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박선석-옳아도 틀려도 제 생각대로 살고 글을 쓸터
조글로미디어(ZOGLO) 2010년8월24일 11시11분    조회:12661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쓴웃음》, 《재해》의 저자 박선석을 찾아서

인간 박선석이 “한 시대”가 낳은 불행아라면 소설가 박선석은 이 시대가 낳은 행운아이다. 박선석의 증조할아버지가 왜놈들에게 맞아죽고 독립군에 참가하여 일본놈과 싸우던 할아버지는 민생단사건으로 자기 동료들에게 총살당하고 아버지는 민주련맹에 들어 일하다가 국민당의 사형장에까지 끌려나가기도 했지만 부농모자를 쓰고 한평생 자유를 박탈당했고 외삼촌은 국민당에 의해 총살받고 박선석은 태여나자부터 “출생죄”를 짓고 35세까지 전반생을 천대꾸러기로 살았으니 불행아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소설가 박선석은 장백산잡지사, 연변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 중앙민족대학, 연변작가협회 등 단체의 주최로 개인작품심포지엄을 세차례나 진행하였으니 또한 행운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단에서 “흙냄새 물씬 풍기는 농민작가”, “우리 문단의 소설보물고”로 불리우는 박선석은 1945년 집안시 영수촌에서 태여났다. 1980년 문단에 등단하여 지금까지《술고래남편》, 《털없는 개》, 《쓴웃음》, 《재해》 등 단편, 중편, 장편소설 백여편을 발표하고 “전국소수민족문학창작 준마상”을 비롯한 크고작은 문학상을 28차 수상하였으며 길림성 문화청으로부터 《민간예술가》 칭호를 수여받은 박선석소설가를 지난 7월 중앙민족대학, 연변작가협회, 장백산잡지사에서 공동으로 주최한 “박선석 소설연구 및 중국조선족문학의 현황과 전망” 학술세미나에서 인터뷰할 기회를 가졌다.

   그에 따르면 이번 박선석 소설연구세미나는 세번째이다. 전세기 90년대에 장백산잡지사와 연변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의 주최로 매하구시문화관에서 첫번째 세미나를 진행했었고 2002년에 저명한 기업가이며 작가인 고 박향숙녀사의 후원으로 연길시에서 두번째 개인작품 세미나를 진행했었다. 박선석소설가는 장백산잡지사와 사회 각계에서 한 농사군을 위해 이처럼 사심없는 관심과 배려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이렇다 할 글 한편 써내지 못해 못내 부끄럽다고 속내를 표했다. 

   이번 세미나를 앞두고 몹시 당황했었다는 박선석소설가는 “문학과 문학작품에 대해 아는것이 없다.”면서 젊었을 때 배우지 못한 서러움을 토로했다. 종래로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져본적도 없는 그가 지금까지 백여편의 소설을 발표할수 있었던것은 어렸을 때 줄곧 남의 작품을 재미로 읽은 밑천이 있었기때문이다. 중요한것은 억울하고 비참한 가족사이다. 가슴속에 태산처럼 쌓이고 쌓인 울분을 토로하기 위해서 필을 든것이 소설가 박선석으로 이어졌다면 이는 전적으로 불공평한 사회의 핍박에 의한것이다. 앞에서 언급한것처럼 중조할아버지, 할아버지, 아버지, 외삼촌 등 친인들이 줄지어 박해를 받아 세상을 떠나다보니 반선석소설가의 전반생에 남은건 오직 한뿐이였다. 박선석의 소설을 읽으며 소설속에 깔려있는 특유의 유머에 웃음을 금하지 못하는 독자들은 박선석이 웃을줄 모르는 사람이라면 믿지 않을것이다. 한평생 무겁게 짊머지고 살아야 했던 한맺힌 전반생이기에 박선석은 확실히 웃을줄 모르는 사람이였다. 과묵하고 어떤 일에도 참견하지 않고 멋없이 흥분하지 않으며 한마디의 말, 하나의 움직임에도 신중을 기하며 마치도 살얼음우를 걸어가는 나그네처럼 조심스럽게 살아왔다. 못난이 꼭두각시극이 연출되던 문화대혁명시기 박선석은 귀머거리로, 소경으로, 벙어리로 일만 하는 기계로 살아왔다. 계급투쟁이란 말이 듣기 싫어 과수원으로 피난가서 양몰이도 했고 원두쟁이도 했고 토끼도 기르고 두부장사도 했다. 그러다 력사적대사변의 1976년 10월을 맞았고 그후부터 마음속 말을 쏟아놓고싶어 소설을 쓰기 시작했던것이다.

