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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한국에서 휘날리는 오성 붉은기
조글로미디어(ZOGLO) 2010년1월4일 14시44분    조회:7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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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오성그룹 강호사장. 

 한국에서 휘날리는 오성 붉은기
수원시 “오성그룹” 강호사장의 일기에서

1949년 10월 1일은 중국역사의 한 페이지를 여는 날이였다. 이날 웅장하고도 장엄한 천안문성루에서 모택동주석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창건을 전 세계에 알렸다. 그 후로 중국정부는 수많은 파란곡절을 겪으면서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 마침내 전 세계 정치, 경제, 문화, 스포츠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강국으로 급부상하였다.

이처럼 날로 발전하는 중국의 국력은 세계의 곳곳에서도 느낄 수가 있었다. 한중 수교 후 두 나라의 경제문화발전의 힘을 입어 중국조선족들의 한국진출에서도 크나큰 변화를 가져왔다. 이중에서도 동포들의 든든한 뒤심이 되어주는 한국의 “오성그룹”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1999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이 창립된지 꼭 50년이 되는 시기이다. 경기도의 수도로 알려진 수원시의 한 상권에 “오성 붉은기”가 등장하면서 “오성그룹”의 탄생을 신고했다. 이로써 조용하던 수원시에는 중국동포들을 주축으로 새로운 상권이 형성되면서 재한동포들의 든든하고도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쉼터가 생겨나게 되었는데 이 그룹의 주인이 바로 연변에서 80여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옷 공장을 운영하다가 한국에 진출한 강호사장이였다.

강호사장이 “오성그룹”을 일으켜 세우게 된데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고 한다. 연길에서 옷 공장을 운영하면서 자리를 잡아가던 강호사장은 우연한 기회에 지인의 소개로 한국의 고양시에 발을 붙이게 되였지만 그로서는 처음에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여 매일 친구들과 술이나 마시면서 허송세월을 보내다보니 자연히 아내와 친척들의 눈에 나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어려서부터 남에게 뒤지려 하지 않았던 그로서는 아내와 가족들의 말이 귀에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날도 술에 거나하게 취해서 들어선 그는 무심결에 배가 불룩하게 된 아내의 모습을 보는 순간 그는 가장의 책임감을 느끼게 되였고 지나온 세월에 대한 한탄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비록 여직껏 한국에 들어온 후 아내에게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고통만 안겨주었지만 말 한마디 없이 꿋꿋하게 살아가는 모습에 더는 자신의 양심과 인간성을 버릴 수가 없었다. 이날 밤 고통과 불안 속에서 밤을 지새운 강호사장은 처음으로 아내에게 무릎을 꿇었다. 자신의 휴대전화를 발로 짓밟아 박산 내는 것으로 “반성”을 하면서 앞으로 더욱 열심히 살아갈 결심을 다졌다. 날이 희붐히 밝자 그는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채 빈 몸으로 아내와 함께 수원시로 이사를 떠났다. 꼭 자신의 지난날을 잊고 새로운 출발의 길에 들어서 자신이 어려서 배운 요리사의 기술로 개척의 문을 두드리려는 생각에서였다.

 하여 우선 수원시에 중국인들이 많은 점을 감안하여 중국음식점을 차렸다. 하지만 그의 첫걸음도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한창 새로운 각오로 열심히 살아가는 그에게는 수시로 도전장이 날아들었다.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 술을 마시고난 손님들이 가끔씩 일터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그의 음식점에서 풀려고 들었다. 술이 거나해지면 욕설이 줄지어 나왔고 음식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걸고드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워낙 어려서부터 한주먹 하던 그로서는 더는 자신의 인내를 이기지 못하고 주먹을 날리기도 했다. 이러다보니 경찰서에 갔다 온 적도 한두번이 아니였다. 이처럼 주먹질이 오가다보니 그의 장사는 말이 아니였다. 그래서 다시 시작한게 바로 중국식품점이였다. 중국식품점은 그래도 음식점보다는 나은 편이였다. 저녁이면 일을 마치고 지친 몸으로 식품점에 들려 음식들을 사들고 가는 동포들을 바라보면서 그는 참말로 열심히 살고 있는 동포들이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었다. 한국에 온 후 처음으로 자신과 비교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더는 참을 수가 없어 열심히 살아가는 동포들에게 자신의 물건을 나눠준 적도 많았다.

