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박우-재한 조선족실태 조사연구하는 조선족학자
조글로미디어(ZOGLO) 2011년4월2일 09시35분    조회:8266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재한조선족류학생네트워크 박우회장과의 인터뷰
재한 조선족 실태조사차 대림동을 찾은 박우박사
 
한마음협회 리림빈회장으로부터 재한 조선족 생활실태 조사를 위해 대림동을 찾은 조선족박사가 있다는 말을 듣고 무척 호기심이 생겼다. 곧 그의 전화를 알아내 련계하였고 이튿날 대학강의가 끝나자 바람으로 약속을 어기지 않고 대림동에 달려온 그를 만나 인터뷰를 할수있는 기회를 얻게 되였다.

그는 배낭식 가방을 메고 어딘가 먼 려행을 떠나는 보행객의 차림새였지만 빠진데 없이 준수한 얼굴에 엷은 안경을 건 모습은 보다 웅숭깊고 모든걸 꿰뚫어보는듯한 느낌을 주었다.

《재한조선족들의 생활실태를 비교적 전면적이고도 현실적으로 기록해 중국과 한국에 알리려는 목적에서 대림동,가리봉,안산 등 중국인(주로 조선족)집거지역을 답사하게 되였습니다.〈코리안드림〉이 시작되여서부터 오늘까지의 전반 과정 역시 우리 조선족력사의 한단락으로 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반드시 문자로 기록하여 후세에 남겨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우선 중국인집거지를 찾게 된 리유를 간단명료하게 밝혔다. 그리고 집거지에 올 때마다 5명 이상의 조선족을 만나 주로 한국에 오게 된 계기, 그 경과 및 현재의 상황을 화제로 끝없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부지런히 자료를 수집하고있으며 명년 중한수교 20주년때 책자를 펴내려는 의향도 내비치였다. 비록 골목길을 누비며 사람을 많이 찾아다녀야 하고 걸음도 많이 걸어야 하는 등 힘든 과정이지만 스스로 사명감을 갖고 착수한 일이라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경력 역시 하나의 공성을 갖는 소재라 하면서 곡절많은 지난날에 대해 감회깊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의 고향은 길림성 룡정, 2005년에 연변대학 식품과학 공정계를 졸업하고 그해에 서울대학 사회학과 석사생으로 류학왔다.그런데 당시 어머니가 정리실업으로 일자리가 없어지고 아버지 또한 봉급의 70%밖에 받지 못하고있는 상태에서 집의 재산을 깡그리 털다싶이 하여 학교에 왔으나 겨우 등록금이나 낼수밖에 없는 상황이였다.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인터넷에 리력서를 올렸더니 마침 어느 려행사의 통역자리에 걸려 여유시간에 일당을 뛰게 되였다.그렇게 간고한 나날을 보내면서 2008년에 석사를 졸업했고 이듬해부터는 박사과정을 시작, 여전히 경제상황이 좋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있을 때 지도교사로 있는 장경섭교수님으로부터 등록금 및 생활비를 지원받아 2년간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무엇때문에 학과 전업을 바꾸었는가 하는 물음에 그는 중국과 한국의 사회현실 특히는 조선족사회의 변화 현실을 탐구하려는 욕망으로 사회학을 전공하게 되였다고 말했다. 석사, 박사과정을 하면서 《재한 조선족로동자집단의 형성과정에 대한 연구》, 《재한 중국류학생의 이주현상과 특성에 대한 연구》, 《중국농촌의 사회주의시장경제전환과 교육의 사회경제적 효과》, 《경제적 인센티브와 도구적 민족주의》 등 론문을 집필, 그 가치를 충분히 긍정받아 학계의 중시를 받았다. 중국의 개혁개방과 조선족 관련 연구에 성과가 뚜렷하여 서울대 중국연구소, 사회발전연구소를 비롯한 연구기관에 보조연구원으로 추천받아 활약하기도 하였다.

