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홍상표-흑룡강성유기벼협회 회장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8월6일 08시57분    조회:6979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우리 민족 브랜드입쌀 만듭니다 
흑룡강성유기벼협회 회장 홍상표를 만나

《중국제2차 입쌀혁명의 선두주자》로 불리는 조선족농민, 중국내 첫 유기벼협회 설립한 홍상표농민의 말: 《지금까지 많은 일을 해왔고 많은 영예도 받아왔지만 평생에 해놓은 가장 큰 일은 유기벼협회를 성립한것》

홍상표 프로필:
홍상표, 중공당원, 1946년 흑룡강성 탕원현 출생
고급농업기술자
현임 흑룡강성 홍남입쌀개발연구소 소장
흑룡강성유기벼협회 회장
1963년부터 100여가지 우량벼종류 육성
1995년 중한합자 흑룡강홍남입쌀제품유한회사 설립
1996년 탕원현과학기술위원회 비준 홍남벼연구소 설립
1997년과 흑룡강성 국외지력도입 선진사업자
1997년과 2001년 흑룡강성 농업과학기술 선진사업자
1997년과 2002년 흑룡강성 로력모범
1998년 흑룡강성 10대 농업기술사
1999년부터 흑룡강성정부 농업기술 특별수당금 향수
2003년 한국 오리농법기술 도입
2005년 국가 외국전문가국에서 3북(동북, 화북, 서북)지역 14개 성, 시의 농업전문가들 조직하여 오리농법 보급
2006년 10월 흑룡강성유기벼협회 설립, 회장력임
2008년 흑룡강성 우수실용인재
2008년 100명 전국농촌우수인재(중앙조직부, 중앙선전부,중화인민공화국 .인력자원 및 사회보장부, 농업부 공동발급)

흑룡강성 조선족 농민들속에서 《홍상표》라는 이름은 《유기벼》로 통한다.

흑룡강성에서 유기농법에 관심있고 유기농법으로 벼를 재배하는 사람속에서 《홍상표》라는 이름은 흑룡강 유기벼의 《대부》로 통한다.

또한 흑룡강성유기벼협회 회원들속에서 《홍상표》라는 이름은 《맏형님》으로 통한다.

《사업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시름놓고 먹을수 있는 중국에서 제일로 좋은 입쌀을 만들고 그런 입쌀을 우리 민족의 대표브랜드로 키워나가는 사업의 시작입니다》

이것이 60대 중반의 농민 홍상표씨의  꿈이다.

농민 홍상표: 땅에서 살어리랏다

20세기 60년대 중반, 가목사시 탕원현 탕왕조선족향에서 조선족고중을 갓  졸업한 홍상표, 그는 그때로부터 자신을 키워준 이 흑토와 장장 40여년간 인연을 맺어왔다.

부지런하고 끈질긴 그는 새파란 나이에 벼 육종, 재배, 화학제초연구에 몸을 담구어 《연구청년》과 《과학기술기준병》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1971년 그는 큰이랑재배법을 고안하고 실험에 성공하여 흑룡강성농업청에서 성내의 수전지구에 보급시켰으며 전 성의 150만무의 수전에 보급시켰다. 1980년 그는 흑룡강성 기술개진상을 수여받았다.

1983년 호도거리가 실시된후 그는 도급맡은 15.4무의 논에서 무당 567킬로그람의 수확고를 기록하여 탕원현 벼다수확경기에서 1등을 하였다.  1989년에 그는 2만5000킬로그람의 알곡을 나라에 바쳐 모범칭호를 수여받았다.

1988년 그는 향에서 관리가 따라가지 못하여 처분하는 22헥타르의 락엽송 종식장을 사고 그 산을 10헥타르 더 개간하여 락엽송을 심는 한편 200그루의 과수를 심었다.

1993년 흑룡강성조선족벼재배협회 회장인 그는 자금 7000원을 내여 제3차 전국조선족 벼재배기술 연구회의를 자기집에서 열었다.

1995년, 홍상표는 록색식품인 홍씨입쌀을 성공적으로 개발해냈으며 그가 설립한 중외합자 흑룡강성홍남입쌀제품유한회사는 가목사시에서 처음으로 중국록색식품발전중심에서 발급한 록색식품사용관리증을 발급받기도 했다.

