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석림호-비호국제물류 리사장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12월25일 10시53분    조회:8283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길림시 물류업계에 백두산간의 호랑이 떴다 
비호국제물류 석림호리사장 만나본다

● 오픈 2년 길림시 물류시장 점유률 2위
● 기업코치로서의 남다른 인생

석림호 프로필:
1969년생, 현임 길림시 비호국제물류회사 리사장

기업코치:
◇기업코치기술을 중국 대륙에 도입한 선구자
◇세계기업코치협회 WABC회원
◇미국ABNLP()협회 회원
◇세계기업코치기구《관리코치TMCC》 증서 수여받은 도사
◇중국21 탁월한 리더십 기업코치기구 합작인

길림시에서 사업을 시작한 연변사람

연길시 태생인 석림호는 길림시에 대해선 깜깜부지였다.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혹은 친인척관계 혹은 정부요원 등 인맥을 중요시하지만 길림시를 놓고볼 때 그에게는 그런 조건이 털끝만큼도 없었다. 그런 그가 최종 길림시를 사업의 출발지로 택하게 된데는 장기적, 전략적 차원에서 볼 때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약한 동북의 중소도시에서 시작해 힘을 키워 동3성을 발판으로 남으로 뻗어나가자는 웅심에서였다.

길림시의 택배업을 볼 때 40여개 택배사가 있지만 중소규모가 위주이며 택배시장은 시장체계가 잡혀있지 않을뿐더러 택배회사의 서비스개념이 빈약하다. 적은 공을 들여 큰 성과를 빨리 따낼수 있는 제일 적합한 고장이 길림이라고 그는 판단했다.

직원모집의 남다른 기준

때마침 길림시의 신통택배회사가 부도에 직면했다는 정보를 얻고 손쉽게 신통택배회사 수거에 성공했다. 렴가로 회사를 구매할수 있다는것보다도 그 회사의 일군들과 그 일군들이 가지고있는 고객과 인맥이 그의 식미를 당겼던것이다. 부도가 날 위기에 처해있는 신통회사에는 회사를 끝까지 고수하고있는 직원이 7명밖에 없었다. 그는 그들이 한없이 이쁘게 생각되였다. 회사와 운명을 같이하는 그들의 마음자세가 그의 마음을 크게 사로잡았던것이다. 남은 7명의 직원들을 보면서 그는 이런 직원들이 있다면 꼭 사업이 성공할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게 되였으며 그들과 같이 자신의 꿈을 펼치기로 마음을 정했다.

석림호사장이 직원모집 면접에서 빼놓을수 없는 질문은 가족과 부모에 관해서다. 《평소에 아무리 부모에게 잘해도 마지막 림종을 지켜보지 못하면 효자가 아니란 말이 있지 않습니까. 부모에게는 효자가 중요하지만 기업에는 충성이 중요하지요. 부모에게 효도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기업에 충성할수 있겠습니까.》

사업의 물고를 연 다음의 급선무는 직원모집이였다. 50여명을 모집해 군사훈련, 업무강좌, 서비스교육 3개월의 강행군끝에 살아남은 직원은 27명밖에 되지 않았다. 27명은 추려낸 직원이라지만 기대와는 차이가 많았다. 하지만  열정이 있는 사람은 희망이 있는 법, 그는 27명 직원들의 열정을 믿고 꾸준히 직업교육을 해 회사의 내실을 다지는 중요한 장기적인 과제로 삼았다.

빈틈없는 준비과정을 거쳐 2008년초에 끝내 《비호택배》가 고고성을 울렸다. 드디여 석림호는 길림시에서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힘찬 첫걸음을 내디뎠다.