《론문을 집필하면서 보니 한국에 조선족과 유관되는 자료가 너무 결핍한 상태였습니다.우리가 이 공백을 메우지 않으면 누가 하겠습니까.재한 조선족에 대한 연구가 보다 체계적이고 객관적으로 진행되여야 할것입니다.이는 조선족사회의 존속과 금후 발전 및 중한 교류에도 극히 유리한것이지요.》

조선족관련 연구뿐만아니라 중한경제문화교류에도 남다른 소견을 갖고있는 그는 현재 한성대학에서 한국학생들을 대상으로 《중국사회문화의 리해》, 《중국정치경제의 리해》를 내용으로 한 강의를 담당하고있으며 중국류학생들에게는 《한국인과 한국사회》라는 테마로 강의하고있다.

대학강의뿐만아니라 하루가 멀다하게 각종 세미니에 참가해야 하고 또 나름대로 학술연구를 해야기에 눈코뜰새없이 바쁜 상황이지만 더욱 그를 다망하게 만든것은 재한조선족류학생네트워크 회장을 맡은 후였다.

현재 한국에는 조선족류학생이 4000여명이나 된다. 그중 한국의 각종 명문대학에 있는 류학생이 상당수를 차지하며 석사연구생,박사생도 수두룩하다. 민족의 미래를 이어나갈 조선족 젊은 세대의 인재가 어느 정도 집결돼있는것이다. 이들은 재한조선족사회 이미지 향상과 류학생 정보교류 및 인적네트워크 구축, 나아가 중한친선 및 경제문화교류를 위한 뉴대역할을 취지로 2003년에 재한 조선족류학생 네트워크를 설립,그간 많은 유익한 일들을 해왔다.

《이젠 재한 조선족 이미지 변신에 주력할 때입니다. 한국에서 재미동포는 자본, 재일동포는 기술분야에서 한국사회에 기여해 이미지가 좋은 반면 중국 조선족은 로동력을 제공하고있어 이들이 사회 최하층이란 이미지가 있는데 이젠 조선족도 한국의 주류사회에 당당하게 진출하고있음을 보여줄 때입니다.》

이번 실태조사를 하면서 그는 간고한 창업으로 성공한 인물들을 많이 만났는데 이러한 성공인물의 출현은 재한 조선족들의 이미지를 개선하는데 극히 중대한 의의를 갖는다고 말했다. 현재 조선족류학생네트워크에서도 각종 세미나를 통해 재한 조선족들의 한국사회진출을 위한 네트워크구축에 박차를 가하고있다. 이미 3차례나 되는 인적네트워크 세미나를 개최했고 여러 분야의 성공자와 전공자들이 주제발표를 하는 등 월례 세미나도 진행하고있다. 금융, 경영, 전자, 기계, 통신, 학계, 연구기관, 법률, 창업 록색산업 등 분야의 세미나도 정기적으로 열리고있어 좋은 이미지와 영향력을 과시하고있다.

이 네트워크에서는 여러 가지 자원봉사행사도 진행하고있어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있다. 중국동포 컴퓨터교육봉사,한국 로인복지관 봉사, 중한교류 축제 및 이주로동자 관련 행사봉사 등은 상호 리해와 화합을 촉구하고 조화로운 사회 구축에 한몫 담당하는것으로 인정받아 해당 부문과 사회의 적극적인 지지, 성원을 받고있다.

