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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서예학박사 38세 조선족 서영근교수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6월25일 10시56분    조회:9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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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서예 사랑의 한길에서” 
저명한 조선족 서예가 서영근 교수의 성공스토리
 

올해 나이 서른여덟, 한국 최초 서예학박사, (사)중국연변문자예술협회 회장이며 서정대학교 교수, ‘중국 조선민족 서예사’ 등 저서의 저자, 한국 저명한 서예가들마저 그의 서예를 예찬해준 그는 누구일까?

기자는 지난 6월 19일 경기도 양주 서정대학에서 젊고 활기찬 조선족 서예가 서영근 교수를 만났다. 서영근 교수 연구실은 비교적 작지만 젊은 교수 특유의 활기가 넘쳤다. 교수보다도 서예가로 이름이 더 났기에 연구실 벽에는 여러 서예작품으로 고풍스레 장식이 되어 있었다.

차를 따르고 나서 서 교수는 밝고 맑은 얼굴에 웃음을 지으며 기자의 취재에 차분히 응해주었다. “저는 고향이 중국 연변, 도문의 월청사람입니다. 때문에 호도 월청이지요.”하고 서두를 뗐다.

   
  ▲ 동북아신문에 써준 제사
고향이 도문 월청이라지만 세 살 때 거기를 떠나 화룡을 거쳐 용정 태양촌으로 다시 이주해서 살았다고 한다.

서영근 교수가 서예가로 자란 데는 아버지(연변의 저명한 소설가 서광억 선생)와 書藝家인 형(서권)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용정 태양촌 문화소 소장을 역임해 온 서광억 소설가는 촌의 문화선전란을 맡아 글씨를 써왔는데, 자식들에게 무의식간에 영향을 주었다. 더구나 당시 연변작가협회의 비서장과 연변문학 주필을 역임하고 있던 저명한 조선족 서예가 김호근 선생이 서광억 소설가에게 원고부탁을 하느라 자주 찾아가다 보니 서예를 접 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 된 것이다.

서영근 교수가 정식 서예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1989년 9월 연변대학 사범학원에 입학해서 부터이다. 경필글씨에 집착하다가 사범에 입학하여서 부터는 붓글씨를 쓰며 정식으로 서예를 배우기 시작했다.

당시 중국에 서예 관련 책이 희소하다 보니 서예 담당 김정송 교수는 신문이나 잡지, 기타 자료 등에서 복사한 서예자료를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거의가 북한 정봉체로 씌어 진 서체였다.

서예에 대한 그의 남다른 집착과 천부적인 소질은 그를 재빨리 서예가로 등단을 시켜놓았었다. 1991년 여름 연길시에서 ‘제2회 연변조선족서화(書畵)전’이 개최되었는데 그가 다니는 사범학원에서는 3명의 교수가 입선된 외에 학생으로는 유일하게 그의 서예가 입선 되었다고 한다.

   
1993년에 졸업을 앞두고 그는 개인서예전을 개최하였는데, 그 사적이 연변텔레비전의 문예특집인 ‘진달러프로에 나가기도 했다. 1994년부터는 ‘흑룡강신문’에서는 ‘서예교실’을 특설하고 한 달에 한번씩. 3년간 30회에 거쳐 서영근의「서예와 음악의 융합」등 서예이론 시리즈를 발표하였는데 이는 중국에서의 한글서예 보급과 발전에 적극적인 추동역할을 하였다.

연변사범학원을 졸업하자 그는 1993년 7월부터 1995년 2월까지 연길시공예상표공장 디자이너로 재직하였으며, 그 기간에 수많은 상표글씨와 간판글씨를 썼었다. 지금도 연변 안도시장에 15년 전에 걸어놓은, 3m 높이의 ‘안도시장’이라 쓴 간판글씨도 그의 작품이다.

1994년 8월에 그는 처음으로 ‘아름다운 한글 서예 중‧한연합전’에서 입상을 하여 궁체라는 한글서체를 접하게 되었으며 전통한글서예에 깊은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그는 한국의 저명한 서예가 30여명에게 “한글 서예를 배우고 싶다”는 편지를 띄웠는데 15명 서예가들에게서 답장을 받고 서예교본과 책을 선물 받았으며, 2명의 서예가에게서는 편지로 지도를 받기도 했다. 특히 조용선 서예가(궁체 대가 ‧ 현 80세)의 각별한 지도와 사랑을 받게 되었다.

1995년 5월에 제주도에서는 연변서예가협회의 주관 하에 ‘한중서예교류 제주전’이 열리었는데 연변에서는 34명의 서예가가 출품하였다. 당시 제민일보 등 신문지상에서는 “서영근씨는 전통 한글 서체인 판본체를 선보이었는데 이는 중국에서 최초로 전통한글서예를 출품한 것으로 기록된다.”고 대서특필하고 그의 작품을 대표작으로 게재했었다.

   
1995년 3월부터 그는 연길시중앙소학교 미술·서예교사로 재직하면서 많은 서예후대를 양성하였다. 1995년 12월에는 중국교육학회 미술전업위원회에서 주최한 전국교원미술서법대전에서 서법부문 2등상을 수여받음으로서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 또한 1995년 12월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개최된 ‘해외동포서예전’에서 그의 작품이 평론가 박병천교수에 의하여 한글 판본체중에서 가장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되면서 서예계의 주목을 받았다.

