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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한국 조선족문화예술인후원회 회장
조글로미디어(ZOGLO) 2010년7월2일 10시05분    조회:6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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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을 향한 사랑의 끝은 어디인가? 

올해 년말경에 한국정부에서 포상하는 “대한민국 고마운 지성인” 후선인으로 중국내 조선족 언론,  문화,  예술, 교육계 부분 책임자 및 저명인사들이 련명으로 한국 조선족문화예술인후원회 이상규(70)회장을 추천했다. 따라서 추천서와 함께 그가 펼친 선행을 책자로 묶어 이미 상정한 상태다.

  그럼 왜 조선족 언론, 문화, 예술, 교육계는 한국인 이상규씨에 환호하는가?

  일전 기자는 연변청소년문화진흥회 주최, “제6회소정장학금”전달식 참가차 방중한 이상규씨를 연길에서 만났다.

  이상규씨는 시인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보다 중국의 조선족사회에 더 알려진 유명인사다. 그는 지난 1996년,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연변인민출판사에 의해 시집 《순정의 고백》(딸 이지은과 합동)을 출간해 문단에 화제가 됐다. 그로부터 8년뒤인 2003년 6월, 중국조선족소년보사와 연변해외문제연구소 주최로 펼친 “제2회 2002 고마운 한국지성인상”을 수상하면서 또 한번 매스컴에 부상했다.

주최측에서는 당시 시상리유를 아래와 같이 밝히고있다.

“시인이며 고려식품판매주식회사 대표리사인 이상규씨는 ‘자기가 먹고 남은것을 남에게 주는것은 선심이라 할수 있지만 자기가 먹을 밥을 갈라주는것은 진심을 나눈것이라 할수 있다. 선심따위는 싫고 조건없이 진정을 나누고싶다. 그것이면 만족한다.’는 ‘나눔’의 철학을 가지고 1996년부터 매년 몇차례씩 중국을 오가면서 생활이 어려운 조선족 및 한족학생들을 발벗고 도와나섰고 조선족문화예술사업을 정기적으로 후원해주기 위하여 중국조선족문화예술인후원회까지 설립하였다. 그동안 페간에 이르렀던 《아리랑》(문학지-필자주) 발전기금, 흑룡강신문 주최 실화, 수필공모상기금, 《한마당》문화총서 출판기금, 연변작가협회 문학상기금,  20세기중국조선족문학사료전집(전50권) 발굴, 정리, 출판기금,  20세기중국조선족력사자료집(전30권)과 《인물조선족사》(전10권) 발굴, 정리, 출판기금, 《반디불》노래비건비자금 후원과 빈곤학교 및 학생들에 대한 장학사업 등을 꾸준하게 이어왔다.”

  어중간한 키에 검스런 얼굴, 툭 튀여져나온 광대뼈로 하여 더 커보이는 입과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자신의 이야기를 엮어나가는 스타일이 마치 이웃집 아저씨와 같다는 느낌으로 필자에게 못박혔다. 그리고 자기 주견이 뚜렷해서 고집도 강해보였다.

  이상규씨가 조선족과의 인연이 시작된것은 1996년부터다. 1992년 6월, 한국 경기도 평택 팔당댐 린근 금남리유원지에 위치한 한 단골식당에서 불법체류로 취업중에 있는 조선족아줌마를 만나면서 끈이 닿은것, 두 아들을 공부시키고 가정의 더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한몸의 혹사도 불사하는 조선족아줌마를 뼈아프게 지켜보면서 지갑을 털어 용돈을 주기도 하고 옷과 생필품을 마련해줬던 따뜻한 마음이 정으로 이어진것이다. 향후 귀국한 상기 조선족녀인의 초청으로 연변을 찾았다가 현지 문인들과 접촉하면서 그는 조선족문단의 활발한 움직임과 우리 문자로 된 신문, 간행물의 출간상황을 알고 크게 감동된다. 그래서 “나눔”이라는 전제하에 “한국문학과 중국조선족문학지간의 끈끈한 련대성을 이루는 작업에 동참하고싶어졌다.”