신용과 진정한 고객위주의 서비스정신이 경영의 비결

《중국에서나 외국에서나 물류업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자질이 낮은 사람들이 하는 업종이라 생각하기 일쑤지요.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데는 남의 물건을 날라다주고 받아주고 거기에서 리득을 얻는 초창기 물류업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물류업의 문턱이 낮아 누구나 큰 본전없이 쉽게 시작할수 있는 사업인 까닭도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지금의 물류업은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물류업은 고객과의 약속이고 고객에 충실한 서비스입니다. 다시 말하면 물류업은 서비스업이지요. 사상도덕과 고품질의 서비스는 업계 종사자들의 보다 높은 자질을 전제로 하고있습니다.》

사업을 시작하던 2008년초 길림시에 우체국을 비롯한 40여개의 물류업체가 있었다. 하지만 그가운데 10개 업체만이 정식 영업허가증을 갖고있었고 그외의 업체들은 모두 정식 허가가 없이 운영하는 업체들이였다. 이러한 실정을 모르는 고객들은 일단 배상문제가 생기면 해결을 받기가 여간 어려운게 아니였다. 심지어 사고업체가 순식간에 잠적해버리는 바람에 손해배상을 청구할수조차 없었다. 남다른 자신만의 경영리념을 갖고있는 석림호사장은 우리 조선족이 운영하는 업체는 남달라야 된다고 생각했다. 조선족의 정직성을 바탕으로 총명한 재질을 발휘해 우리 민족의 기개를 떨쳐보자고 암암리에 다짐하며 회사의 운명을 민족의 자존심으로 키우며 크나큰 힘을 얻기도 했다.

《정직하게 일하고 적극적으로 일하고 기업에 충실하며 고객의 수요를 만족시키자》는 경영리념과 《회사는 나의것이 아니고 우리 모두의것이다》는 직원들과의 약속을 바탕으로 시작한 사업은 서로의 노력으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고객이 불어나고 시장이 넓어지고 그에 따라 직원들도 늘어나고 회사는 정상궤도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시장점령에서 그가 사용한 무기는 서비스였다.

《감사합니다. 어서 오세요. 잘가세요.  손님들과 나누는 이런 인사말들은 서비스가 아닙니다. 그것은 례절일따름입니다. 서비스란 바로 고객의 마음을 읽고 그 마음에 맞게 봉사하는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외적인것보다도 내적인것이지요. 마음으로 마음을 대한다고 해야 할가요. 리득에 앞서 손님의 마음을 읽고 그 마음에 맞게 봉사해야 하지요.》

서비스는 고정된 모식이 없는 개성적인것이며 따라서 그 표현도 천차만별인것이다.

외적인 봉사만이 아닌 내적인 봉사에로의 서비스차원을 높여 두차례의 고객늘리기활동을 벌이면서 비호택배는 길림시에서 튼튼히 자리잡았다.

그러던중 회사에 대형사고가 터졌다. 거래처인 외자기업의 고가물품이 도착지에서 수량이 모자란다는것이였다. 배상가격이 10여만원에 달했다. 출장길에서 소식을 접한 석림호는 모든 일정을 물리치고 길림시로 돌아와 즉시로 외자기업에 손해배상금액 전액을 송금했다. 그리고 사고조사에 들어갔다. 물건운송을 의뢰한 기업에서 상세한 물건수량을 기재하지 않았고 물류업체 담당자가 업무접수중 물건수량을 체크하지 않아서 정확한 수자파악이 안된 업무차실이였다. 기업과 물류회사가 모두 잘못이 있었지만 그는 그 일로 기업과 더 따지고들지 않았고 기업의 배상요구를 만족시켜주었다. 그는 이런것도 고객에 대한 서비스라고 했다. 그후 이 외국업체의 총경리는 물류업체 거래처 3곳중 다른 두곳을 전부 끊고 비호물류와 단독으로 손잡았다. 이 외국업체의 전년 물류운송비용은 100만원을 훌쩍 넘기는 영업액이다. 이러한 그의 서비스정신으로 비호물류기업의 신임도는 높아갔고 그 소문을 들은 여러 기업들이 그를 찾아와서 계약을 맺었다.

윈윈전략―세계1류 물류업체와 손잡다

고객이 늘고 신임도가 높아감에 따라 DHL, OCS, TNT  등 회사들은 길림시물류시장에서 비호물류와의 경쟁에서 퇴출해 경쟁자로부터 지금은 파트너가 되였고 비호물류는 이런 세계적인 물류브랜드업체와 손을 잡아 기업이 더더욱 건실해졌다.