1996년에 서영근 서예가는 김정송, 서권, 장룡, 리문혁 등과 같이 중국 최초의 한글서예 사단법인인 ‘연길시조선글서예가협회’를 창립하고 회장직을 맡아 한글 서예보급과 발전에 앞장섰다. 그해 5월에는 그의 서예활동 사적이 연변TV 함께하는 세상 “열심히 사는 사람”에 다큐멘터리로 방영되기도 하였다.

서영근 서예가는 1997년에는 한국의 문학과 서예를 더 깊이 연구하고자 한국 유학을 결심하였다. 2001년 2월에 그는 국어국문학과 학부과정을 졸업하고 2003년 2월에는「說文部首字의 誤謬硏究」라는 제목으로 제주대학교 문학석사 학위를 수여받았으며, 이어 국립 경상대학교 국어학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2008년 2월에는 원광대학교 대학원에서 서예사상(한국 포함) 첫(1호) 서예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서영근 서예가는 유학하는 동안 11회에 걸쳐 ‘한중한글서예교류전’, 그리고 ‘국제서화가친선교류전’, ‘동양미술대전’, ‘한중일서예전’ ‘국제한민족서예전’ 등 수십 회의 국제서예교류를 추진하여 중국에서의 한글서예 보급과 발전, 한중문화교류에 부정할 수 없는 기여를 하였다.

2003년 그는 서예 후대양성과 서예 저변 확대를 목적으로 서권, 장룡, 리문혁 등과 함께 동방연묵회를 창립하였는데 방학기간마다 중국에서 서예강습반을 무료로 운영하였으며, 온라인 카페 “서예촌”을 운영하면서 서예동영상강좌, 서론전자도서관 등 유용한 자료를 네티즌들에게 제공하고 있는데 현재 360명에 이르는 회원을 확보하였다.

2008년에는 서예를 순수 예술만이 아닌 디자인과 결부시켜 서예를 상품화시킬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자 사단법인 ‘연변문자예술협회’를 창립하고 ‘국제한민족문자예술초대전’, ‘세종대왕한글서예대상전’ 등 행사를 주최하고 있다.

   
       > 박사학위를 받고, 지도교수와 함께
그는 학술방면에서도 많은 성과를 거두었는바, 「20세기 중국 한민족 서예발전사 고찰」등 수십 편의 논문을 발표 하였으며 그 중에서 「중국 조선민족 서예사 연구」는 동북아역사재단의 2007년 신진연구자장학사업 과제로 선정되어 연구비를 수혜받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이야기로 이해하는 실용한문』,『中國 朝鮮民族의 書藝와 藝術環境』,『중국 조선민족 서예사』『설문재자 부수 형의고찰』『大學漢語口語』등이 있다.

그는 서예 외에도 시 문학에도 재능을 갖고 있었다. 2007년 그는 한비문학에 ‘잔디’(시)를 발표하여 신인상을 수상하였으며 일찍이 1991년에 연변가요창작대회에 응모하여 ‘두 사람의 세계’라는 가사로 우수상을 수상한 바 있다. 또한 중국 창건 60주년을 기념하여 개최되는 새 연변가요창작대회(현재 작곡단계)에서 가사 ‘네가 있어 즐거운 세상’이 입선하였으며 현재 연변시인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옛날 서예가들은 자기가 직접 쓴 시를 서예로 보여주었는데, 자기가 쓴 시를 서예로 표현하면 작가의 감정이 깊이 베여있게 됩니다.” 하고 말하는 그는 시 문학과 서예가 조화된 예술창작을 이루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그의 형 서권 역시 서예가였다. 동양철학으로 석사학위를 수여받고, 현재 고문자학 박사과정을 수료하였으며, 연변제일사범학교 서예교수를 거쳐 현재 수원여자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동생이 형의 영향을 받아 서예를 시작하였지만 동생이 먼저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형이 이어서 박사공부를 하고 있는 형제 서예가이다. 형제가 서예, 박사, 교수의 같은 길을 걷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두 형제는 서예 사랑의 한길에서 든든한 동반자로 서로 의지하면서 또 힘이 되면서 의젓하게 걸어가고 있다.

‘동양서화교류대전’, ‘한중한글서예교류전’, ‘남북한 포함 한중일 민족서예전’ 등을 해마다 개최하며 20여년간 한글서예 사랑의 한길을 걸어온 서영근 서예가는 서예의 주제를 “한글서예를 통한 민족통일-마음을 하나로 잇는 사업”, “붓길로 여는 통일과 상생의 길”, “먹물로 뿌리는 통일의 씨앗” 등으로 내세우며 한민족의 네트워크와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

기자가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을 때 서영근 서예가는 “한국 문화 예술 관련 대학을 설립하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이를테면, 연변에 가칭 ‘명동문화대학’ 을 설립하는 것이지요.”라고 감회 깊게 말했었다.

   
▲ 한중일국제화전

뜻 있는 자에게 길은 생기는 법이다. 서영근 서예가는 아름다운 붓글씨로 기필코 세계 한민족의 마음을 사로잡아 한민족네트워크에 이바지 할 것이며, 그가 가는 한글서예 사랑의 길에 아름다운 이야기가 계속되리라 기자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본지 이동렬 기자 ldl8387@hanmail.net
동북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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