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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광- 방송극에 푹 절어 살고싶습니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12월17일 20시21분    조회:88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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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라지오영화텔레비죤방송국예술단 국가 1급 배우 김일광

김일광 하면 사람들은 방송극프로를 통해 라지오에서 흘러나오는 굵직한 중음의 세련된 성우의 목소리와 함께 TV형광막을 통해 보던 잘 생긴 미남형의 중후한 모습을 떠올릴것이다. 기실 그는 성우로 배음에서 한창 물 오른 기량을 자랑하고있을뿐만아니라  라지오방송극의 음악효과제작에서도 빼여난 재간을 보이고있다. 방송국에서 그는 배음과 음악효과제작, 소품배우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면서 자기만의 “끼”를 자랑하는 다재다능한 배우이다. 그가 이렇듯 라지오방송극제작에서 다양한  활약을 할수 있는데는 그의 천부적인 재능도 있지만 더우기는 라지오방송극에 대한 그의 깊은 애착과 30년간 갈고 닦아온 실력이 밑거름으로 되여있기때문이다.

1961년 2월 11일, 연길시에서 태여난 김일광은 연변한어사범학교에서 음악지휘로 있던 아버지와 유치원 교양원인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남다른  취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그는 소학교는 물론 중학교시절 줄곧 학교문예써클조에서 시랑송, 웅변과 무용 등을 하였고 호른 등 악기를 다룰줄까지 알았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당시 연길시비닐인쇄공장에 취직한 김일광은 연변예술학교에서 작곡전문연수를 하면서 짬짬이 여가를 타 작곡공부에 열중했다. 1981년 김일광은 주문련에서 조직한 가요창작강습반에 참가하여 “방직공 우리 누나”라는 가사에 곡을 붙였는데 이 노래가 “연변문예”에 발표되였을뿐만아니라 우수작품으로 평의되기까지 했다. 이렇게 예술분야에로의 발전물고를 튼 김일광은 1984년 연변인민방송국에서 꾸린 종합예술강습반에 참가하였고 그 이듬해 시험에 합격되여 연출조 성우로 연변인민방송국에 입사하게 되였다.

어린 시절부터 소중히 보듬어 키워온 꿈과 그 간절했던 소망을 이룬 김일광은 고 강태억연출과 리창균, 주춘복, 정광 등 선배들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기량을 쌓았고 1987년에는 장춘영화촬영소에서 배음훈련과 표현 등 종합과목을 익혔다. 막힌 물목이 터진것처럼 그의 재능발휘는 일사천리였다. 해마다 100여부 방송극의 배음을 맡으면서 그는 스스로 성우로서의 자질을 몸에 익혔고 그러기 위해서는 남보다 가배의 노력을 쏟아야 했다. 인물 하나하나의 특성과 개성을 살리고 그 형상을 생생하게 청취자들에게 부각시키기 위해 그가 들인 공은 얼마인지 모른다. 이렇게 첫 2년간 애쓴 보람으로 그는 중견성우로 자리를 잡았고 또 덤으로 그의 음악재능을 발견한 선배성우들의 추천으로 음악효과까지 맡게 되였다. 그가 음향효과를 맡은 처녀작은 련속방송극 “소교의 비극”이다. 김일광은 애정장면에 대담하게 현대음악을 도입했다. 절주 빠른 디스코음악이 라지오방송을 통해 흘러나올 때 반향은 부동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청취자들이 즐겨들었다는 평을 받고야 풍파가 가라앉았다. 김일광은 음악효과를 하면서 늘 새로운 시도를 거듭했다. 대형련속방송극 “조남기장군”을 제작할 때였다. 음악선택에 고심하던 김일광은 어린 시절 잊지 못할 사연을 떠올렸다. 눈보라 휘몰아치던 엄동의 어느날 저녁, 소년 김일광은 열쇠를 맨 줄을 목에 걸고 2전짜리 건두부쪼각을 손에 쥐고 퇴근하는 어머니를 기다리는데 멀리에서부터 당시의 류행가요였던 “석유공인의 노래”라는 노래가 들려왔다. 기승을 부리는 눈보라속에 외로운 가로등만 이리저리 흔들리는데 사나운 눈바람에 노래소리가 들릴듯말듯했다. 바로 이것이다. 김일광은 “조남기장군”음악효과에 이 소리를 모방하여 당시 연길시의 그 춥고 어수선했던 겨울을 재현하는데 성공했다.

지금은 컴퓨터화로 모든게 쉬워졌지만 그때에는 성우에 음악효과까지 맡다보니 이 방에서 저방으로 뻔질나게 오가야 하는 상황까지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것은 김일광에게는 행복이요, 즐거움이였다.

김일광은 지금도 처음으로 “고향의 봄”음악을 도입하던 그때를 웃음속에 회상하군 한다. 1986년 연변텔레비죤방송국에서 “오늘의 연길”과 “북경의 조선족”프로를 제작할 때였다. 음악효과를 맡은 김일광은 궁리끝에 “고향의 봄”을 도입하기로 했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즐겨부르던 노래 “고향의 봄”이다. 김일광은 악보를 기보하여 연주자에게 맡겼다. 이렇게 되여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선률 “고향의 봄”이 전파를 타고 집집의 안방에까지 흘러들게 되였다. 김일광에게는 한가한 날이 없다. 늘 음악선택에 고심해야 하고 성우로서 어떻게 하면 더 완성을 이룰것인가를 고민하기때문이다. 그는 연변인민방송국의 방송극 음악효과는 물론 연변텔레비죤방송국의 음악효과까지 도와야 하기에 휴식일이 거의 없다. 그는 해마다 120편의 프로를 완성하면서  작품마다 청취자, 시청자들의 귀맛에 맞는 지방특색과 민속특색 그리고 현대특색을 잘 활용한 음악을 선택하기에 노력하고있다.

김일광은 지금까지 “오신”, “갈망”, “뉴욕에서 온 사람” 등 1500여부의 작품에서 배음, 음악효과를 맡아왔으며 소품에도 출연하여 소품배우로도 시청자들에게 알려지고있다. 그가 맨 처음 출연한 소품은 1986년 연변TV방송국음력설야회에서 오학철, 김정자와 함께 출연한 “돼지약”이다. 일벌레로 통하는 김일광한테 갑자기 불행이 닥쳤다. 2006년 연변TV방송국에서 음력설야회제작에 한창 바삐 보내던 어느날 소품연습을 하다가 갑자기 몸이 힘들어 병원에 가 검진을 받았더니 신장암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당장 입원수술을 받아야 했지만 그보다도 더 중요한것은 연기였다. 그는 의사의 권고를 뿌리치고 점적주사를 맞으면서 촬영을 견지했고 입원치료를 받고 한달만에 또다시 정든 사무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일광에게는 일터보다 더 소중한것이 없다.  “드라마제작에 몰붓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김일광이기에 그의 탐구와 재능향상은 상행선을 달리고있다. 그가 음악효과를 담당한 대형TV특집 “중국조선족민속”과 “북경조선족”이 한국KBS텔레비죤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TV특집프로 “오늘의 연길”이 전국방송극 평의에서 1등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그가 주요배역과 음향효과를 맡은 방송극 “자정의 전화벨소리”와 “송순녀”는 전국조선어라지오TV우수프로상을 수상하는 등 그에게는 수상대에 자주 오르는 행운이 뒤따랐다. 아울러 김일광은 1991년부터 련속 6년간 선진사업일군으로 평의되기도 했다.

연변일보    김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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