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정인갑교수, 그는 이런 사람이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11월24일 15시50분    조회:8268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칼럼을 통해 조선족사회 제반에 대해 바른 말, 쓴 말을 많이 하여 직통배기교수로 유명한 정인갑교수(62)를 만난것은 지난 11월 8일 저녁무렵, 북경 망경부근의 조선족음식점에서였다.

마침 일요일이여서 협회친구들과 함께 등산을 다녀왔다는 등산복차림의 정인갑교수는 재작년에 정년퇴직한 분이라고는 보기 어려울 정도로 혈기왕성하였고 북경에 거주한지 30년이 되여 오지만 기타 조선족 학자나 문화인들이 다 그러하듯 우리 말 언론매체에는 관심이 매우 많은 분이였다.

료녕성 무순시 태생인 정인갑은 고중을 졸업하는 1968년도에 문화대혁명때문에 대학입시를 놓지고 그 이듬해에 참군하여 5년동안 군영생활을 한다. 1976년에 연변문예잡지사에 입사, 편집으로 있다가 1978년 대학입시가 전면 회복되자 31세의 나이로 대학입시에 참가한다.

그때의 정경을 그는 이렇게 말한다. 《학구열에 불타던 수많은 청년들이 10년동안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험이였지요. 하다보니 입학률이 몇십분의 일로 경쟁이 매우 치렬했어요. 아이가 있는 아빠로,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까지 있었지만 대학에 가고픈 생각은 굴뚝같았어요.》 당시 연변문예의 책임자로 있던 김해진이 간곡히 만류하였지만 그는 그냥 한번 대학시험을 치고 싶다고 말한다. 대학시험을 친 그는 대학시험이 생각밖으로 너무 쉬웠기에 경쟁적수가 구름처럼 많은 첫해에 대학에 입학할 가능성이 적다고 판단한다.

그때는 대학시험에 합격된 사람이라야 신체검사에 참가할수 있었는데 그는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남모르게 두번이나 해당 부문에 찾아가 신체검사여부를 알아본다. 이름이 없다는 대답에 《못 붙었구나!》 생각하고 남들이 웃을가봐 일에 몰입하는데 함께 편집으로 있던 리상각시인이 싱글벙글하며 어깨를 툭 치더란다. 총점 344점으로 연변지역 문과장원으로 되였다는 소식을 알게 된 에피소드다.

그는 중국 최고학부인 북경대학 중문학부에 입학하여서야 신입생중 자신이 최고령인줄 알게 된다. 진취심이 있고 책임성이 강한 그는 각종 학생활동과 사회활동에 적극 참가하면서 자기의 재능을 한껏 과시한다. 대학생신분으로 북경시제1회조선족운동회를 적극 조직하여 1981년 9월 14일에 운동회를 개최하게끔 한것이 그중의 한 실례다.

1982년 1월에 우수한 성적으로 북경대학을 졸업한 그는 당시 문턱이 높아 한족들도 흠모하는 유명한 《중화서국(中華書局)》에 배치받는다. 《중화서국》은 고서적을 정리출판하는 권위성 전문출판사로 중국에서 력사가 가장 오랜 출판사중의 하나이다.

1982년부터 2007년까지 《중화서국》에 근무하는 사이에 그는 선후로 언어문자 편집부 주임과 사전편집부 주임을 맡고 학술저서 수십종을 편집하고 현대한어 교과서 1종, 고대한어 교과서 3종과 각종 사전 15종을 집필하거나 편집하였다.

활동범위가 넓고 사유가 민첩한 정인갑은 편집사업외에도 놀라운 창작력과 활동력을 보인다.

창작방면에서 그는 십여권의 론문집과 저서를 집필하고 400만자에 달하는 번역작품, 그리고 수백편의 칼럼을 발표한다. 그의 론문이 《고문관지 역주》, 《경전석문 색인》 등 학술가치가 높은것이 위주라면 저서와 번역작품은 《한국경제핸드북》(중문), 《한국관광 가이드》(중문), 《중국문화COM》(조문), 《HSK(한어수평고시)응시지남》(조문), 《나의 아버지 등소평》(중역), 《명성황후》(한역) 등 중국과 한국을 소개하는 저서들이 위주다.

최근 들어 활발해진 그의 창작코너는 칼럼이다. 칼럼을 통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대처럼 곧은 인간 정인갑이 그려진다. 그는 주간신문《북경저널》에 칼럼 305편을, 주간신문 《북경뉴스》에 칼럼 50여편을, 조글로 명사미니홈에 80여편의 쟁론가치가 있는 칼럼을 발표하였다.

조선족의 현황과 미래, 그리고 대안에 이르기까지 남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는 정인갑교수는  다수가 공인하는 주장에 대해서도 대담하게 도전하는 자기의 견해를 칼럼들을 통해 피력한다. 개혁개방이후 조선족들의 도시와 해외진출로 집거지가 줄어들고 산재구가 많아진데 대해 많은 사람들이 조선족사회의 《위기》론을 들고 나올때 그는 《이런 변화는 우리 민족의 위기와 비이면서도 또한 도약과 희》라고 하면서 《지금 우리 민족이 대도시로, 해외로 확산되고있는 현상은 발전과 진보의 표징이다.》고 확신한다.

