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엄철수-몽골족의 조선족"바거시"
조글로미디어(ZOGLO) 2010년6월28일 14시49분    조회:8108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불모의 땅ㅡ사막에서 짙어가는 벼꽃향기 
ㅡ저리무맹 몽골족들은 그를 “바거시”라고 부른다

기지의 자연법칙이나 경험적사실(상식)을 초월한 불가사의한 현상을 두고 사람들은 이를 기적이라고 말한다. 사막에서의 벼재배, 얼핏 듣기에도 불가능한 일이 내몽골자치구 저리무맹(현 통료시)에서 일어났다. 그 기적을 창조한 사람은 연변출신의 엄철수연구원. 비록 그는 이미 퇴직한 몸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내몽골로 오가며 기술지도를 해준다. 그는 알칼리성토양에서의 벼재배에 이어 사막에서의 벼재배에도 성공함으로써 불모의 땅으로 불리우는 사막에서 벼꽃향기가 풍기게 했다.

  “1994년 내만기(奈曼旗)에 장기간 거주하던 주민들은 끝내 자기들이 생산한 입쌀로 지은 이밥을 먹을수 있게 되였다.” 현지신문에 실린 기사의 구절이다.

 몽골족 동포들의 조선족 “바거시”

  바거시는 몽골어로 선생님을 뜻한다. 1986년 당시 내몽골자치구 저리무맹(哲里木盟?999년 지구급시인 통료시로 개칭) 민족종교사무처의 초빙으로 벼재배기술지도를 맡아서 1991년 저리무맹농업과학기술연구원에 정식 전근하고 1998년 퇴직하기까지 20여년간 엄철수연구원은 초기 알칼리성토양에서의 벼재배, 그후 사막에서의 벼재배에 혼신을 다하면서 몽골족농목민들과 깊은 우정을 쌓았다. 그래서 저리무맹의 농목민들은 엄철수연구원을 두고 “엄바거시”라고 친절히 부른다.

  1962년 길림농업대학을 졸업한 엄철수씨는 연변과학기술위원회 육종기술일군이였다. 1981년 그의 주도로 시작된 벼육종기술(肥水沙耕育苗技??은 자치주 과학기술연구과제였으며 1985년 지구급감정에서 통과됐다. 그 감정이 금방 통과되자마자 내몽골자치구 저리무맹민족종교사무처는 엄철수연구원을 벼재배기술지도일군으로 초빙했다.

  벼재배기술일군으로 있는 기간 엄철수씨는 알칼리성토양에서의 벼재배에 모를 박고 호르친좌익후기 금보툰진 량가자촌에서 이 기술로 285무의 벼재배를 실험했는데 성공하였으며 그후 각 기(旗), 현(시)에 이 기술을 보급했다. 1987년 호르친좌익후기와 원 통료시(현급시)에서 1만여무를 보급했으며 1988년에는 호르친좌익후기, 원 통료시와 내만기에서 3만무를, 1989년에는 전 맹에서 5만여무를, 이듬해에는 보급면적이 10만여무에 달했다.

  해당자료에 따르면 1991년 엄철수연구원의 벼육종기술보급면적은 14만 2,700무에 달했는데 1986년부터 1990년사이 전 맹의 루계보급면적은 20만무, 벼 7,000억킬로그람을 수확했고 4,000여세대가 빈곤에서 벗어난것으로 집계되고있다. 원 통료시의 경우 전 통료시(현급시) 7.2만무 논가운데 비수(肥水)육종면적이 5.9만무로 전 시 논면적의 82%를 차지하는것으로 집계되고있다. 비수육종기술이 도입된후 페경환림, 페경환목(牧) 면적이 40만무에 달한다고 한다.

사막에서 풍기는 벼꽃향기

  알칼리성토양에서의 벼재배에 성공한 뒤 엄철수씨는 사막의 가치를 발견하고 중국과학원 란주사막연구소의 일군들과 함께 3년간 사막에서의 벼재배에 달라붙었다.

  통상 벼재배는 대량의 물을 떠날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침수가 빠른 사막에서의 벼재배가 불가능한것으로 보고있다.“밑굽 없는 항아리와도 같은 사막, 물을 부으면 인차 스며드는 사막”에서 어떻게 벼를 재배한다고?

  하지만 엄철수연구원한테서 불가능은 없었다. 아마도 력사적으로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 사례가 많아“기적”이라는 단어가 생겨나지 않았나싶다. 엄철수연구원은 저리무맹농업과학연구원(현 통료시농업과학연구원) 기술일군들을 이끌고 중국과학원 란주사막연구소 기술일군들과 함께 사막에서의 벼재배에 달라붙었다.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1996년 사막에서의 벼재배기술은 성공을 거두었다.

