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정용호-주류문단 진입한 기업인작가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12월16일 14시52분    조회:7547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주류문단 진입을 위해서는 온라인을 활용해야 
기업인작가 정용호씨와의 대담

정용호작가에게는 세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기업인작가라는것이고 다른 하나는 중문으로 창작활동을 하는 조선족작가라는것, 또 하나는 온라인창작을 통해 등단한 작가라는것이다. 기자가 알기에 그는 온라인에서의 중문작품 창작을 통해 주류사회 문단에 진출 및 성공한 몇 안되는 조선족작가중의 한사람이다.

그는 또 문화사업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주머니를 털어내는 “의리 있고 통이 큰 사나이”기도 하다.

일전 기자는 영구시 경제개발구 발어권에 있는 그의 회사 “영구호룡봉제품유한회사” 집무실에서 정용호작가와 마주앉았다. 

정용호작가는 조선족문단에서는 드물게 중국어로 문학창작을 하는 작가인데 그동안 많은 성과를 거둔줄로 알고있다. 지금까지의 창작성과를 간단하게 규납한다면?

작가가 되겠다는것은 나의 소년시절 꿈이였지만 40이 넘은 중년이 되여서야 그 꿈을 이루게 되였다. 2005년 하반년부터 중문으로 글을 다시 쓰기 시작하여 현재까지 수십만자의 글을 발표하였으며 중문으로 작품집 《주말부부》, 《당대작가 신세력》(합작본), 장편소설 《남자의 리유》  등을 출간했고 국가급 및 국제급 문학상을 수차 수상했다.

오프라인문단보다는 온라인문단에서 더 활약하는걸로 알고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들을 하고있는가? 또 온라인문학과 오프라인문학의 장단점을 각기 짚어본다면?

나는 온라인문단에서 창작을 다시 시작했다. “10월론단”, “매원론단” 등을 비롯한 많은 문학사이트에서 관리직과 편집으로 있었으며  첫 작품집 《주말부부》도 인터넷작품집이였다.
종이매체, 음성매체, 영상매체의 장애를 뛰여넘는 제4미디어창작인 온라인문학의 제일 큰 우점과 특성은 권위성을 뛰여넘은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유명한 작가라도 걸음마를 타기 시작한 작가와 온라인문단에서는 평등하다.  제일 큰 단점이라면 작품의 엄숙성과 문학예술성이 좀 뒤떨어진다는 비평을 받고있는것이다. 하지만 모든 인터넷작품이 꼭 그런것은 아니다. 인터넷작품도 정말 우수한 작품이 많다. 대표적인 문학사이트 “중국문학 스타트(http://www.qidian.com)”는 수만명의 작가들이 하루에도 수백편의 작품을 올리는데 일년에 원고료수입을 100만원이상 올리는 작가도 10명이상인줄로 알고있다. 종이매체에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사람들은 정용호씨를 기업인작가라고 부른다. 기업경영을 하면서 문학창작을 하려면 어려움이 많을텐데?

많은 사람들은 기업을 하면서 어떻게 문학창작을 하는가고 묻는데 사실 기업경영과 문학창작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 조화되면서 좋은 점도 많다.

나의 작품을 보면 그 대부분이 인정미와 기업경영을 토대로 한 작품들인데 상업작품을 쓸수 있는 원인은 기업경영의 경험과 체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기업경영과정에서의 체험과 느낌을 글로 변화시킬수 있었던것이다.

문학작품이란 어디까지나 리상과 리념을 토대로 하는것이기에 글로 만드는 과정에서 리상적인 경영리념을 반성하군 하는데 기업경영과 관리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모순이 있다면 기업을 경영하면서 글을 쓴다는 그 자체가 결론적으로 시간적모순인데 낮에는 회사에서 일하고 글은 밤에만 쓰기에 일과 글을 빼놓고는 개인적인 여유시간이 기본상 없어진다.

