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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근-연변음악가협회 상무부주석
조글로미디어(ZOGLO) 2010년7월5일 16시46분    조회:8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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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음악의 쉼없는 엔진역할 발휘
—연변음악가협회 류영근상무부주석을 찾아서

출근하자마자 하루일정을 꼼꼼히 체크하고나서 의사일정에 오른 사항부터 손을 보는 연변음악가협회 류영근상무부주석, 드바삐 돌아치는 그에게는 커피 한잔을 즐길 여유마저도 없어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짜내여 인터뷰에 응해주었으며 또 잊지 않고 꼼꼼히 연변음악가협회 자료들까지 챙겨주었다.


      음악만을 고집한 외길인생


집에서 맏이였던 류영근부주석은 어려서부터 워낙 독서에 흥취를 붙였고 작문에서 솜씨를 보였었다. 그런 그가 예술의 길로 들어선건 순전히 어머니의 덕택이였다. 돈 10원으로 바이올린 하나를 사서 작은 손에 쥐여주고 음악선생한테 보냈던것이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음악에 그닥 흥취가 없었던 그때문에 바이올린은 부엌아궁이에 들어갈 운명을 겨우 모면하는 신세였다. 그러다가 고중에 들어서서 전문음악인으로부터 체계적인 가르침을 받으면서부터 그는 차츰 예술에 흥취를 느끼기 시작했다. 하여 한번 제대로 음악공부를 해보려는 마음으로 당시 화룡에서 음악교육사업에 종사하던 사촌매형 류영섭선생을 찾아가 어려운 여건속에서 음악공부를 견지했다. 류영근부주석은 그때의 음악공부가 현재의 사업에 든든한 디딤돌로 되였다고 몇번이고 곱씹었다.

1986년에 류영근부주석은 조직의 배치에 좇아 심양음악학원, 천진음악학원에서 전문적으로 작곡에 관해 배우면서 본격적으로 작곡공부에 몰입했다. 그가 천진음악학원에서 정진하던 시절, 돐도 안된 아들을 업은 안해와 갓 퇴직한 부모님은 그의 공부뒤바라지를 하러 천진으로 따라나섰다. 덕분에 어마어마한 경제적어려움도 이겨내고 류영근부주석은 선후로 ““현대음악에 대한 나의 인식”” 등 7편의 론문과 바이올린 독주곡, 관현학 등 기악곡을 써내는 등 뛰여난 성적으로 학업을 원만히 마쳤다. 그간 가족들이 타향에서의 고생살이야 말 안해도 짐작이 가지만 고생끝에 락이라고 그가 학업을 마치고 귀향하는 날, 일가족은 기쁨으로 들끓었다.

귀향한후 안도현예술단 단장 및 안도현문화국 부국장으로 활약하며 류영근부주석은 지치는 기색없이 고향의 문화예술발전을 위해 혼신을 다해 뛰기 시작했다. 특히 괄목할만한 성과는 1992년 심양에서 열린 전국무극콩클에서 안도현예술단과 길림성가무단이 합작하여 내놓은 대형조선족신화무극 "장백산전설의 이야기"이다. 이 무극은 우수종목 2등상, 우수표연상, 우수복장상, 작곡상 등 무려 9개나 되는 상을 싹쓸이 하면서 전국을 놀래웠다. 조선족무극의 한페지를 찬란하게 장식한 이 무극은 또한 1994년에 길림성정부의 최고상인 제4회 장백산문예상 작곡우수상을 받아안기도 했다.

류영근부주석은 지금껏 가요창작을 게을리하지 않는 한편 소극장연극 "열선전화", 대형연극 "금개구리" 등 번역작품에도 힘을 쏟았는바 그중 "금개구리"는 연변연극단에서 동북3성연극콩클에 참가해 열연함으로써 금상을 비롯한 세개의 상을 받아안았다.
2008년 중국음악학원에서 주최한 "제1회 조선족음악교수주"활동에서 류영근부주석이 령솔한 연변음악가협회 교수단일행은 각자 론문을 발표하며 중국조선족의 특색예술을 널리 선전한것은 물론 연변의 지명도를 높이고 조선족문화예술이 전국 고등학원에 진입하는데 기초를 닦아놓았는바 이는 연변음악가협회에서 근년래에 조직한 중대한 활동의 하나로 되였다. 지난해 3월에는 주당위 선전부의 지시에 따라 CCTV "민가중국"프로의 연변가무촬영사업을 전개, 짧디짧은 한달 사이에 7개의 무용종목과 20개의 성악종목 및 3개의 기악독주를 준비했다. 그동안 류영근부주석을 비롯한 모든 사업일군들은 매일 새벽 6시부터 출근해 하루세끼 곽밥으로 에때우며 간고한 작업을 하면서도 불평 한마디 없어 CCTV《민가중국》프로의 연출과 제작일군들로부터 내심에서 우러러나는 찬사를 받았다. 이렇게 제작된 종목들을 CCTV 제12채널에서 련속 여러차례 방송되면서 연변을 선전하는데 크게 한몫 했다.

