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박청죽-청중들이 선거한 《골든마이크》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12월24일 16시01분    조회:6238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2007년 중국방송  《골든마이크》 시상식에서.

민족어방송과 함께 한 《골든마이크》의 40년
중앙인민방송국 박청죽아나운서의 이야기

애숭이 아나운서가 《1만자고비》를 수없이 넘기기까지

1969년, 화룡 남평에서 농사일을 하던 17살난 박청죽(예명 박일청)은 연변인민방송국의 아나운서모집에 응했다. 하지만 아무런 방송경험도 없고 방송지도도 받아보지 못한 그는 발음위치가 제멋대로였고 심지어는 코소리까지 곁들다보니 결국 시험에서 락방되고말았다.

그 후부터 그는 매일 조선말신문을 보고 발성련습을 했고 아침 일찍 두만강변에 나가 로인, 어린이, 녀성 등의 어투나 어조를 모방하군 했다.

하여 1971년에 연변인민방송국의 아나운서시험에 무난히 통과되여 입사하였다. 그 후의 수년동안 어휘나 어구들을 여섯권이나 열심히 수집하면서 쌓은 기본공으로 하여 그는 어느덧 우수한 아나운서로 성장하였다.

1975년, 주은래총리의 정부사업보고가 연변인민방송국에 팩스로 내려왔다. 7만자정도였는데 글자들이 동전잎보다 더 커서 단번에 여러 글자를 보아내기 힘들었다. 그러나 빠듯한 방송개시시간때문에 미처 글을 정리할새 없이 스튜디오에 가져가야 했다. 눈섭에 불이 달릴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였지만 그는 놀리울만큼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그는 얼음에 박밀듯 3시간 50분동안 원고를 류창하게 읽어내려갔고 스튜디오밖에 서있던 사람들은 그제서야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1978년, 중앙인민방송국에서는 당시 연변주당위 서기로 있던 조남기를 찾아가서야 연변인민방송국에서 보물단지처럼 끌어안고 놓지 않으려 하던 박청죽을 모집해갈수 있었다.

중앙인민방송국 조선어부에 전근한 후에도 그는 자체로 목표를 설정하고 실무제고에 전력하여 꾸준한 노력끝에 1만자 방송고비를 수없이 넘어 주위의 감탄을 자아냈다.

이른바 《1만자고비》란 1만여자되는 원고를 한글자의 틀림도 없이 거침없이 단숨에 내리읽는걸 가리킨다. 대략 32분이 걸리는데 탄탄한 기본기술, 강한 인내력과 뛰여난 집중력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조선민족방송언어의 총서―《방송통론》

2002년에 출판발행된 박청죽의 34만자에 달하는《방송통론》은 조선중앙방송위원회, 김일성종합대학, 방송영화대학, 김형직사범대학 등 각종 기구와 대학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박청죽의 조선말방송실천으로부터 호흡과 발성, 심리형상, 발음기교 등 다양한 측면으로 조선말방송 언어와 법칙, 특징들을 론술하였는데 조선말방송언어의 발전과 리론연구를 추진하는데 큰 의미가 있다는 평을 받고있었다.

하여 그해 9월12일에 《인민일보》 국제판에서는 관례를 타파하고 50년만에 처음으로 개인이 출간한 작품관련기사를 실었다.

청중들이 선거한  《골든마이크》

중앙인민방송국에서 진행된 《제1차 중앙인민방송국 10대 아나운서》 평의활동에서 박청죽은 또한번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30명 후선인의 한사람으로서 그에게 국내는 물론 조선, 한국, 일본, 미국, 오스트랄리아, 뉴질랜드, 윁남 등 나라들에서 투표가 눈꽃처럼 날아들었다.

그때 중소학교 조선족학생들로부터 온 2만4000여장의 투표는 그의 대단한 인기를 감지할수 있었다.

연길의 한 로인은 집안식구, 친척친우들까지 총 동원하여 114장의 투표편지를 보내왔다고 한다. 한편 인터넷투표도 최종 4위로 그는 시종 선두위치에서 달렸다.

비록 소수민족센터의 사업수요로 한개밖에 없는 명액을 다른 민족에게 양도했지만 그때 박청죽이 보여준 영향력은 중앙인민방송국 전체를 놀래웠다.

수많은 조선족 속담이야기와 중대한 시사뉴스를 방송한 박청죽은 2007년에 끝내 중공중앙선전부에서 심사비준하는 중국방송업계의 최고상인 《골든마이크상》을 수여받았다.

방송생애 40년 맞아 노력에 박차를

래년이면 박청죽은 후배아나운서들로서는 절대 따라올수 없는 방송생애 40년을 맞는다. 그동안 방송에 대한 무한한 애착과 청취자들에게 쏟아부은 사랑으로 방송에 대한 그의 열정은 영원히 식을줄 모른다.