뿐만아니라 탕왕조선족향을 중심으로 하는 록색식품 원자재알곡생산기지를 건립하여 해마다 가공하는 입쌀가치가 1500만원으로서 생산과 판매를 일체화하였다.

홍상표는 2003년 한국으로부터 오리농법을 도입한후 당해에 2헥타르,  현재는 13헥타르로 늘이면서 성공적으로 《탕왕오리쌀》 상표를 등록하고 헥타르당 1500킬로그람의 증산실적을 올려 흑룡강성의 유기농업발전에서 솔선수범을 보였다.

홍상표의 탐색은 현, 향, 촌급 간부들 및 해당부문의 큰 지지를 받았다.

향에서는 그의 오리쌀경제를 부축대상으로 삼고 당해에 5만원의 대부금을 내주었으며 탕왕향유기쌀시범기지를 건립하고 4000평방메터의 육모비닐하우스와 350평방메터의 오리굴을 건설해주었으며 전부 본지방 오리품종을 인입하였다.

홍상표는 자신의 성과로 전문특허를 신청하여 전국에서 유기오리쌀에 대해 신청한 첫 사람으로 되었다.

그는 또한 오리농법을  신속히 보급시켰다. 2005년에는 3북(동북, 화북, 서북)지구 오리입쌀사업 기술시범 현장회의에서 14개 성시의 전문가, 학자와 농민들을 자신이 건립한 탕왕오리입쌀생산기지에 이끌고가서 참관학습시켰다.

오리입쌀재배기술의 보급응용은 입쌀생산력사에서의 제2차 혁명이며 홍상표는 이번 혁명의 선두자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홍상표는 흑룡강성로력모범, 흑룡강성농업과학기술선진사업자, 흑룡강성10대농민기사, 흑룡강성농촌우수실용인재 등 영예칭호를 수여받았다.

전국 첫 성급유기벼 협회 성립

오리농법을 추진하고 보급하면서 홍상표는 유기벼기지를 건립해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였다.

《유기벼생산은 실천이 중요하다. 실천을 하려면 기지가 필요하다. 유기벼를 생산하는 농민들의 모임을 만들어 서로 학습하고 교류하고 기지를 만들어  경쟁력을 높이고 브랜드화로 나가자》 홍상표는 이 생각을 굳히고 2006년부터 전 흑룡강성 범위내에서의 유기벼협회설립을 꾸준히 추진하기 시작했다.

근 8개월의 준비를 거친 그해 10월 30일  흑룡강성농업위원회와 흑룡강성민정청의 공식인가를 받은 성급 사단법인단체이며 중국내 첫 유기벼협회이며 첫 성급유기벼협회인 흑룡강성유기협회를 할빈시에 설립하였다.

동북농업대학 원장, 흑룡강성 농업기술보급소 부소장 등 흑룡강성 농업계의 굵직한 사람들과 흑룡강성 각지역 유기벼농들이 모인 명실상부한 협회가 정식 설립되였다.

《지금까지 많은 일들을 해왔고 많은 영예와 칭호도 받아왔지만 내 평생에 해놓은 가장 큰 일은 유기벼협회를 성립해놓은 일이다》

홍상표는 가슴뿌듯해 한다.

협회는 기술업무양성을 조직하고 관리자의 관리수준을 제고하며 기지 농민의 생산조치와 기술을 지도한다.

진정 농민들을 위한 협회로

초대회장직을 맡은 홍상표씨는 국내에서의 교류와 보급 그리고 국제교류와 학습을 통해 협회 회원들의 전반적인 인식이나 기술수준을 높혀 종합자질이 높은 협회를 꾸려나가기에 힘을 썼다.

《밖에 자주 나가 다니고 듣고 보고 하는것은 유기농들의 인식과 자질을 제고하는데 유리합니다》

청하진 신흥촌에는 수전 60헥타르를 농사짓는 조선족 리씨 농민(유기벼협회 회원)이 있다.

2008년 홍상표는 리씨농민에게 한번쯤 한국에 나가 고찰해볼것을 건의했다.  하지만 농사일이 바쁘다며 도리머리질만 한다. 이러는 리씨를 홍상표는 택시를 타고 (택시로 3시간 거리) 몇 번씩이나 가서 설득, 끝내는 한국행에 나서게 했다.

한국 현지에서 유기농법이며 농기관련 공장을 돌아보던 리씨농민은 완전 푹 빠져버렸다.

