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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계 잉꼬부부 리철용,김홍화의 이야기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7월8일 09시13분    조회:8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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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에서 맹활약하는 부부방송원

독자들은 1990년대에 연변텔레비죤방송국에서 활약하던 부부아나운서 리철용과 김홍화를 기억하고있는지? 조선족이지만 한어말방송을 너무도 멋지게 하여 시청자들의 환영을 받던 리철용(辛文)과 조선말 《요청한마당》사회를 많이 맡고 단아한 모습을 자랑하던 김홍화―10년전에 북경에 진출한 이들 부부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있을가?  

일전에 사유로 북경행차를 떠난 기자는 수도에서 이들 부부와 마주앉아 대화를 나눌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고마운 어문선생님

화룡시의 림업로동자가정에서 태여난 리철용은 중학교때까지만 해도 자기의 목소리가 그렇게 좋은줄은 몰랐다고 한다. 소학교시절부터 글짓기를 무척 좋아해서 작문성적이 항상 우수했고 랑독을 꽤나 잘해서 학교의 웅변콩클에서 여러차나 상을 타기도 했지만 본격적으로 아나운서의 꿈을 키우게 된것은 고중 2학년때였다. 

당시 리철용은 문과에 소질이 있으면서도 리과반에 다니는 애들이 머리가 더 총명하다고 인정받는다는데서 리과반을 선택했었다.   그런데 어느날 《뢰우》를 강의하던 어문선생님이 리과를 배우는 애들은 과문랑독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얕잡아볼줄이야!?           
 
련속 몇명 한족학생을 지명해서 랑독을 시켜보고 도리머리를 젓던 선생님은 이번에는 학생명부를 내리훑으며 조선족학생들의 실력을 떠보기 시작했다.  선생님의 편견에 어느 정도 불만을 가지고 본때를 보여줄 기회를 노리던 철용이는 자기의 차례가 돌아오자 정신을 가다듬고 과문을 읽어내려갔다.  고개를 끄덕이며 철용의 랑독을 흔상하던 선생님은 생각밖으로 “학생은 특수한 목소리를 갖고있네요.   공명이 커서 이후 아나운서사업을 하면 좋을겁니다.”라고 덕담을 해주었다.

그후 리철용은 학급을 대표하여 학교방송소의 방송을 맡게 되였는데 발음도 정확하고 목소리 또한 얼마나 웅글진지 지나가던 학생들이 발길을 멈추고 방송에 귀를 기울이는것이였다. 이때로부터 한학급에서 일주일씩 맡아하던 학교방송을 철용이네 학급이 도거리하고 철용이는 “전직아나운서”로 추대되여 졸업할 때까지 학교방송실을 독차지했다.

천생연분

같은 화룡태생인 리철용과 김홍화가 인연을 맺게 된것은 1992년의  《12?》활동에서였다.  연길국제무역청사에서 선전사업에 몸을 담고있다가 아나운서시험을 거쳐 연변텔레비죤방송국에 취직한 리철용은 당시 공청단주위의 부탁을 맡고 《12.9》기념문예활동의 한어말사회를 맡게 되였다. 그때 조선말사회를 맡고 함께 무대에 오르게 된 녀사회자가 바로 연변사범학교(지금의 연변대학 사범분원) 학생인 김홍화였다.

소학교시절에는 대대위원, 중학교시절에는 학급공청단서기직무를 맡고 문예경연때마다 사회자로 장끼를 뽐내는외 화룡시에서 조직한 웅변대회,  작문경연, 영어경연에서 상을 도거리하다싶이 하던 홍화는1989년에 연변사범학교에 입학, 학생회 문예부 부장, 교내방송원으로 활약하면서 아나운서의 꿈을 키워갔다.

그날 서로 얼굴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채 일부터 시작한 이들은 촬영이 끝난후에 마련된 모임에서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퍼그나 가까와졌다.   둘다 고향이  화룡이여서인지 언어가 제법 자연스레 통했으나 그때까지만도 한솥밥을 먹는 사이로 될줄은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 그런데 며칠후 프로를 편집하던 선배님들이 사회자 둘이 너무도 잘 어울린다고 하면서 녀자친구가 없다면 당장 이 처녀를 잡으라고 롱담삼아 말했다.   첫눈에 반했다고 할가 은근히 마음이 있던 철용이는 서둘러 홍화를 찾아가고…

이리하여 둘사이는 재빨리 련인관계로 발전했고 사범학교를 졸업한후 짧은 시간동안 훈춘시텔레비죤방송국의 아나운서로 사업하던 홍화가 연변텔레비죤방송국의 아나운서로 선정된 1993년부터는 어깨나란히 한사무실에 출근하면서 사랑을 가꿔가게 되였다.

