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김창호- 연변민족예술가협회 회장
조글로미디어(ZOGLO) 2011년1월10일 08시41분    조회:9595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연변일보 2011-01-10 허국화 기자]
역경속에서 음악은 정신적기둥이 였다
—김창호선생 음악인생 편린

기자가 찾아갔을 때 김창호선생은 한창 컴퓨터앞에 앉아있었다. 회원들의 작품을 편집하는중이였다. 김창호선생은 기자에게 《음악과 문학》라고 적혀진 잡지를 건네줬다. 김창호선생이 회장을 맡고있는 중국민족예술가협회 연변분회인 연변민족예술가협회에서 꾸리고있는 문예종합계간잡지였다.
인터뷰를 시작하려는데 《음악과 문학》잡지의 편집을 맡고있는 김영자선생이 잡지의 편집에 관해 토론할것이 있다면서 찾아왔다고 한다. 김창호선생이 연변일보에서 취재하러 왔다고 소개하자 김영자선생은 책꽂이에서 김창호선생의 작품집을 꺼내면서 김창호선생은 5분이면 작곡을 완성하고 곡마다 특색이 살아있고 중첩되지 않는다고 소개했다.

김창호선생은 웃으면서 그건 다 어릴적의 “풍부한” 생활경력때문이라면서 말을 이어갔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반혁명, 조선특무로 몰려 감옥에 갇히게 되면서 김창호선생도 어린 나이에 어머니와 함께 지주, 부농, 력사반혁명분자, 탐오분자들로 조성된 학습반에 참가하게 되였고 양몰이, 소몰이, 변소치기 등 궂은 일을 해가면서 음악에  대한 꿈을 저버리지 않았다. 김창호선생은 음악에서의 재능을 보였지만 반혁명가정이라는 루명때문에 농촌마을의 선전대에도 참가하지 못했다. 하지만 한마을에서 사는 리종진선생과 십여리 떨어진 향양마을에서 사는 오영선생한테서 음악지도를 받을수 있어서 다행이였다.

그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김창호선생은 음악에 대한 꿈을 키우면서 악기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짬만 나면 독서를 했다고 한다. 김창호선생이 독서를 하면서 에피소드가 있었다고 한다. 하루는 홍위병들이 반란하러 온다고 하여 바삐 책들을 울면서 태웠는데 반천이 넘어서야 탔다면서 그때에 책은 다른 종이에 비해 오래 탄다는것을 알았다면서 웃는것이였다.

이 모든것들은 김창호선생이 작곡가로 성장하는 밑거름으로 되였다. 그는 감각이 예민하여 주제를 빠른 시간내에 포착했고 가사의 정감을 정확히 표달할수 있는 운률이 머리에 떠올려 즉석에서 작품을 마무리짓군 했단다.

1985년에 이르러 김창호선생은 4년간 중국통신음악학원 리론작곡전업에서 공부하면서 음악리론에 대해 정규적으로 공부를 했다. 그후로 그는 작곡뿐이 아니라 음악작품에 대한 평론도 쓰기 시작했다. 김영자선생의 소개에 따르면 김창호선생은 협회에서 조직하는 학습반에서 음악창작과 음악리론에 대한 강의도 진행한다고 한다.

자습으로 작곡가로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김창호선생은 작곡을 계속 하는 한편 지방문화예술이 사라져가는것을 계승, 발전시키는데 일조하고저 바삐 돌아치고있다. 인터뷰를 마치려는데 전화벨소리가 울렸다. 중국민족예술가협회에서 김창호선생을 상무리사로 초빙한다는 전화였다.

김창호선생이 다년간 1300여수의 작품을 창작해왔고 그중 우수한 작품은 국가, 성, 시에서 많은 영예를 받아안았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물소리 새소리”, “부모님”, “생일 축하해요”, “연변녀자”, “보석가락지” 등을 꼽을수 있다. 그리고 작곡집 《새소리 물소리》, 《연변녀자》, 문학전집《랭혈동물과 인간》, 유머어집 《김창호와 유머어》, 음반 《김창호작곡집》 등 도서와 음반도 펴냈다.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아리랑주간이 만난 사람 (60)  연변인민방송국 아나운서실 서태문실장의 인생스토리    “방송은 내 친구이자 내 인생의 전부입니다.” 이는 20여년을 하루와 같이 마이크와 씨름을 해온 연변인민방송국 아나운서실 서태문실장의 페부에서 우러러 나온 말이다. 1983년 연변체육중등전문학교에 입학...
  • 2012-12-14
  • 아리랑주간이 만난 사람 (58)  한국 중국조선족문화예술인후원회 회장 리상규시인을 만나     나는 가장 순수한 일을 하는 사람   조선족과 한족은 동반성장을 이룩해야   한번 시작한 일 포기하는 법 없어     어제 오후에 행사를 마쳤다. 연변대학사범학교 반디불 문학상 시상식이다....
  • 2012-12-14
  • 정직과 정열로 수놓은 무용인생     연변대학 예술학원 무용학부에서 본과생들과 연구생들에게 조선민족무용과 무용연구방법론 등 과목을 가르치고있는 최미선교수는 중국의 최고무용명문학부인 북경무용학원의 객원교수이기도 하다. 별로 해놓은 일도 없어 쑥스럽다고 하면서 극구 취재를 사양하는 최미선교수와...
  • 2012-12-13
  • 나를 요구하는 한 이 길 끝까지 갈터 로인 장애인 빈곤학생돕기로 삶을 빛내이고있는 하애하씨의 일가견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몸이 불구여도 의지만 있다면 못해낼 일이 없다." "그들이 나를 요구하는 한 나는 이 길을 끝까지 걸어갈것이다." 이는 장애자의 몸으로 로인, 장애인, 불우학생돕기에 혼신을 다하...
  • 2012-12-13
  •       ▲ 중국의 저명한 서예가 이동휘 선생   이동휘(李東輝), 자는 희지(曦之), 또는 의인(依仁), 학이(學而),  시습재주(時習齋主)라고 부른다. 1971년도에 출생지는 중국  하북성(河北省) 보정시(保定市)이며, 어렸을 때부터 가정에서 엄격한    교육환경 속에서 학...
  • 2012-12-13
  • 우리 글 서예교육가-김정송     40대 중반이 넘어 서예교원이 되여 우리 글 서예보급과 서예교육에서 큰 성과를 올린 분이 있습니다. 그가 바로 연변대학 사범분원 퇴직교원 김정송선생입니다. 1965년 연변대학 조문학부를 졸업하고 매하구 등지에서 중학교 조선어를 가르치던 김정송선생이 서예교원을 맡게 된것...
  • 2012-12-12
  • “아이의 꿈은 독서에서 시작된다”   자식교육에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우리 민족의 학부모들은 자식교육에 모든 열정을 쏟아붓고있다. 말문이 트이기 시작하면서부터 어머니 손에 이끌려 학원에 다니고 소학교에 입학하기전에 한글을 떼고 수학계산을 척척 하는 아이들이 기수부지이다. 학교에...
  • 2012-12-10
  • 아리랑주간이 만난 사람(56)  연변인민방송국 조선말방송 문학부 남철주임을 만나       1953년 항일녀성영웅을 제재로 한 첫드라마 “김옥희”방송   최근 년간 우리말방송드라마 해마다 180회씩 제작, 방송.      8월 6일, 일기예보는 이날 낮기온을 섭씨 29도라고 전...
  • 2012-12-10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