이렇게 불씨가 당긴 후원사업은 날이 가고 해가 갈수록 걷잡을수 없이 커져만 갔다.  문학관련 각종 학술세미나와 문학상 후원은 물론, 조선족과 한족 불우학생 장학금 전달, 문인들의 개인작품집 출간, “잊어진 작가” 재발굴사업 등등 여러 범위로 확장되여갔다.  그에 따라 중국을 오고가는 차수도 급속하게 늘어나서 지금까지 14년간 총 37차를 오가는 기록을 남겼다. 그만큼 투입된 자금도 정비례로 늘어났다. 고려식품판매주식회사에서 나오는 여유금과 국가로부터 받은 년금 전액을 쏟아부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조선족에 향한 사랑으로 가계마저 흔들릴 지경이였다. 마음 착하고 무던한 안해의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렇게 그는 가슴속 깊이 조선족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찼다. 지난 1999년 1월, 그는 한국 지인들에게 보내는 글에서 연변조선족문화예술인을 도와야 하는 리유를 아래와 같이 밝히고있다.

“내가 연변에 들려 그들의 생활상을 처음 접했을 때 느낀 점은 독특한 우리 민족의 특성인 교육열 그리고 지치지 않는 도전정신과 서정성이였습니다. 나름대로의 풍습과 언어를 대대로 지켜온 불굴의 정신, 그런 고귀한 정신에 감명받았던것이 그들을 후원하게 된 동기가 되였습니다. 시장경제에 빨리 적응할수 있도록 이끄는것이 급선무인데 내 동포들을 앞에서 선도해 나갈 분야가 바로 문학인것입니다.”

  이상규씨는 시인이기에 앞서 사업가다. 그러나 오늘이 있기까지에는 많은 간난곡절을 겪었다. 그의 고향은 한국 경기도 평택, 갑자기 기운 가세때문에 대학(고려대 생물학과) 3년 수료가 최종 학력이다. 학력지상주의가 팽배하는 현실사회에서 졸업장이 없으면 취직도 불가능했다. 백수로 세상을 배회하다가 결국 귀향, 특수작물재배에 6년간을 허비하고 밑천만 날린채 농사군 생활도 접어야만 했다. 다시 회사 몇개를 전전한 끝에 자기것으로 차린것이 유업회사대리점이였다. 일이 안될라니 그것마저도 십년지기의 배신으로 부도위기를 맞는다. 사람이 싫고 세상도 싫고 살아있는 시간도 싫어져 매일 술과 동무하면서 리태백을 부르다가 손이 닿는대로 잡은것이 시집이였다.  그리고 점차 심연속으로 빨려들듯 심취되여버린 시가세계에서 김소월,  한하운,  한용운,  정지용…을 만난다.

 기억을 떠올려보면 시 한편을 수백번도 더 읽었다. 읽고 읽고 또 읽고, 그러는 사이 시인들의 시가 내 마음속의 앙금으로 내려앉아 감수성을 타고 새로운 분출구를 갈구하고있었다.  불혹을 훌쩍 넘긴 나이에 늦깎기로 시인의 길로 접어들었다. 1998년 《동양문학》지에 시 “석류”를 발표하면서 등단, 이듬해 년말에 즈음하여 첫 시집 《사랑의 비문》을 묶어내면서 시인으로서의 자리를 굳힌다. 비매품으로 내놓았던 이 시집은 의외로 4만부나 팔리는 이변을 기록했다. 이후 4권의 시집을 펼쳐낸 중견시인으로 거듭났지만 현실은 결코 상상이라는 날개로 날아야 하는 문학으로는 호구지책을 해결할수가 없었다. 먹고사는 직업은 따로 가져야 했다. 그래서 종업원 10여명을 둔 식품판매주식회사를 차리고 생활전선에서 직접 뛰면서 문학과 생계를 위한 사업사이를 넘나들었다. 그속에서 주옥같은 시를 만들어냈다. 그의 말을 빈다면 그는 시인이면서도 전문문학인은 아니다. 문학은 그에게 있어서 리상이고 사업은 현실이다. 리상과 현실은 언제나 괴리되여있다. 보다 인간답게 살아야겠기에 순수한 사랑의 마음을 필요로하는 문인의 길을 고집하는것이다. 순수한 사랑의 마음이 있었기에 그동안의 무조건적인 헌신도 이뤄낼수 있었다.

  연변작가협회 녀류작가 리혜선씨는 2009년 새해를 맞으며 이시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적고있다.