   처음 박선석은 《한》이란 제목으로 가족 5대의 수난사를 쓰려 했지만 그 당시 정치기후가 아직 이르다는 판단으로 문화대혁명시기의 농촌과 농민들을 다룬 《쓴웃음》을 쓰고 뒤이어 총로선, 대약진, 인민공사 등 세폭의 붉은기가 멋없이 휘날리던 황당한 세월의 농촌과 농민들을 그린 《재해》를 창작, 발표하였다. 이 두 소설은 《장백산》잡지에 련재되면서 수많은 독자들을 울리고 웃게 하였다. 이 두 소설 말고라도  박선석의 대부분 소설들이 《장백산》에 발표되면서 박선석은 《장백산》과 떨어질수 없는 인연을 맺게 되였다.

   작품을 창작한다기보다 가슴속의 말을 하기 위해 글을 쓴다는 그는 될수록 많은 사람들에게 말하고저 소설이라는 문학쟝르를 리용하고있단다. 글을 쓰면서 가장 두려운것이 독자, 평론가들의 혹평이 아니라 독자들이 읽어주지 않는것이라고 말하는 그는 독자들이 이따금 보내주는 전화나 서신을 받을 때가 가장 행복하단다. 또 자신을 지켜봐주는 독자들이 있음으로 안위를 느끼며 계속 글을 쓴단다.

   “한번은 80세가 넘은 저의 자형이 저의 소설을 읽다가 잠이 든걸 보았습니다. 순간 저는 가슴이 아팠습니다. 내딴에는 밤잠을 안자고 심혈을 기울여 썼는데 독자는 읽다가 잠이 들었기때문입니다. 그러고보면 제가 우리 집에 놀러온 자형을 잠재우기 위해서 글을 쓴셈이 아닙니까. 독자들에게 수면제를 제공하려고 글을 쓰는건 아니겠지요? 환갑이 넘도록 제 마음에 드는 글 한편 쓰지 못해 늘 실망합니다.” 라는 고백에서 한 농사군의 겸손한 마음가짐과 순박한 인간미를 읽을수 있었다.

   박선석은 이제는 자기 가정의 수난사를 쓸 때가 되였다고 말한다. 문학작품의 생명은 독자들을 흡인할수 있는 매력에 있으며 독자들을 흡인하는 매력은 참말을 하는데 있다며 “거짓말로 백성들을 기편하고 우롱하는 아첨문학과는 영원히 담을 쌓겠다. 누가 그런 아첨문학을 강요하면 창작자유는 박탈당해도 글을 쓰지 않을 자유는 박탈할수 없으니 필을 꺾겠다. 조기천시인이 높아도 낮아도 제 목소리로 웨쳤다면 이 농사군은 옳아도 틀려도 제 생각대로 살고 제 생각대로 글을 쓰겠다.”고 토로하면서 남은 여생에  《한》이란 제목으로 쓰려던 가족 5대의 수난사를 《압록강》으로 개명하며 잘 쓰는것으로 독자들의 사랑에 보답하겠다고 표했다.  사진은 부인과 함께 있는 박선석소설가.  


