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영원한 문학소년 조룡남시인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12월2일 15시47분    조회:6534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조룡남시인과 부인 심월선녀사

조선족 여러 세대 어린이들에게 우리 민족의 구전동요로 알려질만큼 반세기 넘어 애창되여온 명동요 《반디불》, 그 《반디불》의 작자 조룡남(75세)시인의 근황을 알아보고저 일전 기자는 연길시 하남가두에 위치한 그의 가택을 찾았다.

조룡남시인의 집에 들어서면 첫눈에 안겨오는것이 벽에 걸려있는 가족사진과 시화작품이다. 거실과 서재에는 컴퓨터와 함께 책이 빼곡이 포진해있고 주인의 구독욕을 말해주는듯 책을 넣은 종이상자까지 가득 쌓여있어 마치 서점창고에 들어선듯한 느낌을 준다. 베란다에는 녀주인이 정성들여 가꾼 여러가지 화초가 흐드러지게 자라고있는데 화초향과 책내음이 묘하게 어우러지면서 은은한 문화향을 발산하고있다.

조룡남시인은 현재 부인 심월선(69세)녀사와 만년의 천륜지락을 누리고있었다. 그들 부부는 슬하에 두 아들을 두었는데 맏아들은 한국의 모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그 대학에 연구교수로 재직하고있고 작은아들 역시 한국의 모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있는데 요즘은 그가 자기 론문집을 출판하여 화제를 모으고있다며 자식들과 컴퓨터(인터넷)를 통해 화상채팅을 하는것이 즐거움의 하나라고 조룡남시인은 밝게 웃었다.

그만큼 조룡남시인은 컴퓨터에 매료되여있었다. 10여년전에 업무와 창작의 수요로 컴퓨터를 익히게 되였고 현재는 기상해서는 전자우편함부터 열어보고 메신저로 상대방에게 문안인사를 보내는것이 첫 일과가 되였다. 그리고 사진촬영을 즐기는 애호를 살려 컴퓨터에 풍경사진, 인물사진, 회의사진 등 내용으로 수백페지에 달하는 전자사진첩을 만들었으며 동영상도 만들고있다.

《컴퓨터는 취미생활을 다양하게 해주고 새로운 정보나 지식을 제때에 알려주며 시야를 넓혀주고 사유갱신을 추진해주는 등 많은 기능을 가지고있다》며 조룡남시인은 아직도 적지 않은 로인들이 컴퓨터를 거부하고있는데 대해 아쉬움을 나타냈다.

카메라촬영은 조룡남시인의 또 하나의 취미생활이다. 조선족문단의 크고작은 행사에 가면 조룡남시인이 사진을 열심히 찍는 모습을 종종 볼수 있다. 조룡남시인은 연변텔레비죤방송국 《영상시》프로제작에 초기부터 참여했고 김학철영상시 《불멸의 영령》 등을 성공적으로 만들 정도로 영상예술에 함빡 젖어있다. 그의 컴퓨터에는 최근년간 촬영한 사진과 동영상 수천점이 소장되여있다. 그외 《세계명화》, 《세계명시》, 《명작영화모음》, 《즐기는 음악》 등도 편집해두고 수시로 감상하면서 시인으로서의 정서적공간을 확보해가고있다.

그는 근 반세기동안의 문학창작에서 《그 언덕에 묻고 온 이름》, 《그리며 사는 마음》, 《고향마을 동구앞에서》, 《반짝반짝 반디불(동요동시집)》 등 시집에 많은 수필과 실화, 공구서적을 출간하고 수십년간 연변인민출판사에서 문예편집으로, 연변작가협회 부주석으로 근무하면서 수많은 문학신인들을 양성했으며 전국소수민족문학상 준마상, 길림성정부 장백산문예상 등 많은 문학상을 수상했다고 하지만 자신을 원로시인이 아닌 문학초학자로 간주한다며 겸허한 자세로 살아가는 조룡남시인, 문화와 정보의 시대로 불리우는 오늘날 하루라도 독서를 게을리한다면 시대의 락오자로 전락되기 쉽다며 달마다 최소로 2~4권(장편소설분량)의 명작 또는 신간서적을 독파하고있다고 한다.

몇해전부터 국제도서시장을 석권한 《해리포터》(한국판 번역본)를 1권부터 전부 구입해 읽으며 작자의 상상력과 이야기구사능력에 탄복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예전에 여러가지 원인으로 읽지 못했던 많은 세계명작들을 탐독하면서 문학거장들의 넓은 작가적시각과 깊은 문화적소양에 다시한번 감복하게 되였다며 문학소년이 된 기분으로 독서와 함께 살아가는 멋 또한 만년에만 누릴수 있는 즐거움이 아니겠느냐며 조룡남시인은 설파했다.

조룡남시인은 1995년에 정년퇴직한후에도 문학창작에 정진하는외에 연변인민출판사와 《김학철문학연구회》 연구저서들의 책임편집, 한국 모 문학잡지의 해외지사장 등 여러가지 편집업무를 겸직하고있다.

