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중한우호의 전기인물― 한성호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7월29일 10시26분    조회:6257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내가 만난 한성호박사 

3년전 필자는 장편실화소설 《중한우호의 전기인물― 한성호》를 읽고 한성호박사님을 꼭 만나보겠다고 작심하고 김수영(작자)선생님한테서 련계주소를 알고 한박사님께 나의 절절한 마음을 전했더니 동의한다는 기별이 왔다.

한박사는 한국 박정희대통령때부터 청와대 《어의》며 호금도, 리붕, 주용기, 리서환 등 중국의 당정지도자들이 친절히 접견한 위인이시다. 특히 한박사는 노태우 전 한국대통령의 밀사로 1988년부터 중국을 밀행하며 중한 수교를 성사시킨 전기인물인데 나와 같은 소인까지 만나주겠다니 그래 놀랄 지경으로 기쁘지 않겠는가?.           

 지난 4월 27일, 한박사는 자기의 사무실에서 우리 부부를 접견했다. 만면에 웃음을 지으시고 소탈한 유머에 중국말과 한국말을 엇바꿔하면서.

한성호, 1927년 8월 2일 길림성 장백현 반절구 금화향 리천동 출생, 장백현의 첫 대학생, 1948년 8월에 피치 못할 사정으로 조선을 거쳐 한국에 정착. 미국 캘리포니아 골둔주립대학 식품영양학 명예박사, 사단법인 중화국제문화교류협회 회장, 한화중국화평통일촉진련합총회 회장, 중국재한동향회연의총회 회장, 신동화한의원장, 중화전국화교련합회 고문 등 수두룩한 직무를 맡고 초침마냥 쉬지 않고 돌아치는 위인이시다.

인생의 락

박사님의 소개에 따르면 한국에는 《원주민중국인》(로화교)이 1만5000여명, 한중 수교후 17년간 대륙에서 간 중국인(신화교)이 80여만명(그중 불법체류15만명,  동북인  40만명, 조선족이 30만명)이나 된단다.

한국에는 《화교협회》, 《대륙협회》가 있다. 《화교협회》는 대만정부의 지지를 받고 《대륙협회》는 중한 수교후 한성호의 선두로 설립된 《중국교민협회(신교협회)》다. 한박사는 근 7년간 해마다 3, 4천(한화)만원을 투자하며 《신교협회》사업을 끌고나가는데 교포사업자체가 경제투자라 《혼자서 60-70만명을 살리려니 못담당하겠다》며 사업의 간고성을 피로했다.

《한희원에서 번 돈을 화교를 돕는데 쓰지요. 작년 4월부터는 2000만원씩 월세를 받던 4층을 아예 〈신교협회〉에 사무실로 무상 내주었습니다. 내가 이제 살면 얼마나 살겠습니까!》

 《내가 어려울 때 도와주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남에게 베푸는것은 인생의 도리이고 락이지요.》

한박사는 화교를 돕고 조국통일사업에 기여할수 있는것을 락으로, 보람으로 느꼈다.

한박사는 7000만 해외화교를 대표해 지난 3월에 전국 《량회(정협,인대)》에 렬석했다며 19개 나라에서 온 31 명 대표는 물론 전국《량회》 대표중 최고령자라고 소개하였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지각, 조퇴, 청가 한번 없이 열심히 참가했다며 《늦게 온 긍정(肯定)은 금으로 못바꾸고 만년에 온 영예는 만만년》이라 《〈로병불사〉의 의력과 정신으로 졸음 한번 없이 나를 자률했다》며 《늙을 때까지 배운다는 학생의 심태로 조국을 료해하고 조국을 배우며 조국에 기여하려는 구지욕으로 10일간에 한개 나라의 정치대학을 졸업하였다》며 자랑하였다.

주장님께 부탁한다

한박사는 너무나도 어려웠던 이왕사를 돌이켜보며 《나를 사경에서 구해준 사람이 조선족이고》 《버림 받은 기민((폴民)을 한국이 받아줬고》 《또 한국인 녀성과 결혼하였다》며 《지금은 한국에 진 빚을 값고 조선족에게 진 빚을 갚는다》며 《만약 연변조선족자치주 주장님을 만나면 이런 부탁을 하겠다》고 하였다.

박사님은 조선족을 아끼는 마음에서 안타까움을 성토했다.