 이처럼 그의 너그러운 마음씨에 감격해서인지 손님들은 더욱 찾아들어 경기는 날로 좋아만 갔다. 하지만 그의 장사가 잘 될수록 그의 마음도 편치만은 않았다. 주위에 중국식품점들이 많이 생기면서 서로의 경쟁자들이 생긴데다가 서로 자기의 밥그릇을 챙기다보니 동포들간의 정도 멀어져 가는 느낌을 받았다. 하여 그는 주위의 상인들을 모아놓고 상의한 후 서로 협력하면서 자신의 일을 분담하기로 하고 자신은 그처럼 잘 되던 중국식품점을 접는 것으로 의리를 지키는 마음을 보여주면서 음식점 일에만 전념하게 되었다. 이때로부터 그의 열정은 더욱 높아갔으며 식품점을 운영하면서 지친 몸을 이끌고 가계에 들어서던 동포들의 그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 음식점을 찾는 손님들에게도 푸짐하게 음식을 만들어 주었다. 또 가끔씩 힘들어하는 이들에게는 무료로 음식을 대접해주기도 하였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강호사장이 음식점을 운영하면서 어려운 분들에게 베푸는 일이 늘어나면서 찾아오는 소님들은 더욱 늘어나 음식점도 늘 손님들로 꽉 차군 했는데 음식점의 경기도 흥성하여 바로 자리를 잡을 수가 있었다. 또 식품점을 정리하고 나니 주위의 가계들에도 도움을 줄 수가 있어 서로 경쟁의식도 버리고 협력도 더욱 잘 되어 실로 “꿩 먹고 알 먹기”였다. 

이후 그는 음식점에서 식사하면서 많은 동포들이 정보전달이 잘 되지 않는데다가 여러 가지 법적인 업무나 여행사업무에 불편하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웰빙여행사를 신설하였다. 여행사도 마찬가지로 문을 열기 시작하여 얼마 되지 않아 바로 동포들에게 알려져 찾아오는 손님들은 돌아갈 때면 만족스런 웃음을 짓고 떠나군 했다. 이처럼 중국동포들의 서류대행으로부터 항공권 구입, 법무부정책 무료상담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친절하게 대하여 손님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긴 덕분에 2008년에는 중국 남방항공과 국제항공사의 항공권판매량 1위를 기록하여 중국 항공사 한국지사의 감사장을 받기도 했다. 또 항공권의 판매량이 늘어남에 따라 중국을 오가는 손님들이 가지고 갈 물건들을 대신 발송해달라고 부탁하기에 지난 9월에는 아예 자체의 중국화물특송 “쾌한택배”를 새로 신설하고 이들의 편리를 도모해 주고 있다. 또 중소기업상품전시회, 박람회의 상품들도 함께 발송해주면서 한중 양국의 교류에도 한몫을 하고 있다.

 현재 “오성그룹”은 산하에 세화무역, 웰빙여행사, 오성음식점, 쾌한택배 회사를 운영하면서 재한중국동포들에게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고 사업에 대한 애착심과 한중간의 교류의 장을 만드는 코 기러기 역할을 하는 것으로 모범을 보여주고 있는데 수원, 경기지역의 상인들로 상인연합회를 무어 상인간의 우의와 단합을 다지면서 서로의 정보를 교류하고 물건구입의 상담과 영업방법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경험과 교훈을 전수하고 있다. 또 상인들이 필요한 시장정보나 어려운 점들도 해결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어 상호간의 교류에도 큰 기여를 하고 있다. 하기에 현재 상인연합회에는 재한 중국동포들뿐 아니라 한국인들도 참여하고 있으며 경찰관들도 상인들의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 도와주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오성그룹 강호사장의 공로와 갈라놓을 수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강호사장은 한국에서 성공한 후 어려운 이웃을 돕거나 행사가 있을 때마다 발 벗고 나서 좋은 일에 많이 동참하는데 자신이 태여난 고향에 대한 애착심은 더할 나위가 없다.

그는 현재 한국에서 성공한 것은 고향의 동포들이 함께 도와준 덕분이라고 하면서 자신이 어려울 때 도와준 대가를 꼭 지불해야 한다고 하면서 2년 전부터 연변자치주공청단위와 함께 연변에 있는 6개의 고아원과 노인복지시설에서 어렵게 생활하는 50여명의 어린이와 독거노인들에게 해마다 생필품이나 현금을 후원해 주고 있다.

 그의 갸륵하고도 의리있는 마음과 사업심, 그리고  들끓는 열정에 힘입어 창립 10주년을 맞는 “오성그룹”은 사업에서 커다란 성과를 거두면서 어려운 이웃에는 마음과 정성을 다 쏟는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전길운 기자   xinwen7@naver.com
한민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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