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강생에 의해 살해된 김문철부부
조글로미디어(ZOGLO) 2011년6월2일 15시32분    조회:11072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흑룡강신문=하얼빈 2011-06-02)1936년 5월 25일 새벽, 할빈기차역에 도착한 렬차에서 지식분자 기질이 다분한 젊은 부부가 내렸다. 이들은 중국공산당조직이 할빈에 파견한 김문철(조선족), 도개손 부부이다.

  이때부터 김문철은 중공할빈시위서기를, 도개손은 시위선전부장을 맡았다.

  1934년 4월 당조직이 파괴된후 반동파들은 공산당 조직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특무, 경찰, 헌병들을 각 곳에 분포시켜 지하당원에 대한 대규모 체포를 시도하고 있었다.

  김문철부부는 중공할빈특별위원회의 지도밑에서 공장, 학교에 들어가 당의 사업을 전개했다. 이와 함께 이들은 반일회원을 동원하여 항일투쟁도 전개했다.

  1936년 6월 13일 반역자의 밀고로 일본괴뢰당국은 동북에서 대규모 수색체포 작업을 펼치기 시작했다. 할빈시위조직부 책임자 장경문 등 52명이 체포됐으며 삼과수 기관차작업구간 당지부가 완전히 파괴되는 등 할빈 당조직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이로 인해 김문철, 도개손부부의 처지가 매우 위태롭게되자 만주성위대표의 동의를 거쳐 6월 17일 이들 부부는 할빈을 떠나 북평에 갔다.

  본명이 김찬인 김문철은 이름을 김만성, 장문철, 김철로 바꾼적이 있다.

  그는 1911년 조선 진남포에서 태여나 1922년 부친을 따라 중국에 이주하여 북경 통현에 정착한후 중국 국적에 가입했다. 그후 통현 로하중학교에 입학했다.

  1929년 중국공산당에 가입했으며 이듬해 서울, 평양 등에 파견되여 그곳에서 당의 사업을 전개했다. 1932년 반역자의 배신으로 신의주에서 평양으로 가는 기차에서 체포됐다. 옥중에서 김문철은 당의 기밀을 입밖에 내지 않았으며 공산당 혐의를 받고 7년형을 언도 받았다가 1934년 석방되여 북평에 돌아왔다.

  도개손과 김문철은 혁명투쟁중 만나 1935년 결혼했으며 얼마 안돼 딸을 낳았다. 1937년 9월 부부는 9개월되는 딸을 안고 연안에 왔다. 이때 도개손은 전극민이라는 가명을 쓰기 시작했고 중앙당교 제13반에 들어가 공부했다. 김문철은 장문철이라는 가명으로 섬북공학 제1기 제2대대에 들어가 공부했다.

  1937년말 강생이 중앙당교 사무를 주관하게 됐으며 얼마 안돼 김문철과 도개손에게 '일본간첩'이라는 죄명을 씌워 투옥시켰으며 1939년 3월 비밀리에 사형을 집행했다. 이때 김문철은 28세, 도개손은 27세였다.

