  사회직무

  연변조선족자치주 정협위원

  연변조선족기업가협회 부회장

  연변조선족전통료리협회 부회장

  주요영예

  2008년 길림성인사청, 성부녀련합회에서 “코스모”를 3.8문명일터로 명명

  2010년 4월 18일 한국음식문화관광협회로부터 한국국제료리협회 금상 수상

  2010년 7월 상해음식협회 세계박람회봉사특별료리상 획득

  2010년 길림성상해세계박람회참여주비위원회 최우수참가단위로 명명

  2010년 연변상해세계박람회참여조직위원회 특수공헌단위로 명명

  2010년 7월 중국전지구한상대회 한식국제화축전 “사랑하는 김치” 대상 수상

  2011년 연변기업가협회로부터 걸출한 경제인물로 명명

 

  창업은 고생을 딛고 일떠선다

  연변주위복무공사 우의상점 책임자였던 김송월씨는 상점경영이 잘되지 않자 1986년 상급에 청시하여 11명의 대기업자들을 거느리고 상점을 도급맡고 식당으로 변경시켜 경영을 시작했다. 당시 단돈 2000원이 창업밑천이였다.

  1998년경에는 2800평방메터되는 코스모호텔을 구매해들였다. 식당장식을 하려니 30만원 돈이 있어야 했다. 그는 고민끝에 2만원을 꿔갖고 부기원과 함께 장춘삼성원자재상점으로 찾아갔다. 곱슬파마머리에 수수한 옷차림을 한 이 조선족녀인들이 가긍하게 느껴졌던지, 빈 주먹으로 뭔가를 일떠세워보려는 그 의지가 대견했던지 상점주인(조선족)은 계약금 2만원만 받고 모든 설비들을 외상으로 내주었다. 그는 버는족족 빚부터  갚았다.

  2002년경에는 호텔을 두층 더 올리고 5000평방메터되는 코스모호텔을 다시 장식하고 한식,중식, 일식, 호텔을 겸비한 종합경영으로 호경기를 맞이하였다. 워낙 1994년부터 조선족전통음식인 개고기보신탕이며 닭곰을 개발하고 김치며 된장류를 직접 담가 음식상에 올려 고객들의 호평을 받아온 김송월총경리는 조선족전통음식의 맥을 살리고 연변을 대표하고 조선족을 대표할수 있는 전통음식문화의 장을 마련하고싶었다.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조선족문화를 자랑하고 또한 우리 후손들이 전통음식문화와 옛 생활문화를 잊지 않게 하려고 그는 민속체험관을 개설하기로 작심하였다. 하여 2005년에는 2000평방메터되는 코스모민속체험관까지 버젓이 차렸다.

  20여년간 음식업을 경영해오는 동안 12년은 주방에서 종업원들과 함께 일하면서 사시절 장화를 벗어본적 없은 김송월총경리이다. 그동안 그는 무릎을 꿇고 마루바닥을 손걸레질하며 알뜰한 일본새로 솔선수범하였다. 오늘 이때까지 그는 외출하는 날을 제외하고는 매일과 같이 아침 일찍 시장구매에 나서고 삼륜차로 물건을 실어들이면서 한가한 날이라고는 하루도 없다.

  음식문화의 규모화 표준화 록색화

  김송월총경리는 25년간 종업원들과 함께 조선족전통음식에 대한 연구와 개발을 견지해왔고 음식의 표준화와 록색화, 유기농화에 골인하면서 나날이 고객들의 신임과 칭찬을 한몸에 받고있다.

  “백년김치”의 산맛, 전통떡의 진미는 시어머니의 가르침으로 대를 이어가면서 현재 주급무형문화재 명록에 올랐다. 친정어머니의 휘하에 종업원들이 팔을 걷고 담그는 고추장은 표준량과 표준간새로 독특한 원맛을 변함없이 고스란히 지켜간다. 코스모산장에 줄느런히 늘어선 1000여개에 달하는 장독대에는 로투구 대기촌 된장기지에서 만들어온 메주장들이 여러 해를 넘기며 숙성되여가고있다. “코스모”만의 김치와 장, 떡의 맛과 품위는 시장의 공인을 받아 백화점 슈퍼로도 진입했다.

