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한국의 무관 전권대사》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12월8일 09시49분    조회:6837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330명 국가원수를 인터뷰한 《외교》잡지사 임덕규회장

외국 외교관에게 반기문총장특집《외교》월간을 증송하는 임덕규회장(왼쪽)

지난 여름 서울에서 있었던 한 행사에서 한국 영문월간 《외교》잡지사 임덕규회장과 자리를 같이했다.
내가 중국에서 왔다고 소개를 듣고 그는 호금도주석과 리명박대통령이 친절히 손잡은 사진을 앞표지에 크게 올린 《외교》(디플로머시)잡지를 나한테 선물하였다.

올해 73세인 임회장은 한국서 영문잡지가 전무하던 1975년에 집을 담보하고 영문월간지 《외교》를 창간, 숱한 역경을 겪으면서 지금까지 34년째 표지인물에 각국의 대통령, 국왕, 총리 등 정상들만 올리며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한국의 《무관전권대사》였다.

                  하늘 같은 어른님의 말씀 따라

그가 《외교》를 꾸리게 된데는 독립운동가 출신으로 2대 외무장관과 유엔대사를 지난 임병직박사를 만난것이 계기로 되였다.
1960년에 동국대 법대를 졸업하고 박사과정중이던 1963년에 집안의 아저씨벌인 임병직박사가 귀국하자 임회장은 자진해 임박사 시중을 들기 시작하여 10년간 임박사의 연줄로 당대의 거물급 인사들을 많이 알게 되였고 그들로부터 나라사랑을 배우게 되였다. 임박사가 인도 대사로 지내며《한국. 인도친선협회》를 창설한 후 임회장은 간사로 활동하며 국제적인 외교를 경험하였다.

1972년 뮨헨 올림픽을 계기로 임박사가 세상에 한국을 홍보하기 위해 예술단을 이끌고 유럽순방을 떠나던 날 임덕규한테 이런 당부를 하였다.
《앞으로 먹고 살 생각만 하지 말고 영어로 잡지를 만들어 미국 사람들을 설득하여 국가에 큰 도움을 주라》고.

하늘 같은 어른님의 말씀에 임덕규는 그 자리에서 하겠다고 대답은 했지만 잡지를 만들어 본 경험, 영어수준, 자금 등으로 막막하기 그지 없었다. 그 때만 해도 한국에는 영문으로 문장을 쓰는 인재가 몇이 없었다. 그러나 모든걸 다 바쳐 독립운동을 하신 어르신들을 생각하니 말한 대로 안한다면 죄인이 될것 같은 자책감이 앞섰다. 다행히도 4년간(1968-1971)신아일보 론설위원과 동화통신 출판부국장, 론설위원을 지낸 밑천에 배짱이 생겨 전화를 잡혀 300만원의 자금을 마련하고 서울 무교동에 손바닥만한 사무실을 마련하였다. 그 때 합작동지라고는 지금 세계적인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동화통신 사진부 차장 백남식뿐이였다.

3년 남짓이 백남식과 둘이서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짜낸 끝에 1975년 8월에 창간호를 발간, 창간호의 표지스토리는 한미 관계에 력점을 두고 포드대통령 가족사진을 싣고 성조기변천사, 력대 미국 대통령의 친필서명, 력대 주한 미국대사 사진 등 내용으로 특집을 꾸렸다.
창간호가 나오니 미친 짓이라며 극구 말리던 사람들마저《된장냄새가 안나게 잘 만들었다》고 격려하니 죽자 살자 뛰여도 힘이 드는줄을 모르며 광고를 얻기 위해 아침밥 거르기를 밥먹듯하며 기업체 사장들의 출근길을 지켜섰단다.

곧 문을 닫을줄 알았던 영문월간잡지가 계속 발간되니 사회에서 중앙정보부 기관지라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이렇게 4년쯤 버티니 《외교》가 명성이 생기며 자리가 잡혔다.

                        《무관 특명전권대사》

임회장은 지금까지 《외교》에 국왕, 대통령, 총리만 380명을 모셨는데 그 중 330여명은 직접 인터뷰를 하였다. 방한하는 지도자들은 방법을 다 하여 서울서 만나고 5대양 6대주를 넘나들며 미국, 중국, 일본, 영국, 로씨아, 프랑스, 독일 등 대국들은 물론 피지, 지부티, 등 이름조차 낯선 오지나라까지 찾아 간 나라가 100개를 넘었다. 지금 그의 서울 사무실에는 30여년간 만난 세계지도자들의 사진들로 벽 한면을 메웠다.