충 전

전업지식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아나운서로 된 철용이는 사업에서 시도때도없이 부딪치게 되는 문제들을 제대로 풀어나가지 못해 안타까울 때가 많았다. 가방끈이 짧은것을 한탄하던 철용이는 마침내 대학에 가서 공부를 하면서 자기를 제고해볼 용단을 내렸다. 이렇게 중국매체대학(中  媒大 ) 연구생으로 된 철용이는 목마른 사람이 물마시듯 열심히 전업지식을 배우며 지식수양을 쌓아갔다. 

몇년간 아나운서사업을 하면서 부딪친적 있는 문제들을 가지고 공부를 하다보니 열성이 높은건 둘째치고 학습내용을 보다 빨리, 보다 투철히 리해할수 있었다. 그런 우세가 있었기에 철용이는 시험을 칠 때마다 우수한 성적을 따낼수 있었고 전국사회자론문평의에서 상을 타는 영예를 안아오기도 했다.   당시 중국매체대학에 2명밖에 안되는 학생수상자중에 자기가 들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을 때 철용이는 얼마나 기뻤는지 몰랐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서 철용이는 홍화가 내조를 너무 잘해주었다고 고마운 심정을 내비치였다. 당시 연변텔레비죤방송국에서 《요청한마당》과 《우리네 동산》, 《국내외뉴스》 등 프로를 진행하면서 잘 나가던 홍화는 1999년에 중앙인민방송국에 전근했는데 세집에서 살면서 남편의 공부뒤바라지를 할랴, 출근을 해서 새로운 사업에 적응을 할랴 고생이 많았지만 혼자서 모든 곤난을 용케도 헤쳐나갔다. 덕분에 마음편히 공부할수 있은 철용이는 졸업후 북경시텔레비죤방송국과 라지오방송국에서 사회자로 활약하며 재질을 과시할수 있게 되였다.

도 약

우물안의 개구리처럼 제자리뜀질을 하던 철용이가  북경에서 실력을 인정받게 된것은 2001년초에 전국사회자콩클에 참가하면서부터였다.

당시 북경시텔레비죤방송국에서 사업하면서 북경이 올림픽주최도시를 쟁취하는 행사를 위해 장애인을 주제로 하는 특집프로의 기획제작을 금방 마무리한 철용이는 우연한 기회에 전국적으로 사회자콩클을 펼치게 된다는 광고를 보았다. 

자기의 실력을 한번 점검해볼 타산에서 모교에 찾아가 문의도 하고 등록을 했지만 전국적으로 참가자수가 무려 3500명, 북경에만도 1000명이나 된다는것을 알게 되자 별로 희망을 걸지 않았다. 그러나 필답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따낸것이 큰 힘으로 되였다.

필답시험성적을 발표하는 날,  일때문에 몸을 뺄수 없게 된 철용이는 색시한테 시험성적을 알아볼것을 부탁했다.  남편이 우수한 성적을 따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홍화는 그날 제일 꼴등부터 올리훑었는데 아무리 살펴보아도 이름이 나타나지 않아 혹시나 통계에 문제가 있지 않나 가슴을 조이기도 했다.   그런데 남편의 이름이 우로부터 세번째자리를 버젓이 차지하고있을줄이야?!  빗본것은 아닐가 하는 위구심에서 몇번이나 거듭 확인하고난 홍화는 너무도 기뻐 춤이라도 덩실 추고싶었다.
200등까지 참가하는 면접시험을 거쳐 50등안에 들어간 철용이는 CCTV를 통해 전국에 생방송되는 결승단계를 위해 준비를 착실하게 했다. 그러나 실전에서 손님과의 대화를 이끌어갈 때 시간을 제대로 장악하지 못한탓으로 자기가 꼭 이야기해야 할 내용들을 충분하게 서술할수 있는 여유를 가지지 못했다. 그리하여 총성적가운데서 70%를 차지하는 이 단계에서 점수를 많이 깎이우다보니 결국에는 23등에 머물고말았다.  그번 콩클에서 1등을 한 사패녕을 비롯해서 20등안에 들어간 사회자들이 모두 중앙텔레비죤방송국에 취직하는것을 보고 철용이는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그번 기회를 통해 많은것을 배우면서 한단계 높이 도약했다고 생각하니 그것보다 더큰 수확이 없을것 같았다.

