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국민가수 김인숙의 노래인생
조글로미디어(ZOGLO) 2011년4월7일 08시46분    조회:8148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중앙방송 2011-04-06 글: 채선화]

1936년 11월 룡정의 한 가난한 농민가정에서 태여나 흑룡강성 오상현의 어느 시골에서 소학교에 다닌 김인숙은 어려서부터 노래를 잘 불러 꾀꼴새로 소문났고 12살 어린 나이에 조선의용군 제3지대 선전대에 입대하면서 노래인생을 시작하였다.

당시 소학교 5학년에서 공부한 김인숙은 조선의용군 제3지대 선전대의 공연이 끝난후에 마련된 지방군중들과의 련환모임에서 소학생대표로 독창을 하였다. 그런데 선전대의 배우들이 노래를 참 잘 부른다고 칭찬해주면서 선전대에 참가하라고 할줄이야?! 흥분을 가라앉힐수 없게 된 김인숙은 며칠후 아버지를 졸라 할빈에 자리잡고있는 조선의용군 제3지대 선전대를 찾아가고야말았다.

조선의용군 제3지대 선전대에서 김인숙은 백고산선생한테서 음악리론을 배우고 조득현선생의 안무를 보고 무용을 익혔으며 왕향선생한테서 성악을 배우면서 음악수양을 닦았다.

이렇게 예술수양을 제고하는 한편 부대를 따라 목단강, 밀산, 계서, 상지, 길림 등지에 가서 공연하고 장춘해방전투에도 참가하면서 고생도 많이 했다. 전쟁년대라 낮에는 적군의 폭격때문에 움직이지 못하고 밤이면 야전부대를 따라 행군했는데 하루에 보통 25∼30킬로메터, 많으면 50여킬로메터를 강행군할 때도 있었다. 어른들도 견디기 힘든 상황이였지만 나어린 김인숙은 용케도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혁명전사로 성장하였다.

1948년 할빈에서의 꼬마전사 (오른쪽 첫번째 김인숙과 정인덕).

 

인기가수로 환영받던 시절

1948년, 조선의용군 제3지대의 꼬마선전대원들과 더불어 할빈민족사무처문공단에 들어간 김인숙은 1949년 할빈민족사무처문공단이 연변문공단(연변가무단)과 합병하면서 연변가무단 배우로 되였다. 이때로부터 연변가무단 독창가수로 활약하게 된 김인숙은 선녀같이 아름다운 용모, 감칠맛나는 노래, 춤을 동반한 황홀한 표현으로 어디에서나 환영을 받았다.

1953년 심양에서 펼쳐진 제1차 동북3성문예콩클에서 김인숙은 최정연 작사, 정진옥 작곡으로 된 《처녀의 노래》를 불렀는데 재청을 요구하는 박수소리가 그치지 않아 수차례 답례끝에 그 노래를 다시 부르고서야 다음 종목으로 넘어갈수 있었다고 한다.

 1953년 심양 제1차동북3성 문예콩쿠르에서 《처녀의 노래》를 부르는 김인숙 .

그번 콩클에서 우수연기상을 수상한 김인숙은 1959년에 동북3성 복건전선위문단의 성원으로 3개월동안 위문공연에 참가하여 독창, 2인창에 중창까지 번마다 10여수의 노래를 불러 부대장병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당시 하루에 5차례 공연을 해야 하는 로고도 마다하고 여가 시간에 부대장병들의 옷을 빨고 깁고 하는 옹군우속 옹정애민 활동에도 적극 참가해 동북삼성복건전선위문단에서 수여한 선진사업일군의 상장을 받기도 했다.

그해 북경에서 진행된 국경 10돐헌례공연에서도 김인숙은 수도관중들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으며 배우대표로 국경초대연에 참가하는 영광도 누리였다.

지난세기 50, 60년대에 김인숙은 여러 차례나 모택동주석의 접견을 받고 주정부의 10년우수연기상을 비롯한 많은 영예를 따내였으며 선생이 부른 《처녀의 노래》, 《연변목가》, 《깜둥처녀》는 레코드로 출판되여 전국에 보급되였다. 이밖에 김인숙은 또 《콩쥐팥쥐》, 《백모녀》, 《배나무골》,《류호란》 등 가극에서 주역을 맡고 뛰여난 연기력을 과시했으며 1960년대말부터는 연변가무단의 무용 《연변인민 모주석을 노래하네》에서 쏘프라노를 맡아 각광을 받았다.

