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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철-저는 중공당원입니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9월22일 09시39분    조회:6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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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중공당원입니다 
 편집자의 말: 《저는 중공당원입니다》

몇글자 안되는 말이지만 이 말을 하기란 쉽지 않고 이 말을 할 자격을 가지기란 더구나 쉽지를 않다. 한 당원간부가 10여년간 대도시 사업과 생활을 버리고 자기의 재능과 지식을 수요하는 고향에 내려가 새농촌을 건설하고 일심전력으로 빈곤호들을 치부에로 이끌어왔다면 그 당원은 자격있는 당원이요 《중공당원》이라고 떳떳이 말할수 있다고 본다.

오기철 ― 고향사람들은 그를 《고향에 돌아온 당의 사절》이라 부르고 오기철씨는 자신을 《중공당원》이라 부른다.   《부자는 아니지만 장춘에서 살만한 정도는 됐습니다. 그런데 고향에 와보니까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더라구요. 그들을 돕자니 뭘 좀 해야 했고 그래서 고향에 투자한 항목이 양돈업이였거든요. 양돈업을 시작해서부터 지금까지 리윤이 나오는대로 불우이웃과 빈곤한 촌민들을 좀씩 돕고있습니다.》

공산당원 오기철씨가 도시생활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온 리유와 목적은 이처럼 간단했다. 허나 그것이 가지는 의의는 너무나 크기만 하다. 올해초 오기철은 당조직에 한편의 사상회보를 써서 바쳤다.

오늘 본지는 진정한 공산당원 본색이 담겨져있다 할수 있는 오기철씨의 이 사상회보를 공화국창건 60돐 특별기획의 한편으로 게재하면서 오기철과 같이 공화국과 호흡을 같이 해온 수많은 이름없는 공산당원들에게 숭고한 경의를 드리는 바이다. 
 
공산당원 오기철이 당조직에 바친 사상사업회보

당지부앞:

저는 양돈업을 고향의 투자대상으로 삼고1998년에 장춘에서의 우월한 사업조건을 포기하고 집사람과 함께 고향인 왕청현 배초구진에 양돈장을 꾸렸습니다. (굴암퇘지 100여마리, 년간 상품돼지 1200마리좌우―편집자 주)

《공산당원은 약세군체를 부축하여 공동부유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개혁개방 30년래 농촌면모는 천지개벽의 변화를 가져왔고 농민들의 셈평도 몰라보게 펴이였습니다. 하지만 부분적인 농민들은 아직도 궁핍한 생활을 하고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빈곤한 약세군체에 눈박고 그들을 부축하여 공동부유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기에 그들을 관심하고 돕는것은 정부와 전 사회의 공동한 의무이며 또한 우리의 공동한 책임이기도 합니다.

고향에 돌아온지도 어언 10년이 흘렀습니다. 10년래 저는 양돈에서 얻은 대부분의 리윤을 고향의 빈곤한 약세군체를 돕고 사회공익사업을 지원하는데 돌리면서 공산당원의 형상을 현시하기에 노력하였습니다.

비록 돈은 별로 모으지 못했지만 고향의 빈곤부축사업에 저의 한몫을 하고있다고 느껴지니 마음이 뿌듯합니다.

《저는 중공당원입니다. 간단한 대답이지만 저는 10년간 자부를 느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왜 도시생활을 포기하고 농촌에 와서 고생하는가? 돈을 벌어서 남 주는가?》고 하면서 리해하지 못합니다. 또 어떤 농민들은  제가 남을 위해, 사회를 위해 좋은 일을 자주 하니까 무슨 종교라도 믿는가고 묻군 합니다.그럴 때마다 저는 《아닙니다. 저는 중공당원입니다!》라고 대답하군 하였습니다.

저는 당의 신념을 포기한적 없고 시종 당성을 확보하고 공산당원의 선진성역할을 발휘하면서 게으름없이 인민대중속에서의 당의 위대한 형상을 수립하기 위하여 적극적인 노력을 경주하였습니다.

아래에 10년래 제가 힘자라는대로 새농촌건설을 위해 한 일들을 요약해서 회보하려 합니다. 지금 제가 돕거나 도와준 장애인가정, 빈곤가정은 한 20세대 됩니다.