서울의 구로, 안산 등 조선족이 집결된 고장의 밤은 너무나 무법천지다. 지금은 주먹이 아닌 문화로 자기를 보호하는 시댄데 조선족은 다른 족을 멸시하고 류망, 불법 행위를 꺼리지 않는다. 교회, 법륜공, 독품경영자들이 돈을 주고 밥을 주고 무상치료를 해주는 등 수단으로 동포들을 유혹하는데 대부분은 조선족들이 끌려들고있다. 이들은 법륜공조직에서 10만원을 주면 반중국시위에 동참하고 몇만원만 줘도 반중국, 반중국공산당 신문들을 배포한다.

 우리를 찾아오는 많은 동포들은 거의 모두가 《돈을 달라》는 소리다.

교육은 한개 나라의 현상이다. 언제 내가 연변조선족자치주 주장을 만나면 한국에 있는 20만명 조선족동포를 책임지라고 호소하겠다. 신문매체도 주정부에 적극 《호소》 해야 한다.

조선족들이 왜 한국국적을 갖자고 그렇게 애를 쓰는가? 국적이 없어도 무슨 일이나 다 할수 있는데. 나는 60여년을 한국에서 살면서도 지금까지 중국국적을 포기하지 않고 하고싶은 일을 다하고있다. 조국은 어머니다.

한국남자와 결혼한 중국녀성들이 약 10만명으로 예산되는데 99% 녀성들이 리혼 혹은 가출했다.

한국서 외국녀성과 결혼하려는 대부분 남자들은 한국서는 장가를 못가는 남자들이다. 조선족들이 한국남자와 결혼하려면 우리 협회에 뒤조사를 맡겨달라. 남자측의 재산정황, 범죄전과, 지체상황 등 신분을 조사확인하고 제공해줄것이다. 이런 사업은 한국서는 우리만이 할수 있다. 지금 윁남에서는 이렇게 하고있다. 우리가 나서면 절대로 당하지 않고 브로커들한테 속지 않을것이다. 지금 매일 2~3명의 녀성들이 찾아와서 울며 하소연 하는데 어떤 녀성들은 맞아서 피까지 흘리며 말이 아니다. 지금 많은 동포녀성들이 먹거리를 위해 저급, 황색 지역에서 헤매고있는데 정말 안타깝다.

우리는 조사를 잘하는것으로 조국의 딸애들을 보호할것이다.

드팀없는 약속

2006년 3월 18일, 한성호박사는 《한화중국평화통일촉진련합총회》와 《서울중국교민협회》설립 4 주년 경축대회에서  《선언문》을 살포, 《선언문》의 맺는 말로 《팔불학(八꼇學)》 《장수비결》을 올렸다.

《독립을 반대하고 통일을 촉진하는 동지들, 위대한 어머니 조국은 우리를 부른다.  평화적통일만이 어머니 조국에 대한 효도와 충성이다!》

《욕심이 없으면 두렵지 않고 두렵지 않으면 아프지 않고 아프지 않으면 죽지를 않고 죽지를 않으니 장수로다. 욕심에 찬 일을 하지 않았으니 관리가 문을 열라 한들 두려우며 량심에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았으니 귀신이 문을 열라 한들 두려우랴!》

 《나의 제일 욕망은 교수나 기자였고 내가 한평생 글을 써왔지만 나는 한평생 글씨를 잘 못씁니다. 그러니 오부장의 앞에서는 글을 쓸수 없으니 이번엔 그저 돌아가세요.  내가 꼭 써서 부쳐보내드리겠으니???》

《장수의 90%는 정신, 심태에 달렸습니다.  무엇을 먹고 안먹고보다도 겁, 공포가  없으면 병이 안나고 병이 안나니 죽지 않지요》 《내가 담배를 피우라고 하는것은 아닙니다만  나는 매일 담배를 세갑씩 피웁니다.  그런데도 오부장이 보건대 내 나이에  이만하면 멀쩡하지요?》

내가 만난 한성호박사는 구경 어떤 사람인가?

한박사님의 자필로 독자들에게 알린다.

《나는 금전과 재물보다 명예를 중히 여긴다. 나는 생명보다 자존을 더 중히 여긴다. 나는 고집스레 선을 택한다. 나는 악을 원쑤같이 미워한다. 나는 내가 뱉은 말을 책임진다.》

《나는 재난을 많이 겪었지만 건강은 하다.  나는 욕을 많이 먹었지만 장수는 한다. 나는 닭의 주둥이처럼 여윌지언정 소의 엉뎅이처럼 살찌기를 바라지 않았다. 깨끗한 몸으로 청빈할망정 혼탁한 부자가 되기는 싫다.》

필자는 박사님과의 약속대로 연변서의 재회를 기대하며 서울을 향해 또다시 만남의 그날을 손짓한다.