기업경영을 한답시고 매일 술에 빠져 헤매던것이 글을 쓰기 시작하고부터 퇴근만 하면 집에 가서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린다.

어떤 령역에서라도 자그마한 성과를 얻으려면 남들이 하는것을 다하고 자기가 하고싶은 일을 다 하면서 이룬다는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얻으려면 반드시 희생이 필요한것이다.

중국어문단과 조선어문단에는 많은 차이점이 있는줄로 알고있다. 대표적인 실례를 든다면? 또 조선어문단은 중국어문단과 어느 정도 격차를 두고있다고 생각하는가?

중국어문단과 조선어문단이 많은 차이점이 있는것은 사실인것 같다. 그 구체적원인을 분석해보면 원인이 많겠지만 나 개인은 작가의 수준문제보다도 창작환경에서 오는 차이점이라고 생각한다.

조선어문단을 살펴보면 활약할 매체가 근근히 몇개의 잡지와 신문에만 한해있으며 심지어 어떤 잡지사에서는 원고료지불도 힘든 형편이다. 다행히 요즈음은 인터넷시대라 한국문단에서 활약할수도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제한되여있으며 중국어문단과는 비교할수도 없을 정도다. 특히 중국어문단은 상품화가 되여가고있는것 같지만 어디까지나 순문학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일뿐이다. 조선어문단은 상품화가 되기는 아직 힘든 일인것 같다. 무대가 없기때문이다. 문학을 상품화한다는것은 어디까지나 순문학을 지켜가기 위한 목적이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종합화하려는 목적이 아니다.

중국어문단과 조선어문단의 대표적인 차이점은 따지고보면 활약할수 있는 무대공간의 크기의 차이인것이다. 우리 문단도 전통적매체에만 얽매여있으면서 무대가 없다고 한탄만 하지 말고 인터넷이란 이 무한한 무대를 활성화하는것도 발전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한족문단은 인터넷이란 문학사이트를 만들어 수많은 독자들을 끌어들이고 돈을 벌어들이고있으며 작가들의 수입도 극 소수작가들이지만 놀라운 수입을 올리고있다. 우리 문단의 잡지사나 문화매체는 모두 인터넷사이트란것을 설치해놓았지만 모두 형식에 불과하고 또한 상품화한 문학사이트는 하나도 없다. 한족문단의 대표사이트들을 보면 전통매체가 뒤받침해주지 않아도 수많은 독자를 흡수하고 높은 수익을 올리고있다. 만약 조선어문단이 개혁하지 않고 전통매체만 계속 고집한다면 그 거리는 갈수록 멀어져가고말것이다.

조선족작가와 작가지망생들이 하루속히 중국어문단에 접근할수 있는 대안이 있다면?

조선족작가가 중국어문화권에 접근하려면 일단 독특한 특색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다시말하면 작품 자체가 중국어작가들의 작품과는 어딘가 달라야 한다. 그들의 창작풍격을 모방하면서 그들과 경쟁을 하려들면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아무리 똑같은 교육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생활환경과 생활풍습이 다른만큼 똑같은 풍격으로 그들과 경쟁하려고 한다면 실패로 돌아가고말것이다.

부동한 생활습성과 환경은 오히려 조선족문인들이 중국어문단에 접근할수 있는 특이한 무기로 될수 있다. 우리 민족의 특이한 풍습을 작품속에 그대로 표현하면서 그들이 창작할수 없는 민족특색의 작품을 창작하는것이 중국어문단에 발을 들여놓고 경쟁할수 있는 유일한 전제라고 생각한다. 작품만 보아도 이것은 조선족작가의 작품이라는것을 알수 있게 하는것이다. 나의 중문작품들을 례로 들면 조선족독자들이 읽어보면 잘 발견하지 못하겠지만 한족독자들이 읽어볼 때는 내용도 그렇고 표달방식에도 어딘가는 그들과 다른 점이 느껴진다고 한다. 어떤 부분은 병구라고도 할만한 문법상오차도 있을것이다. 하지만 그 대부분이 의도적으로 조선어문법을 그대로 활용한 “오차”라는것을 그들은 모른다. 오히려 이런 표현방법은 나의 언어와 창작특색으로 그들에게 인정받는다.