《재한조선족은 부단한 이미지 개선을 통해 보다 생기있고 희망찬 모습으로 거듭날것입니다.》

박우회장은 재한조선족류학생네트워크는 력사적인 사명감을 지니고 민족사회의 발전과 번영을 위해 더욱 큰 기여를 할것이며 자신도 항상 민족사랑 잊지 않고 민족을 위해 벽돌 한장 더 쌓을것이라 다짐했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겨레의 감동을 불러일으킨 음악인생 음악인생 60여년에 노래 500여수 펴낸 동희철선생을 찾아서   60여년전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직전부터 음악교원사업에 종사하면서 수많은 음악인재를 양성하고 수많은 명곡들을 지어 세인을 감화시켜 존경을 받는 음악인이 있다. 바로 연변인민방송국에서 음악부 주임사업을 하다가 ...
  • 2012-03-31
  •   단동시내에 자리잡은 “고려거(高麗居) 복춘점”, “고려거 빈강점”, “해당관” 등 대형음식체인점은 단동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쯤은 가본 유명한 음식점들이다. 이 음식점들의 주인은 박상화(38세)씨, 3개 체인점을 소유한 주인이라고 믿기 어려울만큼 아담한 체격에 예쁘장한 얼굴...
  • 2012-03-30
  • 성공가도 달리는 조선족3세 이야기1   동북농업대학 강효문 동물의학박사 (흑룡강신문=하얼빈) 마국광 기자, 리흔 실습생 = 동북농업대학의 강효문( 42세. 사진 ) 동물의학박사가 동물약물 연구개발 분야에서 활약하고있다.   길림성 돈화시 출신인 강박사는 1995년 연변대학 농학원 축목전업을 졸업, 2003년 서울대학 ...
  • 2012-03-28
  •   칼과 가위로 승부를 건 사나이 ㅡ심수항영오금제품유한회사 서정파사장 “좋은 선배와 친구들이 있다는게 행복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혼자로서는 력부족인것을 좋은 선배, 친구들이 있어서 공장도 꾸리고 사업도 확장시켜 나올수 있었지요.” 겸양지덕의 모습을 보이는 서정파사장, 한사람을 사귀더라도 ...
  • 2012-03-27
  • 2차대전이 결속된후 조선반도는 본의 아니게 외세에 의해 국토가 두동강남으로써 재중동포들은 근 반세기만에야 비로소 반도 남반부의 모국과 교류할수 있었다. 직접 총칼 들고 일제와 싸웠던 투사들은 대부분 저세상으로 떠나간 뒤 다행히 모국에서 그 후손들에게 혜택을 주는 정책을 펼쳐 현재까지 수백명에 달하는 재중...
  • 2012-03-27
  • 연변음악교육의 견증인 라혜주선생을 만나 연변주창립초기 제1대 음악교원 수백명의 음악전문인재 배양 87세 고령에도 피아노치기는 빠질수 없는 일과의 하나라는 라혜주선생. 올해 87세(1926년생)인 라혜주선생은 1952년 연변조선족자치구 창립 경축대회에 참가한 일원으로 력사의 견증인이다. 당시 연변사범학교에서...
  • 2012-03-26
  • [기획30]사람은 인간적인 냄새가 나야 제맛 —연길고려원술집 림룡춘총경리의 기업경영과 삶을 바라보는 시각 연길고려원술집 림룡춘(林龙春)총경리 프로필 1960년 길림성 화룡시 용화향출생 연변조선족기업가협회 감사 연변전통료리협회 리사 연길성보국제상무청사유한회사 부사장 력임 연길애득백화유한회사 총경리...
  • 2012-03-26
  •   중국인민해방군 총참모부에서 군사암호를 연구해오면서 엄청난 기술발명으로 이름을 떨쳤던 남상호교수(73세), 그의 암호연구는 단순한 비밀을 해독하는 단계를 훨씬 뛰여넘어 정보문명시기를 겪고있는 오늘 인터넷세상을 바꾸어가는 획기적인 전자암호연구에 이르고있다.  미래 인터넷세상을 안전하고 청결하며 고...
  • 2012-03-26
  •   3월 15일, 기자는 연변범서방프라스틱유한회사 조광훈(58) 총경리를 인터뷰했다. 조광훈이 어떤 인물인가를 한마디로 소개하면 공장장(경리)원로, , , 이다. 그의 이런 별호는 이렇게 해석된다. 그는 1986년 32살에 도문서 제일 어린 공장장(도문시민족비닐공장)으로 선발되여 지금까지 줄곧 도문시민족비닐공장, 도...
  • 2012-03-26
  • 80고령에도 창작활동을 견지 500여편의 작품 창작 왕청2중 교정에 세워진 《첫수확》노래비앞에서 [길림신문 2012-02-28] 지난 세기 60~70년대에 지식청년들에 의해 널리 불려지면서 조선족가요계를 풍미한 노래중의 하나가 바로 《첫수확》이다. 40, 50년이 지난 오늘에도 열창되고 있는 이 노래의 작사자는 김세형(80세)...
  • 2012-02-28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