회사창립 2년이 안되는 오늘 길림시에 5개 지사, 교하, 서란, 반석, 화전에 지사를  앉혔으며 장춘, 대련에도 지사를 설립했다.

회사설립 당시 장춘진출을 2년으로 계획했으나 1년만에 진출해 성소재지에 둥지를 틀었다.

직원은 100명이 넘으나 아직 시장수요에 비하면 역부족, 직원모집을 대량 하고있는중이라고 한다.

2009년에 들어와서 그의 길림시 시장점유률은 제2위(우정국택배 1위), 민영택배회사중 1위를 차지했다. 물류업체에 뛰여들어 짧은 2년만에 그가 일궈낸 성과는 놀랍다고 해야 할것이다.

향후 10년간 비호택배의 꿈

석림호는 향후 10년의 사업계획을 말하면서 시기가 되면 남하작전을 펼쳐 북경을 거점으로 전국에 비호택배의 그물을 뜰것으로, 그때가 되면 최소 만명이상의 직원을 필요로 할것이라고 했다.

기업코치로서의 인생

석림호는 1998년부터 로씨야, 한국을 전전했고 향항, 카나다 등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경력을 쌓았으며 회사를 운영하다 부도를 낸적도 있었다. 사업에서의 실패는 그에게 공부의 중요성을 더 절실히 느끼게 하였다. 그는 목마른 사람이 물 마시듯 경영관리서적을 탐독했고 경영관리 세미나가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어디든지 찾아갔으며 자신이 공부할수 있는 사람이면 렴치불문하고 찾아가서 배우기도 하였다.

현재 비호택배를 운영함과 동시에 석림호는 국내 기업의 코치사업도 진행하고있다. 기업코치는 아직 우리에겐 생소한 단어다. 중국대륙에서 기업코치기술을 도입한것도 불과 몇년 안되는 근래의 일이다. 《기업코치는 기업경영에서 경영인이 찾아내지 못하는 부족점을 찾아내고 기업이 평행적인 발전을 하도록 지도하고 결과보다는 성과를 얻게 하는 작용을 합니다. 결과는 좋은것도 있고 나쁜것도 있지만 성과는 성공의 과실입니다. 선수가 코치를 꼭 필요로 하듯이 기업도 코치를 필요로 하고있습니다.》

그가 기업코치에 대해 흥미를 가지기 시작한것은 한국에서 우연히 미국에서 온 요셉박사의NOP기술 강의를 들으면서부터였다. 그때부터 그는 NLP기술에 빠져들었고 배우고 터득하고 터득하고 배우는 과정에 그는 끝내 미국기업가코치협회의 일원이 되였다. 그후 석림호는 북경 모 체육회사, 남방의 모 교통은행 기업코치로 출연해 인정을 받았으며 현재는 장춘제1자동차공장, 운남백약 등 회사의 기업코치 담당중이다. 초창기 그의 기업코치 수강료는 시간당 2000원이였는데 지금은 시간당 5000원이다. 사람도 상품이라고 한다면 그의 상품가치는 시간당 시가가 5000원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호랑이 몸에 날개를 달고 방패를 뒤바탕으로 설계한 비호택배의 로그를 그는 이렇게 해석했다. 《호랑이는 왕을 상징합니다. 방패는 일체 부정적이고 소극적인것을 막고 호랑이 몸의 날개는 비상을 의미합니다.》  석림호와 비호국제물류, 다가오는 범띠해 백두산간의 호랑이가 세계물류시장에서 맹활약하는 기상을 기대해본다. 