한번은 상토(苗床)공장에 견학갔는데 리씨농민은 《아~ 이걸 내가 만들어야 하는데》라고 감탄하며 아예 상토 한마대를 메고 중국에 오려 했다. 끝내는 상토를 조금 가져다가 화험해보기로 설복해 겨우 말렸다.

《형님, (한국)가보니까 배울게 많고 소득도 크던데 언제 다시 가면 나 또 데리고 가줘》 리씨농민은 요즘도 홍상표를 만나면 다시 한번 가보자고 졸라댄다.

2008년부터 한국 《전국농업기술자협회》의 초청으로 2차에 거쳐 37명의 협회원들을 이끌고 견학길에 올라 향후 흑룡강성의 유기농업발전에 량호한 기반을 닦아놓았다.

적극성이 있는 농민들을 동원해 유기벼사업을 발전시키고 자연생태환경을 보호하고 개선하며 무공해유기벼를 생산하는데 취지를 둔 유기벼협회에는 현재 105명의 회원이 있으며 흑룡강성의 18개 벼중점생산시현에 분포되여있다.

장사가 아닌 사업으로

오래전에 한국의 한 오리농법 전문가가 홍상표한테로 와서 현지지도를 하면서 롱담반 진담반으로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이 오리농법으로 만들어낸 쌀이 이제 나중에 한국에 수출되면 나는 한국 유기농들한테 맞아죽어》.

《이 쌀을 어떻게 한국에 가져다 팔아요. 중국에만 팔아도 다 못 팔겠는데...》 홍상표가 대답했다.

어느 상품이나 다 수출해서 잘되는것은 아니다.  현실에 맞지 않게 무작정 수출하는것은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다. 진정 좋은 쌀을 만들어내느냐가 문제다。 중국 대륙에는 아직도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이것이 홍상표의 주장이다.

흑룡강성유기벼협회는 현재 300헥타르의 수전을 갖고있으며  3년내에 1000헥타르로 장성할 전망이다.  현재 아성, 녕안, 해림, 계동, 화천, 연수, 벌리, 탕원 기지가 있다.

유기벼협회는 이제 입쌀가공공장을 세워 브랜드화로 나갈 예정이다. 농민이 생산하고 가공공장에서 가공하여 질에 따라 등급을 매기고 시장에 전격 진출할 준비를 하고있다. 현재 상해, 광주에다 판매네트워크를 추진하고있는 중이다.

《아무런 생산기지도 없이 판매만 연구하는것은 쌀장사군의 생각이다. 우리는 지금 새 길을 열어가고있다.  기지를 만들고 브랜드를 만들어 류통을 해나가겠다. 국가공상국에 상표도 등록을 마쳤고 앞으로는 큰 무형의 자산으로 될것이다. 우리는 유기입쌀의 민족브랜드를 키울 큰 사업을 벌려나가고 있다》 이렇게 말하는 홍상표의 얼굴에는 굳은 의지와 자신심이 력력히 그려져있다.

홍상표가 보는 조선족 농촌의 출로는?

리농현상이 엄중한 조선족농촌의 출로에 대해서도 홍상표는 고부가가치의 유기농법을 하나의 해결책으로 보고있었다.

도시화는 필연적인 방향이다. 소규모의 집거지들은 없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땅을 버리지 말게 해야 한다.땅을 버리지 말게 하려면 땅에서 높은 소득을 얻을수 있게 해야 하는데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짓는것과 농부산품가공을 하는것도 좋은 방법의 하나이다.

하루빨리 전국적으로 앞장서서 유기농법, 자연농법을 연구하고 젊은 골간을 배양해서 우리 민족 농업기술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자연농법의 길을 걸을수 있는 교육이 따라서야 하며 자주 나가 학습하고 교류하여 농촌에 남아 있는 우리 민족 농민의 기술력을 높여야 한다.

이렇게 돼야 농촌에 남아있는 조선족들은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지어 소득을 늘리고  땅을 버리지 않고 집중촌이나 시내에 나간 사람들은 그 땅에서 나오는 리익을 그대로 챙길수 있어 도시나 농촌이 조화를 이룰수 있다.