  상규벼재배의 기질에 대한 요구가 양분을 함유한 토양이고 수상벼재배의 기질에 대한 요구가 물이라면 사막에서의 벼재배의 기질에 대한 요구는 바로 모래였다. 사막벼재배는 무토재배의 기술원리를 리용, 침수가 심한 사막땅에 비닐박막을 펴 침수를 막으면서 육종, 모내기에 이르기까지 모래를 기본적인 자질로 삼는다고 한다.

  중국과학원자연및조화발전국은 검수를 거친 뒤 “중국과학원 문헌정보센터의 검색과 분석을 거쳐 이 기술은 국내에서 처음이고 국제적으로도 선진적인 수준에 도달했다”고 검수의견에서 밝히면서 “이 연구성과는 과학적인 의의가 비교적 크고 비교적 훌륭한 응용발전전망을 갖고있기에 그 지역의 빈곤해탈, 치부와 생태환경개선에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고 평가, 시험, 시범, 보급을 진일보 확대할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또 유엔사막화방지공약집행비서처는 “사막생물경제권육성기술”, “사막박막부착벼재배기술”을 국제사회에 널리 보급하도록 권장하기도 했다. 당면 통료시적으로 사막에서의 벼재배면적은 5,000무에 달하는것으로 알려지고있다.

  1986년 내몽골자치구 저리무맹에 초빙되여서부터 엄철수씨는 저리무맹의 대부분 모래밭과 알칼리성밭을 전전하며 각종 연수(강습)반 400여기에 직접 강의를 나섰다. 엄철수연구원은 통료시 몽골족농목민들에게 있어서 “백과전서”와도 같았다. 농민들에게 편리를 도모하기 위해 다년간 루적한 벼재배 경험과 기술을 토대로 “그림으로 보는 알칼리성땅에서의 벼재배”,  “사막벼재배기술” 등 책자를 출판했으며 늘 휴대용 기술수첩을 갖고다니면서 농목민수중에 발급한다고 한다.

소수민족을 위한 소수민족의  봉사 무한한 영광

  소수민족으로서 모든 기술과 정력을 바쳐온 엄철수연구원에 대해 내몽골자치구와 몽골족인민들은 잊지 않았다. 1992년 엄철수씨는 저리무맹당위와 행정공서로부터 “민족단결진보선진개인”으로, 1995년에는 “생산실천가운데서 공헌한 상”을 받았으며 이듬해 재차 저리무맹 “민족단결진보 선진개인”칭호를, 1997년에는 내몽골자치구 당위와 정부로부터 “민족단결진보 선진개인”으로 평의되였으며 1998년에는 저리무맹당위와 행정공서로부터 “과기흥맹 특별상”을 받았다.

  1996년 그의 주도하에 실시된“사막에서의 벼재배 및 보급응용”대상은 국가과학기술진보 2등상을 받아안았으며 이해 국가과학기술위원회, 빈곤부축판공실로부터“진화(振??과학기술빈곤부축상”을, 1997년에는 중국과학기술발전기금회로부터“사막 산업발전 특출공헌상”을 받았다.

  중앙텔레비죤 “동방시공”은 사막에서의 벼재배에 성공한 그의 사적을 보도했고 광명일보는 “물을 얼마 부어도 침수되는 사막에서 불가능하다던 벼재배가 엄철수씨에 의해 개변됐다”고 보도했으며 중국교육텔레비죤“대자연속으로”프로그램도 그의 사적을 보도했다. 특히 자치구사막벼재배현장회의에서는 현장을 고찰온 당시 국무원 강춘운부총리의 긍정을 받기도 했다.

  중국과학기술계의 대부의 한사람인 전학삼도 1996년 당시 중국과학기술자협회 서기처 류속서기와의 서신에서 엄철수연구원의 사막벼재배를 언급하면서 이는 사막산업의 커다란 희소식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연변조선족자치주정부도 그를 잊지 않았다. 1991년 자치주정부는 엄철수씨에게 “연변조선족자치주 특등로력모범” 칭호를 수여했다.

  “소수민족으로 소수민족을 위해 봉사한다는데 스스로도 무한한 자긍심을 갖는다”는 엄철수연구원, 이제는 통료의 집도 처분하고 연길로 돌아온 그지만 해마다 내몽골로 달려가 사막지대의 농목민들을 위해 기술지도를 하고있다.       