길림신문 리상학 차영국 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동물태아 연구에 앞장서 동북림업대학 안철수 교수  (흑룡강신문=하얼빈)윤선미 기자= 국내에서 인류 생명 및 기술인재배양기지인 동북림업대학 생명과학학원에서 박사과정 지도교사로 활약하고 있는 안철수(52세, 연변 출신)교수는 동물태아 관련 연구에서 앞장서고 있다.   1983년 7월 원 연변농학원 수의과전공을...
  • 2010-10-19
  • 《우리 교장선생님은 녀중호걸입니다》 -영길현조선족실험소학교 최명숙교장 인터뷰     최명숙교장   불운한 시대의 행운아   1958년 영길현 찰로하진 단결촌의 한 농민의 딸로 태여난 최명숙,여느 농가의 자제들과 마찬가지로 고중을 졸업하고 회향지식청년이 되여 고향에서 농민이 된 그녀,그러나 학...
  • 2010-10-19
  • 부모와 “리별”…수년만에 별들의 전쟁서 “두각”요즘 산동 치박시에서 열리고 있는 AFC(아시아축구련맹) U-19 선수권대회를 많은 축구팬들이 지켜보았을것이다. 비록 중국팀이 조선팀에 밀려 명년 7월 꼴롬비아 U-20 월드컵 출전자격 획득에 실패했지만 소조경기서 보여준 김경도의 활약은 사...
  • 2010-10-15
  • “진달래처녀” 고향홍보에 혼신을 —변영화 가수와 인터뷰 일전에 지난 “7.28”홍수피해 지원 자선공연에 나섰던 변영화씨와 인터뷰할 찬스를 가지게 됐다.  2006년 CCTV전국청년가수텔레비죤콩클에서 은상을 수상하면서 전국에 이름을 알린 조선족가수 변영화씨는 연변조선족자...
  • 2010-10-11
  • 한국 증권업계 전산인력 가운데 유일한 중국인으로 조선족 김성희씨가 현재 대우증권에서 근무하는 것으로 밝혀졌다.한국 이코노미플러스가 최근 "중국인 증권맨 여의도 상륙"이라는 기사를 내보내면서 대표적 중국금융맨으로 조선족 김성희씨를 인터뷰한데서 이같은 사실이 밝혀졌다.이코노미플러스가 전한데 의...
  • 2010-10-03
  • —가정적인 분위기로 회사를 세운 청도림운비닐박막회사..  다부진 체격에 륜곽이 선명한 얼굴 그리고 억실억실한 눈매를 가진 젊은 기업인인 서정철씨가 요즘청도 세간에서 화제를 낳고있다. 무역으로 상승가도를 달리던 그는 생산과 수출 두마리 토끼를 잡는다는 목표로 최근에 정식으로 림운비닐박막회사를 오...
  • 2010-09-29
  • 세상에 어려운 일 없어라 모든 일은 하기에 달렸거늘 ㅡ림장춘 연변일보 전임부사장 인터뷰지난 세기 후반 격변의 년대인 1984년부터 16년간 연변일보 조선문판 주관 부사장 겸 부주필로 신문개혁의 최전선에서 지휘봉을 잡았던 림장춘선생은 항시 새로운 사유로 참신한 아이디어를 창출하면서 어렵고 민감한 문제를 풀...
  • 2010-09-25
  • 우병희 프로필: 1938년 료녕성 신빈현 출생, 조선족. 1957년 길림성 통화조선족중학교 졸업, 길림대학 물리학부 입학. 1962년 대학 졸업후 대학교 교원으로 교단에 오름. 1963년 중국 유일의 광학기계연구소인 장춘광학정밀기계및물리연구소에서 연구원, 연구실장, 박사생도사로 근무.  수여받은 상과 영예칭호: 선후하...
  • 2010-09-20
  • 류천문리사장 길림성조선족경제과학기술진흥총회 새 도약 약속 조선족사회 위한 더 실제적 더 굵직한 더 어려운 일 해결 류천문리사장 길림성조선족경제과학기술진흥총회 새 도약 약속 길림성조선족경제과학기술진흥총회(아래 《총회》라고 략칭) 설립이래 처음으로 련속 세차(5기, 6기, 7기)나 리사장으로 당선된 류...
  • 2010-09-17
  • 연변대학 농학원 최승필 박사        기능성식품 개발서 두각 내밀어   (흑룡강신문=연변) 윤운걸 길림성 특파원 = 연변대학 농학원 식품과학 및 공정학부 최승필박사(사진, 흑룡강성 화천현 성화조선족향 출신, 42세)는 국가자연과학기술 항목인 메밀싹의 항돌연변이,항종양 유효성분...
  • 2010-09-13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