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료녕땅이 낳은 조선족작곡가 서영화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8월19일 10시57분    조회:8578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료녕땅은 조선족작곡가 서영화선생을 낳은 고장이다.

1925년 료녕 신빈현 왕청문 강동에서 태여난 서영화선생은 1945년에 처녀작 “만세 부른 날”을 작곡했다. 그때로부터 그는 료녕땅과 희로애락을 같이 하며 수많은 음악작품을 창작했다. 선생의 작곡집 《세월과 더불어 부른 희망의 노래》는 바로 그가 60여년의 심혈을 기울여 창작해온 주옥같은 음악결실이다

나는 서영화선생의 308수의 음악작품을 불러보면서 그토록 료녕땅을 지켜오고 사랑해온 작곡가의 뜨거운 마음을 다시 한번 느껴본다.

제3차 국내혁명전쟁년대에  쓴 가요 “녹는다 국민당”을 비롯한 11수의 작품은 승승장구로 적군을 섬멸하며 부른 승리의 개가였고 항미원조에 참전하여 쓴 “근위6사단”을 비롯한 11수의 작품은 인민군장병들의 전투모습을 보여준 음악작품이다. 그후 선생은 1957년부터 심양시조선족문화예술관에 행장을 풀고 장장 50여년을 줄기찬 창작활동을 진행했고 그 작품을 통해 료녕땅과 더불어, 세월과 더불어 부른 희망의 노래를 창작하여 우리들의 마음을 뜨겁게 달구어주었다. 이 시기에 창작한 음악작품은 수백수에 달하며 다양한 형식의 음악작품으로 창작의 왕성기를 보여주었다.

아래에 선생의 음악작품을 몇가지로 그 특징을 살펴보겠다.

   서영화선생의 음악작품은 한맥으로 짚어보면 총체적으로 밝고 락천적이다. 선생은 창가조를 음악창작의 바탕으로 깔고있다. 그러면서  오늘날의 풍부한 생활적정서와 시대적미감에 맞게  결합시켜 자기의 독특한 개성을 형성하고있다. 선생의 음악작품은 대부분이 맑고 밝은 대조형을 선택하였는바 소조형의 음악작품은 51수에 불과하다. 그러니 308수에서 대다수가 대조형이다. 동시에 평이한 형식을 선호했고 구조형식도 네모꼴형이다. 이것은 만백성이 다 부를수 있도록 고집을 부린 선생의 욕심이고 풍격이라 하지 않을수 없다. 그것이 바로 선생의 개성적풍격을 형성하였다.

다음은 선생의 예술가요에서 나타나는 남다른 매력이다. 화려한 무대에 올려놓을수 있는 음악작품과 비교적 큰 편폭의 음악작품들은 모두 이 부류에 속한다. 합창곡 “공산당에 영광의 노래 드리세”,  “사회주의농촌행진곡”  이 그 대표작으로 호매한 기백과 웅장한 울림은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며 다채롭고 다양한 연출형식으로 창작된 음악작품인 북병창 “주먹타령”, “떡메타령”, 표현창 “신비로운 천지물”, “이쁜이가 시집을 간대요”에서는 남다른 재치를 보여주며 중창곡 “우리사의 자랑”, “하향간부 장동지”, “압록강 두루미”, 독창곡 “소나무”, “인생길”, “바다건너 저켠에서 날아온 노래”,가야금 병창곡 “료하벌이 좋을씨구”에서는 남다른 이채를 돋구고있다.

선생은 료녕땅에서 살고있는 우리 민족의 생활을 다각적인 측면에서 보여주고있다. 이 노력은 가요 “찬찬찬”, “인생은 서서히”, “당신이 미워”, “안해의 술잔”, “고향아가씨”, “시골멋쟁이”, “마음속의 불로초”, “건강은 보배일세”, “더불어 사는 세상”, “부두의 련정”에서 더욱 두드러져 우리들을 즐겁게 해준다.