현모량처

김인숙선생이 독창을 할 때마다 손품금반주를 맡은 안국민선생은 반주에만 그치지 않고 섬세하게 지도해주면서 예술기량을 제고할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이에 김인숙은 안국민선생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게 되였고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점차 사랑이 싹터 1954년에 결혼을 하고 딸 셋을 낳아키우며 지금까지 화목하게 살아가고있다.

당년에 안국민선생이 지휘를 하는 한편 창작을 하느라고 팽이처럼 돌아치는통에 쌀이며 석탄을 사들이는것은 물론 온돌을 뜯어고치는 등 궂은 일까지 김인숙선생의 어깨에 떨어졌다. 여름이면 선생은 지붕우에 올라가 기와를 얹고 겨울이 오기전에 천정우에 톱밥을 올려야 했다. 그럼에도 공연을 떠난후면 자식들이 고생한다면서 집에 있는 동안만은 장판을 닦는 등 자질구레한 일들마저 딸애들에게 시키지 않았다.

1975년 북경전람관 공연에서 가야금병창 왼쪽부터 가야금 첫번째 김인숙.

그 시기 선생네 가정은 부부의 로임이 꽤나 높았다. 하지만 선생은 검소하게 생활하고 멋을 부리지 않았으며 자식들에게도 우량한 전통을 물려주기에 최선을 다했다. 먹을것은 한밤중에라도 일어나 만들어주면서도 옷은 언제나 헐렁한걸로 사주었기에 자식들은 새옷을 입어도 이쁘게 입어본 기억이 거의 없다고 한다. 몸에 꼭 맞다싶으면 이미 해지거나 낡아서 색이 바랜 뒤였으니 말이다.

부모님들에게 있어서 선생은 효성이 지극한 딸이였다. 김인숙선생의 친정부모님들은 생전에 몸이 퍼그나 허약했는데 선생은 달마다 꼭꼭 생활비를 보내는외 1년에 한번씩 연길에 모셔와 건강검진을 받도록 하였고 몸에 좋다는 음식을 대접하면서 효도를 다하였다.

2010년 8월 북경자죽원에서 가족들과 함께.

가족애가 특별한 선생은 성악사업을 생명처럼 사랑하면서도 창작에 정력을 쏟고있는 남편을 위해 리직후에는 예술활동을 접고있다. 안국민선생이 만년에 보다 훌륭한 작품을 많이 창작할수 있도록 뒤받침해주는것이 가정을 위하고 사회를 위하는 보람찬 일이라는것이다.  

《산 뢰봉》

1961년에 중국음악학원 성악학부에서 1년동안 연수를 하고 연변가무단 합창대 부대장으로 활약한 김인숙선생은 중국음악가협회 회원, 중국음악가협회 연변분회 리사, 연변조선족자치주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으로 당선되면서 유명해졌지만 틀이 없고 남을 도와주기를 즐겼다.

당년에 김인숙선생은 명배우이다보니 어디를 가나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상점에 가면 판매원들과 고객들, 병원에 가면 의무일군들과 환자들…그들은 김인숙선생을 만나기만 하면 노래를 불러달라고 간곡하게 청을 들군 했다. 그때마다 선생은 그들이 듣고싶어하는 노래를 불러주면서 기꺼이 요구를 만족시켜주군 하였다.

주위사람들로부터 《산 뢰봉》이라고 불리운 선생은 남새를 사도 무더기로 사서 로인들만 사는 집, 병환으로 고생하는 집들에 나누어주었으며 김장철이면 동네집을 도와 배추를 다듬어주기도 하면서 좋은 일을 찾아하였다.