양돈업이 위험부담이 크고 리익이 적은 경제업종이라는 점을 념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장애인특수곤난가정과 빈곤가정 9세대에 집을 지어주었습니다.

특수곤난호는 새집 지을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고작 하는 생각이 온포문제가 해결되면 그것으로 족하고 행복하다고 여기는것입니다. 몇년래 현장애인련합회와 현민정의 부분적인 자금지원을 받고 제가 자금과 인력을 대서 장애인특수곤난가정 9세대에  벽돌기와구조로 집을 짓고 장식까지 해드렸습니다.

―장애인특수곤난가정을 도와 생산자구,생활자급을 실현했습니다.

소 2마리를 사주어 사양번식하게끔 하고 자금담보를 서주고 자동차를 사주어 정상적으로 상업운행되도록 해주었으며 양봉 상자와 도구를 사주고 무료로 씨암퇘지와 종자돼지를 공급하는 등 조치를 강구하였는데 이들은 지금 생산자구, 생활자급의 길로 나아가고있습니다.

어떤 가정에 한해서는 자금을 대고 인력을 동원하여 경작지를 다루어줌으로써 량식자급을 이룩하고 여량을 팔아 소비돈을 장만하게 하였습니다.

―인문배려를 해주어 빈곤가정이 사회주의대가정의 따사로움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해마다 겨울철이면 장애인특수곤난호들에 땔나무와 겨울옷을 보내주었고  가스, 전기, 전화, 케불TV료금을 해결해주었으며 음력설이나 중요한 명절이면 장애인 특수곤난호와 빈곤호에 돼지고기, 밀가루, 과일 등 명절식품을 보내주었습니다.

운신하기 어려운 장애인들에 한해서는 달마다 1~2차씩 목욕시키고 리발해주었으며 또 중환자에게는 약을 사드리고 차로 병원에 모셔가기도 하였습니다. 해마다 출자하여 배초구장애인들을 위해 들놀이를 조직하였습니다. 다년래 빈곤가정에 입쌀 2.5톤, 색텔레비죤 6대를 보내주었습니다.

―농촌사회공익사업과 문화사업을 부축하였습니다.

걷기 힘들고 생산로동에 영향주는 촌도로 500메터를 닦았습니다. 로년활동실 한채를 지어주고 문구장 2개를 만들어주었으며 로년협회에 24벌의 운동복과 신,모자를 사드렸습니다. 본인이 경비를 대고 《사랑하는 내고향》가창회를 2차,농민체육운동회 2차,정월보름민속활동 3차를 조직하였으며 문화활동에 필요한 꽹과리며 북을 마련해주었습니다.

―70여세대 농민들에게 당보를 주문해드렸습니다.

해마다 당지 정부의 지지하에 70여세대 농민들에게 당보를 주문해드렸습니다.

2008년 사천 문천지구에 지진이 일어나자 특수당비로 2000원을 진당위에 바쳤으며 장애인을 조직하여 500여원의 구제금을 보냈는데 그중 집사람이 200원을 냈습니다.

―과학기술을 보급하여 농민들의 증산증수를 도왔습니다.

저의 제의하에 현과학기술협회의 비준을 받고 2007년에 왕청현양돈발전협회를 설립하고 제가 회장직을 맡았습니다. 협회를 세운 후 각종 훈련반을 10차 조직하였는데 연인수로 1500명이 참가하였습니다. 《양돈발전정보》잡지를 꾸려 무상으로 발행하였는데 이미 18기를 냈으며 양돈자문차수가 700여차 됩니다.

2001년 양돈장에 양돈기술봉사처를 세우고 농민들이 양돈에서 걸린 문제를 풀어주고 과학적으로 지도하였습니다. 현재 배초구진 나아가 전 현의 대부분 양돈호들은 전통적인 사양법을 개변하였는바 사양원가를 낮추고 수익을 높이고있습니다.

―차세대교양에 관심을 돌렸습니다.

 자진하여 장애인가정과 빈곤가정의 5명 자녀의 학교다니기 어려운 문제를 돕고있습니다.해마다 겨울철이면 배초구1소에 땔나무를 보내주고 왕청현의 여러 중소학교의 문예보도를 해줍니다.