  “그동안 선생님께서 너무 많이 수고하셨고 그것은 우리의 고국이라는 상징을 심어주는 역할이 되였습니다. 한 사람이 선행을 한번, 또는 두번, 세번을 하기는 쉬워도 꾸준히 한다는것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재중동포라는 개념에는 변화다단한 인간이 망라돼있고 그래서 선행을 한다는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인줄로 알고있습니다. 선생님께서 개인적인 리익을 초월해 초지일관하게 조선족사회를 관심해주셔서 너무 고맙고요. 한편으로는 선생님의 희생이 너무 많으셔서 미안합니다. 그 희생으로 저희 작가협회를 망라한 많은 분들이 어려움을 이기고 일어서는 계기가 되였었습니다. 그 고마움을 잊지 않을것입니다. 선생님의 훌륭한 마음과 열정이 때로는 선생님께 상처로 다가갔었다는것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저는 잘 알고있습니다. 자의든 타의든 그것은 감당하기 어려운것이지요. 선생님의 희생과 노력은 헛되지 않을것이고 더 큰 빛을 낼 날이 있을것입니다.”

  이러한 고마움에 찬 마음들이 모아져 이번 “대한민국 고마운 지성인” 후선인에 그를 추천하는 추천서와 함께 련명싸인서가 연변청소년문화진흥회 한석윤회장의 주도하에 작성되였고 한국정부 관계부처에 상정된것이다.

  얼마전 인편을 통해 상기 소식을 전해들은 그는 격동된 마음을 금할수가 없었다. 지난 2007년을 마감으로 중국행에 2년이라는 공백기를 만들고있는 상황에서 동포들의 따뜻한 마음을 접했기때문에 감동은 배로 더했다. 그의 말을 빈다면 70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달려온 육신이라는 기계가 여기저기 고장나기 시작하여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조선족을 잊은적은 없었다. 한국내에서 조선족 관련 후원사업과 장학사업을 계속했다. 2008년 10월, “중국동포 지성인 야유회”를 조직, 후원하고 2009년 한가위날에 서울 장충동체육관에서 성황리에 펼친 “2009중국동포 한가위 대잔치”를 후원했으며 같은해 년말 “재한중국(인)동포지성인 송년회”와 함께 “제5회소정문학상시상식”(조선족 류학생 3명, 한족 류학생 3명)을 동시에 거행하여 한국에 있는 중국인(한족 포함)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이렇게 장기간 일신의 평안을 방치한채 동포관련 사업에 매진해온 옥체에 드디여 큰 탈이 생기고말았다. 척추에서 오는 통증으로 수술을 면치 못했다. 그때도 그는 중국의 동포들을 생각하고있었다.

  “제6회소정장학금” 전달식이 6월 15일 도문시에서 거행된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아픈 몸을 이끌고 다시 중국행을 강행했다. 장기간의 투병으로 갱핏해진 얼굴을 마주하는 지인들의 걱정스러운 얼굴에서 심각성을 읽을수가 있었다. 시인의 뒤잔등은 온통 두터운 반창고로 부착되여있었다. 완쾌되지 않은 몸도 움직이기에는 불편함이 많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안위는 걱정 말라며 향후 추진할 사업들을 더 챙겼다. 조선족사랑에 빠진 그는 진정 “조선족의 대부”임에 틀림없었다. 내 몸보다 조선족동포를 더 챙기는 갸륵한 정성에 머리가 숙여졌다.

  “이상규씨는 대한민국 고마운 지성인으로서 우리 조선족과 중국인(한족)의 친근한 벗이며 한중친선의 사자(使者)입니다. 선생은 한중간의 우의와 중국조선족동포사회의 문화예술과 교육 등 제반사업의 발전을 위하여 장장 14년간 무려 37차에 걸쳐 중국을 래왕하며 영향력이 있는 후원 사업을 지속적으로 하여왔으며 동포사회의 빈곤학생들을 도와주고 재한 중국(인)동포류학생들과 단체들을 도와주어 조선족학생과 한족학생간에 서로 사랑하고 도와주는 마음을 키워주었는바 따뜻한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여 세간이 찬탄하는 업적을 쌓아 중국(인)동포들속에서 한국국민과 한국의 국가적인 위상을 크게 높여주었습니다.” ㅡ추천서에서

  조선족이라는 낱말 한마디에도 눈을 빛내는 시인, “나눔”이라는 평범하면서도 뜻이 깊은 철학을 간직하고 뜨거운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천상의 시인 이상규씨의 건강이 하루빨리 회복되여 다시 중한 문화 예술 교육 제 분야에서 화합과 교류의 물꼬를 더 깊이 터나가기를 기대하면서 “대한민국 고마운 지성인”상 수상대에 오르는 모습도 함께 그려본다.                                

인터넷료녕신문 차경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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