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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 《물소리 새소리》의 작곡가 김창호씨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7월30일 03시20분    조회:5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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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마음 독특한개성 추구하는 음악인
—가요 《물소리 새소리》의 작곡가 김창호씨

가요 “물소리 새소리”는 고향을 그리는 절절한 마음을 담은 가사와 맑고도 절절한 선률의 흐름으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주었고 흐르는 세월속에 잊혀지지 않는 노래로 많은 사람들의 머리속에 자리를 잡았다. 문창남 작사, 김창호 작곡으로 된 가요 “물소리 새소리”에는 이런 이야기가 깃들어있다.

1982년의 어느날,  도문시문화국 창작실 음악창작원으로 있던 김창호씨는 길림에서 온 편지 한통을 받았다. 속지는 수첩 종이장이였는데 또박또박 박아쓴 “물소리 새소리”란 가사가 있었다. 당시 도라지잡지사 주필이며 길림시아리랑예술단 단장으로 있던 문창남선생이 가수 김재분씨더러 베끼게 하여 우편으로 보낸것이였다.

이틀후 길림에서 장거리전화가 걸려왔다. 김창호씨더러 당시 도문시문화국 창작실 주임으로 있던 리종산선생과 함께 길림으로 오라는 초청이였다. 마침 창작일군들은 1년에 3개월은 창작생활체험을 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어 안성마춤이였다. 길림에 도착한 날 점심 문창남선생의 모친이 몸소 여러가지 료리에 구수한 곱돌장을 곁들여 풍성하게 점심상을 차렸다. 문창남선생 모자의 깊은 정을 김창호씨는 깊이 느꼈다.

그날 저녁 일행은 송화호로 유람을 떠났다. 섬가에 정박한 유람선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한밤중까지 이야기꽃을 피운 그들은 이틑날 이른아침 섬에 올랐다. 뭇새들의 지저귐소리가 귀맛좋게 들려왔고 잔잔한 파도소리가 마음을 간지럽혔다. 그것을 자연그대로의 음악이였다.

정답게 들려오는 여울소리와 이름 모를 새소리를 들으면서 문창남선생과 김창호씨는 고향의 정겨운 물소리와 새소리를 그리였다. 10분도 안되여 김창호씨는 선률을 기보하였고 그 자리에서 여럿에게 시창해주었다.



물소리도 정다와라 어머니 내 고향

자나깨나 오가는 맘 적셔 흐르네

물길따라 꿈을 싣고 내 님과 속삭이던

아 물소리 아 물소리 청춘의 봄 노래여



새소리도 즐거워라 어머니 내 고향

다나쓰나 그리는 맘 울리여주네

꽃을 꺾어 입에 물고 내 님과 취해놀던

아 새소리 아 새소리 고향의 봄 노래여



맑고 밝은 이미지의 가사였지만 글줄마다에 문창남선생의 희로애락이 담겨있었다. 봄날의 태양처럼 뜨겁고 바다처럼 깊은 어머님 사랑, 여름날 해빛처럼 뜨거웠던 첫사랑, 가을날 처량하게 내리는 비속의 생리별 그리고 오동지섣달 추위처럼 혹독했던 기나긴 감옥생활, 칠흙같은 옥중에서 고향과 어머니, 첫사랑을 못잊던 문창남선생의 아픔이 이 가사에 담겨있어 김창호씨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러면서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게 되였다.

1951년,  왕청현 중평향 초모툰의 혁명가가정에서 태여난 김창호씨는 어린시절 공부를 잘해 선생님들의 귀여움을 받았다. 그는 전쟁년대에 고급군관으로 있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장차 크면 장군이 되려는 꿈도 꾸었다. 그러나 “문화대혁명”은 하루아침에 그의 가정을 풍비박산냈다. 독립영 영장으로 혁혁한 공을 세운 그의 부친은 억울한 루명을 쓰고 20년 형을 구형받아 공주령감옥에서 옥고를 치러야 했고 연변당학교 1기 졸업생인 어머니마저 반혁명분자로 락인찍혀 당적을 제명당하고 강제집중개조교양을 받게 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17살 난  김창호씨도 “새끼반혁명”으로 취급받아 “잡귀신”교양소에서 조장으로 온갖 잔신부름을 다 해야 했다. 설한풍이 몰아치는 한겨울 그는 너무나 배고파 돼지사료로 쓰던 시래기를 된장에 찍어 먹으면서 땔나무를 하였고 양몰이는 물론 변소밑에 들어가 인분도 쳐내야 했다.

어렸을 때부터 피리, 하모니카, 바이올린, 손풍금 등 악기를 닥치는대로 배워 능숙하게 다룰수 있었지만 김창호씨가 농촌마을 “선전대” 입대가 불가한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그는 마을의 김종진선생을 찾아서 음악을 배웠고 또 짬을 타 도보로 십여리 상거한 향양마을에 가 오영선생한테서도 음악창작을 배웠다. 그는 시종 음악의 꿈을 잃지 않았고 이악스레 악기를 련습하고 음악서적을 열심히 탐독했다. 그는 많은 가요를 창작해 농민들과 유치원생들에게 보급했고 특히 지난 세기 80년대 초반 도문시 월청, 석현 문화소에 있을 때 알찬 작품들을 창작하고 공연하여 작곡가반렬에 들어섰다.  

과외로 음악공부를 하던 김창호씨는 1985년 중국음악학원 통신학부에 입학하여 리론작곡을 전공하였다. 4년간의 리론작곡공부를 마친 김창호씨는 선후로 도문시문화국 창작실 음악창작원, 도문시두만강예술단 단장, 악대지휘, 도문시음악가협회 비서장으로 활약했고 현재 중국음악가협회 회원, 중국민족예술가협회 회원, 연변로교수협회 음악문학연구소 부소장 등 직을 맡고있다. 그는 1975년 연변인민방송국 아동프로에 작곡하고 손풍금반주까지 맡은 동요 “해바라기 태양 따르죠”를 발표한 이래 “물소리 새소리”,  “연변녀자”, “보석가락지”,  “구름사랑”,  “부모님” 등 1000여수의 가요를 창작했고 “고추잠자리”,  “숲속의 학교”,  “호랑나비 날아갔네” 등 많은 동요도 창작했다. 김창호씨는 선후로 “물소리 새소리”,  “연변녀자”  등 작곡집을 펴냈다.  부전자전이란 말이있다. 소학교 5학년 때 연변대학 예술학원에 입학한 김창호씨의 아들 김위룡은 16살에 벌써 전국트럼벳콩클 금상을 수상했고 올해에는 중국음악학원 작곡학부에 입학했다.

김창호씨는 지난날 기구한 인생의 험한 고개길을 톺아왔지만 그의 선률에는 신음이나 흐느낌이 없다. 그의 선률은 산기슭을 조용히 어루쓸며 흐르는 시내물의 속삭임이요. 푸른 하늘에서 우짖는 종달새의 노래소리이다. 그것은 지난 세월의 모진 아픔을 너그럽게 대하는 그의 넓은 흉금속에 가득찬 마를줄 모르는 샘같은것일것이다. 하기에 그의 음악인생좌우명은 “아름다운 선률은 고운 마음에서 오고 독특한 리듬은 남 다른 성격에서 온다”는 말이다.

연변일보 김인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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