뿌듯한 성취감

전국사회자콩클이 결속된후 리철용은 150명이 참가한 시험에서 1등의 성적을 따내여 유일한 행운아로 북경라지오방송국에 입사했다. 이때로부터 그는 뉴스를 둘러싸고 진행되는 여러가지 프로의 기획과 진행을 담당, 북경라지오방송국의 우수사회자로 평의되고 북경방송상(1등),  북경보도상(1등),  중국방송상(2등), 중국보도상(3등) 등 영예를 따내면서 뿌듯한 성취감을 만끽하기 시작했다.

2001년 7월 13일은 국제올림픽위원회에서 2008년 올림픽주최도시확정을 둘러싸고 투표를 하는 날이였다. 그날 동료들과 함께 생방송중계차에 앉아 천안문광장에 나간 철용이는 휴대용라지오를 통해 마지막 결과를 선포하는 싸마란치의 목소리에 귀를 귀울였다. 라지오에서 “베이징(北京)”이라는 소리가 흘러나오는 찰나 그와 동료들은 “와, 우린 끝내 성공했어!”라고 환성을 지르며 손벽을 마주쳤다.              
 
바로 이때 인민대회당으로부터 채색기발을 추켜든 경축대오가 줄지어 달려나왔다.   천안문광장은 대번에 환희로 들끓었다.  철용이와 동료들은 일분일초라도 지체할세라 그자리에서 생방송을 시작하고…그날 전파를 통해 감동의 순간순간을 방방곡곡에 전하면서 철용이는 보도일군의 성취감을 마음껏 체험했다.

북경의 한 젊은이가 커커시리(可可西里)에 가서 진귀한 야생동물인 장령양을 보호하는 활동에 참가하고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철용이는 이 주제를 가지고 프로를 만들어보고싶었다.  직접 취재를 나갈수 없는 형편에서 그는 잠간 북경에 돌아온 젊은이를 만나 해당 설비를 넘겨주면서 여차여차하게 자료를 수집해달라고 청을 들었다. 미구에 그는 그 자료들을 주요의거로 진귀한 야생동물을 보호하고 비법수렵자들을 다스릴데 관한 프로를 만들어냈는데 나중에 이 프로는 중국보도상을 수상하였다.
2007년부터 철용이는 매일 점심 12시에 방송되는 《매일화제(新 天天 )》프로의 기획인으로 뛰고있다. 이 프로는 한가지 문제에 대해 각기 다른 견해를 가지고있는 손님 두분을 생방송실에 모셔와서 서로가 의견을 주고받는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매일마다 색다른 화제를 발굴해내고 적합한 손님을 모셔온다는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기에 철용이는 웬간한 사람들이 스쳐지나가는 사소한 이야기까지 귀담아듣고 최대한 많은 정보를 수집하면서 청취자들이 즐기는 프로를 만들어내고저 매일 한가할 사이가 없다. 

2008년 5월 28일, 문천강진에서 부상당한 91명 환자들이 북경로년병원에 호송되여왔다. 북경인민방송국에서는 유일한 매체로 병원에 림시생방송실을 설치하고 추적보도를 진행하게 되였는데 철용이가 맡은 《매일화제》프로는 6월 2일부터 8일까지 련속 7일동안 눈물이 없이는 들어내려갈수 없는 사연들을 방송하여 청취자들에게 진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금년까지 5년째 《인대정협직행렬차》프로의 사회를 맡은 철용이는 해마다 인민대표대회와 정협회의가 열릴 때면 대표들속에 심입하여 함금량이 비교적 높은 제안들을 선정해서 프로를 만드느라 분주히 보냈다. 이밖에 향항회귀 10돐,  올림픽 홰불이어달리기 등도 놓칠수 없는 화제였다.    