작사 작곡을 겸비한 창작방법은 서영화선생의 또 하나의 스찔이다. 이 부류의 음악작품에서 선생은 작곡뿐만 아니라 작사에서도 남다른 솜씨를 보여준다. 어떤면에서 그 재간은 우리를 경탄케 한다.“축하의 노래”, “늙을수록 청춘일세”를 비롯한 무려 28수는 모두 선생의  작사 작곡으로 되였다. 그만큼 작품들은 선생의 북받치는 창작열의와 함께 소박한 작사솜씨도 보여주고있다.

그외 민요를 바탕으로 한 “타령”부류나 소조형의 가요에서 볼수 있는 선생의 정서적기복은 편폭과 시간의 제한으로 략한다.

마지막으로 선생은 80고령에 자화상을 노래한 작품을 남겼다. 2005년에 쓴 “토배기 음악가”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에게 그 무슨 암시를 던져주는, 너무나도 의미심장한 노래로 깊이 음미해볼만한 작품이다. 어찌 보면  선생 자신이 서탑거리를 여유롭게 걸어가며 흥얼흥얼 노래부르는 모습같기도 하다. 선생은 자기를 “토배기음악가”로 자칭한다. 그만큼 선생은 자부심을 갖고 인생을 살아간다. 부럽기만 한 명언이다. 왜냐하면 진정한 음악은 바로 그 토배기에 있고 그것이 바로 다함없는 인민성이기때문이다.

그리고 하나 더 곁들어 말하고싶은것은 우리 료녕은, 우리 심양은 연변에 비해, 흑룡강에 비해 제2의 음악창작공정이 꽉 막혀버린 고장이다. 사실 우리에겐 조선말방송도 없고 텔레비죤방송도 없으며 화려한 공연무대는 그만두고라도 변변한 공연대도 없다. 그뿐만 아니라 비약하는 과학시대에 걸맞는 인테넷방송도 없고 우리 음악을 들려줄 인테넷홈페이지도 없다. 선생은 이 모든 행운을 받지 못했다. 소리가 없는 음악창작은 비극이다. 필자는 선생의 작곡집발행식에서 이 점을 절실히 느꼈다. 그 아름다운 선률을 음향으로 로전우들에게 선물로 주지 못하는 선생의 안타까움을 보았기때문이다. 이는 꼭 해야 할 우리 사회의 숙제이다. 동시에 선생들이 살아계실 때 료녕의 조선족음악사도 정리함이 바람직하다.

총적으로 선생의 작곡집 《세월과 더불어 부른 희망의 노래》는 선생이 정리 출판한 대형의 민요곡집과 함께 영원히 빛날것이며 동시에 료녕땅을 누비며 음악활동가로 활약했던 그 발자취처럼 선생의 음악작품도 우리 조선족음악의 한페지로 뚜렷한 자취를 남길것이다. 