인터넷료녕신문 김창영 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가수꿈을 이룬 시골소녀우리 맘속의 붉은 태양 조국변강 비춰주니장백천리 해란강반 붉은기발 물결치네……20세기 60년대말부터 연변가무단의 김인숙가수가 가요 《연변인민 모주석을 노래하네》를 부르면서 이 노래가 전국에 보급되였다.  21세기에  들어와서 장강남북을 넘나들며 이 노래를 불러 박...
  • 2009-08-27
  • 오늘은 온집안에 기쁨이 넘치는 날어머니를 높이 모신 환갑날이랍니다아~~~어머니 오래오래 앉으세요아들며느리 차린 큰상 어서 받으세요…언제 어디서든 익숙한 멜로디ㅡ《오래오래 앉으세요》, 세상에 고고성을 울린지 근 30년이 되여오는 이 멜로디는 우리 민족의 영원한 명곡으로 되기에 손색이 없다.이 노래뿐만...
  • 2009-08-25
  • 김시룡, 남, 조선족, 길림성 룡정시 사람, 중공당원, 생전 동성용향 영웅촌 농민.지난 세기 40년대말부터 50년대초까지 있은 농촌사회주의개조에서 김시룡은 동북에서 가장 일찍 농촌사회주의호조합작조를 조직하여 선후로 27차례나 모택동, 류소기, 주은래 등 당과 국가 지도자들의 접견을 받았다. 1958년 3월, 전국 18번...
  • 2009-08-24
  • 그는 작곡가이기 앞서 음악편집이였다.“맑고 푸른 하늘가에 기러기 줄지어 가면/ 잊지 못할 학창시절로 마음은 날아가네/ 선생님 품속에서 즐겁게 뛰놀던/ 넓은 운동장 밝은 교실로 돌아가본다네/ …” 듣기만 해도 학창시절을 떠올리며 가슴벅차는 노래 《추억의 노래》(석화 작사/ 황영애 노래)는 1980년...
  • 2009-08-24
  • 남, 조선족, 길림성 연길시 사람, 중공당원. 1956년 출생, 주검찰원 검찰장.30년간 정법사업에 몸을 담근 김광진은 현재까지 도합 2만 2000여건에 달하는 형사사건을 조사해냈고 광범한 경찰들을 인솔하여 악세력들을 조사하고 제거했으며 범죄분자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여 백성들로부터 범죄자들의 천적, 인민군중들의 수호...
  • 2009-08-21
  • 남, 조선족, 길림성 왕청현사람, 중공당원. 1956년 출생, 왕청현민정국 부국장 력임.김정일이 담당하고있는 사회구급사업은 전 주에서도 앞자리를 차지하고있으며 왕청현 민정국은 이미 도시향진 최저생활보조, 재해구급 등을 주체로, 교육, 의료, 주택, 취업, 법률원조를 보조로, 사회의연, 사회방조를 보충으로 하는 도시...
  • 2009-08-20
  • 료녕땅은 조선족작곡가 서영화선생을 낳은 고장이다. 1925년 료녕 신빈현 왕청문 강동에서 태여난 서영화선생은 1945년에 처녀작 “만세 부른 날”을 작곡했다. 그때로부터 그는 료녕땅과 희로애락을 같이 하며 수많은 음악작품을 창작했다. 선생의 작곡집 《세월과 더불어 부른 희망의 노래》는 바로 그가 60여년...
  • 2009-08-19
  • 남, 조선족, 길림성 화룡현사람, 중공당원, 1937년 출생, 국가1급 작곡가, 화룡현문공단 부단장, 길림성문화국 부국장, 길림성음악가협회 부주석, 중국인민무장경찰부대 정치부 문공단 예술지도, 중국음악가협회 제4기 상무리사 력임.김봉호는 조선족 민간음악의 우수한 전통을 계승하고 한족과 기타 소수민족 음악을 광범위...
  • 2009-08-19
  • 《공중땅크》가 중국공군 부사령원이 되기까지 중국인민해방군 전임 공군부사령 리영태중장 만나본다리영태 (李永泰) 프로필:1928년 11월4일 출생,  길림성 통화현사람. 1945년 10월에 참군, 1946년 중국공산당 가입. 1949년 10월 공군 입대, 1950년 항공학교 졸업. 1951년에 항미원조전쟁에 참가,  공군 제...
  • 2009-08-18
  • 맹번평, 그는 학술에서 탁월한 성과를 올린 연변대학의 교수, 박사생도사이다. 그는 선후로 2005년에 네덜란드 마스터리허터대학 의학원에서 면역학전업박사학위(PHD)를 흭득하고 2006년에 영국 캠브리지대학 림상신경학부에서 박사후연구를 한적 있다. 현재 연변대학 의학부 기초의학원 면역학과 병원생물학교연부 주...
  • 2009-08-18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