고향사랑

연변에서 태여나고 연변에서 아나운서의 첫발자국을 뗀 철용이와 홍화는 사업때문에 부모님들이 살고계시는 고향땅을 자주 밟지는 못하지만 고향생각을 한시도 잊은적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기회가 닿기만 하면 고향을 위해 좋은 일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있다. 

북경인민방송국에서는 해마다 세밑이면 민족풍속습관을 둘러싼 프로를 방송하는데 조선족에 관한 프로를 만들 때면 의례 철용이를 찾군 한다.    이때마다 철용이는 조선족의 풍속습관이며 민속음식들을 소개하느라 시간가는줄 모르는데 랭면을 소개할라치면 마지막에 연변에 한번 다녀오면서 직접 참맛을 체험하라는 당부를 잊지 않는다.               
                         
2008년 올림픽을 앞두고 홰불이어달리기를 할 때 《매일화제》제작팀에서는 전국 각 성, 시, 자치구의 수부도시를 상대로 한개 프로씩 만들어 방송하기로 했다. 그런데 길림성프로를 만들게 되자 철용이가 수부도시 장춘이 아니라 조선족들이 모여살고있는 연길로 대상을 확정하자고 건의를 했다. 당시 철용이는 연변의 우세를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해당 일군들을 설복했고 구체조작을 할 때에는 연변텔레비죤방송국에서 사업할 때의 직접상급이였고 주당위 선전부장인 리흥국의 지지를 얻어 사업을 추진했다. 북경에 있는 조선족예술가들까지 동참시킨 이 프로는 그때 라지오방송과 동시에 《보이는 라지오》를 통해 시청자들과 대면하여 절찬을  받았다.

홍화 또한 뉴스방송외 매주 일요일마다 방송되는 특집프로 《라지오응접실》의 담당자로 직접 취재, 편집, 사회까지 도맡고있는데 그중 《세계속의 조선족》코너는 매주 일요일마다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직접 한국법무부 전달수사무관님과의 전화취재로 청취자들의 질문에 답변을 드리는 한편 한국관련 법률과 정책을 적시적으로 다루어 청취자들의 환영을 받고있다. 

이밖에도 홍화는 《한중관광 친선의 밤》야회, 《한중예술인문예야회》, 중앙인민방송국 조선어방송개시 45주년 대형특집문예야회, 북경시 새해맞이문예야회와 《전국조선족노래자랑》 등 대형행사의 사회를 맡고 연변 나아가 조선족을 위해 많은 일들을 했다.

행복한 아빠엄마

6살짜리 딸애의 아빠엄마로 된 철용이와 홍화는 절주가 빠른 북경에서 생활하면서도 딸애에 대한 교양만은 등한시하지 않고있다. 

세살까지 외할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별탈없이 자라난 딸애는 남다른 총명으로 아빠엄마를 기쁘게 해주고있는데 가장 돌출한것은 음악감각이라고 한다. 

사범학교시절 피아노를 배운적 있는 홍화는 건반악기를 다룰줄 알면 대뇌발달에 도움이 크다는데서 딸애가 두돌생일을 쇤지 얼마 안되여 피아노를 갖추어놓았다. 이렇게 두살 반때부터 집에서 피아노를 가르치다가 세살 반이 되자 전문교원을 모시고 배우게 했는데 어린것이 한번 들은 곡이면 악보가 없이도 하나도 틀리지 않게 연주할수 있어 어른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군 한다.

아빠엄마의 유전자를 물려받아서인지 딸애는 목소리도 좋고 또박또박 말도 잘해서 아동광고프로에도 두번이나 등장했다고 한다. 꽤나 어른스러운 딸애는 또 다른 사람을 배려해줄줄 아는 성품도 갖추고있는데 지난해 문천지진때에는 텔레비죤화면을 통해 아빠엄마를 잃은 자기또래 어린이들의 불쌍한 모습을 보고는 자기의 저금통을 털어 그애들에게 보내달라고 아빠엄마에게 지청구를 들이댔다. 이들 가정에서는 또 사천성의 어느 농촌소학교에 체육용품을 보내주었는데 며칠전에 그곳에서 날아온 감사의 편지를 받았다.

수도 북경의 매체에 뿌리를 내리고 연변조선족의 자랑을 떨쳐가는 리철용,  김홍화부부가 사업에서 보다 큰 성과를 이룩하고 연변을 위해 좋은 일을 더 많이 하기를 기대해본다.                                     

연변라지오TV신문  채선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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