앞으로 미발표작으로 묶은 시집과 정치투쟁의 희생양으로 23년간 살아온 내용을 형상화한 수필집을 펴내고싶다는 조룡남시인, 그는 요즘은 입수한 신간도서수량이 부쩍 증가되여 서재에서 보내는 시간이 한결 많아졌다며 초심으로 돌아가는 마음가짐으로 문학의 진미를 반추하면서 《마음에 드는 시》를 쓰고싶다는 속마음도 내비치였다.

길림신문 김창희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흑룡강신문=하얼빈) 김호 기자 = '어린시절 흰색가운을 입은 사람이 부러워 의사직업을 선택했어요'라고 말하는 할빈의과대학제1부속병원 리영화주임의사(녀, 교수, 45세, 연변 룡정 출신)는 림파암, 백혈병, 골수암 등 혈액관련 병마를 잡아주며 환자건강을 지켜주는 백의천사이다. 리영화 의사는 중국의과대학 의학...
  • 2010-04-26
  • -“가주중국동포연합회” 제 8임 회장 강성씨를 만나서  태평양건너편 머나먼 미국땅에서 조선족들의 질고와 친목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단체가 있다. 미국 LA현지의 “가주중국동포연합회”가 바로 그 장본인이다. 일전 연합회의 회장직을 맡고있는 강성씨가 연변을 찾았다는 소문을 듣고 그분을...
  • 2010-04-21
  • —연길시공안국 형사경찰대대 정보자료중대 김란중대장을 만나 "어릴적 꿈이였던만큼 경찰사업에 종사할수 있다는것만으로도 더없이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백성들에게 믿음과 신임을 안겨주는 훌륭한 경찰로 되기에 노력하겠습니다." 15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연길시공안...
  • 2010-04-19
  • (흑룡강신문=하얼빈) 리수봉 기자 = 동북농업대학 농학원 장현철박사(부교수, 40세, 연변출신)는 '감자역병의 생리분화형 연구'에서 성과를 거두어 괄목받고 있다. 1993년 연변농학원을 졸업하고 연변 룡정시에 있는 과수농장에서 7년간 사업하다 공부를 더 하려는 의욕으로 2001년 3월 한국 강릉대학에 입학, 여기서 석, 박...
  • 2010-04-16
  • 채순희-오래가는 향기 오래 가는 녀자—조선족 녀성기업인 태평양미용병원 채순희원장의 도전하는 세상사람들은 흔히 "마음"이 중요하다고들 한다. 세상만사 마음먹기에 달려있다고. 그런데 정말 마음의 위대함을 속속들이 인식하고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가 않은것 같다. 연길시태평양미용병원의...
  • 2010-04-14
  • 중국광대은행 하얼빈 홍기지행 김룡 부행장 (흑룡강신문=심양) 장초령 특파원 = 중국광대은행 하얼빈 홍기지행 김룡 부행장이 바로 금융학과를 나와 젊은 나이에 걸출한 금융인사로 되겠다는 꿈을 품고 수십 년간 하루와 같이 사업을 열심히 해오면서 현재 금융업계에서 맹활약하는 훌륭한 조선족 은행가이다. 1990년 김룡씨...
  • 2010-04-13
  • 2009년 YBTV음력설문예야회 《아리랑대잔치》에서 웃통을 벗어제끼고 장백산천지에서 힘있게 북을 치며 야회의 서막을 열었던 사나이, 1분도 안되는 짧은 시간에 근육질몸매와 강렬한 눈빛으로 뭇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사나이 리주용은 2010년 YBTV음력설문예야회 《두만강의 새봄》에서는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노...
  • 2010-04-12
  • “한국인들에게 가장 듣고픈 말 ‘우리나라 사람’” 중국 동포들로 구성된 ‘동포자율방범대’ 이림빈 대장(왼쪽)과 대원들의 모습. 이 자율방범대는 2008년부터 매주 화요일 오후 9시∼밤 12시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일대에서 순찰과 취객 귀가 활동 등을 펼치고 있다. 사진 제공 이림빈...
  • 2010-04-12
  • 전국애민 모범선진파출소를 이끄는 조선족소장 전국 유일한 조선족대표로 선발된 왕청 춘양파출소 윤철남소장을 만나 기자는 일전 지난 3월 26일에 북경에서 호금도, 온가보, 리장춘, 주영강 등 당과 국가의 지도자들의 접견을 받은 후 수도 인민대회당에서 있은 《전국공안기관 애민모범선진사적보고회》에 참가하고 ...
  • 2010-04-11
  • 조선족연극예술의 코기러기 지난해에 이름난 극작가 리광수선생의 뒤를 이어 연변연극가협회 주석으로 선거된 전득주 30여년간의 피타는 노력을 거쳐 이름없는 연극배우로부터 유능한 연출로, 조선족연극예술의 코기러기로 자리매김한 그의 인생궤적을 진맥해본다. 가수의 꿈을 키우던 나날1951년, 군인가정의 3남매중 맏...
  • 2010-04-09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