그리고 한가지 더 첨부하고싶은것은 조선족작가들이 중국어문단에 발을 들여놓을수 있는 제일 빠른 방법은 인터넷작품 창작이며 전통매체에 데뷔할수 있는 제일 좋은 방법은 문학단체지간의 호상 접촉과 교류일것이다.

경제와 문화는 토대와 상부구조라는 서로 다른 사회현상이면서도 서로 융합되여야만 조화로운 사회가 이루어질수 있다. 정용호씨는 기업경영과 문학창작을 동시에 하면서 경제와 문화의 융합을 직접 실천한 사람인데 현재 조선족사회의 경제계와 문화계의 만남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가?

21세기 사회발전의 중요한 방향의 하나는 문화와 경제의 융합이다. 몇년전 중국조선족문단에는 “심양현상”이란 화제가 회오리바람처럼 몰아쳤다. 그 “심양현상”은 우리 문단의  몇개밖에 안되는 잡지인 《도라지》와 《장백산》에도 영향을 미치여 그들도 아주 활약적으로 문학과 기업의 융합을 이루고있는것 같다.

사실 따지고보면 경제와 문화는 갈라놓을래야 갈라놓을수 없는 관계다. 그것들이 얼마만큼 잘 융합되느냐에 따라 그만큼 상호 발전을 추진하는것이다. 주지하다싶이 하루와 같이 커가는 정규화 대형회사들은 모두가 기업문화건설을 첫자리에 놓고있다. 우리 조선족경제사회는 이 점에서 아직까지 큰 의미를 못 느끼고있는것 같아 아쉽다.

기업경영과 문학창작 및 가정과 사회생활에 대한 향후 타산을 밝힌다면?

문학창작은 이미 나의 인생에서 버릴수 없는 한부분으로 되여 나의 후반생을 지속적으로 동반할것이다. 아직은 보잘것 없지만 “기업인작가”란 남다른 우월성이 있고 인터넷창작마당이란 활약무대가 있으며 더욱 중요한것은 조선어와 중국어로 동시에 작품창작을 할수 있는 우월한 조건이 있다. 끈질긴 집착과 대담한 도전으로 우리 문단의 제재령역을 넓히기 위하여 노력할것이다.

하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기업이 본직이다. 경제위기로 많은 곡절을 겪고있지만 위기는 오히려 기회가 될수도 있는만큼 문학에서 남다른 특색으로 창작하듯이 기업경영도 새 도전을 위하여 피타는 노력을 아끼지 않을것이다.

그리고 가정의 안착은 문화와 기업, 모든 사회생활의 기본적인 요소다. 옛날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능력이 된다면 사회생활에 많은 봉사를 해나갈것이다.

기업경영과 문학창작에서 쌍풍작을 거둘것을 진심으로 바란다. 
                                             