만년에 와서 선생은 홀로 사는 전우, 양로원에 들어간 선배들을 종종 위문하는것을 잊지 않고있다. 운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양로원의 선배를 찾아가 얼굴도 닦아주고 옷도 빨아주면서 양로원일군들의 일손을 도와주기도 하고 《불효자는 웁니다》, 《사랑아 어찌 늙으랴》, 《홍도야 울지 말라》 등 노래를 부르면서 로인들과 함께 울고 웃기도 하면서 로후를 진지하게 살아가고있다.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서울시 명예부시장 위촉식에서 외국인 명예부시장으로 위촉된 이해응 생각나무 BB센터 공동대표가 각오를 밝히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9일 다양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명예부시장 4인을 위촉했다. 이번에 위촉된 4인은 외국인 명예부시장으로 이해응 씨(40·여), 청년 명예부시장 권지웅 씨(27), 전통상인...
  • 2014-07-11
  • 연극배우 김동현씨의 30여년 연기인생 읽어본다  항상 소박하고 편안한 농촌아저씨 같은 연극배우 김동현씨 30~40대는 그를 《방귀도》라고 부른다. 50대는 그를 《주정뱅이》이라고 부른다. 년세 있는 로인들은 그를 이《지현장》이라고 부른다. 세대별 부르는 호칭이 다른 사람, 다양한 별명을 가졌다는건 그만...
  • 2014-07-01
  • 한-중 문화교류 앞장서는 이상규 시인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20여년간 중국과 한국에서 벌인 기부와 선행으로 한·중 문화 교류에 기여하는 이가 있다. 한국의 원로시인 이상규(73) 씨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26-27일 중국 허베이성(河北)성 바오딩(保定)시에서 열리는 '2014 제1회 중한문화창의포럼&#...
  • 2014-06-27
  • 수상자음악회에서 열창하고있는 김광빈가수 연변가무단 합창단 김광빈가수(31세)가 6월 12일부터 4일간 심수에서 열린 제3차 아시아청년성악가콩클에 참가해 은상을 수상했다. 이번 아시아청년성악가콩클은 국제예술가협회에서 주최하고 카나다 토론토음악학원에서 협찬해 진행한 음악콩클로서 한차례 국제차원의 음악예술...
  • 2014-06-25
  •     김홍광원사/ 정영 찍음   2013년 12월 19일은 김홍광의 과학연구생야에서 잊을수 없는 하루로 되였다. 이날 그는 중국과학원 백춘례원장의 손에서 원사증서를 넘겨받고 원사서약서를 체결하였다. 30년간의 련마를 거쳐 김홍광은 드디어 국가공정기술령역의 최고영예를 안게 된것이다.   “원사...
  • 2014-06-24
  • 대구에서 안중근展 열고 있는 조선족 유명 미술가 취안우쑹 .par:after{display:block; clear:both; content:"";}   "저는 중국 하얼빈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은 고향이나 다름없는 곳이죠. 잠시지만 그런 한국에서 머물면서 정말로 죽을힘을 다해 만든 작품들입니다." 중국 하얼빈의 조선족 작가인 취안우쑹(權伍松&mi...
  • 2014-06-24
  • 삼성화재 안양지역단 동안지점 소속 류금화 리스크 컨설턴트(RC)가 밝은 표정으로 고객의 전화를 받고 있다.[사진=삼성화재 제공]  삼성화재 안양지역단 동안지점 류금화 리스크 컨설턴트(RC)  아주경제 장기영 기자 = 2만7000여명에 달하는 삼성화재 보험설계사 중에는 수십여명의 조선족이 포함돼 있다. ...
  • 2014-06-23
  • ▲ 지난 16일 영화 '경주'로 돌아온 장률 감독(51)을 서울 마포구 상수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뉴스컬처)   © 정아영 기자   ‘경주’로 돌아온 장률 감독, “편견을 깨고 싶었다”(인터뷰) (뉴스컬처=정연화 기자) 재중동포인 장률 감독(51)은 ‘경계’에 민감했...
  • 2014-06-21
  •   며칠전, 기자가 아동문학 작가, 리론가, 평론가인 김만석선생(1939년 출생, 연변대학 교수)의 저택을 찾아가니 곧장 서재로 안내한다. 서재 한켠에는 선생이 집필했거나 주필을 맡아 편집, 출판한 몇십권에 달하는 서적들이 한자리를 차지하고있었다. 고희를 훨씬 넘긴 선생은 지금도 새벽 세시면 잠자리에서 일어나...
  • 2014-06-20
  • 세계한인상공인총연 사무총장 맡아 재외동포 몫으로 국회 입성 "정부는 세계한상대회서 손 떼고 동포 단체에 개최권 넘겨야"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재외동포 단체의 행사를 정부 기관이 주관해 여는 사례가 전 세계에는 별로 없습니다. 현재 외교부 산하기관인 재외동포재단이 주관하는 세계한상대회는 하루빨리 ...
  • 2014-06-19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