  김치 담그는 비법 별거 아니란다. 고추가루와 소금은 관건으로서 빨갛게 익은 딸기빛 고추가루는 꼭 화룡 룡화촌(기지) 고추가루만 쓰고 소금은 꼭 3년이상 간물을 뺀 소금만을 쓴단다. 이것은 코스모가 10여년을 변함없이 지켜오는 비법중의 비법이다. 공해가 없는 두만강변 산밭 고추가루는 시간이 지날수록 빛갈이 돋아나고 맛이 구수해지며 간수 뺀 소금은 단맛이 점점 살아나면서 김치가 아삭아삭해지기 마련이란다.

  손님상의 밑반찬 또한 장백산의 참나물로 사시절 록색반찬이다. 한초, 참취, 오갈피, 기장나물들은 피를 맑게 하고 위장을 돕는 약재들이다. 당지에서 채집하여 이도구일대의 약수동샘물에 데쳐 당장에서 포장하여 얼궈두면 날이 갈수록 천연록색으로 되살아나며 고객들의 건강을 지켜주게 된다.

  민속음식의 깊은 맛과 품위를 살려내는것 못지 않게 중요한것이 또 있었다. 그 맛에 어울리는 문화적분위기였다. 김송월총경리는 모아산기슭에 코스모산장을 짓고 민속음식체험관을 개설하여 음식과 환경이 어우러지는 보다 완벽한 조선족문화공간을 마련하였다.

  북경, 상해 등 전국 각지로부터 장백산을 찾는 관광객들은 조선족음식문화의 대표적인 명소인 코스모산장에 이르러 엄지손을 내민다. 지역 타민족 주민들은 가족 함께 체험관을 찾아와 조선족들의 옛 생활환경, 도구, 복장 등을 참관하고 체험하면서 조선족들보다 민속음식을 더 즐겨먹는것이 신기할 정도다. 귀객들을 모시고 코스모산장을 찾는 조선족들은 자부심 가득 경탄의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정말 대단합니다. 연변의 대표적문화를 전국에, 세상에 알리는데 큰몫을 감당하고있습니다. 큰공을 세웠습니다.”

  그때마다 그는 자신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에 위안을 느꼈고 마음은 흐뭇해났다. 동시에 어깨가 무거워지는 감을 느끼기도 하였다.

  성공은 상해세계박람회에서 확인

  “밑져도 영광이다. 100년에 한번 있는 세계박람회에 ‘코스모’라는 이름 석자만 남긴다 해도 그건 성공이다.” 이것은 상해세계박람회 진출에 앞서 김송월총경리가 내린 결책이였다.

  70만원이라는 계약금을 내고 또 각종 검증을 거쳐 길림성의 유일한 대표로 상해진출권을 쥐게 된 “코스모”는 4월 20일부터 박람회장에서 시영업을 시작했다. 신청메뉴들로는 비빔밥, 옥수수국수, 불고기덮밥, 김밥, 김치볶음밥, 랭면, 김치였는데 가장 대표적인 음식인 랭면과 김치는 짤리고말았다. 생음식, 찬음식은 금물이란다.

  조선족의 대표적인 음식을 선보일수 없게 된다는것이 한심하게 안타까왔다. 김송월총경리는 박람회장내 관리국까지 3시간 오가는 거리를 11번 걸어서 찾아갔다. 조숙매경리는 발뒤축 껍질이 벗겨지고 피가 터지면서 관리국으로 20여차 다녀왔다. 그는 조선족대표음식에 대해 설명하고 또 설명하면서 드디여 허락을 받아냈던것이다.