  1982년 2월 13일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 '도개손, 김문철동지에 관한 재조사 결론'은 "두 명의 동지는 당의 비밀사업 종사기간 당과 혁명을 위해 유익한 일을 했다. 장기적으로 억울하게 살아온 이들의 루명을 벗겨주고 명예를 회복해준다"고 밝혔다. /할빈시위 당사연구실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조선족 중국 최대 소도시건설운동의 개척자 총지휘자로 나서 흑룡강성농간총국건설국 조선족 권혁우 국장   (흑룡강신문=하얼빈) 최광엽 특약기자 = 옛날의 황량한 황무지였던 북대황이 오늘날 중국 최대 상품량기지로 개발 되였으며 더욱 눈부신것은 113개 국영농장(현, 처급단위)이 백여개 소도시로 우후죽순마냥 용솟...
  • 2010-12-08
  • 조선족전통음악무용 이어가며—장익선선생의 보람찬 분투편린 [연변일보 허국화 기자 2010-12-05]중국에서 유일한 조선족전통예술을 대상으로 하는 “진달래”컵 중국조선족전통음악무용경연이 제3회를 이어오면서 젊은 세대들에게 전통예술을 계승, 발전시키는데 좋은 무대를 마련해주고있다. 기자는 일전에...
  • 2010-12-06
  • 신봉철 길림공상학원 당위서기.젊은 대학의 신임 조선족당위서기 첫 50일 길림공상학원 당위서기 신봉철을 만나본다 [길림신문 한정일,장춘영,최화 기자 2010-12-02]● 국내 고등학교(연변대학 외)의 유일한 조선족 제일책임자 ● 교정내 화제가 된 신임당위서기의 5가지 약속 ● 젊은 대학의 제2차창업― 현대화...
  • 2010-12-03
  • ― 연변대학부속중학교 고급교사이며 과외작곡가인 최나의 이야기    6월 12일, 연길시록원호텔에서 연변음악가협회, 연변아동음악학회에서 주최한 최나소년아동가요집 《아빠 고향》 및 CD음향제품 《아빠 고향》 발행식이 열렸다.일찍 1989년에 연변대학 예술학원을 졸업하고 연변대학부속중학교에서 교편...
  • 2010-12-02
  • 연변가무단 관현악단 수석지휘 조예천의 이야기안국민, 리하수, 최룡국 등 연변예술의 한시대를 풍미했던 원로예술인들이 선후로 퇴직, 사업일선에서 물러나며 연변예술계에 공백으로 남을번했던 관현악대지휘, 바로 그 공백이 될번한 자리에 선배들의 계주봉을 이어받아 젊음의 패기로 우뚝 선 한 남자가 있다. 현재 연변가...
  • 2010-12-01
  • 《전기기구수리기록책》을 펼쳐보며 회억을 더듬고있는 채규억로인 [길림신문 신정자 기자 2010-11-29]우리 신변에 종신토록 사회와 대중의 리익을 도모해 뭇사람들의 존경을 받고있는 로인 한분이 계신다. 그가 바로 길림성교육청 민족교육처 전임 부처장이고 정청급간부인 채규억(83세) 로인이다. 그는 통화시 교육국으로...
  • 2010-11-29
  • [연변방송  11-26일 리은파기자]    반세기동안 민족악기제작에 몸 담아온 온 조선족장인이 있습니다. 그가 바로 올해 74세인 김계봉선생입니다. 김계봉선생이 처음 악기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소학교 6학년 때였습니다. 선생은 퉁소를 잘 부는 큰형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음악에 뜻을 두었지만 어려운...
  • 2010-11-27
  •    관절외과치료에 크게 기여한 렴영운박사    사천 문천지진때에도 지원의사로 급파   (흑룡강신문=하얼빈) 윤선미 리수봉 기자 = 할빈의과대학 제4부속병원 정형외과 렴영운(42세, 흑룡강 계동출신, 사진)주임은 관절외과 치료에서 기여가 크다.   그의 연구방향은 뼈와 관절외과복원재...
  • 2010-11-26
  • 민족력사 전사회의 리해 열정 요청—연변대학 민족력사연구소 소장 김춘선교수와의 인터뷰 [연변일보 2010-11-23]정치, 경제, 문화 등 조선족력사의 모든 면을  망라한 대형력사저서 《중국조선족통사》가 요즘 갓 출판된데 이어 또 총 100권으로 예정되는 《중국조선족사료전집》의 출판을 앞두고 열혈력사...
  • 2010-11-24
  • 올 8월 대경교향악초청공연장에서 나어린 연주자동료들과 어깨나란히(왼쪽 첫사람). 55년 무대예술생애에 무지개 비꼈다 연변가무단 황룡화악사의 이야기를 듣는다 [길림신문 김청수 2010-11-23]76세의 로인이 대형교향악공연단의 일원으로 무대에서 손주벌 되는 단원들과 호흡을 맞추며 비올라(中提琴)를 연주하는 모...
  • 2010-11-23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