그가 우리 민족의 음악예술사업을 위해 이루어놓은 성과는 한두입으로 다 말할수 없으며 따라서 그가 받은 상장들도 부지기수겠지만 류영근부주석은 손사래를 치면서 특유의 온화한 웃음으로 대체해버렸다.


연변음악에 관해


음악가협회가 단순히 작사,작곡가 그리고 가수들의 협회라고 생각했던 나의 속내를 짐작이라도 한듯 류영근부주석은 "현재 일반적으로 연변음악가협회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료해가 부족한것이 사실입니다"로 허두를 떼였다. 그러면서 그는 연변음악가협회 건립 50돐 및 합창단 설립 2돐을 맞으며 펴낸 화책을 펼쳐보였다.
거기에는 연변음악가협회 산하의 리사회구조도가 일목료연하게 찍혀있었다.
연변음악가협회는 연변문학예술계련합회중 규모가 제일 큰 협회인데 회원이 약 450여명이다. 산하에는 음악창작, 표현예술, 음악교육, 음악리론 등과 같은 위원회가 있는가 하면 연변아동음악학회와 같은 큼직한 학회 도합 15개로 세분화돼있었다.
2003년 연변음악가협회 제5기 회원대표대회에서 상무부주석으로 당선된 류영근부주석은 현재까지 거의 7년을 음악가협회에 몸잠궜는지라 화제가 자연히 연변음악을 떠날수 없었다. 개혁개방 30년 이래 연변음악은 가요, 관현악, 가극, 영화음악, 텔레비죤음악, 뮤지컬, 연극음악, 무용곡 등을 망라한 각 분야에서 매우 큰 발전을 가져왔으며 중국음악 "금종"상, 중공중앙선전부 "다섯개 제일젝트", 국가문화부 문화상 등 세인들이 주목할만한 묵직한 상을 수차 따냈다. 이렇듯 중국조선족음악은 현재 우리 나라 56개 민족중에서도 손꼽일수 있는 위치를 든든히 확정했다고 자랑스레 얘기하며 류영근부주석은 연변음악에 관해 간단히 소개했다.
연변음악은 특히 개혁개방이후 큰 발전을 이루었는데 민족풍격이 깊고 선률이 아름다우며 부르기 좋고 한번 들으면 잊혀지지 않는 특점을 갖고있는바 연변방송국에서 편찬한 700수의 가요중 개혁개방후에 수록된것이 무려 590수에 이른다. 불완전한 통계에 의하면 개혁개방이래 우리 주에서 국외에서 따온 상은 40여개이고 국가급 상은 120개이며 성급 이상의 상은 300여개 남짓한바 그 어떤 부문보다 수상작품이 많다고 한다.
연변음악은 특수한 지리적위치에 뿌리내렸지만 줄곧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개성을 살려왔으며 조선, 한국의 가요와는 다른 선률특점과 흐름새를 갖고있다. 특히 주목해야 할것은 교향악인데 민족관현악 실내음악회 동관4중주 , 현악4중주 등 여러가지 쟝르의 음악회를 20여차나 조직했다.
류영근부주석은 현재 비록 창작대오가 정예하지 못해 청중들의 날로 높아가는 문화적수요를 만족시키기엔 거리가 있지만 멀리 내다봤을 때 연변음악은 마치 바위우에 웅그리고있는 호랑이와 같아서 언제든지 훌쩍 도약할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있다고 긍정했다.
자치주 창건 60돐에 대비해 연변의 아름다운 풍토문화를 대형음악서사시로 무대에 옮김으로써 관중들에게 시각적, 청각적으로 새로운 충격을 선물할 계획이라며 슬쩍 토로했다.
현재 추진중에 있다는 협회 창건 50돐맞이 음악축제관련 포스터며 책자들이 책상우에 수북히 쌓여있었으며 취재하는 사이사이에도 손님들이 자주 방문했다.

음악만을 고집했던 수수한 동기가 발판이 되여 오늘도 변함없이 감성으로 청중들을 두드리는 음악인, 뒤에서 묵묵히 방대한 규모의 협회를 움직여가는 류영근부주석은 정녕 연변음악의 쉼없는 엔진역할를 발휘하고저 혼심을 쏟고 있다.

연변일보 리련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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