임회장은 30년전의 일까지도 그대로 외우는 타고난 기억력을 바탕으로 해박한 지식, 림기응변의 기지와 순발력, 어려움을 모르고 감히 맞서는 담력으로 방금전까지의 적을 단숨에 동지로 만드는 타고난 친화력을 가지고있다. 이런 바탕으로 하여 그는 11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1986년부터 3년간 세계국제법법회(lLA)회장을 력임하였다. 그러나 그는 《단 한번도 제가 남보다 뛰여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고》 《다만 누구라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을 제가 맡았기에 어떻게 하든지 해내야만 한다”며 지금까지 버친다》고 대견스럽게 말한다.

임회장에게는 전 세계적으로 500여명의 쟁쟁한 고문이 있단다. 그 역시 만났던 각국의 정상과 장관,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 관계자, 유명 대학총장, 노벨상 수상자를 포함한 다양한 분야의 석학, 대기업총수들의 자문에 수시로 응하며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거나 기고를 통해 제작에 직접 참여하기도 한단다. 그래서 오늘의 《외교》는 세계적인 종합 월간지로 부상되고 그에 따라 임회장은 유엔 등 국제 외교무대의 유명인사로 발탁되였다. 그는 서울에 앉아서도 이 같은 안테나를 가동해 세계외교의 흐름을 가늠하고 나름대로 적절한 진단과 처방을 내놓는데서 직업외교관들도 혀를 내두른단다. 그래서 그의 별호가 세계외교관들의  《교두보》, 한국의 《무관 전권대사》다.

 《70년대는 한국을 설명하느라고 애를 먹었는데 90년대부터는 외국 지도자들이 오히려 어떻게 하면 한국처럼 될수 있느냐며 조언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 일이 비일 비재다》 《세계 200여 국가 중 170여개 나라가 한국을 모델로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덕분에 우리 <외교>도 주가가 올라 주간지를 만들 정도로 각국에서 자기네 지도자를 인터뷰해달라는 요청이 분분하다》

임회장은 이렇게 말하며 호탕한 웃음으로 《외교》의 위업을 과시하였다.

                       반기문총장 당선에 큰 역할

그와 반기문과의 인연은 1972년부터다. 당시 임회장은 한-인(인도)친선협회 간사로, 반기문은 인도대사관 3등 사무관으로 지내며 사업적으로 맺은 인연이 지금까지 계속되고있다.

2004년 1월 반기문이 한국외교통상부 장관으로 지낼 때 임회장이 반장관에게 유엔사무총장에 출마하라고 권하니 반장관은 《어떻게 제가 합니까?》며 그냥 웃고 지났단다. 그 후부터 임회장은 반장관의 유엔사무총장출마를 계속 설득하였다. 선거운동이 시작되자 그는 주한 외국대사들과 유엔 주재 각국 대사를 상대로 《반기문을 사랑하는 모임회》 (반사모)를 조직, 외국 대사들을 만나면 그들에게 한국말로 “반사모!”를 복창시키도 했단다.

《반사모》의 노력으로 주한 외국대사 96명중 70여명이 《반사모》에 가담, 뉴욕에 있는 여러 나라의 유엔대사들중에도 《반사모》가 많다. 임회장은 34년간 《외교》월간을 꾸리면서 직접 인테뷰를 했던 330여명의 외국 국왕, 수상, 대통령들을 대상으로 《반사모》를 위한 네트위크(网絡)도 가동했단다.

세차례의 예비투표에서 반기문이 1위를 차지 한것을 지켜본 뒤 병으로 쓰러질 때까지 선거운동을 했으니까 오죽했으면 반기문총장이 당선된 다음날에 바로 임회장의 문병을 왔겠는가.

《200여개 유엔회원국이 돌아가며 한차례씩 사무총장을 맡는다면 수자적인 계산으로 1000년은 걸리는데 게다가 전임 총장들의 재임(再任)을 감안하면 대략 1500년 정도가 걸려야 한다》 《한국에서 유엔사무총장이 다시 나오기는 향후 1000년 이상이 걸린다고 해도 어려울것이다》 《그래서 반총장의 재임을 위한 반사모의 노력은 지금부터다.》

 이를 목적으로 그는 반기문총장특간을 꾸려 외국외교관들에게 배포하며 반기문총장  홍보를 시작했단다.

《나는 천만년뒤 지구상에 가장 많이 남아 있을 책은 단연 <외교>라고 장담한다. 원인은 간단하다. <외교>의 표지인물이 모두 각국의 최고지도자들이므로 각국의 기념관에서 우리의 <외교>를 장서로 보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세에도 부끄럽지 않을 잡지를 만들려는 생각에서 갈수록 어깨가 무거워나며 매일 아침 6시면 집을 나선다.》고 임회장은 자랑한다.