중국조선어방송의 권위인사, 간판아나운서로서 그는 중앙인민방송국의 방송지도, 중국민족영화텔레비죤문화발전촉진회 상무리사와 중국조선어방송협회 회장 등 사회적직무도 맡고 중국의 방송계에서 활약하고있지만 오늘도 중국방송업계에서 더 주렁진 성과를 이룩하기 위해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있다. 

길림신문 유경봉 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중국농산물 온라인시장의 통솔자를 꿈꾸는 농민 CIO 중국농촌중개인사이트 CEO  조동철 만나본다 조동철 프로필:조동철,  조선족 , 1977년 출생 중국농촌중개인사이트 CEO, 심양시 소가툰구농민경제인협회 부회장. 2004년―현재 심양시 소가툰구농민중개인협회 부회장. 2004년―현재 중국농촌중개인사이트―국제련...
  • 2009-08-02
  • CJ그룹 중국본사 박근태 사장 인터뷰   ▲ 박근태 사장님은 20여 년 전부터 중국에서 사업해 오신 걸로 알고 있다, 당시 중국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84년 대우실업 철강 1본부에 근무하다 그 해 홍콩지사 철강부로 발령을 받았다. 홍콩에서 5년 정도 근무를 하면서 홍콩 거래처 외 중국 거래처 및 중국 비즈니스...
  • 2009-08-02
  •       흑룡강성조선족상공회 권태금씨,     평안보험총공사 서비스스타상 수상        (흑룡강신문=하얼빈) 김철진 기자 = 불혹의 나이를 넘어 뒤늦게 보험업에 투신해 성공신화를 일궈낸 권태금(조선족, 녀, 50세)주임이 2만여명이...
  • 2009-07-31
  • 고운 마음 독특한개성 추구하는 음악인—가요 《물소리 새소리》의 작곡가 김창호씨가요 “물소리 새소리”는 고향을 그리는 절절한 마음을 담은 가사와 맑고도 절절한 선률의 흐름으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주었고 흐르는 세월속에 잊혀지지 않는 노래로 많은 사람들의 머리속에 자리를 잡았다. 문창남 작사...
  • 2009-07-30
  • 내가 만난 한성호박사 3년전 필자는 장편실화소설 《중한우호의 전기인물― 한성호》를 읽고 한성호박사님을 꼭 만나보겠다고 작심하고 김수영(작자)선생님한테서 련계주소를 알고 한박사님께 나의 절절한 마음을 전했더니 동의한다는 기별이 왔다. 한박사는 한국 박정희대통령때부터 청와대 《어의》며 호금도, 리붕,...
  • 2009-07-29
  •  민족향기 풍기는 장백의 종달새우리 민족 민요를 말할라치면 민족창법으로 주렁진 성과를 따낸 시원한 가창력으로 우리 민요를 전국 나아가서는 전세계에 알리는 중앙민족가무단의 성악가수 변영화가 떠오른다.얼마전에 연변대학예술학부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변영화는 현재 유럽순회공연준비중이다. 이전에도 전국적...
  • 2009-07-27
  • 원 연변인민방송국 음악부 주임 성기화의 실적연변음악을 흥기시킬 꿈을 안고 《만천성》, 《해바라기》, 《웃는 얼굴》 등 대중들이 즐기는 노래 100여수를 작곡해 중국조선족음악에 자신의 이미지를 심은 작곡가 성기화는 비단 우수한 한명의 작곡가일뿐만아니라 음악편집으로서 직책을 다하는 등 지금까지 자신의 인생무...
  • 2009-07-24
  • 중국에서 가장 큰 기업가 단체 중국기업연합회의 부이사장을 맡고 있는 경제학박사 리명성(조선족, 44)씨. 그는 개혁개방 이후 중앙정부에 진출한 전문가 출신 간부 중 한 사람이다. 중앙정부에 진출한 조선족 동포가 많지 않은 실정에서 리명성 씨는 많은 조선족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며 귀감이 되고 있다. 리명성 박사는...
  • 2009-07-24
  • 조선족촌 간부고령화 몸살 ... 로인촌장 최순영씨의 감동사연매하구시 행령향 행산촌의 현재 촌장은 매하구시에서 생활하던 68세의 최순영로인이다. 촌의 회계는 올해 70세나는 로인이 담당하고있으며 촌당지부서기는 올해 55세나는 마을의 한족농민 요춘귀가 담당하고있다. 조선족촌 간부로령화의 전형이라 하겠다. 조선족...
  • 2009-07-23
  • 조선족 대표 브랜드, 북경 한나산 장문덕 이사장조선족 요식업계 대표 브랜드가 되기까지 여행사 직원이었던 평범한 20대 남성이 30대 중반이 된 지금 억대 매출을 기록하는 요식업체의 오너가 되었다. 바로 조선족 젊은 리더이자 조선족 요식업계의 1인자, ‘한나산찬음유한공사(汉拿山餐饮有限公司, 이하...
  • 2009-07-21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