 인터넷료녕신문 허창환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일전 길림성 영길현 구전수리전업1국에서 근무하다 정년퇴직하였다는 김기영씨(71)가 불편한 몸으로 기자를 찾아왔다. 두툼한 자료봉투를 꺼내놓으며 털어놓는 사연인즉 독립군의감(醫監)출신인 부친 김환(金煥)의 독립투쟁경력이 해빛을 보게 해달라는것이였다. 본인의 조사자료와 한국, 연변대학 등지에서 수집한 문헌자료...
  • 2005-12-15
  • [원제: 동심에 살던 그 시절이 그리워] 일찍 중국선진생산자의 일원으로 중국군영회(群英會)에 참가하고 소수민족대표로 주은래 등 중앙지도자들의 접견을 받았던 최윤복로인(76세)은 근 반세기가 지난 오늘이지만 그때의 그 영광이 새삼스럽기만 하단다. 최윤복은 1948년에 화룡중학교를 졸업하고 18세의 어린 나이에 화룡...
  • 2005-12-14
  • 중국 일류 대학생들의 선두인물 권정 김호림ㅣ중국국제방송국 기자 jinhulin@hanmail.net 권정(權靜), 그 이름에 사람들은 거개 생소함을 느낀다. 그러나 북경 대학입시 수석합격자라고 하면 대뜸 “아, 그 애 말이예요”하고 저마다 엄지손가락을 내밀군 한다. 북경에서는 2000년에 아주 드물게 2000년에 대학입시성적 성적...
  • 2005-12-14
  • [한겨레] 말총머리 휘날리며 날카롭게 상대를 쏘아보던 자오즈민. 2.5g짜리 탁구공 하나의 마술로 세계를 제패하며 중국 마녀군단의 선봉에 섰던 그는 1989년 한국 남자탁구 국가대표 안재형(41)과 결혼해 큰 화제를 뿌렸다. 한국과 중국이 적대국이었던 시절, 이 둘은 탁구를 통한 ‘이념과 국경을 초월한 사랑’으로 모두...
  • 2005-12-10
  • 장백조선족자치현 십이도구진 십이도구촌의 리병권농민은 북오미자재배로 치부의 길을 개척하고있다. 올해 49세인 리병권농민은 2003년에 과전현 등지에 가 자비로 북오미자재배기술을 배운후 퇴경환림으로 지난해 촌의 42무에 달하는 다락밭을 도급맡았다. 그는 선후로 9만여원의 자금을 들여 외지로부터 당지 기후에 적합...
  • 2005-12-08
  • [원제:김부인모피복장회사 신장 개업] 조선족 기업가 최명철씨가 총경리를 맡고있는 김부인모피복장회사가 지난 2일 할빈 도외구에서 성대한 의식을 가지고 신장개업에 들어갔다. 40여년이란 오랜 력사를 가지고 있는 김부인모피복장회사는 최근 년간 미국, 한국, 일본 등 나라들을 비롯한 국내외 수십여개 모피복장유명회사...
  • 2005-12-08
  • 한 평범한 가정주부가 연구 발명해낸 “일종 대퇴골괴사치료약물 및 그 제법”이 국가발명특허를 따내여 린근의 주의를 끌고 있다. 훈춘시에 거주하고있는 김영자(50세)는 다년간의 투병중 꾸준히 병마와 싸워가며 자기 몸을 제1실험실로 삼아 마침내 국가특허약물을 연구발명하기에까지 이른 것이다. 18살 꽃나이시절에 그...
  • 2005-12-08
  • 가렬처절한 조국해방전쟁에서 두손을 잃었으나 《이 생명 다할때까지 혁명하겠다》는 호언을 남겼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퇴역해 한생을 묵묵히 농업생산에 종사한 이가 있다. 그가 바로 전국군인모범으로 주덕, 주은래의 접견을 받았던 리수봉(78세)로인. 유소년시절부터 심양, 할빈 등 지를 류리걸식하던 리수봉씨는 1945년...
  • 2005-12-07
  • 우리 민족이 북방지역 벼재배력사를 개척한지 120여년이 되는데 그동안 북방입쌀 생산, 발전에 불후의 기여를 하고 많은 시대적과학기술일군을 배태시켰다. 20세기말 특히는 시장경제가 활성화하여 입쌀미질경쟁이 치렬할 때 국가특수대우향수자이며 길림성농업과학원 김윤주(지금 김심인이라 부름)연구원은 세계에서 처음으...
  • 2005-12-06
  • 12월 4일 제5차 《전국법제선전일》을 맞으며 2005년 《년도10대법제인물》 평선결과가 발표되였다. 이들로는 허문유: 료녕성공안청 형사정찰총대 대장 형사경찰의 본보기. 동려화: 공익변호사 약자의 권익 수호자. 진건교: 호남성인대 대표 마음은 언제나 민중과 함께. 중국법률원조기금회: 약세군체를 위해 소송을 걸고 자...
  • 2005-12-06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