길림신문 유경봉 최승호 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통화일양—핵심기술로 인삼산업 제1인자로 도약한다   ㅡ통화일양보건품유한회사 리청산총경리를 만나 리청산(李青山)프로필 1969년-1975년 군 입대 1975년-1985년 통화백산제약제3공장 주임 과장 당위서기 1985년-1987년 길림공학원 학습 1987년-1992년 통화백산제약제3공장 부공장장 공장장 1992년-2002년...
  • 2011-08-08
  • 저명한 조선족축구인이며 광주항대팀 코치 겸 통역 추명씨 “연변조선족출신이라서 그런지 타성에 몸담고있어도 항상 연변축구를 관심하게 되며 따라서 안타까운 점도 안두가지가 아니다. 연변축구는 수년전부터 슈퍼리그진출이란 목표를 내걸었는데 물론 연변축구의 슈퍼리그진출이란 우리 모두가 바라마지 않는것이...
  • 2011-08-08
  •   리동휘. 제1차세계대전의 포화가 세계를 뒤덮고있던 20세기초, 인류사상 가장 큰 획기적인 사변이 일어났다. 1917년 부패한 짜리로씨야에서 사회주의 10월혁명이 일어나 첫 무산계급 독재정권을 수립하였다. 10월혁명의 승리는 각국 무산계급투쟁을 고무하여주었고 세계 피압박 인민과 피압박 민족의 민족해방투쟁...
  • 2011-08-04
  • 김성만씨가 꾸린 “김예무대공연복장상점(金藝舞台演出服裝商行”은 10여년 줄곧 호황이다. 풍부한 무용전업경험을 갖고 부단히 혁신하여 부단히 변화하는 시장과 고객들의 요구에 부응한것이 오늘날 그의 성공을 부른것이다.     심양 금가만태생인 김성만씨는 1979년에 료녕성조선족사범학교 무...
  • 2011-08-02
  • 특별기획-중국조선족기업인 ㅡ단동항풍상무유한회사 심청송사장의 경영관 심청송(沈青松)프로필     1968년 흑룡강성 녕안현 출생 1991년-1993년 중국대외경제무역대학 통신학습 1994년 심양시대외경제무역회사 단동분회사 설립(합작) 1996년 심양시대외경제무역회사 단동분회사 독립 2002년 단동항풍상무유한회...
  • 2011-07-31
  •       리성적이고 랭철한 두뇌와 판단, 정확한 수치와 판별을 요구하는 우리 나라 유명약학대학의 교수라는 겉모습에 따뜻하고도 감성적인 문학소년의 내면세계를 갖고 사물의 본질을 파헤치는 심양약과대학 제약공정학원 허영남교수(48세), 사물의 미세한 립자까지 파헤쳐 성분을 분석해내고 세상...
  • 2011-07-28
  • 조선 평안남도 중악군이 고향인 리추악(본명 김금주. 1901년~1936년)은 중국 첫 조선인 녀성공산당원이며 항일투사이다. 3.1 반일운동시 그는 양림과 인연을 맺었고 혁명반려로 되였다.   소련 10월 사회주의혁명의 승리는 조선인민들의 반일투쟁 승리의 신심을 크게 고무했다. 1924년말 그는 중국 광주로 떠났다.   19...
  • 2011-07-27
  •   올 3월 8일 중국인노래자랑에 위문온 민주당 박영선국회의원(오른쪽 세번째)과 함께 있는 윤영숙비서장(왼쪽세번째)과 중국인협회 회원들.   홍콩가수 장명민이 부른 노래 《나의 중국심》이 언제가부터 윤영숙씨의 주제가로 된것은 특별한 리유나 계기가 있은것이 아니다.무슨 가수도 아니고 또...
  • 2011-07-27
  • 칭다오서원장조선족학교 허룡 교장        [흑신 김명숙 기자]   칭다오서원장학교가 하루가 다른 새로운 변모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는 지난 4월 새롭게 부임된 허룡 교장의 심혈이 스며있다.허룡(62세, 길림성 화전시) 교장은 19살 어린나이에 교하시 홍송소학교를 설립했으며...
  • 2011-07-25
  •  중국조선문 3대 언론사 특별기획―중국조선족 기업인(15) 민영 민족서점을 복합적인 문화산업기지로 육성할 터 연변민족서점 유한회사 허덕환 이사장을 찾아서          허덕환 이사장이 직원들과 교류를 하고 있다.         허덕환 이사장 프...
  • 2011-07-24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