/오기활기자
  길림신문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조선족청년작곡가 박광춘 신미디음악회가 10월 28일 연변TV방송국 스튜디어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이날 박광춘이 최근년간 창작한 새로운 가요와 음악작품들을 신미디음악이라는 새로운 형식에 담아 표현하였다. “세상은 우리것이야”“청춘스타트”“오아시스” 등 17수의 음악으로 구성되였고 열정 사랑 찬미 등 세 부분...
  • 2005-10-31
  • 광복 60주년을 맞아 올해, 덕수궁미술관에서는 8월말부터 특별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보통사람에게는 낯선 이름이지만 일제 강점기 중국 땅에서 화가이자, 고고학자, 나아가 혁명가로 활동하다 끝내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그 곳에 뼈를 묻어버린 한낙연(韓樂然)을 기념하는 ‘광복 60주년 기념 한낙연 특별전...
  • 2005-10-31
  • [원제:할빈시고려회관 안중근의거96주년기념좌담모임 소집] 2005년 10월 27일 10월26일 안중근의사 의거 96주년에 즈음해 할빈시고려회관은 안중근의사 기념좌담모임을 소집했습니다. 회의는 리민 전 흑룡강성정협위원회 부주석이 기증한 ,이란 글발의 휘호족자 두폭을 전달했습니다. 이날 모임에서는 안중근의사의 생애와 ...
  • 2005-10-28
  • 《퉁소마을》인 훈춘시 밀강향에서 태여나 자라 꾸준한 탁마로 중국 문화예술부상인 문화(文華)예술학원상 제2회민족악기연주콩클에서 1등상을 수상한 사람이 있다. 그가 바로 연변대학 예술학원의 최민(25살)이다. 1993년, 훈춘시문화관에서 《퉁소마을》조성을 위해 밀강향에 퉁소 100대를 지원했다. 어려서부터 마을 로인...
  • 2005-10-28
  • 효자효녀라 하면 사람들은 흔히 부모에게 효도하는 성인을 지칭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 15세밖에 안되는 초중생이 학교로부터 '효자상'을 받았다. 그가 바로 상지시조선족중학교 초중 2학년 4반의 류춘길학생이다. 춘길학생은 학습성적도 우수하거니와 학우간에 우애단결하고 학교 각항 제도도 모범적으로 ...
  • 2005-10-27
  • 연형묵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은 조선 국방공업을 이끌어온 시세다. 함경북도 경원군에서 태여난 연부위원장은 만경대혁명학원 출신으로 체코의 프라하공대를 류학한후 로동당, 정무원(현 내각), 국방위를 오가면서 조선 국방공업과 경제건설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항일빨찌산 유자녀로 김일성 주석의 각별한 신임을 받았던 ...
  • 2005-10-26
  • 1983년. 중국작가협회 길림성 분회 부주석, 상무위원회 위원이던 그는 베이징으로 전근한다. 이어 중국 작가협회에서 발간하는 '민족문학'주필이 된다. 그때만 해도 조선족은 북경에서 거의 볼 수 없었다. 5년 만에 베이징 호적(시민)이 된다. '베이징 시민'은 특혜였다. 조선족으로는 처음 베이징 명예시민이 된 것이다. 등...
  • 2005-10-26
  • [원제:《천리를 말 한필로 달리다》호평속에 다카쿠라켄 장예모같은 아들이 있었으면...] 제18차동경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오른 영화 《천리를 말 한필로 달리다》는 장예모감독과 다카쿠라켄의 합작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개막식에서 이 작품은 세계영화인들과 일본관중들의 열렬한 박수갈채를 받았다. 한편의 중국영화...
  • 2005-10-25
  • [원제: 중국조선족항일사 연구하는 만족당사학자-조문기] - 다련래 조선족항일사에 관한 저서, 론문 대량 발표 다년간 신빈현 당사지방사연구판공실 주임직을 담임했던 조문기(만족 57세)씨는중국조선족항일사연구에 조예가 깊어 중국조선족사회는 물론 한국에도 꽤 알려졌다. 조문기씨가 중국조선족항일사에 관심을 가지기...
  • 2005-10-25
  • 중국의 대표적인 음악가인 정률성선생(1914~1976)의 출생지와 관련, 현재 한국에서 논란이 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논란은 한국 광주남구의회 유 순남 의원이 지난 17일 정률성선생의 호적과 화순 능주소학교 제적부, 정률성아버지 정해업씨의 토지소유대장자료 등을 토대로 정률성선생의 출생지가 화순이라고 주장하면...
  • 2005-10-25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