― 농민들에게 무료로 법률적인 원조를 주었습니다.

2004년봄, 배초구의 204명 농민들은 왕청현종자공사로부터 벼종자를 샀는데 사전에 종자에 존재하는 약점 등을 알려주지 않아 가을에 가서 대면적에 병이 들면서 부동한 정도로 감산, 그 경제적손실이 엄중하였습니다.이에 농민들은 정부를 수차 찾았고 정부도 이에 중시를 돌렸으나 그냥 해결을 보지 못했습니다.당시 배초구진당위 김남웅서기의 위탁을 받고 농민들의 위탁대리인신분으로 종자공사를 현법원에 기소하였습니다.나중에 법원에서는 왕청현종사공사에서 농민들에게 63만여원의 경제손실을 배상하도록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외에도 장애인가정에 토지를 도급주지 않은 문제,장애인로인의 공양문제 등을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하여 해결하여주었습니다.

… …

―장애인 리옥희는 저를 당의 대표라고 합니다

때론 저도 자문하기도 합니다.《명색이 사장이고 대학에서 예술교육을 받은 도시인인데 꼭 이런 방식으로 남을 도와야만이 빈곤을 부축하고 좋은 일을 하는걸가?》라고 말입니다.

치렬한 사상모순은 늘 나의 머리에서 맴도는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면서도 농촌의 빈곤가정에 대한 특수한 관심과 사랑만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고향에 대한 애착, 인성화된 배려는 빈곤가정들로 하여금 사회주의대가정의 따사로움을 받아 우리의 사회가 더 조화롭고 화목하게 하였습니다.

저는 술,담배와 인연이 없고 마작도 놀지 않으며 노래방이나 다방 등 장소에는 가지 않습니다. 연길이나 왕청에 가도 택시를 타지 않습니다. 많은 벗들이나 동사자들은 《오사장, 돈을 벌어 어디다 쓰는가…너무 피곤하지 않는가?》라고 합니다. 실은 저는 누구보다도 무엇이 향수이고 멋부리는것이며 무엇이 풍류인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소비를 적게 하면 그만큼 빈곤가정의 어려움을  덜수 있다고 여깁니다.

배초구 서성촌의 장애인 리옥희는 저를 당의 대표라고 하면서《오사장이 도운 빈곤호는 오늘에 와서 빈곤호가 아니다》고 자주 외우고있습니다.

―사랑을 고향의 여러 분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서입니다.

농촌의 빈곤가정을 관심하고 돕는것은 정부와 인민들의 사회적부담을 더는 구체적인 표현이며 새농촌건설에 앞장서는것은 《세가지 대표》중요사상과 과학적발전관을 실천에 옮기며 공산당원의 선진성을 확보하는 구체적인 구현이라고 봅니다. 저는 남들처럼 손꼽히는 납세호도 아니고 특수기여자도 아닙니다. 하지만 저의 작은 행동이 사회에 영향주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책임을 공동히 짊어지도록 격려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더 바랄것 무엇이겠습니까.

저도 이젠 인생의 쉰고개에 올랐습니다. 대도시에서 농촌으로 내려왔고 국가간부로부터 보통백성으로 되였습니다. 저로서는 실로 큰 변화가 아닐수 없습니다. 그 목적이라면 제가 능력껏 뜨거운 사랑을 고향의 여러 분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지금도 시초에 간직한 《고향에 돌아와 사업을 펼친 이상 고향을 위해 나의 자그마한 힘이라도 이바지하련다.》는 념원을 고이 간직하고있습니다. 세월과 더불어 이제 그 념원이 하나둘 현실로 변해가고있다고 생각하니 정말 가슴 벅찹니다.

저는 농촌에서의 애심사업을 자각적인 행동에 옮겨 양돈장의 경제효익과 고향 농민들의 증수,빈곤부축,사회공익사업을 긴밀히 련계시켜 새농촌발전과 조화로운 사회구축에 마땅한 기여를 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왕청현 배초구진 서성양돈장 오기철  2009년

길림신문 박금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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