인터넷료녕신문 전윤길 기자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심양서 전자상무 플랫폼창업꿈 펼친다 본사소식 연길태생인 김성진(1963년생)씨는 3살에 출판일군이였던 부친이 억울하게 반혁명감투를 쓰고 흑룡강성 오지에 추방되였다가 2년후 불행히 사망되는 바람에 헐벗고 굶주리며 동년기와 사춘기를 보내다가 1980년도에 부친의 문제가 시정을 받아서야 연길에 되돌아와 17살 ...
  • 2010-05-14
  • 셔터에 묻어나는 고향산천—연변촬영가협회 박철주석을 찾아서 촬영이 더 이상 소수 사진가들의 특권이 아닌 대중예술이 되였다고는 하지만 연변촬영가협회 박철주석의 작품들이 눈앞에 펼쳐졌을 때 가슴이 뻥 뚫리는듯한 시원함에 그만 입을 딱 벌리고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변촬영가협회에 자신보다 예술성이 ...
  • 2010-05-13
  • 새로운 60년에 새로운 신화 창조할터—연변대학 김병민교장과의 인터뷰 지난해 연변대학은 건교 60돐을 성대히 기념하였다.  지난 60년은  연변대학이 현대대학정신을 고양하면서 학교발전력사에 거룩한 발자취를 남긴 흭기적기적을 이룩한 60년이였다.   하다면 새로운 60...
  • 2010-05-12
  • 로봇연구서 두각 내밀어 (흑룡강신문=하얼빈) 정봉길 기자 = 할빈공업대학 전기기계학원 로봇연구소 김명하교수(39세, 료녕성 단동출신)는 로봇연구에서 두각을 내밀고 있다. 그의 주요 연구분야는 인간로봇손(仿人机器人灵巧手)과 공간로봇(空间机器人)이다. 1993년 할빈공업대학 자동차설계 및 제...
  • 2010-05-10
  • 민족사업에는 정년퇴직이 없다연수현조선족경제문화교류 협회 김수길회장 일화  (흑룡강신문=하얼빈) 임국현 김호기자 효문=민족간부로 평생 사업하면서 퇴직 후에도 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란 민간단체를 내와 현지 제반 민족사업을 위해 자양분을 만들어가는 고향의 불로송—그 주인공이 바로 흑룡강성연...
  • 2010-05-06
  • 세계한민족녀성네트워크대회에서 세계 30여개 국가에서 온 녀성기업인들과 함께. 근일, 중국 조선족녀성이 사단법인 글로벌한민족녀성경제인협회의 회장으로 당선되여 화제를 모으고 있다. 글로벌한민족녀성경제인협회는  2009년 11월 20일에 한국 외교통상부가 사단법인 설립을 허가하였고 적법한 절차를 거쳐 12월 3...
  • 2010-05-04
  • 동포출신 영등포구의원 탄생되나  중국동포출신 장해정씨 구의원에 도전중국 동포출신의 장해정씨가 영등포구의원 출마를 공식 선언하여 뭇사람들의 주목을 끌고 있다. 지난 1996년 한국 국적을 취득한 장해정(여·42)씨는 현재 한국사회가 다문화사회로 발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영등포구가 전국적으로도 동포들...
  • 2010-05-02
  • —선률의 창고-최연숙작곡가를 찾아서 1약속시간에 맞춰 초인종을 누르자 최연숙선생 내외분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객실 한켠에 놓인 피아노우로 각종 트로피며 영예증서들이 줄느런히 놓여져 작곡가로 살아온 최연숙선생의 지난 인생을 말해주는듯했다.먼저 이름으로 인한 에피소드가 많았으리라 생각되여 여쭤봤더니...
  • 2010-04-30
  • 의학계의 별로 뜨는 조선족장군  ㅡ중국인민해방군 총병원 이비인후과 주임의사 한동일박사얼마전 기자는 지인의 소개로 중국인민해방군 총병원의 이비인후과 주임의사인 한동일박사를 만났다. 소박한 농민의 아들 끈질긴 노력가   찾아간 날, 약속한 시간이 한시간반이나 지나서야 문진을 끝내고 들어오는 ...
  • 2010-04-28
  • "변화의 시작은 솔선수범이 첫걸음이다"주심양 한국총영사관 신형근 총영사 인터뷰 전 세계 한국 영사관 중 업무량 부동의 1위 심양 영사관 신형근 총영사 재외동포신문의 "발로 뛰는 영사상" 수상부임 1년 만에 공관 이미지 개선에 주력해 성과 가시화   (흑룡강신문=심양) 장초령 특파...
  • 2010-04-27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