인터넷료녕신문 김룡호 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ㅡ한국 KBS전국노래자랑 사회자 송해선생 인상기지난 9월 11일 오전, 중국에서 처음으로 개최되는 KBS전국노래자랑(심양편)을 사회하기 위해 송해선생이 심양에 왔다. 점심식사를 할 때까지도 손명식, 권유현, 길경갑 등 현지의 주최측책임자들과 행사준비상황을 료해하고 체크하기에 경황이 없던 선생은 오후에 짬이 좀 나...
  • 2009-10-20
  • 저명한 촬영가 황범송 만나본다 황범송은 장백산에 300여차 올라 천지사진만 해도 100장 찍었다. 《장백산천지》는 국가 교육부, 수리부에서 지정한 《천지표준상》으로서 초고중 교과서에 올랐다 1959년 8월부터 연변을 시찰한 중앙지도자들을 촬영, 선후로 주은래, 주덕, 동필무, 호요방, 등소평, 강택민, 리붕, 양상곤, ...
  • 2009-10-20
  • 충북서 배워간 ‘명사 시낭송회’길림에서도 자리잡아동양일보 초청 연변동포 6명 단장으로 방문97년 옥천 지용문학상 수상 충북과 인연연길 포석회 회장… 8회째 조명희문학제 개최명사들이 무대에 올라 시를 읊으며 깊어가는 가을의 낭만을 전해주는 ‘2009 명사 시낭송회’가 지난 9월 25일 청...
  • 2009-10-19
  • 무진장 큰 중국시장에는 할 일이 너무 많다청도성신온돌유한회사 김룡웅 총경리를 만나전자파측정기로 제품을 측정해보이는 김룡웅 총경리 (왼쪽사람). 룡정시와 훈춘시에서 상업, 무역에 종사하던 김룡웅씨가 청도시 성양구에 온것은 2004년경, 처음에는 한국회사와 합작하여 전기온돌판넬을 생산하다가 지금은 한국성신전...
  • 2009-10-15
  • 우리 문화는 우리 경제가 살려야 합니다산동성 청도시 청도코리아수정실업유한회사 회장 남룡해 인터뷰남룡해 프로필:198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연변촬영가협회의 직원, 부비서장,부주석,주석. 길림성촬영가협회 부주석, 중국예술촬영가협회 부주석 등 직무를 력임연변조선족자치주《진달래문화상》  수상전국덕예...
  • 2009-10-15
  • 나라가 부강해야 모두가 잘살수 있다 북경건국60돐경축에 참가한 김죽화교장의 감수10월 10일, 기자는 북경건국60돐경축행사에 참가하고 돌아온 무순경제개발구리석채조선족소학교 김죽화교장을 만났다. 그는 “공산당이 없으면 새 중국이 없고 하늘땅이 크다 해도 공산당의 은덕에 비기지 못한다”며 아직도...
  • 2009-10-14
  • 80년대중반 연변가요계에서  《살구나무》노래를 불러 새별로 떴던 김경자씨가 일본생활 17년만에 고향행을 하면서 그 이름《살구나무》앨범을 선물로 들고 찾아왔다. 특히 모교인 연변대학 성립 60돐기념행사에 모처럼 《교정의 종소리》를 불러올릴 예정이란다. 고향과 모교, 그에게 가수의 꿈나래를 키워준 곳, 오매...
  • 2009-10-14
  • 성실신용은 금이다도문시 보이라공장 김룡식공장장 인터뷰일전 기자는 30여명의 종업원들을 이끌고 팽이처럼 돌아치는 도문시보이라공장 김룡식공장장(55)을 만났다. 월동준비때라 꺼질줄 모르는 핸드폰, 할빈서 온다는 손님들… 여하튼 오전에 시작한 인터뷰가 밤 약속으로 이어졌다. 그도 그럴것이 지나온 17년간 눈...
  • 2009-10-13
  • 작은 인연이 커 갑니다 -북경 왕징 중심호텔 강하연사장을 찾아서 지난 10월 10일 오전 9시 30분경, 기자는 전날의 약속대로 북경시 조양구 왕징리택중원3구 301번지 중심호텔(北京市朝阳区望京利泽中园3区301号 中心宾馆)의 7층 사무실에서 강하연사장(39세)을...
  • 2009-10-13
  • 단편소설 《몽당치마》의 작가 림원춘 만나본다● 《가무단 한쪽구석에 처박힌 〈논물관리원〉이 입었던 한복을 입고 시상대에 올랐습니다.  한복차림으로 나타나자 수백명 기자들이 샤타를 누르는데 ...》 ● 《농촌에 내려가 하숙집의 나무도 패주고 불도 때주고 배갈 한병 받아놓고 주인집 량반과 술 한잔 나누면서...
  • 2009-10-13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