그의 사회활동분야도 광범하다. 사업의 여가를 리용하여 그는 1986년부터 선후로 중앙민족대학, 청화대학 중문학부, 하남성 남양사범대학 등 학교들의 객원교수로 있으면서 한중번역, 음운학, 한국어 등 학과와 학사, 석사 론문지도를 해왔다. 그 외에도 그는 북경고려문화경제연구회의 부회장 겸 사무국장, 북경조선족중장년협회 회장, 주간신문인 《북경저널》과 《북경뉴스》의 부주필, 주필, 북경삼강학교(사립조선족소학교) 교장 등 사회직에 있으면서 각종 활동들에 참가했고 한국재벌그룹 중국지사, 한국대학 등에서 중국문화에 관한 특강도 수십차 진행하였다.

앞으로의 타산에 대해 그는 고대한어와 현대한어, 중세조선어와 현대조선어를 두루 섭렵하는 음운연구를 계속하는 한편 북경고려문화경제연구회와 중장년협회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며 동시에 인터넷과 간행물들에 민족문제에 관계되는 칼럼활동을 계속할것이라고 밝혔다. 


길림신문 김태국 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孫文 만난 뒤 중국공산당 입당 사해에 도착한 그는 프랑스조계지에 있던 임시정부를 찾아갔다. 하지만 당시 임시정부는 재정형편이 취약해 그의 생계를 해결해 줄 수 없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그는 당시 조선인들이 주로 취직하던 전차회사의 차장노릇을 하면서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이때 그는 어릴 때 잠시 접어두었...
  • 2005-11-04
  • [원제:동포 1.5세 여성 미 해군 부대장 `우뚝'''' ] 미군 태평양함대 사령부의 인사지원부대(PSA)장이 동포 1.5세 이연미(40. 미국명 앤리 쿠베라) 중령인 것으로 밝혀져 화제가 되고 있다. 30일 미주중앙일보에 따르면 5세 때 가족과 함께 미국에 이민한 이 중령은 뉴저 지에서 중.고교를 마친 뒤 버지니아대 국제관계학을...
  • 2005-11-04
  • 조국독립을 위해 고향을 떠나다 1898년 중국용정에서 태어난 한낙언은 어릴 적부터 남다르게 그림에 재간이 있었다. 하지만 먹고 살기 위해 유민이 되어 조국을 떠난 가난한 조선인가정에서 태어난 그가 체계적인 그림공부를 할 기회를 갖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이었을 것이다. 그가 아홉 살 되던 해에 부친이 병으로 돌아가...
  • 2005-11-03
  • 본사소식(윤선일)" 최근 단동출입경 검험검역국에서 료해한데 따르면 10월에 들어서면서 단동랑두항구로 무연탄을 싣고 입항하는 조선 화물선이 부쩍 늘고 있다. 해당인사의 소개에 의하면 10월부터 겨울 난방기에 들어서고 국내 화력발전소에서 대량의 석탄을 수요로 하며 질 좋은 조선의 무연탄이 중국에서 각광을 받으면...
  • 2005-11-02
  • 흑룡강동원상업무역유한회사 —망규동원화원주점 개업 선언 본사소식( 기자 최계철) 조선족청년기업가 박광종(39세)이 이끄는 흑룡강동원(同源)상업무역유한회사는 상업,무역, 부동산업을 병진시켜 창업 12년만에 총자산 1억 2000만원에 7개 자회사를 둔 그룹으로 급부상했다. 이 회사 산하 흑룡강 망규화원주점이 10월...
  • 2005-11-02
  • 1947년 비행기 추락사고 국공내전이 한창이던 1947년 7월 30일, 실크로드에 세워진 도시 우루무치를 떠나 란저우로 향하던 국민당소속 257호 비행기가 자위관상공에서 악천후를 만나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광활한 중국대륙의 오지에서 일어난 추락 사고는 자칫 긴박한 내전 상황 속에서 중국인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영...
  • 2005-11-02
  • 클린턴과 골프 친 뒤 성금 50만불 쾌척 '1,000만달러의 소녀' 미셸 위(위성미)가 지난 31일(한국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의 서던하일랜즈골프클럽에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골프 회동을 가졌다. 미셸 위와 클린턴 전 대통령의 이 날 골프 만남은 프로 전향 때 발표한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자 돕기 성금 5...
  • 2005-11-02
  • 붓으로 새로운 세상을 굼꾸다 총이 아닌 붓으로 새로운 세상을 그려보자고 했다는 한낙연. 최용수교수도 한낙연이 중국에 알려진 것에 비해 정작 조국인 한국에서는 그를 너무나도 모르고 있다면서 안타까워했다. 하긴 그런 인물이 어디 한둘이랴. 널리 알려진 스타에만 초점을 맞추는 세상 탓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아무도...
  • 2005-11-01
  • [원제:홍광정신 실천으로 조선족 명예 찾겠다 ]  “한국정부에 리홍광장군의 명예회복을 수차례 요구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반응이 없다.”  지린성 반석시 홍광중 교장을 역임한 이주산(李柱山·72)선생은 오랫동안 항일운동가 리홍광장군을 연구해온 인물. 아마도 중국 동북지방에서 그 만큼 리홍광장군에 대해 잘 알...
  • 2005-10-31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