  6월 13일, 조선족 랭면과 김치 메뉴를 소개하는 방송이 랑랑하게 박람회장에 울려퍼졌다. 그들은 박람회장에서 수도물을 받아서 끓여내고 또 식혀서는 온도를 맞춰가며 육수물을 만들어냈다. 랭면이 하루 평균 500그릇씩, 잘 나가는 날에는 1000그릇도 넘게 팔렸다.

  관리국에서는 하루에 열두번도 넘게 위생검사, 질검사를 했다. 서로가 손을 맞춰가며 알뜰 경영을 하여 무사히 검사에 통과되였을뿐만 아니라 매일마다 하는 검사통계에서 33개 성의 대표음식업소들중 줄곧 5위안에 들었다. 종업원들은 풍담이 튀여나도록 뛰여다녔고 땀을 훔칠 사이도 없었다.

  매장복무원뿐만 아니라 주방일군들까지 모두 한복차림으로 일했다. 지나는 관객들은 “조선에서 왔나봐. 한국에서 온건가?” 하면서 갸웃거렸다. “중국 길림성대표팀 ‘연변코스모’입니다!” 복무원들마다 손님들에게 일일이 반복하면서 “길림성대표”, “연변코스모”를 입에 싹이 나도록 번졌다.

  “그렇게 우리는 드디여 해냈습니다. 길림성대표 ‘연변코스모’의 이미지를 세계박람회에 깊이 수립시켰을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성과도 크게 올렸습니다.” 김송월총경리는 상해세계박람회가 끝나는 마당에서 처음으로 성공의 대희열을 만끽하였다고 터놓는다.

  꿈은 바야흐로 무르익어간다

  “20여년간 하루도 쉴새없이 분투해오면서 언제나 든든한 뒤심이 되여주는 가족이 있다는것, 오래동안 많은 종업업들이 나를 지켜주고있다는것이 가장 큰 힘이 되고 또 가장 만족스럽습니다. 그속에서 꿈과 욕망으로 벅차게 살아가고있을뿐입니다.” 김송월총경리는 계속되는 계획들을 손으로 꼽아보였다.

  5년 계획으로 황토집 솥가마에 나무불을 때면서 콩메주를 띄워 장을 담그고 김치는 산굴에서 여러 해를 묵삭이면서 순맛을 살리고 김치를 백년유산으로 국가급을 쟁취할것이며 장독대도 2000개로 늘리고…그는 조선족전통음식의 고유의 맛을 고집하고 고수하는데 승산을 걸고있는듯싶었다.

  “조선족문화를 자랑하고 조선족의 기를 살리는데 음식문화가 물론 중요합니다. 하여 오늘 이때까지 전통음식문화의 계승과 개발로 25년을 분투해왔습니다. 하다면 이제 남은 여생에 또 어떤 작품을 내놓을것인가? 저는 조선족전통건축문화를 자랑할수 있는 한옥을 짓기로 작심하였습니다.”

  그는 조선과 한국의 전통건축문화의 진수를 통합하여 조선족특색의 한옥문화공간을 마련하고저 이미 정부비준을 받았고 곧 시공에 들어간다고 한다. 한옥안에서 비단이나 베, 창호지 같은 부드러움을 만끽하면서 여유를 즐기고 향수를 느낄수 있는 은은한 문화공간을 개발하는 이것은 그의 10년 계획중의 일환이라고 한다. “그때가 되면 사람도 기업도 상품도 모두가 브랜드로 거듭날것”이라 그는 믿어마지 않고있었다.

  한 평범한 조선족녀성으로서 가슴에 꿈의 우주를 품고 자신을 믿고따르는 종업원들과 함께“코스모”라는 조선족대표문화의 종합대청사를 일떠세워가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코스모”는 과연 이름 그대로 대우주, 바람결에 하느작이는 쑥꽃이 아님을 절감할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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