길림신문 오기활 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본사소식 현재 한국 경민대학교 관광호텔학부 교수로 재직 중인  서영근 씨가 조선족으로써는 사상 처음 중국 조선족 서풍형성(書風形成)에 관한 론문으로 한국 원광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수여 받았다. 서영근 씨의 박사학위 론문은  중국 조선민족이 처한 력사,지리, 문화 등 예술환경과 그것에 의해 생성된 민...
  • 2008-03-17
  •  ㅡ심갑섭 한국 인천문화재단 대표리사 인터뷰 《문화의 저력!》 지난해 년말 한국 인천문화재단 제2임 대표리사로 취임한 심갑섭(66세. 甲燮)선생, 그와 만나서 가장 인상깊은 점은 하얀 은발과 입에서 떠날줄 모르는  《문화》라는 단어. 《문화를 키워야 도시가 살아난다》 심대표리사는 《지금 시대는 도시가...
  • 2008-03-07
  • 국가급무형문화재종목 대표계승인 김명춘 후계자양성에 고민지난 2월 28일,  북경 인민대회당에서 개최된 제2기 국가급무형문화재 종목 대표계승인(第二批国家级非物质文化遗产项目代表性传承人) 명명 및 증서 수여식에는 문화부가 공포한 551명의 종목 대표계승인...
  • 2008-03-07
  • 중국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로 당선된 연변가무단 일급 무용가로 활약하고 있는 함순녀 대표를 전화로 연결해서 두 회의와 관련해 그의 얘기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하 "기"는 기자, "함"은 함순녀 대표를 지칭합니다.)  기: 안녕하십니까? 함: 안녕하십니까? 기: 우선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
  • 2008-03-05
  • <아리랑> 김산 발굴한 중국동포 학자의 '쓸쓸한 영면'[오마이뉴스 조창완 기자] ▲ 김산의 <아리랑>(Song of Arirang) 책 표지(김산-님 웨일즈 공저로 돼 있다). ⓒ (사)아리랑연합회 역사에 우연은 없지만 한 상황을 가정해보자. 훗날 <중국의 붉은 별>을 쓴 작가 에드가 스노우의 부인 님 웨일즈는 르...
  • 2008-02-28
  • 민족예술의 새로운도약 위해 기여할터-11기 전국인대 대표 연변가무단 국가1급배우 함순녀다년래 민족예술에서의 배움과 쌓은 경험들을 학생들에게 사심없이 전수하여 연변민족예술을 고양할수 있는 우수한 후계자들을 양성하기에 노력하며 연변민족예술의 새로운 휘황과 도약을 위해 모든것을 다 바치련다." 이는&nbs...
  • 2008-02-26
  • 2007년 7월, 중국 중소학교학생 노래경연에서 연길시제3중학교 최연희(15살)학생이 벨칸토창법에서 단연 1등의 영예를 따내 가족은 물론 학교의 교정을 들썽케 했다.“내 딸이라고 자랑하는것이 아니라 이 애는 어릴적부터 취미가 다양했으며 특히 음악절주감이 좋아서 동네에서 노래 잘 불러 소문이 나있었다”...
  • 2008-02-26
  • 꼬마무용수들의 예술꿈 키워간다 -목단강시조선족소학교 심성주교원의 이야기20여년간 꼬마무용수들을 거느리고 전국, 성, 시급 시합에 참가하여 수십차례의 영예를 따내면서 어린이들에게 예술의 꿈을 키워주고 있는 목단강시조선족소학교의 심성주교원. 국가급음악부편심, 작곡가인 아버지의 셋째딸로 태여난 심성주...
  • 2008-02-25
  • 한국 근대시로 석사학위 딴 조선족 윤기미씨 "중국에 한국 문학 알리고 싶어요""아직까지 중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한국 시를 중국에 많이 소개하고 싶습니다" 한국 근대시를 연구한 논문으로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국문학 석사학위를 받은 윤기미(33.여)씨는 석사모를 쓰고 환...
  • 2008-02-24
  • —11기 전국인대대표 연변대학 교장 김병민"조국의 변강에 자리잡고 있는 이곳은 비록 조건이 간고하지만 교원과 학생들은 나를 수요한다. 민족교육사업발전을 위해 자신의 일체를 기여하겠다" 고 연변대학 교장 김병민은 페부지언하면서 학교를 열애하고 민족교육사업을 열애하는 심경을 털어놓았다.1978년...
  • 2008-02-22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